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 천왕 32 (완결)
"빙하(氷河)의 마지막 후예 빙화정이 삼가 조사의 법신(法身)을
배견하나이다!"
빙화정! 그녀는 격앙된 표정으로 빙하여제가 앉았던 포단에 절을
올렸다.
빙하의 후예!
그렇다! 그녀의 가문인 막북 천빙곡은 바로 북해 빙하천궁의
후예였다.
빙하여제는 그러므로 빙화정에게는 아득한 선조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지옥혈황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빙화정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뚫어져라 봉황도를 주시하였다. 오랫 동안 멈추어 있던
그녀의 영민한 두뇌는 봉황도에 감추어진 봉황환희무의 오의를 빠르게
머리에 새겨넣었다.
이어 그녀는 조심스럽게 두 개의 내단을 집어들었다.
열화마종의 적룡열화주!
그것에는 화룡내단의 그것을 세 배 능가하는 열화지정이 응집되어
있었다.
빙하여제의 빙하단정!
천년빙정을 두 개 합친 것 같은 빙극지기를 그것은 지니고 있었다.
빙화정은 두 개의 단추를 들고 총총히 음양동부를 나섰다. 그녀는
할딱이며 막붕비에게로 달려갔다.
막붕비는 여전히 호숫가의 모래 위에 누워 있었다. 그의 기식이 더욱
엄엄해졌음을 느끼고 빙화정은 급히 적룡열화주를 그의 입 안에
넣어주었다.
적룡열화주!
그것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이내 막붕비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어 빙화단정도 그에게 복용시킨 빙화정은 떨리는 손길로 막붕비의
의복을 벗겼다.
막붕비는 이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발가숭이가 되었다.
빙화정은 그것을 보고 두 볼을 도화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는
어렵게 자신의 옷고름을 풀었다. 이내 그녀 역시 태어날 때의 모습이
되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에는 아직도 여기저기 유린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짐승같이 덮쳐들던 사내들......!
자신을 유린하던 발정한 숫컷들을 떠올리며 그녀의 젖꼭지가 파르르
떨렸다.
똑......!
한 방울 눈물이 그녀의 젖무덤 위로 굴렀다.
"더럽혀진 몸으로...... 당신에게 안기는 것을 용서하세요!"
빙화정은 슬픈 표정으로 막붕비의 몸 위로 자신을 뉘였다. 탄탄한
사내의 근육을 느끼며 그녀는 바르르 경련했다.
(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이 짐승 같은 짓을 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똑...... 똑......!
막붕비의 넓은 가슴으로 눈물이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섬섬옥수는 막붕비의 실체를 어루만져 그를 당당하고 위엄있게
만들었다.
"이것이...... 마지막이예요! 이후로 누구도 나의 몸을 안지 못할
거예요! 설사 당신이라 하더라도......"
빙화정은 막붕비의 허리 위에 예쁜 둔부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예민한 살점에 하늘로 치솟은 막붕비의 불기둥이 닿아졌다.
빙화정은 한 손으로 막붕비의 그것을 지탱한 채 서서히 둔부를
밑으로 내리눌렀다. 그녀의 몸이 갈라지며 하체의 빈 공간에 뜨거운
것이 그득 들어찼다.
"흐...... 윽......! 아아......"
빙화정은 막붕비의 그것이 그 어느 사내보다 웅대함을 몸으로 느끼며
처녀의 파괴 때와 같은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그것이 그녀의 새로운
탄생의 고통임을 그녀는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결코...... 다시는...... 흐윽!"
빙화정은 흐느끼며 서서히 아랫도리를 막붕비의 몸 위에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음양계(陰陽界).
저승과 이승의 경계인 그곳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 * *
미친 겁풍(劫風)이 돌연 천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뇌황(雷皇) 단목뇌황!
자부문의 그 일대효웅이 천하를 향해 미친 야망의 검을 뽑은
것이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신의 출신인 자부문을 궤멸시킨 일이었다.
자부신궁은 불탔고, 일만에 가까운 자부문도가 학살당했다.
이유는 단 두 가지였다.
뇌황 자신에 대한 배척, 그리고 삼십 년 전에 미려군을 자면천존
단목후에게 시집 보내도록 조종한 문중의 원로들의 죄, 그것이었다.
뇌황의 미친 검은 육친을 불문하고 피를 불렀다.
자부신궁을 불태운 그는 일로 무림정벌을 위한 대북벌행을 단행했다.
그의 휘하에는 삼십 년 간 준비된 무서운 악마군단이 집결한 상태였다.
일만 구의 철혈강시......!
일만 명의 살인전사들......!
숫자 미상의 뇌황친위군!
삼천의 독인......
그리고 십 년 전에 실종되었던 철사패왕 담철형과 천일제왕 하륜이
의지를 상실한 살인기계로 변하여 뇌황의 휘하에 나타났다. 그 두
절대종사가 가는 곳에는 아무것도 남아나지를 못했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단목뇌황 자신이었다.
