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직통열차.....
우연히 어떤 아가씨가 작성 하다가 간 자리인데 컴터가 켜 있어서 보니까
이 소설을 쓰고 컴터를 끄지 않고 가는 바람에 읽어 보고 올려도 될꺼 같어서 올립니다
실명인거 같은데 혹시 문제 된다면 지울께요
<단편소설> 직통열차를 타다
미 호 부평역과 송내역을 넘나들기 시작한 건 3개월 전인, 지난 유월의 일이다.
우리 집은 부평역과 송내역의 사이인 부개역 근처 부개3동 이지만,
나는 늘 부개역이 아닌 부평역에서 전철을 타곤 한다.
마을버스를 부개3동 우체국 앞에서 타면 부평역으로,
우체국 건너편에서 타면 부개역으로 가게 된다.
거리상으로는 물론 부개역이 가깝겠지만,
소요되는 시간은 둘 다 똑같이 10분이다.
부개역에서 송내역까지는 한 정거장,
부평역에서 송내역까지는 두 정거장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늘 부평역을 택하는 것은
상행 직통열차 때문이다. 부개역에 앉아 열차를 기다리고 있으면,
드물게 운행하는 직통열차가 부개역에서는 정차하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간다.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매번 비슷하지만,
그렇게 타볼 기회조차 없이 직통열차를 보내고 나면 일반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더욱 더디게 흘러간다.
그러나 부평역 플랫폼에서는 직통 열차건 일반 열차건 먼저 오는 것을 타면 되기 때문에
앗싸리 부평역으로 가는 마을버스에 몸을 싣곤 하는 것이다.
부개역을 거치지 않은 채 일반 열차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직통열차는 왠지 특별하다.
반드시 넘어야할 산을 맨몸으로 건너지 않고,
케이블카라도 타고 건너는 것 같다. 덜컹 덜컹. 유독 덜컹거리고,
유독 잡상인이 많고, 유독 개신교 신자들이 많고,
유독 노인들이 많은 1호선 국철은 늘 불쾌하지만 이 직통열차를 타는 일만큼은 흥미롭다.
직통열차를 타는 이유는 또 있다. 나는 이 직통열차가 아니면,
쉽사리 부평역-부개역-송내역으로 이어지는 노선을 건너지 못한다.
큰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인식이 그렇게 배어 있다.
나는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에서 살고 있고,
부평구 안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졸업했다.
그리고 부평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랄까, 아니면 그냥 내 또래랄까,
나보다 어린 중․고등학생이랄까,
하여간에―이 곳 사람들은 인천이 아닌 경기도 송내나 부천까지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것은 뭐랄까, 경계를 넘는 느낌이다.
아무리 지하철로 한 정거장인 가까운 거리여도 인천과 경기도는 엄연히 다른 지역이다.
부평구에 사는 사람들은 경기도로 학교를 다니지 않고,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 역시 인천으로 학교를 다니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처럼 일찍이 날라리로 지내온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부평역과 송내역은 모두 역을 중심으로 각각 거대한 유흥가를 끼고 있기 때문에,
굳이 부평역에서 놀다가 송내역으로 넘어가는 일은 없는 것이다.
참 비슷하고 다른 동네다, 라는 게 내 생각이다.
부평역과 송내역 앞은 모두 시내버스가 유턴하는 지점이면서,
대형 쇼핑몰을 두고 있다. 쇼핑몰을 마주한 채 유흥가를 끼고 있는 것도,
거리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그렇다고 부평역과 송내역을 다니는 사람들이 꼭 그 안에서만 노는 것은 아니다.
부평역 애들은 주안역으로, 송내역 애들은 부천역으로 또 빠진다.
주안역 유흥가는 부평역보다 크고, 부천역 유흥가 역시 송내역 보다 크다. 정말 거리상으로,
부평역에서 송내역은 주안역까지의 거리보다 가깝지만, 쉽게 넘어가지 않는 지역이다.
그리고 나 역시, 부평역 지하상가에서 옷을 사 입고,
초저녁부터 친구들과 모여 술을 마시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저녁 열 시가 되면 택시를 타고 주안역으로 가 다른 친구들을 만나 2차로 술을 마시고,
새벽 한 시가 되면 3차로 나이트를 가는, 전형적인 인천의 노는 애다.
나이트에서 나오는 시간은 대부분 새벽 네 시.
4차는 부킹한 남자와 포장마차를 가거나 모텔을 가거나, 둘 중에 하나다.
고등학생 때부터 이 정해진 루트를 충분히 즐긴 내가
송내역을 매일 다닌다는 것은 나름대로 이변이라면 이변이랄까.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직통열차를 타는 운 좋은 기분에 취해 인천과 경기도라는 나름의 경계심을 지울 수가 있는 것이다.
부평역과 송내역은 단지 한 정거장일 뿐이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부개동 아파트에서 마을버스를 타는 곳까지 걸어가고,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부평역 지하상가를 거쳐 플랫폼에 들어서고,
열차를 기다려 올라타는 이 짧고도 지루한 과정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하여간에 이렇게 가깝지만 멀기만 한 송내역을 다니게 된 것은 사촌오빠인 동일 때문이다.
