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추억6권-9. 장미의 숲
9. 장미의 숲
마사오는 미야모또의 이사를 도왔다.
짐을 정리하면서 미야모또는 한 장의 사진을 마사오 앞에 내밀었다. 머리카락을 세 갈래로 땋은 소녀의 나체 사진이었다.
바닥 위에 길게 누워 팔베개를 하고 카메라를 향하고 있었다. 위로 무릎을 세우고 있으므로 비부의 숲이 확실히 보였다. 작은 덤불이었다.
가냘픈 몸매로 유방도 소녀 같았다.
“봄방학 때 찍은 거야.”
“네가?”
“응”
“누군데?”
“지금 여고 2학년인 사촌이야. ‘예술 사진을 찍을 테니가 모델이 돼줘’하고 말하니 결국은 승낙했어. 고분고분하고 착한 애야.”
“그러면 이것 외에도 또 있어?”
“있어. 하지만 이게 제일 좋아.”
마사오는 사진을 되돌려 주었다.
“장난치진 않았어?”
“물론이야.”
“이 애, 너한테 반한 거 아니야?”
“글쎄다. 그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
“너와 아야꼬 씨의 일을 알면 슬퍼할 거야.”
“남자나 여자나 인생의 비애를 맛보면서 성장하는 거야.”
이윽고 짐을 싣고 날라간 집 현관에서 마사오는 아야꼬를 만났다. 도모꼬도 만났다. 정원에 장미가 피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야꼬가 마사오에게 말했다.
“모처럼의 일요일인데 힘들지요? 미안해요.”
그 얼굴에서 마사오는 청초한 인상을 받았다.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일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학생과 음탕한 사이가 된 여자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여자는 얼굴만 봐선 몰라.’
미야모또에게 구체적으로 들은 마사오는 마음 속으로 읊조렸다.
곧 짐은 이층으로 옮겨져 예정된 위치에 놓여졌다. 학새의 이삿짐이라서 그러지 짐의 대부분은 책이었다. 책들을 진열하고 이사는 순식간에 완료되었다. 학생이 하숙하는 것이므로 이웃에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넌 그 아파트로 옮기면 이층 네 개의 방에 국수라도 돌리는 편이 좋아.”
미야모또가 마사오에게 말했다.
시계를 보니 세 시였다. 마사오와 미야모또는 아래층 거실로 안내되었다. 중앙에 식탁이 놓여 있고, 펼쳐진 신문지가 그것을 덮고 있었다.
신문지를 젖히자 음식 접시와 컵이 있었다.
“자, 앉아요. 차린 것은 없지만 건배해요.”
아야꼬는 맥주를 가져왔다. 마사오도 사양하지 않고 배불리 먹기로하고 미야모또와 마주 앉았다. 도모꼬도 자리에 앉았다.
‘이 아이는 미야모또와 자기 엄마 일을 어떻게 생각할까? 유끼꼬와 달리 아직 아빠의 기억이 생생할 텐데.’
세 사람은 맥주로, 도모꼬는 쥬스로 건배했다.
“이제부터 미야모또를 잘 감독해 주십시오.”
“그럴 작정이에요. 이제부터는 통금도 있으니까.”
“통금은 몇 시입니까?”
“몇 시로 하면 좋을까? 열 시면 어때요.”
“그건 너무 빨라요.”
미야모또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여대 기숙사도 열한 시일 걸요?”
“안 돼요. 열 시에요.”
아야꼬는 자신과의 사이를 미야모또가 마사오에게 말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싫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학새을 하숙시킬 때 이렇게 주연을 여는 것은 보통 집에선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차린 음식이나 술만으로 한 달분 방값 따윈 가볍게 초과해 버린다. 미야모또와의 사이를 마사오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야꼬는 태연한 걸까. 여자의 심리를 마사오는 느끼고 있었다.
도모꼬는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사람이 늘어 좋아하는 듯했다. 평소의 예절교육이 그 모습에서 배어 나왔다. 아직 가슴이 나온 것 같지는 않았다.
‘유끼꼬보다 세 살이나 아래니까 정말 어린 아이야’
도모꼬가 친구가 불러 밖으로 놀러 나간 뒤 자리에서 일어선 미야모또는 아야꼬 옆에서 몸을 밀착시켜 앉아 맥주병을 들었다.
