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인동맹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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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환골탈태가 나온걸 알고 있습니다.
한데 옛날 거랑 내용이 약간 틀리더군요..
특히 야한 장면에서의 대사가 많이 수정 삭제 되었구요..
무엇보다 그짤막한 대사 한마디가 더 우리를 자극했다고 봅니다.
저번에 삭제한 것을 다시 올립니다.
문제가 되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괴인동맹(怪人同盟)(1996년 2월 20일 발행)
제1권
신동출세(神童出世) 편
서장
단서(丹書), 옥액(玉液)의 전설
― 단서(丹書)!
― 옥액(玉液)!
그 두 가지의 이름은 지난 백여 년의 세월 동안 강호무림에 숱한 풍파
를 불러일으켰다.
한 권의 비급과 한 병의 신비한 영약!
붉은 표지의 비급(丹書)에는 천하무적의 신공절학이 수록되어 있으며,
옥액(玉液)은 만독불침(萬毒不浸)과 금강불괴(金剛不壞)를 만들어 준
다!
칼끝에 생명을 건 무림인들이 그 이름을 들을 때 입 안의 침이 마르고
혈관의 피가 들끓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청구단서(靑丘丹書)!>
<금강옥액(金剛玉液)!>
숱한 인명을 앗아가고 수많은 가문, 문파를 파멸로 몰아넣은 무림의
이대기보!
이것들은 백년무림,
아니 고금을 통틀어서도 가장 강했던 것으로 믿어지는 한 명 기인이
남긴 것이다.
― 무성(武聖) 청구상인(靑丘上人)!
저 달마(達磨)와 장삼풍(張三豊)에 비견되어 무성이란 지고의 칭호로
불리는 일대기인!
그의 숱한 기행과 업적은 한 수레의 글로도 다 기록하기 어려울 정도
이거니와,
특이한 것은 그가 중원무림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청구(靑丘)!
달리 근역(槿域), 동이(東夷)라고도 불리는 고려국(高麗國)이 그의 출
신인 것이다.
비록 지금은 쇠락하여 자그마한 반도(半島)에 도사린 옹색한 민족이
되었으되,
아득한 상고시대 이래로 그들 동이족이 화북(華北)과 막북(漠北) 일대
를 누천년간 지배했음은 잘 알려진 바다.
동이족은 무예를 숭상하고 하늘의 이치를 따라 살았던 위대한 정복민
족이다.
중원의 숱한 병법과 병서, 무예가 바로 그들 동이족에게서 유래했다.
태공망(太公望),
노자(老子),
공자(孔子),
황석공(黃石公)이 모두 동이족의 가계(家系)를 잇고 있음은 주지의 사
실이며,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저술인 금해병서(金海兵書)를 얻기 위해 당태종
이세민(李世珉)이 온갖 책략과 술수를 다했음은 당서(唐書)에도 전하
는 바다.
누천년을 내려온 동이족 전래 무맥의 최후 전승자!
그가 바로 청구상인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백오십여 년 전,
청구상인은 동이족이 잃어버린 세 가지의 보물,
창세삼보(創世三寶)를 찾아 중원으로 들어왔었다.
그리고 사해오호를 주유하며 숱한 기인명숙들과 조우하였는바,
누구도 청구상인의 수하에서 삼 초를 버티지 못하였다.
그렇게 일 갑자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청구상인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역만리 중원 땅에 노구를 누이게 된다.
청구상인이 우화등선(羽化登仙)한 곳이 어딘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청구상인이 자신의 고향인 청구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확실하
다.
당연히 그의 신공절학이 담긴 단서와 옥액도 중원의 어딘가에 남아 있
음이 분명하다.
― 청구단서(靑丘丹書)를 찾아라! 천하를 얻게 되리라!
― 금강옥액(金剛玉液)을 얻어라! 죽음조차 이길 수 있으리라!
강호무림이 발칵 뒤집힌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정사,
흑백을 불문하고 모든 강호인들이 명산대천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단서와 옥액,
아니 그중 하나만 얻어도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개인은 개인대로,
문파는 문파대로 사력을 다해 청구상인의 유택(幽宅)을 찾으려 혈안
이 되었다.
그 와중에 숱한 피보라가 일고 비극이 명멸했다.
누가 무림쌍보(武林雙寶)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는 소문이 돌기만 하
면 전무림인들이 그를 습격했다.
어떤 천하고수라도 전무림인을 상대로 싸워서야 살아날 수 없는 법!
수만 명의 생명이 억울하게 죽어 갔고 수백의 문파와 가문이 무림도
상에서 지워졌다.
어떤 자는 이런 세태를 빌미로 평소의 원한을 갚기도 했다.
자신의 적이 무림쌍보를 얻었다는 소문만 흘리면 거의 틀림없이 그
적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음모와 살육의 광란(狂亂)!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며 중원무림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그제서야 무림쌍보가 일으킨 미증유의 혈겁은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숱한 희생과 유혈 끝에 강호인들도 이제는 청구이보에 대한 미련에서
점차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어언 백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도 무림인들은 단서, 옥액이란 단어를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한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욕심과 집착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기에....!
제1장 우연(偶然)한 납치극拉致劇
한 칸의 밀실.
「제... 제발! 저는 아기를 갖고 있어요! 」
화려하게 치장된 실내로 필사적으로 애원하는 여인의 음성이 흘렀다.
밀실 중앙에 놓인 커다란 침대,
지금 한 명의 여인이 절망의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나이는 이십대 초반 정도,
해맑은 피부와 섬세한 이목구비를 지닌 미소부(美少婦),
하지만 그녀의 입술은 백지장처럼 하얘져있고 커다란 봉목에는 절망
의 눈물이 샘물처럼 솟고 있었다.
그녀가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얇은 속옷하나,
눈같이 희고 가녀린 두 팔은 머리 위로 쳐들려진 채 침대 양쪽 모서
리에 묶여있었다.
한눈에도 그녀는 회임한 상태였다.
「제발...! 」
임부는 하체를 오므리려 애쓰며 누군가에게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흐흐! 곧 끝난다! 태아는 해치지 않을테니 걱정마라! 」
침대 발치에서 건장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반사적으로 사내 쪽을 돌아보던 미소부는 진저리를 쳤다.
그자는 벌거벗은 알몸의 사내였다.
무술로 단련된 건장한 체격,
「흐윽! 」
그자 쪽을 보던 미소부는 다음순간 공포와 절망으로 진저리를 쳤다.
벌거벗은 사내의 하체에 불끈 솟은 거대한 육괴(肉塊)!
뱀같은 핏줄이 툭툭 불거진 그것은 한껏 성이 난 채 천장을 향해 건
들거리고 있었다.
「흐흐! 」
사내는 사음한 음소를 흘리며 침대로 올라와 여인의 하체로 접근했
다.
「안돼요! 제발! 」
여인은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하체를 오무리려 했다.
하지만,
찌직!
사내의 거친 손길에 여인의 속옷자락이 길게 찢겨나갔다.
그러자 드러나는 박속같이 새하얀 아랫도리,
여인은 속옷속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속옷이 찢기는 순간 은밀한 아랫도리의 모습이 그대로 드
러났다.
눈부신 허벅지 윗쪽으로 유달리 도독히 살이 오른 둔덕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데 특이하게도 그곳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백옥 덩이같이 새하얀 그 두덩이에는 그저 옅은 솜털이 살풋 덮여 있
을 뿐이었다.
「흐흐! 곡(曲)가 놈이 묘한 취향이 있었군! 마누라가 무모(無毛)라
니...!」
매끈한 흡사 백옥덩이를 섬세하게 깍아놓은 듯한 미소부의 특이한
중심부를 발견한 사내의 눈길이 한층 도착적인 흥분으로 물들었다.
「흐윽! 」
사내의 시선이 남과는 다른 자신의 그곳을 핥음을 느끼며 미소부는
수치로 몸을 떨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필사적으로 무릎을 오므려
사내의 음탕한 눈길에서 자신의 치부를 조금이라도 더 가리려 노력
해 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그 모습은 사내의 욕정을 한층 더 자극할 따름이었다.
매끈덩한 둔덕 아래로 깊이 파내려간 흠집의 윗부분이 살짝 엿보여
사내의 욕정을 배가시켰다.
「흐흐! 어디 네 보물을 좀 보자! 」
사내는 미소부의 무릎을 움켜쥐어 거칠게 좌우로 벌렸다.
「안돼! 아악!」
미소부의 절망에 찬 비명이 밀실을 울렸다.
그녀의 꼭 붙었던 무릎은 사내의 우악스런 손길에 너무도 무력하게
벌어지고 말았다.
두 다리가 한껏 벌려져 치부를 드러낸 여인의 하체,
가릴 것이 전혀 없는 그녀의 중심부는 그대로 사내의 시야에 노출되
었다.
미소부의 중심부는 한 올의 치모도 없어 흡사 순결한 소녀의 그곳같
았다.
하지만 지금 여인의 그곳은 한껏 부풀고 충혈되어 있어 흡사 숱한
사내를 경험한 창기의 그것처럼 음란해보였다.
만개한 그곳은 무르익은 석류처럼 원색적인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흐흐! 좋아! 너같이 특이한 계집은 처음이다! 」
사내가 헐떡이며 그녀의 벌려진 다리 사이로 무릎을 꿇었다.
민둥산 아래의 계곡으로 접근하는 사내의 얼굴,
「안...안돼! 아학! 」
미소부의 충격에 찬 비명이 밀실을 뒤흔들었다.
한껏 충혈되어 극도로 예민한 살점으로 사내의 거친 입김이 들이닥
친 것이다.
난무하는 혀와 입술,
물기젖은 야릇한 소음이 실내를 후끈 달구었다.
미소부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악물며 모진 고문을 견디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여린 살점에 가해지는 학대는 너무도 강렬한 것이었
다.
여체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작적으로 요동치고, 충혈된 꽃잎 사이
로는 진액이 홍수를 이루었다.
「흐윽! 으읍! 」
피가 나도록 악다문 입술 사이로는 숨넘어갈 듯한 흐느낌이 새어나
왔다.
퍼득! 퍼득!
사내의 머리가 일렁일 때마다 요분질 쳐대는 난창난창한 허리질,
활처럼 휘어져 금시라도 폭발할 뜻한 여체,
이윽고,
「하악! 제발! 제발 그만...! 」
여체가 마침내 더 견디지 못하고 자지러지는 비명을 토해내었다.
「흐흐! 난 또 네년이 돌같은 몸을 지녔는줄 알았다! 」
사내가 히죽이며 여체의 중심부에서 얼굴을 떼며 입가를 쓰윽 닦았
다.
난잡하게 벌어진 미소부의 하체 중심부는 사내의 타액과 여인 자신
의 진액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이어 사내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여체 위로 자신의 육중한 몸을
실었다.
「제...제발! 」
사내의 체중이 봉긋한 아랫배에 실리자 미소부는 퍼뜩 정신을 차리
며 애원했다.
「아기가...! 제발! 이런 짓 안돼요! 」
여인은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사내를 밀어내려했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사내는 잔인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곡(曲)가에게서 빼앗아 온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
「뭐…… 뭐라구요? 」
미소부는 언뜻 이해를 못한 듯 되물었다.
「흐흐! 본좌의 대공(大功)을 위해서 가장 음기가 왕성한 지금의
네 몸이 필요하단 말이다! 」
사내는 말하며 여체의 하문을 손가락으로 더듬어 벌리고는 그곳으로
자신의 터질 듯한 살덩이를 가져갔다.
「무…… 무공을 익히려 일부러 나를……! 」
뒤늦게 사내의 말뜻을 이해한 미소부의 입에서 절망적인 비명이 터
졌다.
「흐흐! 아는 것이 늦었다, 냉상영(冷祥英)! 」
사내는 음탕하게 말하며 거칠게 하체를 여체로 밀어붙였다.
「아아악! 」
불덩이같이 뜨거운 이물질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하체로 밀려듬
을 느끼며 여인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저... 저주한다! 」
여인은 자신의 몸 안 깊숙히 파고들어 맥동하는 이물질을 아프도록
느끼며 아득히 혼미의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흐흐! 이제 곧 나는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훼지경(不毁之
境)에 이를 것이다! 」
혼절한 여체 위에서 하체를 흔들어대며 사내는 득의의 괴소를 흘렸
다.
이어 그자는 무자비하게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세차게 치받을 때마다 정복당한 여체는 애처롭게 일렁거
릴 뿐이었다.
목불인견의 참극이 벌어진 밀실,
그로 인해 장차 천하가 혈겁으로 휩싸이게 될 줄은 그자도 미처 알
지 못하고 있었다.
* * *
― 종남산(終南山)!
중원의 중요한 도가성지(道家聖地) 중 하나인 종남산!
그 종남산은 지금 가을빛에 물들어 있다.
한없이 푸른 가을 하늘에는 두둥실 구름이 몇 점 떠가고 있었다.
만학천봉(萬壑千峯)은 색색의 단풍으로 물들어 있고,
종남산의 넉넉한 산록(山麓) 아래 펼쳐진 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
가 고개를 숙인 채 이따금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아름답게 율동하고
있다.
기기묘묘한 형상의 만인봉(萬人峯)을 병풍처럼 등지고 한 채의 웅장
한 장원이 서 있다.
<혈검산장(血劍山莊)>
성문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정문에는 금박이 화려한 편액이 걸려 있
었다.
붉게 칠해진 둥근 고리(輪)를 배경으로 쓰여진 글은 웅혼하고도 패도
적인 기상이 느껴진다.
혈검산장---!
그렇다!
이곳이 바로 강호에서 서패천(西覇天)으로 불리는 혈검산장이었다.
본래 당금 무림에는 사대흉장(四大兇莊), 또는 사패천(四覇天)이라
불리는 네 개의 강대한 가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혈검산장은 바로 그중 서패천으로 불리는 가문이다.
― 금사혈검(金蛇血劍) 막운비(莫雲飛)!
그가 서패천 혈검산장의 당대 주인이다.
막운비가 한 자루 기형(奇形)의 사형혈검(蛇形血劍)으로 펼치는 사
형검법(蛇形劍法)은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적수를 만나지 못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의 무공이 뛰어나다 해도 무림의 최절정고수들에
는 부족함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막운비가 이끄는 혈검산장의 위세는 섬서
(陝西), 감숙(甘肅) 등 중원의 서방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막운비의 탁월한 용인술(用人術)과 교묘한 심모원려(深謨遠
慮)의 결과였다.
― 막운비는 석자(三尺)의 검보다 세치(三寸)의 혀가 더 무섭다!
