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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천왕14

제14장
학살자(虐殺者)와 사형집행인(死刑執行人)...


(실수였다. 대낮에 혈각의 사정권 안에 들다니...)
흑의미청년은 안색이 창백하게 굳은 채로 힐끗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마극혈사신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허공으로 옮겼다.
사실 지금 그는 일말의 내공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서 있는 것조차 기적(奇蹟)이라고 할 만큼 만신
창이가 된 그의 내부는 일백 마마혈전강시들이 일시에 내뿜는 마마혈전강기(魔魔血電剛氣)가 전
신의 수많은 혈맥을 가닥가닥 끊어 놓은 것이다.
(이대로 끝인가? 가문의 혈채도, 아랑을 찾는 것도...)
일순 그의 눈가로 암울한 그늘이 구름처럼 스쳐갔다.
순간,
"놈! 죽어랏! 마극혈폭류!"
푸화악!
마극혈사신은 비상한 눈치를 발휘하여 흑의미청년이 이미 기력이 탈진한 것을 느끼고는 먹이를
노리는 맹수(猛獸)처럼 달려들었다.
카카캉!
이 절대절명의 순간 귀를 찢는 쇳소리가 울리며 마극혈사신의 공세를 봉쇄하는 것이 있었다.
"웬놈이냐?"
마극혈사신이 안색을 홱 바꾸며 고개를 돌린 순간, 그의 전면 십 장 되는 곳에서 금라의를 걸친
미청년이 빙긋이 미소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 이제부터 기억하면 돼! 지옥의 학살자(虐殺者)라고 부른다네!"
화우성이 장난기가 동한 듯 빙글빙글 웃자 마극혈사신은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지옥의 학살자?"
어이가 없는 듯 반문하던 마극혈사신은 상대가 어린 것을 보자 기고만장했다.
"어린 놈! 감히 본 혈각의 일에 간섭을 하겠단 말이냐? 그렇다면 네놈부터 없애주지! 저놈을 죽여
랏!"
쿠와아앙!
그와 심령이 통하는 마마혈전강시들도 분노한 듯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화우성을 덮
쳤다.
그것을 본 화우성의 장난기 어린 안색이 삽시간에 만년빙설(晩年氷雪)처럼 싸늘해졌다.
"후후! 네놈들은 잘못 걸렸어! 본좌는 이미 대설산에서 맹세한 바가 있지! 지옥의 학살자가 되겠
노라고..."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화우성은 신형을 허공으로 띄워올렸다.
"죽음의 바다에서 창안한 것이다! 지옥학살풍(地獄虐殺風)!"
일순, 화우성의 전신에서 기이한 소성이 울려퍼지자,
우우우웅!
돈다(旋)! 땅이 돌고, 대기가 돌고, 하늘마저 회전했다.
죽음의 바람, 용권풍보다도 열 배나 강한 대선풍(大旋風) 앞에 남아나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콰지직!
파육지음과 함께 금강석보다도 강하다는 마마혈전강시들조차 맷돌에 갈린 콩가루같이 으스러졌
다.
"안 돼! 크아악!"
마극혈사신은 흔신의 내공을 끌어올려 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인간이 어찌 대자연의 거력(巨
力)을 당할 수 있겠는가?
대어(大魚)를 낚았다고 희희낙락하던 마극혈사신은 뼈도 못 추리고 박살나 버렸다.

-지옥학살풍(地獄虐殺風)!

지옥(地獄)을 학살하는 죽음의 폭풍(暴風)이었다.


지옥(地獄)의 학살자!
지옥(地獄)의 사형집행인!

