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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하는 즐거움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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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제 말씀을 듣고 계신 분들께서는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어느 날 저녁, 허름한 소극장이나, 영화관에서 였을 겁니다. 어쩌면, 어느 날 오후, 한적한 비디오 방에서 였는지도 모르죠. 당신과 나는 남루한 좌석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습니다.
엉뚱한 마음을 먹고 있었거나, 사전 계획을 한 것은 아닌데, 갑자기 당신에게 욕망이 느껴졌습니다.
당신이 어떤 연극, 어떤 영화를 선택했는지 나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보았던 작품의 제목을 대라면 언제든지 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것은 물어보지 마세요.
왜냐하면 나는 연극 공연장이나 영화관에는 항상 혼자 가는 버릇이 있거든요.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작품 감상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잡념을 다 버리고 정신을 한 곳에 집중시켜야 연극이나 영화의 내용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당신의 동반은 상궤를 벗어나는 일이었고, 이미 정신의 산만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불이 꺼지고 어둠이 깔리면서부터, 무대나 화면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의 줄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흥분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몇 미터 전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그것 때문에 우리가 극장에 들어오게 되었던 작품의 내용은 나의 주의를 전혀 끌지 못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은밀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당신의 얼굴을 훔쳐보았습니다. 당신이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챌까봐 시선의 각도도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니까요.
시선의 이동, 숨결의 변화, 앉아 있는 자세의 지속성, 손의 움직임, 참을성 없어 보이는 안경 밀어올리기, 막힌 목을 틔우기 위한 잔 기침, 어느 것 하나 관찰의 대상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눈앞에 펼쳐지는 것에만 매료되어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잊고 있으면 잊고 있을수록 더욱 더 당신의 무감각을 깨우고 싶은 욕망이 강해졌습니다. 솔직히 말

씀드려 그것이 당신의 흥을 깨는 일만 아니었더라면 나는 벌써 당신에게 몸을 던졌을 것입니다.
초록 비상등의 인색한 불빛 아래서, 나는 당신의 곤두선 머리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흐믓해 했습니다. 반 최면 상태의 고요한 숨결에 가볍게 흔들리는 콧수염, 긴장된 순간에 무릎 위에서 쥐어지는 주먹도 처음으로 발견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은밀한 자리가 아니면 접하기 힘듭니다. 한번도 당신과 그런 자리를 가져 본 적이 없었던 나였기에, 어둠 속에서 온갖 힘든 곡예를 다 해가며 후회없이 훔쳐보았던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열정을 참기가 더 힘들어 졌습니다. 내 손은 당신에게로 이끌려가고, 당신의 넓적다리에서는 더 강한 열기가 새어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무대나 화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는 완전히 무감각해 졌습니다.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조차 않았습니다. 당신이 잠시 고개만 돌렸더라도 일은 벌어졌을 겁니다. 단 한 번의 눈길만 주었더라도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디론가 우리 둘만의 장소로 향했을 겁니다. 내가 좌석에서 요동을 치고 있었음이 분명한데도, 당신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연극 극장에서는 관중들의 박수소리가 나를 한숨짓게 만들었습니다. 영화관이나 비디오 방에서는 난폭하게 다시 켜지는 불이 나를 처참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아무런 낌새를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다시 예절 바른 애인이 되어 근사한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연극의 내용이 진부했음을 사과하거나 영화의 품격에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내 어깨에 웃옷을 걸쳐 주었습니다. 내가 그런 친절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어물어물 받아들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당신은 내게 키스까지 시도했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당신은, 게임의 법칙에 따라, 당신 나름으로 욕망의 불을 지피기 시작했습니다. 무균질의 예절에 포장된 유혹이 펼쳐졌습니다. 싫지는 않았습니다. 그

러나 나의 욕망은 아까 마법의 장소를 나서면서 피워물었던 담배의 연기와 함께 사라져버린 지 이미 오래였습니다.
나는 숫공작처럼 유혹의 꼬리를 펴고 있는 당신을 더 이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손바닥으로 쓸어눕히고 있는 머리의 까치집도 이젠 내게 매력을 잃었습니다. 바보같이 콧수염을 쓸어올리는 것도,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타를 끌어 가는 것도 이젠 꼴불견이 되어버렸습니다.
틀렸습니다. 그때부턴 더 이상 당신에게 욕망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밤 거리를 물들이는 청량한 네온 불빛도 시든 욕망을 살리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다시 만나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식어버린 나의 욕망에 마음이 상했을 법한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당신은 욕망이란, 자발적인 것으로 일부러 마음을 먹는다고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헛되이 정열만 낭비했습니다.
그 날 당신의 행동은 상당히 실망스러운 것이어서 오늘까지 내 기억에 생생합니다. 내가 만약 유감을 표시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용서해 주는 아량을 아직도 가지지 못하시나요?

36
나는 이 고장이 좋다. 매년 겨울, 여기에 다시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계절 따라 바뀌는 풍경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리고 모두 같은 다정함으로 다가온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휘몰아치는 눈보라, 낮게 드리운 구름이 빚어내는 몽롱한 잿빛 풍경, 청량한 공기에 소리까지 맑아지는 이월의 찬란한 낮들! 발 아래서 뽀드득 소리조차 내기를 거부하며 무겁게 쌓인 눈을 철이르게 녹여주는 태양. 그래, 나는 이 모든 자연의 얼굴들을 다 좋아한다. 창을 통해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제 내가 여기 도착했을 때, 솜털처럼 가벼운 눈송이가 환상처럼 부드럽게 쏟아져내렸다. 눈이 흔치 않은 해라, 이 지방 사람들도 큰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우와! 하지만 이 눈은 세 시간 이상 계속되지는 않을 겁니다."
마부가 말했다.
"사 센티미터 이상은 기대하지 마세요. 틀림없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했거든요, 눈은 이제 끝입니다!"
정말 사 센티미터의 적설량만 기록하고 눈은 멎어버렸다. 발코니로 나갔다. 하루 종일 숨어있던 태양이 저녁 무렵에서야 고개를 내밀고 하늘에 찬란하게 노을을 그렸다. 석양에 붉게 물든 산에는 자줏빛으로 변색된 소나무들과 군데군데 솟은 검은 바위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적막한 정거장에도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입에서 튀어나온 외침소리가 마을 아래로부터 들려 오고 웃음소리가 잠시 이어졌을 뿐 사위는 계속 고요 속에 잠자고 있었다.
홀로 선 나에게 고즈넉한 풍광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토록 그리던 장엄한 마음의 평화를 나는 다시 찾았다. 둥글게 퍼져있던 오렌지빛 노을을 산등성이가 삼켜버리자, 하늘은 이내 어두운 청색으로 변했다.
나는 창 유리에 이마를 대고, 잠시 더 발코니에

서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 시간쯤 후, 밤이 이슥해져 모두가 문을 닫아 걸면, 어제처럼 밖으로 나가, 스키장으로 향하는 황량한 대로를, 어제처럼 천천히 거슬러 걸어 올라갈 것이다. 외로움이 뼈 속에 사무쳐 너의 이름을 부를 것이고, 마침내 오열을 터뜨릴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오늘처럼 골짜기를 헤매다 헛되이 돌아오는 메아리를 기다릴 것이다. 날마다 반향없는 너의 이름을 그렇게 계속 불러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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