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3장1
--금병매--
1권 3장
살부1
늙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며 과일 행상을 해서 아버지를 부양하고 있는 기특한 소년이 있었다. 이름은 운가이고, 나이는 열다섯살이었다. 이마에 바야흐로 여드름이 한 개 두 개 돋아나고 있었다.
본시 성은 교가였지만, 아버지가 운주로 귀양을 가있는 동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고장 이름자를 따서 그냥 운가라고 불렀다.
운가는 기특하면서도 매우 영리한 소년이었다. 철따라 나는 과일을 가지고 현청 앞의 여러 음식점과 상점을 단골로 드나들었고,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팔기도 했다.
어느날, 장사가 잘 안 되어 운가는 서문경네 약국을 찾아갔다. 서문경은 과일을 매우 좋아해서 곧잘 운가의 물건을 사주었던 것이다.
오후였다. 약국을 지키고 있던 의원이 낮잠이 오는 듯 하품을 하다가 운가가 과일 광주리를 메고 들어오자 대뜸 손을 내흔들었다. 안 산다는 표시였다.
"서문 대관인한테 팔려고 그래요."
"지금 집에 안 계시다니까."
"어디 가셨는데요?"
"내가 아냐."
"아저씨, 그러지 마시고 좀 가르쳐 주세요. 오늘 장사가 너무 안 돼서 저녁밥을 굶을 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서문 대관인은 잘 사주시거든요."
운가의 표정이 너무 측은해 보였던지 의원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왕파의 찻집 안방으로 가보라구. 거기 계실 테니까."
"거기서 뭘 하시는데요? 남의 집 안방에서.."
"글세, 가보면 알 테니까. 어서 그리 가봐."
의원은 혼자서 의미있는 웃음을 살짝 입 언저리에 떠올린다.
"고맙습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운가는 왕파네 찻집을 향해 잰걸음을 친다.
서문경이 왕파에 안방에서 남의 여자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비밀 아닌 비밀이 되어 은밀히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절대 비밀이란 있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깊숙한 안방이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곧잘 드나드는 찻집이니,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격으로 누군가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러나 놀아나는 여자의 남편인 무대만은 아직도 그 낌새를 까맣게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찻집으로 들어선 운가는 곧바로 안방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뜨개질을 하고 있던 왕파가 놀라 후다닥 일어나 앞을 가로막는다.
"너 뭐하는 거야? 어디 가려고 그래?"
"안방에요."
"뭐, 안방에? 이자식이 남의 집 안방에는 뭐하려고..."
"거기 서문 대관인이 계시잖아요. 그 어른한테 과일을 팔려고 그래요."
왕파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우선 허-하고 한번 웃는다.
"서문 대관인이 너한테 과일을 가지고 오라 그러던?"
"아니요. 가져어라곤 안하셨지만 내 과일을 잘 팔아 주시거든요."
운가는 정직한 소년이라 거짓없이 대답한다.
"그럼 안 돼."
"왜 안 돼요? 오늘 장사를 너무 못했단 말이에요. 서문 대관인은 틀림없이 많이 사주신다구요."
"안된다면 안 되는 줄 알라구. 그런데 너 서문 대관인이 우리 집에 계신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걸 모를까 봐요. 다 아는 수가 있어요. 그런데 서문 대관인이 안방에서 뭘 하고 계시죠?"
"뭘 하긴 뭘해. 아무것도 안하시지."
"헤헤헤.. 아무것도 안하시면서 뭣 때문에 남의 집 안방에 들어앉아 있어요? 나도 다 안다구요. 뭘 하는지....."
영리한 소년이라 이미 짐직을 하고서 찾아왔던 것이다. 운가도 서문경이 오입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놈의 자식, 니가 뭘 안다구. 썩 나가지 못해!"
왕파는 냅다 눈을 부릅뜨며 주먹을 한 개 번쩍 쳐든다.
"이러지 말자구요."
"나가라면 나가지. 무슨 말대꾸야. 어서 나가! 썩 나가!"
"더럽게 구네."
"뭐라구? 더럽게 굴어 ? 이자식이 누구한테 입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거야. 응? 나가라구!"
그만 왕파는 운가의 가슴패가를 쥐어박듯 왈칵 떠밀어 버린다. 운가는 과일 광주리를 멘 채 뒤로 넘어질 듯 비틀거리다가 가까스로 몸을 가눈다.
"나가! 나가!"
왕파가 다시 달려들어 밀어붙인다.
그 바람에 광주리에 담긴 과일이 좌르르 쏟아진다. 운가는 분해서 씨근거리면서도 바닥에 굴러 있는 과일을 도로 광주리레 주워 담는다. 그리고 도리없이 광주리를 메고 밖으로 나가면서 왕파를 돌아보며 거침없이 내뱉는다.
"이 뚜쟁이 할망구야, 늙어가면서 더럽게 놀지 말라구."
"뭣이 어쩌구 어째? 저 빌어처먹을 놈의 자식이... 에라이 호로새끼야.!"
왕파는 화가 치솟아 마구 달려들어 물어뜯기라도 할 기세로 쫓아 나간다. 운가는 광주리를 멘 채 냅다 도망치다.
운가는 분했다. 아무래도 그냥 물러설 수가 없었다. 이놈의 할망구 혼 좀 나봐라 싶으며 운가는 과일 광주리를 근처에 있는 집에 가서 맡겼다. 그리고 왕파에 집 뒷문 쪽으로 돌아 갔다.
뒷문은 닫혀 있기는 했으나 안으로 걸려 있지는 않았다. 살그머니 밀고 들어섰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가만가만 집 안르로 들어가 안방 쪽으로 다가갔다. 방 앞에 두 개의 신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나는 남자의 신이고, 하나는 여자의 신이었다.
남자의 신은 서문경의 것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여자의 신은 누구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운가는 바짝 호기심이 동했다.
호기심에서만이 아니라, 왕파에게 분풀이를 하려면 서문경과 놀아나는 여자가 누군지 알아야 되었다. 여자가 처녀거나 과부라면 누군지 알아도 소용이 없었다. 유부녀일 경우에만 일이 제대로 들어맞는 것이다. 그 남편에게 알려서 왕파까지 혼쭐이 나도록 해주려는 생각이다.
우선 운가는 방문에 바짝 귀를 갖다대고 방안의 기척을 엿듣는다. 아무 소리가 나지가 않는다. 남자와 여자가 방안에 있는게 틀림없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가 않다니 이상한 일이다.신은 있지만 혹시 사람이 없는 게 아니가 싶어서 운가는 살그머니 방문을 조금만 열어 본다. 침상이 보이고, 그 위에 남자와 여자가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것 같다. 그런제 조금도 움직이는 기색이 없다.
운가는 알겠다는 듯이 혼자서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일을 마치고 지쳐서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는게 틀림없는 것이다.
문을 조심스레 조금 더 열고 들여다본다. 아니나다를까 서문경과 어떤 여자가 한 이불 속에서 같이 자고 있다. 여자는 얼굴을 저쪽으로 돌리고 있어서 누군지 잘 알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여자의 허연 다리 하나가 이불을 들추고 온통 밖으로 나와 서문경의이불에 덮인 몸뚱이 위로 척 걸쳐져 있다.
여자의 허옇고 피둥피둥한 다리를 보자, 열다섯살 먹은 운가도 절로 꿀꺽 침이 한 덩어리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이마에 여드름이 돋아나고 있는 터이니 그럴만 하다.
"으으음....."
마침 그때 여자가 몸부림을 치며 돌아눕는다.
이쪽으로 돌려진 여자의 얼굴을 본 운가는 깜짝 놀란다.
"아니, 무대 아저씨의 아내 아냐. 이럴 수가......"
너무 뜻밖이어서 운가는 얼른 방문을 닫고 후다닥 뒷문으로 해서 바깥으로 뛰어나간다.
운가는 같은 행상을 하는 무대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르는 터였다. 비록 난쟁이긴 하지만 어리석을 정도로 선량해서 운가는 무대 아저씨를 진정으로 좋아했다. 그 무대 아저씨의 아내가 서문경과 놀아나고 있다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무대 아저씨를 위해서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운가는 무대를 찾으러 거리를 뛰었다. 이 거리 저 거리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겨우 무대를 찾아냈을 때는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날이 설핏해 오고 있었다.
"아저씨, 큰일났어요. 제가 얼마나 찾아다녔다구요."
"왜? 무슨 일인데?"
"아 글쎄..."
운가는 다음 말이 얼른 입에서 나오질 않는다.
"무슨 일인데 그러지? 어서 말해 보라구."
"저... 아주머니가 왕파네 찻집에서....."
"집사람이?"
"예, 찻집 안방에서..."
"안방에서 뭘 어쨌는데, 어서 말해 보라니까 그러네."
무대의 안색이 슬그머니 달라진다. 운가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서슴없이 지껄인다.
"아주머니가 말이에요. 서문 대관인하고 같이 자고 있지 뭐예요."
"뭐? 그게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요. 그런 거짓말을 할 수가 있나요? 제가 직접 눈으로 보고 오는 길이란 말이에요."
"음---"
무대는 온통 상판을 일그러뜨리며 묻는다.
"왕파네 안방엔 뭣하러 갔었는데?"
"오늘 과일을 너무 못 팔았지 뭐예요. 서문 대관인은 잘 사주거든요. 그래서 서문 대관인네 약방을 찾아갔더니 의원이 말하기를 ....."
운가는 자초지종을 자세히 늘어 놓았다. 그리고 말한다.