나는 3개월 전부터 송내역 앞의 유흥가 골목에 위치한 사촌오빠의 호프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
비록 인천이긴 하지만, 또 비록 2년제이긴 하지만 대학까지 졸업해놓고
왜 호프집에서 일하냐는 말을 주변으로부터 자주 듣는 것이 귀찮다는 것만 빼면 꽤 마음에 드는 일이다.
그러나 엄마의 닦달은 이미 수위를 넘어섰다.
일을 나갈 때마다 왜 하필 동일이냐는 잔소리를 꾸준히 해댄다.
듣는 나도 지겹지만, 하는 사람도 지겨울 텐데 어쩜 저리도 꾸준히 하는지.
동일오빠는 나의 사촌들 중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이다.
이것 또한, 이변이라면 이변이랄까, 하여간 그렇다.
사촌들은 모두 서울에 있는, 일류대라고 불리는 곳에 입학했다.
동일오빠의 친누나는 서울대에, 이모의 아들은 연세 대에, 나의 친오빠는 고려 대에 각각 진학했다.
정말 덜컥 덜컥 잘도 입학하는 것들을 보면, 대입도 참, 무식하게 공부만 하면 쉬운 일이지 싶다.
우리 사촌들 중에서는 동일오빠와 나만이 유독 문제라면 문제였다.
오빠는 이미 중학생 때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고,
삼촌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엄마는 그런 동일오빠를 볼 때마다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냐느니,
너희 누나 반만이라도 닮아보라느니 잔소리를 해댔지만 나는 그런 동일오빠가
나의 친오빠였으면 하고 항상 바라였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동일오빠는 이미 고등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잘나가는 친오빠 혹은 친언니가 있다는 것은 앞으로의 날라리 생활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일반열차를 타고 매 정거장마다 정차해가며 덜컹 덜컹 서울로 가느냐,
아니면 직통열차를 타고 시원하게 뻗어나가느냐 하는 문제였다.
지나가다가 선배들이 “너 좀 논다며?” 하고 불러도,
그 옆의 다른 년이 “야, 그냥 보내, 쟤 동일오빠 동생이야” 라는 한 마디만 내뱉어주면
나는 주변 무리들에게 제대로 자리매김해가며 놀았을 텐데.
때마침 혼다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동일오빠가
나를 발견하고 서서 “야, 거기서 모해? 타” 라고 말하면
나는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발걸음으로 오빠에게 뛰어가 오토바이 뒷자리에 사뿐히 올라탔을 것이다.
오빠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교복치마를 휘날리며 떠나가는 나를 주변 애들은 부러움 쌓인 눈길로 바라봤을 텐데. 그런데 혼다는 얼어 죽을.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고 놀고 있다보면,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오는 뚱뚱하고 무식한 친오빠만을 마주할 뿐이었다.
친오빠의 유일한 관심사는 오로지 공부와 먹는 것뿐이었다.
옷도 엄마가 사주는 것만 입고 다니는 저 뿔테 쓴 초절정 뚱땡이 범생이와 알은 체를 해야 하다니.
나는 피우던 담배를 꺼버리고 친구들에게 먼저 가겠다고 말한 채
범생이를 피해 교복치마를 휘날리며 내달릴 뿐이었다.
현실이란 참, 거지같은 거구나, 생각하면서.
그래도 이 범생이 친오빠의 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새끼가 예상 외로 공부를 너무 잘해준 덕분에, 부모님의 모든 기대는 친오빠에게만 쏠렸다.
그리고 나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물론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담배냄새를 풍기며 밤늦게 들어오는 딸내미에게 개지랄을 하긴 했지만,
여상에 진학하면서부터 그 개지랄이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로 점차 바뀌었다.
만일 동일오빠와 내가 남매였더라면, 엄마는 화병이 나서 벌써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늘 동일오빠에 대해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내심 지 조카네 가게에 있는 게 또 안심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보다는 잔소리가 덜해진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게다가 요즘은 종종 동일이는 잘 있는지, 집에는 잘 들어가는지,
장사는 웬만큼 되냐 느니 하며 안부를 묻곤 한다. 장사야 뭐, 손님이 늘 붐비는 것은 아니지만,
오빠가 워낙 말주변이 좋아 한 번 왔던 손님들은 꾸준히 오는 편이다.
아, 말주변이라기보다는, 눈썰미가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동일오빠는 한 번 본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만일 두 번째로 가게를 찾은 손님이 있다면, 며칠 만에 다시 찾은 것인지,
지난번에는 무슨 안주에 무슨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누구와 왔었는지,
무얼 입고 왔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었다.
테이블을 돌며 재떨이를 갈아주는 척 하면서 슬쩍 “지난번에 오셨을 때랑 친구 분이 바뀌셨네요?”,
“지난번에 안주를 많이 남기고 가셨더라고요,
저희 음식이 맛없어서 그런 줄 알고 다시 안 찾아 주실까봐 걱정 했는데 다시 와주셨네요” 라는
말을 다정스레 건네곤 하는 것이다.
오빠가 그렇게 말을 건네기만 하면, 손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와, 사장님 기억력 진짜 좋으시네요”,
“우와 그런 걸 다 기억하세요?
