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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바람언덕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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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본 결과 유 자인의 해외나들이가 잦은 건 사실이었다.


영화다 CF다 해서 공적인 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외에 목적이 모호한 것도 꽤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그녀의 외도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어쨌던 그런 걸 떠나서 확인해봐야 할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긴 했다.


가장 쉽고도 확실한 방법은 엄마나 아빠한테 물어보는 거겠지만 그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도 부모의 입장이 되었기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식의 작은 생채기 하나도 부모의 가슴을 찢어놓는데, 그걸 언급한다면 두 사람은 노심초사 밤잠을 못 이룰 거라는 걸 말이다.


때문에 재열은 그 스스로도 가급적 냉철해지도록 애쓰며 지연의 빚을 갚아준다는 목적에다만 의식을 집중했다.


 


“햐...이거야 원....”


“너무 막막하지? 그냥 보통의 배우가 아니니까...”


 


일단 유 자인의 움직임을 체크하면서 동선 정도만 대충 파악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국내활동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건 아주 깨끗했다.


연예계생활과 정치인의 아내로서 이미지홍보를 위해 가끔씩 하는 사회봉사활동 이 딱 두 가지였다.


이미 중년의 나이인 전처자식들 말고는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도 없었다.


어쩌면 이 부부는 서로 필요와 목적에 의해 계약으로 맺어진 사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각자의 영역을 철저하게 구축하고는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시너지효과까지 정말 완벽한 동지였다.


그리고 정작 틈을 노려야 할 불분명한 목적의 외유에 관한 건 도대체가 오리무중이었다.


그녀 곁에다 스파이라도 붙이지 않는 다음에는 출입국 사실조차 알아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재열의 허탈한 탄식에 지연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누나~ 괜찮아요...쉬우면 오히려 이상하죠? 하하하~ 그래서 더 의욕이 생기는데요? 쪽~”


“아~ 고마워...”


 


뺨에다 입을 맞추며 웃어주자 그녀의 눈에서 고마움의 빛이 가득 넘쳐났다.


사실 지연도 이리저리 애를 쓰고는 있었지만 그 벽이 너무 높은 탓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허점은 있을 것이다.


드러난 게 너무 완벽해서 되려 의심이 갔다.


그녀의 활동상을 볼 때 아무리 길게 잡아도 1년의 반 이상을 외국에서 보낸다는 건 불가능했다.


허전한 아랫도리를 채우기 위해 외국까지 나갈 정도의 여자가 나머지 기간 동안 국내에서는 요조숙녀로 지낸다? 그건 절대 아니라고 장담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도 어디에선가 비밀스럽게 욕구를 푼다는 의미였다.


다만 그 실마리를 찾아내는 게 지금으로써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같은 상황일 뿐이었다.


 


“사람을 써서 뒤를 캐봤는데...”


“그러지 말아요...너무 위험해요...”


“으, 응...맞아...”


 


비밀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이나 방비를 하게 마련이었다.


그들의 힘과 인맥을 생각하면 그건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이미 지연은 알게 모르게 협박까지 받았던 경험이 있다지 않은가?


재열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애초 계획은 유 자인의 허점을 찾아내고는, 가능하다면 외국여행길에서 우연을 가장해 자연스럽게 남자를 붙일 생각이었다.


소현이 수 차례 보내왔던 동영상 속에 등장한 남자들 정도의 수준이라면 그녀를 충분히 함락시킬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희고 검은 색깔의 쫙 빠진 근육질 하체에 매달린 그 엄청난 자지로 소현을 쉴새 없이 박아대며, 거의 반 실신하게 만들던 그들의 체력과 테크닉이라면 유 자인 그녀도 별수없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그녀를 망가뜨리다 결정적일 때 자신이 등장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그건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뜬구름을 잡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누나...”


“응..재열 씨..말해봐...”


“자연스럽게 그 여자하고의 자리를 한번 만들어봐요...”


“응? 어쩌려고?”


“제가 직접 두드려볼까 싶어서요...”


“자기가? 어떻게? 걔가 자기 같은 풋내기를 상대하기나 할 거 같아?”


“어쨌던..그건...제가 알아서 어떻게 해볼게요...그러다 정 아니다 싶으면 말면 그만이죠...


아~ 맞다...저번에 그 여자가 그랬잖아요? 언제 식사나 같이 하자고...그러니까...”