"제가 분해서 견딜 수가 없지 뭡니까. 아저씨는 이렇게 하루 종일 뼈가 빠지게 장사를 하러 다니시는데, 글쎄 아주머니는 남의 남자와 몰래 그런 짓을 하고 있다니..."
"오냐, 알았다. 내가 가만히 안 둔다. 연놈을 그저 요절을 내 줄것이니까 보라구."
무대는 무섭게 어금니를 악물며 주먹을 불끈 쥔다. 그리고 지금 당장 왕파에 집을 향해 달려갈 기세다. 운각가 만류한다.
"아저씨, 지금까지 거기 있지 않을 거예요. 제가 본 지가 벌서 꽤 오래 됐거든요. 아저씨를 찾아다니느라 시간이 걸렸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내일 다시 두 사람이 만나거든 그때 쳐들어 가도록 해요."
"음--"
무대는 고개를 끄덕인다.
집에 돌아간 무대는 시치미를 뚝 떼고 평소와 다름없이 하룻밤을 보냈다. 그러나 속으로 금련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 서문겨과 둘이 눈이 맞았는지 생각할수록 기분 나쁘고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내일 현장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면 결단코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이를 악물며 다짐을 하곤 했다.
무대는 아내의 부정을 이미 한 차례 겪은 바가 있었다. 장대인 영감이 금련을 무대에게 시집보낸 다음에도 기회를 보아 이따금 그녀를 데리고 즐겼던 일 말이다. 그때 장대인은 팔아 버려도 될 금련을 무대에게 공짜로 시집보내 주었고, 문간채에 사는 무대에게 집세도 안 받았을 뿐 아니라, 장사 밑천까지 곧잘 대주었기 때문에 그 은혜를 생각해서 무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뻔히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모르느 체 참는 수밖에 없었다. 현장을 목격하고도 못 본 체 슬그머니 돌아선 일조차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그때와는 전혀 달랐다. 서문경에게는 눈꼽만큼도 신세를 진 일이 없으니 말이다. 무대는 금련을 유혹해내어 데리고 노는 남자가 서문경이라는 말에 슬그머니 위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현내에서 이름난 부호인데다가 현청에 곧잘 드나들어 높은 벼슬아치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안하무인격으로 거들먹거리는 존재이니 말이다. 그러나 돈 많고 권력을 등에 업었다고 남편이 있는 남의 집 부녀자까지 제맘대로 데리고 놀아도 된다는 법은 없은 것이다. 간통은 엄연히 법으로 다스리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 무대은 서문경이가 됐든 동문경이가 됐든 현장을 목격하기만 하면 여지없이 사로잡아서 두 연놈을 꽁꽁 묶어 죄인ㅇ르 다스리는 제형소로 끌고 가리라 마음먹었다. 두 연놈뿐 아니라, 왕파 역시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그 늙은 여우 같은 할망구가 서문경의 수족이 되어 금련을 자기 집 안방으로 끌어냈을 게 틀림없으니 그 늙은 것까지 함께 묶어서 고발하리라 작정했다.
난쟁이면서 평소에 줏대도 없고 머리도 둔해서 좀 모자라는 사람 같던 무대가 속으로부터 진짜 호가 솟구쳐 오르자 무서웠다. 흔히 병신들이 드렇듯이 그 역시 감정이 극도로 북받치자 앞 뒤 안 가리고 치닫는 그런 극단적인 데가 있었다.
이튿날 아침, 여느때와 다름없이 행상을 하러 떠나는 체하고 집을 나선 무대는 약속한 장소에서 운가를 만났다. 무대는 운가에게 세 연놈을 묶어서 제형소로 끌고 갈 자기의 계획을 얘기했다. 그리고 현장을 어떻게 덮쳐 사로잡을 것인가 의논했다. 현장인 안방으로는 무대가 뒷문을 통해서 몽둥이를 들고 뛰어들어가 두 연놈을 우선 두들겨패서 쓰러뜨리기로 했고, 운가는 왕파를 사로잡아 묶어 놓은 다음 안방으로 가서 쓰러진 서문경과 금련을 무대와 함께 묶기로 했다.
말하저면 간통 현장 기습작전계획을 세운 다음, 운가는 몽둥이와 밧줄을 구하러 갔고, 무대는 그 자리에서 왕파에 찻집과 바로 이웃에 있는 자기 집을 감시했다. 무대는 쪼르리고 앉아서 이를 뿌드득 갈고서 중얼거린다.
"이 개 같은 연놈들, 어디 오늘 맛 좀 봐라."
간통 현장 기습작전은 다음날로 연기되었다. 정력 절륜의 서문경도 하루쯤은 쉬어야 되었던지 그날은 왕파네 찻집으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종일 장사도 안하고 지키고 있었던 무대와 운가는 해질 무렵이 되자 맥이 풀렸다. 무대가 운가에게 말했다.
"니가 잘못 본 거 아냐? 안 나타나잖어."
"잘못 보다니요. 서문 대관인도 오입쟁이지만 하루쯤 쉬어야 되는 모양이죠."
"대관인은 무슨 놈의 대관인. 대관인 소리 말라구, 듣기 싫다구, 그런 망나니가 대관인이라니....."
"좌우간 내일은 틀림없이 나타날 거에요. 두고보세요. 하루라도 쉬어야 또 힘이 나지 않겠어요?"
"야 이녀석아 새파란 녀석이 뭘 안다고..."
"나도 다 안단 말이에요. 새파랗지 않다구요. 보시라구요."
무대는 살짝 운가의 이마배기를 한 번 쥐어박아 준다.
이튿날 살짝 무대는 행상을 하러 가는 체 집을 나서서 아침부터 그 자리에 가서 감시를 했다. 그것들을 잡아 옥에 집어넣기 전에는 장사고 뭐고 도무지 염두에 없었다.그러나 운가에게는 과일을 팔러 다니도록 했다. 너무 멀리는 가지 말고 근처에서 장사를 하면서 수시로 연락을 취하도록 했다.
오후 미시쯤이었다. 마침내 서문경이 나타났다. 머리에 두건을 쓴 서문경을 멀쩡한 얼굴을하고 왕파네 찻집 안으로 사라졌다.
곧 왕파가 밖으로 나오더니 종종걸음으로 무대 자신의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무대는 숨을 죽이고 매섭게 왕파의 모습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운가가 연락을 취하러 왔다.
"아저씨, 어떻게 됐어요? 아직 안 나타났어요."
"나타났다구. 저기 보라구. 왕파가 우리 집으로 들어가잖아."
"아주머니를 데리러 가는 모양이죠?"
"그런 것 같애. 서문경이 그놈이 조금 전에 왕파네 집으로 들어갔거든. 음- 이 연놈들 어디 두고보자."
잠시 후, 왕파의 뒤를 따라 금련이 집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그러나 금련은 왕파와 함께 찻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남의 눈을 피해서 그 집 뒷문으로 들어가려는 듯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년을 그냥 그만....."
무대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버르르 떤다.
서문경과 금련의 밀회가 무르익어 갈 때쯤 해서 무대와 운가는 숨어서 감시를 하던 골목길에서 뛰어나가 왕파네 찻집을 향해 달려갔다. 무대는 한 손에 몽둥이를 들고 허리에는 오랏줄 셈인 밧줄을 두 개 차고 있었고, 운가는 밧줄과 수건을 옆구리에 덜렁 매달고 있었다.
운가는 가게로 뛰어들었고, 무대는 집 뒷문으로 해서 안방으로 돌진했다. 그야말로 이인 기습작전이었다.
난데없이 운각가 가게에 뛰어들다 왕파는 놀라 눈이 휘둥그래지며 뜨개질하던 것을 떨어뜨리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침 가게에는 차 마시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대낮에는 언제난 파리를 날리는 판이었다. 운가는 다짜고짜 왕파에게 달려들어 옆구리에 찬 수건을 빼서 입을 틀어막아 불끈 뒤로 묶어 버렸다. 그리고 버둥거리며 휘저어대는 두 팔을 밧줄로 꽁꽁 묶었다. 아직 열다섯밖에 안 된 소년이지만 꼼짝을 못하도록 칭칭 묶어 놓았다.
뒷문으로 뛰어든 무대는 안방으로 달려가 불문곡직하고 방문을 왈칵 열어젖혔다.
"어머나!"
"누구야?"
여자의 비명과 남자의 고함소리가 거의 동시에 터졌다.
벌거숭이가 되어 휘감겨 꿈틀거리고 있던 두 남녀는 몽둥이를 들고 뛰어든 무대를 보자 질겁을 하고 침상에서 구러 내렸다. 서문경은 놀라 정신없이 침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납작 엎드린다. 그러나 금련은 그 경황 중에도 손에 닿는 대로 옷을 집어 우선 사타구니부터 가리면서 방 한쪽 구석으로 피한다.
"너 이년! 맛 좀 봐라! 이 쌍년!"
무대는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리친다. 그러나 흥분을 한 탓인지 금련이 재빨리 몸을 움츠림며 피하는 바람에 몽둥이는 빗나가 옆에 있는 경대를 냅다 두들겨서 와장창 거울이 부서져 흩어진다.
두 번째 내리친 몽둥이가 비로소 금련의 한쪽 어깨를 강타했다.
"으악! 나 죽네! 사람 살려-"
침상 밑에서 금련의 그 비명소리를 들은 서문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침상 밑이긴 하지만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는 자기도 당하고 말 것 같아 서문경은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뜬다. 부릅뜬 눈에 침상 밑으로 무대의 짤막한 두 다리가 내다보인다. 저 따위 난쟁이 싶으며 서문경은 냅다 튕겨나가듯 침상 밑에서 순식간에 기어나가 무대의 두 다리를 불끈 잡아 왈칵 당겨 버린다.
