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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천년 4장

4章 신비한 동굴(洞窟)


얼마나 잤을까?
문득,

「 어엇! 」

이검한은 자신의 몸이 급격히 하강함을 느끼고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 여....... 여기는......! 」

정신을 차리며 급히 몸을 일으키는 이검한,
그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녁 무렵,어느 덧 시간은 흘러 황혼녘이었다.
주위의 하늘은 온통 핏빛노을로 선명하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짙은 홍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온통 홍일색(紅一色)으로 타오르는 하늘!
아!
손으로 만져질 듯 가깝게 보이는 하늘의 일몰(日沒)은 실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온통 짙붉은 비단휘장으로 뒤덮여 있는 듯한 하늘,그것은 가히 환상적인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한데,이검한은 그 화려한 장관에 마음을 빼앗길 여유가 없었다.

보라!
사막(沙漠)!
사방을 둘러봐도 주위는 온통 바다같이 막막한 일망무제의 사막이 아닌가?

「 신...... 신강(新講)까지 왔구나! 」

이검한은 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는 한눈에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알아차렸다.

──── 신강(新彊)!

그렇다.
이곳은 저 천산(天山)과 곤륜산맥이 자리한 대분지 신강(新彊)인 것이다.
동서 일만이천여 리,
남북으로 육천여 리에 이르는 거대한 탑리목대분지(塔里木大盆地)!
놀랍게도 철익신응은 그 신강으로 이검한을 태우고 날아온 것이었다.
세상에 알려지기로 신강은 온통 사막과 습지로 뒤덮인 볼모지라 했다.
하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신강의 탑리목대분지 곳곳에는 낙원같은 오아시스 지대와 호수를 낀 비옥한 곡
창지대가 산재해 있었다.
그 때문에,
고래로 신강 일대에는 수많은 소국가들이 흥망을 거듭해왔다.
특히,
한왕조 이래 신강은 서역(西域)과의 교역 통로인 비단길로서 대번영을 구가한적
도 있었다.
물론 신강의 곳곳에는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는 지독한 험지(險地)도 존재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유사지대(流砂地帶)!
맹독을 지닌 독충들이 우글거리는 대습지,
그리고,
원시 이래로 인간의 손길을 거부해온 대원시림 등등.......
천국(天國)과 지옥(地獄)이 공존하는 곳......
가히 인간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환경이 집약된 곳이 바로 신강이었다.
이검한은 발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광활한 사막을 내려다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 내...... 내가 신강에 오다니.......! 」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탄성을 발했다.
그와 함께,
그의 가슴은 알 수 없는 흥분으로 세차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고대사(古代史)에도 정통한 이검한,
그의 뇌리로 순식간으로 비단길을 의지하여 흥망해간 전설적인 왕국들의 고사
(古事)가 그림처럼 스쳐갔다.
비극적인 종말을 고한 누란(樓蘭) 왕국과 신강 역사상 최고의 미녀였다는 누란
왕후(樓蘭王后)의 전설........
누란왕후(樓蘭王后) ──── !
그녀는 그 뛰어난 미모 때문에 사랑하는 남편과 왕국을 잃었고 끝내는 여러 사내
들의 품을 전전하다가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고 전한다.
그 외에도,
서역 사상 최강의 제국을 이루었던 서하(西夏) 제국의 수도였던 흑수부(黑水部)!
북원(北元)의 후손인 달단 왕부의 전설......
그 전설과 신비의 이역이 바로 이검한의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벅찬 격동에 휩싸인 이검한,
그가 흥분에 몸을 떨고 있을 때였다.

구우 ──── !
철익신응은 웅혼한 울음을 토하며 급격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 저것은......! 」

이검한은 갑자기 눈 앞으로 확 다가드는 지면을 바라보며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돌연 그의 눈 앞으로 확 다가서는 천야만야한 절벽!
동서로 이어진 그 거대한 절벽은 아득하여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지반의 남쪽이 어떤 이유로 침몰하여 이루어진 절벽!
그 모습은 마치 수많은 창을 꽂아 놓은 듯이 보였다.
가히 일대장관이라 아니할 수 없는 장엄한 광경!

문득,
「 대...... 대과벽(大戈壁)이다! 」

이검한의 입에서 격동에 찬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 대과벽(大戈壁)!
그렇다.
갑자기 이검한의 앞에 나타난 천길단애는 대과벽이었다.
거대한 대과벽은 온통 저녁노을로 짙게 물들어 마치 피를 칠한 듯 시뻘겋게 보
였다.
이검한의 가슴은 세차게 뛰놀았다.