 


저번처럼 견학을 핑계로 촬영현장에서 유 자인을 마주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그녀가 전에 했던 말을 빌미로 식사자리를 만들면서, 대선배의 입장에서 좋은 조언을 부탁한다는 핑계를 대 자신도 자연스럽게 합석시켜달라고 재열은 부탁했다.


 


“그거야...어렵진 않지만...”


 


사실 지연으로서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일 것이다.


떠올리기도 싫은 그녀에게 저자세로 숙이고 들어가 장시간 동안 마주앉아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재열에 대한 걱정이 더 큰 그녀였다.


유 자인이라는 여자가 얼마나 지독한지는 직접 몸을 겪은 지연이었다.


때문에 혹여 무리하게 일을 벌이다 화를 입지나 않을까 하는 거였다.


 


“하하하~ 걱정 마세요...그냥 살피는 정도만 할 거에요...일단 적부터 제대로 알아야 하니까요..”


“응...알았어...그 여자 촬영스케줄을 한번 알아볼게...”


“네..부탁해요..누나...”


“아앙~ 또?”


“후후후~ 싫어요?”


“치~ 놀리지 말고..어서~”


 


지연은 예쁘게 눈을 흘기고는 가랑이를 파고든 손바닥에다 축축한 보지를 비비면서 키스를 해왔다.


 


‘어쩔 수 없지...’


 


극적인 효과는 줄어들겠지만 정면으로 부딪쳐 흔들어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리를 만들고 나면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자신의 신상에 대한 정보를 넌지시 흘려볼 생각이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럴 경우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첫째는 엄마나 아빠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도 자신의 추측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그 추측이 사실일 경우에 유 자인은 분명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냉혹한 여자라도 일단은 커다란 충격부터 느낄 거다.


또한 두려움도.......


그녀가 지금껏 모진 짓들을 하며 이루어놓은 그 모든 걸 한꺼번에 무너뜨릴 시한폭탄과도 존재가 바로 그였다.


아까 잠시 망설였던 건, 자칫 그녀가 극단적인 반응을 보여 엄마나 아빠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이 죽자는 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매스컴을 통해 밝혀버리는 짓을 할 경우, 상대적으로 잃을 게 많은 사람은 유 자인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완전히 공개하는 방법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녀 남편의 적대세력에게 찾아가 출생에 얽힌 비화를 털어놓고 힘을 빌리면 아마 쌍수를 들어 환영할 테니 말이다.


물론 그 외에도 몇 가지 안전장치를 더해두긴 해야겠지만....


어쨌던 그 모든 계획들은 일단은 먼저 부딪쳐본 다음에야 방향이 결정될 일이었다.


지금 자신이 뭔가에 홀린 듯 보통 때 같으면 하지 않을 판단과 행동으로, 커다란 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재열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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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재열로서도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이제 소현이 돌아올 때가 거의 다된데다 복학준비를 하느라 이래저래 마음이 바빴던 탓이다.


지연의 연락을 받고는 바로 달려왔다.


 


“어디 있어요?”


“응..저기 개인 분장실에...”


“그러면 이제는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요?”


“아니..그럴 필요는 없어..같이 가봐...”


 


비록 유 자인과 여러모로 차이가 난다지만 지연 역시 영화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거물급이었다.


더군다나 구경을 온 김에 선배에게 잠깐 인사를 하겠다는 명분을 대놓고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지연이 유 자인의 매니저에게 몇 마디를 건네자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나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유 자연이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 웬일이야? 여기까지? 호호호~”


 


그 모습을 보며 재열은 두 가지 면에서는 확실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로 아름다운 여자라는 사실, 비록 저 껍데기 속에다 독을 품었든 말았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럴 때마저도 자연스럽게 연기력을 발휘할 정도로 뛰어난 배우라는 점이었다.


저번에 봤던 모습이나 지연에게 미리 들었던 저간의 사정이 아니었다면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믿을뻔했다.


 


“안녕하세요? 선배...우리 재열 군은 저번에 한번 봤었죠? 견학시키러 온 김에 인사도 드리고...”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났다지만 지연의 연기 역시 만만치 않았다.


재열이 했던 말에다가 살을 더 붙여 아주 자연스럽게 식사약속을 받아냈다.


 


“선배님...좋은 말씀 많이 부탁 드립니다...”


“흐음~ 선배? 호~ 꽤나 건방진 애네?”


 


그가 전처럼 과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을 정도로만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고는, 넉살 좋게 말을 붙이자 유 자인의 눈꼬리가 상큼 올라갔다.


