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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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변황야망(邊荒野望)의 부활(復活)
변황(邊荒)!
대륙의 밖을 일컬음이었다.
고래(古來)로 중원대륙은 초인(超人)들의 전설지(傳說地)였고, 변황(邊荒)은 신비로운 신화지(神話地)로 불리우고 있었다.
변황에 내려오는 수천, 수만 가지의 신비로운 신화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신비로운 신화 하나가 변황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오직, 이름만이 알려져 있었을 뿐 모든 것을 신비의 장막에 가리운 채 드러내지 않은 변화최후의 신비지,
<태양천(太陽天).>
태양의 하늘!
그렇게만 불리우는 이름이 전해져 내려왔다.
대막(大漠),
저 가이없는 대사막을 건너, 열 개의 죽음의 용권풍역(龍拳風域)을 지나야 당도할 수 있다는 태양의 신화지!
변황인들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단지 하나는 변황무도계의 시조신이라 일컫는 변황유일신(邊荒唯一神)의 탄생신화가 그곳에서 이어졌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사막을 떠도는 신기루(蜃氣樓)와도 같은 불가해(不可解)의 신화였다.
태양천!
그것은 과연 영원(永遠)히 깨지지 않을 불파(不破)의 신화인가?
콰콰콰콰!
콰우우우우웅!
바람(風)!
시원함을 넘어 살인적인 대강풍이 대지를 휘몰아친다.
콰--드득!
거치는 모든 것은 산산이 으깨어져 분말(粉末)로 화(化)해 버린다.
콰우우우웅!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휘돌며 허공 일천장(一千丈)을 치솟아 오른다.
용권풍(龍拳風)!
일명(一名), 지옥(地獄)의 돌개바람이라 일컫는 죽음의 모래바람(砂風)이 저 가이없는 대사막 전역을 굉렬하게 휘도는 것이었다.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만 근의 거암(巨岩)조차 그대로 박살나 먼지로 화해 흩날리고마는 공포적인 살인강풍지대(殺人强風地帶)!
<등격리사막(騰格里沙漠).>
그렇게 불리우는 대막제일의 대사막은 동격리사막 내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해 있었다.
죽음의 흑선대강풍역(黑旋大强風域)!
인간은 물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지옥의 흑풍지대(黑風地帶)는 그 넓이가 얼마인지 그 내부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는지조차 아는 사람은 전무(全無)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 한 명의 인간도 들어갔다 하면 아무도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불귀지옥(不歸地獄)!
한 번 들어서면 시신(屍身)은 물론 그 영혼(靈魂)마저 산산이 으깨어 버리고 마는 공포(恐怖)의 사역(死域)이 흑선대강풍역이었다.
콰콰콰콰콰!
콰우우웅!
대기마저 휘말아 버려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의 굉폭한 죽음의 흑사선풍(黑砂旋風)이 휘몰아친다.
"…!"
"…!"
묵묵히 입술을 꽉 다문 채 우뚝 서 있는 사인(四人)이 있었다. 돌부처가 아닌, 분명한 인간이었다.
삼남일녀(三男一女)였다.
츠츠츠츠!
쿠우우!
보라!
대지(大地)마저 갉아 천중(天中)으로 날려 버릴 공포적인 죽음의 용권풍마저 사 인의 십 장 근역으로는 아예 접근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파파파팟!
시퍼런 불똥을 퉁겨 내며 오연히 대지를 밟고 선 사 인의 시선은 한 곳으로 모아져 있었다.
능히, 기도만으로도 범인(凡人)이라면 압사(壓死)할 정도로 가공할 풍도를 지닌 인물들이었다.
성별(性別)이나 그들의 나이도 다르나 그들 사 인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절대종사(絶代宗師)의 위엄!
바로 그것이었다. 만일, 이런 인물들이 무림천하에 열(十)이 있다면 그대로 피의 폭풍우 속으로 휘말아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그들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기도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츠으으!
선두의 백의중년인의 전신에서 폭출되는 번갯불 같은 예기는 닿는 모든 것을 단번에 수백만 조각으로 분참(分斬)할 듯 날카로운 것이었다.
그의 움직임은 볼 수도 없었지만 유리(琉璃)와도 같이 투명한 은검(銀劒)을 소중하게 두 손으로 안고 있는 그의 자세는 바늘 끝이라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수호검강(守護劒剛)을 이루고 있었다.
초극검예인(超極劒銳人)!
그는 능히 검도의 초극지경에 다다른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맞은편,
파스스…!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의 십 장 근역의 대지는 진흙바람처럼 질퍽하게 녹아 있는 것이 아닌가?
녹인(綠人)!
걸치고 있는 옷도 짙푸른 녹의(綠衣)였고, 어깨까지 덮은 산발한 머리결 또한 녹발(綠髮)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하얗고 까만 인간의 눈빛도 없었다.
츠으으!
일 장의 길이로 폭사되는 섬뜩한 녹광을 폭출시키는 녹안(綠眼)을 지니고 있으며, 피부조차도 녹색으로 빛나는 녹령괴인(綠靈怪人)이었다.
독(毒)!
녹령괴인의 전신에 서린 기운은 바로 가공할 독강기였던 것이다. 저 공포스러울 정도의 흑사용권풍마저 녹아 버리는 미증유의 독기류(毒氣流)를 폭출시키는 절대독종독인(絶代毒宗毒人)!
그의 좌측,
백색일색(白色一色)의 여인이었다. 머리카락과 피부, 검은자위가 있어야 할 동공(瞳孔)마저도 섬뜩한 백안(白眼)의 여인이었는데…
쩌쩌쩌쩡!
보았는가?
그녀 주변의 땅덩어리가 얼어붙어 거북의 등껍질인 양 갈라지고 있었다.
그 위로,
스스스…!
새하얗게 쌓이는 서리들은 급속이 대지를 냉각시켜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좌측,
나이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주름진 노안(老顔)을 지닌 혈가사(血袈裟)를 걸친 승인이었다.
허나, 그에게서 풍겨지는 기운은 성불(聖佛)과는 거리가 먼 대악(大惡)의 사기(邪氣)가 물씬 배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악불(惡佛)!
그렇게 불리워야 할 섬뜩한 사승(邪僧)!
전율적인 악불마기류(惡佛魔流氣)를 흘리고 있는 그의 반쯤 감긴 눈가로는 어울리지 않게 색정(色情)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누구라도 그 눈을 본다면…
특히, 여인이라면 그 대로 혼령(魂靈)을 빼앗겨 버릴만큼 사념(邪念)의 극한기가 서려 있는 눈이었다.
능히, 일문의 지존기도를 지닌 이들이 어찌 이 대사막의 인적 끊긴 오지에 서 있는가?
그들의 공통된 시선의 끝.
콰우우우웅!
여전히 허공 일천 장을 치솟으며 광란하는 죽음의 사풍이 휘몰아치고 있을 뿐이었다.
문득, 제왕검혼(帝王劒魂)을 지닌 인물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고 있었다. 한 점의 감정도 실리지 않은 무심음이 새어나왔다.
"변황(邊荒)은 지난 일천년간(一千年間) 네 번의 대륙도전(大陸挑戰)을 감행했다!"
여인은 북빙(北氷)의 한풍(寒風)이 불 듯한 냉음(冷音)으로 사내의 말을 받았다.
"네 번 모조리 깨졌어요! 철저하게…"
한을 짓씹듯 여인은 뱉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허나, 이제 우리가 힘을 합한 다음에야 누가 감히 우리를 막을 수 있겠는가?"
쩌르릉!
광풍의 대기를 뚫고 울려 퍼지는 범종(梵鐘)이 울리는 듯한 웅후한 목소리가 있었다. 녹령독인이었다.
그에 뒤이어, 반쯤 감긴 눈까풀을 떨며 혈가사의 악불마승이 입을 열었다.
"악불타불! 우리 패천사상혈세(覇天四象血勢)의 모든 것을 잇고, 변황최후의 신화인 태양의 하늘을 얻는 진정한 변황지존후(邊皇至尊后)가 탄생된다면…"
격동하는가?
부르르르!
벅차오르는 희열을 감당할 수 없는 듯 악불마승의 눈썹은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무슨 소린가?
<패천사상혈세(覇天四象血勢).>
동(東)--제왕검도(帝王劒道)!
서(西)--악마사원(惡魔寺院)!
남(南)--남황독왕전(南荒毒王殿)!
북(北)--북천설빙국(北天雪氷國)!
천외(天外)의 공포혈세(恐怖血勢)!
변황무림계를 사분(四分)한 채, 각각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군림해 왔던 변황의 사대패천세력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그들은 서로 한 번씩은 대륙 군림의 야망을 가졌었던 세력이었다. 아울러, 처절한 패배의 아픔을 안았던 숙명적인 변황의 공존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말하는 의미는 실로 공포스러울 정도로 경악할 현실이었다.
패천사상혈세의 통합(統合)!
그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로 실현된 것이 아닌가?
"후후! 대륙정복(大陸征服)이라는 최후(最後)의 야망(野望)을 위해 우리의 개인적인 야망을 포기한 것은 잘한 일이외다!"
제왕검도주 제천검왕(帝天劒王)은 예의 무심한 어조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요. 초인기재(超人奇才)를 공동발굴하고 우리의 모든 것! 군림의 야망과 변황인의 한(恨)도 모두 풀 수 있는 변황의 유일지존(唯一至尊)을 우리가 탄생시킨다는 것보다 더 크나큰 기쁨은 없어요!"
북빙(北氷)의 여왕이었다.
--북천설빙국주(北天雪氷國主) 북천여제후(北天女帝后) 빙설연(氷雪燕)!
그녀의 옥용엔 따스한 기운이 피어 올라 있었다.
"클클! 고 계집아이가 나오면 대륙의 놈팽이들은 모조리 녹여 버려 줘야지!"
녹령독인의 이름도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남황독왕전주(南荒毒王殿主) 독종천황(毒宗天皇) 흑사룡(黑邪龍)!
지상최강의 독종독인이라는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흡사, 딸을 바라보는 부친의 눈길과고 같은 따스함이 서린 녹안(綠眼)으로 그는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소림사를 부수고 숭산에 악불혈신상(惡佛血神像)을 세울 날도 멀지 않았도다!"
웃는다.
악마사원주 악불대종사(惡不大宗師)!
중원제일악(中原第一嶽)에 악불혈신상을 세우는 것을 평생(平生)의 염원(念願)으로 불태워 온 천축불계(天竺佛界)의 유일신(唯一神)이라는 그의 입가로도 만족한 웃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변황사천황(邊荒邪天皇)이라 통칭되는 사 인의 절대종사(絶代宗師)들은 오직 일념의 간절한 시선으로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콰콰콰콰!
콰우우우웅…!
천지는 암흑 속에 갇혀 미친 듯한 죽음의 용권풍 속에 신음하며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한데, 어느 한 순간,
쩌쩌쩍!
갈라지고 있었다. 그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다는 흑선대강풍이 허공 일천 장 위로부터 반쪽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화르르르…!
칼로 벤 듯한 광풍(狂風)의 소용돌이 속에서 폭발(爆發)해 오르는 저 미증유의 지옥겁화(地獄劫火)의 기운은 천지간의 모든 것을 태워 잿가루로 만들어 버릴 듯이 굉렬한 것이었다.
그런 지옥겁화(地獄劫火)의 중앙엔 구층(九層) 구십장(九十丈)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거탑(巨塔)이 웅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고오오오…!
태양이 대지 위에 떠 있는가?
구층의 화탑(火塔)에서는 가공할 태양광휘(太陽光輝)가 일만장(一萬丈)을 뻗어오르고 있었다.
"오오… 드디어!"
"태양의 하늘이 열렸도다."
"이제야 탄생되는가? 변황지존후(邊荒至尊后)인 태양여왕(太陽女王)이!"
"태양의 성탑(聖塔)이여!"
변황사천왕은 격동에 몸을 떨었다.
치지직!
그 굉렬한 지옥의 태양화기류(太陽火氣流)에 의복(衣服)과 모발(毛髮)이 타오름도 잊은 채 그들은 치밀어 오르는 환희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비비비빙!
구층의 태양화탑(太陽火塔)에서 기이한 소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쩌쩌억!
거대한 탑신(塔身)이 거미줄같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아앙!
태양(太陽)의 폭발(爆發)!
고오오오…!
삽시간에 방원 일백 이내는 태양의 광휘에 휩싸이고, 대지는 모든 빛을 잃고 말았다.
태양천하(太陽天下)!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한데, 그 작렬하는 태양화(太陽火)의 중심으로부터 일어나는 기사(奇事)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둥실…!
태양의 화기를 계단 삼아 밟으며 하나의 인영이 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인간일 수 있겠는가?
화르르르…!
불길이 타오르는 화관(火冠)같은 화염 투구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다.
쩌쩌쩌… 쩡!
새파란 불꽃을 퉁기는 일장(一丈)에 달하는 거대한 화창(火槍)을 비껴든 채 나타난 인영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습이 드러나는 인영의 가슴에 걸쳐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하(盛夏)에 폭발하는 태양(太陽)을 보는 듯 부풀어 있는 두 개의 육봉(肉峯)엔 곧이라도 불길을 내뿜으며 등천할 듯한 화룡(火龍)의 문신(文身)이 둘러져 있을 뿐이었다. 그것으로 보아 정체가 여인(女人)임이 틀림없었다. 여인의 가슴만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인의 하체(下體)는 또 어떤가?
천주(天柱)를 보듯 육중한 여인의 허벅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허벅지의 사이엔 한 올의 터럭(毛)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단지, 팽팽하게 조여진 하복부의 끝으로 새겨져 있는 화룡문신(火龍文身)의 꼬리가 간신히 여인의 비처를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도톰하게 올라 있는 살덩이의 사이로는 균열이 나 있었고,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것은 석류처럼 벌어져 내밀한 붉은 속살을 언뜻언뜻 내비치고 있었다.
환상적인 미체(美體)!
태양의 여왕과도 같은 여인이었다.
한데 어느 한 순간,
화르르르…
여인의 비처를 휘감고 있던 화룡의 문신에서 시뻘건 화염의 불꽃이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그것은 그대로 한 마리 화룡이 또아리를 튼 듯, 여인의 가슴과 하복부, 그 끝의 삼각비역(三角秘域)을 가리워 주고 있었다.
스윽!
여인은 우수(右手)에 들린 화창(火槍)을 치켜 올렸다.
쩌쩌쩡!
일만 개의 화탄이 폭발하듯 굉렬한 화기(火氣)가 여인의 화안(火眼)에서 폭출되었다.
"나, 태양의 여왕이 탄생했으니 변황은 곧 태양의 성지가 되리라!"
우우웅…! .
해일이 밀려들 듯, 거대한 화염의 불꽃이 대기를 불태우며 퍼져 나갔다.
"천년풍! 그 무적철혈의 바람이 사라진 대륙은 무너지리라! 오직, 천 년의 바람만이 나를 막으리라! 그것일지라도 깨어질 것이지만…"
단언하고 있었다.
변황지존후(邊荒至尊后) 태양여왕(太陽女王)!
대륙이여 아는가?
변황의 오지(奧地) 속에서 수천 년을 잠 속에 빠져 있던 변황최후의 신화가 깨어졌음을…
태양의 신화!
변황의 힘과 태양의 천위(天威)를 지니고 탄생된 변황지존후 태양여왕!
변황은 급변하고 있었다.
그 결말은 어찌 될 것인지…?
태원(太原).
