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면신협(4)
제6장
북해십종련(北海十宗聯)의 전설
천 년 전, 북천(北天)의 패자 북해마궁의 성세는 가히 사상최강에 이르러
있었다. 그 북해마궁에는 일만 명의 초강자들이 있었고, 또 그 산하에는 규
모면에서 결코 북해마궁에 못지 않은 열 개의 강파가 부속하여 충성을 맹세
했었다.
그들을 북해십강(北海十强)이라 했으며 북해십강의 수뇌들을 일컬어 북해
십왕(北海十王)이라 불렀다.
그리고.....
__북해십종련(北海十宗聯)!
세인들은 북해마궁과 그 막하 북해십강을 통틀어 북해십종련이라고 불렀
다. 실로 가공할 세력, 북해십종련의 세력의 장성함은 가히 불세무적이었
다.
그들은 그들 세대보다 오백 년 그 이전에 멸망한 마교에 비견되기도 했으
니.....북해마궁은 그만큼 강대하였다.
당시 북해마궁의 궁주는 북해마종(北海魔宗) 사사천(邪史天)이라는 인물
이었다.
그는 북해무림사상 최강자였다. 그의 이름은 마도(魔道)의 계보인 군마세
보(群魔世譜)상 서열 팔위에 올라 있을 정도였다. 무적의 마왕(魔王).....
사사천은 이렇게 경원되던 당시의 천하제일마종이었다. 그는 강했으며 강한
만큼 야심도 컸다.
사사천은 북해를 벗어나 환우무림을 제패하겠다는 지대한 야심을 품고 있
었다. 하여 그는 백 년을 기약하고 중원침공을 계획했으며 놀라운 통찰력과
영도력으로 북해십종련의 모든 잠재력을 하나로 결집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 지상최강의 조직이던 북해십종련이었다.
백 년이 지났을 때, 북해십종련은 사사천의 수하에서 두 배로 강력해져
있었다. 북해마종 사사천은 만족했다. 이 정도라면 환우무림 전체와 싸워도
승산이 있다고 그는 자신했으며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드디어.....북해십종련의 중원침공의 날은 임박했으며 천하무림은 전전긍
긍하여 마지 않았다.
당시 중원무림에는 북해십종련에 맞서 싸울 만한 확실한 강자도, 확실한
세력도 존재하지를 않았다. 만일 북해십종련이 장성(長城)을 넘는다면.....
중원무림은 여지없이 북해십종련의 발 아래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그런데, 침공의 날을 열흘 앞두었을 때였다.
돌연 북해마종 사사천과 북해십강의 수뇌들인 북해십왕이 이유도 없이 실
종하고 말았다.
당연히 북해십종련은 대혼란에 빠져들었으며, 마침내는 북해마궁과 북해
십강 사이에 알력이 생겨 북해십종련은 허무하게 지상에서 사라지고 말았
다.
북해마종 사사천과 북해십왕!
그들이 왜 대사를 앞두고 실종된 것일까?
세상의 의견들은 아주 분분했다.
혹자는 북해마종 사사천과 북해십왕 사이에 의견충돌이 일어나 그들이 동
귀어진했다고도 했으며, 또 혹자는 그들 십 일 인이 중원무림이 밀파한 자
객의 손에 피격되어 쓰러졌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 어느것도 맞지 않았다.
북해마종 사사천을 좌절시킨 것은 그의 야욕과 한 명의 마녀(魔女)에 의
해 결과된 것이었다.
어느 날, 사사천은 빙하천벽의 얼음굴에서 가사상태로 얼어붙어 있는 한
명의 여인을 발굴했다. 놀랍게도 그 여인은 가공스러운 마공진력으로 자신
의 모든 심맥을 폐쇄한 채 오백여 년을 얼음속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여인의 복장과 무기 등으로 그녀의 신분을 확인한 사사천은 아연함을 금치
못했다.
천년마녀(千年魔女).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사사천보다 오백 년 그 이전에 있었던 대마녀였다. 그녀의 신분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녀는 마교의 마교십가 중 두 번째로 강했던 천년
마후성(千年魔后城)의 당대성주였다.
그녀의 군마세보(群魔世譜)와 마교 내에서의 서열은 놀랍게도 제 이 위였
다. 즉, 그녀는 마교지존인 천마(天魔) 바로 다음 서열의 강자였던 것이다.
오직 천마에게만 상좌를 양보하는 절대마녀.
그것이 천년마녀의 신분이었다.
본래, 천년마후성의 성주는 대대로 마교지존 천마의 아내로 내정되어져
있었다. 그것은 천년마녀라 해서 결코 예외가 아니었으며 정해진 율법이었
다. 그 율법을 따라 천년마녀는 당시의 마교 교주였던 십방천마(十方天魔)
철옥기(鐵玉奇)의 부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직전에 마교는 모종의 원인으로 인해 괴멸되었으며 그 와중에
서 천년마녀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강적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그녀가
강적들에게 쫓겨온 곳이 바로 이곳 북해였다. 그러다가 그녀는 자칫 부주의
하여 빙하의 틈바구니로 추락하였으며 얼음속에 갇힌 채 오백 년을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사사천이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다.
천년마녀를 발견한 순간 사사천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만일 천년마녀를
부활시켜 수하로 삼는다면 천하에 누가 있어 자신에게 대항하랴? 그는 흥분
했고 그 즉시 북해십왕을 불러 천년마녀를 깨울 준비를 했다.
그러나.....그것이 파멸의 시작임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북해십왕은 물
론 북해마종 사사천까지도.
그들은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천년마녀를 깨우려 했고 마침내 성공할 수
있었다. 천년마녀, 그녀가 드디어 오백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북해십왕과 사사천은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깨어나자마자 천년마녀가 처음으로 한 일. 그것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일격에 북해십왕의 심맥을 갈가리 끊어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투명명옥강살은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북해십왕, 그 열명의 초강자
들이 변변히 대항조차 못해 보고 전신경락이 갈가리 찢겨버린 것이다.
이어 천년마녀의 살수는 북해마종 사사천에게 향했다. 하지만 사사천 역
시 군마세보 서열팔위의 초강자였다. 그는 분노하는 중에서도 천년마녀에게
강력한 반격을 가했다.
그것은 경천동지의 대접전이었다.
양대 절정마종들의 대결은 실로 땅이 무너지고 하늘이 뒤흔들리는 무서운
것이었다. 대접전은 무려 일천 초에 이르렀으며 일천 초가 지난 순간 사사
천은 아차하는 사이에 천년마녀의 투명명옥강살에 휘말리고 말았다.
결국 사사천은 한 말은 됨직한 피를 토해내고 무참하게 패주해야만 했다.
천년마녀는 그런 사사천을 추격하여 추살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명의 노승(老僧)이 나타나 그녀를 제지하였다. 적
족(赤足)에 한 자루 법륜(法輪)을 든 성스러운 풍모의 노승.
뇌음천존(雷音天尊).
이것이 그 노승의 이름이다.
그는 천축 대뢰음사(大雷音事)의 당대주지가 되는 고승이었다. 대뢰음사
사상 최강자라는 고승 뇌음천존. 본래 그는 북해십종련이 풍운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북해마종 사사천을 설득하려 천축으로부터 수만 리를
건너온 것이었다.
당시 환우를 통틀어 오직 그 뇌음천존만이 북해마종 사사천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천년마녀를 발견했던 것이다.
불(佛)과 마(魔)!
그것은 결코 융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두 절대자들은 만나는 순간 무
서운 격돌을 일으켰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천년마녀는 사사천과의 충돌로 적
잖이 지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오히려 사사천보다 강한 뇌음천존과 충
돌하였으니 그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결국, 그녀는 다시 빙동으로 쫓겨 들어갔고 뇌음천존은 그런 그녀를 빙동
안에 가두고 천년마녀의 마공과 극성의 항마법력을 지닌 뇌음법륜으로 그녀
를 영구히 금제해 버린 것이다.
뇌음천존이 천년마녀를 추살하지 않은 것은 그의 불심이 살생을 용납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으나 천년마녀의 마공진력이 너무 강했던 때문이기도 했
다. 뇌음천존의 절대항마력으로 천년마녀를 완전히 죽이기에는 부족함이 있
었던 것이다.
하여, 그는 뇌음법륜으로 그녀를 금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용사추. 그가 천 년 만에 천년마녀를 금제에서 풀
어주고 말았던 것이다.
"천년혈붕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용사추는 의아한 듯이 중얼거리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지금 그는 자신과
천년혈붕이 추락했던 곳에 서 있었다.
그런데, 천년혈붕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얼음 위에 뿌려
진 천년혈붕의 핏국만이 얼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용사추는 검미를 모으며 생각을 더듬어 보았다.
"시신이 없는 것으로 보아 죽지는 않은 모양인데.....하지만 천년혈붕의
상세는 스스로 치유할 수 없을만큼 중상이었지 않은가?"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의아함과 함께 걱정스러움이 앞섰다.
"그럼....누군가가 구해서 데려갔다는 얘긴데.....천년마녀와 다라법존
그들 중 누구일까?"
그는 두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려 보았다.
__천년마녀!
__다라법존!
그 두사람은 모두 용사추가 평생 잊지 못할 인물들이었다. 특히, 다라법
존은 더욱 그랬다.
그는 그 옛날 천년마녀를 금제했던 뇌음천존의 후예였다. 즉, 불문의 성
지 대뢰음사의 전대지존이며 천축무림의 최강자였다. 그의 세수는 백팔십
년, 이미 신화(神話)가 된 불문최강의 고수자였다.
다라법존은 다라패엽진결(多羅貝葉眞訣)이라는 최강의 항마법력을 용사추
에게 전수하고 떠났었다. 그것은 불문 항마법 중 서열 이위에 드는 것이었
다.
항마법 서열 일 위는 그 옛날 뇌음천존이 천년마녀를 제압할 때 썼다는
뇌음진결(雷音眞訣)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뇌음진결은 뇌음천존의 대에서
절전되어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사실상 다라패엽진결이 제일항마법인 것이다.
__자비심을 잊지 마오, 항상.....
다라법존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 뇌음법륜을 지닌 채 빙하천벽을 떠났었
다. 그것이 하루 전의 일이었다.
"후훗....자비심이라...."
용사추는 문득 괴이하게 웃었다. 짧은 시간 사이에 그에게 엄습한 사건들
의 그의 성격을 극도로 편협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정의(正義)와 진리에
대한 그의 시각은 상당히 편협하고 극단적으로 왜곡되어져 있었다.
"후훗....물론 잊지는 않겠소이다, 법존. 그러나.....자비지심을 베풀 만
한 가치가 있는 자에게만 베풀어져야 할 것이오!"
용사추는 싸늘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뇌리로 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면천왕....십대전신.....십전앙화 우담혜.....십대악인과 사신마
존.....
그리고, 가장 늦게, 그러나 가장 강하게 떠오른 것은 한 명의 다정하고
따뜻하게 웃는 여인의 옥용이었다.
전궁비연 궁여설.
그녀의 이름은 궁여설이었다.
다행히 용사추의 물건들은 유실된 것이 없었다.
십대악인의 유물과 수라철면, 그리고 궁여설을 산화시킨 저주스런 신도
(神刀) 은하벽정도(銀河霹霆刀)도 고스란히 그의 곁에 남아있었다.
그 외에, 용사추가 생각지도 않은 한 가지 물건이 더 발견되었다.
뇌정패왕궁(雷霆覇王弓)!
바로 이것이다.
결국 모든 사건의 열쇠가 된 환우칠중병의 하나가 되는 신궁(神弓). 그것
은 본래 십전앙화 우담혜가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천년혈붕의 등
에서 퉁겨져 나갈 때 이곳 빙하천벽으로 떨어진 것이다.
용사추는 눈을 번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놈이다. 유사시에는 도검(刀劍)을 대신할 중병기가 되는 놈이군."
그는 얼음벽에 박힌 뇌정패왕궁을 뽑아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뇌정패왕궁은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다. 언뜻 그 무게만도 수백 근으로 느
껴질 정도였다. 그것의 시위를 당기려면 역발산의 신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다루기 힘든만큼 그것은 막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평시에 뇌정
패왕궁은 시위가 풀려 있는데 시위가 풀려있는 그놈은 길이 다섯 자의 장도
(長刀)같이 보였다.
"네놈이 내 인생을 진창으로 쳐박았다. 후훗....네놈은 그 대가를 치루어
야만 한다. 네놈의 몸은....인혈(人血)로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
스윽!
용사추는 뇌정패왕궁을 쓰다듬으며 냉혹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용사추는 빙하천벽 사이의 좁은 협곡 저편을 바라보았다.
"이 협로의 끝은 어딜까?"
휘____이이잉!
고오오......
협곡 사이로 무서운 한기가 실린 빙강풍이 몰아쳐 왔으나 용사추는 꿈쩍
도 하지 않았다.
"어디.....가볼까?"
용사추는 뇌정패왕궁과 철함을 들고 협곡의 우측으로 저벅저벅 걸음을 옮
기기 시작했다.
"엇!"
용사추는 눈을 크게 뜨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놀라운 표정으로 입을
딱 벌렸다.
그의 앞에는 거대한 빙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그 빙벽은 여타의 빙벽과
달리 거울같이 투명하여 빙벽 저편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그런데, 빙벽 저편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지 않은
가? 실로 상상도 못할 기경이었다.
빙벽의 저편은 놀랍게도 거대한 호수였던 것이다.
"........!"
용사추는 입을 딱 벌린 채 넋을 잃고 빙벽 너머의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
만큼 빙벽으로 막힌 호수의 존재는 기이하고 경이로운 것이었다.
본시, 빙하천벽에는 극냉한 빙강풍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협곡으로 흘
러들어오는 호수의 물을 순간적으로 열려버릴 수 있을 만큼 차가운 것이었
다. 그 때문에, 용사추가 보고 있는 투명한 얼음의 장막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용사추가 놀라움으로 아연해 있을 때였다.
빙벽 저편에서 하나의 금빛 물체가 빙벽쪽으로 다가왔다.
".......!"
용사추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 금빛 물체를 바라보았다.
금구(金龜)!
아, 그것은 한 마리 황금빛의 갑주를 지닌 거대한 거북이 아닌가? 그 금
구는 천 년 이상 살아온 영물인 듯 갑주가 무려 일 장 이상이나 되었다.
"이런 곳에서 전설 속의 금갑신구(金甲神龜)를 보게 되다니...!"
용사추는 경이의 표정을 지었다. 실로 뜻밖의 장소에서 전설 속의 영물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때, 예의 금갑신구는 빙벽 바로 앞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갸웃!
