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색무림(淫色武林) 24편
제 목 : ▲새까만 얼굴 하나가 톡!▼
환기통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적어도 사람 하나는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두더지굴 같은 곳으로 사람이 언제
까지나 기어다닐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초명은 먼지로 자꾸 감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전면을 노려보았다.
초명은 가로세로 한자 가량의 공간에 길게 몸을
뻗고 엎드린 자세였다.
고개를 더 들고 싶었지만 머리 꼭데기가 이미
돌벽에 닿아 있었다.
손을 앞으로 뻗을 때마다 한 백년은 족히 묵은
것 같은 먼지가 풀썩풀썩 일어나 눈과 코로 사
정없이 들어왔다.
초명은 필사적으로 기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갇혀있다보면 누구나 폐쇄
공포증이란 것을 겪는다.
초명은 이 환기구의 끝이 빨리 나타나기를 빌고
또 빌었다.
머리를 먼지더미 속에 파묻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면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돌벽에 머리꼭
데기의 가죽이 긁힌다.
허리띠가 바닥에 쓸려서 자꾸만 밑으로 흘러내
린다.
눈물콧물이 얼굴에 범벅이 되었다.
자꾸만 재채기가 나온다.
빛이라곤 한오라기도 없는 공간 안에서 초명은
사력을 다해 손발을 움직였다.
정면을 뚫어지게 주시하던 초명의 눈동자에 한
오라기의 빛이 들어왔다.
마치 오랫동안 잊혀졌던 신비를 감상하듯 초명
은 깨알보다도 작은 빛오라기를 한참동안 넋놓
고 보고 있었다.
기기기기기--
거대한 석등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 밑으로 새까만 얼굴 하나가 톡 튀어나왔다.
초명이었다.
환기통의 입구는 돌마개로 막혀 있었던 것이었
다.
수직으로 나 있는 환기로 안에서 초명은 두 발
로 양 벽을 지탱하고 입구를 막고 있던 석등을
천천히 밀어내었다.
두 개의 눈동자가 재빨리 사방을 훑었다.
석등이 위치한 곳은 어떤 건물의 뒤편에 있는
수풀 속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에 사람 그림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초명의 신체중에 온전한 곳은 두 눈밖에 없어보
였다.
환기통을 지나오는 동안에 수십년은 족히 쌓인
먼지를 뒤집어쓴 그의 모습은 굴뚝청소부보다
더 새까맸다.
-쓰갈...-
초명은 속으로 투덜투덜대면서 옷자락에 묻은
먼지를 소리않나게 털었다.
허나 푹푹 삶기 전에 그 먼지가 털어질 것 같지
는 않다.
에...에....
콧속이 간지러웠다.
아무래도 콧속으로 엄청나게 많은 먼지가 들어
간 모양이었다.
웁....!
초명은 막 나오려는 재채기를 꾹 참았다.
무사 하나가 그가 몸을 감추고 있는 석등 쪽으
로 걸어오고 있었다.
에 에 에 프엣취 !! 엣취 ! 엣취!
한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재채기를 했는데 못
듣는다면 그 사람은 귀머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이도 그 무사는 귀머거리가 아니었
다.
오히려 그의 이목은 범인보다 훨씬 영민한 편이
었다.
더더욱 슬픈 일은 그가 무림에서 소위 일류무인
이라고 불리는 부류에 속해있다는 사실이었다.
펑!
석등에 큼직한 장인 하나가 새겨졌다.
화강암으로 만든 석등의 동체에 쩍쩍 금이 갔
다.
기민한 동작이다.
재채기소리를 듣고 진기를 끌어올려 장풍을 발
하기까지에 걸린 시간이 채 번갯불 한번 번쩍할
사이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진기를 끌어올렸음에도 불구
하고 그의 장풍이 이렇게 위력이 있다는 것은
그가 어떤 경지에 와 있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아아 진정하시오. 본인은 형장이 생각하는 그
런 사람이 아니외다."
초명은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순진한
미소를 띄워보였다.
그러나...그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잘 비벼진
시커먼 먼지로 완전히 범벅이 되 있었기 때문에
찡그린 표정인지 웃는 표정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았다.
무사는 아마도 전자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흥! 헛소리하지 마랏!"
사내는 쌍장을 쫙 떨쳐내었다.
세가 전래의 철사자권이다.
무적검가의 무적의 비결.
