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하는 즐거움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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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송구영신
전등의 황금빛 후광을 받고, 나폴레옹 시대의 고풍스런 책상에 앉아있는 모르트맹 드 아네스 여사의 모습에는 아직도 기품이 서려 있었다. 샤넬 상표의 정장과 큼지막한 에머랄드 반지가 그녀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해 준다면, 실크 블라우스 안으로 곧게 뻗은 목선은 육십대로 들어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치지 않는 여사의 건강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서명이 새겨져 있는 연하장을 차곡차곡 포개놓는 지겨운 일을 마친 뒤, 서랍에서 편지지 한 묶음을 꺼내 놓고 명상에 잠겼다. 그녀의 얼굴에 즐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남편은 벌써 잠이 들었을 것이고, 자신은 이제부터 즐거운 일을 시작할 것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로베르...."
펜이 종이 위로 주저 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찬란했던 그날 오후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려요. 나흘 동안이나 당신의 감미로운 손길을 접하지 못하게 된다는 게 못내 안타깝군요. 돌아오는 화요일까지는 당신의 따뜻한 품속에 안길 수 없을 겁니다. 오호 통재라! 사랑하는 당신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했어요. 하찮은 것이지만 사랑의 표시니, 받아 주세요."
그녀는 선반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리본으로 묶은 작은 선물상자들이 붉은 색조의 태피서리 앞에서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순금 페이퍼 나이프가 섬세한 로베르에게는 어울릴 거야.
"사랑하는 이여, 그대는 내가 그대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아시나요? 당신에게 뜨거운 키스를 보냅니다. 화요일, 오후 두시 정각, 지난 번 그 장소에서, 아시겠죠?"
글을 쓴 종이는 접어 밀어 두고, 다시 한 장을 뽑았다.
"사모하는 티에리, 당신 없이 나흘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아직도 그 향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우리들의 마지막 포옹에 대한
기억이 유일한 위안거립니다. 몇 시간 되지 않은 일인데 먼 옛날 추억같이 느껴지는군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떨어져 있다는 것, 그 자체만도 큰 슬픔인가 봐요! 당신의 포근한 가슴이 벌써 그리워지는군요. 화요일까지 또, 어떻게 기다리나요. 당신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답니다. 정말이에요, 하늘에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평소 때처럼, 오후 네시에. 내 사랑, 알겠죠?"
그녀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선물을 골랐다. 선반 위에 쓸쓸하게 팽개쳐져 있던 카르티에 라이터가 선택되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선물도 그는 고맙게 여길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잊을 수 없는 알랭....
세번째 장도 역시 빠르게 채워졌다.
"이 기나긴 연휴를 앞두고 내가 무얼 생각하는지 넌 모를 거야. 맙소사! 오늘 오후에 넌 어쩜 나를 그렇게 녹일 수가 있었어? 그것 덕분에, 지옥같은 나흘의 공백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내 사랑 알랭, 난 너의 사랑을 간절히 원해. 화요일 오후 여섯시에 만나. 그때 같이 나흘간의 악몽같은 공백을 메워보자. 너의 사랑 아네스가 빈손으로 가지는 않을 거야. 무슨 선물인지 한번 알아 맞춰봐.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사랑의 키스."
열쇠고리는 라이터보다 더 우스꽝스런 선물이었다. 하지만 자동차를 포장해서 보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들이 일을 끝내고 집을 나올 때, 알랭이 자기집 현관에서 차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라고 그녀는 자동차 판매 센타에 부탁해 놓았었다. 알랭이 기뻐 어쩔 줄 모를 것이다. 그녀는 생각만 해도 미소가 머금어졌다.
