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의 연인3장(1)
3장. 은밀한 유혹
그 저택에 속한 땅은 온통 생나무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었다. 여러가지 문양으로 장식한 철대문이 있었고 대문을 들어서면 프랑스식 정원이 널따랗게 펼쳐졌다. 허리 높이의 생나무들이 양쪽으로 늘어선 길이 그 정원을 가로질러 길게 뻗어 있었고, 그 길이 끝나는 곳에 큰 잉어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는 연못이 있었으며, 저택은 그 뒤에 자리잡고 있었다.
저택의 벽에 하얀 돌이 촘촘히 박혀 있었고, 주변의 정경을 압도하는 듯한 원형 탑과 고딕 양식의 창이 단단한 성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어딘지 부조화스러운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저택에 살았던 사람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서 테라스를 만들거나 조그만 탑을 덧붙이거나 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 바로크식 건축물은 나름대로의 우아미를 갖추고 있었다. 사실 그 저택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매력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그날 해질녘이었다. 노을에 물든 세대의 검은색 리무진이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동차는 모두 검은 제복을 입은 운전기사가 핸들을 잡고 있었다.
첫번째 차에는 제임스 펜브로크가 타고 있었다. 그는 뒷자석에 앉아 몸을 뒤로 젖힌 채, 쉴새없이 전화를 걸고, 미니 컴퓨터를 조작하고, 나중에 비서에게 건네주기 위해 지시 사항을 녹음기에 구술하고 있었다. 그에게 시간은 곧 황금이었다.늘 "단 1초라도 달러로 환산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그는 정말 1달러라도 손해보는 것은 질색인 사람이었다.
두번째 차에는 그의 아내인 샐리가 자신의 자랑거리인 금발을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가슴이 깊이 파인 투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옷이 너무 몸에 꼭 맞아서 약간 풍만한 몸이 터져 나올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손가락마다 보석 반지가 번쩍이는 손으로 그녀는 가끔씩 상체를 구부려 발목을 주물렀다. 새로 산 하이힐의 굽이 너무 높아서 발목에 조금 무리가 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는 그럴 적마다 운전기사가 룸미러를 통해 훤히 드러나는 그녀의 젖가슴을 훔쳐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면 샐리는 그것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지도 몰랐다.
세번째 차에는 그들 부부의 두 남메인 톰과 제인이 타고 있었는데, 두 남매의 옷차림은 부모에 비해서 수수한 편이었다.
세 대의 리무진이 마침내 저택의 철대문으로 들어 섰다. 제임스는 녹음을 하다 말고, 석양에 물들어 더욱 고풍스러운 저택의 당당한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발목을 주무르던 샐리도 그 자세 그대로 굳어서 저택에 눈길을 꽂았고, 그 틈을 타 운전기사는 신나게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힐끔거렸다. 언제 보아도 얼굴을 푹 파묻고 싶은 가슴이었다.
제인은 천천히 다가오는 저택과 저택의 정원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고풍스럽고 신비스런 이런 곳에서 자신의 17세 청춘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잠시 생각하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힐끔 옆눈으로 오빠를 쳐다보니, 아니나다를까 톰은 미니스커트가 기어올라가 훤히 드러난 여동생의 날씬한 긴 다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다리는 햇볕에 적당하게 그을린 데다가 약간 통통해서 정말 침이 넘어갈 만했는데, 톰의 눈길에는 그런 끈적거림은 없었다.
제인은 오빠에게 눈을 흘기며 스커트를 끌어내리려고 했다. 그너나 미니 스커트는 아무리 끌어 내리려고 해도 자꾸만 다시 기어 올라갔고, 오빠의 눈길은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어서 제인은 왈깍 신경질이 났다. 그렇다고 오빠에게 대들 수도 없었다. 그래 보았자 무덤덤한 얼굴과 무반응이 되돌아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이틴을 갓 벗어난 톰은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젊은이였다. 미식 축구 선수답게 우람한 체격에 백만장자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에게는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동생인 제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제인에게 오빠는 관심 밖이었다.
제인은 아직 숫처녀였다. 그렇지만 키스한 경험으로 따지면 오빠보다 제인 쪽이 훨씬 풍부하고 다양했다.
