사육인간 - 18
<32. 두 미녀의 만남>
큰 소리로 유행가를 부르며 요시꼬, 마리, 에츠꼬 세 사람은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아가씨, 지금 어디 가는 거요?"
"사요코 훈련 시간이 됐잖아요."
세 여자들은 깔깔대며 어둠침침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곰팡이 냄새 나는
좁은 지하실 방에는 온몸이 꽁꽁 묶인 채 사요코가 멍석 위에 쓰러져 있었다.
손발이 마비되고 의식마저 몽롱한 상태였지만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훑고 있는
여자들의 인기척에 온몸을 바싹 긴장시키고 있었다.
허름한 천으로 코까지 덮은 사요코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예쁜 눈으로 요시코를 쳐다보며 애원하듯 힘없이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지체 높으신 집안의 딸이라 역시 다르군 아주 깨끗하고 투명한 피부를 가지셨네."
마리와 요시코도 사요코 옆으로 몸을 숙여 눈처럼 희고 아름다운 피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에츠코는 웨이브 진 부드럽고 탐스러운 검은 머리카락이
귀를 살짝 덮고, 우아함이 물씬 풍기는 긴 속눈썹과 맑은 눈동자의 온화한
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자니, 불현듯이 여자들에게도 이런 천연 진주와
같은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처녀에게 시즈코 부인이나 쿄오코처럼 추악하기
그지없는 훈련을 시킨다는 것이 왠지 측은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와서
이런 연민의 정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들답지 않다고 생각한 에츠코는 애써
휘파람을 불며 사요코가 덮고 있는 수건을 벗겨냈다.
"자, 각오는 하고 있겠지. 아가씨! 당신 동생은 미츠코와 호흡을 아주 잘
맞춰가며 매일 훈련을 받고있어. 당신도 동생에게 지지 않으려면 이제부터
열심히 해야 돼."
에츠코는 그렇게 말하며 수건을 벗겨내고 묶여 있던 사요코 다리의 끈을
풀어주었다. 양다리가 자유로워지자 사요코는 본능적으로 두 다리를 오므려
몸이 앞으로 넘어질 듯 움츠리고 있었다. 그리고 달콤한 향료 냄새가 풍기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필사적으로 애원하는 것이었다.
"제발 부탁입니다. 돈이라면 아버지에게 얘기해서 얼마든지 드릴게요. 한번만
더 아버지에게 전화할 수 있게 해주세요."
여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웃고있었다.
"바보 같은 계집애 아직도 그런 소릴 하다니, 우린 한번 실패한 일은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는 걸 몰라. 네 몸값은 이미 단념한 지 오래야."
요시코가 말하자 이번엔 에츠코가 입에 담배를 물며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아가씨의 아름다운 몸이면 우리가 당신 아버지에게 요구했던 돈은 아마
충분히 벌어들일 수 있을 거야."
계속해서 마리가 씹고 있던 껌을 뱉으며 말했다.
"아가씨도 우리 사장님이나 두목 앞에서 쓴 서약서를 잊지 않았겠지, 당신도
이제 모리다 조직의 완전한 상품이야, 부질없는 생각은 아예 관두고 훌륭한
스타가 되어주면 그것으로 족해."
세 여자들은 한 가닥 희망마저 잃은 채 고개를 푹 떨구며 훌쩍이고 있는
사요코를 통쾌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사요코의
양어깨에 묶여져 있는 끈을 풀어냈다.
"손이 마비될 것 같으니 좀 쉬게 해주자."
사요코는 손과 발이 모두 자유로워졌으나 공포와 수치심은 여전했고, 이런
여자들 사이를 뚫고 도망칠 기력마저 없었다.
요시코, 마리, 에츠코 세 사람은 훈련 실에서 긴코와 아케미가 시즈코 부인을
훈련시키는 광경을 구경하며 이들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대장 격인 긴코가 이들을
보낸 것이다.
"자 아가씨 훈련 실을 안내하지요. 일어서요."
마리는 도자기처럼 흰 사요코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부탁입니다. 제발 놓아주세요."
사요코는 마룻바닥에 얼굴을 묻고 더욱더 흐느껴 울었다.
"무슨 소리야. 아직 변변한 훈련도 받지 않았으면서. 자, 일어나 어서."
요시코는 조금 화가 난 표정으로 사요코의 귓불을 비틀어 올렸다.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사요코는 뒤로 꽁무니를 빼고있었다. 훈련이 대체 뭔지 사요코로서는
알 리가 없겠지만 처녀의 직감으로도 왠지 음란하고 잔인할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어서 못 일어서."
에츠코가 신경질적으로 사요코의 흰 어깨를 걷어찼다.
"부탁입니다. 제발 뭐라도 걸칠 만한 것을……."
사요코는 세 명의 여자들에 이끌려 간신히 일으켜졌지만 더 이상 꼼짝 않고
자신의 어깨를 누르는 마리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서약서에 사인한 것을 벌써 잊었어."
"아무 허락 없이 몸에 천 조각 따위를 걸쳐서는 안 돼. 제멋대로 행동하면
두목에게 일러바칠 테니까."
"건장한 남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몸인데 감추기는 왜 감춰."
여자들은 저마다 그렇게 말하며 일으켜 세운 사요코의 탐스런 몸을 한번씩
훑어보는 것이었다. 화려한 화원 속에서 백로에게 소중히 길러진 것처럼, 이
세상에 하얀 더러움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꽃처럼 순수한 사요코는 이
어둠침침한 공간에서도 온 세상을 밝게 하는 보석 같은 빛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마리와 요시코는 이처럼 신선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가 앞으로 오니겐이나
가와다 같은 사람들의 지독한 훈련에 얼마나 몸부림치다 결국 굴복하여 어떤
아름다운 여자로 변할 것인지에 사뭇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자 가자."
다시 여자들에게 등을 떠밀린 사요코는 몸도 마음도 없는 육체를 앞으로
구부리며 부드럽고 탐스런 두 유방과 그곳을 각각 한 손으로 가리면서 세 여자들에게
포위되어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후후후, 가엾은 엉덩이. 소금을 뿌려 먹으면 아마 맛이 괜찮을 텐데."
마리가 지하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사요코의 엉덩이를 뒤에서 밀어 올리면서
킬킬대며 웃고 있었다.
그들이 훈련실 문을 열고 사요코를 밀어 넣으려 하자,
"너희들 뭐야!"
아케미가 시즈코 부인의 엉덩이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내보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즈코 부인의 훈련이 한창 진행 중인 듯 부인의 발끝을 누르며
구경하던 다시로와 모리다까지 관능적인 흥분에 들떠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들이 나타나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불쾌한 듯 얼굴이 일그러지며
나무라는 것이었다.
