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면신협(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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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강간(强姦)당한(?) 마룡(魔龍)
"......!"
용사추는 휘청이는 몸을 바로 세우며 나타난 적포청년을 바라보았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으며 단정한 용모에 늠연한 기도를 지닌
청년이었다.
그는 윤기도는 장발을 허리까지 드리웠으며 한 자루 날(刃)의 폭이 넓은
철검을 비껴들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압도적인 위엄과 당당함을 풍기
고 있었다.
(강...... 자다!)
용사추는 적포청년을 대하는 순간 한 눈에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
아보았다. 그는 내심 찬 바람을 들이키며 경계의 태세를 갖추었다. 적포청
년이 만만치 않은 강적임을 알아 보았던 것이다.
일견하기에 적포청년에게서는 전황 북리황과 흡사한 분위가가 느껴졌다.
주위를 압도하는 당당함과 막강한 패기(覇氣), 그리고 태산이 움직이는
듯한 용행호보(龍行虎步)의 장중한 걸음걸이는 흡사 북리황과 마주선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북리황의 그것과 흡사했다.
다만 북리황과 비교하여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북리황이 지닌 중후한
연륜이 그 청년에게는 결여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 자는 ...... 혹시......!)
용사추의 눈빛이 더욱 더 강렬해졌다. 그의 뇌리로 환우일천군영보에서
읽은 한 명 청년고수의 이름이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철혈잠룡(鐵血潛龍)...... 도세욱?"
용사추는 침참한 눈빛으로 적포청년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역시...... 혈전백마궁의 백인마종의 일인다운 안목이군!"
적포청년이 용사추의 삼 장 앞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심혼이
울릴 듯한 묵직한 음성이었다.
(역시...... 그 자였군.......!)
용사추의 눈길이 미미하게 떨렸다.
___철혈잠룡(鐵血潛龍) 도세욱!
그는 바로 전황 북리황의 열 명 제자들인 십대전인 중 첫째 제자가 되는
인물이었다. 그의 나이는 당년 이십 팔 세로 정파의 명문인 남극검보(南極
劍堡) 출신이었다. 그는 제 이대 전황으로 지목되고 있는 기린아였다.
그의 특기는 검법으로 이미 십대전신 중 만검조종에 못지 않는 검력을 지
녔다고 공공연히 소문날 정도로 막강한 검사였다.
옥수교는 그를 환우일천군영보에 서열이위의 품계인 극품(極品)으로 분류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용사추 앞에 나타난 것이다.
파파팟......!
"......!"
"......!"
정(正)과 사(邪)를 대표하는 두 젊은 기재의 시선이 허공에서 한데 뒤엉
켰다. 그들의 시선이 맞부딪히며 동시에 미미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낭야왕 주세업......! 소문 보다 열 배 더 뛰어나군.)
도세욱의 검미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그것을 보며 용사추의 시선이 번뜩 한광을 토했다.
(시간을 끌면...... 불리하다. 이 자와 맞서다가는 영영 십만대산을 벗어
나지 못한다!)
용사추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좌수가 슬쩍 움직였고 그의 좌측 소매에서 한 줄기 붉
은 섬광(閃光)이 폭사되어 도세욱에게 날아갔다.
쩌_____정!
그것은 바로 자모낭아권이었다.
"엇!"
도세욱은 용사추의 불의의 일격에 흠칫하며 다급히 철검을 내쳐 자모낭아
권을 막아갔다. 그 바람에 도세욱의 좌측으로 순간적인 허점이 드러났다.
"용서하게...... 철혈잠룡!"
콰_____쾅!
용사추의 입에서 침중한 일갈이 터지며 그의 우수가 독사같이 도세욱의
좌측 옆구리로 파고 들었다.
"크윽!"
쿵...... 쿵!
도세욱은 괴로운 신음을 흘리며 십여 보 옆으로 밀려났다.
그는 전황 북리황의 수하에서 정통무예를 익힌 인물이다. 정면대결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도세욱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임기응변과 잔재주에
있어서 만큼은 십대악인의 진전을 이은 용사추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이
다.
"오늘은...... 바빠서 이만 실례해야겠네. 다음에 정식으로 겨루어 보세
나!"
스슥!
용사추는 신형을 휘청이는 도세욱을 향해 짤막하게 말하며 곧장 그의 머
리를 뛰어넘어 맞은편의 단애 위로 날아갔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돌연 한소리 창노한 폭갈이 용사추의 뒤쪽에서 터져나왔다.
"그냥 가지는 못한다! 지존마맹의 망나니......!"
용사추는 흠칫 놀랐다.
(이 목소리는......!)
그는 안색이 홱 변하며 급히 모든 동작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그의 눈빛은 온통 놀라움으로 가득찼다.
고오오......!
백 장 저편에 한 명의 마의 노인이 시퍼런 도기(刀氣)에 뒤덮여 떠오르는
것이 용사추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보잘것 없는 행색의 마의노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일으키는 도기만
큼은 결코 보잘것 없는 것이 아니었다.
"도치...... 막여!"
용사추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성이 터졌다.
___도치(刀痴) 막여(莫如)!
그는 저 정파최고의 기인들인 십대전신 중 최강자로 꼽히는 도의 달인이
었다.
용사추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도치 막여가 이럴 때 갑자기 나타날 줄
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미처 놀라움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가랏! 어기비도천강참(馭氣飛刀天 斬)!"
콰____ 아작!
도치 막여의 입에서 나직한 일성이 터지며 그의 애도(愛刀)가 시퍼런 도
기(刀氣)에 뒤덮인 채 용사추의 배심으로 폭사되어 왔다.
빨랐다. 그것은 가히 눈부신 속도였다.
전설적인 도가(刀家)의 최후비예인 이기어도술(以氣馭刀術)이 도치 막여
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었다.
용사추는 위기를 느꼈다.
(위험하다!)
그의 안색이 수라철면 안에서 희게 질렸다. 그는 허공에서 다급히 신형을
휙! 떠올렸다.
그러나 도치의 이기어도술은 눈부신 속도로 뻗어와 내상을 입은 용사추가
피하기에는 너무나 빨랐다.
퍼___억!
"흐.....윽!"
용사추는 전력을 다해 피했으나 등쪽이 불에 덴 듯한 화끈한 충격을 느끼
며 아득히 정신을 잃었다.
놀랍게도 백 장 밖에서 도치 막여가 날린 보도는 용사추의 등판을 정확히
강타하며 지나간 것이었다.
후드득......!
용사추의 신형은 허공에서 한 차례 휘청이다가 그대로 천야만야한 단애
아래로 추락해 내려갔다. 그것은 실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용사추의
모습은 단애 아래로 까마득히 사라져 버리고 흔적 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으음.....!"
그 직후 나직한 신음과 함께 도치 막여가 용사추가 섰던 단애 위로 표표
히 내려섰다.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단애를 내려다 보았다.
고오오.....!
단애는 얼마나 깊은지 도치 같은 초절정고수의 안력으로도 그 끝을 볼 수
없었다. 더구나 그 아래는 마치 지옥의 유부같이 온통 짙은 운무가 뒤덮여
있어 용사추의 모습을 삼킨 흔적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도치 막여는 아쉬운 눈빛으로 운무 자욱한 단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너무...... 성급했군! 생포했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끌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때, 망연하게 서 있는 도치의 옆으로 철혈잠룡 도세욱이 침중한 표정으
로 다가섰다. 그는 입가에 흐르는 선혈을 닦으며 묵묵히 단애 아래를 내려
다 보았다.
도치 막여는 문득 나직한 탄식을 발했다.
"적사천인애(赤獅天刃崖)에 떨어졌으니...... 철혈일지도 포기해야 하겠
군!"
그는 혀를 차며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체념
한 듯 발길을 돌렸다.
".......!"
도세욱도 침중한 시선으로 단애 아래를 내려 보다가 천천히 도치 막여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자 단애 주위는 다시 적막이 찾아들었다. 한 생명이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단애 위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 괴괴한 정적만이 감돌
고 있었다.
적사천인애(赤獅千刃崖).....
악마초인 용사추를 삼킨 단애의 이름은 적사천인애였다.
적사천인애의 바닥.
스으...... 스으......!
그곳은 온통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음습한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또한
적사천인애의 곡저(谷底)는 놀랍게도 수많은 등나무 줄기로 뒤덮여 있었다.
흡사 거대한 뱀같이 천야만야한 석벽을 휘감아 뒤덮은 아름드리의 등줄기들
은 용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울부짖움과도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___천년음등(天年陰藤)!
이것이 그 등나무 줄기의 이름이었다.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음기(陰氣)를 흡수하며 자라는 기이한 등목들.
그것들은 지극히 질기고 견고하여 어떤 신병이기로도 수월히 잘라낼 수 없
는 것들이었다. 그 천년음등들이 적사천인애의 곡저를 온통 뒤덮고 있는 것
이다.
적사천인애의 동쪽 곡저.
천년음등이 헝클어진 사이에서 문득 괴로운 신음소리가 들렸다.
"으......!"
뒤엉킨 천년음등의 덤불 속에 전신이 피에 흠씬 젖은 한 혈인(血人)이 누
워 신음하고 있었다. 그의 주위는 온통 선혈로 물들어 있었다.
그의 입가로는 핏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핏물이 배인 입술 새로 괴로운 신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지만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
었다. 혈인은 다름아닌 용사추였다.
그는 수백 장 높이에서 떨어졌건만 놀랍게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
다. 그물같이 뒤엉킨 천년등목들이 떨어진 용사추를 받아내어 분신쇄골을
면하게 한 것이었다. 이는 실로 천우신조라 아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살아 숨쉰다고는 하나 용사추는 지금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
다. 그의 상세는 아주 막중했다.
전황 북리황의 가공스런 혈수 공력에다가 설상가상으로 도치 막여가 이기
어도술로 떨친 파멸도강에 격중당한 그의 내부는 엉망진창으로 끊기고 바스
러진 상태였다.
용사추는 지금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사라보갑이 어느 정도 방호해 주기는 했으나 북리황이나 도치 막여 정도
의 절정고수의 공세 앞에서는 사라보갑도 그다지 큰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
는 것이다. 그나마 용사추의 숨이 한 가닥 붙어 있는 것은 그의 막강한 천
년내공 때문이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었지만 그를 구원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
었다.
사람의 그림자 조차 찾을 수 없는 깊고 음산한 단애 아래. 깊고 깊은 곡
저 사이로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만이 그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
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곡저에는 짙은 안개가 무겁게 깔려 있을 뿐 스산한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
다. 어디선가 유령이라도 불쑥 튀어나올 듯한 괴괴한 정적이었다.
그런데 그 정적을 깨뜨리는 한 소리 괴성이 들려왔다. 문득 어디선가 나
직한 맹수의 으르렁거림이 들려온 것이다.
크르르릉......!
그다지 크지는 않았으나 흡사 대지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육중한 포효성이
었다. 이어 자욱한 안개 속에 한 쌍의 수레바퀴 같은 광휘가 떠올랐다.
그것은 맹수의 눈에서 토해지는 안광이었다.
콰드드득...... 우드드득......!
천년음등의 아름드리 등줄기들이 잇달아 갈대같이 쓰러졌다.
스으...... 스으......!
그 사이로 한 마리 거대한 맹수의 모습이 나타 다.
천년음등을 갈대같이 쓰러뜨리며 나타난 괴수는 놀랍게도 한 마리 거대한
사자였다. 몸 길이만 해도 무려 삼 장, 말이 사자지 그야말로 몸집은 한 마
리 거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거대한 몸집의 사자는 전신이 타는 듯이 붉은 핏빛의
갈기로 뒤덮여 있었다.
붉은 갈기의 사자. 그놈은 참으로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크르르릉.......!
적사(赤獅)는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리며 쓰러져 있는 용사추에게로 다가섰
다.
하지만 용사추는 인사불성이 되어 사자가 다가서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반
듯이 누워있었다. 지금 그는 내공이 흩어져 주세업의 모습에서 본래의 모습
으로 돌아와 있었다.
번쩍!
문득, 용사추를 내려다보던 적사의 화등잔 같은 눈에 한 줄기 기광이 스
쳤다.
크르르릉......!
거대한 적사는 무엇인가 알아내려는 듯이 용사추의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
보았다.그러더니 점차 이 괴상한 적사의 눈에 어떤 희열의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적사의 눈빛은 오래 전부터 용사추를 알아온 듯이 점점 부
드러운 빛으로 변해갔다.
크르르......!
적사는 커다란 입을 벌려 조심스럽게 용사추의 몸을 물었다. 그놈의 입은
흡사 동굴과도 같아 용사추의 몸은 머리와 다리, 양끝만 남고 완전히 적사
의 입에 물려졌다.
이어 적사는 조심스레 몸을 돌려 자신이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내 적사의 거구는 자욱산 안개의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일다경 후.
크르르.......!
적사의 거구는 적사천인애의 서쪽 끝에 이르러 있었다.
적사천인애의 막다른 곳. 그곳에는 천년음능으로 귀덮인 하나의 동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등나무 줄기가 마치 주렴같이 드리워진 동굴.
그 동굴이 풍기는 분위기는 실로 기이했다. 은밀하면서도 무엇인가 비밀
스러운 장막에 가려진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것은 동굴 자체가 등나무 줄기로 가려져 있어 언뜻 보아 쉽게 발견할 수 없
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스____윽!
용사추를 문 적사는 미끄러지듯이 그 석동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적사가
막 석동을 지나는 순간이었다.
"적제(赤帝)! 무엇하러 또 왔느냐?"
갑자기 한 줄기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동굴 깊은 곳에서 터져나왔다. 그
목소리는 남녀를 구분하기 힘든 괴악스런 음성이었다.
새도 날아들지 못하는 천험의 절지 적사천인애.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정녕 놀라운 일이었다.
"적제(赤帝)! 냉큼 물러가지 못하겠는냐? 네놈이 자주오면 만년용형혈지
(萬年龍形血芝)가 놀란단 말이다."
다시 동굴 속에서 예의 괴악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야수같이 사납고 거
친 음성.
하지만 어찌 들으면 그것은 여인의 음성인 듯도 싶었다.
크르르......!