그녀가 잠시 그런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자동차는 거드름을 피우듯 천천히 커브를 돌아 장미빛 대리석의 계단 앞에 멈춰 섰다. 젊은 하인과 하녀 두 사람이 벌써 마중나와 있었다.
하인은 금발에 콧날이 오똑한 데다가 자신감에 가득찬 턱을 가지고 있었고ㅗ,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신들처럼 뺨이 매끈해 보였다. 허리에 고무줄이 들어가 있는 자켓과 하체에 꼭 끼는 바지를 입고 있어서, 그가 훌륭한 육체의 청년이라는 것을 첫 눈에 알 수 있었다.
함께 기다리고 있던 하녀 쪽도 세련된 편이었다. 그녀는 빨강머리에 장난기 많은 얼굴로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누구든 그녀가 명랑한 성격에 애교가 많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케 해 주었다.매끈하고 통통한 무릎을 치마 밑으로 살짝살짝 내비치며 풍만한 유방을 자랑하듯이 가슴을 내밀고 있는 그녀는 마치 1920년대에 인기가 있었던 콜셋과 카터를 착용한 도시 처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어딘가 모르게 동성연애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인이 리무진 문을 정중하게 열었다. 펜브로크는 차에서 내려 저택을 바라보았다. 아내와 두 남매가 그에게 다가 왔다.
"야, 정말 굉장하구나!"
톰은 엉겁결에 중얼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헐리우드의 세트같아!"
샐리도 덧붙였다.
제임스 펜브로크는 그 말에 싱긋이 웃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중후한 몸가짐을 잃지 않는 그가 싱긋이 웃는 경우란 좀처럼 없는 일이었기에 그의 웃음은 곧 만족감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세트와 다른 것은 이게 전부 진짜라는 점이지."
제임스가 말했다. 그러자 하인과 하녀가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피에르라고 합니다."
"나탈리입니다."
"이 저택의 주인이신 마담으로부터 주인님과 똑같이 사장님과 가족들을 잘 모시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피에르가 말했다.
"그래요? 자아, 그럼 집안을 좀 둘러 봅시다."
그의 말에 피에르가 앞장을 섰다. 모두들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천장이 높고 바닥이 대리석인 대형 홀이 펼쳐졌다. 벽마다 큼직한 명화들이 걸려 있었는데, 부단의 수채화도 나란히 장식되어 있었다.
홀의 곳곳에는 그리스 시대의 조각들과 명나라 때의 도기, 에토르리아의 도자기, 바르츄스의 벽화같은 골동품과 예술품이 조화를 이루어 배치되어 있었다.
그걸 보자 제임스 펜브로크의 입이 딱 벌어져서 닫힐 줄 몰랐다. 달라스에 중세풍의 성을 지은 뒤 그 지하실에 그림을 몇장 쌓아둔 채 방치해 놓고 있는 그 역시 골동품 수집가였던 것이다. 아마도 이 집의 마담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그것들을 돈으로만 본다는 사실일 것이었다.
"야아, 역사깊은 전통의 대륙 유럽이여! 아직도 이 나라에는 엄청난 보물들이 잠들어 있구나!"
그렇게 감탄사를 내뱉다가 제임스는 갑자기 냉정한 얼굴로 돌아와 피에르에게 말했다.
"내가 이러 때가 아니데... 전화는 어디 있나? 나는 이곳에 관광하러 온 게 아니거든. 암, 무엇보다도 비지니스가 우선이지!"
"..."
피에르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샐리가 끼어들었다.
"나는 말이에요... 이런 프랑스식 성곽은 처음이니까 구석구석을 좀 구경해 보고 싶어요."
"그렇게 서두를 것 없잖소, 아직 몇 날 며칠, 시간은 충분한데..."
"나탈리가 안내해 드릴 것입니다."
피에르가 나섰다. 그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나탈리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가볍게 숙여 보았다.
"도대체 전화는 어디에 있는 거야?"
"어느 방에나 모두 설치되어 있습니다, 사장님. 서재도 괜찮고, 침실도 괜찮습니다. 서재로 가시겠습니까?"
"아니, 됐어! 침실에서 걸겠네. 어디지?"