우연하게도 비슷한 운명을 지닌 사람들이 만나면 더할나위가 없이 즐거운 법이다.
긴장이 풀려 쓰러졌던 흑의미청년은 잠시 후 정신을 차렸다.
"으음..."
깨어남과 동시에 그는 묵직한 신음성을 터뜨렸다. 광풍노도와도 같이 막강한 내공이 자신의 내부
에서 치달리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콰콰콰!
무엇인지 모를 거대한 진력은 그의 전신혈관을 거침없이 뚫고 있었다.
순간, 흑의미청년은 뭔가 청량하고도 향기로운 냄새를 맡았다. 폐부마저 시원스럽게 해 주는 향기
였다.
마침내, 흑의미청년은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그대는?"
그의 말은 이내 목구멍에서 다시 삼켜지고 말았다. 아직도 채 정신이 완전하게 돌아오지 않은 그
의 귓가에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말을 하지 말고 빨리 진기를 유도 시키시오!"
낭랑한 음성에는 신비로운 매력이 스며 있어 흑의미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황급히 심법을 운용했
다.
콰콰콰!
자신의 내부에서 엄청난 폭음이 터지며 전신혈맥 뿐 아니라 이제까지는 꿈도 꾸지 못했던 모세혈
관들까지 모조리 시원하게 트이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간단히 끊겼던 혈관들이 뚫리다니... 오갑자 이상의 내공과 천고의 의술(醫術)을 지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인데!)
흑의미청년은 의혹이 어린 불신의 눈빛으로 화우성을 자세히 살폈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가공할 내력을 지니고 있다니!)
그는 내심 경탄과 경이의 눈빛으로 화우성을 주시하고 있을 때 그의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
우성이 싱긋 웃으며 손을 털고 일어났다.
흑의미청년은 화우성이 손을 떼는 순간 전신이 상쾌한 느낌이 들어 날아갈 듯이 몸이 가벼웠다.
(전보다 내공이 휠씬 증진됐군.)
희열에 들뜬 흑의미청년은 언제 내상을 입은 적이 있느냐는 듯이 가뿐하게 일어서더니 화우성에
게 포권했다.
"구해 주심에 감사드리오!"
허나, 타고난 천성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는 분명 웃고 있었건만 그 모습이 마치 얼음으로 빚은
조각 같았고, 천하의 말은 북풍한설처럼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쯧! 차라리 웃지를 마시구료! 원 나무토막같이 뻣뻣하긴..."
혀를 차는 화우성의 말에 흑의미청년은 언뜻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후후! 하긴 감정의 표현이란 내게 너무도 사치스러운 것이지!)
그는 씁쓸한 미소를 입꼬리에 흘리며 냉막하게 말문을 열었다.
"나는 전태랑(田太郞)이라 하오!"
화우성의 눈가에 이채가 어렸다.
"동영(東瀛)의 인물이셨군! 어쩐지 무적일도류(無敵一刀流)의 부상국 도법을 사용한다 했더니!"
"....!"
화우성이 무심코 한 말에 전태랑은 의외라는 듯 흠칫했다.
(한 눈에 내 출신이 어딘지를 알아내다니 중원에는 본문의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거늘...)
전태랑은 상념에 잠기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안목이오! 그렇소. 내가 바로 무적일도류의 이십 일대 문주인 부상도천(扶桑刀天)이오!"
"역시! 그런 신분이기에 지옥의 사형집행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구료! 과연 그 성명에 부
족함이 없소!"
화우성이 담담하게 칭찬의 말을 늘어놓자 흑의미청년도 감탄했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그대 역시 지옥의 학살자라는 명성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 같소이다!"
"하핫! 지옥의 사형집행인과 지옥의 학살자라 뭔가 통하는 데가 있군!"
화우성도 기분이 몹시 좋은 듯 싱긋이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헌데 그 먼 동영에서 이곳까지 오시다니 어찌된 일이시오?"
순간, 화우성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인수련(超人修練)을 쌓아 오욕칠정을 끊고 인간의 감정을 말살한 그
가 이토록 분노하다니...)
전태랑의 눈은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했으나, 화우성은 잔잔함 뒤에 응축되어 있는 절실한 분노와
한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마저 찢어발길 듯한 거대한 한(恨)을...
이때, 전태랑은 아련한 기억을 되살리는 듯 텅빈 허공을 주시했다.
"오 년 전 본문에 일단의 혈의인들이 방문한 적이 있소. 그들은 치욕스럽게도 전대문주이신 아버
님께 아무런 이유도 없이 굴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겠소? 허나, 동영인자들은 그대도 알다시피
자존심(自尊心)을 생명(生命)이나 가문(家門)보다도 중시하는 전통이 있소."
말을 잇고 있던 그의 얼굴 근육이 극히 미약하기는 하지만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아버님은 당연히 거부했고, 결국 놈들의 손에 본문 전체가 몰살당하고 말았소. 아랑(亞朗)! 나의
귀여운 여동생이 놈들에게 납치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태랑의 안색은 어느 새 무섭도록 담담해져 있었다.
가공할 힘으로 폭발하기 직전의 무색투명한 분노... 그것은 차라리 핏빛으로 응어리진 어떠한 분
노 보다도 가공하고 공포스런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본인은 본문의 최후비기를 연성하느라 폐관수련중이었기에 화(禍)를 면할 수 있었소."
화우성은 전태랑의 무색투명한 분노를 보며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었군! 혈각의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들이 잠자는 악마의 수염을 뽑은거야!)
이때, 전태랑이 화우성을 응시하며 무엇인가를 건네주었다.
"받으시오!"
"이것은?"
화우성의 의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전태랑이 화우성에게 건네준 물건은 손바닥 크기
의 자그마한 검은 깃발이었다.