아야꼬의 컵에 맥주를 따르면서 미야모또가 말했다.
“이제 난 아야꼬 씨의 포로입니다. 너무 구박하지 말아 주세요.”
“구박하다니요? 그런.....”
부끄러워하는 아야꼬의 어깨에 미야모또는 팔을 둘렀다.
“마사오가 나와 당신의 일을 신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증명하기 위해 이 녀석 앞에서 키스하게 해주세요.”
아야꼬는 놀란 모습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미야모또에게 입술을 허락했다.
키스하면서 미야모또는 아야꼬의 가슴에 손을 대었다. 아야꼬는 그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마사오도 고지식한 얼굴로 있을 수는 없었다.
“좋은 광경이군. 사람고 사람이 서로 좋아한다. 그것이 평화지.”
그런 말을 중얼대며 매주를 비웠다.
그 키스 뒤 미야모또는 곧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아야꼬는 앞섶을 단정히 고치고 마사오를 쳐다보았다. 그 눈에는 아까까지의 청초한 인상과는 전혀 다른 요염한 빛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마사오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난 호색스런 여자예요. 그러니까 언제나 미야모또 씨가 곁에 있어줬으면 해요. 알겠죠?”
결국 자신과 미야모또와의 사이를 미야모또 친구로서 마사오가 분명히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 셈이다.
마사오는 끄덕엿다.
“알았습니다. 뭔가 있으면 협력하겠습니다.”
“그렇기도 하지만 아야꼬 씨는 네가 그걸 알아 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야. 즉, 날 사랑하기 때문에 하숙시킨 게 아니라 날 욕망처리 도구로 삼기 위해서지.”
미야모또가 설명했다.
“아니, 그런!”
미야모또를 보는 아야꼬의 눈이 휘둥레졌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 혐오스런 말 하지 말아요. 그런 혐오스런 말 하지 말아요. 당신을 좋아해요.”
“그래. 네 말은 잘못됐어. 너, 악당인 척 하면 안 돼. 이분은 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염려해서 일부러 비하했을 뿐이야. 나이 차이를 부끄러워 하기도 한 거고.”
마사오는 아야꼬에게 동조했다.
아야꼬 쪽을 쳐다보며 마사오가 계속 말했다.
“겸연쩍어할 필요 없습니다. 아야꼬 씨는 아직 젊어요. 스물 다섯 살이나 여섯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그런 인사치레는 좀 지나치군.”
“아니, 사실이야. 이제 너의 주량이 줄고 이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늘면 만사형통이지. 음! 통행금지는 차라리 아홉 시가 좋겠군요.”
잠시 후 미야모또가 세면장으로 갔을 때 아야꼬는 마사오에게 가까이 왔다.
“저 사람, 지금 정말 여자 친구 없나요?”
은밀한 목소리였다.
“없을 겁니다. 그러나 장래는 모릅니다.”
미야모또가 보여 준 나체 사진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금 없으면 됐어요.”“만일 애인이 생겨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합니까?”
“도리가 없죠. 그때는 환영한다고 약속했어요.”
“당분간 그런 염려는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돌아온 미야모또가 자리에 앉아 아야꼬를 쳐다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세이꼬 씨를 부를까요?”
세이꼬도 끼어 요전엔 세 사람이 성교했음을 들은 마사오는 놀랐다.
‘이 녀석 취해서 또 그때의 이상한 쾌락을 맛보고 싶어진 건가?’
미야모또를 집에 들인 아야꼬는 이제 그런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여자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말이군.’
그런데 아야꼬는 미야모또의 제안에 수긍했고, 망설이듯 이렇게 질문했다.
“마사오 씨에겐 말했나요?”
“아니, 아직입니다.”
그리고 미야모또는 마사오를 쳐다보았다.
“너, 사귀던 여자가 졸업하고 지금은 상대가 없잖아?”
찌에와의 일은 미야모또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다.
“응. 그래.”
“그러면 이건 내가 아니라 아야꼬 씨의 제안인데. 세이꼬 씨를 만나보지 않겠니?”