그 같은 비아냥이 공공연히 무림에 떠돌 정도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대놓고 막운비에게 시비를 걸지는 못한다.
그의 막하에는 구름 같은 고수, 달인들이 도사리고 있으며,
일단 막운비의 눈 밖에 난 자는 늘 비참한 최후를 당해 왔기 때문이
다.
저녁 무렵,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혈검산장이 자리한 종남산을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하하하! 」
「까르르! 」
혈검산장의 정문 앞에 펼쳐진 널찍한 공터에서는 여러 명의 아이들
이 재잘대며 놀고 있었다.
질 좋은 비단옷을 입은 아이,
허름한 베옷을 입은 아이,
일견해도 신분이 다른 아이들이 함께 뒤섞여 놀고 있는 것으로 보였
다.
하지만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사이에서야 신분의 고하는 큰 문제
도 아닐 것이다.
커다란 석사자 두 마리가 버티고 선 혈검산장의 정문 앞에는 네 명의
우락부락한 장한이 무료하게 서 있었다.
그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연신 하품을 해대
고 있었다.
그리고.
혈검산장의 무사들말고도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이 또 한 쌍 있
었다.
「……! 」
혈검산장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고목나무,
그 아래에는 언제부터인가 한명의 꾸부정한 노인이 앉아 뛰노는 아
이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는 오순 후반 정도,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가득하고 등은 구부정하게 굽어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길가다 지친 늙은 여행객이었다.
혈검산장이 무사들도 노인의 그 같은 행색에 그를 별로 유의하지 않
고 보아 넘겼다.
하나,
(틀림없다! 바로 저 아이다!)
고개를 움츠린 노인의 눈빛은 의외로 형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노인의 눈빛은 한 아이에게서 떠날 줄 모르고 있었다.
소년,
이제 십 사오 세쯤 되었을까?
일신에 깨끗한 비단옷을 입고 있으며 얼굴에 귀티가 흐르는 것이 한
눈에도 귀한 신분의 아이로 보였다.
하나 아깝게도 소년은 병색(病色)이 완연했다.
키도 작은 데다가 얼굴이 창백하고 팔다리가 빈약한 것이 바람이 조
금 세게 불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보였다.
그 때문에 소년은 원래 나이보다도 두 세살 어려 보였다.
「……! 」
소년은 아이들이 뛰노는 마당 한구석에 놓인 돌 위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신이 나서 겅중거리는 다른 아이들을 보는 소년의 눈에는 부러운 기
색이 가득했다.
(내가 상영(祥英)을 그 짐승에게 빼앗긴 것이 십 사 년 전의 일,
그때 상영은 뱃속에 아이를 갖고 있었지! 그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
다면 바로 저 나이일 것이다!)
소년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이 점점 형형해졌다.
가슴에 쓰린 기억이 있는 듯 노인의 나무껍질같은 안면이 파르르 경
련을 일으켰다.
(놈은 만삭인 상영을 납치해다가 짐승 같은 야욕을 채웠다. 저 아이
가 저렇게 병약한 것도 제 어미 뱃속에 들었을 때 모체가 난행을 당
한 결과일 것이다!)
노인의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물려졌다.
(복수를 하고 싶었으나.... 놈의 주위에는 지켜 주는 개들이 너무
많아 번번이 실패했었지! 이제 나도 복수는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피맺힌 한은 우리의 아들이 대신해 줄 것이다!)
노인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옆구리에 찬 물건을 꽉 움켜쥐었다.
― 호로(壺瀘)!
그것은 은은히 황금빛 서기가 나는 한 개의 술호로였다.
그것을 움켜쥔 노인의 깡마른 손에 핏줄이 불끈 돋았다.
(놈을 이길 만한 무공을 찾아 헤매던 노부는 천우신조로 이 금강옥액
(金剛玉液)을 얻게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내가 마셔서 무적 공력을
얻어 막운비 놈을 쳐죽이고 싶지만.... 이것은 바로 저 아이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
병색 완연한 소년을 보는 노인의 눈이 뜨거운 부성애로 물들었다.
헌데,
금강옥액이라니!
정녕 노인이 차고 있는 호로에 무림쌍보(武林雙寶) 중 하나인 금강
옥액이 들어 있단 말인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노인은 천하에 다시 없을 행운의 주인공이 아니
겠는가?
(내 아들을 금강신체(金剛神體)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로
하여금 네놈 막운비를 쳐죽이게 하리라!)
노인은 격동을 감추려는 듯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앗!
노인의 깡마른 몸이 돌연 용수철처럼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쐐액!
그의 몸은 마치 질풍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아이들이 놀고 있는 혈검
산장의 앞마당으로 날아들었다.
「어엇! 저 늙은이가....! 」
「무.... 무림인이었다! 」
무료하게 하품을 하고 있던 경호무사들이 질겁을 하며 몸을 일으켰고,
「가자! 」
파팟!
「악! 왜 이래요! 」
그 사이 단번에 마당을 가로지른 노인은 바위에 힘없이 걸터앉아있던
병색 완연한 소년을 병아리처럼 낚아챘다.
쐐액!
소년의 비명이 터지는 순간 그와 노인의 몸은 다시 허공으로 치솟고
있었다.
「불범(不凡) 도련님! 」
「셋째 도련님을 내려놔라! 」
혈검산장의 무사들이 악을 쓰며 달려왔다.
― 막불범(莫不凡)!
이것이 그 병색 짙은 소년의 이름이었다.
그는 바로 금사혈검 막운비의 다섯째 아들인 것이다.
「막운비 짐승에게 전해라! 나 곡강(曲姜)이 내 아들을 찾아간다고! 」
화라락!
노인은 한 마리 천마처럼 단숨에 혈검산장 우측의 송림을 뛰어넘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의 경신술은 너무나 신쾌하여 혈검산장의 무사들이 마당 중간으로
달려왔을 때는 이미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쫓.... 쫓아가자! 」
「총관께도 알려라! 삼공자가 납치되었다고! 」
한 명의 무사는 도로 장원 안으로 달려들어가고 나머지 셋은 이를 악
물고 노인이 사라진 곳으로 몸을 날렸다.
오래지 않아 혈검산장 안에서는 수백 명의 무사들이 놀란 메뚜기 떼
처럼 날아올라 노인이 사라진 곳으로 달려갔다.
마당에서는 갑자기 벌어진 일에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만이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 * *
쐐애액!
소년 막불범을 겨드랑이에 낀 노인은 질풍처럼 동쪽으로 날아갔다.
몇 개의 산과 개울이 순식간에 노인의 발 아래로 스쳐지나갔다.
소년은 그새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너무 놀란 데다가 병약한 몸이 자신을 안고 날아가는 노인의 엄청난
속도를 견디지 못한 때문이다.
(가엾은 녀석!)
노인은 달리면서도 소년을 측은한 눈으로 내려다보곤 했다.
(모두가 아비가 못나 네 어미를 막가 악적에게 빼앗긴 결과다! 하지만
걱정 마라! 금강옥액을 먹고 아비가 추궁과혈로 경락을 뚫어 주면 넌
하늘 아래에서 가장 강인한 육체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노인은 염두를 굴리면서도 쉬지 않고 발길을 옮겼다.
이미 백여 리를 달렸으나 노인의 발걸음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다.
혈검산장의 세력은 방대하기 이를 데 없다.
섬서, 산서성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는 안심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덧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그러나 노인의 발길은 늦춰질 줄 몰랐다.
노인은 밤이슬을 맞으며 다시 수십 개의 산과 강을 건넜다.
그 결과 다시 날이 밝아 아침이 되었을 때 어느덧 노인은 하북(河北)
성의 경계에 들어서 있었다.
「휴우! 이쯤이면 되겠군! 」
그제야 비로소 노인은 땀을 닦으며 걸음을 늦췄다.
(몇 번이나 방향을 틀었으니 쉽사리 쫓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노인은 자신이 지나온 곳을 흘깃 돌아보며 숲을 나섰다.
숲의 멀지 않은 곳에는 동서로 뻗혀있는 관도(官道)가 거대한 뱀처럼
길게 가로누워 있었다.
(이제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이 아이에게 금강옥액을 먹여 주면 된
다!)
노인은 소년 막불범을 소중히 안고 관도로 한걸음 들어섰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두두두!
돌연 뒤쪽에서 급박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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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속출(續出)하는 강적(强敵)들
말발굽 소리가 들리자 노인은 귀찮은 일을 피할 요량으로 길가로 물
러서 걸음을 옮겼다.
두두두!
이내 네 필의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노인을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날 알아보는 자가 없는 것 같군!)
노인은 내심 안도하며 땅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헌데 그 직후였다.
히히히힝!
「워워! 」
돌연 그를 지나쳤던 네 필의 말이 급격히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저놈들은……!)
슬쩍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던 노인의 안색이 일순 어두워졌다.
두두두!
그를 스쳐 지났던 말들이 천천히 그쪽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 말들 위에는 일견하기에도 무림인들로 보이는 네 명이 올라탄 채
형형한 눈빛으로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 필의 말들 중 맨 앞쪽의 갈색 말 위에는 우람한 체격의 백의노인
이 앉아 있다.
이 노인은 온몸이 백색 일색이었다.
머리도 희고 수염도 백설같이 희며 입고 있는 의복과 얼굴색도 분을
바른 듯이 하얬다.
츠으!
백면노인의 움푹 들어간 눈동자에선 연신 남색(藍色) 광망(光茫)이
번뜩이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백면노인 뒤쪽의 말에는 그와 정반대로 얼굴이 숯처럼 검은 흑면노
인이 타고 있다.
그자는 뼈를 발라 놓은 듯 깡마른 체격의 소유자인데 입고 있는 의복
도 먹물을 칠한 듯이 새까만 흑포였다.
만약 그의 눈동자에 약간의 흰빛 마저 없었다면 그저 한 덩이의 숯을
말 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였으리라.
「으핫핫! 이게 누구요? 이제 보니 고명하신 염라철장(閻羅鐵掌) 곡
노사(曲老師)시로군! 」
흑백의 두 노인 중 우람한 체격의 백면노인이 우렁찬 웃음을 터뜨렸
다.
순간 막불범을 납치한 노인, 염라철장 곡강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필 이런 때에 흑백쌍살을 만나게 되다니……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구나!)
― 흑백쌍살(黑白雙煞)!
흑백의 두 노인은 하락(河洛) 일대에서 악명이 높은 마두들로서 얼굴
색깔에 따라 각기 백면살(白面煞), 흑면살(黑面煞)이라 불린다.
사실 흑백쌍살이 제법 악명을 떨치고 있는 자들이긴 해도 염라철장
곡강이 보기에는 별 볼 일 없는 부류에 불과하다.
그것은 염라철장 곡강 자신이 무림에서도 이름이 쟁쟁한 강호칠절
(江湖七絶)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정파백도의 가장 뛰어난 일곱 기인을 일컬어 강호칠절이라 하는 바,
곡강은 불의와 사마외도를 보면 가차없이 살수를 써서 염라철장이라
는 무시무시한 별호를 얻게 된 인물이다.
평소의 염라철장 곡강이었다면 흑백쌍살을 만났어도 코방귀도 뀌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틀렸다.
실로 십사 년 만에 되찾은 아들과 함께인 것이다.
도저히 남과 어울려 싸울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바람대로 돌아가지만은 않았다.
「흐흐! 속담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십 년이란 긴 세
월이 흐른 지금 우리가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었구려. 정말 기쁘기
그지없소. 」
백면살이 노골적인 살기를 드러내며 음산하게 웃었다.
염라철장도 도리 없이 아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보니 흑백쌍살 형제분들이셨군. 보아하니 두 분은 지난날의
일장을 아직 잊지 못하고 다시금 고하(高下)를 가늠하고 싶으신 모
양인데.... 오늘은 노부가 급한 일이 있으니 열흘 후 황산(黃山) 시신
봉(始信峯)에서 만나 결판을 내는 것이 어떻겠소? 」
염라철장은 평소의 불같은 성질을 누르며 억지로 좋은 얼굴을 꾸며
보였다.
「그럴 필요 없소, 곡 노사! 」
그러나 얼굴이 검은 노인, 흑면살이 얼른 그의 말을 받았다.
「나 흑면살은 따로 날짜를 정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오. 오늘은 날씨
도 시원하여 손속을 교환하기에 더없이 좋은데 열흘 후에 고생해 가
며 험준한 황산을 올라갈 필요가 뭐 있겠소? 혹시 곡 대협은 황산에
명당 자리라도 잡아 두기라도 한 거요? 」
흑면살이 음험하게 웃으며 말했다.
(굴뚝에 빠진 쥐새끼 같은 놈이……!)
염라철장의 눈꼬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당년에 강호를 주름잡았던 이 살성은 평소 흑백쌍살 같은 자들은 눈
에 두지도 않았다.
그러나 목전의 형세는 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지 않은가?
그는 할 수 없이 입가에 비굴한 웃음을 머금었다.
「나는 오늘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당신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소.
이해하시오! 」
그의 말에 백면살은 염라철장의 옆구리에 끼여 있는 막불범을 힐끗
바라보았다.
「곡 대협은 천하에 대명이 자자한 인물인데 어찌하여 어린아이의
요혈을 찍어 데려가는 것이오? 설마 유괴한 아이는 아니겠지요? 」
그의 말에 흑면살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형님은 참 눈치도 없소. 저 어린놈은 아마도 곡 대협과 지금은 막
운비의 첩이 되어있는 냉상영(冷祥英)이란 계집 사이에서 태어난 사
생아일 게요! 」
「닥쳐라! 」
순간 염라철장이 눈을 부릅뜨며 노성을 질렀다.
「또 한 번 쓸데없는 주둥아리를 놀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
염라철장의 일갈에 흑면살이 흉흉한 표정으로 대꾸하려 할 때였다.
「흐하하! 가만두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거요? 」
흑백쌍살 뒤에 있던 한 명의 중년 장한이 큰소리로 웃어젖히며 말을
받았다.
휘릭!
그자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말 등에서 뛰어내렸다.
동시 어깨에서 길이가 세 자 가량 되는 강추(鋼錐)를 뽑아 휘저어 예
리한 파공성을 내며 앞으로 나섰다.
「곡 대협은 우리 형제를 안목에 두지도 않소? 」
염라철장은 그자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귀하의 얼굴은 생소한데 나 곡강이 언제 어디서 귀하에게 죄를 범
했소? 」
「시침떼지 마시오. 우리는 태호쌍걸(太湖雙傑) 황웅(黃雄), 황렬(黃
烈) 형제요. 당신이 우리 형제의 사형인 무영서생(無影書生)을 죽이
고도 무사할 줄 알았소? 」
「오! 당신들이 바로……! 」
염라철장도 비로소 그들이 누군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그의 강퍅한 얼굴에는 비웃음이 떠올랐다.
