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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왕-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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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잠룡(潛龍)을 찾아서


폭풍은 지나갔다.
창천을 부셔 버릴 듯 높았던 여인의 교성을 사라졌고…

(가세요…)
여인은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찢겨진 앞섶을 열어젖힌 채 저 새하얀 육질덩어리를 그녀는 두 교수로 받쳐 올리고 있었다.
또한, 길게 찢겨져 젖혀진 치마를 늘어뜨린 채 여인의 희멀건 허벅지는 의자 손잡이에 걸쳐져 있었다.
그 벌어진 허벅지의 사이에 단정히 내려 있던 검은 체모(體毛)는 수세미처럼 흩어져 있었고, 여인의 저 환상적인 동굴은 그 깊숙한 붉은 내면을 적나라하다고 할 정도로 모조리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열락의 환희(歡喜)가 채 가시지 않은 듯한 그 신비의 동굴은 가볍게 일렁이고 있었다.
여인.
모화는 그렇게 자세를 취한 채 웃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감히 당신의 앞길을 막을 수 있겠사옵니까.)
그 미소는 차라리 처절한 울음보다 더한 애처로움이었다.
여인은 알고 있었다.
그녀보다 저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사내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여인은 웃으면서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천첩은 항시 이 자리에 있을 것이에요. 죽을 때까지…)
알고 있었다.
지금의 이별이 영원한 것일 수도 있음을…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하는 정인이 가고자 하는 길이 지옥로(地獄路)임을…
"기다릴 것이옵니다."
여인은 신음하듯 말을 이으며 봉목을 감았다.

하후미린,
그는 풍요로운 모화의 몸을 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신형이 서서히 죽림의 그늘로 사라져갔다.
그 뒤로,
"소야. 강건하시길…"
끝없이…
사랑의 무한함과 아쉬운 여인의 애절한 옥음이 울려퍼졌다.

청하림의 남단 일각,

콰--지직!
콰콰콰--!
굉렬한 격타음과 폭음이 대지를 뒤흔들고 있었다.
"천림. 역시 소문대로군!"
문득, 폭음이 멈추고 한 소리 육중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일장(一丈)하고도 삼척(三尺)을 상회하는 장신에 장대한 체격을 지닌 초거한이었다.
칠흑같은 묵포(墨袍)는 그에게 이상적으로 어울리고 있었다.
쩌쩡!
화등잔만하게 뇌 안에서는 벽력같은 뇌광(雷光)이 이글거리고, 그의 입 주위로는 고슴도치의 털과 같이 빳빳한 수염이 나와 있었다.
흡사, 뇌신(雷神)을 보듯 광폭한 기운이 줄기줄기 폭사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까무러쳐 버릴 정도로 엄청난 기도를 지닌 인물,
누군가?

뇌정마벽종(雷霆魔霹宗) 뇌강(雷强)!

바로 그였다.
대륙최강의 힘을 지닌 패황!
뇌인군단이 모인 패왕지인 뇌정마계(雷霆魔界)!
그 천년뇌정(千年雷霆)을 이룬 힘으로는 대륙천하에 적수가 없다는 바로 그였다.
더구나, 그의 오른손에 비껴 쥐여진 묵빛의 철부(鐵斧)!

뇌정철부(雷霆鐵斧)!