"알겠습니다. 사장님 침실은 로얄 스위트 쪽입니다. 그리고 사모님 방은 <일각수의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피에르의 어조는 침착하고 정중했다. 제임스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침실이 두 개라고? 그건 또 무슨 까닭인가?"
"이곳의 관습입니다, 사장님."
피에르가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관습이라고?"
제임스의 눈썹 끝이 위로 삐죽 올라 갔다.
"우리들은 결혼해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침실을 따로 써 본 적이 없었네. 미국에서는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지. 하느님과 인간 앞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룬 이상적인 부부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지. 그 관습을 나는 이곳에서도 바꾸고 싶지 않네."
제임스의 말에 피에르와 나탈리는 잠시 동안 서로 눈짓을 주고 받았다.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난처한 일이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하녀가 제임스 쪽으로 한 발 나와서 말했다.
"옛날에는 말입니다, 사장님... 부부는 따로따로 침실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한 장소도 충분히 있었으니까요."
그러자 샐리가 재빨리 손을 뻗어 남편의 팔에 손을 얹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속삭였다.
"제임스, 여기는 미국이 아니잖아요? 우리, 유럽식에 따릅시다. 그쪽이 훨씬 로맨틱 할 것 같아요. 더구나 나는 그렇게 되면 당신이 전세계에 전화를 걸고 있는 동안 그 역거운 시거 냄새 때문에 골치를 앓지 않아도 될 거구요."
제임스 펜브로크는 한순간 어떻게 할까 망설였으나, 곧 단안을 내렸다. 그는 갑자기 싱긋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샐리! 침실을 따로 쓰면 다시 만날 때가 더 즐거울 테니까."
펜브로크는 아내를 포옹한 뒤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럼, 가 보기로 할까?"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피에르가 앞장을 서고 펜브로크가 그 뒤를 따랐다.
샐리와 두 명의 아이들은 ㅍ네브로크가 나선형의 계단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아버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톰이 여동생 제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자아,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그러자 제인이 오빠에게 잡힌 팔을 빼며 물러났다.
"난 싫어! 엄마하고 같이 가 봐.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구. 목욕이나 하고 잠이나 실컷 자고 싶어. 정말 손 하나 꿈쩍 하고 싶지 않다니까."
"넌 뭘 모르는 애로구나. 이렇게 오래된 옛날 저택은 말이야, 원래 밤에 둘러 보는 법이야. 유령이란 어둡지 않으면 도망쳐 버리니까 말이야."
제인의 얼굴이 갑자기 핼쑥해졌다. 분명히 톰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나섰다.
"됐다, 톰!"
"그냥 그렇단 말이지, 엄마."
톰은 어깨를 약간 으쓱해 보였다.
"어쩐지 그러니까 약간 으시시한 것 같은데."
제인이 겁먹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냐, 제인. 그건 내가 그냥 해본 소리고, 여긴 유령 같은 건 없어. 있어도 나쁜 짓은 하지 않는 유령이라구. 그렇지요, 마드모아젤?"
톰이 제인의 등을 어루만지며 불쑥 나탈리에게 물었다.
"글쎄요, 나쁜 짓을 하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에 유령같은 것은 없으니까요."
"오늘밤은 이미 구경하기에 너무 늦은 것 같구나. 내일 천천히 둘러 보기로 하구, 그만 자자꾸나. 나탈리, 우리들을 어서 침실로 안내해 줘요."
"따님의 방을 먼저 안내하겠습니다. 방의 이름은 <들장미>입니다."
"어머나, 멋진 이름이네요."
제인은 금세 신바람이 나서 휘파람을 불둣이 말했다.
"들장미를 나에게 골라 준 것이 당신인가요?"
"아닙니다, 마담이십니다. 여기서는 오직 모든 것을 마담이 주관하고 계십니다."
나탈리는 치마를 약간 들어 올린 채 고개를 숙여 보이고 앞장을 섰다.
"마담이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지만, 정말 친절하신 모양이군요."
제인의 말에 나탈리는 미소를 지었다. 그들 뒤를 따르면서 샐리 펜브로크 부인은 연거푸 터져 나오려는 하품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조회수가 낮군요.