「 글로만 잃었던 대과벽에 실제로 오게 되다니......! 」

그는 흥분된 표정으로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하고도 장엄한 대과벽을 바라보았다.
그때,

화아......!
이검한을 태운 철익신응은 대과벽의 아랫쪽을 향해 돌진해갔다.

「 ......! 」

이검한은 흠칫했다.
그의 눈,
거대한 대과벽 사이로 갈라진 틈바구니가 보였다.

(신응이 나를 데려온 목적지가 바로 저기인 모양이군!)

과연,
철익신응은 대과벽 사이의 틈바구니를 향해 날아들었다.
틈바구니,그것은 뜻밖에도 하나의 동굴이었다.
동굴은 너무 은밀하여 허공에서 보지 않으면 전혀 그런 동굴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다시 말해,
새를 타고 살펴보기 전에는 발견할 수 없는 지극히 은밀한 동굴이었다.
화락!
이검한을 태운 철익신응은 동굴 안으로 날아갔다.
동굴 안은 의외로 넓었다.

「 여기에 무엇이 있다는 거지? 」

이검한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철익신응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렸
다.
그때,

구우......!
철익신응의 눈가로 눈물이 번지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이검한은 흠칫했다.

(저 안쪽에 신응과 관련있는 무엇인가가 있단 말인가?)

그는 검미를 모으며 동굴 안쪽을 주시했다.
하나,
주위가 워낙 어두워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가 없었다.
그때,

구우......!
철익신응이 낮게 울며 부리로 이검한의 등을 밀었다.

「 알았어, 들어가 볼게! 」

이검한은 철익신응의 뜻을 알고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우.......!
철익신응은 동굴 안으로 사라져가는 이검한의 뒷모습을 보며 만감이 서린 울음
소리를 발했다.
얼마나 걸어들어 갔을까?
이검한은 흠칫하며 멈추어섰다.

「 이런 곳에 석문(石門)이 있다니......! 」

입구로부터 백여 장 정도 전진해 들어온 이검한,
돌연 그의 앞을 하나의 육중한 석문이 가로막아 섰다.
검푸른 청강석(靑剛石)을 깎아 만든 석문,
그 석문 위에는 아주 괴이하고도 난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이검한은 두 눈을 빛냈다.

(저것은...... 과두문이다!)

석문 위에 적혀있는 난해한 문양,
그것은 갑골문자 이전에 쓰였던 상형문자인 과두문이었던 것이다.

「 현음동천(玄陰洞天). 」

글의 내용은 그러했다.
그리고,
그 아래로 고전체의 글이 또 몇자 적혀 있었다.
일견하기에 그 글은 현음동천(玄陰洞天)이란 글이 쓰인 뒤 아주 오랜 세월이 지
난 뒤에 첨가된 것인 듯했다.
고전체로 적힌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 이곳은 사천왕(四天王)의 영지로다. 난입자에게는 구족지멸의 강벌이
있으리라!

이검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 사천왕(四天王)? 천지의 사방에서 불법을 수호한다는 사대천왕(四大天王)을
가리키는 것일까? 」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조심스럽게 두 손을 석문에 대고 밀어보았다.
그러자,
그긍......!
의외로 쉽게 석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석문에 적힌 저주가 마음에 걸렸으나 이검한의 마음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강렬
한 호기심이 그것을 짓눌러 버렸다.

한데,
「 헉......! 」

막 석문을 열고 들어가던 이검한은 질겁했다.

「 시......시체......! 」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발하며 뒤로 비칠 물러났다.
시체,
그렇다.
석문의 안쪽에는 한 구의 시체가 이검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체는 마치 필사적으로 석문을 향해 기어오는 듯한 자세로 죽어 있었다.
깡마른 체격,
그리고,
그 위에 천 년 전에나 유행했음직한 고풍스런 전포를 걸치고 있었다.
엎드린 자세로 죽어있는 그자의 왼손,
한 자루 장도(長刀)가 굳게 움켜쥐어져 있었다.
장도의 길이는 네자 정도,
좁고 긴 도신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시퍼런 섬광을 흘리고 있었다.
한 눈에 그 장도는 금석을 흙베듯하는 신병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검한은 한참 만에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 이 사람은 누군데 이런 곳에 죽어 있단 말인가? 」

이어,
그는 조심스럽게 시체의 앞으로 다가갔다.

