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면신협(14)
일천 오백 년 전.
전한(前漢) 무제(武帝)의 시대에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 지상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 조직의 힘이란 실로 형용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굳이 설명한다면 그 전에도 없었으며 그 후에도 없었고, 또한 영원히 그
에 비견될 조직은 지상에 나타나지 않을.....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었다.
세인들은 그 조직을 마교(魔敎)라 불렀다
__마.....교(魔敎)!
그들은 강함 그 자체였다. 마교는 어떤 극강한 힘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
었다. 하늘의 큰 힘으로도 마교를 지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을 듯이 보
였다.
그런데, 그 마교가 어느날 지상에서 소멸된 것이다. 그것은 실로 이해할
수 없는 천년의 의문이었다.
세인들은 모르고 있었다. 마교의 멸망! 그것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진행
되었는지를.....
본래, 마교는 정통인 천마본가(天魔本家)와 그의 열 개 가신(家臣)들인
마교십가(魔敎十家)로 조직되어 있었다.
마교십가!
그들은 전혀 이질적인 십로(十路)의 마벌(魔閥)들이었다. 마교십가는 개
개가 강인한 개성과 막강한 잠력을 지닌 상고마도(上古魔道)의 주력들이었
다.
천마본가는 그런 마교십가를 수하로 복속시키는데 무려 오백 년을 소모했
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교 제구대 종사 십방천마 철옥기의 대에 이르러 마교는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무림에 등장한 것이다.
흔히 천마(天魔)라고 불리는 고금제일마종(古今第一魔宗) 십방천마(十方
天魔) 철옥기(鐵玉寄)!
그는 무서운 힘으로 일어나 일거에 구주팔황을 제패쟤다. 아무도 그의 적
수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명실상부한 마교의 대종사이며 고금제일인이었다.
무력으로는 설사 신이라 해도 그를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마교의 영세군림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파국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일었다.
마교십가(魔敎十家)! 마교를 이루는 열 개의 가문.... 그곳에서 파국의
싹이 발아된 것이었다.
철혈마가(鐵血魔家).
천년마후성(千年魔后城).
번뇌마가(煩惱魔家).
막북(漠北) 무영종(無影宗).
불사마궁(不死魔宮).
사신마전(四神魔殿).
천수마가(千手魔家)
유령귀종(幽靈鬼宗).
혈전백마궁(血戰百魔宮).
맹호림(猛虎林).
십가(十家)! 이들이 바로 마교의 주력인 마교십가였다.
그 마교십가 중 두 개의 가문은 애초부터 마교를 깨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마교에 진입해 들어간 상태였다. 천마본가는 그것을 몰랐으며 그 때문에 파
멸당한 것이다.
-철혈마가!
-번뇌마가!
바로 그들 양대가문이었다.
철혈마가는 천마본가를 제외하면 환우에서 가장 강한 가문이었다. 그들은
마가(魔家)라고 불리나 실상 정파계열의 전사가문이었다.
철혈(鐵血)의 일족(一族)들, 그들은 마교의 야심이 천하제패에 있음을 팀
지하고 그것을 깨뜨리기 의해 마교에 복속하였던 것이다.
반면, 번뇌마가는 천하패주가 될 야심으로 마교에 동조한 것이다. 그들
번뇌일족은 마교가 천하를 얻은 직후 천마본가의 뒤통수를 때려 쓰러뜨리고
천마본가를 대신하여 천하를 지배하겠다는 원대한 야심이 있었다.
서로 상반된 목적을 지닌 두 가문에 의해 마교가 와해된 것이다.
또한, 당시 무림에는 십방천마(十方天魔)에게 패배당한 뒤 복수를 꿈꾸며
칼을 갈던 네 명의 초인(超人)이 있었다.
__봉황여제(鳳凰女帝).
__용존(龍尊) 냉린(冷鱗).
__북천낭황(北天狼王) 적적회랑(狄狄恢狼).
__화정(花精) 군염(君艶).
이들이 바로 사대천왕, 천외사천이었다. 그들은 오직 천마 철옥기에 못미
칠 뿐 그 외에는 무적이었다.
사대천왕은 아주 신비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겨우 출
신 정도였다.
-봉황여제(鳳凰女帝)!
그녀는 천외의 여인문파 봉황대정천(鳳凰大正天)의 당시 천주였다. 환우
제일의 바로 여전사가 그녀였다.
-용존(龍尊) 냉린(冷鱗)!
그의 출신은 용문(龍門)이라는 신비한 자객집단이라고 알려졌다. 그의 자
객수법은 고금제일이라고 전한다.
-북천낭왕(北天狼王) 적적회랑(狄狄恢狼)!
그는 변황제일인이었다. 한무제(漢武帝)와 수십 년간 치열하게 대립했던
흉노족의 대족장이 그의 신분이었다. 그는 비단 무공이 무서울뿐더러, 휘하
에 백만 마리의 혈랑군단(血狼軍團)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천산(天山)에 낭황부(狼皇府)라는 문파를 세웠었다.
-화정(花精) 군염(君艶)!
그녀는 황실의 고수자였다.
대대로 황실에는 화벌(花閥)이라는 신비한 비밀결사가 존재해 왔다. 화벌
은 왕조의 교체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여인들로만 구성되
며, 그들의 주목적이 황실의 후궁을 보호하는 데 있었다. 황실의 여인들 사
이에 자구책으로 결성된 것이 바로 화벌이었다.
화정 군염은 바로 그 화벌의 당시 벌주였다. 그녀는 마교를 와해시키라는
한무제의 칙명을 받았었다.
철혈마가, 번뇌마가.....그리고 사대천왕!
그들의 추구하는 바는 틀렸으나 외형적인 목표는 일치했다. 그것은 마교
의 멸망이었다.
결국 철혈과..... 번뇌가 천마본가를 쳐서 무너뜨렸으며, 사대천왕은 십
방천마 철옥기를 합격하여 힘께 동귀어진하게 된다.