적사는 동굴 속의 인물이 경고했음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놈은 더욱 동굴 깊숙히로 들어갔다.
"빌어먹을 사자새끼! 본녀가 병신이 되었다고 이제 네놈마저 나 혈봉황을
업신여기는 것이냐?"
마침내 괴음성의 주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듯 했다. 대뜸 동굴 속에
서 거친 욕설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날카로운 신경질이 섞인 여인의
음성이 확실했다.
적사는 계속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안으로 들어 갈수록 넓어
졌다. 동굴 입구에서는 그 높이가 사 장 정도였는데 백여 장을 들어가자 동
굴의 높이가 이십여장으로 넓어졌다.
그런데 거대한 동굴의 사면 벽은 온통 수 많은 뿌리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 뿌리들은 바로 천년음등의 뿌리들이었다. 처음에는 드문드문 보이던 그
뿌리들은 나중에는 동굴의 석벽 전체를 뒤덮을 정도가 되었다.
기이하고도 신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윽고 적사는 동굴의 막다른 곳까지 다가섰다. 그곳은 높이가 사십여 장
이나 되는 넓은 지하광장이었는데 예외 없이 그곳도 꾸불꾸불한 천년음등의
뿌리들로 뒤덮여 있었다.
석벽과 천정, 그리고 바닥......어디에서 건 천년음등의 거대한 뿌리들이
뒤엉켜 삐져나와 있었다. 그 광경은 어찌보면 괴기롭기 까지 했다.
광장의 중앙에는 하나의 연못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원 십여 장 넓이의
연못이었는데 기이하게도 그 연못의 물은 피를 뿌려놓은 듯한 붉은 빛이었
다.
피빛의 연못(血池).
그것은 웬지 섬뜩하고 기분 나쁜 전율을 느끼게 했다.
그 피빛 연못에는 유달리 거대한 천년음등의 뿌리들이 십여 개 잠겨 있었
다. 혈지에 잠겨 있는 몇 아름의 거대한 뿌리들.
그 모습은 흡사 십여 마리의 용(龍)의 뒤엉켜 연못으로 들어가고 있는 듯
한 형상을 연상케 했다.
크르르릉......!
붉은 갈기의 사자는 용사추를 입에 물고 그 혈지로 다가섰다.
이때, 예의 거친 여인의 음성이 냉랭하게 들려왔다.
"바득! 못된 사자새끼! 감히 내 말을 어기다니...... 아무리 네놈이 대정
봉황천(大正鳳凰天)의 수호영물이라도 오늘만큼은 두들겨 패주지 낳고는 못
견디겠다!"
그녀의 음성은 지하광장을 무섭게 뒤흔들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피빛 연못속에 있었다.
혈지 속에 한 명의 괴인, 아니 목소리로 미루어 여인인 듯한 괴녀(怪女)
가 얼굴만 밖으로 내놓은 채 무서운 눈으로 다가서는 적사를 노려보고 있었
다.
츠.....읏!
얼굴만 내놓은 채 혈지속에 잠겨있는 괴녀는 그야말로 끔찍한 몰골을 지
니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괴녀의 피부는 거북등같이 쩍쩍 갈
라져 있었고 그나마 암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나무 껍질이 갈라진 듯한 피부, 게다가 괴녀의 머리에는 한 올의 모발도
나 있지 않았다. 실로 꿈에 볼까 두려운 기괴한 형상의 괴녀였다.
크르르릉......!
붉은 갈기의 사자는 이윽고 혈지 앞에 이르렀다.
"바득...... 놈! 각오......"
욕설을 퍼부으려던 괴녀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제서야 용사추가 사
자의 입에 물려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괴녀의 눈빛이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적사의 입에 물려있는 용사추에 이르
자 마치 화산이 터지 듯 무서운 빛을 쏟아냈다.
그 눈빛은 기이하게도 섬뜩한 핏빛이었다.
"그...... 시체는 또 무엇이냐?"
괴녀는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크르르......!
사자는 그런 괴녀 앞에 조심스럽게 용사추를 내려 놓았다. 그러더니 그놈
은 무언가 얘기하려는 듯 괴녀에게 다가서며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것이 아
닌가?
"무어라고? 저 만신창이된 시체를 살려 달라고?"
사자의 뜻을 알아차린 것일까? 괴녀가 어이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사자
와 용사추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포효성을 발했다. 괴녀를 바라보는 사자의
눈빛은 놀랍게도 간절한 빛마저 담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한낱 미물인 사자가 사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
고 그 눈빛으로 간절한 뜻을 호소하고 있는 모습은 기이하고도 신기했다.
괴녀는 사자의 요구에 어이없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보기 흉한 안면을 씰
룩거리며 코웃음을 쳤다.
"뭐? 만년용형혈지를 저 사내 자식에게 양보하라고?"
그녀는 기가 막히다는 듯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괴녀는 본능적으로 흘깃
옆을 바라보았다.
혈지에 잠겨 있는 괴녀의 옆에는 기이한 물체가 하나 떠있었다.
길이는 한 자 정도 되어 보였는데 그것은 투명한 막(幕)에 덮인 채 혈지
의 수면에 둥실 떠 있었다. 또한 기이하게도 그 투명한 막 안에는 한 마리
용(龍)의 형상을 한 것이 들어 있었다.
홍옥으로 깍은 듯 붉은 빛의 용(血龍)!
___만년용형혈지(萬年龍形血芝).
이는 만 년 동안 땅의 음기와 천년음등의 정수를 흡수하며 자란 영지(靈
芝)였다. 이 용형혈지가 만 년을 묶으면 완전한 용(龍)의 형태를 이루게 된
다.
혈지에 떠있는 그것은 이미 완전히 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쌍의 제법 날카로워 보이는 뿔도 그렇거니와 홍옥을 박아놓은 듯 반짝
이는 눈하며 거기에다 입가에는 한쌍의 수염까지 의젓하게 달려 있었다.
그것은 용형혈지가 이미 만 년 이상 묶은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만일 무공을 익힌 자가 그것을 복용하게 되면 그대로 신화경에 들어 무적
지체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희세의 무가지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놈! 용형혈지가 있어야 본녀의 몸에 잠복해 있는 무형마독(無
形魔毒)을 해독할 수 있음을 모르......"
잔뜩 분노하여 버럭 노성을 지르던 괴녀의 입이 갑자기 딱 벌어졌다. 그
녀는 만면에 경이의 빛을 떠올리며 용사추를 노려보았다.
용사추를 노려보는 괴녀의 핏빛 눈에 격렬한 파문이 스쳐 지나갔다.
"천...... 년공력을 ...... 지닌 자라니......"
그녀는 믿을 수 없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입에서 경악성이 새어나온 것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놀랐는지 짐
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괴녀는 이십 년 이전에 이미 환우제일로 꼽히던 여전사였다. 따라서
그의 안목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한눈에 용사추의 몸에 잠재된 천년내공을
알아본 것만 봐도 그랬다.
"제...... 대로 용해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천년내공을 지닌 자다."
혼자말인 듯 중얼거리는 괴녀의 몸에 미미한 경련이 스쳤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무엇을 생각했는지 괴녀의 두 눈에 탐욕의 빛이
떠올랐다.
(만년용혈지를 복용해 보았자 겨우 무형마독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나의 본래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괴녀의 뇌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그녀의 눈빛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것은 그녀가 어떤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만일 저 자의 천년내공마저...... 채양보음술(採陽補陰術)
로 흡수한다면......)
생각을 굴리던 괴녀는 이 대목에 이르자 어울리지 않게도 흉칙한 안면에
언뜻 홍조를 떠올렸다.
(그렇게 되면 나는 탈태환골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뿐더
러...... 가히 불사무적지체가 될 수 있다!)
뇌리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마친 괴녀는 흡족한 심정이었다. 그녀는 생각
만 해도 가슴이 부푸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숙원을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괴녀의 입가에는 이미
계산된 사악한 미소가 흘렀다.
이 괴녀는 본래 정파출신의 기녀(奇女)였다. 그런 그녀가 이런 형편없는
모습으로 전락해 버린데는 물론 이유가 있었다.
이십 년 전, 그녀는 참혹한 일을 당했다. 그녀의 외모가 망가진 것도 그
사건으로 인해서였고 그녀의 성격이 편협하고 잔혹하게 변해버린 것도 그
때부터였다.
어쨋든, 지금 괴녀는 이렇게 추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용모를 원래대로 회
복하려는 꿈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꿈이 실현될지도 모르는 희
망과 기대의 교차점이 눈앞에 보이는 것이다.
"호호...... 좋아! 적제, 그 아이를 살려주지!"
괴여인은 생각을 마치자 교소를 터뜨리며 기꺼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촤르르......!
괴녀는 깔깔 웃으며 혈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몸은 혈지에서 떠올
라 핏빛 수면을 두 발로 딛고 섰다.
답수부공(踏水浮功)!
놀랍게도 절전되었다고 알려진 전설적인 경공비기가 여인의 몸에서 완벽
한 형태로 나타났다.
스윽!
괴녀는 한 물방울도 튀기지 않고 혈지의 수면을 사뿐이 밟으며 혈지가로
걸어나왔다.
그녀는 전라(全裸)의 몸이었다. 말 그대로 전신에 한 올의 실오라기도 걸
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들어난 그녀의 몸은 보통의 여자와는 사뭇 달
랐다.
혈지에 잠겨 있던 괴녀의 동체도 거북등 같이 쩍쩍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
다. 그것은 그녀가 환우에서 가장 지독한 한가지 극독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혈지 속에 잠겨 있던 그녀의 나신은 흉칙하게 망가진 얼굴
만큼 추악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피부는 붉은 빛을 띈 유백색이었고 피부에
인 균열도 얼굴같이 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찌보면 그것은 독특한 개성으로 느껴졌으며 거미줄같이 선이 그어진 유
백색의 동체는 오히려 야릇한 충동을 일으킬 정도로 다분히 매력적인 일면
도 지니고 있었다.
여인의 가슴에는 유난히 풍만한 한 쌍의 육봉이 달려 있었다. 사발을 엎
어놓은 듯이 모양좋고 풍만한 유방, 그리고 한줌의 끊어질 듯한 세류요 아
래로는 대지같이 풍요롭고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드넓은 골반
이 벌려 있었다.
또한 탱탱한 둔부와 전면의 불룩한 둔덕, 그리고 깊고 은밀한 계곡이 여
인이 움직일 때마다 살짝살짝 드러나 보였다.
그녀의 은밀한 곳에도 머리와 마찬가지로 한 올의 체모도 나 있지 않았
다. 그녀가 중독된 극독의 독기는 아주 지독하여 그녀의 몸에 나 있는 모든
체모를 빠지게 만든 것이었다. 그 때문에 여인의 사타구니 일대는 민둥산이
되어있었다.
이윽고 혈지에서 나온 괴여인은 용사추 옆에 몸을 세웠다.
그녀는 장신이었다. 여인이건만 육척(六尺)에 가까운 훤칠한 체격으로 용
사추보다 한두 치 작을 정도였다.
".......!"
여인은 자신의 발치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용사추를 예리한 눈빛으로 내
려다 보았다. 그런 그녀의 우수에는 어느새 예의 만년용형혈지가 들려져 꿈
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용사추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던 여인의 안면에 문득 의아한 빛
이 스쳤다.
(이 아이의 얼굴은...... 누군가를 닮았다!)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사추의 모습은 그녀가 알던
누군가와 아주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였는지 생각나지는
않았다. 얼른 기억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웬지 낯익은 느낌을 갖게 하는 용사추의 모습은 여인으로 하여
금 기이한 친근감마저 불러일으켰다.
잠시 용사추의 얼굴을 바라보며 잡힐 듯 아른거리는 기억을 떠올리려 애
쓰던 여인은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어 그녀는 결심이 선 듯
두 눈에 강한 빛을 쏘아냈다.
(어쨌든 좋다! 안 됐지만...... 어 어린 아이는 나 혈봉황(血鳳凰)이 부
활하는데 필요한 재물이 되어 주어야겠다.)
괴여인 혈봉황은 이윽고 용사추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용사추
의 입으로 만년용형혈지를 가져갔다.
그녀는 용사추의 입을 벌린 뒤 투명한 막에 덮인 용형혈지의 끝을 손톱
끝으로 찢었다.
카.....아아앙!
그러자 비명에 가까운 기이한 음향이 일었다. 그 소리는 마치 날카로운
용의 울음소리와 흡사했다. 투명한 막 속에 들어있던 용형혈지는 마침내 액
체와 함께 용사추의 입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부르르.....!
용사추의 전신에 한 줄기 격렬한 경련이 스쳐갔다. 만년용형혈지의 거창
한 악력이 죽어가는 그의 몸 안으로 무섭게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호홋! 이제 되었다. 만년용형혈지는..... 죽은 자라도 살린다."
괴여인 혈봉황은 그것을 지켜보며 깔깔 거리며 교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
빛은 이내 탐욕과 기대로 물들었다.
이어 그녀는 조심조심 용사추의 의복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에 의해 용사추의 건장한 몸이 곧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裸身)으로 변했다. 피에 절어 있었으나 그의 몸은 마치 청동으로 빚은
듯이 탄탄하고 우람했다.
특히 무성한 수풀 속에 누워 있는 사내의 상징은 너무도 우람하고 틈실해
보였다. 이완된 상태건만 그 크기와 굵기가 보통 사내들의 충혈된 때의 그
것과 비슷할 정도로...!
"......!"
용사추의 나신을 본 혈봉황의 동체에 사르르 홍조가 감돌았다. 그것은 부
끄러움이었다.
비록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성격이 괴팍해지고 편협해지기는 했지만 그녀
는 아직 처녀의 몸이었다.
처녀의 몸으로 건장한 남자의 나신을 처음 대하자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
었다.
"사내들의 이것이 전부 이토록 크단 말인가?"
잠시 머뭇거리던 혈봉황은 이윽고 거친 숨을 삼키며 떨리는 손을 용사추
의 아랫도리로 가져갔다.
그녀의 다음 행동은 아주 대담해졌다. 그녀의 길고 가는 교수에 용사추의
실체가 그득히 쥐어졌다.
혈봉황은 수줍음에 머뭇거리면서도 이내 용사추의 그것을 부드럽게 어루
만졌다.