에츠코가 웃으며 얼버무리듯 "방송 중이면 빨간 불이 켜지는 장치를 할 필요가
있겠네요."
"아케미 잠깐 쉬었다 하자."
부인의 바로 앞에서 몸을 구부리고 있던 긴코가 소리쳤다. 두 사람은 마치
화학 실험을 하고 있는 여학생처럼 매우 진지한 표정이었다.
예쁜 이마가 진땀으로 얼룩진 시즈코 부인이 요염한 목덜미를 자랑하듯 살짝
젖히자 진주처럼 고운 치열에서 땀방울 하나가 톡 하고 부인의 발끝에 떨어졌다.
순간 구경꾼들이 와 하고 소리치며 박수를 쳤다.
긴코는 일어서서 수건을 꺼내 부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었다.
"그럼, 부인 5분 동안만 쉽시다."
"긴코 씨."
시즈코 부인은 힘없이 눈을 깜박이며 땀을 닦고 있는 긴코를 바라다보았다.
"나, 지금 너무 지쳤어요. 오늘은 이만 하면 안 될까?"
"어머, 안 돼요. 부인 약속했잖아요 사장님과 두목님의 훈련도 받겠다고요.
아까부터 두 분 모두 언제쯤일까 하고 기다리고 계신단 말예요."
긴코는 딱 잘라 말했다. 긴코는 아케미에게 시즈코 부인의 흐트러진 머리를
단장하라고 시키고 훈련실 입구 쪽의 사요코를 끌고 온 요시코에게 다가갔다.
"너희들 뭐야. 왜 얘를 이리 데려온 거야."
"네 긴코 언니, 이곳에서는 대체 어떤 식으로 훈련하는지 잘 몰라서요. 그래서
일단 언니나 가와다 씨에게 의논 좀 해보려고요."
이렇게 말하며 요시코는 그곳과 가슴을 감싸안고 몸을 쭈그리고 있는 사요코의
턱을 치켜세웠다.
"그래도 이리 데려오면 안 돼. 시즈코 부인이 훈련받는 광경을 보면 놀라서
몸이 굳어버린단 말이야. 이 아이처럼 애지중지 키워진 아가씨는 무서운 광경은
일체 보여선 안 돼. 아주 느긋하고 천천히 훈련시켜야 해."
긴코가 설명하자 가와다가 히죽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한가한 소리하네. 다른 동료들보다 이 아가씨는 훈련이 너무 늦어지고 있단
말야. 그러니 단기간에 훈련시켜야 해. 특별히 뛰어난 다섯 명을 선별해서
스타트 라인에 세우는 것이 우리 임무야."
과연, 긴코는 가와다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럼 언니들의 지혜를 좀 빌려야겠네요. 이 아가씨를 먼저 어떤 식으로……."
"기다려!"
가와다는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듯 긴코의 말을 자르며 그녀의 귀에다 뭔가
속삭이는 것이었다.
"음 그거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긴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와다와 함께 시즈코 부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훌쩍거리며 마룻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사요코는 고개를 들어 눈물 맺힌 눈으로
긴코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이 방안에 뭔가 불길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방의 한쪽 구석에는 아름다운 몸매를 지닌 듯한 여성의
몸이 줄로 아주 단단히 묶인 채, 한 가닥의 쇠사슬에 연결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 같았지만, 빙 둘러싸인 야비한 남녀 구경꾼에 가려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 여성은 뭔가 사악하고 비참하기 그지없는 학대를 받고 있는 듯 했지만,
사요코는 대체 무슨 일로 그런 학대를 받고있으며, 또 그녀가 누구인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곧 자신의 운명도 저렇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사요코는 소름이 끼쳐 몸을 떨며 소리내어 울었다.
그런 사요코 옆으로 바싹 다가선 에츠코와 마리가 말했다.
"이봐요 아가씨. 저쪽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자가 누군지 모르겠어? 도야마
재벌의 부인인 도야마 시즈코 부인이야."
네에― 하며 사요코는 눈물이 흥건한 눈을 들었다. 그리고 설마 하며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도야마 부인은 사요코의 부친이 경영하는 보석 상회의 아주
귀한 단골손님이기도 하였고, 또한 사요코에게 일본 무도와 다도를 가르치는
스승이기도 하였다. 제자를 두는 것을 싫어하는 시즈코 부인이었지만 아버지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사요코에게 신부 수업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요코에게는 시즈코 부인이 스승이었던 것이다. 사요코는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을 때도 부인은 몇백 장이나 되는 표를 맡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손수
화환을 갖고 응원까지 해주셨다. 객석에 시즈코 부인이 앉았을 때, 첫날이었음에도
사람들은 부인의 우아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그런 시즈코 부인이 이 지옥 같은 방에서 온몸이 묶여 있다니 사요코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방에 끌려들어온 뒤 사요코는 여자들의
입에서 시즈코라는 이름이 몇 번이고 불려졌던 것을 기억해내고 있었다. 왠지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은 느낌에 사요코는 젖가슴을 힘껏 감싸안으며 살짝
얼굴을 들었을 때였다. 앗! 사요코의 아름다운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틀림없이
시즈코 부인의 희고 갸름한 얼굴이 앉았다 섰다 하는 남자들 새로 언뜻 보였던
것이다. 늘씬한 키, 흠잡을 데 없이 의젓하고 완벽한 몸, 긴 속눈썹에 눈초리가
길게 째진 눈을 살며시 감고 있었지만 오뚝하고 부드러운 콧날, 마치 꽃처럼
어여쁜 입술과 눈을 녹일 듯한 하얀 피부, 틀림없이 시즈코 부인이었다. 왠지
무서웠다. 그처럼 유연하고 아름다운 육체는 손을 뒤로 한 채 줄로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이 아닌가. 시즈코 부인에게서 두 손의 자유로움마저 빼앗고 이렇게
잔인한 모습으로 만들면서까지 이 방에 있는 악마들은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인가. 물론 사요코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너무나 무서워
몸을 떨며 손으로 눈을 가려버렸다. 한편 시즈코 부인의 양쪽에 선 가와다와
긴코는 아까부터 끊임없이 어려운 동작들을 부인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자, 지금 말한 대로하면 돼. 별것도 아닌데 뭐."
가와다는 아케미가 손으로 시즈코 부인의 머리를 쓸어 올려주는 모습과 부인의
몸에 로션을 발라대는 모습을 보며 이죽거리고 있었다.