그 때는 삼겹살 먹고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려고 온 거였거든요”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집이 여기서 가깝거든요, 단골 할게요, 서비스 좀 많이 주세요.” 라며 친한 척까지 해댄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오빠는 손님이 몇 차로 우리 가게에 온 것인지,
가게에 들어오기 전에는 무얼 먹었는지 때려 맞히는데,
나는 오빠의 그 때려 맞힘이 틀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빠의 기억력과 관심은 손님들에게 뿐만이 아니다.
나는 화장을 할 때 입술 화장보다는 눈 화장에 집중하는 편인데,
그것 또한 오빠의 레이더망을 피해가지 못한다.
오빠는 자주 바뀌는 나의 아이섀도 색깔을 보면서,
그것이 나의 기분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어느 때부터인가 꿰뚫어 냈다.
또 가게에 들어설 때 내 표정을 보면서, 오늘 내가 직통열차를 탔는지, 일반열차를 탔는지까지 알아맞히곤 한다. 나는 그런 오빠가 너무 신기하여서,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사람에 대하여 잘 기억하고 알아맞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냥 하면 돼. 오빠의 대답은 짧았다. 나는, 장난해? 하고 되물었다.
일부러 기억하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기억들이 서로 뒤섞여서 흐트러지거든.
그러니까, 저 손님의 의상을 일부러 기억하기 위해 유심히 쳐다보거나 하면,
다음에 마주쳤을 때 오히려 더 기억이 안 난단 말이야.
학교 다닐 때 국사시간에 역사 좆나게 외운다고 외워지디?
너무 신경 곤두세우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돌아보고, 또 만일 다음에 기억나지 않더라도,
그 때부터 다시 잘 보면 되니까. 말도 안돼. 정말로 이해되지 않는, 개뼉다구 같은 소리였다.
사실은 말이야, 오빠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은, 나도 왜 기억나는 건지 잘 모르겠어.
정말로 나는 기억을 하기 위해 일부러 노력한 적이 없거든.
그냥 다시 마주치면, 그리고 그 손님 앞에 서면 내 생각보다도 먼저 말이 그렇게 나오더라.
오빠는 조금 멍한 눈으로 말했다. 흠, 내 생각을 말하자면, 오빠는 아무래도 또라이가 맞는 것 같다.
“쟤가 그래도 야무져서 남자 하나는 제대로 사귄다니까.
그래, 벌써 삼년이나 진득하게 사귀는 것 좀 봐. 그렇지? 연애 너무 오래하면 안 좋은데.
그런데 뤼가 졸업해도, 대학원 석사과정까지는 할 것도 같아서 말이야.
아유, 뭘, 석사과정이야 요새는 개나 소나 다 한다던데. 그냥 대학원 다닐 때 결혼 시킬까?
어차피 대학원 졸업만 하면 대기업에서 서로들 모셔가려고 안달이라던데.
아유, 그럼, 거기다 카투사 제대까지 할 테니 영어야 뭐 완전 눼이티브 스퓍커 아니겠어?
어마, 얘, 뤼 만나러 가니? 어머 잠깐만 언니,
어어 그래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 할게.” 엄마가 저렇게 흥분해 혀를 잔뜩 굴린 채 뤼,
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나의 3년차 남자친구인 리다.
엄마는 혹시나 내 성깔에 내가 먼저 리를 차버리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한다.
리는 부평5동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인데, 우리는 스무 살에 채팅을 하다가,
단지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만난 할 일 없는 애들이다.
리가 연세 대에 다니고 있고, 키가 180cm 라는 이유만으로 엄마는 이미 리를 사윗감으로 점찍은 모양이다.
우리 엄마는 아무리 봐도, 혼자서 너무 잘 노는 경향이 있다.
정말 어찌나 마음에 들어 하는지, 외가 숙모들이며 사촌 언니, 오빠들,
동네 아줌마들까지 리의 존재를 알고 있을 정도다.
“야 이 기집애야, 아유 옷 좀 저번에 새로 산 걸로 입고 가지.
너는 왜 새 옷 사갖고 만날 일할 때만 입니?
술 냄새에 담배 냄새가 아주 절어서 내가 진짜 못 살겠다니까.”
“시끄럽거든?” “이 년이 엄마한테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하여간 누구 닮아서 성질이 저렇게 지랄 맞나 몰라.” 리는 올 해 대학을 휴학하고 4월에 입대를 했다.
운 좋게도, 카투사가 되어서, 매주 금요일마다 정기외박을 나온다.
뭐, 사실 운이 좋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당연히 용산에서 근무할 줄 알았던 리는 터무니없게도 대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대구에도 미군부대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 처음 알았다.
매주 금요일마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일요일마다 다시 대구로 내려 가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귀찮지도 않나, 웬만하면 그냥 대구 시내에서 번개나 하고 놀지, 싶다가도,
얼마나 갑갑하면 저렇게까지 올라올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매주 금요일만큼은 일을 나가지 않고 서울역으로 리를 마중 나간다.
엄마는 아직도 오늘의 내 코디를 가지고 궁시랑 대고 있다.
어차피 알아보지도 못할 텐데 지랄이야. 리는, 동일오빠와는 대조적으로 나의 변화에 굉장히 둔감하다.
화장이나 옷이 다 뭐냐.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하는 커다란 변화에도 리는 늘 별 말이 없다.