하지만 그 정도에 꿈쩍할 재열은 아니었다.


아니, 약간은 일부러 의도한 바였다.


 


“네..비록 아직 첫발도 제대로 못 내디딘 햇병아리지만..일단 이 길을 가기로 마음먹은 이상 전 이미 연기자라고 자부합니다...


그건 제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에는 그 어떤 사람이 부정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선배님이죠...물론 까마득한 대선배이시지만 그렇다고 대선배님이라고 부르면 오히려 거북하실 테니까요...”


“호호~ 점점?”


 


유 자인이 재미있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하기야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건 이미 지연을 통해 한번 검증되었던 사실이다.


여왕처럼 군림하던 오만한 여자들에게는 때로는 이런 발칙함(?)이 신선하게 작용했다.


물론 오버하다가는 자칫 그 자리에서 바로 꺾이겠지만 말이다.


때문에 이럴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어설픈 기교 따위가 아니라 진심을 담는 거였다.


이런 살벌한 세계에서 승자로 살아남을 정도의 역량을 갖춘 만큼 눈치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여자들이었다.


하지만 재열 또한 여자문제라면, 특히나 연상의 여자에 대해선 전혀 꿀릴 게 없는 백전노장이었다.


단순히 몇 명의 여자를 겪었다가 아니라 그가 이루어냈던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면 말이다.


지금은 손에다 칼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아주 살기등등한 진검 승부의 대결이었다.


 


“제 목표는 바로 선배님입니다...”


“어멋! 재, 재열 씨?”


“잠깐, 지연 씨...가만 있어봐...계속해...”


 


그녀의 눈을 뚫어져라 똑바로 쳐다보며 도전적으로 말하자, 옆에 섰던 지연이 화들짝 놀라 재열의 팔을 당겼다.


하지만 유 자인은 그걸 만류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하라는 시늉을 했다.


 


“너무나 건방진 소리겠지만..최소한 그 정도의 목표도 없이 뛰어들 세계는 아닌 것 같아서요...


이왕 포부를 크게 가질 거면 당연히 최고를 꿈꿔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대한민국 최고부자를 목표로 하고..정치인은 대통령이 된 자신의 모습을 늘 머리 속에다 그리겠죠...


그래서 선배님을 목표로...아니...선배님마저 뛰어넘어 진정한 최고의 자리에 서고 싶습니다...”


 


재열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은 채 아주 차분하고 진진하게 말하는 중에도, 자칫 불쾌할 아부가 아닌 기분 좋을 만큼만 적당히 상대를 띄어주는 걸 잊지 않았다.


그 분위기에 압도된 건지 두 여자는 숨소리마저 죽이고 있었다.


번지르르한 말만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각오와 열정 그리고 자신감이 생생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 재열의 진심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게 되고 싶은 진짜 이유는 두 여자가 전혀 몰랐겠지만........


 


“기분을 상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선배님.....하지만 제가 한 말을 물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누나, 미안해요...많이 놀라셨죠?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곤란하게 해드렸네요? 나중에 혼날게요...하하하~”


“어머~!! 누나!?”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는 돌아서서, 지연의 어깨를 껴안아 볼을 비비며 애교를 떨자 유 자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당연히 이것도 어느 정도 계산된 행동이었다.


사실 유 자인이 과거에 했던 짓이나 지금도 그러는 건, 무의식 중에도 지연을 자신의 상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현 위치를 생각할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보이면서까지 경계한다.


그런데 그런 경쟁자가 한참 어린 풋내기에게 안겨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니 큰 충격이었을 거다.


 


“네, 지연 누나는 제게 누나이자 스승이고...사랑하는 연인이거든요...하하하~”


“지, 지연 씨!”


“죄, 죄송해요...선배...너무 흉보지 말아주세요...저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아마 지연을 수시로 체크하느라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잘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도도했던 여왕벌이 지금 재열이 당당하게 연인 사이라고 밝히는데도 수긍해버린다.


이 정도면 유 자연의 호기심을 잔뜩 건드려놨을 게 분명했다.


재열은 슬며시 물러설 타임이라고 판단했다.


 


“누나...우리가 너무 방해한 것 같은데요?”


“으, 응....선배...좀 있다 촬영 끝나고 식사할 때 봐요...”


“알았어...”


“선배님..그럼...”


 


재열은 인사를 하고서 지연과 함께 방을 빠져 나왔다.