어쨌든 4장까지는 올리겠습니다.
그 저택에 속한 땅은 온통 생나무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었다. 여러가지 문양으로 장식한 철대문이 있었고 대문을 들어서면 프랑스식 정원이 널따랗게 펼쳐졌다. 허리 높이의 생나무들이 양쪽으로 늘어선 길이 그 정원을 가로질러 길게 뻗어 있었고, 그 길이 끝나는 곳에 큰 잉어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는 연못이 있었으며, 저택은 그 뒤에 자리잡고 있었다.
저택의 벽에 하얀 돌이 촘촘히 박혀 있었고, 주변의 정경을 압도하는 듯한 원형 탑과 고딕 양식의 창이 단단한 성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어딘지 부조화스러운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저택에 살았던 사람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서 테라스를 만들거나 조그만 탑을 덧붙이거나 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 바로크식 건축물은 나름대로의 우아미를 갖추고 있었다. 사실 그 저택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매력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그날 해질녘이었다. 노을에 물든 세대의 검은색 리무진이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동차는 모두 검은 제복을 입은 운전기사가 핸들을 잡고 있었다.
첫번째 차에는 제임스 펜브로크가 타고 있었다. 그는 뒷자석에 앉아 몸을 뒤로 젖힌 채, 쉴새없이 전화를 걸고, 미니 컴퓨터를 조작하고, 나중에 비서에게 건네주기 위해 지시 사항을 녹음기에 구술하고 있었다. 그에게 시간은 곧 황금이었다.늘 "단 1초라도 달러로 환산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그는 정말 1달러라도 손해보는 것은 질색인 사람이었다.
두번째 차에는 그의 아내인 샐리가 자신의 자랑거리인 금발을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가슴이 깊이 파인 투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옷이 너무 몸에 꼭 맞아서 약간 풍만한 몸이 터져 나올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손가락마다 보석 반지가 번쩍이는 손으로 그녀는 가끔씩 상체를 구부려 발목을 주물렀다. 새로 산 하이힐의 굽이 너무 높아서 발목에 조금 무리가 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는 그럴 적마다 운전기사가 룸미러를 통해 훤히 드러나는 그녀의 젖가슴을 훔쳐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면 샐리는 그것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지도 몰랐다.
세번째 차에는 그들 부부의 두 남메인 톰과 제인이 타고 있었는데, 두 남매의 옷차림은 부모에 비해서 수수한 편이었다.
세 대의 리무진이 마침내 저택의 철대문으로 들어 섰다. 제임스는 녹음을 하다 말고, 석양에 물들어 더욱 고풍스러운 저택의 당당한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발목을 주무르던 샐리도 그 자세 그대로 굳어서 저택에 눈길을 꽂았고, 그 틈을 타 운전기사는 신나게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힐끔거렸다. 언제 보아도 얼굴을 푹 파묻고 싶은 가슴이었다.
제인은 천천히 다가오는 저택과 저택의 정원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고풍스럽고 신비스런 이런 곳에서 자신의 17세 청춘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잠시 생각하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힐끔 옆눈으로 오빠를 쳐다보니, 아니나다를까 톰은 미니스커트가 기어올라가 훤히 드러난 여동생의 날씬한 긴 다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다리는 햇볕에 적당하게 그을린 데다가 약간 통통해서 정말 침이 넘어갈 만했는데, 톰의 눈길에는 그런 끈적거림은 없었다.
제인은 오빠에게 눈을 흘기며 스커트를 끌어내리려고 했다. 그너나 미니 스커트는 아무리 끌어 내리려고 해도 자꾸만 다시 기어 올라갔고, 오빠의 눈길은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어서 제인은 왈깍 신경질이 났다. 그렇다고 오빠에게 대들 수도 없었다. 그래 보았자 무덤덤한 얼굴과 무반응이 되돌아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이틴을 갓 벗어난 톰은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젊은이였다. 미식 축구 선수답게 우람한 체격에 백만장자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에게는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동생인 제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제인에게 오빠는 관심 밖이었다.
제인은 아직 숫처녀였다. 그렇지만 키스한 경험으로 따지면 오빠보다 제인 쪽이 훨씬 풍부하고 다양했다.