하긴 뭐, 그게 편해서 리를 만나는 거지만 말이다.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 한 채 운동화 끈도 안 매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마을버스를 타고 부평역에 도착해 직통열차 시간표를 본다.
주안역에서 출발하는 상행 직통열차가 부평역으로 들어오려면 아직도 20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
나는 별 수 없이 바로 들어오는 일반열차를 탔다.
송내역도 아닌 서울역까지 일반열차를 타고 가야하다니.
사람 많은 부평역 지하상가를 걸어 온 짜증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뭐, 어차피 직통열차를 타봤자 용산역에서 다시 일반열차를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있으므로
그냥 마음 편히 앉아 가는 게 나은지도 모른다.
나는 얼른 출입문 옆 끝자리에 앉았다.
잠깐 잠들었다 깨어나니 영등포역이다. 3년 전, 고등학교 졸업 뒤 처음 봤던 면접이 떠올랐다.
영등포역 근처의 운수회사였는데, 취직을 못한 것은 절대 내 탓이 아니다.
벌써 3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비교적 또렷이 그 면접을 기억하고 있다.
내 이력서를 받아든 운수회사 과장은 내 자리에 커피를 탁, 내려놓아주었다.
종이컵에는 학이 그려져 있었고, 막 휘저은 커피믹스는 여전히 돌고 있었다.
커피믹스의 소용돌이가 멈추자 과장은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뭐, 우리 입장에선 그래요. 여상 졸업한 애들 데려다 쓰면,
앉혀놓고 한 서너 달 동안은 그냥 교육시키는 거나 다름없거든.
이제 막 여상 졸업한 애들이 뭐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지.
그래도 우리 딴에는 데리고 있어보겠다고 월급 꼬박 다 줘가며 일 가르쳐주고 챙겨줘도,
이게 말이야, 요새 애들이 좀 약았어야지.
커피 심부름 시키면 인권이 어쩌네 저쩌네 궁시렁대기나 하더니 돈만 받아먹고 연락도 없이 싹 안 나오더라고.
하여간 괜히 대졸대졸 하는 게 아니라니까.
대학가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부딪히면서 경험 쌓은 애들이 달라도 달라요.
그리고 또 그런 애들은 일도 삼사년씩 꾸준히 해.
아 여기 몇 년씩 다니다가 시집간 애가 하나둘이 아니에요.
뭐 아무튼 부장님께 보여드리고 연락을 줘도 줄게요. 나는 종이컵을 집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종이컵 바닥에서 커피믹스가 새어나온 모양이다.
종이컵을 들어낸 자리에 동그랗게 커피믹스가 묻어있는 것이었다.
아, 나 이놈의 싸구려 종이컵. 과장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했다.
하여간 중국산은 안 된다니까. 괜찮아요, 라는 말이 왜 불쑥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런 내 말을 과장은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이 놈의 건 닦기가 귀찮아서 영, 이라고 중얼거리며 담뱃불을 껐다.
영등포역에서 다시 주안행 직통열차를 탔을 땐 이미 퇴근시간이었다.
열차 안에는 인천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내가 탈 때부터 비좁았던 열차가 신도림역에 정차하자 정말이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꽉 차버렸다.
내 몸은 나보다 서너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정장을 입은 여자와 딱 붙고 말았다.
이렇게, 열차 안에 꽉 끼인 채로 다니면서, 시집을 갈 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걸까.
꼭, 그 면접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 해 겨울에 나는 가까운 2년제 대학 다섯 군데에 원서를 넣었다.
겨울이 다 되도록 나는 여전히 취업을 하지 못했고,
부평역과 주안역을 오가며 노는 일 말고는 달리 한 게 없었다.
그렇게 스무 살을 보내려니, 앞으로도 계속 취업은 안 될 것 같고, 사실 하기도 싫고,
계속 놀자니 집에 눈치가 보였다.
맘 편히 놀면서 용돈이나 타내려면 아무래도 대학생이라는 명분 정도는 있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실업계 고교 동일 전형으로 다섯 군데의 대학에 원서를 접수한 것이었다.
그리고 세 군데의 대학에 예비합격을 했다. 예비 순번은 각각, 111번, 128번, 149번이었다.
입학 정원은 80명인데, 최초 합격한 80명이 모두 등록을 하지 않아야 간신히 기어들어갈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숫자들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노력하지 않은 일에는 쉽게 문을 열어주곤 한다. 대기자 명단은 쑥쑥쑥 빠져나가,
나는 세 군데 대학에서 모두 등록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중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에 등록하고 나서도,
원서를 넣지 않은 대학에서까지 등록할 생각이 없냐는 연락을 받곤 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대학에 갔지만 사실 공부에 절대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그냥 밤늦게까지 놀러 다니고 며칠씩 외박해도 군말 없이 용돈을 내어주는 엄마가 좋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다시 취업을 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여상에서 3년, 대학에서 2년 동안 정보처리를 전공했지만,
정보처리가 도대체 뭘 처리하는 일인지 아직도 모른다.
내 학점으로 전공과 관련 된 일을 하려면 경리일 밖에 없다고, 조교가 말했다.
컴퓨터 부품 회사의 경리직 면접을 본 것은 3월이었다. 들어서자 먼지 밖에 보이는 게 없는 곳이었다.