(혹시...... 이 사람은 석문에 쓰여있는 사천왕(四天王)의 한 사람이 아닐까?)

그는 검미를 모으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어,
그는 조심스럽게 시체의 왼손에 움켜쥐어진 보도를 빼내려 했다.
순간,
퍼──── 억!
우두둑!
갑자기 흑의인의 전신골격이 토막토막 부서져 내렸다.

「 아차! 」

이검한은 질겁하며 물러났다.
하나,
이미 늦은 후였다.

「 쯧, 부주의로 고인의 유체를 훼손시키다니.......! 」

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이어,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보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 파천황(破天荒)!
설화석고로 만들어진 칼의 손잡이에는 그같은 글이 음각되어 있었다.

「 마도(魔刀) 파천황(破天荒)이라! 섬뜩한 이름을 지닌 놈인데......! 」

이검한은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그 보도를 쥐고 있자니 절로 불끈불끈 파괴본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
가?

(마물(魔物)이다! 살기를 부추기다니......!)

이검한은 안면을 찡그리며 마도 파천황을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이어,
그는 흑의인의 신원을 밝힐만한 단서가 없을까 해서 시체를 뒤져보았다.
이내 그는 시체에서 두 가지를 찾아냈다.
처음 그가 찾아낸 것은 한권의 얇은 책자였다.

「 파천도보(破天刀譜). 」

비급의 표지에는 그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는 한 가지의 심법(心法)과 삼식(三式)의 도법(刀法)이 기록되어 있었다.

──── 파천황심결(破天荒心訣)!
──── 파천삼식(破天三式)!
파천황심결(破天荒心訣)────!

그것은 일신의 전내공을 응축시켰다가 한순간에 토해내는 내공심법이었다.
지극히 편협하고도 신랄한 심법,파천황심결을 운용하면 자기보다 두 배 강한 내
공을 지닌 고수와도 싸울 수 있다.
다만,
일순간에 내공을 토해낸 뒤에는 완전히 탈진해버려 운신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
다시 말해,
일거에 적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그 자신이 적의 독수에 견디지 못하게되는 것이
었다.

파천삼식(破天三式)────!

지극히 실전적인 삼초(三招)의 도법,
수비란 없고 오로지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공격적인 도법이 그것
이었다.
이검한은 냉약빙에게 여러 가지의 심오한 무공을 전수받았다.
하나,
이 파천삼식(破天三式)만큼 신랄하고 패도적인 무공은 듣보 보도 못했다.
이검한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절로 혀를 내둘렀다.

「 끔찍하군. 만일 이 도법이 실제로 존재했던 무공이라면 이 시체의 주인은 아
마 고금을 통틀어 열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일 것이다! 」
이어,
그는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파천도보(破天刀譜)에 이어 이검한이 발견한 것은 바닥을 긁어 새겨놓은 글씨
였다.
그것은 아마도 마도(魔刀) 파천황(破天荒)의 주인이 죽기전에 사력을 다해 기록
한 것인 듯했다.

「 마...... 녀(魔女), 모두가 그 계집의...... 어리석게도 우리 사천왕(四天王)은 그
계집에게 모든 양정(陽精)을 갈취당하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머지않아
천년내공을 지닌 마녀가...... 세상은 끝장...... 」

어렵게 판독한 글의 내용은 그러했다.
이검한은 앞 뒤 연결조차 불분명한 그 글을 내려다보며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무슨 소리지? 양정(陽精)을 갈취당하다니......? 또 어떻게 인간이 천년내공(千
年內功)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이어,
그는 자신도 모르게 동굴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순간,
──── 가지마라!
천년마녀(千年魔女)가 깨어난다......!

마도 파천황의 주인의 혼령이 이검한의 발길을 저지하며 휘감는 듯 했다.
하나,
이검한의 왕성한 호기심은 그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얼마나 걸어 들어갔을까?
이검한은 비로소 멈추어 섰다.