가와다는 사요코가 시즈코 부인에게 일본 무도와 다도를 배웠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기묘한 일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사요코가
스승이었던 시즈코 부인으로부터 받았을 두려움과 공포심을 없애고 이 세계에서
일하는 것이 여자로서는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설득시키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러쿵저러쿵 번거롭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선생이었던 부인이 잘
설득해주면 사요코도 마음이 움직일 겁니다. 아무튼 사요코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하는 말이고 게다가 실제로 몸소 보여주기만 한다면, 아마도 그대로 따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즈코 부인은 가와다에 게서 얼굴을 돌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시즈코 부인은 슬픈 시선을 가와다에게 보냈다. 이제 와서 이를 거절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가엾은 체념을 부인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확실하게 이 생활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심이 표정에 나타나 있었다. 개가 되라면 개로, 짐승이
되라면 짐승처럼 살아야 한다는 자포자기한 모습이기도 하였다.
"알았습니다. 가와다 씨."
"좋아. 그럼 해보는 거지."
시즈코 부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와다는 입구에 있는 요시코에게 소리쳤다.
"이봐, 아가씨를 이쪽으로 데려와, 도야마 부인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군."
이런 비참하기 그지없는 수치스런 모습으로 사요코와 대면하게 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시즈코 부인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지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뭐 하는 거야, 빨리 끌고 오라는데."
마리와 에츠코에게 두 팔을 끼인 채 사요코는 시즈코 부인 앞으로 끌려왔다.
"서 선생님."
사요코가 부인을 향하여 소리치자 그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시즈코 부인이 이 아가씨의 선생이었구나."
다시로가 가슴과 허리에 탱탱하게 살이 오른 아름다운 유부녀와 길고 부드러운
웨이브 머리카락에 에워싸인 듯한 처녀의 몸을 비교하기라도 하듯 히쭉거리며
입가에 음흉한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아가씨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을 텐데."
하며 찌요가 몸을 내밀었다.
"그래 생각났다, 무슨 보석상 집 아가씬데."
찌요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로와 모리다에게 사요코가 시즈코 부인에게서
일본 무도와 다도를 배웠다는 사실을 설명하였다.
"여기서는 그런 고급스런 것을 가르칠 필요는 없어. 시즈코 부인이 여자에게
더욱 즐거운 일이 뭔지 가르쳐줄 거라고 말씀하셨거든."
가와다는 흥분된 어조로 두 미녀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애송이 불량소년에게
천장 들보에 줄을 묶도록 시켰다. 시즈코 부인의 바로 앞에 한 줄의 로프가
내려왔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사요코를 세워두고 부인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듣도록 한다는 것이 가와다의 착상이었다.
"자, 아가씨 앞에 계신 선생님처럼 얌전하게 손을 뒤로 돌리시지. 묶어야
하니까."
가와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삼으로 꼰 줄(참바)을 가지고 기다리던
에츠코와 마리가 가슴을 끌어안고 있는 사요코의 양손을 뒤로 비틀려고 하였다.
"안 돼, 제발……."
사요코는 여자들에게 붙잡힌 손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저항하였다. 그러나
사요코는 그들로부터 점점 온몸이 조여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사요코는
안간힘을 쓰며 절규하듯 소리치고 있었다.
찌요는 서로 얼굴을 돌려 시선을 피하고 있는 아름다운 두 스승과 제자를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작년 정월이었던가, 도야마 저택에서는 평소
친분이 있는 재계 유명 인사와 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국인을 초대하여 정월
파티를 열었고 그날 2층 연회 홀에서 시즈코 부인과 사요코가 일본 무도를
선보였었다.
찌요는 문득 그런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도야마가 사치를 부려 만든 노송나무
무대 위에서 곰박지로 만든 두건을 쓰고 눈처럼 하얗게 화장을 한 시즈코 부인과
사요코가 장대와 부채를 들고 화려한 춤을 선보여 내객의 박수갈채를 받았었다.
그 춤이 삼바소오(가부키의 축하 춤)인지 아사즈마부네 춤인지 무식한 찌요로서는
알 리가 없었지만, 그렇게 화려하고 사치스런 의상을 걸치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춤을 연출한 시즈코 부인과 사요코가, 다시 말해 사제지간의 두 미녀가
지금 이곳에 새로운 모습으로 마주서서 앞으로 모리다 조직을 위해나 나체
춤을 출 거라는 생각을 하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가와다, 다시로, 모리다 세 사람은 마주보고 서 있는 두 미녀 사이에 주저앉아
시즈코 부인의 그것과 사요코의 그것을 번갈아 쳐다보고 웃으며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이윽고 가와다가 느릿하게 일어나서 시즈코 부인의 부드러운 턱에
이마를 갖다대며 말하였다.
"헤헤헤,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한스러워만 하고 있을 거야. 조금 전에 내가
가르쳐준 요령으로 사요코를 설득해 봐."
시즈코 부인은 괴로운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가와다에 게서 얼굴을 돌렸지만
뒤에 있던 긴코가 부인의 엉덩이를 꼬집어 비틀었다.
"꾸물거리면 두 사람 모두에게 다른 약을 쓸 거야. 둘 다 큰 소리로 울고
싶어."
시즈코 부인은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럼 어서 시작해."
긴코는 그렇게 말하고 이번엔 사요코에게 가서 나긋나긋하게 속삭였다.
"후후후, 아가씨 이제부터 당신의 스승 말이에요 차나 꽃 같은 시시한,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을 가르쳐줄 거야. 자 그렇게 얼굴을 돌리고 있으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긴코는 사요코의 턱을 잡아 얼굴을 돌리도록 하였다.
"서 선생님. 어 어떡해요 선생님이 이런 곳에……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사요코는 복받치는 듯이 울고있었다.
긴코는 웃으며 부인 쪽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 있게 됐는지 아가씨가 듣고 싶다는 군. 자, 어서
대답해 드리시지, 부인."
시즈코 부인은 잠시 눈을 감은 채 가슴속에서 이는 동요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이내 미련을 버린 듯 아름다운 얼굴을 들고 사요코에게 말했다.
"사요코,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시즈코는 자신을 즐기기 위해서 이곳에
오게 된 거야."
네에, 사요코는 고개를 들었다. 시즈코 부인의 눈에 애절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도야마 다카요시와의 부부 생활이 무미건조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알게되었어.
여자로서의 환희를 여기에 와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거야."
사요코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시즈코는 이제 도야마 집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여자야. 이름도 재산도
입고있던 모든 것까지 다 버렸고 지금 내게 남은 건 오로지 이 육체 뿐이야.
이제부터 나는 모리다 조직에 일생을 바치기로 한 거야."
"아니에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
사요코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결박된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지만, 시즈코
부인이 검은 눈동자에 가득 고인 눈물을 보이며 사정 조로 말했다.
"사요코, 부탁이야. 자네도 시즈코처럼 이 방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해봐."
끝내 시즈코 부인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쳤다.
"아무리,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소용없어. 이왕 그럴 바에야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 이 방에서 기분 좋게 지내보도록 하자, 응! 사요코."