우주에서 날아온 천외묵강철(天外墨鋼鐵)로 제조된, 무게만도 십만 근에 달하는 무적마병(無敵魔兵)이었다.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인물은 뇌정마벽종뿐이었다.
한데, 바로 그가 청하림의 일리(一里)까지 육박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라!
그가 지나온 길을…
초토화(焦土化)!
일장(一丈)의 넓이를 이룬 채, 절대보검이라도 흠집조차 낼 수 없다고 알려진 청하림의 강력한 대나무들이 산산이 부숴진 채 지면(地面) 위로 잔해(殘骸)를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무엇인가 가공할 파괴력에 격중되어 박살나 버린 청죽(靑竹)의 잔해 위에 뇌정마벽종 뇌강은 오연히 서 있었던 것이다.
"반나절을 벌목했건만 겨우 일 리밖에 못 오다니. 강아지가 웃을 일이군!"
그는 어이없다는 듯 씁쓸한 고소를 머금었다.
이어, 그는 신경질적으로 뇌정철부를 잡아 휘둘렀다.
순간,
부우웅!
그 육중한 뇌정철부의 압력에 대기가 비명을 토하며 찢겨졌다.
꽝!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한아름 둘레의 강죽(剛竹)으로 작렬했다.
짜악!
천 장의 비단을 한꺼번에 찢어 발기는 날카로운 소성이 일었다.
콰드드!
수천 가닥으로 파열된 대나무의 잔해가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저 가공할 패력(覇力)!
오직, 뇌정마벽종 뇌강만이 할 수 있는 행위를 그는 하고 있었다.
천라금쇄천죽대진(天羅金鎖天竹大陣)!
하늘마저 가두어 버려 갈라 부순다는 그 천고의 대자연진!
청하림은 그것에 방호되어 수천 년을 신비로 군림해 왔던 것이었다.
한데, 비록 그 일각에 불과하지만 뇌정마벽종 뇌강은 본신의 힘만으로 그 대자연진(大自然陣)을 부수고 진군해 온 것이었다.
"유령사모에겐 관심이 없다!"
문득, 뇌정마벽종은 뇌정철부를 걸쳐메고 하늘을 올려보며 중얼거렸다.
"지저사계가 움직인 것은 유령사모의 뜻이 아니었다!"
츠으으!
단정하는 듯이 말을 끝맺는 그의 눈가로 확신의 빛이 서렸다.
"암중(暗中)에 천하 위에 서려는 자가 있다! 그 자는 한 마리 잠룡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기에 본좌 등 나머지 육합천패의 힘으로 제거하려 한다! 가장 치졸한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계책에 불과하지."
뇌정마벽종 뇌강!
덩치는 산만했으나 그의 머리는 천하를 굽어보기에 부족함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자가 경외시하는 용(龍)이라면 본좌가 취하리라! 하늘에 이르는 첩경이 되리라!"
뇌정마벽종은 독백을 흘리며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는 알지 못했다.
누구라도 하늘을 볼 수는 있다.
허나, 그 천좌(天座)에 앉을 수 있는 재목은 용(龍)밖에 더 있는가?
그는 이무기(蛟)는 될지언정 결코 용의 재목이 못 된다는 것을 스스로가 너무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가 그런 차이를 알 수 있겠는가?
"좌우지간 용굴(龍窟)을 뚫긴 뚫어야겠는데… 그 놈만 잡으면 하늘의 머리와 인간일 수 없는 초극기인들을 수하로 둘 수도 있으니까."
츠츠츠!
야망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뇌정마벽종 뇌강!
그 자는 힘으로서 하늘이 되려 하는 것이었다.
문득,
"명!"
그는 뇌정철부를 잡으며 손에 침을 뱉았다.
아울러,
부우웅!
또다시, 그 거대한 철부가 대기를 박살내며 굉렬하게 뻗어 나갔다.
하나의 거대한 천 년 묵은 아름드리 청죽으로 날아갔다.
한데, 바로 그 순간,
"녠! 꽤나 시끄럽다 했더니 곰 한 마리가 발광하고 있었군!"
듣는 이의 폐부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청량음이 뇌정마벽종의 귓가로 울렸다.
은근한 조소마저 어린 말투였다.
"곰?"
콰릉!
뇌정마벽종 뇌강!
그는 한 아름이나 되는 천년청죽을 박살내 버리고는 호목을 부릅떴다.
아울러,
슥…!
그의 거구는 믿을 수 없게도 재빠르게 회전했다.
어느 사이였을까?
좌측의 우거진 죽립 사이로 한 명의 미청년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후미린!
그는 죽엽 하나를 입에 문 채 강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막 그를 일별하던 뇌정마벽종은 흠칫하며 신형을 멈췄다,
(용… 이다!)
그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저 여인보다 아름다운 백미의 미청년이 용재임을,
(무공이 없으나 그것은 뇌정마계에 잠든 천년뇌정을 준다면 절대의 뇌황(雷皇)이 되리라!)
그는 멋대로 상상의 날개를 펴고 있었다.
허나,
"그렇게 할 일이 없소? 하늘을 부술 천부(天斧)로 고작 대나무나 자르고 있으니… 쯧쯧!"
하후미린의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에 뇌정마벽종은 아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를 아는가?"
뇌정마벽종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되묻고 있었다.
(감히 본좌를 알면서 저 따위 말은 못하리라!)
그것이 솔직한 그의 마음이었다.
지상(地上)에 어느 누가 감히 그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를 알고 있는 자라면…
그러나,
"후후!"
하후미린의 입가로는 희미한 미소가 번져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뇌정마계의 지존인 뇌정마벽종 뇌강! 안녕하쇼?"
하후미린은 태연히 아는 체를 하고 있었다.
"날… 안단 말이지?"
기가 막힌 일이었다.
아울러, 뇌정마벽종의 호목(虎目)은 찢어질 듯 부릅떠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가로 강한 불신의 기색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아니,
"허허…!"
그는 오히려 멍청해진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뇌정마벽종 뇌강!
비록, 우주오대초인(宇宙五大超人)에게는 미치지 못하나 그것은 이미 사라진 전설일 뿐이었다.
그가 십 년 전 좌절을 겪었다 하나 그를 좌절시켰던 철혈무적풍은 침묵으로 잠들어 버린 상태였다.
당금의 대륙천하!
모래알처럼 많은 무인이 있었다.
허나, 누가 감히 그 앞에서 얼굴이나 제대로 들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대륙무림을 육분(六分)하고 있는 여섯 명의 천인(天人) 중 대패왕(大覇王)!
그만큼 그는 그런 자부심을 가릴만큼 강한 자였다.
허나, 그가 마주하고 있는 인물…
하후미린!
그 자신이 서슴없이 한눈에 용임을 알아보지 않았던가?
날개(翼)가 없고, 여의주(如意珠)를 잃은 잠룡(潛龍),
그 잠룡은 비웃음마저 흘리며 자신을 똑바로 올려보고 있었다.
(과연! 남의 손을 빌어 죽음을 내리려 할만큼 뛰어난 놈이다!)
그것이 뇌정마벽종이 내린 결론이었다.
너무도 뛰어났기에, 하늘마저 오시할 수 있는 저 잠룡에겐 자신은 그저 우지한 나무꾼으로밖엔 보이고 있지 않음을 그는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뇌정마벽종은 내심 기꺼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 녀석! 멋있는 놈이다!)
이내, 그의 부리부리한 뇌안(雷眼)으로 만족스런 웃음이 번져갔다.
있는 감정을 그대로 뇌정마벽종 뇌강은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문득, 하후미린은 죽엽(竹葉)을 뱉아내며 백미를 꿈틀거리며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고약한 심사로 내집의 담장을 허물고 있는 거요?"
빚쟁이가 따지듯,
그는 뇌정마벽종을 다그쳤다.
더욱 가관인 것은 뇌정마벽종의 행동이었다.
"미. 미안하네!"
오히려, 그가 쩔쩔매며 사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어, 그는 은근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본좌는 네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어떠냐? 내 제자가 되지 않겠느냐?"
아예, 사정하듯 간절하게 하후미린을 바라보는 뇌정마벽종 뇌강이었다.
그의 내심은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우라질! 누구라도 본좌의 무공을 얻고 싶어 환장하는데 본좌가 사정조로 애원하고 있으니…)
허나, 그것은 그의 목구멍 아래서만 맴돌 뿐이었다.
뇌정마벽종은 알고 있었다.
이 순간, 저 신비로운 잠룡이 처음 출현한 것이며, 이 기회가 지난다면 다시는 그 잠룡을 얻을 수 없음을…
"훗…!"
그런 그를 바라보는 하후미린의 입가로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생각보다 괜찮은 호인이로군! 허나. 천 년뇌정 정도로 내게 힘을 줄 순 없다오.)
씁쓸한 고소를 머금으며 하후미린은 고개를 저었다.
"뇌선배의 호의는 감사하나 받아들일 수가 없구료!"
순간,
"본좌의 재주가 배울 가치조차 없단 말이냐?"
우르릉!
뇌정마벽종의 벽력후가 터지자 청하림 전역이 떨어 울린다.
허나,
"…"
하후미린은 대답대신 미소만을 떠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놈. 나를 떠볼 요량인가?)
뇌정마벽종 뇌강의 호목으로 강렬한 뇌기가 번뜩였다.
이어,
"본좌의 힘을 보여 주마! 보아라!"
말과 함께,
슥…!
그는 십만 근의 뇌정철부를 가볍게 들어 천중에 세웠다.
쩌쩌르르르!
뇌정이 주입되자 뇌정철부는 새파란 전류를 발하며 울음을 토했다.
그 순간,
"차앗!"
뇌정마벽종의 입에서 웅혼한 벽력후가 터져 오르고,
콰앙!
쩌쩌쩌쩡!
보았는가?
낙뢰(落雷)가 터져 오른다.
뇌정(雷霆)이 찢겨지며 폭사되었다.
뇌룡(雷龍)!
한 마리 뇌룡이 벽력을 타고 오르듯, 뇌정마벽종의 전신으로는 새파란 뇌광이 줄기줄기 작렬하고 있었다.
동시에,
고오오…!
쩌어억!
대기를 갈기갈기 찢어 발기며 뇌정마벽종이 움켜쥔 뇌정철부가 가공할 뇌강기를 동반한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이장(二丈)… 삼장(三丈)… 오장(五丈)… 십장(十丈)!
그리고 한 순간,
"뇌정파천황(雷霆破天荒)!"
거창한 뇌룡후가 천중을 뒤흔들었다.
부우웅!
대기가 부숴져 쪼개지고,
쩌쩌쩡!
수천, 수만 줄기의 뇌정부강력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콰아작!
콰드드드!
벽력(霹靂)의 폭풍력(暴風力)!
미증유의 뇌력도(雷力道)가 폭발했다.
보라!
방원 백 장 이내,
그 어떤 보검으로도 벨 수 없다는 천림의 청죽림이 산산이 으깨어져 먼지로 흩날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푸스스…!
파괴의 잔재들이 차츰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슥…!
흩날리는 죽편의 먼지 사이로 뇌정마벽종의 거구가 드러났다.
그는 뇌정철부를 내린 채 그대로 오연히 서 있었다.
뇌신과도 같이 그는 득의로운 웃음을 흘리며 하후미린을 돌아보았다.
"후훗! 어때?"
허나, 그는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
하후미린,
그는 그 굉렬한 뇌강폭풍력 속에서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아울러, 그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까지 서려 있지 않은가?
뇌정마벽종은 벌컥 고함을 내질렀다.
"놈! 뭐가 그리 우스우냐?"
"우습다뇨? 아주 굉장한 벽력뇌강부법(霹靂雷剛斧法)이었소! 아마도…"
의외로, 하후미린이 진지하게 말을 꺼내자 뇌정마벽종은 조바심을 내며 반문했다.
"아마도라면?"
"고금제일은 안 되나 천하제일의 뇌공(雷功)인 것 같소! 극강의 뇌기를 흡입하여 철부로 내쳐 강부를 형성함도 뛰어나려니와…"
하후미린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사천팔백육십이뢰(四千八百六十二雷)를 일거에 폭발시켜 상대를 그 수효만큼 박살내 버림은 단연 발군이었소!"
뇌정마벽종 뇌강!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네가 그것을…?"
뇌정마벽종은 아연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놈! 비록. 천년풍이라는 그 무적철혈풍엔 깨졌으나 그 누구도 두려워하는 뇌정파천황의 오의를 한눈에 파악하다니 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허나, 하후미린은 그의 놀람을 무시하며 말을 잇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함을 중시하여 오히려 그 강함을 되받아 이용하여 적은 쉽사리 당신을 격사시킬 것이오!"
"음!"
뇌정마벽종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렇다! 천년풍에 부딪쳐 되돌아온 그 힘은 본좌가 내친 뇌정파천황의 천년뇌강(千年雷剛)이었다!)
그는 뒤통수를 둔기로 얻어맞은 기분이 되고 말았다.
허나, 하후미린은 계속 부언했다.
"일천 개의 화살을 일시에 발사한다면 그것을 피함은 간단하오! 초인을 잡기 위해선 그 일천 개를 날리되, 백 발씩 열 번을 날려야 할 것이오!"
"…"
뇌정마벽종은 할 말을 잃었다.
넋이 빠진 듯 그의 동공은 풀어지고 말았다.
(이놈은 잠룡이 아니라 대창룡(大蒼龍)이었다!)
그는 그제서야 하후미린의 그릇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하후미린!
그는 웅크린 잠룡이 아니라 이미 창공을 노니는 대창룡이라는 것을 뇌정마벽종은 깨달은 것이었다.
허나, 그로서도 모르리라!
하후미린은 용의 꽁지를 넘어 이미 하늘이 된 천인(天人)임을!
문득, 뇌정벽종은 침중한 난색을 풀며 대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핫! 네가 본좌보다 낫구나! 오히려 네놈이 본좌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
그의 웃음띤 얼굴엔 형용키 어려운 부드러움이 깃들고 있었다.
"별말씀을…"
하후미린은 그를 마주보며 손을 내저었다.
"하핫! 오늘은 내가 그냥 가나 다음엔 본좌에게 가르침을 준 대가로 선물 허나를 준비해 주마!"
뇌정마벽종은 호탕한 대소를 터뜨렸다.
이어,
쩌엉!
하후미린이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의 신형은 한 줄기 광전류와도 같이 폭사되어 사라져갔다.

