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호스테스 ( 완결 )
제 7 장. 이 별
정오가 되었다.
그는 여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싸롱 씨바로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씨바에서도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직 미리의 사생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였으며,
그보다도 구태어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침도 먹지 않은 미리.
무료하고 지겨웠다.
차라리 애라나 만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는 문득,
(내가 뭐 그사람의 아내라도 되나, 이렇게 기다려야 하게?)
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으며 자신을 조소하는 미리였다.
(나가서 신문이라도 사볼까?)
미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간단한 차림으로 방을 나섰다.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면 심심풀이로 읽을 수 있는 스포츠계통의 신문을 즐겨 읽는
버릇이 있었다.
한동안은 그런 신문에 실리는 성교육에 대한 기사를 빼놓지 않고 읽었던 적도 있었다.
매번 여고생의, 혹은 직장여성의 자위행위니 뭐니 하는 내용이 실렸는데도 어쩐지
자꾸만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신문을 사기 위해서는 약간 떨어진 버스정류장까지 가야 했다.
그곳에서 약 10분정도 걸어가야 되는 곳에 버스가 다니는 큰길이 있었다.
미리는 천천히 걸었다. 문득 어디선가 불쑥 그가 나타나며,
"어디 가는거야?"
하고 물을 것 같아 공연히 긴장이 되기도 했으나 큰 길에 나오도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리는 신문을 파는 곳에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별다른 일없이 일상적인 주위 풍경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윽고 그녀는 스포츠 서울 한 장을 뽑아들고 동전을 내밀었다.
그런 다음 우선 대충 훑어보았다.
신문에는 이승엽의 홈런 신기록 무산에 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어쩐지 이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알았다.
때마침 가까운 곳에 있는 편의점 앞에 대형 비치 파라솔이 보였다.
미리는 그곳으로 가서 음료수 한 병을 사다 놓고 신문을 펼쳤다.
특별한 기사는 없었다.
프로야구 소식이나 연예가동정 등 자질구레한 기사와 함게 오늘의 운세를 읽었다.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의 심리란 그런 내용에 눈길이 끌리게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있었을까.
미리는 문득 가까운 곳에서,
"언니."
하고 부르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니."
뜻밖이었다.
"아니 너‥‥‥ 어쩐 일이니?"
미리는 상대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언니 이근처에 사세요?"
"응. "
"나도 그래요."
"그래 ?"
다가온 것은 미리와 같은 싸롱에 나가는 풋내기 호스테스였다.
나이가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으며 정말 순진한 아가씨였다.
경험도 없는데 어쩌다 보니 직업소개소를 통해 밤업소로 오게되었고, 너무 순진한 그녀를
미리가 항상 돌봐주어 왔던 것이다.
"집이 여기서 가까우니?"
"네."
"그랬었구나."
"근데 언니 왜 요즘 안나오세요? 아주 그만두신 거예요?"
"그렇게 됐어."
"언니가 안나오시니까 아주 서운했어요. 참, 언닌 대학생이죠?"
"응."
"참 좋겠네요. 언니."
"뭐가?"
"언제 졸업하세요?"
"얼마 안남았어,"
"언니가 부러워요."
"부러울거 하나도 없어,"
영자라고 부르는 아가씨를 보는 순간 미리는 그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으나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영자를 찬찬히 바라보던 미리는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저윽이 놀랬다.
정상적인 표정이 아니었다. 많이 울었는지 눈두덩이 약간 붓고 충혈되어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집에서 자고 나온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참, 너 점심 먹었니?"
미리는 아침도 안먹었기 때문에 시장기를 느꼈다
"아뇨."
"마침 잘 됐다. 나도 아직 안 먹었거든. 우리 어디가서 간단히 점심이나 먹을까?"
문득 그러고 싶었다.
어쩐지 고향의 후배나 이웃에 사는 동생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사실상 미리는 영자를 처음보았을 때,
"너같은 애가 있을 곳이 아냐 애초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게 좋아."
하고 만류했던 터였다.
"별로 생각이 없는데‥‥‥‥"
"왜.너 혹시 어디 아프니?"
"아뇨."
"그런데 얼굴이 아주 좋지않아 뵈는구나."
이상한 일이었다. 미리는 그말에 영자는 갑자기 눈물이 글썽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여튼 가자. 내가 사줄께."
미리는 거의 일방적으로 영자의 손목을 잡고 근처에 있는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짜장을 볶는 냄새가 식욕을 몹시 자극했다.
"뭐 먹을래?"
한적한 변두리라서 그런지 중국집 안은 텅 비어있었다.
