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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번역) 음란한 집 23-24

23화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은 3년 전 이었다. 운전을 할줄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달려보고 싶은 꿈의 도로였다.
막힘없이 쭉쭉 뻗은 도로는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을 심어주고 있었다.
무언가에 긴장한 모습으로 가만히 앉아 있던 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얼굴은 왜 그랬어요? ]

[ 산에서 놀다 바위에 넘어졌어요. 어릴적 다친건데, 상처가 없어지지 않네요.]


[ 많이 아팠겠어요.]


[ 모르겠어요.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아팠겠죠.]


 

안타까운 표정으로 상처를 주시하던 시영이 내 눈을 보며 웃어주었다.
웃음을 보이지 않던 시영의 웃는 얼굴을 처음으로 접하자 사람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로 부터 몇 가지 의문점들을 캐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 저어...]

우선은 시영과 친해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 누나라고 불러도 되지요.]


시영이 나를 한번 바라보곤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 듯 하다 뜻밖의 말투로 대답했다.


[ 좋아. 그 대신말야, 아줌마 앞에선 누나라고 하지말구 그냥 지금처럼 똑같이 부를래.]


 

[ 아줌마 라뇨? ]

[ 주인 아줌마 말야.]

[ 사장님 이요? ]


[ 그래, 사장님.]


역시 뜻밖이었다. 요오꼬 앞에서 깍듯한 시영의 모습이 아니었다.


[ 네, 그럴께요.]


[ 너, 스물 네살이라고 했지? ]


[ 네...]


[ 그래, 누나라고 불러. 너, 내 말만 잘 들으면 누나가 잘 해줄께.]


 

시영은 마치 오래전 부터 누나였던 말투로 나를 대했다.
그것이 한편으론 편하기도 했지만 나를 어리둥절 하게도 만들었다. 어쨋든 그녀의 가벼운 말투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내게 주었다.

[ 누나는 고향이 어디에요? ]


[ 아라까와 강변 이라는데 기억이 없어.]


[ 관동이요? ]


[ 너, 관동을 아니? ]


[ 아뇨, 잘 몰라요. 어렸을 땐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지도를 많이 가지고 계셨어요. 지금은 돌아가셨구...그때 지도를 많이 봐서 그런지 어디, 하면 대충 어느 지방인지는 알아요.]


 

[ 응, 난 고향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 아줌마 하는 소리가 아라까와 강변에서 태어났데...]

[ 학교는 한국에서 다녔나요? ]


[ 아줌마네 집으로 오구 얼마 안있어 하영이가 들어왔어, 하영이랑 바깥 세상을 모르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몬가좀 알만한 나이 때 부터 가정 수업을 받았어, 학굔 안다니구...]


 

[ 네에... 참, 아까 하영씬 어디서 나온거였어요? ]

갑자기 시영의 눈동자가 커졌다.


[ 어디서 나오다니? ]


[ 외출했다고 했었는데...]


[ 외출했었어.]


[ 옷차림이 아니던데...]


[ 뭐가 궁굼한데? ]


[ 궁굼한거 없어요. 그냥... 갑자기 나타나서요.]


[ 음...]


 

시영이 무슨 생각에 잠긴것 같았다.

[ 저어... 누나.]


시영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 궁굼한게 있어요.]


[ 뭐가.]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이 아닌지 나는 망설였다. 아무래도 액자 속의 통로는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물어야 할 것 같았다.


 

[ 기상시간이 늘 오늘처럼 늦나요? ]

[ 정말, 아침에 배 많이 고팠지? 처음이라 그래, 금새 익숙해 질거야.]


[ 아침을 그때 먹으면 점심, 저녁은 언제 먹어요? ]

 

시영의 대답이 또 늦춰졌다. 그녀는 무엇을 계산하듯 생각하는 것 같았다.


[ 하루에 두끼만 먹어.]


[ 배 안고파요? ]


[ 모르겠어. 어려서부터 그렇게 먹어서... 근데 태희야.]


 

시영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 네에.]


[ 나 오줌마려워. 휴게소 멀었어? ]


[ 글쎄요... 표지판을 못봤는데...]


[ 아이. 나, 급한데...]


[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 안되에, 싼단말야.]


[ 차 세워드려요? ]


[ 아니야, 그냥 가.]

 

아랫배를 꼬옥 잡고 안절부절하던 시영이 뒷좌석의 가방을 뒤져 물통을 꺼냈다. 서둘러 뚜껑을 열고 창밖으로 물통을 거꾸로 내밀어 흔들어댔다. 쏟아지던 물이 맞바람을 맞아 뒷쪽 창문으로 튀어 들어왔다.
시영은 빠르게 움직였다. 치마를 걷어 올린 뒤 몸을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의자 끝에 엉치뼈가 걸치는, 반은 누운 자세가 되었다.