그것이 마교의 멸망이었으며 아득한 일천 오백 년 전, 전한(前漢) 무제
(武帝) 년 간의 일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마교멸망의 비사!
그것은 한 권 일지(日誌)에 기록되어 있었다. 한 명 절대자가 쓴 천년의
기록. 그 절대자의 이름은 전황 북리황이었으며 그 일지의 이름이 바로 철
혈일지였던 것이다.
철혈..... 일지(鐵血日誌)!
-전황(戰皇) 북리황(北里皇)!
그는 바로 저 마교십가 중 가장 강력한 철혈마가의 당대 종사였다.
철혈마가, 그들 일족은 일천 오백 년 전에 마교를 멸절시키는데 성공한
듯이 보였다.
히지만.....싸움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에 불과했
다.
번뇌마가, 그들이 바로 철혈마가의 새로운 적(敵)이었다.
번뇌마가는 천마본가가 패멸한 위에 자신들의 제국을 세우려 하였던 것이
다.
그것은 정녕 길고도 힘겨운 싸움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았으나, 실상
마교 멸망 이후의 무림사는 철혈, 번뇌 양가의 투쟁의 기록이었다.
천하가 태평할 때는 철혈세가 득세 때이며, 난세로 천하가 어지러웠을 때
는 바로 번뇌마가의 세력이 융성한 때였다.
그렇게..... 일천 수백 년이 지나갔다. 철혈, 번뇌의 양가는 끊임없이 강
해져서 당대에 이르러서는 그 옛날 천마본가의 번성기만큼 강해졌다.
특히, 번뇌마가의 강성함은 전율스러울 정도였다. 천여 년을 고심하여,
그들은 같은 마교십가에 드는 강파 중 다섯가문을 수하에 복속시킨 상태였
다.
히지만 번뇌마가는 여전히 철혈세가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당대
번뇌마가 가주 번뇌마야 경천구는 한 가지 승부수를 계획하고 되었다.
사십여 년 전이었다.
경천구는 한 명의 가공할 정도의 자질을 지닌 한 명 소년을 발견하게 되
었다. 그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 소년을 거두어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경천구는 그 소년을 철혈세가를 깨칠 병기로 기를 작정이었다.
엄청난 양의 영약이 투입되었으며..... 버뇌마가의 무공은 물론 마교오가
의 절기들이 그 소년의 한 몸에 쏟아 부어졌다.
소년은 무섭게 자랐다. 그는 흡사 마른 솜같이 경천구가 주는 모든 것을
무서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났다. 소년은 이미 환우제일인이 되어 있었으며, 그때
경천구를 까무라치게 만들만한 일이 비로서 밝혀졌다.
그가 기른 공포의 승부사!
그의 이름은 북리황(北里皇)이며 저 증오스러운 철혈북리세가(鐵血北里世
家)의 다음 대 가주가 바로 그 소년이었다는 것이다.
번뇌마야 경천구! 그는 너무도 어이없고, 너무나 참담하게 좌절당한 것이
다. 북리황이라고 불리는 십 삼 세의 어린 소년에게.....
"이상이..... 철혈일지의 주내용이에요!"
옥수교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는 촉촉한 눈으로 용사추를 바라보았다. 아직 폭풍같았던 정사의 여
운이 그녀의 온화하고 기품있는 옥용 위로 떠돌고 있었다.
옥수교의 품에는 봉봉이 안겨 있었다.
옥수교와 봉봉.....두 여인은 한 남자를 섬기는 시앗같이 보이지 않고 모
녀지간으로 보였다.
"이상의 내용 외에는 경천구와 북리황의 수십 차례에 걸친 암투의 기록이
에요. 그것은 하나하나도 천하대세를 뒤덮을 만한 중요한 기밀들이에요."
옥수교가 말을 이었다. 그녀는 이미 철혈일지를 완전히 분석한 후였다.
철혈일지 안에는 공개되어서는 아니되는 수많은 기밀들이 기록되어 있었
다.
북리황과 경천구는 피차지간에 숫자 미상의 간세들을 상대방에게 접근시
켜 놓고 있었다.
철혈일지에는 그 상호간의 간세들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기록이 되어 있
었다. 그런 이유로 제문파들은 철혈일지의 입수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옥수교..... 그녀는 철혈일지가 재앙을 부를 수도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낭야왕부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간세들.....그 중 가장 중요한 간세들은 잠룡(潛龍)과 봉황(鳳凰)이라는
암호명의 간세들이었다.
그들은 경천구가 정파쪽에 침투시킨 간세들이었다. 북리황은 그들이 중요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상하게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었다.
"특기할 만한 일이 한 가지 더 있어요!"
옥수교는 잠꼬대를 하며 칭얼대는 봉봉을 다독거리며 말했다.
"그것은..... 전황이 세상사람들이 모르게 결혼하여 아내가 있다는 사실
이에요!"
".....!"
용사추는 침음했다. 순간적으로 그는은황각에서 본 두 남녀의 그림을 뇌
리에 떠올렸다.
전황과 함께 서서 온화하게 웃고 있는 미소부..... 전황보다도 그녀의 얼
굴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웬일일까?
전황의 아내, 그 자리는 전모(戰母)라 불리는 자리였다. 그리고, 삼십 년
전부터 강호의 뭇 미인가녀들이 쌍심지를 켜고 얻으려는 영광의 자리였다.
그런데, 그 전모라는 자리가 이미 어느 여인에겐가 주어져 버린 것이다.
"그녀는..... 누구입니까?"
용사추가 침중한 어조로 물었다. 옥수교는 웬지 조심조심 용사추의 안색
을 살피며 대답했다.
"그녀의 이름은..... 단봉(丹鳳) 조혜린, 봉황대정천(鳳凰大正天)의 촉망
받던 여종사가 바로 그녀예요!"
"단..... 봉 조혜린!"
용사추는 신음성을 발했다.