그러자 무기력하고 부드럽던 용사추의 실체는 점점 커지고 강해졌다. 비
록 용사추는 의식마저 잃은 상태였지만 여인의 부드러운 손놀림에 본능적으
로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그의 남성은 잔뜩 팽창되어 혈황봉의 한손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으로 거대해졌다.
(이 정도라니......!)
혈봉황은 덜컥 두려움이 치밀었다. 그녀의 추괴한 얼굴에 한 가닥 공포의
기색이 떠올랐다.
거의 자신의 팔뚝 정도의 크기와 굵기를 지닌 용사추의 실체는 도저히 그
녀 자신의 몸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이 거대했던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섞인 눈빛으로 잠시 망설이던 혈봉황, 하지만 그녀는 곧
결심한 듯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어 그녀는 흥분으로 떨며 용사추의 건장한 몸 위에 다리를 벌리고 선
뒤 쪼그려 앉았다.
불그레한 빛을 띤, 그러나 달덩이같이 풍만하고 살진 엉덩이가 용사추의
하체 위로 내려앉았다. 그와 함께 용사추의 용틀임하는 검붉은 순양지물이
그녀의 허벅지에 닿아 혈봉황의 교구를 파르르 떨게 만들었다.
예민한 속살에 닿는 뜨겁게 맥동하는 살덩이의 감촉.
혈봉황은 그 야릇한 감촉을 느끼고 흥분에 온 몸이 짜릿해지는 전율을 느
꼈다.
"하아....!"
그것은 그녀가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기이한 감정이었다. 그녀는 얼굴
을 붉히며 용사추의 굳강한 일부를 손으로 쥐었다. 그녀의 제법 큰 손아귀
로도 채 다 쥘 수가 없는 용사추의 육중한 실체는 그녀의 손아귀 안에서 뱀
처럼 꿈틀거리며 요동을 쳤다.
혈봉황은 손 안 가득히 뜨거운 맥동을 느끼며 절로 숨이 가빠졌다. 그리
고는 떨리는 또 다른 손길을 자신의 하체 중심부로 가져갔다. 그녀의 손가
락이 맨숭맨숭한 계곡의 민둥산을 더듬고 들어가 이윽고 그 중심부의 깊은
균열에 이르렀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가끔 어루만졌던 그곳이건만 지
금 그곳을 더듬는 그녀의 손길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혈봉황은 엄지와 검지로 자신의 부끄러운 곳을 좌우로 벌렸다. 상채기같
은 그녀의 수직의 균열이 한껏 벌어지며 그 안에 숨어있던 야릇한 동굴의
입구가 이지러지며 모습을 들어냈다. 그곳은 이미 흥분으로 흥건히 젖어 미
끈덩거리고 있었다.
혈봉황은 스스로 벌린 자신의 비동의 입구로 용사추의 실체를 조심스럽게
이끌었다. 불덩이같은 용사추의 실체의 끝부분이 그녀의 깊고 은밀한 곳에
닿았다.
(뜨....뜨거워!)
순간 그녀는 벌겋게 달군 쇳덩이가 가장 예민한 그곳에 닿는 듯한 충격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와함께 허리와 둔부, 그리고 괄약근이 절로 옴찔거
리며 이 생경한 침입자를 반겼다.
혈봉황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요동치며 손님을 환영하는 자신의 여자
부분에 배신감을 느끼며 천천히 달덩이같은 둔부를 아래로 내리눌렀다.
용사추의 강인한 육괴중 둥그스름한 부분이 여린 살을 헤집고 압도적으로
밀려들어왔다.
혈봉황은 자신의 동굴 초입에서 제법 완강한 저항이 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한 차례 심호흡을 한 그녀는 세차게 둔부를 내리눌렀다.
다음 순간,
"흐.....윽!"
엉덩이를 내리누른 혈봉황의 입에서 격렬한 고통의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흡사 몸이 두 쪽으로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그녀를 엄습했던 것이다.
본래 그녀는 사지가 잘라지면서도 태연하게 웃을 수 있도록 훈련받은 환
우최강의 여전사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내밀한 곳에 가해진 고통만은 그녀로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것이었다.
"흐윽......!"
파과(破瓜)의 순간 혈봉황은 정신을 잃을 정도의 격렬한 통증에 입술을
악물었다. 하지만 그 고통이 그녀의 의지를 주춤거리게 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지극한 고통가운데서도 자신이 해야할 바를 잊지 않았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이란 것을 모르도록 길러진 전사였다.
혈봉황은 질끈 눈을 감으며 자신의 하체를 용사추의 몸에 깊숙이 내리눌
렀다. 그러자 하체 일부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쑤욱!
한순간 용사추의 굳강한 실체는 그녀의 내부로 거침없이 뚫고 들어왔다.
물론 그럴수록 지독한 고통은 가중되어갔다.
(아파......!)
또르르.....
감겨진 혈봉황의 눈가로 이슬이 굴렀다.
그와함께 퍼런 핏줄이 툭툭 불거진 용사추의 실체를 머금은 그녀의 동굴
입구로 한 줄기 선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것은 혈봉황의 몸이 처음으로
사내를 받아들였다는 증거였다.
"아흐윽!"
용사추의 일부가 깊이 파고 들 수록 그곳에서 전해지는 격통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하지만 혈봉황은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용사추의 육괴는 완전히
혈봉황의 몸안에 함몰해 들어갔다.
혈봉황의 교구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세차게 떨렸다. 마치 벌겋게
달군 쇠꼬챙이가 여자의 가장 여린 그 부분을 통해 몸을 궤뚫어버리는 듯한
격통이었다. 하체의 균열로 용사추의 몽둥이같은 강인한 살덩이를 완전히
머금은 혈봉황의 풍만한 유방이 지극한 고통을 이기지 못해 출렁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고통은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하아......!"
그녀는 용사추의 가슴을 두 손으로 누르며 서서히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그녀가 둔부를 들어올리자 그녀의 체액과 앵혈로 번들거리는 검붉은 육괴가
압도적인 형상으로 빠져나왔다. 그것은 너무도 굵어 혈봉황의 내밀한 연분
홍 속살까지 함께 밖으로 딸려나올 정도였다.
일단 용사추의 상징을 거의 다 몸 밖으로 토해 냈던 혈봉황은 다음순간
다시 엉덩이를 내리눌러 도로 수용했다. 그것은 마치 붉은 용이 자기 굴을
찾아들어가는 듯한 압도적인 형상이었다.
"흐윽!"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지옥을 넘나드는 듯한 고통이 그녀의 전신을 엄습해
왔다. 하지만 혈봉황은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점점 더 집요
하고 격렬하게 행위를 이끌어갔다.
몸이 찢기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그녀가 일으키는 파도는 점점 더 격렬해
져 갔다.
우르르........!
한편 용사추의 내부에서는 거대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혈봉황은 고요한 연못에 던져진 하나의 돌멩이처럼 용사추의 내부에 고요
히 고여 있던 천년잠력(千年潛力)의 호수에 파문을 일으켰다.
콰르르......!
그녀가 일으킨 파문은 거친 파도로 변했다. 그리고 격랑은 점점 격렬해져
용사추의 내부를 폭풍의 바다로 만들었다. 용해되지 않고 그의 내부에 잠겨
있던 막강한 잠력들이 일시에 폭발하여 용사추의 내부로 해일같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의 내부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막히고 끊겼
던 용사추의 중맥대혈들이 종잇장같이 터지고 관통되었다. 그 기세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십팔대경락.......
임독삼십육혈......
천지현관......!
콰_____ 콰쾅!
그 모든 것이 천년잠력의 폭주에 한순간 허물어졌다.
거기에다 만년용형혈지(萬年龍形血芝)의 불사지력(不死之力)마저 가세하
였다. 아니, 어쩌면 용사추의 몸으로 들어간 용형혈지가 천년잠력을 이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카......아아앙!
용사추에게 삼켜진 용형혈지의 정령은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이 천년잠력
을 이끌고 용사추의 내부에서 길길이 날뛰었다.
용형혈지의 정령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벽(壁)과 혈(穴)이 무너졌다. 그
것은 천년내공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미세한 말초혈맥(末梢血脈)들과 기경
사혈(奇經死穴)들조차 산산이 바스러뜨리며 날뛰었다.
인체에 누구나 있게 마련인 사혈(死穴)들이 하나하나 용형혈지에 의해 제
거되고 허물어졌다.
사혈(死穴)의 소멸......
그것은 곧 불사(不死)의 경지를 의미한다.
만약 용사추가 불사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면 그 이후로는 목이 잘리고
몸이 두 동강이 나고 조각나지 않는 한 영원히 죽지 않게 될 것이다. 그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대자연의 거력밖에는 없을 것이다.
"아학! 흐윽!"
혈봉황은 용사추의 몸 위에서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용사추와 한몸
이 된 그녀의 몸놀림이 용사추의 실체를 압박해 나갔다.
그와 함께 어느 순간 용사추의 내부에서 광란하며 휘돌던 천년잠력이 폭
포수같이 외부로 폭출되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강력한 흡인력이 용사추
의 천년잠력과 용형혈지의 정수를 그의 몸 밖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장본인은 물론 혈봉황이었다.
"하아...... 하아!"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용사추의 몸 위에서 점점 더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다.
콰르르......!
그 때마다 용사추와 그녀의 몸이 결합 된 그 곳을 통해 거대한 잠력이 그
녀의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잠력의 폭류는 용사추의 몸에서와 똑
같은 작업을 그녀의 몸 안에서 행하였다.
그녀의 내부의 모든 장벽이 일시에 허물어졌으며, 그녀를 이십여 년 동안
괴롭혔던 무형마독이라는 극독을 한순간에 재로 만들어 버렸다.
스으...... 스으!
혈봉황의 전신 팔만사천모공으로부터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검푸른 땀이 흘
러나왔다. 그것들은 그녀의 내부에 쌓여 있던 독기(毒氣)와 혼탁한 기운들
이 녹은 것이었다.
그녀의 내부에 있던 독기가 전부 몸 밖으로 배출되자 그녀의 몸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쩍! 쩌적!
거북등같은 균열이 아로새겨졌던 그녀의 피부가 쩍쩍 갈라져 내리기 시작
했던 것이다.
갈라진 그녀의 피부는 흡사 뱀이 허물을 벗듯이 벗겨져 내렸으며 거북등
같이 흉측하던 그녀의 피부 속에서 뽀얀 유백색의 새로운 피부들이 급격하
게 돋아나오는 것이었다.
탈태환골(脫胎煥骨).
그렇다. 혈봉황은 무림인이라면 꿈에도 그리던 광세기연을 겪고 있는 것
이다.
그녀의 모든 혼탁하던 껍질이 일시에 벗겨지며 그녀는 어머니의 태내에서
나오던 가장 순수한 형태의 몸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 성공이야!"
혈봉황의 눈에서 감격과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가슴 벅찬 희
열을 느끼며 마치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듯한 경쾌한 기분을 느꼈다.
어느새 그녀의 전신을 압박하던 격렬한 고통도 거짓말같이 사라져 버렸
다. 오히려 그 지극한 고통 대신 하체의 일부에서 미묘하게 꿈틀거리며 피
어오르는 쾌감이 서서히 그녀의 몸 안으로 뜨거운 열류를 퍼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더욱 몸을 격렬하게 움직였다.
콰르르......!
그녀의 움직임이 빨라짐에 따라 용사추에게서 빨려드는 잠력은 더욱 강해
졌다. 그녀는 이미 용사추의 천년공력 중에서 육 할 이상을 빨아들인 상태
였다. 이대로 간다면 곧 그녀는 용사추의 모든 내공을 흡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 될 것이다.
"미안하지만...... 너는 나를 위해 죽어주어야 한다!"
혈봉황은 자신의 아래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용사추를 내려다보았다. 문
득 눈물이 서린 그녀의 눈에 한 가닥 죄책감이 스쳤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
물며 중얼거렸다.
"너의 천년내공이 필요하다. 그것이 있어야...... 나 혈봉황을 이 모양으
로 만든 그 악독한 계집을 벌할 수 있다!"
그녀의 두 눈에 섬뜩한 살기가 스쳤다. 그런 중에도 그녀의 신체는 계속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피부에 이어 흉칙하던 그녀의 얼굴이 변화를 일으켰다. 암갈색을 띤 그녀
의 얼굴 피부가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마치 나무껍질같던 그녀의 피부가 벗겨지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뽀얗게
윤택이 도는 피부가 드러났다.
그러자 완연하게 나타나는 혈봉황의 얼굴. 그것은 놀랍게도 십전완미의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아닌가!
어느곳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옥용. 마치 조각으로 빚은 듯 아름
다운 얼굴이 껍질을 깨고 새로 태어난 것이었다.
단지 전체적으로 선이 뚜렷하고 너무 반듯하여 백지장처럼 차갑게까지 느
껴지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이것이 바로 혈봉황 본래의 모습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무형마독이라는 극독의 독력이 혈봉황의 몸에
나 있던 모든 체모(體毛)의 모근(毛根)을 태워 버렸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와 공력은 되찾았으나 체모만은 되살리
지 못한 것이었다.
여자에게 있어 체모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와 인상을 부여한다. 머리카락
이 길고 아름다운 여인은 그 용모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
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혈봉황은 완벽하리만치 아름다운 용모는 되찾았으
나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모습으로 그 본연의 아름다움이 많이 감소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혈봉황에게 있어 지금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공력을 회복하여 복수를
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그 한가지 목적으로 흉칙하게 망가진 몰골로 혈지에 몸을 담근 채
긴 세월을 견뎌온 그녀가 아니던가!
콰르르......!
채양보음술은 마침내 절정에 이르렀다.
이제는 용사추의 내부에 있던 천년잠력의 거의 전부가 혈봉황에게 흡수되
었다. 머지 않아 용사추는 모든 내공을 그녀에게 탈취당하여 한 구의 해골
로 변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때였다.
(흐......윽!)
혈봉황의 교구에 갑자기 격렬한 경련이 일었다.
거의 끝났다고 그녀가 방심하는 순간 용사추의 일부가 그녀의 내부에서
꿈틀하더니 믿을 수 없게도 무서운 힘으로 천년잠력을 되돌려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같은 사태는 혈봉황이 꿈에도 짐작치 못한 일이었다.
