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ING] 여인24시 제 2 권 제 5 장
5. 그림자 사냥
밤 아홉 시 경, 두 사람은 러브호텔을 나섰다.
택시를 이용하여 센도마찌로 들어갔다.
택시에서 내려서니 좁은 골목길의 좌우에 각양각색의 네온이 명멸했
다.
섹스를 충분히 즐긴 몸에 가벼운 피로가 몰려왔다. 욕탕에서 나온
몸에 밤바람이 상쾌했다.
"한 잔 하고 빨리 돌아가자구. 오늘은 푹 자야지."
"정말이야. 그런데 나 정종을 마시고 싶어요. 조개의 회라도 해서
쭉 한 잔 하면 좋겠어요."
스낵바로 들어섰다.
현재의 기분으로는 일본식 스낵이 좋겠으나 조사할 일이 있으니 하
는 수 없는 일이다.
그 스낵바는 사기한 루리꼬가 일하고 있던 가게였다.
두 사람은 카운터석에 걸터앉았다.
섹스가 끝난 후 루리꼬와의 사건 경위를 요오꼬에게 대충 설명해 둔
터이다.
요오꼬도 조사에는 역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불량채권을 만들어 놓고 도망친 상대자의 추적조사이다. 회사를 위
해서라는 생각도 다소는 작용했을 것이다.
"어떤 여자일까. 절대로 잡아서 혼을 내줘야지. 아이가와씨가 출세
하는데 영향을 준다면 용서할 수 없지요."
흡사 적지에라도 쳐들어 온 표정으로 요오꼬는 가게 안을 두루 살폈
다.
안주인이 다가왔다.
인사가 애매하다. 아이가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
다.
아이가와는 씁쓸히 웃었다.
"최근에는 마에다군은 자주 오나요?"
동료인 마에다 마사히꼬의 이름을 댔다.
안주인은 그제사 납득이 가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제야 생각이 나
는 모양이다.
"아니예요. 요즘은 얼마 동안…… 참, 그렇지. V산업에 계시지요.
나 이름을 깜빡 잊어서 그만……"
"아이가와라고 하지. 이편은 우리 회사의 후꾸이 요오꼬씨. 어때 미
인이지?"
"정말 예쁜 분이야. 예쁘고 충만해 보이고, 우리 가게에도 이런 아
가씨가 한 사람쯤 있었으면……"
안주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웃어보였다.
일을 돕고 있는 여자가 둘이나 있다. 그러나 별로 미인은 아니다.
요오꼬처럼 예쁜 여자를 고용하고 싶다는 것은 진정일테지.
"그 미인은 어떻게 됐나요? 야마시다 루리꼬. 벌써 그만두었나요?"
태연하게 아이가와는 물어보았다.
요오꼬도 긴장하여 몸을 도사린다.
"루리아가씨 말이지요? 그만두었어요. 지난 주에 갑자기 그만두겠다
고 해서. 요즘 여자아이란 참을성이 없어서 곤란합니다."
"어디로 갔을까? 도오쿄에라도 갔나. 그 애에게 약간 관심이 있어서
말이야."
"예쁜 아가씨를 옆에 두고 그런 말씀을 하셔도 괜찮을까요? 루리보
다 이 편이 훨씬 미인인데."
"그게 아니라 아주머니, 우리는 루리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5백만
엔이나 V산업에 손해를 입혀놓고 도망친 사람입니다."
요오꼬가 말을 받았다.
대기업의 손실을 안주인에게 설명했다.
"사실입니까? 그 애가 그런…… 난 어떻게 한다지. 야단났네."
안주인의 안색이 달라지며 소리쳤다.
안주인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자신의 가게의 종업원이 손님 회사에 큰 손해를 입혀놓고 도망쳤다.
잘못하면 책임추궁을 당할 판이다. 손해배상까지 해올지도 모른다. 만
약에 그런 사건이 신문에 나기라도 한다면 가게의 신용에도 관계가 된
다. 꼴이 뭐가 되는 거지.
그런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을 테지.
"죄송합니다.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안주인은 머리를 깊히 숙이며 사죄했다.
"좋아요. 아주머니를 책망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것보다 루리꼬에
관해서 이야기 해 달라구요. 그 애의 출신이 시마네라고 했지 아마.
"그런 말을 했습니다. 시마네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오토에 나왔
다고 하더군요. 낮에는 섬유관계의 작은 회사에서 일을 한다고 했습니
다."
"그 회사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고 있나요?"
"아닙니다. 우리 집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로 회사에 알리지
말라고 했답니다. 회사 이름도 전화번호도 전혀 모릅니다."
스낵바의 인사채용이란 간단한 것이다.
어느 날 밤 루리꼬는 여자친구와 둘이서 이 가게에 술을 마시러 왔
다.
안주인과 잡담을 하면서 술을 마셨다.