천 년의 내공, 악마의 마검---- 흡혈마황검......!
지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장난치듯 우습게 파멸시키며 북상했다.
가장 먼저 화를 당한 것은 천남(天南)의 명가----
패왕보(覇王堡)였다.
패왕보를 모른다면 무림인이라고 할 수 없었다.
철장패왕(鐵掌覇王)!
환우십강의 일 인인 장법(掌法)의 달인!
그의 자랑스런 가문이 바로 패왕보였다. 그 패왕보가...... 한
시진이 못 되어 궤멸당했다.
패왕부 일만 식솔이 몰살당했고, 철장패왕은 철혈강시들에게 전신이
갈가리 찢겨져 죽었다.
그리고 사천당문!
그 암기의 명가가 패왕보에 이어 무참히 무너졌다.
당문의 가주이고 환우십강의 일 인인 삼안천수종 당천성!
그는 천일제왕 하륜에게 오른팔을 잃고 치욕의 도주를 해야만 했다.
뇌황과...... 그 무리들은 악마같이 잔인했다.
강남이 뇌황의 수중에 들어가는 데는 열흘이 안 걸렸다. 무엇도 그
미친 노도를 막지 못한 것이다.
장강(長江)!
그곳이 무림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전무림의 주력이 그곳에
전대하여 뇌황을 맞아싸웠다.
그 무렵의 뇌황은 강남에 뇌황성(雷皇城)이라는 야심의 성전을
세우고 그 성주의 위에 올랐다.
그의 왼쪽에는 물론 미려군이 있었다. 그는 미려군을 무림패왕의
아내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었고...... 지금 그것이 절반쯤
이루어진 것이다.
뇌황성에서 미려군과 열흘을 지낸 뇌황은 다시 북진했다. 이에 미리
준비하고 있던 무림연합군이 장강에서 그를 막았다.
항마천존의 대소림(大少林)......!
검왕(劍王) 극천의 제왕성(帝王城)!
풍뢰천강궁......
거기에 만겁마가(萬劫魔家), 태양도(太陽島), 철사천궁(鐵獅天宮)의
삼대가문의 주력이 가세했다.
그것은 무림이 생긴 이래 최강의 진용이었다.
그 옛날 천마황이 무림을 지배하던 시절이라도 그만한 군세를 감당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목뇌황은 코웃음을 치며 장강을 넘었다.
무서운 대격전이 그로써 시작되어 열흘을 끌었다.
뇌황은 아수라같이 무서웠으나 군웅들은 용감히 싸웠다.
그 중 가장 분전한 것은 대비암에서 내려온 한 명의 소녀였다.
그녀는 바로 역천사황의 후예---- 사황녀 북궁설이었다. 그녀의
전능대악마법신만이 뇌황의 흡혈마황검의 악마검기를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궁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무림연합군은 패했다.
패인의 주원인은 철사패왕과 천일제왕을 막지 못한데 있었다.
항마천존이 철사패왕을 맞아 분전했으나 전사했고...... 천강노조는
천일제왕의 태양신공에 실명했다.
무림연합군은 삼만의 희생을 내고 황하이북으로 패퇴해야만 했다.
만일, 그때 일단의 강자들이 나타나 뇌황성의 무리들을 막지
못했다면 무림연합군은 추격당해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제삼의 세력, 청해(靑海) 유리성에서 정모 수운월이 일만 명,
진법(陣法)의 명인들을 이끌고 서쪽에서 들어와 뇌황의 배후를 쳤다.
또한, 대막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장성을 넘었다. 달단여왕이 이끈
신강지옥성의 후예들, 대막여왕 철낭자와 대막십전이 이끈 대막무림의
명인들.
그러나 가장 무서웠던 것은 삼 인의 초고수였다.
태양여황 하란, 서시독후, 그리고 죽었다고 알려졌던 만겁마종
패무극이 그들이었다.
극적으로 뇌황은 저지당했다.
뇌황성은 황하를 넘으려다가 막대한 타격을 받고 물러나야만 했다.
천하제패를 눈앞에 둔 듯하던 단목뇌황은 처음으로 좌절을 당했던
것이다.
역시...... 세상은 넓었던 것이다.
그와 함께, 신비한 한쌍 여인들이 십만대산으로부터 북상하기
시작했다.
-뇌황(雷皇)은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두 여인은 그렇게 말하며 뇌황성의 세력을 배후에서부터 깨뜨리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신비쌍교(神秘雙嬌)라고 불리웠다.
신비쌍교는 파죽의 기세로 뇌황의 배후를 치며 북상해 왔다.
그녀들은 바로 실혼여제와 천마서시였다.
이내 강남에서 뇌황성의 세력은 축출되었다.
뇌황...... 단목뇌황!
