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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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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가벗겨지고...◈

얼마나 걸었을까.
네온 사인이 명멸하는 길거리의 휘황찬란한 업소 간
판들을 올려다 본 것 같다. 아주 무심히 내려다 본
네온 간판은 깊은 밤의 흥청거림을 더욱 달구질하듯
발악을 하는 것처럼 깜박거렸다.

그녀는 일부러 시끄러운 락카페를 찾아 헤맸다. 그
런 곳에 가서 자신의 맑은 정신이 곧 산란스러워질
정도로 음악에 파묻혀 술에 취하고 싶었다.

발길 닿는 대로 어느 길가의 락카페로 들어갔다. 입
구에서부터 꽝꽝거리며 시끄러운 실내는 드문드문 젊
은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약간 어두웠으므로 그녀는 조심조심 벽쪽의 테이블
로 걸어갔다. 벽쪽의 자리에서 보면 실내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그녀는 일부러 그런 자리를 골라 앉은
것이다.

"뭘로 시키겠습니까?"

남자 아르바이트생인 것 같았다. 짧은 머리에 무스
를 잔뜩 발라 웨이터 흉내를 충실히 내려는 듯이 보
여졌다.

"생맥 2,000하고, 멕시칸 사라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아 돌아가고 나자, 주리는 허전
함을 느꼈다. 안주와 맥주가 날라져 올 때까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판이었다.

그녀는 못 피우는 담배나 한번 피워볼까 하는 유혹
이 불현 듯 생겨났다.
지나가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을 불러세웠다. 고등학
생인 듯한 여자 애였다.

"여기, 담배 좀 사다줄 수 있어요?"
"무슨 담배로 사다 드려요?"
"휘네스 살 수 있어요?"
"그건 여기 없는데. 좀 기다리면 사다 드릴께요."

그러면서 그녀는 담배 값을 달라는 듯이 손을 내밀
었다. 주리는 돈을 꺼내 주었다.

아르바이트생이 가고 나자, 주리는 무료한 듯이 턱
을 받쳐들고는 실내로 눈길을 주었다. 나무 바닥에다
나무 탁자와 나무 의자로 된 실내는 어두운 듯하면서
도 활기에 차 있었다.

군데군데 현란한 조명이 밝혀져 있고, 술에 취한 젊
은이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대화를 나누는 게
보였다. 하긴 시끄러운 음악소리 때문에 소리를 지르
지 않고서는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빛을
잃고 제멋대로 퇴락한 것처럼 느껴졌다.
타락의 시대에 태어나 타락한 인간들에게 기쁨과 즐
거움을 주기위해 태어난 존재가 바로 여자일 것이라
는 서글픔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밀려왔다.

남자는 여자를 정복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고,
여자는 무방비의 상태로 이 세태를 곡예하듯 비껴나
가야만 겨우 생존할 수 있는 그런 나약한 존재에 지
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언제 어디에서 늑대의 날카로
운 이빨이 덤벼들지 모른다.
온갖 수법을 다 써서라도 여자를 농락하려는 남자들
의 이기심은 무엇일까.

주리는 깊은 회한에 빠져들었다.
점점 자신이 초라해지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대학
생이라면 그대로 이 사회를 관용을 베풀 줄 알고, 그
만한 대우를 해줄 줄로만 알았었다. 아직 세상을 다
알아 버리기에는 미숙한, 그러면서도 지성적인 면을
갖추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이 사회란 약육강식의 철
저한 남성지배 법칙이 아직도 도사리고 있었다. 많이
배운 여자를 대우해 주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바짓가랑이 속으로 짓뭉개 버리려는 남성들
의 오만한 성적인 지배 욕심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주리는 생각하면 할수록 터질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너무나 어이없게 꽃잎이 스러져 버린 것이어서 어디
에도 하소연할 수도 없는 그런 심정이었다.



오늘 같은 날은 어제보다도 더했다. 미리 우려를 하
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런 식으로 당할 줄을 꿈에
도 생각지 못했다. 거기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김 대리가 자신의 알몸을 샅샅이 보았을 것을 생각하
니 분통이 터질것만 같았다.

그때, 마침 시킨 생맥주와 안주가 날라져왔다. 아르
바이트생이 담배를 내밀었다. 그녀는 우선 담배부터
뽑아 피워물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술을 따랐다.

혼자만의 고독을 씹는 듯한 아픔으로 우두커니 잔만
내려다보았다. 거품이 있었다가 스러지는게 보였다.
아직 마실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켰다가 길게 내뿜었
다. 재채기가 나려고 그러는지 목 안이 간지러웠다.
그녀는 맥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찬 기운이
속으로 들어가면서 싸아한 느낌이 울려왔다. 맥주를
마시면서 안주 대신 담배를 피워댔다.

