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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모넬라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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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주일 후. 쟝과 자이레는 <노르망디>호에 승선했다. 유니폼을 차려입은 자이
레는 아름답다 못해 눈부셨다. 검은색 상하의에 검은 스타킹, 그리고 흰 칼라. 쟝은
그녀가 보일때마다 가슴이 뛰는 것을 억누르지 못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뒤쫓아가곤
했지만 그녀는 남에게 들킬까봐 일부러 피해 갔다. 자이레의 일은 탈의실을 청소하고
세탁물을 거두어 세탁하는 일이었다. 그녀 이외에도 같은 일을 하는 사람만 두 사람이
더 있었고 이등실이나 삼등실 직원까지 합하면 열 명이었다. 자이레는 그리 사교적이지
못했다. 다른 여급들은 그녀가 거만해서 말도 않고 함께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저 잘난 체하는 얼굴 좀 봐. 못 봐주겠다니까." "저래뵈도 남자들한테는 또 얼마나
꼬리를 잘 치는데." "맞아. 남자들이 온통 자이레 얘기만 하더라고. 유난히 친한 선원도
한 명 있는 것 같던데." 모두들 자이레를 두고 쑥덕거렸다. 자이레는 그들이 그러든 말
든 상관하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면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었다. 가끔 쟝이 몰래
들려서 초콜릿과 과자를 주고 갔다. 그녀는 처음 3일은 배멀미로 고생을 많이 했다.
도대체 뭘 먹을 수가 없었다. 먹자마자 모두 토해 버렸기 때문이다. 4일째 되는 날부터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쟝이 초콜릿과 과자를 챙겨 주는 것도 그녀가 배멀미로
고생하는 것을 알아서였다. <노르망디>호가 출항한 지 5일째 되는 날 밤, 큰 파티가
열렸다. 선원들과 손님들이 어우러져 온통 축제 분위기에 들떠 마시고 떠들어 댔다.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춤이 시작되었다. 자이레는 음료수를 한잔 가지러 가느라 사람들
을 헤치고 음식이 가득한 테이블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그 앞에서 흰색 옷을
갖춰 입은 남자와 이야기중인 쟝과 맞닥뜨렸다. 쟝이 반겨 맞았다. "이봐, 자이레!"
자이레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음을 잠시 멈추고 머뭇거렸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그를
향해 활짝 웃었다. "안녕." 인사를 하고 난 그녀의 시야에 자기를 마치 삼켜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바로 쟝의 옆에 서 있던
남자였다. 복장으로 보아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인 듯싶었다. 쟝이 천진한 얼굴로 웃으며
그를 자이레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자이레, 내 친구 안드레야. 지금 이 배의 주방장으
로 일하고 있지." 자이레는 빨려들어가 버릴 듯한 남자의 눈빛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쟝이 춤을 신청해 왔다. 얼굴이 빨개진 채 자이레는 엉겁결에 쟝의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안드레가 어느새 정정으로
갈아입고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어이, 쟝. 미모의 아가씨를 혼자서만 차지하지 말고
이쯤에서 내게 넘기지 그래?" 쟝은 사람좋은 얼굴로 자이레를 안드레에게 넘겼다.
안드레는 자이레를 낚아채듯 자기의 품에 바짝 안아들었다. 허리를 감싸쥔 그의 커다란
손. 그녀의이마 위에 닿을 듯 말 듯한 그의 잘생긴 입술. 자이레는 숨이 막혔다. 스텝마
저 제대로 밟을 수가 없었다. 안드레가 자이레를 더욱 당겨안으며 말했다. "마음을 편히
가져요, 자이레." 자이레는 점차로 그의 능숙한 춤솜씨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와 춤을 추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춤이 끝나자 안드레는 그녀에게
술을 권했다. 포도주였는데 상당히 독했다. 은근히 취기가 오른 그녀의 뺨이 불그레해지
는 것을 빤히 바라보던 안드레가 그녀를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그들을 때리고 지나갔다. 안드레는 그녀를 왈칵 껴안으며 키스를 했다. 그의 긴 혀가
그녀의 입 속으로 들어왔다. 안드레의 본능을 깨우는 듯한 강렬한 키스에 그녀는 온몸
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안드레는 그녀를 데리고 주방으로 갔다. 모두들 파티
에 참석해서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안드레는 문을 잠그고 나서 그녀를 난폭하게 잡아
채더니 의자의 손잡이를 잡고 엎드리게 했다. 치마가 말려올라 가고 팬티가 찢겨져
나갔다. 안드레는 그녀의 탐스런 엉덩이가 나타나자 정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바지를 끌어 내렸다. 일어서려고 하는 그녀의 등을 한 손으로 세게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젖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다리를 자신의 다리로 밀어내 한껏
벌리게 했다. 그녀의 몸 속 깊숙히, 그는 난폭하게 파고 들었다. 그녀의 몸은 바람둥이
인 그를 흡족하게 해 줄 만큼 뛰어나게 아름답고 풍만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
히 여자의 몸을 탐닉했다. 여자를 돌려 앉혀 손잡이에 다리를 걸치게 하고 다시 덮쳤다.
그는 그녀의 몸 속에 사정을 하고 나자 기분좋은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반항할
겨를도 없었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와의 관계에서 묘한 괘감을 느꼈다.
쟝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쟝은 그녀를 편안하게 해 주지만 안드레는 그녀의 감성
을 건드려 깨우는 기교와 적극성이 있었다. 안드레는 그녀의 턱을 손으로 들어올리더니
말했다. "아주 훌륭했어. 이제 넌 내게서 벗어날 수 없어. 내일 저녁 11시 쯤이면 아무
도 없을 테니 그때까지 이곳으로 와. 기다리고 있겠어. 명심하라고." 안드레는 횅하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가 나가고 난 뒤 넋을 잃고 의자에 앉아 있던 자이레는 주섬주
섬 옷을 단정하게 고쳐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때 자이레를 찾아다니던 쟝과 마주쳤다.
"자이레, 어디 갔었어? 한참을 찾았어. 아니, 근데 머리가 엉망이군. 무슨 일 있었어?"