산서(山西)와 하북(河北)의 접경지에 있는 조그마한 성읍(城邑)의 이름이었다.
뚜렷한 특징도 없었다.
그래서 세인들에겐 별로 이목을 끌지 못하는 평범한 지대였다. 단지, 태원성의 외곽엔 하나의 장관(壯觀)이 펼쳐져 있었다.
죽림(竹林)!
수천 년을 단 한 번의 베어짐도 없이 그 무성한 잎을 뻗쳐 오른 엄청난 대나무의 밀림지대(密林地帶)였다. 굵기는 통나무만큼 두껍고, 그 길이는 천년거목(千年巨木)만큼이나 솟아 있는 엄청난 대나무 숲이었다.
그 하나 하나의 단단함은 보검이라도 자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런 대나무 군단이 태원성의 북방(北方) 일백리(一百里)를 점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청하림(靑霞林)>
그곳을 태원성민들은 그렇게 불렀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계(四季)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푸르른 노을이 깔려 있는 죽림이었다.
아울러, 세인들은 청하림을 신역(神域)으로 여기고 침습하기를 꺼려했다. 한 번 들어선다면 그 끝없는 죽림의 미로(迷路)에서 헤매다가 죽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청하림은 천년(千年)을 이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알지 못하리라. 태원이라는 지명(地名)이 정착되기 수천 년 전, 이곳엔 잊혀질 수 없는 전설의 이름이 깔려 있었다.
인간의 이름을 가졌으되 인간일 수 없는 절대의 초극천인(超極天人)이 하늘의 패권을 놓고 쟁패(爭覇)했던 곳인 것이다.
<탁록(倬鹿)>
아는가?
그 이름을…
중화대륙(中華大陸)의 천인신화(天人神話)중 가장 위대한 천인(天人)인 황제(黃帝)는 가장 지혜로왔으며 초유(初有)로 문명(文名)을 대륙에 심었던 대철인(大哲人)이었다.
그와 동시대(同時代)에 존재(存在)했던 또 한 명의 천인이 있었다.
공룡의 파천황력(破天荒力)을 지녔던 패신(覇神)인 치우(蚩尤)!
황제와 치우는 운명적으로 부딪쳐야 했다.
<탁록대전(倬鹿大戰)>
그 초유의 천인격투장(天人激鬪場)이 되었던 곳이 바로 탁록이었던 것이다.
결국, 하늘이 뒤집히고 대지가 함몰하는 대격돌(大激突)이 벌어졌다.
최후의 승자(勝者)는 황제(黃帝)였다.
그리하여, 황제는 차후에 그 이름을 남겼고, 치우는 패자(敗者)로서 치욕적인 오명(汚名)만을 떨구고 갔을 뿐이었다.
황제는 그 기념으로 탁록에 천령자죽(天靈紫竹)을 심었다는 전설이 이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이 청하림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그 천령자죽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기에…
대륙역사에서 사라진 신화의 대지--탁록!
과연, 그 신화는 단지 옛이야기였을 뿐인가?
모를 일이었다.
"황제가 치우를 영원히 사멸시키려 천라금쇄천죽대진(天羅禁碎天竹大陣)을 탁록에 펼쳐 놓은 줄은 아무도 모르리라!"
한 소리 낭랑하면서도 청량한 음성이 죽림을 울렸다.
사박… 사박…!
죽엽(竹葉)을 밟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미청년이 있었다.
화르르르…!
단정히 백건(白巾)으로 묶어 뒤로 넘긴 수발(首髮)은 야풍(夜風)에 흩날리고 있었다.
언뜻 내비치는 용모는 기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귀밑까지 뻗어 내린 은광(銀光)마저 반짝이는 백미(白眉)의 아래엔 현천(玄天)의 모든 은하수가 응축된 듯 빛나는 성목(星目)이 있었다.
우주(宇宙)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모조리 쓸어 담은 현기(玄氣)마저 서린 눈망울을 지녔고, 여인보다 더 고운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삿빛 붉은 입술은 그 누구라도 입맞추고 싶어할 정도로 황홀했다. 한 마디로 환상적인 선계(仙界)의 미남이었다.
천세잠룡 하후미린!
바로 그가 아닌가?
절대황역(絶代皇域)인 자금성에서 자금쌍미후라는 황실제일쌍미(皇室第一雙美)를 자신의 것으로 취해 버린 천세기남아(千世奇男兒)!
헌데, 그가 휘적휘적 걷는 이곳은 청하림이 아닌가?
짙푸른 청죽의 바다엔 사방 어디를 돌아보아도 보이는 것은 오직 대나무의 숲뿐이었다.
한데, 그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도 목숨을 도외시한 지옥에로의 입문이 아닌가?
그는 분명히 말했다.
<천라금쇄천죽대진(天羅禁碎天竹大陣)>
아는가?
만년(萬年)을 산다는 만년자령천죽(萬年紫靈天竹)으로만 펼칠 수 있다는 신화 속의 대사진(大死陣)이 바로 그것이었다.
만년자령천죽 두 그루를 심으면 무수한 잔가지를 뻗어 천세(千世) 후엔 그 가공할 진세(陣勢)로 하늘마저 가둬 버리고 말았다.
그것으로 이루어진 진세는 해진법(解陣法)이 있을 수 없었다. 오직, 하늘의 기운을 읽을 수 있는 철인(哲人)만이 영감(靈感)으로 길을 갈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은 자가 이곳으로 진입해 든다면 설사, 영혼일지라도 분쇄되어 영원히 갇히고 만다.
그런데, 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천계(天界)의 선인(仙人)인 듯한 인물인 하후미린은 마치 제 집의 정원을 산책하듯 유유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득,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뚝!
그는 이제 막 피어오른 죽엽(竹葉) 하나를 꺾어 입에 물었다.
"천하가 어지러워지고 있다."
츠으…!
유현한 그의 동공으로 한 줄기 기광이 스쳐가고 있었다.
"아직은 암중에 숨어 있으나 천하는 지옥겁풍이 휘몰아치기 직전에 놓인 상태다."
그는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십 장을 뻗어 올라 있는 짙푸른 청죽의 사이로는 그것만큼이나 창창(蒼蒼)한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내게 무공을 펼칠 힘만 있다면…"
꽈악!
하후미린은 입술을 피가 배이도록 짓씹었다. 음울하게 가라앉는 동공으로 투영되는 안타까움의 빛…
"하늘마저 뒤집을 자신이 있다! 허나…"
그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힘(力)! 내 본연이 힘만으론 겨우 대륙만을 감당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육합(六合)을 다스릴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 뿐이지."
하후미린은 음울한 시선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무(武)! 그것이 무엇이기에 나 하후미린을 좌절케 하는가? 머리만으론 천하경략(天下經略)이 무리인가?"
지그시 이를 깨무는 하후미린이었다. 붉은 입술가로 맺히는 선명한 이빨자국은 자신의 무력(無力)함에 대한 반증(反證)인 듯했다.
그랬는가?
자금성에서 그는 무풍(無風)의 절대적인 힘을 보여 주었었다. 허나, 그것은 그의 초인적인 지혜와 가공할 수호암기(守護暗器)인 공룡혈각으로써 이룩한 것일 뿐이었다.
<무(武)>
하후미린은 단 일 푼의 무공도 펼치지 못하는 범인(凡人)과 다름이 없는 평범한 신체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공룡혈각만으로도 일류(一流)의 무인(武人)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슥…!
하후미린은 천천히 자신의 쌍수(上手)를 들어 올렸다. 강인한 힘이 넘쳐 흘렀으나 그 부드러운 피부는 여인의 속살보다도 고왔다.
손톱은 붉었다.
핏물에 담그었다 꺼낸 듯 붉은 적광(赤光)을 발하는 열 개의 혈조(血爪)!
공룡혈각!
닿는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공룡의 파천황력을 지닌 기병(奇兵)이 그것이었다. 공룡제왕(恐龍帝王)인 치우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신화 속의 천병(天兵)인 공룡혈각은 인간이면 누구나 지닌 우주오행기(宇宙五行氣)의 잠재력(潛在力)을 격발(激發)시켜 발출시키는 공룡의 발톱을 일컬음이었다.
허나, 내공력이 없는 사람의 폭발력(爆發力)은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하늘을 뒤엎으려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초인(超人)이라 불리우는 절대천인(絶對天人)에게는 위협만을 줄 수 있을 뿐이었다.
하후미린의 그의 고민은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무공을 펼칠 수 없다는 것…
머리로는 천하를 능히 뒤집을 수 있으나, 그것에는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임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 하늘은 그대로 있어도 하늘이다!"
창궁(蒼穹)…
한 점의 티끌조차 없는 창창한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다.
"삼라만상이 다 하늘 아래 있고 하늘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허나…"
문득, 하후미린의 동공이 가볍게 흔들렸다.
"하늘이 있으려면 대지가 있고, 또 만상(萬象)의 생물(生物)이 있어야 하는 법! 모든 것이 없다면 하늘은 더 이상 하늘이 될 수 없다!"
사박! 사박…!
하후미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떨어져 시든 죽엽은 비명을 토하고…
"대지가 가물면 비를 주고, 홍수가 인다면 태양의 화력으로 거두고 꽃이 필 때면 바람을 주는 것! 그것이 하늘의 본질이거늘…"
츠으…!
하후미린의 시선에서 뻗어 오르는 유현한 기운은 공허하기조차 했다.
우주조차 담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이를 지니고 있는 그릇이었지만 그 재질이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하후미린은 힘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 하후미린은 하늘이 되려 한다.
하늘이 날 내렸고, 난 그 하늘이 되어야 할 운명을 타고났다.
필사(必死)의 운명에서 범인(凡人)이 되었다. 이제는 하늘의 운명(運命)을 받을 차례다. 날 살리려 일천종(一千種)의 영물(靈物)이 죽어갔고, 날 살리려 일천 종의 독물(毒物)이 사라졌다.
그것뿐이라면 아까울 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하늘이 되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소진(消盡)되는 기(氣)를 살리려 일천 명의 정기(精氣)가 소멸되었고. 그 폭발하는 열화지기(熱火之氣)를 잠재우려 백팔미녀(百八美女)가 순음지정(純陰之精)을 잃고 말았다.
--하늘이 날 탄생시켰고, 대지가 날 키웠다. 만상이 피를 주었고, 인간이 내게 인생을 주었도다!
--이 한 목숨으로 지옥겁화를 잠재울 수 있다면 그 무엇이 두려우랴?
"나는 지금이 좋다!"
빙그레…
하후미린은 저 창궁같이 맑은 미소를 떠올렸다.
"아침에 일어나 대죽으로 피리를 불고…"
뚝!
하후미린은 죽엽을 끊어 입가에 물었다.
"점심엔 죽순(竹筍) 요리를 먹고 밤엔 백팔첩(百八妾)과 더불어 운우의 낙(雲雨之樂)을 즐기니 어찌 황제(皇帝)인들 부러우랴? 하지만…"
하후미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상선약수(上善藥水)라…"
저미는 듯 새어나오는 음성이었다.
<상선약수>
최고의 지선(至善)은 곧 흐르는 물과 같다.
도가(道家)의 시조인 노자(老子)가 설파한 도(道)의 원리가 되는 말을 하후미린은 되뇌이고 있는 것이었다.
"최선은 곧 흐르는 물과 같으니…"
하후미린은 힘없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모든 인간이 하늘이 되고자 위로만 오르려 한다!"
그는 허허로운 시선으로 창천을 올려보며 독백했다.
"물(水)은 만물(萬物)을 뒤덮고 생성(生成)시키되 아래로 흐른다. 나 하후미린! 하늘이고자 하여 아래로 흐르는 물이 되리라!"
츠츠츠…!
크다!
이 순간, 하후미린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은 저 무궁한 대창천(大蒼天)이었고, 가이없는 망망(茫茫)한 대해(大海)와도 같았다.
들었는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도(道)!
극락(極樂)이 옆에 있거늘 스스로의 몸을 던져 고해(苦海)의 늪 속에 빠뜨리려는 자가 지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있었던 것이다.
"이제 황실(皇室)을 장악하려는 위인들의 야망이 내게 이어지리라!"
하후미린의 미안은 굳게 굳어지고 있었다.
"천림이 청하림임을 알게 될 것이고, 야망의 불나방들이 밀려들 것이다! 그리고…"
츠으으…!
하후미린에게서 번져오르는 광휘는 무도와는 상관 없는 천인지광(天人之光)이었다.
"천림은 침묵할 것이고 나 천세잠룡을 취하려는 자들이 기연(奇緣)을 베풀 것이다!"
이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하후미린은 스스로의 뛰어남을 보이게 하여 천하의 야망화(野望火)를 지닌 효웅(梟雄)들을 끌어 모으려 한 것이란 말인가?
보이고 있었다. 하늘마저 투명(透明)하게 꿰뚫어 볼 대철인(大哲人)의 눈에 서려 있는 기색은 확신(確信)의 빛이었으니…
일다경(一茶更)이나 흘렀을까?
문득,
빙그레…
하후미린의 입가로 미소가 번져오르기 시작했다. 예의 장난스럽고 고집마저 서린 악동의 미소였다.
"후훗! 탁록삼미후(倬鹿三美后)! 오늘쯤은 완전히 익었으리라!"
츠으…!
그런 하후미린의 눈가로 번들거리는 색정(色情) 어린 동공은 어느새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탁록삼미후!
그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익었다는 말에 담긴 잠의(潛意)는?
이곳은 청하림이었다.
알지 못하나 능히 하늘의 숲이라 불리우는 천세의 신비지였다. 한 마리 천세잠룡이 웅비(雄飛)의 나래를 펴려 웅크려 있는 하늘의 숲. 과연 그 안엔 어떤 기경(奇景)이 펼쳐져 있는가?
제5장
타오르는 정욕(情欲)의 불길
일컫기를, 당금의 무림은 육합천하(六合天下)로 불리웠다. 그것은 대륙무림을 육분(六分)하고 있는 여섯 개의 패천세가 얼마나 가공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었다.
<대륙육합천패(大陸六合天覇)>
황금재벌(黃金財閥)!
여인제국(女人帝國)!
뇌정마계(雷霆魔界)!
십자천검성(十字天劒城)!
신비혈련(神秘血聯)!
묵붕천비영(墨鵬天飛營)!
이들은 대륙의 하늘들이었다. 허나, 그들은 대륙무림의 유일천(唯一天)이 될 수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늘에 태양이 여섯일 수는 없었고, 더 큰 좌절의 이유는 한 줄기 바람 때문이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거대한 바람!
그 누구도 그 바람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천년풍(千年風)!
천 년의 바람…
그 무적철혈풍 앞에 대륙육합천패는 죽음보다 더 치욕적인 패배(敗北)의 쓴 맛을 봐야만 했었다. 아울러, 그들의 군림야망(君臨野望)의 불길은 사그러 들었고, 그에 비례하여 그들의 마음 속에는 더욱 큰 야망의 불길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대륙육합천패는 침묵(沈默)으로 십년(十年)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열화(烈火)같이 일어났으나, 처절하게 패배한 치욕을 짓씹으며 침묵 속에 영겁(永劫) 같은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리라. 대륙무림은 차츰 그 이름을 잊어 갔으나 그들은 가히 파천황적인 잠재력(潛在力)을 키워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터져올랐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그 무차별한 대패력(大覇力)은 한 곳으로 집중(集中)되었다.
<지저사계(地底邪界).>
그 이름은 죽음의 대명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아울러, 그 이름은 이제껏 지상에 드러난 적이 없었던 신비세이기도 했다.