그것은 세가의 무공을 하급무사에게 전수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무적검가의 무사라면 누구나 제왕검
법과 철사자권, 그리고 표풍신법을 배운다.
그 결과를 초명은 뼛속 깊이 새기는 중이었다.
퍼펑 !
석등의 일부가 돌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히익 !!
초명은 잽싸게 석등 뒤에서 빠져나왔다.
타앗!
석등의 허리가 반으로 뚝 잘렸다.
무사의 손에는 어느새 검이 들려있었다.
제왕검법의 발검식...
그것 자체가 가공할 쾌검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초명은 무사의 우수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장검의 손잡이를 잡아가는 것을 포착한 즉시 몸
을 날려 석등 뒤에서 빠져나온 것이었다.
"정말 사람 잡겠네 !!"
초명은 괴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어릴때부터 훌륭한 사부에게
제왕검법을 전수받은 초명이 제왕검법에 더 달
통해야겠지만, 불행하게도 초명은 아직 실전다
운 실전 한번 겪어보지 못한 상태다.
한마디로 초명의 검법은 검법이라기보다 검무라
고 해야 좋을 지경이었다.
사내는 눈살을 찌푸리며 검을 거뒀다.
아무리 보아도 초명의 동작은 완전히 무공의 武
자도 모르는 사람의 행동이었다.
"자,자. 이제 그만좀 하시오. 난 원래..."
삐익-삑 !!
갑자기 호각 소리가 길게 울렸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
다.
"뇌옥의 죄수가 탈출했다 !!"
사내의 시선이 초명의 얼굴에 작렬했다.
-히익 !!-
"역시!"
둘 사이의 거리는 지척지간.
사내의 직격장이 쏜살같이 초명의 가슴팍을 파
고들었다.
파락-
초명의 몸이 휙 튕겨올라갔다.
허공을 친 사내는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그의 머리를 넘어가는 초명의 엉덩이가 눈에 들
어왔다.
"어딜!"
사내는 좌장을 획 틀어 초명의 엉덩이를 올려쳤
다.
엉덩이가 따끔따끔해지면서 웅후한 기운이 엉덩
이로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에ㄱ !
초명은 기험을 하며 공중에서 몸을 획 틀었다.
찌익-!
다행스럽게도 간발의 차로 사내의 좌수는 초명
의 엉덩이를 비껴 지나갔다.
그 간발의 차로 초명의 엉덩이는 시퍼러딩딩한
찐빵이 되는 신세를 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다행스럽지 못했다.
스쳐지나간 사내의 손끝에 바짓단이 걸려 ?ʼn?
나간 것이었다.
그 사이로 희고 통통한 초명의 엉덩이가 환히
드러나버렸다.
엉덩이가 갑자기 시원해진 것을 느낀 초명은 엉
덩이께를 더듬어보았다.
!!
엉덩이께의 천이 길게 가로로 찢겨져나가 따뜻
한 엉덩이살이 만져지는 것이었다.
크윽..!
순간 초명의 얼굴색은 은 돼지간처럼 검푸른
색으로 바뀌었다..
-이런..망신이...-
거기다 일은 점입가경..일단의 사람들이 손에
무기를 꼬나쥐고 험악한 얼굴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초명의 발바닥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내참...열두살 때 곰굴을 멋모르고 들어갔을
때 이후로 가장 신나게 겨보네...-
초명은 연실 속으로 궁시렁대면서 재빨리 신형
을 날렸다.
허나 귀호산이라면 모를까, 그가 있는 곳은 무
적검가 안이었다.
여기저기 서 있는 전각과 탑을 피해 요리조리
달리다보니 어느새 그를 는 사람들은 수십명
을 넘어있었다...
"서랏!"
신나게 달리는 초명의 앞을 일단의 인물들이 막
아섰다.
맨 앞에 서 있는 인물의 자신감과 살기에 넘치
는 얼굴이 초명의 눈에 확 들어왔다.
"죽어랏!"
코앞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창날..
달려오던 속도 때문에라도 초명은 창끝에 뽀뽀
할 판이었다.
-윽! 장난이 아니다 !!-
초명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확 틀었다.
창날이 그의 뺨을 살짝 스쳐가며 화끈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슈웅-
창날이 아래로 떨어지며 그의 어깨를 파고들었
다.
"않돼-ㅅ"
초명은 날카롭게 외치며 내리쳐오는 창날에 손
을 부딧쳐갔다.
날카롭게 회전하는 창날에 그의 손이 어육이 된
다 싶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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