금갑신구는 빙벽 이쪽의 용사추가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
다. 용사추가 금갑신구를 구경하고 있듯이 금갑신구 역시 용사추를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득,
용사추의 뱃속에서 밥벌레들이 꼬르륵거리며 아우성을 질렀다. 그제서야
용사추는 자산이 아주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어
깨를 으쓱하며 금갑신구를 바라보았다.
"후훗! 네 녀석은 잘못 나타났다. 하필이면 내가 배고플 때 나타나다
니....!"
그는 철함과 뇌정패왕궁을 내려놓으며 히죽 웃었다. 금갑신구는 그런 그
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유유히 몸을 돌려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핫하, 이놈! 기다려라!"
쾅!
용사추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대로 빙벽에 몸을 부딪쳐 갔다.
쩌____엉! 콰드득!
그의 무쇠같이 단단한 몸은 얼음벽을 깨뜨리며 그대로 호수로 뛰쳐들어갔
다. 그 직후, 빙벽이 깨진 틈으로 쏟아져 나가던 호수물은 다시 순간적으로
얼어붙어 빙벽으로 굳어졌다.
용사추는 빠르게 금갑신구의 뒤를 따라 헤엄쳐갔다. 그의 수공도 상당한
것인지라 점차 금갑신구와의 사이가 가까워졌다.
그러나 금갑신구는 추격해 오는 용사추를 힐끗 돌아본 뒤 여전히 태평하
게 앞으로 나갔다. 이내 그놈은 하나의 수중동굴로 헤엄쳐 들어갔다.
(후훗! 이놈, 제대로 걸렸다.)
촤____아!
용사추는 은하벽정도를 뽑아들며 히죽 웃고는 금갑신구가 들어간 수동으
로 따라 들어갔다.
동굴은 깊지 않았다. 삼십여 장 정도 나갔을 때 동굴은 끝이 났으며 그
곳에 금갑신구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용사추가 바짝 다가섰으나 금갑신구는 붉은 눈을 데룩데룩 굴릴 뿐 아무
런 경계의 빛도 띄우지 않았다. 경계는커녕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한 기색이
었다.
(불쌍한 놈! 안 됐지만 네놈은 내가 무공을 완성할 때까지 나의 식량이
되어 주어야만 한다.)
용사추는 은하벽정도를 쳐들고 금갑신구에게 다가섰다.
그런데 갑자기 용사추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몸을 멈춰 세웠다. 그는 눈
을 크게 치뜨고 동굴 끝의 석벽을 바라보았다.
이끼가 가득히 뒤덮인 석벽. 놀랍게도 그곳에는 한 구의 사람의 골격이
깊숙이 박혀 있지 않은가?
(이....이런 곳에 사람의 시체가 있다니....!)
용사추는 경이의 표정을 지으며 석벽에 박힌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 골격
은 상당한 장신이었던 인물의 것으로 보였다. 일견하기에도 육 척의 용사추
보다 한 뼘 정도는 더 커보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골격은 푸른 빛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시신의 주
인이 살아있을 때 절정의 기문사공(奇門邪功)을 연마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었다.
그리고, 그 시신의 골격에는 한 벌의 푸른 빛이 나는 고대전포가 걸쳐져
있었다. 그것은 비늘같은 무늬의 전포였는데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조금도
상하지 않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었다.
"글이.....있군."
용사추는 눈을 빛내며 시신이 박혀있는 석벽으로 다가섰다.
이끼가 가득한 석벽에는 대전체의 글이 가득 적혀 있었다. 그것은 천 년
이전에 쓰여진 글이었다.
용사추는 이끼를 뜯어내며 글을 읽어내려 갔다.
<우부(愚夫) 사사천(邪史天)이 회한과 죄책감으로 이 글을 남긴다.>
그 글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북해.....마종 사사천!"
용사추는 경악의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그는 아연해졌다.
다라법존에게서 그 옛날 천년마녀와 북해마종 사사천 사이에 있었던 이야
기를 이미 들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북해마종 사사천!
벽에 박힌 채 죽어간 인물은 바로 북해마종 사사천이었던 것이다. 북해무
림 사상 최강의 마종! 천년마녀를 깨웠다가 파멸해버린 비운의 거마(巨魔)
의 유해가 용사추의 앞에 있는 것이다.
어찌 놀랍지 않은가?
북해십왕의 시신은 금마지문에서 발견되었으나 사사천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가 이런 수중동굴에 들어와 죽었기 때문이었다.
용사추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계속 글을 읽어 내려갔다.
<본좌는 북해마궁 제팔대 궁주이고 북해십종련의 맹주인 북해마종 사사천
이다.....中略.....본좌의 과욕이 북해무림의 파멸을 초래했다. 무슨 낯으
로 북해의 하늘 아래 몸을 뉘겠는가? 하여....이곳 북극빙호(北極氷湖)의
차가운 발 아래 본좌의 시신을 묻어버릴 작정이다.....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본좌의 죽음으로 북해마궁 최후의 마공진결인 사라마결(邪羅魔訣)이
절전되는 것이다. 혹시 연자가 있어 이 글을 본다면 본좌의 사라마결을 북
해문도에게 돌려주기를 바란다. 그 대가로 북해제일지보인 사라보갑(邪羅寶
甲)을 그대에게 기증하는 바이다.
__북해의 죄인 사사천(邪史天) 서(書).>
그리고, 그 글 아래로 장문의 구결(口訣)이 기록되어 있었다.
__사라마결.
바로 북해마궁 최후최강의 마공진결이 그것이었다. 그것은 북해무림 최강
의 마공이었다. 마교의 최강절기들인 천마십예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절정
의 마공구결들.
"........!"
용사추는 홀린 듯이 사라마결의 구결을 외웠다. 그것은 그가 접한 어떤
무공보다 강력하고 심오한 것이었다. 사라마결을 완성하면 일신이 은은한
청색서기로 뒤덮이게 된다. 그것은 사라청옥강벽(邪羅靑玉 壁)이라고 하며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도검이 불침하는 금강지체가 된다.
그러나 북해마궁사상 누구도 사라마결을 십이성 연마하지는 못했다. 북해
무림사상 최강자라는 북해마종 사사천도 겨우 팔성의 경지에 이르렀을 뿐이
다.
그 때문에, 천년마녀의 투명강살에 스쳐 변을 당하게 된것이고.
"부탁을 들어드리리다."
용사추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후예가 아직까지 존재한다면 사라마결은 분명 전해주겠소. 그 대
신....그대의 선물도 확실히 접수하겠소. 북해마종!"
그는 거리낌 없이 북해마종 사사천이 입고 있던 청색의 보의를 벗겼다.
그 청색전포가 바로 사라보갑이었다. 북해마궁의 제일지보가 되는 보의.
그것은 거의 모든 충격에서 몸을 지켜주는 호신보의였다. 사라보갑이 감
당치 못하는 충격은 천마십예 정도의 절대력 뿐이었다.
사라보갑을 접수한 용사추는 문득 금갑신구를 돌아보며 입맛을 다셨다.
"네놈을 잡아먹는 일은 아쉽지만 그만두어야겠다."
하지만 금갑신구는 용사추의 말은 안중에도 없는 듯 여전히 태평스럽게
툭 튀어나온 두 눈을 데룩데룩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쩝! 그렇다고 오해는 마라. 네놈이 귀여워서 먹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네놈은 너무 오래 살아서 고기가 질길 것 같아서 안 먹겠다는 것 뿐이
니...."
용사추는 입술을 실룩이며 돌아섰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그는 자신을 북
해마종 사사천과 만나게 해준 금갑신구를 차마 해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끼룩....!
용사추가 동굴을 나서자 금갑신구도 나직한 울음소리를 내며 엉금엉금 기
어서 따라 나왔다.
용사추는 힐끗 뒤를 돌아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
며 금갑신구에게 타일렀다.
"멍청한 놈. 제발 쫓아오지 마라! 나란 놈은 자제심이 강하지를 못해 언
제 네놈을 먹고싶어 못 견디게 될지도 모르니....!"
하지만 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금갑신구는 엉금엉금 용사추
의 뒤를 따라올 뿐이었다.
__북극빙호(北極氷湖).
빙하천벽 너머에 자리한 얼음의 호수. 수만 리에 걸쳐 뻗친 드넓은 호면
전체가 투명한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북해제일호이다.
눈(雪).
새하얀 설화(雪花)가 삭풍에 흩날리며 북극빙호의 호면 위로 쌓이고 있었
다. 십여 장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설풍(雪風).
그 광경은 흡사 수천, 수만 마리의 설룡(雪龍)들이 날아오르는 듯한 장관
을 연출했다.
슈___욱!
문득, 설풍을 꿰뚫고 북극빙호의 동편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폭사되어 왔
다. 빙판 위에 쌓인 눈 위로 미끄러지듯 질주해 오는 인영. 그 인영은 매우
왜소한 체격이었다.
그러나, 쌓인 눈을 밟으며 날아오는 속도만큼은 비려하고도 기쾌하기 이
를 데 없었다.
"하아....하아.....!"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눈 위로 미끄러지듯 달리는 왜영. 놀랍게도 그 왜
영은 한 명의 소녀였다.
눈의 요정인가?
백설같이 새하얀 피부에 그와 대조적인 흑단같이 검고 탐스러운 수발, 흑
요석을 박아 놓은 듯 새카맣게 반짝이는 커다란 눈동자.
거기에 더하여 빨갛게 상기된 능금빛 두 볼은 그 소녀를 흡사 눈의 정령
(精靈)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소녀는 몸에 여우가죽의 피의를 걸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옷이란 것이
무릎까지 드러나는 위태위태한 것이었다. 생명이 생존하는 것을 거부하는
북해의 지독한 혹한에도 소녀는 한조각 피의만 걸친 차림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양 태연했다.
"하아....하아....!"
소녀는 새하얀 입김을 토하며 미끄러지듯 눈 위로 질주했다. 그런 그녀의
한 손에는 짧은 단도가 움켜져 있었다.
길이는 한 자 반, 반투명한 새하얀 도신에 붉은 빛이 도는 보석이 박힌
단도였다.
일견하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칼이었다.
"........!"
피의소녀는 설원을 질주하며 다급한 표정으로 흘끔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그녀의 삼십여장 뒤.
"흐흣.....서랏! 설족(雪族)의 어린 계집!"
"크녠. 고것 꽤나 탱탱한데.....!"
스스.....슥!
십여 줄기의 흑영들이 유령같이 소녀의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전신을 두
터운 흑포로 감싸고 얼굴에는 섬뜩한 귀면탈을 뒤집어쓴 자들. 그들은 사악
한 음소를 터뜨리며 소녀의 뒤로 육박해 왔다.
그자들이 펼치는 경공은 놀랍게도 설지비행(雪地飛行)이라는 천하십대경
공에 드는 경공술이었다. 설지의 한 자 위를 날아 폭사되는 무상의 경공,
그것이 그자들에게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슥!
"하아.....하....!"
피의소녀는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으나 어느덧 열 명의 귀면인들과의
사이는 십 장으로 좁혀져 있었다.
소녀는 붉디붉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더 이상 귀면인들에게서 달아나
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파파___팍!
한순간 소녀의 교구가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설지 위에 멈추어 서며 핑그
르르 돌아섰다.
"어엇!"
"조심해랏!"
화드득!
귀면인들은 돌연한 소녀의 태도에 경호성을 터뜨리며 급급히 몸을 멈추어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그곳은 얼음 위에 쌓인 눈밭이었다.
귀면인들이 아무리 절정고수자들이라 해도 소녀같이 경쾌하게 몸을 세우
는 것은 무리였다.
그자들은 얼음 위에 파열을 일으키며 간신히 몸을 세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순간적으로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려야만 했다.
슈____하악!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소녀의 손에 들렸던 단도가 질풍같이 귀면인들에 그
어졌다. 빗발치듯 그어지는 도세, 그것은 흡사 천 마리의 설룡이 덮쳐나가
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도세였다.
"어엇! 설형난형풍(雪形亂形風)의 도법이다!"
"조심해라. 북해제일도법이다!"
"커____어억!"
다급한 경호성이 일며 그 중에서 선연한 피무지개가 퍼져올라 설지 위로
뿌려졌다.
퍼____퍽!
쿵!
순간적으로 열 명의 귀면인 중에서 네 명의 허리가 잘라져 바닥으로 나뒹
굴었다.
"바득! 갈아마셔도 시원치 않을 계집!"
"카캇. 과연....설족의 여왕다운 손속이다!"
변을 모면한 나머지 육인들은 이를 갈며 질풍같이 몸을 휘돌려 피의소녀
를 여섯 방위로 포위했다.
설족의 여왕!
이것이 소녀의 이름일까?
눈의 여왕....그것은 소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적절한 이름으로 보였
다.
"크녠! 감히 지존마맹(至尊魔盟)의 일천마왕군(一千魔王群)의 형제를 베
었겠다!"
"카앗! 너 어린 계집의 배 위에 우리 일천마왕을 모조리 태워야 하리라!"
스____으.....!
육인의 귀면인들은 사악하게 웃으며 소매를 쳐들었다.
철컹! 철컹!
그러자 그자들의 소매에서 가는 쇠사슬이 폭사되어 찰나지간에 피의소녀
의 교구를 휘감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악!"
소녀는 다급한 비명을 토하며 몸부림쳤으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녀의
두 팔 역시 쇠사슬에 휘감겨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크녠! 마라철삭이라는 것이다. 어린 계집!"
스읏___!
귀면인들은 가면 안에서 사악하게 눈을 번뜩이며 쇠사슬을 당겨 서서히
소녀에게 접근해 왔다.
(아아....틀렸다.)
소녀는 절망의 표정이 되었다.
(북해마궁의 영화를....나 설옥경(雪玉莖)의 손으로 재현해 보려 했는
데.....)
설족여왕 설옥경의 맑고 아름다운 두 눈에 물기가 글썽하게 어렸다.
"캇캇....!"
"크녠.....서러워할 것 없다. 네년의 몸은 본 지존마행 소종사님의 빙백
강살을 연마하는데 먼저 쓰이고 우리 일천마왕의 사랑을 받게 될 테니
까.....!"
귀면인들은 절망에 빠진 설옥경을 향해 사악하게 웃으며 다가섰다.
그런데, 바로 이 때였다.
쩌_____어억!
갑자기 북극빙호의 얼음 아래서 한 줄기 새파란 도기(刀氣)가 무지개같이
폭출했다.
"커____어억!"
퍼퍼퍽!
그 도기는 그대로 한 명의 귀면인을 사타구니에서 정수리까지 둘로 쪼개
어 버렸다. 역겨운 피냄새와 함께 삽시에 새하얀 설지가 귀면인의 피와 내
장의 내용물로 뒤덮였다.