당황한 자이레가 쏘아붙였다. "무슨 일은....! 내 일에 제발 상관 좀 마." 자이레는 오던
길로 돌아서서 뛰어가 버렸다. 다음날 자이레는 약속 시간이 가까워 울수록 안절부절
못했다. 쟝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구체적으로 그와 장래를 약속한 적은 없었지만 그들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사이였다. 게다가 그때서야 자신이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
을 알게 되었다. 마음으로는 가서는 안 돼 하고 되뇌었지만 그녀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안드레를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이었다. 11시가 거의 다 되어갈
무렵, 자이레는 혹시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도둑고양이처럼 주방으로
갔다. 안드레는 아직 오지 않았다. 자이레는 초조해져서 두 손을 맞잡고 왔다갔다 했다.
5분쯤 지나자 자이레는 겁이 덜컥 나서 다시 나가려고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선 안드레가 씩 웃었다. "오호,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
군. 좋아, 오늘은 느긋하게 즐겨보자고. 작품도 만들어 가면서 말이야." 안드레는 자이레
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목을 지나 가슴으로 손을 집어 넣어 유두를 잡고 비틀었다.
"악!" 자이레가 낮은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안드레는 의자에 앉더니 가슴을 붙잡고
겁에 질려 서 있는 자이레에게 명령했다. "자, 옷을 벗어. 천천히 벗으라고." 자이레는
로봇처럼 그의 말을 따랐다. 한꺼풀 한꺼풀 옷을 벗어나갔다. "식탁으로 가서 엎드려."
자이레는 시키는 대로 했다. 안드레는 부드럽게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다리를
벌리게 했다. 그런 다음 한 걸음 물러서서 준비해 온 사진기로 그녀의 뒷모습을 찍었다.
그는 다시 그녀에게 주문했다. 식탁 위에 아예 올라가 다리를 구부린 채로 엎드리라고
했다. 그녀가 그렇게 자세를 취하자 그녀의 중요한 곳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안드레는
그곳을 손으로 만지다가 혀 끝으로 간지럽혔다. 그녀는 터져나오는 신음소리를 가까스
로 참아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액채가 흘러내렸다. 안드레는 손가락으로 장난하다가
사진만 찍어 댈 뿐, 그날 저녁은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안드레
는 그녀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더니 옷을 입으라고 했다. 그녀가 옷을 입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그는 터질 듯 흥분되어 있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나가
버렸다. 나가기 전에 한 마디를 했을 뿐이다. "잊지 말라고. 내일도 11시에 이곳으로
와." 다음날도 그녀는 마치 홀린 사람처럼 그곳으로 갔다. 안드레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옷을 벗으라고 했다. 그녀가 알몸이 되자 그는 그녀를 한 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 돌아서서 팔을 쳐들게 한 다음 밧줄로 묶었다. 그러고는 혁대를 풀어 그녀의 세하얀
엉덩이를 힘껏 내려치기 시작했다. "오늘은 새로운 걸 해보자고." 그녀의 엉덩이가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갈 때쯤 그는 때리기를 멈추었다. 아픔 때문에 몸을 뒤틀던 그녀는 어
느새 아픔이 괘감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혀가 그녀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핥
아 주었다. 엉덩이가 꿈틀거리며 그의 혀놀림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녀의 몸이 달아오
를 만큼 달아오르자 그는 그녀의 손을 풀어 주었다. 풀어 주자마자 이번에는 그녀가 먼
저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입술을 삼킬 듯 빨아들였다.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미친
듯 매달렸다. 그가 빙그레 미소지으며 그녀를 안아 든 채로 가슴에 키스했다. 그녀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주방 안이 온통 열기로 가득했다. 쾌락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
다. 그때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두 사람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재빨리 옷을 주워
입는 동안에도 노크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안드레가 문을 열자 쟝이 들어섰다. 설마했던
쟝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쟝은 안드레에게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워낙
덩치가 좋은 안드레라 그것으로는 부족할 듯싶었는지 쟝은 주방의 요리용 칼을 들고
그를 덮치며 찌르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개를 돌리고 있던 자이레가 쟝의 팔을
붙들고 늘어졌다. "안 돼! 쟝, 왜 이러는 거야?" 안드레가 아픈지 찡그리며 턱을 어루만
졌다. "이봐, 쟝!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비켜, 자이레. 이놈을 가만 두지 않겠어. 순진
한 자이레를 유혹하다니!" 자이레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안 돼, 쟝! 내가 이 사람을
유혹한 거라고." 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자이레가 쟝에게 폭탄과도 같은
말을 던졌다. "난 안드레를 사랑하고 있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쟝은 자이레를
한 번 쳐다보고는 팔을 내려뜨리더니 얼어붙은 듯 그대로 서 있었다. 쟝은 원망을 담은
슬픈 눈으로 자이레를 쳐다보며 안드레의 몸에서 떨어져나왔다. 그는 칼을 바닥에 툭
던지더니 곧바로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열린 문으로 바닷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일시에 몰아쳐 들어왔다. 자이레는 그 자리에 선 채 바깥의 어둠을 응시했다. 쟝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겨 주고 말았다. 그는 자이레에게 애정과 희망만을 심어 주었
는데 말이다. 쟝의 애틋한 사랑을 자이레는 알고 있었다. 마음은 그를 향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런 복병에게 그녀의 몸이 온통 휩쓸려가 버려 그에 대한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린
것이다. 안드레가 뚜벅뚜벅 걸어와 자이레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한동안 서 있더니
아무 말도 없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혼자 남겨지자 왈칵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쟝은 다음날부터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하지 않
고 방에 누워 있기만 했다. 자이레가 찾아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쟝은
선원일을 그만두기로 하고 <노르망디>호가 정박하는 바로 다음 항구에서 내려 버렸다.
자이레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한동안 말을 잃었지만 안드레는 마치 사람이 변한 듯
그녀를 위로하고 보살폈다. 자이레는 서서히 회복되어 갔다. 자이레는 그날 밤 쟝에게
들키고 난 후 그 방에는 가지 않았다. 그러나 밤이면 자이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음은 아팠지만 그녀의 몸 속엔 안드레의 손길과 따뜻한 혀의 느낌이 아직껏 살아남아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뒤척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한 자이레는 자위를 해보았다.