「 대...... 대단하다! 」

그는 전면을 주시하며 경악의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그의 앞,
하나의 널찍한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한데,
동굴의 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광장 안은 대낮처럼 환하게 밝았다.
그 이유는 광장의 곳곳에 박혀 있는 야명주 때문이었다.
아!
실로 놀라웠다.
드넓은 지하광장.
그 전체는 마치 하나의 대전처럼 꾸며져 있지 않은가?
그곳에는 갖가지의 화려한 가재도구들이 완비되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가재도구들의 태반이 휘황하게 번쩍이는 금은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
다.
가히 황궁보고(皇宮寶庫)와도 같은 극치의 화려함,
그것은 보는 이의 입을 절로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
하나,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이 화려한 지하대전은 온통 난장판이 되어있지 않은가?
마치 이곳에서 한바탕 격전이 치뤄진 듯한 모습이었다.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가재도구들과 실내 장식품들,
그것의 대부분은 강력한 힘에 의해 부서지고 으깨어져 있었다.
이검한은 검미를 모으며 지하대전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의 두 눈이 번뜩 빛을 발했다.

(시체가 있네!)

그는 난장판으로 변해 있는 대전 한쪽에서 두 구의 시체를 발견한 것이었다.
한 구의 시체는 지하대전의 가운데 자리한 연못에 반쯤 몸을 담근 채 죽어 있었
다.
기이하게도 연못물에 잠긴 그 인물의 상체는 전혀 썩지 않은 모습이었다.
반면,
물 밖으로 드러나있는 그자의 하체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아마도 연못물은 희세의 영약인 듯했다.
시체의 옆,
그곳에는 한 개의 벽옥패가 떨어져 있었다.

「 유사지존령(流砂至尊令)! 」

벽옥패의 전면에는 그와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글 옆에는 생생한 용(龍)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벽옥패의 후면,
한 가지 심오한 구결이 적혀 있었다.

「 유사잠행심결(流砂潛行心訣). 」

구결의 제목은 그러했다.
아!
놀랍게도 그것은 흐르는 모래,
즉 유사(流砂) 속을 마음대로 헤집고 다닐 수 있는 심법이 아닌가?
한 번 빠지면 다시는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유사(流砂)였다.
그 죽음의 유사를 물처럼 헤집고 다닐 수 있는 비법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
각하지 못했었다.
두 번째 시체,
그것은 지하대전의 끝에 있었다.
그곳에는 어디론가 통하는 하나의 철문(鐵門)이 우뚝 세워져 있었다.
그 철문은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듯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문의 전혀 녹슬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것은 그 철문이 한철(寒鐵)로 만들어져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시체는 그 한철의 문앞에 우뚝 버티어선 채 죽어 있었다.
일신에 늑대가죽의 피의를 걸친 거한,
자세히 보니 그 거한의 가슴에는 한자루 기형검(奇形劍)이 관통해 있었다.
검의 양날에 삐죽삐죽 가시가 돋힌 장검,
그것은 낭아검(狼牙劍)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검이었다.
낭아검(狼牙劍)은 피의괴인의 가슴을 관통한 채 한철문에 꽂혀 있었다.
한철로 주조된 철문을 꿰뚫은 것으로 보아 그 낭아검은 보통의 낭아검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피의괴인은 스스로의 몸을 낭아검으로 찔러 철문에 고정시킨 듯했다.
마치 죽어서라도 철문을 지키겠다는 듯이,
피의괴인의 오른 손,
한 자루의 짧은 뿔피리가 움켜쥐어져 있었다.
이검한은 현기어린 눈을 빛내며 피의인을 주시했다.

(이 사람이 철익신응의 주인일지도 모른다.)

그의 시선은 피의인의 손에 들린 뿔피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그 뿔피리가 뭇 조류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신기임을 알아본 것이었
다.
이검한은 미간을 모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분이 죽어서도 지키려 한 것이 무엇일까?)

그는 호기심어린 눈을 빛내며 철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시체 옆의 철문,
그 위에는 빽빽한 글이 적혀 있었다.

「 걸음을 돌려라, 인연자여! 그대의 호기심이 자칫 팔황(八荒)을 피로 물들일 수
도 있음이라. 」

철문의 글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은 피의인이 죽기전에 새겨놓은 글이었다.

「 ......! 」

이검한은 눈을 빛내며 계속 글을 읽어내려갔다.

────어리석게도 우리 사천왕(四天王)은 죽기 전에야 그 요녀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현음마모(玄陰魔母)의 유물로 우리를 이곳 현음동천(玄陰洞天)으로 유
인한 요부, 그녀는 놀랍게도 이미 죽었다고 알려진 누란왕후(樓蘭王后) 흑요설
(黑妖雪)이었던 것이다.