그는 장강과 황하 사이...... 하서대회랑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로
고립되고 말았다.
하지만 뇌황은 태연했다. 그가 믿는 것은 수하나 세력이 아니라 그
자신이었다.
그래서 그는 태연히 낙양에서 휴식한 뒤 재차 황하를 넘을 준비를
했다.
이번만은......!
그 같은 생각은 뇌황 뿐만 아니라 무림연합군 측에서도 동시에 하고
있었다.
무림연합군은 서둘러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다.
결전의 장소는 금마궐로 결정되었다.
태양여황 하란!
그녀는 자신이 공들여 만든 그곳을 흔쾌히 무림연합군에 희사하여
사대천왕의 후예다운 배포를 보였다.
곧 금마궐은 강력히 보강되었다.
사천당문의 암기, 풍뢰천강궁의 무적화기...... 서시독후의
만종극독......!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희대의 재녀 정모 수운월이 기문진법으로
연결하여 금마궐을 죽음의 요새로 만들었다.
급변하는 정세...... 터질 듯이 팽배한 긴장이 무림도상을 뒤덮었다.
그러는 사이에 점점 겨울은 깊어가 원단(元旦)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원단을 기해 뇌황이 총공세를 시작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으며
정말로 뇌황(雷皇)은 황하변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과연 독패천하의 단목뇌황의 야심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아무도 점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신(神)이 아닌 이상은......!
* * *
연경(燕京)!
원단의 연경은 온통 백설이 뒤덮여 있었다. 그와 함께 매서운
북풍(北風)이 장성 너머에서 몰아쳐와 하늘과 땅을 온통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무서운 북풍도 인간의 모진 의지에는 어쩔 수가 없는
듯했다.
꾸역...... 꾸역......!
연경 일대에는 삭풍과 추위를 아랑곳 않고 수많은 인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제각기 비장한 신색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무리들, 그들의
형상은 각색이었으나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연경으로 모여드는 무리들이 다름아닌 무림인들이라는
점이었다.
은황장!
금마궐이 자리한 그 거대한 폐장은 인간으로 벽이 구축된 상태였다.
무려 십수만을 헤아리는 무림연합군의 정영들이 그곳에 배수의 진을
치고 있었다.
은황장은 한 마디로 철옹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곳을 깨뜨리려면
아무리 제왕 영락제라도 대명제국의 전군을 동원해야 가능할 것이다.
요새화된 은황장!
한 달 사이에 그곳을 동장철벽으로 구축한 것은 다름 아닌 청해의
여제왕 정모 수운월이었다.
그녀는 어린 아들 옥기룡과 함께 은황장에 왔다.
그 옥기룡은 막붕비가 청해에 들렀을 때 바람을 피운 결과로
태어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덕분에 정모는 뭇 여인들 중에서
나이를 떠나 최고서열을 차지할 수 있었다.
서시독후......!
그녀는 자기보다 연하인 정모에게 선선히 기득권을 양보하여
사실상의 막붕비의 정실로서의 관대한 포용력을 보였다.
옥기룡의 귀여운 재롱은 긴장의 연속인 은황장에 웃음과 여유를
주었다. 여인들은 이미 승부의 결과에는 초연한 상태였다.
그녀들의 유일한 근심은 그녀들의 정인인 막붕비가 벌써 두 달 넘게
소식이 없다는 점 뿐이었다.
한편, 뇌황성의 무리들은 결국 황하를 건너는데 성공했다.
황하의 방어를 맡은 것은 태양여황과 풍뢰천강궁이었다. 하지만,
태양여황은 화기를 충동원하여 뇌황성의 선단에 일대타격을 가한 뒤에
빠르게 황하에 물러나 뇌황성의 도강을 허락했다.
마지막 승부처인 금마궐에서의 일전을 위해 그녀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할 생각이었고, 그것은 곧 총군사인 정모의 뜻이기도 했다.
단목뇌황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차근차근 은황장 일대를 포위하며 좁혀 들어갔다. 이제 전무림의
모든 세력들이 십여 마장을 격한 채 양진영으로 갈라서 대치하게 된
것이다.
전무후무한 대전란(大戰亂)!
그 승부의 날은 하루하루 다가왔다. 그 날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전적으로 뇌황이 움켜쥐고 있었다.
* * *
은황장이 내려다 보이는 구릉.
최근에 구축된 진지 위로 한 명의 인물이 우뚝 서 있었다.
제왕의 곤룡포를 걸친 독비의 인물, 그의 한 손에는 칙칙한 핏빛의
마검이 들려 징징 마성을 토하고 있었다.
단목뇌황! 바로 그 자였다.
무림에 자신의 제국을 세우려는 대야심가.
츠---- 읏!
지금 그의 두 눈은 핏빛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이미
흡혈마황검의 마기에 심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의 행동은 오직
본능의 마성이 시키는대로 행할 뿐이었다.