생전 처음이었다. 그런 데는 눈도 돌리지 않던 그녀였다. 게다가 스스로도 이성적이고
냉정한 성격이라고 판단했던 그녀가 그 누구보다도 활활 타올랐다. 자이레는 벌떡 일어
났다. 어깨에 숄을 걸치고 주방으로 갔다.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자 안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목소리는 안드레의 목소리임이 분명했고 여자 목소리도 들려
왔다. 순간 자이레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그녀는 그대로 선원들의 침실이 늘어선 통로
로 가서 주방장인 안드레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열려 있었다. 분명 여분의 열쇠를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서랍에 열쇠꾸러미가 있기는 했지만 맞는 열쇠가 있다고 장담
할 수는 없었다. 자이레는 그걸 집어들고 주방으로 다시 달려갔다. 조심스럽게, 소리나
지 않게 열쇠를 하나씩 맞추어 봤다. 드디어 맞는 열쇠를 발견했다. 그녀는 슬며시 열쇠
를 돌려 문을 끄르고는 살짝 열어 틈새로 안을 들여다봤다. 그곳에는 두 명의 벌거벗은
여자와 안드레가 있었다. 한 여자는 식탁 위로 올라가 뒷모습을 보인 채 드러누워 있었
다. 또 다른 여자는 누워 있는 여자의 몸을 어루만지며 선 자세에서 상체를 굽혀 엎드
려 있었다. 안드레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 대고 있었다. 안드레는 사진기를 내려두고 식
탁으로 가까이 갔다. 모로 누운 여자를 반듯하게 눕히고는 다른 한 여자와 그녀의 몸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허리를 뒤틀며 신음했다. 안드레는 누운 채 무릎을 들고
있는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는 그 사이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녀가 스스로 다리를 더
크게 벌렸다. 안드레는 물러나고 다른 여자가 다가가 누운 여자의 음부를 핥기 사작했
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소리가 더욱 자극적이었다. 안드레는 또 사진을
찍으려고 돌아서서 사진기를 들여올리다가 문틈새로 들여다보고 있는 자이레의 눈동자
와 마주쳤다. 안드레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는 들었던 사진기를 다시 놓고 문으
로 다가갔다. 크게 뜬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는 자이레에게 변명을 하여고 입을
막 연 순간 자이레는 들고 있던 열쇠 꾸러미를 힘껏 내던지고 달려가 버렸다. 여자들이
깜짝 놀라 재빨리 옷을 집어 가슴을 가렸다. "무슨 일이죠?" "누가 온 건가요?" 안드레
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무 일도 아냐. 옷이나 입으라고. 오늘은 이정도로 끝내는
것이 좋겠어." 안드레는 의자에 앉아 시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한참을 물고 있다가
불을 붙였다. 깊이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여자들은 안드레의
눈치를 살피며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는 밖으로 나갔다. 안드레는 자이레를 생각했다.
사랑과 일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사진작가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은 아니
지만 언젠가는 스튜디오를 차려 본격적으로 일해 볼 생각이었다. 그는 여자의 몸에서
오묘한 신비감을 느낀다. 정말로 아름다운 여자의 몸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그
의 욕망이다. 그는 자이레를 사랑한다. 그녀는 누구보다 아름답가도 했지만 그녀의 거부
할 수 없는 매력에 안드레는 도통 힘을 쓸 수 없다. 쟝이 자이레를 그토록 사랑한 줄을
모르고 그녀를 사랑해 버린 죄로 요즘 무력감에 빠져 자이레를 찾지 않은 것이다. 쟝이
<노르망디>호를 떠나 버리고 말자 그가 자신의 영원한 꿈을 접을 정도로 자이레를 사
랑했다고 생각하니 처음 그녀를 호기심과 정복욕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대했던 자신
이 부끄러웠다. 사실 처음에는 그동안 그가 접근했던 다른 여자들과 다름없다고 생각했
다. 그러나 그녀만의 매력과 순수함은 다른 여자와의 기억을 모두 지워 버리고 말았다.
안드레는 재떨이에 시거를 비벼 끄고 밖으로 나갔다. 배의 난간을 따라 거닐었다. 밤바
다의 차가운 바람에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 누군가가 서 있었
다. 안드레는 가까이 다가갔다 자이레였다. 안드레가 어둠을 뚫고 자이레의 눈을 들여다
봤다. 아마 이곳에서 울고 있었던 듯싶다. 안드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대
로 서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을까. 자이레가 안드레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사랑의 힘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날부터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날이면 날마다 만났다. 그래도 사람들의 눈이란
무서운 것이여서 얼마 가지 않아 소문이 파다해졌다. 안드레는 자이레에게 청혼했다.
자이레는 아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안드레는 두 사람의 미래를 계획했다.
안드레는 직접 집도 지을 생각이었다. "집은 하얀색으로 칠을 할 거야. 물론 통나무집이
어야 하고, 난 나무를 좋아하거든. 그리고 정원은 꼭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너무 삭
막하고 답답해." 안드레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하자 자이레가 조용히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저 사실은 임신을 했어요." 안드레는 너무 놀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세
상에. 정말이야? 내가 아빠가 된다고?" 자이레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레
는 자이레를 안아서 번쩍 들더니 몇 바퀴를 돌았다. 자이레가 내려 달라고 사정했다.
"아, 안드레 내려 줘요. 어지러워요." 안드레는 그래도 내려 주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결
국은 선원들에게 들켜 얼른 내려놓았다. <노르망디>호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결혼을
기뻐했다. 축복할 일이었다. 다만 안드레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여자들만이 질투에 싸여
욕하고 코웃음쳤다. "안드레가 결혼한대. 자이레하고 말이야." "호호, 누가 안드레 같은
바람둥이를 견디기나 하겠어? 잘해 줘도 함께 살까말까인데...." 안드레는 임신한 자이레
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다. 이제 세 사람이 살 보금자리만 마련하면 된다. 두 사람은 되도
록이면 빨리 꿈을 실현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안드레는 배가 서는 항구에서마다
값비싸고 희귀한 물건들을 사 가지고 왔다. 물론 자이레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점차
자이레도 안드레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거라고 믿게 되었다. 여자관계나 그의 미
심적인 행동도 사랑하는 마음만 굳게 지키고 있으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항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 날. 안드레와 자이레는 먼저 자이레의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허락을 받고 식은 생략하기로 했다. 신고만 해도 충분했다. 자이레는 집에 들려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쟝의 집과 그가 다니던 가게를 가 보았으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 길로 그녀는 안드레와 함께 고향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결혼하고 난 후 자이레의 아버지는 몇 번 그녀를 찾아왔다. 돈을 뜯어가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막상 안드레와 부딪치면 꼼짝도 못했다. 아버지는 그때쯤에는 거의 페인이
되다시피 했다. "자이레! 자이레!" 아버지가 현관에서 부르는 소리에 자이레는 부엌에서
하던 요리를 멈추고 거실로 나갔다. 아버지가 지팡이를 짚은 채 현관에 서 있었다. "아버
지. 들엉오세요." "들어갈 던 없고.... 내가 오늘 병원을 가야 하는데 말이야." "우선 들어
오세요." "됐다. 병원 갈 비용이나 좀 다오." "저번에도 약값이라고 가져가신 돈, 술값으
로 다 날리셨잖아요." "누가 그래! 난 약 사다가 내내 먹었는데. 상태도 많이 좋아졌지
않느냐?" 하지마 자이레의 눈에 아버지는 전혀 좋아져 보이지 않았다. 눈은 이미 초점을
잃었고 제대로 버티고 서 있는 것도 10분을 넘기기 어려울 만큼 기력이 없었다. 자이레
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그렇게 아버지 앞에 서 있었다. 자이레가 돈을 빨리 가져오지
않자 아버지가 자이레에게 지팡이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병원 간다는데 돈을 안 줘?