내 이력서를 손에 든 실장이라는 사람의 손톱에는 때가 까맣게 끼어있었다.
뭐, 사실 저희 입장에선, 뭐, 좀 그래요.
스물세 살이면, 여상이나 공고 졸업해서 바로 일 시작해 벌써 삼사 년 정도 경력 쌓아뒀어야 할 나이거든요.
그런데 대학 졸업한 사람들은 딱히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삼사 년 경력자들보다 더 높은 월급이나 원하고,
맘에 안 맞으면 픽 그만둬 버리고 하니, 이게 뭐, 좀, 그렇지 않겠어요.
그렇죠, 라는 대답이 불쑥, 튀어나왔다. 뭐 어쨌건 연락드릴게요.
조심히 들어가, 오빠가 내일 연락할게.
나이트에서 부킹한 남자와 모텔에서 섹스를 하고 난 뒤, 아침에 헤어질 때나 듣는 말 같았다.
덜컹거리는 북의정부행 열차가 어느새 서울역에 닿았다.
리가 기차에서 나오려면 아직 10분이 남았다.
나는 편의점에서 캔녹차를 구입한 뒤 KTX 승차장으로 올라가 리를 기다렸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리와 나는 할 일이 없어서 만나고 있다.
할 일 없이 영화를 보고, 할 일 없이 밥을 먹고, 할 일 없이 차를 마시고, 할 일 없이 맥주를 마시고 헤어진다.
부평역에서 처음 리와 만났던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온전히 이어져 올 수 있다니.
그 때에도 우리는 영화를 봤고, 피자와 샐러드를 먹으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만 조금 나누었을 뿐이다.
그리고 리는 나에게 연락하겠다는 말도 없이,
데려다 주겠다는 말도 없이 먼저 도착한 마을버스를 타고 부평5동으로 사라졌다.
수도 없이 번개 팅을 한 나로서는,
두 번 다시 리를 만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다음주 주말에 리에게서는 또 연락이 왔다.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러가자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그 주에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고, 파스타를 먹고, 병맥주와 나초칩을 나눠 먹고 또 헤어졌다.
그리고 또 그 다음주 평일에는 쇼핑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백화점에 갔고,
리는 나이키에서 운동화를, 나는 아디다스에서 가방을 하나씩 사고 햄버거를 먹고 차를 마시고 헤어졌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어색한 시간들이었다.
리는 심하게 말이 없고 내성적이며,
선천성이 아니라면 도저히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낯을 가린다.
그런 리가 나와는 왜 아무렇지 않게 만나는지 물은 적은 없지만,
나는 그냥 그 나름대로 굉장히 리가 편안했다.
사람을 만나서 이렇게, 마치 혼자 있는 것처럼 아무 느낌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리를 알게 된 건, 말하자면 대단한 발견이었다.
휴일이면 으레 영화가 보고 싶고, 나가서 피자를 사먹고 싶지만,
혼자서 영화를 보고 피자를 먹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이십대에게서 가능할 리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외로운 것은 참아도, 쪽팔린 것은 참지 못하는 법이다.
리는 지친 표정의 사람들 틈에서, 더 많이 지쳐 보이는 표정으로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나는 방금 편의점에서 사 온 녹차를 내밀었다. 리는 매우 자연스럽게 응, 이라고 대답하고 녹차를 마셨다.
부평에서 서울역 까지도 지겨운데, 대구에서 서울역이야 오죽할까.
리는 늘 올라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나보다 더 먼저 녹차를 찾았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는 내가 이렇게 오는 길에 사다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울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신촌으로 갔다.
데이트할 시간이 이렇게 금요일만으로 줄어들면서 우리는 항상 신촌으로만 다녔다.
그건, 리가 인천행 고속버스를 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리는 전철보다 버스가 편하다며 되도록이면 버스를 타려 한다.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은 확실히 전철을 타는 것보다 빠르긴 하지만,
워낙에 사람이 많아 나는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다.
게다가 너무 원칙에 충실한 좌석버스기 때문에 좌석이 없으면 태워주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줄을 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따지면 어차피 전철을 타고 가는 시간과 비슷할 것이다.
어쨌거나 현재 리는 군인이므로,
나는 되도록이면 리에게 맞춰주기 위해 별 말 않고 함께 버스를 타고 부평역으로 가곤 한다.
뭐 먹을까? 뭐 먹을래? 뭐 먹지. 뭐 먹을 거 없나.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우리는 둘 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주제에 예민하기까지 한 A형인 바람에,
메뉴를 정하기가 늘 쉽지 않다. 나는 혈액형별 성격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A형이 대체적으로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고 예민하다는 데에는 한 표를 던진다.
정말이지 우리는 서로 작정이라도 한 듯 메뉴를 정하지 못한다.
나는 평상시에도 사람들을 만날 때 남들을 따라가는 편이지,
내가 먼저 나서서 무엇을 정하는 편은 아니지만, 리와 있을 때면 유독 심해진다.
이상하게 리를 만나면,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남자인 리가 선뜻 좀 정해주면 좋으련만, 리는 단 한 번도 먼저 정하는 법이 없다.
새로 나온 샐러드 피자나 먹어보자. 나는 마지못해 대답한다.
