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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천왕27

제27장
악마(惡魔)의 탄생(誕生)


아미태산(阿彌泰山)...
탑리목분지의 북쪽으로 이천 리 가량 더 올라가면 나오는 대황지(大荒地)로 대초원과 접경해 있
는 북방제일산(北方第一山)인 아미태산은 그야말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황폐한 산이
다.
검극(劍極) 같은 험한 산세(山勢)로 인해 인간에게는 불가침의 대산(大山)...

악마탄(惡魔灘)...

아미태산 깊숙이 있는 대오지에 붙여진 이름만큼이나 괴악스런 계곡이었다.
그곳에는 악마(惡魔)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아득한 태고 이전 제석천에 눌린 십팔대 악마가 숨어 들었고 이후 천만 년의 시공이 흘렀다.
환우(還宇)의 모든 악정(惡精)들이 모여들고 있는 악마의 성지였다. 이곳 인간의 발길이 끊긴 악
마탄에서 대악마(大惡魔)가 태동하고 있음을 천하는 모른다.

스스으!
검붉은 대악마연(大惡魔煙)이 계곡 전체를 휘감고 있다.
콰콰콰콰!
그 아래 귀아(鬼牙)같이 새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흐르는 악마의 물결 진정 악마의 숨결처럼 거칠
고 드세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아미태산 전체가 대지진을 만난 듯 뒤흔들렸다.
쩌쩍!
대지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천지사방으로 균열붕괴하는 것이 아닌가?
아아 이 무슨 괴변이란 말인가?
"크카카카캇!"
바로 그때 섬뜩한 하늘마저도 진저리치는 대악마소(大惡魔笑)가 환우를 떨어울렸는데 그것은 피
와 유부의 저주가 담긴 악마의 웃음이었다.
그것은 만 장 지하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콰우우우우웅!
진동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격렬해졌다. 악마탄(惡魔灘)의 폭포수는 엄청난 마기(魔氣)에 떠밀려
천공(天空)을 꿰뚫기 시작했다.
쿠쿠콰쾅!
천지가 개벽하는가? 일순 사위가 암흑전지로 바뀌더니 암흑을 가르며 악마탄을 쪼개고 한줄기 혈
광(血光)이 허공 일천 장 높이로 솟구쳤다.
"크카카카캇!"
혈광의 끝 까마득한 천공에서 악마의 대광소(大狂笑)를 터뜨리며 너덜거리는 흑포자락으로 치부
만을 가린 채 웃어제끼는 혈인은 분명 인간이었다.
츠츠츠!
일순, 인영의 전신에 어린 혈광이 점차 모공으로 흡수됨에 따라 혈인의 용모가 확연히 드러났다.
칠흑같은 검은 눈썹, 야망의 불꽃이 이글거리는 야망지안(野望之眼)을 지닌 미청년으로 전신에서
폭출되는 태산같이 엄청난 기도는 놀라왔다.
그는 바로 지옥혈룡(地獄血龍) 냉유성이었다.
악마혈경을 얻어 악마혈옥부로 갔던 대마룡(大魔龍)! 그에게는 전에 볼 수 없던 또 다른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대악마지기(大惡魔之氣)!
하늘의 천마(天魔)마저 피(血)를 토하고 즉사할 정도로 악마의 숨결이 전신에 깃들어 있었다.
파츳!
냉유성의 눈에서 가공할 마광이 폭출했다.
"드디어 이루었다! 대악마파천무(大惡魔破天舞)! 악마의 절대마예를!"
언뜻, 냉유성의 눈가로 잔혹한 전율이 스쳐갔다.
"악마혈옥부! 십팔대악마가 남긴 악마의 관문을 뚫고..."
대체 얼마나 가공지경이기에 악마의 관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단 말인가?
냉유성의 음산한 말투는 계속되었다.
"심장을 파열시킬 악마천령단(惡魔天靈丹)을 복용하고 전신을 악마로 환산시키는 대악마혈소(大惡
魔血沼)에 몸을 담그며 나는 이루었다! 십팔대 악마가 남겼으되 그 악마들조차 두려워했던 대악
마파천무를!"
스윽!
냉유성의 음산한 목소리가 잣아들며 허공으로 신형이 둥실 떠오르더니, 그가 허공에서 합장을 하
자 전신에서 가공할 마기(魔氣)가 담긴 혈광이 은은히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냉유성의 머리 위로 핏빛의 악마혈상이 어른거렸다.
피와 파괴를 바라는 악마상은 그대로 냉유성의 혈관을 타고 용트림을 했다.
일순, 냉유성이 쌍수를 앞으로 쭉 뻗었다.
"대악마파천무(大惡魔破天舞)!"
고오오!
쩌쩌어억!
오오! 보았는가?
핏빛 혈강이 해일처럼 뻗어 나가자, 천지종말의 대폭음이 터지더니, 방원 일천 장 이내의 모든 것
이 철저하게 바스러져 버렸다.
대지는 쪼개지고 부수어지며 함몰했다.
이것이 진정 인간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이럴 수가 없는 것이다.
천마(天魔)의 광란(狂亂)인가? 그것은 이미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 세계의 힘이었다.
"크하하핫! 환우대천좌! 그 보좌는 본좌는 차지가 될 것이다!"
쐐액!
냉유성의 극악한 마소가 악마탄 전체를 뒤흔들더니, 그의 신형이 빛살이 되어 남천(南天)으로 폭
사했다.