"내 사랑 크리스티앙. 돌아오는 화요일 밤은 우리 둘의 것이야, 기억하고 있지? 그 약속이 없었다면, 지금 난 살맛이 나지 않을거야. 네가 스키장에 가 있는 나흘동안을 난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잔인함을 느끼며 기다려야 할지. 아! 빨리, 이 저주스러운 연휴가 지나가 버렸으면! 하루라도 널 만나지
못하면 난 슬퍼져. 다시 만나면 마음껏 정열을 불태울 수 있을 거야. 그래, 빨리 화요일이 왔으면 좋겠어. 그날, 난 널 미치도록 사랑할 거야...."
문이 열렸다. 그녀는 황급히 편지지를 서랍에 쓸어 담았다.
"당신, 아직 주무시지 않고 계셨군요."
캐시미어 실내복을 입은 모르트맹씨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책을 읽고 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십오분이나 지나 있었소. 당신 방에 불이 켜져 있길래, 밝아오는 새해를 위해 축배나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온거요. 술을 찾아 올테니 기다려요."
그는 잔 두개와 샴페인 병을 들고 왔다. 그들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아네스가 목청을 돋구고 말했다.
"알베르, 당신의 불면이 또 한번 나를 즐겁게 하는군요".
그녀가 잔을 들었다.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노인도 잔을 들고 건배를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여보, 우리 나이에는 무엇보다도 건강을 조심해야 돼요. 그것이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바요."
"아, 좋은 말씀이에요."
아네스가 중얼거렸다.
"지금의 건강을 오래 지속할 수 있게, 하늘이여 도우소서...."
18.묘기
피에로가 솔랑주네 집에 마지막으로 놀러 갔던 것은 지난 겨울 어느 목요일이었다. 그 날, 그들은 엄마가 둘 아빠가 하나인 약간 기묘한 소꿉놀이를 했다. 솔랑주와 그녀의 여동생 니콜이 엄마 역을 맡아 아빠인 피에로에게 설거지도 시키고 인형 아기를 보게 하기도 했다. 그동안에 가짜 엄마들은 손톱을 다듬으며 재잘거렸다. 피에로가 솔랑주네 집을 다시 찾은 것은 그 후 여러 달이 지난 뒤였다.
무르익은 봄날이었다. 이젠, 정원에서 놀 수도 있었고, 연장을 넣어두는 헛간을 놀이에 이용할 수도 있었다. 헛간은 애들의 놀이에 따라 가게가 되기도 하고, 학교가 되기도 하고, 궁전이 되기도 했다.
피에로는 이발사인 아버지가 손님들에게 발라주고 버린 로션 빈병을 일년 내내 모아 두었다가, 그 중 일부를 이 날 선물로 가지고 왔다. 여자애들이 작은 병들을 손으로 덜그덕거리며 화단 앞에 쌓은 뒤, 향수가게를 차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역할을 분담했다. 솔랑주가 한련 꽃을 따오면, 피에로는 꽃잎을 가늘게 찢어 눌러서 즙을 내고, 막내 니콜은 노란색의 소형 플라스틱 깔때기를 병에 받치고 즙을 받았다.
즙이 방울방울 흘렀다. 아무리 색깔이 섞이지 않게 주의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보랏빛 액체가 병마다 조금씩 스며들어 자극적인 냄새를 풍겼고, 여자애들이 고집하던 키프로스 향기는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피에로가 제일 먼저 포기하고 말았다.
"어휴, 지긋지긋해."
그가 말했다.
"이래가지고는 평생 가도 향수가게를 열 수 없을 거야."
벌써 어른 티가 나는 열두 살 소년의 단호한 선언에 계집애들은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럼 이제 뭐하고 놀지?"
피에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헛간으로 들어갔다. 여자애들이 저희들끼리 속삭였다.
"무슨 꿍꿍이속
으로 저러는 거야?"
"이리 들어와봐."
피에로가 여자애들을 불렀다.
"문은 닫아야해."
그리고나서,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어디가서 얘기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내가 비밀을 하나 보여 줄게."
"비밀!"
여자애들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재촉했다.
"비밀이란 게 도대체 뭐야?"