그녀는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 이것은......!"
혈봉황은 대경실색하며 급히 용사추의 몸에서 떨어지려고 하였다. 그것만
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악!"
한 쌍의 무쇠같은 손이 용사추의 몸에서 떨어지려는 혈봉황의 한 줌밖에
안 되는 허리를 무서운 힘으로 조여 버리는 것이었다.
그 손의 주인은 바로 용사추였다.
제17장
절지(絶地)의 기연(奇緣)
언제부터였을까? 놀랍게도 용사추가 혈봉황의 몸 아래에서 눈을 뜨고 히
죽 웃고 있었다.
"후훗! 당신만 재미를 봐서야 되겠소?"
용사추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혈봉황에게 잔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이런 엉터리같은.......!"
혈봉황의 안색은 하얗게 탈색되었다.
용사추는 무쇠같은 손으로 그런 혈봉황의 허리를 끌어내렸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의 몸은 다시 한 치의 틈도 없도록 밀착되었다.
용사추는 야릇한 눈빛으로 혈봉황을 올려다 보며 실소를 흘렸다.
"당신은 내가 누군지나 확인하고 일을 벌였어야 했어! 하하! 음서시(淫西
施)의 진전을 이은 내게 채양보음술을 펼치다니......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지!"
그 말에 혈봉황의 옥용이 경악으로 이지러졌다.
"음......음서시! 설마 너는 십대악인의 전인이란 말이냐?"
그녀는 믿을 수 없는 듯 멍해졌다.
"하하! 아는 것이 너무 늦었어!"
용사추는 싱긋 웃으며 무서운 힘으로 혈봉황이 빨아들였던 천년잠력을 회
수해 들이기 시작했다.
우르르르!
그가 회수해 들이는 힘은 혈봉황의 흡인력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혈봉황은 용사추에게서 빼앗았던 천년잠력을 모조리 재
탈취 당하고 말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용사추의 흡력은 혈봉황의 본신내력마저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아...... 끝이야!)
혈봉황은 아득한 절망감을 느꼈다. 그녀의 교구가 용사추의 몸 위로 힘없
이 허물어져 내렸다.
(하필이면...... 이 자가 음서시의 전인이었다니......)
그녀는 갑자기 온 몸이 풀어지는 듯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것은 절망과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그녀는 망연한 표정으로 멍하니 용사추를 내려다
보았다.
그런 그녀의 귓전으로 문득 용사추의 빈정거림이 들렸다.
"어쨌든....... 나를 구한 것이 당신이니 죽더라도 지극한 환희를 맛보고
죽도록 해주지."
용사추의 몸이 아래쪽에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검붉은 흉기
는 무자비하게 여체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아흐윽!)
사내의 굴강한 육괴가 사타구니의 중심부를 치받아댈 때마다 혈봉황의 축
늘어졌던 몸이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켰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한 쾌
감이 사내의 흉기에 난자당하고 있는 그녀의 은밀한 곳에서 구름같이 일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그것은 아주 미미했다. 하지만 환희의 물결은 점점 더 강해져서
마침내는 혈봉황이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실신직전까지 몰아붙여졌으며 언제인지도 모르게 아득
한 혼미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그녀는 격렬한 환희의 폭발에 휩싸인 채 아득한 죽음을 체험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죽음보다 강한 쾌감인지도 몰랐다. 갈수록 깊어지는 쾌락의
늪이 그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아..... 제발! 흐흑!"
혈봉황의 입에서는 쉴새없이 뜨거운 열락의 신음이 새어나왔다. 용사추의
건장한 몸이 움직이며 그의 맥동하는 살덩이가 은밀한 동굴에서 꿈틀댈 때
마다 그녀의 교구는 거친 파도를 타며 끝도 모를 열락의 바다로 던져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용사추와 혈봉황은 자세가 바뀌어 있었다. 용사추가 혈봉
황의 몸 위로 올라온 것이다.
용사추만큼이나 큰 키와 중년여인처럼 풍만한 몸매의 여체가 무방비 상태
로 바닥에 널부러져있었다. 하지만 그 풍염한 육체에는 한올의 체모도 보이
질 않았다.
민망하게 벌리고 누운 그녀의 허벅지 안쪽도 그저 미끈한 둔덕이 자리하
고 있을 뿐이었다.
용사추는 그런 혈봉황의 미끈하고 흐드러진 두 다리를 들어올려 양팔에
낀 채 다시금 자신의 웅대한 욕망의 불덩이를 여체 깊숙이 밀어넣었다.
희고 미끈한 두다리가 허공으로 쳐들려진 그녀의 자태는 실로 고혹했다.
양무릎이 큼직한 사발같은 젖무덤에 눌려지며 자연히 혈봉황의 둔부는 위
로 들려졌다. 그 때문에 자신의 맥동하는 실체를 머금은 여자의 은밀한 부
분이 적나라하게 용사추의 시야에 들어왔다.
한 올의 터럭도 나 있지 않은 맨숭맨숭한 혈봉황의 중심부, 희디 흰 속살
의 중심부에 나 있는 원색의 균열은 지금 한껏 벌어진 채 검붉은 살덩이를
머금고 있었다.
"으음....!"
자신의 욕망의 상징을 베어문 혈봉황의 특이한 부분을 직시한 용사추의
입에서도 거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지금 자신이 마치 덜 성숙한 소녀
의 육체와 결합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미 흥건히 젖어 번들거리는 혈봉황의 중심부 균열에서는 선연한
선혈이 배어나와 새하얀 허벅지를 적시고 있었다.
(처녀였단 말인가?)
용사추는 내심 놀라면서도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거칠게
움직여 소녀의 그것같은 혈봉황의 비역을 검붉은 흉기로 능란하게 요리해갔
다.
"제발....!"
강제로 다리를 쳐들린, 너무도 수치스런 자세가 된 채 겁탈당하며 혈봉황
은 용사추에게 간절이 애원했다. 용사추가 거칠게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아
랫뱃 속의 내장이 다 후벼 파내지는 듯한 너무도 깊숙한 삽입감을 느낀 때
문이다.
그러나 용사추는 잔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의 육체를 용서없이 유린
해갔다.
"아아악....!"
어느 순간 혈봉황은 자신의 내부에서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의 덩어리가 화
려한 폭발을 일으키는 것을 느끼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격렬한 충
격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그녀는 아득히 혼절해 버리고 말았다.
혈봉황은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내가...... 죽지 않다니......)
정신을 차리는 순간, 혈봉황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에 곤혹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서서히 감았던 눈을 떴다.
크르르릉......!
그녀의 귓전으로 낯익은 사자의 낮은 포효성이 들려왔다. 기이하게도 그
소리는 혈봉황의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켰다.
혈봉황은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곳은 여전히 예의 동굴이었다. 그
런데, 확실히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바닥에는 천년음등의 부드러운 잎사귀들이 푹신하게 깔려 있었고 혈봉황
의 몸은 그 위에 뉘어져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헐렁한 청색의 고대전포가 입혀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
라보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발치.
크르르릉......!
예의 거대한 붉은 갈기의 사자가 작은 동산같이 웅크리고 앉아 그녀를 들
여다 보고 있었다.
혈봉황은 사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 사내의 얼굴이 그녀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 자가...... 왜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일까?)
그녀는 아미를 찡그리며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제일 먼저 자
신의 몸의 상태를 살폈다.
혈봉황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만 멍청해
지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녀의 몸 안에는 활화산 같은 거창한 내공이 도사
리고 있는 것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십갑자에 육박하는 거창
한 것이었다.
십갑자(十甲子)......!
말이 십갑자지 그것은 보통 무림인들이 감히 꿈에서 조차도 상상할 수 없
는 엄청난 경지가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가히 천년제일이라고 해도 과연
이 아닐 정도로 막강한 내공이었으며 혈봉황이 원수에게 암격당할 당시의
내공보다 두 배 강한 것이었다.
혈봉황은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녀는 잔뜩 곤혹스런 표정으로 빠르게 자기 몸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몸은 적사천인애로 추락하기 직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혈지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의 그 흉칙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비로소 그녀는
완전히 이십여 년 전의 아름답고 매력적인 용모를 회복한 것이었다.
다만 무형마독의 독기 때문에 그녀의 몸에 있어야할 체모가 한 올도 남지
않고 제거되었다는 점만이 예전과 틀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보기 흉하기보다는 또 다른 기이한 매력을 느끼게 했다.
문득 혈봉황은 주위에 용사추가 보이지 않자 궁금해졌다.
"적제(赤帝)! 그 사내놈은 어디 있느냐?"
그녀는 사자를 노려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크르르......
적제라 불린 사자는 그녀의 물음에 낮게 울부짖으며 동굴 밖으로 고개를
돌려보였다.
"그래? 동굴 밖에 있단 말이지?"
혈봉황의 눈에서 문득 새파란 살기가 작렬했다.
스슥.....!
그녀는 이내 흐르듯이 몸을 움직여 동굴 한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천년음등의 아름드리 뿌리들이 뒤엉켜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혈봉황은 그 뿌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더니 무언가를 찾아 꺼내 들었다.
그곳에는 두 가지 물건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방패와 한 자
루의 장극(長戟)이었다. 두 가지 다 찬연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표면
에는 여러 마리의 봉황(鳳凰)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팟!
혈봉황은 그 중 일 장 길이의 장극을 움켜쥐고 동굴 밖으로 날아나갔다.
___봉황대정신극(鳳凰大正神戟)!
이것이 그 장극의 이름이었으며, 바로 환우칠중병 중 하나가 되는 천고
신병(千古神兵)이었다.
"......!"
막 동굴을 나서던 혈봉황은 얼어붙은 듯이 굳어졌다.
동굴 밖은 여전히 적사천인애는 짙디 짙은 운무로 뒤덮여 있었다. 헌데,
고오오......
은은한 뇌성이 진동하며 천층 만층의 검기(劍氣)가 적사천애의 상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뇌성을 동반한 검기(劍氣)의 소용돌이, 그것에 부딪쳐 적
사천인애의 그 지독한 안개의 장막이 마치 물살이 갈라지듯이 수직으로 갈
라졌다.
그 광경을 접한 혈봉황은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무...... 무서운 검기! 저것은 전설 중에 나오는 왕자지검(王者之劍)의
왕자검기(王者劍氣)다!)
그녀의 봉목이 경악으로 흔들렸다.
-왕자지검(王者之劍)!
그것은 검가(劍家) 사이에서 전설적으로 전해오는 최후의 검도를 말하는
것으로 마교의 무적마예 천마대구식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항마절기라고
알려진 초극검예였다.
뜻이 일면 검(劍)이 움직이며, 검(劍)이 움직이면 하늘이 움직인다고 하
여 달리 천형검결(天形劍訣)라고도 불리는 절대검결이 바로 왕자지검이었
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전설로 전해올 뿐 유사이래 누구도 왕자지검을 이루
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전설이 지금 혈봉황의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뇌성을 동
반한 천층검막, 그것에서 바로 전설 중에 나오는 왕자지검의 검기가 느껴지
는 것이었다.
혈봉황이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멍하니 그 자리에 굳어져 있을 때였다.
고오오.....우르르!
절정에 이르렀던 천층의 검막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자 더 이상 진행되
지 못하고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혈봉황은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깝다! 아직 화후가 모자라 왕자지검의 완전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는
구나......!)
그녀는 사그러드는 천층검막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금치못했다.
스으으......!
이윽고, 천층검막이 흐트러지자 그 안에서 한 명 청년의 모습이 드러났
다. 피곤한 기색으로 한 자루 신검을 안고 지면으로 떨어져 내리는 당당한
체구의 청년. 그는 바로 용사추였다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고검(古劍)은 바로 신검(神劍) 거궐이었다.
용사추는 만년용형혈지와 혈봉황의 채양보음술 덕분에 십대악인이 주입시
켜 준 천년내공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상태였다.
천년공력(千年功力)! 마침내 그는 천년공력을 지니게 되었다. 전대미문,
미증유의 그 가공스런 능력을 완성하게 된 것이었다.
용사추는 음서시의 방중기예로 혈봉황을 실신시킨 직후에야 그것을 깨달
았다. 이에, 그는 기쁨을 금치 못하였고 그 직후 영감이 일어 신검 거궐과
함께 얻은 대뇌음사의 항마검결, 뇌음팔검의 참수에 들어간 것이다.
뇌음팔검(雷音八劍)!
용사추는 순식간에 그 중 사식까지의 오의를 깨달았으며, 그와 더불어 다
라법존에게서 전수받은 다라패엽천강의 극인마저 영감에 의해 완성하게 되
었다.
한 순간의 영감. 그것에 의해 용사추의 무공은 순식간에 배 이상 강해진
것이었다.
멍하니 왕자지검의 눈부신 신위에 빠져 있던 혈봉황은 흠칫 정신을 차렸
다. 검기가 걷히며 드러난 용사추의 모습을 본 그녀는 안색이 홱 변했다.
"저 ...... 놈이었다니.....!"
그녀의 옥용이 갑자기 백짓장처럼 하얘졌다. 왕자지검의 검기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자신을 역으로 능욕했던 용사추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파라락.....!
바람 한 점 없는데도 혈봉황이 걸친 사라보감이 찢어질 듯이 펄럭였다.
그것은 그녀가 얼마나 격분하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이를 갈며 매섭게 용사추를 노려보았다.
"바득! 감히 잘도 본녀를 능욕했으렷다!"
혈봉황은 앞 뒤 가리지 않고 그대로 용사추에게 덮쳐들었다.
위이이잉!
순간적으로 그녀의 몸 주위로 핏빛의 강풍(强風)이 노을같이 일어났다.
핏빛강기의 노을에 덮여 날아드는 혈봉황의 모습......그것은 전설 중의 영
물인 봉황의 모습 그대로였다.
용사추는 혈봉황이 덮쳐드는 기세에 흠칫했다. 그것은 흡사 거대한 산 하
나가 눌러오는 듯한 엄청난 기세였기 때문이다.
"어이쿠......!"
용사추의 입에서는 짐짓 당황한 듯한 비명소리가 터졌다.
