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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천왕3

제3장
야성(野性)의 잠룡(潛龍)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암흑이 하늘과 땅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꾸르릉! 쩌저적!
간혹 어둠을 찢어발기는 은은한 뇌성이 들려오고, 아스라이 끝도 없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곳, 천
뢰대광야(天雷大廣野)란 이름의 망망한 지평선 위로는 바늘 끝처럼 작게 느껴지는 벼락의 섬광이
쉴새없이 쏟아지는 것이 보인다.
산(山)!
일망무제한 대광양의 한 모퉁이에는 검극(劍極) 같은 봉우리가 짙은 운무에 뒤덮인 험산(險山)이
하나 우뚝 서 있었다.
망망한 대평원 위에 쉴새없이 떨어지는 벼락의 섬광이 비칠 때마다 험악한 산세에 푸르스름한 광
채가 감돌아 음산함을 더해 주었다.
헌데,
파라락!
"...!"
언제부터인가 그 험산의 정상에는 하나의 인영이 섬광에 언뜻언뜻 비치는 새하얀 백의를 입고 유
령처럼 서 있었다.
그 인물은 일신에 백의를 걸친 이십오 세 가량의 미청년이었다.
지옥과도 같은 암흑 속에서 머나먼 천뢰대광야를 바라보는 백의청년의 안광은 암천(暗天)을 꿰뚫
고 있었다.
그의 용모는 가히 일세를 풍미할 절세미남아(絶世美男兒)였다. 각이 진 턱, 귀밑까지 뻗어내린 묵
빛 눈썹과 우뚝 솟은 코가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만년설빙을 보는 듯이 차갑게 느껴지는 빙안(氷顔)!
천년거암같은 장중함과 만인을 압도할만큼 막강하기 그지없는 기도를 내뿜고 있는 미청년의 일신
에서는 활화산 같은 패기가 줄기줄기 쏟아지고 있었다.
후두두둑!
산정으로 휘몰아치는 강풍은 그의 백의자락을 휘말려 올렸다.
그런 그의 좌수(左手)엔 한 자루 번(幡)이 들려 강풍 속에서 힘차게 펄력거리고 있었다.
일곱자의 기간(旗竿)에 은백색의 삼각 깃발이 달린 은번(銀幡)에는 섬뜩한 핏빛 혈문(血文)이 수
놓여 있었다.

<혈룡(血龍)...>

강풍에 전율스럽게 몸을 떠는 혈룡은번(血龍銀幡)은 미청년의 얼음장 같은 신색과 더불어 그의
웅휘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후후!"
저 멀리 광란하는 천뢰대평원의 뇌성벽력과 이곳 산정의 암흑 사이로 미청년의 오연한 미소가 섬
뜩하게 파고들었다. 그것은 마치 온 천하를 발 아래 둔 듯한 냉오한 웃음이었다.
"이제 시작한다!"
그의 눈에서 뜨겁고도 강렬한 안광이 폭출하였다.
"천하가 보리라! 그리고... 천만 인이 느낄 것이다! 나 지옥혈룡(地獄血龍) 냉유성(冷流星)의 무서
움을...!"

지옥혈룡(地獄血龍) 냉유성(冷流星)!

이것이 냉막한 미청년의 이름이었다. 지옥에서 피구름을 몰고 올 혈룡(血龍)!
"후후후! 사부! 혈왕마가(血王魔家)에서 나 하나만을 천축(天竺)으로 보낸 것은 실수임을 아셔야
하오..."
냉유성의 입가로 비릿한 조소가 흘렀다.
"이번 나의 천축행이 당신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는 생각지 마시오... 어차피 나의 계획에도 포
함된 것이었으니까..."
파라라락!
주인의 음험함과 야망을 아는 듯 혈룡은번의 깃폭이 찢어질 듯 펄럭였다.
"범황삼천종(梵皇三天宗)! 그들은 내 야망을 위한 첫 번째 제물이 될 것이다!"
냉유성의 전신에서 전율스런 마기가 피어오른다.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항차, 밤하늘의 별보다도 많은 무림명인들이 이 이름 아래 무
릎을 꿇고, 통한의 피눈물을 흩뿌리며 구천을 떠도는 한 줄기 고혼이 될 줄을...!
고오오!
지옥혈룡 냉유성! 섬뜩한 야망이 어린 한 마디를 뱉은 그는 암천을 꿰뚫고 섬전처럼 사라졌다. 그
리고, 산정에는 그가 남긴 마지막 말만이 악마의 그림자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팔왕난세(八王亂世)! 이제 시작한다!"