길러 준 은혜를 이 따위로 갚는거냐?" 자이레가 아버지의 지팡이를 피해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아버지, 이러시면 어떡해요?" 그때 안드레가 이층에서 내려왔다. "왜 이리 소란
스러워? 무슨 일 있어?" "아, 아녜요. 아버지 오셨어요." "아, 오셨습니까? 들어오셔서
식사나 좀 하고 가세요." "됐어, 밥 먹으러 온 게 아냐." 안드레는 화가 난 아버지의 얼
굴을 바라보왔다. "앞으로 돈을 요구하실 거면 어디에 쓰셨는지 영수증을 꼭 가져 오세
요. 그럼 아무 말 않고 돈을 드리겠습니다." "무슨 놈의 영수증! 누가 영수증을 줘! 안
주니까 그렇지!" "안 주면 달라고 하십시오. 아니면 저를 데려가 확인시켜 주시든지요."
"에잉!" 아버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자 더욱 화가 나서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며 밖
으로 나가 버렸다. 자이레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아버지의 횡포에 마음이 심란했다.
안드레는 자이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무 걱정 마. 돈을 드려 봤자 가서 술이나 드
실 것 아냐?" 자이레는 돈은 말고 식품이나 생활용품을 사서 아머니에게 종종 갖다 드렸
다. 어머니도 아버지의 등쌀에 보통 늙은 게 아니었다. 자이레가 찾아가자 청소를 하고
있던 어머니가 그녀를 반겨 주었다. 그래봤자 아버지의 술값을 대느라 집도 팔아 버려
단칸짜리 허물어져 가는 판자집이라 청소할 것도 없었다. 세간도 다 부수거나 팔아 버려
냄비 몇 개만 덩그러니 남았을 뿐이다. 자이레는 어머니가 가여웠다. 어머니만이라도 편
하게 자이레가 자기 집으로 모셔가려 해도 어머니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고생시킨 것도 미안한데 더 이상 네게 짐을 지우기는 싫다." "짐은 무슨, 이게 사람 사는
거예요?" "내 운명이러니 생각하면 마음 편해." 자이레는 눈물이 글썽해져서 어머니
손을 꼭 잡아 주다가 돌아갔다. 그런데 다음날 옆집 아이의 기별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원인은 심장마비였다. 자이레는 슬프기보다 어머니의 고생이 끝났
다는 생각으로 차라리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장례식을 조촐하게 치르고 나자 어머니는
자이레에게 혼자 살고 있는 동생에게 갈 거라고 했다. 자이레에게는 이모가 한 분 계셨
는데 결혼은 여러 번 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서 모두 이혼하고 혼자서 살았다. 혼자 산
지 벌써 10년쯤 되었다. 아들을 둘 두었지만 왕래가 거의 없다. 이모의 괴팍한 성미 때문
이었다. 그런 이모와 살겠다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번에도 완강했다. 기여
코 짐을 싸서 떠나 버리고 말았다. "걱정 마라. 내 너한테는 꼭꼭 안부를 전하마." 어머
니는 자신을 안쓰러워하는 딸을 위로했다. 자이레는 그동안 모아 두었던 돈을 어머니에
게 드렸다. 기차 안에서 읽어보라고 하면서 편지와 돈을 넣은 봉투를 드렸다. 그렇게
해서 자이레는 아버지의 횡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안드레는 자이레를 사랑하는 것은 확실했지만 그렇다고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구실 아래
평소 즐기는 여자의 누드 찍기와 바람기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자이레는 그를
사랑했다. 마치 마약과도 같은 그와의 사랑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자이레는 그후 19년
동안 로라가 그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로라가 성장해
갈수록 자이레가 평소 우려했던 바가 이제서야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자이레는 배신감
을 넘어서 실망했다.

12
자이레는 초점 잃은 눈으로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안드레가 그녀의 등을 부드럽
게 쓰다듬으며 단어 하나 하나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난 당신밖에 없어." 자이레는 고개
를 돌려 버렸다. "돼지 같은 인간..." "아니 그렇지 않아." 안드레는 그의 팔을 뿌리치는
자이레를 힘껏 끌어안았다. "날 모르겠어? 당신을 사랑해." "당신은 그 애를 원하고 있어
요." 안드레는 자이레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그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냐
잘 알잖아." 자이레는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허우적거렸다. 안드레는 놓치지 않을려
고 손에 힘을 주며 그녀에게 다시금 속삭였다. "아니라구, 당신만큼 날 흥분시킨 여잔
없었어." 안드레는 그녀의 성감대를 골라가며 건드리고 애무했다. "당신은 끝내주는 여자
야." "아니에요. 난 이미 당신의 진실을 봤어요." 안드레가 자이레의 검은 머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지 않아. 난 당신뿐이야." 안드레는 그녀의 가운을 벗기고 브래지어와
팬티도 벗겨서 던져버렸다. 그리고 항상 그녀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방법으로 그녀를
정복해 갔다. "당신만큼 사랑하는 여자는 없어." 자이레는 이미 몸이 나른해짐을 느끼며
말했다. "돼지....." 안드레가 그녀의 입을 입술로 막아 버렸다. 그리고 밀어 내는 그녀의
손을 잡아 누르며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갔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점점 더 가빠졌다.