"으이크"
다시 금련을 내리치려던 무대는 비명을 내지르며 발랑 가볍게 방바닥에 나가 떨어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건 알몸인 서문경은 벌떡 일어나기가 무섭게, 방바닥에 나가 떨어진 무대의 손에서 재빨리 몽둥이를 빼앗었다. 그리고 그 몽둥이로 냅다 사정없이 무대를 내리갈기기 시작했다.
무대는 비명을 내지르며 이리 데굴 저리 데굴 방바닥을 마구 구르다간 발딱 일어나 결사적으로 방문 쪽을 향해 도망친다. 그러나 허사였다. 몽둥이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바람에
"으악--."
까무러치는 듯한 비명과 함께 픽 앞으로 꼬꾸라지고 만다.
꼬꾸라진 놈을 서문경은 죽으라 하고 타작을 하듯 내리친다. 마침내 무대는 두 눈을 허옇게 뒤집어 까고서 축 늘어지고 만다. 입에서 피거품이 지르르 흘러내린다.
가게에서 왕파를 잡아 기둥에 묶고 난 운가는 안방 쪽에서 들려오는 무대의 비명에 놀라 후다닥 그쪽으로 달려갔다. 방 안을 들여다본 운가는 눈이 휘둥그래지고 만다.
벌건 알몸인 서문경이 몽둥이로 냅다 무대를 내리조지고 있고, 옷으로 사타구니만 가린 금련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한 쪽 구석에 서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습기도 하고 겁나기도 한 광경이었다.
살기 등등한 서문경의 시선과 마주치자 운가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돌아서 냅다 뺑소니를 친다. 어물어물 하다가는 서문경의 몽둥이에 자기도 요절이 나고 말 것 같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인 기습작전은 가게 쪽에서는 성공했으나 안방에서 잘못되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서문경은 몽둥이를 방바닥에 떨어뜨리고 시근덕거리며 옷을 주워 입는다. 그리고 몽둥리를 다시 한 손에 들고서,
"이놈의 할망구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왕파까지 후려칠 기세로 가게 쪽으로 뛰어나간다. 가게 안에 왕파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어디 갔어, 이놈의 할망구."
행길까지 내다본다.
주방쪽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서문경은 얼른 그곳으로 가본다. 입을 수건으로 재갈을 물린 채 기둥에 묶여 있는 왕파를 보자 그제야 일이 어떻게 된 것인 줄을 짐작하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옷을 입고서 뒤따라 나온 금련이 놀라면서 왕파의 입을 틀어 묶은 수건을 풀어준다. 서문경은 몸을 칭칭 결박한 밧줄을 푼다
왕파로부터 자초지종의 얘기를 듣고 난 서문경은,
"운가란 놈 괘씸한 놈인데... 요놈 어디 두고보자."
투덜거리고 나서 왕파와 금련에게 명령조로 내뱉는다.
"무대를 얼른 자기 집으로 운반해다가 보살피라구. 목숨이 끊어지면 곤한하니까."
그리고 서문경은 오늘 재수 옴올랐다는 듯이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으며 성큼성큼 나가 버린다.
왕파와 둘이서 무대를 집으로 옮겨 간 금련은 혹시나 남편이 숨을 거둘까 두려워서 극진히 간호를 했다. 기절을 했던 무대는 얼마 뒤에 정신을 돌이키기는 했으나, 헛소리를 하며 끙끙 앓아댔고, 몸을 조금도 움직이질 못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모르는 영아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아버지의 침상 곁에 앉아서 떠날 줄을 몰랐다.
"어머니, 아버지 왜 이랬어요?"
영아의 묻는 말에 금련은 쏘아붙이듯이 대답했다.
"몰라, 어디서 누구하고 싸웠나 봐. 물건을 팔다가 시비가 붙었는지 어쨌는지...."
무대는 이틀 후에야 겨우 누운 채 입에 떠넣어 주는 미음을 받아 삼켰다. 미음을 떠넣어 주는 금련을 보고도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직도 눈의 초점이 제대로 안 맞는 듯한 그런 멍한 상태였다.
사흘이 지나서야 무대는 금련이 입에 미음을 떠넣어 주려 하자, 고개를 돌렸다. 거절하는 의사였다.
"여보, 내가 죽을 죄를 지었다구요. 한 번만 용서해 줘요.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예요. 정말이예요. 내가 당신 앞에 맹세 할게요. 이렇게..."
금련은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을 하듯 말하며 무대의 얼굴 앞에 두손을 모아 비는 시늉까지 해보인다.
"용서해 주는 거죠? 예? 여보, 왜 대답이 없어요. 대답을 해봐요."
"싫다구"
"용서해 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에게나 한 번 잘못은 있는 법이에요. 자기 아내의 한 번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는다니 너무해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구요. 사랑한다면 이렇게 까지 잘못을 뉘우치며 비는데 용서를 안해 줄 수 있어요?"
"용서도 해줄 것이 있고 못 해줄 것이 있는 거여. 남의 남자와놀아난 자기 여편네를 용서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여."
"그럼 어쩔 거예요? 용서해 주지 않는 다면."
"복수를 하고야 만다구. 내가 이렇게 죽도록 두들겨 맞았는데 그냥 가만히 있을 것 같애. 어림도 없어. 두고보라구."
"좋아요. 그럼 나는 보따리를 싸가지고 나갈 거예요. 당신하고는 이제 그만 산다구요. 알겠죠"
"........"
"왜 말이 없어요. 용서해 주지 않고 복수를 한다는데, 어떤 여자가 붙어 있겠어요. 당장 보따리를 싸가지고 나갈 거니까 그쯤 알아요. 난 오히려 잘 됐지 뭐예요.헤헤헤...."
금련은 남의 허파를 뒤집듯 요망스럽게 웃기까지 하며 얼른 돌아서서 방을 나가 버린다.
그때 바깥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이집이 무대씨 집입니까?"
"누구세요."
소리를 지르며 영아가 뛰어나간다.
문 밖에 웬 군관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이 집이 무대씨 집 맞느냐?"
"예, 무대씨가 우리 아버지에요"
"응 그럼 무송씨는 삼촌 되겠군"
"맞아요."
"아버지, 지금 집에 계시느냐?"
"예, 아파서 누워 계시니까 좀 들어오세요."
"뉘신지요? 난 몸을 다쳐서 일어나지를 못하니 양해하시고, 좀 앉으세요."
무대는 자리에 누운 채 손님을 맞이한다.
"자, 군관 아저씨 이리 앉으세요."
영아가 재빨리 의자를 권한다.의자에 앉은 군관은 먼저 자기 소개를 한다.
"저는 이번에 동경에서 이곳 청하현으로 전속 명령을 받고 부임해 온 장양립이라는 군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무송씨의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 그래요. 이거 정말 고맙고 반갑습니다."
무대의 초췌한 얼굴에 오래간만에 웃음이 떠오른다.
"아이 좋아라. 삼촌한테서 편지가 왔다."
영아도 기뻐서 손뼉을 짝짝 치기까지 한다.
군관은 상의 안호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어 무대에게 건넨다. 무대는 그것을 받으려다가 말고 좀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나는 까막눈이라서.... 미안하지만 편지를 좀 읽어봐 줄 수 없는지요?"
"예, 그러지요."
장양립은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편지의 내용은 동경에 잘 도착해서 잘 지내고 있고 얼마후 돌아오겠다는 내용이었다.
"야 삼촌이 돌아오신다."
무대도 빙그레 웃음을 떠올리며 중얼거린다.
장양립이 입을 연다.
"이미 동경을 떠나서 오고 있을 겁니다."
이미 무송이 오고 있다는 말에 무대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뿌드득 간다. 그리고 내뱉는다.
"오냐, 무송이 돌아오기만 해봐라. 이것들 어디 두고 보자구."
가만히 듣고 있던 금련은 정신이 번쩍 드는 듯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며 얼른 돌아서서 재빨리 왕파를 찾아가고 있었다.
"야단났어요. 할머니"
"왜? 무대가 뭐 어떻게 됐나?"
"아니요. 그런데 아니라 무송이 돌아온다는 거예요."
"무송이 돌아온다구?"
왕파는 슬그머니 겁이 나느 듯 안색이 약간 변한다.
"어쩌면 좋지?"
"그 양반을 만나서 상의를 해보자구요."
"그러는 수밖에 없지. 그럼 내가 지금 서문 어른 댁에 갔다 올 테니까, 색시가 가겔 좀 보고 있으라구."
"알았어요. 어서 다녀오시라구요. 가게는 염려마시고."
왕파가 서문경을 데리러 나가자 금련은 창가에 가 앉아서 바깥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긴다.말을 타고 터벅터벅 산을 넘고 내를 건너 끝없는 들길을 돌아오고 있는 무송의 모습이 문득 머리에 떠오르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머리를 내흔든다.
왕파네 안방 탁자에 세 사람은 둘러 앉았다. 금련은 며칠만에 만난 서문경이 몹시 반가웠으나 그런 기색은 애써 감추며 꽤나 걱정이 되는 투로 얘기를 늘어놓았다. 이미 왕파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터이지만, 서문경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금련의 얘기가 끝나자 서문경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어디 왕파가 의견을 말해 보라구"
왕파는 약간 두려움이 깃든 그런 눈으로 서문경의 표정을 살피듯이 바라본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아주 깨끗하게 해결을 해서 푹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그런 좋은 방법이....."
