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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왕-12

제17장
뜻하지 않은 정사(情事)


쐐애액!
섬전같은 그림자가 질주한다.
하후미린,
그는 광란하듯 폭주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의 앞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콰르릉…!
우두둑!
나무이든 거석이든 그가 채 닿기도 전에 부서져 내렸다.
콰르르…!
눌릴대로 눌려 있던 엄청난 잠력!
즉 삼대여인관문으로 얻어진 그 미증유의 천력도!
가히,
신력이라 할 정도의 그 힘들은 칠채성령천불기와 함께 폭발해 버린 것이었다.
"우와아…!"
그는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질주했다.
콰콰콰…!
몸 속에서 들끓는 엄청난 힘,
그것을 어디론가 배출하지 않으면 그는 전신이 터져 죽고 말 것만 같았다.
휘--유--웅!
섬전이라 해도 그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한데 우습게도 그의 손에는 백의가 들려져 있었다.
아마 무의식중에 그것을 들고 나온 모양이었다.
벗은 것에 대한 수치란 인간의 본능이어서였을까?
어쨌든,
파라락…!
그가 달릴 때마다 백의는 그의 손에 들려진 채 무섭게 펄럭인다.
험준한 산봉,
그것을 그는 발 아래 두고 마구 타넘었다.
성하의 짙은 녹음 속으로 뒤덮인 벌판조차 그의 한 번 도약으로 뒤로 밀려 나간다.
쐐---애--액!
아! 그는 실로 가공할 속도로 달리고 또 달렸다.
"크으. 어디엔가 힘을 쏟아 버려야 한다!"
광기 어린 부르짖음을 토하며 그는 얼굴이 시뻘개진 채 내리치닫고 있었다.


아득한 계곡,
백화가 만발한 곳에 한 가닥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랄랄랄…!"
지극히 청아한 음성,
인간의 목소리가 어찌 이리도 고울 수가 있단 말인가?
계곡의 끝에 자리한 아담한 석옥,
그 주위로 한 명의 소녀가 나풀거리며 꽃밭을 뛰놀고 있다.
나이는 대략 십 오륙 세쯤 되었을까?
그 소녀는 너무도 아름답고 귀엽고,
또한 해맑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허나 용모 자체에서 발산하는 미를 앞서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소녀의 지닌바 성스러움이었다.
전혀 속세와 관련지을 수 없는 그 준수함,
그것은 해맑음과 더불어 타인으로 하여금 소녀 앞에서 추함을 드러낼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소녀는 기이하게도 사심을 품을 수 없게 할 만큼 성스러운 천품을 지니고 있었다.
사이든 마이든,
그녀 앞에선 모두 정화될 수밖에 없다고나 할까?
마치 선계의 인물인 듯,
소녀의 성스러움은 타인의 감동마저 불러 일으키게 하고 있었다.

계류,
그 물은 시리도록 차고 맑았다.
소녀는 한 아름이나 꽃을 꺾어 들고 계류가로 나왔다.
이어
그녀는 예쁜 당혜를 벗어 놓은 뒤,
거울같이 맑은 물에 두 발을 담그었다.
"호호… 아이 시원해!"
천진난만한 웃음이 만면에 가득하자 소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왔다.
천상의 선녀가 하강했다면 바로 이 소녀의 모습이리라.
한데 기이한 것은,
마치 신기루와도 같이 소녀의 주위로 은은한 자하가 감돌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 누군가 관상을 보는 사람이 이것을 보았다면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자고 이래로,
몸에서 저절로 자하가 이는 체질은 단 하나,