그녀가 잠시 그런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자동차는 거드름을 피우듯 천천히 커브를 돌아 장미빛 대리석의 계단 앞에 멈춰 섰다. 젊은 하인과 하녀 두 사람이 벌써 마중나와 있었다.
하인은 금발에 콧날이 오똑한 데다가 자신감에 가득찬 턱을 가지고 있었고ㅗ,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신들처럼 뺨이 매끈해 보였다. 허리에 고무줄이 들어가 있는 자켓과 하체에 꼭 끼는 바지를 입고 있어서, 그가 훌륭한 육체의 청년이라는 것을 첫 눈에 알 수 있었다.
함께 기다리고 있던 하녀 쪽도 세련된 편이었다. 그녀는 빨강머리에 장난기 많은 얼굴로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누구든 그녀가 명랑한 성격에 애교가 많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케 해 주었다.매끈하고 통통한 무릎을 치마 밑으로 살짝살짝 내비치며 풍만한 유방을 자랑하듯이 가슴을 내밀고 있는 그녀는 마치 1920년대에 인기가 있었던 콜셋과 카터를 착용한 도시 처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어딘가 모르게 동성연애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인이 리무진 문을 정중하게 열었다. 펜브로크는 차에서 내려 저택을 바라보았다. 아내와 두 남매가 그에게 다가 왔다.
"야, 정말 굉장하구나!"
톰은 엉겁결에 중얼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헐리우드의 세트같아!"
샐리도 덧붙였다.
제임스 펜브로크는 그 말에 싱긋이 웃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중후한 몸가짐을 잃지 않는 그가 싱긋이 웃는 경우란 좀처럼 없는 일이었기에 그의 웃음은 곧 만족감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세트와 다른 것은 이게 전부 진짜라는 점이지."
제임스가 말했다. 그러자 하인과 하녀가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피에르라고 합니다."
"나탈리입니다."
"이 저택의 주인이신 마담으로부터 주인님과 똑같이 사장님과 가족들을 잘 모시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피에르가 말했다.
"그래요? 자아, 그럼 집안을 좀 둘러 봅시다."
그의 말에 피에르가 앞장을 섰다. 모두들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천장이 높고 바닥이 대리석인 대형 홀이 펼쳐졌다. 벽마다 큼직한 명화들이 걸려 있었는데, 부단의 수채화도 나란히 장식되어 있었다.
홀의 곳곳에는 그리스 시대의 조각들과 명나라 때의 도기, 에토르리아의 도자기, 바르츄스의 벽화같은 골동품과 예술품이 조화를 이루어 배치되어 있었다.
그걸 보자 제임스 펜브로크의 입이 딱 벌어져서 닫힐 줄 몰랐다. 달라스에 중세풍의 성을 지은 뒤 그 지하실에 그림을 몇장 쌓아둔 채 방치해 놓고 있는 그 역시 골동품 수집가였던 것이다. 아마도 이 집의 마담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그것들을 돈으로만 본다는 사실일 것이었다.
"야아, 역사깊은 전통의 대륙 유럽이여! 아직도 이 나라에는 엄청난 보물들이 잠들어 있구나!"
그렇게 감탄사를 내뱉다가 제임스는 갑자기 냉정한 얼굴로 돌아와 피에르에게 말했다.
"내가 이러 때가 아니데... 전화는 어디 있나? 나는 이곳에 관광하러 온 게 아니거든. 암, 무엇보다도 비지니스가 우선이지!"
"..."
피에르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샐리가 끼어들었다.
"나는 말이에요... 이런 프랑스식 성곽은 처음이니까 구석구석을 좀 구경해 보고 싶어요."
"그렇게 서두를 것 없잖소, 아직 몇 날 며칠, 시간은 충분한데..."
"나탈리가 안내해 드릴 것입니다."
피에르가 나섰다. 그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나탈리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가볍게 숙여 보았다.
"도대체 전화는 어디에 있는 거야?"
"어느 방에나 모두 설치되어 있습니다, 사장님. 서재도 괜찮고, 침실도 괜찮습니다. 서재로 가시겠습니까?"
"아니, 됐어! 침실에서 걸겠네. 어디지?"