그러면서 서문경은 날카로운 눈으로 왕파를 위압하듯 쏘아본다. 그 눈빛에는 은밀한 강요의 신호가 깃들어 있다. 조금 전에 걸어오면서 내 의중을 알리지 않았느냐, 그 말을 어서 할멈 입으로 꺼내라는 그런 신호 말이다. 왕파는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빳빳하게 세운다.
그리고 그것을 거꾸로 해서 콱 밑으로 찍어누르는 시늉을 해보인다. 마치 서문경이 하던 그래로 흉내를 내는 것 같다.
서문경은 히죽이 웃는다. 그리고 묻는다.
"그게 무슨 뜻이지?"
분명히 말로 하라는 강요인 것이다. 금련도 그 손가락의 시늉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짐작이 가서 그만 안색이 변해 버린다.
"죽여 없애버리는 거지요."
왕파는 아무 두려움이 깃들어 있지 않은 그런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음- 그래?"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금련의 표정을 힐끗 살핀다.
서문경과 시선이 마주치자 금련은 얼른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살짝 떨구어 버린다. 서문경이 나직하면서도 무게가 깃든 그런 음성으로 묻는다.
"여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왕파의 말을 말이야."
남편을 죽여 없애버리다니, 금련은 생각만 해도 두렵고 아찔한 일이었다. 아무리 난쟁이이고 마음에 안 차는 남편이지만, 열여덟에 혼례식까지 올리고서 시집을 와 그동안 여러 해를 한 잠자리에서 몸을 섞으며 살아온 터인데, 죽여 없애다니 될 말이 아니었다.
비록 무송이 돌아와 복수를 당할까 두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미리 무대르 죽여 없애는 그런 끔찍한 방법을 쓰려고 들다니.....
너무나 뜻밖의 일이어서 금련의 겁에 질려 입이 얼어붙은 듯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왕파 스스로의 제의인 줄만 알고 금련은 이 늙은이가 정말 무서운 여자로구나 싶으며 속으로 진저리를 쳤다.
"대답을 해보라구. 당신 생각은 어떤가 알고 싶어."
"죽일 수는 없어요."
"그래? 음, 그럼 다른 어떤 좋은 방법이 있는지 어디 말해봐."
서문경의 목소리가 약간 퉁명스러워진 듯해서 금련은 속으로 이 양반도 죽이기를 원하는 모양이구나 싶으며 조심스레 큰숨을 들이쉬었다가 떨리듯이 내뱉는다. 그리고 살짝 다시 시선을 내리깔며 아무 말이 없다.
"왜 대답이 없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고개를 숙인 채 금련은 대답한다.
그러자 서문경은 한결 목소리에 힘응 넣어 위압적인 어조로 두 사람 다 똑똑히 들으라는 듯이 말한다.
"내 말을 잘들 들어 보라구. 자칫 잘못하면 우리 세 사람이 다 큰 망신을 당하게 된다구. 알겠어? 그날 무대가 옆구리에 밧줄을 차고 있었다구. 두 사람 다 봤지? 그 밧줄을 왜 차고 있었는지 알어? 우리를 묶어서 관가에 끌고가 고발하려고 했던 거란 말이야 무대 제깐놈이 어림이나 있나. 가소롭지. 그러나 만약 그날 무송이 들이닥쳤다고 생각해 봐. 꼼짝없이 묶이고 말았을거 아냐.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은 놈인데. 당할 재주가 있겠느냐 말이야. 벌거벗은 채 묶여서 제형소로 끌려갔다면 그보다 더한 망신이 어디 있겠어. 안 그래?"
금련과 왕파는 말없이 고개를 가만가만 끄덕인다.
"일이 무사히 잘 끝나면 할멈에게는 내가 또 두둑하게 ... 알겠지?"
"아이고 고마워라"
늙어가면서도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왕파의 합죽한 입이 헤벌레 벌어진다.
"목이 마르군. 자 할멈, 술을 한 잔 마실까."
서문경은 안호주머니에서 은화 한 개를 꺼내어 왕파에게 건넨다. 반드시 술 생각이 나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지껄이느라 약간 목이 칼칼해지기도 했지만, 속으로 다음 계산을 하고서의 수작인 것이다.
술을 몇 잔 마시고 나자 서문경은 왕파에게 싱글 웃으면서 말을 던진다.
"인제 할멈은 특급주를 사러 가야겠어."
"예, 헤헤헤..."
왕파는 얼른 방을 나간다.
그 말은 자리를 비켜 달라는 그들만의 은어가 된 셈이다.
왕파가 사라지자, 서문경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금련도 온 얼굴에 절로 요염한 기색이 화사하게 번지며 따라 일어선다. 서문경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녀를 번쩍 안아다가 침상에 눕힐 생각을 않고, 방 한가운데로 가서 우뚝 선 채 자기 옷부터 훌렁훌렁 벗어 던진다.
벌건 나체가 빨리.
"자. 당신도 빨리"
명령조다.
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면서 금련은 오늘도 색다르구나 싶으며 기꺼이 벗기 시작한다.
서문경이 여느때와 달리 장소를 침상 위가 아닌 방바닥을 택한 까닭은 아마도 금련이 경험하지 못했을 것 같은 몇 가지 새로운 솜씨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색한인 서문경은 여자의 몸뚱아리를 다루는 재주에 있어서 이십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이미 도통의 경지에 가까이 가 있었다. 온갖 기법을 다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능숙하게 그 기법들을 구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느때와 달리 그런 새로운 솜씨를 보여 주기로 마음 먹은 것은 금련을 며칠만에 만난 간절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속으로 은근히 계산을 하고서의 수작이었다. 자기의 남성다움을 한껏 과시한 다음, 그녀의 입에서 남편을 죽이겠다는 확실한 대답이 절로 흘러나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금련은 서문경의 새로운 솜씨에 경탄과 환희를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장대인 영감에게서도, 남편인 무대에게서도, 그리고 며칠 전까지의 서문경과의 정사에서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새로운 애무에 절로 교성이 흘러나왔다. 눈을 사르르 감기도 했고, 하얀 앞니를 물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서문경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마치 희고 미끈한 한 마리의 암컷과 연갈색 근육질의 한 마리 수컷이 뒤엉기어 희희낙락 성희를 즐기는 것 같았다. 꽤 넓은 방바닥이 좁을 지경이었다.
색다른 애무가 끝나고, 마침내 수컷이 암컷을 뜨겁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격이 절정에 가까이 가 암컷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초점을 잃어갈 때 수컷은 가만히 공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여뵤."
"응?"
"나 어때?"
"당신 정말 너무너무 멋있어. 나 인제 당신 없으면 못 산다구. 정말이야."
"나도 마찬가지야. 당신이 너무 좋다구. 당신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정말이지?"
금련의 몽롱하던 두 눈이 반짝 맑아지며 고운 미소가 떠오른다.
"정말이고 말고, 그 대신 당신이 과부가 돼야 된다구.알겠어?"
"응."
"이버이 좋은 기회야.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돼. 만약 이번에 과부가 못 되면 당신과 나는 이것으로 끝이야. 다시는 안 만날 거야. 단단히 결심을 하라구."
"알았어. 내 손으로 무대를 없애버리고 말 거야. 두고보라구."
"암, 그래야지. 그래야 만사가 해결이라니까"
바로 그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도록 하기 위해 지금까지 숨을 헐떡거리며 온갖 솜씨를 다 부렸다는 듯이 서문경은 빙그레 흡족한 웃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마무리를 하듯 서서히 다시 공격을 개시한다.
금련의 입에서 무대를 자기 손으로 죽여 없애버리겠다는 말이 나왔으니, 일은 이미 절반은 끝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서문경은 금련과의 정사을 마치자, 왕파를 도로 방으로 불러들였다.
그날 밤 왕파는 서문경네 약방을 찾아가서 그로부터 한 봉지의 독약을 받았다. 비상이었다.
그것을 건에 준 서문경은 아무도 모르게 왕파의 귀에다 대고 그 비상을 사용해서 무대를 독살하는 방법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금련이 낮에 무대에게 독약을 먹여 죽이는 일은 자기가 책임질 테니 염려 말라고는 했으나. 비상이 어떤 성질의 독약인줄도 모를 것이고 한 번도 극약을 사용해 본 적이 없을 터이니 혹시 실수라도저지르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왕파가 금련을 부르러 갈까 하고 있는데 금련이 제 발로 찾아왔다. 금련은 이제 단단히 결심을 해서 그런지 오히려 그 일은 발벗고 나선 듯한 그런 태도였다.
왕파는 장롱을 열어 맨 밑바닥에서 조그만한 약봉지 하나를 꺼내어 금련에게 건넨다. 간밤에 서문경으로부터 받아가지고 와서 무슨 보물리라고 되는 것처럼 깊숙이 간직해 두었던 것이다. 그것을 받은 금련은 펼쳐 보려다가 그만두고 얼른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어 버린다.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간 금련은 영아를 불러서 우선 고량주를 큰 병으로 한 병 사오도록 심부름을 시켰다. 그리고 자기는 생강 보자기를 든 채 무대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무대는 누운 채 퀭한 두 눈으로 금련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보기도 싫다는 듯이 스르르 눈을 감아 버린다.
지금까지 힘들게 쳤났던 것입니다.