팔왕난세(八王亂世)!

음울한 피내음을 흩뿌리는 그 한 마디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과연...!


벽력(霹靂)이 작렬한다면 과연 그 가공할 파괴력을 이겨낼 생명체가 있을까?
벼락의 힘은 우주 최강이라 알려져 있고, 그 어떤 무림고수자라 할지라도 내리꽂히는 벽력의 파
괴력을 흉내내기는커녕 감당할 수조차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저 위대하기 이를 데 없는 대자연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이 바로 벽력뇌정(霹靂雷霆)임을 모르
는 사람도 없었다.
벽력은 항시 있는 것이 아니다. 벽력은 풍운 속에서 탄생하면서 폭풍(暴風)의 질주를 하면서 공간
을 박살내고 대지를 찢어발긴다.
거기에 더하여 터져오르는 뇌성(雷聲)은 천 마리의 장백대호(長白大虎)가 터뜨리는 포효를 압도한
다.
그래서 벽력뇌정은 경외의 대상이었으며 공포와 전율의 대명사로 군림해 왔다. 태초이래로부터
생명체가 나타난 이후 그 철칙은 변함이 없었으리라...
그런데 기가막히게도 그 엄청난 벽력뇌정이 항시 휘몰아치는 벽력의 대지가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곳은 천뢰대광야(天雷大廣野)라 부른다.
서천축(西天竺)과 파사국(波査國)의 접경지대에 자리한 방원 백 리에 걸쳐 뻗어 있는 광야에는 사
시사철 항시 벽력의 비(霹靂雨)가 쏟아져 내린다.
그곳은 철저한 무생물(無生物)의 지옥이었다.
고막이 터져 나갈 정도로 엄청난 뇌성은 차치하고라도, 작렬하는 순간 대상물을 온통 새카만 숯
덩이로 변질시키고야 마는 벽력의 파괴력 앞에 무엇이 남아있을 수 있겠는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조차 없는 죽음의 대지가 바로 천뢰대광야였던 것이다.
수천 년의 세월을 그렇게 무생지옥(無生地獄)으로 내려왔던 천뢰대광야의 불문율이 깨진 것은 십
년 전의 어느날인가부터였다.
일고여덟 살 정도의 어린 소동(少童)이 커다란 방패연을 타고 바람에 휩쓸려 날아와 천뢰대광야
에 추락했다.
어린 소년은 넋을 잃고 작렬하는 벽력과 공간을 찢어발기는 뇌성을 지켜보았다.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벽력이 그 소년은 피해가는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어린 소년은 하루동
안 단 한 번의 낙뢰(落雷)도 맞지 않은 채 돌아갔다.
그 때부터였다. 적게는 한 달에 한 번, 많게는 삼 일에 하루씩 어린 소년은 천뢰대광야를 찾아와
벽력과 경주를 하면서 놀았고, 뇌성과 소리를 지르며 얘기했다.
그로부터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늘은 반드시 잡고 말 테다."
백호피 가죽옷으로 치부만을 간신히 가린 채 산의 정상에서 있는 앳된 미청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화우성이라는 이름을 지닌 미청년은 멀리 동천(東天)을 노려보고 있었다.
"벽력뇌붕(霹靂雷鵬)! 그놈도 오늘은 또 나타날 것이다. 천뢰대광야(天雷大廣野)에 벽력과 뇌우(雷
雨)가 휘몰아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전설 속의 신조(神鳥)! 반드시 잡아서 그 놈을 한번 타고
말 테다."
미청년의 얼굴엔 확고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그 때였다.
구워어억!
돌연, 엄청난 천붕후(天鵬吼)가 대기를 뒤흔드는 것이 아닌가?
"왔군!"
화우성은 씨익 웃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어두운 밤하늘은 온통 벼락의 폭죽 잔치가 벌어져 있었는데, 거미줄같이 어두운
야천(夜天)을 찢어발기는 벽력의 공간 사이로 하나의 거대한 푸른 물체가 광속의 빠르기로 내리
꽂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놀랍게도 새(鳥)였다.
그 어떤 생물이라도 천뢰대광야에 작렬하는 벽력을 이겨낼 피부를 지닌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제비처럼 작고 날랜 새가 아니라 대응(大鷹)보다도 백 배는 더 큰 어마어마한 붕조(鵬鳥)
가 이 죽음의 대지로 찾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쩌쩌쩡!
시퍼렇게 벽력이 작렬하면서 두터운 깃(羽)을 들쑤셨다.
막 제련된 강철처럼 짙푸른 색의 깃털은 멀쩡했다.
구워어억!