__단봉(丹鳳) 조혜린!
저 사대천왕 중 봉황여제(鳳凰女帝)의 문파인 봉황대정천 사상 최고의 재
녀.
그녀는 적사천인애에 두고 온 혈봉황의 대사저이기도 한 절세기녀였다.
그녀가 바로 전황 북리황의 아내 전모(戰母)였던 것이다.
용사추가 은황각에서 본 족자 속의 귀부인은 다름닌 단봉 조혜린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이십오 년 전에 부부가 되었어요. 그것은 아주 은밀히 이루어
진 혼인인지라 단봉의 사부인 봉황신모(鳳凰神母)만이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요."
".......!"
옥수교는 단봉 조혜린의 이름을 떠올릴 때면 경외의 표정을 지었다. 단봉
은 그녀보다 십여 살 연상이었으며 옥수교가 가장 존경하는 여인이기도 했
다.
"그 분은 전황에게 어울리는 단 한 명의 여인이었지요. 그런데....그녀는
이십여 년 전에 신비하게 실종되었어요."
"실종?"
츠읏....!
용사추의 눈에 신광이 번득였다. 단봉 조혜린은 오래 전에 실종된 상태였
다.
(음! 결국 교봉(嬌鳳) 옥섬여가 그녀에게 손을 쓴 모양이군.)
용사추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이미 그의 여인이 된 혈봉황(血鳳凰)
의 우려는 과연 적중된 상태였다.
교봉, 아니 봉황지존(鳳凰至尊) 옥섬여는 자신의 아버지인 번뇌마야의 사
주를 받아 사부인 봉황신모와 대사저 단봉 조혜린을 제거고 봉황대정천을
장악한 후였다.
봉황대정천은 더 이상 대정(大正)의 수호세력이 아니었다.
이십여 년 동안, 봉황대정천은 사음한 악녀(惡女)들의 매음굴로 변해 있
었다. 저 마교를 쓰러뜨렸던 봉황여제가 그 사실을 알면 지하에서도 통곡할
것이다.
"혈전백마궁을 장악하기 위해서 사추가 손을 써 주어야할 인물은 모두 셋
이에요!"
옥수교가 봉봉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개세혈황종 도천극을 쓰러뜨리는 일은 봉봉(鳳鳳)이 직접 하게 될 것이
다. 용사추는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것은 꼭 봉봉의 손에서 해결되어야만 한
다고 믿었다.
그 외에 나머지 삼대마왕을 용사추가 맡아야 하는 것이다.
고독마모,
음마 수곤,
영제 탁리무영!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적들이었다. 한 명을 상대하는데
도 용사추는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특히, 고독마모의 실력은 완전히 미지수였다. 어쩌면 그녀는 도천극보다
더 무서운 실질적인 백마제일인 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용사추는 그들과의 승부를 피할 수가 없었다. 혈전백마궁은 번뇌
마야 경천구의 전초세력이다. 지존마맹의 궁주가 바로 혈전백마궁이며 경천
구의 눈과 귀가 또한 혈전백마궁이었다.
용사추는 경천구와의 최후 승부를 위해 혈전백마궁을 경천구의 수하에서
이탈시켜야만 할 필요가 있었다.
__마야(痲爺)는 자신의 운명의 적이 전황 북리황인줄 알고 있으나 실상
그의 운명의 적은 바로 너다.
생사지존 갈후명은 이렇게 말했었다. 그는 번뇌마야 경천구를 쓰러뜨리는
것이 전황이 아니고 용사추라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번뇌마야가 곧 지존마야라는 비밀을 알았기 때문이다. 앞날
을 꿰뚫어 본 점에서 보면, 생사지존 갈후명은 진정한 종사의 재목이었던
인물이었다.
"고독마모와는 싸우면 안 돼요!"
문득 옥수교가 정색하며 말했다.
"그녀는 제삼세력의 영도자예요. 그녀와 싸우면 백마중 삼할을 차지하는
그들 제삼세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흠.... 회유하란 말입니까?"
용사추가 신광을 번득이며 말했다. 옥수교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떤 수단을 쓰든 그녀가 마음에서 사추를 돕도록 해야해요."
그녀는 야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신첩보다 오히려 젊으니까.....사추의 첩으로 삼을 수도 있을거
예요."
용사추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의 얼굴은 금방 벌겋게 물들었다.
옥수교는 용사추에게 고독마모의 마음뿐 아니라 그 육체마저 정복해 버리
도록 암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고독마모를 제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
다.
옥수교는 대범한 여인이었다.
나이도 물론 모자지간이 되어도 부족하지 않기도 하지만 옥수교에게 있어
용사추는 남편이고 주인이기 전에 자식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그녀의 용사
추에 대한 사랑은 모성애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 그녀는 질투를 모르며 용사추를 위해서라면 어떤 천인공노할 악행
이라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다.
"영제와 음마는 제거해야 해요."
옥수교는 문득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둘 다 말입니까?"
용사추는 침중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와 함께 그는 흘깃 천정 쪽으로 시
선을 던졌다. 제거해야 한다는 옥수교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한 가닥 격앙
된 숨결이 그곳에서 느껴진 것이었다.
(드디어.....꼬리를 드러내셨군.)
용사추는 내심 득의의 웃음을 흘렸다.
꼬리라! 그는 얼마전부터 아주 은밀한 하나의 인영이 낭왕각 내부로 스며
들어온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옥수교 역시 무엇인가 깨달은 것일까? 그녀의 입가로도 한줄기 야릇한 미
소가 스쳤다.
"그들 두 명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혼미한 상태예요. 그런 화근을
남겨 두느니 차라리 둘 다 제거해 버리는 것이 속편해요."
그녀의 말이 끝난 직후였다.
"누구를 제거한다고? 계집....!"
한 줄기 노기 서린 음침한 일갈이 천정쪽에서 들려왔다.
스스슥!
동시에 천정으로부터 한 줄기 인영이 유령같이 내려섰다.
스으.....스으!