<천궁성령미신체(天穹聖靈美身體)>

이는 만상전능신혈맥과 비견되는 성체였다.
만상전능신혈맥이 가장 강한 골격이라면 천궁성령미신체는 가장 유한 골격이었다.
한데 이것은 너무나도 부드럽고 선하여 아무리 강한 힘이나 사악한 것이라도 받아들여 순화시키고야 마는 것이었다.
만물을 포용하는 대지와도 같이,
또한 천하에서 가장 지혜로운 혜지를 겸비할 수 있었으니,,
이 천궁성령미신체야말로 천 년에 하나 날까말까 하는 희귀한 체질이었다.
허나 불행히도 천궁성령미신체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다.
그것은 반드시 만상전능신혈맥과 만나 결합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단명!
그렇지 못할시엔 즉, 이십 세를 못 넘기게 된다는 것이었다.
천궁성령미신체를 지닌 소녀,
그녀는 어쩌면 매우 불행한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녀는 불행과 무관한 듯 마냥 즐거워 보인다.
꽃이 있고 물이 있는,
그러한 자연에 도취된 듯,
한데 문득,
"화로는 어디 갔을까?"
그녀는 누구를 찾는 듯 맑은 눈동자를 움직였다.
허나 그 순간 그녀는 멈칫했다.
"우와… 아… 악!"
콰콰콰--!
갑자기 천지를 뒤흔드는 끔찍한 괴성이 들려온 때문이었다.
"어멋! 이게 무슨 소리지?"
소녀는 괴성을 듣자 퉁겨지듯 일어나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 때 계곡의 서쪽 능선에서 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화르르…!
콰드득…!
아름드리 거목들이 나무젓가락이 부러지듯이 쓰러져 가는 것이 아닌가?
"어머나! 무슨 짐승이기에 저토록 사납게 날뛸까?"
소녀는 놀라운 표정이었으나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사나운 맹수라도 자신의 앞에서는 항시 순한 양이 된다는 것을,
소녀는 점차 무심하게 되어 단지 그 괴변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 우…!"
쐐---액!
거창한 장소와 함께 한 줄기 백영이 까마득한 허공으로 치솟았다.
"어머! 사람이잖아?"
소녀는 대뜸 환호성을 발했다.
외로운 산중,
그곳에서의 만남이란 상대가 누구이든 그녀에게는 반가왔던 것이었다.
그 사이,
화르르…!
그 인물은 질풍노도와 같이 소녀 앞으로 쇄도해 왔다.
전신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인물,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하후미린이었다.
하후미린은 깔아 뭉갤 듯 엄청난 기세로 소녀에게 폭사되어 오고 있었다.
허나 소녀는 살포시 웃으며 그 인영을 응시하고 있었다.
콰르르르…!
과연 하후미린은 심상치않은 기세로 급급히 소녀 앞에 내리꽂혔다.
콰르르…!
그 바람에 천 근 거석이 그의 발에 채여 가루로 부서졌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먹이를 발견한 야수처럼 눈 앞의 소녀를 노릴 뿐,
"오빠는 누구… 어멋! 난 몰라!"
소녀는 질색을 하여 얼굴을 가리며 돌아섰다.
눈 앞에 딱 마주쳐서야 그녀는 하후미린이 알몸임을 알았던 것이다.
"어… 엇…!"
하후미린은 정신이 없는 중에도 황급히 몸을 가렸다.
소녀는 이내 살그머니 고개를 돌려 보고는 안심한 듯 돌아섰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나는 성혜예요. 오빠는 누구세요?"
성혜,
소녀에게는 무척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허나 하후미린은 그 무엇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이 순간 그의 머리를 꽉 메우는 것은 한 가지뿐,
(갖고 싶다!)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것이었다.
그것은 여황천후를 대할 때의 음심과는 본질적으로 틀렸다.
다만 뜨거운 것이 체내에 뭉쳐져 그를 충동질하는 것이랄까?
(이 소녀는… 시원할 것 같다!)
그는 소녀에게 성큼 다가섰다.
소녀에게는 경계의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단지,
영문을 몰라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오빠는 무얼 원하시는 거죠?"
그녀는 서슴없이 묻고 있었다.
허나
하후미린은 그 말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그를 점점 몰아붙일 뿐이었다.
"…!"
그는 잠시 말없이 뜨거운 시선으로 소녀를 주시했다.
그러던 어느 한 순간,
그의 두 눈에 뜨거운 불길이 확 당겨졌다.
"허억!"
그는 정신없이 그대로 소녀를 와락 끌어안고 말았다.
"아야! 오빠… 왜 이래요?"
그제서야 소녀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느꼈다.
허나,
이미 때는 늦었다.
찌지직…!
부--욱!
하후미린은 어느새 거칠게 그녀의 의복을 찢어내고 있었다.
"오… 오! 제발 이러시면 안 돼요! 아악!"
소녀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낯선 사내의 손길에 의해 그녀는 알몸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가녀리기는 허나 풋풋한 소녀의 육체,
그 위로 하후미린은 무자비하게 쳐갔다.
"아, 안 돼… 놓아 주세요… 아악! 오빠!"
소녀는 처절히 비명을 토했다.
그러나,
하후미린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으허… 억!"
그는 가뿐 신음을 몰아쉬며 무자비하게 소녀를 짓밟아갔다.
채 피지도 않은 꽃봉오리,
그것이 광폭우에 무참하게 꺾이기 직전이었으니,
"아아…!"
소녀는 공포에 질린 채 힘껏 사내를 떠밀었다.
허나,
"으허엉…!"
발정난 수컷의 광폭함은 그녀의 모든 저항을 무력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따.
이제 갓 솟아오른 봉긋한 젖무덤,
소녀의 유방은 성하의 풋풋한 복숭아와도 같이 싱그러웠다.
분홍빛 젖꽃판에 묻혀 있는 자그마한 유실은 앙증맞기조차 했다.
허나,
그것은 두려움으로 파르르 떨리고,
순간,
사내의 우악스런 손길이 그것을 덮쳤다.
뭉클…!
손길 가득히 잡혀드는 풋풋한 살결,
"악! 아파…!"
소녀는 아미를 찡그리며 비명을 토해 내고 말았다.
"오… 오빠… 정신 좀… 흐윽!"
하후미린을 만류하던 소녀는 일순 나직한 교음을 토했다.
이미 갈가리 찢겨진 소녀의 하체,
푸른 실핏줄마저 보이는 여리디여린 허벅지,
그 살결은 삶은 계란의 막 껍질을 벗겨낸 속살처럼 부드럽고 윤기로왔다.
사내의 손길에 그것은 힘없이 벌어지고,
저… 채 자라지도 않은 뽀송뽀송한 솜털에 덮인 둔덕의 곡선,
그것은 잔인하게 벌어져 붉은 연분홍빛 속살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었으니,
"허억!"
일순,
사내의 목줄기로부터 심한 갈증을 느껴야 했다.
그의 야수적으로 번들거리는 눈!
그 시선은 뚫어 버릴 듯이 눈 아래의 상큼한 옹달샘을 내려보고 있었다.
파르르…!
경련하는 허벅지를 따라 떨리고 있는 도톰한 둔덕,
급기야,
"흡! 으읍…!"
사내의 입이 그대로 옹달샘을 장악해 들었다.
그와 아울러,
"으음…! 이상… 해… 아아…!"
소녀는 내밀한 곳에서 꿈틀거리는 부드러운 설육의 움직임에 황홀한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하후미린은 연신 그 조그만 옹달샘을 깊숙이 흡입해 들었다.
달콤한 감로수는 사내의 목젖을 타고 넘었다.
허나,
그것은 기름이었다.
뜨거운 화기에 폭발적으로 부어지는 기름!
하후미린은 더욱 깊숙이 혀를 움직여 동굴의 내부를 탐험해 들었고,
"흐응… 아아. !"
소녀는 하후미린의 머릿결을 움켜쥐며 봉목을 탈색시켰다.
은근하게 번져 오르는 희열의 해일!
그것은… 소녀의 모세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급속히 퍼져가고 있었다.
허나,
그 열정의 순간은 사라지고 말았으니,
"흐흐흐…!"
하후미린은 머리를 들어올리며 음악한 음소를 흘리고 있었다.
"오, … 빠… 왜… 이래요!"
소녀는 사냥꾼의 손에 걸린 아기사슴처럼 교구를 파르르 떨었다.
그러나,
이미 잡은 먹이를 순순히 놓아줄 위인이 어디 있겠는가?
하후미린은 소녀의 희고 여린 허벅지를 잡아 벌렸다.
활짝 벌어지는 은밀한 소녀의 밀궁,
스--윽!
"흐흐흐…!"
하후미린은 음소를 흘리며 서서히 자신의 하체를 밀착시켜 갔다.
거대한 불기둥이 소녀의 동공으로 투영되고,
"서… 설마… 그것을 성혜의… 몸 속에…!"
소녀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교구를 떨었다.
그랬다.
하후미린의 하물은 소녀를 전율시킬 만큼 거대하게 팽창되어 우뚝 솟아 있었던 것이다.
"제발…!"
허나,
"흐흐…!"
발정난 야수는 애처로운 아기사슴의 애원을 묵살해 버렸다.
스으…!
그 거대한 불기둥은 서서히… 소녀의 꽃잎처럼 부드러운 질 속으로 파고들고,
"안… 돼!"
소녀는 본능적으로 다리를 움츠렸다.
그러나,
강철같이 묵직한 손아귀에 쥐여진 그녀의 허벅지는 더욱 벌어지고,
"어--헝!"
먹이를 덮치는 야수와도 같은 울음을 토하며 하후미린은 그대로 소녀의 좁은 동굴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허… 억!"
급격히 조여지는 엄청난 압박감과 흡입감!
하후미린은 눈을 치뜨며 희열에 몸을 떨었다.
그 순간,
"아---악!"
소녀는 하체를 뚫고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르는 듯한 예리한 흉기의 고통에 화살을 맞은 사슴과 같이 퍼덕였다.
그리고,
"으응…!"
기어코,
난생 처음 겪는 충격과 고통에 그녀는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허나,
하후미린의 행위는 그치지 않았다.
마치,
소녀의 몸을 산산이 부셔 버릴 듯 그는 광폭하게 난무를 거듭했다.
이어,
"으… 허… 어억…!"
그는 절정의 극지점을 향해 치달렸다.
일순,
콰콰콰--!
마치 봇물이 터지듯 그의 양기는 힘차게 소녀에게로 부어졌다.
그러나,
그조차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그것은 소녀에게 이 순간 주입되는 놀라운 힘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양기와 더불어,
삼대여인관문으로 얻어져 몸 속을 다 채우고도 남는 일천 년의 내공이 전달된 것이었다.
"으… 으…!"
혼절한 상태에서 하후미린에게 짓밟힌 소녀,
그녀는 단지 짓밟힌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기연을 만난 셈이었다.
고통을 당했으나,
그 대가로 그녀는 무적의 공력을 얻게 된 것이었다.
더구나,
천궁성령미신체인 그녀의 결함을 보완해 줄 상대인 만상전능신혈맥,
하후미린이 바로 만상전능신혈맥이 아니었던가?
기연!
확실히 그것은 소녀에게 있어 뜻밖의 인연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된 셈인지,
그 순간에는 칠채성령천불기조차 일체의 거부반응이 없었다.
그렇다면?
하후미린과 소녀 성혜(聖慧)!
결국,
이 남녀의 인연을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단 말인가?
"허억…!"
하후미린의 꺼질 줄 모르는 정염은 소녀의 육체를 거듭거듭 탐하고 있었다.
이 또한 필연이었을까?