“내가?”
“응. 남의 부인이라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만 상관없어. 부를 테니까 만나 봐.”“마사오는 이야기의 당돌함에 망연히 아야꼬를 보았다.
“부인의 제안인가요?”
“예. 하지만 세이꼬가 말한 적 있어요. 미야모또 씨 친구 중에 여자가 바람 피우는 걸 동정해 줄 사람이 없을까 하고요. 매력있는 사람이에요.”
세이꼬가 새로운 상대를 얻으면 자기도 안심할 수 있다. 아야꼬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전 미야모또의 제자가 되는 셈이군요.”
마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 건 생각하지 말고 어쨌든 만나보면 어떻겠어요?”
“아니, 그만 주겠습니다. 전 아직 목슴이 아까워요.”
“괜찮아. 현명한 여자니까 비밀이 밝혀지거나 하진 않아. 그리고 자기도 일하고 있으니까 돈을 갖고 있어. 여러 가지 사줄 거야.”
“싫어. 만나고 싶지 않아. 만나도 그 사람은 날 마음에 들어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만나지 않겠어.”
“오늘은 그렇다 치고 생각해 봐. 다음엔 네가 그 방에 이사하면 마음껏 여자를 부를 수 있을 테니까.”
“생각할 것도 없어. 졸업했다 해도 인연이 끊긴 건 아니고.”
“너, 내가 이렇게 애절하게 말했는데 흥미가 당기지 않아?”
“흥미없어.”
“여자로선 멋져!”
마사오는 미야모또의 의도를 알았다. 마사오를 열심히 권유하는 것으로 자신이 이제 세이꼬에게 전혀 미련이 없음을 아야꼬에게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잠시 생각할 여유를 줘.”
마사오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 얘기를 결말 지었다.
이으고 아야꼬가 부엌에 갔을 때 미야모또는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사람 어떻게 생각해?”
“예쁘고 친절하고 착한 사람 같은데.”
“그리고?”
“그뿐이야.”“남자를 망칠 여자상은 이니니?”
“난 점장이가 아냐. 그런 인상은 받지 않았어. 보통 선량한 아줌마야.”
“널 보는 눈에 유혹하는 기세가 있는데.”
“그건 네 기분 탓이야. 널 보는 눈엔 정이 담겨 있더라.”
“난 일 주일 이내에 여자를 데려와 자겠어.”
“그건 네 자유야.”
“그래, 자유야. 난 내가 자유라는 것을 가능한한 빨리 증명해야겠어. 육체관계에 끌려다닐 수는 없어.”
“그 결의를 잊지 않으면 괜찮아.”
되돌아온 아야꼬가 말했다.
“목욕물 데웠어요. 얼른 땀을 씻고 또 한잔 하면 어때요? 이사로 먼지를 뒤집어 썼으니까.”
“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목욕탕을 사용을 할 수 있어요?”
미야모또가 기뻐하며 말했다.
“물론이죠. 자, 우선 손님부터 들어가고.”
“아니, 함께 들어가겠어요.”
마사오와 미야모또는 안내를 받아 목욕탕으로 갔다. 탈의장에는 경대가 있었고 저녁해가 비쳐 들어왔다.
“이제부터 넌 공중목욕탕에 갈 필요가 없겠군.”
“그렇게 되나? 그건 몰랐군.”
나무로 만든 둥근 목욕통은 남자가 둘이 들어가기엔 무리였다. 우선 미야모또가 들어갔다가 이내 나왔다. 그 뒤에 마사오가 들어갔다.
미야모또가 몸을 닦기 시작했다.
“아야꼬 씨, 너와 함께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네 등을 닦아 주고 싶었을 거야.”
“글쎄, 그럴지도.”
“너, 씻는 거 중지해. 내가 먼저 씻고 나가겠어. 그리고 그 사람을 불러 주지.”
미야모또보다도 먼저 목욕탕에서 나온 마사오는 부엌에서 일하는 아야꼬에게 말했다.
“미야모또가 부릅니다. 등을 닦아 달라고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아야꼬는 식탁에 앉은 마사오에게 새로운 맥주를 꺼내 주고 목욕탕으로 사라졌다.