그녀들은 코너를 돌아 마치 비밀장소처럼 꼭 하나뿐인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아무거나요."
"언니가 사줄 테니 먹고 싶은 거 말해 봐.난 군만두를 먹고 싶은데?"
"나도 그거‥‥‥"
"알았어."
미리는 군만두를 주문하며 잠깐 생각해 보았다.
영자가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상대가 자신이 좋아하는 동생같은 영자이고 보니 미리는 자신의 문제를 잊고 영자의 일에
어느덧 열중하고 있었다.
이윽고 미리는 궁금증을 참지못하고 입을 열었다.
"영자야."
" 예 ?"
"너 지금 솔직히 몇 살이지? 나흔자만 알고 있을 테니까 말해봐."
영자는 약간 망설이는 듯하더니.
"진짜 나이는 열 여덟이에요.‥‥‥"
하고 밤업소에 나가는 호스테스답지 않게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 그랬구나."
"허지만 언니, 흘에선 모두 스물한 살로 알고 있어요."
"상관없어, 나만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영자야."
"네 ?"
"내가 잘못 보았는지 모르겠는데, 너 혹시 어제밤에‥‥‥‥"
미리 가 질문을 끝내 기도 전에,
"아니에요" 하고 영자는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짬짝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니?"
"아, 아무것도 아녜요."
영자는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미리는 공연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주체하지 못하며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난 영자 네가 꼭 내동생 같이 느껴져서 그러는 거야.
너도 그랬지,내가 친언니 같다고?"
"그건 그래요. 언니."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말해줄 수 있겠지?"
"안되는데 ‥‥‥‥
"안돼?"
"남한테 말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누가?"
그순간 영자는 거의 무의식중에,
"부장님 이 ‥‥‥‥" 하고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뭐라구?"
미리는 똑똑히 들었다.
영자는 분명히 지배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미리는 이상하게 가슴이 쿵광거리는 것을 느꼈다.
주문한 식사가 왔기 때문에 잠깐 말을 멈추었다.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그와 영자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영자가 그와 미리의 사이를 모르는 것은 분명 했다.
그렇다면 영자로 하여금 안심하고 털어놓도록 유도하는게 중요했다.
"어서 먹어라, 먹으면서 천천히 얘기해 봐, 괜찮으니까. 언니한테 못할 말이 뭐가 있니."
"‥‥"
"괜찮다니까.그리고,난 이제 거기 나가지도 않을 거야."
결정된 것도 아닌데 미리는 단정적으로 말해버렸다.
"정말요?"
"응. 그만두기로 했어. 이제 곧 졸업도 할 텐데 더이상 그런곳에 나갈 순 없지 않아."
"언니가 없으면 섭섭해서‥‥‥‥"
영자는 다시 눈물이 글썽해졌다.
미리는 공연히 가슴이 찡해왔으나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내가 몇 번 말했지만, 너도 빨리 다른 직장을 구하도록 해.? " 하고 진심으로 말해 주었다.
영자는 잠깐 그대로 있었다.
입에 넣은 만두를 씹다말고 정지된 기계처럼 미리를 바라보았다.
"어서먹어. 먹으면서 얘기해도 되니까. 정 그렇다면 우리 다먹고 얘기하는게 좋겠구나."
미리는 다먹을 때까지 그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쩐지 입맛이 당기지 않았기 때문에 반정도밖에 먹지 않았다.
영자는 그보다도 더 못먹었다.
"우리 다방에라도 갈래? 아무래도 여긴 그렇구나, 응?"
미리는 이번에도 거의 일방적으로 중국집이 있는 건물의 지하실 다방으로 영자를 데리고
갔다.
그런 다음.
이윽고 영자가 먼저,
"언니, 난 어떡하면 좋죠?" 하고 약간 울먹이며 말을 꺼냈다.
"어떡 하다니 ?"
"난 이제 다틀렸어요."
"틀려 ?"
"살고 싶지도 않아요. 정말이지‥‥‥‥"
"무슨 일인지 얘길 해봐야 내가 알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말해 봐. 응? 내가
보기에 부장님과 관련된 일 같은데?"
"............, "
"무슨 일이지?"
"언니니까 모두 말하겠어요."
"‥‥‥‥"
"어제 일이 거의 끝날 때였어요. 부장님이 오시더니‥‥‥‥"
그자리에서 영자가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아직 익숙하지 못한 분위기 탓에 영자는 몹시 피곤했다.
거기다 약간의 술까지 마셨기 때문에 그 자리에 쓰러질것만 같았다.
"너 이리와 봐."