"어억!"
"웬놈이냐?"
"조심해라! 빙판 아래 어떤 놈인가 있다!"
귀면인들은 경악성을 토하며 급급히 자신들의 발 아래 빙판을 내려다 보
았다.
설옥경도 흠칫 놀란 표정으로 급히 자신의 발 아래 빙판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지며 놀라움에 찬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앗!"
투명한 빙판 아래.
한 명의 청년이 빙판 아래에 달라붙은 채 히죽 웃으며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산발한 긴 머리가 수초처럼 물 속에 흔들리고 기이한 고대전
포를 몸에 걸친 건장한 체구의 청년.
그 청년은 얼음 아래서 히죽 웃으며 짧은 피의 속의 소녀의 아랫도리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흐윽....!)
설옥경은 아연실색하며 질끈 눈을 감았다. 그녀의 옥용은 부끄러움으로
이내 새빨갛게 물들었다. 사실 그녀는 피의 속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
었던 것이다.
그 탓에 빙판 아래 청년은 보기 싫어도 피의 속에 감춰진 소녀의 아랫도
리를 일목요연하게 들여다 볼 수가 있었다.
(난 몰라!)
설옥경은 두 볼이 새빨갛게 물든 채 수치와 당황을 금치못했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 그녀는 드러난 자신의 치부를 가릴 수 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마라철삭에 묶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허벅지를 최대한으로 꼭 붙
여 은밀한 그곳 만이라도 감추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억! 저기다!"
"웨놈이냐?"
이때, 귀면인들도 빙판 아래의 청년을 발견하고는 분분한 폭갈을 내질렀
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은 이내 요란한 파열음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쩌저_____정!
콰드드득!
돌연 북극빙호의 일 장 두께 빙판이 거북등같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한 것
이다.
"꺄악!"
설옥경은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꼬옥 감아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물에 빠지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몸을 묶고 있던 마라철삭이 썩은 새끼줄같이 끊겨나가고 그
녀의 작고 앙증맞은 몸은 하나의 굳강한 팔 안에 안겨 있었다.
"........!"
어리둥절하여 살며시 눈을 뜨던 설옥경의 봉목이 경악으로 휘둥그래졌다.
꺼져내린 빙판 사이.
그곳에는 일 장이 넘는 거대한 금갑신구가 떠올라 있었고 설옥경의 작은
교구는 예의 신비한 청년과 함께 금갑신구의 등 위에 올라타 있었던 것이
다.
물론 신비청년은 용사추였다. 찬란한 황금빛의 금갑신구 위에 고대전포를
걸친 채 우뚝 서 있는 장신의 용사추. 그 모습은 흡사 해신(海神)이 현신한
듯 당당하고 위엄이 넘쳐 흘렀다.
"네놈은 누구냐?"
"카앗! 감히 지존마맹의 일을 방해하다니....!"
"죽어랏!"
다섯명의 귀면인들이 폭갈을 내지르며 그대로 용사추를 향해 폭사되어 왔
다. 그들의 기세는 흉흉하고 난폭하기 이를 데 없어 순간적으로 수십 장 방
원이 귀면인들이 펼친 공세에 휘말려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자들은 개개인이 사신마존에 육박하는 고수자들이었던 것이
다.
"악!"
설옥경은 비명을 지르며 용사추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만큼 그 자
들의 합공은 무서운 것이었다.
하지만 용사추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후훗.....제법인데....!"
그는 낮은 기소를 흘리며 좌수를 비스듬히 그어 냈다.
쩌____어엉!
그의 좌수에서 한 가닥 새파란 강기가 폭출되어 귀면인들을 베어갔다.
"이....이것은 옥마(玉魔)의 옥마벽강참(玉魔碧 斬)!"
"너.....너는 악마초인....케___에엑!"
"끄악!"
귀면인들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지며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냈다.
그들은 한 눈에 용사추의 내력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나 경악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들의 혼은 이미 몸을 떠나고 있었
다. 용사추의 손 끝에서 일어난 강력한 역도가 순간적으로 그들의 심장을
산산이 바스러뜨린 것이었다.
__옥마벽강참!
십대악인의 막내 옥마(玉魔) 옥수린. 그의 성명절기가 가장 완벽한 형태
로 시전되었던 것이다. 옥마의 절기에는 호신강벽을 전문적으로 깨뜨리는
파천지력이 담겨 있었다.
용사추는 옥마의 옥마경을 보았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놀랍게도 옥
마경에 기록된 절기들은 십대악인들의 그 누구의 절기보다도 무서운 것들이
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포인마나 적수패존 막륭의 절기들도 옥마경의 절기보다 강하다
고는 감히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옥마벽강참은 그 옥마경상의 옥마오절
(玉魔五絶) 중 하나가 되는 절기였다.
제7장
난세(亂世)의 마룡(魔龍)들,
혼세사패천(混世四覇天)
용사추는 귀면인들에게 다가서서 그들의 시신을 살펴보았다.
(흠....놀라운데.....사신마존만큼 강한 저들이 십여 명 씩이나 이런 북
해 오지에 나타나다니....)
그자들이 쓰고 있는 귀면은 용사추가 갖고 있는 수라철면과 흡사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그 귀면에도 수라철면같이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숫자
들은 구백 구십 팔에 이르는 연결된 숫자들이었다.
"구백.....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숫자들일까?"
용사추는 팔짱을 끼고 귀면을 내려다 보았다.
이때, 문득 한가닥 기어들어가는 듯한 소녀의 음성이 용사추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들은....지존마맹의 마왕들인 일천마왕군의 열 사람이에요."
"지존....마맹?"
용사추는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섰다. 그런 그의 눈에 금갑신구의 등에 쪼
그리고 앉은 앙증맞은 소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설족여왕 설옥경이 동그란 털공같이 웅크리고 앉은 채 조심스럽게 용사추
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녀의 볼은 능금같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소녀의 가장 부끄러운 곳을 용사추에게 보이고 말았지 않
은가? 게다가 그녀는 설족이라는 일단의 종족의 여왕이 되는 고귀한 몸이었
다.
비록 용사추가 그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부끄러워 할 것 없어, 어린 아가씨!"
용사추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설옥경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히죽
웃었다.
"나는 여자를 좋아하지만 아직 잔디도 나지 않은 꽃밭에 혹할 정도는 아
니니까!"
그는 힐끗 설옥경의 뽀얀 허벅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 말
에 설옥경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이 되었다.
"당.....당신이 감히.....!"
그녀는 분노와 수치, 모욕감을 참을 수 없었다.
눈의 여왕! 그녀가 언제 그런 노골적인 야유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설
옥경은 억울한 일을 당한 어린 아이같이 울먹거렸다.
그러나 용사추는 그런 그녀의 모습은 아랑곳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태연
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억울해 할 것 없어! 나는 본대로 말했을 뿐이니까. 억울하면.....열심히
엄마 젖을 더 먹고 빨리 어른이 되는 거야....!"
"당.....당신 정말.....!"
설옥경은 입술을 깨물며 울먹거렸다. 그녀는 정말 펑펑 울어버릴 듯이 보
였다.
본대로라.....
그 한 마디가 설옥경을 죽고 싶은 심정으로 만들었다. 용사추가 말한 것
은 사실이었다.
행여나 용사추가 자신의 은밀한 곳을 못 보았으면 하던 그녀의 기대를 용
사추는 무참하게 깨뜨려 버린 것이다.
(나...나쁜 자식..! 반드시 복수하고 말 테야. 감히 나 설족의 여왕을 능
멸하다니.... 개같이 엎드려서.... 내 발을 핥게 하고 말 테야!)
설옥경은 새파란 독기가 흐르는 눈으로 용사추를 노려보았다. 오한이 돋
을 정도로 매서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용사추는 그저 태평스런 표정을 짓고 있
을 뿐이었다. 문득, 그는 귀면인들의 시신을 툭 걷어차며 의아한 표정을 지
었다.
"한데....지존마맹이라니....무슨 소리지?"
"지존마맹도 모른단 말이에요? 보아하니 무림인인 듯 한데....!"
설옥경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샐쭉하게 쏘아부쳤다.
이번이 기회다 싶어 그녀는 고양이같은 눈을 반짝이며 용사추를 흘겨보았
다.
용사추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모르겠는데?"
그는 고양이 눈을 하고 쏘아보는 설옥경의 표정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문
득 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때? 지존마맹이란 것에 대해 알려주지 않겠어? 알려주면....한 가지
상을 주지!"
"상 같은 것은 필요없어요!"
설옥경은 차갑게 쏘아부치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말을 하는 그녀
의 얼굴은 어느새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용사추의 미소를 접하는 순간 그녀의 작은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콩닥거
리며 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용사추의 그
미소야말로 실로 무서운 마력이 담긴 음서시 교아랑의 환희마소라는 것
을.....
삼년 전___
악인성이 괴멸당했을 때, 천하는 이제야 비로소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고 믿으며 크게 기뻐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난세의 종식이 아닌, 진정한 난세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
다.
악인성이 지상에서 사라진 후,
돌연 무서운 세력과 마인들이 곳곳에서 일어나 과거 악인성이 일으켰던
것보다 열 배 더한 겁풍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난세천하(亂世天下)____!
천하무림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겁풍의 소용돌이로 빠져 들어갔다.
그 난세의 주 원인은 전적으로 악인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즉, 정파의 지주인 철혈전막은 비록 악인성을 괴멸시켰으나 그들 역시 심
각한 타격을 면할 수가 없었다. 악인성과의 결전으로 그들은 거의 삼사할에
이르는 전력의 손실을 입었던 것이다.
철혈전막이 위축된다는 것은 곧 천하무림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의 위축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철혈전막의 영향력이 감소하자 십지에서 패권의 야심을
기르던 군웅들이 항거하여 대난세를 부른 것이었다.
결국.....난세의 전적인 원인은 악마초인을 길러 철혈전막에 대반격을 꾀
하려던 악인성에 있었던 것이다.
악마초인으로 인한 대난세...그것이 과연 우연히 일어난 일일까?
혼세사패천(混世四覇天)!
그 난세의 주역은 바로 혼세사패천이라고 부르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발호는 개개인이 과거 악인성의 그것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__지존마맹(至尊魔盟).
__악마십로군벌(惡魔十路軍閥).
__팔황마전(八荒魔殿).
__봉황대정천(鳳凰大正天).
이들을 일컬어 혼세사패천이라고 한다.
난세의 마룡들.....그들은 철저한 비밀의 장막에 덮인 채 자신들의 야심
을 위해 천하를 대난세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었다.
혼세사패천의 대난세.....
그러나 웬지 전황 북리황과 철혈전막은 침묵하고 있었다.
천하가 모두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으나 전황 북리황은 침묵 속에 잠긴 채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고 있었다.
지존마맹.
그들은 바로 천하난세의 네 주역 중 하나였다. 그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
려진 바가 없는 상태였다.
다만, 그들의 주력군단이 일천마왕군(一千魔王群)이란 자들이며 일천마왕
군의 상위 서열 일백 위 안에 드는 자들은 저 십대전신이나 십대악인들에
비해 조금도 못지 않은 초강자들이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일천마왕군들중 무림에 나온 자들의 수는 모두 사백이었다.
하지만 그 사백마왕군만으로도 지존마맹은 천하를 사분하는 주역이 되었
던 것이다.
열 명의 귀면인들, 그들은 바로 그 일천마왕군의 하위 서열에 속하는 자
들이었다.
(이 자들이 지존마맹 일천마왕군 휘하의 고수들이라고? 각각 사신마존만
큼 강한 이자들이....!)
용사추는 설옥경의 설명을 들으며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의 얼굴은 여전히 태연했으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런데.....아가씨는 누구지?"
문득 그는 형형한 시선으로 설옥경을 바라보았다. 무림판도에 관해 정확
하면서도 빈틈없이 꿰고 있는 그녀의 신분이 새삼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설족의 여왕.....!"
무심결에 대답하던 설옥경은 급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성
급한 대답을 이내 후회했다.
(아직.....이 자를 믿을 수 없어!)
그녀의 고양이 같은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녀는 급히 자신의 말을 정
정했다.
"설옥경(雪玉莖)이라고 해요. 설족(雪族)이라는 일족(一族)에 속해 있어
요!"
"설족! 꼬마 아가씨가?"
용사추의 태연자약하던 얼굴에 처음으로 놀라움의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꼬마가 아니에요!"
설옥경은 용사추의 말이 못마땅한 듯 샐쭉한 표정으로 앙칼지게 쏘아부쳤
다.
그런 그녀의 표정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고 귀여웠다. 용사추
는 절로 웃음이 치밀었다.
"우겨봐야 소용없어. 나는 네가 아직 젖먹이 어린아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보았으니까! 너무 확실하게 보아서 도저히 지울 수가 없을 정도인걸....!"
그는 짐짓 능글맞게 웃으며 슬쩍 설옥경의 미끈한 아랫도리로 시선을 던
졌다.
"당....당신 정말로!"
설옥경은 울상이 되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녀는 눈물마저 글썽해진
눈으로 매섭게 용사추를 노려보았다.
(이크....!)
그 사나운 기세에 용사추는 짐짓 움찔하는 기색을 지었다.
지금 그는 설옥경을 놀리고 있었으나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었었
다.
__설족(雪族).
그들은 전설같이 그 존재가 전해 내려오는 신비일족이었다. 설족의 생활
근거지는 얼음과 눈(雪)의 대지 북해(北海)였다.
수천 년을 눈과 함께 살아오면서 그들 일족의 체질은 아주 특이하게 변했
다.
즉, 그들의 몸에는 선천적으로 무서운 빙기(氷氣)가 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빙백음강(氷魄陰 )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산 사람을 얼음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빙백음강!
그만큼 빙백음강은 무서운 것이었다.
특히, 빙백음강은 설족 여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런 탓으로, 설족
의 여인들은 천 년 간 무림인들의 가장 희귀하고 값진 사냥감(?)이 되어 왔
다.
만일 설족의 여인을 잡아 채음보양술로 범하면 절정의 위력을 지닌 빙백
강살을 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존마맹의 일천마왕.
그 자들도 바로 그 때문에 설족의 여인을 사냥하러 북해에 왔던 것이다.
(이상하군.)
문득 용사추의 가슴에 강한 의혹이 떠올랐다. 그는 의아한 눈빛으로 설옥
경을 바라보았다.
(이 소녀는....모습은 설족이나 설족의 여아가 아니다! 아까 안았을 때
전혀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기이함을 느끼며 강한 눈빛으로 설옥경을 살펴보았다.
".........!"