<무적(無敵)...>

"그것은 본문의 장문영기요!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악양의 무적천비루(無敵天秘樓)의
현판에 꽂으시오! 그럼..."
쐐액!
전태랑은 화우성이 뭐라고 말할 여가도 없이 포권을 하더니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파공음을 동반
하고 섬전처럼 사라져 버렸다.
"무적일도류문! 뜻하지 않게 인자(忍者)의 하늘(天)을 었군."
무적흑기(無敵黑旗)를 품 안에 갈무리하는 화우성의 옥용에 싱그러운 미소가 떠올리며 전태랑이
사라진 방향을 한동안 주시하다 북천을 향해 날아 올랐다.

무적일도류문(無敵一刀流門)!

인자의 영원한 하늘! 암흑 속이라면 천하에서 이들을 당적할 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화우성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신강의 오지에서 우연히 얻은 기우(奇遇)가 훗날 엄청난 변수로
떠오르리라는 것을...


<대과벽(大戈壁)...>

여인의 새하얀 둔부처럼 만지면 새하얀 분가루가 묻어날 듯 탐스러운 만월(滿月)이 현공에 떠있
다.
휘이이잉!
끝없이 펼쳐진 대분지를 양단한 무저심연(無底深淵)의 단층 밑에서 불어오는 대강풍은 천지를 휘
말아 올릴 듯 강맹한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헌데 까마득히 바라보이는 지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이어진 단층의 중앙, 폭이 평균을 잡아도 일
백 장이 넘는 단애 끝에 자그마한 인영이 우뚝 서 있다. 표표하게 휘날리는 장발이 수초처럼 달
빛을 받아 너울거렸다.
비록 대자연의 위용 속에서 작게 파묻혀 있으나, 그 웅장한 대자연(大自然)의 위용으로도 억누를
수 없는 가공할 기도를 지닌 인영(人影)! 그는 화우성이었다.
"이제 이곳만 넘으면 막북이로군! 새황의 절대자 새북천도영이 있는 곳!"
화우성은 휘말리는 강풍을 받으며 장발을 시원스럽게 쓸어올렸다. 만월의 풍염한 달빛을 받아, 잘
게 부서져 내리는 은하(銀河)의 물결에 비친 화우성의 모습은 정말 시리도록 아름답다 못해 가
히 극미(極美)라 할 만했다.
이때, 화우성의 유현하던 동공에서 강렬한 안광이 폭출했다.
"새북천도영! 세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곳이 천년무적도가인 도왕세가(刀王世家)임을..."

-새북천도영(塞北天刀營)!

막북의 패자(覇者)이자 오직 도(刀)에 미친 광인(狂人)들 만으로 구성되었다는 천하제일의 도문
(刀門)!
헌데, 그 새북천도영이 천왕팔가의 천년무적도가인 도왕세가라니 놀라운 일이었다.
"후후! 이 사실은 운혜 뿐 아니라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
빙긋 웃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화우성은 계곡을 향하고 있었다.

콰콰콰콰!
십여 장 정도 되는 계곡의 입구에는 가공무비한 대폭풍강기가 소용돌이치며 인간의 발길을 거부
하고 있었다.
시커먼 묵운 사이로 작열하고 있는 가공할 뇌기와 거대한 화염!