그래도 이렇게 신 메뉴에 대대적인 광고를 쏟아부어주는 회사들 덕분에 선택의 폭이 좀 좁아지긴 하지만,
먹어보면 맛은 항상 그저 그렇다.
샐러드 피자에 치즈스틱을 주문하고 나서 먼저 나온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샐러드 피자는, 한 마디로 좆같았다.
뭐, 처음부터, 뜨거운 도우와 신선한 샐러드의 궁합이 맞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지만,
어쨌거나 쉣이었다.
다행히 리는 워낙에 피자와 햄버거를 좋아해서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절대로 과식을 하지 않는 리가 벌써 세 조각 째의 피자를 집어먹고 있다.
나는 치즈스틱만 조금 더 집어먹고 콜라를 리필해서 마셨다.
우리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했지만 끝나는 시간이 애매했다.
열두 시가 넘으면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은 더욱 더 많아지는데다가,
좌석이 꽉 차면 막차라 해도 태워주지 않는 버스다.
영화 안 보면 뭐하지? 리가 묻는다. 뭐, 아무거나. 우리는 그냥 신촌역에서 연세 대 방향으로 걸었다.
커피숍 갈까? 맥주 마실까? DVD 볼까? 나는 별 수 없이 세 가지 상황을 제시했다.
결론은 DVD를 보고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났다.
걸음을 멈춰선 곳은 바로 DVD 방 앞이었다.
뭐 볼래? 뭐 볼까. 너 보고 싶은 거 봐. 보고 싶은 거 없어?
나도 그냥 그런데. 옛날 거 볼까. 그래서 나는, 주드 로가 나오는 『가타카』를 골랐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고른 건, 주드 로가 나오는 영화 중 유일하지 보지 못한 것 같아서였다.
나는 잘생긴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주드 로는 왠지 딱 잘생겨서 좋다. 그래서 참 희한한 기분이, 주드 로를 볼 때마다 들었다.
어쨌거나 리는 별로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지 않지만,
달리 볼 것도 없었기에 별 수 없는 모양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어느덧 중반부를 넘어서자 리가 잠을 자기 시작했다. 늘, 이런 식이다.
대부분의 커플들은 DVD 방에서 스킨 쉽을 하느라 영화를 못 본다지만,
우리는 늘 젖혀진 소파 위에서 잠들어 버리기 때문에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이상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삼년이라는 긴 시간을 사귀어 오면서,
단 한 번도 섹스를 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또 있게 마련이다.
리는 술을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밤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어본 적도 없다.
그렇다고 대낮부터 여관방을 빌려 섹스를 해야 할 정도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 또한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암묵적 동의 하에 한 번도 섹스를 하지 않았다.
방학 때마다 부산으로 속초로 잠깐씩 여행을 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행 그 자체가 목적일 뿐 섹스를 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리는 나에게 섹스를 하자는 말도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고,
리가 먼저 할 생각이 없다면 나도 그다지 당기질 않는다.
내 생각에는,
그래서 우리가 삼년이라는 말도 안 되게 긴 시간동안 만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리를 사귀기 전의 남자친구들과도 나는 섹스를 나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몇 번 자고나면 심하게 거만해지고,
역겨울 정도로 뻔뻔해진다.
게다가 나는 남자와 자고나면,
놀라울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매력이 반감되어버리고 만다.
뭐랄까, 종점에 갔으면 내려야 하는, 그런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사귀는 사람과 자지 않고,
앞으로 만날 일이 없는 남자들과 자곤 한다.
거의 대부분이 나이트에서 만나는 남자들이고,
그 외에도 뭐 그냥 놀다가 만난 애들이다.
재밌는 건, 섹스를 할 때가 아니라 헤어질 때다.
처음 만난 남자와 섹스 뒤에 헤어질 때마다 나는 늘 웃음을 참지 못한다.
남자들이 늘 “연락할게” 라는 말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처럼,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교육 받은 것처럼 내뱉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미리 내 연락처를 따놓지 않은 남자들도 헤어질 때면 무조건 “연락할게”
라는 말을 내뱉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남자들에게서 연락을 받아본 적이 없고,
나 역시 연락을 기다리지 않는다.
리가 잠들고 나자 나도 조금 졸음이 느껴졌지만 그냥 참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나는 워낙에 공상을 싫어하기에 영화 속 기본적인 상황들이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왠지 울컥, 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자 리가 일어나서, 나에게도 잤냐고 묻는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영화는 생각보다 조금 긴 편이었다.
맥주를 마시고 버스를 타자니 조금 늦어질 것 같았다.
우리 그냥 오빠 가게 가서 마시자. 버스 정류장 쪽을 향해 걸으며 내가 말했다.
귀찮아, 송내에서 다시 부평으로 들어가는 거. 물론,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그 과정이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았으므로 달리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리가 ‘귀찮아’ 하는 것은 송내와 부평을 넘나드는 일이 아니라 동일 오빠다.
금요일의 데이트마다 이렇게 애매한 시간이면 나는 주로 가게에 가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자고 권했고,
매사에 불만이 없는 리도 처음에는 달리 거절하지 않았다.