처음에 멕시칸 사라다를 시켰을 땐, 저녁이나 때울
겸해서 야채가 듬뿍 든 사라다를 시킨 것이었으나 막
상 술을 마시면서는 안주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처
음으로 피워보는 담배 또한 생각보다 좋았다.

그녀는 안주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채, 2,000CC
의 맥주를 다 비워냈다. 그동안 담배를 피워댄 것만
도 10개피에 가까웠다.

그녀는 모처럼만에 마시는 술에 정신만 말똥거릴
뿐, 취하진 않았다. 일부러 취해 보려고 마신 술이었
지만 오히려 정신만 맑아질 뿐이었다.
좀더 취하면 어제의 일과, 오늘 저녁에 일어났던 일
들을 한꺼번에 묶어 생각해 보려고 벼르고 있는 중이
었다.

"아가씨, 여기 맥주 좀 더 갖다줘요."

주리가 맥주잔을 들어 부르자 아르바이트생이 곧바
로 달려왔다.

"얼마나 더 드릴까요?"

아르바이트생은 얼른 탁자 위의 계산서에다 볼펜을
갖다댔다. 마시는 대로 맥주의 양을 기입하는 모양이
었다.

"1,000CC만 더 갖다줘요."
"네, 알았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이 돌아가고 나자. 남아 있는 맥주를
모두 따랐다. 그러고는 냉큼 다 마셔 버렸다. 맥주가
다 비워질 때까지 입술을 떼지 않고 마시느라 숨이
찼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악을 쓰듯 마셔댔다.

아르바이트생이 맥주를 가져왔지만 그녀는 더 이상
배가 불러 마실 수가 없었다. 퉁퉁 부어오른 배가 뇨
기를 느끼게 했다.

갑자기 쏟아지려는 소변기를 느끼며 그녀는 일어났
다. 손님들이 있는 테이블을 지나 화장실 쪽으로 가
는데 어느 순간 중심을 잃으면서 비칠거렸다.
그녀는 옆에 있는 아무나 붙잡으면서 겨우 바로 섰다.

"아, 미안해요......"

그녀는 그만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의 어깨를 붙
잡았던 것이다. 그러자 같이 온 손님들이 의아한 표
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마치 웬 여자가 저 지경
까지 술을 마셨나, 하는 투로 쳐다보는 것이 못마땅
했다.

"미안해요, 화장실이 어디죠?"

주리는 화장실을 찾아가려다가 잊어버린 것처럼 물
었다.

"혼자 술을 마시는 것 같은데. 몹시 술이 취했군요.
화장실은 저쪽이에요."

앞쪽에 앉은 남자의 손가락끝을 보며 그녀는 흔들거
렸다. 그러다가 다시 바로 앞에 있는 남자에게로 기
울어지려 했다. 앉아 있던 남자가 얼른 일어나서 그
녀를 부축해 주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주리는 자꾸만 횡설수설하면서 발걸음을 옮기지 못
했다. 소변이 마려웠지만 마룻바닥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잘못 발걸음을 옮겨 놓다간 금방
이라도 풀썩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이거. 술이 취한 것 같은데, 같이 가십시다. 제가
안내하죠."

주리를 붙잡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앞장서며 그녀의
팔을 잡아주었다. 그녀는 그가 이끄는 대로 조심스럽
게 발걸음을 떼어 놓으며 테이블 사이를 어렵게 빠져
나갔다. 화장실 앞에 이르자, 남자가 팔을 놓으며 말
했다.

"이제 됐습니다. 들어가 보시죠."
"......"

그녀는 까딱 목례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는 여자 화
장실로 들어갔다. 맥주를 마신 탓인지 아래쪽이 팽팽
하게 당겨져 있었다.

팬티를 내리는 순간, 참았던 소변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대개 여자들은 소변을 보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지 않도록 물부터 내리는 법인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오줌을 쌀 것만 같은 다급함 때문에 미처 물
을 내릴 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변기에 앉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
다. 슬픈 곡조의 <머더 오브 마인>이 흘러나왔다.
하필 이런 때에 그런 노래가 흘러나온 건 순전히 자
기 상실의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녀는 노래를 웅얼거리면서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기가 살갗을
간지럽혔다.

"개새끼......"

그녀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가끔 욕설을 내뱉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고 억울한 일이었다. 비록 술에
취하긴 했지만 술을 마시게 된 동기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김 대리에 대한 분노였다.

차라리 어제처럼 강제로 옷을 벗기고 강간을 했다면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을 것이므로 그래도 나았
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저녁에 일어난 일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가벗겨지고 온갖 수모를 다 겪었으
리라고 생각하니 어마어마한 치욕을 당한 것처럼 기
분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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