오히려 뇌붕(雷鵬)은 이물질을 떨구어 버린 듯 시원해 하는 것처럼 더욱 날개를 퍼덕이며 낙뢰
(落雷)를 몸 곳곳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커다랗고 날카로운 부리를 쩍 벌리고는 모이를 쪼아먹듯 좀 위력이 작은 벼락
을 쫓으며 삼키는 것이 아닌가?
기가막힐 일이었지만 놈은 벼락을 소화제(消化劑)로 삼는다는 전설속의 뇌붕(雷鵬)이었던 것이다.
펼쳐진 날개 길이가 무려 이십 장(二十丈), 부리에서 긴 꼬리까지는 이십오 장(二十五丈)에 달하
는 어마어마한 동체에, 화륜(火輪)처럼 이글거리는 두 개의 눈은 어지간히 담력이 큰 사람일지라
도 심장마비를 일으킬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그렇지만 왕왕 예외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우!"
거창한 사자후를 토하며 낙뢰의 숲 사이를 오히려 역으로 치솟아 오르는 인영 하나가 뇌붕의 눈
에 띄었다.
"오늘은 기필코 네놈을 잡고야 말 테다! 전엔 강철그물(鋼鐵網)을 찢고 달아났지만 오늘은 어림없
다! 벽력뇌붕!"
두려워하기는커녕, 사람이 분명히 뇌붕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 기가막힌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구워어어억!
뇌붕은 기가막히게도 앳된 미청년을 보는 순간 그대로 몸을 돌려 재빠르게 도망치고 있는 것이었
다.
"하핫! 질풍비뢰(疾風飛雷)라는 신법을 만들기 위해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아느냐?"
화우성은 벼락처럼 뇌붕의 뒤를 쫓았다.
"환영분광(幻影分光)에 이어분수(鯉魚分水), 유성추월(流星追月), 쾌연전림(快燕銓林), 초상비(草上
飛), 답설무흔(踏雪無痕), 향채홍비상(向彩紅飛翔)같은 빠른 신법술(身法術)을 몽땅 연구해서 벼락
도 쫓아갈 수 있는 질풍비뢰신법을 만들어냈는 줄은 네놈도 모를 것이다. 전엔 한 나절 동안 네
놈을 쫓다가 지쳐서 관뒀지만 오늘은 다를 걸!"
이걸 믿어야만 하는가? 화우성이 주워섬긴 신법들의 이름은 그야말로 하나 하나가 빠르기로만 따
지면 무림에서 알아주는 상승보법이었다.
그것을 한두 개도 아니고 모든 것을 연구, 장점만을 취합하여 전혀 새로운 신법을 창안했다고 했
다. 하지만 믿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질풍비뢰!
이름 그대로 화우성은 질풍처럼 내달려 날아가는 벼락처럼 길게 잔영(殘影)을 그리며 뇌붕의 뒤
를 쫓고 있었다.
점차 거리가 좁혀들어갔다.
구워웍!
흘깃 뒤를 보다가 꼬리가 잡힐 정도로 사람이 다가들자 뇌붕은 깜짝 놀라며 그대로 꼬리를 밑으
로 내리더니, 수직으로 까마득히 치솟아 오르는 것이 아닌가?
"하늘로 도망가면 전엔 놓쳤지만 오늘은 다르다는 걸 알아야지."
화우성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질풍비뢰의 신법을 해제하면서 풍차급전(風車急轉)의 신법으로
몸을 풍차처럼 휘돌려 날아온 가속도(加速度)를 없애 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는 양팔을 겨드랑이 밑으로 바짝 붙이고는 머리를 하늘로 추여올리며 오른발로 왼
발등을 내리찍었다.
"뇌룡승천비(雷龍昇天飛)!"
이럴 수가 있을까? 화살이 팽팽히 당겨진 시위를 떠나 창공을 쏘아나가듯, 화우성의 몸은 벼락처
럼 수직으로 폭사되어 올라갔다.
"능공허도(凌空虛渡)에일학충천(一鶴]沖天), 맹룡승천(猛龍昇天) 해학승운(海鶴升雲), 신룡출해(神
龍出海) 같은 하늘을 나는 경공술을 집중 연구했다는 것도 알아야지."
화우성은 싱긋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뇌룡승천비는 비록 일각의 시간밖에 펼치지 못하지만 네놈이 하늘 끝까지 날아가지 않는 다음에
야 그 안에 내 손에 잡힌다!"
그의 장담대로였다. 삽시간에 거의 추월당할 정도로 뒤쫓는 화우성을 보자 뇌붕은 눈을 질끈 감
으며 움직임을 정지시키더니, 이내 바닥으로 추락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화우성은 위로 올라가고, 뇌붕은 밑으로 떨어지면서 숨바꼭질은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바로 그 찰나에 화우성의 눈빛이 더욱 반짝거렸다.
"그럴 줄 알았다! 비룡번신(飛龍飜迅)!"
나르는 용이 빠르게 몸을 뒤집는다는 절묘한 신법을 펼치며 화우성은 몸을 뒤집은 채 손을 뻗어
갔다.
"반룡탐조(盤龍探爪)!"
용이 말고 있던 발톱을 뻗듯이, 화우성은 겨드랑이에 착 붙이고 있던 팔을 쾌속하게 뻗어 하강하