악마(惡魔)의 탄생!

그 이름은 지옥혈룡 냉유성, 바로 그였다.


<대천황성(大天皇城)...>

천황대전(天皇大殿)에는 대천황성의 주요 고수들이 모두 구름같이 운집해 있다.
최상좌에는 화우성이 미발을 길게 늘어뜨린 채 단좌해 있었고, 그 앞에는 단리운혜를 비롯하여
우내사비천의 종주들인 호천사비황이 기라성처럼 앉아 있다.
팔대무적천불은 단하게 공손히 시립했다.
그 아래, 철사자 담운룡을 위시하여 과거 중원천하를 진동시켰던 거두들이 좌정해 있었다.

문득, 단리운혜가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는데 옥용에는 곤혹의 빛이 짙게 어렸다.
"천황의 말씀대로라면 혈각을 깨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것이 시간 문제라면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중인들은 의혹이 어린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자 화우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혈각의 모든 주력은 사왕세가를 상대하느라 청해로 빠져나갔소... 또한 독왕세가는 신경
을 쓸 필요가 없소!"
"?"
좌중의 인물들은 더욱 궁금증에 물들어 화우성에게 이목을 집중했고 침착한 말이 계속 이어졌다.
"태산(泰山) 주위를 봉쇄하여 정보를 끊고 사왕세가를 깼다는 역정보를 혈각에 흘린 후..."
"......?"
"대천황성의 고수가 대천마군단으로 위장하여 혈각에 침투하는 것이오."
화우성이 일단 말을 끊고 좌중을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다.
"혈각의 내부에 소란이 일었을 때 일천천불군이 합공을 하시오!"
화우성이 오천사비황 중 대전혈황(大戰血皇) 담천군을 바라보았다.
담천군은 그의 단호한 결단력이 어린 눈초리를 받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담노선배님은 일만대혈전군단으로 퇴로를 막아 주시고..."
이때, 단리운혜가 화우성의 말을 끊었다.
"천황의 뜻대로 하면 혈각 정도는 쉽게 깰 수 있어요. 허나 사왕세가는..."
그녀의 우려섞인 말은 화우성에 의해 끊어졌고 지니고 있던 단리운혜의 의문도 그와 동시에 사라
졌다.
"일천천불군이 빠지고 나면 대천마군단은 그대로 궤멸해 버릴 것이오! 그렇지만 최소한 시간은
벌 수 있소!"
"......!"
화우성이 단리운혜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혈각을 깬 여세로 대천황성의 전력을 투입해 사왕세가를 상대하고 거기에 새북연맹이 배후를 공
격하는 것이오."
"......!"
"나머지는 막북의 무적도호들이 깨끗이 청소해 줄 것이오!"
"허어!"
여기저기서 화우성의 치밀한 계획에 탄성을 터뜨렸으나 단리운혜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혈왕마가가 그런 호기(好機)를 놓칠까요?"
그녀의 얼굴에 깔리는 우려의 기색을 보며 화우성이 입을 열었다.
"당연한 우려요! 허나..."
"......?"
화우성의 눈가로 기광이 스치는 단리운혜와 좌중들은 놓치지 않았다.
"혈신은 어부지리를 취하기 위해 관망하는 상태요. 모든 것을 속전속결하면 그 때에야 허겁지겁
암흑마련(暗黑魔聯)을 이끌고 출동할 것이오! 허나 때는 이미 늦었지!"
"......!"
"요는 속전속결이 모든 문제의 관건인 것이요!"
이때, 화우성이 신비한 웃음을 머금고 장난기 어린 말로 입을 열었다.
"혈왕마가의 뒤통수는 독왕세가가 치게 될 것이오. 그 때문에 허둥대는 혈왕마가와 암흑마련을
우리가 기세를 돌려 박살내는 것이오!"
"아아!"
"그렇다면!"
좌중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파츳!
화우성의 강렬한 안광이 더욱 백열됐다.
"지옥대전은 종식될 것이오!"
"아아!"
"오오 드디어 지긋지긋한 지옥대전이 드디어 끝난단 말인가?"
"영원한 천년평화가 도래한단 말인가?"
좌중의 군웅들은 기쁨과 환희에 찬 탄성을 터뜨리고 있고 단리운혜는 화우성의 얼굴을 황홀한 듯
주시했다.
(독국패황림에 가셨다기에 걱정을 했더니 독왕세가마저 수습하셨군요!)
화우성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사랑이 담뿍 담겨 있었다.
(백중지세(伯仲之勢)에서 독왕세가를 얻어 우위를 확보하자 그대로 밀어붙여 버린 저 패기(覇
氣)!)
단리운혜의 눈에 비치는 화우성은 천인(天人)이었다!


