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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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병원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캔맥주 2개를 샀다.
원래 기숙사에서 알콜드링킹은 금지로 정해져있으나 오늘은 룸메이트들이 없어 혼자 방을 쓰는날이라서
별 고민없이 산것이다.
아직 모아놓은 돈이 없어 이렇다할 똥차도 없는 경중은 28번 버스를 타고 병원앞에서 내린다.
벌써 여름이 온모양이다. 유난히 땀이 많은 경중은 눈썹위로 흘러내리는 찝찝한 땀을 손등으로 훓으며
병원입구에 들어섰다.
군단위의 작은 마을이라 외래환자가 거의 없고 입원환자 위주의 병원이다 보니 가끔은 무료하게 느껴진다.
경중은 이 병원에 4개월전 관리과 직원으로 입사했다.
별로 배운 기술도 없고 집에서 노는것도 지겨워서 체질에 맞지도 않는 관리과에 들어왔지만 역시 하는일이
거기서 거기인지라..
원무과 아가씨와 농담따먹기라도 하고 기숙사로 올라가려던 경중은 임상검사실에 전등이 켜져있는걸 발견했다.
경중이 근무하는 병원은 외래가 일요일엔 쉬기 때문에 누가 출근할리가 없는데...
문을 삐긋이 조금 열자 현미경을 들여다 보고 있는 강선생의 옆모습이 보였다.
강윤아! 그녀는 최근에 결혼을 하여 신혼여행을 다녀온 임상병리사다.
몇살인지 물어볼 기회가 없어 아직 정확한 나이도 모르지만 아마 20대 후반정도나 될 것같다.
성격이 워낙 친절한 편이라 경중도 제법 마음에 들어하고있던 처자였다. 물론 시집을 가고 난뒤에는
관심이 약해졌으나 그래도 매력적인 그녀는 경중의 마음에 때때로 불을 붙이곤 했다.
경중은 마른몸매의 여자를 무척 싫어한다.
약간은 통통하면서도 글래머스한 여자가 눈에들어오고 특히 다리가 이쁜 여자를 경중은 선호한다.
그러나 강윤아가 그런 몸매의 소유자라는건 아니다.
언뜻보면 통통하고 키가 있는 여자지만 남들 눈에는 그리 섹시해 보이는 몸매라고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깨끗한 피부와 도톰한 입술, 선해보이면서도 섹시한 눈빛때문인지 제법 남자들을 울렸을 법도하다.
조용히 문을 닫은 경중은 원무과에서 당직중인 최인숙 선생에게 물었다.
"오늘 당직이야? 힘들겠어...근데 강선생이 왜 출근했지?"
"글쎄요. 신혼여행다녀와서 밀린 랩하고 검사좀 있나보지...어디 갔다왔어요?"
"응 ..심심해서 영화나 한편보구왔지..그래..수고"
경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다 계단을 천천히 걸어올라가며 생각했다.
-신혼인데 밀린 일이 걱정되서 병원에 출근했다니...참 성실한 여자군...
기숙사 침대에 누워버린 경중은 그녀를 생각하며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진 경중은 눈을 뜨고 휴대폰 시계를 바라보았다.
8:45분...벌써 3시간 가까이 잔것이다.
-젠장 밥이라도 먹고 잤어야 하는데.
경중은 화장실에 들러 볼일을 마친후 가볍게 세안을 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원무과는 이미 퇴근하고 없고 매점만 불이 켜져있었다.
밤 10시부터는 시건장치를 점검해야 하기에 경중은 1층에 있는 tv를 시청하려다 임상병리실에 전등이 켜져있는걸
발견했다.
-설마 아직도 퇴근안한건가..
경중은 임상병리실로 천천히 다가갔다.
문을 열려다 말소리가 들려와서 조용히 문에 귀를 대어보니 목소리가 격앙되어있는듯 높은톤의 말소리가 들려왔
다. 전화통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그런...자기가 나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대체 언제부터 그랬는지 말해줘.."
-무슨소리지? 싸우고 있나..
경중은 더욱더 문에 귀를 바짝 갖다 대었다.
"그 여자 자기하고 어떤사이였던거야? ..어떻게 그걸 속일 수 있지? 난 더 이상.."
아마도 남편과 통화중인 모양이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것일까..대화의 내용은 그런것 같았다.
경중은 흐느끼는듯한 윤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본인이 동경해왔던 여자가 신혼의 행복에 빠져있어야할때 불운에 빠진다는건 참 뭐랄까..이상한 기분이다.
"이제 그 얘긴 믿고 싶지 않아요..난...난 이제 모르겠어요..오늘은 친정집에서 잘께요..당신 볼 용기가 나질않아.."
휴대전화를 닫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경중은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원무과 앞에 서서 tv를 보는척 하는데 검사실 문이 열리며 윤아가 걸어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 화장실에 가는 모양이었다.
잠시후 검사실 앞을 지나가는척 하며 동태를 살피던 경중의 눈에 윤아의 모습이 보였다.
"어 강선생님 출근했나?"
경중은 짐짓 모르는척하며 그녀를 향해 인사했다.
"아..선생님..일이 많이 밀렸을것 같아서..이제 가야죠."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녀지만 역시 얼굴에 힘이 없는게 보인다.
"어디 아픈가? 저런 일을 많이해서 기력이 빠졌나봐..."
"아니예요. 괜찮아요. 샘도 힘들죠? 일요일도 밤에 근무서니까..?"
"아니 뭐. 난 이게 일이니까.."
윤아는 가방을 집어들며 경중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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