마사오는 차가운 맥주를 마셨다.
“해가 지면 돌아가야겠군.”
목욕탕은 조용했고 미야모또도 아야꼬도 좀체 나타나질 않았다.
‘정말 그녀도 벌거벗고 들어간 건가? 어쩌면 방이 되기도 전에 관계를? 난 상관없어. 그 여자애가 돌아오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마신 맥주 한 병이 마침 빈병이 되었을 때 아야꼬가 들어왔다.
“미안해요. 혼자 있게 해서.”
“아니, 괜찮습니다. 좋은 정원이군요. 장미가 예쁩니다. 장미나무에 장미꽃이 핀다? 뭔가 이상하지만.”
“예?”
“시의 한 구절입니다.”
아야꼬는 상기한 얼굴이었고 눈이 젖어 있었다.
목욕탕에서 성적인 뭔가가 있었던 것은 분명했고, 마사오는 아야꼬가 그것을 감추기 쉽도록 시 따위를 읊으며 정원으로 눈을 주었던 것이다.
아야꼬는 마사오 옆에 앉았다. 처음 접근해 온 것이다. 향수 냄새가 났다.
마사오의 마음 속엔 아야꼬의 나이가 있었다.
‘서른 둘인가 셋이므로 아직 젊다. 어쨌든 재혼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미야모또와의 사이가 재혼설에 어떤 영향을 줄까?’
그런 것도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미야모또의 친구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했다.
아야꼬에게서 여자 냄새를 느끼고 마사오는 조금 당황했다.
은밀한 목소리로 아야꼬가 말했다.
“세이꼬와의 일도 들었나요?”
“예”
“세이꼬는 부르지 않더라도 올지 몰라요. 오늘 이사는 알고 있으니까. 벌써 이리로 향했을 거예요.”
“예”
“그러니까 돌아가지 마세요.”
이번엔 마사오는 여자의 입김을 느꼈다. 손이 마사오의 팔에 감겼다. 그 팔에 아야꼬의 가슴도 느꼈졌다. 좀 지나친 접근이었다. 보통이라면 나쁜 마음은 갖지 않겠지만 미야모또의 여자임을 알고 있는 만큼 꺼림칙함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아야꼬에겐 목욕탕에서의 유희 여운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마사오는 비밀 이야기를 묻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목욕탕에서 뭘 했습니까?”
“싫어요.”
교태를 부리는 목소리와 함께 마사오의 팔이 흔들렸다.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아직 낮인데요.”
이십대 아가씨 같은 어조였다.
“그러면 뭔가를 하라고 했나요?”
그러자 마사오의 귀에 뭔가가 닿았다.
“조금 씻어 준 것뿐이에요.”
속삭였고, 닿은 것은 입술임을 알았다.
“어디를?”
“후후후. 맥주 가져 올께요”
팔을 놓고 아야꼬가 일어섰다.
‘저 여자도 기회가 있으면 미야모또 이외의 남자와 관계를 갖는 체질일지도 몰라.’
맥주를 갖고 돌아온 아야꼬는 자기 위치에 앉았다. 역시 홍조를 띤 얼굴이었다.
“세이꼬가 올 때까지 있어요”
“오기로 했습니까?”
“그런 기분이 들어요. 분명히 집안 일을 끝내고 밤이 되면 올 거예요.”
미야모또가 목욕탕에서 나왔다. 가운을 입고 있었다.
‘고급품 같군. 저건 분명 죽은 남편이 입던 것임에 틀림없어.’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죽은 자에게 구애받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세이꼬 씨가 올지도 모른다고요?”
“난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러면 전화가 있겠죠.”
미야모또가 그렇게 말하고 앉았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 순간 아야꼬는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아야꼬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나야, 응. 그래. 이제 막 끝났어, 친구가 도와 줘서. 지금 함께 파티를 열었어. 아, 그래? 그것 유감이야. 응, 알겠어.”
통화는 간단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아야꼬가 미야모또에게 말했다.
“오늘밤은 아무래도 나올 수가 없다고 해요. 잘 됐어요.”
솔직한 느낌을 말했다.
30분 후 마사오는 미야모또와 아야꼬의 전송을 받으며 그 집을 나왔다.