「흐흐! 무영서생이란 작자는 한밤중에 비구니들만 사는 절간 담을
넘어 들어가 못된 짓을 하던 중에 내 손에 걸려 죽었지! 설마 그 패륜
음적(悖倫淫賊)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겠지? 」
그가 비웃음을 흘릴 때였다.
「바로 그렇다! 」
투학!
사나운 함성과 함께 두 줄기 한광이 염라철장을 향해 엄습해 왔다.
황웅이 자신의 무기인 한 쌍의 강추를 느닷없이 무찔러낸 것이다.
염라철장도 황급히 오른손을 뻗어냈다. 창졸간에 취한 임기응변이었
다.
카카캉!
맑은 음향이 일어나며 황웅의 강추 두 개가 서로 맞부딪쳐 버렸다.
염라철장이 내뿜은 암경에 휘말려 버린 결과였다.
「큭! 」
황웅은 염라철장이 말하는 사이에 기습을 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손목
이 울리는 격통을 느끼고 비틀거리며 밀려나갔다.
염라철장의 공력이 이미 최상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는 결과였
다.
(무서운 늙은이!)
(과연 강호칠절의 일인답다!)
흑백쌍살과 황렬은 이 상황을 보고 내심 놀랐다.
「모두 함께 공격하자! 」
콰릉!
백면살이 일갈하며 먼저 장력을 뽑아내 염라철장을 후려쳤다.
「우우우! 」
화라락!
하지만 염라철장은 사나운 장소성을 터뜨리며 맹렬히 허공으로 치솟
았다.
「엇! 저 늙은이가! 」
「달아나다니……! 」
염라철장의 뜻밖의 행동에 네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염라철장은 어느 누구와 싸우든 절대 등을 보이지 않는 인물로 유명
했다.
헌데 뜻밖에도 그가 먼저 등을 보이고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네 사람이 깜짝 놀라는 사이 염라철장은 이미 숲 속으로 몸을 날려
사라진 후였다.
「싸움을 피하는 것을 보니 부상이라도 당한 모양이다! 」
「쫓아가자! 이 기회에 원한을 갚자! 」
화라락!
쐐애애액!
백면살의 호통 소리와 함께 네 사람은 동시에 몸을 날렸다.
다섯 사람은 쫓고 쫓기며 단번에 수십 리를 달렸다.
(빌어먹을……!)
웅이산의 험한 산중을 달리며 뒤를 돌아보던 염라철장은 이를 악물었
다.
아무래도 추격하는 네 사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네 사람과의 거리는 점차 단축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것은 염라철장이 밤새 달린 탓이었다.
철인이 아닌 이상 밤새 천여 리를 달리고도 정상일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염라철장은 지금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지칠 대로 지친 상태
였다.
(떨쳐 버릴 수 없다면 더 늦기 전에 결판을 낼 수밖에……!)
내심 결심한 그는 급히 자신이 달리고 있는 주변을 둘러봤다.
마침 멀지 않은 곳의 절벽 아래에 큼직한 동굴이 하나 뚫려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저곳이라면……!)
화라라락!
염라철장은 눈을 번뜩이며 즉시 그 산동(山洞)으로 뛰어들었다.
「으하하! 스스로 독 안에 뛰어드는구나! 」
뒤쪽에서 네 흉사(凶邪)의 흉악한 웃음소리가 급격히 가까워졌다.
(시간이 별로 없다! 혹시 모르니……!)
염라철장은 흘깃 밖을 돌아보며 급히 품에서 지필묵을 꺼냈다.
그리고는 작은 종이에 총총히 몇 자 글을 적어 내려갔다.
글을 다 쓴 그는 그 종이를 허리에 차고 있던 황금색 호로와 함께 막
불범의 품속에 쑤셔 넣어 주었다.
(부디 네가 그 글을 읽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저 네 놈의 생쥐가 내
적수는 못되지만 그래도 사람일이란 모르는 것이니……!)
염라철장은 뜨거운 부성애가 담긴 눈으로 소년 막불범을 내려다보았
다.
화라라락! 스스스스!
그때 옷깃이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네 명의 추적자가 동굴 밖에 날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은 염라철장의 기습이 두려워 아무도 감히 안으로 들어오
지 못했다.
「곡가야! 자라 새끼처럼 석동 안에 숨어서 기어 나오지 않겠다면 독
연기를 불어넣어 어린놈과 함께 죽여 버리겠다. 」
백면살이 동굴 안을 향해 흉갈을 터뜨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헛소리 마라! 」
푸학! 꽈르릉!
하나의 인영이 전광석화같이 석동 밖으로 튀어나오며 사나운 장력을
쏟아냈다.
물론 그는 염라철장이었다.
그의 쌍장이 휘둘러지자 세찬 광풍이 휘몰아치고 모래 먼지가 사방으
로 휘날렸다.
「헉! 」
「크악! 」
퍼퍽! 콰드득!
이 흉맹무비한 장풍에 황씨 형제의 상체가 피모래로 흩어져 일 장 밖
으로 날려 나갔다.
흑백쌍살은 그래도 고수답게 반응이 빨라 횡액을 면했으나 황씨 형제
는 여지없이 참살을 모면하지 못한 것이다.
「죽어랏! 비겁한 놈들! 」
염라철장은 여세를 몰아 급히 물러서는 흑백쌍살을 덮쳐 갔다.
꽈르릉!
염라철장의 쌍장이 검게 물들며 무시무시한 경풍의 소용돌이가 뻗쳐
나왔다.
그는 장기전으로 나가면 지친 자신이 불리함을 알고 있기에 처음부터
최강의 살수를 구사한 것이다.
「놈! 날뛰지 마라! 」
「받아랏! 」
흑백쌍살도 악을 쓰며 마주 장력을 내치며 염라철장의 장풍에 맞섰다.
하지만 염라철장이란 이름은 헛것이 아니었다.
파카카캉!
서로의 장력이 충돌하는 순간 염라철장의 장풍은 마치 무쇠의 창날처
럼 흑백쌍살의 장풍을 여지없이 꿰뚫고 들어갔다.
「안…… 안 돼! 」
「케에엑! 」
「으하하! 」
퍼퍼펑! 콰쾅!
비명 소리와 살기 가득한 웃음소리,
그리고 무언가 으깨지는 듯한 둔중한 소성이 한꺼번에 일었다.
염라철장의 창날 같은 장력은 흑백쌍살의 가슴과 머리통을 그대로 박
살내 버린 것이다.
콰당탕! 퍼퍽!
머리가 박살난 백면살의 거구가 뇌수를 흩뿌리며 나뒹굴고,
뒤이어 가슴이 뭉개진 흑면살이 주르르 십여 걸음 밀려났다가 고꾸라
졌다.
「으으음! 」
과도하게 공력을 사용한 염라철장도 안색이 창백해져서 비틀거렸다.
「흐흐흐! 네놈들 스스로 자초한 횡액이니 나를 원망하지 마라! 」
염라철장은 사방에 널브러진 네 구의 시체를 돌아보며 음산하게 웃었
다.
「하여간 내 아들이 애비의 유서를 읽지 않아도 되었으니 다행이로
군! 」
염라철장은 득의해하며 지친 몸을 석동 쪽으로 돌렸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카하하하항! 」
돌연 멀리서 누군가의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 웃음소리는 마치 살기에 찬 원숭이가 우짖는 듯 귀에 거슬리고 섬
뜩한 것이었다.
(원숭이 울음소리 같은 광소성(狂笑聲)! 혹시 그자란 말인가?)
막 석동으로 들어가려던 염라철장의 안색이 밀납같이 창백해졌다.
그 웃음소리는 그의 숙적인 한 명 흉한의 것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염라철장이 숨을 죽이며 긴장할 때,
「카카카! 이곳에서 어떤 망종이 본좌의 단잠을 깨웠느냐? 」
화라라락!
불쾌한 악취가 풍기며 허공에서 한 줄기 인영이 공 튕겨지듯 뚝 떨어
져 내렸다.
그자는 온몸에 털이 숭숭 돋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인이었다.
검붉은 털이 온몸을 뒤덮은 데다가 팔이 무릎 아래까지 뻗쳐 마치 한
마리 거대한 원숭이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었다.
「아! 」
「어! 네놈은! 」
서로를 발견한 두 사람은 동시에 한걸음씩 후퇴했다.
「염라철장 곡강! 」
「무협제원(巫峽啼猿)! 」
염라철장의 안색이 더할 수 없이 침중해졌다.
나타난 자는 바로 그가 떠올렸던 그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 무협제원!
이것이 그자의 이름이었다.
염라철장이 당금 정파백도의 절정고수들인 칠절(七絶)에 속한다면
무협제원은 흑도무림의 최고수들인 육요(六妖)에 드는 절정고수였
다.
사실 그자는 인간의 어머니와 성성이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변종
이었다.
무협 근처의 산골 마을에 홀로 살던 여자를 수백 년 묵은 원숭이가
무산(巫山)에서 내려와 겁탈한 결과 무협제원이 태어난 것이다.
본래 성성이의 피를 이어받은 때문인지 포악한 성격인데다가 기연
으로 어떤 상고기인의 비급을 얻어 일신에 고절한 무공까지 지니게
되었다.
그자는 자신의 힘과 무공을 믿고 무협 일대에서 갖은 횡포를 부렸었
다.
그러다가 십년 전 염라철장의 일장을 맞고 무협삼협의 격랑에 떨어
져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
「낄낄낄! 지난 십 년 동안 발바닥이 닳도록 찾아다녀도 못 찾겠더
니만.... 정작 만나려니까 쉽게 만나게 되는구나 곡가야! 」
원숭이처럼 생긴 노인, 무협제원은 얼굴을 굳혀 음산하고 무서운 표
정을 지으며 괴소를 터뜨렸다.
「클클! 십년 전 일장의 빚을 갚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네가 지니고
있는 보물까지 취득할 수 있게 되었구나. 」
그자의 말에 염라철장은 내심 흠칫했으나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넌 오늘도 십년 전 일장의 빚을 갚지 못할 것이다, 원숭이놈! 하물
며 내게는 네게 줄 보물 따위도 없다. 」
「크크! 나를 세 살 먹은 어린애로 아느냐? 」
무협제원은 야수같이 눈을 희번덕이며 누런 이빨을 드러냈다.
「네가 용문(龍門) 천불동(千佛洞)의 어느 석실에서 무림쌍보 중 하
나인 금강옥액을 얻었음을 알고 있다! 순순히 금강옥액을 내놓지 않
으면 오늘 네놈을 염라대왕 앞으로 보내 버리겠다. 」
무협제원의 말에 염라철장은 이를 부득 갈았다.
「금강옥액이 내 몸에 있지도 않지만 설사 있다 해도 네놈에게 주어
무림에 해를 끼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
「크카카카카……! 」
그러자 무협제원은 갑자기 징그러운 괴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너무나 징그러워 듣는 사람의 모골을 송연하게 했다.
사실 그것은 보통의 웃음소리가 아니었다.
― 신원탈백소(神猿奪魄笑)!
바로 웃음소리로 사람의 혼을 빼앗는다는 무협제원의 독문마공인 것
이다.
「으핫하하……! 」
염라철장도 황급히 내공을 극한까지 돋우어 앙천광소를 터뜨려 상대
방의 징그러운 괴소에 맞섰다.
「킬킬킬! 」
하지만 무협제원의 징그러운 괴소는 염라철장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눌리지 않고 점점 더 높아만 갔다.
(이…… 이놈의 내공이 십년 전보다 훨씬 강해졌구나!)
염라철장은 무협제원의 괴소에 내장이 온통 진탕되는 것을 느끼고 안
색이 이지러졌다.
음공으로는 무협제원을 상대할 수 없음을 깨달은 염라철장은 웃음을
멈추고 급히 고함을 질렀다.
「무협제원! 음공으로는 쉽게 승부가 나지 않으니 그만 중지하자. 」
무협제원이 차가운 코웃음을 날렸다.
「주둥아리 닥쳐라! 이번에 놓치면 두 번 다시 네 놈을 붙잡을 수 없
게 될 터! 오늘 기필코 승부를 내고 말겠다. 」
염라철장도 침중하게 외쳤다.
「열흘 후 황산 시신봉에서 보자! 반드시 약속을 지킬 테니 오늘은
그만 헤어지자. 」
「헛소리말고 내 초식이나 받아봐라! 」
꽈르르릉!
무협제원은 염라철장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긴 팔을 맹렬히 휘둘러
왔다.
보통 사람보다 두 배는 긴 그자의 팔이 휘둘러지자 광풍이 휘몰아치
며 두 줄기 강맹무비한 잠경이 염라철장을 휩쓸어왔다.
「오냐! 끝장을 내자! 」
좋게 끝나기는 틀렸음을 깨달은 염라철장도 즉시 진기를 극한까지
돋우어 양 손바닥을 밖으로 뒤집었다.
퍼퍼펑! 꽈르르릉!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이 울려 퍼지고 모래 기둥이 공중으로 십여 장
이나 치솟았다.
우두둑! 콰득!
직후 두 사람의 네 팔이 그대로 얽혀 버렸다.
원래 무협제원의 진력은 내향성(內向性)이고 염라철장의 진력은 외
향성(外向性)이다.
그 때문에 일단 피차의 팔이 한데 얽히자 어느 쪽도 감히 먼저 공격
을 철회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상대방의 내공이 봇물 터지듯 흘러들어와 내장을 박살내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별수없이 두 사람은 서로 맞붙어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내공을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두 숙적은 마치 사이좋은 친구처럼 마주 팔짱을 낀 채 꼼짝 않고 서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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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금강옥액(金剛玉液)의 기연(奇緣)
그렇게 한 시진 남짓이 지났을 때,
「으음! 여기가 어디지? 」
석동 안에 누워 있던 소년 막불범이 신음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내가 왜 이런 곳에....! 」
정신을 차린 막불범은 자신이 석동 안의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음을
발견하고 만면에 곤혹의 빛을 가득 머금었다.
그는 석동 입구에서 밝은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 그는 자신의 품속이 묵직함을 느끼고 갸웃했다.
(품속에 무엇이 들었지?)
그는 생각을 굴리며 품속에 손을 넣어 보았다.
그러자 품 속에서 하나의 술 호로와 종이쪽지가 나왔다.
(이게 다 뭘까?)