로라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계단이 끝나는 곳의 구석에 앉아있었다. 무릎을 두 팔로
꼭 껴안고 한시간 이상를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러고 있었다. 로라는 천천히 일어나
안드레의 스튜디오로 갔다. 잠겨 있기가 일쑤였던 그곳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로라는
불을 켜고 영사기 옆으로 갔다. 거기엔 커다란 서랍장이 있었고 안에는 그동안 만들었던
사진첩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로라는 의자 위에 두 다리를 올리고 앉아서 그것들을
하나하나 흝어보며 자이레의 사진을 전부 따로 모았다. 자이레의 젊었을 적 모습처럼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화된 몸매와 얼굴이 담겨 있었다. 거기엔 아마도 <노르망디>호에
서 찍었던 듯 한, 유니폼을 입은 어머니의 청초하면서도 동시에 도발적인 눈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듯한 모습의 사진도 잘 챙겨져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현재의 로라의
모습과도 매우 흡사했다. 로라는 영사기를 작동시켰다. 안드레가 거쳐 왔던 수많은 여인
들의 쾌락에 떠는 표정들이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 있었다. 어떤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고 둥글고 커다란 엉덩이와 터질 듯 커다란 가슴, 그리고 벌려진
다리 사이로 보이는 은밀한 곳만 찍혀져 있었다. 페페가 그려 준 듯한 바디 페인팅을 한
여자들도 많았다. 어깨, 가슴, 엉덩이, 허벅지에 뱀처럼 살아 꿈틀거릴 듯한 그림, 꽃이
막 피어난 듯한 화사한 그림, 악마가 그려진 듯한 어둡고 무서운 그림등 가지가지였다.
로라는 그 중에서 자이레가 들어 있는 필름은 모조리 뽑아서 못쓰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따로 빼 놓은 사진을 가지고 성냥을 챙겨서 살금살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두 사람은 방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이레의 옷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로라는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현관 문을 나왔다. 집 안에서는 보이지 않을 만한
정원 한 구석에 앉았다. 하늘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화창할 것 같았다. 로라는 그대로
잔디 위에 쭈그리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일들을 그녀가 멋대로 휘저어 놓아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 얽히고 설킨 일들을 그녀의 힘으로 어떻게 풀어 나갈까. 그녀는
다시 일어났다. 지난밤의 비로 잔디가 여전히 촉촉했다. 사진을 쏫아 놓고 불을 붙였다.
사진이 불타 올랐다. 어머니의 얼굴들이 찌그러지고 검어지더니 이내 재로 변했다. 어머
니의 과거도 재로 변했다. 이제 현재만 남았으니 열심히 미래를 만들어 가면 되리라.
로라는 불이 완전히 사그라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를 말끔히 치운 다음 방으로 들어갔
다.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벌써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미치 몇 년이란 세월
이 흘러간 듯이 느껴졌다. 로라는 금새 잠이 들었다. 모든 일은 자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안드레가 미친 듯이 소리질렀다. 로라는 자기 방의 한 쪽 구석에 앉아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자이레, 자이레! 이걸 보라구!" "도데체 누가 이런 거야!" 사냥
을 끝내고 페페의 집에서 저녁까지 들고 온 안드레는 스튜디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안드레는 자이레를 진정시키느라 약속했던 페페와의 사냥에 많이 늦었다. 페페도 아픈
아내를 간호하고 오느라 좀 늦었다. 두 사람은 늦게 출발하였고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했다. 안드레가 페페에게 새벽에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느라 정신을 집중하지 못한 까
닭이었다. 안드레는 짐승들을 보아도 쏘아 죽일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풀밭을 돌아다
니다가 큰나무 아래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거나 했다. 사녕꾼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페페는 점심 시간이 되어 안드레를 찾아와 옆에 앉았다. "이봐, 점심은 어디서 할까?"
"음, 저 산비탈 중턱에 별장이 하나 있잖나, 그리로 가세." "나도 오늘은 별로 신통치가
않군." 페페는 자기가 잡은 산토끼 한 마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안드레와 페페는 사냥
꾼들을 위해 지어져 있는 간이 별장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산장 내부에는 간단하게
식탁과 의자 네 개, 간이용 침대, 페치카 정도밖에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왔다
간 지 오래되었는지 퀴퀴한 냄새가 나고 먼지가 쌓여 있었다. 창문을 열고 식탁과 의자
만 먼지를 털고 난 후 거기에 앉았다. 준비해 간 빵에 버터와 잼을 발라 먹고 커피도
끓여 마셨다. 페페가 커피를 마시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실은 애를 한 명 입양하려고
해." 안드레가 깜짝 놀랐다. "이제까지 싫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그런데 아내가
요즘 시름시름 아파서 말일세. 뭔가 정붙일 데가 있으면 그래도 괜찮지 않겠나 싶어서."
"그럼, 그럼, 잘했어." "어제 입양기관에 갔다 왔어." "음. 그랬었군." "수속은 마치고
왔으니 3일 후에 아기를 데려오면 돼. 아들인데 태어난 지 일주일도 채 안 되었어. 아,
정말 천사처럼 예쁘더라구. 마리아도 굉장히 기뻐했어. 돌아가는 길에 아기용품을 좀
골랐지. 중요한 것은 벌써 한달 전에 사 놓았었어. 아기를 입양시킬 생각을하고 나서는
바로 사들었지." 안드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페페가 어두운 얼굴로 안드레에게 물었다.
"그런데 자넨 자이레와 괜찮겠나?" 안드레가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겠지. 사실 로라와
별다른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구 말야." "내가 보기에도 좀 위험스럽긴 했지." 안드레가
허허허 하고 웃었다. "이 사람,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무서워서 같이 일하며
살 수 있겠어?" "자네 속이 투명한 건 아니라서 다 보이지는 않으니 걱정 마!" 안드레가
또 너털웃음을 웃었다. 점심이 끝나자 안드레가 또 다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기만 했
고 페페만 몇 번 총을 쏠 기회를 맞았다. 돌아오는 길에 안드레는 페페의 집에 들렀다.