전신이 기이한 안개같은 강기의 노을에 덮인 괴인. 그는 바로 백마의 제
오마왕 영제 탁리무영이었다. 그는 얼마전부터 천정에 은신하여 있었다. 그
러다가 옥수교의 말에 노기를 참지 못하고 몸을 드러낸 것이었다.
"핫하! 오좌, 어서오시오!"
"어서 오세요. 오각주!"
영제가 나타나자 용사추와 옥수교는 거의 동시에 말하며 흔쾌하게 웃었
다.
"........!"
영제는 일순 흠칫했다. 그의 눈빛이 환허신강 속에서 아차하는 빛을 띄웠
다. 그는 한눈에 자신이 이 두 젊고 교활한 남녀의 격장지계에 속았음을 깨
달은 것이었다.
그의 입술이 운무속에서 실룩거렸다.
"빌어먹을.....어린 놈들! 격장지계였느냐?"
그는 눈을 부라리며 노성을 내질렀다. 옥수교는 그런 영제를 향해 살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후배들이 어떻게 감히 선배님을 저희 앞에 나타나도록
만들 수가 있었겠어요?"
그녀의 어조는 은근했다. 그리고 은연중에 영제를 추켜주는 뜻을 담고 있
기도 했다.
추켜세우는 데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추켜주는 장본인
이 다름아닌 환우제일재녀인 옥수교가 아닌가?
그녀는 인간을 다루는데 천재였다. 저 흉악무도하던 팔대흉사조차도 지금
은 옥수교의 수족이 되어 견마지로를 다하고 있을 정도이니 그 실력은 인정
할 만한 것이었다.
"아부하지 마라!"
영제는 심통스럽게 일갈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이미 상당히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기분이 풀린 것이다.
"노부는 갈후명의 졸개는 아니었다. 그러나....!"
츠읏....!
영제는 흘깃 옥수교에게 안겨 잠들어 있는 봉봉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한 가닥 연민의 정이 스쳐갔다.
그는 침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노부가 갈후명의 친구는 아니었으되....갈후명을 존경하고 있었다. 노부
는 네년놈들이 주목하고 있는 갈후명의 적은 아니다!"
"그것은 잘 압니다!"
용사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의 얼굴에서 더 이상 장난기를 찾
아볼 수는 없었다. 그가 정색을 하자 그의 기도는 영제를 놀라게 할 정도로
막강해졌다.
영제는 환허신강 안에서 눈썹을 찡그렸다.
(이 놈은 이상한 놈이다. 갑자기 기도가 열 배 강해졌다.)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용사추를 노려보았다.
그는 마인(魔人)이었다. 그러나 그는 신의와 충성을 아는 진정한 전사였
다. 그는 마교의 후인임을 자랑으로 아는 자였고 그것은 저 생사지존 갈후
명과 아주 흡사한 점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영제는 결코 이익을 위해 친구를 팔 인물이 아니었
다.
배신자는 바로 음마 수곤이었다. 그 자는 갈후명의 오른팔이라고 알려진
자였다. 하지만 실상 그 자는 도천극과 한통속인 자이며 번뇌마야 경천구의
괴뢰였다.
용사추가 침중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삼마왕을 모살한 것은 세 명이오!"
이어, 그의 입에서 삼 인의 이름이 거론되었고 하나의 이름이 흘러나올
때마다 영제의 눈빛이 시퍼렇게 물들어갔다.
콰쾅.....!
어느 순간 탁자 하나가 영제의 손 아래에서 박살났다.
"믿지....못하겠다!"
영제가 환허신강 안에서 분노에 치를 떨며 외쳤다.
번뇌마야가 지존마야로 환신해 있음을 들었을 때 영제의 전신에서는 폭풍
같은 살기가 일어났다. 그는 그 옛날 마교를 멸망으로 이끈 번뇌마가에 이
를 가는 마교의 진정한 용자 중의 한 명이었다.
그 번뇌마가가 혈전백마궁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
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
"만에 하나, 네놈의 말이 허위임이 밝혀지면.....!"
영제는 무서운 눈으로 용사추를 노려보았다.
"그때는....내 손으로 네놈을 찢어 죽이겠다!"
그는 상처입은 짐승같이 으르렁거렸다.
용사추는 씨익 웃었다.
"곧 그 증거를 눈으로 보시게 될 것이오, 오좌!"
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일 소제는 강호로 나갈 것이오! 그 때를 노려 음마는 소제를 척살할
작정일 것이오. 비밀을 알고 있는 소제가 눈에 가시일 테니까!"
"좋다, 십좌!"
영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마 수곤이 번뇌마야의 끄나풀이었다면 너를 제거하려고 하겠지!"
스스.....!
영제의 신형이 문득 희뿌옇게 변했다. 그 안에서 영제의 음성이 들려왔
다.
"내일 가부간의 결정이 나겠지! 둘 중 하나는 나 영제의 손에 죽는다. 거
짓말을 했다면 네놈이 죽을 것이고 음마 수곤이 정말 도천극과 짜고 갈후명
삼좌를 모살했다면.....그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스으.....스으!
환허신강이 한층 더 강해지며 마침내 영제의 모습은 완전히 환허신강 속
으로 사라졌다.
"한가지....미리 경고를 해둔다!"
영제의 음성이 허공에서 스산하게 감돌았다.
"절대..... 봉봉과 고독마모 이좌를 울리지 마라. 두 아이 중 누구라도
울린다면....사실여부를 차치하고라도 네놈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파앗!
그 말을 끝으로 영제의 신형이 환상같이 꺼져버렸다. 그의 경공과 은두니
기는 마교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누군가를 죽이려고 노린다면 아무도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이다. 설사 전황이라 해도.
"잊지 마라! 두 아이 중 누구라도 울린다면 그 아이들의 눈물이 곧 네 피
로 변하게 될 것이다!"
멀리서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영제의 잔혹한 음성이 다시 들려왔
다. 그는 이미 십여 마장 밖에 나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그림자의 제왕, 영제 탁리무영이었다.