그런 그의 눈빛을 받은 설옥경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절
로 긴장감을 느끼며 숨소리마저 삼켜야 했다.
(무.....무서운 눈빛이다. 설마 이 자가....나의 비밀을 알아차린 것이
아닐까?)
그녀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용사추의 기색을 살폈다.
설족의 여왕이라 알려진 설옥경.
그러나 그녀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천년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오오오옷!"
문득 한 소리 찢어질 듯 날카로운 여인의 교갈이설풍의 장막 저편에서 들
려왔다.
그 교갈을 들은 설옥경은 갑자기 안색이 홱 변했다.
"설모(雪母) 언니가....!"
파____앗!
그녀는 앞 뒤 생각할 것도 없이 다급히 퉁겨지듯이 금갑신구의 갑주 위에
서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날아가지 못했다.
"후훗! 아직 상을 받지 않았을 텐데.....!"
스윽!
짖궂은 웃음소리와 함께 설옥경의 한 줌밖에 안 되는 허리가 사내의 무쇠
같은 팔에 휘감겨 죄어진 것이었다.
설옥경은 다급히 용사추의 팔을 떨쳐내려 했다.
"놔요! 설모언니가 위험.....읍!"
날카롭게 소리치던 설옥경의 두 눈이 갑자기 하얗게 치떠졌다.
용사추의 두툼한 입술이 별안간 그녀의 작은 입술을 틀어막아 버렸기 때
문이다. 그것은 정말 예기치 못한 사태였다.
설옥경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반항 조차 하지 못했다.
생전 처음으로 하는 입맞춤이었다. 그녀는 너무나 아찔한 충격에 현기증
마저 느껴 이 순간 당연히 저항해야 마땅함에도 전혀 그럴 엄두를 내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용사추는 그런 기회를 적시에 포착한 것을 득의양양해 하며 달콤하고 뜨
거운 설옥경의 입술을 집요하게 탐했다. 그는 가지런히 닫혀있는 설옥경의
고른 치열을 혀로 비집고 깊숙이 안으로 침범해 들어갔다.
설옥경의 입술에서는 향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순결한 소녀만이
지닐 수 있는 향긋한 꽃내음같은 것이었다. 용사추는 그 향기에 취해 부드
럽고 강하게 설옥경의 꽃잎같은 입술을 탐했다.
"음.....!"
설옥경은 숨이 막히는 열기와 기이한 쾌감에 몸을 떨며 아득하고 깊은 나
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 쾌감은 막 뜨겁게 비등하
는 순간 끝이 나고 말았다.
"후훗! 이게 상이다. 이제 되었......어이쿠!"
찰____싹!
입맞춤을 끝내고 짖궂은 어투로 말을 하던 용사추의 뺨에 불이 번쩍 튀었
다. 비로소 정신을 차린 설옥경이 작은 교수로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친 것
이었다.
그녀는 수치와 분노에 옥용을 빨갛게 붉힌 채 씩씩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한 차례 손찌검을 한 것 만으로는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는 기세였
다.
"나....나쁜 자식! 꼭 복수하고 말 테야!"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앙칼진 어조로 쏘아부쳤다. 그것은 그녀의 진
심이었다. 졸지에 나타나 감히 설족의 여왕인 자신의 입술을 훔쳐가다
니......
쐐____액!
그 말을 마침과 함께 설옥경은 용사추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그의 품에서
날쌘 재비처럼 날아나갔다.
"반드시.....복수하고 말 테야.....!"
울음 섞인 음성으로 다시 한 번 다짐하는 것을 잊지않는 설옥경. 그녀의
모습은 이내 설풍의 장막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용사추는 흠칫했다.
"설형....비폭류(雪形秘瀑流)!"
그의 눈에서 어느덧 짖궂은 장난기는 사라지고 강렬한 신광이 흘러나왔
다.
설형비폭류____
그것은 북해제일의 경공술이었다. 바로 북해마궁의 비전경공인 것이다.
"화후가 보잘 것 없으나 저것은 북해마궁의 십대절기 중 하나인 설형비폭
류가 틀림없다. 역시.....저 아이에게는 비밀이 있다."
용사추는 설풍 저편으로 아득히 사라져버린 설옥경의 뒷모습을 쫓으며 형
형하게 눈을 번득였다.
끼륵.....!
그때 문득 옆에 버티고 서 있던 금갑신구가 마치 무엇을 잃은 듯 허전한
표정으로 서있는 용사추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괴이한 울음을 흘려냈다.
"무얼봐! 멍청한 놈!"
용사추는 괴이쩍은 울음을 흘리는 금갑신구를 향해 짐짓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나는 볼일이 있어 늦게 돌아갈 테니.....네녀석부터 빙하곡으로 돌아가
있거라!"
스____읏!
말을 마치자 마자 그는 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어 그의 모습은 삽시
에 흩날리는 설풍속으로 사라져 갔다.
북극빙호(北極氷湖)의 서안(西岸).
스으.....스으.....
예외없이 그곳에도 자욱한 설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냉기를 몰고오며 분
분이 흩날리는 눈바람.
그 속에서 이 인이 대치하고 있었다.
일남일녀.
그들은 일견하여 범상치 않은 행색을 지닌 남녀들이었다.
여인의 모습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눈(雪)의 화신(化身)이랄까?
그녀의 피부는 희디 희어서 혈색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었었다. 흡사
눈으로 빚어 놓은 듯이 보이는 새하얀 피부는 속이 들여다 보일 정도로 투
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칠흑같이 검은 수발을 발 끝까지 드리우고 있
는 여인.
그녀의 훤칠한 교구는 한 겹의 종이같이 얇은 백의에 휘감겨 있었다.
스으....스으.....
설풍이 여인의 교구를 스칠 때마다 얇디얇은 백의나삼이 몸에 착 달라붙
어 뇌살적인 여체의 굴곡이 숨막힐 듯이 드러났다.
그런데, 지금 여인은 성한 몸이 아니었다.
똑....똑.....
그녀의 봉긋한 젖가슴 사이에는 한 자루 종이같이 얇은 유엽도가 깊숙이
박혀 있었고 그곳으로부터 뭉클뭉클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녀의 가슴에서 흐르는 피는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빛
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새파란 청색의 피(靑血)이 아닌가?
새햐얀 여인의 가슴에서 솟구치는 선명한 청혈은 실로 기이한 느낌을 자
아냈다.
새파란 피.....그것은 그 여인이 설족의 여인임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
설족의 여인은 중상을 입었건만 조금도 게의치 않는 듯 푸른 빛이 도는
눈으로 무심하게 전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는 흡사 여신과도 같은 고고함과 기품이 서려있었다.
여인의 전면.
"핫하! 과연.....북해설모(北海雪母)의 명성은 명불허전이군."
화르륵!
한 명의 귀면인이 붉은 장포를 설풍에 펄럭이며 우뚝 선 채 웃고 있었다.
타는 듯이 붉은 장포에 귀면 사이로 붉은 기운이 흐르는 섬뜩한 눈을 지
닌 자였다. 그자의 귀면에는 일천(一千)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일천.....그렇다면 이 자가 지존마맹의 마인군단 일천마왕군 중 최후의
인물인 제일천마왕(第一天魔王)이란 말인가!
"순식간에 십마왕(十魔王)을 얼음으로 만들어 버리다니....과연 북해제일
고수답소, 북해설모(北海雪母)!"
츠___읏!
천마왕이 북해설모를 바라보며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다지 크지 않으나
지극히 막강한 마력이 깃든 음성이었다.
과연, 두 사람이 대치한 주위에는 열명의 귀면인들이 얼어붙어 있었다.
얼음덩이가 된 채 뒹굴고 있는 열 명의 귀면인들..... 놀랍게도 그들의 귀
면에 새겨져 있는 숫자는 이백 단위의 숫자였다.
이백 단위의 마왕들.....그들은 단 한 번도 무림에 나오지 않았던 지존맹
의 초고수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놀랍게도 얼음으로 화해 있는 것이다.
"후훗! 안 되었지만.....설모께서는 본좌 천수적룡(千手赤龍)과 함께 지
존마맹(至尊魔盟)으로 가주셔야 하겠소!"
스____읏!
천호마왕(千號魔王) 천수적룡이 귀면 사이로 붉은 기운이 도는 눈을 번뜩
이며 북해설모라는 여인에게로 다가섰다.
".........!"
다가서는 천호마왕을 바라보며 북해설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
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실상 손가락 하나 움직
일 힘도 없었던 것이다.
이내 천호마왕 천수적룡은 북해설모의 지척에 이르렀다. 그는 북해설모의
지금 상태가 어떤지 잘 아는 듯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북해설모는 꼼짝없이 천수적룡의 손아귀에 제압되고 말 것이
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죽엇!"
돌연 한 소리 갈라지는 듯한 소녀의 교갈이 천수적룡의 등 뒤에서 터져나
왔다.
쐐_____애액!
빗발치는 듯한 기세의 도기(刀氣)가 천수적룡의 등으로 그어진 것도 그
때였다.
"설형난형풍의 도법.....?"
천수적룡은 흠칫하며 벼락같이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시선으로 한 명의 피의소녀가 설풍을 타고 쏜살같이 짓쳐들어
오는 것이 들어왔다. 마치 한 마리 설룡(雪龍)이 덮쳐드는 듯한 기세의 도
법.
___설형난형풍(雪形亂形風)!
그것은 바로 북해마궁 비전의 북해십절중 하나가 되는 도법으로 천수적룡
을 덮쳐든 소녀는 바로 설옥경이었다.
설족의 여왕이라는 깜찍한 소녀.
고오오.......휘리리링!
천 마리의 설룡이 서로 뒤엉켜 용트림하는 형상으로 천수적룡을 휩쓸어왔
다. 그 기세는 가히 설지를 양단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러나 상대는 강했다.
"후훗! 설형난형풍 정도로는 어림없다!"
위_____이잉!
천수적룡은 음침한 비웃음을 흘리며 슬쩍 좌수를 쳐들어 설옥경을 향해
내쳤다. 그 자의 손끝에서 한 줄기 막강한 열화강력(熱火 力)이 폭죽 터지
듯이 일어 설옥경의 전신을 휩쓸어 갔다.
"악!"
콰_____아앙!
다음 순간 굉렬한 굉음이 일며 설옥경의 작은 몸이 날아오던 것보다 더
빠르게 퉁겨져 나갔다. 그런 광경은 마치 천 마리의 설룡이 한 마리 적룡
(赤龍)에게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후훗! 북해절기 따위로는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천수적룡은 지면으로 퉁겨져 나가는 설옥경을 바라보며 득의의 눈빛을 띄
웠다.
그런데, 그 자의 말이 막 끝났을 때였다.
"북해.....의 절기 따위라고 했으렷다?"
우르르릉........!
갑자기 한 마디 무서운 폭갈이 터져 사위를 뒤흔들었다. 폭갈이 일으킨
음파의 파동에 몰아치던 설풍이 쩍쩍 갈라지며 암천으로 퉁겨져 올라갔다.
"욱!"
쿵......쿵!
천수적룡은 쓰러질 듯이 신형을 휘청이며 뒤로 십여 보 밀려갔다. 예의
폭갈은 바로 그의 귓전에만 천둥치듯이 터졌던 것이다.
(무.....무서운 쇄심마후(碎心魔吼)!)
천수적룡은 고막이 터지는 듯한 충격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쇄심마후(碎心魔吼).
방금의 그 한 마디 폭갈은 마도의 전설적 음공(音功)인 쇄심마후란 것이
었다. 목소리로 특정의 적의 내부를 박살내 버리는 가공스런 마음공(魔音
功).
그것을 최후로 연성했던 인물은 십대악인 중 천면관음이었다.
천수적룡이 몸을 휘청거리며 경악해 마지 않을 때,
뚜벅.....뚜벅.....
흩날리는 설풍 저편에서 하나의 거영(巨影)이 환상같이 떠올랐다.
"........!"
천수적룡은 찬바람을 들이키며 그 거영을 바라보았다.
나타난 인물은 한 벌의 청색의 고풍스런 전포를 걸친 당당한 체구의 청년
이었다. 그의 두 눈에서는 시퍼런 뇌광이 흐르고 있었고 석 자가 넘는 장발
을 설풍에 흩날리며 그는 마치 천신같은 기세로 다가서고 있었다.
용사추였다.
그의 무쇠같은 팔 안.
창백한 안색의 설옥경이 조그맣게 웅크린 채 안겨 있었다.
(강....강적이다!)
천수적룡은 찬바람을 들이켰다.
실상 그는 일천마왕군을 지휘하는 수뇌 중의 일인이었다. 그런 그였건만
용사추를 대하는 순간 알 수 없는 위압감에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낀 것이
다.
그만큼 용사추의 기세와 그 인상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북해의 보잘것 없는 절기를.....어디 견식해 보도록 할까!"
용사추는 음울하게 일갈하며 천수적룡에게로 다가섰다.
스읏!
그가 한 걸음을 옮겼다 싶은 순간 용사추는 이미 천수적룡의 코앞에 육박
해 있었다.
"어억!"
화드득!
천수적룡은 아연하며 벼락같이 뒤로 퉁겨져 나갔다.
"천뢰참(天雷斬)!"
콰____쾅!
용사추는 퉁겨지는 천수적룡을 그림자같이 따라붙으며 설옥경을 안지 않
은 좌수로 천수적룡을 후려쳤다.
천뢰참!
북해십강 중 북뢰혈궁(北雷血宮)의 천년절기가 맹렬한 우뢰성과 함께 무
섭게 쏟아져 나갔다. 그 기세는 가히 하늘이라도 두쪽낼 듯 무시무시했다.
천수적룡의 안색이 핼쓱하게 변했다.
"우욱....적룡붕권(赤龍崩拳)!"
그는 촉망중에 전력을 다한 일권을 후려치며 급급히 뒤로 날아갔다.
콰____아앙!
"크____윽!"
그 직후 굉렬한 폭음이 일며 천수적룡은 울컥 피를 토하며 거칠게 퉁겨졌
다.
하지만 그의 일 권 또한 만만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
용사추도 적룡붕권이라는 천수적룡의 권력(拳力)에 순간적으로 몸을 휘청
했다. 그 권력은 십갑자의 내공을 지닌 용사추를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로
막강한 파천지력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용사추가 누군가!
"빙하쇄멸인(氷河碎滅印)!"
쐐____액!
용사추는 배는 빨라진 속도로 천수적룡을 따라붙으며 재차 한 가닥 강력
한 역도를 내쳤다.
__빙하쇄멸인!
이는 북해십장 중 세 번째로 강해던 대빙하전(大氷河殿)이란 강파의 파천
절기였다.