리는 꼭 금요일이 아니더라도,
별다른 약속이 없는 토요일이면 내가 일하고 있는 시간에 가게로 와서 나와 조금 앉아 있다가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기억력에, 관심도에, 때려 맞히기까지 천재인 동일오빠가
나의 남자친구인 리에게는 오죽 관심이 많았는지.
처음 리와 마주친 오빠는 나도 알아보지 못하는 리의 이발 상태를 알아보았다.
내가 보기엔 어차피 짧은 머리라 늘 똑같아 보이건만,
오빠는 리가 며칠 전에 머리를 깎았는지 알아맞히며 리에게 말을 걸었다.
내성적이고, 심하게 낯을 가리는 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동일오빠의 관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리는 머리에 유독 집착이 심한 애였다.
군인인 현재 자신의 머리 상태를 가지고 누군가가 운운하는 것을 경멸할 것이,
머리보다 먼저 피부로 느껴져서 나는 순간 부르르 떨고 말았었다.
동일오빠는 리와 나의 상태를 보고, 직감적으로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느낀 모양이었다.
오빠는 실수를 만회하려 머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려 리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리는 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동일오빠의 말을 씹어버리곤 했다.
나라도 나서서 둘 사이를 중재할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만일 내가 조금만 더 성격이 좋은 편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그냥 다 귀찮아서 신경을 꺼버리곤 했다.
집에 맥주 사가서 먹자. 나는 리를 올려다보았다.
리는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이어 말했다.
부모님 여행 가셨거든. 응, 나는 무심결에 대답해버렸다.
정류장에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리는 MP3 플레이어를 꺼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나는 리의 한 쪽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려다가 그만 두었다.
어차피 키 차이가 많이 나서 같이 듣기는 어려워 보였다.
두 시간 같은 이십 분이 흐르자 리와 나도 탈 수 있을 정도의 좌석이 남은 버스가 도착했다.
다행히 우리는 꽤 앞줄까지 와서 기다렸던 터라 나란히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리는 가방에서 잡지를 꺼냈다.
버스가 합정역을 지날 때쯤에 나는 리의 팔과 어깨에 몸을 바짝 붙이고
리가 열심히 넘겨가며 보고 있는 잡지를 바라봤다.
나 지금 덥거든. 리는 여전히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말했다.
나는 그냥 조용히 리의 팔과 어깨에서 몸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구월인데도 불구하고 꽤 후텁지근한 날씨였다.
리와 나는 버스가 도착하기 한 정거장 전인 부평5동에서 내렸다.
그러고 편의점에서 병맥주와 감자 칩을 사서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리의 방 책상 가방을 올려놓았다. 침대 위에는 잘 정돈된 리의 옷가지가 올려져 있다.
깔끔한 리의 어머니는 리가 주말에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두는 모양이다.
우리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나는 금세 배가 불렀다. 게다가 맥주는 늘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단지 도수가 낮다는 이유로 자주 마시게 되는 술이다.
배가 왠지 싸르르, 하며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자 졸음이 쏟아졌다. 자고 갈래? 리는,
리모컨을 들고 케이블 티브이의 채널을 돌리며 말했다.
왜일까. 나는 순간, 나도 놀랄 정도로 신경질적인 자세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
텔레비전에 고정되어 있던 리의 시선이, 그래서 내게로 옮겨졌다.
나는 나를 올려다보는 리의 시선을 무시한 채 얼른 리의 방에 놔두었던 가방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 나서 굉장히 다급한 손길로 현관문을 열었다.
리는 당연히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뭐하냐? 라고, 묻는다. 리의 손에는 유독 털이 많다.
나는 손에 꽤 힘을 주어 리의 손을 떼어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뒤돌아서 나왔다.
리는 따라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리의 집 앞 골목에서부터 큰길까지, 숨도 쉬지 않고 뛰었다.
송내, 역이요. 나는 택시기사에게, 송내역이라고 겨우 말했다.
술이나 마셔야겠다, 젠장. 택시는 버스가 유턴하는 지점에서 섰다.
새벽 네 시였다. 지하철로는 두 정거장인 거리의 택시비가 오천 원이나 나오다니.
조금만 더 늦게 나왔더라면 전철이 다녔을 시간인데.
나는 조금 짜증스럽게 돈을 내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오빠의 가게로 들어갔다.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동일오빠는 나를 보고 놀라는 기색도 없이 리하고 싸웠냐, 하고 물었다.
병신, 이런 건 좀 알아도 모른 척 해야지,
하여간 센스가 부족하다니까.
오빠는 영업을 마감하고 거의 매일 가게에서 술을 마신다.
장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친구들을 자주 불러내서 마시곤 했는데,
요즘은 대체적으로 혼자서 마시는 편이다.
일이 끝나도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님뿐이라면 좀 뻔뻔해져도 상관없겠지만,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사는 집이라 새벽에 현관문을 따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빠는 가게 구석에 있는 락커에서 잠을 좀 자다가 식구들이 모두 나간 열 시쯤에 집에 들어가곤 한다.
그러고는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낮잠을 자다가 오후에 가게로 나오는 것이다.
나는 술잔을 들고 오빠에게 다가가 앉았다.
“왜 혼자서 술을 마시고 지랄이야?
오빠 좋다는 미친년들 이럴 때 안 부르고 뭐하냐?”
“어, 너 눈에 반짝이 많이 번졌다.