 


“아휴~ 심장이 떨어지는 줄만 알았어~”


“후후후~ 미안해요...”


“아니야~ 너무, 너무 멋졌어...역시 자기는 타고난 배우야...호호호~”


 


지연은 페이스가 무너지는 유 자인의 모습이 너무나 통쾌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두 여자는 정말로 닮은 부분이 많았다.


지연도 그 단단하고 고고하던 가면을 벗겨버리자 허둥댔었다.


사람이란 아무리 똑똑하고 잘나도 처음 겪는 일에는 당황하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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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 사이에서 떠도는 공기가 꽤나 부드러웠다.


거기에는 재열이 너무 나서지 않으면서도 중간중간 완충역할을 제대로 한 탓이 컸다.


이야기가 끊어질만하면 유 자인에게 영화에 관련된 질문을 하고, 때로는 재미있는 농담으로 두 여자를 웃기게 만들며 분위기를 유도한 것이다.


게다가 전혀 표가 나지 않게 여자들을 챙기는 수완을 발휘해, 그녀들은 웃고 떠들다가도 어느새 자신의 접시 앞에 먹기 좋게 놓여진 음식들을 발견하고서 감탄하곤 했다.


기분이 좋은 탓인지 술까지 주문해 몇 잔을 마신 유 자인의 눈빛에는 호감의 감정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지연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문득 그녀가 중얼거렸다.


 


“흐음~ 누나라....”


“왜요? 제가 너무 건방진가요? 선배님..”


“아, 아니야...”


 


유 자인이 조금 당황해 하며 고개를 저었다.


재열은 속으로 웃음이 났다.


왜 그 심리를 모를까? 부러운 것이다.


경쟁자 따위를 떠나 순수하게 한 여자의 입장에서만 봐도 말이다.


아들뻘의 남자가 자기 또래에게 사랑하는 여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데다가 누나라고 불러준다.


하물며 그 남자가 슬슬 욕심이 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런 게 사람의 심리였다.


재열이 그걸 생생하게 느꼈던 게 소현을 바라보는 다혜나, 엄마를 향한 장모의 부러움이었다.


적대적이 아닌 우호의 관계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이 경우야 더한 게 당연했다.


 


“사실은 그런 상상을 잠깐 한 적은 있어요...”


“어떤 상상?”


 


재열은 그 특유의 화법으로 서두만 툭 던져 그녀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유 자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하하하~ 제가 나중에 정말로 선배님만큼 큰 배우가 되어서....”


“호호호~ 너무 띄우니까 어지럽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꾸며낸 게 아니라 사실을 이야기할 경우에는 자부심까지 더해져 상대를 즐겁게 만든다.


그녀의 입가로 화사한 웃음이 활짝 피었다.


재열은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애써 다잡았다.


오랜 동안 패륜과 음란함에 물들어버린 탓일까?


유 자인의 아름다움에 눈앞이 아찔해지며 자지가 단단해져 버린 것이다.


생모일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배덕의 성욕을 느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슴에다 비수를 박은 사람에게마저 발정하는 이 미친 피가 너무나 싫었다.


그녀에게 들키지 않게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자연스럽게 선배님을 누나라고 부르는 상상이요...하하하~ 그냥 상상만 한 거니까 너무 화내지는 마세요...”


“호호호~ 왜 화를 내? 상상만이 아니라 꼭 성공할거야...지연 씨가 눈 하나는 아주 정확하니까...”


 


그녀의 성향으로 볼 때 이건 정말 극상의 칭찬이었다.


까마득한 애송이의 건방진 소리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기까지 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어쨌던 굉장히 호의적인 감정을 가진 건 분명했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헤헤거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여기서 멈춘다면 이 정도의 거리에서 영원히 더 이상 다가가기는 힘들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슬며시 미끼를 던지며 크게 한번 흔들어볼 순간이 되었다.


 


“하하하~ 하지만...막상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누나라고 부를 수는 없을 거에요...”


“응? 왜?”


“후후후~ 그냥 그런 게 좀 있어요...”


“지금 여기서 그렇게 부르라고 내가 요구한다면? 그래도 못하겠어?”


 


유 자인은 지금껏 내내 좋았던 기분이 단숨에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목소리에는 날이 섰다.


모처럼 그런 파격적인 호의를 보였는데도, 지연은 누나라 잘만 부르면서도 비슷한 연배의 자신은 안 된다니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하하하~ 아무리 선배님이 누나처럼 느껴져도 엄마의 친구분을 그렇게 부를 수는 없죠...”