<사곡(死谷)...>

계곡 입구의 이끼 전 바위에는 선열한 핏빛 글씨가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죽음의 계곡이라... 뭔가 어두운 냄새가 나는걸..."
화우성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운혜누님이 고생하고 있는데 빨리 새북천도영으로 가야지..."
화우성은 아쉬운 듯 계곡을 주시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신형을 날렸다.
쐐애액!
돌연 한 줄기 귀청을 찢어발기는 파공음이 대기를 가르며 화우성의 발 앞에 한 폭의 핏빛 깃발이
꽂히는 것이 아닌가?
깃발에는 계곡 입구의 바위와 마찬가지로 핏빛 글자가 공포스럽게 새겨져 있었다.

<입곡자필견염라(入谷者必見閻羅)...>

"곡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반드시 염라대왕과 인사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오만함으로 가득한 글을 본 화우성의 입가로 기이한 미소가 매달렸다. 천하의 악동이었던 화우성
이 나이가 조금 들었다고 조용히 지날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막북천도영의 일로 조용히 지나치려 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후후! 조용히 가려 했는데 들어와 달라고 사정을 하는군! 초청했는데 그냥간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
화우성은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머금고 사곡(死谷)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누군지는 몰라도 실수한 것이다.
하늘조차 알지 못할 괴벽을 지닌 화우성, 남이 하지 말라고 기를 쓰고 말리면 말릴 수록 그것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 견디지 못하는 화우성의 성격을 모르고 불을 지른 것이다.
"!"
문득 붕안에 가득 장난기를 담고 걸어가던 화우성이 멈춰섰다.
(조금 전까지도 없던 살기가 백 장 이내를 뒤덮고 있다! 인기척은 느낄 수도 없는데 말이다.)
화우성은 지그시 눈을 내리감더니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후후! 보이지 않는다면 나도 안 보면 되지...)
화우성의 신형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나 또한 안 보이게 하면 그만이야!"
스스스!
화우성의 신형이 만월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쐐액!
"어엇!"
만월 속으로 빨려들던 화우성에게 한 줄기 예리한 파공음이 덮쳐오자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허나, 화우성으로 하여금 경악토록 한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
여인!
달(月)의 요정인가? 월궁의 항아인가?
새파란 검망 뒤로 새하얀 나체를 그대로 드러낸 채 떠 있는 여인의 자태는 실로 신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감히 경고를 무시하고 이곳에 들어오다니! 죽어라! 월락검극무(月落劍極舞)!"
십오륙 세나 되었을까? 흡사 암코양이 같은 귀여운 소녀로 전신에 실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았는
데도 불구하고 수치심도 없이 덮쳐 오는 것이 아닌가?
앙칼진 교갈에 정신을 추스린 화우성은 그만 실소를 하고 말았다.
"훗! 벌거숭이로 한밤중에 나돌아 다니다니 쯧쯧! 뉘집 딸자식인지 교육 하나는 잘 시켜놨군!"
스윽!
화우성은 혀를 끌끌 내차며 쌍수를 치켜 들어올리자 휘황찬란한 금광이 솟구치고 있었다.
카캉!
"아악!"
곧이어 날카로운 쇳소리에 뒤이어 여인의 신음이 귀를 찢는다 싶더니만 뭔가가 만월에 반짝이며
땅 위로 떨어졌다.
"으음!"
화우성의 신형이 착지를 하다가 흠칫했다.
그를 공격했던 월녀(月女)는 이미 핏물을 토하며 지면으로 떨어졌는데 암흑 속에서 수천 줄기의
도망이 화우성의 전신을 그물(網)처럼 다급히 신형을 솟구치며 쌍수를 내밀었다.
"뇌룡등천무(雷龍騰天舞)!"
쐐애액!
십여 장을 솟구친 화우성의 입에서 폭갈이 터졌다.
"천뢰마벽강(天雷魔壁剛)!"
콰우우웅!
대기가 시퍼런 뇌전에서 발기발기 찢어지더니 사위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콰지직!
"허억! 저럴 수가!"
암흑의 저편에 한 혈의장한이 두 눈을 찢어지게 부릅뜨며 대경실색했다.
콰콰쾅!
"크아앗!"
천라지망같던 도망은 갈가리 부서지고 피하고 어쩌고 할 사이도 없이 혈의장한은 분육(分肉)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화우성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었다.
"후후! 나를 건드리는 자는 무조건 죽인다!"
스윽!
화우성은 살소를 머금으며 모래바닥 위로 내려서려 하였으나 또다시 한 자 허공 위에서 멈춰야
했다.
사풍(沙風)!
한 웅큼의 모래가 천 근의 힘을 싣고 화우성의 전신을 강타했다.
콰지지직!
"천뢰탄강(天雷彈剛)!"
파파팟!
폭죽이 터지듯 모래가 사방으로 날아가는데 그것은 날아올 때보다도 두 배 이상 빨랐다.
그와 동시에, 전신 혈맥이 가닥가닥 끊기는 듯한 비명이 밤하늘을 찢어 발겼다.
혈인(血人)!
모래는 티끌보다 조금 클 뿐이나 화우성이 반탄시킨 모래 하나하나에는 족히 만 근의 힘이 들어
가 있어 그 탄사(彈沙)에 전신이 꿰뚫려 모래 속에 숨어 공격했던 사나이는 벌집이 되어 처참하
게 죽었다.
"크으! 모래의 제왕인 나 혈사잠룡(血砂潛龍)이 모래에 맞아 죽다니 개가 웃을 일이군."
쿠웅!
그는 고목이 쓰러지듯 모래 위에 쓰러지자 비로소 화우성은 지면으로 내려섰다.
그의 안색은 몹시 침중했다.
"달의 여인(月女)... 암흑(暗黑)의 유혼(幽魂)... 사인(沙人)... 그렇다면?"
화우성의 뇌리로 문득 한 가지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천외삼대살천!"