는 뇌붕의 목을 휘어감았다.
뇌붕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떨어져 내려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살이 찢어지고, 피가 역류할 지경
이었을 테지만 화우성은 여전히 예외의 인간이었다.
"역시, 시원하기 이를 데 없군...이봐...좀더 빨리 떨어질 순 없나?"
한 손으론 뇌붕의 목을 잡은 채 그는 오른손 주먹으로 뇌붕의 머리를 툭툭 때렸다.
구워어억!
자존심이 상한 것일까? 뇌붕은 아예 날개를 착 붙이고, 부리를 아래로 향한 채 더욱 추락 가속도
를 붙여갔다.
삽시간에 지면이 빠르게 다가들었다. 만일 그대로 내리꽂힌다면 뼈조각 하나까지 가루로 분쇄되
어 버릴 것이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심장을 지닌 위인인지 화우성은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아니, 그는 오히려 공
포에 떠는 것이 아니라 탄성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이야! 역시 시원하군!"
뇌붕이 오히려 기가막힌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날개를 활짝 폈다. 벽력뇌붕이 한 인간에게
굴복을 선언한 순간이기도 했다.
뇌붕이 정상적으로 날자 화우성은 뇌붕의 목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와 날개 사이의 푹신한 등판으
로 떨어져 내렸다.
화성우는 팔베개를 한 채 누워 눈을 감았다.
"아함~ 한숨 잘 테니까 조용히 날아... 또 요동치면 그땐 아예 통구이를 해먹어 버릴 테다."
뇌붕은 움찔하면서 더욱 조심스럽게 날개짓을 했다.
화성우가 한 번 작심한 일이면 능히 실행에 옮길 위인이라는 것쯤은 이미 뼈저리게 체득한 벽력
뇌붕이었기 때문이었다.
잠든 화성우를 태우고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아함... 잘잤... 응?"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난 화성우는 눈을 치떴다.
그는 여전히 벽력뇌붕의 등에 있었다. 그런데 뇌붕은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라 날개를 접은 채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있는 곳은 사방이 막힌 드넓은 대전이었다. 대전의 좌측엔 벽력뇌붕보다 두 배는 더 거대한
뇌붕의 석상(石像)이 자리잡고 있었다.
석상의 아래엔 붉은 빛이 감도는 수정(水晶)의 단(檀)이 놓여져 있었는데, 그 위엔 역시 같은 재
질의 수정관(水晶棺)이 보였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화우성은 수정단 쪽으로 가보았다.
"여긴 도대체 어디야?"
단을 뛰어오른 화우성은 일순 흠칫했다.
"어! 여자 아냐?"
그렇다. 붉은 빛이 감도는 수정관 속에는 놀랍게도 여자의 모습이 은은히 비쳐 보이는 것이다.
"시체인가? 그렇지만 정말 아름답군..."
수정관을 통해서 마치 천상선녀같은 미모의 여자 모습을 본 화우성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
렸다. 그는 더욱 여인을 자세히 보려고 수정관의 뚜껑을 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사라라라랑...
수정관 속에서 붉은 기운이 안개처럼 번져나와 화우성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보인 이상은 여인의 눈이 떠졌다는 것이었다.
짙푸른 청보석이랄까? 창천의 노을을 보는 듯한 청발(靑髮)이 흐트러져 있고, 귀밑까지 뻗은 긴
청미(靑眉)는 그린 듯이 고아했다.
그런데, 눈을 뜨면서 그 짙푸른 벽안(碧眼)에서는 수천, 수만개의 벽력이 작렬하는 듯한 뇌기(雷
氣)가 화려하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 눈길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 오줌을 지릴 정도로 강렬한
안광이었다.
여인의 푸른 청발은 허벅지까지 닿을 정도로 길었다. 그것이 붉은 안개의 파동(波動)으로 인해 흔
들리면서 살짝 알몸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미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육척이 넘는 키에 한점의 군살조차 없는 완벽한 몸을 여인은 지니고