천수적룡은 용사추의
북해십종련(北海十宗聯)의 전설
천 년 전, 북천(北天)의 패자 북해마궁의 성세는 가히 사상최강에 이르러
있었다. 그 북해마궁에는 일만 명의 초강자들이 있었고, 또 그 산하에는 규
모면에서 결코 북해마궁에 못지 않은 열 개의 강파가 부속하여 충성을 맹세
했었다.
그들을 북해십강(北海十强)이라 했으며 북해십강의 수뇌들을 일컬어 북해
십왕(北海十王)이라 불렀다.
그리고.....
__북해십종련(北海十宗聯)!
세인들은 북해마궁과 그 막하 북해십강을 통틀어 북해십종련이라고 불렀
다. 실로 가공할 세력, 북해십종련의 세력의 장성함은 가히 불세무적이었
다.
그들은 그들 세대보다 오백 년 그 이전에 멸망한 마교에 비견되기도 했으
니.....북해마궁은 그만큼 강대하였다.
당시 북해마궁의 궁주는 북해마종(北海魔宗) 사사천(邪史天)이라는 인물
이었다.
그는 북해무림사상 최강자였다. 그의 이름은 마도(魔道)의 계보인 군마세
보(群魔世譜)상 서열 팔위에 올라 있을 정도였다. 무적의 마왕(魔王).....
사사천은 이렇게 경원되던 당시의 천하제일마종이었다. 그는 강했으며 강한
만큼 야심도 컸다.
사사천은 북해를 벗어나 환우무림을 제패하겠다는 지대한 야심을 품고 있
었다. 하여 그는 백 년을 기약하고 중원침공을 계획했으며 놀라운 통찰력과
영도력으로 북해십종련의 모든 잠재력을 하나로 결집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 지상최강의 조직이던 북해십종련이었다.
백 년이 지났을 때, 북해십종련은 사사천의 수하에서 두 배로 강력해져
있었다. 북해마종 사사천은 만족했다. 이 정도라면 환우무림 전체와 싸워도
승산이 있다고 그는 자신했으며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드디어.....북해십종련의 중원침공의 날은 임박했으며 천하무림은 전전긍
긍하여 마지 않았다.
당시 중원무림에는 북해십종련에 맞서 싸울 만한 확실한 강자도, 확실한
세력도 존재하지를 않았다. 만일 북해십종련이 장성(長城)을 넘는다면.....
중원무림은 여지없이 북해십종련의 발 아래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그런데, 침공의 날을 열흘 앞두었을 때였다.
돌연 북해마종 사사천과 북해십강의 수뇌들인 북해십왕이 이유도 없이 실
종하고 말았다.
당연히 북해십종련은 대혼란에 빠져들었으며, 마침내는 북해마궁과 북해
십강 사이에 알력이 생겨 북해십종련은 허무하게 지상에서 사라지고 말았
다.
북해마종 사사천과 북해십왕!
그들이 왜 대사를 앞두고 실종된 것일까?
세상의 의견들은 아주 분분했다.
혹자는 북해마종 사사천과 북해십왕 사이에 의견충돌이 일어나 그들이 동
귀어진했다고도 했으며, 또 혹자는 그들 십 일 인이 중원무림이 밀파한 자
객의 손에 피격되어 쓰러졌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 어느것도 맞지 않았다.
북해마종 사사천을 좌절시킨 것은 그의 야욕과 한 명의 마녀(魔女)에 의
해 결과된 것이었다.
어느 날, 사사천은 빙하천벽의 얼음굴에서 가사상태로 얼어붙어 있는 한
명의 여인을 발굴했다. 놀랍게도 그 여인은 가공스러운 마공진력으로 자신
의 모든 심맥을 폐쇄한 채 오백여 년을 얼음속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여인의 복장과 무기 등으로 그녀의 신분을 확인한 사사천은 아연함을 금치
못했다.
천년마녀(千年魔女).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사사천보다 오백 년 그 이전에 있었던 대마녀였다. 그녀의 신분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녀는 마교의 마교십가 중 두 번째로 강했던 천년
마후성(千年魔后城)의 당대성주였다.
그녀의 군마세보(群魔世譜)와 마교 내에서의 서열은 놀랍게도 제 이 위였
다. 즉, 그녀는 마교지존인 천마(天魔) 바로 다음 서열의 강자였던 것이다.
오직 천마에게만 상좌를 양보하는 절대마녀.
그것이 천년마녀의 신분이었다.
본래, 천년마후성의 성주는 대대로 마교지존 천마의 아내로 내정되어져
있었다. 그것은 천년마녀라 해서 결코 예외가 아니었으며 정해진 율법이었
다. 그 율법을 따라 천년마녀는 당시의 마교 교주였던 십방천마(十方天魔)
철옥기(鐵玉奇)의 부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직전에 마교는 모종의 원인으로 인해 괴멸되었으며 그 와중에
서 천년마녀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강적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그녀가
강적들에게 쫓겨온 곳이 바로 이곳 북해였다. 그러다가 그녀는 자칫 부주의
하여 빙하의 틈바구니로 추락하였으며 얼음속에 갇힌 채 오백 년을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사사천이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다.
천년마녀를 발견한 순간 사사천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만일 천년마녀를
부활시켜 수하로 삼는다면 천하에 누가 있어 자신에게 대항하랴? 그는 흥분
했고 그 즉시 북해십왕을 불러 천년마녀를 깨울 준비를 했다.
그러나.....그것이 파멸의 시작임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북해십왕은 물
론 북해마종 사사천까지도.
그들은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천년마녀를 깨우려 했고 마침내 성공할 수
있었다. 천년마녀, 그녀가 드디어 오백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북해십왕과 사사천은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깨어나자마자 천년마녀가 처음으로 한 일. 그것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일격에 북해십왕의 심맥을 갈가리 끊어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투명명옥강살은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북해십왕, 그 열명의 초강자
들이 변변히 대항조차 못해 보고 전신경락이 갈가리 찢겨버린 것이다.
이어 천년마녀의 살수는 북해마종 사사천에게 향했다. 하지만 사사천 역
시 군마세보 서열팔위의 초강자였다. 그는 분노하는 중에서도 천년마녀에게
강력한 반격을 가했다.
그것은 경천동지의 대접전이었다.
양대 절정마종들의 대결은 실로 땅이 무너지고 하늘이 뒤흔들리는 무서운
것이었다. 대접전은 무려 일천 초에 이르렀으며 일천 초가 지난 순간 사사
천은 아차하는 사이에 천년마녀의 투명명옥강살에 휘말리고 말았다.
결국 사사천은 한 말은 됨직한 피를 토해내고 무참하게 패주해야만 했다.
천년마녀는 그런 사사천을 추격하여 추살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명의 노승(老僧)이 나타나 그녀를 제지하였다. 적
족(赤足)에 한 자루 법륜(法輪)을 든 성스러운 풍모의 노승.
뇌음천존(雷音天尊).
이것이 그 노승의 이름이다.
그는 천축 대뢰음사(大雷音事)의 당대주지가 되는 고승이었다. 대뢰음사
사상 최강자라는 고승 뇌음천존. 본래 그는 북해십종련이 풍운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북해마종 사사천을 설득하려 천축으로부터 수만 리를
건너온 것이었다.
당시 환우를 통틀어 오직 그 뇌음천존만이 북해마종 사사천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천년마녀를 발견했던 것이다.
불(佛)과 마(魔)!
그것은 결코 융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두 절대자들은 만나는 순간 무
서운 격돌을 일으켰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천년마녀는 사사천과의 충돌로 적
잖이 지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오히려 사사천보다 강한 뇌음천존과 충
돌하였으니 그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결국, 그녀는 다시 빙동으로 쫓겨 들어갔고 뇌음천존은 그런 그녀를 빙동
안에 가두고 천년마녀의 마공과 극성의 항마법력을 지닌 뇌음법륜으로 그녀
를 영구히 금제해 버린 것이다.
뇌음천존이 천년마녀를 추살하지 않은 것은 그의 불심이 살생을 용납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으나 천년마녀의 마공진력이 너무 강했던 때문이기도 했
다. 뇌음천존의 절대항마력으로 천년마녀를 완전히 죽이기에는 부족함이 있
었던 것이다.
하여, 그는 뇌음법륜으로 그녀를 금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용사추. 그가 천 년 만에 천년마녀를 금제에서 풀
어주고 말았던 것이다.
"천년혈붕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용사추는 의아한 듯이 중얼거리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지금 그는 자신과
천년혈붕이 추락했던 곳에 서 있었다.
그런데, 천년혈붕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얼음 위에 뿌려
진 천년혈붕의 핏국만이 얼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용사추는 검미를 모으며 생각을 더듬어 보았다.
"시신이 없는 것으로 보아 죽지는 않은 모양인데.....하지만 천년혈붕의
상세는 스스로 치유할 수 없을만큼 중상이었지 않은가?"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의아함과 함께 걱정스러움이 앞섰다.
"그럼....누군가가 구해서 데려갔다는 얘긴데.....천년마녀와 다라법존
그들 중 누구일까?"
그는 두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려 보았다.
__천년마녀!
__다라법존!
그 두사람은 모두 용사추가 평생 잊지 못할 인물들이었다. 특히, 다라법
존은 더욱 그랬다.
그는 그 옛날 천년마녀를 금제했던 뇌음천존의 후예였다. 즉, 불문의 성
지 대뢰음사의 전대지존이며 천축무림의 최강자였다. 그의 세수는 백팔십
년, 이미 신화(神話)가 된 불문최강의 고수자였다.
다라법존은 다라패엽진결(多羅貝葉眞訣)이라는 최강의 항마법력을 용사추
에게 전수하고 떠났었다. 그것은 불문 항마법 중 서열 이위에 드는 것이었
다.
항마법 서열 일 위는 그 옛날 뇌음천존이 천년마녀를 제압할 때 썼다는
뇌음진결(雷音眞訣)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뇌음진결은 뇌음천존의 대에서
절전되어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사실상 다라패엽진결이 제일항마법인 것이다.
__자비심을 잊지 마오, 항상.....
다라법존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 뇌음법륜을 지닌 채 빙하천벽을 떠났었
다. 그것이 하루 전의 일이었다.
"후훗....자비심이라...."
용사추는 문득 괴이하게 웃었다. 짧은 시간 사이에 그에게 엄습한 사건들
의 그의 성격을 극도로 편협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정의(正義)와 진리에
대한 그의 시각은 상당히 편협하고 극단적으로 왜곡되어져 있었다.
"후훗....물론 잊지는 않겠소이다, 법존. 그러나.....자비지심을 베풀 만
한 가치가 있는 자에게만 베풀어져야 할 것이오!"
용사추는 싸늘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뇌리로 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면천왕....십대전신.....십전앙화 우담혜.....십대악인과 사신마
존.....
그리고, 가장 늦게, 그러나 가장 강하게 떠오른 것은 한 명의 다정하고
따뜻하게 웃는 여인의 옥용이었다.
전궁비연 궁여설.
그녀의 이름은 궁여설이었다.
다행히 용사추의 물건들은 유실된 것이 없었다.
십대악인의 유물과 수라철면, 그리고 궁여설을 산화시킨 저주스런 신도
(神刀) 은하벽정도(銀河霹霆刀)도 고스란히 그의 곁에 남아있었다.
그 외에, 용사추가 생각지도 않은 한 가지 물건이 더 발견되었다.
뇌정패왕궁(雷霆覇王弓)!
바로 이것이다.
결국 모든 사건의 열쇠가 된 환우칠중병의 하나가 되는 신궁(神弓). 그것
은 본래 십전앙화 우담혜가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천년혈붕의 등
에서 퉁겨져 나갈 때 이곳 빙하천벽으로 떨어진 것이다.
용사추는 눈을 번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놈이다. 유사시에는 도검(刀劍)을 대신할 중병기가 되는 놈이군."
그는 얼음벽에 박힌 뇌정패왕궁을 뽑아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뇌정패왕궁은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다. 언뜻 그 무게만도 수백 근으로 느
껴질 정도였다. 그것의 시위를 당기려면 역발산의 신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다루기 힘든만큼 그것은 막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평시에 뇌정
패왕궁은 시위가 풀려 있는데 시위가 풀려있는 그놈은 길이 다섯 자의 장도
(長刀)같이 보였다.
"네놈이 내 인생을 진창으로 쳐박았다. 후훗....네놈은 그 대가를 치루어
야만 한다. 네놈의 몸은....인혈(人血)로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
스윽!
용사추는 뇌정패왕궁을 쓰다듬으며 냉혹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용사추는 빙하천벽 사이의 좁은 협곡 저편을 바라보았다.
"이 협로의 끝은 어딜까?"
휘____이이잉!
고오오......
협곡 사이로 무서운 한기가 실린 빙강풍이 몰아쳐 왔으나 용사추는 꿈쩍
도 하지 않았다.
"어디.....가볼까?"
용사추는 뇌정패왕궁과 철함을 들고 협곡의 우측으로 저벅저벅 걸음을 옮
기기 시작했다.
"엇!"
용사추는 눈을 크게 뜨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놀라운 표정으로 입을
딱 벌렸다.
그의 앞에는 거대한 빙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그 빙벽은 여타의 빙벽과
달리 거울같이 투명하여 빙벽 저편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그런데, 빙벽 저편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지 않은
가? 실로 상상도 못할 기경이었다.
빙벽의 저편은 놀랍게도 거대한 호수였던 것이다.
"........!"
용사추는 입을 딱 벌린 채 넋을 잃고 빙벽 너머의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
만큼 빙벽으로 막힌 호수의 존재는 기이하고 경이로운 것이었다.
본시, 빙하천벽에는 극냉한 빙강풍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협곡으로 흘
러들어오는 호수의 물을 순간적으로 열려버릴 수 있을 만큼 차가운 것이었
다. 그 때문에, 용사추가 보고 있는 투명한 얼음의 장막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용사추가 놀라움으로 아연해 있을 때였다.
빙벽 저편에서 하나의 금빛 물체가 빙벽쪽으로 다가왔다.
".......!"
용사추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 금빛 물체를 바라보았다.
금구(金龜)!
아, 그것은 한 마리 황금빛의 갑주를 지닌 거대한 거북이 아닌가? 그 금
구는 천 년 이상 살아온 영물인 듯 갑주가 무려 일 장 이상이나 되었다.
"이런 곳에서 전설 속의 금갑신구(金甲神龜)를 보게 되다니...!"
용사추는 경이의 표정을 지었다. 실로 뜻밖의 장소에서 전설 속의 영물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때, 예의 금갑신구는 빙벽 바로 앞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갸웃!