작업을 중단했는데
격려의 편지나 반응이 좋으면 다시
작업을 재개하겠습니다
1권 3장
살부1
늙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며 과일 행상을 해서 아버지를 부양하고 있는 기특한 소년이 있었다. 이름은 운가이고, 나이는 열다섯살이었다. 이마에 바야흐로 여드름이 한 개 두 개 돋아나고 있었다.
본시 성은 교가였지만, 아버지가 운주로 귀양을 가있는 동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고장 이름자를 따서 그냥 운가라고 불렀다.
운가는 기특하면서도 매우 영리한 소년이었다. 철따라 나는 과일을 가지고 현청 앞의 여러 음식점과 상점을 단골로 드나들었고,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팔기도 했다.
어느날, 장사가 잘 안 되어 운가는 서문경네 약국을 찾아갔다. 서문경은 과일을 매우 좋아해서 곧잘 운가의 물건을 사주었던 것이다.
오후였다. 약국을 지키고 있던 의원이 낮잠이 오는 듯 하품을 하다가 운가가 과일 광주리를 메고 들어오자 대뜸 손을 내흔들었다. 안 산다는 표시였다.
"서문 대관인한테 팔려고 그래요."
"지금 집에 안 계시다니까."
"어디 가셨는데요?"
"내가 아냐."
"아저씨, 그러지 마시고 좀 가르쳐 주세요. 오늘 장사가 너무 안 돼서 저녁밥을 굶을 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서문 대관인은 잘 사주시거든요."
운가의 표정이 너무 측은해 보였던지 의원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왕파의 찻집 안방으로 가보라구. 거기 계실 테니까."
"거기서 뭘 하시는데요? 남의 집 안방에서.."
"글세, 가보면 알 테니까. 어서 그리 가봐."
의원은 혼자서 의미있는 웃음을 살짝 입 언저리에 떠올린다.
"고맙습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운가는 왕파네 찻집을 향해 잰걸음을 친다.
서문경이 왕파에 안방에서 남의 여자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비밀 아닌 비밀이 되어 은밀히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절대 비밀이란 있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깊숙한 안방이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곧잘 드나드는 찻집이니,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격으로 누군가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러나 놀아나는 여자의 남편인 무대만은 아직도 그 낌새를 까맣게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찻집으로 들어선 운가는 곧바로 안방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뜨개질을 하고 있던 왕파가 놀라 후다닥 일어나 앞을 가로막는다.
"너 뭐하는 거야? 어디 가려고 그래?"
"안방에요."
"뭐, 안방에? 이자식이 남의 집 안방에는 뭐하려고..."
"거기 서문 대관인이 계시잖아요. 그 어른한테 과일을 팔려고 그래요."
왕파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우선 허-하고 한번 웃는다.
"서문 대관인이 너한테 과일을 가지고 오라 그러던?"
"아니요. 가져어라곤 안하셨지만 내 과일을 잘 팔아 주시거든요."
운가는 정직한 소년이라 거짓없이 대답한다.
"그럼 안 돼."
"왜 안 돼요? 오늘 장사를 너무 못했단 말이에요. 서문 대관인은 틀림없이 많이 사주신다구요."
"안된다면 안 되는 줄 알라구. 그런데 너 서문 대관인이 우리 집에 계신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걸 모를까 봐요. 다 아는 수가 있어요. 그런데 서문 대관인이 안방에서 뭘 하고 계시죠?"
"뭘 하긴 뭘해. 아무것도 안하시지."
"헤헤헤.. 아무것도 안하시면서 뭣 때문에 남의 집 안방에 들어앉아 있어요? 나도 다 안다구요. 뭘 하는지....."
영리한 소년이라 이미 짐직을 하고서 찾아왔던 것이다. 운가도 서문경이 오입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놈의 자식, 니가 뭘 안다구. 썩 나가지 못해!"
왕파는 냅다 눈을 부릅뜨며 주먹을 한 개 번쩍 쳐든다.
"이러지 말자구요."
"나가라면 나가지. 무슨 말대꾸야. 어서 나가! 썩 나가!"
"더럽게 구네."
"뭐라구? 더럽게 굴어 ? 이자식이 누구한테 입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거야. 응? 나가라구!"
그만 왕파는 운가의 가슴패가를 쥐어박듯 왈칵 떠밀어 버린다. 운가는 과일 광주리를 멘 채 뒤로 넘어질 듯 비틀거리다가 가까스로 몸을 가눈다.
"나가! 나가!"
왕파가 다시 달려들어 밀어붙인다.
그 바람에 광주리에 담긴 과일이 좌르르 쏟아진다. 운가는 분해서 씨근거리면서도 바닥에 굴러 있는 과일을 도로 광주리레 주워 담는다. 그리고 도리없이 광주리를 메고 밖으로 나가면서 왕파를 돌아보며 거침없이 내뱉는다.
"이 뚜쟁이 할망구야, 늙어가면서 더럽게 놀지 말라구."
"뭣이 어쩌구 어째? 저 빌어처먹을 놈의 자식이... 에라이 호로새끼야.!"
왕파는 화가 치솟아 마구 달려들어 물어뜯기라도 할 기세로 쫓아 나간다. 운가는 광주리를 멘 채 냅다 도망치다.
운가는 분했다. 아무래도 그냥 물러설 수가 없었다. 이놈의 할망구 혼 좀 나봐라 싶으며 운가는 과일 광주리를 근처에 있는 집에 가서 맡겼다. 그리고 왕파에 집 뒷문 쪽으로 돌아 갔다.
뒷문은 닫혀 있기는 했으나 안으로 걸려 있지는 않았다. 살그머니 밀고 들어섰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가만가만 집 안르로 들어가 안방 쪽으로 다가갔다. 방 앞에 두 개의 신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나는 남자의 신이고, 하나는 여자의 신이었다.
남자의 신은 서문경의 것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여자의 신은 누구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운가는 바짝 호기심이 동했다.
호기심에서만이 아니라, 왕파에게 분풀이를 하려면 서문경과 놀아나는 여자가 누군지 알아야 되었다. 여자가 처녀거나 과부라면 누군지 알아도 소용이 없었다. 유부녀일 경우에만 일이 제대로 들어맞는 것이다. 그 남편에게 알려서 왕파까지 혼쭐이 나도록 해주려는 생각이다.
우선 운가는 방문에 바짝 귀를 갖다대고 방안의 기척을 엿듣는다. 아무 소리가 나지가 않는다. 남자와 여자가 방안에 있는게 틀림없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가 않다니 이상한 일이다.신은 있지만 혹시 사람이 없는 게 아니가 싶어서 운가는 살그머니 방문을 조금만 열어 본다. 침상이 보이고, 그 위에 남자와 여자가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것 같다. 그런제 조금도 움직이는 기색이 없다.
운가는 알겠다는 듯이 혼자서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일을 마치고 지쳐서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는게 틀림없는 것이다.
문을 조심스레 조금 더 열고 들여다본다. 아니나다를까 서문경과 어떤 여자가 한 이불 속에서 같이 자고 있다. 여자는 얼굴을 저쪽으로 돌리고 있어서 누군지 잘 알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여자의 허연 다리 하나가 이불을 들추고 온통 밖으로 나와 서문경의이불에 덮인 몸뚱이 위로 척 걸쳐져 있다.
여자의 허옇고 피둥피둥한 다리를 보자, 열다섯살 먹은 운가도 절로 꿀꺽 침이 한 덩어리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이마에 여드름이 돋아나고 있는 터이니 그럴만 하다.
"으으음....."
마침 그때 여자가 몸부림을 치며 돌아눕는다.
이쪽으로 돌려진 여자의 얼굴을 본 운가는 깜짝 놀란다.
"아니, 무대 아저씨의 아내 아냐. 이럴 수가......"
너무 뜻밖이어서 운가는 얼른 방문을 닫고 후다닥 뒷문으로 해서 바깥으로 뛰어나간다.
운가는 같은 행상을 하는 무대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르는 터였다. 비록 난쟁이긴 하지만 어리석을 정도로 선량해서 운가는 무대 아저씨를 진정으로 좋아했다. 그 무대 아저씨의 아내가 서문경과 놀아나고 있다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무대 아저씨를 위해서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운가는 무대를 찾으러 거리를 뛰었다. 이 거리 저 거리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겨우 무대를 찾아냈을 때는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날이 설핏해 오고 있었다.
"아저씨, 큰일났어요. 제가 얼마나 찾아다녔다구요."
"왜? 무슨 일인데?"
"아 글쎄..."
운가는 다음 말이 얼른 입에서 나오질 않는다.
"무슨 일인데 그러지? 어서 말해 보라구."
"저... 아주머니가 왕파네 찻집에서....."
"집사람이?"
"예, 찻집 안방에서..."
"안방에서 뭘 어쨌는데, 어서 말해 보라니까 그러네."
무대의 안색이 슬그머니 달라진다. 운가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서슴없이 지껄인다.
"아주머니가 말이에요. 서문 대관인하고 같이 자고 있지 뭐예요."
"뭐? 그게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요. 그런 거짓말을 할 수가 있나요? 제가 직접 눈으로 보고 오는 길이란 말이에요."
"음---"
무대는 온통 상판을 일그러뜨리며 묻는다.
"왕파네 안방엔 뭣하러 갔었는데?"
"오늘 과일을 너무 못 팔았지 뭐예요. 서문 대관인은 잘 사주거든요. 그래서 서문 대관인네 약방을 찾아갔더니 의원이 말하기를 ....."
운가는 자초지종을 자세히 늘어 놓았다. 그리고 말한다.