강간(强姦)당한(?) 마룡(魔龍)
"......!"
용사추는 휘청이는 몸을 바로 세우며 나타난 적포청년을 바라보았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으며 단정한 용모에 늠연한 기도를 지닌
청년이었다.
그는 윤기도는 장발을 허리까지 드리웠으며 한 자루 날(刃)의 폭이 넓은
철검을 비껴들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압도적인 위엄과 당당함을 풍기
고 있었다.
(강...... 자다!)
용사추는 적포청년을 대하는 순간 한 눈에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
아보았다. 그는 내심 찬 바람을 들이키며 경계의 태세를 갖추었다. 적포청
년이 만만치 않은 강적임을 알아 보았던 것이다.
일견하기에 적포청년에게서는 전황 북리황과 흡사한 분위가가 느껴졌다.
주위를 압도하는 당당함과 막강한 패기(覇氣), 그리고 태산이 움직이는
듯한 용행호보(龍行虎步)의 장중한 걸음걸이는 흡사 북리황과 마주선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북리황의 그것과 흡사했다.
다만 북리황과 비교하여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북리황이 지닌 중후한
연륜이 그 청년에게는 결여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 자는 ...... 혹시......!)
용사추의 눈빛이 더욱 더 강렬해졌다. 그의 뇌리로 환우일천군영보에서
읽은 한 명 청년고수의 이름이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철혈잠룡(鐵血潛龍)...... 도세욱?"
용사추는 침참한 눈빛으로 적포청년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역시...... 혈전백마궁의 백인마종의 일인다운 안목이군!"
적포청년이 용사추의 삼 장 앞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심혼이
울릴 듯한 묵직한 음성이었다.
(역시...... 그 자였군.......!)
용사추의 눈길이 미미하게 떨렸다.
___철혈잠룡(鐵血潛龍) 도세욱!
그는 바로 전황 북리황의 열 명 제자들인 십대전인 중 첫째 제자가 되는
인물이었다. 그의 나이는 당년 이십 팔 세로 정파의 명문인 남극검보(南極
劍堡) 출신이었다. 그는 제 이대 전황으로 지목되고 있는 기린아였다.
그의 특기는 검법으로 이미 십대전신 중 만검조종에 못지 않는 검력을 지
녔다고 공공연히 소문날 정도로 막강한 검사였다.
옥수교는 그를 환우일천군영보에 서열이위의 품계인 극품(極品)으로 분류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용사추 앞에 나타난 것이다.
파파팟......!
"......!"
"......!"
정(正)과 사(邪)를 대표하는 두 젊은 기재의 시선이 허공에서 한데 뒤엉
켰다. 그들의 시선이 맞부딪히며 동시에 미미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낭야왕 주세업......! 소문 보다 열 배 더 뛰어나군.)
도세욱의 검미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그것을 보며 용사추의 시선이 번뜩 한광을 토했다.
(시간을 끌면...... 불리하다. 이 자와 맞서다가는 영영 십만대산을 벗어
나지 못한다!)
용사추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좌수가 슬쩍 움직였고 그의 좌측 소매에서 한 줄기 붉
은 섬광(閃光)이 폭사되어 도세욱에게 날아갔다.
쩌_____정!
그것은 바로 자모낭아권이었다.
"엇!"
도세욱은 용사추의 불의의 일격에 흠칫하며 다급히 철검을 내쳐 자모낭아
권을 막아갔다. 그 바람에 도세욱의 좌측으로 순간적인 허점이 드러났다.
"용서하게...... 철혈잠룡!"
콰_____쾅!
용사추의 입에서 침중한 일갈이 터지며 그의 우수가 독사같이 도세욱의
좌측 옆구리로 파고 들었다.
"크윽!"
쿵...... 쿵!
도세욱은 괴로운 신음을 흘리며 십여 보 옆으로 밀려났다.
그는 전황 북리황의 수하에서 정통무예를 익힌 인물이다. 정면대결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도세욱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임기응변과 잔재주에
있어서 만큼은 십대악인의 진전을 이은 용사추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이
다.
"오늘은...... 바빠서 이만 실례해야겠네. 다음에 정식으로 겨루어 보세
나!"
스슥!
용사추는 신형을 휘청이는 도세욱을 향해 짤막하게 말하며 곧장 그의 머
리를 뛰어넘어 맞은편의 단애 위로 날아갔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돌연 한소리 창노한 폭갈이 용사추의 뒤쪽에서 터져나왔다.
"그냥 가지는 못한다! 지존마맹의 망나니......!"
용사추는 흠칫 놀랐다.
(이 목소리는......!)
그는 안색이 홱 변하며 급히 모든 동작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그의 눈빛은 온통 놀라움으로 가득찼다.
고오오......!
백 장 저편에 한 명의 마의 노인이 시퍼런 도기(刀氣)에 뒤덮여 떠오르는
것이 용사추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보잘것 없는 행색의 마의노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일으키는 도기만
큼은 결코 보잘것 없는 것이 아니었다.
"도치...... 막여!"
용사추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성이 터졌다.
___도치(刀痴) 막여(莫如)!
그는 저 정파최고의 기인들인 십대전신 중 최강자로 꼽히는 도의 달인이
었다.
용사추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도치 막여가 이럴 때 갑자기 나타날 줄
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미처 놀라움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가랏! 어기비도천강참(馭氣飛刀天 斬)!"
콰____ 아작!
도치 막여의 입에서 나직한 일성이 터지며 그의 애도(愛刀)가 시퍼런 도
기(刀氣)에 뒤덮인 채 용사추의 배심으로 폭사되어 왔다.
빨랐다. 그것은 가히 눈부신 속도였다.
전설적인 도가(刀家)의 최후비예인 이기어도술(以氣馭刀術)이 도치 막여
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었다.
용사추는 위기를 느꼈다.
(위험하다!)
그의 안색이 수라철면 안에서 희게 질렸다. 그는 허공에서 다급히 신형을
휙! 떠올렸다.
그러나 도치의 이기어도술은 눈부신 속도로 뻗어와 내상을 입은 용사추가
피하기에는 너무나 빨랐다.
퍼___억!
"흐.....윽!"
용사추는 전력을 다해 피했으나 등쪽이 불에 덴 듯한 화끈한 충격을 느끼
며 아득히 정신을 잃었다.
놀랍게도 백 장 밖에서 도치 막여가 날린 보도는 용사추의 등판을 정확히
강타하며 지나간 것이었다.
후드득......!
용사추의 신형은 허공에서 한 차례 휘청이다가 그대로 천야만야한 단애
아래로 추락해 내려갔다. 그것은 실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용사추의
모습은 단애 아래로 까마득히 사라져 버리고 흔적 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으음.....!"
그 직후 나직한 신음과 함께 도치 막여가 용사추가 섰던 단애 위로 표표
히 내려섰다.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단애를 내려다 보았다.
고오오.....!
단애는 얼마나 깊은지 도치 같은 초절정고수의 안력으로도 그 끝을 볼 수
없었다. 더구나 그 아래는 마치 지옥의 유부같이 온통 짙은 운무가 뒤덮여
있어 용사추의 모습을 삼킨 흔적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도치 막여는 아쉬운 눈빛으로 운무 자욱한 단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너무...... 성급했군! 생포했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끌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때, 망연하게 서 있는 도치의 옆으로 철혈잠룡 도세욱이 침중한 표정으
로 다가섰다. 그는 입가에 흐르는 선혈을 닦으며 묵묵히 단애 아래를 내려
다 보았다.
도치 막여는 문득 나직한 탄식을 발했다.
"적사천인애(赤獅天刃崖)에 떨어졌으니...... 철혈일지도 포기해야 하겠
군!"
그는 혀를 차며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체념
한 듯 발길을 돌렸다.
".......!"
도세욱도 침중한 시선으로 단애 아래를 내려 보다가 천천히 도치 막여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자 단애 주위는 다시 적막이 찾아들었다. 한 생명이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단애 위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 괴괴한 정적만이 감돌
고 있었다.
적사천인애(赤獅千刃崖).....
악마초인 용사추를 삼킨 단애의 이름은 적사천인애였다.
적사천인애의 바닥.
스으...... 스으......!
그곳은 온통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음습한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또한
적사천인애의 곡저(谷底)는 놀랍게도 수많은 등나무 줄기로 뒤덮여 있었다.
흡사 거대한 뱀같이 천야만야한 석벽을 휘감아 뒤덮은 아름드리의 등줄기들
은 용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울부짖움과도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___천년음등(天年陰藤)!
이것이 그 등나무 줄기의 이름이었다.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음기(陰氣)를 흡수하며 자라는 기이한 등목들.
그것들은 지극히 질기고 견고하여 어떤 신병이기로도 수월히 잘라낼 수 없
는 것들이었다. 그 천년음등들이 적사천인애의 곡저를 온통 뒤덮고 있는 것
이다.
적사천인애의 동쪽 곡저.
천년음등이 헝클어진 사이에서 문득 괴로운 신음소리가 들렸다.
"으......!"
뒤엉킨 천년음등의 덤불 속에 전신이 피에 흠씬 젖은 한 혈인(血人)이 누
워 신음하고 있었다. 그의 주위는 온통 선혈로 물들어 있었다.
그의 입가로는 핏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핏물이 배인 입술 새로 괴로운 신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지만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
었다. 혈인은 다름아닌 용사추였다.
그는 수백 장 높이에서 떨어졌건만 놀랍게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
다. 그물같이 뒤엉킨 천년등목들이 떨어진 용사추를 받아내어 분신쇄골을
면하게 한 것이었다. 이는 실로 천우신조라 아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살아 숨쉰다고는 하나 용사추는 지금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
다. 그의 상세는 아주 막중했다.
전황 북리황의 가공스런 혈수 공력에다가 설상가상으로 도치 막여가 이기
어도술로 떨친 파멸도강에 격중당한 그의 내부는 엉망진창으로 끊기고 바스
러진 상태였다.
용사추는 지금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사라보갑이 어느 정도 방호해 주기는 했으나 북리황이나 도치 막여 정도
의 절정고수의 공세 앞에서는 사라보갑도 그다지 큰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
는 것이다. 그나마 용사추의 숨이 한 가닥 붙어 있는 것은 그의 막강한 천
년내공 때문이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었지만 그를 구원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
었다.
사람의 그림자 조차 찾을 수 없는 깊고 음산한 단애 아래. 깊고 깊은 곡
저 사이로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만이 그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
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곡저에는 짙은 안개가 무겁게 깔려 있을 뿐 스산한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
다. 어디선가 유령이라도 불쑥 튀어나올 듯한 괴괴한 정적이었다.
그런데 그 정적을 깨뜨리는 한 소리 괴성이 들려왔다. 문득 어디선가 나
직한 맹수의 으르렁거림이 들려온 것이다.
크르르릉......!
그다지 크지는 않았으나 흡사 대지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육중한 포효성이
었다. 이어 자욱한 안개 속에 한 쌍의 수레바퀴 같은 광휘가 떠올랐다.
그것은 맹수의 눈에서 토해지는 안광이었다.
콰드드득...... 우드드득......!
천년음등의 아름드리 등줄기들이 잇달아 갈대같이 쓰러졌다.
스으...... 스으......!
그 사이로 한 마리 거대한 맹수의 모습이 나타 다.
천년음등을 갈대같이 쓰러뜨리며 나타난 괴수는 놀랍게도 한 마리 거대한
사자였다. 몸 길이만 해도 무려 삼 장, 말이 사자지 그야말로 몸집은 한 마
리 거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거대한 몸집의 사자는 전신이 타는 듯이 붉은 핏빛의
갈기로 뒤덮여 있었다.
붉은 갈기의 사자. 그놈은 참으로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크르르릉.......!
적사(赤獅)는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리며 쓰러져 있는 용사추에게로 다가섰
다.
하지만 용사추는 인사불성이 되어 사자가 다가서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반
듯이 누워있었다. 지금 그는 내공이 흩어져 주세업의 모습에서 본래의 모습
으로 돌아와 있었다.
번쩍!
문득, 용사추를 내려다보던 적사의 화등잔 같은 눈에 한 줄기 기광이 스
쳤다.
크르르릉......!
거대한 적사는 무엇인가 알아내려는 듯이 용사추의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
보았다.그러더니 점차 이 괴상한 적사의 눈에 어떤 희열의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적사의 눈빛은 오래 전부터 용사추를 알아온 듯이 점점 부
드러운 빛으로 변해갔다.
크르르......!
적사는 커다란 입을 벌려 조심스럽게 용사추의 몸을 물었다. 그놈의 입은
흡사 동굴과도 같아 용사추의 몸은 머리와 다리, 양끝만 남고 완전히 적사
의 입에 물려졌다.
이어 적사는 조심스레 몸을 돌려 자신이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내 적사의 거구는 자욱산 안개의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일다경 후.
크르르.......!
적사의 거구는 적사천인애의 서쪽 끝에 이르러 있었다.
적사천인애의 막다른 곳. 그곳에는 천년음능으로 귀덮인 하나의 동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등나무 줄기가 마치 주렴같이 드리워진 동굴.
그 동굴이 풍기는 분위기는 실로 기이했다. 은밀하면서도 무엇인가 비밀
스러운 장막에 가려진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것은 동굴 자체가 등나무 줄기로 가려져 있어 언뜻 보아 쉽게 발견할 수 없
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스____윽!
용사추를 문 적사는 미끄러지듯이 그 석동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적사가
막 석동을 지나는 순간이었다.
"적제(赤帝)! 무엇하러 또 왔느냐?"
갑자기 한 줄기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동굴 깊은 곳에서 터져나왔다. 그
목소리는 남녀를 구분하기 힘든 괴악스런 음성이었다.
새도 날아들지 못하는 천험의 절지 적사천인애.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정녕 놀라운 일이었다.
"적제(赤帝)! 냉큼 물러가지 못하겠는냐? 네놈이 자주오면 만년용형혈지
(萬年龍形血芝)가 놀란단 말이다."
다시 동굴 속에서 예의 괴악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야수같이 사납고 거
친 음성.
하지만 어찌 들으면 그것은 여인의 음성인 듯도 싶었다.
크르르......!