전한(前漢) 무제(武帝)의 시대에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 지상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 조직의 힘이란 실로 형용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굳이 설명한다면 그 전에도 없었으며 그 후에도 없었고, 또한 영원히 그
에 비견될 조직은 지상에 나타나지 않을.....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었다.
세인들은 그 조직을 마교(魔敎)라 불렀다
__마.....교(魔敎)!
그들은 강함 그 자체였다. 마교는 어떤 극강한 힘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
었다. 하늘의 큰 힘으로도 마교를 지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을 듯이 보
였다.
그런데, 그 마교가 어느날 지상에서 소멸된 것이다. 그것은 실로 이해할
수 없는 천년의 의문이었다.
세인들은 모르고 있었다. 마교의 멸망! 그것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진행
되었는지를.....
본래, 마교는 정통인 천마본가(天魔本家)와 그의 열 개 가신(家臣)들인
마교십가(魔敎十家)로 조직되어 있었다.
마교십가!
그들은 전혀 이질적인 십로(十路)의 마벌(魔閥)들이었다. 마교십가는 개
개가 강인한 개성과 막강한 잠력을 지닌 상고마도(上古魔道)의 주력들이었
다.
천마본가는 그런 마교십가를 수하로 복속시키는데 무려 오백 년을 소모했
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교 제구대 종사 십방천마 철옥기의 대에 이르러 마교는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무림에 등장한 것이다.
흔히 천마(天魔)라고 불리는 고금제일마종(古今第一魔宗) 십방천마(十方
天魔) 철옥기(鐵玉寄)!
그는 무서운 힘으로 일어나 일거에 구주팔황을 제패쟤다. 아무도 그의 적
수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명실상부한 마교의 대종사이며 고금제일인이었다.
무력으로는 설사 신이라 해도 그를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마교의 영세군림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파국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일었다.
마교십가(魔敎十家)! 마교를 이루는 열 개의 가문.... 그곳에서 파국의
싹이 발아된 것이었다.
철혈마가(鐵血魔家).
천년마후성(千年魔后城).
번뇌마가(煩惱魔家).
막북(漠北) 무영종(無影宗).
불사마궁(不死魔宮).
사신마전(四神魔殿).
천수마가(千手魔家)
유령귀종(幽靈鬼宗).
혈전백마궁(血戰百魔宮).
맹호림(猛虎林).
십가(十家)! 이들이 바로 마교의 주력인 마교십가였다.
그 마교십가 중 두 개의 가문은 애초부터 마교를 깨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마교에 진입해 들어간 상태였다. 천마본가는 그것을 몰랐으며 그 때문에 파
멸당한 것이다.
-철혈마가!
-번뇌마가!
바로 그들 양대가문이었다.
철혈마가는 천마본가를 제외하면 환우에서 가장 강한 가문이었다. 그들은
마가(魔家)라고 불리나 실상 정파계열의 전사가문이었다.
철혈(鐵血)의 일족(一族)들, 그들은 마교의 야심이 천하제패에 있음을 팀
지하고 그것을 깨뜨리기 의해 마교에 복속하였던 것이다.
반면, 번뇌마가는 천하패주가 될 야심으로 마교에 동조한 것이다. 그들
번뇌일족은 마교가 천하를 얻은 직후 천마본가의 뒤통수를 때려 쓰러뜨리고
천마본가를 대신하여 천하를 지배하겠다는 원대한 야심이 있었다.
서로 상반된 목적을 지닌 두 가문에 의해 마교가 와해된 것이다.
또한, 당시 무림에는 십방천마(十方天魔)에게 패배당한 뒤 복수를 꿈꾸며
칼을 갈던 네 명의 초인(超人)이 있었다.
__봉황여제(鳳凰女帝).
__용존(龍尊) 냉린(冷鱗).
__북천낭황(北天狼王) 적적회랑(狄狄恢狼).
__화정(花精) 군염(君艶).
이들이 바로 사대천왕, 천외사천이었다. 그들은 오직 천마 철옥기에 못미
칠 뿐 그 외에는 무적이었다.
사대천왕은 아주 신비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겨우 출
신 정도였다.
-봉황여제(鳳凰女帝)!
그녀는 천외의 여인문파 봉황대정천(鳳凰大正天)의 당시 천주였다. 환우
제일의 바로 여전사가 그녀였다.
-용존(龍尊) 냉린(冷鱗)!
그의 출신은 용문(龍門)이라는 신비한 자객집단이라고 알려졌다. 그의 자
객수법은 고금제일이라고 전한다.
-북천낭왕(北天狼王) 적적회랑(狄狄恢狼)!
그는 변황제일인이었다. 한무제(漢武帝)와 수십 년간 치열하게 대립했던
흉노족의 대족장이 그의 신분이었다. 그는 비단 무공이 무서울뿐더러, 휘하
에 백만 마리의 혈랑군단(血狼軍團)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천산(天山)에 낭황부(狼皇府)라는 문파를 세웠었다.
-화정(花精) 군염(君艶)!
그녀는 황실의 고수자였다.
대대로 황실에는 화벌(花閥)이라는 신비한 비밀결사가 존재해 왔다. 화벌
은 왕조의 교체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여인들로만 구성되
며, 그들의 주목적이 황실의 후궁을 보호하는 데 있었다. 황실의 여인들 사
이에 자구책으로 결성된 것이 바로 화벌이었다.
화정 군염은 바로 그 화벌의 당시 벌주였다. 그녀는 마교를 와해시키라는
한무제의 칙명을 받았었다.
철혈마가, 번뇌마가.....그리고 사대천왕!
그들의 추구하는 바는 틀렸으나 외형적인 목표는 일치했다. 그것은 마교
의 멸망이었다.
결국 철혈과..... 번뇌가 천마본가를 쳐서 무너뜨렸으며, 사대천왕은 십
방천마 철옥기를 합격하여 힘께 동귀어진하게 된다.