그는 마인이 되어 버렸다.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다.
그가 그나마 아직 완전히 흡혈마황검에 지배당하지 않은 이유는 한
여인에 대한 지독한 사랑 때문이었다.
-천하를...... 당신에게 바치겠소!
삼십 년 전에 그는 한 여인의 발에 입을 맞추며 그렇게 말했었다. 그
여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그를 최후의 파멸에서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 여인은 바로 미려군이었다.
뇌황의 다른 모든 것이 위선이고 계략일지라도 그의 애정만은
진실이었다.
"저기에...... 천하를 움직이는 열 개의 머리통이 있소."
츠---- 읏!
뇌황은 흡혈마황검을 들어 금마궐을 가리켰다.
"......!"
그의 등 뒤에서는 깨끗한 백의를 걸친 미부인이 차일 속에 그림같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미려군이었다.
"만겁마종 패무극, 태양여황 하란, 철사자, 검왕 극천,
서시독후...... 사황녀, 사대천왕과 오패천의 후예를 자처하는 잔당들,
그 놈들의 열 개 머리통을 베는 순간 나의 당신에 대한 약속은
지켜지는 거요!"
츠...... 으......!
뇌황은 광기띤 눈으로 금마궐을 바라보았다.
"신첩은......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어요! 상공께서 천하무림과
싸워 저에 대한 애정이 진심임을 보이셨을 때...... 저는 모든 것을
얻은 거예요!"
미려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옥용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왜 이리 마음이 불안한가? 마치 저이를 다시 잃을 것만 같은 이
예감은 무엇이지?)
그녀의 아미가 곱게 찌푸러졌다.
그것을 힐끗 보고 뇌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시오! 나는 이미 절대(絶代)이고 무적(無敵)이오! 핫하!
거기에 그대의 가호가 방패로 둘러 있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소?"
그는 광소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시황! 명을 받으라!"
"예엣! 시황 대령했습니다!"
스---- 윽!
뒤쪽에서 한 명의 붕대로 전신을 감은 괴인이 날아들어 뇌황의 뒤에
부복했다. 그는 바로 시황이었다.
시황은 뇌황의 명을 받아 강시군단을 만든 자였다. 그 자신의 무공은
별것 없어도 휘하의 철혈강시군단 때문에 뇌황성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가 그였다.
"본좌는 단신으로 금마궐을 깨겠다! 그대는 전군을 지휘하여 은황장
전역에 대한 공세를 진행하라!"
뇌황이 여전히 금마궐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존명! 맡겨 주십시오!"
시황은 감격하여 오체복지했다.
"곧...... 돌아오리다!"
뇌황은 미려군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어,
"우우......!"
그는 사방 수십 리를 뒤흔드는 광소성과 함께 질풍같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푸---- 하악!
그는 놀랍게도 한 번 도약으로 삼백 장을 날아 은황장의 외곽 진지로
날아 들어갔다.
"어엇! 놈이다!"
"뇌황은 이미 마인이 된 자다! 막지 말고...... 길을 터라!"
무림연합군 쪽에서 일대소란이 일고, 그들은 황급히 물러나 뇌황에게
길을 터 주었다.
그것은 총군사 정모의 사전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콰콰쾅!
고오오......!
뇌황의 몸 주위로 열 겹의 핏빛 강기의 소용돌이가 이는 순간
견고하던 은황장의 성벽 오십여 장이 순간적으로 와해되어 버렸다.
"크으...... 인간이 아니다!"
"막...... 막지 마랏!"
십극천강......!
뇌황의 몸에서 일어난 십극천강의 소용돌이는 백 장 내에 있던
무림연합군의 정영 수백 명을 순식간에 피모래로 날려보냈다.
콰콰쾅!
우드드득!
"크하핫! 나를 막아 봐랏! 쥐새끼들......!"
뇌황은 광소를 지르며 금마궐의 입구로 폭사되어 갔다.
성벽도...... 기관함정도 전혀 쓸모가 없었다.
뇌황의 십극천강에 휘말리면 그것이 무엇이든 박살이 나서 허공으로
날아갔다.
콰콰쾅!
한 순간 그는 지면에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며 지하의 금마궐로 날아
들어갔다. 그 직후,
"와...... 쳐랏!"
"카카캇!"
은황장을 포위하고 있던 뇌황성의 전군이 노도같이 은황장의
외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유사에 다시 없을 대전란의 혈륜(血輪)이 이제 그 최후를 향해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 * *
뇌황성의 본진, 그곳에는 백여 명만이 남아 있었다.
시황과 미려군! 그리고 미려군을 지키기 위해 남은 뇌황성 최고의
고수들 백여 명이 그들이었다.
"흐흣...... 이 싸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시황은 겁풍에 휘말린 은황장을 보며 히죽 웃었다. 이어 그는 몸을
돌려 미려군에게 비굴한 자세로 포권해 보였다.