"…"
하후미린은 그런 그의 뒷길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천상삼사 중 천뢰사의 천뢰폭강참이었다면 능히 고금제일뢰 강결(强訣)이리라!)
그는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후후! 천년뇌정 정도를 얻어 힘을 쓸 수 있었다면 그대의 뇌정마계 정도는 벌써 박살났을 것이오!"
이어.
저벅… 저벅…!
그는 뇌정마벽종 뇌강이 뚫어 놓은 길을 걸어갔다.
천천히…

<잠룡출사(潛龍出事)>

그 일보(一步)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과연 그의 운명은…?

하후미린의 모습이 멀찍이 사라져갈 즈음,
스스슷…!
길 양편의 숲으로부터 두 명의 인물이 걸어나왔다.
한 노인,
"보았느냐?"
그의 물음에 여인이 다소곳이 대답했다.
"예, 사부님."
노인과 여인,
두 사람은 멀어져 가는 하후미린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무엇인가 커다란 기대를 담은 채…
대체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노인,
그는 외모로 보면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단지 인자해 뵈는 노인일 뿐이었다.
허나, 그의 차림새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화려함의 극치랄까?
번쩍이는 금포 위의 온갖 진귀한 보옥들로 치장하고 있었다.
몸에 주렁주렁 달린 보화를 일일이 값으로 따지자면 능히 수백만 냥은 됨직했다.
나이답지 않은 극히 화려한 차림,
그것은 곧 재력을 과시함과 통하는 것이리라.
허나, 반면,
그와 마주한 여인은 지극히 대조적이었다.
그녀의 차림은 매우 수수했다.
깨끗한 백의를 곱게 차려 입었을 뿐, 이렇다 할 화려한 치장을 하지 않았다.
단지, 한 가지 장식이라면 그녀의 이마 위로 내려뜨린 붉은 묘안석(猫眼石)이 그것이었다.
기실, 그녀는 후덕한 인상을 주는 미녀였다.
나이를 따지자면 대략 이십 세 정도 됨직하나, 그녀에게는 중년부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푸근함이 있었다.
때문에 그녀의 이마에 늘어뜨려진 붉은 묘안석은 귀부인 같은 인상으로 보이게 했다.
문득 노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황금재벌(黃金財閥)을 이어나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놈이다."
그는 여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저 녀석을 네 사람으로 만들어라. 사부는 저 녀석과 네가 황금재벌을 이어 받아 천하 위에 서기를 바란다."
여인은 그 말에 이미 위에 묘안석보다 두 눈을 빛냈다.
"예, 명심하겠어요."
"기특하구나."
노인은 만족스런 시선으로 여인을 응시했다.
이어,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병법 중 최상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싸움을 하는 것은 하책(下策)이지요!"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하늘이 되려는 자는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한고조(漢高祖)가 한신(韓信)을 포용하여 천하를 일통시켰듯이 말이다."
"…"
"난세(亂世)에는 용(龍)이 있어야 한다!"
"용…"
일순,
여인의 봉목이 반짝 빛을 발했다.
"그렇다! 용을 탄다면 쉽게 하늘에 오를 수 있다!"
노인은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허나, 다음 순간 그는 다소 걱정스런 투로 다시 말했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무엇입니까, 사부님?"
"저 녀석 주위에 이미 여러 명의 괴짜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것이다."
"예? 그렇다면 다른 육합천패가 이미 눈독을 들였다는 말씀이신가요?"
여인은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육합천패에 대한 언급,
그것은 이 황금재벌이란 문파가 육합천패의 문파라는 것을 의미함인가?
그랬다.
아는가?
저 대륙무림의 중천에 하나의 황금성(黃金城)이 있음을?

<황금재벌.>

그렇게 불리웠다.
대륙의 황금 중 구할을 장악하고 있다는 황금의 하늘!
대륙무림을 굽어 보는 여섯의 하늘 중 황금재벌의 이름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신비노인과 여인의 정체는?
노인은 침중하게 말을 이었다.
"뇌정마벽종은 지금 보았으니 그렇고. 여인제국의 계집답지 못한 것들이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묵붕천비영(墨鳳天秘營)에서도 눈치를 챈 듯하니."
"여인제국과 묵붕천비영까지?"
여인은 신음하듯 되뇌였다.
그녀의 얼굴은 그 순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을 보자 노인은 다소 말투를 바꾸어 힘차게 말했다.
"어찌 되었든 최선을 다하면 되느니라. 미리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이어, 그는 단정짓듯 부언했다.
"향후, 대륙무림은 저 녀석의 마음을 움켜쥐는 자가 천년풍의 뒤를 잇게 되리라!"
그 말에 여인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럼 제자는 이만 가보겠어요!"
스슥…
말을 마치자마자 여인은 즉각 몸을 날렸다.
노인은 사라져 가는 그녀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귀여운 녀석, 황금재벌 전체하고라도 저 녀석과 바꾸지는 않으리라."
따뜻하고 자애로운 시선은 여인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날씨가 제법 덥군!"
하후미린은 땀을 닦았다.
초하(初夏),
아직 본격적인 더위는 아니나 먼 길을 걷는 행자(行者)로서는 지치기 십상인 날씨였다.
한데 문득, 하후미린은 길 옆으로 서 있는 다루(茶樓)를 발견했다.
"좀 쉬어가야겠군!"
이어, 그는 다루(茶樓)로 걸음을 옮겼다.