사계(邪界)의 역사는 마도천력(魔道千歷)에 비견될 정도로 오래된 것이었다.
허나, 초유의 대초인마왕인 마야 나후천은 사도(邪道)와 동반하기를 꺼려했다.
결국, 사계는 마도에 눌려 만장지저(萬丈地底) 속으로 숨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탄생(誕生)되었다. 지상에서 마(魔)가 사라지기 이전에는 결코 빛을 볼 수 없는 사후세계(死後世界)의 지배자(支配者)!
그 힘이 얼마인지를 추측하기란 실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힘이 폭발을 일으켰다.
나올 수 없는 무저갱(無底坑)으로 사라져 버린 지저사계가 천 년의 세월동안 억눌려 있던 대화산과도 같이 굉렬하게 터져 올랐다. 어쩌면 자살이라도 하려는 듯이…
대륙육합천패에의 도전(挑戰)!
그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닥친 것이었다.
만장지저에서 피의 구름을 타고 십만의 지저혈사전사군단(地底血邪戰士軍團)이 일어났고, 그들은 육극(六極)으로 갈라져 대륙무림의 여섯 하늘을 공략해 들었다.
실로 기가 막힐 일이었다. 천년사력(千年邪力)을 일시에 폭살시킨 지저사계!
그 힘은 실로 미증유적(未曾有的)으로 거대한 것이었다. 능히, 그 파괴력(破壞力)은 대륙의 여섯 하늘 중 일패(一覇)와 맞먹을 정도였던 것이다. 헌데, 그들이 대륙육합천패를 일시에 공적(共敵)으로 삼아 대혈전(大血戰)을 일으킨 것이었으니…
이란타석(以卵打石)!
대륙무림에서 비록 천 년의 무적철혈풍에 휘말려 그 야망의 군림거보(君臨巨步)가 좌절되었다고는 하나 대륙육합천패라는 이름은 누가 뭐래도 대륙을 받치는 여섯 개의 기둥이었다.
대륙의 하늘들은 노했다. 당연하게 처절한 피의 응징이 시작되었다.
파멸(破滅)!
지저사계의 십만혈사전사군단은 그대로 지옥의 나락으로 흩날려가고 말았다.
그런 처참한 결과가 나타났지만 대륙육합천패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그들은 한 명의 절대사인(絶代邪人)을 뒤쫓기 시작했다.
유령사모(幽靈邪母) 야화련(夜花蓮)!
사후세계의 지배자!
지저사계의 천년사황녀(千年邪皇女)!
유령(幽靈)이라는 외호가 말해 주듯 그녀를 잡을 자는 천지에 아무도 없었다. 대륙육합천패의 천라지망(天羅地網)이 대륙무림을 뒤덮었어도 그 절대사후인 유령사모 야화련의 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모래밭에 빠진 한 방울의 물과도 같이…
그 일련의 사태는 지옥의 혈풍이 불기 위한 서곡(序曲)일 뿐이었다.
지저사계의 파멸로부터 음모(陰謀)는 시작되었다.
청하림.
여전히 짙푸른 노을이 백리(百里)를 뒤덮고 있었다.
그 청하림의 서단(西端)에 위치해 있는 방원 일천 장의 평지는 한 뿌리의 대나무도 없었다. 아니, 아예 그 어떤 생물체조차 살 수 없었다.
콰콰콰쾅!
황폐함에 갈가리 찢겨진 대지는 엄청난 대강풍 속에 휘말려 있었던 것이다.
빠지지직!
집채만한 거암(巨岩)이 순식간에 가루로 부숴져 대기로 휘말려 올라갔다. 엄청나기 이를 데 없었다. 흡사, 대사막에 있다는 죽음의 용권풍이랄까?
그 굉렬한 대폭풍강은 오직 방원 일천 장을 뒤덮고 있을 뿐이었다.
"쳇! 미린이 보고 싶으니 대천풍력(大天風力)을 조절할 수가 없어."
그런데, 이 미증유의 대강풍 속에서 인간, 그것도 여인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방원 일천 장을 뒤덮은 대강풍 속엔 경악스럽게도 한 거영(巨影)이 우뚝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앉은 키만도 능히 육 척에 달하는 초거인!
더욱 경악스러운 사실은 그 거인은 분명 여인이라는 것이었다.
묵철(墨鐵)을 뭉쳐 놓은 듯 시커먼 피부였다. 허나, 그것엔 굴강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검은 수발은 바닥에까지 치렁하고, 검은 눈썹은 사내의 그것인 양 굵었다.
오똑 솟은 콧날은 육중하고, 입술은 얇으면서도 윤기가 흐른다.
철인(鐵人)이라고나 할까?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은 나신이었다.
보이는가?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묵철봉(墨鐵峯)은 두 개였다. 거대한 수박덩이를 보듯 천 근의 묵철로 주조된 듯한 육중한 유방이었다.
모조리 검었다. 단지 두 알의 유실(乳實)만은 처녀(處女)임을 증명하듯 분홍빛으로 파르르 떨린다. 설사, 보검으로 내리친다 해도 미동도 않은 육중한 근육덩어리를 감히 그것을 빨아 들이려는 자는 이빨이 부러짐을 감수해야 할 만큼 탄력적으로 솟구쳐 있었다.
그 아래, 저 왕자(王字)마저 선명한 하복부를 보라. 우거진 검은 밀림이 배꼽까지 이르러 있었다. 허나, 그런 중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인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복부의 아래로 굵기가 웬만한 사내보다 굵은 여인의 허벅지의 사이로 도톰하게 볼록한 둔덕이 균열되어 있음이 확연히 드러나 보인다.
이런 유의 여인이 지상에 존재해 있음은 그대로 불가사의(不可思議)와도 같았다.
검은 묵철로 빚은 철 사이 단좌해 있는 듯한 여인은 모든 것이 엄청날 정도로 컸다. 허나, 완벽한 균형미를 철인거녀(鐵人巨女)는 지니고 있었다.
문득,
뭉클…!
그녀는 자신의 육중한 수밀도를 움켜 쥐며 신음했다.
"아…"
그녀의 눈은 체구와는 달리 섬연했다. 짝을 잃은 어린 암사슴의 눈이랄까?
그윽한 그 검은 동공엔 한 줄기 뜨거운 그리움의 빛이 내재되어 있었다.
"미린. 천첩은 괴물(怪物)이었어요. 천첩이 분노(憤怒)하면 방원 백 장 이내는 대폭풍이 휘몰아쳐 초토화(焦土化)되고 말았어요."
목소리는 굵으나 고왔다. 거녀(巨女)는 고통스러운 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내게 온갖 멸시를 주며 멀리했고 정(情)에 굶주린 천첩은 미친 듯이 천하를 휘젓고 다녔지요."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이 분노로서 스스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니…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 부느 대폭풍강도 그녀가 일으키는 것이란 말인가?
"미린. 당신은 천첩을 거두며 말했지요. ."
여인의 눈은 굳어지고 있었다. 사랑의 감정이 일렁이는 봉목,
"천풍혈(天風血)이 내 몸에 있고, 인간이되 인간일 수 없는 사람은 천림으로 들어야 하신다면서 당신은 천첩을 이끌었어요."
천풍혈(天風血)!
그것은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하늘 밖의 신화를 일컫는 말이었다.
바람(風)과 벼락(霹靂)과 달(月)의 신비신화!
<천상삼사(天上三師)!>
전설은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천풍사(天風師)!
천뢰사(天雷師)!
천월후(天月后)!
바람과 벼락과 달,
천상에 자리한 세 명 천인(天人)의 스승은 자신의 뜻에 다라 천풍(天風)을 일으키고, 천뢰(天雷)의 힘으로 천지를 갈가리 찢어발기고, 천월(天月)의 요염함으로 하늘을 진동시킨다.
그리하여 천상삼사라 불리우는 하늘 밖의 신화는 전설상으로만 전해지는 신비였다.
뉘라서, 대자연에 동화되어 그것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한데, 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여인은 분명 말하지 않았는가?
그녀 자신의 몸안에는 천풍혈이 흐르고 있노라고…
천풍혈!
그것은 천상삼사 천풍사만이 지녔던 바람의 혈맥(天風血脈)이었다.
천림!
그것이 과연 무엇이기에 그 초극이도 불완전한 기인의 집합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미린. 그 분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진정되고 바람은 나의 의지대로 조절된다! 허나…"
여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는 모든 것에 초연해질 수 있으나 그 분이 보고 싶을 때면 어쩔 수가 없으니…"
거녀는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스르르…!
그런 그녀의 등 뒤로 두 개의 새하얀 손이 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와 함께,
물컹!
그 두 손아귀에 저 거대하고 탐스러운 묵철(墨鐵)의 유방이 잡혀들었다.
"흐윽!"
여인은 아미를 찡그리며 입술을 벌렸다.
"훗! 철화의 유방은 언제나 단단해!"
한 소리 싱그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어느 사이였을까?
무릎 꿇은 거녀의 등 뒤로 한 명의 환상적인 미안(美顔)을 지닌 사내가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여인의 양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은 채 마음껏 여인의 탐스런 수밀도를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어때 오늘은?"
의미있는 물음을 던지는 중에도 그의 손길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허나, 그가 주무르면 그럴수록 여인의 수밀도는 더욱 단단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어느덧, 사내의 손길은 그 거대한 철의 유방의 봉우리만을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사내의 두 손으로도 다 차지 않을 거대한 철의 육봉(肉峯)!
"미린."
여인은 감격에 거구를 떨었다.
하후미린 이외에 그런 사내가 또 어디 있으랴?
여인은 가슴 언저리로 전해오는 열류에 교음을 흘리며 손을 뒤로 뻗었다.
출렁!
거대한 철의 육봉은 더욱 치켜져 올라가고, 여인의 교수는 하후미린의 목을 등 뒤로 끌어 안았다. 겨드랑이 사이로 흔들리는 우거진 숲…
하후미린은 눈을 찡긋하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스르륵…!
그의 또다른 손하나가 아래로 내려갔다.
여인은 무릎을 꿇고 있으나 사내는 서 있었다. 허나, 사내는 결코 그것을 개의치 않고 있었다.
사내의 손은 어느새 여인의 하복부를 부드럽게 쓸어 내리고 있었다.
부드럽게 덮여 있는 검은 밀림지대를 헤집으며 사내는 쉽게 신비의 계곡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굵은 허벅지의 사이 묵철로 빚은 듯 단단한 철주를 비집고…
"하아… 미린!"
여인은 절로 허벅지를 벌렸다. 순간, 믿어지지 않게 부드러운 붉은 속살이 촉촉히 젖은 채 빛났다.
문득, 하후미린은 손길을 멈추었다.
"철화(鐵花). 그대는 천풍사의 후예다. 허나 불완전(不完全)하다! 그대가 천풍혈을 제압하는 데 내가 필요하다면 가져 주겠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아… 미린."
여인은 감격에 겨운 시선으로 하후미린을 보았다.
파르르…!
경련하는 유방의 물결,
(모든 사람이 저주하고 멸시하는 천첩을…)
콰콰콰!
폭풍의 기세는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의 격발이 사라지고 사랑의 물결이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 주는 현상이었다.
"철화. 그대를 여인으로 만들어 주겠다! 진정한 천풍후로서!"
하후미린은 잘라 말했다.
"하,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며 여인은 두 손으로 젖가슴을 가린 채 고개를 떨구었다.
"제 유방은 비대할 정도로 크고, 천첩의 키는 보통 여인의 두 배가 될정도의 괴물… 어찌 위대하신 당신의 몸을 받을 수 있겠사옵니까?"
여인은 두려움의 공포마저 느끼고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말이었으나, 너무도 이질적(異質的)인 자신의 육체에 대한 회의감(懷疑感) 때문이었다.
"아…"
하후미린은 아무런 말도 않은 채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그시 눈을 내리감은 채…
그것이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는 여인이 모를 리 없었다.
(미린. 당신은 진정으로 이몸을…)
여인의 가슴으로 벅찬 희열이 번져갔다.
스윽!
그녀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단단한 철의 육봉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이어, 그녀의 파르르 떨리는 유실이 사내의 벌어진 입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진다.
"학! 아, 아파!"
잔인하게 이빨 사이로 짓씹히는 유방의 아픔에 여인은 아미를 찡그렸다. 허나, 그것은 아픔이 아닌 상큼한 쾌감이었다.
하후미린은 젖을 탐하는 어린 아이처럼 철화의 거대한 육봉을 번갈아가며 깨물었다.
아무리 단단한 피부와 탄력을 지녔을지라도 삽시간에 여인이 수밀도는 수많은 이빨 자욱(齒痕)으로 뒤덮여 있었다. 허나, 여인은 결코 거부하지 않았다.
"흐윽!"
더욱 깊숙이 여인은 사내의 몸을 끌어 안은 채 교구를 떨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하후미린은 그녀의 유방에서 얼굴을 들어 올렸다.
"엎드려 봐!"
하후미린은 장난스레 한 쪽 눈을 찡긋했다.
누구의 말이라고 거역하겠는가?
여인은 주저없이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렸다.
(당신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녀가 어찌 사내가 원하는 체위(體位)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허나, 사랑하는 사람의 요구임에랴…
"으음!"
하후미린은 절로 신음을 토했다.
보라. 저 거대한 천도(天桃)를…
폭발할 듯이 허공에 걸려 있는, 묵광이 번득이는 검은 피부의 탄력감,
그 갈라진 사이로 빽빽하게 우거진 검은 밀림지대가 곧추선 허벅지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그 깊은 수풀의 계곡은 익은 석류와도 같이 벌어져 있다. 그 내밀한 곳에서 반짝이는 분홍빛의 속살…
휘익!
하후미린은 자신의 하의를 벗어 던져 버렸다. 그런 그의 시선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흐흣!)
하후미린은 자신의 거대한 흉기(凶器)를 잡은 채 앞으로 다가갔다. 툭툭! 불거져 오른 힘줄은 이미 충분한 화력(火力)이 장전(裝塡)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證據)였다. 그리고, 서서히 그것은 여인의 우거진 신비림을 헤집으며 나아갔다. 그 붉은 욕망의 동굴로 깊숙이 침습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악!"
여인의 거대한 둔부가 파르르 경련했다. 흡사, 창에 찔린 능어와도 같이 퍼덕이는 여체…
허나, 사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두 손으로 여인의 둔부를 움켜 쥐며 급박하게 하체를 밀착시켰다.
"으읏. 음…!"
사방에서 조여오는 압박감에 하후미린은 절로 신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허리를 세차게 밀어 붙이며 여인의 거대한 둔부를 쓰다듬었다. 매끄러운 감촉이 스며들었다.
"하으윽! 더… 더!"
여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사랑스런 여인…"
하후미린의 눈가로 따스한 빛이 스쳐갔다. 그것은 사랑의 빛이었다.
스윽!
그는 여인의 등에 자신을 밀착시키며 손을 뻗었다. 폭풍같이 일렁이던 두 개의 육봉이 사내의 손아귀에 잡히고 거칠게 그것은 일그러지며 터질 듯이 요동쳤다.
"아하악!"
여인의 봉목은 하얗게 탈색되어 검은자위를 없애 버렸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는 야수의 신음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곳은 천림이었다.
세상이 버린 여자 하나가 화룡(火龍)의 품에서 여인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곳이 어딘지는 아무도 모른다.