"제가 분해서 견딜 수가 없지 뭡니까. 아저씨는 이렇게 하루 종일 뼈가 빠지게 장사를 하러 다니시는데, 글쎄 아주머니는 남의 남자와 몰래 그런 짓을 하고 있다니..."
"오냐, 알았다. 내가 가만히 안 둔다. 연놈을 그저 요절을 내 줄것이니까 보라구."
무대는 무섭게 어금니를 악물며 주먹을 불끈 쥔다. 그리고 지금 당장 왕파에 집을 향해 달려갈 기세다. 운각가 만류한다.
"아저씨, 지금까지 거기 있지 않을 거예요. 제가 본 지가 벌서 꽤 오래 됐거든요. 아저씨를 찾아다니느라 시간이 걸렸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내일 다시 두 사람이 만나거든 그때 쳐들어 가도록 해요."
"음--"
무대는 고개를 끄덕인다.
집에 돌아간 무대는 시치미를 뚝 떼고 평소와 다름없이 하룻밤을 보냈다. 그러나 속으로 금련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 서문겨과 둘이 눈이 맞았는지 생각할수록 기분 나쁘고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내일 현장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면 결단코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이를 악물며 다짐을 하곤 했다.
무대는 아내의 부정을 이미 한 차례 겪은 바가 있었다. 장대인 영감이 금련을 무대에게 시집보낸 다음에도 기회를 보아 이따금 그녀를 데리고 즐겼던 일 말이다. 그때 장대인은 팔아 버려도 될 금련을 무대에게 공짜로 시집보내 주었고, 문간채에 사는 무대에게 집세도 안 받았을 뿐 아니라, 장사 밑천까지 곧잘 대주었기 때문에 그 은혜를 생각해서 무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뻔히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모르느 체 참는 수밖에 없었다. 현장을 목격하고도 못 본 체 슬그머니 돌아선 일조차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그때와는 전혀 달랐다. 서문경에게는 눈꼽만큼도 신세를 진 일이 없으니 말이다. 무대는 금련을 유혹해내어 데리고 노는 남자가 서문경이라는 말에 슬그머니 위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현내에서 이름난 부호인데다가 현청에 곧잘 드나들어 높은 벼슬아치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안하무인격으로 거들먹거리는 존재이니 말이다. 그러나 돈 많고 권력을 등에 업었다고 남편이 있는 남의 집 부녀자까지 제맘대로 데리고 놀아도 된다는 법은 없은 것이다. 간통은 엄연히 법으로 다스리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 무대은 서문경이가 됐든 동문경이가 됐든 현장을 목격하기만 하면 여지없이 사로잡아서 두 연놈을 꽁꽁 묶어 죄인ㅇ르 다스리는 제형소로 끌고 가리라 마음먹었다. 두 연놈뿐 아니라, 왕파 역시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그 늙은 여우 같은 할망구가 서문경의 수족이 되어 금련을 자기 집 안방으로 끌어냈을 게 틀림없으니 그 늙은 것까지 함께 묶어서 고발하리라 작정했다.
난쟁이면서 평소에 줏대도 없고 머리도 둔해서 좀 모자라는 사람 같던 무대가 속으로부터 진짜 호가 솟구쳐 오르자 무서웠다. 흔히 병신들이 드렇듯이 그 역시 감정이 극도로 북받치자 앞 뒤 안 가리고 치닫는 그런 극단적인 데가 있었다.
이튿날 아침, 여느때와 다름없이 행상을 하러 떠나는 체하고 집을 나선 무대는 약속한 장소에서 운가를 만났다. 무대는 운가에게 세 연놈을 묶어서 제형소로 끌고 갈 자기의 계획을 얘기했다. 그리고 현장을 어떻게 덮쳐 사로잡을 것인가 의논했다. 현장인 안방으로는 무대가 뒷문을 통해서 몽둥이를 들고 뛰어들어가 두 연놈을 우선 두들겨패서 쓰러뜨리기로 했고, 운가는 왕파를 사로잡아 묶어 놓은 다음 안방으로 가서 쓰러진 서문경과 금련을 무대와 함께 묶기로 했다.
말하저면 간통 현장 기습작전계획을 세운 다음, 운가는 몽둥이와 밧줄을 구하러 갔고, 무대는 그 자리에서 왕파에 찻집과 바로 이웃에 있는 자기 집을 감시했다. 무대는 쪼르리고 앉아서 이를 뿌드득 갈고서 중얼거린다.
"이 개 같은 연놈들, 어디 오늘 맛 좀 봐라."
간통 현장 기습작전은 다음날로 연기되었다. 정력 절륜의 서문경도 하루쯤은 쉬어야 되었던지 그날은 왕파네 찻집으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종일 장사도 안하고 지키고 있었던 무대와 운가는 해질 무렵이 되자 맥이 풀렸다. 무대가 운가에게 말했다.
"니가 잘못 본 거 아냐? 안 나타나잖어."
"잘못 보다니요. 서문 대관인도 오입쟁이지만 하루쯤 쉬어야 되는 모양이죠."
"대관인은 무슨 놈의 대관인. 대관인 소리 말라구, 듣기 싫다구, 그런 망나니가 대관인이라니....."
"좌우간 내일은 틀림없이 나타날 거에요. 두고보세요. 하루라도 쉬어야 또 힘이 나지 않겠어요?"
"야 이녀석아 새파란 녀석이 뭘 안다고..."
"나도 다 안단 말이에요. 새파랗지 않다구요. 보시라구요."
무대는 살짝 운가의 이마배기를 한 번 쥐어박아 준다.
이튿날 살짝 무대는 행상을 하러 가는 체 집을 나서서 아침부터 그 자리에 가서 감시를 했다. 그것들을 잡아 옥에 집어넣기 전에는 장사고 뭐고 도무지 염두에 없었다.그러나 운가에게는 과일을 팔러 다니도록 했다. 너무 멀리는 가지 말고 근처에서 장사를 하면서 수시로 연락을 취하도록 했다.
오후 미시쯤이었다. 마침내 서문경이 나타났다. 머리에 두건을 쓴 서문경을 멀쩡한 얼굴을하고 왕파네 찻집 안으로 사라졌다.
곧 왕파가 밖으로 나오더니 종종걸음으로 무대 자신의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무대는 숨을 죽이고 매섭게 왕파의 모습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운가가 연락을 취하러 왔다.
"아저씨, 어떻게 됐어요? 아직 안 나타났어요."
"나타났다구. 저기 보라구. 왕파가 우리 집으로 들어가잖아."
"아주머니를 데리러 가는 모양이죠?"
"그런 것 같애. 서문경이 그놈이 조금 전에 왕파네 집으로 들어갔거든. 음- 이 연놈들 어디 두고보자."
잠시 후, 왕파의 뒤를 따라 금련이 집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그러나 금련은 왕파와 함께 찻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남의 눈을 피해서 그 집 뒷문으로 들어가려는 듯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년을 그냥 그만....."
무대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버르르 떤다.
서문경과 금련의 밀회가 무르익어 갈 때쯤 해서 무대와 운가는 숨어서 감시를 하던 골목길에서 뛰어나가 왕파네 찻집을 향해 달려갔다. 무대는 한 손에 몽둥이를 들고 허리에는 오랏줄 셈인 밧줄을 두 개 차고 있었고, 운가는 밧줄과 수건을 옆구리에 덜렁 매달고 있었다.
운가는 가게로 뛰어들었고, 무대는 집 뒷문으로 해서 안방으로 돌진했다. 그야말로 이인 기습작전이었다.
난데없이 운각가 가게에 뛰어들다 왕파는 놀라 눈이 휘둥그래지며 뜨개질하던 것을 떨어뜨리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침 가게에는 차 마시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대낮에는 언제난 파리를 날리는 판이었다. 운가는 다짜고짜 왕파에게 달려들어 옆구리에 찬 수건을 빼서 입을 틀어막아 불끈 뒤로 묶어 버렸다. 그리고 버둥거리며 휘저어대는 두 팔을 밧줄로 꽁꽁 묶었다. 아직 열다섯밖에 안 된 소년이지만 꼼짝을 못하도록 칭칭 묶어 놓았다.
뒷문으로 뛰어든 무대는 안방으로 달려가 불문곡직하고 방문을 왈칵 열어젖혔다.
"어머나!"
"누구야?"
여자의 비명과 남자의 고함소리가 거의 동시에 터졌다.
벌거숭이가 되어 휘감겨 꿈틀거리고 있던 두 남녀는 몽둥이를 들고 뛰어든 무대를 보자 질겁을 하고 침상에서 구러 내렸다. 서문경은 놀라 정신없이 침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납작 엎드린다. 그러나 금련은 그 경황 중에도 손에 닿는 대로 옷을 집어 우선 사타구니부터 가리면서 방 한쪽 구석으로 피한다.
"너 이년! 맛 좀 봐라! 이 쌍년!"
무대는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리친다. 그러나 흥분을 한 탓인지 금련이 재빨리 몸을 움츠림며 피하는 바람에 몽둥이는 빗나가 옆에 있는 경대를 냅다 두들겨서 와장창 거울이 부서져 흩어진다.
두 번째 내리친 몽둥이가 비로소 금련의 한쪽 어깨를 강타했다.
"으악! 나 죽네! 사람 살려-"
침상 밑에서 금련의 그 비명소리를 들은 서문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침상 밑이긴 하지만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는 자기도 당하고 말 것 같아 서문경은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뜬다. 부릅뜬 눈에 침상 밑으로 무대의 짤막한 두 다리가 내다보인다. 저 따위 난쟁이 싶으며 서문경은 냅다 튕겨나가듯 침상 밑에서 순식간에 기어나가 무대의 두 다리를 불끈 잡아 왈칵 당겨 버린다.