영업부장이 영자를 비어 있는 룸으로 데리고 들어 갔다.
"왜요. 부장님?"
철부지나 마찬가지인 영자는 영업부장의 존재를 사실보다 훨씬 과대평가 하고 있었다.
"너 오늘 나하고 밖에 나가서 얘기좀 하자."
"오늘요?"
"그래.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끝난 다음 내가 밖에서 기다릴테니 앞 골목으로 와.
알았지?"
"여기선 안되나요?"
피곤해서 빨리 자고 싶을 뿐인 영자였다.
"안돼 . "
무뚝뚝한 부장의 말에 영자는 더이상 이유를 달 수 없어서,
"알겠어요." 하고 멋모르며 대답했다.
영업이 끝난 다음 영자는 서둘러서 약속된 장소로 같다.
과연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던 영업부장이,
"이쪽으로 와."
하며 영자의 손을 잡더니 골목길을 안쪽으로 통과한 다음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갔다.
여관이 었다.
"부장님‥‥‥‥"
영자는 이미 겁에 질리며 손을 뿌리치려 했다.
"얘기할 곳이 여기밖에 없어서 그래. 이 시간에 다방에 들어갈수도 없고."
"허지만 여긴‥‥‥‥"
"여관이면 어때. 너 우리집에서 계속 일하고 싶지 않아?"
지배인은 겁에 질린 영자를 더욱 욱박질렀다. 어떻게 애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영자는 할 수 없이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남자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몸이었다.
"일하기가 힘들지?"
의외로 부드러운 말이 었다.
"네‥‥‥ 허지만 하다 보면 쉬워지겠죠."
"그건 그래.그리고 내가 말해 두겠는데,절대로 손님들이 준다고 술을 많이 마셔서는 안돼."
"그럼 어떡해요?"
"아직은 모르겠지만 점차로 요령을 익히게 될 거야.그건 그렇고,우리집에서 계속 일하려면
내가 우선 네 몸을 조사해야 돼.? "
".........?"
영자는 아직 그 말뜻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난 이 집의 영업부장이야. 알지?"
" ‥‥‥‥"
"내가 밉게 보면 니네들은 맨날 공치게 돼, 기왕 이런데 나왔으면 돈을 벌어야 할거 아냐,
안그래?"
"‥‥‥‥"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네몸을 조사할 테니 옷을 벗어."
"‥‥‥‥"
영자는 비로소 영업부장의 말뜻을 알아차리며 깜짝 놀랐다.
너무나 뜻밖이었기 때문에 새삼 영업부장이 더욱 무서운 존재로 느껴졌다.
"놀랄 거 없어. 네가 앞으로 인기를 끌수 있겠나를 보려는 거니까."
"그렇지만‥‥‥‥"
그 순간 영업부장이,
"어서 벗지못해 ! "
하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영자는 홈칠 놀라며 목을 움츠렸다.
"못하겠으면 말해."
" ‥‥‥? "
"그리고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마,알았지?"
그것은 완벽한 위협 이었다.
며칠있는 동안 요령껏 하면 돈을 벌수 있겠다고 느꼈던 영자인만큼,
"부장님, 제발 그것만은‥‥‥ 다른 건 뭐든지 다 하겠어요."
하고 간곡하게 애원했다.
"안돼.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할 줄 아냐?잔소리 말고 당장 옷을 벗어, 그냥 조사만
할 테니까."
"어딜 조사‥‥‥‥"
"어딘 어디야, 전부 다지."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영업부장은 바보스러을 정도로 순진한 영자를 교모하게 다루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었다.
미리로 인해 여자의 육체에 익숙해진 다음부터 변했다.
미리가 그의 요구를 이틀동안 거절하자 그는 사흘째 되는 날 다른 여자를 안았다.
호스테스 가운데는 수입을 올리기 위해 그에게 억지로라도 몸을 주려는 아가씨가
여러 명 이나 되었다.
그런 아가씨들에게 있어서 육체는 하나의 미끼이고 자본이었다.
돈이 따르는 일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옷을 벗는만큼, 영업부장이 눈짓만 해도
따라오는 것이다.
다음날부터,
영업부장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런 종류의 아가씨들을 매일밤 바꾸어가며 섭렵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여체에 미쳐버린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영자가 들어왔다.
그는 첫눈에 영자가 아직 처녀라는 것을 알아내자 이내 정복욕에 사로잡혔다.
그날 밤 결국 영자는 그에게 순결을 빼앗기고 말았다.
겁에 질려 어쩔줄 모르는 영자에게 나중에는 완력을 사용했다.
강제로 달려들어 옷을 몽당 벗겨버렸다.