"그럼 속하는 이만 전장에 가보아야겠습니다, 주모(主母)!"
"휴! 그렇게 하세요."
미려군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후훗...... 시황! 어디로 간단 말씀이오? 그대가 묻힐 곳은 바로
이곳이거늘......"
한 소리 나직한 웃음소리가 허공에서 들렸다.
"누구냐?"
"......!"
시황과 미려군은 본능적으로 홱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보았다.
순간,
"억...... 네...... 네놈은?"
"......!"
시황과 미려군은 귀신을 본 듯 안색이 새하얘졌다.
스으으...... 휘르르......!
그들의 머리 위에는 언제인가 한쌍 남녀가 손을 맞잡은 채 둥실 떠
있었다.
신선일까?
남자는 훤칠한 체격에 타는 듯이 붉은 적포를 걸치고 있었다. 그
적포청년의 손을 꼬옥 쥐고 있는 여인은 우수 어린 용모에 눈같이 흰
궁장을 운치있게 걸치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허공에 둥실 떠 있는 두 남녀, 그들의 모습은 흡사
하계로 내려온 천신과 선녀만 같았다.
"지옥...... 혈황!"
쿵쿵쿵!
적포청년이 누구인지 알아본 시황(屍皇)이 정말 시체 같은 안색이
되어 비칠비칠 물러섰다.
-지옥혈황(地獄血皇)!
아아...... 그렇다.
적포청년은 바로 음양계에 떨어졌던 막붕비였다. 물론 그의 손을
꼬옥 쥐고 있는 백의미인은 혈관음 빙화정이었다. 그녀는 지금 아주
행복한 표정이었다.
본래 그녀는 봉황환희무로 막붕비를 살린 후에 자진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자신이 죽을 수 없는 몸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막붕비를 위해 십여 일 간 봉황환희무를 시전하던 그녀는 문득
자신의 뱃 속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기 시작한 것을 안 때문이다.
뭇 사내들에게 숱한 난행을 당해 그녀는 자신이 완전히 석녀가 된
줄만 알았었다. 그런 자신의 몸에 막붕비의 씨앗이 자리잡았음을
알았을 때 그녀는 이제 결코 자신이 죽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후 막붕비는 빙화정과 봉황환희무를 연마하며 지냈다. 그러는
사이 열화마종과 빙화여제의 원정내단은 완전히 그의 몸에 흡수되어
마침내 천년내공을 이루게 되었다. 그와 함께 육성에 머물렀던
양극마강도 십이성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 옛날, 저 전설의 천마황도
이루지 못할 경지를 그가 이루게 된 것이다.
"시황! 그대의 죄악은 크고도 깊다. 그래서 죽어야만 한다."
슥!
막붕비는 탄식하며 슬쩍 오른손을 들었다.
치---- 익!
순간적으로 그의 손이 새빨갛게 달아오름을 보고 시황은 아연하여
뒤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꽈---- 릉!
"케---- 엑!"
막붕비의 손에서 굉음이 일며 시황의 몸은 순간적으로 새카만 재로
부서져 버렸다.
열화적룡인(熱火赤龍印)! 열화마종의 최후열화마공이 완벽한 형태로
펼쳐진 것이다.
"우우...... 놈을 죽여랏!"
"캇...... 감히 뇌황성에 대항하려느냐?"
멍하니 서 있던 뇌황성의 고수들이 노갈을 지르며 분분이 막붕비에게
날아올랐다.
순간 막붕비의 손을 쥐고 있던 빙화정의 아미가 꿈틀했다.
"감히...... 누구에게 달려드는 게냐?"
츠---- 읏!
그녀는 싸늘하게 냉갈하며 슬쩍 교수를 떨쳤다. 그러자 그녀의 손
끝에서 봉황의 그림자가 떠오르더니 일천 개의 깃털형상의 강기가
폭발하듯 일어나 백 명 초고수들을 휩쓸었다.
봉황천시참(鳳凰千翅斬)! 그것은 봉황환희무의 구결 중에 들어 있던
호신기공 파해전문의 초절기였다.
파가가각! 피피핑!
"케---- 엑! 인간이 아니다."
"크---- 악!"
선혈이 가득 일며 뇌황성 최정예인 백 인 고수가 추풍낙엽같이
떨어졌다. 삽시에 지면이 선혈과 시체로 뒤덮여 버렸다.
"쯧쯧...... 뱃 속에 아기를 가진 사람이 이 무슨 험악한 살수요?"
막붕비는 시체로 가득한 지면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빙화정은 아주 매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것은 모두 참을 수 있으나...... 당신을 헤치려는 자들은 두고
보지 못해요."
말을 하며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하복부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아마...... 엄청난 살성이 될 아이를 낳을 듯해요."
"하하...... 살성이라도 좋소! 당신을 닮기만 했다면......"