"으이크"
다시 금련을 내리치려던 무대는 비명을 내지르며 발랑 가볍게 방바닥에 나가 떨어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건 알몸인 서문경은 벌떡 일어나기가 무섭게, 방바닥에 나가 떨어진 무대의 손에서 재빨리 몽둥이를 빼앗었다. 그리고 그 몽둥이로 냅다 사정없이 무대를 내리갈기기 시작했다.
무대는 비명을 내지르며 이리 데굴 저리 데굴 방바닥을 마구 구르다간 발딱 일어나 결사적으로 방문 쪽을 향해 도망친다. 그러나 허사였다. 몽둥이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바람에
"으악--."
까무러치는 듯한 비명과 함께 픽 앞으로 꼬꾸라지고 만다.
꼬꾸라진 놈을 서문경은 죽으라 하고 타작을 하듯 내리친다. 마침내 무대는 두 눈을 허옇게 뒤집어 까고서 축 늘어지고 만다. 입에서 피거품이 지르르 흘러내린다.
가게에서 왕파를 잡아 기둥에 묶고 난 운가는 안방 쪽에서 들려오는 무대의 비명에 놀라 후다닥 그쪽으로 달려갔다. 방 안을 들여다본 운가는 눈이 휘둥그래지고 만다.
벌건 알몸인 서문경이 몽둥이로 냅다 무대를 내리조지고 있고, 옷으로 사타구니만 가린 금련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한 쪽 구석에 서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습기도 하고 겁나기도 한 광경이었다.
살기 등등한 서문경의 시선과 마주치자 운가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돌아서 냅다 뺑소니를 친다. 어물어물 하다가는 서문경의 몽둥이에 자기도 요절이 나고 말 것 같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인 기습작전은 가게 쪽에서는 성공했으나 안방에서 잘못되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서문경은 몽둥이를 방바닥에 떨어뜨리고 시근덕거리며 옷을 주워 입는다. 그리고 몽둥리를 다시 한 손에 들고서,
"이놈의 할망구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왕파까지 후려칠 기세로 가게 쪽으로 뛰어나간다. 가게 안에 왕파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어디 갔어, 이놈의 할망구."
행길까지 내다본다.
주방쪽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서문경은 얼른 그곳으로 가본다. 입을 수건으로 재갈을 물린 채 기둥에 묶여 있는 왕파를 보자 그제야 일이 어떻게 된 것인 줄을 짐작하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옷을 입고서 뒤따라 나온 금련이 놀라면서 왕파의 입을 틀어 묶은 수건을 풀어준다. 서문경은 몸을 칭칭 결박한 밧줄을 푼다
왕파로부터 자초지종의 얘기를 듣고 난 서문경은,
"운가란 놈 괘씸한 놈인데... 요놈 어디 두고보자."
투덜거리고 나서 왕파와 금련에게 명령조로 내뱉는다.
"무대를 얼른 자기 집으로 운반해다가 보살피라구. 목숨이 끊어지면 곤한하니까."
그리고 서문경은 오늘 재수 옴올랐다는 듯이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으며 성큼성큼 나가 버린다.
왕파와 둘이서 무대를 집으로 옮겨 간 금련은 혹시나 남편이 숨을 거둘까 두려워서 극진히 간호를 했다. 기절을 했던 무대는 얼마 뒤에 정신을 돌이키기는 했으나, 헛소리를 하며 끙끙 앓아댔고, 몸을 조금도 움직이질 못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모르는 영아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아버지의 침상 곁에 앉아서 떠날 줄을 몰랐다.
"어머니, 아버지 왜 이랬어요?"
영아의 묻는 말에 금련은 쏘아붙이듯이 대답했다.
"몰라, 어디서 누구하고 싸웠나 봐. 물건을 팔다가 시비가 붙었는지 어쨌는지...."
무대는 이틀 후에야 겨우 누운 채 입에 떠넣어 주는 미음을 받아 삼켰다. 미음을 떠넣어 주는 금련을 보고도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직도 눈의 초점이 제대로 안 맞는 듯한 그런 멍한 상태였다.
사흘이 지나서야 무대는 금련이 입에 미음을 떠넣어 주려 하자, 고개를 돌렸다. 거절하는 의사였다.
"여보, 내가 죽을 죄를 지었다구요. 한 번만 용서해 줘요.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예요. 정말이예요. 내가 당신 앞에 맹세 할게요. 이렇게..."
금련은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을 하듯 말하며 무대의 얼굴 앞에 두손을 모아 비는 시늉까지 해보인다.
"용서해 주는 거죠? 예? 여보, 왜 대답이 없어요. 대답을 해봐요."
"싫다구"
"용서해 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에게나 한 번 잘못은 있는 법이에요. 자기 아내의 한 번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는다니 너무해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구요. 사랑한다면 이렇게 까지 잘못을 뉘우치며 비는데 용서를 안해 줄 수 있어요?"
"용서도 해줄 것이 있고 못 해줄 것이 있는 거여. 남의 남자와놀아난 자기 여편네를 용서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여."
"그럼 어쩔 거예요? 용서해 주지 않는 다면."
"복수를 하고야 만다구. 내가 이렇게 죽도록 두들겨 맞았는데 그냥 가만히 있을 것 같애. 어림도 없어. 두고보라구."
"좋아요. 그럼 나는 보따리를 싸가지고 나갈 거예요. 당신하고는 이제 그만 산다구요. 알겠죠"
"........"
"왜 말이 없어요. 용서해 주지 않고 복수를 한다는데, 어떤 여자가 붙어 있겠어요. 당장 보따리를 싸가지고 나갈 거니까 그쯤 알아요. 난 오히려 잘 됐지 뭐예요.헤헤헤...."
금련은 남의 허파를 뒤집듯 요망스럽게 웃기까지 하며 얼른 돌아서서 방을 나가 버린다.
그때 바깥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이집이 무대씨 집입니까?"
"누구세요."
소리를 지르며 영아가 뛰어나간다.
문 밖에 웬 군관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이 집이 무대씨 집 맞느냐?"
"예, 무대씨가 우리 아버지에요"
"응 그럼 무송씨는 삼촌 되겠군"
"맞아요."
"아버지, 지금 집에 계시느냐?"
"예, 아파서 누워 계시니까 좀 들어오세요."
"뉘신지요? 난 몸을 다쳐서 일어나지를 못하니 양해하시고, 좀 앉으세요."
무대는 자리에 누운 채 손님을 맞이한다.
"자, 군관 아저씨 이리 앉으세요."
영아가 재빨리 의자를 권한다.의자에 앉은 군관은 먼저 자기 소개를 한다.
"저는 이번에 동경에서 이곳 청하현으로 전속 명령을 받고 부임해 온 장양립이라는 군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무송씨의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 그래요. 이거 정말 고맙고 반갑습니다."
무대의 초췌한 얼굴에 오래간만에 웃음이 떠오른다.
"아이 좋아라. 삼촌한테서 편지가 왔다."
영아도 기뻐서 손뼉을 짝짝 치기까지 한다.
군관은 상의 안호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어 무대에게 건넨다. 무대는 그것을 받으려다가 말고 좀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나는 까막눈이라서.... 미안하지만 편지를 좀 읽어봐 줄 수 없는지요?"
"예, 그러지요."
장양립은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편지의 내용은 동경에 잘 도착해서 잘 지내고 있고 얼마후 돌아오겠다는 내용이었다.
"야 삼촌이 돌아오신다."
무대도 빙그레 웃음을 떠올리며 중얼거린다.
장양립이 입을 연다.
"이미 동경을 떠나서 오고 있을 겁니다."
이미 무송이 오고 있다는 말에 무대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뿌드득 간다. 그리고 내뱉는다.
"오냐, 무송이 돌아오기만 해봐라. 이것들 어디 두고 보자구."
가만히 듣고 있던 금련은 정신이 번쩍 드는 듯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며 얼른 돌아서서 재빨리 왕파를 찾아가고 있었다.
"야단났어요. 할머니"
"왜? 무대가 뭐 어떻게 됐나?"
"아니요. 그런데 아니라 무송이 돌아온다는 거예요."
"무송이 돌아온다구?"
왕파는 슬그머니 겁이 나느 듯 안색이 약간 변한다.
"어쩌면 좋지?"
"그 양반을 만나서 상의를 해보자구요."
"그러는 수밖에 없지. 그럼 내가 지금 서문 어른 댁에 갔다 올 테니까, 색시가 가겔 좀 보고 있으라구."
"알았어요. 어서 다녀오시라구요. 가게는 염려마시고."
왕파가 서문경을 데리러 나가자 금련은 창가에 가 앉아서 바깥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긴다.말을 타고 터벅터벅 산을 넘고 내를 건너 끝없는 들길을 돌아오고 있는 무송의 모습이 문득 머리에 떠오르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머리를 내흔든다.
왕파네 안방 탁자에 세 사람은 둘러 앉았다. 금련은 며칠만에 만난 서문경이 몹시 반가웠으나 그런 기색은 애써 감추며 꽤나 걱정이 되는 투로 얘기를 늘어놓았다. 이미 왕파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터이지만, 서문경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금련의 얘기가 끝나자 서문경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어디 왕파가 의견을 말해 보라구"
왕파는 약간 두려움이 깃든 그런 눈으로 서문경의 표정을 살피듯이 바라본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아주 깨끗하게 해결을 해서 푹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그런 좋은 방법이....."