<지옥혈종전(地獄血宗殿)...>

뭉클!뭉클!
사이로운 마기(魔氣)가 담겨 있는 혈목(血目)이 대전 전체를 뒤덮을 듯 혈광을 뿌리는 가운데 핏
빛 보좌에 앉아 있는 혈포의 노인은 새하얀 백발에 백염이 탐스럽게 빛난다.
그의 전신에서는 구름같이 마기(魔氣)가 일었다.
마기는 안개처럼 스물스물 대전 바닥을 타고 흘러, 대기를 타고 허공에 흩어지며,
쿠우우우우우!
대전 전체가 진저리를 치게 만들고 있었다.
혈포노인은 결코 신위를 자랑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할 뿐인데도 전
신에서 뿜어지는 마기의 위력이 가공했다. 그가 분노한다면 대체 그 위력이 얼마나 될 것인가?

-혈신(血神)!

천년마세(千年魔勢) 혈왕마가(血王魔家)의 대마종으로십만의 지옥마류혈을 지닌 지옥마전사들을
이끄는 천년마도(千年魔道)의 대종사였다.
그 공포의 대마종이 지금 대단히 기대가 어린 눈빛으로 흐뭇하게 앉아 있다.
이때, 그의 입에서 심유무심하면서도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튀어나왔
다.
"유성(流星)! 그 애가 악마(惡魔)의 힘을 지금쯤은 얻었으리라!"
어떤 몽롱한 영상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 그의 혈안이 일순 흐릿하게 변하며 입가에 흐릿하세 회
심의 혈소(血笑)가 맴돌았다.
"그 애가 악마지무(惡魔之武)를 얻고 나올 때쯤이면 모든 것이 확대일로를 걷고 있을 것이다!"
혈신이 혈좌에서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흐흐! 싸워라! 사왕세가과 독왕세가가 드디어 중원 침입을 개시했다!"
뚜벅 뚜벅!
혈신이 홀로 생각에 잠겨 지옥혈종전을 배회했다.
"혈각! 본좌에서 반역의 뜻을 가지고 있지! 야망! 환우천하를 독패할 야무진 꿈을 꾸면서 말이다.
허나!"
파츳!
가소로운 짓을 하고 있을 바보를 보며 즐기고 있다는 듯이 혈신의 눈에 가공할 살광이 폭출했다.
일순, 그의 입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음산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흐흐! 혈각 놈들은 배은망덕하게도 자신들을 키워 준 나를 배신하려 하지만 사왕세가과 독왕세
가에 의해 공중분해 되고 말 것이다."
그의 괴소에 대기가 전율하고 있었다.
"결국 중원은 사왕세가과 독왕세가에 의해 양분될 것이다!"
뚜벅!
지옥혈종전 내에는 무거운 음모의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퍼지는 것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찰나 같기도 하고 억겁같기도 한 시간이 소리없이 흘렀다.
우우웅!
혈신의 침묵으로 시작된 대기의 전율은 조금씩 도를 더했다.
순간, 수천만 근 거석으로 내리눌러 억제하는 듯 심유무심하고 둔중한 목소리가 퍼져나왔다.
말은 실날처럼 가늘게 시작되더니 뒤로 갈수록 점차 웅혼하게 변했다.
"팔왕대종회(八王大宗會)가 얼마 남지 않았다. 중원은 모든 세력의 핵! 해왕세가과 도왕세가도 좌
시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 문득, 서성거리며 말을 잊고 있던 혈신이 우뚝 멈춰서더니 대전의 벽면을 건드렸다.
순간,
그그그긍!
핏빛 벽(血壁)이 한쪽으로 스르르 밀려갔다.
천하대전도(天下大全圖)!
벽면에는 중원을 비롯하여 천하의 지리가 담긴 거대한 지도가 나타났다.
혈신이 천천히 천하대전도 앞으로 다가가 시선을 중원에 못박았다.
"히히! 싸워라! 이전투구(泥田鬪狗)한 후 본가와 제이의 암흑마련에 의해 철저히 부서지리라! 그
리고..."
혈신의 눈은 탐욕, 혈광, 그런 것들이 넘쳐 흐르는 야망지안(野望之眼)을 번뜩이며 중원을 떠나
차례로 천하를 휘둘러 보았다.
"막북(漠北), 사해(四海), 묘강(苗疆), 천축(天竺), 북해(北海), 환우(還宇)를 본좌의 발아래 두리라!"
혈신의 입꼬리가 밑으로 쳐지며 흐릿한 마소(魔笑)가 떠올랐다.
"나는 환우대천자의 위에 등극할 것이다! 크하하핫!"
마소는 어느새 미친 듯한 광소로 바뀌어 대전을 뒤흔들었다.
헌데, 바로 이때 혈신의 등 뒤에서 빙검으로 잘근잘근 난도질하듯 섬뜩한 목소리가 광소를 갈기
갈기 찢어발겼다.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오! 당신이 아닌 나에 의해서!"
괴음은 어찌나 섬뜩한 악마지기가 어려 있는지, 공포의 대마종인 혈신조차 그 목소리가 자신의
머리를 꿰뚫고 앞으로 튀어나오는 듯이 느꼈다.
혈신은 너무도 섬뜩한 느낌에 체면도 생각할 겨를이 없이 본능적으로 신형이 뒤로 돌았다.
"헉! 누구 크윽!"
허나, 그는 그 가공할 마기(魔氣)와 능력을 지니고도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을 태산에 깔린 파리처럼 뭉개 버리는 대마력이 전신을 강타해 혈신은 비명조차 제대
로 지르지 못한 채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쿠웅!
혈신이 핏물을 꾸역꾸역 토하며 벽에 부딪쳐 주르르 떨어졌다.
그는 마치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 버렸다.
아니, 땅바닥에 패대기를 쳐진 개구리처럼 널브러졌다.
"크흑! 너, 너는!"
혈신은 불신과 경악으로 물든 채 눈을 부릅떴다.
언제였던가? 유령같은 혈영(血影)이 혈신이 앉아 있던 혈좌에 소리없이 내려앉았는데 혈포미청년
으로 악마의 화신이 되어 악마탄을 떠났던 지옥혈룡 냉유성이었다.
혈좌에 단좌한 그의 냉안(冷顔)에 한 줄기 조소가 어렸다.
"후후 사부의 모든 꿈은 꼭 이루어질 것이오! 단지 당신은 이 시간 이후 지옥의 천자(天子)가 되
고 나는 이승의 환우대천자가 된다는 점만 바뀔 뿐..."
냉유성은 또박또박 못을 박듯 마지막 매듭을 지었다.
"알겠소... 사부?"
냉유성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빙검이 되어 혈신의 머리를 들쑤시자 그 시리도록 차가운 말투
에 죽음을 목전에 둔 혈신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였느냐? 유성... 너는 백 일 후에나 올 것으로 예상했었다."
혈신도 점차 신색을 가라앉히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때, 냉유성이 그의 피칠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의혹을 풀어 주었다.
"당신은 나를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당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요!"
문득, 혈신은 스산한 사소(死笑)를 머금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진정, 그의 태도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의연할 수 있는 대마종의 모습이었다.
그는 그만큼 의연했고, 그것은 그가 아니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런 태도였다.
"크크! 훌륭하다. 너는 진정한 악마가 되었구나!"
냉유성도 무감동한 어조로 대답했다.
"사부가 가르친대로 했을 뿐이오!"
역시, 그 사부에 그 제자였다. 그들의 독심이나, 이같은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대마웅으로서
의 의연한 자세나 똑같아 대마종과 악마의 화신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혈신은 냉유송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크흐흐! 너는 이제 본 혈왕마가의 이십이대 혈신(血神)으로 등극했다. 강자(强者)만이 진정한 강
자만이 본가의 종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니까..."
혈신의 눈가에 초점이 사라져 갔다.
"유성! 너만이 진정한 천년군림좌에 앉을 수 있다! 부디 환우대천자가 되어라!"
천하 최고의 공포대마신으로 군림하던 혈신의 고개가 옆으로 떨어졌다.
천년마세(千年魔勢) 혈왕마가의 종주!
지옥대전을 일으킨 장본인 혈신!
그는 자신이 키운 혈룡(血龍)에 의해 지옥으로 가고 말았다. 허나, 죽은 그의 얼굴에는 지극히 평
온한 기색이 넘쳐 흘렀다. 아니, 오히려 기뻐하고 있다고나 할까?