다루 안,
그곳에는 손님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손녀와 할머니인 듯한 일노일소,
마주보고 앉아 저희끼리 대화를 나누는 세 명의 흑포인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침을 흘리며 잠들어 있는 꾀죄죄한 늙은이 등,
그들이 손님의 전부였다.
허나, 하후미린은 짐작할 수 있었다.
(모두 내공을 안으로 숨긴 고수들이다.)
그의 직감은 틀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만상전능신혈맥 탓으로 무공은 못 익혔다 하나 그가 누구인가?

태극천유자 하후량!

태초의 인간들 중에 최초의 현자(賢者)로 불리우던 대성인(大聖人)!
그는 만상(萬象)을 머리에 이고 있었던 대철인(大哲人)이기도 했다.
좌시(坐視)한 채로 천년(千年)을 굽어볼 수 있었던 대예언자(大豫言者)!
그런 그가 천림을 세웠었다.
이후, 수천 년의 시공 속에 초인이되 하늘조차 버린 괴인들이 천림해 들었다.
기인천(奇人天)!
천림의 또 다른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던 것이었다.
아울러, 천하에 깔려 있었던 무수한 무류(武流)가 흡입되었다.
뿐인가?

황제(黃帝)!

무림최초의 초인대전(超人大戰)이라는 탁록의 격전!
그 승리 이후,
역사상 가장 강했던 공룡의 제왕인 치우(蚩宇)!
그가 이루었던 모든 것은 황제의 전리품으로 귀속되었다.
비록, 하후미린은 무공을 펼치지는 못하나 그 태초의 원세무도계(原世武道界)로부터 이어내려온 천무학을 모조리 머리 속에 담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다루 안을 한 번 돌아보자 즉시 팽팽한 긴장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단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용화차(龍花茶)하고 간단히 요기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게."
그는 담담한 투로 점원에게 시킨 뒤 무심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한데 그 때,
"함께 앉아도 되겠사옵니까?"
문득, 사근사근한 여인의 목소리가 그를 일깨웠다.
"…?"
하후미린의 의아한 시선이 소리나는 쪽으로 돌아갔다.
어느 사이엔가 그곳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수수한 백의의 미녀,
(미인이로군.)
하후미린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머금었다.
여인,
그녀는 매우 포근하며 따뜻한 인상이었다.
특히, 그녀의 이마에 걸린 붉은 묘안석이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하후미린은 순순히 자리를 권했다.
"감사하옵니다."
여인은 단정히 자리에 앉으며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첩신은 금사란(金沙蘭)이라 하옵니다."
"소생은…"
예의상 하후미린도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 했다.
허나, 여인이 그의 말을 막았다.
"알고 있사옵니다. 하후미린, 하후상공님이시지요?"
여인의 당돌한 태도에 하후미린은 내심 흠칫했다.
(무슨 목적으로 이 여인이 내게 접근한 것인가?)
그는 다소 아연한 시선으로 여인을 응시했다.
그러자, 여인은 그의 내심을 짐작한 듯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건넸다.
"그래요, 첩신은 상공께 부탁을 드리러 왔어요."
이어, 여인은 소매 속에서 자그마하고 길쭉한 옥갑을 꺼냈다.
"이것을 보시겠사옵니까?"
매우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옥갑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번 보겠소이다."
하후미린은 서슴없이 옥갑을 받아 열었다.
달칵!
순간, 그는 코 끝에 청량한 기운을 감지했다.
옥갑 속에는 과연 무엇이 든 것인가?
열자마자 느껴진 청량감,
그것을 뿜어 낸 물건은 겨우 한 자 두 치 정도의 황금비파(黃金瑟)였다.
허나, 그 황금슬이야말로 예삿 물건이 아니었다.
여인이 입을 열었다.
"이것을 알아 보시겠습니까?"
하후미린은 안색이 다소 상기되어 대답했다.
"물론이오. 이것은 바로 천하에서 가장 귀한 하늘의 보물 중 한 가지가 아니오이까?"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견문이 넓으시군요. 이것은 황금슬이에요!"
그 순간,
츠츠츠…!
스스스…
소리없이 따가운 시선들이 여인에게 집중되었다.
다루 안의 인물들,
그들은 한결같이 이 금사란이라는 여인에게 시선을 두었다.
다만, 잠을 자고 있던 노인만이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탁자에 다시 드러누웠을 뿐이었다.
"황금슬…"
다루 안을 울리는 나직한 신음성,
기실, 그들의 관심사는 여인보다는 여인이 가진 황금슬이었으므로…

황금슬.
여인의 손바닥에 들만큼 작은 비파였다.
그것만큼 대륙천하에 풍운을 일으켰던 것은 없었다.
물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황금슬을 소유했던 사람의 신분으로 그것은 더욱 광휘로워졌다.
아는가?
대륙초유의 성녀로 추앙받았던 한 명의 여인이 존재했었음을?

황금성모(黃金聖母) 금아향(金雅香)!

십전십미신을 지닌, 지상에 존재했던 여인들 중 가장 성스러웠던 여인.
그녀가 가는 길에 다툼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 절대의 성령기(聖靈氣) 앞에 살육을 즐기는 대흉마일지라도 살심을 억눌렀다.
산중대호(山中大虎)일지라도 그녀 앞에선 발톱을 숨기고 이빨을 오므려야 했다.
그리고, 황하의 물이 넘치고 태양의 극렬함에 대지가 갈라질 때, 그 천재지변의 난이 일어난 후엔 항시 그녀가 나타났다.
그리고… 황금!
끝없는 황금이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서, 그 절대성녀는 허나의 성명을 얻었다.
황금성모!
그렇게 탄생되었다.
우주오대초인 중 서열 제 사 좌에 오른, 여인의 몸으로서 무림역사상 가장 강한 다섯 명의 초인에 낀 여인!
황금슬!
그 황금의 비파는 바로 황금성모 금아향의 신물이었던 것이다.
전설은 말한다.

--황금슬의 비밀을 푸는 자. 하늘조차 황금으로 품을 수 있는 엄청난 보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황금슬을 탄주할 수 있는 자, 그 성령음(聖靈音)으로 천추군림하리라!

바로 그 절대의 성스런 물건이 출현한 것이었다.
더욱 기절할 일은 다음에 벌어지고 있었다.
금사란.
이 여인의 얼굴에 의미있는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것을 하후상공께 드리겠어요."
허나, 하후미린은 고개를 저었다.
"소생은 받을 수 없소이다."
그러자, 금사란의 표정이 일변했다.
이어, 그녀는 억지로 황금슬을 그에게 쥐어주며 은근히 말했다.
"첩신에게는 이 같은 보물이 몇 개는 더 있사옵니다."
"…"
그 말에 하후미린의 미간이 다소 찌푸러졌다.
허나 반면, 그는 내심 짚이는 바가 있었다.
(천하의 갖가지 보물을 소장한 여인. 그렇다면 이 여인의 신분은?)
그 때, 금사란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뿐이 아니옵니다. 대륙천하를 몽땅 살 수 있는 금은보화가 있고. 원하신다면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인들 일천(一千)을 안겨 드릴 수가 있사옵니다."
그녀의 말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하후미린은 온갖 부귀영화를 한몸에 누릴 수가 있지 않은가?
더구나, 미인까지도…
한데 일순. 다루 안에 있던 한 노파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금황신후(金皇神后)! 황금으로 사람을 미혹시키려 드는 거냐?"
그것은 분명 금사란을 가리켜 하는 말이었다.
한데, 밝혀진 여인의 신분…
그것은 가히 폭풍과도 같이 장내를 휩쓸었다.