막불범은 호로와 종이 조각을 번갈아보며 갸웃했다.
그러다가 그것을 든 채 석동 밖으로 걸어나갔다.
한데,
「시.... 시체! 」
석동 밖으로 나서던 막불범은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놀라 질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석동 입구 주위에는 선혈로 물들어 얼굴을 분간하기
어려운 네 구의 시체와,
두 명의 마치 죽은 사람 같은 노인이 서로 팔이 엉킨 채 서 있었다.
「으으으! 」
막불범은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러다가,
「모.... 모두 죽었네! 」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이들은 다 누구지? 왜 이런 곳에서 죽어 있는 건가?)
막불범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여섯 사람 중 염라철장이 자신을 납치해 온 장본인이라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었다.
(이 호로는 또 누가 내 품속에 넣어 준 걸까?)
그는 고개를 숙여 호로를 내려다보았다.
츠으으!
그의 수중에 들린 호로는 마침 떠오른 햇살을 받아서 눈부신 금광을
발산하여 매우 아름다웠다.
(크기가 주먹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호로가 왜 이렇게 무겁지?)
막불범은 곤혹을 금치 못했다.
그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마치 쇳덩이처럼 무거웠던 것이다.
(열어 보자!)
막불범은 호기심에 꼭 닫혀 있는 호로의 뚜껑을 뽑아 보았다.
순간 호로 안에서 한 줄기 기이한 향기가 흘러 나와 코를 찔렀다.
「야! 향기 좋다! 」
막불범은 코를 킁킁대며 안을 들여다 보았다.
원래 호로 속에는 수정같이 맑은 즙액(汁液)이 절반 가량 담겨져 있
었다.
막불범이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니 아주 향기롭고 달콤하였다.
꼬르륵!
그러자 그의 뱃속에서 식충들이 아우성을 쳤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어제 저녁 이후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것이
다.
「뭔지 모르지만 독은 아니겠지! 」
배고픔과 갈증을 참지 못한 그는 아무 생각없이 호로를 거꾸로 들어
들이켰다.
꿀꺽! 꿀꺽!
호로 속에 든 반병의 즙액은 삽시에 그의 목구멍을 타넘어 들어갔다.
― 금강옥액(金剛玉液)!
뼈를 무쇠보다도 강인하게 만들어 주고 백독이 불침하게 해준다는 희
대의 영약 금강옥액이 그렇게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끄억!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
막불범은 아무것도 모르고 배를 두드렸다.
겨우 반병의 즙액을 마신 것에 불과했지만 왠지 배가 든든했다.
마치 한상 잘차린 성찬을 포식한 느낌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즙액이 뱃속으로 흘러들어가는 순간부터 왠지 온몸이 스멀스멀 더워
지는 것이 아닌가?
「어! 왜 갑자기 이렇게 더워지지? 」
막불범은 헉헉대며 상체를 벗어붙였다.
그러자 조금 열기가 가시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우르르!
뱃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는 것 같더니 형언할 수 없는 뜨
거운 열기가 폭발하듯 솟구치는 것이 아닌가?
「아이쿠! 이게 독이었구나! 」
막불범은 불속에 던져진 것 같은 열기에 휩싸여 떼굴떼굴 구르며 비
명을 질렀다.
한번 치솟은 열기는 걷잡을 수 없이 그의 내부를 휩쓸고 다녔다.
「아아악! 」
막불범은 내장이 온통 숯덩이가 되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까
마득히 정신을 잃었다.
츠츠츠!
정신을 잃은 막불범의 온몸에서는 매캐한 연기가 치솟았다.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검푸른 연기가 그의 전신 팔만 사천 모공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 검푸른 연기에 노출된 주위의 초목들이 삽시에 시들어 버리기 시
작했다.
그 연기는 바로 막불범의 몸속에 쌓여 있던 노폐물이 타들어가며 내
는 독장이었던 것이다.
금강옥액!
바로 이 희세 영약의 조화인 것이다.
본래 금강옥액을 복용하면 온몸의 노폐물이 연소되어 처음 세상에 태
어날 때와 같은 상태, 즉 원영지체(元瓔之體)가 된다.
온몸의 경락이 막힘 없이 뚫려 아무리 오랫동안 내공을 써도 지치지
않으며,
피부와 골격이 더할 수 없이 강인해져서 어떤 외부의 타격에도 상처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막불범은 금강옥액의 효능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
하고 있었다.
본래 금강옥액의 효능을 극대화시키려면 복용 즉시 운공을 하거나 내
가고수가 추궁과혈로 도와 줘야만 한다.
막불범은 그 같은 두 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막불범은 모친의 뱃속에 있을 때 한 가지 사악한 술법(術法)에 노출되
어 원영지기(元瓔之氣)가 크게 훼손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남달리 허약해진 것이며,
나이 이십을 채우지 못하고 요절할 운명이었다.
그 때문에 막불범은 희세영약 금강옥액으로도 금강불괴지신(金剛不
壞之身)은 되지 못했다.
대신 모친의 뱃속에 있을 때 손상되었던 원영지기가 금강옥액으로 대
체되어 타고난 고질(痼疾)은 완쾌되기에 이르렀다.
금강옥액의 효능은 비단 고질을 치료해준 것뿐만이 아니었다.
우두둑! 우둑!
기절한 막불범의 전신 골격이 엇갈리는 소리가 나며 그의 몸이 쑥쑥
자라는 것이 아닌가?
이내 여리고 병약하던 막불범의 몸은 순식간에 튼튼하고 강건하게 변
모했다.
본래 나이보다 한두 살 어리게 보였던 그의 체격은 어느덧 또래의 누
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건장해진 것이다.
투둑! 투둑!
막불범이 걸친 의복이 여기저기 튿어져 나갔다.
몸이 갑자기 자라나 꽉 끼어 버린 때문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휴우! 내가 죽지 않다니....! 」
막불범은 길게 한숨을 쉬며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막불범은 왠지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운 것을 느꼈다.
(이상하네! 내가 마신 것은 분명 독이었을 텐데 어째서 몸이 이리 가
뿐한 것일까?)
막불범은 갸웃하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
찌직!
그가 몸을 일으키는 대로 바짓가랑이가 북 찢겨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 내 몸이....! 」
비로소 자신의 몸이 삽시간에 커 버린 것을 알아챈 막불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인한 근육으로 뭉쳐진 팔다리,
껑충 커 버린 키,
한번 발을 구르면 머리끝이 구름에까지라도 닿을 듯한 기분이었다.
(내 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온몸을 살피며 어리둥절해하던 막불범의 얼굴이 문득 붉어졌다.
찢어진 바짓가랑이 사이,
전에는 못보던 무엇이 털렁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흡사 담장에 매달려 있던 작은 수세미같은 크기의 살덩이!
(내.... 내 찌찌가 언제 이렇게 커졌지?)
막불범은 멍하니 자신의 남성의 상징을 내려다보았다.
이완되었음에도 다섯 치 가까이나 되는 그것은 아무리 봐도 어린아
이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위쪽의 불두덩에도 짙은 음영(陰影)이 드리워져 있
었다.
금강옥액은 병약한 소년에 불과하던 막불범을 삽시에 충분히 사내
구실을 할 수 있는 성인남성으로 탈바꿈시켜 버린 것이다.
「쑥스럽네! 뭔가 가릴 게 있어야겠어! 」
막불범은 쓴웃음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문득 그런 그의 시야로 한 장의 종이 조각이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염라철장이 금강옥액의 호로와 함께 그의 품에 넣어 준
쪽지였다.
(뭐라고 글이 씌어져 있는 것 같은데....!)
시력이 몇 배로 좋아진 막불범은 쪽지 위에 급히 갈겨쓴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그 쪽지 위에는 과연 다음과 같은 글이 급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아들아! 네가 생부로 알고 있는 지금의 부친은 진짜
네 부친이 아니다. 하지만 너의 모친은 너를 낳아 준 생모가 틀림없
다. 자식을 낳고도 지금껏 만나지도 못했으니 나의 운명이 기구하기
도 하구나.
혈육의 원수를 갚고 싶으면 전포(田袍)를 찾아가 물어 보아라. 그러
나 무학을 대성하기 전엔 절대 혈검산장으로 돌아가선 안된다.>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그리고 쪽지의 맨 끝에는 손바닥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무.... 무슨 소린가? 설마 이 글이 내게 남겨진 것이란 말인가?)
쪽지에 적힌 글은 막불범의 잔잔한 마음에 세찬 파문을 일으키게 했
다.
그는 잠시 멍청히 서 있었다.
그런 그의 뇌리로 숱한 상념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철이 들었을 때 그는 부친인 금사혈검 막운비에게 무공을 가르쳐 달
라고 했다가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또 언젠가는 호원무사들이 무예를 연마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다 들
켜 죽도록 얻어맞은 적도 있었다.
부친은 왜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공을 배
우려 하면 무섭게 치도곤을 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궁금하여 그는 모친인 한경파(韓瓊芭)에게 이유를 물어 보
았었다.
하지만 모친 역시 언제나 그를 차갑게 대하기만 할 뿐 다른 모친처럼
자상한 빛은 조금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럼 나는 사생아이고 어머니는 지금의 부친에게 개가했든지 아니
면 강제로 납치된 것인가?)
막불범의 마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졌다.
그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무공을 대성하기 전에는 돌아가지 말라
는 글이 마음 깊이 사무쳤다.
그는 어릴 때부터 형님과 누나들에게 온갖 경멸을 받으며 자랐다.
또한 산장의 식솔들에게까지도 냉대를 받았으며,
심지어 모친까지도 그에게 매우 냉담했다.
때문에 그는 항상 외롭게 지냈으며 심지어 자신의 출생을 원망까지
도 했다.
그는 천하에서 유명한 혈검산장에서 냉대를 받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절로 어둡고 말이 없는 소년으로 자라게 된 것이다.
그는 입술을 깨문 채 생각에 잠기며 두 노인이 깨어나면 전후 물어
보기로 생각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두 노인은 깨어날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가을의 새벽 공기는 매우 차갑다.
해서 막불범은 햇볕을 쬐기 위해 양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츠츠츠!
그는 금강옥액이 들었던 호로의 표면에서 무지갯빛 같은 보광이 발
산하는 것을 발견하고 눈에 이채를 띠었다.
「무슨 그림 같은데....! 」
그는 호로의 무늬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호로에서 뻗치는 황금빛 서광은 흡사 아름다운 산수화(山水畵)를 보
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보려고 햇살에 비추자 산수화 같은 경물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착각이었을까?)
그는 호로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다시 닫아 두었던 호로의 뚜껑을 뽑고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우직!
헌데 그 순간 쇠로 만들어진 호로의 뚜껑이 그대로 우그러드는 것이
아닌가?
「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
막불범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금강옥액을 복용한 덕분에 손 힘이 전보다 수십
배 강해져 있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훌륭한 세공품을 망쳤네! 」
막불범은 아쉬워하며 뚜껑을 바로 펴려 했다.
본래 그 뚜껑은 속이 텅 비어 있었다.
헌데 막불범은 그것을 편다는 것이 이번에도 너무 손에 힘이 들어가
고 말았다.
빠직!
뚜껑은 펴지기는커녕 그대로 두 조각으로 뽀개지고 말았다.
「이.... 이런! 」
당황하던 막불범은 다음 순간 흠칫 놀랐다.
펄럭!
뽀개진 뚜껑 속에서 작은 종이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 종이는 또 뭐지?)
그는 의아해하며 그 종이를 주워 펼쳐보았다.
종이에 적힌 글씨는 너무 작아 보통 사람이라면 읽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금강옥액으로 시력이 수십 배로 증폭된 막불범도 온 정신을 집중해
서야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청구단서(靑丘丹書)는 무학지보(武學之寶)로써 거대한 비석(碑石)
밑에 숨겨져 있다. 오직 인연이 닿는 자만이 얻으리라!>
「청.... 청구단서! 이것은 청구단서의 장보도(藏寶圖)로구나! 」
글을 읽은 막불범은 뛸 듯이 기뻐했다.
어쨌든 그도 무가인 혈검산장에서 자란 탓에 청구단서와 금강옥액의
전설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마신 이 호로 속의 즙액이 바로 금강옥액이 아닐
까?)
막불범은 어렴풋이 짐작되는 바가 있어 새삼 호로를 들여다보았다.
(청구단서를 얻어 그 안의 신공절학을 익히면 내 일신에 얽힌 비밀을
푸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막불범은 매우 기뻐하며 염라철장의 유서인 종이쪽지와 호로에서 나
온 종이를 같이 접어 품속에 간직하였다.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그가 철이 들 때부터 열망하면서도 이루지 못
한 희망이었다.
헌데 이제 무림 최고의 비전인 청구단서를 찾을 단서를 쥐게 되자 날
아갈 듯이 기뻤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염라철장과 무협제원이 아직까지 미동인 것에
생각이 미쳤다.
(혹시 이 두 분 어른은 선 채로 죽은 것이 아닐까?)
그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가까이 다가가 두 노인을 살펴보았다.
막불범이 다가가 노인들을 흔들어 보았지만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
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두 노인의 얼굴빛이 바닥에 쓰러진 시체의 얼굴
빛과 똑같았다.
그리고 콧김을 살펴보아도 역시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아! 이미 오래 전에 숨이 끊겼구나! 」
막불범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대범하다 해도 그는 아직 열 네살의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
이었다.
(달.... 달아나자!)
그는 소름이 오싹 끼쳐 그대로 몸을 돌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거기 섰거라! 」
갑자기 등뒤에서 사나운 고함 소리가 들려 오는 게 아닌가?
「히익! 」
막불범은 죽은 사람이 강시로 변해 쫓아오는 줄 알고 더욱 사력을 다
해 질주했다.
화라락!
하지만 소리를 지른 그 사람의 신법은 쾌첩하기 짝이 없어 단숨에 막
불범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앞을 막아 섰다.
「소장주! 진정하시오! 속하외다! 」
막불범을 가로막아선 자가 급히 막불범을 안심시켰다.
그자는 얼굴의 절반이 시커먼 구레나룻에 덮인 건장한 장한이었다.
「아! 이 아저씨였군요! 」
상대방을 알아본 막불범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자는 바로 혈검산장의 무사들 중 한 명인 규염장(糾髥掌) 이위(李
衛)라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위도 처음에는 막불범을 못 알아봤었다.
가냘프던 그의 체격이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건장한 청년처럼 변했
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장해진 몸과 달리 막불범의 아직 순진하고 치기가 어린 얼
굴은 전혀 변하지 않아서 추격하는 동안에 그가 바로 자신이 찾던 소
한데 옛날 거랑 내용이 약간 틀리더군요..