"소문내지 않겠다고 맹세해."
여자애들은 맹세의 표시로 땅에 침을 뱉었다.
피에로가 바지를 종아리께까지 내리고 팬티 속에 손을 넣어 만지작거리다가, 엄청나게 크고 불그죽죽한 막대를 꺼내 흔들었다.
"아!"
여자애들이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어때?"
피에로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만지고 싶으면 만져 봐."
여자애들은 감히 나서질 못했다.
"괜찮아, 만져 보라니까. 자, 어서."
피에로가 계속 강요했다.
솔랑주가 다가가서 살덩이에 검지손가락을 얹었다.
손가락에 맥박이 전해졌다. 금방 터질 것같이 부푼 정맥이 뛰고 있었다.
"이번에는 니콜, 네 차례야."
어린애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어떻게 만드는 거야?"
"나만의 비밀이야."
피에로가 자랑스런 트로피를 집어 넣으며 말했다.
"다들 맹세한 거야, 절대로 말하면 안돼."
"얘들아, 어딨니? 이거 맛 좀 봐!"
여자애들의 어머니가 정원 저쪽 끝에서 외쳤다.
애들은 벌건 얼굴로 말없이 걸어나와, 어머니가 나눠주는 빵을 받아 먹었다.
"숙제는 다 했어?"
목요일의 기적이 끝나버렸다. 먼 장래를 위해서는 놀기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피에로, 너도 이젠 집에 가서 공부를 해야지. 다음에 와서 놀도록 해."
대문이 삐걱하는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 순간 여자애들은 잼이 덕지덕지 묻은 손을 씻고 있었다. 마지못해 책상에 앉은 여자애들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연필만 빨았다.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갔는지 동정을 살피고 나서, 솔랑주는 동생에게 말했다.
"아무튼, 피에로는 앞으로 아무 걱정이 없겠어. 생각해 봤어? 그 정도 묘기만 있으면 어떤 서커스단에도 다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미국엔들 못갈까...."
전등의 황금빛 후광을 받고, 나폴레옹 시대의 고풍스런 책상에 앉아있는 모르트맹 드 아네스 여사의 모습에는 아직도 기품이 서려 있었다. 샤넬 상표의 정장과 큼지막한 에머랄드 반지가 그녀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해 준다면, 실크 블라우스 안으로 곧게 뻗은 목선은 육십대로 들어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치지 않는 여사의 건강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서명이 새겨져 있는 연하장을 차곡차곡 포개놓는 지겨운 일을 마친 뒤, 서랍에서 편지지 한 묶음을 꺼내 놓고 명상에 잠겼다. 그녀의 얼굴에 즐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남편은 벌써 잠이 들었을 것이고, 자신은 이제부터 즐거운 일을 시작할 것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로베르...."
펜이 종이 위로 주저 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찬란했던 그날 오후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려요. 나흘 동안이나 당신의 감미로운 손길을 접하지 못하게 된다는 게 못내 안타깝군요. 돌아오는 화요일까지는 당신의 따뜻한 품속에 안길 수 없을 겁니다. 오호 통재라! 사랑하는 당신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했어요. 하찮은 것이지만 사랑의 표시니, 받아 주세요."
그녀는 선반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리본으로 묶은 작은 선물상자들이 붉은 색조의 태피서리 앞에서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순금 페이퍼 나이프가 섬세한 로베르에게는 어울릴 거야.
"사랑하는 이여, 그대는 내가 그대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아시나요? 당신에게 뜨거운 키스를 보냅니다. 화요일, 오후 두시 정각, 지난 번 그 장소에서, 아시겠죠?"
글을 쓴 종이는 접어 밀어 두고, 다시 한 장을 뽑았다.