막붕비는 웃으며 빙화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아래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
미려군----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자신들 부부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재앙의 근원인 우물......)
막붕비는 소리없이 탄식을 했다.
"뇌황의...... 시신을 거두러 오시오, 부인! 그것이 본인이 베풀 수
있는 최선의 호의요."
스---- 읏!
막붕비는 탄식을 하며 은황장쪽으로 날아갔다.
피---- 이잉!
빙화정을 안은 그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일천 장을 날아 은황장
너머로 사라졌다.
(안돼......!)
미려군은 벌떡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이제야 그 불안감의
근원을 발견한 것이다.
(그이는...... 저 젊은이에게 진다. 그래서는 안돼!)
피---- 이잉!
미려군은 다급한 표정으로 급급히 은황장쪽으로 날아갔다.
* * *
은황장의 후원.
꽈르르릉! 우르르......!
지축을 뒤흔드는 굉렬한 굉음과 함께 세 명의 인물이 격돌하고
있었다.
만겁마종 패무극----!
마가의 위대한 마종인 그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와 싸우고 있는 두 명의 고수자는 능히 혼자서
패무극을 상대할 수 있는 초고수자들인 것이다.
천일제왕 하륜----!
철사패왕 담철형----!
바로 그들이 패무극의 상대였다.
패무극은 그 두 사람의 누구보다도 막강하다. 하지만 그들 두 사람이
합공을 하는데는 아무리 환우제일마종인 그라 해도 견디기가 힘들
것이다.
꽈르르릉!
"크---- 읏!"
천일제왕과 철사패왕이 동시에 내친 장풍을 맞받아친 패무극은
주르르 뒤로 밀려났다.
쿠---- 웅!
밀려나던 그는 돌담에 부딪쳐 기어코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순간,
"카아아!"
"우우웃!"
콰자작! 꽈릉!
천일제왕과 철사패왕은 두 눈에서 흉성을 뿌리며 쌍쌍이 패무극을
덮쳐왔다. 내부가 뒤흔들려 미처 피할 여유도 없어진 패무극의 눈빛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위기의 순간,
데---- 에엥!
갑자기 한 소리 섬뜩한 종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케---- 엑!"
"우---- 웩!"
쿠---- 쿵!
종소리에 실린 무서운 음파가 장내를 휩쓸자 천일제왕과 철사패왕은
오공에서 피를 뿌리며 지면으로 뚝 떨어졌다.
"악마...... 혈종(惡魔血鐘)!"
패무극은 경악성을 토하며 벌떡 일어섰다. 그때,
스---- 읏!
한 가닥 선풍이 언뜻 일며 후원 한쪽에 두 사람이 내려섰다. 왼손에
핏빛 종을 든 적포청년과 눈같이 흰 빙잠천의를 걸친 은발의 미인!
"너...... 너희들은......!"
두 남녀를 본 패무극은 너무 놀라 입을 딱 벌렸다. 순간,
"아버님!"
화르르......!
은발미녀 빙화정이 막붕비의 손에서 떠나 눈물을 흩뿌리며
패무극에게로 날아들었다.
"정(精)아!"
패무극은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흐---- 윽!"
패무극의 가슴으로 날아든 빙화정은 의부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울어대었다.
패무극의 파면 위로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이제는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막붕비는 미소를 지었다.
"후훗...... 그 사람을 잘 돌봐 주십시오! 곧 소자의 이세(二世)를
낳아줄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장인어른!"
스---- 읏!
막붕비는 패무극의 귓전에 전음을 보내며 후원 저편으로 날아갔다.
"장...... 장인이라고?"
패무극은 날아가는 막붕비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딱 벌렸다.
그러다가 그는 이내 자신이 곧 할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핫하...... 그래! 노부가 곧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지?"
패무극은 양녀를 안고 입이 찢어져라 웃어대었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은황장을 뒤흔들었고 그런 패무극의 품
안에서 빙화정의 두 뺨이 장미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 * *
은황장의 북방 십여 리에 자리한 야산.
돌연,
꽈---- 르릉!
굉렬한 폭음이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다.
야산 전체가 순간적으로 몽땅 날아가며 방원 백여 장의 거대한
웅덩이가 생겼다. 그와 함께,
"우우우!"
"치잇! 지독하구나, 괴물......!"
와드득!
쐐애애액!
야산이 있던 땅 속으로부터 네 개의 유령 같은 그림자가 치솟아
올랐다.
한 명의 열겹 시뻘건 강기의 막에 뒤덮인 괴인, 그리고 그 괴인을
삼재진(三才陣)으로 포위한 세 명의 여인이 그들이었다.
콰드득! 휘르르......!
사 인(四人)은 순간적으로 일천 장을 이동하여 거친 황야에
내려섰다.
"크큽...... 죽인다! 한 년도 남김없이......!"
츠으...... 쩌저정!
혈영괴인이 광기 서린 마성을 토해내며 자신을 포위한 세 여인을
돌아보았다.