* * *

「 누란왕후! 」

이검한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터뜨렸다.

──── 누란왕후(樓蘭王后) 흑요설(黑妖雪)!

그녀가 누구인가?
저 전설의 왕국 누란의 마지막 왕후,
신강 일대에서는 아직도 그녀를 고금제일미인(古今第一美人)으로 추앙하고 있
었다.
하나,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 했던가?
누란왕후 흑요설(黑妖雪)은 그 아름다운 용모 때문에 비극적인 일생을 살아야만
했다.
그녀는 열세살의 어린 나이로 누란왕의 눈에 들어 누란왕후(樓蘭王后)의 고귀한
신분이 되었다.
하나,
그녀가 십구세 되던 해,그녀의 남편은 흑요설의 미모를 욕심낸 자에 의해 피살 당
하고 말았다.
살인자는 다름 아닌 누란왕의 친동생이었다.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그 자
는 왕위 뿐 아니라 형수인 왕후까지 차지해 버렸다.
누란왕후 흑요설,
그녀는 모진 목슴을 연명하기 위해 시동생이며 남편의 원수와 부부로 살아야만
했다.

하나,
그것으로 그녀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나이 이십 육세가 되던 해,두 번째 남편마저 타인에 의해 피살되고 말았
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을 살해한 인물은 전남편의 아들이었다.
흑요설에게는 전처소생의 아들이 한명 있었다.
바로 그자가 자신의 숙부를 살해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왕위를 되찾은 것이
었다.
하나,
그자 역시 짐승과 다름없는 사내였다.
그자는 숙부를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것에 그치지 않고 흑요설의 육체까지
유린한 것이었다.
그로써,
흑요설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시동생에게까지 몸을 허락한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양아들이기도 한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은 그러나 오래지않아 죄값을 치루었다.

──── 양모(養母)를 아내로 삼다니 용서할 수 없다!

그같은 핑계로 주위의 소국들이 연합하여 누란왕국을 쳐들어 온 것이었다.
결국,
누란왕은 양어머니의 육체를 즐기다가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그와함께,
화려하던 누란왕국도 한 순간에 잿더미로 화해 버렸다.
그 전란 중에 누란왕후 흑요설도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녀는 누란왕국을 멸망시킨 십삼개국 국왕들의 공동 전리품이 되고 말았으니..
....

누란의 보물을 각기 나눠가진 십삼국의 국왕들,
그자들은 누란왕후 흑요설의 처리 문제에 이르러서는 골치를 앓지 않을 수 없었
다.
당시 흑요설의 나이는 겨우 이십구세였다.
한창 완숙하여 물이 오른 그녀의 미모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십삼개국의 국왕들이 그런 그녀에 홀딱 반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자들은 흑요설에 대한 소유권을 놓고 서로 치열한 암투를 벌였다.
급기야 십삼연합국의 사이가 전쟁으로 비화될 판국이었다.
이에,
각국의 왕들은 한 가지 절충안을 짜내기에 이르렀다.
누란왕후 흑요설을 어느 한 곳에 감금해두고 돌아가며 그녀를 소유하기로 한 것
이었다.
실로 짐승만도 못한 만해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결국,
흑요설은 한곳 이궁(離宮)에 갇힌 채 십삼국왕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국 왕후(王后)의 고귀한 신분에서 욕정에 미친 사내들의 정액받이로 전락하게
된 흑요설,
그녀는 처음에는 반쯤 미쳐 버렸다.

하나,
오래지않아 그녀는 이성을 되찾았다.
그녀는 복수를 다짐했다.
그리고 기회를 엿보았다.
삼년(三年),
흑요설은 삼 년의 세월동안 십삼국왕의 노리개 노릇을 충실히 해냈다.
과연,
흑요설이 굴욕과 수치를 참으며 인내한 보람이 있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오래 먹다보면 질리게 되는 법,
하루도 쉬지 않고 흑요설의 육체를 탐닉하던 십삼국왕도 삼년이 지나자 차츰 발
길이 소원해졌다.
그때를 노려 흑요설은 마침내 이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자유의 몸이 된 흑요설,
그녀는 이곳 대과벽으로 달아났다.
그녀는 오래 전 누란왕국의 보물창고에서 한 장의 장보도를 본적이 있었다.
그 장보도는 현음마모(玄陰魔母)라는 전설적인 상고기인의 은거지를 담고 있었
다.
현음마모(玄陰魔母)는 호풍환우의 신술마저 지녔었다고 알려진 고금제일의 여
고수였다.
그녀의 절기만 얻으면 흑요설은 자신을 농락한 세상의 모든 사내들을 몰살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그녀는 현음마모의 은거지였던 이곳 현음동천(玄陰洞天)을 발견
하게 되었다.
하나......
현음동천의 어디에도 현음마모(玄陰魔母)의 유학은 남아있지 않았다.
흑요설이 현음동천에 들어왔을 때는 숱한 보물들 외에 무공과 관련된 유물은 단
한가지도 없었던 것이다.