결국 시즈코 부인은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요코는 오열하듯 말하는 부인을 보고 이런 모습이 악마 같은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부인 자신을 속이고 거짓 몸짓을 하는 것으로 알았고, 부인도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유괴되어 여기까지 오게된 후 밤낮으로 차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역겨운 일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선생님!"
사요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훌쩍이기만 했다. 이 방에 둥지를 틀고
있는 악마들 때문에 사요코는 혀를 깨물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부인이 몸소 받은 고통에 비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두 사람, 모두 훌쩍거리면 아가씨가 우울해지잖아. 자, 부인 다음은
뭐지, 빨리빨리 해."
가와다가 부인의 어깨를 툭 쳤다.
시즈코 부인은 눈물을 떨쳐버리려고 쓸쓸한 미소를 띄우며 가와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들어서요."
그리고 나서 다시 부인은 사요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사요코. 시즈코가 이 방에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즐거움을 주고있는지
그 증거를 보여줄게."
"그전에……."
가와다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부인의 귀에다 입을 갖다대었다. 부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부인은 다시 사요코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어 사요코."
부인은 더 이상 말을 꺼낼 수가 없는 듯 양 볼이 붉어지며 머뭇거리다가
이내 결심을 한 듯 다시 사요코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지금부터 우리가 서로 훈련하는 모습을 잘 보고 서로 평가해보기로 하자.
그럼 이렇게 다리를 벌리고, 시즈코처럼 이런 자세를 취하는 거야. 응, 사요코
너도 한번 벌려봐."
"이봐 아가씨!"
다시로와 모리다가 술로 달아오른 뺨을 쓰다듬으며 몸을 세워 떨고있는 사요코
곁으로 다가왔다.
"제자는 스승이 시키는 대로하는 거야. 봐, 스승이 저렇게 모범을 보여주고
있잖아."
이렇게 말하며 모리다가 사요코의 배꼽 부분을 쿡쿡 찌르자 다시로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스승이 제자와, 영광스럽지 않아?"
굴욕스러움에 떨며 울기 시작한 그녀를 시즈코 부인 옆에 서 있던 가와다와
긴코가 통쾌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가와다는 다시 시즈코의 귀에 입을
갖다대었다.
시즈코 부인은 인간적인 감정이 모두 사라져버린 냉담한 얼굴로 멍하니 가와다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이번에는 부인이 다시로와 모리다에게 이야기하였다.
"사장님 걱정 말아요. 우선 이 고집 센 아이를 묶어주세요. 스승인 나에게
수치심을 갖게 하다니 용서할 수 없어요."
"결국 당신의 고집 때문에 선생이 화가 나버렸어.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시즈코 부인의 명령이니까 원망하려거든 부인을 원망해."
모리다와 다시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앗.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만둬."
사요코는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며 발버둥쳤지만 모리다와 다시로의 강한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시즈코 부인은 눈물이 가득 고인 눈동자를 슬픈 듯이 가늘게 뜨고, 좌우로
3게 두 다리를 벌린 사요코를 보고 있었다.
사요코의 양 발목을 마룻바닥에 박혀 있는 대나무 말뚝에 묶은 다시로와
모리다는 다시 일어서서 목과 얼굴이 마치 불이 붙은 듯 오열하며 울고 있는
사요코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뭐 그렇게 부끄러워할 일은 아냐. 이런 식으로 하면 어여쁜 몸이 더욱 예뻐
보이거든."
그리고 구경꾼들은 두 미녀 주위를 빙 에워싸며 두 사람 사이로 끼여들어
가기도 하면서 아름다운 육체를 감상하는 것이었다.
"자, 구경꾼들의 평가도 받았으니 이번에는 본인들끼리 서로 평가해 봐."
가와다는 부인의 발목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흐뭇해하고 있었다. 도야마
가의 아름다운 정원이 보이는 곳에서 이 두 미녀가 사이 좋게 출 춤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과 상체를 구부려 우아하고 아름다운 곡선을 연출할 궁리를
하던 지체 높으신 집안의 부인과 세상 풍파를 모르고 곱게만 자라온 여식,
이런 생각들로 가와다는 왠지 야릇한 기분이 들어 위스키를 마구 마셔대고
있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부인에게 욕을 퍼부었다.
"이봐. 언제까지 그렇게 수줍어만 하고 있을 거야. 서로 평가는 안 할 거야."
시즈코 부인은 슬며시 눈을 들어 사요코 쪽을 보았다. 눈물에 젖은 사요코의
시선과 부인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용서해, 용서해, 사요코!
시즈코 부인은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거의 자학적인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자, 사요코. 이번엔 우리가 서로를 평가해야 돼, 걱정 말고 하고 싶은 말을
해봐."
그리고 시즈코 부인은 더욱더 부끄러운 듯이 눈을 감아버렸다.
사요코는 눈앞에 벌어진 부인의 행위에 소름이 끼치도록 공포심을 느끼며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이것이 분명히 지금까지 존경하며 스승으로 섬겨온 시즈코
부인인가?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 그만, 그만하세요!"
사요코는 하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두 손이 자유롭다면 귀를 막아버리고
싶었다. 그 정도로 사요코에게는 시즈코 부인의 말이 두려웠던 것이다.
머리를 숙여 부인에게서 필사적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하는 사요코를 본 긴코와
아케미가 혀를 찼다.
"잘 봐, 너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할 생각이야. 용서하지 않을 거야."
두 여자는 사요코의 머리와 볼을 잡아 휙 하니 부인 쪽으로 돌리도록 하였다.
시즈코 쪽에서는 여전히 가와다가 히죽거리며 뒤에서 부인의 어깨를 바짝 껴안고
계속해서 뭔가 속삭이고 있었다.
"자, 사요코, 잘 봐. 이게 바로 시즈코야."
부인이 머뭇거리자 가와다가 부인의 엉덩이를 매몰차게 꼬집어 뜯었다.
"자네, 시즈코의 이 부분, 확실하게 본 적 없지. 어때, 굉장하지 않아. 자
뭐라고 말씀 좀 하시지."
그리고 부인은 다시 앞으로 돌아온 가와다를 향해 우아한 눈을 부끄러운
듯 깜박이며 그가 지시한 대로했다.
"가와다 씨, 사요코에게 내가 수치심을 완전히 버린 여자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으면
해요."
"과연, 뱃속까지 보여주고 싶다는 거야."
가와다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부인은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그레해진 얼굴을 옆으로 살짝 돌렸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가와다는 살며시 눈을 감고 있는 시즈코 부인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수줍음이 깃들인 부인의 아름다운 자태는 마치 붉은 색을 흘려놓은
듯 발갛게 달아있었다.
"어쩌라는 거야, 확실히 말해."
자신이 부인에게 교시했으면서도 가와다는 일부러 딴청하며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시즈코 부인은 온몸에 느껴지는 한기를 애써 참는 동안 자신이 잠시
방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와다에게 다시 눈길을 돌렸다.