"알겠습니다. 사장님 침실은 로얄 스위트 쪽입니다. 그리고 사모님 방은 <일각수의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피에르의 어조는 침착하고 정중했다. 제임스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침실이 두 개라고? 그건 또 무슨 까닭인가?"
"이곳의 관습입니다, 사장님."
피에르가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관습이라고?"
제임스의 눈썹 끝이 위로 삐죽 올라 갔다.
"우리들은 결혼해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침실을 따로 써 본 적이 없었네. 미국에서는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지. 하느님과 인간 앞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룬 이상적인 부부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지. 그 관습을 나는 이곳에서도 바꾸고 싶지 않네."
제임스의 말에 피에르와 나탈리는 잠시 동안 서로 눈짓을 주고 받았다.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난처한 일이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하녀가 제임스 쪽으로 한 발 나와서 말했다.
"옛날에는 말입니다, 사장님... 부부는 따로따로 침실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한 장소도 충분히 있었으니까요."
그러자 샐리가 재빨리 손을 뻗어 남편의 팔에 손을 얹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속삭였다.
"제임스, 여기는 미국이 아니잖아요? 우리, 유럽식에 따릅시다. 그쪽이 훨씬 로맨틱 할 것 같아요. 더구나 나는 그렇게 되면 당신이 전세계에 전화를 걸고 있는 동안 그 역거운 시거 냄새 때문에 골치를 앓지 않아도 될 거구요."
제임스 펜브로크는 한순간 어떻게 할까 망설였으나, 곧 단안을 내렸다. 그는 갑자기 싱긋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샐리! 침실을 따로 쓰면 다시 만날 때가 더 즐거울 테니까."
펜브로크는 아내를 포옹한 뒤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럼, 가 보기로 할까?"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피에르가 앞장을 서고 펜브로크가 그 뒤를 따랐다.
샐리와 두 명의 아이들은 ㅍ네브로크가 나선형의 계단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아버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톰이 여동생 제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자아,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그러자 제인이 오빠에게 잡힌 팔을 빼며 물러났다.
"난 싫어! 엄마하고 같이 가 봐.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구. 목욕이나 하고 잠이나 실컷 자고 싶어. 정말 손 하나 꿈쩍 하고 싶지 않다니까."
"넌 뭘 모르는 애로구나. 이렇게 오래된 옛날 저택은 말이야, 원래 밤에 둘러 보는 법이야. 유령이란 어둡지 않으면 도망쳐 버리니까 말이야."
제인의 얼굴이 갑자기 핼쑥해졌다. 분명히 톰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나섰다.
"됐다, 톰!"
"그냥 그렇단 말이지, 엄마."
톰은 어깨를 약간 으쓱해 보였다.
"어쩐지 그러니까 약간 으시시한 것 같은데."
제인이 겁먹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냐, 제인. 그건 내가 그냥 해본 소리고, 여긴 유령 같은 건 없어. 있어도 나쁜 짓은 하지 않는 유령이라구. 그렇지요, 마드모아젤?"
톰이 제인의 등을 어루만지며 불쑥 나탈리에게 물었다.
"글쎄요, 나쁜 짓을 하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에 유령같은 것은 없으니까요."
"오늘밤은 이미 구경하기에 너무 늦은 것 같구나. 내일 천천히 둘러 보기로 하구, 그만 자자꾸나. 나탈리, 우리들을 어서 침실로 안내해 줘요."
"따님의 방을 먼저 안내하겠습니다. 방의 이름은 <들장미>입니다."
"어머나, 멋진 이름이네요."
제인은 금세 신바람이 나서 휘파람을 불둣이 말했다.
"들장미를 나에게 골라 준 것이 당신인가요?"
"아닙니다, 마담이십니다. 여기서는 오직 모든 것을 마담이 주관하고 계십니다."
나탈리는 치마를 약간 들어 올린 채 고개를 숙여 보이고 앞장을 섰다.
"마담이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지만, 정말 친절하신 모양이군요."
제인의 말에 나탈리는 미소를 지었다. 그들 뒤를 따르면서 샐리 펜브로크 부인은 연거푸 터져 나오려는 하품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조회수가 낮군요.
어쨌든 4장까지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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