마사오는 미야모또의 이사를 도왔다.
짐을 정리하면서 미야모또는 한 장의 사진을 마사오 앞에 내밀었다. 머리카락을 세 갈래로 땋은 소녀의 나체 사진이었다.
바닥 위에 길게 누워 팔베개를 하고 카메라를 향하고 있었다. 위로 무릎을 세우고 있으므로 비부의 숲이 확실히 보였다. 작은 덤불이었다.
가냘픈 몸매로 유방도 소녀 같았다.
“봄방학 때 찍은 거야.”
“네가?”
“응”
“누군데?”
“지금 여고 2학년인 사촌이야. ‘예술 사진을 찍을 테니가 모델이 돼줘’하고 말하니 결국은 승낙했어. 고분고분하고 착한 애야.”
“그러면 이것 외에도 또 있어?”
“있어. 하지만 이게 제일 좋아.”
마사오는 사진을 되돌려 주었다.
“장난치진 않았어?”
“물론이야.”
“이 애, 너한테 반한 거 아니야?”
“글쎄다. 그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
“너와 아야꼬 씨의 일을 알면 슬퍼할 거야.”
“남자나 여자나 인생의 비애를 맛보면서 성장하는 거야.”
이윽고 짐을 싣고 날라간 집 현관에서 마사오는 아야꼬를 만났다. 도모꼬도 만났다. 정원에 장미가 피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야꼬가 마사오에게 말했다.
“모처럼의 일요일인데 힘들지요? 미안해요.”
그 얼굴에서 마사오는 청초한 인상을 받았다.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일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학생과 음탕한 사이가 된 여자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여자는 얼굴만 봐선 몰라.’
미야모또에게 구체적으로 들은 마사오는 마음 속으로 읊조렸다.
곧 짐은 이층으로 옮겨져 예정된 위치에 놓여졌다. 학새의 이삿짐이라서 그러지 짐의 대부분은 책이었다. 책들을 진열하고 이사는 순식간에 완료되었다. 학생이 하숙하는 것이므로 이웃에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넌 그 아파트로 옮기면 이층 네 개의 방에 국수라도 돌리는 편이 좋아.”
미야모또가 마사오에게 말했다.
시계를 보니 세 시였다. 마사오와 미야모또는 아래층 거실로 안내되었다. 중앙에 식탁이 놓여 있고, 펼쳐진 신문지가 그것을 덮고 있었다.
신문지를 젖히자 음식 접시와 컵이 있었다.
“자, 앉아요. 차린 것은 없지만 건배해요.”
아야꼬는 맥주를 가져왔다. 마사오도 사양하지 않고 배불리 먹기로하고 미야모또와 마주 앉았다. 도모꼬도 자리에 앉았다.
‘이 아이는 미야모또와 자기 엄마 일을 어떻게 생각할까? 유끼꼬와 달리 아직 아빠의 기억이 생생할 텐데.’
세 사람은 맥주로, 도모꼬는 쥬스로 건배했다.
“이제부터 미야모또를 잘 감독해 주십시오.”
“그럴 작정이에요. 이제부터는 통금도 있으니까.”
“통금은 몇 시입니까?”
“몇 시로 하면 좋을까? 열 시면 어때요.”
“그건 너무 빨라요.”
미야모또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여대 기숙사도 열한 시일 걸요?”
“안 돼요. 열 시에요.”
아야꼬는 자신과의 사이를 미야모또가 마사오에게 말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싫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학새을 하숙시킬 때 이렇게 주연을 여는 것은 보통 집에선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차린 음식이나 술만으로 한 달분 방값 따윈 가볍게 초과해 버린다. 미야모또와의 사이를 마사오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야꼬는 태연한 걸까. 여자의 심리를 마사오는 느끼고 있었다.
도모꼬는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사람이 늘어 좋아하는 듯했다. 평소의 예절교육이 그 모습에서 배어 나왔다. 아직 가슴이 나온 것 같지는 않았다.
‘유끼꼬보다 세 살이나 아래니까 정말 어린 아이야’
도모꼬가 친구가 불러 밖으로 놀러 나간 뒤 자리에서 일어선 미야모또는 아야꼬 옆에서 몸을 밀착시켜 앉아 맥주병을 들었다.