금갑신구는 빙벽 이쪽의 용사추가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
다. 용사추가 금갑신구를 구경하고 있듯이 금갑신구 역시 용사추를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득,
용사추의 뱃속에서 밥벌레들이 꼬르륵거리며 아우성을 질렀다. 그제서야
용사추는 자산이 아주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어
깨를 으쓱하며 금갑신구를 바라보았다.
"후훗! 네 녀석은 잘못 나타났다. 하필이면 내가 배고플 때 나타나다
니....!"
그는 철함과 뇌정패왕궁을 내려놓으며 히죽 웃었다. 금갑신구는 그런 그
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유유히 몸을 돌려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핫하, 이놈! 기다려라!"
쾅!
용사추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대로 빙벽에 몸을 부딪쳐 갔다.
쩌____엉! 콰드득!
그의 무쇠같이 단단한 몸은 얼음벽을 깨뜨리며 그대로 호수로 뛰쳐들어갔
다. 그 직후, 빙벽이 깨진 틈으로 쏟아져 나가던 호수물은 다시 순간적으로
얼어붙어 빙벽으로 굳어졌다.
용사추는 빠르게 금갑신구의 뒤를 따라 헤엄쳐갔다. 그의 수공도 상당한
것인지라 점차 금갑신구와의 사이가 가까워졌다.
그러나 금갑신구는 추격해 오는 용사추를 힐끗 돌아본 뒤 여전히 태평하
게 앞으로 나갔다. 이내 그놈은 하나의 수중동굴로 헤엄쳐 들어갔다.
(후훗! 이놈, 제대로 걸렸다.)
촤____아!
용사추는 은하벽정도를 뽑아들며 히죽 웃고는 금갑신구가 들어간 수동으
로 따라 들어갔다.
동굴은 깊지 않았다. 삼십여 장 정도 나갔을 때 동굴은 끝이 났으며 그
곳에 금갑신구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용사추가 바짝 다가섰으나 금갑신구는 붉은 눈을 데룩데룩 굴릴 뿐 아무
런 경계의 빛도 띄우지 않았다. 경계는커녕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한 기색이
었다.
(불쌍한 놈! 안 됐지만 네놈은 내가 무공을 완성할 때까지 나의 식량이
되어 주어야만 한다.)
용사추는 은하벽정도를 쳐들고 금갑신구에게 다가섰다.
그런데 갑자기 용사추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몸을 멈춰 세웠다. 그는 눈
을 크게 치뜨고 동굴 끝의 석벽을 바라보았다.
이끼가 가득히 뒤덮인 석벽. 놀랍게도 그곳에는 한 구의 사람의 골격이
깊숙이 박혀 있지 않은가?
(이....이런 곳에 사람의 시체가 있다니....!)
용사추는 경이의 표정을 지으며 석벽에 박힌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 골격
은 상당한 장신이었던 인물의 것으로 보였다. 일견하기에도 육 척의 용사추
보다 한 뼘 정도는 더 커보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골격은 푸른 빛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시신의 주
인이 살아있을 때 절정의 기문사공(奇門邪功)을 연마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었다.
그리고, 그 시신의 골격에는 한 벌의 푸른 빛이 나는 고대전포가 걸쳐져
있었다. 그것은 비늘같은 무늬의 전포였는데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조금도
상하지 않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었다.
"글이.....있군."
용사추는 눈을 빛내며 시신이 박혀있는 석벽으로 다가섰다.
이끼가 가득한 석벽에는 대전체의 글이 가득 적혀 있었다. 그것은 천 년
이전에 쓰여진 글이었다.
용사추는 이끼를 뜯어내며 글을 읽어내려 갔다.
<우부(愚夫) 사사천(邪史天)이 회한과 죄책감으로 이 글을 남긴다.>
그 글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북해.....마종 사사천!"
용사추는 경악의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그는 아연해졌다.
다라법존에게서 그 옛날 천년마녀와 북해마종 사사천 사이에 있었던 이야
기를 이미 들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북해마종 사사천!
벽에 박힌 채 죽어간 인물은 바로 북해마종 사사천이었던 것이다. 북해무
림 사상 최강의 마종! 천년마녀를 깨웠다가 파멸해버린 비운의 거마(巨魔)
의 유해가 용사추의 앞에 있는 것이다.
어찌 놀랍지 않은가?
북해십왕의 시신은 금마지문에서 발견되었으나 사사천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가 이런 수중동굴에 들어와 죽었기 때문이었다.
용사추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계속 글을 읽어 내려갔다.
<본좌는 북해마궁 제팔대 궁주이고 북해십종련의 맹주인 북해마종 사사천
이다.....中略.....본좌의 과욕이 북해무림의 파멸을 초래했다. 무슨 낯으
로 북해의 하늘 아래 몸을 뉘겠는가? 하여....이곳 북극빙호(北極氷湖)의
차가운 발 아래 본좌의 시신을 묻어버릴 작정이다.....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본좌의 죽음으로 북해마궁 최후의 마공진결인 사라마결(邪羅魔訣)이
절전되는 것이다. 혹시 연자가 있어 이 글을 본다면 본좌의 사라마결을 북
해문도에게 돌려주기를 바란다. 그 대가로 북해제일지보인 사라보갑(邪羅寶
甲)을 그대에게 기증하는 바이다.
__북해의 죄인 사사천(邪史天) 서(書).>
그리고, 그 글 아래로 장문의 구결(口訣)이 기록되어 있었다.
__사라마결.
바로 북해마궁 최후최강의 마공진결이 그것이었다. 그것은 북해무림 최강
의 마공이었다. 마교의 최강절기들인 천마십예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절정
의 마공구결들.
"........!"
용사추는 홀린 듯이 사라마결의 구결을 외웠다. 그것은 그가 접한 어떤
무공보다 강력하고 심오한 것이었다. 사라마결을 완성하면 일신이 은은한
청색서기로 뒤덮이게 된다. 그것은 사라청옥강벽(邪羅靑玉 壁)이라고 하며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도검이 불침하는 금강지체가 된다.
그러나 북해마궁사상 누구도 사라마결을 십이성 연마하지는 못했다. 북해
무림사상 최강자라는 북해마종 사사천도 겨우 팔성의 경지에 이르렀을 뿐이
다.
그 때문에, 천년마녀의 투명강살에 스쳐 변을 당하게 된것이고.
"부탁을 들어드리리다."
용사추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후예가 아직까지 존재한다면 사라마결은 분명 전해주겠소. 그 대
신....그대의 선물도 확실히 접수하겠소. 북해마종!"
그는 거리낌 없이 북해마종 사사천이 입고 있던 청색의 보의를 벗겼다.
그 청색전포가 바로 사라보갑이었다. 북해마궁의 제일지보가 되는 보의.
그것은 거의 모든 충격에서 몸을 지켜주는 호신보의였다. 사라보갑이 감
당치 못하는 충격은 천마십예 정도의 절대력 뿐이었다.
사라보갑을 접수한 용사추는 문득 금갑신구를 돌아보며 입맛을 다셨다.
"네놈을 잡아먹는 일은 아쉽지만 그만두어야겠다."
하지만 금갑신구는 용사추의 말은 안중에도 없는 듯 여전히 태평스럽게
툭 튀어나온 두 눈을 데룩데룩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쩝! 그렇다고 오해는 마라. 네놈이 귀여워서 먹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네놈은 너무 오래 살아서 고기가 질길 것 같아서 안 먹겠다는 것 뿐이
니...."
용사추는 입술을 실룩이며 돌아섰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그는 자신을 북
해마종 사사천과 만나게 해준 금갑신구를 차마 해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끼룩....!
용사추가 동굴을 나서자 금갑신구도 나직한 울음소리를 내며 엉금엉금 기
어서 따라 나왔다.
용사추는 힐끗 뒤를 돌아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
며 금갑신구에게 타일렀다.
"멍청한 놈. 제발 쫓아오지 마라! 나란 놈은 자제심이 강하지를 못해 언
제 네놈을 먹고싶어 못 견디게 될지도 모르니....!"
하지만 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금갑신구는 엉금엉금 용사추
의 뒤를 따라올 뿐이었다.
__북극빙호(北極氷湖).
빙하천벽 너머에 자리한 얼음의 호수. 수만 리에 걸쳐 뻗친 드넓은 호면
전체가 투명한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북해제일호이다.
눈(雪).
새하얀 설화(雪花)가 삭풍에 흩날리며 북극빙호의 호면 위로 쌓이고 있었
다. 십여 장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설풍(雪風).
그 광경은 흡사 수천, 수만 마리의 설룡(雪龍)들이 날아오르는 듯한 장관
을 연출했다.
슈___욱!
문득, 설풍을 꿰뚫고 북극빙호의 동편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폭사되어 왔
다. 빙판 위에 쌓인 눈 위로 미끄러지듯 질주해 오는 인영. 그 인영은 매우
왜소한 체격이었다.
그러나, 쌓인 눈을 밟으며 날아오는 속도만큼은 비려하고도 기쾌하기 이
를 데 없었다.
"하아....하아.....!"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눈 위로 미끄러지듯 달리는 왜영. 놀랍게도 그 왜
영은 한 명의 소녀였다.
눈의 요정인가?
백설같이 새하얀 피부에 그와 대조적인 흑단같이 검고 탐스러운 수발, 흑
요석을 박아 놓은 듯 새카맣게 반짝이는 커다란 눈동자.
거기에 더하여 빨갛게 상기된 능금빛 두 볼은 그 소녀를 흡사 눈의 정령
(精靈)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소녀는 몸에 여우가죽의 피의를 걸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옷이란 것이
무릎까지 드러나는 위태위태한 것이었다. 생명이 생존하는 것을 거부하는
북해의 지독한 혹한에도 소녀는 한조각 피의만 걸친 차림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양 태연했다.
"하아....하아....!"
소녀는 새하얀 입김을 토하며 미끄러지듯 눈 위로 질주했다. 그런 그녀의
한 손에는 짧은 단도가 움켜져 있었다.
길이는 한 자 반, 반투명한 새하얀 도신에 붉은 빛이 도는 보석이 박힌
단도였다.
일견하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칼이었다.
"........!"
피의소녀는 설원을 질주하며 다급한 표정으로 흘끔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그녀의 삼십여장 뒤.
"흐흣.....서랏! 설족(雪族)의 어린 계집!"
"크녠. 고것 꽤나 탱탱한데.....!"
스스.....슥!
십여 줄기의 흑영들이 유령같이 소녀의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전신을 두
터운 흑포로 감싸고 얼굴에는 섬뜩한 귀면탈을 뒤집어쓴 자들. 그들은 사악
한 음소를 터뜨리며 소녀의 뒤로 육박해 왔다.
그자들이 펼치는 경공은 놀랍게도 설지비행(雪地飛行)이라는 천하십대경
공에 드는 경공술이었다. 설지의 한 자 위를 날아 폭사되는 무상의 경공,
그것이 그자들에게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슥!
"하아.....하....!"
피의소녀는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으나 어느덧 열 명의 귀면인들과의
사이는 십 장으로 좁혀져 있었다.
소녀는 붉디붉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더 이상 귀면인들에게서 달아나
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파파___팍!
한순간 소녀의 교구가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설지 위에 멈추어 서며 핑그
르르 돌아섰다.
"어엇!"
"조심해랏!"
화드득!
귀면인들은 돌연한 소녀의 태도에 경호성을 터뜨리며 급급히 몸을 멈추어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그곳은 얼음 위에 쌓인 눈밭이었다.
귀면인들이 아무리 절정고수자들이라 해도 소녀같이 경쾌하게 몸을 세우
는 것은 무리였다.
그자들은 얼음 위에 파열을 일으키며 간신히 몸을 세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순간적으로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려야만 했다.
슈____하악!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소녀의 손에 들렸던 단도가 질풍같이 귀면인들에 그
어졌다. 빗발치듯 그어지는 도세, 그것은 흡사 천 마리의 설룡이 덮쳐나가
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도세였다.
"어엇! 설형난형풍(雪形亂形風)의 도법이다!"
"조심해라. 북해제일도법이다!"
"커____어억!"
다급한 경호성이 일며 그 중에서 선연한 피무지개가 퍼져올라 설지 위로
뿌려졌다.
퍼____퍽!
쿵!
순간적으로 열 명의 귀면인 중에서 네 명의 허리가 잘라져 바닥으로 나뒹
굴었다.
"바득! 갈아마셔도 시원치 않을 계집!"
"카캇. 과연....설족의 여왕다운 손속이다!"
변을 모면한 나머지 육인들은 이를 갈며 질풍같이 몸을 휘돌려 피의소녀
를 여섯 방위로 포위했다.
설족의 여왕!
이것이 소녀의 이름일까?
눈의 여왕....그것은 소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적절한 이름으로 보였
다.
"크녠! 감히 지존마맹(至尊魔盟)의 일천마왕군(一千魔王群)의 형제를 베
었겠다!"
"카앗! 너 어린 계집의 배 위에 우리 일천마왕을 모조리 태워야 하리라!"
스____으.....!
육인의 귀면인들은 사악하게 웃으며 소매를 쳐들었다.
철컹! 철컹!
그러자 그자들의 소매에서 가는 쇠사슬이 폭사되어 찰나지간에 피의소녀
의 교구를 휘감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악!"
소녀는 다급한 비명을 토하며 몸부림쳤으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녀의
두 팔 역시 쇠사슬에 휘감겨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크녠! 마라철삭이라는 것이다. 어린 계집!"
스읏___!
귀면인들은 가면 안에서 사악하게 눈을 번뜩이며 쇠사슬을 당겨 서서히
소녀에게 접근해 왔다.
(아아....틀렸다.)
소녀는 절망의 표정이 되었다.
(북해마궁의 영화를....나 설옥경(雪玉莖)의 손으로 재현해 보려 했는
데.....)
설족여왕 설옥경의 맑고 아름다운 두 눈에 물기가 글썽하게 어렸다.
"캇캇....!"
"크녠.....서러워할 것 없다. 네년의 몸은 본 지존마행 소종사님의 빙백
강살을 연마하는데 먼저 쓰이고 우리 일천마왕의 사랑을 받게 될 테니
까.....!"
귀면인들은 절망에 빠진 설옥경을 향해 사악하게 웃으며 다가섰다.
그런데, 바로 이 때였다.
쩌_____어억!
갑자기 북극빙호의 얼음 아래서 한 줄기 새파란 도기(刀氣)가 무지개같이
폭출했다.
"커____어억!"
퍼퍼퍽!
그 도기는 그대로 한 명의 귀면인을 사타구니에서 정수리까지 둘로 쪼개
어 버렸다. 역겨운 피냄새와 함께 삽시에 새하얀 설지가 귀면인의 피와 내
장의 내용물로 뒤덮였다.