안개가 걷히듯 차츰 하후미린은 뇌리가 맑아졌다.
이윽고,
"으, 음…!"
그는 정신을 회복하여 눈을 떴다.
허나 그 순간,
"헉!"
그는 대뜸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
그것은 바로 축 늘어진 소녀의 얼굴이 아닌가?
아! 자신의 건장한 몸 아래 한 소녀가 애처롭게도 실신한 채 깔려 있었다.
"이… 이런…!"
그는 대경하여 벌떡 몸을 일으켰다.
채 피어오르지도 못한 소녀,
그녀의 옥같은 나신은 처절하리만큼 끔찍하게 유린당해 있었다.
전신에는 상처투성이에 아랫도리는 선혈이 낭자한 것이었다.
"내… 내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하후미린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허나 곧, 그는 자신의 몸에도 발라져 있는 소녀의 핏자국을 보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하후미린아… 네가 어찌 이런 천인공로할 짓을 저질렀느냐…? 이러고도 하늘을 보고 살 수가 있다는 말이냐?"
그러나,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이내 소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소저… 소저…!"
다급한 심정에 그는 소녀를 깨우려 흔들어 보았다.
허나,
소녀는 전혀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험악한 사태에 그녀는 깊은 혼몽 상태에 빠져 버린 것이었다.
문득,
가녀린 그녀의 섬섬옥수가 하후미린의 눈에 들어왔다.
여인의 손,
빙결처럼 고운 피부와 가느다란 손마디는 몹시도 아름다왔다.
그러나,
소녀의 손은 풀뿌리를 움켜쥔 채 피가 맺혀 있었다.
(고통을 참느라 저리 된 모양이군.)
하후미린은 내심 심한 가책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여인이 정절을… 그것도 생판 모르는 사내에게 난폭하게 유린당했으니. 나는 과연 이 여인에게 어찌 사죄를 해야 하단 말인가?)
그는 한동안 망연히 허공에 시선을 둔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허나 일순,
그는 흠칫했다.
스스스…!
문득 귓가에 들려오는 허공을 가르는 파공성!
(누군가 오고 있다!)
그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이십 리 밖이로군!)
허나,
곧 그는 내심 스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이런 능력을 지녔다니! 정말 뜻밖의 일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 인물의 말소리까지 똑똑히 들려오고 있었으니…
"그 자를 놓쳐선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로잡아야 한다."
독기 오른 여인의 음성,
그것은 지척인 듯 분명하게 들려왔다.

천리좌시지청술(千里坐視地聽術)!

아는가?
만상하후천맥의 후예에게서…
그가 힘을 얻었을 때 자연스레 얻어지는 하늘의 전능신술!
태극천유자 하후량조차 다다르지 못했던 천인지경의 심령술!
그것이… 하후미린의 몸에 나타난 것이었다.

--여인으로부터 천추불멸대초인(千秋不滅大超人)이 탄생하리라!

만상천유록에 남겨진 예언의 서!
그것은 이룩된 것이었다.
수정쌍미정과 독종여황모를 거쳐…
팔대패왕화의 호화지존로를 돌았다.
그리고,
최후로 천궁성령미신체와 합일되어 탄생된 대초인 하후미린!
이제 날아 오르리라!
저 구만 리 장천 위로 웅비의 나래를 활짝 펼칠지니…

"…!"
천리좌시지청술로 인해 그의 고막을 울리는 날카로운 여인의 교갈음,
(여황천후의 음성이다!)
하후미린은 안색을 굳히며 내심 중얼거리고 있었다.
허나 그 순간,
굳어졌던 그의 안색이 경악으로 돌변했다.
허공을 가르는 파공성!
그것은 비단 한 방향이 아니었다.
숨통을 펴듯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급하게 되었군. 다섯 부류의 인물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모두 대륙육합천패의 인물들 같은데… 아직은 감당하기 어려운 자들이다.)
그는 급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던 것이다.
우선,
그는 소녀에게로 다가가 그녀가 쥐고 있던 한 아름의 꽃다발로 몸을 가려 주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급하여 그냥 가나 후일 다시 찾아오겠소. 목숨으로라도 사죄하리라."
이어,
그는 급히 백의를 걸친 뒤 잠시 눈을 감았다.
(이 소녀를 위해서라도 적들을 하루빨리 다른 곳으로 유인해야 한다.)
조급하기 그지없는 심정,
감은 그의 눈위로 여러 가지 경공술이 떠올랐다.
그가 이제껏 보아왔던 무수한 절세천경들 중 가장 뛰어난 경공술들을…

천풍요결(天風要訣) 천풍비섬류(天風飛閃流)!
천뢰진해(天雷眞解) 질풍비뢰(疾風飛雷)!
천월기경(天月奇經) 무혼월영비(無痕月影飛)!

천상삼사의 삼사천비공을 비롯하여,
지저사계의 절대사술인 유령천사지둔술(幽靈天邪地遁術)!
천불대종사의 천불무해에 있는 불문대비공인 여래탄섬비류(如來彈閃飛流)!
금강혈가경의 최대무공이라는 공룡군림비보(恐龍君臨飛步)!

하나만으로도 능히 천하제일을 다툴 만한 엄청난 비공들…
허나,
하후미린은 그 중 가장 쾌속하고 빠른 경공술을 선택해야 했다.
"질풍비뢰! 급한 상황이니…"

---질풍비뢰!

천상삼사 중 천뢰사가 남긴 경공술…
하늘 아래, 비뢰보다 빠른 것은 없지 않은가?
하후미린은 그것을 펼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
문득,
그는 꽃다발에 묻혀 있는 가련한 소녀를 다시 한 번 돌아다 보았다.
"반드시 찾아오리라. 내가 살아 있는 한에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우…!"
한 소리 우렁찬 창룡음!
그와 동시에,
파--앗!
돌연,
지면을 박차자마자 그는 엄청난 기세로 일백 장 상공으로 뛰어 올랐다.
이어,
쐐--액!
섬전같이 허공을 가르며 그는 서북 방향으로 돌진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서북쪽이닷!"
다섯 방향에서 좁혀 오던 수십 줄기의 인영들이 즉각 서북 방향으로 쫓아갔다.

잠시 후,
계곡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들었다.
무덤 속 같은 고요,
그 속에 애처로운 한 소녀만이 외롭게 홀로 남아 있음은…
대략 일다경쯤 지났을까?
스스슥…!
한줄기 시뻘건 인영이 계곡으로 날아들었다.
혈영,
"대륙육합천패라는 망나니들이 무더기로 나타난 것을 보면 무엇인가 막중한 일이 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중얼거리며 날아드는 그 인물,
화르르…!
마치,
화산을 연상시키듯 그는 시뻘건 안색에 혈의를 입고 있는 노인이었다.
계곡에 들어서자 그는 곧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성녀께서 어디로 가셨지?"
그러다 문득,
그는 흠칫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직감한 것이었다.
노인은 두 눈에서 강렬한 신광을 뿜으며 천천히 걸었다.
그 때,
"으… 으… 음…!"
가냘픈 한줄기 신음성이 그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헉!"
쐐---액!
노인은 대경하여 즉각 신음성이 들린 곳으로 쏘아져 갔다.
다음 순간,
"성… 성녀님!"
그는 대경실색하여 비명을 터뜨리고 말았다.
꽃더미에 묻혀 있는 유린당한 소녀,
그 소녀를 발견하자 노인은 기절할 듯 놀란 것이었다.
"성녀님!"
노인은 와락 소녀를 끌어안았다.
소녀는 그제야 간신히 눈을 뜨고 노인을 보았다.
"화… 화노… 무서워요… 흐윽!"
그녀는 노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우아악…! 어느 놈이… 어느 놈이 감히 성녀님을 이 모양으로!"
우르르…!
노인은 이를 부드득 갈며 분성을 내질렀다.
화라락!
그의 눈에서는 무시무시한 화광이 번뜩였다.
"죽이리라! 성녀님의 육체를 유린하다니! 천만 배로 갚아 주리라!"
그는 광분하여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허나 일순,
무엇인가 반짝이는 물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풀숲 사이에서 비춰지는 은은한 보광!
"이… 이것은…!"
노인은 즉시 그 물체를 집어들었다.
금빛의 슬!
아!
그것은 바로 하후미린이 자신도 모르게 떨구고 간 황금슬이 아닌가?
그것을 본 순간,
슥,
화노는 두 눈에서 기광을 번뜩였다.
"크녠… 황금슬…! 이것을 지녔던 놈을 찾으면 되리라!"
이어,
그는 조심스럽게 소녀를 안아들었다.
"일단 가십시다, 성녀님!"
화르르…!
그는 즉시 몸을 날려 계고 끝의 석옥으로 날아갔다.