"악마가 되는 날 나는 내 위에 그 누구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달았소, 사부!"
평온한 혈신의 얼굴을 주시하며 냉유성이 신형을 일으켰다.
"또한 나는 사부가 사조(師祖)가 증사조(曾師祖)에게 누대를 그러해 왔던 전통에 따라 사부를 제
거할 것 뿐이오!"
뚜벅뚜벅!
냉유성이 천천히 혈신의 시체로 다가갔다.
"사부도 말했듯이 강자만이 본가의 종주가 될 수 있으니까... 게다가 나는 역대 사조들과는 절대
비교도 안 되는 악마지신임에야!"
냉유성은 천천히 쌍수를 쳐들었다.
슈욱욱!
두 손에서 자그마한 악마상이 나타나더니, 혈신의 머리로 날아갔다.
빠각!
이럴 수도 있는가? 냉유성의 쌍수에서 폭출된 두 개의 주먹만한 악마상이 혈신을 마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야금야금 먹어 치우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악마! 전통에 따르자면 제자는 자신에게 살해당한 사부의 시신을 태워 없애야 하나 사부가
쌓아 올린 내공이 아깝지 않소? 모든 것은 악마에게 소속되는 것이라오! 사부의 시신까지도..."
그의 말이 끝났을 때, 두 개의 악마상은 이미 혈신의 시신을 깨끗이 포식한 후 냉유성의 머리 위
로 날아갔다.
퓨욱!
악마상들은 천령개를 통해 냉유성에게 스며들었다.
"사부의 꿈은 이루겠소! 혈왕마가는 천년군림을 할 것이오! 나, 냉유성의 힘으로!"
스윽!
냉유성은 눈을 들어 천하대전도(天下大全圖)를 주시했다.
그의 눈길은 동악(東嶽) 태산(泰山)에 박혔다.
"혈각... 네놈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는 그 안에 숨어 있는 한 마리 간룡(姦龍)이지! 놈은 혈각
을 깰 것이다. 그때 흐흐흐!"
푸스스스!
악마의 웃음이 퍼짐과 함께 냉유성의 전신에서 가공할 마기가 폭출해 천하대전도는 주르륵 녹아
내려 눈 깜빡할 새에 사라졌다.
"천하는 이렇게 하나가 될 것이다! 크하하핫"
냉유성의 입에서 잔혹한 대악마소가 흘러나오자,
쿠우우!
단순히 그의 악마지소에 어린 악마기조차 이기지 못해 지옥혈종전이 붕괴했다.
냉유성은 끝없이 무너져 내리는 잔해들이 덮쳐오는대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침내 사십 장 높이의 혈신전은 대악마지신이 된 냉유성을 뒤덮은 채 산산히 부서진 모래더미가
되었다.
무림천하여 아는가? 악마가 유부(幽府)의 암흑마소(暗黑魔笑)를 흘리며 하얀 이빨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아는가?