흑요설은 절망에 빠졌다.
망연자실해져 있던 흑요설,
하나,
오래지않아 그녀는 복수를 할 수 있는 한가지 방도를 생각해냈다.
그녀에게는 남들이 지니지 못한 한가지 특이한 비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내들을 기쁘게 해주는 방중비법이었다.
그 방중비법 중에는 사내의 양기를 갈취하여 젊음을 유지하는 채양보음의 사술
도 포함되어 있었다.
곧 흑요설은 한가지 독계(毒計)를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즉,
몇 명의 고수를 이곳 현음동천으로 유인하여 자시의 미모로 그들의 내공을
갈취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네명의 고수가 선택되었다.

------ 황역사천왕(荒域四天王)!

당시 신강 일대를 주름잡던 최강의 무인들,
개개인이 한 가지 방면에서 가히 우내최강이랄 수 있는 자들이었다.

적양신마(赤陽神魔)------!
천랑신붕황(天狼神鵬皇)------!
유사지존(流砂至尊)------!
도마(刀魔) 파천(破天)------!

바로 이들이었다.
그들은 중원무림의 역대 어떤 고수에게도 뒤지지 않는 초절정의 고수들이었다.
당시 그들은 사분한 채 웅거하고 있었다.
흑요설은 그들을 현음마모의 장보도로 유인했다.
사 인은 동시에 현음동천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치열한 암투를 벌이며 그 와중에서도 흑요설과 함께 현음마
모의 유물을 찾았다.


------ 현음마모의 유물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그 계집이 노린 것은 다름아닌 우리 네 사람의 내공이었다.
그녀는 차례로 우리 사 인을 유혹했고 ...... 어리석게도 우리는 그 계집을 공유하
게 되었다.
그만큼 그 계집의 매력은 치명적이었다......-------------


회한과 원통함으로 가득찬 글,
그렇다.
사 인은 어느덧 흑요설의 마수에 빠져들고 만 것이었다.
사 인은 그 초절한 무공실력만큼 극도로 자존심이 강한 인물들이었다.
하나,그런 그들이건만 흑요설의 앞에서는 그저 무력한 수컷에 불과 했으니......
흑요설의 육체를 독점하기는커녕 그저 넷이서 흑요설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감지덕지할 뿐이었다.
어이없게도 그들은 매일매일 흑요설의 부름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꼴이 되고 말
았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그들은 깨닫게 되었다.
자신들의 내공 중 태반이 소멸되었음을......
그들은 아연실색했다.

하나,
이미 늦었다.
그들의 막강한 내공은 거의 흑요설이 갈취해간 것이었다.
가히 천년수위의 내공,그것이 모두 흑요설의 한몸으로 흘러든 것이었다.
아연함을 금치못한 사인,결국 그들은 흑요설을 협공하기에 이르렀다.
생사를 건 치열한 격전,
그 와중에 도마(刀魔) 파천(破天)과 유사지존(流砂至尊)이 흑요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또한,
천랑신붕황(天狼神鵬皇)과 적양신마(赤陽神魔)도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하나,
그 대가로 그들은 흑요설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회한에 찬글의 내용은 계속이어지고 있었다.


------ 그러나 비록 흑요설을 쓰러뜨리기는 했으나 완전히 죽이지는 못했다.
그 계집은 어느덧 우리 사인의 내공을 융합하여 반불사지체(半不死之體)를 이루
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인 중 최강자인 적양신마(赤陽神魔)가 최후의 수법으로 그 계집을 잠재우
겠다고 그 요녀의 침실로 들어갔으나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경고하거니와 그대는 발길을 돌릴지어다.
그 대가로 우리 사인의 절기를 그대에게 남기노니 그것으로 만족하기를 바란다.

천랑신붕황의 회한에 찬 글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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