암흑의 공간엔 한 점의 빛줄기도 있지 않았다. 허나, 검은 암흑 속에 섞여 있는 피의 기운은 천지창세 이전의 혼원암흑계(混元暗黑界)였다.
그리고…
둥실…!
진공의 대기를 부유하는 검붉은 형상이 있었다.
츠츠츠츠…!
폭발해 오르는 극렬한 절대마기류(絶代魔氣流)가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몸에서는 풍길 수 없는 기운이었다.
악마(惡魔)의 기도(氣道)!
보는 이의 심혼(心魂)이 그대로 산산이 바스러져 지옥유부(地獄幽府)로 떨어져 내릴 정도로 전율적인 악마의 파천마력도(破天魔力道)였다.
그리고, 울려퍼졌다.
"크흐흐흐! 그 겁멸의 시공 속에 천하의 마(魔)와 사(邪), 요(妖), 악(惡), 귀(鬼)의 오행아수마령기(五行阿修魔靈氣)를 성취했도다!"
아수라의 저주음!
우우우우웅…!
그 끔찍한 저주음은 암흑의 진공대기를 찢으며 울려퍼졌다.
전율적인 악마기류를 흘리고 있는 자는 인간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울부짖는다. 암흑의 지옥유부에서 일천 마리의 악귀(惡鬼)들이 호곡하듯…
"흐흐흐! 억겁의 세월을 이 혼원암흑계에서 광명을 부수려 힘을 쌓아왔다."
모발이 곤두설 듯한 저주음(詛呪音)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와 아울러,
츠츠츠츠츠…!
번져오르는 오색의 무형악마력(無形惡魔力)이 보였다.
적(赤), 흑(黑), 녹(綠), 청(靑), 백(白).
한 가지의 기운일지라도 천지를 파멸시킬 잠력을 지닌 아수라의 힘!
고오오…!
그것은 점차 휘돌며 폭풍의 힘으로 합일되고 있었다.
"크흐흐! 당금에서 천마(天魔)의 앞을 가로막을 자는 오직 둘! 천 년의 바람과 천림뿐이다! 허나…"
자신에 찬 아수라의 저주사음이 진공의 대기를 떨어 울렸다.
쿠쿠쿠쿠쿠!
그 파장은 악마의 귀령(鬼靈)인 듯 뒤흔들렸다.
스… 윽!
손(手)!
십장(十丈)은 될 듯한 거대무비한 악마수(惡魔手)가 떠올랐다.
손톱은 녹광이 타오르고, 손바닥은 핏물이 흐르듯 붉었다. 손등은 귀기스런 청광이 흐른다.
뿐인가?
오지(五指)는 그대로 형형색색(形形色色)이었다. 그 무엇이라도 그 오색악마수(五色惡魔手)에 장악된다면 으스러지고 말 악마의 손 안에서 예의 저주사음(詛呪死音)이 다시금 흘러나왔다.
"크흐흐! 천 년의 바람! 그 무적철혈풍은 육합을 제압하느라 소모되었고, 감히 본 지옥마계의 야망을 가로막은 어린 용은 천림에서 나오는 즉시 제거되리라!"
우우우우…!
오색악마수는 격렬하게 떨렸다.
"크흐흐! 지저사계를 움직여 잠자는 대륙의 여섯 하늘을 깨웠으며 그 계집은 천림으로 스며들리라!"
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이 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중에 지저사계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지 않은가?
천 년을 지저에서 잉태되어 내려온 사도의 대종맥이 대륙육합천패를 친 것이 결코 자의가 아님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변황이 준동하고 대륙의 여섯 하늘이 서로 쟁패(爭覇)하리라! 천림의 잠룡은 육합에 의해 분시되고 감히 천마일맥(天魔一脈)에 대항할 세는 없을지니, 지옥혈천하가 도래하리라! 일 년!"
칠흑같은 암흑 속에서 극악(極惡)한 저주악마후(詛呪惡魔吼)가 토해졌다.
"일 년만 있으면 본좌 지옥천마황(地獄天魔皇)이 출관(出關)함과 동시에 영세지옥천마군림(永世地獄天魔君臨)이 이루어지리라!"
--영세지옥천마군림!
들었는가?
저 혼원암흑계를 울리며 퍼져가는 악마의 광언을…
지옥천마황!
암흑의 일각에서 악마의 아수라마령은 스스로에게 그런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크흐흐! 전설의 우주오대초인 중 셋 이상이 합격해 오지 않는 이상 천마의 군림지존보(君臨至尊步)를 막을 자는 없다! 설사… 하늘일지라도 오행지옥천마수(五行地獄天魔手) 앞에선!"
스윽!
거대한 오새의 악마수강이 암흑을 가른다.
쩌어억!
저 무저의 혼원암흑계가 유리가 갈라지듯, 그대로 균열되어 폭산(爆散)하는 것이 아닌가?
형체가 있을 수 없는 진공(眞空)의 대기였다. 한데, 그것을 싸잡아 쥐어 고무공을 터뜨리듯 갈가리 찢어발기는 가공할 악마의 손!
그 무엇이 있어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혼원암흑계에 떠오른 공포의 악마수를 지닌 자는 지옥천마황이란 인물이었다.
전개되고 있는 지상의 모든 혈풍을 일으키는 암흑의 주재자!
대륙무림의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지만…
번쩍!
쩌쩌쩌쩡!
쾅! 콰콰콰--!
천지가 개벽(開闢)하는가?
하늘은 분명 짙푸른 창천이었다. 한데, 이 무슨 괴사(怪事)인가?
청천(靑天)에 벽력(霹靂)이 작렬하다니!
청하림.
아니, 천림이라 불리워져야 하는 태초의 신비지!
일백 리에 걸쳐 울울창창하게 뻗어오는 짙푸른 노을과도 같은 죽림은 두 개의 파천황적인 원세신화(元世神話)가 잠재되어 있었다.
원세초유의 초인전쟁인 탁록대전!
그리고, 태초의 유일현자라는 태극천유자 하후량!
그 둘의 초인신화가 이곳 천림에 숨어 있는 것이었다. 하늘의 신비를 감춘 천림…
세인들은 알지 못했다. 그곳엔 하늘이 경외시하는 절대의 불완전한 초인들이 기거하고 있음을…
그들이 완전한 인간이 되는 순간 탄생하리라!
천림은 사라지고, 위대한 초인의 제국이…
천림의 남단(南端)엔 벽력의 대지가 있었다.
쾅! 콰콰콰!
번쩍!
수천, 수만 개의 벽력과 뇌전이 일어나는 뇌정의 대지였다. 허나, 그것은 결코 천중(天中)에서 이는 자연적인 벽력강이 아니었다.
하늘은 푸른 창천이었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그곳엔 유유히 새들이 노닐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원 일천 장의 흑암지(黑暗地)는 온통 불에 그을린 듯 대지는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한 그루의 잡초도 없는 완벽한 죽음의 대지였다.
날카로운 창칼에 찔린 듯 바위(岩)들은 칼날 같은 예기(銳氣)로움을 빛내며 솟아 있었다.
쾅!
뇌전이 일어났다.
쩌쩡!
그것에 강타된 바위는 두 개로 쪼개지며 검붉은 연기를 피워 올린다.
피시시…!
묵암뇌지(墨暗雷地)의 중앙엔 십 장에 달하는 거암이 자리해 있었다. 그것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묵광 속에 번들거리고 있었다. 허나, 다른 곳과는 달리 탁자(卓子)인 듯 평평했다.
번쩍!
쾅! 콰콰콰--!
한데, 저 시퍼런 뇌정의 벽력들은 바로 그곳에서 폭사되고 있었다.
여인이었다.
짙푸른 청보석(靑寶石)이랄까?
하나의 거대한 청보석을 억겁(億劫)의 시공 속에 다듬어 놓은 듯했다.
화르르르…!
창천의 노을을 보는 듯한 청발이 바람에 흔날리고, 귀 밑까지 뻗은 청미는 그린 듯 고아했다.
여인의 눈은 수천, 수만 개의 뇌우(雷雨)가 작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번쩍!
콰아아아…!
청보석을 박아 넣은 듯한 벽안(碧眼)에서는 수십 줄기의 벽력뇌강기가 폭사되고 있었다.
한 번 눈길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심령을 태워 박살내 버릴 정도의 뇌전(雷電)이 여인의 벽안에서 폭출되고 있었다. 그런데, 보라!
한 쌍의 나래를 펴고 올라갈 미염한 육체미(肉體美)를…
여인의 청발(靑髮)은 종아리에 이르기까지 길었다.
화르르르…!
불어오는 미풍에 긴 수발이 흔들려 퍼져 오르는데 그 사이로 드러나는 여인의 나신을 보라!
미끈했다. 칠 척이 넘는 키에, 한 점의 군살조차 없는 완벽한 미체를 여인은 지니고 있었다.
천도(天桃)를 붙여 놓은 듯 소담스런 수밀도도 그렇지만 여인의 유실은 짙푸른 하늘색으로 물들어 떨리고, 세류요를 보듯 잘록한 허리의 곡선은 미려하기조차 했다.
더욱이, 탄력적인 하복부의 끝은 흡사, 청하림이 그대로 있는 듯 푸르른 초원(草原)이 부드럽게 펼쳐 있는 것이 아닌가?
알맞게 살이 오른 허벅지는 탐스럽기 그지없고, 바위를 받치고 선 종아리는 백학의 다리같이 고아했다.
여인은 그대로 청설란(靑雪蘭)을 보는 듯 유현하기조차 한 몸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콰콰콰콰!
번쩍!
여인의 십 장 주위로는 굉렬한 뇌정의 벽력이 내리꽂히고 있었음에도…
"…"
그녀는 단지 그렇게 서 있을 뿐이었다.
한데, 어느 한 순간,
"어이쿠! 날 통구이로 구워 먹을 생각이야?"
한 줄기 당혹함에 찬 음성이 뇌성을 뚫고 울려퍼졌다.
"미린?"
여인의 벽력안으로 환한 기광이 스쳐갔다.
빙글!
그녀는 쾌속하게 교구를 돌려 세웠다. 그런 여인의 십 장 밖,
"아이쿠! 미린 살려…"
위태위태하게 뇌전을 피하며 비명을 지르는 백영(白影)이 있었다.
하후미린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그의 얼굴을 접한 여인의 전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울러,
"아…!"
여인의 옥용에 환한 미소가 번져오른다.
순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대기를 찢어발기던 뇌정과 벽력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쳇! 아무튼 벽하(碧霞)를 만나려면 항상 목숨을 걸어야 하니…"
그제서야 하후미린은 투덜거리며 그대로 앞으로 다가왔다.
벽하!
이것이 여인의 이름인가?
"미린… 왔군요!"
떨리기조차 하는 옥음을 토하는 여인의 음성에 실린 격정은 활화산보다 뜨거운 화염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벽하… 그동안 외유(外遊)를 하느라 오지 못했어!"
하후미린은 눈물마저 글썽이는 벽하의 반김에 멋적은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벽하의 눈가로 따사로운 미소가 번졌다. 여인은 전혀 자신을 감추려 들지 않았다.
스르르…!
오히려 그녀는 긴 수발을 뒤로 쓸어넘긴다. 저 가공할 유혹의 물결이라니…
뭉클…!
벽하는 소담스런 유방을 교수로 쓸며 걸음을 옮겼다.
(미린… 당신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무엇이든 만지면 광전이 흘러 괴물로 취급받던 소녀를 진정한 여인으로 대해 주신 분…)
벽하의 봉목으로 흐르는 눈물 한줄기는 감격의 결정(結晶)이었다.
처절했던 과거…
그녀는 벽력뢰전혈(霹靂雷電血)을 타고난 여인이었다. 우주최강의 힘인 뇌(雷)!
여인으로선 가질 수 없는 태양보다 십 배 강력한 뇌정의 혈맥을 지닌 여인이었던 것이다.
아는가?
하늘의 천계에 있다는 천상삼사의 전설을?
그리고, 뇌와 벽력을 다스린다는 뇌신(雷神)!
천뢰사(天雷師)!
그는 인간이라기 보다는 뇌룡(雷龍)이었다.
하늘의 벽력계(霹靂界)를 관장하는 천뢰의 신으로, 그 혈맥(血脈)을 이은 벽하는 뜻만으로도 천뢰를 일으키는 그 미증유의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음이 평온하지 못한다면 결코 다스릴 수 없는 힘이었다.
--뇌후(雷后) 뇌벽하(雷碧霞)!
후일, 알게 되리라. 천뢰를 다스리는 절대패후(絶代覇后)가 대륙 위에 있음을…
(미린…)
여인은 다가서고 있었다.
미끈한 허벅지가 교차될 때마다 짙푸른 음모(碧毛)가 살랑이인다. 그 사이로 균열되는 깊숙한 계곡…
오직 여인만이 지닌 신비의 계곡이 드러남에도 뇌벽하는 개의치 않고 있었다.
생명이 있는 샘물. 특히, 영장이라는 인간은 결코 그녀의 옆으로 다가서는 자는 전무했다, 하나뿐인 생명을 버릴 자는 아무도 없었다.
뇌벽하에겐 따사로움이 있을 수 없었다. 설사, 인지(人知)가 없는 토끼(兎)나 새앙쥐(鼠)라 할지라도 결코 그녀의 옆엔 오지 않았기에…
허나, 눈앞의 이 사람만은 틀렸다.
그는 천 명의 여인을 첩으로 거느릴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만큼 뛰어났으며 또한 아름다웠다. 한데, 그는 자신을 위로했으며 여인으로서의 사랑을 주었다.
(나의 의지는 저 분의 것. 내 몸 속의 벽력뇌전혈도 저 분의 의지대로 움직이리라!)
여인은 이제 평범한 여인이 될 수 있었다. 이미, 미친 듯이 폭출해 오르는 광전뇌(光電雷)도 그녀의 눈 앞에 있는 고집 세고 짖궂으며 환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사내 앞에선 죽어 버리고 있었다.
(오직 저 분 만이 나를 가지시리라!)
츠으으…!
뇌벽하의 봉목으로 흐르는 열기는 거역할 수 없는 사랑의 기운이었다.
(쩝! 이상하단 말야.)
하후미린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오늘은 철화가 나았나 싶었더니 벽하까지도 완치가 됐으니…)
그가 어찌 알겠는가?
여심(女心)!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의 마음을…
"미린. 소녀를…"
"벽하."
더 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았다.
이 두 남녀에게 있어 입 밖으로 나오는 언어(言語)라는 것은 소용없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마음은 무언(無言)중에 교차(較差)되었다.
사락…!
여인은 종아리까지 내려온 긴 벽색의 수발을 가지런히 깔며 그 위에 누웠다. 그리고,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사르륵…!
여인의 다리가 꺾여져 곧추세워지면서 모아졌던 무릎이 좌우로 활짝 벌어졌다. 순간, 소담스레 둔덕을 덮고 있는 푸른 초원이 가운데가 균열되면서 그 내부의 계곡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 무엇이라도 빨아들일 듯한 저 깊은 암흑의 동굴은 언뜻 그 질감이 조개 속같이 붉음을 증명하듯 빛났다.
뇌벽하는 사르르 봉목을 감은 채 자신의 모든 것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었다.
"음…!"
일순, 하후미린은 자신의 하체 일부가 뿌듯하게 솟구쳐 오름을 느끼며 절로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사내라면 그 누구도 거부하지 못할 저 환상의 유혹!
(뇌정기만 없었다면 내 품에 안기기도 전에 이미 처녀지신을 면했으리라!)