금황신후 금사란!

들었는가?
그 이름은 천하에 야망이 있는 자라면 그 누구라도 품고 싶은 여인의 이름이었다.
황금재벌의 소벌주!
그녀를 취함은 곧 대륙의 육분지일을 무혈(無血)로 얻음과 다름 없었다.
인간보물(人間寶物)!
그렇게까지 불리우는 여인,
그녀가 바로 금황신후 금사란이었다.
허나, 금사란은 그에 아랑곳없이 하후미린을 졸랐다.
"이 모두가 상공께서 한 마디만 하시면 상공의 것이 되어요."
"알겠소. 소저는 황금재벌의 사람이구료."
하후미린의 말에 금사란은 고혹한 미소를 띄었다.
"그래요. 상공께선 한 마디로 황금재벌과 원하시면 첩신까지도 소유하실 수 있어요."
하후미린은 대답대신 생각에 잠겼다.
(황금재벌. 천하의 황금 구할이 모인 곳이지, 어쩌면 황실보다 오히려 막강한 재력을 지닌 곳.)
한데, 그 사이에 그의 주위로 여러 인물들이 모이고 있었다.
예의 노파를 비롯하여, 흑포인들이 하후미린 곁으로 모여든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변함없이 금사란은 조르듯 말했다.
"하후상공, 어서요! 황금재벌의 대를 잇겠다는 한 말씀이면 되어요."
그 말에 노파가 길길이 뛰며 나섰다.
"금황신후! 이 분은 여인제국의 부마가 되실 분이니 썩 물러나랏!"
금사란은 태연히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나,
"호호. 여인제국이 부마를 맞는다니 금시초문이로군요!"
이에, 흑포인 한 명이 지지 않고 나섰다.
"본 묵붕천비영의 영주께선 하후공자를 귀빈으로 모셔 오라는 분부가 계셨소."
"아니! 묵붕지존이 감히 여인제국의 일을 방해하려 들다니!"
노파는 대뜸 서슬이 시퍼래졌다.
흑포인은 그것을 보자 피식 실소했다.
"흥! 여인제국이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큰소리요?"
"무엇이!"
일촉즉발!
분위기는 금시 흉흉해졌다. 그들은 각기 하후미린을 가운데 두고 금시라도 싸울 듯한 태세로 돌입해 가고 있었다.
그 때,
"귀하들은 답답하구료."
하후미린이 드디어 한 마디 했다.
"…?"
"…?"
그 순간, 중인들의 시선은 약속이나 한 듯 일시에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대들은 마치 본인을 그대들의 주머니에 든 물건같이 말하는구료."
이어, 하후미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낭랑하게 흘러 나오는 한 줄기 싯귀가 중인들의 귀를 때렸다.

巧者勞而知者憂.
無能者無所求.
飽食而敖遊.
汎若不擊之舟.
處而敖遊者也.

일 솜씨가 교묘한 자는 애써 수고하고, 아는 것이 많은 자는 걱정이 많게 마련이다.
오히려, 무능한 자는 아무것도 찾지 않고, 배가 부르면 만족스런 마음으로 즐기며 노는 것이다.
마치, 매여 있지 않은 배가 둥둥 떠다니는 것과 같이 무심하게 소요하는 것일진대…

"나는 황금이나 미녀나 권력. 패권보다는 한 술의 밥을 배불리 먹고 소요(逍遙)하고 싶소!"
하후미린, 그는 흔쾌하게 말을 끝맺었다.
"…!"
하후미린의 말에 중인들의 안색이 홱 변했다.
점원이 주문한 차와 음식을 하후미린 앞에 날라왔다.
"실례들 하오. 식사를 해야겠소이다."
하후미린은 주위를 무시하듯 단정한 자세로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
"으음…"
중인들은 제각기 움찔하며 할 말을 잃은 듯 물러섰다.
허나, 그들은 각기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속에서 하후미린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제11장
나이를 떠난 결의형제(結義兄弟)


금사란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반드시 서둔다고 될 일만은 아니다!)
이런 판단이 내려지자, 그녀는 더 이상 지체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실례가 많았어요. 첩신은 그만 가보아야겠군요. 하지만…"
슥…
그녀는 황금슬을 하후미린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첩신의 성의이오니 받아 두시와요."
허나, 하후미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를 거부했다.
"성의는 고맙소만 공이 없으므로 보물을 받을 수 없소."
한데, 그 순간, 어디선가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쯧쯧. 멍청한 녀석!"
이어, 불쑥 지저분한 손이 튀어나와 황금슬을 잡아챘다.
"…?"
하후미린은 아연하여 돌아다 보았다.
그러자, 어느 사이엔가 예의 꾀죄죄한 노인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데, 미처 그가 말을 하기도 전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임마! 주는 것도 안 받으면 너만 손해야!"
말과 함께 노인은 그의 소매 속에 다짜고짜 황금슬을 쑥 쑤셔 넣었다.
"아, 아니!"
하후미린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하는 한편, 내심 노인의 정체를 생각해 내려 애썼다.
허나, 뚜렷이 알 수가 없었다.
(고인이기는 한데 기억이 나질 않는군.)
그 때, 그를 대신하듯 금사란이 물었다.
"선배님은 어느 고인이시온지요?"
그 말에 노인은 대답 대신 너털웃음을 웃었다.
"낄낄. 이 술주정뱅이 보고 선배라?"
이어, 그는 싯누런 이를 내보이며 금사란에게 바짝 얼굴을 들이대었다.
"너는 가서 황금에 미친 금사신(金獅神)이란 수전노에게 전해라. 공령(空靈)의 술고래가 껍데기를 벗겨 먹으러 간다고 말야."
그 말에 금사란을 비롯한 중인들의 안색이 대변했다.
금사란은 경악하여 신음하듯 말했다.
"공령천신(空靈天神). 궁노선배님이셨군요!"
하후미린까지도 놀란 기색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공령천신? 백 년 이전에 은거한 천하제일의 대도황(大盜皇)! 이 노인이 바로 공령천신이란 말인가?)
그러나, 정작 노인은 여전히 게걸스럽게 웃어대며 말을 이었다.
"낄낄. 시끄럽다! 냉큼 돌아가라. 나는 오늘 네 신랑감에게 술 좀 얻어 먹어야겠다!"
"예! 그럼 후배는 이만…"
금사란은 매우 당황한 듯 총총히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이어, 중인들도 모두 겁먹은 기색으로 분분이 자리를 떠났다.
공령천신이라 불리운 노인,
이 노인의 이름 한 마디에 왜 중인들 모두가 자리를 피하는가?

공령천신 궁사령(穹獅翎)!

