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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쫑아-9

제 목 : 8월의 불타는 생각들.. 6 <제68회>

"자꾸만 이렇게 무단결근해도 괜찮아요?"
경희의 입술을 보면서, H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의 붉고 도
톰한 윗입술위로 딸기쉐이크가 입술라인을 따라 묻어 있었다. 무척
귀여웠다.
"괜찮아. 경희야말로 무단결근을 해도 괜찮은거야?"
"설마 짜르기야 하겠어요. 괜찮아요."

불현 듯 H는 경희의 윗입술에 묻어있는 딸기쉐이크를 남김없이
빨아먹고 싶었다.
그러나 H는 거절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경희에게 말
했다.
"윗입술에 딸기쉐이크가 묻었어."
"어머! 그래요."

경희는 새빨간 혀를 내밀어 윗입술을 핥았다. H에게는 그런 그녀
의 행동이 섹시하게 보였다. 무척 자극적인 포즈였다.
"이젠 깨끗해졌어요?"
경희의 질문에 H는,
"아니."
그는 거짓말을 했다.
"아랫입술에도 묻어있어."

경희는 또다시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도 핥아주었다. 그녀는 핸드
백을 뒤져서 찾아낸 화장도구를 꺼내어 거기에 달려있는 거울로
입술을 살펴보았다.
"남자앞에서 화장을 고치는 행동이 예의에 어긋난다는건 알아요.
실례할께요."

경희는 붉은 빛깔이 지워져 엷어진 입술위로 루즈를 덧발라주었
다.
그리고 다빈치 레스토랑 상호명과 전화번호가 인쇄되어있는 냅킨
을 집어들어 입에 가볍게 물었다가 빼내었다. 냅킨에는 붉게 그녀
의 입술마크가 찍혀 있었다. 그걸 그녀는 동그랗게 구겨서 바닥이
젖어있는 재떨이안에 떨구었다. 화장도구는 도로 핸드백속에 챙겨
넣었다.

H는 물끄러미 경희의 모든걸 지켜보고 있었다. 절대로 그는 불쾌
한 감정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화장을 고치는 그녀의 모습이 예뻐
보였고, 딱히 이유를 밝힐수는 없겠지만 그런 그녀의 행동 하나하
나가 재밌다고 느껴졌다.
H는 경희보고 칭찬했다. 꾸밈이 아닌 진심이었다.
"아까보다 훨씬 이뻐 보여. 화장을 진짜 잘하는데."
경희는 기분좋은 환한 얼굴이었다.
"예전에 메이크업 강좌를 들은적이 있어요. 거기서 많이 배웠어요.
화장은 현대여성에게는 필수잖아요."
"당연하지. 아무래도 화장을 안한 여자보다는 화장을 한 여자가
더 이뻐 보이고, 더 여자다워 보여."
"저도 오빠말에 동감해요. 일부 여성 인권단체에서는 화장을 한다
는게 남자들에게 예쁘게 보이려는 여성 자신 스스로의 성적인 노
예근성이라며 화장하는걸 반대하지만, 전 틀렸다고 생각하구 있어
요. 화장품을 발라서 현재보다 훨씬 더 예뻐 보인다면, 나쁠게 없잖
아요. 화장을 하는게 여자들을 비하시키려는 남자의 음모쯤으로 몰
아세운다는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H는 피식 웃고나서,
"경희야."
"네?"
"넌 지금 너무 흥분하고 있어. 난 화장하는걸 반대하는 일부 여성
인권단체의 회원이 아냐."
"...알아요."

H는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정부에서 모든 여자들은 화장을 하지 말라며 특별법이라도 제정
하게 되면, 경희 넌 맨앞에 앞장서서 데모라도 벌이겠어."

경희는 약간 화난 어조로 말했다.
"오빠, 너무해요. 절 놀리기예요."
"널 놀리려는 의도로 말한게 아닌데..."

경희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빠가 절 놀리지 않았다는걸 알아요."
"알았다니 다행이야."
"오빠, 하루종일 다빈치에서 지낼거예요?"

그러구보니 H는 두팔에 오싹 소름이 돋아나고, 오슬오슬 춥기까
지 한게 몸살에 걸리기직전의 신호와도 흡사했다. 냉방병인지도 모
른다.
H는 다빈치 레스토랑에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는걸 느낄수
있었다.
경희는 계속해서 말했다.
"가고싶은 곳이 있어요."