하후미린,
그는 뜻밖의 희열에 도취되고 있었다.
(힘이 넘치는구나!)
절로 터지는 탄성!
쐐---애--액!
귓가로는 비단폭이 찢어지는 듯한 바람소리가 들리고,
주위 경물들이 휙휙 스쳐 지나간다.
(여인제국후 여황천후 덕에 얻은 힘이기는 하지만 너무도 강맹하구나.)
하후미린은 내심 희안한 감격에 휩싸여 갔다.
달리면 달릴수록,
지치기는커녕 더욱 솟아나는 힘!
허나,
지금 그가 사용하는 힘은 전체의 백분지 일도 채 안 되는 힘이었으니…!
만일,
그가 극상의 내공심법을 익혀 그 잠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그는 천하무적이 될 수가 있었다.
스스스…!
협곡이 눈앞에 이르자,
하후미린은 힘들이지 않고 선풍처럼 그곳을 날아 걸었다.
아!
허나,
그 협곡은 무려 그 넓이가 이백여 장에 이르고 있었으니…!
하후미린은 씨익 웃었다.
매우 만족스러운 듯,
허나,
그 때였다.
"호호호. ! 기다리고 있었다!"
싸늘한 여인의 웃음소리가 그의 앞을 막았다.
동시에,
화르르…!
휘--익!
십여 줄기의 왜영들이 그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아차! 지름길이 있었던 모양이군, )
하후미린은 비로소 자신이 너무 경솔했음을 느꼈다.
허나,
후회할 때란 이미 늦은 때가 아닌가?
"용케도 대법에서 빠져 나갔으나 이번에는 어림도 없다."
풍염한 육체의 미소부가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아름답다 못해 풍요로움마저 풍기는 여인,
그녀는 바로 여황천후였다.
하후미린은 그녀를 보자 버럭 화를 내었다.
"여황천후! 더 이상 본인을 귀찮게 만들지 마시오!"
그는 정녕 절실한 심정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황천후는 그 말에 코방귀를 날렸다.
"호호홋…! 웃기는군! 다 지어 놓은 밥을 포기하란 말인가?"
그녀는 집요한 야망을 담은 시선으로 하후미린을 노렸다.
문득,
스스스…!
투명한 경기가 여황천후의 전신에서 일어나 하후미린을 휘감아갔다.
"우--웃!"
하후미린은 대경했다.
마치 전신이 쇠줄로 감기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 것이었다.
동시에,
"함께 가 주어야겠다!"
날카로운 교성이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아!
이전에도 역시 그를 묶었던 소녀무영천망류!
여황천후는 다시 그를 묶어 데려 가려는 것이었다.
허나 일순,
화르르…!
위---잉!
거창한 불력이 일어나 하후미린을 감싸고 돌았다.
극강하기 이를 데 없는 성스러운 칠채서기!
"앗! 칠채성령천불기…!"
여황천후는 눈이 부셔 뜨지도 못한 채 당황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의 안색은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졌다.
허나,
그 정도에 물러설 여황천후가 아니었다.
"하지만 놓치지 않는다!"
츠츠츠…!
소녀무영천망류는 하후미린을 급격히 조여갔다.
"우욱!"
하후미린은 심한 압박감에 일순 신음을 발했다.
허나 곧,
위--잉!
고오오…!
그는 불력을 스스로 일으켜 이에 대응했다.
조여가는 힘과 그에 저항하는 힘!
그것은 실로 볼 만한 내공의 대결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하후미린이 열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태는 돌변하고 말았다.
휘류---류--륭!
파파팍--!
마치,
보이지 않는 새로운 힘이 가세된 듯 하후미린은 거창한 경기를 일으켰다.
순간,
투투… 투툭!
소녀무영천망류는 그만 가닥가닥 끊기고야 말았다.
여황천후는 안색이 샛노래졌다.
"이런 괴물 같은 놈!"
하후미린은 그녀를 향해 당당한 음성으로 외쳤다.
"본인을 막지 마오. 오늘은 그냥 가나 다시 만나면 그대를 다치게 할 것이오!"
이어,
스스슥…!
그는 가볍게 창공으로 떠올랐다.
찰나,
"막아랏---!"
"옛!"
여황천후의 외침과 아울러,
그녀를 둘러 쌌던 여인들이 일제히 하후미린을 향해 날아올랐다.
팔대패왕화!
하후미린에게서 여인의 몸임을 느꼈던 여전사들,
그녀들은 하후미린을 에워싸고 있었다.
절대 놓치지 않을 기세로…
한데,
그 때였다.
돌연,
"우하하핫--!"
천지를 진동하는 엄청난 장소성이 장내에 메아리쳤다.
여황천후는 순간적으로 외쳤다.
"조심해랏! 그자는…!"


제18장
구주사비혈(九州四秘血)


채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위--이--잉!
콰르르르…!
엄청난 뇌강의 강륜이 무섭게 여황천후를 비롯한 팔대패왕화를 휩쓸었다.
콰릉---!
콰르르르릉--!
콰콰콰쾅---!
천번지복이던가?
그것은 무시무시한 광풍으로 천지를 휘몰아쳐 갔다.
"크--윽!"
"으---음---!"
허공으로부터 신음성과 함께 노파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지면에 나뒹굴었다.
동시에,
화르르…!
거대한 체구의 홍포노인이 허공에서 날아 내렸다.
마치 뇌신을 보듯,
엄청난 기개를 지닌 노인이었다.
여황천후는 독살스런 눈으로 그를 노려 보았다.
"뇌정마벽종! 당신이 감히…!"

--뇌정마벽종!

바로 그는 대륙육합천패 중 뇌정마계의 계주인 뇌정마벽종이었다.
언제인가,
하후미린과도 일대면이 있었던 인물,
뇌정마벽종은 우렁찬 대소를 터뜨렸다.
"우하하핫…! 본종은 천후와 오랜만에 회포나 풀고자 이렇게 왔소이다!"
그 말에 여황천후는 발끈했다.
"비켜욧! 본후는 당신과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요!"
이어,
스스슥…!
그녀는 몸을 날려 그의 옆을 지나려 했다.
허나,
"핫하… 어딜 가시려오?"
콰르릉--!
쿠--앙!
돌연,
대지를 태워 버릴 듯한 엄청난 뇌기가 여황천후에게 쇄도했다.
"당신이 기어코 나를 가로막으려는군요!"
여황천후는 이를 악물며 뇌정마벽종을 쏘아 보았다.
뇌정마벽종은 대답대신 급히 하후미린을 향해 외쳤다.
"임마! 안 가고 무얼 하느냐? 묵붕천비영과 황금재벌 놈들이 들이닥치기를 기다리느냐?"
그제서야 하후미린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를 도와 주러 왔구나!)
그는 감격하여 깊이 포권했다.
"후일… 사례를 하겠습니다."
다음 순간,
화르르…!
그는 지체없이 천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이… 이런…!"
여황천후는 그가 사라지자 대노하여 길길이 뛰었다.
그 때,
"헛허… 그렇게 화내실 게 무에 있소?"
뇌정마벽종의 조소가 그녀의 약을 바짝 올려 놓았다.
뒤이어,
"야---압!"
콰르릉---!
콰쾅---!
"흥! 네깟 것이!"
휘류류--륭--!
쩌--쩌--쩡!
격돌을 하는지 굉음이 난무했다.