<천외삼대살천(天外三大殺天)>

-월영살막(月影殺幕)...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달(月)의 자객집단, 달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월녀(月女)들이 항상 존재한
다.

-암흑백야혼(暗黑白夜魂)...

백인(百人)으로 이루어진 공포의 자객집단,
암흑 속에서 처절한 공포를 느끼며 사라져 가는 원혼들로 대야혼(大夜魂)에서 백야혼(白夜魂)까지
존재하는 암흑 속의 지배자들이다.

-혈사평(血沙坪)...

혈사(血沙)의 대지(大地)인 사막의 무법자들이라 불리우는 피의 자객집단으로 척살 대상자가 모래
위에 있다면 이미 그는 살아있는 목숨이 아니다.

"....!"
화우성이 한곳으로 신형을 돌리자 그곳에는 한 소녀가 쪼그리고 앉아 그를 잡아 먹을 듯이 노려
보고 있었다.
소녀의 앙증맞은 젖가슴 사이로는 금빛 장인(掌印)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나쁜 자식! 미요(美妖)를 아프게 하다니!"
그녀는 앙칼진 눈초리로 화우성을 쏘아보고 있었다.
헌데, 그제서야 소녀를 찬찬히 훑어보던 화우성의 눈가에 경탄의 기색이 떠올랐다.
소녀는 기껏해야 십오륙 세 정도였다.
허나, 그녀의 교구는 나이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숙성한 것이 아닌가?
초생달 같은 아미는 귀 위로 휘어져 올라가 앙칼진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약간 치켜 올라간 봉목은 오히려 귀엽기조차 하였다.
새하얀 백학(白鶴)을 닮은 목의 곡선 아래로 두 손으로 감싸고는 있으나 조그만 교수로는 다 가
리지 못하여 손가락 사이로 여실히 드러난 풍만한 유방은 건드리지 않아도 저절로 소리가 날 만
큼 팽팽했다.
한 줌도 되지 않는 세류요와 급격히 퍼져나간 둔부의 풍만함은 대지와도 같이 풍요로운 느낌을
주었다.
쪼그리고 앉은 두 다리 사이로 은은히 보이는 비궁!
수초는 소녀의 마음인 양 파르르 떨리고 있다.
(훗! 꼭 성난 암코양이 같군!)
화우성은 싱그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스윽!
그가 미요에게 다가선 순간,
"죽엇!"
미요의 두 손이 활짝 퍼지자 청광이 화우성의 십대사혈을 노리고 짓쳐들자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
는 듯이 빙긋 웃으며 두 손을 마주 쳐드는 것이 아닌가?
파파파팟!
순간 현란한 불꽃이 튀며 어느새 미요가 날린 암기들은 모조리 화우성의 수중에 들어갔다.
"하핫! 내게도 투명혈각이라는 것이 있지!"
찰칵!
화우성이 대소를 터뜨리며 손톱 위에 투명한 손톱을 덧끼우자 손 안에는 조그맣고 파란 손톱이
열 개 들려 있었다.
휘익!
화우성의 섬전처럼 미요의 손목을 잡았다.
"놔! 이 색한!"
화우성은 앙탈을 부리는 미요를 꽉 붙들고 자신의 금라의를 벗어 그녀에게 둘러 주고는 번쩍 안
아들자 그녀는 거짓말같이 순한 양처럼 얌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예쁘다!)
동공을 뚫고 들어오는 화우성의 영상은 소녀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느낌을 각인해 놓았다.
이 순간 미요는 이제껏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거대한 힘이 자신을 감싸고 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 하늘 같아!)
하늘(天)!
미요의 눈에 지금 이 순간 화우성은 하늘보다도 더 거대하게 투영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시발점
이었다.
미요는 이제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화우성은 싱그러운 미소를 머금고 미요의 놀란 토끼같이 떠진 눈동자를 들여다 보았다.
"후훗! 자고로 여자는 남자가 옷을 벗겨 주어야 하는 법이야! 함부로 옷을 벗고 다니면 곤란하