두사람은 다빈치 레스토랑을 나와 불타는 거리로 나왔다. 이런 날
씨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사랑스런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연
인들의 행복한 모습은 가상의 드라마속에서나 있을수 있는 일이었
다. 애인을 떼어내려는 확실한 한가지 방법으로 써보려는 속셈이라
면 모를까,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일지라도 불타는 더위속을 오랫동
안 걷게 된다면, 그대로 빠이빠이하는 사이가 되고 말 것이다.
H와 경희는 몇걸음도 걷지 않아 얼른 근처 건물속으로 뛰어 들어
갔다. 그래서 간신히 더위로부터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두사람은 작은 승강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제 목 : 8월의 불타는 생각들.. 7 <제69회>

4층에서 승강기문이 열리자마자 그대로 포켓볼 전용 당구장이 나
왔다. 둘은 맘에 끌리는 당구대로 걸어갔다.
H는 경희보고 물었다.
"포켓좀 칠줄 알아?"
"응, 조금."

경희는 말했다.
"오빠는?"
"나도 조금밖에 못쳐."

두사람은 각자 적당한 당구봉을 골라잡았다.
H는 당구봉 끝에 푸른색깔 분을 발라준다음에,
"내가 먼저 칠게."

경희에게 말했다.
H는 허리를 굽혀 자연스런 자세를 취한다음에 오른손에 들고있는
당구봉을 왼손으로 만든 큐걸이로 고정시키고는 말했다.
"중공군처럼 무데기로 모여있는 녀석들을 흐뜨려 놓을게."

H는 당구봉을 주욱 밀어 앞에 홀로 놓여있는 흰색 당구공을 때렸
다. 굴러간 흰색 당구공은 딱소리와 함께 삼각형으로 모여있던 여
러개의 당구공들을 흐뜨려 놓았다. 그중 하나의 공이 당구대 구멍
속으로 굴러들어갔다.
H는 경희보고 말했다.
"얼룩진 공이 내공이야."
"알았어요."

H는 다시 당구공을 칠 자세를 잡았다. 당구봉으로 흰색 공을 때
리자, 그당구공은 빠르게 데굴데굴 굴러가 H가 넣어야할 공을 구
멍속으로 밀어넣어주었다.
"설마 오빠 혼자서 다하는건 아닐테죠?"

경희의 말에 H는 대답없이 미소만 날려보냈다. 그는 이번에는 자
기 공을 넣지 못했다. 그래서 경희가 칠 기회가 왔다. 그녀는 당구
대 구멍속으로 자신의 공을 집어넣는데 성공했다. 다시 한 번 더
그녀는 성공했다.
H는 말했다.
"살살해라. 경희에게 이 오빠가 지게 되면, 얼굴을 들고 다닐수 없
잖아."
"얼굴을 들고 다닐수 없게 된다면, 기필코 오빠를 꼭 이겨야겠네
요."
"경희에게 주려고 조개껍데기로 목걸이를 만들고 있다는걸 염두에
둬."

경희는 공을 때릴 자세를 취하더니 당구봉을 밀어 흰색 공을 때
렸다. 그러자 흰색 공은 빠르게 굴러가 그녀가 넣어야할 당구공을
역시 완벽하게 구멍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목걸이는 근사한걸로 기대할께요."
경희의 말에 H는 이어서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부담돼잖아."
"오빠가 만들어주는건 뭐든지 멋질거예요."
"정말?"
"정말이예요."
또다시 경희는 자기 공을 당구대 구멍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오빠, 아무래도 저에게 질 각오를 하는게 좋겠어요."

정확히 1시간 10분만에 H와 경희는 포켓볼 전용 당구장을 나왔다
. 경희의 완벽한 승리였다. 두사람은 승강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
다.
경희는 고마움이 가득한 눈길로 H를 주시했다.
"오빠는 좋은 사람이예요."
"또 그소리냐."
"게임을 일부러 져준걸 알아요."
"아니야. 순전히 네 실력으로 날 이긴거야."
"그렇지 않다는걸 저도 알고, 오빠도 알잖아요."
"...!"

H와 경희는 눈길을 맞추면서, 설명할길 없는 묘한 분위기에 휩싸
이고 있었다. 승강기안에는 둘뿐이었다. 그러자 누가 먼저랄것도 없
이 서서히 두사람의 입술이 다가갔다. 시간상으론 잠깐동안이었지
만, 둘에게는 영원과도 같은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H와 경희의 입술이 맞닿으려는 찰라에 그만 승강기문이
활짝 열렸다. 그 때문에 두사람은 얼른 멀리 떨어져야 했다. 사람들
이 올라타자, 승강기는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분후에 H와 경희는 승강기에서 내려 건물을 나서자, 뜨거운 열
기가 덮쳤다. 거리는 불타듯 이글거리고 있었고, 도로는 대형 주차
장을 방불케할정도로 개미떼같은 차들은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
다. 시끄럽게 곳곳에서 경적을 울려댔다. 신림동을 관통하고있는 도
로를 가득 메우고있는 차량들보다 오히려 인도로 걸어가는 사람들
이 훨씬 빨리 오고갔다.
차안에 갇혀있는 쫑아와 소정이는 몹시 배고픔을 느꼈다. 원래대
로라면 이미 벌써 두사람은 순대촌에서 맛있게 식사하고 있어야할
행복한 시간이었다. CD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따위를 감
상할 여력이 둘에게는 없었다.

