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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쫑아-10


제 목 : 9월의 두가지 참을 수 없는 놀라움.. 2 <제71회>

쫑아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갈게."
"그래."

H는 고작 <<그래>> 라는 아주 짤막한 한마디밖에, 열렬히 사랑
했던 쫑아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사랑의 끝이었다. 눈물도, 격렬한
다툼도, 애원도, 그어떠한 강렬한 슬픔도, 둘사이에는 아무것도 없
었다. 여름이 지나면 당연히 겨울이 오듯, 그저 담담한 심정이었다.

H는 다빈치 레스토랑을 나가는 쫑아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딘가
허전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는 자기곁에 영원히 그녀를 붙잡아 두
고싶은 가느다란 아쉬움과 눈물이라도 펑펑 그녀가 쏟아내길 바라
는 바램이 뒤섞인 그런 허전한 기분, 그것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터지긴 했지만, 어차피 일어날 일이니 잘됐어.>

이제 H는 가슴 저편에서 짓누르던 죄책감을 탈피할수 있다는, 다
시는 쫑아를 속일 필요가 없어졌다는 개운함에, 경희를 거리낌없이
만날 수 있다는 행복한 자유로 기쁨은 가득했다.
갑자기 레스토랑을 나갔던 쫑아가 다시 들어왔다.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곧장 H에게 다가왔다. 그는 자기에게 다가오고있는
그녀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차가운 섬칫함을 느끼며 어찌해야 좋을
지 생각했다. 머릿속만 혼돈스러웠다.
이내 쫑아는 H가 앉아있는 테이블앞에 멈춰섰다. 그녀는 앉지않
고 우뚝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화난것도 아니고
그렇다구 슬퍼하는것도 아니었다. 그런 두가지 표정을 똑같은 비율
로 섞어놓은듯한 미묘한 표정이었다.

H는 쫑아를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왜 또 왔어>>
라던가 <<뭘 놓고 간거야>> 란 말이 그녀에게는 기분나쁘게 들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어서와."

라고 그는 간단하게 반겼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방금 내뱉은
말속에 꺼림직한 기운이 배어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또 그렇
다는 것을 그녀가 눈치챌까봐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쫑아는 피부색깔로 칠해진 가면을 쓰고있는 여자처럼, 한
점의 표정변화도 없이 침묵했다. 실제로는 짧은 시간일테지만, 기나
긴 시간동안 그녀는 입을 닫고 있었다.


이윽고 쫑아는 본드로 덕지덕지 발라서 붙여놓은듯한 입을 힘겹
게 열었다.
"나와 정말로 헤어질 생각이야?"

H는 쫑아의 기분이 상할까봐 염려스러웠지만,
"쫑아가 원한거잖아. 먼저 말을 꺼낸것도 쫑아고."

또다시 쫑아의 침묵. 그녀는 가면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미세하
게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을 H는 알아챌수 있었
다. 쫑아의 뿌옇게 흐려져있는 생기잃은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비
밀스러운게 떠돌고 있었다.
<쫑아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있는 걸까?>

H는 뇌수술을 받아 머릿속이 텅비어버린 느낌이었다. 그저 지금
으로서는 쫑아가 침을 뱉는 따위의 어떠한 수모도 기꺼이 받아들
일 자세가 되어 있었다.
다시 쫑아는 입을 열었다. 어찌보면 처음보다도 더 침착한 그런
말투였다.
"먼저 내가 이별선언을 했는데도, 자꾸만 형한테서 버림받는 기분
이 드는 이유는 왜지? 형은 설명해 줄수있어?"
"......"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올줄은 몰랐어. 우리는 남들과는 다를거라
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했을 때, 형은
단한번도 싫다고 안했어. 여자의 자존심을 구겨가면서 다시 찾아왔
는데도 끝까지..."
"......"
"난 형의 나쁜것까지도 사랑했어. 하지만 이젠 모두가 부질없다는
걸 알게 됐어."