특히 야한 장면에서의 대사가 많이 수정 삭제 되었구요..
무엇보다 그짤막한 대사 한마디가 더 우리를 자극했다고 봅니다.
저번에 삭제한 것을 다시 올립니다.
문제가 되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괴인동맹(怪人同盟)(1996년 2월 20일 발행)
제1권
신동출세(神童出世) 편
서장
단서(丹書), 옥액(玉液)의 전설
― 단서(丹書)!
― 옥액(玉液)!
그 두 가지의 이름은 지난 백여 년의 세월 동안 강호무림에 숱한 풍파
를 불러일으켰다.
한 권의 비급과 한 병의 신비한 영약!
붉은 표지의 비급(丹書)에는 천하무적의 신공절학이 수록되어 있으며,
옥액(玉液)은 만독불침(萬毒不浸)과 금강불괴(金剛不壞)를 만들어 준
다!
칼끝에 생명을 건 무림인들이 그 이름을 들을 때 입 안의 침이 마르고
혈관의 피가 들끓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청구단서(靑丘丹書)!>
<금강옥액(金剛玉液)!>
숱한 인명을 앗아가고 수많은 가문, 문파를 파멸로 몰아넣은 무림의
이대기보!
이것들은 백년무림,
아니 고금을 통틀어서도 가장 강했던 것으로 믿어지는 한 명 기인이
남긴 것이다.
― 무성(武聖) 청구상인(靑丘上人)!
저 달마(達磨)와 장삼풍(張三豊)에 비견되어 무성이란 지고의 칭호로
불리는 일대기인!
그의 숱한 기행과 업적은 한 수레의 글로도 다 기록하기 어려울 정도
이거니와,
특이한 것은 그가 중원무림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청구(靑丘)!
달리 근역(槿域), 동이(東夷)라고도 불리는 고려국(高麗國)이 그의 출
신인 것이다.
비록 지금은 쇠락하여 자그마한 반도(半島)에 도사린 옹색한 민족이
되었으되,
아득한 상고시대 이래로 그들 동이족이 화북(華北)과 막북(漠北) 일대
를 누천년간 지배했음은 잘 알려진 바다.
동이족은 무예를 숭상하고 하늘의 이치를 따라 살았던 위대한 정복민
족이다.
중원의 숱한 병법과 병서, 무예가 바로 그들 동이족에게서 유래했다.
태공망(太公望),
노자(老子),
공자(孔子),
황석공(黃石公)이 모두 동이족의 가계(家系)를 잇고 있음은 주지의 사
실이며,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저술인 금해병서(金海兵書)를 얻기 위해 당태종
이세민(李世珉)이 온갖 책략과 술수를 다했음은 당서(唐書)에도 전하
는 바다.
누천년을 내려온 동이족 전래 무맥의 최후 전승자!
그가 바로 청구상인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백오십여 년 전,
청구상인은 동이족이 잃어버린 세 가지의 보물,
창세삼보(創世三寶)를 찾아 중원으로 들어왔었다.
그리고 사해오호를 주유하며 숱한 기인명숙들과 조우하였는바,
누구도 청구상인의 수하에서 삼 초를 버티지 못하였다.
그렇게 일 갑자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청구상인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역만리 중원 땅에 노구를 누이게 된다.
청구상인이 우화등선(羽化登仙)한 곳이 어딘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청구상인이 자신의 고향인 청구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확실하
다.
당연히 그의 신공절학이 담긴 단서와 옥액도 중원의 어딘가에 남아 있
음이 분명하다.
― 청구단서(靑丘丹書)를 찾아라! 천하를 얻게 되리라!
― 금강옥액(金剛玉液)을 얻어라! 죽음조차 이길 수 있으리라!
강호무림이 발칵 뒤집힌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정사,
흑백을 불문하고 모든 강호인들이 명산대천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단서와 옥액,
아니 그중 하나만 얻어도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개인은 개인대로,
문파는 문파대로 사력을 다해 청구상인의 유택(幽宅)을 찾으려 혈안
이 되었다.
그 와중에 숱한 피보라가 일고 비극이 명멸했다.
누가 무림쌍보(武林雙寶)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는 소문이 돌기만 하
면 전무림인들이 그를 습격했다.
어떤 천하고수라도 전무림인을 상대로 싸워서야 살아날 수 없는 법!
수만 명의 생명이 억울하게 죽어 갔고 수백의 문파와 가문이 무림도
상에서 지워졌다.
어떤 자는 이런 세태를 빌미로 평소의 원한을 갚기도 했다.
자신의 적이 무림쌍보를 얻었다는 소문만 흘리면 거의 틀림없이 그
적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음모와 살육의 광란(狂亂)!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며 중원무림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그제서야 무림쌍보가 일으킨 미증유의 혈겁은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숱한 희생과 유혈 끝에 강호인들도 이제는 청구이보에 대한 미련에서
점차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어언 백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도 무림인들은 단서, 옥액이란 단어를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한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욕심과 집착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기에....!
제1장 우연(偶然)한 납치극拉致劇
한 칸의 밀실.
「제... 제발! 저는 아기를 갖고 있어요! 」
화려하게 치장된 실내로 필사적으로 애원하는 여인의 음성이 흘렀다.
밀실 중앙에 놓인 커다란 침대,
지금 한 명의 여인이 절망의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나이는 이십대 초반 정도,
해맑은 피부와 섬세한 이목구비를 지닌 미소부(美少婦),
하지만 그녀의 입술은 백지장처럼 하얘져있고 커다란 봉목에는 절망
의 눈물이 샘물처럼 솟고 있었다.
그녀가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얇은 속옷하나,
눈같이 희고 가녀린 두 팔은 머리 위로 쳐들려진 채 침대 양쪽 모서
리에 묶여있었다.
한눈에도 그녀는 회임한 상태였다.
「제발...! 」
임부는 하체를 오므리려 애쓰며 누군가에게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흐흐! 곧 끝난다! 태아는 해치지 않을테니 걱정마라! 」
침대 발치에서 건장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반사적으로 사내 쪽을 돌아보던 미소부는 진저리를 쳤다.
그자는 벌거벗은 알몸의 사내였다.
무술로 단련된 건장한 체격,
「흐윽! 」
그자 쪽을 보던 미소부는 다음순간 공포와 절망으로 진저리를 쳤다.
벌거벗은 사내의 하체에 불끈 솟은 거대한 육괴(肉塊)!
뱀같은 핏줄이 툭툭 불거진 그것은 한껏 성이 난 채 천장을 향해 건
들거리고 있었다.
「흐흐! 」
사내는 사음한 음소를 흘리며 침대로 올라와 여인의 하체로 접근했
다.
「안돼요! 제발! 」
여인은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하체를 오무리려 했다.
하지만,
찌직!
사내의 거친 손길에 여인의 속옷자락이 길게 찢겨나갔다.
그러자 드러나는 박속같이 새하얀 아랫도리,
여인은 속옷속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속옷이 찢기는 순간 은밀한 아랫도리의 모습이 그대로 드
러났다.
눈부신 허벅지 윗쪽으로 유달리 도독히 살이 오른 둔덕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데 특이하게도 그곳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백옥 덩이같이 새하얀 그 두덩이에는 그저 옅은 솜털이 살풋 덮여 있
을 뿐이었다.
「흐흐! 곡(曲)가 놈이 묘한 취향이 있었군! 마누라가 무모(無毛)라
니...!」
매끈한 흡사 백옥덩이를 섬세하게 깍아놓은 듯한 미소부의 특이한
중심부를 발견한 사내의 눈길이 한층 도착적인 흥분으로 물들었다.
「흐윽! 」
사내의 시선이 남과는 다른 자신의 그곳을 핥음을 느끼며 미소부는
수치로 몸을 떨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필사적으로 무릎을 오므려
사내의 음탕한 눈길에서 자신의 치부를 조금이라도 더 가리려 노력
해 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그 모습은 사내의 욕정을 한층 더 자극할 따름이었다.
매끈덩한 둔덕 아래로 깊이 파내려간 흠집의 윗부분이 살짝 엿보여
사내의 욕정을 배가시켰다.
「흐흐! 어디 네 보물을 좀 보자! 」
사내는 미소부의 무릎을 움켜쥐어 거칠게 좌우로 벌렸다.
「안돼! 아악!」
미소부의 절망에 찬 비명이 밀실을 울렸다.
그녀의 꼭 붙었던 무릎은 사내의 우악스런 손길에 너무도 무력하게
벌어지고 말았다.
두 다리가 한껏 벌려져 치부를 드러낸 여인의 하체,
가릴 것이 전혀 없는 그녀의 중심부는 그대로 사내의 시야에 노출되
었다.
미소부의 중심부는 한 올의 치모도 없어 흡사 순결한 소녀의 그곳같
았다.
하지만 지금 여인의 그곳은 한껏 부풀고 충혈되어 있어 흡사 숱한
사내를 경험한 창기의 그것처럼 음란해보였다.
만개한 그곳은 무르익은 석류처럼 원색적인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흐흐! 좋아! 너같이 특이한 계집은 처음이다! 」
사내가 헐떡이며 그녀의 벌려진 다리 사이로 무릎을 꿇었다.
민둥산 아래의 계곡으로 접근하는 사내의 얼굴,
「안...안돼! 아학! 」
미소부의 충격에 찬 비명이 밀실을 뒤흔들었다.
한껏 충혈되어 극도로 예민한 살점으로 사내의 거친 입김이 들이닥
친 것이다.
난무하는 혀와 입술,
물기젖은 야릇한 소음이 실내를 후끈 달구었다.
미소부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악물며 모진 고문을 견디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여린 살점에 가해지는 학대는 너무도 강렬한 것이었
다.
여체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작적으로 요동치고, 충혈된 꽃잎 사이
로는 진액이 홍수를 이루었다.
「흐윽! 으읍! 」
피가 나도록 악다문 입술 사이로는 숨넘어갈 듯한 흐느낌이 새어나
왔다.
퍼득! 퍼득!
사내의 머리가 일렁일 때마다 요분질 쳐대는 난창난창한 허리질,
활처럼 휘어져 금시라도 폭발할 뜻한 여체,
이윽고,
「하악! 제발! 제발 그만...! 」
여체가 마침내 더 견디지 못하고 자지러지는 비명을 토해내었다.
「흐흐! 난 또 네년이 돌같은 몸을 지녔는줄 알았다! 」
사내가 히죽이며 여체의 중심부에서 얼굴을 떼며 입가를 쓰윽 닦았
다.
난잡하게 벌어진 미소부의 하체 중심부는 사내의 타액과 여인 자신
의 진액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이어 사내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여체 위로 자신의 육중한 몸을
실었다.
「제...제발! 」
사내의 체중이 봉긋한 아랫배에 실리자 미소부는 퍼뜩 정신을 차리
며 애원했다.
「아기가...! 제발! 이런 짓 안돼요! 」
여인은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사내를 밀어내려했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사내는 잔인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곡(曲)가에게서 빼앗아 온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
「뭐…… 뭐라구요? 」
미소부는 언뜻 이해를 못한 듯 되물었다.
「흐흐! 본좌의 대공(大功)을 위해서 가장 음기가 왕성한 지금의
네 몸이 필요하단 말이다! 」
사내는 말하며 여체의 하문을 손가락으로 더듬어 벌리고는 그곳으로
자신의 터질 듯한 살덩이를 가져갔다.
「무…… 무공을 익히려 일부러 나를……! 」
뒤늦게 사내의 말뜻을 이해한 미소부의 입에서 절망적인 비명이 터
졌다.
「흐흐! 아는 것이 늦었다, 냉상영(冷祥英)! 」
사내는 음탕하게 말하며 거칠게 하체를 여체로 밀어붙였다.
「아아악! 」
불덩이같이 뜨거운 이물질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하체로 밀려듬
을 느끼며 여인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저... 저주한다! 」
여인은 자신의 몸 안 깊숙히 파고들어 맥동하는 이물질을 아프도록
느끼며 아득히 혼미의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흐흐! 이제 곧 나는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훼지경(不毁之
境)에 이를 것이다! 」
혼절한 여체 위에서 하체를 흔들어대며 사내는 득의의 괴소를 흘렸
다.
이어 그자는 무자비하게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세차게 치받을 때마다 정복당한 여체는 애처롭게 일렁거
릴 뿐이었다.
목불인견의 참극이 벌어진 밀실,
그로 인해 장차 천하가 혈겁으로 휩싸이게 될 줄은 그자도 미처 알
지 못하고 있었다.
* * *
― 종남산(終南山)!
중원의 중요한 도가성지(道家聖地) 중 하나인 종남산!
그 종남산은 지금 가을빛에 물들어 있다.
한없이 푸른 가을 하늘에는 두둥실 구름이 몇 점 떠가고 있었다.
만학천봉(萬壑千峯)은 색색의 단풍으로 물들어 있고,
종남산의 넉넉한 산록(山麓) 아래 펼쳐진 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
가 고개를 숙인 채 이따금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아름답게 율동하고
있다.
기기묘묘한 형상의 만인봉(萬人峯)을 병풍처럼 등지고 한 채의 웅장
한 장원이 서 있다.
<혈검산장(血劍山莊)>
성문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정문에는 금박이 화려한 편액이 걸려 있
었다.
붉게 칠해진 둥근 고리(輪)를 배경으로 쓰여진 글은 웅혼하고도 패도
적인 기상이 느껴진다.
혈검산장---!
그렇다!
이곳이 바로 강호에서 서패천(西覇天)으로 불리는 혈검산장이었다.
본래 당금 무림에는 사대흉장(四大兇莊), 또는 사패천(四覇天)이라
불리는 네 개의 강대한 가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혈검산장은 바로 그중 서패천으로 불리는 가문이다.
― 금사혈검(金蛇血劍) 막운비(莫雲飛)!
그가 서패천 혈검산장의 당대 주인이다.
막운비가 한 자루 기형(奇形)의 사형혈검(蛇形血劍)으로 펼치는 사
형검법(蛇形劍法)은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적수를 만나지 못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의 무공이 뛰어나다 해도 무림의 최절정고수들에
는 부족함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막운비가 이끄는 혈검산장의 위세는 섬서
(陝西), 감숙(甘肅) 등 중원의 서방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막운비의 탁월한 용인술(用人術)과 교묘한 심모원려(深謨遠
慮)의 결과였다.
― 막운비는 석자(三尺)의 검보다 세치(三寸)의 혀가 더 무섭다!