태산(泰山)!
한 줌의 달빛조차 비치지 않는 칠흑같은 암흑 속에 동악(東嶽)의 웅장한 위용이 잠겨 있었다.
휘익!
야음을 타고 흐르는 파공성이 태산 전체에 퍼지고 있었다. 태산 일대를 물샐 틈도 없이 뒤덮고
비쾌하게 정상으로 치닫는 인영들은 하나 하나가 강자가 아닌 자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혈각(血閣)!

어둠 속에 휩싸여 혈각은 웅크린 지옥견을 연상시키듯 을씨스럽기 그지없었다.
헌데,
휘익!
야조처럼 수 개의 인영이 혈각으로 스며드는 것이 지리를 훤히 아는 듯 물처럼 거침없이 나아갔
다.

"으음... 대천마군단이 막강하기는 하나 그들만으로는 결코 사왕세가를 완전히 격멸시킬 수 없거
늘..."
지옥혈천종이 서찰을 들여다 보며 중얼거리는 얼굴은 불신감이 역력했다.
"혈각의 모든 세력과 지옥십대혈작 모두를 출동시켜야 가능하거늘 으음?"
서찰을 읽어 내려가던 지옥혈천종의 안면에 언뜻 이채가 떠올랐다.

<초급전령...
사왕세가과 청해(靑海) 용미파(龍尾波)에서 대결!
처음에는 밀렸으나 단주이신 천마대불종 휘하 십대악불, 십대천불이 악마사원의 오백 악마천사불
과 천불사의 오백천불군을 이끌고 응원함으로써, 사왕세가를 단 사흘 만에 격파!...中略...곧 귀환하
겠음!
비(秘)...>

지옥혈천종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그렇지! 천마대불종! 확실히 용(龍)을 얻었어!"
지옥혈천종의 입에서 흡족한 괴소가 흘러나왔다.
"흐흐! 그 노물을 이용해서 독왕세가를 깨고 혈왕마가와 상대시키면 모든 일은 만사형통이다!"
스윽!
지옥혈천종이 신형을 일으켜 창가로 걸어갔다.
창 밖, 금사를 뿌려놓은 듯 밤하늘에는 하얀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혈신! 지금까지는 힘이 없어 네놈 말대로 해 왔다! 허나..."
츠팟!
지옥혈천종의 눈가에 혈광이 타올랐는데 야망의 빛이었다.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천왕팔가만이 군림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때 돌연,
"크크크! 그렇지!"
한 마디 쇠 긁는 괴성이 지옥혈천종의 등 뒤에서 울렸다.
"......!"
순간, 지옥혈천종의 신형이 부르르 떨렸다.
(이토록 가까이 올 때까지 몰랐다니!)
허나, 그는 이내 신색을 회복하고 천천히 신형을 돌리자 뒤에는 한 명의 적포괴인이 우뚝 서 있
었다.
그를 보자 지옥혈천종은 반색을 하며 반겼다.
"천마대불종! 노태공께서!"
적포괴인은 바로 천마대불종이었던 것이다.
지옥혈천종은 반기는 기색이면서도 내심으로는 뜨끔했다.
(다 들었다?)
허나, 그는 즉시 내심을 감추려는 듯이 호쾌하게 대소를 터뜨렸다.
"하핫! 태공, 언제 오셨습니까? 그렇찮아도 지금 막 쾌보를 접했는데..."
"......!"
천마대불종으로 변신한 화우성은 말없이 그를 주시하자 괜히 내심을 들킨 것같아 쑥스럽고 불안
했다.
"정말 통쾌한 쾌거였습니다! 하하핫!"
지옥혈천종은 몹시 과장된 행동을 보이며 화우성에게 치하의 말을 계속했다.
이때,
"지옥혈천종!"
화우성의 음성이 조용하게 깔리자 지옥혈천종은 너무도 조용한 어투에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
지했다.
이때,
"와아!"
"크하핫! 죽여랏! 혈각의 개들을..."
"본 호천단혈맹이 힘이 없어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님을 보여 주자!"
여기저기서 태산 전체를 뒤흔드는 함성이 터졌다.
"적(敵)이다. 으악!"
"몰살했다던 호천단혈맹이 침습하다니!"
"저, 저들은 십대악불! 크흑!"
콰아앙!
화르르르륵!
분노에 찬 함성과 찢어질 듯한 비명이 암흑을 찬란하게 수놓으며 지옥혈천종의 귀를 쑤시고 들어
왔다.
밖에서는, 피(血)와 비명, 무참한 도륙이 한 폭의 지옥도(地獄圖)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혈각!
그들은 바로 자신들의 피와 시신으로 현세(現世)에 아수라지옥(阿修羅地獄)을 재현(再現)시키고
있는 것이다.