이것이 노인의 이름이었다.
이갑자 전까지만 해도 천하를 위진시켰던 이름이기도 했다.
특히, 황금을 지닌 대거부들에게 있어서는 가히 살인적인 공포명으로 군림했으니…

<공령문(空靈門).>

아는가?
그 신비로운 이름을?
황금의 도살자들이 모여 이룩된 집단이었다.
한 마디로, 그곳은 천하도둑들의 집합체였다.
철저한 신비의 장막에 가리워진 신비문--공령문!
그들은 감히 주장하고 있었다.
천하의 모든 황금은 자신들 것이라고…
그런 자들, 쉽게 말해 도둑들의 대총수가 바로 공령천신 궁사령이었던 것이다.
백 년 전,
그는 저 도계(盜界)의 불문율을 과감히 깨뜨렸다.
그것은 신화에의 도전이었다.
황금재벌!
지난 일천 년의 세월 동안 일만 번의 대도황들에게 기습받았던 황금의 요람지였다.
허나, 단 한 번도, 단 한 푼의 금자도 그곳에서 훔쳐온 자는 없었다.
한데, 공령천신은 그 불파(不破)의 철옹성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고, 무엇인가를 훔쳐냈던 것이다.
이후, 일년 동안을 황금재벌의 수호황금전사단(守護黃金戰士團)에 쫓겨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사라지고 말았다.
신비롭게…
한데, 그가 하후미린의 눈앞에 태연히 좌정해 있는 것이었다.
지상에서 가장 빠른 손을 지닌 공령천신 궁사령이…

공령천신 궁사령.
술에 취해서인지 일부러인지 그는 하후미린의 허락도 없이 털썩 맞은편에 앉았다.
"헤헤. 천불(天佛), 그 땡땡이 중과 만나면 이 좋은 술을 못 마시게 될 거란 말씀이야."
그는 호로병을 들더니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그 순간, 그와 마주한 하후미린은 내심 몹시 놀라고 있었다.
(천불이라면 천불대종사(天佛大宗師)를 말함인가?)

천불대종사!

대륙에서 가장 성스러운 이름!
대륙불계(大陸佛界)의 지존!
그 말이 그의 모든 것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천불성련(天佛聖聯).
대륙에 산재해 있는 일천불류가 모여 이룩된 불문의 대성역!
그 잠재된 힘을 가늠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설사, 대혈풍이 대륙을 휩쓸지라도 그들은 오직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암송할 뿐이었다.
허나, 아무도 제석천(帝釋天)의 콧수염을 건드릴만큼 배짱 있는 자는 없었다.
그리고, 지난 이백 년의 시공을 흐르면서도 천불성련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 사람의 힘 때문이었다.
천불대종사!
그는 대소림 출신이었다.
그리고, 소림칠십이종절예(少林七十二種絶藝)를 십오 세에 통달했다.
달마대선사가 남긴이후로 아무도 연성치 못했다는 달마성불지검(達磨聖佛之劒)까지도 극성까지 연마해 냈다.
이어, 그는 소림승적(少林僧籍)을 버렸다.
대륙불계(大陸佛界)가 그의 발 아래 섭렵되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는 서역으로까지 가고야 말았다.

대뢰음사(大雷音寺)!
소뢰음사(小雷音寺)!
용화사(龍華寺)!
천불사원(天佛寺院)!
홍황마찰(紅皇魔刹)!
혈요비암(血妖秘庵)!


백 년에 걸친 구도의 고행.
마불(魔佛), 악불(惡佛), 요불(妖佛), 뇌불(雷佛), 사불(邪佛)…
불가(佛家)에서 이단시 하던 밀불류(密佛流)조차 그는 섭렵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저 위대한 천불지존이 탄생했으니…
천불대종사!
그는 영원히 꺼지지 않을 살아 있는 성불의 신화였다.
한데, 그런 그의 성명이 공령천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 의미는…?

"어? 술이 없잖아?"
공령천신은 호로병을 거꾸로 들고 흔들었다.
그러나, 술은 과연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곧 하후미린을 보며 명령조로 말했다.
"야! 너 술 좀 사거라. 술만 잘 사면 앞으로 네게 큰 이득이 있을 것이다."
그 의미야 어찌 되었든 하후미린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드십시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령천신은 점원에게 고래고래 고함치듯 외쳐 대었다.
"들었느냐? 냉큼 백화주(百花酒) 열 동이만 가져와라!"
"열… 열 동이씩이나… 요?"
점원은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공령천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외쳤다.
"잔말 말고 가져와라! 우선 목이나 좀 축이자!"
"어이쿠! 갈수록 태산이로군!"
점원은 공령천신의 엄청난 주량에 더 이상 언급을 회피했다.
하후미린은 여전히 미소를 띄운 채 점원에게 말했다.
"통닭도 서너 마리 가져다 드리게."
"예예!"
공령천신은 그 말에 입이 귀 밑까지 찢어졌다.
"킬킬킬. 볼수록 맘에 드는 놈이구나!"
"…!"
하후미린은 공령천신을 바라보며 뭔가 잠시 생각을 굴린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생은…"
그러자, 대뜸 공령천신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집어 치워라. 소생은 무슨 고리타분한 소생! 주정뱅이 형님이라 불러라!"
"예엣?"
하후미린은 안색이 변할 정도로 당황했다.
허나, 곧 그는 짚이는 바가 있었다.
(후후! 나 하후미린의 형님이 되고 싶다?)
하후미린은 이채를 발했다.
(도계의 하늘. 야망이 없는 인물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더 이상 머뭇거림 없이 말투를 고쳤다.
"그럼 외람되나 형님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러자, 공령천신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오냐, 그래야 편하지. 그래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느냐? 첩실(妾室)로 쓸 예쁜 계집을 구해 달란 얘기라도 하려느냐?"
공령천신,
두 배분 높은 노형의 얘기는 처음부터 계속 멋대로였다.
이쯤 되자, 하후미린 역시 자못 농담조로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닙니다. 우제가 듣기로는 노형님께서는 이미 백 년 전에 땅 속으로 들어가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그의 눈가에도 슬며시 웃음기가 떠올랐다.
공령천신은 주독에 절어 새빨간 딸기코를 씰룩거리며 익살스럽게 대꾸했다.
"이 좋은 술을 두고 어딜 들어가? 노형은 앞으로도 백 년은 더 살 것이다!"
그 때였다.
낑낑거리며 점원이 술동이를 들고 나타났다.
그것을 보자 공령천신은 마치 어린애처럼 환성을 질렀다.
"이야호! 술이다! 최고급의 백화주구나!"
이어, 그는 숨돌릴 사이도 없이 술동이째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쭉!
통닭다리를 찢어가지고는 와구와구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그리고,
또다시 꿀꺽꿀꺽…!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공령천신은 술과 닭다리를 목구멍에 구겨 넣었다.