그 같은 비아냥이 공공연히 무림에 떠돌 정도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대놓고 막운비에게 시비를 걸지는 못한다.
그의 막하에는 구름 같은 고수, 달인들이 도사리고 있으며,
일단 막운비의 눈 밖에 난 자는 늘 비참한 최후를 당해 왔기 때문이
다.
저녁 무렵,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혈검산장이 자리한 종남산을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하하하! 」
「까르르! 」
혈검산장의 정문 앞에 펼쳐진 널찍한 공터에서는 여러 명의 아이들
이 재잘대며 놀고 있었다.
질 좋은 비단옷을 입은 아이,
허름한 베옷을 입은 아이,
일견해도 신분이 다른 아이들이 함께 뒤섞여 놀고 있는 것으로 보였
다.
하지만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사이에서야 신분의 고하는 큰 문제
도 아닐 것이다.
커다란 석사자 두 마리가 버티고 선 혈검산장의 정문 앞에는 네 명의
우락부락한 장한이 무료하게 서 있었다.
그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연신 하품을 해대
고 있었다.
그리고.
혈검산장의 무사들말고도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이 또 한 쌍 있
었다.
「……! 」
혈검산장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고목나무,
그 아래에는 언제부터인가 한명의 꾸부정한 노인이 앉아 뛰노는 아
이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는 오순 후반 정도,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가득하고 등은 구부정하게 굽어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길가다 지친 늙은 여행객이었다.
혈검산장이 무사들도 노인의 그 같은 행색에 그를 별로 유의하지 않
고 보아 넘겼다.
하나,
(틀림없다! 바로 저 아이다!)
고개를 움츠린 노인의 눈빛은 의외로 형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노인의 눈빛은 한 아이에게서 떠날 줄 모르고 있었다.
소년,
이제 십 사오 세쯤 되었을까?
일신에 깨끗한 비단옷을 입고 있으며 얼굴에 귀티가 흐르는 것이 한
눈에도 귀한 신분의 아이로 보였다.
하나 아깝게도 소년은 병색(病色)이 완연했다.
키도 작은 데다가 얼굴이 창백하고 팔다리가 빈약한 것이 바람이 조
금 세게 불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보였다.
그 때문에 소년은 원래 나이보다도 두 세살 어려 보였다.
「……! 」
소년은 아이들이 뛰노는 마당 한구석에 놓인 돌 위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신이 나서 겅중거리는 다른 아이들을 보는 소년의 눈에는 부러운 기
색이 가득했다.
(내가 상영(祥英)을 그 짐승에게 빼앗긴 것이 십 사 년 전의 일,
그때 상영은 뱃속에 아이를 갖고 있었지! 그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
다면 바로 저 나이일 것이다!)
소년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이 점점 형형해졌다.
가슴에 쓰린 기억이 있는 듯 노인의 나무껍질같은 안면이 파르르 경
련을 일으켰다.
(놈은 만삭인 상영을 납치해다가 짐승 같은 야욕을 채웠다. 저 아이
가 저렇게 병약한 것도 제 어미 뱃속에 들었을 때 모체가 난행을 당
한 결과일 것이다!)
노인의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물려졌다.
(복수를 하고 싶었으나.... 놈의 주위에는 지켜 주는 개들이 너무
많아 번번이 실패했었지! 이제 나도 복수는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피맺힌 한은 우리의 아들이 대신해 줄 것이다!)
노인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옆구리에 찬 물건을 꽉 움켜쥐었다.
― 호로(壺瀘)!
그것은 은은히 황금빛 서기가 나는 한 개의 술호로였다.
그것을 움켜쥔 노인의 깡마른 손에 핏줄이 불끈 돋았다.
(놈을 이길 만한 무공을 찾아 헤매던 노부는 천우신조로 이 금강옥액
(金剛玉液)을 얻게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내가 마셔서 무적 공력을
얻어 막운비 놈을 쳐죽이고 싶지만.... 이것은 바로 저 아이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
병색 완연한 소년을 보는 노인의 눈이 뜨거운 부성애로 물들었다.
헌데,
금강옥액이라니!
정녕 노인이 차고 있는 호로에 무림쌍보(武林雙寶) 중 하나인 금강
옥액이 들어 있단 말인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노인은 천하에 다시 없을 행운의 주인공이 아니
겠는가?
(내 아들을 금강신체(金剛神體)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로
하여금 네놈 막운비를 쳐죽이게 하리라!)
노인은 격동을 감추려는 듯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앗!
노인의 깡마른 몸이 돌연 용수철처럼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쐐액!
그의 몸은 마치 질풍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아이들이 놀고 있는 혈검
산장의 앞마당으로 날아들었다.
「어엇! 저 늙은이가....! 」
「무.... 무림인이었다! 」
무료하게 하품을 하고 있던 경호무사들이 질겁을 하며 몸을 일으켰고,
「가자! 」
파팟!
「악! 왜 이래요! 」
그 사이 단번에 마당을 가로지른 노인은 바위에 힘없이 걸터앉아있던
병색 완연한 소년을 병아리처럼 낚아챘다.
쐐액!
소년의 비명이 터지는 순간 그와 노인의 몸은 다시 허공으로 치솟고
있었다.
「불범(不凡) 도련님! 」
「셋째 도련님을 내려놔라! 」
혈검산장의 무사들이 악을 쓰며 달려왔다.
― 막불범(莫不凡)!
이것이 그 병색 짙은 소년의 이름이었다.
그는 바로 금사혈검 막운비의 다섯째 아들인 것이다.
「막운비 짐승에게 전해라! 나 곡강(曲姜)이 내 아들을 찾아간다고! 」
화라락!
노인은 한 마리 천마처럼 단숨에 혈검산장 우측의 송림을 뛰어넘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의 경신술은 너무나 신쾌하여 혈검산장의 무사들이 마당 중간으로
달려왔을 때는 이미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쫓.... 쫓아가자! 」
「총관께도 알려라! 삼공자가 납치되었다고! 」
한 명의 무사는 도로 장원 안으로 달려들어가고 나머지 셋은 이를 악
물고 노인이 사라진 곳으로 몸을 날렸다.
오래지 않아 혈검산장 안에서는 수백 명의 무사들이 놀란 메뚜기 떼
처럼 날아올라 노인이 사라진 곳으로 달려갔다.
마당에서는 갑자기 벌어진 일에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만이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 * *
쐐애액!
소년 막불범을 겨드랑이에 낀 노인은 질풍처럼 동쪽으로 날아갔다.
몇 개의 산과 개울이 순식간에 노인의 발 아래로 스쳐지나갔다.
소년은 그새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너무 놀란 데다가 병약한 몸이 자신을 안고 날아가는 노인의 엄청난
속도를 견디지 못한 때문이다.
(가엾은 녀석!)
노인은 달리면서도 소년을 측은한 눈으로 내려다보곤 했다.
(모두가 아비가 못나 네 어미를 막가 악적에게 빼앗긴 결과다! 하지만
걱정 마라! 금강옥액을 먹고 아비가 추궁과혈로 경락을 뚫어 주면 넌
하늘 아래에서 가장 강인한 육체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노인은 염두를 굴리면서도 쉬지 않고 발길을 옮겼다.
이미 백여 리를 달렸으나 노인의 발걸음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다.
혈검산장의 세력은 방대하기 이를 데 없다.
섬서, 산서성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는 안심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덧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그러나 노인의 발길은 늦춰질 줄 몰랐다.
노인은 밤이슬을 맞으며 다시 수십 개의 산과 강을 건넜다.
그 결과 다시 날이 밝아 아침이 되었을 때 어느덧 노인은 하북(河北)
성의 경계에 들어서 있었다.
「휴우! 이쯤이면 되겠군! 」
그제야 비로소 노인은 땀을 닦으며 걸음을 늦췄다.
(몇 번이나 방향을 틀었으니 쉽사리 쫓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노인은 자신이 지나온 곳을 흘깃 돌아보며 숲을 나섰다.
숲의 멀지 않은 곳에는 동서로 뻗혀있는 관도(官道)가 거대한 뱀처럼
길게 가로누워 있었다.
(이제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이 아이에게 금강옥액을 먹여 주면 된
다!)
노인은 소년 막불범을 소중히 안고 관도로 한걸음 들어섰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두두두!
돌연 뒤쪽에서 급박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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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속출(續出)하는 강적(强敵)들
말발굽 소리가 들리자 노인은 귀찮은 일을 피할 요량으로 길가로 물
러서 걸음을 옮겼다.
두두두!
이내 네 필의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노인을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날 알아보는 자가 없는 것 같군!)
노인은 내심 안도하며 땅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헌데 그 직후였다.
히히히힝!
「워워! 」
돌연 그를 지나쳤던 네 필의 말이 급격히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저놈들은……!)
슬쩍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던 노인의 안색이 일순 어두워졌다.
두두두!
그를 스쳐 지났던 말들이 천천히 그쪽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 말들 위에는 일견하기에도 무림인들로 보이는 네 명이 올라탄 채
형형한 눈빛으로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 필의 말들 중 맨 앞쪽의 갈색 말 위에는 우람한 체격의 백의노인
이 앉아 있다.
이 노인은 온몸이 백색 일색이었다.
머리도 희고 수염도 백설같이 희며 입고 있는 의복과 얼굴색도 분을
바른 듯이 하얬다.
츠으!
백면노인의 움푹 들어간 눈동자에선 연신 남색(藍色) 광망(光茫)이
번뜩이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백면노인 뒤쪽의 말에는 그와 정반대로 얼굴이 숯처럼 검은 흑면노
인이 타고 있다.
그자는 뼈를 발라 놓은 듯 깡마른 체격의 소유자인데 입고 있는 의복
도 먹물을 칠한 듯이 새까만 흑포였다.
만약 그의 눈동자에 약간의 흰빛 마저 없었다면 그저 한 덩이의 숯을
말 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였으리라.
「으핫핫! 이게 누구요? 이제 보니 고명하신 염라철장(閻羅鐵掌) 곡
노사(曲老師)시로군! 」
흑백의 두 노인 중 우람한 체격의 백면노인이 우렁찬 웃음을 터뜨렸
다.
순간 막불범을 납치한 노인, 염라철장 곡강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필 이런 때에 흑백쌍살을 만나게 되다니……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구나!)
― 흑백쌍살(黑白雙煞)!
흑백의 두 노인은 하락(河洛) 일대에서 악명이 높은 마두들로서 얼굴
색깔에 따라 각기 백면살(白面煞), 흑면살(黑面煞)이라 불린다.
사실 흑백쌍살이 제법 악명을 떨치고 있는 자들이긴 해도 염라철장
곡강이 보기에는 별 볼 일 없는 부류에 불과하다.
그것은 염라철장 곡강 자신이 무림에서도 이름이 쟁쟁한 강호칠절
(江湖七絶)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정파백도의 가장 뛰어난 일곱 기인을 일컬어 강호칠절이라 하는 바,
곡강은 불의와 사마외도를 보면 가차없이 살수를 써서 염라철장이라
는 무시무시한 별호를 얻게 된 인물이다.
평소의 염라철장 곡강이었다면 흑백쌍살을 만났어도 코방귀도 뀌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틀렸다.
실로 십사 년 만에 되찾은 아들과 함께인 것이다.
도저히 남과 어울려 싸울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바람대로 돌아가지만은 않았다.
「흐흐! 속담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십 년이란 긴 세
월이 흐른 지금 우리가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었구려. 정말 기쁘기
그지없소. 」
백면살이 노골적인 살기를 드러내며 음산하게 웃었다.
염라철장도 도리 없이 아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보니 흑백쌍살 형제분들이셨군. 보아하니 두 분은 지난날의
일장을 아직 잊지 못하고 다시금 고하(高下)를 가늠하고 싶으신 모
양인데.... 오늘은 노부가 급한 일이 있으니 열흘 후 황산(黃山) 시신
봉(始信峯)에서 만나 결판을 내는 것이 어떻겠소? 」
염라철장은 평소의 불같은 성질을 누르며 억지로 좋은 얼굴을 꾸며
보였다.
「그럴 필요 없소, 곡 노사! 」
그러나 얼굴이 검은 노인, 흑면살이 얼른 그의 말을 받았다.
「나 흑면살은 따로 날짜를 정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오. 오늘은 날씨
도 시원하여 손속을 교환하기에 더없이 좋은데 열흘 후에 고생해 가
며 험준한 황산을 올라갈 필요가 뭐 있겠소? 혹시 곡 대협은 황산에
명당 자리라도 잡아 두기라도 한 거요? 」
흑면살이 음험하게 웃으며 말했다.
(굴뚝에 빠진 쥐새끼 같은 놈이……!)
염라철장의 눈꼬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당년에 강호를 주름잡았던 이 살성은 평소 흑백쌍살 같은 자들은 눈
에 두지도 않았다.
그러나 목전의 형세는 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지 않은가?
그는 할 수 없이 입가에 비굴한 웃음을 머금었다.
「나는 오늘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당신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소.
이해하시오! 」
그의 말에 백면살은 염라철장의 옆구리에 끼여 있는 막불범을 힐끗
바라보았다.
「곡 대협은 천하에 대명이 자자한 인물인데 어찌하여 어린아이의
요혈을 찍어 데려가는 것이오? 설마 유괴한 아이는 아니겠지요? 」
그의 말에 흑면살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형님은 참 눈치도 없소. 저 어린놈은 아마도 곡 대협과 지금은 막
운비의 첩이 되어있는 냉상영(冷祥英)이란 계집 사이에서 태어난 사
생아일 게요! 」
「닥쳐라! 」
순간 염라철장이 눈을 부릅뜨며 노성을 질렀다.
「또 한 번 쓸데없는 주둥아리를 놀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
염라철장의 일갈에 흑면살이 흉흉한 표정으로 대꾸하려 할 때였다.
「흐하하! 가만두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거요? 」
흑백쌍살 뒤에 있던 한 명의 중년 장한이 큰소리로 웃어젖히며 말을
받았다.
휘릭!
그자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말 등에서 뛰어내렸다.
동시 어깨에서 길이가 세 자 가량 되는 강추(鋼錐)를 뽑아 휘저어 예
리한 파공성을 내며 앞으로 나섰다.
「곡 대협은 우리 형제를 안목에 두지도 않소? 」
염라철장은 그자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귀하의 얼굴은 생소한데 나 곡강이 언제 어디서 귀하에게 죄를 범
했소? 」
「시침떼지 마시오. 우리는 태호쌍걸(太湖雙傑) 황웅(黃雄), 황렬(黃
烈) 형제요. 당신이 우리 형제의 사형인 무영서생(無影書生)을 죽이
고도 무사할 줄 알았소? 」
「오! 당신들이 바로……! 」
염라철장도 비로소 그들이 누군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그의 강퍅한 얼굴에는 비웃음이 떠올랐다.