"저어, 꽃을 피우게 해줘요. 꽃의 열매를 사요코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과연 꽃의 대가로군 말씀하시는 것이 참 예뻐."
라며 호호호 하고 웃은 사람은 찌요였다.
그때 갑자기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던 사요코는 자지러지듯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아버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감, 아니 무섭다거나 잔인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사요코 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파도가 밀려와 뱃멀미를 하듯 모든
걸 토해 내버릴 것만 같았다.
시즈코 부인은 윤기가 도는 흰 목덜미를 쭉 내밀고 괴로운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고개를 젖고있었다.
"자, 봐, 사요코. 이게 시즈코야. 바로 이게 시즈코라고, 아아."
부인이 이를 악물고 머리를 크게 뒤로 젖혔을 때,
"이봐 가와다, 궤도에 오른 것 같군."
하고 모리다가 소리쳤다.
헤헤 하며 가와다는 비굴하게 웃고있었다.
"제발 나도 곧 절정에 오르려고 하니까, 부인을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사요코의
훈련을 위해 부인의 지혜를 잠시 빌리려는 것이라고 했잖아……."
묘하게도 질투심이 이는 듯 모리다는 언짢은 얼굴을 하며 말하였다. 이 천하의
미녀에 한해서는 언제나 가와다가 좋은 역할만 맡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호색적인 일에 있어서는 다시로나 모리다도 가와다 이상으로 대단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는 가와다처럼 교묘하고 약삭빠르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40대 남자에게 느껴지는 부끄러움도 있었고, 침실 밖에서는 뭔가 다른
감정, 즉 욕정에 가득 차서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한 특별한 재주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호색이라고 해도 여러 종류가 있는 모양이다.
가와다가 절정에 이르면 모리다 역시 즐거워했지만 도를 넘어서면 왠지 불쾌해져서
때로는 주도권을 이쪽으로 넘겼으면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과연 가와다는
그런 생각을 읽은 것인가?
"그럼 이번에는 한번 사장님이나 두목님과 교대할까요."
가와다가 약삭빠르게 말하며 아첨하듯 헤헤헤 하고 웃는 것이었다.
"교대하자고, 도대체 어떤 식으로?"
역시 가와다에 게서 요령을 듣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는 모리다와 다시로였다.
"그건 이 부인에게 듣도록 하세요. 잘 상의해서 하면 되니까."
가와다에게 들은 대로 모리다와 다시로는 시즈코 부인 양쪽에 나눠 서서
원래대로 다리를 모으도록 하였다. 늘씬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시즈코
부인은 다리를 어떻게 해도 타고난 우아함과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었고 그
몸매는 남성의 관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자, 부인, 슬슬 사요코 양에게 훈련을 시작해야 하는데, 먼저 어떤 곳부터
손을 써야 되지. 후후후, 잘 보시지 사요코 양. 아까부터 기다리느라 지쳐
있을 텐데."
다시로는 살짝 입을 맞추며 말하였다.
"사요코는 누가 뭐라도 좋은 집안의 아가씨예요. 처음부터 거친 일을 시켜서는
안 돼요. 우선 공포심을 없애고, 편안한 마음이 들도록 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부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울기 시작했다.
"용서해, 사요코, 여기는 지옥이야. 설사 내가 너를 대신해서 일을 해준다
해도 이 사람들은 너를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부디, 잘 참고 견뎌 줘!"
가와다가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 자신의 비굴함에 분개한 것인지 부인은
갑자기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렸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가와다는 갑자기 시즈코 부인에게 다가가서 손바닥으로 뺨을 후려쳤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잖아. 모처럼 무드가 생겼는데 이렇게 되면
모두 깨져버리잖아."
가와다는 눈을 부릅뜨고 다시 부인의 뺨을 치려고 했으나 다시로와 모리다가
이를 저지하였다.
<33. 빠져 나올 수 없는 함정>
가와다의 명령을 받은 부하들은 훈련 실의 선반 문을 열고 기묘한 것을 꺼냈다.
고무관에다 눈금이 표시된 텡구 괴물의 코와 비슷한 도구로 염화 비닐로 만들어진
여성용 자위 기구인 음경과 같은 것이었다.
"이봐 아가씨. 이게 뭔지 알겠어?"
가와다는 부하에게서 건네 받은 그것을 사요코의 얼굴 가까이에 갖다대며
큰 소리로 웃어댔다.
"부인의 입으로 아가씨에게 직접 설명해주는 편이 나을 거야."
하고 다시로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건 말야. 사요코, 질압계라는 거야."
다시로가 귓불을 꼬집으며 재촉하는 바람에 시즈코는 입술을 떨며 말했다.
"신축성을 테스트하는 도구야. 알을 깬다거나 바나나를 자른다거나 하기
위해서는 그런 도구를 사용해서 여자의 무기를 단련시켜야 하는 거야. 처음에는
나도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워 얼마나 반발했는지 몰라하지만 요즘엔 이 질압계를
사용하는 것이 점점 즐거워지고 있어."
시즈코 부인은 가와다에게 강요받은 내용을 그대로 사요코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 그럼 앞으로 이 일은 오니겐이 맡을 거야."
가와다는 오니겐의 손에 그 이상하고 신기하게 생긴 도구를 건넸다.
오니겐은 시즈코 부인의 무릎 가까이에 허리를 구부리고 재빨리 부인의 양
허벅지 사이에 드러난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섬모를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듯
쓰다듬으며 그 부분에 질압계를 깊숙이 집어넣으려 했다.
부인은 이에 협조라도 하듯 관능미 넘치는 우윳빛 두 허벅지를 대담하게
좌우로 벌리고, 그것을 깊숙한 곳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처럼 허리를 요염하게
비틀어 올리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 광경을 보게 된 사요코는 두렵고 당황해서
앞쪽에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사요코, 봐야 돼. 잘 봐."
시즈코 부인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요코에게 정신이 번쩍 들도록
꾸짖듯이 말했다.
"그래, 선생에게 수치심을 갖게 해서는 안 돼. 부인은 훈련이 어떤 것인지
아가씨에게 시범을 보여주려 하잖아."
모리다는 옆으로 돌리려는 사요코의 턱을 잡고 얼굴을 정면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아직 물기가 부족한데."
라고 말하며 오니겐은 손가락에 침을 묻혀 부인의 그 비장한 내부를 부드럽게
휘저으며 자극하고 있었다.
"가와다 씨, 젖을 좀 만져주세요."
부인은 욕정으로 끈끈한 눈길을 가와다에게 보내며 천박하게 조르듯이 말했다.