적사는 동굴 속의 인물이 경고했음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놈은 더욱 동굴 깊숙히로 들어갔다.
"빌어먹을 사자새끼! 본녀가 병신이 되었다고 이제 네놈마저 나 혈봉황을
업신여기는 것이냐?"
마침내 괴음성의 주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듯 했다. 대뜸 동굴 속에
서 거친 욕설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날카로운 신경질이 섞인 여인의
음성이 확실했다.
적사는 계속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안으로 들어 갈수록 넓어
졌다. 동굴 입구에서는 그 높이가 사 장 정도였는데 백여 장을 들어가자 동
굴의 높이가 이십여장으로 넓어졌다.
그런데 거대한 동굴의 사면 벽은 온통 수 많은 뿌리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 뿌리들은 바로 천년음등의 뿌리들이었다. 처음에는 드문드문 보이던 그
뿌리들은 나중에는 동굴의 석벽 전체를 뒤덮을 정도가 되었다.
기이하고도 신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윽고 적사는 동굴의 막다른 곳까지 다가섰다. 그곳은 높이가 사십여 장
이나 되는 넓은 지하광장이었는데 예외 없이 그곳도 꾸불꾸불한 천년음등의
뿌리들로 뒤덮여 있었다.
석벽과 천정, 그리고 바닥......어디에서 건 천년음등의 거대한 뿌리들이
뒤엉켜 삐져나와 있었다. 그 광경은 어찌보면 괴기롭기 까지 했다.
광장의 중앙에는 하나의 연못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원 십여 장 넓이의
연못이었는데 기이하게도 그 연못의 물은 피를 뿌려놓은 듯한 붉은 빛이었
다.
피빛의 연못(血池).
그것은 웬지 섬뜩하고 기분 나쁜 전율을 느끼게 했다.
그 피빛 연못에는 유달리 거대한 천년음등의 뿌리들이 십여 개 잠겨 있었
다. 혈지에 잠겨 있는 몇 아름의 거대한 뿌리들.
그 모습은 흡사 십여 마리의 용(龍)의 뒤엉켜 연못으로 들어가고 있는 듯
한 형상을 연상케 했다.
크르르릉......!
붉은 갈기의 사자는 용사추를 입에 물고 그 혈지로 다가섰다.
이때, 예의 거친 여인의 음성이 냉랭하게 들려왔다.
"바득! 못된 사자새끼! 감히 내 말을 어기다니...... 아무리 네놈이 대정
봉황천(大正鳳凰天)의 수호영물이라도 오늘만큼은 두들겨 패주지 낳고는 못
견디겠다!"
그녀의 음성은 지하광장을 무섭게 뒤흔들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피빛 연못속에 있었다.
혈지 속에 한 명의 괴인, 아니 목소리로 미루어 여인인 듯한 괴녀(怪女)
가 얼굴만 밖으로 내놓은 채 무서운 눈으로 다가서는 적사를 노려보고 있었
다.
츠.....읏!
얼굴만 내놓은 채 혈지속에 잠겨있는 괴녀는 그야말로 끔찍한 몰골을 지
니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괴녀의 피부는 거북등같이 쩍쩍 갈
라져 있었고 그나마 암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나무 껍질이 갈라진 듯한 피부, 게다가 괴녀의 머리에는 한 올의 모발도
나 있지 않았다. 실로 꿈에 볼까 두려운 기괴한 형상의 괴녀였다.
크르르릉......!
붉은 갈기의 사자는 이윽고 혈지 앞에 이르렀다.
"바득...... 놈! 각오......"
욕설을 퍼부으려던 괴녀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제서야 용사추가 사
자의 입에 물려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괴녀의 눈빛이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적사의 입에 물려있는 용사추에 이르
자 마치 화산이 터지 듯 무서운 빛을 쏟아냈다.
그 눈빛은 기이하게도 섬뜩한 핏빛이었다.
"그...... 시체는 또 무엇이냐?"
괴녀는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크르르......!
사자는 그런 괴녀 앞에 조심스럽게 용사추를 내려 놓았다. 그러더니 그놈
은 무언가 얘기하려는 듯 괴녀에게 다가서며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것이 아
닌가?
"무어라고? 저 만신창이된 시체를 살려 달라고?"
사자의 뜻을 알아차린 것일까? 괴녀가 어이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사자
와 용사추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포효성을 발했다. 괴녀를 바라보는 사자의
눈빛은 놀랍게도 간절한 빛마저 담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한낱 미물인 사자가 사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
고 그 눈빛으로 간절한 뜻을 호소하고 있는 모습은 기이하고도 신기했다.
괴녀는 사자의 요구에 어이없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보기 흉한 안면을 씰
룩거리며 코웃음을 쳤다.
"뭐? 만년용형혈지를 저 사내 자식에게 양보하라고?"
그녀는 기가 막히다는 듯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괴녀는 본능적으로 흘깃
옆을 바라보았다.
혈지에 잠겨 있는 괴녀의 옆에는 기이한 물체가 하나 떠있었다.
길이는 한 자 정도 되어 보였는데 그것은 투명한 막(幕)에 덮인 채 혈지
의 수면에 둥실 떠 있었다. 또한 기이하게도 그 투명한 막 안에는 한 마리
용(龍)의 형상을 한 것이 들어 있었다.
홍옥으로 깍은 듯 붉은 빛의 용(血龍)!
___만년용형혈지(萬年龍形血芝).
이는 만 년 동안 땅의 음기와 천년음등의 정수를 흡수하며 자란 영지(靈
芝)였다. 이 용형혈지가 만 년을 묶으면 완전한 용(龍)의 형태를 이루게 된
다.
혈지에 떠있는 그것은 이미 완전히 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쌍의 제법 날카로워 보이는 뿔도 그렇거니와 홍옥을 박아놓은 듯 반짝
이는 눈하며 거기에다 입가에는 한쌍의 수염까지 의젓하게 달려 있었다.
그것은 용형혈지가 이미 만 년 이상 묶은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만일 무공을 익힌 자가 그것을 복용하게 되면 그대로 신화경에 들어 무적
지체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희세의 무가지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놈! 용형혈지가 있어야 본녀의 몸에 잠복해 있는 무형마독(無
形魔毒)을 해독할 수 있음을 모르......"
잔뜩 분노하여 버럭 노성을 지르던 괴녀의 입이 갑자기 딱 벌어졌다. 그
녀는 만면에 경이의 빛을 떠올리며 용사추를 노려보았다.
용사추를 노려보는 괴녀의 핏빛 눈에 격렬한 파문이 스쳐 지나갔다.
"천...... 년공력을 ...... 지닌 자라니......"
그녀는 믿을 수 없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입에서 경악성이 새어나온 것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놀랐는지 짐
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괴녀는 이십 년 이전에 이미 환우제일로 꼽히던 여전사였다. 따라서
그의 안목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한눈에 용사추의 몸에 잠재된 천년내공을
알아본 것만 봐도 그랬다.
"제...... 대로 용해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천년내공을 지닌 자다."
혼자말인 듯 중얼거리는 괴녀의 몸에 미미한 경련이 스쳤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무엇을 생각했는지 괴녀의 두 눈에 탐욕의 빛이
떠올랐다.
(만년용혈지를 복용해 보았자 겨우 무형마독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나의 본래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괴녀의 뇌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그녀의 눈빛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것은 그녀가 어떤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만일 저 자의 천년내공마저...... 채양보음술(採陽補陰術)
로 흡수한다면......)
생각을 굴리던 괴녀는 이 대목에 이르자 어울리지 않게도 흉칙한 안면에
언뜻 홍조를 떠올렸다.
(그렇게 되면 나는 탈태환골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뿐더
러...... 가히 불사무적지체가 될 수 있다!)
뇌리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마친 괴녀는 흡족한 심정이었다. 그녀는 생각
만 해도 가슴이 부푸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숙원을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괴녀의 입가에는 이미
계산된 사악한 미소가 흘렀다.
이 괴녀는 본래 정파출신의 기녀(奇女)였다. 그런 그녀가 이런 형편없는
모습으로 전락해 버린데는 물론 이유가 있었다.
이십 년 전, 그녀는 참혹한 일을 당했다. 그녀의 외모가 망가진 것도 그
사건으로 인해서였고 그녀의 성격이 편협하고 잔혹하게 변해버린 것도 그
때부터였다.
어쨋든, 지금 괴녀는 이렇게 추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용모를 원래대로 회
복하려는 꿈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꿈이 실현될지도 모르는 희
망과 기대의 교차점이 눈앞에 보이는 것이다.
"호호...... 좋아! 적제, 그 아이를 살려주지!"
괴여인은 생각을 마치자 교소를 터뜨리며 기꺼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촤르르......!
괴녀는 깔깔 웃으며 혈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몸은 혈지에서 떠올
라 핏빛 수면을 두 발로 딛고 섰다.
답수부공(踏水浮功)!
놀랍게도 절전되었다고 알려진 전설적인 경공비기가 여인의 몸에서 완벽
한 형태로 나타났다.
스윽!
괴녀는 한 물방울도 튀기지 않고 혈지의 수면을 사뿐이 밟으며 혈지가로
걸어나왔다.
그녀는 전라(全裸)의 몸이었다. 말 그대로 전신에 한 올의 실오라기도 걸
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들어난 그녀의 몸은 보통의 여자와는 사뭇 달
랐다.
혈지에 잠겨 있던 괴녀의 동체도 거북등 같이 쩍쩍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
다. 그것은 그녀가 환우에서 가장 지독한 한가지 극독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혈지 속에 잠겨 있던 그녀의 나신은 흉칙하게 망가진 얼굴
만큼 추악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피부는 붉은 빛을 띈 유백색이었고 피부에
인 균열도 얼굴같이 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찌보면 그것은 독특한 개성으로 느껴졌으며 거미줄같이 선이 그어진 유
백색의 동체는 오히려 야릇한 충동을 일으킬 정도로 다분히 매력적인 일면
도 지니고 있었다.
여인의 가슴에는 유난히 풍만한 한 쌍의 육봉이 달려 있었다. 사발을 엎
어놓은 듯이 모양좋고 풍만한 유방, 그리고 한줌의 끊어질 듯한 세류요 아
래로는 대지같이 풍요롭고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드넓은 골반
이 벌려 있었다.
또한 탱탱한 둔부와 전면의 불룩한 둔덕, 그리고 깊고 은밀한 계곡이 여
인이 움직일 때마다 살짝살짝 드러나 보였다.
그녀의 은밀한 곳에도 머리와 마찬가지로 한 올의 체모도 나 있지 않았
다. 그녀가 중독된 극독의 독기는 아주 지독하여 그녀의 몸에 나 있는 모든
체모를 빠지게 만든 것이었다. 그 때문에 여인의 사타구니 일대는 민둥산이
되어있었다.
이윽고 혈지에서 나온 괴여인은 용사추 옆에 몸을 세웠다.
그녀는 장신이었다. 여인이건만 육척(六尺)에 가까운 훤칠한 체격으로 용
사추보다 한두 치 작을 정도였다.
".......!"
여인은 자신의 발치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용사추를 예리한 눈빛으로 내
려다 보았다. 그런 그녀의 우수에는 어느새 예의 만년용형혈지가 들려져 꿈
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용사추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던 여인의 안면에 문득 의아한 빛
이 스쳤다.
(이 아이의 얼굴은...... 누군가를 닮았다!)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사추의 모습은 그녀가 알던
누군가와 아주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였는지 생각나지는
않았다. 얼른 기억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웬지 낯익은 느낌을 갖게 하는 용사추의 모습은 여인으로 하여
금 기이한 친근감마저 불러일으켰다.
잠시 용사추의 얼굴을 바라보며 잡힐 듯 아른거리는 기억을 떠올리려 애
쓰던 여인은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어 그녀는 결심이 선 듯
두 눈에 강한 빛을 쏘아냈다.
(어쨌든 좋다! 안 됐지만...... 어 어린 아이는 나 혈봉황(血鳳凰)이 부
활하는데 필요한 재물이 되어 주어야겠다.)
괴여인 혈봉황은 이윽고 용사추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용사추
의 입으로 만년용형혈지를 가져갔다.
그녀는 용사추의 입을 벌린 뒤 투명한 막에 덮인 용형혈지의 끝을 손톱
끝으로 찢었다.
카.....아아앙!
그러자 비명에 가까운 기이한 음향이 일었다. 그 소리는 마치 날카로운
용의 울음소리와 흡사했다. 투명한 막 속에 들어있던 용형혈지는 마침내 액
체와 함께 용사추의 입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부르르.....!
용사추의 전신에 한 줄기 격렬한 경련이 스쳐갔다. 만년용형혈지의 거창
한 악력이 죽어가는 그의 몸 안으로 무섭게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호홋! 이제 되었다. 만년용형혈지는..... 죽은 자라도 살린다."
괴여인 혈봉황은 그것을 지켜보며 깔깔 거리며 교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
빛은 이내 탐욕과 기대로 물들었다.
이어 그녀는 조심조심 용사추의 의복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에 의해 용사추의 건장한 몸이 곧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裸身)으로 변했다. 피에 절어 있었으나 그의 몸은 마치 청동으로 빚은
듯이 탄탄하고 우람했다.
특히 무성한 수풀 속에 누워 있는 사내의 상징은 너무도 우람하고 틈실해
보였다. 이완된 상태건만 그 크기와 굵기가 보통 사내들의 충혈된 때의 그
것과 비슷할 정도로...!
"......!"
용사추의 나신을 본 혈봉황의 동체에 사르르 홍조가 감돌았다. 그것은 부
끄러움이었다.
비록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성격이 괴팍해지고 편협해지기는 했지만 그녀
는 아직 처녀의 몸이었다.
처녀의 몸으로 건장한 남자의 나신을 처음 대하자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
었다.
"사내들의 이것이 전부 이토록 크단 말인가?"
잠시 머뭇거리던 혈봉황은 이윽고 거친 숨을 삼키며 떨리는 손을 용사추
의 아랫도리로 가져갔다.
그녀의 다음 행동은 아주 대담해졌다. 그녀의 길고 가는 교수에 용사추의
실체가 그득히 쥐어졌다.
혈봉황은 수줍음에 머뭇거리면서도 이내 용사추의 그것을 부드럽게 어루
만졌다.