"사모하는 티에리, 당신 없이 나흘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아직도 그 향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우리들의 마지막 포옹에 대한
기억이 유일한 위안거립니다. 몇 시간 되지 않은 일인데 먼 옛날 추억같이 느껴지는군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떨어져 있다는 것, 그 자체만도 큰 슬픔인가 봐요! 당신의 포근한 가슴이 벌써 그리워지는군요. 화요일까지 또, 어떻게 기다리나요. 당신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답니다. 정말이에요, 하늘에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평소 때처럼, 오후 네시에. 내 사랑, 알겠죠?"
그녀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선물을 골랐다. 선반 위에 쓸쓸하게 팽개쳐져 있던 카르티에 라이터가 선택되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선물도 그는 고맙게 여길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잊을 수 없는 알랭....
세번째 장도 역시 빠르게 채워졌다.
"이 기나긴 연휴를 앞두고 내가 무얼 생각하는지 넌 모를 거야. 맙소사! 오늘 오후에 넌 어쩜 나를 그렇게 녹일 수가 있었어? 그것 덕분에, 지옥같은 나흘의 공백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내 사랑 알랭, 난 너의 사랑을 간절히 원해. 화요일 오후 여섯시에 만나. 그때 같이 나흘간의 악몽같은 공백을 메워보자. 너의 사랑 아네스가 빈손으로 가지는 않을 거야. 무슨 선물인지 한번 알아 맞춰봐.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사랑의 키스."
열쇠고리는 라이터보다 더 우스꽝스런 선물이었다. 하지만 자동차를 포장해서 보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들이 일을 끝내고 집을 나올 때, 알랭이 자기집 현관에서 차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라고 그녀는 자동차 판매 센타에 부탁해 놓았었다. 알랭이 기뻐 어쩔 줄 모를 것이다. 그녀는 생각만 해도 미소가 머금어졌다.
"내 사랑 크리스티앙. 돌아오는 화요일 밤은 우리 둘의 것이야, 기억하고 있지? 그 약속이 없었다면, 지금 난 살맛이 나지 않을거야. 네가 스키장에 가 있는 나흘동안을 난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잔인함을 느끼며 기다려야 할지. 아! 빨리, 이 저주스러운 연휴가 지나가 버렸으면! 하루라도 널 만나지
못하면 난 슬퍼져. 다시 만나면 마음껏 정열을 불태울 수 있을 거야. 그래, 빨리 화요일이 왔으면 좋겠어. 그날, 난 널 미치도록 사랑할 거야...."
문이 열렸다. 그녀는 황급히 편지지를 서랍에 쓸어 담았다.
"당신, 아직 주무시지 않고 계셨군요."
캐시미어 실내복을 입은 모르트맹씨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책을 읽고 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십오분이나 지나 있었소. 당신 방에 불이 켜져 있길래, 밝아오는 새해를 위해 축배나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온거요. 술을 찾아 올테니 기다려요."
그는 잔 두개와 샴페인 병을 들고 왔다. 그들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아네스가 목청을 돋구고 말했다.
"알베르, 당신의 불면이 또 한번 나를 즐겁게 하는군요".
그녀가 잔을 들었다.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노인도 잔을 들고 건배를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여보, 우리 나이에는 무엇보다도 건강을 조심해야 돼요. 그것이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바요."
"아, 좋은 말씀이에요."
아네스가 중얼거렸다.
"지금의 건강을 오래 지속할 수 있게, 하늘이여 도우소서...."
18.묘기
피에로가 솔랑주네 집에 마지막으로 놀러 갔던 것은 지난 겨울 어느 목요일이었다. 그 날, 그들은 엄마가 둘 아빠가 하나인 약간 기묘한 소꿉놀이를 했다. 솔랑주와 그녀의 여동생 니콜이 엄마 역을 맡아 아빠인 피에로에게 설거지도 시키고 인형 아기를 보게 하기도 했다. 그동안에 가짜 엄마들은 손톱을 다듬으며 재잘거렸다. 피에로가 솔랑주네 집을 다시 찾은 것은 그 후 여러 달이 지난 뒤였다.