「흐흐! 무영서생이란 작자는 한밤중에 비구니들만 사는 절간 담을
넘어 들어가 못된 짓을 하던 중에 내 손에 걸려 죽었지! 설마 그 패륜
음적(悖倫淫賊)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겠지? 」
그가 비웃음을 흘릴 때였다.
「바로 그렇다! 」
투학!
사나운 함성과 함께 두 줄기 한광이 염라철장을 향해 엄습해 왔다.
황웅이 자신의 무기인 한 쌍의 강추를 느닷없이 무찔러낸 것이다.
염라철장도 황급히 오른손을 뻗어냈다. 창졸간에 취한 임기응변이었
다.
카카캉!
맑은 음향이 일어나며 황웅의 강추 두 개가 서로 맞부딪쳐 버렸다.
염라철장이 내뿜은 암경에 휘말려 버린 결과였다.
「큭! 」
황웅은 염라철장이 말하는 사이에 기습을 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손목
이 울리는 격통을 느끼고 비틀거리며 밀려나갔다.
염라철장의 공력이 이미 최상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는 결과였
다.
(무서운 늙은이!)
(과연 강호칠절의 일인답다!)
흑백쌍살과 황렬은 이 상황을 보고 내심 놀랐다.
「모두 함께 공격하자! 」
콰릉!
백면살이 일갈하며 먼저 장력을 뽑아내 염라철장을 후려쳤다.
「우우우! 」
화라락!
하지만 염라철장은 사나운 장소성을 터뜨리며 맹렬히 허공으로 치솟
았다.
「엇! 저 늙은이가! 」
「달아나다니……! 」
염라철장의 뜻밖의 행동에 네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염라철장은 어느 누구와 싸우든 절대 등을 보이지 않는 인물로 유명
했다.
헌데 뜻밖에도 그가 먼저 등을 보이고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네 사람이 깜짝 놀라는 사이 염라철장은 이미 숲 속으로 몸을 날려
사라진 후였다.
「싸움을 피하는 것을 보니 부상이라도 당한 모양이다! 」
「쫓아가자! 이 기회에 원한을 갚자! 」
화라락!
쐐애애액!
백면살의 호통 소리와 함께 네 사람은 동시에 몸을 날렸다.
다섯 사람은 쫓고 쫓기며 단번에 수십 리를 달렸다.
(빌어먹을……!)
웅이산의 험한 산중을 달리며 뒤를 돌아보던 염라철장은 이를 악물었
다.
아무래도 추격하는 네 사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네 사람과의 거리는 점차 단축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것은 염라철장이 밤새 달린 탓이었다.
철인이 아닌 이상 밤새 천여 리를 달리고도 정상일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염라철장은 지금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지칠 대로 지친 상태
였다.
(떨쳐 버릴 수 없다면 더 늦기 전에 결판을 낼 수밖에……!)
내심 결심한 그는 급히 자신이 달리고 있는 주변을 둘러봤다.
마침 멀지 않은 곳의 절벽 아래에 큼직한 동굴이 하나 뚫려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저곳이라면……!)
화라라락!
염라철장은 눈을 번뜩이며 즉시 그 산동(山洞)으로 뛰어들었다.
「으하하! 스스로 독 안에 뛰어드는구나! 」
뒤쪽에서 네 흉사(凶邪)의 흉악한 웃음소리가 급격히 가까워졌다.
(시간이 별로 없다! 혹시 모르니……!)
염라철장은 흘깃 밖을 돌아보며 급히 품에서 지필묵을 꺼냈다.
그리고는 작은 종이에 총총히 몇 자 글을 적어 내려갔다.
글을 다 쓴 그는 그 종이를 허리에 차고 있던 황금색 호로와 함께 막
불범의 품속에 쑤셔 넣어 주었다.
(부디 네가 그 글을 읽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저 네 놈의 생쥐가 내
적수는 못되지만 그래도 사람일이란 모르는 것이니……!)
염라철장은 뜨거운 부성애가 담긴 눈으로 소년 막불범을 내려다보았
다.
화라라락! 스스스스!
그때 옷깃이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네 명의 추적자가 동굴 밖에 날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은 염라철장의 기습이 두려워 아무도 감히 안으로 들어오
지 못했다.
「곡가야! 자라 새끼처럼 석동 안에 숨어서 기어 나오지 않겠다면 독
연기를 불어넣어 어린놈과 함께 죽여 버리겠다. 」
백면살이 동굴 안을 향해 흉갈을 터뜨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헛소리 마라! 」
푸학! 꽈르릉!
하나의 인영이 전광석화같이 석동 밖으로 튀어나오며 사나운 장력을
쏟아냈다.
물론 그는 염라철장이었다.
그의 쌍장이 휘둘러지자 세찬 광풍이 휘몰아치고 모래 먼지가 사방으
로 휘날렸다.
「헉! 」
「크악! 」
퍼퍽! 콰드득!
이 흉맹무비한 장풍에 황씨 형제의 상체가 피모래로 흩어져 일 장 밖
으로 날려 나갔다.
흑백쌍살은 그래도 고수답게 반응이 빨라 횡액을 면했으나 황씨 형제
는 여지없이 참살을 모면하지 못한 것이다.
「죽어랏! 비겁한 놈들! 」
염라철장은 여세를 몰아 급히 물러서는 흑백쌍살을 덮쳐 갔다.
꽈르릉!
염라철장의 쌍장이 검게 물들며 무시무시한 경풍의 소용돌이가 뻗쳐
나왔다.
그는 장기전으로 나가면 지친 자신이 불리함을 알고 있기에 처음부터
최강의 살수를 구사한 것이다.
「놈! 날뛰지 마라! 」
「받아랏! 」
흑백쌍살도 악을 쓰며 마주 장력을 내치며 염라철장의 장풍에 맞섰다.
하지만 염라철장이란 이름은 헛것이 아니었다.
파카카캉!
서로의 장력이 충돌하는 순간 염라철장의 장풍은 마치 무쇠의 창날처
럼 흑백쌍살의 장풍을 여지없이 꿰뚫고 들어갔다.
「안…… 안 돼! 」
「케에엑! 」
「으하하! 」
퍼퍼펑! 콰쾅!
비명 소리와 살기 가득한 웃음소리,
그리고 무언가 으깨지는 듯한 둔중한 소성이 한꺼번에 일었다.
염라철장의 창날 같은 장력은 흑백쌍살의 가슴과 머리통을 그대로 박
살내 버린 것이다.
콰당탕! 퍼퍽!
머리가 박살난 백면살의 거구가 뇌수를 흩뿌리며 나뒹굴고,
뒤이어 가슴이 뭉개진 흑면살이 주르르 십여 걸음 밀려났다가 고꾸라
졌다.
「으으음! 」
과도하게 공력을 사용한 염라철장도 안색이 창백해져서 비틀거렸다.
「흐흐흐! 네놈들 스스로 자초한 횡액이니 나를 원망하지 마라! 」
염라철장은 사방에 널브러진 네 구의 시체를 돌아보며 음산하게 웃었
다.
「하여간 내 아들이 애비의 유서를 읽지 않아도 되었으니 다행이로
군! 」
염라철장은 득의해하며 지친 몸을 석동 쪽으로 돌렸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카하하하항! 」
돌연 멀리서 누군가의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 웃음소리는 마치 살기에 찬 원숭이가 우짖는 듯 귀에 거슬리고 섬
뜩한 것이었다.
(원숭이 울음소리 같은 광소성(狂笑聲)! 혹시 그자란 말인가?)
막 석동으로 들어가려던 염라철장의 안색이 밀납같이 창백해졌다.
그 웃음소리는 그의 숙적인 한 명 흉한의 것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염라철장이 숨을 죽이며 긴장할 때,
「카카카! 이곳에서 어떤 망종이 본좌의 단잠을 깨웠느냐? 」
화라라락!
불쾌한 악취가 풍기며 허공에서 한 줄기 인영이 공 튕겨지듯 뚝 떨어
져 내렸다.
그자는 온몸에 털이 숭숭 돋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인이었다.
검붉은 털이 온몸을 뒤덮은 데다가 팔이 무릎 아래까지 뻗쳐 마치 한
마리 거대한 원숭이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었다.
「아! 」
「어! 네놈은! 」
서로를 발견한 두 사람은 동시에 한걸음씩 후퇴했다.
「염라철장 곡강! 」
「무협제원(巫峽啼猿)! 」
염라철장의 안색이 더할 수 없이 침중해졌다.
나타난 자는 바로 그가 떠올렸던 그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 무협제원!
이것이 그자의 이름이었다.
염라철장이 당금 정파백도의 절정고수들인 칠절(七絶)에 속한다면
무협제원은 흑도무림의 최고수들인 육요(六妖)에 드는 절정고수였
다.
사실 그자는 인간의 어머니와 성성이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변종
이었다.
무협 근처의 산골 마을에 홀로 살던 여자를 수백 년 묵은 원숭이가
무산(巫山)에서 내려와 겁탈한 결과 무협제원이 태어난 것이다.
본래 성성이의 피를 이어받은 때문인지 포악한 성격인데다가 기연
으로 어떤 상고기인의 비급을 얻어 일신에 고절한 무공까지 지니게
되었다.
그자는 자신의 힘과 무공을 믿고 무협 일대에서 갖은 횡포를 부렸었
다.
그러다가 십년 전 염라철장의 일장을 맞고 무협삼협의 격랑에 떨어
져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
「낄낄낄! 지난 십 년 동안 발바닥이 닳도록 찾아다녀도 못 찾겠더
니만.... 정작 만나려니까 쉽게 만나게 되는구나 곡가야! 」
원숭이처럼 생긴 노인, 무협제원은 얼굴을 굳혀 음산하고 무서운 표
정을 지으며 괴소를 터뜨렸다.
「클클! 십년 전 일장의 빚을 갚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네가 지니고
있는 보물까지 취득할 수 있게 되었구나. 」
그자의 말에 염라철장은 내심 흠칫했으나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넌 오늘도 십년 전 일장의 빚을 갚지 못할 것이다, 원숭이놈! 하물
며 내게는 네게 줄 보물 따위도 없다. 」
「크크! 나를 세 살 먹은 어린애로 아느냐? 」
무협제원은 야수같이 눈을 희번덕이며 누런 이빨을 드러냈다.
「네가 용문(龍門) 천불동(千佛洞)의 어느 석실에서 무림쌍보 중 하
나인 금강옥액을 얻었음을 알고 있다! 순순히 금강옥액을 내놓지 않
으면 오늘 네놈을 염라대왕 앞으로 보내 버리겠다. 」
무협제원의 말에 염라철장은 이를 부득 갈았다.
「금강옥액이 내 몸에 있지도 않지만 설사 있다 해도 네놈에게 주어
무림에 해를 끼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
「크카카카카……! 」
그러자 무협제원은 갑자기 징그러운 괴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너무나 징그러워 듣는 사람의 모골을 송연하게 했다.
사실 그것은 보통의 웃음소리가 아니었다.
― 신원탈백소(神猿奪魄笑)!
바로 웃음소리로 사람의 혼을 빼앗는다는 무협제원의 독문마공인 것
이다.
「으핫하하……! 」
염라철장도 황급히 내공을 극한까지 돋우어 앙천광소를 터뜨려 상대
방의 징그러운 괴소에 맞섰다.
「킬킬킬! 」
하지만 무협제원의 징그러운 괴소는 염라철장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눌리지 않고 점점 더 높아만 갔다.
(이…… 이놈의 내공이 십년 전보다 훨씬 강해졌구나!)
염라철장은 무협제원의 괴소에 내장이 온통 진탕되는 것을 느끼고 안
색이 이지러졌다.
음공으로는 무협제원을 상대할 수 없음을 깨달은 염라철장은 웃음을
멈추고 급히 고함을 질렀다.
「무협제원! 음공으로는 쉽게 승부가 나지 않으니 그만 중지하자. 」
무협제원이 차가운 코웃음을 날렸다.
「주둥아리 닥쳐라! 이번에 놓치면 두 번 다시 네 놈을 붙잡을 수 없
게 될 터! 오늘 기필코 승부를 내고 말겠다. 」
염라철장도 침중하게 외쳤다.
「열흘 후 황산 시신봉에서 보자! 반드시 약속을 지킬 테니 오늘은
그만 헤어지자. 」
「헛소리말고 내 초식이나 받아봐라! 」
꽈르르릉!
무협제원은 염라철장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긴 팔을 맹렬히 휘둘러
왔다.
보통 사람보다 두 배는 긴 그자의 팔이 휘둘러지자 광풍이 휘몰아치
며 두 줄기 강맹무비한 잠경이 염라철장을 휩쓸어왔다.
「오냐! 끝장을 내자! 」
좋게 끝나기는 틀렸음을 깨달은 염라철장도 즉시 진기를 극한까지
돋우어 양 손바닥을 밖으로 뒤집었다.
퍼퍼펑! 꽈르르릉!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이 울려 퍼지고 모래 기둥이 공중으로 십여 장
이나 치솟았다.
우두둑! 콰득!
직후 두 사람의 네 팔이 그대로 얽혀 버렸다.
원래 무협제원의 진력은 내향성(內向性)이고 염라철장의 진력은 외
향성(外向性)이다.
그 때문에 일단 피차의 팔이 한데 얽히자 어느 쪽도 감히 먼저 공격
을 철회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상대방의 내공이 봇물 터지듯 흘러들어와 내장을 박살내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별수없이 두 사람은 서로 맞붙어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내공을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두 숙적은 마치 사이좋은 친구처럼 마주 팔짱을 낀 채 꼼짝 않고 서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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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금강옥액(金剛玉液)의 기연(奇緣)
그렇게 한 시진 남짓이 지났을 때,
「으음! 여기가 어디지? 」
석동 안에 누워 있던 소년 막불범이 신음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내가 왜 이런 곳에....! 」
정신을 차린 막불범은 자신이 석동 안의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음을
발견하고 만면에 곤혹의 빛을 가득 머금었다.
그는 석동 입구에서 밝은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 그는 자신의 품속이 묵직함을 느끼고 갸웃했다.
(품속에 무엇이 들었지?)
그는 생각을 굴리며 품속에 손을 넣어 보았다.
그러자 품 속에서 하나의 술 호로와 종이쪽지가 나왔다.
(이게 다 뭘까?)