이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다고 루리꼬는 제안했다. 란
제리 가게도 갖고 싶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마침 잘 되었다, 우리 가게에는 V산업의 사원들이 곧잘 술을 마시러
온다고 안주인이 말해주자 루리꼬는 함성을 울리며 기뻐했다.
가게 쪽이나 루리꼬에게도 썩 잘 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그 루리꼬라는 아이는 처음부터 란제리 가게를 들고 나왔
군요."
요오꼬가 참견했다.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댄다.
"그렇다니까. 마에다나 나를 만나자 처음으로 제안해 온 말이 아니
라구. 이 가게에 들어오기 전에도 그런 계획을 가졌다고 봐야지."
"문제는 그녀가 진정으로 그것을 원했느냐 하는 건데. 진정으로 가
게를 내고 싶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계획적이었는지 말이야."
"바로 그거야. 만약 진정으로 가게를 내고 싶었다면 V산업을 사기에
몰아넣을 까닭이 없잖아. 나나 마에다를 이용해도 틀림없이 가게는 낼
수가 있었을 테니 말이야."
아이가와와 요오꼬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야마시다 루리꼬가 진심으로 란제리 가게를 낼 계획이 있었던 것으
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말을 꾸며내며 이 가게에 들어왔던
것이다.
왜 그런 말을 날조했을까.
가짜 계획으로 V산업에다 사기를 쳐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왜 이 가게를 택하게 되었을까.
V산업의 사원인 마에다가 이 가게의 단골손님이기 때문이다.
루리꼬는 어디까지나 계획적이었다. V산업을 상대로 한탕 해 볼 생
각으로 이 가게를 택한 것이다.
이 가게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루리꼬는 여자친구와 동행이
었다.
도 사람 모두가 처음으로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주저하는 기색도 없
이 가게에 들어왔다고 하지 않는가.
그 친구란 누구였을까.
루리꼬와 함께 스낵바를 찾은 여자도 안주인에게는 초면이었다.
루리꼬의 동료일거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신원을 밝히는데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는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
이미 두 달이나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얼굴조차 기억에 없다
고 했다.
"나이는 26, 7세. 화사한 느낌의 예쁜 아가씨였지요. 말도 별로 없
고……"
"그 친구는 여기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나요?"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일에도 돈에도 궁색한 기색은 엿보이지 않
았습니다. 루리꼬와 나와의 대화를 생글생글 웃으며 듣고 있기만 했습
니다."
"그 여자친구에 대한 윤곽이라도 좋아요. 뭔가 힌트가 될만한 점도
없나요?"
"글쎄요.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었다면 무엇인가가 있었을 테지만,
설마 나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주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선입관 없이는 이상한 징조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아이가와는 아까부터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
나 그것은 너무나 당돌하고 이 편의 형편만을 생각하는 일방적인 독선
이었다.
세상이 그렇게 자신의 뜻대로만 회전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그것을 뿌리쳤다.
"그리고 보니 루리꼬에 대해서 한 가지 이상한 데가 있기는 했어
요."
안주인은 그제사 생각이 난 듯이 입을 열었다.
지난 주초에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 루리꼬를 보더니 놀라서 소리
쳤다.
그 손님과 루리꼬는 이 가게에서는 첫 대면이었다.
종전에 어딘가에서 만난 일이 있는 듯 했다. 반갑다는 듯이 그 손님
이 말을 걸었다.
그러나 루리꼬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사람을 잘못 보셨겠지요. 저는 만난 기억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며 카운터 가장자리로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그 손님은 고개를 가우뚱거리며 마시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날 밤에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루리꼬는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그것이 원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나……"
"그래,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단서가 될 지도 모르지. 그 손
님은 뭐라는 이름이지요? 근무처는?"
아이가와는 수첩을 꺼내들었다.
안주인은 카운터로 사라졌다.
서랍을 열고 안을 뒤져서 명함을 한 장 들고 왔다.
아이가와는 손에 들고 살폈다.
P흥업주식회사, 영업과장 노지리 요오쓰께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P흥업이라…… 별로 듣지 못한 이름인데."
아이가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요오꼬도 말없이 명함을 살폈다.
"수도공사에 관계하는 회사인 것 같아요. 아이가와씨의 회사와는 거
리가 멀겠지요."
P흥업은 센모도마루따에 있는 듯 했다.
내일 당장 찾아가 봐야지. 노지리라는 사나이가 루리꼬와는 어디서
만났을까.
그것이 밝혀지면 신원도 밝혀지겠지.
"온 보람이 있었죠. 이것은 큰 수확이야. 틀림없이 루리꼬의 본성도
밝혀지겠지."
"잘 됐군요. 그러나 그 여자와 만나면 다시 색정이 발동하지 않을까
요?"
그제사 아이가와와 요오꼬는 마시기 시작했다.
(<6. 호반>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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