잠시 후,
술 열 동이와 서너 마리의 통닭은 거짓말처럼 깨끗이 없어지고 말았다.
"이럴 수가!"
점원은 눈이 부릅떠진 채 공령천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갈수록 태산이라던가?
"꺼억! 이제 겨우 술이 들어간 느낌이 드는군!"
"어이구! 맙소사!"
점원은 아예 까무러칠 듯한 표정이었다.
공령천신,
그는 이빨을 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렵니까?"
하후미린의 물음에 그는 눈을 껌벅거리며 대꾸했다.
"오냐. 천불 땡중과 일갑자만에 만나기로 했으니라."
이어, 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지저분한 장포를 뒤적거렸다.
먼지가 푹석거리는 가운데 그는 품 속에서 때가 낀 비단책 한 권을 꺼냈다.
"옛다! 받아라!"
그는 선심 쓰듯 그것을 하후미린 앞에 집어던졌다.
"…!"
하후미린은 무심히 그것을 집어들어 펼쳤다.
범문(梵文)이 가득한 책자였다.
"음?"
갑자기 하후미린의 두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그의 기색을 보며 공령천신이 물었다.
"알아보겠느냐?"
"예."
하후미린은 얼른 대답했다.
"잘 되었다. 그것을 네 녀석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다."
공령천신은 익살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실은 노령이 심심해서 천축에 놀러갔다가 금강혈가람에서 슬쩍해 온 것이다. 한데 슬쩍하기는 했으나 도통 알아볼 수가 있어야지. 클클…!"
그 말에 이어,
스스스…!
공령천신은 신형을 감추고 말았다.
"노형님!"
하후미린이 다급히 불렀으나 소용없었다.
공령천신의 모습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으니…
한데, 그 순간 멀리서 들리는 듯한 공령천신의 음성이 그의 귓가를 울렸다.
"헤헤. 곧 다시 만나리라. 네 앞길에 큰 위험이 두세 번 있을 것이나 그것이 전화위복으로 큰 기연이 될 것을 알기에 안심하고 떠난다."
그것이 전부였다.
"가셨군."
하후미린은 다소 씁쓸히 중얼거렸다.
공령천신,
그는 확실히 기인이었다.
우연하게 만난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듯하고,
어이없이 사라지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하후미린은 잠시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을 응시했다.
허나 곧, 그는 공령천신이 남기고 간 책자에 시선을 돌렸다.

<금강혈가경(金剛血迦經).>

그것을 펼치자 그 안에는 천축에서도 쓰지 않는 고범어의 글이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기실, 범인(凡人)이라면 그것을 읽어 내기란 불가능했다.
배분이 높은 기인으로 알려진 공령천신조차 해독을 못하던 것이 아닌가?
허나, 하후미린만은 예외였다.
공히 천하제일학사요, 무불통지의 대문성(大文聖)인 그가 범인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는 어렵지 않게 금강혈가경이라는 책자를 읽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서두는 대략 이러했다.

<공룡혈뢰찰(恐龍血雷刹)의 횡포가 극에 달하여 이에 보다 못해 토벌하도다.
금강혈가경은 그 때 얻은 전리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허나, 그 내용이 불가의 무공답지 않게 지나치게 패도적이었도다.>

하후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금강혈가경은 금강혈가람(金剛血迦覽)의 물건이 아니었군."
그는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이를 절대 익히지 말 것이며 밖으로 유출됨도 방지할지니라.
만일 유출될 시는 반드시 팔대혈가금강신(八大血迦金剛神)을 내보내 회수하라.>

하후미린은 다소 씁쓸한 기분이 되어갔다.
그는 시야 가득 익살스러운 공령천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노형님은 장난으로 이것을 금강혈가람에서 빼 오셨겠으나 이것이라면 능히 대륙무림에 큰 풍지평파를 불러 일으키리라."
그의 생각은 옳았다.
약육강식의 무림.
그 속에서 무공 익히기라면 밥먹기보다 즐겨하는 무림인들에게는 패도지공일수록 눈에 불을 켜고 익힐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금강혈가경.
이 패도적인 천축밀교의 무학이 중원에 들어왔음을 안다면 그 누가 탐욕을 가지지 않겠는가?
허나, 하후미린은 스스로 무공에 연이 없었던 바 금강혈가경의 내용엔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는 무심히 금강혈가경을 품 속에 갈무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가보아야겠군."
그는 한 덩어리 묵직한 은자를 점원에게 들려 주었다.
공령천신의 몫까지…
이어, 하후미린은 밖으로 나섰다.

<금강혈가람.>
<금강혈가경.>
<공룡혈뇌찰.>

우연히 얻은 한 권의 고대범밀경(古代梵密經)에서 나온 이름들.
모르리라!
그것에 내재된 그 엄청난 신비를…
하후미린으로서도 알지 못하는 신비가 그곳에 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풍운!
그 시작은 한 명의 용(龍)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늘에 오르려는 자들의 집요한 포섭으로부터…


혜자(惠子)가 양혜왕(襄淮王)의 재상(宰相)에 취임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장자(莊子)는 양국(襄國)을 방문했다.
간인(姦人)이 있어 혜자에게 말했다.

--장자는 틀림없이 당신의 직위를 뺏으러 온 것입니다!

신경이 곤두선 혜자는 삼일(三日)을 고심하다 장자를 찾아갔다.
물론, 혜자는 장자를 설득시켜 자신의 막하에 두거나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 때, 그런 그를 보며 장자는 말했다.

--남해(南海)에 원추(鴛鰍)라는 천조(天鳥)가 있음을 알고 있소?
그 천조는 남해에서 북해까지 날아가는데 도중 벽오동 (碧烏棟)나무에서만 쉰다오.
또, 갓 나온 이슬 맞은 죽순 외에는 먹지 않고, 감로수 외에는 목이 마르더라도 결코 마시지 않소!
그런데, 썩은 쥐를 주운 자오(子烏)가 구만리장천을 비상해가는 원추를 보고 애써 얻은 썩은 쥐를 빼앗기지 않나 해서 걱정을 했다는구료.
그래서,
까악! 소리치며 원추에게 덤벼들었다오!
허나, 원추는 그대로 날아갈 뿐이었소!
달려드는 자오를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암흑의 공간,
한 점의 빛줄기도 있지 않았다.
허나, 검은 암흑 속에 섞여 있는 피의 기운!
그것은 천지창세(天地創世) 이전의 혼원암흑계(混元暗黑界)였다.
그리고,
둥실…!
진공의 대기를 부유하는 검붉은 형상이 있었다.
츠츠츠…!
폭발해 오르는 극렬한 절대악마기류!
그것은 인간의 몸에서 풍길 수 없는 기운이었다.
악마의 기도!
보는 이의 심혼이 산산이 바스러져 저 깊숙한 지옥유부(地獄幽府)로 떨어져 내릴 전율적인 악마의 파천마력도(破天魔力道)!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울려 퍼졌다.
"크흐흐! 대륙육패천인! 놈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저 아수라의 저주음(詛呪音)!
우우우웅!
그 끔찍한 저주악마음은 암흑의 진공대기를 찢어발기며 울려 퍼졌다.
인간!
전율적인 악마기류를 흘리고 있는 자는 인간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울부짖는다.
지옥유부에서 일천 마리의 악귀가 한꺼번에 호곡하듯,
"흐흐흐! 천림에 숨은 잠룡을 격살시키려 지저사계를 움직여 대륙육합천패를 준동시키고 유령사모를 천림으로 쫓기게 해 천림파멸을 노렸거늘!"
그 악마의 저주음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자신에 대한 노화가 솟구치고 있는 것이었다.

지옥천마황(地獄天魔皇)!