막불범은 호로와 종이 조각을 번갈아보며 갸웃했다.
그러다가 그것을 든 채 석동 밖으로 걸어나갔다.
한데,
「시.... 시체! 」
석동 밖으로 나서던 막불범은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놀라 질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석동 입구 주위에는 선혈로 물들어 얼굴을 분간하기
어려운 네 구의 시체와,
두 명의 마치 죽은 사람 같은 노인이 서로 팔이 엉킨 채 서 있었다.
「으으으! 」
막불범은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러다가,
「모.... 모두 죽었네! 」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이들은 다 누구지? 왜 이런 곳에서 죽어 있는 건가?)
막불범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여섯 사람 중 염라철장이 자신을 납치해 온 장본인이라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었다.
(이 호로는 또 누가 내 품속에 넣어 준 걸까?)
그는 고개를 숙여 호로를 내려다보았다.
츠으으!
그의 수중에 들린 호로는 마침 떠오른 햇살을 받아서 눈부신 금광을
발산하여 매우 아름다웠다.
(크기가 주먹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호로가 왜 이렇게 무겁지?)
막불범은 곤혹을 금치 못했다.
그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마치 쇳덩이처럼 무거웠던 것이다.
(열어 보자!)
막불범은 호기심에 꼭 닫혀 있는 호로의 뚜껑을 뽑아 보았다.
순간 호로 안에서 한 줄기 기이한 향기가 흘러 나와 코를 찔렀다.
「야! 향기 좋다! 」
막불범은 코를 킁킁대며 안을 들여다 보았다.
원래 호로 속에는 수정같이 맑은 즙액(汁液)이 절반 가량 담겨져 있
었다.
막불범이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니 아주 향기롭고 달콤하였다.
꼬르륵!
그러자 그의 뱃속에서 식충들이 아우성을 쳤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어제 저녁 이후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것이
다.
「뭔지 모르지만 독은 아니겠지! 」
배고픔과 갈증을 참지 못한 그는 아무 생각없이 호로를 거꾸로 들어
들이켰다.
꿀꺽! 꿀꺽!
호로 속에 든 반병의 즙액은 삽시에 그의 목구멍을 타넘어 들어갔다.
― 금강옥액(金剛玉液)!
뼈를 무쇠보다도 강인하게 만들어 주고 백독이 불침하게 해준다는 희
대의 영약 금강옥액이 그렇게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끄억!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
막불범은 아무것도 모르고 배를 두드렸다.
겨우 반병의 즙액을 마신 것에 불과했지만 왠지 배가 든든했다.
마치 한상 잘차린 성찬을 포식한 느낌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즙액이 뱃속으로 흘러들어가는 순간부터 왠지 온몸이 스멀스멀 더워
지는 것이 아닌가?
「어! 왜 갑자기 이렇게 더워지지? 」
막불범은 헉헉대며 상체를 벗어붙였다.
그러자 조금 열기가 가시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우르르!
뱃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는 것 같더니 형언할 수 없는 뜨
거운 열기가 폭발하듯 솟구치는 것이 아닌가?
「아이쿠! 이게 독이었구나! 」
막불범은 불속에 던져진 것 같은 열기에 휩싸여 떼굴떼굴 구르며 비
명을 질렀다.
한번 치솟은 열기는 걷잡을 수 없이 그의 내부를 휩쓸고 다녔다.
「아아악! 」
막불범은 내장이 온통 숯덩이가 되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까
마득히 정신을 잃었다.
츠츠츠!
정신을 잃은 막불범의 온몸에서는 매캐한 연기가 치솟았다.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검푸른 연기가 그의 전신 팔만 사천 모공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 검푸른 연기에 노출된 주위의 초목들이 삽시에 시들어 버리기 시
작했다.
그 연기는 바로 막불범의 몸속에 쌓여 있던 노폐물이 타들어가며 내
는 독장이었던 것이다.
금강옥액!
바로 이 희세 영약의 조화인 것이다.
본래 금강옥액을 복용하면 온몸의 노폐물이 연소되어 처음 세상에 태
어날 때와 같은 상태, 즉 원영지체(元瓔之體)가 된다.
온몸의 경락이 막힘 없이 뚫려 아무리 오랫동안 내공을 써도 지치지
않으며,
피부와 골격이 더할 수 없이 강인해져서 어떤 외부의 타격에도 상처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막불범은 금강옥액의 효능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
하고 있었다.
본래 금강옥액의 효능을 극대화시키려면 복용 즉시 운공을 하거나 내
가고수가 추궁과혈로 도와 줘야만 한다.
막불범은 그 같은 두 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막불범은 모친의 뱃속에 있을 때 한 가지 사악한 술법(術法)에 노출되
어 원영지기(元瓔之氣)가 크게 훼손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남달리 허약해진 것이며,
나이 이십을 채우지 못하고 요절할 운명이었다.
그 때문에 막불범은 희세영약 금강옥액으로도 금강불괴지신(金剛不
壞之身)은 되지 못했다.
대신 모친의 뱃속에 있을 때 손상되었던 원영지기가 금강옥액으로 대
체되어 타고난 고질(痼疾)은 완쾌되기에 이르렀다.
금강옥액의 효능은 비단 고질을 치료해준 것뿐만이 아니었다.
우두둑! 우둑!
기절한 막불범의 전신 골격이 엇갈리는 소리가 나며 그의 몸이 쑥쑥
자라는 것이 아닌가?
이내 여리고 병약하던 막불범의 몸은 순식간에 튼튼하고 강건하게 변
모했다.
본래 나이보다 한두 살 어리게 보였던 그의 체격은 어느덧 또래의 누
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건장해진 것이다.
투둑! 투둑!
막불범이 걸친 의복이 여기저기 튿어져 나갔다.
몸이 갑자기 자라나 꽉 끼어 버린 때문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휴우! 내가 죽지 않다니....! 」
막불범은 길게 한숨을 쉬며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막불범은 왠지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운 것을 느꼈다.
(이상하네! 내가 마신 것은 분명 독이었을 텐데 어째서 몸이 이리 가
뿐한 것일까?)
막불범은 갸웃하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
찌직!
그가 몸을 일으키는 대로 바짓가랑이가 북 찢겨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 내 몸이....! 」
비로소 자신의 몸이 삽시간에 커 버린 것을 알아챈 막불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인한 근육으로 뭉쳐진 팔다리,
껑충 커 버린 키,
한번 발을 구르면 머리끝이 구름에까지라도 닿을 듯한 기분이었다.
(내 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온몸을 살피며 어리둥절해하던 막불범의 얼굴이 문득 붉어졌다.
찢어진 바짓가랑이 사이,
전에는 못보던 무엇이 털렁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흡사 담장에 매달려 있던 작은 수세미같은 크기의 살덩이!
(내.... 내 찌찌가 언제 이렇게 커졌지?)
막불범은 멍하니 자신의 남성의 상징을 내려다보았다.
이완되었음에도 다섯 치 가까이나 되는 그것은 아무리 봐도 어린아
이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위쪽의 불두덩에도 짙은 음영(陰影)이 드리워져 있
었다.
금강옥액은 병약한 소년에 불과하던 막불범을 삽시에 충분히 사내
구실을 할 수 있는 성인남성으로 탈바꿈시켜 버린 것이다.
「쑥스럽네! 뭔가 가릴 게 있어야겠어! 」
막불범은 쓴웃음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문득 그런 그의 시야로 한 장의 종이 조각이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염라철장이 금강옥액의 호로와 함께 그의 품에 넣어 준
쪽지였다.
(뭐라고 글이 씌어져 있는 것 같은데....!)
시력이 몇 배로 좋아진 막불범은 쪽지 위에 급히 갈겨쓴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그 쪽지 위에는 과연 다음과 같은 글이 급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아들아! 네가 생부로 알고 있는 지금의 부친은 진짜
네 부친이 아니다. 하지만 너의 모친은 너를 낳아 준 생모가 틀림없
다. 자식을 낳고도 지금껏 만나지도 못했으니 나의 운명이 기구하기
도 하구나.
혈육의 원수를 갚고 싶으면 전포(田袍)를 찾아가 물어 보아라. 그러
나 무학을 대성하기 전엔 절대 혈검산장으로 돌아가선 안된다.>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그리고 쪽지의 맨 끝에는 손바닥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무.... 무슨 소린가? 설마 이 글이 내게 남겨진 것이란 말인가?)
쪽지에 적힌 글은 막불범의 잔잔한 마음에 세찬 파문을 일으키게 했
다.
그는 잠시 멍청히 서 있었다.
그런 그의 뇌리로 숱한 상념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철이 들었을 때 그는 부친인 금사혈검 막운비에게 무공을 가르쳐 달
라고 했다가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또 언젠가는 호원무사들이 무예를 연마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다 들
켜 죽도록 얻어맞은 적도 있었다.
부친은 왜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공을 배
우려 하면 무섭게 치도곤을 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궁금하여 그는 모친인 한경파(韓瓊芭)에게 이유를 물어 보
았었다.
하지만 모친 역시 언제나 그를 차갑게 대하기만 할 뿐 다른 모친처럼
자상한 빛은 조금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럼 나는 사생아이고 어머니는 지금의 부친에게 개가했든지 아니
면 강제로 납치된 것인가?)
막불범의 마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졌다.
그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무공을 대성하기 전에는 돌아가지 말라
는 글이 마음 깊이 사무쳤다.
그는 어릴 때부터 형님과 누나들에게 온갖 경멸을 받으며 자랐다.
또한 산장의 식솔들에게까지도 냉대를 받았으며,
심지어 모친까지도 그에게 매우 냉담했다.
때문에 그는 항상 외롭게 지냈으며 심지어 자신의 출생을 원망까지
도 했다.
그는 천하에서 유명한 혈검산장에서 냉대를 받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절로 어둡고 말이 없는 소년으로 자라게 된 것이다.
그는 입술을 깨문 채 생각에 잠기며 두 노인이 깨어나면 전후 물어
보기로 생각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두 노인은 깨어날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가을의 새벽 공기는 매우 차갑다.
해서 막불범은 햇볕을 쬐기 위해 양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츠츠츠!
그는 금강옥액이 들었던 호로의 표면에서 무지갯빛 같은 보광이 발
산하는 것을 발견하고 눈에 이채를 띠었다.
「무슨 그림 같은데....! 」
그는 호로의 무늬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호로에서 뻗치는 황금빛 서광은 흡사 아름다운 산수화(山水畵)를 보
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보려고 햇살에 비추자 산수화 같은 경물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착각이었을까?)
그는 호로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다시 닫아 두었던 호로의 뚜껑을 뽑고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우직!
헌데 그 순간 쇠로 만들어진 호로의 뚜껑이 그대로 우그러드는 것이
아닌가?
「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
막불범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금강옥액을 복용한 덕분에 손 힘이 전보다 수십
배 강해져 있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훌륭한 세공품을 망쳤네! 」
막불범은 아쉬워하며 뚜껑을 바로 펴려 했다.
본래 그 뚜껑은 속이 텅 비어 있었다.
헌데 막불범은 그것을 편다는 것이 이번에도 너무 손에 힘이 들어가
고 말았다.
빠직!
뚜껑은 펴지기는커녕 그대로 두 조각으로 뽀개지고 말았다.
「이.... 이런! 」
당황하던 막불범은 다음 순간 흠칫 놀랐다.
펄럭!
뽀개진 뚜껑 속에서 작은 종이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 종이는 또 뭐지?)
그는 의아해하며 그 종이를 주워 펼쳐보았다.
종이에 적힌 글씨는 너무 작아 보통 사람이라면 읽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금강옥액으로 시력이 수십 배로 증폭된 막불범도 온 정신을 집중해
서야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청구단서(靑丘丹書)는 무학지보(武學之寶)로써 거대한 비석(碑石)
밑에 숨겨져 있다. 오직 인연이 닿는 자만이 얻으리라!>
「청.... 청구단서! 이것은 청구단서의 장보도(藏寶圖)로구나! 」
글을 읽은 막불범은 뛸 듯이 기뻐했다.
어쨌든 그도 무가인 혈검산장에서 자란 탓에 청구단서와 금강옥액의
전설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마신 이 호로 속의 즙액이 바로 금강옥액이 아닐
까?)
막불범은 어렴풋이 짐작되는 바가 있어 새삼 호로를 들여다보았다.
(청구단서를 얻어 그 안의 신공절학을 익히면 내 일신에 얽힌 비밀을
푸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막불범은 매우 기뻐하며 염라철장의 유서인 종이쪽지와 호로에서 나
온 종이를 같이 접어 품속에 간직하였다.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그가 철이 들 때부터 열망하면서도 이루지 못
한 희망이었다.
헌데 이제 무림 최고의 비전인 청구단서를 찾을 단서를 쥐게 되자 날
아갈 듯이 기뻤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염라철장과 무협제원이 아직까지 미동인 것에
생각이 미쳤다.
(혹시 이 두 분 어른은 선 채로 죽은 것이 아닐까?)
그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가까이 다가가 두 노인을 살펴보았다.
막불범이 다가가 노인들을 흔들어 보았지만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
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두 노인의 얼굴빛이 바닥에 쓰러진 시체의 얼굴
빛과 똑같았다.
그리고 콧김을 살펴보아도 역시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아! 이미 오래 전에 숨이 끊겼구나! 」
막불범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대범하다 해도 그는 아직 열 네살의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
이었다.
(달.... 달아나자!)
그는 소름이 오싹 끼쳐 그대로 몸을 돌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거기 섰거라! 」
갑자기 등뒤에서 사나운 고함 소리가 들려 오는 게 아닌가?
「히익! 」
막불범은 죽은 사람이 강시로 변해 쫓아오는 줄 알고 더욱 사력을 다
해 질주했다.
화라락!
하지만 소리를 지른 그 사람의 신법은 쾌첩하기 짝이 없어 단숨에 막
불범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앞을 막아 섰다.
「소장주! 진정하시오! 속하외다! 」
막불범을 가로막아선 자가 급히 막불범을 안심시켰다.
그자는 얼굴의 절반이 시커먼 구레나룻에 덮인 건장한 장한이었다.
「아! 이 아저씨였군요! 」
상대방을 알아본 막불범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자는 바로 혈검산장의 무사들 중 한 명인 규염장(糾髥掌) 이위(李
衛)라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위도 처음에는 막불범을 못 알아봤었다.
가냘프던 그의 체격이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건장한 청년처럼 변했
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장해진 몸과 달리 막불범의 아직 순진하고 치기가 어린 얼
굴은 전혀 변하지 않아서 추격하는 동안에 그가 바로 자신이 찾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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