 

 

 

24화 

 

시선은 억지로 전방을 향했으나 시영의 움직임은 시야 가장자리에서 그대로 보여지고 있었다.
잠시 후 물통을 두드리며 쏟아지는 오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소리가 멎음과 동시에 그녀의 반쯤 누운 자세가 일으켜졌다.


 

[ 차좀 세워줄래.]

물통을 왼 손으로 옮기며 물통 밖으로 새어나온 오줌에 젖어버린 오른 손을 시영은 공중에서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깜박이를 켜곤 우측편에 차를 세웠다. 시영 쪽 차문이 조금 열리면서 오줌을 받아 낸 물통이 밖으로 나갔다.
이번엔 콸콸거리는 물통안의 오물이 배출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 가자.]

 

뚜껑을 닫아 뒷좌석으로 물통을 던지며 시영이 말했다.
제 속도를 내며 승용차는 다시 주행선으로 들어왔다.


지금것 보아온 그녀의 언행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보통 여자와는 달리 차분한 요조 숙녀의 면모가 있는가 하면 때때로 저능아스런 행동을 보였고,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한 총총한 눈빛으로 상대로 부터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예리한 면이 있는가 하면 질질 흘리는 듯한 어리숙한 면모로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틈을 열어놓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영은 내 앞에서만 쉬운 여자로 보이는것 같았다. 요오꼬와 하영 앞에서의 그녀 행동은 전혀 달랐다.

[ 아무래도 안되겠다.]


시영이 중얼거리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하얀 물체가 스커트 속에서 기어나와 종아리를 타고 구두 끝으로 빠져나왔다. 속옷이었다.


 

[ 만져봐. 다 젖었지? 아이, 벗으니깐 시원하다.]

벗겨 낸 속옷을 시영은 내 코 앞에서 흔들어댔다. 나는 그녀의 말투와 행동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리고 말았다.


[ 하하하하하하! ]


폭소를 터뜨리는 내 모습을 지켜보며 즐거운 듯 시영이 히죽거렸다.


 

[ 히히, 나 잼있지? ]

[ 저기요...]


흐트러진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이 적당한 기회라고 생각들었다.


[ 금새 말르겠지? 응, 말해봐. 뭐? ]

 

뒷 좌석 의자 위에 속옷을 펼쳐 놓고는 시영이 나를 바라보았다.


[ 아까 집에서요... ]


[ 응.]


[ 벤자민 뒤에 커다란 액자 있자나요...]


[ 응.]

 

시영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액자를 유심히 바라보던 나를 발견한 요오꼬의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알아서는 안될 만한 무언가가 통로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생각을 굳혔다. 스스로 통로속의 비밀을 알아내야겠다고...

말머리를 돌렸다.

[ 그림이 참 평화스럽던데... 어딘줄 아세요? ]


[ 모가 어디야? ]


[ 그림속의 마을이 어디인지 아냐구요.]


[ 아항. 몰라.] 라고 대답하며 마치 다른 사람처럼 돌변하는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았다. 순간적이었지만 한기를 느낄만큼 앙칼진 눈초리였다.


 

[ 모가 잘못됐나요? ]

[ 왜? ]


[ 표정이 갑자기...]


[ 으응, 갑자기 생각난게 있어서... 딴 생각해서 미안.]


 

신기할 정도로 빠른 표정의 변화였다. 시영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챈 것처럼 그렇게 보여졌다.
결코 다른 생각으로 인한 표정 변화가 아니었다.
아직은 누구도 쉽게 믿어선 안될것 같았다.

근 여섯 시간을 소비해 도착한 곳은 부산 항 이었다. 시영의 안내에 따라 이미 어두워진 부두 도로를 달릴 때는 짠내만이 코를 찌르고 있었다.


 

[ 저기서 우회전.]

시영은 지리를 훤 하게 알고 있었다.


[ 다음엔 혼자 오게 될지도 모르니깐, 잘 기억해나. 저기 호텔 보이지. 영도 호텔인데, 저거만 찾으면 되.]


호텔은 미리 예약되어 있었고 시영과 나는 한개의 객실로 입실 되었다. 들어서자마자 방으로 들어간 시영이 곧 바로 나를 불렀다.


[ 태희야! 이리와바! ]


침대위에 큰 대 자로 벌렁 누워있던 시영이 내가 들어서자 양반다리로 고쳐 앉으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번 두드렸다.


 

[ 여기 앉아봐.]

피곤한 얼굴을 부비며 시영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 피곤하지? ]


[ 괜찮아요.]


[ 아까말이야, 액자에 대해서 왜 물었어? ]


 

속으로 뜨끔했다.

[ 액자라니요? ]


[ 솔직하게 말해봐. 궁굼한거 다 알려줄께.]


[ 아하, 풍경이 좋아서 어디냐구 물었던 그 액자요? ]


[ 응.]


[ 아세요? ]


[ 응, 알아. 태희가 본게 어디까지야? ]


[ 다 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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