있었다.
하얀 복숭아를 열 배쯤 부풀려 놓은 듯한 유방은 흐트러짐 없이, 만지면 그대로 터져 버릴 듯 팽
팽하게 솟구쳐 있다.
그 끝에 매달린 작은 유실(乳實)은 짙푸른 하늘빛으로 물들어 파르르 떨린다.
잘룩한 허리의 곡선은 미려하기조차 했고, 탄력적인 하복부의 끝엔 마치 청하림(靑霞林)이 펼쳐져
있는 듯 보드랍기 이를 데 없었다.
"살...살아있는 여자였단 말인가?"
화우성은 넋을 잃은 채 망연히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때 여인은 눈을 뜨면서 화우성을 올려다 보았다. 인간의 웃음이 어찌 그렇게 화려하고 아름다
울까?
"신첩은 뇌벽군(雷碧君)이라 하옵니다. 벽력궁(霹靂宮)에 오신 것을 환영하옵니다."
그녀의 말을 듣는 중에 화우성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여인의 하얀 피부가 점차 붉게 물들어가
고 있음을 감지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신첩은 용왕천좌성을 타고난 용왕천인을 기다리며 살아온 뇌붕신녀(雷鵬神女)이옵니다. 우선은...
첩신을...소유하시고...!"
폭발할 듯 부풀어오른 유방을 자신의 손으로 움켜쥔다.
"말씀은 나중에...어서..."
여인은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화우성 역시 붉은 기운이 체내로 스며들면서 온몸의 혈관이 폭발할
듯 팽창되고 있엇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강력한 흥분제인 듯싶었다.
"더...더워!"
화우성은 자신의 옷을 찢듯이 벗어 던졌다. 그러자 나이답지 않게 건장한 알몸과 함께 한 마리
이무기처럼 용틀임을 하고 있는 그의 남성이 모습을 들어내었다.
그의 일부는 이미 끊어질 듯 아프게 팽창하여 시퍼런 핏줄이 툭툭 불거져 있었다.
"헉 헉!"
거친 숨소리와 함께 화우성의 손이 여인의 다리를 거칠게 잡아 벌렸다. 그러자 여인의 백옥같이
미끈한 다리가 활짝 벌어지며 그 중앙에 자리한 가장 은밀한 여인의 신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은은히 푸른 빛이 도는 보드라운 수림 속의 계곡은 이미 뜨거운 늪지로 화해 있었다. 여체의 깊
은 균열은 허벅지가 벌어짐에 따라 수줍게 입을 열며 꿀물에 흥건히 젖은 그 내밀한 속부분을 고
스란히 드러내었다.
난생 처음 보는 여체의 은밀한 부분을 직시한 화우성은 다음 순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와락 여
체를 올라탔다. 여인의 사지는 자연스럽게 그런 화우성의 몸을 휘감았다.
화우성은 배운 적도 없건만 본능의 가르침대로 허리를 들썩여 끊어질 듯 아픈 자신의 불덩이를
여체의 중심부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마음만 급할 뿐 그의 실체는 여체의 허벅지 안쪽을 마구 찔
러댈 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역시 욕화가 절정에 달한 여인이 안타까움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손을 내려 자신의 비역을
개방한 뒤 그곳으로 화우성의 욕망의 실체를 이끌었다.
자신의 실체가 더할 수 없이 보드랍고 뜨거운 늪지에 잇대어지는 순간 화우성은 주저없이 하체를
밀어붙였다.
"아악!"
"허억!"
퍼런 핏중이 툭툭 불거진 붉은 이무기가 꿈틀거리며 늪지 속의 동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순간
두 남녀의 입에서 거친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여인은 여인대로 처음 맞이하는 사내의 거대함에 질식할 지경이었지만, 화우성은 그와는 다른 이
유로 인해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의 일부가 여인의 몸속에 삽입되어 하나가 되는 순간, 여체의 깊은 곳에서 그의 하물을 통해
엄청난 힘이 해일처럼 밀려드는 것이 아닌가?
온몸이 터져나갈 정도의 거대한 미증유의 힘은 바로 뇌력(雷力)이었다.
"으으! 헉헉!"
화우성은 수많은 벼락에 맞아 온몸의 신경이란 신경이 가닥가닥 다 타들어 가는 듯한 격통을 느
꼈고,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 대었다.
그의 허리가 세차게 흔들리는 아래에서 여림치며 그를 마주 끌어안았다. 자신의 몸 안에 품고 있
던 거대한 벼락의 기운을 모조리 화우성의 몸에 전이시켜 주면서...!