가와다는 부인의 등뒤로 돌아가서 줄로 단단히 묶여진 젖가슴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또한 핑크 빛으로 잔뜩 상기된
듯한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잡고 뱅글뱅글 돌리며 애무하기도 하였다.
아아, 부인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한쪽으로 비틀면서.
"저, 가와다 씨. 혀로 빨아……."
하며 달짝지근하게 유혹하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모리다에게서 턱을 떼어 가와다와 입술을 맞추고 있는 부인을 본 사요코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지 몸부림치며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질러댔다.
"그만, 선생님 그만해요."
시즈코 부인에게 뭔가 음란한 마귀가 달라붙은 것인가. 사요코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
"여자의 성적 매력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고 있잖아. 감사할 줄 알아야지."
모리다는 공포심에 떨고 있는 사요코를 꼼짝못하게 하려는 듯 웃고있었다.
"좋아 좋아, 충분히 적셔진 것 같군."
오니겐은 이쯤이면 됐다 생각하고 손가락 애무를 멈추고 질압계를 집어들어
부드러운 여자의 점막 내부로 쑤욱 밀어 넣고 있었다. 시즈코 부인은 애절한
신음 소리를 내며 목덜미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부인의 손을 등뒤로 묶어
연결시킨 쇠사슬이 부인의 몸이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시즈코 부인은 입을 꼭 다물며 방금 오니겐이 자신의 몸 속 깊이 주입시킨
질압계를 우윳빛의 양 허벅지를 서로 꼬아가며 열심히 조여들도록 하고 있었다.
뭔가 야릇하고 음란한 광경을 지켜본 긴코는 갑자기 잔인한 욕정이 발동된
것일까. 마루에 나뒹굴고 있는 푸른 대나무를 집어들고 부인의 등뒤로 돌아갔다.
"단단히 조이지 못해. 엉덩이에 힘을 넣어 좀더 꽉 조이란 말이야."
하며 긴코는 흥분하며, 푸른 대나무로 부인의 탱탱한 엉덩이를 힘껏 후려쳤다.
철썩하며 육체가 튀는 듯한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을까?"
찌요가 금니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부인이 몸 속에 품고 있는 압력계 고무관을
움켜잡았다. 그 고무관 끝에는 고무공이 붙어 있어 손가락으로 힘껏 누르면
부인의 몸 속에 들어간 염화 비닐 도구에 공기가 주입되어 질 속에서 팽창하게
된다. 팽창된 도구를 주름지도록 조여서 신축성이 발휘되면 그 속에서 빠져
나오는 공기의 양에 의해 음부의 수축력이 표시되는 장치가 되어 있었다.
찌요가 손가락으로 고무공을 누르기 시작하자 부인은 아름답고 우아한 나체를
비틀어대며 하얀 목덜미를 드러냈다. 도자기처럼 하얀 목덜미와 욕정이 넘쳐흐르는
젖가슴에도 비지땀이 흥건히 배어 나오고 있었다.
찌요가 고무공을 누르자 슈우 슈우 하며 공기가 밀려들어가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섬모는 조금씩 조금씩 흔들리며 도구의 팽창과 함께 그 아름다운 육체의 언덕진
부분이 숨차 오르듯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아아, 찌요 씨. 그 그렇게 크게 하면 싫어요."
시즈코 부인은 계속해서 넣으려고 하는 찌요에게 애원했지만 오니겐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여기 있는 동안 흑인 손님과 자야 할 때도 있는 거야. 그놈들은 모두 말
거시기처럼 크거든. 그놈들을 꼼짝못하게 조여 매기 위한 연습이라고 생각해."
부인은 이를 악물고 매끄럽고 잘록한 허리를 앞으로 쭈욱 내밀면서 몸의
내부에서 팽창된 그것에 압박을 가하려 하고 있었다.
"자 좀더 힘껏 조여봐. 점점 근육에 힘이 들어갈 거야."
오니겐은 찌요가 가지고 있는 미터 계의 움직임을 보면서 만족스럽지 않은
듯이 말했다.
"이제 더 이상은 무리예요."
부인은 두 다리를 힘껏 버티고 허리를 더욱 내밀면서 신음하듯 말했다.
"긴코, 구멍에 손가락을 찔러봐."
오니겐이 말했다.
"긴코! 손가락을 항문에 넣고 눌러봐 그러면 앞의 근육에 더욱 힘이 들어갈
거야."
그러자 긴코는 부인의 부끄럼도 모르는 엉덩이를 양손으로 벌리면서 그 깊은
속 국화꽃 봉오리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면서 마사지 크림을 바르기 시작했다.
시즈코 부인의 안면은 더욱 상기되어 홍조를 띠고 있었다.
"으―윽―."
긴코의 손가락 끝이 갑자기 그 은밀한 곳을 찌르자 부인은 더욱 괴로운 듯
눈썹을 찡그리며 마치 짐승처럼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머리끝까지 이상야릇한 쾌감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모욕감이라 해야 할지
모르는 그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부인은 땀으로 흠뻑 젖은 나체를 더욱 부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오니겐이 부인의 허리 움직임과 미터 계를 번갈아 쳐다보며 만족스런 듯이
말하자, 부인은 땀에 젖은 전신에 전율을 일으키며 매몰차게 소리쳤다.
"더 더 이상 계속하면 난 그, 그만……."
"그래 좋아 좋아. 그렇게 단단히 조이면서 힘을 주는 거야."
오니겐은 통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가와다가 다시 부인에게 찰싹 몸을 붙여 위아래가 결박된 부인의 젖가슴을
손바닥으로 쥐어 잡고 천천히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 이상 헤어나기 어려운
상태에 빠진 부인은 욕정에 가득찬 눈동자를 천장으로 향하며 또다시 허리를
내밀며 도구에 휘말린 몸의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켰다.
"사요코, 잘 봐, 시즈코는 이렇게 음란한 여자가 되어버린 거야."
부인은 무심코 그런 헛소리를 해대며 가와다가 부르르 떨고 있는 부인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쳐버리자 주저하지 않고 입을 맞추며 혀끝을 휘감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치는 듯하여 문득 사요코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두
침침한 우리 속이다.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다시 이곳으로 옮겨진 모양이다.
금빛 그물 망이 쳐진 창에서 밝은 아침 햇살이 비춰지고 있었다.
정신이 제대로 돌아온 사요코는 상체를 일으켰다. 줄은 풀려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지난밤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졌던 일들이 과연 이 세상에서
벌어진 일인가 하고 거친 멍석 위에 이마를 대고 가볍게 몸을 떨었다. 이것이
꿈이었으면 하고 이를 악물며 훌쩍거리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기미에 사요코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돌렸다.
오니겐과 긴코였다.
"꽤 오래 잔 것 같군 벌써 점심때가 다 된걸."