아야꼬의 컵에 맥주를 따르면서 미야모또가 말했다.
“이제 난 아야꼬 씨의 포로입니다. 너무 구박하지 말아 주세요.”
“구박하다니요? 그런.....”
부끄러워하는 아야꼬의 어깨에 미야모또는 팔을 둘렀다.
“마사오가 나와 당신의 일을 신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증명하기 위해 이 녀석 앞에서 키스하게 해주세요.”
아야꼬는 놀란 모습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미야모또에게 입술을 허락했다.
키스하면서 미야모또는 아야꼬의 가슴에 손을 대었다. 아야꼬는 그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마사오도 고지식한 얼굴로 있을 수는 없었다.
“좋은 광경이군. 사람고 사람이 서로 좋아한다. 그것이 평화지.”
그런 말을 중얼대며 매주를 비웠다.
그 키스 뒤 미야모또는 곧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아야꼬는 앞섶을 단정히 고치고 마사오를 쳐다보았다. 그 눈에는 아까까지의 청초한 인상과는 전혀 다른 요염한 빛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마사오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난 호색스런 여자예요. 그러니까 언제나 미야모또 씨가 곁에 있어줬으면 해요. 알겠죠?”
결국 자신과 미야모또와의 사이를 미야모또 친구로서 마사오가 분명히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 셈이다.
마사오는 끄덕엿다.
“알았습니다. 뭔가 있으면 협력하겠습니다.”
“그렇기도 하지만 아야꼬 씨는 네가 그걸 알아 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야. 즉, 날 사랑하기 때문에 하숙시킨 게 아니라 날 욕망처리 도구로 삼기 위해서지.”
미야모또가 설명했다.
“아니, 그런!”
미야모또를 보는 아야꼬의 눈이 휘둥레졌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 혐오스런 말 하지 말아요. 그런 혐오스런 말 하지 말아요. 당신을 좋아해요.”
“그래. 네 말은 잘못됐어. 너, 악당인 척 하면 안 돼. 이분은 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염려해서 일부러 비하했을 뿐이야. 나이 차이를 부끄러워 하기도 한 거고.”
마사오는 아야꼬에게 동조했다.
아야꼬 쪽을 쳐다보며 마사오가 계속 말했다.
“겸연쩍어할 필요 없습니다. 아야꼬 씨는 아직 젊어요. 스물 다섯 살이나 여섯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그런 인사치레는 좀 지나치군.”
“아니, 사실이야. 이제 너의 주량이 줄고 이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늘면 만사형통이지. 음! 통행금지는 차라리 아홉 시가 좋겠군요.”
잠시 후 미야모또가 세면장으로 갔을 때 아야꼬는 마사오에게 가까이 왔다.
“저 사람, 지금 정말 여자 친구 없나요?”
은밀한 목소리였다.
“없을 겁니다. 그러나 장래는 모릅니다.”
미야모또가 보여 준 나체 사진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금 없으면 됐어요.”“만일 애인이 생겨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합니까?”
“도리가 없죠. 그때는 환영한다고 약속했어요.”
“당분간 그런 염려는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돌아온 미야모또가 자리에 앉아 아야꼬를 쳐다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세이꼬 씨를 부를까요?”
세이꼬도 끼어 요전엔 세 사람이 성교했음을 들은 마사오는 놀랐다.
‘이 녀석 취해서 또 그때의 이상한 쾌락을 맛보고 싶어진 건가?’
미야모또를 집에 들인 아야꼬는 이제 그런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여자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말이군.’
그런데 아야꼬는 미야모또의 제안에 수긍했고, 망설이듯 이렇게 질문했다.
“마사오 씨에겐 말했나요?”
“아니, 아직입니다.”
그리고 미야모또는 마사오를 쳐다보았다.
“너, 사귀던 여자가 졸업하고 지금은 상대가 없잖아?”
찌에와의 일은 미야모또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다.
“응. 그래.”
“그러면 이건 내가 아니라 아야꼬 씨의 제안인데. 세이꼬 씨를 만나보지 않겠니?”