멀리 H와 경희는 인도로 걸어오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쫑아와 소정이는 정면 유리창을 통하여 다정하게 걸
어오고있는 H와 경희를 보고 말았다. 쫑아의 얼굴은 잔뜩 굳어졌
다. 그런 친구를 바라보고있는 소정이는 몹시 불안했다. 쫑아가 불
타는 생각들로 무슨 일을 벌일지 그게 두려웠다.

H와 경희가 차곁을 지나가는동안에 조수석에 앉아있던 쫑아는 차
문을 열고 나가려 했지만, 소정이가 극구 말렸다.


제 목 : 9월의 두가지 참을 수 없는 놀라움.. 1 <제70회>

9월의 두가지 참을 수 없는 놀라움

"잘지냈어, 형?"
일단 쫑아는 서두를 그렇게 먼저 꺼냈다. 누구나 오래간만에 만나
게 되면, 늘상 그렇듯이 날씨라던가 요즘 사회에서 떠돌고있는 주
요 화제나 그동안 지내온 서로간의 생활이야기를 가볍게 주고받는
기본에서 쫑아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주로 질문한 쪽은 쫑아였
고, 짧막하게 대답한 쪽은 H였다. 더구나 그의 대답들은 하나같이
낑낑거리는 강아지모냥 간신히 입을 벌려 말하는 그런것이었다. 어
쩔수없이 사무적으로 대하는 태도였다.
쫑아는 어디라고 꼭 집어서 말할순 없었으나 H가 예전과는 사뭇
달라도 크게 달라졌다는걸, 확연히 느낄수 있었다. 그는 예전 그대
로였지만, 겉모습만 그럴뿐 그녀는 낯선 타인을 대하는듯한 어색한
감정으로 물들었다.

<다빈치 레스토랑에서 내앞에 앉아있는 이남자가 여지껏 나를 사
랑해주고, 내가 사랑한 남자가 맞는걸까?>

쫑아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의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아련
히 가벼운 슬픔같은게 흘러나왔다.
쫑아에게는 지금도 생생히 소정이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H가 해외출장중이었다는것도 새빨간 거짓말이고, H가 신림동거
리를 누비듯 미지의 여자와 함께 있는 광경을 목격한것도 처음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나중에는 쫑아보다 더 소정이가 꽥꽥거리면
서 화를 벌컥낼정도였다.
쫑아는 어떤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얼른 그런 잡념을 떨쳐버
리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그동안 형이 보고싶었어."
"그으래?"

H는 여전히 사무적으로 어딘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랬구나."
"형은 내가 보고싶지도 않았나봐."
"나도 보고싶었어."

쫑아는 H의 그말이 이상하게도 진실이 아닐거라구 강하게 느껴졌
다. 그녀는 여자로서의 날카로운 육감이기도 했지만, 슬프게도 이제
는 그의 말과 행동을 전적으로 신용한다는게 불가능했다.
"보고싶다는 사람이 그동안 단한통의 전화도 안한거야?"
"......"
"아님 못한거야?"
"회사 때문에 바빴어."

잠시 쫑아는 침묵했다. H도 마찬가지였다.

두사람은 서로를 바라볼뿐이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이렇
게 되자 H는 쫑아로부터 눈길을 피했다.
"형, 내가 싫어진거야?"

느닷없는 쫑아의 단순명료한 질문에, 그렇지만 너무도 확실한 질
문에 H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순간적인 찰라
였을뿐이었다.
얼른 H는 쫑아에게 대답했다. 흐릿한 대답이었다.
"그런건 아니고..."

H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응! 싫어졌어.>

라고 말하고 있었다.
"형한테 새로운 여자가 생긴거야?"
"아니야."

H는 말했다.
"자꾸만 그런걸 왜 물어보는거야?"

잠시 쫑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랬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나아 형이 싫어졌어."

H는 뭐라구 할말이 없었다. 그저 쫑아가 말하는걸 듣기만 할뿐이
었다.
"우리 이쯤에서 그만 헤어져."

갑작스런 쫑아의 놀라운 제안에 H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심정은 곧바로 기쁜 심정으로 변하였다. 그가
언젠가 들려주고 싶었던 말을 그녀가 먼저 꺼낸 것이다.
<쫑아 널 진심으로 거짓없이 사랑했어. 그것만은 믿어줘야해. 하
지만 그런 널 잊게 만들만큼 경희는 더없이 소중한 사람으로 나에
게 다가온 여자야. 역시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말이 없어. 날 욕하
고 저주해도 괜찮아. 나로 인하여 제발 눈물만은 흘리지마.>

H는 쫑아에게 말해줄 적당한 말을 골랐다. 그는 애써 슬픈 표정
을 지어보이며 어눌한 어조로,
"쫑아가 원한다면... 그렇게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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