긴코는 격자문 속으로 사요코를 들여다보며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사요코는
가슴을 힘껏 끌어안고 뒷걸음질치며 누구를 원망할 수도 저주할 수도 없는
눈동자를 긴코에게 향하고 있었다.
"헤헤헤. 어젯밤에는 아주 재미있는 것을 견학했을 텐데. 아마 공부가 꽤
됐을 거야."
오니겐이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에서 저 애가 정신을 잃어버렸던 거야. 바보같이,
사람들이 모처럼 좋은 구경거리를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긴코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 문을 열기 위해 자물쇠를 열고 문밖에다 걸었다.
"가 가까이 오지 말아요, 부탁이에요."
사요코는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시즈코 부인이나 다른 스타들은 벌써 아침 훈련을
끝냈어. 지금 가장 진도가 늦은 당신이 한가하게 늦잠을 자고 있으면 곤란하잖아
또 오늘밤에는 관서 지방에서 거물이 올 텐데 말이야."
긴코와 오니겐은 우리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와서 몸이 마치 돌처럼 굳어버린
사요코의 양어깨를 잡고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자, 가자. 어젯밤에 봤던 그 정도의 장면을 다시 보게 되면 어느 정도 담력이
생길 거야."
사요코는 두 사람에게 질질 끌리다시피 하면서 감옥에서 빠져나갔다.
"싫어, 싫어, 아아. 제발!"
사요코는 마치 응석받이 아이처럼 머리와 허리를 흔들어대며 우리 문짝에
찰싹 달라붙어 울부짖고 있었다. 훈련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어젯밤 치가
떨리도록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 아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을 거부하는 어린양처럼
그녀는 울면서 매달리며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일부러 내가 데리러 왔는데 이렇게 귀찮게 굴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오니겐이 타고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찰싹 사요코의 볼 따귀를
후려쳤다.
사요코는 이것으로 온몸의 힘이 단번에 빠져버린 듯 오니겐과 긴코가 등을
밀자 비틀거리며 마치 몽유병 환자 같은 발걸음으로 지하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사요코를 끌고 간 곳은 2층에 있는 복도를 두 번 돌아 가장 안쪽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전에는 필시 하녀들이 사용하던 방이었을 것이다. 방바닥은
하도 문질러 다 해어지고 천장이나 벽들도 모두 거무튀튀한 한동안 사용하지
않은 허름한 방이었다.
사요코가 그 방에 발을 들려놓은 순간, 왠지 오싹하는 참담한 공포감이 느껴져
그 자리에 꼼짝못하고 서버린 것이다.
"자 머뭇거리지 말고 들어가, 어서."
오니겐은 천연덕스럽게 사요코를 밀어 넣었다.
"도대체, 무, 무엇을 하려는 거예요."
사요코는 그곳에서 몸을 구부렸다. 그리고 검은 눈동자에 공포와 증오의
빛을 띠며 이를 악문 표정으로 오니겐을 올려다보았다.
오니겐과 긴코 역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히쭉히쭉 웃으며 신선하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지닌 곱게 자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이윽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곳에서 여자가 되었으면 해."
그 의미를 알아차린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일시에 핏기가 사라져 버렸다.
"사장님은 가급적이면 처녀인 채로 그냥 두는 편이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반대야. 세상 물정 전혀 모르는 여자에겐 이런저런 훈련을
시키기가 어렵거든."
다음엔 긴코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 너에게 아주 굉장한 신랑감이 나타난 거야. 긴코의
입에서 츠무라 요시오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사요코는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그 사람은 아버지 상점에서 일하던 점원으로 시가 오백만 엔 정도 하는 보석을
가지고 도망쳤던 남자였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요시오는 사장의 딸인
사요코의 미모에 반해 주제도 모르고 연애 편지를 보낸다거나, 사요코가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을 지키며 치근덕거리던 파렴치한 남자였다. 물론
사요코는 이런 불쾌하고 소름끼치는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서 그런
일들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쳤고, 아버지가 상점에서 요시오의 그런 행위를 징계했었는데,
그가 상점의 보석을 갖고 행방을 감춘 것도 그런 일이 원인이었던 것 같았다.
그 후 츠무라 요시오는 오사카로 도망쳐 이와자키라는 두목의 도움으로 이름까지
바꾸고 금융 브로커로 독립하고 있다며, 긴코가 당황해하는 사요코의 얼굴을
쳐다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이야기하였다.
"이와자키 일행의 선발대로 오늘 아침 일찍 이곳에 오게 된 거야. 일행들이
즐기러 들르기 전에 예비 조사를 하기 위해서라더군. 그런데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지. 요시오가 어떻게든 당신의 첫 남자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다시로 사장님에게 부탁했다고 하던데."
"선물로 시가 백만 엔이나 하는 다이아몬드를 요시오에게서 받게되면 사욕의
피가 흐르는 다시로는 아마 좋아할 거고,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게 되는 거야."
"낯선 땅에서 오랫동안 떠돌며 지냈어도 단 하루도 당신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하더군. 그런 사람에게 모든 걸 줄 수 있다는 것은 여자로서 행복한 거 아냐?"
긴코가 입을 빈정대듯 말하자 사요코는 그저 방바닥에 얼굴을 묻고 검은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흐느껴 울기만 할뿐이었다.
"싫어요. 그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난 차라리 주, 죽는 편이……."
"바보 같은 계집애!"
갑자기 큰 소리를 친 오니겐은 엎드려 울고 있는 사요코에게 걸어가서 발을
들어 냅다 차버리는 것이었다.
"네 동생이 후미오던가. 그 아이는 지금 딴사람이 돼서 훈련에 아주 열중하고
있고, 그 상대자인 미츠코라는 여자아이는 너도 알겠지만 어젯밤에 내가 한밤중까지
철저하게 훈련시켰어. 기뻐서 눈물을 흘릴 때까지. 진보한 경지에 다다를 때까지
말이야. 너 혼자만 그렇게 고집 부리면 우리도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어."
라며 아주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위압적인 자세로 말하였다.
긴코가 벽장문을 열고 새 줄과 긴 천을 꺼냈다.
"이제 곧 요시오가 여기에 모습을 나타낼 거야. 자, 준비하자."
오니겐은 이와 대조적으로 훌쩍거리고 있는 사요코에게 기법을 익히게 하려는
건지 다시 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그만 훌쩍거리고 가슴을 확 펴고 두 손을 뒤로 돌려."
사요코의 매끄러운 어깨를 잡고 상체를 끌어당겨 일으켜 세웠다.
"빨리 못해."
다시 재촉하며 뺨을 때리자 사요코는 흐느껴 울며 손을 뒤로 돌렸다.
오니겐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줄을 꽁꽁 묶어갔다.