그것이 마교의 멸망이었으며 아득한 일천 오백 년 전, 전한(前漢) 무제
(武帝) 년 간의 일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마교멸망의 비사!
그것은 한 권 일지(日誌)에 기록되어 있었다. 한 명 절대자가 쓴 천년의
기록. 그 절대자의 이름은 전황 북리황이었으며 그 일지의 이름이 바로 철
혈일지였던 것이다.
철혈..... 일지(鐵血日誌)!
-전황(戰皇) 북리황(北里皇)!
그는 바로 저 마교십가 중 가장 강력한 철혈마가의 당대 종사였다.
철혈마가, 그들 일족은 일천 오백 년 전에 마교를 멸절시키는데 성공한
듯이 보였다.
히지만.....싸움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에 불과했
다.
번뇌마가, 그들이 바로 철혈마가의 새로운 적(敵)이었다.
번뇌마가는 천마본가가 패멸한 위에 자신들의 제국을 세우려 하였던 것이
다.
그것은 정녕 길고도 힘겨운 싸움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았으나, 실상
마교 멸망 이후의 무림사는 철혈, 번뇌 양가의 투쟁의 기록이었다.
천하가 태평할 때는 철혈세가 득세 때이며, 난세로 천하가 어지러웠을 때
는 바로 번뇌마가의 세력이 융성한 때였다.
그렇게..... 일천 수백 년이 지나갔다. 철혈, 번뇌의 양가는 끊임없이 강
해져서 당대에 이르러서는 그 옛날 천마본가의 번성기만큼 강해졌다.
특히, 번뇌마가의 강성함은 전율스러울 정도였다. 천여 년을 고심하여,
그들은 같은 마교십가에 드는 강파 중 다섯가문을 수하에 복속시킨 상태였
다.
히지만 번뇌마가는 여전히 철혈세가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당대
번뇌마가 가주 번뇌마야 경천구는 한 가지 승부수를 계획하고 되었다.
사십여 년 전이었다.
경천구는 한 명의 가공할 정도의 자질을 지닌 한 명 소년을 발견하게 되
었다. 그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 소년을 거두어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경천구는 그 소년을 철혈세가를 깨칠 병기로 기를 작정이었다.
엄청난 양의 영약이 투입되었으며..... 버뇌마가의 무공은 물론 마교오가
의 절기들이 그 소년의 한 몸에 쏟아 부어졌다.
소년은 무섭게 자랐다. 그는 흡사 마른 솜같이 경천구가 주는 모든 것을
무서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났다. 소년은 이미 환우제일인이 되어 있었으며, 그때
경천구를 까무라치게 만들만한 일이 비로서 밝혀졌다.
그가 기른 공포의 승부사!
그의 이름은 북리황(北里皇)이며 저 증오스러운 철혈북리세가(鐵血北里世
家)의 다음 대 가주가 바로 그 소년이었다는 것이다.
번뇌마야 경천구! 그는 너무도 어이없고, 너무나 참담하게 좌절당한 것이
다. 북리황이라고 불리는 십 삼 세의 어린 소년에게.....
"이상이..... 철혈일지의 주내용이에요!"
옥수교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는 촉촉한 눈으로 용사추를 바라보았다. 아직 폭풍같았던 정사의 여
운이 그녀의 온화하고 기품있는 옥용 위로 떠돌고 있었다.
옥수교의 품에는 봉봉이 안겨 있었다.
옥수교와 봉봉.....두 여인은 한 남자를 섬기는 시앗같이 보이지 않고 모
녀지간으로 보였다.
"이상의 내용 외에는 경천구와 북리황의 수십 차례에 걸친 암투의 기록이
에요. 그것은 하나하나도 천하대세를 뒤덮을 만한 중요한 기밀들이에요."
옥수교가 말을 이었다. 그녀는 이미 철혈일지를 완전히 분석한 후였다.
철혈일지 안에는 공개되어서는 아니되는 수많은 기밀들이 기록되어 있었
다.
북리황과 경천구는 피차지간에 숫자 미상의 간세들을 상대방에게 접근시
켜 놓고 있었다.
철혈일지에는 그 상호간의 간세들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기록이 되어 있
었다. 그런 이유로 제문파들은 철혈일지의 입수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옥수교..... 그녀는 철혈일지가 재앙을 부를 수도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낭야왕부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간세들.....그 중 가장 중요한 간세들은 잠룡(潛龍)과 봉황(鳳凰)이라는
암호명의 간세들이었다.
그들은 경천구가 정파쪽에 침투시킨 간세들이었다. 북리황은 그들이 중요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상하게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었다.
"특기할 만한 일이 한 가지 더 있어요!"
옥수교는 잠꼬대를 하며 칭얼대는 봉봉을 다독거리며 말했다.
"그것은..... 전황이 세상사람들이 모르게 결혼하여 아내가 있다는 사실
이에요!"
".....!"
용사추는 침음했다. 순간적으로 그는은황각에서 본 두 남녀의 그림을 뇌
리에 떠올렸다.
전황과 함께 서서 온화하게 웃고 있는 미소부..... 전황보다도 그녀의 얼
굴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웬일일까?
전황의 아내, 그 자리는 전모(戰母)라 불리는 자리였다. 그리고, 삼십 년
전부터 강호의 뭇 미인가녀들이 쌍심지를 켜고 얻으려는 영광의 자리였다.
그런데, 그 전모라는 자리가 이미 어느 여인에겐가 주어져 버린 것이다.
"그녀는..... 누구입니까?"
용사추가 침중한 어조로 물었다. 옥수교는 웬지 조심조심 용사추의 안색
을 살피며 대답했다.
"그녀의 이름은..... 단봉(丹鳳) 조혜린, 봉황대정천(鳳凰大正天)의 촉망
받던 여종사가 바로 그녀예요!"
"단..... 봉 조혜린!"
용사추는 신음성을 발했다.