그러자 무기력하고 부드럽던 용사추의 실체는 점점 커지고 강해졌다. 비
록 용사추는 의식마저 잃은 상태였지만 여인의 부드러운 손놀림에 본능적으
로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그의 남성은 잔뜩 팽창되어 혈황봉의 한손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으로 거대해졌다.
(이 정도라니......!)
혈봉황은 덜컥 두려움이 치밀었다. 그녀의 추괴한 얼굴에 한 가닥 공포의
기색이 떠올랐다.
거의 자신의 팔뚝 정도의 크기와 굵기를 지닌 용사추의 실체는 도저히 그
녀 자신의 몸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이 거대했던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섞인 눈빛으로 잠시 망설이던 혈봉황, 하지만 그녀는 곧
결심한 듯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어 그녀는 흥분으로 떨며 용사추의 건장한 몸 위에 다리를 벌리고 선
뒤 쪼그려 앉았다.
불그레한 빛을 띤, 그러나 달덩이같이 풍만하고 살진 엉덩이가 용사추의
하체 위로 내려앉았다. 그와 함께 용사추의 용틀임하는 검붉은 순양지물이
그녀의 허벅지에 닿아 혈봉황의 교구를 파르르 떨게 만들었다.
예민한 속살에 닿는 뜨겁게 맥동하는 살덩이의 감촉.
혈봉황은 그 야릇한 감촉을 느끼고 흥분에 온 몸이 짜릿해지는 전율을 느
꼈다.
"하아....!"
그것은 그녀가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기이한 감정이었다. 그녀는 얼굴
을 붉히며 용사추의 굳강한 일부를 손으로 쥐었다. 그녀의 제법 큰 손아귀
로도 채 다 쥘 수가 없는 용사추의 육중한 실체는 그녀의 손아귀 안에서 뱀
처럼 꿈틀거리며 요동을 쳤다.
혈봉황은 손 안 가득히 뜨거운 맥동을 느끼며 절로 숨이 가빠졌다. 그리
고는 떨리는 또 다른 손길을 자신의 하체 중심부로 가져갔다. 그녀의 손가
락이 맨숭맨숭한 계곡의 민둥산을 더듬고 들어가 이윽고 그 중심부의 깊은
균열에 이르렀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가끔 어루만졌던 그곳이건만 지
금 그곳을 더듬는 그녀의 손길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혈봉황은 엄지와 검지로 자신의 부끄러운 곳을 좌우로 벌렸다. 상채기같
은 그녀의 수직의 균열이 한껏 벌어지며 그 안에 숨어있던 야릇한 동굴의
입구가 이지러지며 모습을 들어냈다. 그곳은 이미 흥분으로 흥건히 젖어 미
끈덩거리고 있었다.
혈봉황은 스스로 벌린 자신의 비동의 입구로 용사추의 실체를 조심스럽게
이끌었다. 불덩이같은 용사추의 실체의 끝부분이 그녀의 깊고 은밀한 곳에
닿았다.
(뜨....뜨거워!)
순간 그녀는 벌겋게 달군 쇳덩이가 가장 예민한 그곳에 닿는 듯한 충격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와함께 허리와 둔부, 그리고 괄약근이 절로 옴찔거
리며 이 생경한 침입자를 반겼다.
혈봉황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요동치며 손님을 환영하는 자신의 여자
부분에 배신감을 느끼며 천천히 달덩이같은 둔부를 아래로 내리눌렀다.
용사추의 강인한 육괴중 둥그스름한 부분이 여린 살을 헤집고 압도적으로
밀려들어왔다.
혈봉황은 자신의 동굴 초입에서 제법 완강한 저항이 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한 차례 심호흡을 한 그녀는 세차게 둔부를 내리눌렀다.
다음 순간,
"흐.....윽!"
엉덩이를 내리누른 혈봉황의 입에서 격렬한 고통의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흡사 몸이 두 쪽으로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그녀를 엄습했던 것이다.
본래 그녀는 사지가 잘라지면서도 태연하게 웃을 수 있도록 훈련받은 환
우최강의 여전사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내밀한 곳에 가해진 고통만은 그녀로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것이었다.
"흐윽......!"
파과(破瓜)의 순간 혈봉황은 정신을 잃을 정도의 격렬한 통증에 입술을
악물었다. 하지만 그 고통이 그녀의 의지를 주춤거리게 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지극한 고통가운데서도 자신이 해야할 바를 잊지 않았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이란 것을 모르도록 길러진 전사였다.
혈봉황은 질끈 눈을 감으며 자신의 하체를 용사추의 몸에 깊숙이 내리눌
렀다. 그러자 하체 일부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쑤욱!
한순간 용사추의 굳강한 실체는 그녀의 내부로 거침없이 뚫고 들어왔다.
물론 그럴수록 지독한 고통은 가중되어갔다.
(아파......!)
또르르.....
감겨진 혈봉황의 눈가로 이슬이 굴렀다.
그와함께 퍼런 핏줄이 툭툭 불거진 용사추의 실체를 머금은 그녀의 동굴
입구로 한 줄기 선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것은 혈봉황의 몸이 처음으로
사내를 받아들였다는 증거였다.
"아흐윽!"
용사추의 일부가 깊이 파고 들 수록 그곳에서 전해지는 격통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하지만 혈봉황은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용사추의 육괴는 완전히
혈봉황의 몸안에 함몰해 들어갔다.
혈봉황의 교구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세차게 떨렸다. 마치 벌겋게
달군 쇠꼬챙이가 여자의 가장 여린 그 부분을 통해 몸을 궤뚫어버리는 듯한
격통이었다. 하체의 균열로 용사추의 몽둥이같은 강인한 살덩이를 완전히
머금은 혈봉황의 풍만한 유방이 지극한 고통을 이기지 못해 출렁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고통은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하아......!"
그녀는 용사추의 가슴을 두 손으로 누르며 서서히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그녀가 둔부를 들어올리자 그녀의 체액과 앵혈로 번들거리는 검붉은 육괴가
압도적인 형상으로 빠져나왔다. 그것은 너무도 굵어 혈봉황의 내밀한 연분
홍 속살까지 함께 밖으로 딸려나올 정도였다.
일단 용사추의 상징을 거의 다 몸 밖으로 토해 냈던 혈봉황은 다음순간
다시 엉덩이를 내리눌러 도로 수용했다. 그것은 마치 붉은 용이 자기 굴을
찾아들어가는 듯한 압도적인 형상이었다.
"흐윽!"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지옥을 넘나드는 듯한 고통이 그녀의 전신을 엄습해
왔다. 하지만 혈봉황은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점점 더 집요
하고 격렬하게 행위를 이끌어갔다.
몸이 찢기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그녀가 일으키는 파도는 점점 더 격렬해
져 갔다.
우르르........!
한편 용사추의 내부에서는 거대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혈봉황은 고요한 연못에 던져진 하나의 돌멩이처럼 용사추의 내부에 고요
히 고여 있던 천년잠력(千年潛力)의 호수에 파문을 일으켰다.
콰르르......!
그녀가 일으킨 파문은 거친 파도로 변했다. 그리고 격랑은 점점 격렬해져
용사추의 내부를 폭풍의 바다로 만들었다. 용해되지 않고 그의 내부에 잠겨
있던 막강한 잠력들이 일시에 폭발하여 용사추의 내부로 해일같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의 내부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막히고 끊겼
던 용사추의 중맥대혈들이 종잇장같이 터지고 관통되었다. 그 기세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십팔대경락.......
임독삼십육혈......
천지현관......!
콰_____ 콰쾅!
그 모든 것이 천년잠력의 폭주에 한순간 허물어졌다.
거기에다 만년용형혈지(萬年龍形血芝)의 불사지력(不死之力)마저 가세하
였다. 아니, 어쩌면 용사추의 몸으로 들어간 용형혈지가 천년잠력을 이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카......아아앙!
용사추에게 삼켜진 용형혈지의 정령은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이 천년잠력
을 이끌고 용사추의 내부에서 길길이 날뛰었다.
용형혈지의 정령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벽(壁)과 혈(穴)이 무너졌다. 그
것은 천년내공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미세한 말초혈맥(末梢血脈)들과 기경
사혈(奇經死穴)들조차 산산이 바스러뜨리며 날뛰었다.
인체에 누구나 있게 마련인 사혈(死穴)들이 하나하나 용형혈지에 의해 제
거되고 허물어졌다.
사혈(死穴)의 소멸......
그것은 곧 불사(不死)의 경지를 의미한다.
만약 용사추가 불사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면 그 이후로는 목이 잘리고
몸이 두 동강이 나고 조각나지 않는 한 영원히 죽지 않게 될 것이다. 그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대자연의 거력밖에는 없을 것이다.
"아학! 흐윽!"
혈봉황은 용사추의 몸 위에서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용사추와 한몸
이 된 그녀의 몸놀림이 용사추의 실체를 압박해 나갔다.
그와 함께 어느 순간 용사추의 내부에서 광란하며 휘돌던 천년잠력이 폭
포수같이 외부로 폭출되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강력한 흡인력이 용사추
의 천년잠력과 용형혈지의 정수를 그의 몸 밖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장본인은 물론 혈봉황이었다.
"하아...... 하아!"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용사추의 몸 위에서 점점 더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다.
콰르르......!
그 때마다 용사추와 그녀의 몸이 결합 된 그 곳을 통해 거대한 잠력이 그
녀의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잠력의 폭류는 용사추의 몸에서와 똑
같은 작업을 그녀의 몸 안에서 행하였다.
그녀의 내부의 모든 장벽이 일시에 허물어졌으며, 그녀를 이십여 년 동안
괴롭혔던 무형마독이라는 극독을 한순간에 재로 만들어 버렸다.
스으...... 스으!
혈봉황의 전신 팔만사천모공으로부터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검푸른 땀이 흘
러나왔다. 그것들은 그녀의 내부에 쌓여 있던 독기(毒氣)와 혼탁한 기운들
이 녹은 것이었다.
그녀의 내부에 있던 독기가 전부 몸 밖으로 배출되자 그녀의 몸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쩍! 쩌적!
거북등같은 균열이 아로새겨졌던 그녀의 피부가 쩍쩍 갈라져 내리기 시작
했던 것이다.
갈라진 그녀의 피부는 흡사 뱀이 허물을 벗듯이 벗겨져 내렸으며 거북등
같이 흉측하던 그녀의 피부 속에서 뽀얀 유백색의 새로운 피부들이 급격하
게 돋아나오는 것이었다.
탈태환골(脫胎煥骨).
그렇다. 혈봉황은 무림인이라면 꿈에도 그리던 광세기연을 겪고 있는 것
이다.
그녀의 모든 혼탁하던 껍질이 일시에 벗겨지며 그녀는 어머니의 태내에서
나오던 가장 순수한 형태의 몸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 성공이야!"
혈봉황의 눈에서 감격과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가슴 벅찬 희
열을 느끼며 마치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듯한 경쾌한 기분을 느꼈다.
어느새 그녀의 전신을 압박하던 격렬한 고통도 거짓말같이 사라져 버렸
다. 오히려 그 지극한 고통 대신 하체의 일부에서 미묘하게 꿈틀거리며 피
어오르는 쾌감이 서서히 그녀의 몸 안으로 뜨거운 열류를 퍼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더욱 몸을 격렬하게 움직였다.
콰르르......!
그녀의 움직임이 빨라짐에 따라 용사추에게서 빨려드는 잠력은 더욱 강해
졌다. 그녀는 이미 용사추의 천년공력 중에서 육 할 이상을 빨아들인 상태
였다. 이대로 간다면 곧 그녀는 용사추의 모든 내공을 흡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 될 것이다.
"미안하지만...... 너는 나를 위해 죽어주어야 한다!"
혈봉황은 자신의 아래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용사추를 내려다보았다. 문
득 눈물이 서린 그녀의 눈에 한 가닥 죄책감이 스쳤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
물며 중얼거렸다.
"너의 천년내공이 필요하다. 그것이 있어야...... 나 혈봉황을 이 모양으
로 만든 그 악독한 계집을 벌할 수 있다!"
그녀의 두 눈에 섬뜩한 살기가 스쳤다. 그런 중에도 그녀의 신체는 계속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피부에 이어 흉칙하던 그녀의 얼굴이 변화를 일으켰다. 암갈색을 띤 그녀
의 얼굴 피부가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마치 나무껍질같던 그녀의 피부가 벗겨지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뽀얗게
윤택이 도는 피부가 드러났다.
그러자 완연하게 나타나는 혈봉황의 얼굴. 그것은 놀랍게도 십전완미의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아닌가!
어느곳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옥용. 마치 조각으로 빚은 듯 아름
다운 얼굴이 껍질을 깨고 새로 태어난 것이었다.
단지 전체적으로 선이 뚜렷하고 너무 반듯하여 백지장처럼 차갑게까지 느
껴지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이것이 바로 혈봉황 본래의 모습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무형마독이라는 극독의 독력이 혈봉황의 몸에
나 있던 모든 체모(體毛)의 모근(毛根)을 태워 버렸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와 공력은 되찾았으나 체모만은 되살리
지 못한 것이었다.
여자에게 있어 체모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와 인상을 부여한다. 머리카락
이 길고 아름다운 여인은 그 용모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
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혈봉황은 완벽하리만치 아름다운 용모는 되찾았으
나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모습으로 그 본연의 아름다움이 많이 감소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혈봉황에게 있어 지금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공력을 회복하여 복수를
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그 한가지 목적으로 흉칙하게 망가진 몰골로 혈지에 몸을 담근 채
긴 세월을 견뎌온 그녀가 아니던가!
콰르르......!
채양보음술은 마침내 절정에 이르렀다.
이제는 용사추의 내부에 있던 천년잠력의 거의 전부가 혈봉황에게 흡수되
었다. 머지 않아 용사추는 모든 내공을 그녀에게 탈취당하여 한 구의 해골
로 변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때였다.
(흐......윽!)
혈봉황의 교구에 갑자기 격렬한 경련이 일었다.
거의 끝났다고 그녀가 방심하는 순간 용사추의 일부가 그녀의 내부에서
꿈틀하더니 믿을 수 없게도 무서운 힘으로 천년잠력을 되돌려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같은 사태는 혈봉황이 꿈에도 짐작치 못한 일이었다.