<천마대궁(天魔大宮)...>

지옥십대혈작 중 천마대작 염백천의 거소이다.
"아흐윽! 좀 더... 흐윽!"
"흐흐 고것...!"
천마대궁의 침실에서는 끈적한 남녀의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괴이한 신음소리를 천마대궁을
영활하게 헤엄치고 있고, 천마대작 염백천이 여인과 사랑의 항해를 하고 있었다.
지금, 천마대작은 안고 있는 여인과 함께 적막을 향하여 거친 항해를 질주했다.
허연 다리를 활짝 벌린 자세로 천마대작의 무릎 위에 걸터앉은 여인은 활처럼 몸을 뒤로 젖히고
있었다. 천마대작의 한 손은 그녀의 중심부에서 움직이고 잇었다.
여인은 자신의 비소(秘所)를 샅샅이 헤집고 돌아다니며 들쑤시는 기다란 뱀의 장난을 이기지 못
해, 두 팔을 뒤로 제껴 바닥을 짚고 활처럼 젖혀진 몸을 미친 듯 요동했다.
그녀의 가슴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한 과일나무 같았다.
그녀의 몸은 천정을 향하여 딱딱하게 굳어만 갔다. 여인의 몸을 누르고 있는 천마대작의 몸에서
요동을 쳤다.
긴 숨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염백천의 몸에 걸터앉아 있는 여인은 이상한 자세로 엉거주춤 앉은
채, 미친 듯 광란했다.
그녀가 세차게 달덩이같이 허연 둔부를 아래 위로 움직일 때마다 고추선 거대한 혈주가 원색의
동굴 속에서 위용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곤 했다.
환희와 환락의 세계가 뒤엉키며 한 마리의 새는 드디어 긴 여행을 떠났다. 한 곳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리고 끝없이 달렸다.
염백천의 몸을 묶어놓고 있던 여인은 눈 앞에서 긴 요동의 몸부림이 격동하자, 눈이 희번뜩 돌아
갔다. 도저히 더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소에서부터 시작된 불길은 전신을 몇 차례나 소멸시켰다.
허나, 이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수백 수천만 배나 더 극치의 환락(歡樂)이 있다는 것을 수
만 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여인의 입에서 정말 견딜 수 없다는 듯한 투정의 신음이 터졌다.
"가고 싶단 말이야!"
이미, 혼은 극락에 가서 몽환경(夢歡境)을 헤메고 있는 염백천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계속
해서 절정을 맛보고 있는 여인이 옆에서 천둥이 친다 한들 알아듣겠는가?
끈적한 교성이 끊일 줄 모르고 흘렀다.
헌데 어느 한 순간,
푸르르르!
마침내, 염백천의 몸에서 광란하던 여인의 전신이 조각조각 부서질 듯 경련을 일으키더니 죽은
지 오래된 뼈없는 문어다리처럼 흐물흐물하게 축 늘어져 버렸다.
그녀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독백이 주절주절 흘러나왔다.
"나 죽는가 봐!"
이때, 드디어 기회가 왔다는 듯 염백천의 머리쪽에 있던 여인이 먹이를 노리는 표범보다도 재빠
르게 자세를 달리했다.
"이제, 이제!"
여인은, 미치도록 아니 죽도록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는 듯 말소리부터가 희열에 들떠 더듬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한 손은 이미 염백천의 몸을 부여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늘어진 여인의 동
체를 옆으로 신경질적으로 끌어안았다.
순간, 염백천의 숨넘어 가는 듯한 기성이 터졌다. 여인이 두 손으로 몸가락을 잡았기 때문이다.
여인은 천상천하에 가장 소중한 보물을 만지듯 괴이하게 염백천의 몸가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깨지는 물건을 잡은 듯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입 안에 가득 과실을 집어 넣었다.
그녀는 과실을 먹기 시작했다.
순간,
"그렇지!"
천천히 움직이던 여인의 입은 조금씩 과실을 빨리 빨기 시작했다. 마침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
도로 빨라졌다.
"안 돼!"
"빠르게!"
여인의 몸이 빙글 돌았다. 염백천과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된 것이다.
염백천도 뱀처럼 긴 설육과 열 손가락으로 집요하게 그녀를 공격했다.
"크흐흑! 사, 살려줘!"
"나 죽어!"
살려달라는 남자와 죽겠다는 여자... 장면은 정말로 뜨거운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어느 순간, 염백천은 몸 속의 것들이 송두리째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말도 제대로 뱉지
못했다.
"......!"
잠시 혼미상태에 있던 그가 눈을 게슴츠레 하게 뜨고 여인을 바라보자 여인은 과실을 입에 문 채
동공에 초점이 없이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흐흠! 완전히 가 버렸군!)
염백천은 자신의 절륜한 힘과 기술에 자부심을 느꼈다.
한데, 여인은 얼마나 황천으로 멀리멀리 달려갔는지 깨어날 생각을 않는 것이 아닌가?
일다경이 흘렀건만 정신이 돌아올 생각을 안했다.
(흐흐! 네년이 나에게 걸렸는데 안 가고 배겨 으잉!)
염백천은 한참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가 눈이 휘둥그래졌다.
또르륵! 똑!
여인의 목에 바늘로 찍은 듯 붉은 점이 생기더니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 그의 하체를 적신 것
이다.
파팟!
염백천의 확대된 동공에서 마광(魔光)이 번뜩였다.
그의 눈에 비친 여인의 뿌연 동공, 이미 혼백이 빠져나가 광택을 잃은 그녀의 동공에는 한 인물
의 영상이 어려 있었다.
순간,
휘익!
천마대작 염백천이 옷을 입을 생각도 않고 섬전처럼 신형을 돌렸다. 그의 거대한 기물도 출렁하
며 머리를 돌렸다.
그의 앞에 선 인영이 심유무심하고 음산한 목소리로 그의 숨을 조였다.
"천마대작! 네놈은 호천단혈맹의 사망명부(死亡名簿)에 올랐다."
"이런, 우라질 놈! 감히 본좌의 아취를 깨뜨려?"
쐐애액!
천마대작 염백천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두 손은 착실한 종이 되어 허공을 날고, 괴영의 강
기와 부딪치면서 거대한 파멸지음을 터뜨렸다.
주르륵!
천마대작 염백천의 신형이 뒤로 삼 장이나 물러나자 괴영의 쌍장이 앞으로 쭈욱 뻗어나왔다.
"철사패황강(鐵沙覇皇강)!"
엄청난 대갈이 터지고,
쿠콰쾅!
"크악!"
전신이 송두리째 균열하며 염백천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나왔고 먼지가 가라앉자 전신이 걸
레조각이 된 염백천이 널브러져 있었다.
"크흑! 내가 패하다니 네놈은?"
괴영이 그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후후! 호천단혈맹의 무상(武相)이었고 지금은 대천황성(大天皇城)의 무위총령(武衛總領)으로 있는
철사자 담운룡이 바로 본인이시다."
"크흑! 그럴 수가 호천단혈맹은 이미 멸망!"
툭!
염백천은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절정의 쾌락을 맛본 직후에 죽었으니까 그는
그래도 행복한 인간이었다.
이때,
스윽!
철사자 담운룡이 염백천의 마지막 말에 대꾸라도 하듯 독백을 하며 사라졌다.
"호천단혈맹은 결코 죽지 않는다! 천황(天皇)이 존재하는 한..."