__단봉(丹鳳) 조혜린!
저 사대천왕 중 봉황여제(鳳凰女帝)의 문파인 봉황대정천 사상 최고의 재
녀.
그녀는 적사천인애에 두고 온 혈봉황의 대사저이기도 한 절세기녀였다.
그녀가 바로 전황 북리황의 아내 전모(戰母)였던 것이다.
용사추가 은황각에서 본 족자 속의 귀부인은 다름닌 단봉 조혜린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이십오 년 전에 부부가 되었어요. 그것은 아주 은밀히 이루어
진 혼인인지라 단봉의 사부인 봉황신모(鳳凰神母)만이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요."
".......!"
옥수교는 단봉 조혜린의 이름을 떠올릴 때면 경외의 표정을 지었다. 단봉
은 그녀보다 십여 살 연상이었으며 옥수교가 가장 존경하는 여인이기도 했
다.
"그 분은 전황에게 어울리는 단 한 명의 여인이었지요. 그런데....그녀는
이십여 년 전에 신비하게 실종되었어요."
"실종?"
츠읏....!
용사추의 눈에 신광이 번득였다. 단봉 조혜린은 오래 전에 실종된 상태였
다.
(음! 결국 교봉(嬌鳳) 옥섬여가 그녀에게 손을 쓴 모양이군.)
용사추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이미 그의 여인이 된 혈봉황(血鳳凰)
의 우려는 과연 적중된 상태였다.
교봉, 아니 봉황지존(鳳凰至尊) 옥섬여는 자신의 아버지인 번뇌마야의 사
주를 받아 사부인 봉황신모와 대사저 단봉 조혜린을 제거고 봉황대정천을
장악한 후였다.
봉황대정천은 더 이상 대정(大正)의 수호세력이 아니었다.
이십여 년 동안, 봉황대정천은 사음한 악녀(惡女)들의 매음굴로 변해 있
었다. 저 마교를 쓰러뜨렸던 봉황여제가 그 사실을 알면 지하에서도 통곡할
것이다.
"혈전백마궁을 장악하기 위해서 사추가 손을 써 주어야할 인물은 모두 셋
이에요!"
옥수교가 봉봉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개세혈황종 도천극을 쓰러뜨리는 일은 봉봉(鳳鳳)이 직접 하게 될 것이
다. 용사추는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것은 꼭 봉봉의 손에서 해결되어야만 한
다고 믿었다.
그 외에 나머지 삼대마왕을 용사추가 맡아야 하는 것이다.
고독마모,
음마 수곤,
영제 탁리무영!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적들이었다. 한 명을 상대하는데
도 용사추는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특히, 고독마모의 실력은 완전히 미지수였다. 어쩌면 그녀는 도천극보다
더 무서운 실질적인 백마제일인 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용사추는 그들과의 승부를 피할 수가 없었다. 혈전백마궁은 번뇌
마야 경천구의 전초세력이다. 지존마맹의 궁주가 바로 혈전백마궁이며 경천
구의 눈과 귀가 또한 혈전백마궁이었다.
용사추는 경천구와의 최후 승부를 위해 혈전백마궁을 경천구의 수하에서
이탈시켜야만 할 필요가 있었다.
__마야(痲爺)는 자신의 운명의 적이 전황 북리황인줄 알고 있으나 실상
그의 운명의 적은 바로 너다.
생사지존 갈후명은 이렇게 말했었다. 그는 번뇌마야 경천구를 쓰러뜨리는
것이 전황이 아니고 용사추라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번뇌마야가 곧 지존마야라는 비밀을 알았기 때문이다. 앞날
을 꿰뚫어 본 점에서 보면, 생사지존 갈후명은 진정한 종사의 재목이었던
인물이었다.
"고독마모와는 싸우면 안 돼요!"
문득 옥수교가 정색하며 말했다.
"그녀는 제삼세력의 영도자예요. 그녀와 싸우면 백마중 삼할을 차지하는
그들 제삼세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흠.... 회유하란 말입니까?"
용사추가 신광을 번득이며 말했다. 옥수교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떤 수단을 쓰든 그녀가 마음에서 사추를 돕도록 해야해요."
그녀는 야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신첩보다 오히려 젊으니까.....사추의 첩으로 삼을 수도 있을거
예요."
용사추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의 얼굴은 금방 벌겋게 물들었다.
옥수교는 용사추에게 고독마모의 마음뿐 아니라 그 육체마저 정복해 버리
도록 암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고독마모를 제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
다.
옥수교는 대범한 여인이었다.
나이도 물론 모자지간이 되어도 부족하지 않기도 하지만 옥수교에게 있어
용사추는 남편이고 주인이기 전에 자식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그녀의 용사
추에 대한 사랑은 모성애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 그녀는 질투를 모르며 용사추를 위해서라면 어떤 천인공노할 악행
이라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다.
"영제와 음마는 제거해야 해요."
옥수교는 문득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둘 다 말입니까?"
용사추는 침중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와 함께 그는 흘깃 천정 쪽으로 시
선을 던졌다. 제거해야 한다는 옥수교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한 가닥 격앙
된 숨결이 그곳에서 느껴진 것이었다.
(드디어.....꼬리를 드러내셨군.)
용사추는 내심 득의의 웃음을 흘렸다.
꼬리라! 그는 얼마전부터 아주 은밀한 하나의 인영이 낭왕각 내부로 스며
들어온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옥수교 역시 무엇인가 깨달은 것일까? 그녀의 입가로도 한줄기 야릇한 미
소가 스쳤다.
"그들 두 명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혼미한 상태예요. 그런 화근을
남겨 두느니 차라리 둘 다 제거해 버리는 것이 속편해요."
그녀의 말이 끝난 직후였다.
"누구를 제거한다고? 계집....!"
한 줄기 노기 서린 음침한 일갈이 천정쪽에서 들려왔다.
스스슥!
동시에 천정으로부터 한 줄기 인영이 유령같이 내려섰다.
스으.....스으!