“내가?”
“응. 남의 부인이라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만 상관없어. 부를 테니까 만나 봐.”“마사오는 이야기의 당돌함에 망연히 아야꼬를 보았다.
“부인의 제안인가요?”
“예. 하지만 세이꼬가 말한 적 있어요. 미야모또 씨 친구 중에 여자가 바람 피우는 걸 동정해 줄 사람이 없을까 하고요. 매력있는 사람이에요.”
세이꼬가 새로운 상대를 얻으면 자기도 안심할 수 있다. 아야꼬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전 미야모또의 제자가 되는 셈이군요.”
마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 건 생각하지 말고 어쨌든 만나보면 어떻겠어요?”
“아니, 그만 주겠습니다. 전 아직 목슴이 아까워요.”
“괜찮아. 현명한 여자니까 비밀이 밝혀지거나 하진 않아. 그리고 자기도 일하고 있으니까 돈을 갖고 있어. 여러 가지 사줄 거야.”
“싫어. 만나고 싶지 않아. 만나도 그 사람은 날 마음에 들어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만나지 않겠어.”
“오늘은 그렇다 치고 생각해 봐. 다음엔 네가 그 방에 이사하면 마음껏 여자를 부를 수 있을 테니까.”
“생각할 것도 없어. 졸업했다 해도 인연이 끊긴 건 아니고.”
“너, 내가 이렇게 애절하게 말했는데 흥미가 당기지 않아?”
“흥미없어.”
“여자로선 멋져!”
마사오는 미야모또의 의도를 알았다. 마사오를 열심히 권유하는 것으로 자신이 이제 세이꼬에게 전혀 미련이 없음을 아야꼬에게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잠시 생각할 여유를 줘.”
마사오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 얘기를 결말 지었다.
이으고 아야꼬가 부엌에 갔을 때 미야모또는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사람 어떻게 생각해?”
“예쁘고 친절하고 착한 사람 같은데.”
“그리고?”
“그뿐이야.”“남자를 망칠 여자상은 이니니?”
“난 점장이가 아냐. 그런 인상은 받지 않았어. 보통 선량한 아줌마야.”
“널 보는 눈에 유혹하는 기세가 있는데.”
“그건 네 기분 탓이야. 널 보는 눈엔 정이 담겨 있더라.”
“난 일 주일 이내에 여자를 데려와 자겠어.”
“그건 네 자유야.”
“그래, 자유야. 난 내가 자유라는 것을 가능한한 빨리 증명해야겠어. 육체관계에 끌려다닐 수는 없어.”
“그 결의를 잊지 않으면 괜찮아.”
되돌아온 아야꼬가 말했다.
“목욕물 데웠어요. 얼른 땀을 씻고 또 한잔 하면 어때요? 이사로 먼지를 뒤집어 썼으니까.”
“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목욕탕을 사용을 할 수 있어요?”
미야모또가 기뻐하며 말했다.
“물론이죠. 자, 우선 손님부터 들어가고.”
“아니, 함께 들어가겠어요.”
마사오와 미야모또는 안내를 받아 목욕탕으로 갔다. 탈의장에는 경대가 있었고 저녁해가 비쳐 들어왔다.
“이제부터 넌 공중목욕탕에 갈 필요가 없겠군.”
“그렇게 되나? 그건 몰랐군.”
나무로 만든 둥근 목욕통은 남자가 둘이 들어가기엔 무리였다. 우선 미야모또가 들어갔다가 이내 나왔다. 그 뒤에 마사오가 들어갔다.
미야모또가 몸을 닦기 시작했다.
“아야꼬 씨, 너와 함께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네 등을 닦아 주고 싶었을 거야.”
“글쎄, 그럴지도.”
“너, 씻는 거 중지해. 내가 먼저 씻고 나가겠어. 그리고 그 사람을 불러 주지.”
미야모또보다도 먼저 목욕탕에서 나온 마사오는 부엌에서 일하는 아야꼬에게 말했다.
“미야모또가 부릅니다. 등을 닦아 달라고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아야꼬는 식탁에 앉은 마사오에게 새로운 맥주를 꺼내 주고 목욕탕으로 사라졌다.