<천뇌원(天腦院)...>

혈각의 두뇌에 해당하는 곳이며 지옥십대혈작 중 외천작 쌍뇌사혼자 북궁기의 거소이기도 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북궁기는 잠을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이때,
스륵!
문이 조용히 열리며 한 승인이 들어섰는데 사라대선승, 바로 그였다.
"그대는?"
북궁기가 흠칫하며 의혹 어린 표정을 짓자 사라대선승이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의 미소는 석가세존의 해탈소를 닮았다.
허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의미심장했다.
"그대의 수급을 모셔오라는 총군주의 명이 있었다오!"
사라대선승의 말은 마치 수십 년 지기(知己)에게 하듯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북궁기는 그의 말 뜻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태도에 섬뜩함을 느꼈으나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감히 어느 미친 놈이!"
분노한 북궁기는 쌍수를 뒤로 번쩍 쳐들었다.
휘익!
침상 뒤에 걸려 있던 쌍뇌판관필 두 자루가 날아와 손에 잡혔다.
"죽어랏!"
쐐액!
판관필에서 새파란 필강이 벽력처럼 사라대선승을 향해 쏘아갔다.
"허헛! 자네는 머리가 좋다더니 바보로군! 본인은 총군주의 도움을 받아 자네 정도는 쉽게 격파할
수준이 되었다네...범천패불강!"
콰지지직!
"크흑!"
사라대선승의 쌍장에서 쏘아져 나간 청광(靑光)과 홍광(紅光)은 북궁기의 필강을 으스러뜨리고 날
아가, 북궁기의 가슴까지 묵사발로 만들었다.
쿠웅!
벽에 부딪쳐 주저앉은 북궁기가 사라대선승에게 힘없는 눈길을 보냈다.
"총군주는 누구인가?"
"아미타불! 천마대불종이시지..."
죽어가는 북궁기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천마대불종! 그가..."
"그 분은 호천단혈맹의 태상맹주이시다!"
"호천단혈맹! 역시 삼백 일이 문제였... 허억!"
쿵!
호천멸살천일지계를 만들어 영원한 마도천하를 구가하려던 사도제일뇌! 그의 우려대로 삼백여 일
이나 일찍 호천멸살천일지계가 달성된 함정이었다.
허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우연하게도 오늘은 호천멸살천일지계가 끝나는 천 일째 되
는 날이었다.


<천음원(天音院)...>

천음후 천음서시 소옥령의 거처였다.
헌데,
삘릴리!
비파소리, 피리소리, 북소리 등 온갖 악기 소리가 천음원을 뒤덮고 있는 것이 주위에는 수백 여인
들이 둘러서서 각기 한 가지씩의 악기를 들고 연주했다.