“엄마의 친구? 내가? 엄마가 내 친구 중에 누군데?”


“아~ 실수네요...제 말은 그게 아니고....제가 어릴 때부터 선배님이 자기 친구라고 엄마가 종종 자랑을 했거든요...


하하하~ 그거야 사람들이 원래 잘 그러잖아요? TV를 보다가 유명한 사람이 나오면 아이들보고 사실 쟤랑은 학교 다닐 때 참 친했는데 지금은 어쩌고 하는 거...”


“응...그런데...?”


“후후후~ 그게 사실이 아닌 걸 알아도...뭐라고 할까요? 그냥 그렇게 생각해주기로 했었거든요...제가 워낙 효자라서...쿡쿡쿡~”


“나~ 참~ 그래서 엄마친구 같은 기분이 든다는 거야?”


“하하하~ 맞아요...죄송해요...선배님을 보면 자꾸 엄마가 떠올라서...”


“호호호~ 재열 씨, 정말로 재미있는 사람이야...너무 마음에 들어....”


 


그제서야 크게 웃으며 안색을 펴는 그녀, 그때 재열은 슬쩍 결정적인 말을 던졌다.


 


“뭐...그냥...어쨌던 남들이 보기엔 약간 푼수인 울 엄마지만..저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죠...정 혜린 여사....하하하하~”


“누...구?”


“아~ 죄송해요... 엄마를 놀릴 때면 종종 그렇게 불러요...정 혜린 여사라고....제가 좀 버릇없는 아들이죠? 하하하하~”


“..정.....혜...린....”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그녀를 모른 척 외면하고는 술을 따르며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술잔에다 병이 부딪치는 걸 애써 붙들었다.


유 자인, 그녀의 머리 속에서 이제야 조각이 맞춰지고 있을 것이다.


정 혜린이라는 이름과 그의 성인 ‘한’이 말이다.


재열의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술잔을 꽉 거머쥔 채 상만 묵묵히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하려 안간힘을 썼다.


목구멍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결국 그의 예상이 맞아버렸다.


그때 문이 열렸다.


 


“어머? 재열 씨, 취한 거야?”


“아~ 누나? 하..하...낮술이라 그런지 약간 어지럽네요...”


 


다행이었다.


마침 적절할 때 지연이 돌아와준 것도, 유 자인이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라 그를 제대로 못 살폈다는 사실도 말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인데 이 모든 게 계획적이라는 걸 그녀에게 들키면 안 되는 시점이었다.


술을 벌컥 들이키자 짜르르한 느낌이 목구멍을 스치며 한결 차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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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기를 핑계로 자리를 파한 후 2주일이 지났지만 아직은 유 자인에게서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엄마나 아빠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본 다음에야 마음을 결정할 생각이었다.


지연에게는 당분간 그쪽 일에다 신경을 쓰지 말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재열 역시 지금은 그럴 경황이 아니었다.


 


“소..현...아....”


 


카트를 밀면서 게이트를 걸어 나오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하늘하늘한 치마가 감긴 늘씬한 하체와 나시 밖으로 나온 미끈한 팔을 거쳐 위로 올라가자, 챙이 넓은 밀집모자를 쓴 비너스조각상처럼 아름다운 얼굴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재열은 목이 터져라 소리쳐 부르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콱 메어와 모기만한 소리만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작은 속삭임에도 소현은 그걸 선명하게 들었는지 이쪽으로 고개를 번쩍 돌렸다.


그리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짐도 내팽개치고 모자는 뒤로 떨어져 내린 탓에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마구 나부꼈다.


아름다운 천사, 내 아내, 너무나 그리웠던 그녀가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드디어 몸을 날렸다.


 


“흑흑흑~ 자기야~ 앙앙~ 자기~ 자기~ 흑흑흑~”


“흑~ 소현아....사랑하는 내 소현이~ 흑~”


 


자신을 안전하게 받아줄 거라는 걸 한치도 의심하지 않고 다이빙을 하듯이 품으로 뛰어든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부드럽고 따스한 여체가 휘감겨오면서 뜨겁게 입술이 마주쳤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다가 갑자기 하나 둘 박수소리가 들리더니, 곧 요란한 갈채와 함께 휘파람소리는 물론 사진을 찍는지 셔터소리까지 들렸다.