그래놓고 처녀의 아픔도 아랑곳없이 무자비하게 욕정을 채운 것이다.
영자가 처녀이기 때문일까.
미리와 달리 자신이 남자로서 강제로 정복한다는 승리감에 도취된 그는 거의 밤새도록
쉬지 않고 괴롭혔다.
한 번 당하고 난다음부터 영자는 아예 저항도 하지 않았다.
견딜수 없는 아픔에 쉴새없이 눈물을 쏟으며 입속으로 엄마를 불렀다.
이윽고.
새벽도 늦었을 때야 겨우 욕정을 마음껏 푼 영업부장이,
"너 이일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돼,알았지! 만일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죽여버 릴지도 몰라.
그러니 잘 알아서해."
하고 무섭게 협박한 다음 그대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영자는 몸이 너무나 아파서 하체를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거기까지 듣고난 미리.
놀라지 않았다. 충격 같은 것도 받지 않았다.
"그래, 넌 어떡할 생각이니?"
"아직은 모르겠어요. 언니, 절대 비밀로 해줘요. 네?"
"그건 걱정하지 마. 난 어차피 거기에 다신 안나갈 테니까. 그보다 네가 걱정이다. "
"난 생각했어요."
"‥‥‥‥"
"이것이 나의 운명이구나,하고요.그렇다면 할 수 없어요.기왕 이렇게 버린 몸이니까. 앞으로
돈이라도 많이 악착같이 벌어야죠."
"진심으로 하는 소리니?"
"네. 할 수 없잖아요. 이젠 시집을 제대로 가기도 틀렸는걸요."
영자의 순결관에 미리는 새삼스러운 것을 느꼈다.
그녀의 생각에 영자는 여자가 한 번 몸을 망치면 결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분명히 느졌던 것이다.
"네 문제니까 네가 알아서 현명하게 처리하도록 해라. 어떤 경우든 마음을 약하게 먹어서는
안돼."
"고마와요. 언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영자에 대해서 어쩐지 안됐다는 동정심이느껴졌으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되기 때문에
거기에서 헤어졌다.
"너 먼저 가 봐, 난 여기서 친구한데 전화할 일이 있으니까."
"전화요?"
깜짝놀라는 영자를 안심시켜서 보낸 미리는 곧장 공중전화의 다이얼을 돌리며,
(얘가 집에 있어 줘야 할텐데.)
다행히 애라는 집에 있었다.
외출했다가 공연히 일찍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왔다는 것이다.
"잘됐다. 애라야, 너 지금 이리로 좀 와줘."
"뭐라구?"
"지금 당장."
"무슨 일이니. 응?"
"걱정할건 없어.모든 일이 뜻밖에도 쉽게 풀렸어."
"그거 정말이니?"
"응 그러니까. 이리로 좀 와."
"허지만 거긴 왜?"
"글쎄 좀 와. 와서 나하고 같이 내 짐을 챙겨가지고 니네집으로가자. 여긴‥‥‥‥"
미리는 그곳의 위치를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그래놓고 다방을 나오는 그녀의 발길은 유난히 가벼웠다.
십 년이나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쑥 내려간 상태와 같았다.
그로부터 며칠후.
미리는 새로운 각오로 남은 학기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애라의 집에 있으면서 온갖 잡념과 더러워진 육체를 새롭게 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어느 날 뜻밖의 일이 있었다.
학교에 가 있을 때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어온 것이다.
겉봉을 보니 발신인의 이름도 없었다.
(누가 이런걸 보냈지?‥‥‥‥)
미리는 몹시 의아하게 생각하며 애라에게 보여주었다.
애라 역시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여튼 뜯어나 봐."
공연히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미리는 긴장된 마음으로 봉투 속에 든 편지지를 펼쳤다.
순간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뭔데 그러니?"
곁에서 들여다 보던 애라 역시 깜짝 놀랐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내용의 메세지였다.
(짧은 기간동안이었지만 행복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행복하게
살아라‥‥‥)
미리는 애라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미리를 바라보았다.
두 여자의 눈길이 중간에서 딱 마주쳤다.
그와 함께 미소를 지었다.
애라도, 미리도 미소를 지었으나 그의미는 약간씩 다른 것이었다.
한 가지 공통된 점은 두 여자 모두,
"그 사람이 역시 악당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다.
"미리 야."
"응?"
"지금 기분 어떠니?"
"모르겠어 ‥‥‥‥"
미리는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발길을 떼어놓았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의 먹구름에서 기어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쓸쓸히 돌아서는 미리의 어깨 위에 계속해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 (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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