하후미린은 그 소리들을 뒤로 하고 질풍같이 전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쐐--액!
허나,
십 리를 채 못 갔을 때였다.
돌연,
그의 양 옆으로 다가서는 인영들이 있었다.
스스스…!
두 부류의 인물들,
한쪽은 금갑을 두른 삼십육 인의 괴인들로서,
하후미린은 대략 그들을 알아 보았다.
(삼십육금황천신…! 십 년 전에 철혈전후에게 당했으나 무적이라고 한때 불리우던 황금재벌의 황금수호무신들…)

한편,
스스으…!
다른 쪽에는 얼음으로 빚은 듯 으스스한 한기를 뿜어내는 혈령괴인들이 다가오고 있다.
그들 한 명 한 명에게서 각기 풍기는 지독한 살기를 대하자 하후미린은 내심 중얼거렸다.
(이 자들은 대륙육합천패 중 전문살수집단인 신비혈련의 살수들이다…)
하후미린의 안색은 몹시 침중해지고 말았다.
여황천후의 마수에서 벗어 나기가 무섭게,
대륙천하를 주름잡는 대륙육합천패에게 걸려 들다니…!
그는 염두를 굴리며 궁리를 짜내야 했다.
(이 자들을 우선 벗어나야 하거늘… 어찌해야 한다?)
허나,
방법은 언뜻 떠오르지 않는 가운데,
스스스…
허공을 밟으며 한 명의 금포노인이 다가왔다.
전신을 보옥으로 뒤덮다시피 한 인물,
그는 대뜸 하후미린을 회유하려 했다.
"아이야, 본벌주를 따라 가자, 그러기만 하면 대륙천하를 다 살 수 있는 재화와 천하의 미녀들이 모두 네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귀공이 바로 황금재벌주이신 황금대야이겠구료?"
하후미린이 묻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노부가 황금대야이지. 그것을 알았으면 어서 이리 와야 되겠구나."
아아… 그랬는가?

--황금대야 금사신!

저… 구주팔황을 황금으로 뒤덮을 수 있다는 황금성--황금재벌!
그 황금재벌의 지존인 자,
아울러,
대륙의 육패천인 중 황금의 신!
제자인 금황신후 금사란을 보내,
하늘의 용을 낚으려 했던 바로 그 자였다.
황금대야는 하후미린에게서 욕심을 불러 일으키느라 은근히 애를 쓰고 있었다.
허나,
하후미린은 딱 잘라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본인은 재화도 미녀도 원치 않소."
"무어라고? 이런 방자한 것 보았나?"
황금대야는 대노했다.
기대가 클수록,
실패했을 때의 실망도 비례하여 커진다.
황금대야 금사신!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이 차지하지 못한다면,
남에게도 주기 싫은 것이 아닌가?
그는 살심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스스스…!
때를 맞추어 양 파의 고수들이 즉각 포위망을 좁혀 왔다.
그것을 본 하후미린은 드디어 한 가지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별도리 없다. 한 번도 무공을 써보지 않았으나 뚫고 나가려면 한 번 시도해 보는 수밖에…)
이윽고,
그는 천천히 쌍수를 들어 올렸다.
스스슥…!
일순,
그의 쌍수는 수천만 개의 수영을 일으켰다.
휘류류…
핏빛의 사기를 내뿜는 혈수,
아!
그것은 바로 유령천사종의 천사지존수가 아닌가?
허나,
실전은 처음인 하후미린이 그것을 완벽히 구사해 내기는 불가능했다.
황금대야는 대뜸 그 허를 파악하고는 코웃음을 쳤다.
"그 따위 무공으로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가?"
한데,
그 때였다.
쿵!
쿠--웅!
돌연,
삼십육금황천신들과 신비혈련의 살수들이 짚단처럼 쓰러져 가는 게 아닌가?
"헛!"
황금대야는 아연실색했다.
허나 그 순간,
츠츠츠…!
푸시시시…!
괴이하게도 쓰러진 삼십육금황천신들은 금갑만을 남긴 채 한 줌 혈수로 화해 갔다.
"어느 놈이냐? 독공을 쓴 놈이?"
황금대야는 버럭 일갈했다.
"이… 이런!"
하후미린까지도 불의의 사태에 흠칫했다.
그 때,
"호호호! 황금대야! 감히… 본 구주독밀계의 독인지존을 핍박하다니…!"
싸늘한 살기 어린 여인의 교갈이 터짐과 아울러,
스스스…!
밤안개와도 같이 피어 오르는 묵기류!
한데,
푸시시…!
오오… 녹아 내리고 있었다.
흑무에 닿는 나무며 기암이 모조리 한 줌의 독수로 흘러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쩌----엉!
그 흑무 사이로 폭사해 나오는 두 줄기 흑안!
횐자위는 허나도 없는,
흑진주와도 같이 까맣고 영롱한 눈이었다.
그 눈에서는 시퍼런 독강전이 줄기줄기 뻗어 나오고 있었다.
"…!"
하후미린은 흠칫하며 안색을 굳혔다.
반면,
"그대는…!"
황금대야의 안색은 시커멓게 굳어가며 경련마저 일으키고 있었다.
"구주독밀계(九州毒密界)… 전설의 구주사비혈(九州四秘血) 중 독종비혈맥(毒宗秘血脈)이 나타나다니…"
황금대야는 충격을 받은 듯 침음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럴 수가…!

독종여황모(毒宗女皇母)!

황금대야를 제어하고 나선 인물은 바로 구주독밀계의 계후인 독종여황모였던 것이었다.
만독묵강대법을 시술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던 여인,
그녀는 만독성황지를 벗어난 후 지금까지 암중에서 하후미린을 미행하며 보호했던 것이었다.
황금대야 금사신!
대륙을 받치는 여섯 하늘 중 황금천… 황금재벌의 지존!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구주사비혈!
그 신비로운 힘이 드러날 때,
천하의 판도가 뒤바뀌리라는 사실을,
사실,
황금의 힘은 천하를 뒤덮을 수 있는 거력이 아니겠는가?
황금대야 금사신이 보는 천하,
그것은… 세 가지였다.
우주오대초인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신화!
그리고,
대륙의 여섯 하늘--대륙육합천패!
변황의 공포혈세---패천사상혈세!
대륙과 변황을 장악하고 있는 파천황의 힘을 지닌 패세의 그것들이 둘이요…
거기에, 이제껏 드러나지 않았다.
오직, 전설상으로만 구전되어 내려오는 신비의 천외세력이 바로 구주사비혈이었다.
그것이 마지막 세 번째였다.