<벽력궁>

뇌붕(雷鵬)이 자신을 사로잡아 버린 화우성을 데려다준 이곳은 지금은 잊혀진 상고의 전설이 서
린 신화(神話)의 대지(大地)였다.
아득한 상고시대(上古時代)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이되 신의 능력을 지닌 초인(超人)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 숫자는 극히 제한적이었지만 그들의 능력은 보통 사람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을 지
경이었다.
봉신방(封神傍)의 전설에 나오는 숱한 신인(神人)과 선인(仙人)이 바로 그들 상고 초인(超人)들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 상고 초인들의 능력은 인간에게 전수될 수 없을 정도로 거
대했기에 자신들의 능력을 누구에게도 전해 주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용족(龍族)이라 일컬어지는 이 신화 속의 초인들은 그렇게 운명적으로 사라져갔다.
역사는 그들의 존재를 신화로써 적어오고 있었다.
저 삼황오제(三皇五帝)중 황제(黃帝)와 치우(蚩尤) 역시 그들 용족의 일원이었다.
너무도 거대한 능력을 지녔기에 용족의 가공함은 그렇게 신화로서만 치부되어 내려올 뿐이었다.
그것은 단절된 역사였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곳 벽력궁(霹靂宮)은 그들 용족(龍族) 중에서도 최강의 파괴력을 지녔던 뇌룡왕(雷龍王)
이란 인물이 남긴 상고의 흔적인 것이다.