마리아가 그를 반겨 주었다. "그렇잖아도 기다리던 참이에요. 사냥이 끝나면 분명 우리집
에 들르실 줄 알았어요." "아, 이거 날 기다려 주는 분이 다 있었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
군요." 마리아가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던지 실내에는 온통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거실에는 페페의 그림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페페는 지금도 그림 그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조만간에 또 개인전을 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세 사람은 식탁에 둘러앉
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저녁을 들기 시작했다. 안드레가 마리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수프 맛이 기가 막히군요." " 입에 맞다니 다행이에요." "이제 이 자리에 곧 한 사람이
더 앉아 이야기를 나눌 날도 멀지 않았군요." 마리아가 활짝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아기를 데리고 올 날이 기다려져요." 안드레가 마리아의 손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잘하셨어요. 혼자서 항상 적적했잖아요." 마리아가 빙그레 웃었다. 식사 후엔 거실에
앉아 안드레와 페페가 채스를 두었고 마리아도 페페 옆에 앉아 거들었다. "아, 이거 두
사람이 공격해 오면 나보고 어쩌란 말이지?" 마리아가 웃으며 일어나 과일을 깎아서
내왔다. 안드레는 술도 한잔 걸치느라 한밤중이 되어서야 그 집을 나왔다. 안드레는 집에
도착해서 총만 대충 손질해서 두고 곧장 스튜디오로 갔다. 그러나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안드레는 스튜디오 안을 휘 둘러봤다. 별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하고 풀썩 의자
에 앉았다. 등을 뒤로 기대고 앉아 눈을 감았다. 갑자기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안드레는
일어나 사진첩과 필름이 없어졌다. "이건 말도 안 돼! 이런 일이!" 안드레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여기저기 뒤지고 다녔다. 그녀의 사진들만 일부러 따로 챙겨 두었던 적은 없었다.
따로따로 사진첩을 만들어 한 자리에 놓았을 뿐이었다. 안드레는 그 자리에서 미친 듯이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문을 박차고 나와 자이레를 부른 것이다. "도대
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구!" 자이레는 파랗게 질려 한 마디도 못하고 있었다. 안드레는
그제서야 누가 한 일인지 짐작이 갔다. 로라의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구석에 앉아 있
던 로라가 고개를 쳐들었다. 방에 불을 켜 놓지 않아 어두웠다. 안드레가 불을 켰다. 안
드레와 로라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안드레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더니 가서 로라의 멱살을 움켜쥐고 일으켜 세웠다. 자이레는 겁을 먹은 채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로라는 태연한 얼굴로 안드레를 쳐다봤다. "도대체, 도대체 왜 그런 거
지?" "그런 건 없애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네가 그걸 왜!" "저밖에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잖아요?" 안드레는 로라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로라는 그대로 방바닥에
쓰러졌다. 자이레는 비명을 지르며 로라에게 달려가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했다. 안드레는
자이레를 잡아 옆으로 밀어 버린 다음 다시 로라를 붙잡아 일으켰다. 로라의 입에서 피
가 흐르고 있었다. 안드레는 로라를 붙잡은 채 화가 나서 더 이상 말은 못 하고 주먹을
쥐어서 한 대 더 치려다가 그대로 방바닥에 그녀를 내팽개쳐 버렸다. 안드레는 절망적이
었다.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데.... 안드레는 차분한 목소리로 쓰러져 있는 로라에게 말
했다. 너무 차분한 목소리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네가 그것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았으면 적어도 이러진 않았을 텐데." 로라는 앉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드레는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자이레도 로라를 묵묵히 쳐다보더니 뭔가
말을 할 듯하다가 그대로 나가 버렸다. 로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 많은 눈
물이 어디에 고여 있었는지 한없이 흘러내렸다.
로라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벌써 오늘이 3일째이다. 자이레가 먹을
걸 갖다 주었는데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자이레는 걱정이 되어 어쩔 줄을 몰랐지만 안
드레는 입만 굳게 다물고 있을 뿐 상관도 하지 않았다. 자이레는 안절부절 못하고 거실
에서 서성거리더니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녀는 페페와 마리아, 그리고
아기와 함께 집으로 들어섰다. 마리아는 평온하고 행복한 얼굴이었다. 아기를 꼭 안고
있었다. 자이레에게서 이야기를 다 들었던 듯 아기를 자이레에게 맡기고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로라의 방 문을 열었다. 로라는 구석에 앉아 무릎을 올리고 그 위에 머리를
얹고 있었다. 마리아는 그 옆에 가 앉았다. "로라, 우리 오늘 아기를 입양했단다. 아기가
천사처럼 예뻐." 로라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로라, 무슨 일인지 이야기 들었어. 아빠,
엄마도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데 네 기준에 맞추어 다시 고쳐 살 수는 없는 거
아니겠니?" 로라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로라, 너 그거 아니. 너희 엄만
자라면서 한 번도 아버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단다. 아버지가 지독한 술주정뱅이에
폭행까지 일삼아서 언제쯤이면 아버지를 보지 않을 수 있을까만 생각했대. 그에 비하면
넌 얼마나 행복하니. 다른 건 생각말고 네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해." 마리아는
로라의 손을 꼬옥 쥐었다가 놓아 주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서는 페페와
안드레가 신기한 듯 아기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자이레는 불안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이
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리아가 내려오자 자이레가 가서 물었다. "뭐라고 좀 해요?"
마리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뭔가 심정에 변화가 온
것 같긴 했어요." 모두들 아기의 머리맡에 둘러앉았다. 마리아가 명랑한 목소리로 사람들
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아기 너무 잘생겼죠?" 그러자 안드레가 말했다. "그거야 아버
지를 닮아 그렇죠."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웃음이 잦아들고 조용해지자 로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아빠를 닮아 예뻐요." 로라가 언제 왔는지 계단 옆에 서 있었다. 안드레
가 로라를 돌아보도니 손을 뻗었다. 로라는 그 손을 잡았다. 안드레가 그녀를 잡아당겨
꼭 껴안아 주었다. 로라는 곧 활기를 되찾았다. 예전의 그 당돌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13
타마소는 기분이 무척이나 저조했다. 온통 로라 생각뿐이었다. 윌마를 찾아갔던 것도 후
회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로라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타마소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수학 문제를 앞에 놓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때 재빵사 베르도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타마소의 귀를 거슬리게 했다. 베르도는 여느때처럼 위에는 긴 소매를, 허리에는 앞치마,
아래는 반바지를 입고 발로 장단을 맞춰 가며 콧노래를 해댔다. 그가 원래 눈치가 무딘
사람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잘해 주던 타마소가 갈수록 자기를 무시하고 함부로 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물론 로라와의 연애가 쉽게 풀리지 않아 그러는 줄 알고는 있었지만
심술이 났다. 가능하다면 자기도 로라처럼 예쁜 여자를 사귀고 싶었다. 그래서 잘난 척하
는 타마소 녀석의 기를 팍 꺾어 주고 싶었다. 타마소 쪽을 슬금슬금 쳐다보면서 좀더 큰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타마소는 베르도를 노려보았다. "조용히 해, 멍청아." 베르도
는 정말 멍청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왜 그래? 노래 싫어?" 타마소가 고개를 돌렸
다. "너도 싫어. 뭘 봐!" 베르도는 아무래도 타마소가 자신에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딴 때 같으면 벌써 빵이 다 되어 나올 시간인데 타마소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로라 생각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베르도는 타마소에게 물었다.