그것이 솔직한 하후미린
변황야망(邊荒野望)의 부활(復活)
변황(邊荒)!
대륙의 밖을 일컬음이었다.
고래(古來)로 중원대륙은 초인(超人)들의 전설지(傳說地)였고, 변황(邊荒)은 신비로운 신화지(神話地)로 불리우고 있었다.
변황에 내려오는 수천, 수만 가지의 신비로운 신화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신비로운 신화 하나가 변황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오직, 이름만이 알려져 있었을 뿐 모든 것을 신비의 장막에 가리운 채 드러내지 않은 변화최후의 신비지,
<태양천(太陽天).>
태양의 하늘!
그렇게만 불리우는 이름이 전해져 내려왔다.
대막(大漠),
저 가이없는 대사막을 건너, 열 개의 죽음의 용권풍역(龍拳風域)을 지나야 당도할 수 있다는 태양의 신화지!
변황인들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단지 하나는 변황무도계의 시조신이라 일컫는 변황유일신(邊荒唯一神)의 탄생신화가 그곳에서 이어졌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사막을 떠도는 신기루(蜃氣樓)와도 같은 불가해(不可解)의 신화였다.
태양천!
그것은 과연 영원(永遠)히 깨지지 않을 불파(不破)의 신화인가?
콰콰콰콰!
콰우우우우웅!
바람(風)!
시원함을 넘어 살인적인 대강풍이 대지를 휘몰아친다.
콰--드득!
거치는 모든 것은 산산이 으깨어져 분말(粉末)로 화(化)해 버린다.
콰우우우웅!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휘돌며 허공 일천장(一千丈)을 치솟아 오른다.
용권풍(龍拳風)!
일명(一名), 지옥(地獄)의 돌개바람이라 일컫는 죽음의 모래바람(砂風)이 저 가이없는 대사막 전역을 굉렬하게 휘도는 것이었다.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만 근의 거암(巨岩)조차 그대로 박살나 먼지로 화해 흩날리고마는 공포적인 살인강풍지대(殺人强風地帶)!
<등격리사막(騰格里沙漠).>
그렇게 불리우는 대막제일의 대사막은 동격리사막 내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해 있었다.
죽음의 흑선대강풍역(黑旋大强風域)!
인간은 물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지옥의 흑풍지대(黑風地帶)는 그 넓이가 얼마인지 그 내부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는지조차 아는 사람은 전무(全無)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 한 명의 인간도 들어갔다 하면 아무도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불귀지옥(不歸地獄)!
한 번 들어서면 시신(屍身)은 물론 그 영혼(靈魂)마저 산산이 으깨어 버리고 마는 공포(恐怖)의 사역(死域)이 흑선대강풍역이었다.
콰콰콰콰콰!
콰우우웅!
대기마저 휘말아 버려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의 굉폭한 죽음의 흑사선풍(黑砂旋風)이 휘몰아친다.
"…!"
"…!"
묵묵히 입술을 꽉 다문 채 우뚝 서 있는 사인(四人)이 있었다. 돌부처가 아닌, 분명한 인간이었다.
삼남일녀(三男一女)였다.
츠츠츠츠!
쿠우우!
보라!
대지(大地)마저 갉아 천중(天中)으로 날려 버릴 공포적인 죽음의 용권풍마저 사 인의 십 장 근역으로는 아예 접근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파파파팟!
시퍼런 불똥을 퉁겨 내며 오연히 대지를 밟고 선 사 인의 시선은 한 곳으로 모아져 있었다.
능히, 기도만으로도 범인(凡人)이라면 압사(壓死)할 정도로 가공할 풍도를 지닌 인물들이었다.
성별(性別)이나 그들의 나이도 다르나 그들 사 인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절대종사(絶代宗師)의 위엄!
바로 그것이었다. 만일, 이런 인물들이 무림천하에 열(十)이 있다면 그대로 피의 폭풍우 속으로 휘말아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그들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기도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츠으으!
선두의 백의중년인의 전신에서 폭출되는 번갯불 같은 예기는 닿는 모든 것을 단번에 수백만 조각으로 분참(分斬)할 듯 날카로운 것이었다.
그의 움직임은 볼 수도 없었지만 유리(琉璃)와도 같이 투명한 은검(銀劒)을 소중하게 두 손으로 안고 있는 그의 자세는 바늘 끝이라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수호검강(守護劒剛)을 이루고 있었다.
초극검예인(超極劒銳人)!
그는 능히 검도의 초극지경에 다다른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맞은편,
파스스…!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의 십 장 근역의 대지는 진흙바람처럼 질퍽하게 녹아 있는 것이 아닌가?
녹인(綠人)!
걸치고 있는 옷도 짙푸른 녹의(綠衣)였고, 어깨까지 덮은 산발한 머리결 또한 녹발(綠髮)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하얗고 까만 인간의 눈빛도 없었다.
츠으으!
일 장의 길이로 폭사되는 섬뜩한 녹광을 폭출시키는 녹안(綠眼)을 지니고 있으며, 피부조차도 녹색으로 빛나는 녹령괴인(綠靈怪人)이었다.
독(毒)!
녹령괴인의 전신에 서린 기운은 바로 가공할 독강기였던 것이다. 저 공포스러울 정도의 흑사용권풍마저 녹아 버리는 미증유의 독기류(毒氣流)를 폭출시키는 절대독종독인(絶代毒宗毒人)!
그의 좌측,
백색일색(白色一色)의 여인이었다. 머리카락과 피부, 검은자위가 있어야 할 동공(瞳孔)마저도 섬뜩한 백안(白眼)의 여인이었는데…
쩌쩌쩌쩡!
보았는가?
그녀 주변의 땅덩어리가 얼어붙어 거북의 등껍질인 양 갈라지고 있었다.
그 위로,
스스스…!
새하얗게 쌓이는 서리들은 급속이 대지를 냉각시켜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좌측,
나이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주름진 노안(老顔)을 지닌 혈가사(血袈裟)를 걸친 승인이었다.
허나, 그에게서 풍겨지는 기운은 성불(聖佛)과는 거리가 먼 대악(大惡)의 사기(邪氣)가 물씬 배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악불(惡佛)!
그렇게 불리워야 할 섬뜩한 사승(邪僧)!
전율적인 악불마기류(惡佛魔流氣)를 흘리고 있는 그의 반쯤 감긴 눈가로는 어울리지 않게 색정(色情)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누구라도 그 눈을 본다면…
특히, 여인이라면 그 대로 혼령(魂靈)을 빼앗겨 버릴만큼 사념(邪念)의 극한기가 서려 있는 눈이었다.
능히, 일문의 지존기도를 지닌 이들이 어찌 이 대사막의 인적 끊긴 오지에 서 있는가?
그들의 공통된 시선의 끝.
콰우우우웅!
여전히 허공 일천 장을 치솟으며 광란하는 죽음의 사풍이 휘몰아치고 있을 뿐이었다.
문득, 제왕검혼(帝王劒魂)을 지닌 인물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고 있었다. 한 점의 감정도 실리지 않은 무심음이 새어나왔다.
"변황(邊荒)은 지난 일천년간(一千年間) 네 번의 대륙도전(大陸挑戰)을 감행했다!"
여인은 북빙(北氷)의 한풍(寒風)이 불 듯한 냉음(冷音)으로 사내의 말을 받았다.
"네 번 모조리 깨졌어요! 철저하게…"
한을 짓씹듯 여인은 뱉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허나, 이제 우리가 힘을 합한 다음에야 누가 감히 우리를 막을 수 있겠는가?"
쩌르릉!
광풍의 대기를 뚫고 울려 퍼지는 범종(梵鐘)이 울리는 듯한 웅후한 목소리가 있었다. 녹령독인이었다.
그에 뒤이어, 반쯤 감긴 눈까풀을 떨며 혈가사의 악불마승이 입을 열었다.
"악불타불! 우리 패천사상혈세(覇天四象血勢)의 모든 것을 잇고, 변황최후의 신화인 태양의 하늘을 얻는 진정한 변황지존후(邊皇至尊后)가 탄생된다면…"
격동하는가?
부르르르!
벅차오르는 희열을 감당할 수 없는 듯 악불마승의 눈썹은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무슨 소린가?
<패천사상혈세(覇天四象血勢).>
동(東)--제왕검도(帝王劒道)!
서(西)--악마사원(惡魔寺院)!
남(南)--남황독왕전(南荒毒王殿)!
북(北)--북천설빙국(北天雪氷國)!
천외(天外)의 공포혈세(恐怖血勢)!
변황무림계를 사분(四分)한 채, 각각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군림해 왔던 변황의 사대패천세력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그들은 서로 한 번씩은 대륙 군림의 야망을 가졌었던 세력이었다. 아울러, 처절한 패배의 아픔을 안았던 숙명적인 변황의 공존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말하는 의미는 실로 공포스러울 정도로 경악할 현실이었다.
패천사상혈세의 통합(統合)!
그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로 실현된 것이 아닌가?
"후후! 대륙정복(大陸征服)이라는 최후(最後)의 야망(野望)을 위해 우리의 개인적인 야망을 포기한 것은 잘한 일이외다!"
제왕검도주 제천검왕(帝天劒王)은 예의 무심한 어조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요. 초인기재(超人奇才)를 공동발굴하고 우리의 모든 것! 군림의 야망과 변황인의 한(恨)도 모두 풀 수 있는 변황의 유일지존(唯一至尊)을 우리가 탄생시킨다는 것보다 더 크나큰 기쁨은 없어요!"
북빙(北氷)의 여왕이었다.
--북천설빙국주(北天雪氷國主) 북천여제후(北天女帝后) 빙설연(氷雪燕)!
그녀의 옥용엔 따스한 기운이 피어 올라 있었다.
"클클! 고 계집아이가 나오면 대륙의 놈팽이들은 모조리 녹여 버려 줘야지!"
녹령독인의 이름도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남황독왕전주(南荒毒王殿主) 독종천황(毒宗天皇) 흑사룡(黑邪龍)!
지상최강의 독종독인이라는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흡사, 딸을 바라보는 부친의 눈길과고 같은 따스함이 서린 녹안(綠眼)으로 그는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소림사를 부수고 숭산에 악불혈신상(惡佛血神像)을 세울 날도 멀지 않았도다!"
웃는다.
악마사원주 악불대종사(惡不大宗師)!
중원제일악(中原第一嶽)에 악불혈신상을 세우는 것을 평생(平生)의 염원(念願)으로 불태워 온 천축불계(天竺佛界)의 유일신(唯一神)이라는 그의 입가로도 만족한 웃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변황사천황(邊荒邪天皇)이라 통칭되는 사 인의 절대종사(絶代宗師)들은 오직 일념의 간절한 시선으로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콰콰콰콰!
콰우우우웅…!
천지는 암흑 속에 갇혀 미친 듯한 죽음의 용권풍 속에 신음하며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한데, 어느 한 순간,
쩌쩌쩍!
갈라지고 있었다. 그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다는 흑선대강풍이 허공 일천 장 위로부터 반쪽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화르르르…!
칼로 벤 듯한 광풍(狂風)의 소용돌이 속에서 폭발(爆發)해 오르는 저 미증유의 지옥겁화(地獄劫火)의 기운은 천지간의 모든 것을 태워 잿가루로 만들어 버릴 듯이 굉렬한 것이었다.
그런 지옥겁화(地獄劫火)의 중앙엔 구층(九層) 구십장(九十丈)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거탑(巨塔)이 웅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고오오오…!
태양이 대지 위에 떠 있는가?
구층의 화탑(火塔)에서는 가공할 태양광휘(太陽光輝)가 일만장(一萬丈)을 뻗어오르고 있었다.
"오오… 드디어!"
"태양의 하늘이 열렸도다."
"이제야 탄생되는가? 변황지존후(邊荒至尊后)인 태양여왕(太陽女王)이!"
"태양의 성탑(聖塔)이여!"
변황사천왕은 격동에 몸을 떨었다.
치지직!
그 굉렬한 지옥의 태양화기류(太陽火氣流)에 의복(衣服)과 모발(毛髮)이 타오름도 잊은 채 그들은 치밀어 오르는 환희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비비비빙!
구층의 태양화탑(太陽火塔)에서 기이한 소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쩌쩌억!
거대한 탑신(塔身)이 거미줄같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아앙!
태양(太陽)의 폭발(爆發)!
고오오오…!
삽시간에 방원 일백 이내는 태양의 광휘에 휩싸이고, 대지는 모든 빛을 잃고 말았다.
태양천하(太陽天下)!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한데, 그 작렬하는 태양화(太陽火)의 중심으로부터 일어나는 기사(奇事)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둥실…!
태양의 화기를 계단 삼아 밟으며 하나의 인영이 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인간일 수 있겠는가?
화르르르…!
불길이 타오르는 화관(火冠)같은 화염 투구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다.
쩌쩌쩌… 쩡!
새파란 불꽃을 퉁기는 일장(一丈)에 달하는 거대한 화창(火槍)을 비껴든 채 나타난 인영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습이 드러나는 인영의 가슴에 걸쳐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하(盛夏)에 폭발하는 태양(太陽)을 보는 듯 부풀어 있는 두 개의 육봉(肉峯)엔 곧이라도 불길을 내뿜으며 등천할 듯한 화룡(火龍)의 문신(文身)이 둘러져 있을 뿐이었다. 그것으로 보아 정체가 여인(女人)임이 틀림없었다. 여인의 가슴만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인의 하체(下體)는 또 어떤가?
천주(天柱)를 보듯 육중한 여인의 허벅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허벅지의 사이엔 한 올의 터럭(毛)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단지, 팽팽하게 조여진 하복부의 끝으로 새겨져 있는 화룡문신(火龍文身)의 꼬리가 간신히 여인의 비처를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도톰하게 올라 있는 살덩이의 사이로는 균열이 나 있었고,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것은 석류처럼 벌어져 내밀한 붉은 속살을 언뜻언뜻 내비치고 있었다.
환상적인 미체(美體)!
태양의 여왕과도 같은 여인이었다.
한데 어느 한 순간,
화르르르…
여인의 비처를 휘감고 있던 화룡의 문신에서 시뻘건 화염의 불꽃이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그것은 그대로 한 마리 화룡이 또아리를 튼 듯, 여인의 가슴과 하복부, 그 끝의 삼각비역(三角秘域)을 가리워 주고 있었다.
스윽!
여인은 우수(右手)에 들린 화창(火槍)을 치켜 올렸다.
쩌쩌쩡!
일만 개의 화탄이 폭발하듯 굉렬한 화기(火氣)가 여인의 화안(火眼)에서 폭출되었다.
"나, 태양의 여왕이 탄생했으니 변황은 곧 태양의 성지가 되리라!"
우우웅…! .
해일이 밀려들 듯, 거대한 화염의 불꽃이 대기를 불태우며 퍼져 나갔다.
"천년풍! 그 무적철혈의 바람이 사라진 대륙은 무너지리라! 오직, 천 년의 바람만이 나를 막으리라! 그것일지라도 깨어질 것이지만…"
단언하고 있었다.
변황지존후(邊荒至尊后) 태양여왕(太陽女王)!
대륙이여 아는가?
변황의 오지(奧地) 속에서 수천 년을 잠 속에 빠져 있던 변황최후의 신화가 깨어졌음을…
태양의 신화!
변황의 힘과 태양의 천위(天威)를 지니고 탄생된 변황지존후 태양여왕!
변황은 급변하고 있었다.
그 결말은 어찌 될 것인지…?
태원(太原).