오오, 하느님―하며 사요코는 빨갛게 된 얼굴을 밑으로 떨어뜨리며 눈을
꼭 감아버렸다. 그러자 긴코는 긴 천을 손에 들고 사요코의 눈으로 가져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요시오의 눈에…… 오늘은 특별 서비스야, 남자 팬티처럼
가리개를 해주지."
사요코는 깜짝 놀라며 경련을 일으켰다.
"저어. 가리는 것이 싫다는 군. 이대로 놔 두라 이거지."
"사요코는 일그러진 얼굴을 저어대며 말했다.
"그 그것을……."
"가려 달라고?"
사요코는 아니 아니 하며 고개를 흔들면서
"허 허리에 둘러주세요. 부탁입니다."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군. 이건 허리에 두르는 것이 아니야. 어디에 하는
건지 잘 알잖아."
오니겐은 긴코에게서 천을 받아들고 사요코 옆에 섰다.
"아무것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 시즈코 부인도 가리개를 해주자 매우
좋아했어."
긴코도 그렇게 말하며 오니겐과 함께 가리개를 단단히 묶었다.
"아 아아……."
사요코는 온몸을 감싸는 굴욕감에 입술을 부르르 떨었고, 어여쁜 이마엔
비지땀이 송골송골 배어나고 있었다.
"아주 잘 맞지 아가씨?"
어렵게 사요코의 허리에 가리개를 묶은 긴코와 오니겐은 만족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색깔이 아주 선명한 물빛 가리개가 팽팽하게 묶여진 것이다.
"어때 아가씨. 느낌이?"
오니겐은 덧니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천연 진주 같은 광채를 띤 순진한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사요코는 이제 도망칠 수도 숨어버릴 수도 없다는 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예쁜 눈썹을 찡그리며 눈을 꼭 감고 피가 맺힐 정도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요시오 씨도 아가씨의 이 모습을 보면 매우 흡족해 할거야."
긴코는 신이 난 듯 들떠서 이야기하며 방구석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사요코
앞에다 두었다.
"이제부터 요시오 씨가 이 의자에 앉아서 아가씨를 차근차근 설득할 거야.
요시오 씨는 이와자키 두목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깡패는 아니니까 폭력으로
좋아하는 여자를 갖고 싶지는 않다고 말씀하셨거든. 어때 신사답지 않아?"
긴코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났다.
"츠무라 요시오입니다. 이제 들어가도 좋을는지……."
고음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아―하며 사요코는 온몸을 마치 강철처럼
경직시키며 얼굴을 옆으로 돌려버렸다.
"예. 들어오……."
하고 긴코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츠무라 요시오가 문을 밀어 제치고 들어왔다.
"오― 사요코 씨."
요시오가 두 손을 벌리고 마치 삼류 오페라 배우 같은 몸짓을 했기 때문에
오니겐과 긴코는 우습다는 듯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런, 망측스러워라. 가리개 따위가 뭐야. 가엾게도……."
요시오는 기둥에 등을 대고 서서 사요코의 허리에 묶여진 가리개의 망측한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하는 것 같더니, 이내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는 수 없지. 삼 년 전 나를 냉대한 벌을 받는 거야.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요시오는 침을 삼키려 했다.
사요코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심하게 떨며 비통한 표정으로
요시오를 노려보았다.
"츠, 츠무라 씨!"
"요시오라고 불러, 츠무라라고 격식을 차릴 필요 없어."
요시오는 코를 찡그리며 웃었다.
요시오는 문뜩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오니겐과 긴코를 향해 소리쳤다.
"조금 전에 말했지만 여기 물도 들이지 말라고 얘기해 줘."
"예. 저희들은 물러가겠습니다."
긴코와 오니겐은 머리를 숙이고 방을 나오려 할 때, 요시오가 그들을 불러
세워 주머니 속에서 작은 진주 반지를 꺼냈다.
"이거 보잘것없지만, 내 성의로…… 그리고 이거……."
하며 오니겐에겐 미국제 은색 라이터를 주었다.
두 사람은 금세 벙글거리는 표정을 하며 머리를 연신 굽실굽실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좀더 좋은 방에서 하시도록 해야 하는데……."
"아니오, 이런 부잣집 따님은 고급스러움에 익숙해 있으니 오히려 이런 방이
더욱 달아오를 수 있을 거야."
"그럼 용무가 있으시거나 하면 그쪽 버튼을 눌러 주세요. 우리들이 모여
있는 대기실 벨이 울리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오니겐은 두 손을 공손히 모으며 말했다.
"그럼 미안하지만, 먼저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필요한 것이 있는데."
요시오는 오니겐의 귀에다 무언가 속삭였다.
"예잇, 잘 알겠습니다."
오니겐은 고개를 끄덕이며 긴코와 함께 나가려다가 돌연 사요코 쪽을 향하여
말했다.
"너무 성가시게 하지 마. 오늘 저녁 이와자키 두목이 오실 때까지는 제구실을
할 수 있는 여자가 되어 있어야 해. 알았어?"
오니겐과 긴코가 방을 나가자 요시오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나서 사요코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요, 요시오 씨. 도대체 나를 어쩔 셈이에요!"
"그런 얼빠진 소리하면 곤란해. 어떻게 할지 사요코가 모를 리가 없지. 어린아이도
아니고."
사요코는 산발이 된 검은머리를 미친 듯이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제발, 그것만은…… 부탁해요!"
"무슨 소리, 난 여기 사장에게 백만 엔이나 하는 보석을 주고 사요코의 몸을
오늘 저녁까지 산 거야."
"돈이라면 사요코가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얼마든지……."
하하하, 요시오는 눈물이 가득한 사요코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웃었다.
"대체 내게 얼마를 주실 건가. 천만 엔, 아니면 이천만 엔, 나는 여기 다시로
사장이나 모리다 두목보다는 머리가 좋아. 당신 아버지는 적어도 2억 엔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을 거야. 나는 그것의 반인 일억 엔 정도는 어떻게 해서든
받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요시오의 눈에는 속을 알 수 없는 잔인한 그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사요코는 놀라서 몸을 경직시킨 채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
표정으로 요시오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말야, 당신의 신병을 인질로 해서 금품을 빼앗는 그런 유치한 방법은
아냐. 당신과 내가 맺어져서, 다시 말해 결혼해서 당신 아버지에게 확실하게
승낙을 받는 거야. 그러면 당신을 애지중지하는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나를
좋아하게 되겠지. 결국 나는 무라요시 보석 상회의 부사장이 되는 거야."
뻔뻔스레 그런 말을 한 요시오는 어떠냐는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사요코는 요시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증오와 혐오감으로 주먹만한 불덩어리가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랐다.
"확, 확실히 말하겠는데, 난 당신 같은 비열한 사람은 아주 싫어. 얼굴을
보는 것조차 징그럽고 역겨워!"
사요코는 요시오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충동이 일어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