"빵 아직 안 됐어?" "보면 몰라?" "이상하네. 시간이 됐는데...." 타마소가 베르도를 구박
하듯 다그쳤다. "네가 뭘 안다고 설교야?" 베르도가 참다 못해 소리를 질렀다. "로라와
잘 안 된다고 나한테 화풀이야?" "로라 얘길 꺼내면 가만 두지 않겠어." "알았어. 조용히
할게." 베르도는 얌전히 있겠다는 대답을 하고 나서 갑자기 돌아서더니 밀가루를 두 손
으로 퍼올려 타마소의 얼굴에 들이부었다. 울컥 화가 치밀어오른 타마소가 달아나는
베르도를 잡기 위해 뛰어갔다. 타마소가 막 베르도의 멱살을 나꿔챈 순간 베르도가 오븐
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것 봐. 빵이 타고 있어." "뭐?" 타마소와 베르도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잽싸게 오븐을 향해 달려갔다. 빵은 이미 새까맣게 타 있었다. 온전한 빵은 한
개도 없었다.
타마소가 심란한 마음에 짜증을 내고 있을 즈음, 로라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강에서
수영을 하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의 광장을 지났다. 여전히 짧은 치마를 입은 로
라는 속력을 내어 달려갔고 치마가 바람에 날려 위로 들어올려지고 엉덩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경탄의 눈길로, 여자들은 비난과 질투의 눈길
로 그녀를 보며 한 마디씩 했다. "저 탱탱한 젊음을 좀 보라구." "죽여주는구먼." "저
몸매에, 미모에, 여러 사내 울릴 거야." "저 애 좀 보세요. 행실이 저래가지고서야...."
"얌전하게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자이레와 안드레 밑에서 컸으니 오죽
하겠수." 로라는 마을 사람들이 뭐라 하든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달렸다. 정신
이 맑아지며 무겁고 어두웠던 기억들이 떨쳐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로라는 약간 경사진
길 아래로 신부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길가에 들꽃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로라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자전거를 탄 채로 신부들의 사이를 헤집
고 바람같이 달렸다. 신부들을 지나자마자 두 팔과 두 다리를 양 옆으로 번쩍 들어올렸
다. 그와 동시에 신부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로라는 장난기어린 눈으로 신부들을 돌아다
봤다. 신부들은 로라의 통통 튈 듯한 매력에 그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신부들은 잠깐
자신들의 위치를 망각하고 로라의 뒷모습을 열심히 눈으로 좇았다. 그녀가 강 쪽으로
사라져 버리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그들은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풀이 무성한 강가에
도착하자 로라는 거침없이 옷을 벗어던졌다. 푸르고 잔잔한 물결이 로라를 끌어들였다.
차가운 강물이 온몸을 간지럽혔다. 로라의 아름다운 몸매가 강 속을 가르지르며 아래로
아래로 향했다. 한참을 잠수하고 있는 로라의 눈앞에 타마소가 나타났다. 그는 로라가
입을 바로 그 신부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는 한없이 선량한 웃음을 지으며 로라에게 점
점 가까이 다가왔다. 로라도 함박웃음을 머금고 그에게 헤엄쳐 갔다. 그리운 얼굴이었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 소중한 줄을 몰랐던, 너무나 잘해 주어 투정만 부렸던 그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그의 사랑을 흔들어 보고자, 그의 사랑 밖으로 뛰쳐나오고자 했었는데
이렇게 되돌아가고 있더니.....
로라가 그가 내미는 손을 붙잡자 그의 모습은 물거품과 함께 부서져 사라지고 말았다.
로라는 숨이 가빠 위로 솟구쳐올랐다. 어쩜 그리도 선명하게 그의 얼굴이 보였을까. 로라
는 한숨처럼 그의 이름을 불렀다. "타마소.....!" 벌써 며칠째 되었다. 그를 보지 못한 지가
그는 지금쯤 거의 감당 못할 정도로 화가 나서 그녀가 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자기
를 그런 식으로 버리듯 떠나가 버린 그녀를 찾아가기는 자존심상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못내 안타까웠다. 로라는 강가로 걸어나와 옷을 입었다.
제과점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룰빵을 태우는 사건이 벌어져 롤빵을 찾는 손님들에게 계속
사과의 말을 해야만 했다. 토니가 손님들에게 굽신거리며 변명을 했다. "롤빵은 손이 많
이 가서 좀 늦어요." 손님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토니를 보며 물었다. "왜죠?"
"아, 그게 오븐 때문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넬라가 못마땅한 얼굴로 토니의 말을
잘랐다. "일꾼들이 게을러서요." 그건 순전히 타마소가 로라에게 정신을 빼앗겨 예전에
하지 않던 일만 해서 그렇다. 그렇게 사이가 좋던 베르도와 걸핏하면 싸우지를 않나, 빵
만드는 일에서는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던 그가 빵을 태우기까지 했으니 타마소가
정신을 빼앗겨도 보통 빼앗긴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토니는 아들을 감싸고 돌았다. "그
렇지 않아, 노력하고 있다고." 넬라는 뾰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로라의 그 못 말리는
바람기 때문에 정신이 나간 거죠. 뭐." "타마소도 이젠 면역이 되었겠지." "안드레의
바람둥이 기질을 그대로 이어받아선 안 되는데." "그래도 사돈이 될 사람을 그렇게
말하면 되겠소?" 넬라가 코웃음을 쳤다. "그 사람들과? 안드레에게 물든 로라 같은 애와
내 아들을 결혼시킬 수 없어요. 절대로!" 손님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녀도 마을일에는
훤하게 꿰고 있는 사람이었다. "맞아요.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그때 로라가 가게로
들어섰다. 환한 그녀의 얼굴에서 햇살이 느껴졌고 몸에서는 강바람 내음이 물씬했다.