H는 쫑아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쫑아야, 일단 앉아. 앉아서..."

얼른 쫑아는 H의 말을 끊었다.
"말하지마. 길게 끌면 남들이 보기에도 안좋아."
"믿든 안믿든 널 사랑한건 진심이야."

잠시 쫑아는 말없이 H를 바라보았다. 그랬다가 다시 그녀는 말을
꺼냈다.
"형, 갈께."

쫑아는 등을 보이면서 걸어갔다.



제 목 : 9월의 두가지 참을 수 없는 놀라움.. 3 <제72회>

"저기..."

H는 무의식적으로 쫑아를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못들은 듯 했다. 그의 목소리는 목구멍밖으로 나올
려다가 집어삼킨 그런거였다. 어쩌면 그녀는 들었으면서도 못들은
척한건지도 모른다.
쫑아는 뒷모습을 보이면서 걸어가고, 그러다가 아주 잠시 우뚝 발
걸음을 멈춰선채 가만히 서있고, 그랬다가 다빈치 레스토랑을 빠져
나가는 그녀의 모습들이 H에게는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그렇게 쫑아는 떠났다.
두 번 다시 볼수가 없을거라는걸, 쫑아나 H는 알고 있었다. 그녀
를 붙잡았다면, 그에게로 다시 돌아올거라는것도 알고 있었다. 정말
로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확실히 유쾌한게 아니었다.
<다시는 형이라는 소릴 못듣겠군!>

H는 몹시 우울해졌다. 순간적이었지만, 쫑아를 벗어나서 경희를
선택한 자신의 판단이 과연 옳은건지 흔들리기도 했다. 우울한 그
의 기분과 동조하듯, 앞에 놓여있던 커피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
었다.
H가 그렇게 한참동안 다빈치 레스토랑을 못떠나고 혼자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을 때, 쫑아는 목적지도 정하지않고 무작정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있었다. 무조건 그로부터 멀리, 아주 멀리 떠나고
만 싶었다. 최악의 낯선 남자가 다가와 유혹한다해도, 모든걸 미련
없이 주면서 매달릴수 있었다. 그녀 혼자만이 세상에서 제일로 불
행한 여자처럼 느껴졌다.
<침착해야해, 침착해야해.>

쫑아는 스스로를 달래면서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해 주었다.
택시기사는 남의 기분도 모르고 농담을 했다. 그녀는 딱딱하게 가
면을 쓴 얼굴로 계속해서 유지하자, 택시기사는 민망해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쫑아는 목적지에 다다르자, 넘어질 듯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익숙
한 길을 따라 들어갔다. 저절로 소정이가 살고있는 집을 향하고 있
었다.

이윽고 간신히 계단을 걸어 올라간 쫑아는 거실로 뛰어들어가자
마자 두다리를 휘청거리며 그대로 소정이에게 쓰러졌다.
"끝났어, 끝났어. 모든 것들이 다 끝장났어."

쫑아는 말이 아닌 목구멍 깊숙한 곳으로부터의 끓어오름이었다.
"결국은, 결국은 갈라섰구나."

소정이는 말했다.
"사내놈들은 다 그래. 나쁜새끼 같으니라구."

쫑아는 소정이의 품안에서 여지껏 참아왔던 슬픔을 끝내 터뜨리
고야 말았다. 울음바다, 그것이었다.

* * *

그러나 대조적으로 H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의 눈안으로 유일하게 가득 들어온 것은, 날아갈 듯 걸어오고있
는 경희란 존재였다. 쫑아와의 이별로 우울했던 얼룩진 감정따위는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도 안날정도
로 어느새 말끔히 지워졌다. 경희는 H에게 그런 여자였다.
두사람은 신림동의 화려한 밤거리를 걸으면서, <<불타는 여름이
여, 안녕>> 인 9월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즐겼다. H의 전갈을 받고
경희가 나타나준 것만으로도, 그는 다빈치 레스토랑에서의 무기력
했던 우울증으로부터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경희는 두 번의 농담과 자신이 몸담고있는 학원에서 벌어진 이야
기를 떠들어대다가,
"그런데, 무슨 일로 갑자기 절 불러낸거예요?"