무르익은 봄날이었다. 이젠, 정원에서 놀 수도 있었고, 연장을 넣어두는 헛간을 놀이에 이용할 수도 있었다. 헛간은 애들의 놀이에 따라 가게가 되기도 하고, 학교가 되기도 하고, 궁전이 되기도 했다.
피에로는 이발사인 아버지가 손님들에게 발라주고 버린 로션 빈병을 일년 내내 모아 두었다가, 그 중 일부를 이 날 선물로 가지고 왔다. 여자애들이 작은 병들을 손으로 덜그덕거리며 화단 앞에 쌓은 뒤, 향수가게를 차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역할을 분담했다. 솔랑주가 한련 꽃을 따오면, 피에로는 꽃잎을 가늘게 찢어 눌러서 즙을 내고, 막내 니콜은 노란색의 소형 플라스틱 깔때기를 병에 받치고 즙을 받았다.
즙이 방울방울 흘렀다. 아무리 색깔이 섞이지 않게 주의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보랏빛 액체가 병마다 조금씩 스며들어 자극적인 냄새를 풍겼고, 여자애들이 고집하던 키프로스 향기는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피에로가 제일 먼저 포기하고 말았다.
"어휴, 지긋지긋해."
그가 말했다.
"이래가지고는 평생 가도 향수가게를 열 수 없을 거야."
벌써 어른 티가 나는 열두 살 소년의 단호한 선언에 계집애들은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럼 이제 뭐하고 놀지?"
피에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헛간으로 들어갔다. 여자애들이 저희들끼리 속삭였다.
"무슨 꿍꿍이속
으로 저러는 거야?"
"이리 들어와봐."
피에로가 여자애들을 불렀다.
"문은 닫아야해."
그리고나서,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어디가서 얘기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내가 비밀을 하나 보여 줄게."
"비밀!"
여자애들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재촉했다.
"비밀이란 게 도대체 뭐야?"
"소문내지 않겠다고 맹세해."
여자애들은 맹세의 표시로 땅에 침을 뱉었다.
피에로가 바지를 종아리께까지 내리고 팬티 속에 손을 넣어 만지작거리다가, 엄청나게 크고 불그죽죽한 막대를 꺼내 흔들었다.
"아!"
여자애들이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어때?"
피에로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만지고 싶으면 만져 봐."
여자애들은 감히 나서질 못했다.
"괜찮아, 만져 보라니까. 자, 어서."
피에로가 계속 강요했다.
솔랑주가 다가가서 살덩이에 검지손가락을 얹었다.
손가락에 맥박이 전해졌다. 금방 터질 것같이 부푼 정맥이 뛰고 있었다.
"이번에는 니콜, 네 차례야."
어린애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어떻게 만드는 거야?"
"나만의 비밀이야."
피에로가 자랑스런 트로피를 집어 넣으며 말했다.
"다들 맹세한 거야, 절대로 말하면 안돼."
"얘들아, 어딨니? 이거 맛 좀 봐!"
여자애들의 어머니가 정원 저쪽 끝에서 외쳤다.
애들은 벌건 얼굴로 말없이 걸어나와, 어머니가 나눠주는 빵을 받아 먹었다.
"숙제는 다 했어?"
목요일의 기적이 끝나버렸다. 먼 장래를 위해서는 놀기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피에로, 너도 이젠 집에 가서 공부를 해야지. 다음에 와서 놀도록 해."
대문이 삐걱하는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 순간 여자애들은 잼이 덕지덕지 묻은 손을 씻고 있었다. 마지못해 책상에 앉은 여자애들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연필만 빨았다.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갔는지 동정을 살피고 나서, 솔랑주는 동생에게 말했다.
"아무튼, 피에로는 앞으로 아무 걱정이 없겠어. 생각해 봤어? 그 정도 묘기만 있으면 어떤 서커스단에도 다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미국엔들 못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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