전신이 기이한 안개같은 강기의 노을에 덮인 괴인. 그는 바로 백마의 제
오마왕 영제 탁리무영이었다. 그는 얼마전부터 천정에 은신하여 있었다. 그
러다가 옥수교의 말에 노기를 참지 못하고 몸을 드러낸 것이었다.
"핫하! 오좌, 어서오시오!"
"어서 오세요. 오각주!"
영제가 나타나자 용사추와 옥수교는 거의 동시에 말하며 흔쾌하게 웃었
다.
"........!"
영제는 일순 흠칫했다. 그의 눈빛이 환허신강 속에서 아차하는 빛을 띄웠
다. 그는 한눈에 자신이 이 두 젊고 교활한 남녀의 격장지계에 속았음을 깨
달은 것이었다.
그의 입술이 운무속에서 실룩거렸다.
"빌어먹을.....어린 놈들! 격장지계였느냐?"
그는 눈을 부라리며 노성을 내질렀다. 옥수교는 그런 영제를 향해 살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후배들이 어떻게 감히 선배님을 저희 앞에 나타나도록
만들 수가 있었겠어요?"
그녀의 어조는 은근했다. 그리고 은연중에 영제를 추켜주는 뜻을 담고 있
기도 했다.
추켜세우는 데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추켜주는 장본인
이 다름아닌 환우제일재녀인 옥수교가 아닌가?
그녀는 인간을 다루는데 천재였다. 저 흉악무도하던 팔대흉사조차도 지금
은 옥수교의 수족이 되어 견마지로를 다하고 있을 정도이니 그 실력은 인정
할 만한 것이었다.
"아부하지 마라!"
영제는 심통스럽게 일갈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이미 상당히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기분이 풀린 것이다.
"노부는 갈후명의 졸개는 아니었다. 그러나....!"
츠읏....!
영제는 흘깃 옥수교에게 안겨 잠들어 있는 봉봉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한 가닥 연민의 정이 스쳐갔다.
그는 침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노부가 갈후명의 친구는 아니었으되....갈후명을 존경하고 있었다. 노부
는 네년놈들이 주목하고 있는 갈후명의 적은 아니다!"
"그것은 잘 압니다!"
용사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의 얼굴에서 더 이상 장난기를 찾
아볼 수는 없었다. 그가 정색을 하자 그의 기도는 영제를 놀라게 할 정도로
막강해졌다.
영제는 환허신강 안에서 눈썹을 찡그렸다.
(이 놈은 이상한 놈이다. 갑자기 기도가 열 배 강해졌다.)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용사추를 노려보았다.
그는 마인(魔人)이었다. 그러나 그는 신의와 충성을 아는 진정한 전사였
다. 그는 마교의 후인임을 자랑으로 아는 자였고 그것은 저 생사지존 갈후
명과 아주 흡사한 점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영제는 결코 이익을 위해 친구를 팔 인물이 아니었
다.
배신자는 바로 음마 수곤이었다. 그 자는 갈후명의 오른팔이라고 알려진
자였다. 하지만 실상 그 자는 도천극과 한통속인 자이며 번뇌마야 경천구의
괴뢰였다.
용사추가 침중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삼마왕을 모살한 것은 세 명이오!"
이어, 그의 입에서 삼 인의 이름이 거론되었고 하나의 이름이 흘러나올
때마다 영제의 눈빛이 시퍼렇게 물들어갔다.
콰쾅.....!
어느 순간 탁자 하나가 영제의 손 아래에서 박살났다.
"믿지....못하겠다!"
영제가 환허신강 안에서 분노에 치를 떨며 외쳤다.
번뇌마야가 지존마야로 환신해 있음을 들었을 때 영제의 전신에서는 폭풍
같은 살기가 일어났다. 그는 그 옛날 마교를 멸망으로 이끈 번뇌마가에 이
를 가는 마교의 진정한 용자 중의 한 명이었다.
그 번뇌마가가 혈전백마궁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
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
"만에 하나, 네놈의 말이 허위임이 밝혀지면.....!"
영제는 무서운 눈으로 용사추를 노려보았다.
"그때는....내 손으로 네놈을 찢어 죽이겠다!"
그는 상처입은 짐승같이 으르렁거렸다.
용사추는 씨익 웃었다.
"곧 그 증거를 눈으로 보시게 될 것이오, 오좌!"
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일 소제는 강호로 나갈 것이오! 그 때를 노려 음마는 소제를 척살할
작정일 것이오. 비밀을 알고 있는 소제가 눈에 가시일 테니까!"
"좋다, 십좌!"
영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마 수곤이 번뇌마야의 끄나풀이었다면 너를 제거하려고 하겠지!"
스스.....!
영제의 신형이 문득 희뿌옇게 변했다. 그 안에서 영제의 음성이 들려왔
다.
"내일 가부간의 결정이 나겠지! 둘 중 하나는 나 영제의 손에 죽는다. 거
짓말을 했다면 네놈이 죽을 것이고 음마 수곤이 정말 도천극과 짜고 갈후명
삼좌를 모살했다면.....그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스으.....스으!
환허신강이 한층 더 강해지며 마침내 영제의 모습은 완전히 환허신강 속
으로 사라졌다.
"한가지....미리 경고를 해둔다!"
영제의 음성이 허공에서 스산하게 감돌았다.
"절대..... 봉봉과 고독마모 이좌를 울리지 마라. 두 아이 중 누구라도
울린다면....사실여부를 차치하고라도 네놈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파앗!
그 말을 끝으로 영제의 신형이 환상같이 꺼져버렸다. 그의 경공과 은두니
기는 마교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누군가를 죽이려고 노린다면 아무도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이다. 설사 전황이라 해도.
"잊지 마라! 두 아이 중 누구라도 울린다면 그 아이들의 눈물이 곧 네 피
로 변하게 될 것이다!"
멀리서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영제의 잔혹한 음성이 다시 들려왔
다. 그는 이미 십여 마장 밖에 나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그림자의 제왕, 영제 탁리무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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