그러면서 서문경은 날카로운 눈으로 왕파를 위압하듯 쏘아본다. 그 눈빛에는 은밀한 강요의 신호가 깃들어 있다. 조금 전에 걸어오면서 내 의중을 알리지 않았느냐, 그 말을 어서 할멈 입으로 꺼내라는 그런 신호 말이다. 왕파는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빳빳하게 세운다.
그리고 그것을 거꾸로 해서 콱 밑으로 찍어누르는 시늉을 해보인다. 마치 서문경이 하던 그래로 흉내를 내는 것 같다.
서문경은 히죽이 웃는다. 그리고 묻는다.
"그게 무슨 뜻이지?"
분명히 말로 하라는 강요인 것이다. 금련도 그 손가락의 시늉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짐작이 가서 그만 안색이 변해 버린다.
"죽여 없애버리는 거지요."
왕파는 아무 두려움이 깃들어 있지 않은 그런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음- 그래?"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금련의 표정을 힐끗 살핀다.
서문경과 시선이 마주치자 금련은 얼른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살짝 떨구어 버린다. 서문경이 나직하면서도 무게가 깃든 그런 음성으로 묻는다.
"여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왕파의 말을 말이야."
남편을 죽여 없애버리다니, 금련은 생각만 해도 두렵고 아찔한 일이었다. 아무리 난쟁이이고 마음에 안 차는 남편이지만, 열여덟에 혼례식까지 올리고서 시집을 와 그동안 여러 해를 한 잠자리에서 몸을 섞으며 살아온 터인데, 죽여 없애다니 될 말이 아니었다.
비록 무송이 돌아와 복수를 당할까 두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미리 무대르 죽여 없애는 그런 끔찍한 방법을 쓰려고 들다니.....
너무나 뜻밖의 일이어서 금련의 겁에 질려 입이 얼어붙은 듯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왕파 스스로의 제의인 줄만 알고 금련은 이 늙은이가 정말 무서운 여자로구나 싶으며 속으로 진저리를 쳤다.
"대답을 해보라구. 당신 생각은 어떤가 알고 싶어."
"죽일 수는 없어요."
"그래? 음, 그럼 다른 어떤 좋은 방법이 있는지 어디 말해봐."
서문경의 목소리가 약간 퉁명스러워진 듯해서 금련은 속으로 이 양반도 죽이기를 원하는 모양이구나 싶으며 조심스레 큰숨을 들이쉬었다가 떨리듯이 내뱉는다. 그리고 살짝 다시 시선을 내리깔며 아무 말이 없다.
"왜 대답이 없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고개를 숙인 채 금련은 대답한다.
그러자 서문경은 한결 목소리에 힘응 넣어 위압적인 어조로 두 사람 다 똑똑히 들으라는 듯이 말한다.
"내 말을 잘들 들어 보라구. 자칫 잘못하면 우리 세 사람이 다 큰 망신을 당하게 된다구. 알겠어? 그날 무대가 옆구리에 밧줄을 차고 있었다구. 두 사람 다 봤지? 그 밧줄을 왜 차고 있었는지 알어? 우리를 묶어서 관가에 끌고가 고발하려고 했던 거란 말이야 무대 제깐놈이 어림이나 있나. 가소롭지. 그러나 만약 그날 무송이 들이닥쳤다고 생각해 봐. 꼼짝없이 묶이고 말았을거 아냐.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은 놈인데. 당할 재주가 있겠느냐 말이야. 벌거벗은 채 묶여서 제형소로 끌려갔다면 그보다 더한 망신이 어디 있겠어. 안 그래?"
금련과 왕파는 말없이 고개를 가만가만 끄덕인다.
"일이 무사히 잘 끝나면 할멈에게는 내가 또 두둑하게 ... 알겠지?"
"아이고 고마워라"
늙어가면서도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왕파의 합죽한 입이 헤벌레 벌어진다.
"목이 마르군. 자 할멈, 술을 한 잔 마실까."
서문경은 안호주머니에서 은화 한 개를 꺼내어 왕파에게 건넨다. 반드시 술 생각이 나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지껄이느라 약간 목이 칼칼해지기도 했지만, 속으로 다음 계산을 하고서의 수작인 것이다.
술을 몇 잔 마시고 나자 서문경은 왕파에게 싱글 웃으면서 말을 던진다.
"인제 할멈은 특급주를 사러 가야겠어."
"예, 헤헤헤..."
왕파는 얼른 방을 나간다.
그 말은 자리를 비켜 달라는 그들만의 은어가 된 셈이다.
왕파가 사라지자, 서문경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금련도 온 얼굴에 절로 요염한 기색이 화사하게 번지며 따라 일어선다. 서문경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녀를 번쩍 안아다가 침상에 눕힐 생각을 않고, 방 한가운데로 가서 우뚝 선 채 자기 옷부터 훌렁훌렁 벗어 던진다.
벌건 나체가 빨리.
"자. 당신도 빨리"
명령조다.
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면서 금련은 오늘도 색다르구나 싶으며 기꺼이 벗기 시작한다.
서문경이 여느때와 달리 장소를 침상 위가 아닌 방바닥을 택한 까닭은 아마도 금련이 경험하지 못했을 것 같은 몇 가지 새로운 솜씨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색한인 서문경은 여자의 몸뚱아리를 다루는 재주에 있어서 이십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이미 도통의 경지에 가까이 가 있었다. 온갖 기법을 다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능숙하게 그 기법들을 구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느때와 달리 그런 새로운 솜씨를 보여 주기로 마음 먹은 것은 금련을 며칠만에 만난 간절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속으로 은근히 계산을 하고서의 수작이었다. 자기의 남성다움을 한껏 과시한 다음, 그녀의 입에서 남편을 죽이겠다는 확실한 대답이 절로 흘러나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금련은 서문경의 새로운 솜씨에 경탄과 환희를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장대인 영감에게서도, 남편인 무대에게서도, 그리고 며칠 전까지의 서문경과의 정사에서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새로운 애무에 절로 교성이 흘러나왔다. 눈을 사르르 감기도 했고, 하얀 앞니를 물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서문경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마치 희고 미끈한 한 마리의 암컷과 연갈색 근육질의 한 마리 수컷이 뒤엉기어 희희낙락 성희를 즐기는 것 같았다. 꽤 넓은 방바닥이 좁을 지경이었다.
색다른 애무가 끝나고, 마침내 수컷이 암컷을 뜨겁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격이 절정에 가까이 가 암컷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초점을 잃어갈 때 수컷은 가만히 공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여뵤."
"응?"
"나 어때?"
"당신 정말 너무너무 멋있어. 나 인제 당신 없으면 못 산다구. 정말이야."
"나도 마찬가지야. 당신이 너무 좋다구. 당신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정말이지?"
금련의 몽롱하던 두 눈이 반짝 맑아지며 고운 미소가 떠오른다.
"정말이고 말고, 그 대신 당신이 과부가 돼야 된다구.알겠어?"
"응."
"이버이 좋은 기회야.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돼. 만약 이번에 과부가 못 되면 당신과 나는 이것으로 끝이야. 다시는 안 만날 거야. 단단히 결심을 하라구."
"알았어. 내 손으로 무대를 없애버리고 말 거야. 두고보라구."
"암, 그래야지. 그래야 만사가 해결이라니까"
바로 그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도록 하기 위해 지금까지 숨을 헐떡거리며 온갖 솜씨를 다 부렸다는 듯이 서문경은 빙그레 흡족한 웃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마무리를 하듯 서서히 다시 공격을 개시한다.
금련의 입에서 무대를 자기 손으로 죽여 없애버리겠다는 말이 나왔으니, 일은 이미 절반은 끝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서문경은 금련과의 정사을 마치자, 왕파를 도로 방으로 불러들였다.
그날 밤 왕파는 서문경네 약방을 찾아가서 그로부터 한 봉지의 독약을 받았다. 비상이었다.
그것을 건에 준 서문경은 아무도 모르게 왕파의 귀에다 대고 그 비상을 사용해서 무대를 독살하는 방법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금련이 낮에 무대에게 독약을 먹여 죽이는 일은 자기가 책임질 테니 염려 말라고는 했으나. 비상이 어떤 성질의 독약인줄도 모를 것이고 한 번도 극약을 사용해 본 적이 없을 터이니 혹시 실수라도저지르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왕파가 금련을 부르러 갈까 하고 있는데 금련이 제 발로 찾아왔다. 금련은 이제 단단히 결심을 해서 그런지 오히려 그 일은 발벗고 나선 듯한 그런 태도였다.
왕파는 장롱을 열어 맨 밑바닥에서 조그만한 약봉지 하나를 꺼내어 금련에게 건넨다. 간밤에 서문경으로부터 받아가지고 와서 무슨 보물리라고 되는 것처럼 깊숙이 간직해 두었던 것이다. 그것을 받은 금련은 펼쳐 보려다가 그만두고 얼른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어 버린다.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간 금련은 영아를 불러서 우선 고량주를 큰 병으로 한 병 사오도록 심부름을 시켰다. 그리고 자기는 생강 보자기를 든 채 무대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무대는 누운 채 퀭한 두 눈으로 금련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보기도 싫다는 듯이 스르르 눈을 감아 버린다.
지금까지 힘들게 쳤났던 것입니다.
작업을 중단했는데
격려의 편지나 반응이 좋으면 다시
작업을 재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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