지!"
화우성의 질책에 미요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줍음으로 옥용이 새빨개지며 정인(情人)에게 하
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본막의 무공을 펼치기 위해서는 할 수 없어요."
"월영투명신공 말인가?"
화우성의 반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미요의 안색이 갑자기 처연하게 변했다.
"자객에게 패배란 곧 죽음을 의미하지요. 허나 본막의 여인들은 실패하면 상대에게 모든 것을 맡
겨요."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 월후(月后)도 예외는 아니에요!"
화우성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했다.
"허! 월영살막에 그런 율법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미요가 고개를 반짝 치켜들고 화우성을 주시했다.
"본막의 무공을 펼치려면 그 특이성 때문에 옷을 벗어야 해요. 실패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
에게 보이게 되는데 어찌 하겠어요?"
"만일 내가 거절한다면?"
화우성이 정색을 하며 말하자 미요의 안색이 절망적으로 변했다.
"버림받는다면 죽음뿐이지요!"
화우성이 미요를 번쩍 들어올리며 빙긋 미소지었다. 천하의 화우성이 미녀가 당신밖에 없다고 접
근하는데 마다할 사람인가? 다만 미요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짖궂은 장난을 친 것이다.
"후후! 그건 그렇다치고 천외삼대살천이 이런 황량한 오지에 무슨 이유로 몰려 있는 것이오?"
"그것은 소첩도 알 수 없어요."
미요는 화우성이 자신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는 달빛처럼 빛나는 봉목으로 그
의 미안을 뚫어질 듯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본막을 비롯한 천외삼대살천은 하루에 황금 일만 냥씩으로 사곡을 지켜주기로 청부를 받았어요."
그녀의 말에 화우성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루에 만 냥! 일 년이면 삼백육십만 냥인데 그런 거액을 단지 이곳을 지키는 것 만으로 지불했
단 말인가?"
"그래요."
미요은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화우성은 고개를 저으며 사곡을 흘끗 돌아보았다.
(그런 정도의 거금으로 지킬 정도로 엄청난 무엇이 저 안에 있다는 얘긴데...)
화우성은 어떤 결심을 굳힌 듯 미요를 내려 놓으며 자신의 겉옷을 벗어 그녀의 나신을 보듬어 안
았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만일 누군가가 오면 연락을 하고..."
슷!
화우성은 미요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사곡의 안으로 신형을 날렸다.

".....!"
미요는 막 사곡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화우성의 등 뒤를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시선을 올려
만월을 바라보며 나직이 입술을 달싹였다.
"이제 달의 신화(神話)는 끝인가?"
미요는 멍하니 만월을 주시하다가 이내 체념한 듯이 고개를 떨구며 옷깃을 여몄다. 사내의 강렬
한 체향은 그녀의 나신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어쩌면 잘됐는지도..."
달(月)의 신화를 간직한 월영살막의 지존, 월후(月后) 미요는 달의 신화와 함께 태양의 그늘 속으
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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