오백군방천예화(五百群芳天藝花)...
우내사비천 중 군방천의 최고정예들로 그녀들은 각기 한 가지씩의 악기를 연주하는 데는 무적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으으!"
"호호호! 으악!"
"본문의 천음대환천곡(天淫大歡天曲)을 깨다니... 우욱!"
천음원에 속한 일천 여인들이 귀를 틀어막고 괴로움에 몸부림쳤는데 그 중에는 이미 칠공으로 피
를 뿌리며 쓰러지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오오! 진정 가공할 음공이 아닌가?

삘릴리리!
띠띠이띵!
천음원의 후원에는 두 여인이 단좌해 있다.
자색 복면의 여인은 한 개의 비파를 무릎에 올려놓고 탄주했고, 그 앞에는 삼십대의 중년 미부가
옥퉁소를 불었다.

-천음서시 소옥령!
-천기예후 교옥진!

바로 그녀들로 주위 일백 장은 이미 초토화되었고 전신에서는 땀이 흥건했다.
일순,
파팍!
천음서시의 무릎 위에 놓인 묵빛 비파가 쪼개지고, 피분수를 토하며 십여 장 밖으로 날아갔다.
이때, 천기예후 교옥진은 창백한 안색으로 땀을 훔쳤다.
"저 아이의 내력이 조금만 더 심후했으면 내가 졌을 것이다!"
그녀가 가볍게 한숨 지을 때 천음서시는 들릴 듯 말 듯 한 마디를 뱉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마라천황슬 그것만 있었다면..."
천음문(天音門)의 지존영부이자 음문(音門)의 최고기병인 마라천황슬은 애석하게도 그녀가 화우성
과 대적할 때 이미 부숴지고 없었다.


지옥십대혈작!
중원천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죽음의 대명사들인 그들은 치밀한 안배에 의해 하나씩 죽어가고
있었다.
"후후! 저 소리가 들리느냐? 지옥혈천종!"
화우성이 빙긋이 웃었다.
지옥혈천종은 치를 떨며 분노했다.
"으으... 네놈이 배신하다니! 섭섭하게 대한 것이 없거늘..."
화우성의 고개가 장난스럽게 끄덕거렸다.
"그렇지! 천마대불종에게는 잘해 주었지! 허나..."
우두둑!
화우성의 얼굴이 급격히 변하더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헉! 네놈은 천마대불종이 아니었구나!"
"후후! 나에게는 잘해 주지 않았거든..."
"이 찢어죽일... 죽어랏! 아수탈혼마강(阿修脫魂魔剛)!"
파파파팟!
순간, 지옥혈천종의 쌍수가 묵빛으로 번뜩이자 화우성의 안색이 흠칫했다.
"아수탈혼마강! 천년마교의 지존마예..."
"크흐흐... 잘 아는군! 그렇다면 위력도 알겠지? 대천마수(大天魔手)!"
우우우우웅!
아수탈혼마강이 실린 수천 개의 수영(手影)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천년마교!

천 년 그 이전, 원세무림계의 십팔대악마의 후예를 자처하며 등장한 대마세인 그들은 정통마맥임
(正統魔脈)을 주창하며 가공할 마학(魔學)으로 천하를 휩쓸었다.
그러다가 천왕팔가가 등장하고, 환우를 피로 물들인 지옥대전이 일어나자 천년마교는 그 와중에
궤멸되었다.
헌데, 지옥혈천종 그가 천년마교의 후인이었을 줄이야!

"후후! 지금을 천 년 이전으로 생각하면 곤란하지!"
화우성이 조소를 하며 쌍수를 모았다.
치치지직!
화우성이 천천히 쌍수를 벌리자 그 사이로 시퍼런 뇌성이 불꽃을 튀기는 것이 아닌가? 오오! 인
간의 손에서 어찌 뇌전이 흐른단 말인가?
"나의 몸에는 거대한 뇌전지기가 흐르고 있다. 나조차도 주체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이제 그 일
부를 보여 주지!"
화우성이 붕안을 백열시키며 중얼거렸다.
이어,
"천뢰파(天雷破)!"
콰콰콰콰!
일성 대갈이 터지고 화우성의 쌍수에서 거대한 뇌전이 작렬했다.
콰지직!
지옥혈천종의 공세를 부수며 강태해 들어왔다.
"허흐억! 마마혈전강인(魔魔血電剛印) 혈라대파멸폭(血羅大破滅爆)!"
지옥혈천종이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대경하더니, 천년마교의 비전지예를 끝도 없이 한꺼번에 펼
쳤다.
마마패류천강(魔魔覇流天剛)!
대수굉멸폭(大手宏滅爆)!
혈천만공수편(血天滿空手鞭)!
천마환혼무(天魔還魂舞)!
역천파황강(逆天破荒剛)!
다급해진 지옥혈천종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천팔백 종의 천마지예를 모조리 펼쳤다.
꽈과과광!
순간, 엄청난 대폭발이 일어났다.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일 장 두께의 벽이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삼백 장 방원을 새카맣게
뒤덮으며 비산하고, 화우성과 지옥혈천종의 강기가 부딪치면서 반하늘의 별보다도 많은 불꽃이
현란하게 사방을 밝히는 가운데, 구층의 지옥혈루(地獄血樓)가 서서히 무너졌다.
그것은 혈각의 붕괴를 알리는 마지막 조종(弔鍾)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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