폭풍일과(暴風一過)후,
"용족 증 최강자셨던 뇌룡왕(雷龍王) 뇌천군(雷天窘) 어르신께선 후일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악마의 능력을 지닌 초마인(超魔人)의 출현을 예견하셨사옵니다."
한 차례의 폭풍이 지난 후 신비여인 뇌벽군은 공손히 화우성 앞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말했다.
"해서, 인간이었던 첩신을 양녀(養女)로 받아들여 당신이 오백여 년 간 벼락의 정화를 흡수하여
연성하신 벽력천기(霹靂天氣)를 벽력궁에 오실 용왕천인께 전하라시며 첩신을 깊은 잠에 들게 하
셨사옵니다."
말하는 그녀의 옥용에는 방금 전의 뜨거운 열락의 흔적이 발그레한 홍조로 남아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아득한 상고(上古)의 여인이었다. 그녀 자신도 정확히 얼마나 긴 세월을 지나왔는
지 모르고 있었다.
저 치우(蚩尤)의 후손이며 용족(龍族) 최후의 초인이었던 뇌룡왕(雷龍王)은 천기(天機)를 읽은 끝
에 언제고 보통의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대마인의 출현을 감지했다.
이에 대비하여 뇌룡왕은 자신의 오랜 수양의 정화인 절대무적의 뇌기(雷氣)를 양녀인 뇌벽군의
몸 안에 주입시켜준 뒤 뇌붕이 데려올 용왕천인을 기다리게 한 것이다.

"내가 전설의 용왕천인이라고?"
화우성은 긴 청발로 부끄러운 곳을 겨우 가린 뇌벽군의 고혹한 자태를 훔쳐보며 건성으로 물었
다.
"예! 용왕천인은 용족(龍族)의 초인적인 힘을 이어받으실 수 잇는 유일한 인간이시옵니다. 다른
인간이라면 신첩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 뇌기에 감전되어 온몸이 폭발하여 죽었을 것이옵니다."
"누나 말인즉은 방금 전의 그 뭐냐..에 또, 그 일로 내가 뇌룡왕이 누나의 몸 안에 남긴 벽력천기
(霹靂天氣)란 걸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얘긴데...그렇지만 별로 힘이 세어진 것 같지는 않은데..?"
화우성은 알통을 만들어 보이며 물었다.
"십첩의 몸에서 흡취하신 뇌기는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옵니다! 그것은 차츰 용
해되어 상공의 내공이 될 것이옵니다."
뇌벽군은 화우성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미소를 머금으며 설명해 주었다.
"상공께서는 몇 번의 고난을 겪으신 후엔 아마도 인간 중 어느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초인이 되
실 것입니다! 하지만 벽력천기는 너무도 막강하니 그것을 조절하여 구사할 수 있는 인간의 무공
을 익히셔야 하옵니다."
"무공이라면 벌써 익혔는걸요?"
"양부 뇌룡왕께서 말씀하시길 당신의 사후 벽력궁에 열 명의 가장 강한 인간이 십왕방(十王房)에
들 것이라 했사옵니다."
"십왕방?"
"그들은 인간 중 가장 강한 무인(武人)일 것이라며 용왕천인에게 인간을 다룰 수 있는 술(術)을
가르칠 것이라 했사옵니다. 그...곳은..."
화우성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거긴 다음에 가보겠습니다. 세 분 사부님이 날 기다리실 텐데 다음에 오면 안 될까요?"
"편하실대로 하세요."
뇌벽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녀는 얼굴을 발그레 물들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데...한 가지만 염두해 두실 일이..."
"뭔데요?"
"첩신이 깨어난 이상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씩은 당신과... 정사(情事)를...나누어야만 생명이 유지
될 수 있사옵니다."
"그건 곤란한데?"
"예?"
"난 누님과 일 년에 최소한 삼백육십오 회는 정사를 할 생각입니다."
"예...에?"
이번엔 뇌벽군이 눈을 동그랗게 흡떴다.
"하핫! 이제 그만 가보렵니다. 노친네들이 얼마나 닥달을 하는지 매일같이 나만 기다리거든요."
"다녀오세요."
여인은 다소곳하게 배웅해 주었다.

오래지 않아 화우성은 다시 천뢰대광야로 되돌아왔다.
"뇌붕! 항상 여기서 대기해라! 벽군 누님을 보고싶을 때마다 벽력궁엘 가야 하니까!"
뇌붕의 등에서 내린 화우성은 뇌붕에게 명령했다.
구워어억!
새로운 주인의 말에 벽력뇌붕은 충성을 맹세한다는 듯 길게 울음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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