-뇌황(雷皇) 단목뇌황!
그는 바로 뇌황이었다. 지금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전신이 불타고 갈가리 찢겨 혈인(血人)이 되어 있었다.
-금마궐(禁魔闕)!
정모 수운월에 의해 보강된 금마궐은 전율스러울 정도로 무서웠다.
이미 불사지경에 이른 뇌황이건만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던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금마궐을 살아서 빠져나온 것이다. 그런 뇌황을
포위한 세 여인의 눈에는 경악의 빛이 흘렀다.
세 명 여인!
그녀들은 개개인이 세상에 적수가 없는 몸들이었다. 그런데도 세
사람이 힘을 합쳤건만 뇌황의 흡혈마황검이 흘리는 마기를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실혼여제 단목혜린!
-사황녀 북궁설!
-천마서시!
세 여인은 바로 그녀들이었다.
실혼여제와 천마서시, 즉, 신비쌍교는 최근에 은황장에 이르렀고
정모의 부탁으로 금마궐에 매복하여 뇌황을 저격하게 된 것이다.
천하에서 흡혈마황검에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사황녀 북궁설을
제외하면 그들 두 여인 외에는 없었다.
한데 금마궐에서 위기를 겪으며 뇌황은 완전히 마인(魔人)이 되어
버렸다.
미려군에 대한 애정으로 겨우 남아 있던 그의 이성은 죽음의 공포에
의해 말살되고 만 것이다.
이제 그가 곧 흡혈마황검이고 곧 뇌황이 된 상태였다.
고오오......!
치리리링!
흡혈마황검이 무섭게 울리며 주위의 모든 생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천 장 내의 모든 초목이 말라 비틀어졌다.
흡혈마황검의 마기는 이제 초목의 생기까지 흡수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하물며 인간의 몸으로 그 마기에 저항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흐윽! 정말 못견디겠다!)
실혼여제는 고통스럽게 옥용을 찡그렸다.
징...... 징!
그녀의 손에 들린 자허천존검이 흡혈마황검의 흡혈마기에 못견디고
부러질 듯 진동을 일으켰다.
또한 사황녀 북궁설의 가슴을 보호하고 있는 사황동경도 금방이라도
깨질 듯이 뒤틀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셋 다 죽는다!)
실혼여제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어린 북궁설과 천마서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뇌리에 언뜻 동귀어진의 생각이 떠올랐다.
실혼여제가 자신의 전 내공을 모아 뇌황에게 돌입하면 아직은 그
자를 죽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미련이 선뜻 그녀로 하여금 그것을 결행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마치 지금이라도 당장 누군가 나타나 뇌황을
쓰러뜨려 줄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카아앗! 이제 끝을 내자, 계집들!"
흡혈마강을 일주천한 뇌황이 벼락치듯 광소를 터뜨렸다. 동시,
고오오오----!
돌연 흡혈마황검의 마기가 다섯 배로 강해져 세 여인을 끌어당겼다.
따---- 다당! 쩌저정!
순간 자허천존검이 견디지 못하고 박살이 났고 북궁설의 사황동경도
유리깨지듯 부서져 날아갔다.
"악!"
"흐---- 윽!"
화드득! 쏴아아!
그와 함께 세 여인은 무서운 흡인력에 휘말려 가랑잎갚이
흡혈마황검으로 빨려들어갔다.
(아아! 기회를 놓쳐 셋이 다 죽는구나!)
확 눈 앞으로 다가서는 흡혈마황검을 보며 실혼여제는 질끈 눈을
감았다.
절대절명의 위기!
다시 없는 세 명의 재녀(才女)가 악마의 검 흡혈마황검에 재물이 될
찰나였다. 돌연,
데---- 에엥!
악마가 울부짖는 듯한 무서운 종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크---- 윽! 악마혈종!"
콰당탕!
막 세 여인의 심장을 관통하려던 뇌황은 오공에서 피를 뿌리며 삼십
장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놀랍게도 악마혈종의 증폭음강은 하나로
응집되어 뇌황의 고막만을 박살낸 것이다.
"악!"
쿵...... 쿵!
세 여인은 위기의 순간에 구원을 받아 지면에 나뒹굴었다. 그때,
"뇌...... 황!"
우르릉!
한 소리 폭갈이 하늘과...... 땅을 뒤흔들며 터져 솟구쳤다.
피---- 이잉!
그와 함께 일천 장 저편에서 타는 듯이 붉은 그림자가 질풍같이
떠올라 장내로 날아들었다.
"지옥...... 혈황?"
뇌황은 불신의 괴성을 토하며 벌떡 일어섰다. 순간,
"받아라! 악마의 개----!"
쩌---- 정!
막붕비가 노갈과 함께 무엇인가 시뻘건 물체를 일천 장 밖에서
뇌황에게 던져내었다. 그것은 악마혈종이었다.