(구주독밀계. 그 인간 이전의 전설이 현세하다니…)
황금대야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름을 느꼈다.
허나,
그는 곧 정신을 추스렸다.
황금재벌의 지존좌!
그 자리는 오직 하늘만이 차지할 수 있는 좌였다.
황금대야 금사신!
그는… 대륙의 여섯 하늘 중 일천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대륙의 권위였고,
황금대야는 예의 오연한 기세로 일갈을 터뜨렸다.
"황금재벌은… 구주독밀계와 아무런 은원이 없거늘… 어찌 독수를 쓰시오?"
노기마저 서린 일갈이었다.
그런 그의 시선은 이미 녹아 독수로 화한 삼십육금황천신을 보며 파랑을 일으키고 있었다.
허나,
독종여황모는 태연히 대꾸했다.
"호호! 그 분은 본 구주독밀계의 일천독종녀의 정인이시자 독종여황모의 부군이세요!"
하후미린을 바라보는 독종여황모의 봉목,
그 검은 흑진주같은 눈망울은 촉촉히 젖어 있었다.
짙은 사랑의 애수가 넘쳐 흐르는,
한데,
"저 자가 구주독밀계의 독인지존?"
황금대야는 아연한 시선으로 새삼스레 하후미린을 돌아보았다.
하후미린,
"…!"
그는 비로소 뇌리의 일각에 잡혀지는 환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군! 여황천후에게 끌려갔고… 혼미한 상태에서 들은… 음성.)
아울러,
그는 생각을 끊어야 했다.
찰랑이는 물결 속에서,
한 마리 야수가 되어 터질 듯한 여체를 미친 듯이 탐하는 자신,
그 황홀한 영상이 피어 오르니,
(독종여황모…)
하후미린은 새삼스런 시선으로 독종여황모를 응시했다.
"…"
"…"
남녀의 뜨거운 시선이 서로 교차되고,
그들을 바라보는 황금대야의 시선은 복잡하게 교차되고 있었다.
(일이 꼬이는군! 만일 구주독밀계에 놈을 넘긴다면 천하지존의 군림야망은 버릴 수밖에 없는 일…)
황금대야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포섭하든지 죽이든지 해야 한다! 놈이 구주독밀계와 합일된다면 황금재벌은 황금의 하늘로밖엔 존립할 수 없다!)
츠으으!
그의 눈은 어떤 확고한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지금 이곳엔 본벌 외에도 육합이 모두 모여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가는 법! 그렇다면…)
미소,
황금대야의 입가로 음모의 미소가 번져갔다.
(흐흐! 놈은 이미 육합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 그들은 놈을 죽일 것이다!)
츠츠츠---!
황금대야는 하후미린을 노려보며 살기를 발했다.
(저 계집만 막는다면 용(龍)은 죽는다!)

--용은… 죽는다!

황금대야 금사신!
그의 마음은 그렇게 결론짓고 있었다.
그리고,
스--윽!
그는 성큼 앞으로 나섰다.
"독종여황모라 했는가?"
츠--팟!
황금대야는 살광을 일으키며 독종여황모를 직시했다.
"감히… 본녀를 막겠다는 것인가?"
전의를 일으키며 독종여황모는 싸늘한 냉갈을 터뜨렸다.
그와 함께,
그녀는 하후미린에게 재빨리 전음을 보냈다.
"상공! 어서… 피신하세요! 그리고. 아미태산의 무저독룡탄으로 왕립해 주시길."
"…!"
그녀의 전음을 받은 하후미린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허나,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힘을 얻었으나… 운용할 묘를 터득해야 한다!)
하후미린은 내심 결심을 굳혔다.
그는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체내에 용솟음치는 어마어마한 힘을,
그러나,
그것은 각기 동떨어져 제멋대로 그의 내부를 휘젓고 있을 뿐이었다.
하후미린에겐 그것을 제어하며 운용할 수 있는 새로운 천무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럼… 보중하시길…"
하후미린은 독종여황모에게 포권해 보인 뒤,
슥…!
그는 즉시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휘--익!
그러자,
"서랏!"
황금대야는 짐짓 그를 뒤쫓으려 했다.
순간,
"호호! 황금대야! 본녀를 부숴야만 그 분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츠츠츠츠…!
가공할 묵강독류가 황금대야를 휘감아왔다.
"감히…! 금황천강폭--!"
쩌--엉!
황금대야의 전신에서 엄청난 금광이 폭발해 오르며 묵강독류에 부딪혀 갔다.
콰--우우우--!
콰콰콰---쾅!
대기가 찢어질 듯 떨어 울리고,
땅거죽이 균열되어 뒤흔들린다.

대륙의 하늘과,
구주의 신비혈의 격돌!
그 굉렬한 전투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한편,
쐐--애액!
하후미린은 모든 속력을 다 내어 동북 방향으로 치달렸다.
그러던 약 일다경 후,
"허엇!"
그는 급히 발길을 멈추고 말았다.
그의 앞,
그곳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단애가 아닌가?
마치,
천제(天帝)가 도끼로 대지를 찍어 갈라 놓은 듯 험준한 절곡,
(휴우… 길을 잘못 들었다.)
그는 내심 낙심천만이었으나 이내 돌아서 다시 달리려 했다.
허나 그 순간,
스… 슥…!
돌연,
한 무더기 묵영이 그의 앞에 바짝 내려섰다.
(으음?)
하후미린은 흠칫하여 그 인영을 주시했다.
내려선 인물,
"…"
그는 초로의 노인으로 흑포를 걸치고 있었다.
하후미린은 그를 대하자 대뜸 심한 압박감을 받았다.
(엄청난 기도로군…!)
과연 그러했다.
츠으으…
흑포노인의 전신에서는 태산 같은 기도가 흐르고 있었다.
더욱이,
걸치고 있는 흑포와 한 자루 묵직한 묵도가 사뭇 위압감마저 조장한다.
흑포노인,
그는 형형한 안광을 발하며 하후미린을 주시했다.
"그대가 하후미린! 만상하후천맥을 이은… 천림소종사인가?"
묵직한 음성,
음성마저도 엄청난 무게가 깃들어 있다.
하후미린은 똑바로 그를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소이다. 귀공은 혹시 묵붕천비영주가 아니오이까?"
그 말에 흑포노인은 사람 좋게 웃었다.
"헛허. 맞네. 노부가 바로 묵붕지존이라는 사람이지."
(역시.)
하후미린은 그 이름을 듣자 대번에 안색을 굳혔다.

묵붕지존!

아는가… 그 이름을…?
하늘의 제왕!
그렇게 불리우는 자를,
지상에서 가장 빠른 천비인!
대륙육합천패 중 묵붕천비영의 지존!
십 년 전,
그 자는 다른 육합과 마찬가지로 대륙군림의 기치를 들어 올리며 야망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허나,
그의 군림야망은 무서운,
저… 공포의 바람--천년풍!
그 무적철혈풍에 휘말려 처절히 좌절되어야만 했다.
아울러,
묵붕조인들도 대륙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한데,
지금,
묵붕천비영은 묵붕지존과 함께 찬란한 부활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으니,
그 묵붕조인군단은 천하정복의 기치를 드높이 올린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하후미린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의 제왕이,
하후미린은 내심 복잡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묵붕지존. 이 인물은 철혈전후에게 초주검을 당하고서도 천하제패의 야망을 버리지 않는 대효웅이다. 그러니 이자가 나를 찾는 이유는 뻔하다.)
그는 매우 안색이 침중해졌다.
(곧 나를 이용하여 천하 위에 서려는 것이다.)
이미,
그로서는 묵붕지존의 속셈을 훤히 알고도 남았다.
그 때,
묵붕지존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소형제, 내키지 않더라도 자네는 본 영주와 함께 가 주어야겠네."
천하의 어느 인물이 이 말에 항거하겠는가?
허나,
하후미린만은 달랐다.
"영주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그는 점잖게 잘라 말했다.
그러자,
묵붕천비영주는 은근히 힘주어 말했다.
"설마 본 영주로 하여금 손을 쓰게 하지는 않겠지?"
"미안하오이다."
하후미린은 역시 힘주어 대답했다.
이어,
슥…!
그는 천천히 쌍수를 쳐들었다.
그리고는 내심 염두를 굴렸다.
(기습이다! 천사지존수를 동시에 걸쳐 시야로 가린 뒤, 유령천사지둔술로 벗어나야 한다.)
그의 머리는 재빠르게 회전하여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천사지존수!
역사상,
최강의 절대사종이었던 유령천종!
그가 죽음으로 얻은 영감을 통해 남긴 사계최후의 대사공!