H는 말끝을 흐렸다.
"으으응... 그냥..."

그랬다가 그는 방금전에 자신이 내뱉은 말을 고쳐주었다.
"경희가 보고싶어서 불러낸게 실수라고 한다면, 난 할말이 없어."
"오빠는 말을 그런식으로밖에 못하겠어요. 제가 오빠를 얼마나..."

잠시 경희는 말을 끊었다. 거리를 오고가는 행인들을 살펴보더니
H의 귓가로 붉은 입술을 붙이면서,
"끔찍히 사랑하는데요. 오빠도 절 사랑하죠?"
"물론이야. 지금 서있는 이 자리에서 큰소리로 외쳐볼까?"
"됐어요, 됐어요."

H는 부끄러워하는 경희를 보고 있자니, 은근히 그녀를 골려주고
싶었다.
"지금부터 큰소리로 외쳐볼게."
"자꾸 그러면 콱 이 자리에서 울어버릴거예요."
"안할게. 그러지마. 난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구."
"오빤 나빠요."
"언제는 좋은 사람이라고 늘 그러더니."

경희는 오래산 여자와도 같은 그런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전 지금 몹시 피곤해요."

정말로 경희는 그랬다. H가 보니 처음 그녀를 보았을때와는 달리
어딘가 축 늘어진 모습과 약간 빨갛게 충혈된 두눈, 지쳐보이는 안
색, 걷고있는 두다리마저 휘청거리는게 힘들어 보였다.
"학원이 많이 바쁜가 보지?"
"네. 더구나 저번에 제가 무단결근을 해서 대신에 제수업에 들어
갔던 선생님이 며칠전에 부친상을 당하는 바람에 그동안 제가 그
선생님대신에 오후수업까지 들어가야 했어요."
"괜히 쉬지도 못하게 널 불러냈구나."
"미안할건 없어요. 우리 어디서 쉬었다 가요."
"여관으로 들어갈까?"

H는 그렇게 말했다가 금방 몹시 후회스러웠다. 경희가 불결하게
자신을 생각할까봐 걱정되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제 목 : 9월의 두가지 참을 수 없는 놀라움.. 4 <제73회>

H는 경희와 함께 얼마쯤 걸어가자, 친숙한 길이 나타났다. 두사람
은 그길을 따라 여관촌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저만치 딸기여관이 보였다. 그대로 거기를 지나쳐, H는 계
속해서 여관촌안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그는 늘상 딸기여관만 애용
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깊숙히 안쪽으로 들어가 본적은 없었다. 그
래서 무척이나 낯설었다. 또 딸기여관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건,
그런데로 소정이와 성교를 한것까지는 견딜수 있었으나 차마 경희
마저 데리고 들어가 너무나 친숙해져버린 주인 아주머니에게 방을
달라고 할만큼 H는 철면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주머니
의 입을 통하여 경희란 존재가 혹시라도 쫑아에게 알려질까봐 두
려운건지도 모른다. 확실히 지금의 H와 쫑아는 완전하게 갈라선
사이가 됐지만, 최소한 그는 자기자신의 나쁜 뒷모습을 그녀에게
들키긴 싫었다.
<나쁜...!>

거기에 H는 생각이 머물렀다. 그가 알고있는 쫑아였다면, 이별의
우울한 상황이 닥쳤을 때, 커다랗게 울음을 터뜨렸거나 크게 분노
하는게 어울렸다.
그러나 쫑아는 그런 모습을 조금도 보여주지 않았다. 어찌보면 냉
정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말로 그랬다.
냉정함은 그녀에게 안어울리는 단어였다.
H는 스스로를 위안했다.
<난 나쁜건 아냐. 지금은 쫑아가 힘들겠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헤
어진게 오히려 쫑아, 자신을 위해서도 좋을거야.>

H와 경희는 맘이 끌리는 낯선 여관을 발견했다. 정확하게 말한다
면, H가 발견했다. 그는 앞장서서 들어갔고, 그녀는 그뒤를 따랐다.
낯선 여관은 그런데로 괜찮았다. 역시 딸기여관에 미치진 못했지
만.