"어억!"
빠지지직!
뇌황은 아연실색하며 다급히 흡혈마황검으로 열 겹의 흡혈검강을
일으켜 날아드는 악마혈종을 막아갔다.
따---- 다당! 꽈---- 르릉!
하늘과 땅이 일시에 박살나는 듯한 굉음이 광야를 휩쓸었다. 그 순간
서로 충돌한 악마혈종과 흡혈마황검은 시뻘건 불꽃을 일으키며 산산이
바스라졌다.
"크---- 윽!"
쿵쿵!
흡혈마황검이 악마혈종에 부딪쳐 박살나는 순간 뇌황은 천 개의
낙뢰에 일시에 격타당한 충격을 받고 주르르 삼십여 장을 밀려나갔다.
"만...... 겁참!"
쐐애액!
밀려나는 뇌황에게 막붕비는 질풍같이 날아들며 오른손을 횡으로
쪼개 버렸다.
-만겁참(萬劫斬)! 복수혈경의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던 만겁마가의
천년마공!
콰드드득!
만겁참이 스치자 뇌황의 천년내공으로 일어난 십극천강 중 아홉 겹이
일시에 바스러졌다. 그 직후,
쩌러렁!
감추어졌던 막붕비의 소매 속에서 불쑥 뛰쳐나오며 뇌황의 심장을
후려쳐 갔다.
빠지지직!
그런 막붕비의 왼손이 시뻘건 자색으로 물든 것이 언뜻 뇌황의 눈에
들어왔다.
"제...... 왕인(帝王印)?"
뇌황의 입에서 불신과 경악의 비명이 터졌다.
-제왕인(帝王印)!
막붕비의 최후 일격은 제왕인이라는 공력이었다.
그것은 자부문의 지보---- 제왕건(帝王巾)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제왕건은 자부문의 문주를 상징하고 문중에 반도가 생겼을
경우에 그 제왕건에 감추어진 제왕인의 공력으로 반도를 쓰러뜨리도록
안배되어 있었다.
자부천존의 그같은 안배는 결국 천 년 만에 제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꽈---- 릉! 퍼퍼퍽!
"크---- 윽!"
뇌황은 자신의 심장이 박살남을 느끼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제왕인의 공력은 일순 뇌황의 십극천강을 박살내고 그의 심장을
으스러뜨린 것이다.
"......!"
"......!"
마치 일진광풍같이 일어난 그 일련의 결과에 실혼여제 등은 넋을
잃고 바라만 볼 뿐이었다.
"크으...... 결국...... 당신이 이겼소! 형님......!"
뇌황은 죽어가는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며 중얼거렸다.
그를 죽인 것은 막붕비가 아니라 자면천존 단목후였다. 최소한
뇌황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아아! 뇌황! 죽으면 안돼요."
피---- 잉!
광야 저편에서 한 명 여인이 오열하며 날아들었다.
(미...... 려군!)
막붕비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바로 미려군이었다.
"흐윽...... 안돼요! 제가 바란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어요."
날아든 미려군은 울부짖으며 뇌황을 끌어안았다.
"미안...... 려군! 당신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
툭......!
뇌황은 억지로 웃어 보이다가 이내 숨이 끊어졌다.
"......"
뇌황이 숨이 끊어지자 미려군은 넋이 나가 정인을 내려다 보았다.
억겁같이 느껴지는 적막이 장내를 휘감았다. 한 동안 죽은 뇌황을
무릎에 안고 있던 미려군은 서서히 고개를 들어 딸을 바라보았다.
"미안...... 하다, 린(鱗)아! 어미를...... 용서해라!"
미려군은 허무한 시선으로 말했다.
"......!"
실혼여제 단목혜린은 두 손을 피가 나도록 틀어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차갑던 마음 속에 미움과 증오, 그리움과 연민이
뒤엉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무리 증오스럽더라도 미려군은 그녀 자신의 어머니인 것이다.
"함께...... 가요, 뇌황!"
그때 미려군이 비통하게 중얼거렸다.
"안되오!"
번뜩이는 은장도를 보고 막붕비는 대경하여 외쳤다.
그러나,
퍼---- 억!
이미 은장도는 미려군의 가슴에 손잡이만 남기고 깊숙이 박혀 버린
후였다. 한동안 경직되었던 미려군의 몸은 서서히 기울더니 정인의
시체 위로 조용히 쓰러졌다.
붉디붉은 선혈이 그녀의 새하얀 치마 위로 요악한 아름다움으로
번져갔다.
"어머니......!"
화르르......!
그 순간 실혼여제가 오열을 터뜨리며 미려군의 시선으로 달려들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실혼의 여제가 아니었다.
스으...... 스으......
핏빛의 낙조가 불행했던 두 연인의 시체와 오열하는 단목혜린의
가냘픈 어깨 위로 번져가고 있었다.
< 大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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