"안녕하세요?" 넬라는 로라가 들어서자마자 얼굴을 찡그렸다가 로라가 천진한 얼굴로
활짝 웃으며 인사하자 무안해서 얼굴을 돌려 버렸다. 토니는 로라를 반기며 물었다. "안
녕, 빵 사려고?" 로라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타마소 만나려고요." 토니가 그 말에
깜짝 놀라 넬라의 눈치를 보며 로라에게 눈짓을 했다. 아니나다를까 넬라가 날타롭게
소리쳤다. "타마소를 만날 생각은 마라! 그냥 돌아가거라!" 토니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넬라를 쳐다보는 로라에게 달래듯 말했다. "지금은
굉장히 바쁘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구나." 로라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코를 킁킁거리며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하, 빵을 태웠군요?" 로라는 거침없
이 주방 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넬라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로라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저렇다니까." 로라가 주방문을 열며 인사했다. "안녕, 빵을 태웠어?" 타마소는 내심
반기면서도 무뚝뚝하게 말했다. "큰소리 치면서 가 버리더니 여긴 웬일이야?" 베르도가
로라를 응큼한 눈길로 자꾸만 흘낏거렸다. 아마도 지난번에 타마소와 로라가 창고에서
껴안고 있던 일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로라는 타마소를 기죽이기 위해 일부로 소리를
높였다. "정말 앞뒤가 꽉 막혔다니까! 그 술집 손님들을 괜히 의심하고, 또 그 차에 네가
타라고 했잖아!" 타마소가 어이가 없는 듯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내가? 내가 그 차에 타라고 했다고?" 로라는 흥분한 타마소를 본 척도 않고 자기 할
말을 했다. " 넌 병적으로 질투하고 있어. 그 차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타마소가 갑자기 긴장이 되는 듯 말을 더듬었다. "그래. 말해 봐!" 로라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가엾은 타마소...." 타마소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잔소리 말고 어서 말해
봐!" 로라가 고개를 숙였다. "당했어." 타마소가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한 듯 되물었다.
"당해?" 잠깐 동안 멍하니 있던 타마소가 정신이 들자 로라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한
마디만 더하면 가만 있지 않겠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타마소는 베르도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는 움켜쥔 그녀의 팔을 억지로 잡아끌며 창고로 갔다. 로라의 손을 잡은
채 창고문을 벌컥 열어제쳤다. 안으로 들어가 밀가루 푸대위로 로라를 내팽개쳐 버렸다.
로라는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그게 사실이라면 뼈도 못 추릴 줄 알아!" 타마소가
짐승처럼 날뛰며 화를 낼수록 로라는 신이 나서 거짓말을 꾸며 냈다. "네가 날 버렸잖아.
"무슨 말이야?" "네가 나를 놔두고 가 버린 후에 그 남자가 날 으슥한 뒷골목으로 데려
갔어. 난 차에 마치 거위처럼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는데 그가 나를 더듬더니 내 위로
올라와 덮쳤다고. 그 남자 힘이 얼마나 센지 내가 도대체 움직일 수조차 없었어. 할 수
없이 난 고함만 질러 댔어. 계속 널 불렀지만 넌 대답이 없었지. 하기야 날 버린 사람이
대답이나 하겠어? 난 버림받은 거라고!" 타마소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서...?" 로라가
침울한 얼굴로 타마소를 흘낀 쳐다보며 띄엄띄엄 말했다. 그동안 타마소의 얼굴은 붉으
락푸르락해지며 분노를 참지 못해 당장이라도 로라를 한 방 갈길 것만 같았다. "난 순결
을 지키려 저항했지만, 그랬지만, 그는, 그는 욕망을 억제 못하고..." 로라는 타마소의
표정을 슬금슬금 살폈다. 타마소는 답답해서 소리질렀다. "그래서, 놈이 어쨌냐고!" "날,
날 겁탈했어. 난 순결을 잃었어. 다 네 잘못이야." "거짓말, 거짓말이지? 난 널 알아."
로라가 치마를 올리고 다리도 쫙 벌리고 앉았다. 타마소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녀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타마소를 올려다봤다. "정말이야. 못 믿겠으면 봐."
타마소가 말도 안 된다는 듯 그대로 우뚝 서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고 있었다.
"뭐? 뭘 보라고? 뭘 보라는 거야! 이 창녀 같으니!" 드디어 타마소는 분노를 폭발시키며
로라를 덮쳤다. 난폭하게 그녀의 팬티를 찢어 던져 버리고 그녀를 잡아당겼다. 그녀도
적극적으로 그에게 몸을 밀착시켜 왔다. 타마소가 온힘을 타해 그녀를 공격했다. 손을
뻣어 블라우스 속의 가슴을 난폭하게 움켜잡았다. 그녀의 몸 속은 부드럽고, 끈적하고
그리고 따뜻했다. 그는 마음껏 그녀를 느꼈다. 이제껏 참았던 정욕이 폭발했다. 로라는
타마소가 어찌나 세게 밀어붙이는지 자꾸만 위로 밀려 올라갔다. 로라는 처음 경험하는
황홀한 느낌에 온몸의 감각이 열리는 것 같았다. 로라는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아올리고
흥분을 참지 못해 낮은 비명소리를 냈다. 그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의 성난 모습에
그녀는 더 자극을 받아 미친 듯이 그에게 매달렸다. 그녀는 그에게 더 깊이. 더욱 강하게
들어오기를 요구했다. 갑자기 의식이 희미해졌다. 강한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자 그
녀는 팔을 늘어뜨리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절정의 순간이 그녀를 꼼짝 못하게
한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환희로 물들어 갔다. 그는 입을 다물지 않고 계속해
서 로라를 비난했다. "이 창녀...." "이 헤픈 계집!" 로라가 제정신을 못 차리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말했다. "그래, 날 마음대로 가지라고..." 한참 동안 로라의 몸을
공결하던 타마소가 흠칫했다. 뭔가가 이상해서 몸을 일으키고서 로라의 사타구니를 보더
니 깜짝 놀랐다. 선홍빛 피가 여기저기 묻어 있었고 아직도 그곳에 흥건했다. 타마소가
당황하여 로라를 쳐다봤다. "너, 거짓말 했구나. 왜 그랬어?" 로라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만족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너한테 용기를 주려고 그런 거야. 타월 좀 줘. 피를 닦아야
겠어." 타마소는 로라에게는 못 당해 내겠다는 듯 웃어 버리고 말았다. 결국 그녀의 고집
대로 그는 그녀를 가지고 말았다. 타마소가 흰색 천을 벽 선반에서 꺼내 주었다. "자,
닦아. 반죽 싸는 천이라 깨끗해." 로라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사타구니와 바닥을 닦아
냈다.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아." 타마소도 은근히 자랑스러운 듯 로라의 볼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 "자 서둘러서 드레스를 찾아다 놔야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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