산서(山西)와 하북(河北)의 접경지에 있는 조그마한 성읍(城邑)의 이름이었다.
뚜렷한 특징도 없었다.
그래서 세인들에겐 별로 이목을 끌지 못하는 평범한 지대였다. 단지, 태원성의 외곽엔 하나의 장관(壯觀)이 펼쳐져 있었다.
죽림(竹林)!
수천 년을 단 한 번의 베어짐도 없이 그 무성한 잎을 뻗쳐 오른 엄청난 대나무의 밀림지대(密林地帶)였다. 굵기는 통나무만큼 두껍고, 그 길이는 천년거목(千年巨木)만큼이나 솟아 있는 엄청난 대나무 숲이었다.
그 하나 하나의 단단함은 보검이라도 자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런 대나무 군단이 태원성의 북방(北方) 일백리(一百里)를 점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청하림(靑霞林)>
그곳을 태원성민들은 그렇게 불렀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계(四季)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푸르른 노을이 깔려 있는 죽림이었다.
아울러, 세인들은 청하림을 신역(神域)으로 여기고 침습하기를 꺼려했다. 한 번 들어선다면 그 끝없는 죽림의 미로(迷路)에서 헤매다가 죽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청하림은 천년(千年)을 이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알지 못하리라. 태원이라는 지명(地名)이 정착되기 수천 년 전, 이곳엔 잊혀질 수 없는 전설의 이름이 깔려 있었다.
인간의 이름을 가졌으되 인간일 수 없는 절대의 초극천인(超極天人)이 하늘의 패권을 놓고 쟁패(爭覇)했던 곳인 것이다.
<탁록(倬鹿)>
아는가?
그 이름을…
중화대륙(中華大陸)의 천인신화(天人神話)중 가장 위대한 천인(天人)인 황제(黃帝)는 가장 지혜로왔으며 초유(初有)로 문명(文名)을 대륙에 심었던 대철인(大哲人)이었다.
그와 동시대(同時代)에 존재(存在)했던 또 한 명의 천인이 있었다.
공룡의 파천황력(破天荒力)을 지녔던 패신(覇神)인 치우(蚩尤)!
황제와 치우는 운명적으로 부딪쳐야 했다.
<탁록대전(倬鹿大戰)>
그 초유의 천인격투장(天人激鬪場)이 되었던 곳이 바로 탁록이었던 것이다.
결국, 하늘이 뒤집히고 대지가 함몰하는 대격돌(大激突)이 벌어졌다.
최후의 승자(勝者)는 황제(黃帝)였다.
그리하여, 황제는 차후에 그 이름을 남겼고, 치우는 패자(敗者)로서 치욕적인 오명(汚名)만을 떨구고 갔을 뿐이었다.
황제는 그 기념으로 탁록에 천령자죽(天靈紫竹)을 심었다는 전설이 이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이 청하림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그 천령자죽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기에…
대륙역사에서 사라진 신화의 대지--탁록!
과연, 그 신화는 단지 옛이야기였을 뿐인가?
모를 일이었다.
"황제가 치우를 영원히 사멸시키려 천라금쇄천죽대진(天羅禁碎天竹大陣)을 탁록에 펼쳐 놓은 줄은 아무도 모르리라!"
한 소리 낭랑하면서도 청량한 음성이 죽림을 울렸다.
사박… 사박…!
죽엽(竹葉)을 밟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미청년이 있었다.
화르르르…!
단정히 백건(白巾)으로 묶어 뒤로 넘긴 수발(首髮)은 야풍(夜風)에 흩날리고 있었다.
언뜻 내비치는 용모는 기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귀밑까지 뻗어 내린 은광(銀光)마저 반짝이는 백미(白眉)의 아래엔 현천(玄天)의 모든 은하수가 응축된 듯 빛나는 성목(星目)이 있었다.
우주(宇宙)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모조리 쓸어 담은 현기(玄氣)마저 서린 눈망울을 지녔고, 여인보다 더 고운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삿빛 붉은 입술은 그 누구라도 입맞추고 싶어할 정도로 황홀했다. 한 마디로 환상적인 선계(仙界)의 미남이었다.
천세잠룡 하후미린!
바로 그가 아닌가?
절대황역(絶代皇域)인 자금성에서 자금쌍미후라는 황실제일쌍미(皇室第一雙美)를 자신의 것으로 취해 버린 천세기남아(千世奇男兒)!
헌데, 그가 휘적휘적 걷는 이곳은 청하림이 아닌가?
짙푸른 청죽의 바다엔 사방 어디를 돌아보아도 보이는 것은 오직 대나무의 숲뿐이었다.
한데, 그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도 목숨을 도외시한 지옥에로의 입문이 아닌가?
그는 분명히 말했다.
<천라금쇄천죽대진(天羅禁碎天竹大陣)>
아는가?
만년(萬年)을 산다는 만년자령천죽(萬年紫靈天竹)으로만 펼칠 수 있다는 신화 속의 대사진(大死陣)이 바로 그것이었다.
만년자령천죽 두 그루를 심으면 무수한 잔가지를 뻗어 천세(千世) 후엔 그 가공할 진세(陣勢)로 하늘마저 가둬 버리고 말았다.
그것으로 이루어진 진세는 해진법(解陣法)이 있을 수 없었다. 오직, 하늘의 기운을 읽을 수 있는 철인(哲人)만이 영감(靈感)으로 길을 갈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은 자가 이곳으로 진입해 든다면 설사, 영혼일지라도 분쇄되어 영원히 갇히고 만다.
그런데, 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천계(天界)의 선인(仙人)인 듯한 인물인 하후미린은 마치 제 집의 정원을 산책하듯 유유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득,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뚝!
그는 이제 막 피어오른 죽엽(竹葉) 하나를 꺾어 입에 물었다.
"천하가 어지러워지고 있다."
츠으…!
유현한 그의 동공으로 한 줄기 기광이 스쳐가고 있었다.
"아직은 암중에 숨어 있으나 천하는 지옥겁풍이 휘몰아치기 직전에 놓인 상태다."
그는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십 장을 뻗어 올라 있는 짙푸른 청죽의 사이로는 그것만큼이나 창창(蒼蒼)한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내게 무공을 펼칠 힘만 있다면…"
꽈악!
하후미린은 입술을 피가 배이도록 짓씹었다. 음울하게 가라앉는 동공으로 투영되는 안타까움의 빛…
"하늘마저 뒤집을 자신이 있다! 허나…"
그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힘(力)! 내 본연이 힘만으론 겨우 대륙만을 감당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육합(六合)을 다스릴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 뿐이지."
하후미린은 음울한 시선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무(武)! 그것이 무엇이기에 나 하후미린을 좌절케 하는가? 머리만으론 천하경략(天下經略)이 무리인가?"
지그시 이를 깨무는 하후미린이었다. 붉은 입술가로 맺히는 선명한 이빨자국은 자신의 무력(無力)함에 대한 반증(反證)인 듯했다.
그랬는가?
자금성에서 그는 무풍(無風)의 절대적인 힘을 보여 주었었다. 허나, 그것은 그의 초인적인 지혜와 가공할 수호암기(守護暗器)인 공룡혈각으로써 이룩한 것일 뿐이었다.
<무(武)>
하후미린은 단 일 푼의 무공도 펼치지 못하는 범인(凡人)과 다름이 없는 평범한 신체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공룡혈각만으로도 일류(一流)의 무인(武人)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슥…!
하후미린은 천천히 자신의 쌍수(上手)를 들어 올렸다. 강인한 힘이 넘쳐 흘렀으나 그 부드러운 피부는 여인의 속살보다도 고왔다.
손톱은 붉었다.
핏물에 담그었다 꺼낸 듯 붉은 적광(赤光)을 발하는 열 개의 혈조(血爪)!
공룡혈각!
닿는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공룡의 파천황력을 지닌 기병(奇兵)이 그것이었다. 공룡제왕(恐龍帝王)인 치우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신화 속의 천병(天兵)인 공룡혈각은 인간이면 누구나 지닌 우주오행기(宇宙五行氣)의 잠재력(潛在力)을 격발(激發)시켜 발출시키는 공룡의 발톱을 일컬음이었다.
허나, 내공력이 없는 사람의 폭발력(爆發力)은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하늘을 뒤엎으려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초인(超人)이라 불리우는 절대천인(絶對天人)에게는 위협만을 줄 수 있을 뿐이었다.
하후미린의 그의 고민은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무공을 펼칠 수 없다는 것…
머리로는 천하를 능히 뒤집을 수 있으나, 그것에는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임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 하늘은 그대로 있어도 하늘이다!"
창궁(蒼穹)…
한 점의 티끌조차 없는 창창한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다.
"삼라만상이 다 하늘 아래 있고 하늘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허나…"
문득, 하후미린의 동공이 가볍게 흔들렸다.
"하늘이 있으려면 대지가 있고, 또 만상(萬象)의 생물(生物)이 있어야 하는 법! 모든 것이 없다면 하늘은 더 이상 하늘이 될 수 없다!"
사박! 사박…!
하후미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떨어져 시든 죽엽은 비명을 토하고…
"대지가 가물면 비를 주고, 홍수가 인다면 태양의 화력으로 거두고 꽃이 필 때면 바람을 주는 것! 그것이 하늘의 본질이거늘…"
츠으…!
하후미린의 시선에서 뻗어 오르는 유현한 기운은 공허하기조차 했다.
우주조차 담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이를 지니고 있는 그릇이었지만 그 재질이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하후미린은 힘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 하후미린은 하늘이 되려 한다.
하늘이 날 내렸고, 난 그 하늘이 되어야 할 운명을 타고났다.
필사(必死)의 운명에서 범인(凡人)이 되었다. 이제는 하늘의 운명(運命)을 받을 차례다. 날 살리려 일천종(一千種)의 영물(靈物)이 죽어갔고, 날 살리려 일천 종의 독물(毒物)이 사라졌다.
그것뿐이라면 아까울 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하늘이 되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소진(消盡)되는 기(氣)를 살리려 일천 명의 정기(精氣)가 소멸되었고. 그 폭발하는 열화지기(熱火之氣)를 잠재우려 백팔미녀(百八美女)가 순음지정(純陰之精)을 잃고 말았다.
--하늘이 날 탄생시켰고, 대지가 날 키웠다. 만상이 피를 주었고, 인간이 내게 인생을 주었도다!
--이 한 목숨으로 지옥겁화를 잠재울 수 있다면 그 무엇이 두려우랴?
"나는 지금이 좋다!"
빙그레…
하후미린은 저 창궁같이 맑은 미소를 떠올렸다.
"아침에 일어나 대죽으로 피리를 불고…"
뚝!
하후미린은 죽엽을 끊어 입가에 물었다.
"점심엔 죽순(竹筍) 요리를 먹고 밤엔 백팔첩(百八妾)과 더불어 운우의 낙(雲雨之樂)을 즐기니 어찌 황제(皇帝)인들 부러우랴? 하지만…"
하후미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상선약수(上善藥水)라…"
저미는 듯 새어나오는 음성이었다.
<상선약수>
최고의 지선(至善)은 곧 흐르는 물과 같다.
도가(道家)의 시조인 노자(老子)가 설파한 도(道)의 원리가 되는 말을 하후미린은 되뇌이고 있는 것이었다.
"최선은 곧 흐르는 물과 같으니…"
하후미린은 힘없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모든 인간이 하늘이 되고자 위로만 오르려 한다!"
그는 허허로운 시선으로 창천을 올려보며 독백했다.
"물(水)은 만물(萬物)을 뒤덮고 생성(生成)시키되 아래로 흐른다. 나 하후미린! 하늘이고자 하여 아래로 흐르는 물이 되리라!"
츠츠츠…!
크다!
이 순간, 하후미린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은 저 무궁한 대창천(大蒼天)이었고, 가이없는 망망(茫茫)한 대해(大海)와도 같았다.
들었는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도(道)!
극락(極樂)이 옆에 있거늘 스스로의 몸을 던져 고해(苦海)의 늪 속에 빠뜨리려는 자가 지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있었던 것이다.
"이제 황실(皇室)을 장악하려는 위인들의 야망이 내게 이어지리라!"
하후미린의 미안은 굳게 굳어지고 있었다.
"천림이 청하림임을 알게 될 것이고, 야망의 불나방들이 밀려들 것이다! 그리고…"
츠으으…!
하후미린에게서 번져오르는 광휘는 무도와는 상관 없는 천인지광(天人之光)이었다.
"천림은 침묵할 것이고 나 천세잠룡을 취하려는 자들이 기연(奇緣)을 베풀 것이다!"
이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하후미린은 스스로의 뛰어남을 보이게 하여 천하의 야망화(野望火)를 지닌 효웅(梟雄)들을 끌어 모으려 한 것이란 말인가?
보이고 있었다. 하늘마저 투명(透明)하게 꿰뚫어 볼 대철인(大哲人)의 눈에 서려 있는 기색은 확신(確信)의 빛이었으니…
일다경(一茶更)이나 흘렀을까?
문득,
빙그레…
하후미린의 입가로 미소가 번져오르기 시작했다. 예의 장난스럽고 고집마저 서린 악동의 미소였다.
"후훗! 탁록삼미후(倬鹿三美后)! 오늘쯤은 완전히 익었으리라!"
츠으…!
그런 하후미린의 눈가로 번들거리는 색정(色情) 어린 동공은 어느새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탁록삼미후!
그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익었다는 말에 담긴 잠의(潛意)는?
이곳은 청하림이었다.
알지 못하나 능히 하늘의 숲이라 불리우는 천세의 신비지였다. 한 마리 천세잠룡이 웅비(雄飛)의 나래를 펴려 웅크려 있는 하늘의 숲. 과연 그 안엔 어떤 기경(奇景)이 펼쳐져 있는가?
제5장
타오르는 정욕(情欲)의 불길
일컫기를, 당금의 무림은 육합천하(六合天下)로 불리웠다. 그것은 대륙무림을 육분(六分)하고 있는 여섯 개의 패천세가 얼마나 가공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었다.
<대륙육합천패(大陸六合天覇)>
황금재벌(黃金財閥)!
여인제국(女人帝國)!
뇌정마계(雷霆魔界)!
십자천검성(十字天劒城)!
신비혈련(神秘血聯)!
묵붕천비영(墨鵬天飛營)!
이들은 대륙의 하늘들이었다. 허나, 그들은 대륙무림의 유일천(唯一天)이 될 수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늘에 태양이 여섯일 수는 없었고, 더 큰 좌절의 이유는 한 줄기 바람 때문이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거대한 바람!
그 누구도 그 바람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천년풍(千年風)!
천 년의 바람…
그 무적철혈풍 앞에 대륙육합천패는 죽음보다 더 치욕적인 패배(敗北)의 쓴 맛을 봐야만 했었다. 아울러, 그들의 군림야망(君臨野望)의 불길은 사그러 들었고, 그에 비례하여 그들의 마음 속에는 더욱 큰 야망의 불길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대륙육합천패는 침묵(沈默)으로 십년(十年)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열화(烈火)같이 일어났으나, 처절하게 패배한 치욕을 짓씹으며 침묵 속에 영겁(永劫) 같은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리라. 대륙무림은 차츰 그 이름을 잊어 갔으나 그들은 가히 파천황적인 잠재력(潛在力)을 키워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터져올랐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그 무차별한 대패력(大覇力)은 한 곳으로 집중(集中)되었다.
<지저사계(地底邪界).>
그 이름은 죽음의 대명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아울러, 그 이름은 이제껏 지상에 드러난 적이 없었던 신비세이기도 했다.