마사오는 차가운 맥주를 마셨다.
“해가 지면 돌아가야겠군.”
목욕탕은 조용했고 미야모또도 아야꼬도 좀체 나타나질 않았다.
‘정말 그녀도 벌거벗고 들어간 건가? 어쩌면 방이 되기도 전에 관계를? 난 상관없어. 그 여자애가 돌아오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마신 맥주 한 병이 마침 빈병이 되었을 때 아야꼬가 들어왔다.
“미안해요. 혼자 있게 해서.”
“아니, 괜찮습니다. 좋은 정원이군요. 장미가 예쁩니다. 장미나무에 장미꽃이 핀다? 뭔가 이상하지만.”
“예?”
“시의 한 구절입니다.”
아야꼬는 상기한 얼굴이었고 눈이 젖어 있었다.
목욕탕에서 성적인 뭔가가 있었던 것은 분명했고, 마사오는 아야꼬가 그것을 감추기 쉽도록 시 따위를 읊으며 정원으로 눈을 주었던 것이다.
아야꼬는 마사오 옆에 앉았다. 처음 접근해 온 것이다. 향수 냄새가 났다.
마사오의 마음 속엔 아야꼬의 나이가 있었다.
‘서른 둘인가 셋이므로 아직 젊다. 어쨌든 재혼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미야모또와의 사이가 재혼설에 어떤 영향을 줄까?’
그런 것도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미야모또의 친구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했다.
아야꼬에게서 여자 냄새를 느끼고 마사오는 조금 당황했다.
은밀한 목소리로 아야꼬가 말했다.
“세이꼬와의 일도 들었나요?”
“예”
“세이꼬는 부르지 않더라도 올지 몰라요. 오늘 이사는 알고 있으니까. 벌써 이리로 향했을 거예요.”
“예”
“그러니까 돌아가지 마세요.”
이번엔 마사오는 여자의 입김을 느꼈다. 손이 마사오의 팔에 감겼다. 그 팔에 아야꼬의 가슴도 느꼈졌다. 좀 지나친 접근이었다. 보통이라면 나쁜 마음은 갖지 않겠지만 미야모또의 여자임을 알고 있는 만큼 꺼림칙함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아야꼬에겐 목욕탕에서의 유희 여운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마사오는 비밀 이야기를 묻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목욕탕에서 뭘 했습니까?”
“싫어요.”
교태를 부리는 목소리와 함께 마사오의 팔이 흔들렸다.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아직 낮인데요.”
이십대 아가씨 같은 어조였다.
“그러면 뭔가를 하라고 했나요?”
그러자 마사오의 귀에 뭔가가 닿았다.
“조금 씻어 준 것뿐이에요.”
속삭였고, 닿은 것은 입술임을 알았다.
“어디를?”
“후후후. 맥주 가져 올께요”
팔을 놓고 아야꼬가 일어섰다.
‘저 여자도 기회가 있으면 미야모또 이외의 남자와 관계를 갖는 체질일지도 몰라.’
맥주를 갖고 돌아온 아야꼬는 자기 위치에 앉았다. 역시 홍조를 띤 얼굴이었다.
“세이꼬가 올 때까지 있어요”
“오기로 했습니까?”
“그런 기분이 들어요. 분명히 집안 일을 끝내고 밤이 되면 올 거예요.”
미야모또가 목욕탕에서 나왔다. 가운을 입고 있었다.
‘고급품 같군. 저건 분명 죽은 남편이 입던 것임에 틀림없어.’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죽은 자에게 구애받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세이꼬 씨가 올지도 모른다고요?”
“난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러면 전화가 있겠죠.”
미야모또가 그렇게 말하고 앉았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 순간 아야꼬는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아야꼬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나야, 응. 그래. 이제 막 끝났어, 친구가 도와 줘서. 지금 함께 파티를 열었어. 아, 그래? 그것 유감이야. 응, 알겠어.”
통화는 간단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아야꼬가 미야모또에게 말했다.
“오늘밤은 아무래도 나올 수가 없다고 해요. 잘 됐어요.”
솔직한 느낌을 말했다.
30분 후 마사오는 미야모또와 아야꼬의 전송을 받으며 그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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