방안에 단둘이 있자니까 표현하기가 불가능한 어떤 묘한 느낌을
느낄수 있었다. 불은 켜지않아 어두웠고, 그렇지만 창으로 들어오는
불빛의 도움으로 장님같진 않았다. H는 방에 들어오기전에 안내실
에 있던 여관주인에게 말했었다. 잠은 안자고, 쉬다가 나갈거라구
했다. 세, 네시간정도.

곧바로 경희는 옷을 입은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잠시 H는 우뚝 서서 그런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저절로 야릇한
감정이 치솟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절대로 경희를 깊숙한 관계까
지 가지 않겠다는게 H의 굳은 신념이었다.
H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잠시동안 두사람은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구 결코
지루하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복잡한 세상에서 동떨어져나
와 오붓하게 단둘이 가까이 있다는 지금의 현실이 마냥 행복하기
만 했다.
"오빠아."

침대에 누워있는 경희가 불렀다.
H는 그녀의 고운 얼굴을 내려다보고 물었다.
"왜에?"
"잠을 자게 커튼으로 창문을 가려줘요."

H는 걸터앉아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몇걸음을 내딛어 드르르륵거
리는 소리가 나게 커튼을 잡아당기어 불빛이 들어오고있는 창을
막았다. 그러자 암흑이 찾아왔다. 그는 장님과도 같이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래서 간신히 침대를 찾아 걸터앉을수 있었다.

이윽고 H는 용기를 내어 침대에 누워있는 경희옆으로 나란히 몸
을 눕혔다. 잠깐 그랬다가 그는 자신의 한팔을 그녀의 머리밑으로
쑤셔넣어 팔베개를 해주었다.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몸을 밀착시키면서 그에게로 안겨왔다. 그래서 그는 나머지
한팔로 그녀의 등허리에 둘렀다. 짜릿하게 전기에 감전된것처럼, 그
의 손바닥을 통하여 그녀를 팽팽하게 조이고있는 브래지어 끈이
느껴졌다. 그 때문에 그는 본능적으로 다시금 야릇한 감정이 뭉게
뭉게 피어올라오고 있었다.
<안돼! 참아야해. 절대 그럴수는 없어.>

H는 팽팽하게 조여주고있는 브래지어 끈의 감촉이 생생한 경희의
등허리를 어루만지는거로 만족하겠다구 결심했다. 그는 천천히 어
둠속에서도 용케 그녀의 붉고 도톰한 입술을 찾아내어 입맞춤을
가볍게 했다.
그러나 처음 얼마동안만 그랬다. 점차 두사람은 입을 크게 벌리면
서 입맞춤을 진하게 했다. 서로의 입안으로 혀마저 왕래했다. 따라
서 상대방의 입안으로 타액도 옮겨졌다.
H는 경희의 루즈로 온통 자신의 입술주변이 새빨갛게 엉망이 되
어가는 광경을 상상하고 있었다. 약간 신경은 쓰였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는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루즈가 훨씬 더 많이 얼굴에
묻어나길 바랄정도였다.

H는 키스를 계속하면서, 브래지어 끈의 감각이 살아있는 경희의
등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주어 억세게 끌어안았다. 터질 듯 무르익
은 풍만한 그녀의 젖가슴이 그의 가슴에 더 한층 강하게 안겨왔다.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숨겨져있는 원시의 본능이 아래에 있는 그
것을 딱딱하게 팽창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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