"어억!"
"웬놈이냐?"
"조심해라! 빙판 아래 어떤 놈인가 있다!"
귀면인들은 경악성을 토하며 급급히 자신들의 발 아래 빙판을 내려다 보
았다.
설옥경도 흠칫 놀란 표정으로 급히 자신의 발 아래 빙판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지며 놀라움에 찬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앗!"
투명한 빙판 아래.
한 명의 청년이 빙판 아래에 달라붙은 채 히죽 웃으며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산발한 긴 머리가 수초처럼 물 속에 흔들리고 기이한 고대전
포를 몸에 걸친 건장한 체구의 청년.
그 청년은 얼음 아래서 히죽 웃으며 짧은 피의 속의 소녀의 아랫도리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흐윽....!)
설옥경은 아연실색하며 질끈 눈을 감았다. 그녀의 옥용은 부끄러움으로
이내 새빨갛게 물들었다. 사실 그녀는 피의 속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
었던 것이다.
그 탓에 빙판 아래 청년은 보기 싫어도 피의 속에 감춰진 소녀의 아랫도
리를 일목요연하게 들여다 볼 수가 있었다.
(난 몰라!)
설옥경은 두 볼이 새빨갛게 물든 채 수치와 당황을 금치못했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 그녀는 드러난 자신의 치부를 가릴 수 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마라철삭에 묶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허벅지를 최대한으로 꼭 붙
여 은밀한 그곳 만이라도 감추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억! 저기다!"
"웨놈이냐?"
이때, 귀면인들도 빙판 아래의 청년을 발견하고는 분분한 폭갈을 내질렀
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은 이내 요란한 파열음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쩌저_____정!
콰드드득!
돌연 북극빙호의 일 장 두께 빙판이 거북등같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한 것
이다.
"꺄악!"
설옥경은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꼬옥 감아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물에 빠지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몸을 묶고 있던 마라철삭이 썩은 새끼줄같이 끊겨나가고 그
녀의 작고 앙증맞은 몸은 하나의 굳강한 팔 안에 안겨 있었다.
"........!"
어리둥절하여 살며시 눈을 뜨던 설옥경의 봉목이 경악으로 휘둥그래졌다.
꺼져내린 빙판 사이.
그곳에는 일 장이 넘는 거대한 금갑신구가 떠올라 있었고 설옥경의 작은
교구는 예의 신비한 청년과 함께 금갑신구의 등 위에 올라타 있었던 것이
다.
물론 신비청년은 용사추였다. 찬란한 황금빛의 금갑신구 위에 고대전포를
걸친 채 우뚝 서 있는 장신의 용사추. 그 모습은 흡사 해신(海神)이 현신한
듯 당당하고 위엄이 넘쳐 흘렀다.
"네놈은 누구냐?"
"카앗! 감히 지존마맹의 일을 방해하다니....!"
"죽어랏!"
다섯명의 귀면인들이 폭갈을 내지르며 그대로 용사추를 향해 폭사되어 왔
다. 그들의 기세는 흉흉하고 난폭하기 이를 데 없어 순간적으로 수십 장 방
원이 귀면인들이 펼친 공세에 휘말려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자들은 개개인이 사신마존에 육박하는 고수자들이었던 것이
다.
"악!"
설옥경은 비명을 지르며 용사추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만큼 그 자
들의 합공은 무서운 것이었다.
하지만 용사추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후훗.....제법인데....!"
그는 낮은 기소를 흘리며 좌수를 비스듬히 그어 냈다.
쩌____어엉!
그의 좌수에서 한 가닥 새파란 강기가 폭출되어 귀면인들을 베어갔다.
"이....이것은 옥마(玉魔)의 옥마벽강참(玉魔碧 斬)!"
"너.....너는 악마초인....케___에엑!"
"끄악!"
귀면인들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지며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냈다.
그들은 한 눈에 용사추의 내력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나 경악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들의 혼은 이미 몸을 떠나고 있었
다. 용사추의 손 끝에서 일어난 강력한 역도가 순간적으로 그들의 심장을
산산이 바스러뜨린 것이었다.
__옥마벽강참!
십대악인의 막내 옥마(玉魔) 옥수린. 그의 성명절기가 가장 완벽한 형태
로 시전되었던 것이다. 옥마의 절기에는 호신강벽을 전문적으로 깨뜨리는
파천지력이 담겨 있었다.
용사추는 옥마의 옥마경을 보았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놀랍게도 옥
마경에 기록된 절기들은 십대악인들의 그 누구의 절기보다도 무서운 것들이
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포인마나 적수패존 막륭의 절기들도 옥마경의 절기보다 강하다
고는 감히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옥마벽강참은 그 옥마경상의 옥마오절
(玉魔五絶) 중 하나가 되는 절기였다.
제7장
난세(亂世)의 마룡(魔龍)들,
혼세사패천(混世四覇天)
용사추는 귀면인들에게 다가서서 그들의 시신을 살펴보았다.
(흠....놀라운데.....사신마존만큼 강한 저들이 십여 명 씩이나 이런 북
해 오지에 나타나다니....)
그자들이 쓰고 있는 귀면은 용사추가 갖고 있는 수라철면과 흡사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그 귀면에도 수라철면같이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숫자
들은 구백 구십 팔에 이르는 연결된 숫자들이었다.
"구백.....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숫자들일까?"
용사추는 팔짱을 끼고 귀면을 내려다 보았다.
이때, 문득 한가닥 기어들어가는 듯한 소녀의 음성이 용사추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들은....지존마맹의 마왕들인 일천마왕군의 열 사람이에요."
"지존....마맹?"
용사추는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섰다. 그런 그의 눈에 금갑신구의 등에 쪼
그리고 앉은 앙증맞은 소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설족여왕 설옥경이 동그란 털공같이 웅크리고 앉은 채 조심스럽게 용사추
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녀의 볼은 능금같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소녀의 가장 부끄러운 곳을 용사추에게 보이고 말았지 않
은가? 게다가 그녀는 설족이라는 일단의 종족의 여왕이 되는 고귀한 몸이었
다.
비록 용사추가 그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부끄러워 할 것 없어, 어린 아가씨!"
용사추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설옥경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히죽
웃었다.
"나는 여자를 좋아하지만 아직 잔디도 나지 않은 꽃밭에 혹할 정도는 아
니니까!"
그는 힐끗 설옥경의 뽀얀 허벅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 말
에 설옥경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이 되었다.
"당.....당신이 감히.....!"
그녀는 분노와 수치, 모욕감을 참을 수 없었다.
눈의 여왕! 그녀가 언제 그런 노골적인 야유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설
옥경은 억울한 일을 당한 어린 아이같이 울먹거렸다.
그러나 용사추는 그런 그녀의 모습은 아랑곳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태연
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억울해 할 것 없어! 나는 본대로 말했을 뿐이니까. 억울하면.....열심히
엄마 젖을 더 먹고 빨리 어른이 되는 거야....!"
"당.....당신 정말.....!"
설옥경은 입술을 깨물며 울먹거렸다. 그녀는 정말 펑펑 울어버릴 듯이 보
였다.
본대로라.....
그 한 마디가 설옥경을 죽고 싶은 심정으로 만들었다. 용사추가 말한 것
은 사실이었다.
행여나 용사추가 자신의 은밀한 곳을 못 보았으면 하던 그녀의 기대를 용
사추는 무참하게 깨뜨려 버린 것이다.
(나...나쁜 자식..! 반드시 복수하고 말 테야. 감히 나 설족의 여왕을 능
멸하다니.... 개같이 엎드려서.... 내 발을 핥게 하고 말 테야!)
설옥경은 새파란 독기가 흐르는 눈으로 용사추를 노려보았다. 오한이 돋
을 정도로 매서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용사추는 그저 태평스런 표정을 짓고 있
을 뿐이었다. 문득, 그는 귀면인들의 시신을 툭 걷어차며 의아한 표정을 지
었다.
"한데....지존마맹이라니....무슨 소리지?"
"지존마맹도 모른단 말이에요? 보아하니 무림인인 듯 한데....!"
설옥경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샐쭉하게 쏘아부쳤다.
이번이 기회다 싶어 그녀는 고양이같은 눈을 반짝이며 용사추를 흘겨보았
다.
용사추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모르겠는데?"
그는 고양이 눈을 하고 쏘아보는 설옥경의 표정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문
득 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때? 지존마맹이란 것에 대해 알려주지 않겠어? 알려주면....한 가지
상을 주지!"
"상 같은 것은 필요없어요!"
설옥경은 차갑게 쏘아부치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말을 하는 그녀
의 얼굴은 어느새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용사추의 미소를 접하는 순간 그녀의 작은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콩닥거
리며 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용사추의 그
미소야말로 실로 무서운 마력이 담긴 음서시 교아랑의 환희마소라는 것
을.....
삼년 전___
악인성이 괴멸당했을 때, 천하는 이제야 비로소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고 믿으며 크게 기뻐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난세의 종식이 아닌, 진정한 난세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
다.
악인성이 지상에서 사라진 후,
돌연 무서운 세력과 마인들이 곳곳에서 일어나 과거 악인성이 일으켰던
것보다 열 배 더한 겁풍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난세천하(亂世天下)____!
천하무림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겁풍의 소용돌이로 빠져 들어갔다.
그 난세의 주 원인은 전적으로 악인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즉, 정파의 지주인 철혈전막은 비록 악인성을 괴멸시켰으나 그들 역시 심
각한 타격을 면할 수가 없었다. 악인성과의 결전으로 그들은 거의 삼사할에
이르는 전력의 손실을 입었던 것이다.
철혈전막이 위축된다는 것은 곧 천하무림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의 위축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철혈전막의 영향력이 감소하자 십지에서 패권의 야심을
기르던 군웅들이 항거하여 대난세를 부른 것이었다.
결국.....난세의 전적인 원인은 악마초인을 길러 철혈전막에 대반격을 꾀
하려던 악인성에 있었던 것이다.
악마초인으로 인한 대난세...그것이 과연 우연히 일어난 일일까?
혼세사패천(混世四覇天)!
그 난세의 주역은 바로 혼세사패천이라고 부르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발호는 개개인이 과거 악인성의 그것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__지존마맹(至尊魔盟).
__악마십로군벌(惡魔十路軍閥).
__팔황마전(八荒魔殿).
__봉황대정천(鳳凰大正天).
이들을 일컬어 혼세사패천이라고 한다.
난세의 마룡들.....그들은 철저한 비밀의 장막에 덮인 채 자신들의 야심
을 위해 천하를 대난세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었다.
혼세사패천의 대난세.....
그러나 웬지 전황 북리황과 철혈전막은 침묵하고 있었다.
천하가 모두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으나 전황 북리황은 침묵 속에 잠긴 채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고 있었다.
지존마맹.
그들은 바로 천하난세의 네 주역 중 하나였다. 그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
려진 바가 없는 상태였다.
다만, 그들의 주력군단이 일천마왕군(一千魔王群)이란 자들이며 일천마왕
군의 상위 서열 일백 위 안에 드는 자들은 저 십대전신이나 십대악인들에
비해 조금도 못지 않은 초강자들이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일천마왕군들중 무림에 나온 자들의 수는 모두 사백이었다.
하지만 그 사백마왕군만으로도 지존마맹은 천하를 사분하는 주역이 되었
던 것이다.
열 명의 귀면인들, 그들은 바로 그 일천마왕군의 하위 서열에 속하는 자
들이었다.
(이 자들이 지존마맹 일천마왕군 휘하의 고수들이라고? 각각 사신마존만
큼 강한 이자들이....!)
용사추는 설옥경의 설명을 들으며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의 얼굴은 여전히 태연했으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런데.....아가씨는 누구지?"
문득 그는 형형한 시선으로 설옥경을 바라보았다. 무림판도에 관해 정확
하면서도 빈틈없이 꿰고 있는 그녀의 신분이 새삼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설족의 여왕.....!"
무심결에 대답하던 설옥경은 급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성
급한 대답을 이내 후회했다.
(아직.....이 자를 믿을 수 없어!)
그녀의 고양이 같은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녀는 급히 자신의 말을 정
정했다.
"설옥경(雪玉莖)이라고 해요. 설족(雪族)이라는 일족(一族)에 속해 있어
요!"
"설족! 꼬마 아가씨가?"
용사추의 태연자약하던 얼굴에 처음으로 놀라움의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꼬마가 아니에요!"
설옥경은 용사추의 말이 못마땅한 듯 샐쭉한 표정으로 앙칼지게 쏘아부쳤
다.
그런 그녀의 표정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고 귀여웠다. 용사추
는 절로 웃음이 치밀었다.
"우겨봐야 소용없어. 나는 네가 아직 젖먹이 어린아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보았으니까! 너무 확실하게 보아서 도저히 지울 수가 없을 정도인걸....!"
그는 짐짓 능글맞게 웃으며 슬쩍 설옥경의 미끈한 아랫도리로 시선을 던
졌다.
"당....당신 정말로!"
설옥경은 울상이 되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녀는 눈물마저 글썽해진
눈으로 매섭게 용사추를 노려보았다.
(이크....!)
그 사나운 기세에 용사추는 짐짓 움찔하는 기색을 지었다.
지금 그는 설옥경을 놀리고 있었으나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었었
다.
__설족(雪族).
그들은 전설같이 그 존재가 전해 내려오는 신비일족이었다. 설족의 생활
근거지는 얼음과 눈(雪)의 대지 북해(北海)였다.
수천 년을 눈과 함께 살아오면서 그들 일족의 체질은 아주 특이하게 변했
다.
즉, 그들의 몸에는 선천적으로 무서운 빙기(氷氣)가 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빙백음강(氷魄陰 )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산 사람을 얼음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빙백음강!
그만큼 빙백음강은 무서운 것이었다.
특히, 빙백음강은 설족 여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런 탓으로, 설족
의 여인들은 천 년 간 무림인들의 가장 희귀하고 값진 사냥감(?)이 되어 왔
다.
만일 설족의 여인을 잡아 채음보양술로 범하면 절정의 위력을 지닌 빙백
강살을 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존마맹의 일천마왕.
그 자들도 바로 그 때문에 설족의 여인을 사냥하러 북해에 왔던 것이다.
(이상하군.)
문득 용사추의 가슴에 강한 의혹이 떠올랐다. 그는 의아한 눈빛으로 설옥
경을 바라보았다.
(이 소녀는....모습은 설족이나 설족의 여아가 아니다! 아까 안았을 때
전혀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기이함을 느끼며 강한 눈빛으로 설옥경을 살펴보았다.
".........!"