두 사람의 외모나 분위기가 워낙 눈에 띄었는지 영화를 찍는 게 아니냐는 소곤거림까지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재열은 그런 건 전혀 아랑곳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혀를 칭칭 감아 빠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때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두 사람을 떼놓은 건 아주 작은 손이었다.


 


“아빠~ 아빠~ 앙~ 나도~”


“후후후~ 그래, 우리 예아~ 어여차~”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흔들며 자신도 안아달라고 조르는 예아의 귀여운 모습이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엄마의 품에 안겨있다가 시샘이 났는지 어느새 내려와 아장아장 걸어온 모양이었다.


재열은 아이를 들어올려 소현에게 인사를 시켰다.


 


“자~ 예아야~ 엄마한테 인사해야지?”


“엄마~ 안녕~”


 


두 살이 된 예아는 제법 말을 잘했다.


그리고 주변에 엄마가 여럿인 탓에 아무 주저함도 없이 엄마라고 부르고는 팔을 뻗어 소현에게 안아달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소현이 미소를 가득 지으며 건네 받고는 예아에게 뺨을 비볐다.


 


“호호호~ 예아가 정말 많이 컸구나? 안녕~ 우리 딸~”


 


엄마에게 안겨있을 때도 멋졌지만 소현과 예아는 정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젊은 엄마와 예쁜 아이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순간 여기저기서 나오는 탄성과 함께 또다시 셔터소리가 터졌다.


어째 좀 전에 키스를 할 때보다 더 큰 호응을 받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하하하~ 이러다가 우리 식구가 몽땅 스카우트 당하겠구나...빨리 가자...”


“응, 아빠~”


 


소현의 짐을 밀고 온 아빠의 웃음소리에 재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혜는 엄마를 대신해 회사에 남았고, 장모는 너무나 오고 싶어했지만 상훈 때문에 차마 소현을 못 보겠다며 나중에 만나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엄마, 아빠 그리고 예아만 같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것이다.


소현은 아빠와도 뜨겁게 인사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겠지만, 사람들의 눈 때문에 차마 그러지를 못하고 그저 정이 담뿍 담긴 눈빛으로만 회포를 풀었다.


그들은 예아를 껴안은 소현을 둘러싸고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


 


 


오는 도중 재열의 손으로 흠뻑 젖었던 소현의 보지가,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빠의 키스와 함께 또다시 화끈한 환영인사를 받았다.


거실바닥에 선 채 치마 밑으로 들어가 한참을 맴돌다 나온 아빠의 손은 온통 보짓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때 아빠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보고서 재열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빠도 놀랐지?”


“으, 응...근데 그게 뭐야?”


“후후후~ 피어싱이라는 거야...자~”


“어머? 예쁘다~”


 


재열이 소현의 치마를 걷어 올리자 아빠의 눈이 휘둥그래지고 엄마는 탄성을 토해냈다.


털을 완전히 밀어버려 애기처럼 매끈한 보지의 날개 중간쯤에 반지처럼 생긴 금빛 링이 꿰어져 있었다.


사실 그도 아까 차에서 소현의 가랑이에다 손을 넣고는 깜짝 놀랐었다.


단단한 둥근 금속이 그녀의 보지입술 한쪽에서 만져졌던 것이다.


보짓물이 흘러내리는 새빨간 살점이 흐느적거리는 모습과 함께 가느다란 그 금속이 너무나 음란하게 보였다.


 


“이건 언제 한 거야?”


“으, 응...이번에 여행하면서....”


“여행 때?”


“호호호~ 일단은 짐부터 풀고 씻은 다음에 천천히 들어...”


“응, 엄마...미안해..소현아...”


“앙~ 아니야...”


“우리 다 같이 씻을까? 이게 얼마만이야?”


“좋지~ 하하하하~”


 


모두가 훌렁훌렁 옷을 벗어버린 다음 예아도 벗겨주자 새로운 엄마가 마음에 드는지 소현의 품을 선택해 웃게 만들었다.


그렇게 4명은 2년 만에, 그리고 5명은 처음으로 함께 욕실로 향했다.


아마 저녁에는 다혜와 윤지 누나까지 합쳐서 7명이 뜨거운 환영파티를 벌이게 될 거다.


장모 역시 조만간 상훈을 껴안고 저 욕실로 향할 테고 말이다.


재열은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현의 매끄러운 나신에 온몸이 녹아 내리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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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가 드디어 연말의 마지막이군요...

화끈하게 눈으로 마무리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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