관음천불수!
대륙의 원세불도계의 장을 열었던 대성니--보타성니!
그녀가 남긴 대륙최극강의 수공!

유령천사지둔술!
하늘마저 가두어 버릴 수 있다는 초자연진--천라금쇄천죽대진!
그것마저 뚫었던 유령의 신법!

그 세 가지는 가히 무의 최고봉에 오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만일,
그 중 한 가지라도 극성에 이르도록 연마하여 펼칠 수 있다면,
하후미린은 능히 지금의 난관을 돌파할 수 있었다.
허나,
그가 그토록 절실하게 바랐던 힘!
그것은 너무나 돌연히 자신도 모르게 찾아 들었고,
그것을 제어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이 그는 쫓김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으니,
어찌하겠는가?
한편,
묵붕천비영주 묵붕지존은 감탄과 조소가 섞인 투로 한 마디 덧붙였다.
"무공을 알고 있다니, 놀랍군."
허나 그 때,
"천사지존수! 관음천불수!"
낭랑한 외침이 일며 돌연,
쩌쩌쩡!
츠츠츠…!
일시에 십 장 방원이 수천, 수만의 수영으로 뒤덮였다.
동시에,
콰르르릉…!
산악이라도 허물어 버릴 듯한 엄청난 강기가 묵붕지존을 덮쳤다.
"헉!"
설마했으나 묵붕지존은 비로소 대경실색했다.
"우야--압!"
그는 감히 얕볼 수 없음을 알자 급급히 마주 경기로 쓸어 갔다.
콰르르…!
푸학--!
허나 그 순간,
스스슥. !
하후미린은 그의 시야에서 흐뜨러지고 말았다.
마치,
유령과도 같이,
(아차! 속았다!)
묵붕지존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
대륙육합천패 중 하늘의 제왕!
천하제패의 야망을 가진 대효웅!
그는 즉각 쌍수를 내쳤다.
"벗어나지 못한다! 묵붕파천강(墨鵬破天剛)!"
콰르르릉!
쿠아앙!
돌연,
엄청난 폭풍이 일었다.
동시에,
천지가 거대한 묵붕의 그림자로 뒤덮이고 말았다.
"아!"
한 줄기 절망이 담긴 신음이 터졌다.
하후미린,
그는 그 어디로도 빠져 나갈 수 없음을 느낀 것이었다.

묵붕파천강!

일천 마리 묵붕들이,
그대로 하늘에서 쇄도해 오며,
그 가공할 부리로 쪼아들 듯이 짓쳐드는 수천, 수만 개의 날카로운 강기!
콰콰콰--!
그것들은 불완전한 하후미린의 공세를 무차별 부수며 압박해 오고 있었다.
물론,
천사지존수나 관음천불수가 약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다만,
하후미린은 체내의 엄청난 잠력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가 없어 불완전하게 시전되는 것이었으니,
허나,
하후미린은 정신을 집중시켜 똑바로 정면을 주시했다.
그 순간,
(모두 칠십이변이 있다!)
그의 눈에 묵붕파천강의 변화가 그림같이 확 들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후미린은 그에 대처할 능력이 아직껏 없는 상태였다.
퍼--억!
"크---흑!"
그는 처절한 비명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안면이 무너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부--웅…
그는 그대로 허공 중에 퉁겨지고 말았다.
"이… 이런!"
묵붕천비영주 묵붕지존은 질겁을하여 그의 신형을 받아 보려 했다.
허나,
허공으로 날아갔던 하후미린,
그는 그대로 긴 호선을 그리며 끝없는 단애 밑으로 추락하고 말았으니…
"아아---아악!"
긴 비명의 메아리를 들으며 묵붕지존은 쓴 입맛을 다셨다.
"으음. 실수다. 묵붕파천강까지 쓰는 것이 아니었는데…"
상대에게 속임수를 당했는가 싶은 순간,
그는 너무도 흥분하고 만 것이었다.
그로 인해,
그는 너무도 쓰디쓴 실패를 맛보아야만 했다.
덕분에,
얻으려던 것을 영원히 잃고 말았으니,
후회란 너무도 속절없는 것에 불과했다.
"…"
망연한 시선,
그의 시선 속에 들어오는 것은 깎아지른 듯한 단애뿐이었다.
휘---잉!
거센 산풍이 묵붕지존의 흑포를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하후미린,
용은 죽은 것인가…?


콰르르르…!
쿠르르릉…!
휘몰아치는 격랑의 소용돌이,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시커먼 격랑이 몰아친다.
돌연,
"우… 우… 우…!"
창노한 장소성이 격랑을 뚫고 메아리쳤다.
그와 함께,
스스스…!
한 줄기 인영이 우측의 석벽으로 날아올랐다.
아!
능공허도의 경공!
화르르…!
인영은 절벽 사이로 튀어나온 석반에 가볍게 올라서고 있었다.
밑으로부터 그곳의 높이는 무려 백여 장,
뉘 있어 그 높이를 이렇듯 쉽게 오르내리는가?
그 인물,
그는 마의를 걸친 평범한 촌노였다.
한데 문득,
"드디어…!"
주름진 노인의 얼굴에 미묘한 흥분의 기색이 일렁였다.
그는 두 눈에 광채를 빛내며 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주시하는 곳,
그곳에는 검붉고 거대한 바위가 허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두 자 높이의 나무가 한 그루 솟아 있었다.
바위에 나무가 자라다니…!
분명히 그것은 괴목임에 틀림없으리라.
과연, 그것은 괴목이었다.
반투명한 나무줄기,
거기에도 잎사귀라고는 허나도 없고,
단지 그 끝에 주먹만한 자색의 과일이 열려 있었다.
마의노인은 그 과일을 보며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태양천령금과(太陽天靈金果)! 백 년을 하루같이 기다렸거늘… 오늘에야 열렸구나!"
아!

<태양천령금과>

천지간의 태양정기를 흡수하여 십만 년 만에 성숙한다는 전설의 영과!
이는 복용하면 무려 십갑자의 공력을 줄 뿐만 아니라,
하늘이라도 태워 버릴 엄청난 태양화력을 얻을지니!
이 효능으로 인해 화문에서는 무가지보로 불리우고 있지 않은가?
마의 노인은 잔뜩 긴장하여 태양천령을 주시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으… 스으…!
태양천령의 강렬한 향기가 절곡 전체를 진동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차츰 태양천령의 색은 반투명하게 변해갔다.
그러던 한 순간,
"되었다!"
마의노인은 희열을 감추지 못하며 급히 작은 옥갑을 열어 과일 밑에 대었다.
뚝!
과일은 때를 딱 맞추어 옥갑 속으로 떨어졌다.
노인은 재빨리 옥갑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태양천령금과… 이것이면 전후님은 잃은 정력을 오성쯤은 회복하실 수 있으리라!"
허나 문득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덮었다.
"가장 거친 광풍이 불려 하거늘…!"
깊은 탄식이 절로 그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신농의맥(神農醫脈)을 이었다는 나 천약종(天藥宗)의 재간으로도 전후님의 전신철혈패력(戰神鐵血覇力)을 되찾아 드릴 수가 없으니…"
마의노인,
그는 자신을 가리켜 이렇게 칭했다.