지옥의 유부에 숨어 천하를 노리는 자!
아무도 그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
"황천(皇天)을 먼저 얻어 지옥혈천하의 기반을 닦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한데. 그놈이 활보하고 있다니. 죽이리라!"
휘우우웅!
저 폭풍같이 회오리치는 가공할 살기!
닿는 것만으로도 적의 신경마저 박살낼 정도로 엄청난 살 기가 흘렀다.
"힘으로 본 지옥천마혈맥(地獄天魔血脈)을 막을 자는 철혈전신맥뿐이나 그 무적철혈풍은 육합을 제압하느라 사라졌다!"
뭉클… 뭉클…!
피와 죽음의 끔찍한 악마혈기류가 자욱하게 피어 오른다.
"남은 것은 하후만상천맥! 그 뿌리만 제거된다면 지옥혈천하는 이룩되리라! 크흐흐…"
우르르!
그 끔찍한 저주살음에 진공의 대기가 몸을 떨었다.
한데, 어느 한 순간,
"백색사령(白色邪靈)!"
지옥천마황의 입에서 한 소리 폭갈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스르르…!
암흑의 일갈을 무너뜨리며 한 무더기의 백무(白霧)가 아지랑이처럼 피어 올랐다.
스스스…!
그것은 이내 인간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백색인간!
머리결과 피부, 눈썹과 손톱,
그리고, 눈마저도 새하얗다.
공포마저 느껴야 하는 전율적인 사기(邪氣)를 내뿜으며 한 명의 백색인간이 유령처럼 출현한 것이었다.
나이조차 짐작할 수 없는 밀랍인형처럼 으스스한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백색인간!
"삼가 백색사령이 존황 각하의 하명을 기다리오이다!"
부르르…!
그 공포적인 사령기를 내재한 백색인간,
그도 저 암흑 속에 부유하는 지옥천마황 앞에서는 떨고 있었다.
"가랏! 가서 놈을 죽여라! 하후만상천맥의 뿌리를 잘라라!"
순간,
"존명!"
스스스…!
다시금 백색사령은 안개로 화해 어둠으로 녹아 들어갔다.
유령과도 같이…
살인명령(殺人命令)!
그것은 떨어지고야 말았다.
백색의 공포자--백색사령!
과연 그가 죽일 척살대상자는?
이곳은 지옥의 마계였다.

<지옥마계(地獄魔界)>


하후미린,
그는 인적없는 황야를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휘이잉!
썰렁한 야풍에 갈대가 숨을 죽인다.
"후후! 금황신후라 했는가?"
하후미린은 소매에서 황금빛의 조그만 비파를 꺼내 쥐며 미소지었다.
허나, 그것은 차라리 씁쓸한 자조의 고소였다.
"황금으로 하늘을 움직일 수 있고 내게 힘을 줄 수 있다면 벌써 이루었을 것이다!"
하후미린은 황금슬을 도로 집어 넣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데, 어느 한 순간, 그는 목덜미가 뻣뻣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다!)
강렬한 살기!
그것을 느낌과 동시에 하후미린의 뇌리는 쾌속하게 회전했다.
(나의 목숨을 끊으려는 자는 스스로 하늘이라 생각하는 자뿐이다! 그렇다면?)
그의 눈가로 서늘한 이채가 스쳐 갔다.
(후후! 목숨을 건 도박. 하늘이 되려는 자 중에서 내게 힘을 줄 수 있는 자가 있어야 했거늘. 오직 파멸만을 원하는 지옥천이 먼저 왔군!)
빙그레…
싱그러운 미소가 흐른다.
(이것이 운명이라면 받아 들여야겠지! 원추는 다만 날 뿐이나 썩은 쥐를 움켜쥔 자오는 그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니…)
하후미린은 공허한 시선을 들어 맑은 창공을 올려다 보았다.
"나는 갈 뿐이라네."
그는 잔잔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일 마장 앞,
돌연,
스스스…!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듯 한 무더기의 백무가 떠올랐다.
그것은 이내 한 명의 백색인간으로 뭉쳐지고 있었다.

백색사령!

백색의 공포자!
지옥의 유계에서 척살명령을 하달받고 올라온 죽음의 사형집행인!
바로 그였다.
한데,
(…!)
하후미린의 초연한 기운을 본 그의 백색안이 가볍게 일렁였다.
(하늘… 이다!)
그의 마음은 그렇게 부르짖고 있었다.
하늘을 보지 못한 자는 하늘을 모른다.
백색사령!
그는 지난 일백 년의 시공을 그 자신이 하늘이라 믿는 지옥의 하늘을 보아온 자였다.
그랬기에 그는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그는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이 받들고 있는 그 지옥의 악마천이 진정한 유일천임을.
허나, 그의 눈앞에 있는 저 허허롭기까지 한 하늘,
그것도 또한 하늘이었으니…
"하늘이 두 개일 수는 없다!"
백색사령은 새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한 입술을 깨물며 뱉듯이 중얼거렸다.
"하후공. 그대는 시대를 잘못 타고났소!"
그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대륙무림의 유일지존이 되실 분을 위해 그대는 죽어야 하오!"
이어,
슥…!
그의 새하얀 백색사수가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퍼억!
둔주한 파육음(破肉音)이 터지며 피가 튀었다.
하후미린의 백의가 삽시간의 피로 물들어 갔다.
뚝…! 뚝…!
백색사령의 백색사수는 어느새 하후미린의 가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
그 손을 타고 점점히 시뻘건 선혈이 흘러 내렸다.
허나, 하후미린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백색사령! 원추라는 하늘의 새를 아는가?"
그의 입에서 무심히 흘러 나오는 말,
부르르…!
백색사령의 백미가 격렬하게 떨렸다.
"대륙무림 따위는 내겐 썩은 쥐일 뿐이거늘…"
푸들… 푸들…
하후미린은 그렇게 웃으며 서서히 쓰러져 갔다.
그리고,
쿠웅!
그는 그대로 둔중한 소리와 함께 갈대 숲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죽은 것이었다.
백색사령!
그 자의 전신은 오한이 들린 듯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썩은 쥐를 지키려 하늘을 죽였도다!"
그자의 입에서는 회한의 떨리는 음성이 새어 나왔다.
"대성인이시여!"
이어,
쿵!
그는 무릎을 꿇으며 오열했다.
주르르…!
새하얀 백안을 찢으며 흐르는 붉은 혈루(血淚)!
그는 그제서야 느낄 수 있었다.
어느 것이 진정한 하늘인가를…
진정한 하늘의 도를…
그가 그것을 느낀 이유 중 허나는 하후미린의 우측 손가락에 끼인 유리반지 때문이기도 했다.
"유리천사환(琉璃天邪環)을 지니시고서도 목숨을 버리시다니…"

유리천사환!

그것이었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인들을 무릎 꿇릴 수 있는 사도지존의 신물!
백색사령!
그도 사계(邪界)의 인물이었다.
허나, 그는 하후미린이 자신의 우수를 좌수로 가리고 있었기에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죽으면서 남긴 말을 되새기며 그 투명한 유리반지를 보면서 모든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얼마의 시각이 흘렀을가?
문득, 오열하던 백색사령이 천천히 일어섰다.
츠으으…!
그의 백색사안으로는 어떤 결심의 빛이 서리고 있었다.
"유령사모. 천년사황녀께서 생존해 계시다면 이 분 하후공의 보살핌을 받으셨으리라! 유령사모님을 찾아 죽음으로 사죄하리라! 아울러. 전설에 묻힌 일천사령전사군(一千邪靈戰士軍)을 찾아 복수하리라!"
으드득…!
그는 이를 갈며 맹세하고 있었다.
이어, 그는 처연한 신색으로 신형을 돌렸다.
"무덤(塚)은 필요치 않으오리다! 천지(天地)가 관(棺)이고, 해와 달이 보석이 될 것이고, 별들이 진주가 되어 하후공의 매장품이 될 것이오이다!"
그리고,
스르르…!
아침 안개가 바람에 흩날리듯 백색사령은 사라져 갔다.

하후미린!
하늘이었으되, 그 하늘을 움직일 힘이 없었던 대철인!
나라는 있으되, 신민을 부릴 수 없는 천자와도 같았던 인물!
스스로를 하늘로 자처했던 그였기에 그는 하늘의 뜻에 따라 저 무궁한 대자연의 품으로 안겨든 것이었다.

휘이익!
무심한 밤바람(夜風)이 구슬피 울었다.
화르르…!
갈대는 하늘의 죽음을 애도하듯 머리를 산발하며 흐느낀다.


노을,
핏빛 노을이 황야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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