그런 그의 눈빛을 받은 설옥경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절
로 긴장감을 느끼며 숨소리마저 삼켜야 했다.
(무.....무서운 눈빛이다. 설마 이 자가....나의 비밀을 알아차린 것이
아닐까?)
그녀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용사추의 기색을 살폈다.
설족의 여왕이라 알려진 설옥경.
그러나 그녀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천년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오오오옷!"
문득 한 소리 찢어질 듯 날카로운 여인의 교갈이설풍의 장막 저편에서 들
려왔다.
그 교갈을 들은 설옥경은 갑자기 안색이 홱 변했다.
"설모(雪母) 언니가....!"
파____앗!
그녀는 앞 뒤 생각할 것도 없이 다급히 퉁겨지듯이 금갑신구의 갑주 위에
서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날아가지 못했다.
"후훗! 아직 상을 받지 않았을 텐데.....!"
스윽!
짖궂은 웃음소리와 함께 설옥경의 한 줌밖에 안 되는 허리가 사내의 무쇠
같은 팔에 휘감겨 죄어진 것이었다.
설옥경은 다급히 용사추의 팔을 떨쳐내려 했다.
"놔요! 설모언니가 위험.....읍!"
날카롭게 소리치던 설옥경의 두 눈이 갑자기 하얗게 치떠졌다.
용사추의 두툼한 입술이 별안간 그녀의 작은 입술을 틀어막아 버렸기 때
문이다. 그것은 정말 예기치 못한 사태였다.
설옥경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반항 조차 하지 못했다.
생전 처음으로 하는 입맞춤이었다. 그녀는 너무나 아찔한 충격에 현기증
마저 느껴 이 순간 당연히 저항해야 마땅함에도 전혀 그럴 엄두를 내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용사추는 그런 기회를 적시에 포착한 것을 득의양양해 하며 달콤하고 뜨
거운 설옥경의 입술을 집요하게 탐했다. 그는 가지런히 닫혀있는 설옥경의
고른 치열을 혀로 비집고 깊숙이 안으로 침범해 들어갔다.
설옥경의 입술에서는 향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순결한 소녀만이
지닐 수 있는 향긋한 꽃내음같은 것이었다. 용사추는 그 향기에 취해 부드
럽고 강하게 설옥경의 꽃잎같은 입술을 탐했다.
"음.....!"
설옥경은 숨이 막히는 열기와 기이한 쾌감에 몸을 떨며 아득하고 깊은 나
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 쾌감은 막 뜨겁게 비등하
는 순간 끝이 나고 말았다.
"후훗! 이게 상이다. 이제 되었......어이쿠!"
찰____싹!
입맞춤을 끝내고 짖궂은 어투로 말을 하던 용사추의 뺨에 불이 번쩍 튀었
다. 비로소 정신을 차린 설옥경이 작은 교수로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친 것
이었다.
그녀는 수치와 분노에 옥용을 빨갛게 붉힌 채 씩씩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한 차례 손찌검을 한 것 만으로는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는 기세였
다.
"나....나쁜 자식! 꼭 복수하고 말 테야!"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앙칼진 어조로 쏘아부쳤다. 그것은 그녀의 진
심이었다. 졸지에 나타나 감히 설족의 여왕인 자신의 입술을 훔쳐가다
니......
쐐____액!
그 말을 마침과 함께 설옥경은 용사추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그의 품에서
날쌘 재비처럼 날아나갔다.
"반드시.....복수하고 말 테야.....!"
울음 섞인 음성으로 다시 한 번 다짐하는 것을 잊지않는 설옥경. 그녀의
모습은 이내 설풍의 장막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용사추는 흠칫했다.
"설형....비폭류(雪形秘瀑流)!"
그의 눈에서 어느덧 짖궂은 장난기는 사라지고 강렬한 신광이 흘러나왔
다.
설형비폭류____
그것은 북해제일의 경공술이었다. 바로 북해마궁의 비전경공인 것이다.
"화후가 보잘 것 없으나 저것은 북해마궁의 십대절기 중 하나인 설형비폭
류가 틀림없다. 역시.....저 아이에게는 비밀이 있다."
용사추는 설풍 저편으로 아득히 사라져버린 설옥경의 뒷모습을 쫓으며 형
형하게 눈을 번득였다.
끼륵.....!
그때 문득 옆에 버티고 서 있던 금갑신구가 마치 무엇을 잃은 듯 허전한
표정으로 서있는 용사추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괴이한 울음을 흘려냈다.
"무얼봐! 멍청한 놈!"
용사추는 괴이쩍은 울음을 흘리는 금갑신구를 향해 짐짓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나는 볼일이 있어 늦게 돌아갈 테니.....네녀석부터 빙하곡으로 돌아가
있거라!"
스____읏!
말을 마치자 마자 그는 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어 그의 모습은 삽시
에 흩날리는 설풍속으로 사라져 갔다.
북극빙호(北極氷湖)의 서안(西岸).
스으.....스으.....
예외없이 그곳에도 자욱한 설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냉기를 몰고오며 분
분이 흩날리는 눈바람.
그 속에서 이 인이 대치하고 있었다.
일남일녀.
그들은 일견하여 범상치 않은 행색을 지닌 남녀들이었다.
여인의 모습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눈(雪)의 화신(化身)이랄까?
그녀의 피부는 희디 희어서 혈색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었었다. 흡사
눈으로 빚어 놓은 듯이 보이는 새하얀 피부는 속이 들여다 보일 정도로 투
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칠흑같이 검은 수발을 발 끝까지 드리우고 있
는 여인.
그녀의 훤칠한 교구는 한 겹의 종이같이 얇은 백의에 휘감겨 있었다.
스으....스으.....
설풍이 여인의 교구를 스칠 때마다 얇디얇은 백의나삼이 몸에 착 달라붙
어 뇌살적인 여체의 굴곡이 숨막힐 듯이 드러났다.
그런데, 지금 여인은 성한 몸이 아니었다.
똑....똑.....
그녀의 봉긋한 젖가슴 사이에는 한 자루 종이같이 얇은 유엽도가 깊숙이
박혀 있었고 그곳으로부터 뭉클뭉클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녀의 가슴에서 흐르는 피는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빛
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새파란 청색의 피(靑血)이 아닌가?
새햐얀 여인의 가슴에서 솟구치는 선명한 청혈은 실로 기이한 느낌을 자
아냈다.
새파란 피.....그것은 그 여인이 설족의 여인임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
설족의 여인은 중상을 입었건만 조금도 게의치 않는 듯 푸른 빛이 도는
눈으로 무심하게 전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는 흡사 여신과도 같은 고고함과 기품이 서려있었다.
여인의 전면.
"핫하! 과연.....북해설모(北海雪母)의 명성은 명불허전이군."
화르륵!
한 명의 귀면인이 붉은 장포를 설풍에 펄럭이며 우뚝 선 채 웃고 있었다.
타는 듯이 붉은 장포에 귀면 사이로 붉은 기운이 흐르는 섬뜩한 눈을 지
닌 자였다. 그자의 귀면에는 일천(一千)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일천.....그렇다면 이 자가 지존마맹의 마인군단 일천마왕군 중 최후의
인물인 제일천마왕(第一天魔王)이란 말인가!
"순식간에 십마왕(十魔王)을 얼음으로 만들어 버리다니....과연 북해제일
고수답소, 북해설모(北海雪母)!"
츠___읏!
천마왕이 북해설모를 바라보며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다지 크지 않으나
지극히 막강한 마력이 깃든 음성이었다.
과연, 두 사람이 대치한 주위에는 열명의 귀면인들이 얼어붙어 있었다.
얼음덩이가 된 채 뒹굴고 있는 열 명의 귀면인들..... 놀랍게도 그들의 귀
면에 새겨져 있는 숫자는 이백 단위의 숫자였다.
이백 단위의 마왕들.....그들은 단 한 번도 무림에 나오지 않았던 지존맹
의 초고수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놀랍게도 얼음으로 화해 있는 것이다.
"후훗! 안 되었지만.....설모께서는 본좌 천수적룡(千手赤龍)과 함께 지
존마맹(至尊魔盟)으로 가주셔야 하겠소!"
스____읏!
천호마왕(千號魔王) 천수적룡이 귀면 사이로 붉은 기운이 도는 눈을 번뜩
이며 북해설모라는 여인에게로 다가섰다.
".........!"
다가서는 천호마왕을 바라보며 북해설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
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실상 손가락 하나 움직
일 힘도 없었던 것이다.
이내 천호마왕 천수적룡은 북해설모의 지척에 이르렀다. 그는 북해설모의
지금 상태가 어떤지 잘 아는 듯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북해설모는 꼼짝없이 천수적룡의 손아귀에 제압되고 말 것이
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죽엇!"
돌연 한 소리 갈라지는 듯한 소녀의 교갈이 천수적룡의 등 뒤에서 터져나
왔다.
쐐_____애액!
빗발치는 듯한 기세의 도기(刀氣)가 천수적룡의 등으로 그어진 것도 그
때였다.
"설형난형풍의 도법.....?"
천수적룡은 흠칫하며 벼락같이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시선으로 한 명의 피의소녀가 설풍을 타고 쏜살같이 짓쳐들어
오는 것이 들어왔다. 마치 한 마리 설룡(雪龍)이 덮쳐드는 듯한 기세의 도
법.
___설형난형풍(雪形亂形風)!
그것은 바로 북해마궁 비전의 북해십절중 하나가 되는 도법으로 천수적룡
을 덮쳐든 소녀는 바로 설옥경이었다.
설족의 여왕이라는 깜찍한 소녀.
고오오.......휘리리링!
천 마리의 설룡이 서로 뒤엉켜 용트림하는 형상으로 천수적룡을 휩쓸어왔
다. 그 기세는 가히 설지를 양단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러나 상대는 강했다.
"후훗! 설형난형풍 정도로는 어림없다!"
위_____이잉!
천수적룡은 음침한 비웃음을 흘리며 슬쩍 좌수를 쳐들어 설옥경을 향해
내쳤다. 그 자의 손끝에서 한 줄기 막강한 열화강력(熱火 力)이 폭죽 터지
듯이 일어 설옥경의 전신을 휩쓸어 갔다.
"악!"
콰_____아앙!
다음 순간 굉렬한 굉음이 일며 설옥경의 작은 몸이 날아오던 것보다 더
빠르게 퉁겨져 나갔다. 그런 광경은 마치 천 마리의 설룡이 한 마리 적룡
(赤龍)에게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후훗! 북해절기 따위로는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천수적룡은 지면으로 퉁겨져 나가는 설옥경을 바라보며 득의의 눈빛을 띄
웠다.
그런데, 그 자의 말이 막 끝났을 때였다.
"북해.....의 절기 따위라고 했으렷다?"
우르르릉........!
갑자기 한 마디 무서운 폭갈이 터져 사위를 뒤흔들었다. 폭갈이 일으킨
음파의 파동에 몰아치던 설풍이 쩍쩍 갈라지며 암천으로 퉁겨져 올라갔다.
"욱!"
쿵......쿵!
천수적룡은 쓰러질 듯이 신형을 휘청이며 뒤로 십여 보 밀려갔다. 예의
폭갈은 바로 그의 귓전에만 천둥치듯이 터졌던 것이다.
(무.....무서운 쇄심마후(碎心魔吼)!)
천수적룡은 고막이 터지는 듯한 충격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쇄심마후(碎心魔吼).
방금의 그 한 마디 폭갈은 마도의 전설적 음공(音功)인 쇄심마후란 것이
었다. 목소리로 특정의 적의 내부를 박살내 버리는 가공스런 마음공(魔音
功).
그것을 최후로 연성했던 인물은 십대악인 중 천면관음이었다.
천수적룡이 몸을 휘청거리며 경악해 마지 않을 때,
뚜벅.....뚜벅.....
흩날리는 설풍 저편에서 하나의 거영(巨影)이 환상같이 떠올랐다.
"........!"
천수적룡은 찬바람을 들이키며 그 거영을 바라보았다.
나타난 인물은 한 벌의 청색의 고풍스런 전포를 걸친 당당한 체구의 청년
이었다. 그의 두 눈에서는 시퍼런 뇌광이 흐르고 있었고 석 자가 넘는 장발
을 설풍에 흩날리며 그는 마치 천신같은 기세로 다가서고 있었다.
용사추였다.
그의 무쇠같은 팔 안.
창백한 안색의 설옥경이 조그맣게 웅크린 채 안겨 있었다.
(강....강적이다!)
천수적룡은 찬바람을 들이켰다.
실상 그는 일천마왕군을 지휘하는 수뇌 중의 일인이었다. 그런 그였건만
용사추를 대하는 순간 알 수 없는 위압감에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낀 것이
다.
그만큼 용사추의 기세와 그 인상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북해의 보잘것 없는 절기를.....어디 견식해 보도록 할까!"
용사추는 음울하게 일갈하며 천수적룡에게로 다가섰다.
스읏!
그가 한 걸음을 옮겼다 싶은 순간 용사추는 이미 천수적룡의 코앞에 육박
해 있었다.
"어억!"
화드득!
천수적룡은 아연하며 벼락같이 뒤로 퉁겨져 나갔다.
"천뢰참(天雷斬)!"
콰____쾅!
용사추는 퉁겨지는 천수적룡을 그림자같이 따라붙으며 설옥경을 안지 않
은 좌수로 천수적룡을 후려쳤다.
천뢰참!
북해십강 중 북뢰혈궁(北雷血宮)의 천년절기가 맹렬한 우뢰성과 함께 무
섭게 쏟아져 나갔다. 그 기세는 가히 하늘이라도 두쪽낼 듯 무시무시했다.
천수적룡의 안색이 핼쓱하게 변했다.
"우욱....적룡붕권(赤龍崩拳)!"
그는 촉망중에 전력을 다한 일권을 후려치며 급급히 뒤로 날아갔다.
콰____아앙!
"크____윽!"
그 직후 굉렬한 폭음이 일며 천수적룡은 울컥 피를 토하며 거칠게 퉁겨졌
다.
하지만 그의 일 권 또한 만만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
용사추도 적룡붕권이라는 천수적룡의 권력(拳力)에 순간적으로 몸을 휘청
했다. 그 권력은 십갑자의 내공을 지닌 용사추를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로
막강한 파천지력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용사추가 누군가!
"빙하쇄멸인(氷河碎滅印)!"
쐐____액!
용사추는 배는 빨라진 속도로 천수적룡을 따라붙으며 재차 한 가닥 강력
한 역도를 내쳤다.
__빙하쇄멸인!
이는 북해십장 중 세 번째로 강해던 대빙하전(大氷河殿)이란 강파의 파천
절기였다.
천수적룡은 용사추의
추천105 비추천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