천약종!

그것은 의계(醫界)의 신화적인 이름이었다.
의도쌍천류 중 천약류인 신농의맥!
그 성스러운 피를 이어온 신농의황의 후예가 바로 그였던 것이었다.
아울러 그는 일갑자 이전에 모습을 감춘 고고한 한 마리 백학과도 같은 존재였으니!
철혈전후!
삼 년 전 육합패혈풍을 잠재웠던 천 년의 … 바람!
그 철혈초인녀의 곁에서 보필해 온 유일한 인물이 바로 그였다.

"돌아가 보아야겠군!"
볼 일을 마치자 천약종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화르르…!
그는 곧장 절벽으로 뛰어내렸다.
마치 선학인 양 가벼운 날갯짓으로 그는 날아내린 것이다.
한데 그 순간,
"엇!"
갑자기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격류에 휘말려 내려오는 한 명의 백의인.
그의 노안에 그것이 뜨인 것이었다.
"천장애에서 떨어졌는가?"
쐐---액!
그는 그대로 격류 속의 백의인에게 쏘아져 갔다.
이어,
"차--앗!"
노인답지 않은 우렁찬 일성이 흘렀다.
동시에,
콰르르…!
파--팟!
갈영이 번뜩였는가 싶은 순간,
천약종은 이미 백의인을 허리에 끼고 격류가로 나와 서 있었다.
허나 곧 그는 혀를 끌끌 찼다.
"이런 … 지독한 강기에 얼굴이 망가졌군."
백의인!
과연 그의 얼굴은 강한 힘에 가격당해 완전히 으스러져 있었다.
이목구비의 구별은커녕 그것이 사람의 얼굴인지조차 불분명한 정도였으니!
마치 수천, 수만 마리의 까마귀에게 쪼여 먹힌 듯,
천약종은 백의인을 물가에 누이고는 찬찬히 살펴보았다.
허나 일순,
"헉!"
천약종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다시 경악은 환희로 돌변하고,
"하하하… 만상… 전능신혈맥!"
그는 이내 하늘을 우러러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그러다가 또다시 그는 백의인의 전신을 더듬어 보았다.
마치 무엇을 확인하여 눈에 담아 두려는 듯,
한데 그 순간 그의 얼굴에는 또 다른 경악이 겹쳐졌다.
"오오… 전설의 신비… 수정금강밀법에… 만독묵강대법… 소녀혈음쇄심술법…!"
그는 완전히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 어쩔 줄을 몰라했다.
"훌훌… 만상전능신혈맥에 그… 여인의 신비혈이 투입되어 힘이 넘치는도다!"
싱글벙글 그는 기쁨에 들떠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비록… 그 힘이 너무도 가공하여 조절을 못하나… 전후님이시라면 능히…!"
이어,
그는 품 속에서 급히 옥갑을 꺼냈다.
"전후님께 드리려 했으나 이 자에게 더 필요할 것 같군!"
옥갑을 열자 나온 것은 물론 예의 태양천령금과였다.
천약종은 태양천령금과를 조금도 아낌없이 백의인의 입에 털어 넣었다.
긔고는 더 이상 지체치 않고 그는 백의인을 옆구리에 끼어들었다.
"핫하. 비록 얼구이 망가졌으나… 태양천령금과의 효능에 노부의 솜씨를 더하면 고금제일미남으로 환생하리라!"
파-앗!
화르르…!
그는 기쁨에 찬 외침을 뒤로 남기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 갔다.


풍운대륙!
대륙천하는 야망의 장으로 화했다.
그 폭발의 근원은 한 명의 용의 죽음으로 비롯되었으니…

--천세잠룡 하후미린!

비로소… 알려졌다.
천하에서 그 이름을 아는 자는 백이 될 수 없었다.
허나 그 이름을 아는 자라면,
그리고,
대륙군림의 야망화를 내재한 자라면,
누구라도 그 이름을 떠올리며 경외해야만 했다.
아는가?
저, 우주의 다섯 초인의 신화를?
그 중,
서열 이 좌에 올라 있는 태극천유자 하후량!
그 원세초유의 대철인!
좌시한 채,
천세 후를 내다볼 수 있었던 예언의 초인!
그에게는 또 다른 신비가 자리잡고 있었다.
혼원무계의 제황… 황제!
치우를 격파하였던 무계 최초의 제황!
바로… 그 신화의 맥을 이은 자가 태극천유자 하후량이었다.
아울러,

만상하후천맥,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피!
그 천인신혈의 시조가 되는 자가 태극천유자였으니…
한데 그 감춰졌던 하늘의 숲이 열리고,
비등의 나래를 펴려던 천림소종사… 천세잠룡 하후미린!
그가 채 저… 무궁한 창천으로 웅비해 오르기도 전에,
대륙육합천패!
대륙을 떠받들고 있는 여섯 개의 기둥,
대륙군림에서 야망천세를!
우주오대초인의 신화가 전설로 화한 후,
그들은 대륙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허나,
아무도 모르게 그들은 처절한 패배의 좌절을 맛봐야 했으니!

천년풍!

그 무적철혈풍에 휘말려 갈가리 찢긴 것이었다.
천 년의 바람을 일으킨 주역은 한 명의 여인이었다.
철혈전후라 불리우는 대투혼의 전신녀!
허나,
그 무적철혈풍은 다시는 대륙 위에 웅풍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이 십 년 전이었고,
대륙육합천패는 십 년을 절치부심하여 힘을 키워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야망의 불기을 폭발시켰으니…
그 첫 번째 대상,
바로… 천림소종사 천세잠룡 하후미린을 장악하는 것이었으니!
하늘이 되려는 자들이 어찌 간파하겠는가?
대륙군림을 위한 선봉전사로서,
그보다 더 훌륭한 병기가 어디 있겠는가?
허나,
보물은 하나였고,
탐욕자는 여섯이었으니…
결국,
잠룡은 죽음의 길로 인도되었다.
대륙제일악(大陸第一嶽)이라는 태산(泰山)!
그곳 천장애에서 잠룡은 추락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세인들에게 있어 그것은 별로 충격적인 사건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용의 손길을 받은 여인들과,
야망의 불길을 가슴에 담고 있는 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던져졌으니…
그리고,
대륙육합천패는 본격적인 군림거보를 내딛기 시작했다.
천년풍!
그 무적철혈풍이 없는 이상 누구도 육합천패의 야망의 불길을 잠재울 것은 대륙에 있을 수 없었다.

여인제국!
황금재벌!
뇌정마계!
묵붕천비영!

대륙육합천패 중 사대천세!
그들이 공식적으로 대륙군림을 선포하기에 이르른 것이었으니!
그 중, 여인제국이 서릿발같은 교수를 내뻗었으니…
아울러,

신비혈련!

그 공포의 죽음의 찬미자들,
신비의 손이 피구름을 뚫을 때 대륙의 일천강자군 중 하나의 목이 차디찬 대지 위로 떨구어졌다.
그 대신, 그 자의 시체 무게만큼의 황금이 신비혈수에 쥐어졌다.
피의 공포!
신비의 전율!
누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신비혈련!
그들은… 오히려 공식적으로 군림야망을 선포한 다른 사대천세보다 더한 죽음을 흩뿌리고 있었다.
한데,
또 다른 대륙육합천패 중 일천패!

십자천검성!

그들은 또 다른 반란의 주역이 되었다.

--대륙을 장악하려는 마파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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