좆나 울은 년 같아.” 오빠는 오늘도 내 눈 화장을 바라본다.
“은색 아이섀도 사고 싶어 하더니 샀네? 펄도 같이 산거냐?
하려면 좀 제대로 하지 다 번져 가지고, 뭐냐 이게.”
오빠가 은색이라고 말하는 아이섀도는 사실 회색이다.
뭐, 밝은 회색이니, 은색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왠지 회색과 은색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진다.
회색이 은색이 되려면 어떠한 과정을 지나야 할까. “됐거든. 술이나 따르세요,
아저씨.” “이 년이 오빠한테 말하는 본새하고는…….
야, 네가 그 따위로 싹퉁머리 없이 말하고 다니니까 리가 더 말이 없어지는 거야.
야, 너는 코에 힘 좀 콱 주고 오빠아, 나두우 수울- 이렇게 좀 못하냐?”
“시끄럽거든, 무슨 축농증 환자냐?”
오빠는 내 말발에 졌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소주를 따랐다.
우리는 그렇게 뻥튀기에 소주를 마셨고, 둘이 한 병씩 비우고 나자 오빠가 먼저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나는 테이블을 치우고 가게를 조금 정리한 뒤에 오빠의 옆에 누웠다.
오빠의 다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쿵, 하며 내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우리는 가끔 이렇게 술을 마시고 방에서 자다가 나가곤 하는데,
오빠의 잠버릇은 조금 특이하다.
물론 코를 골고, 아랫배를 까놓은 채 다리를 벌리고 자는 버릇쯤은 대부분 남자들과 비슷하다.
특이점은, 항상 몸의 일부분이 닿아 있는 채라는 것이다.
서로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어도 오빠의 다리는 뒤로 뻗쳐 내 발목에 닿아 있기도 하고,
팔이, 어깨가, 머리가, 하다못해 손가락 하나라도 닿아있는 채로 잠을 잔다.
그리고 그건 정말이지, 필사적인 몸짓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닿지 않으면 벼랑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우 간절한 몸짓으로 잠시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그런 오빠가 일부러 자는 체를 하며 나를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오빠는 분명히 코를 골고 아랫배를 내민 채 쿨쿨 잘도 자고 있었다.
어쩌면 오빠의 기억력처럼, 자기도 모르게 그러는 게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했다.
잠에서 깬 건, 오빠의 손이 내 눈에 닿아서였다. 나는 눈을 크게 껌벅였다.
그러자 오빠의 손에서 더 많은 손가락이 눈 위로 내려 왔다.
오빠는 여전히 코를 골고 이를 갈며 자고 있었다.
나는 오빠 쪽으로 돌아누웠다. 오빠의 손가락이 점점 더 내 눈을 많이 덮었다.
라커룸은 난방이 되지 않아 상당히 추웠다.
낮의 후텁지근함 만큼, 꼭 그 만큼의 차가움이 밀려들었다.
왠지, 눈물이 쑥 빠져나올 것만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오빠의 손을 얼굴에서 떼어냈다.
그러자 오빠의 다리가 또 필사적인 몸짓으로 내 허벅지를 덮었다.
오빠는 여전히 자고 있다.
그런데도 성기는 꼿꼿이 일어서 있었다.
남자가 자면서 무의식중에 발기하는 장면을 어느 영화에서 보았는데,
무슨 영화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람의 몸이라는 게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이기도 하는 거구나.
그 때에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자꾸만 자꾸만, 울컥, 했다.
나는 몸을 쪼그리듯 구겨서 오빠의 허벅지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자고 있는 오빠의 몸에서 깨어난 성기가, 그래서 더 많이 외로워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쓰다듬어 입 속으로 넣었다.
직통열차가 몸 안에서 달려 나가는 것 같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게 당연해서, 그래서 나는 달렸다.
열차가 목젖에 와 닿자, 울컥하던 것들이 결국 눈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닌 물리적인 힘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계속 달렸다.
부평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어느새 부개역을 미끈하게 빠져나가 송내역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송내역에 도착하자 오빠의 성기가 목젖 너머까지 밀려들었다.
오빠가 손을 뻗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정말이지, 필사적으로 잡았다.
만일 오빠가 손을 뻗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송내역 마저도 그냥 지나쳤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직통열차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나는 우웩, 했다.
리와 함께 먹었던 샐러드 피자가, 마치 또 한 판의 피자와도 같은 모양으로 오빠의 몸 위에 쏟아져 내렸다.
진짜 어여쁜 약 2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아가씨로 보이는 여자분이 이 글을 작성 하고
뭐가 잘못 되었는지 그 여자분이 나간 뒤에도 컴터가 켜져 있길래
단골로 가는 피시방이라서 한 10분정도 컴퓨터를 쓸까 하고 보다가 보니까 이 글이 그대로 닫히지 않고
창만 내려져 있어서 여기에 올려 봅니다
근친이랄수도 있고 야설 이랄수도 있고 또 어떤면으로는 일기정도라고 해야 할꺼 같기도 합니다
수정해서 창작방에 근친소설로 올려 볼까 하다가 그 여자분의 어여쁜 모습이 생각나서
아무런 수정 하지 않고 그냥 올립니다
문제 있다면 지우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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