사계(邪界)의 역사는 마도천력(魔道千歷)에 비견될 정도로 오래된 것이었다.
허나, 초유의 대초인마왕인 마야 나후천은 사도(邪道)와 동반하기를 꺼려했다.
결국, 사계는 마도에 눌려 만장지저(萬丈地底) 속으로 숨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탄생(誕生)되었다. 지상에서 마(魔)가 사라지기 이전에는 결코 빛을 볼 수 없는 사후세계(死後世界)의 지배자(支配者)!
그 힘이 얼마인지를 추측하기란 실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힘이 폭발을 일으켰다.
나올 수 없는 무저갱(無底坑)으로 사라져 버린 지저사계가 천 년의 세월동안 억눌려 있던 대화산과도 같이 굉렬하게 터져 올랐다. 어쩌면 자살이라도 하려는 듯이…
대륙육합천패에의 도전(挑戰)!
그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닥친 것이었다.
만장지저에서 피의 구름을 타고 십만의 지저혈사전사군단(地底血邪戰士軍團)이 일어났고, 그들은 육극(六極)으로 갈라져 대륙무림의 여섯 하늘을 공략해 들었다.
실로 기가 막힐 일이었다. 천년사력(千年邪力)을 일시에 폭살시킨 지저사계!
그 힘은 실로 미증유적(未曾有的)으로 거대한 것이었다. 능히, 그 파괴력(破壞力)은 대륙의 여섯 하늘 중 일패(一覇)와 맞먹을 정도였던 것이다. 헌데, 그들이 대륙육합천패를 일시에 공적(共敵)으로 삼아 대혈전(大血戰)을 일으킨 것이었으니…
이란타석(以卵打石)!
대륙무림에서 비록 천 년의 무적철혈풍에 휘말려 그 야망의 군림거보(君臨巨步)가 좌절되었다고는 하나 대륙육합천패라는 이름은 누가 뭐래도 대륙을 받치는 여섯 개의 기둥이었다.
대륙의 하늘들은 노했다. 당연하게 처절한 피의 응징이 시작되었다.
파멸(破滅)!
지저사계의 십만혈사전사군단은 그대로 지옥의 나락으로 흩날려가고 말았다.
그런 처참한 결과가 나타났지만 대륙육합천패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그들은 한 명의 절대사인(絶代邪人)을 뒤쫓기 시작했다.
유령사모(幽靈邪母) 야화련(夜花蓮)!
사후세계의 지배자!
지저사계의 천년사황녀(千年邪皇女)!
유령(幽靈)이라는 외호가 말해 주듯 그녀를 잡을 자는 천지에 아무도 없었다. 대륙육합천패의 천라지망(天羅地網)이 대륙무림을 뒤덮었어도 그 절대사후인 유령사모 야화련의 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모래밭에 빠진 한 방울의 물과도 같이…
그 일련의 사태는 지옥의 혈풍이 불기 위한 서곡(序曲)일 뿐이었다.
지저사계의 파멸로부터 음모(陰謀)는 시작되었다.
청하림.
여전히 짙푸른 노을이 백리(百里)를 뒤덮고 있었다.
그 청하림의 서단(西端)에 위치해 있는 방원 일천 장의 평지는 한 뿌리의 대나무도 없었다. 아니, 아예 그 어떤 생물체조차 살 수 없었다.
콰콰콰쾅!
황폐함에 갈가리 찢겨진 대지는 엄청난 대강풍 속에 휘말려 있었던 것이다.
빠지지직!
집채만한 거암(巨岩)이 순식간에 가루로 부숴져 대기로 휘말려 올라갔다. 엄청나기 이를 데 없었다. 흡사, 대사막에 있다는 죽음의 용권풍이랄까?
그 굉렬한 대폭풍강은 오직 방원 일천 장을 뒤덮고 있을 뿐이었다.
"쳇! 미린이 보고 싶으니 대천풍력(大天風力)을 조절할 수가 없어."
그런데, 이 미증유의 대강풍 속에서 인간, 그것도 여인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방원 일천 장을 뒤덮은 대강풍 속엔 경악스럽게도 한 거영(巨影)이 우뚝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앉은 키만도 능히 육 척에 달하는 초거인!
더욱 경악스러운 사실은 그 거인은 분명 여인이라는 것이었다.
묵철(墨鐵)을 뭉쳐 놓은 듯 시커먼 피부였다. 허나, 그것엔 굴강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검은 수발은 바닥에까지 치렁하고, 검은 눈썹은 사내의 그것인 양 굵었다.
오똑 솟은 콧날은 육중하고, 입술은 얇으면서도 윤기가 흐른다.
철인(鐵人)이라고나 할까?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은 나신이었다.
보이는가?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묵철봉(墨鐵峯)은 두 개였다. 거대한 수박덩이를 보듯 천 근의 묵철로 주조된 듯한 육중한 유방이었다.
모조리 검었다. 단지 두 알의 유실(乳實)만은 처녀(處女)임을 증명하듯 분홍빛으로 파르르 떨린다. 설사, 보검으로 내리친다 해도 미동도 않은 육중한 근육덩어리를 감히 그것을 빨아 들이려는 자는 이빨이 부러짐을 감수해야 할 만큼 탄력적으로 솟구쳐 있었다.
그 아래, 저 왕자(王字)마저 선명한 하복부를 보라. 우거진 검은 밀림이 배꼽까지 이르러 있었다. 허나, 그런 중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인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복부의 아래로 굵기가 웬만한 사내보다 굵은 여인의 허벅지의 사이로 도톰하게 볼록한 둔덕이 균열되어 있음이 확연히 드러나 보인다.
이런 유의 여인이 지상에 존재해 있음은 그대로 불가사의(不可思議)와도 같았다.
검은 묵철로 빚은 철 사이 단좌해 있는 듯한 여인은 모든 것이 엄청날 정도로 컸다. 허나, 완벽한 균형미를 철인거녀(鐵人巨女)는 지니고 있었다.
문득,
뭉클…!
그녀는 자신의 육중한 수밀도를 움켜 쥐며 신음했다.
"아…"
그녀의 눈은 체구와는 달리 섬연했다. 짝을 잃은 어린 암사슴의 눈이랄까?
그윽한 그 검은 동공엔 한 줄기 뜨거운 그리움의 빛이 내재되어 있었다.
"미린. 천첩은 괴물(怪物)이었어요. 천첩이 분노(憤怒)하면 방원 백 장 이내는 대폭풍이 휘몰아쳐 초토화(焦土化)되고 말았어요."
목소리는 굵으나 고왔다. 거녀(巨女)는 고통스러운 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내게 온갖 멸시를 주며 멀리했고 정(情)에 굶주린 천첩은 미친 듯이 천하를 휘젓고 다녔지요."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이 분노로서 스스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니…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 부느 대폭풍강도 그녀가 일으키는 것이란 말인가?
"미린. 당신은 천첩을 거두며 말했지요. ."
여인의 눈은 굳어지고 있었다. 사랑의 감정이 일렁이는 봉목,
"천풍혈(天風血)이 내 몸에 있고, 인간이되 인간일 수 없는 사람은 천림으로 들어야 하신다면서 당신은 천첩을 이끌었어요."
천풍혈(天風血)!
그것은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하늘 밖의 신화를 일컫는 말이었다.
바람(風)과 벼락(霹靂)과 달(月)의 신비신화!
<천상삼사(天上三師)!>
전설은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천풍사(天風師)!
천뢰사(天雷師)!
천월후(天月后)!
바람과 벼락과 달,
천상에 자리한 세 명 천인(天人)의 스승은 자신의 뜻에 다라 천풍(天風)을 일으키고, 천뢰(天雷)의 힘으로 천지를 갈가리 찢어발기고, 천월(天月)의 요염함으로 하늘을 진동시킨다.
그리하여 천상삼사라 불리우는 하늘 밖의 신화는 전설상으로만 전해지는 신비였다.
뉘라서, 대자연에 동화되어 그것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한데, 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여인은 분명 말하지 않았는가?
그녀 자신의 몸안에는 천풍혈이 흐르고 있노라고…
천풍혈!
그것은 천상삼사 천풍사만이 지녔던 바람의 혈맥(天風血脈)이었다.
천림!
그것이 과연 무엇이기에 그 초극이도 불완전한 기인의 집합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미린. 그 분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진정되고 바람은 나의 의지대로 조절된다! 허나…"
여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는 모든 것에 초연해질 수 있으나 그 분이 보고 싶을 때면 어쩔 수가 없으니…"
거녀는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스르르…!
그런 그녀의 등 뒤로 두 개의 새하얀 손이 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와 함께,
물컹!
그 두 손아귀에 저 거대하고 탐스러운 묵철(墨鐵)의 유방이 잡혀들었다.
"흐윽!"
여인은 아미를 찡그리며 입술을 벌렸다.
"훗! 철화의 유방은 언제나 단단해!"
한 소리 싱그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어느 사이였을까?
무릎 꿇은 거녀의 등 뒤로 한 명의 환상적인 미안(美顔)을 지닌 사내가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여인의 양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은 채 마음껏 여인의 탐스런 수밀도를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어때 오늘은?"
의미있는 물음을 던지는 중에도 그의 손길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허나, 그가 주무르면 그럴수록 여인의 수밀도는 더욱 단단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어느덧, 사내의 손길은 그 거대한 철의 유방의 봉우리만을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사내의 두 손으로도 다 차지 않을 거대한 철의 육봉(肉峯)!
"미린."
여인은 감격에 거구를 떨었다.
하후미린 이외에 그런 사내가 또 어디 있으랴?
여인은 가슴 언저리로 전해오는 열류에 교음을 흘리며 손을 뒤로 뻗었다.
출렁!
거대한 철의 육봉은 더욱 치켜져 올라가고, 여인의 교수는 하후미린의 목을 등 뒤로 끌어 안았다. 겨드랑이 사이로 흔들리는 우거진 숲…
하후미린은 눈을 찡긋하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스르륵…!
그의 또다른 손하나가 아래로 내려갔다.
여인은 무릎을 꿇고 있으나 사내는 서 있었다. 허나, 사내는 결코 그것을 개의치 않고 있었다.
사내의 손은 어느새 여인의 하복부를 부드럽게 쓸어 내리고 있었다.
부드럽게 덮여 있는 검은 밀림지대를 헤집으며 사내는 쉽게 신비의 계곡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굵은 허벅지의 사이 묵철로 빚은 듯 단단한 철주를 비집고…
"하아… 미린!"
여인은 절로 허벅지를 벌렸다. 순간, 믿어지지 않게 부드러운 붉은 속살이 촉촉히 젖은 채 빛났다.
문득, 하후미린은 손길을 멈추었다.
"철화(鐵花). 그대는 천풍사의 후예다. 허나 불완전(不完全)하다! 그대가 천풍혈을 제압하는 데 내가 필요하다면 가져 주겠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아… 미린."
여인은 감격에 겨운 시선으로 하후미린을 보았다.
파르르…!
경련하는 유방의 물결,
(모든 사람이 저주하고 멸시하는 천첩을…)
콰콰콰!
폭풍의 기세는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의 격발이 사라지고 사랑의 물결이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 주는 현상이었다.
"철화. 그대를 여인으로 만들어 주겠다! 진정한 천풍후로서!"
하후미린은 잘라 말했다.
"하,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며 여인은 두 손으로 젖가슴을 가린 채 고개를 떨구었다.
"제 유방은 비대할 정도로 크고, 천첩의 키는 보통 여인의 두 배가 될정도의 괴물… 어찌 위대하신 당신의 몸을 받을 수 있겠사옵니까?"
여인은 두려움의 공포마저 느끼고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말이었으나, 너무도 이질적(異質的)인 자신의 육체에 대한 회의감(懷疑感) 때문이었다.
"아…"
하후미린은 아무런 말도 않은 채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그시 눈을 내리감은 채…
그것이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는 여인이 모를 리 없었다.
(미린. 당신은 진정으로 이몸을…)
여인의 가슴으로 벅찬 희열이 번져갔다.
스윽!
그녀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단단한 철의 육봉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이어, 그녀의 파르르 떨리는 유실이 사내의 벌어진 입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진다.
"학! 아, 아파!"
잔인하게 이빨 사이로 짓씹히는 유방의 아픔에 여인은 아미를 찡그렸다. 허나, 그것은 아픔이 아닌 상큼한 쾌감이었다.
하후미린은 젖을 탐하는 어린 아이처럼 철화의 거대한 육봉을 번갈아가며 깨물었다.
아무리 단단한 피부와 탄력을 지녔을지라도 삽시간에 여인이 수밀도는 수많은 이빨 자욱(齒痕)으로 뒤덮여 있었다. 허나, 여인은 결코 거부하지 않았다.
"흐윽!"
더욱 깊숙이 여인은 사내의 몸을 끌어 안은 채 교구를 떨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하후미린은 그녀의 유방에서 얼굴을 들어 올렸다.
"엎드려 봐!"
하후미린은 장난스레 한 쪽 눈을 찡긋했다.
누구의 말이라고 거역하겠는가?
여인은 주저없이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렸다.
(당신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녀가 어찌 사내가 원하는 체위(體位)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허나, 사랑하는 사람의 요구임에랴…
"으음!"
하후미린은 절로 신음을 토했다.
보라. 저 거대한 천도(天桃)를…
폭발할 듯이 허공에 걸려 있는, 묵광이 번득이는 검은 피부의 탄력감,
그 갈라진 사이로 빽빽하게 우거진 검은 밀림지대가 곧추선 허벅지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그 깊은 수풀의 계곡은 익은 석류와도 같이 벌어져 있다. 그 내밀한 곳에서 반짝이는 분홍빛의 속살…
휘익!
하후미린은 자신의 하의를 벗어 던져 버렸다. 그런 그의 시선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흐흣!)
하후미린은 자신의 거대한 흉기(凶器)를 잡은 채 앞으로 다가갔다. 툭툭! 불거져 오른 힘줄은 이미 충분한 화력(火力)이 장전(裝塡)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證據)였다. 그리고, 서서히 그것은 여인의 우거진 신비림을 헤집으며 나아갔다. 그 붉은 욕망의 동굴로 깊숙이 침습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악!"
여인의 거대한 둔부가 파르르 경련했다. 흡사, 창에 찔린 능어와도 같이 퍼덕이는 여체…
허나, 사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두 손으로 여인의 둔부를 움켜 쥐며 급박하게 하체를 밀착시켰다.
"으읏. 음…!"
사방에서 조여오는 압박감에 하후미린은 절로 신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허리를 세차게 밀어 붙이며 여인의 거대한 둔부를 쓰다듬었다. 매끄러운 감촉이 스며들었다.
"하으윽! 더… 더!"
여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사랑스런 여인…"
하후미린의 눈가로 따스한 빛이 스쳐갔다. 그것은 사랑의 빛이었다.
스윽!
그는 여인의 등에 자신을 밀착시키며 손을 뻗었다. 폭풍같이 일렁이던 두 개의 육봉이 사내의 손아귀에 잡히고 거칠게 그것은 일그러지며 터질 듯이 요동쳤다.
"아하악!"
여인의 봉목은 하얗게 탈색되어 검은자위를 없애 버렸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는 야수의 신음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곳은 천림이었다.
세상이 버린 여자 하나가 화룡(火龍)의 품에서 여인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곳이 어딘지는 아무도 모른다.