그녀는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 이것은......!"
혈봉황은 대경실색하며 급히 용사추의 몸에서 떨어지려고 하였다. 그것만
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악!"
한 쌍의 무쇠같은 손이 용사추의 몸에서 떨어지려는 혈봉황의 한 줌밖에
안 되는 허리를 무서운 힘으로 조여 버리는 것이었다.
그 손의 주인은 바로 용사추였다.
제17장
절지(絶地)의 기연(奇緣)
언제부터였을까? 놀랍게도 용사추가 혈봉황의 몸 아래에서 눈을 뜨고 히
죽 웃고 있었다.
"후훗! 당신만 재미를 봐서야 되겠소?"
용사추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혈봉황에게 잔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이런 엉터리같은.......!"
혈봉황의 안색은 하얗게 탈색되었다.
용사추는 무쇠같은 손으로 그런 혈봉황의 허리를 끌어내렸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의 몸은 다시 한 치의 틈도 없도록 밀착되었다.
용사추는 야릇한 눈빛으로 혈봉황을 올려다 보며 실소를 흘렸다.
"당신은 내가 누군지나 확인하고 일을 벌였어야 했어! 하하! 음서시(淫西
施)의 진전을 이은 내게 채양보음술을 펼치다니......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지!"
그 말에 혈봉황의 옥용이 경악으로 이지러졌다.
"음......음서시! 설마 너는 십대악인의 전인이란 말이냐?"
그녀는 믿을 수 없는 듯 멍해졌다.
"하하! 아는 것이 너무 늦었어!"
용사추는 싱긋 웃으며 무서운 힘으로 혈봉황이 빨아들였던 천년잠력을 회
수해 들이기 시작했다.
우르르르!
그가 회수해 들이는 힘은 혈봉황의 흡인력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혈봉황은 용사추에게서 빼앗았던 천년잠력을 모조리 재
탈취 당하고 말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용사추의 흡력은 혈봉황의 본신내력마저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아...... 끝이야!)
혈봉황은 아득한 절망감을 느꼈다. 그녀의 교구가 용사추의 몸 위로 힘없
이 허물어져 내렸다.
(하필이면...... 이 자가 음서시의 전인이었다니......)
그녀는 갑자기 온 몸이 풀어지는 듯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것은 절망과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그녀는 망연한 표정으로 멍하니 용사추를 내려다
보았다.
그런 그녀의 귓전으로 문득 용사추의 빈정거림이 들렸다.
"어쨌든....... 나를 구한 것이 당신이니 죽더라도 지극한 환희를 맛보고
죽도록 해주지."
용사추의 몸이 아래쪽에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검붉은 흉기
는 무자비하게 여체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아흐윽!)
사내의 굴강한 육괴가 사타구니의 중심부를 치받아댈 때마다 혈봉황의 축
늘어졌던 몸이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켰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한 쾌
감이 사내의 흉기에 난자당하고 있는 그녀의 은밀한 곳에서 구름같이 일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그것은 아주 미미했다. 하지만 환희의 물결은 점점 더 강해져서
마침내는 혈봉황이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실신직전까지 몰아붙여졌으며 언제인지도 모르게 아득
한 혼미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그녀는 격렬한 환희의 폭발에 휩싸인 채 아득한 죽음을 체험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죽음보다 강한 쾌감인지도 몰랐다. 갈수록 깊어지는 쾌락의
늪이 그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아..... 제발! 흐흑!"
혈봉황의 입에서는 쉴새없이 뜨거운 열락의 신음이 새어나왔다. 용사추의
건장한 몸이 움직이며 그의 맥동하는 살덩이가 은밀한 동굴에서 꿈틀댈 때
마다 그녀의 교구는 거친 파도를 타며 끝도 모를 열락의 바다로 던져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용사추와 혈봉황은 자세가 바뀌어 있었다. 용사추가 혈봉
황의 몸 위로 올라온 것이다.
용사추만큼이나 큰 키와 중년여인처럼 풍만한 몸매의 여체가 무방비 상태
로 바닥에 널부러져있었다. 하지만 그 풍염한 육체에는 한올의 체모도 보이
질 않았다.
민망하게 벌리고 누운 그녀의 허벅지 안쪽도 그저 미끈한 둔덕이 자리하
고 있을 뿐이었다.
용사추는 그런 혈봉황의 미끈하고 흐드러진 두 다리를 들어올려 양팔에
낀 채 다시금 자신의 웅대한 욕망의 불덩이를 여체 깊숙이 밀어넣었다.
희고 미끈한 두다리가 허공으로 쳐들려진 그녀의 자태는 실로 고혹했다.
양무릎이 큼직한 사발같은 젖무덤에 눌려지며 자연히 혈봉황의 둔부는 위
로 들려졌다. 그 때문에 자신의 맥동하는 실체를 머금은 여자의 은밀한 부
분이 적나라하게 용사추의 시야에 들어왔다.
한 올의 터럭도 나 있지 않은 맨숭맨숭한 혈봉황의 중심부, 희디 흰 속살
의 중심부에 나 있는 원색의 균열은 지금 한껏 벌어진 채 검붉은 살덩이를
머금고 있었다.
"으음....!"
자신의 욕망의 상징을 베어문 혈봉황의 특이한 부분을 직시한 용사추의
입에서도 거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지금 자신이 마치 덜 성숙한 소녀
의 육체와 결합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미 흥건히 젖어 번들거리는 혈봉황의 중심부 균열에서는 선연한
선혈이 배어나와 새하얀 허벅지를 적시고 있었다.
(처녀였단 말인가?)
용사추는 내심 놀라면서도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거칠게
움직여 소녀의 그것같은 혈봉황의 비역을 검붉은 흉기로 능란하게 요리해갔
다.
"제발....!"
강제로 다리를 쳐들린, 너무도 수치스런 자세가 된 채 겁탈당하며 혈봉황
은 용사추에게 간절이 애원했다. 용사추가 거칠게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아
랫뱃 속의 내장이 다 후벼 파내지는 듯한 너무도 깊숙한 삽입감을 느낀 때
문이다.
그러나 용사추는 잔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의 육체를 용서없이 유린
해갔다.
"아아악....!"
어느 순간 혈봉황은 자신의 내부에서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의 덩어리가 화
려한 폭발을 일으키는 것을 느끼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격렬한 충
격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그녀는 아득히 혼절해 버리고 말았다.
혈봉황은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내가...... 죽지 않다니......)
정신을 차리는 순간, 혈봉황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에 곤혹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서서히 감았던 눈을 떴다.
크르르릉......!
그녀의 귓전으로 낯익은 사자의 낮은 포효성이 들려왔다. 기이하게도 그
소리는 혈봉황의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켰다.
혈봉황은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곳은 여전히 예의 동굴이었다. 그
런데, 확실히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바닥에는 천년음등의 부드러운 잎사귀들이 푹신하게 깔려 있었고 혈봉황
의 몸은 그 위에 뉘어져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헐렁한 청색의 고대전포가 입혀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
라보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발치.
크르르릉......!
예의 거대한 붉은 갈기의 사자가 작은 동산같이 웅크리고 앉아 그녀를 들
여다 보고 있었다.
혈봉황은 사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 사내의 얼굴이 그녀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 자가...... 왜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일까?)
그녀는 아미를 찡그리며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제일 먼저 자
신의 몸의 상태를 살폈다.
혈봉황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만 멍청해
지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녀의 몸 안에는 활화산 같은 거창한 내공이 도사
리고 있는 것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십갑자에 육박하는 거창
한 것이었다.
십갑자(十甲子)......!
말이 십갑자지 그것은 보통 무림인들이 감히 꿈에서 조차도 상상할 수 없
는 엄청난 경지가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가히 천년제일이라고 해도 과연
이 아닐 정도로 막강한 내공이었으며 혈봉황이 원수에게 암격당할 당시의
내공보다 두 배 강한 것이었다.
혈봉황은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녀는 잔뜩 곤혹스런 표정으로 빠르게 자기 몸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몸은 적사천인애로 추락하기 직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혈지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의 그 흉칙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비로소 그녀는
완전히 이십여 년 전의 아름답고 매력적인 용모를 회복한 것이었다.
다만 무형마독의 독기 때문에 그녀의 몸에 있어야할 체모가 한 올도 남지
않고 제거되었다는 점만이 예전과 틀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보기 흉하기보다는 또 다른 기이한 매력을 느끼게 했다.
문득 혈봉황은 주위에 용사추가 보이지 않자 궁금해졌다.
"적제(赤帝)! 그 사내놈은 어디 있느냐?"
그녀는 사자를 노려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크르르......
적제라 불린 사자는 그녀의 물음에 낮게 울부짖으며 동굴 밖으로 고개를
돌려보였다.
"그래? 동굴 밖에 있단 말이지?"
혈봉황의 눈에서 문득 새파란 살기가 작렬했다.
스슥.....!
그녀는 이내 흐르듯이 몸을 움직여 동굴 한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천년음등의 아름드리 뿌리들이 뒤엉켜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혈봉황은 그 뿌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더니 무언가를 찾아 꺼내 들었다.
그곳에는 두 가지 물건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방패와 한 자
루의 장극(長戟)이었다. 두 가지 다 찬연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표면
에는 여러 마리의 봉황(鳳凰)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팟!
혈봉황은 그 중 일 장 길이의 장극을 움켜쥐고 동굴 밖으로 날아나갔다.
___봉황대정신극(鳳凰大正神戟)!
이것이 그 장극의 이름이었으며, 바로 환우칠중병 중 하나가 되는 천고
신병(千古神兵)이었다.
"......!"
막 동굴을 나서던 혈봉황은 얼어붙은 듯이 굳어졌다.
동굴 밖은 여전히 적사천인애는 짙디 짙은 운무로 뒤덮여 있었다. 헌데,
고오오......
은은한 뇌성이 진동하며 천층 만층의 검기(劍氣)가 적사천애의 상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뇌성을 동반한 검기(劍氣)의 소용돌이, 그것에 부딪쳐 적
사천인애의 그 지독한 안개의 장막이 마치 물살이 갈라지듯이 수직으로 갈
라졌다.
그 광경을 접한 혈봉황은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무...... 무서운 검기! 저것은 전설 중에 나오는 왕자지검(王者之劍)의
왕자검기(王者劍氣)다!)
그녀의 봉목이 경악으로 흔들렸다.
-왕자지검(王者之劍)!
그것은 검가(劍家) 사이에서 전설적으로 전해오는 최후의 검도를 말하는
것으로 마교의 무적마예 천마대구식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항마절기라고
알려진 초극검예였다.
뜻이 일면 검(劍)이 움직이며, 검(劍)이 움직이면 하늘이 움직인다고 하
여 달리 천형검결(天形劍訣)라고도 불리는 절대검결이 바로 왕자지검이었
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전설로 전해올 뿐 유사이래 누구도 왕자지검을 이루
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전설이 지금 혈봉황의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뇌성을 동
반한 천층검막, 그것에서 바로 전설 중에 나오는 왕자지검의 검기가 느껴지
는 것이었다.
혈봉황이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멍하니 그 자리에 굳어져 있을 때였다.
고오오.....우르르!
절정에 이르렀던 천층의 검막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자 더 이상 진행되
지 못하고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혈봉황은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깝다! 아직 화후가 모자라 왕자지검의 완전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는
구나......!)
그녀는 사그러드는 천층검막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금치못했다.
스으으......!
이윽고, 천층검막이 흐트러지자 그 안에서 한 명 청년의 모습이 드러났
다. 피곤한 기색으로 한 자루 신검을 안고 지면으로 떨어져 내리는 당당한
체구의 청년. 그는 바로 용사추였다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고검(古劍)은 바로 신검(神劍) 거궐이었다.
용사추는 만년용형혈지와 혈봉황의 채양보음술 덕분에 십대악인이 주입시
켜 준 천년내공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상태였다.
천년공력(千年功力)! 마침내 그는 천년공력을 지니게 되었다. 전대미문,
미증유의 그 가공스런 능력을 완성하게 된 것이었다.
용사추는 음서시의 방중기예로 혈봉황을 실신시킨 직후에야 그것을 깨달
았다. 이에, 그는 기쁨을 금치 못하였고 그 직후 영감이 일어 신검 거궐과
함께 얻은 대뇌음사의 항마검결, 뇌음팔검의 참수에 들어간 것이다.
뇌음팔검(雷音八劍)!
용사추는 순식간에 그 중 사식까지의 오의를 깨달았으며, 그와 더불어 다
라법존에게서 전수받은 다라패엽천강의 극인마저 영감에 의해 완성하게 되
었다.
한 순간의 영감. 그것에 의해 용사추의 무공은 순식간에 배 이상 강해진
것이었다.
멍하니 왕자지검의 눈부신 신위에 빠져 있던 혈봉황은 흠칫 정신을 차렸
다. 검기가 걷히며 드러난 용사추의 모습을 본 그녀는 안색이 홱 변했다.
"저 ...... 놈이었다니.....!"
그녀의 옥용이 갑자기 백짓장처럼 하얘졌다. 왕자지검의 검기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자신을 역으로 능욕했던 용사추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파라락.....!
바람 한 점 없는데도 혈봉황이 걸친 사라보감이 찢어질 듯이 펄럭였다.
그것은 그녀가 얼마나 격분하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이를 갈며 매섭게 용사추를 노려보았다.
"바득! 감히 잘도 본녀를 능욕했으렷다!"
혈봉황은 앞 뒤 가리지 않고 그대로 용사추에게 덮쳐들었다.
위이이잉!
순간적으로 그녀의 몸 주위로 핏빛의 강풍(强風)이 노을같이 일어났다.
핏빛강기의 노을에 덮여 날아드는 혈봉황의 모습......그것은 전설 중의 영
물인 봉황의 모습 그대로였다.
용사추는 혈봉황이 덮쳐드는 기세에 흠칫했다. 그것은 흡사 거대한 산 하
나가 눌러오는 듯한 엄청난 기세였기 때문이다.
"어이쿠......!"
용사추의 입에서는 짐짓 당황한 듯한 비명소리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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