암흑의 공간엔 한 점의 빛줄기도 있지 않았다. 허나, 검은 암흑 속에 섞여 있는 피의 기운은 천지창세 이전의 혼원암흑계(混元暗黑界)였다.
그리고…
둥실…!
진공의 대기를 부유하는 검붉은 형상이 있었다.
츠츠츠츠…!
폭발해 오르는 극렬한 절대마기류(絶代魔氣流)가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몸에서는 풍길 수 없는 기운이었다.
악마(惡魔)의 기도(氣道)!
보는 이의 심혼(心魂)이 그대로 산산이 바스러져 지옥유부(地獄幽府)로 떨어져 내릴 정도로 전율적인 악마의 파천마력도(破天魔力道)였다.
그리고, 울려퍼졌다.
"크흐흐흐! 그 겁멸의 시공 속에 천하의 마(魔)와 사(邪), 요(妖), 악(惡), 귀(鬼)의 오행아수마령기(五行阿修魔靈氣)를 성취했도다!"
아수라의 저주음!
우우우우웅…!
그 끔찍한 저주음은 암흑의 진공대기를 찢으며 울려퍼졌다.
전율적인 악마기류를 흘리고 있는 자는 인간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울부짖는다. 암흑의 지옥유부에서 일천 마리의 악귀(惡鬼)들이 호곡하듯…
"흐흐흐! 억겁의 세월을 이 혼원암흑계에서 광명을 부수려 힘을 쌓아왔다."
모발이 곤두설 듯한 저주음(詛呪音)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와 아울러,
츠츠츠츠츠…!
번져오르는 오색의 무형악마력(無形惡魔力)이 보였다.
적(赤), 흑(黑), 녹(綠), 청(靑), 백(白).
한 가지의 기운일지라도 천지를 파멸시킬 잠력을 지닌 아수라의 힘!
고오오…!
그것은 점차 휘돌며 폭풍의 힘으로 합일되고 있었다.
"크흐흐! 당금에서 천마(天魔)의 앞을 가로막을 자는 오직 둘! 천 년의 바람과 천림뿐이다! 허나…"
자신에 찬 아수라의 저주사음이 진공의 대기를 떨어 울렸다.
쿠쿠쿠쿠쿠!
그 파장은 악마의 귀령(鬼靈)인 듯 뒤흔들렸다.
스… 윽!
손(手)!
십장(十丈)은 될 듯한 거대무비한 악마수(惡魔手)가 떠올랐다.
손톱은 녹광이 타오르고, 손바닥은 핏물이 흐르듯 붉었다. 손등은 귀기스런 청광이 흐른다.
뿐인가?
오지(五指)는 그대로 형형색색(形形色色)이었다. 그 무엇이라도 그 오색악마수(五色惡魔手)에 장악된다면 으스러지고 말 악마의 손 안에서 예의 저주사음(詛呪死音)이 다시금 흘러나왔다.
"크흐흐! 천 년의 바람! 그 무적철혈풍은 육합을 제압하느라 소모되었고, 감히 본 지옥마계의 야망을 가로막은 어린 용은 천림에서 나오는 즉시 제거되리라!"
우우우우…!
오색악마수는 격렬하게 떨렸다.
"크흐흐! 지저사계를 움직여 잠자는 대륙의 여섯 하늘을 깨웠으며 그 계집은 천림으로 스며들리라!"
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이 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중에 지저사계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지 않은가?
천 년을 지저에서 잉태되어 내려온 사도의 대종맥이 대륙육합천패를 친 것이 결코 자의가 아님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변황이 준동하고 대륙의 여섯 하늘이 서로 쟁패(爭覇)하리라! 천림의 잠룡은 육합에 의해 분시되고 감히 천마일맥(天魔一脈)에 대항할 세는 없을지니, 지옥혈천하가 도래하리라! 일 년!"
칠흑같은 암흑 속에서 극악(極惡)한 저주악마후(詛呪惡魔吼)가 토해졌다.
"일 년만 있으면 본좌 지옥천마황(地獄天魔皇)이 출관(出關)함과 동시에 영세지옥천마군림(永世地獄天魔君臨)이 이루어지리라!"
--영세지옥천마군림!
들었는가?
저 혼원암흑계를 울리며 퍼져가는 악마의 광언을…
지옥천마황!
암흑의 일각에서 악마의 아수라마령은 스스로에게 그런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크흐흐! 전설의 우주오대초인 중 셋 이상이 합격해 오지 않는 이상 천마의 군림지존보(君臨至尊步)를 막을 자는 없다! 설사… 하늘일지라도 오행지옥천마수(五行地獄天魔手) 앞에선!"
스윽!
거대한 오새의 악마수강이 암흑을 가른다.
쩌어억!
저 무저의 혼원암흑계가 유리가 갈라지듯, 그대로 균열되어 폭산(爆散)하는 것이 아닌가?
형체가 있을 수 없는 진공(眞空)의 대기였다. 한데, 그것을 싸잡아 쥐어 고무공을 터뜨리듯 갈가리 찢어발기는 가공할 악마의 손!
그 무엇이 있어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혼원암흑계에 떠오른 공포의 악마수를 지닌 자는 지옥천마황이란 인물이었다.
전개되고 있는 지상의 모든 혈풍을 일으키는 암흑의 주재자!
대륙무림의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지만…
번쩍!
쩌쩌쩌쩡!
쾅! 콰콰콰--!
천지가 개벽(開闢)하는가?
하늘은 분명 짙푸른 창천이었다. 한데, 이 무슨 괴사(怪事)인가?
청천(靑天)에 벽력(霹靂)이 작렬하다니!
청하림.
아니, 천림이라 불리워져야 하는 태초의 신비지!
일백 리에 걸쳐 울울창창하게 뻗어오는 짙푸른 노을과도 같은 죽림은 두 개의 파천황적인 원세신화(元世神話)가 잠재되어 있었다.
원세초유의 초인전쟁인 탁록대전!
그리고, 태초의 유일현자라는 태극천유자 하후량!
그 둘의 초인신화가 이곳 천림에 숨어 있는 것이었다. 하늘의 신비를 감춘 천림…
세인들은 알지 못했다. 그곳엔 하늘이 경외시하는 절대의 불완전한 초인들이 기거하고 있음을…
그들이 완전한 인간이 되는 순간 탄생하리라!
천림은 사라지고, 위대한 초인의 제국이…
천림의 남단(南端)엔 벽력의 대지가 있었다.
쾅! 콰콰콰!
번쩍!
수천, 수만 개의 벽력과 뇌전이 일어나는 뇌정의 대지였다. 허나, 그것은 결코 천중(天中)에서 이는 자연적인 벽력강이 아니었다.
하늘은 푸른 창천이었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그곳엔 유유히 새들이 노닐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원 일천 장의 흑암지(黑暗地)는 온통 불에 그을린 듯 대지는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한 그루의 잡초도 없는 완벽한 죽음의 대지였다.
날카로운 창칼에 찔린 듯 바위(岩)들은 칼날 같은 예기(銳氣)로움을 빛내며 솟아 있었다.
쾅!
뇌전이 일어났다.
쩌쩡!
그것에 강타된 바위는 두 개로 쪼개지며 검붉은 연기를 피워 올린다.
피시시…!
묵암뇌지(墨暗雷地)의 중앙엔 십 장에 달하는 거암이 자리해 있었다. 그것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묵광 속에 번들거리고 있었다. 허나, 다른 곳과는 달리 탁자(卓子)인 듯 평평했다.
번쩍!
쾅! 콰콰콰--!
한데, 저 시퍼런 뇌정의 벽력들은 바로 그곳에서 폭사되고 있었다.
여인이었다.
짙푸른 청보석(靑寶石)이랄까?
하나의 거대한 청보석을 억겁(億劫)의 시공 속에 다듬어 놓은 듯했다.
화르르르…!
창천의 노을을 보는 듯한 청발이 바람에 흔날리고, 귀 밑까지 뻗은 청미는 그린 듯 고아했다.
여인의 눈은 수천, 수만 개의 뇌우(雷雨)가 작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번쩍!
콰아아아…!
청보석을 박아 넣은 듯한 벽안(碧眼)에서는 수십 줄기의 벽력뇌강기가 폭사되고 있었다.
한 번 눈길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심령을 태워 박살내 버릴 정도의 뇌전(雷電)이 여인의 벽안에서 폭출되고 있었다. 그런데, 보라!
한 쌍의 나래를 펴고 올라갈 미염한 육체미(肉體美)를…
여인의 청발(靑髮)은 종아리에 이르기까지 길었다.
화르르르…!
불어오는 미풍에 긴 수발이 흔들려 퍼져 오르는데 그 사이로 드러나는 여인의 나신을 보라!
미끈했다. 칠 척이 넘는 키에, 한 점의 군살조차 없는 완벽한 미체를 여인은 지니고 있었다.
천도(天桃)를 붙여 놓은 듯 소담스런 수밀도도 그렇지만 여인의 유실은 짙푸른 하늘색으로 물들어 떨리고, 세류요를 보듯 잘록한 허리의 곡선은 미려하기조차 했다.
더욱이, 탄력적인 하복부의 끝은 흡사, 청하림이 그대로 있는 듯 푸르른 초원(草原)이 부드럽게 펼쳐 있는 것이 아닌가?
알맞게 살이 오른 허벅지는 탐스럽기 그지없고, 바위를 받치고 선 종아리는 백학의 다리같이 고아했다.
여인은 그대로 청설란(靑雪蘭)을 보는 듯 유현하기조차 한 몸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콰콰콰콰!
번쩍!
여인의 십 장 주위로는 굉렬한 뇌정의 벽력이 내리꽂히고 있었음에도…
"…"
그녀는 단지 그렇게 서 있을 뿐이었다.
한데, 어느 한 순간,
"어이쿠! 날 통구이로 구워 먹을 생각이야?"
한 줄기 당혹함에 찬 음성이 뇌성을 뚫고 울려퍼졌다.
"미린?"
여인의 벽력안으로 환한 기광이 스쳐갔다.
빙글!
그녀는 쾌속하게 교구를 돌려 세웠다. 그런 여인의 십 장 밖,
"아이쿠! 미린 살려…"
위태위태하게 뇌전을 피하며 비명을 지르는 백영(白影)이 있었다.
하후미린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그의 얼굴을 접한 여인의 전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울러,
"아…!"
여인의 옥용에 환한 미소가 번져오른다.
순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대기를 찢어발기던 뇌정과 벽력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쳇! 아무튼 벽하(碧霞)를 만나려면 항상 목숨을 걸어야 하니…"
그제서야 하후미린은 투덜거리며 그대로 앞으로 다가왔다.
벽하!
이것이 여인의 이름인가?
"미린… 왔군요!"
떨리기조차 하는 옥음을 토하는 여인의 음성에 실린 격정은 활화산보다 뜨거운 화염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벽하… 그동안 외유(外遊)를 하느라 오지 못했어!"
하후미린은 눈물마저 글썽이는 벽하의 반김에 멋적은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벽하의 눈가로 따사로운 미소가 번졌다. 여인은 전혀 자신을 감추려 들지 않았다.
스르르…!
오히려 그녀는 긴 수발을 뒤로 쓸어넘긴다. 저 가공할 유혹의 물결이라니…
뭉클…!
벽하는 소담스런 유방을 교수로 쓸며 걸음을 옮겼다.
(미린… 당신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무엇이든 만지면 광전이 흘러 괴물로 취급받던 소녀를 진정한 여인으로 대해 주신 분…)
벽하의 봉목으로 흐르는 눈물 한줄기는 감격의 결정(結晶)이었다.
처절했던 과거…
그녀는 벽력뢰전혈(霹靂雷電血)을 타고난 여인이었다. 우주최강의 힘인 뇌(雷)!
여인으로선 가질 수 없는 태양보다 십 배 강력한 뇌정의 혈맥을 지닌 여인이었던 것이다.
아는가?
하늘의 천계에 있다는 천상삼사의 전설을?
그리고, 뇌와 벽력을 다스린다는 뇌신(雷神)!
천뢰사(天雷師)!
그는 인간이라기 보다는 뇌룡(雷龍)이었다.
하늘의 벽력계(霹靂界)를 관장하는 천뢰의 신으로, 그 혈맥(血脈)을 이은 벽하는 뜻만으로도 천뢰를 일으키는 그 미증유의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음이 평온하지 못한다면 결코 다스릴 수 없는 힘이었다.
--뇌후(雷后) 뇌벽하(雷碧霞)!
후일, 알게 되리라. 천뢰를 다스리는 절대패후(絶代覇后)가 대륙 위에 있음을…
(미린…)
여인은 다가서고 있었다.
미끈한 허벅지가 교차될 때마다 짙푸른 음모(碧毛)가 살랑이인다. 그 사이로 균열되는 깊숙한 계곡…
오직 여인만이 지닌 신비의 계곡이 드러남에도 뇌벽하는 개의치 않고 있었다.
생명이 있는 샘물. 특히, 영장이라는 인간은 결코 그녀의 옆으로 다가서는 자는 전무했다, 하나뿐인 생명을 버릴 자는 아무도 없었다.
뇌벽하에겐 따사로움이 있을 수 없었다. 설사, 인지(人知)가 없는 토끼(兎)나 새앙쥐(鼠)라 할지라도 결코 그녀의 옆엔 오지 않았기에…
허나, 눈앞의 이 사람만은 틀렸다.
그는 천 명의 여인을 첩으로 거느릴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만큼 뛰어났으며 또한 아름다웠다. 한데, 그는 자신을 위로했으며 여인으로서의 사랑을 주었다.
(나의 의지는 저 분의 것. 내 몸 속의 벽력뇌전혈도 저 분의 의지대로 움직이리라!)
여인은 이제 평범한 여인이 될 수 있었다. 이미, 미친 듯이 폭출해 오르는 광전뇌(光電雷)도 그녀의 눈 앞에 있는 고집 세고 짖궂으며 환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사내 앞에선 죽어 버리고 있었다.
(오직 저 분 만이 나를 가지시리라!)
츠으으…!
뇌벽하의 봉목으로 흐르는 열기는 거역할 수 없는 사랑의 기운이었다.
(쩝! 이상하단 말야.)
하후미린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오늘은 철화가 나았나 싶었더니 벽하까지도 완치가 됐으니…)
그가 어찌 알겠는가?
여심(女心)!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의 마음을…
"미린. 소녀를…"
"벽하."
더 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았다.
이 두 남녀에게 있어 입 밖으로 나오는 언어(言語)라는 것은 소용없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마음은 무언(無言)중에 교차(較差)되었다.
사락…!
여인은 종아리까지 내려온 긴 벽색의 수발을 가지런히 깔며 그 위에 누웠다. 그리고,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사르륵…!
여인의 다리가 꺾여져 곧추세워지면서 모아졌던 무릎이 좌우로 활짝 벌어졌다. 순간, 소담스레 둔덕을 덮고 있는 푸른 초원이 가운데가 균열되면서 그 내부의 계곡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 무엇이라도 빨아들일 듯한 저 깊은 암흑의 동굴은 언뜻 그 질감이 조개 속같이 붉음을 증명하듯 빛났다.
뇌벽하는 사르르 봉목을 감은 채 자신의 모든 것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었다.
"음…!"
일순, 하후미린은 자신의 하체 일부가 뿌듯하게 솟구쳐 오름을 느끼며 절로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사내라면 그 누구도 거부하지 못할 저 환상의 유혹!
(뇌정기만 없었다면 내 품에 안기기도 전에 이미 처녀지신을 면했으리라!)
그것이 솔직한 하후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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