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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어느 멋진날 16부


16부


“그런거 아냐.”

당돌하게 묻는 강한별의 말에, 나는 당황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저런 심리전 만랩을 상대로 승기를 잡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적어도 눈에 띄도록 수세에 몰리는 것은 질색이었다. 내 앞에 있는 책상의자에 앉은 그녀는 살짝 다리를 꼬았고, 앉았음에도 전혀 라인이 흐트러지지 않는 얇은 천위로 다시한번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요?”

“묻고 싶은게 있어서.”

“이런 아침 부터요?”

물론 그렇게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직장인이 아닌 대학생들끼리 집에서 만나기에는 상당히 어정쩡한 시간이었다. 더 큰 문제는..나도 내가 왜 그녀를 찾아왔는지 확실히 모른다는 것이었다. 예림이와의 관계가 진해질수록, 이상하게도 해답은 강한별의 쪽에서 보여지는 것 같았다.

“그 사촌오빠를 사랑하지만 증오한다는 건 무슨 뜻이지?”

뜬금없는 내 질문에도, 강한별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마치 내 심리를 읽으려고 독심술을 펼치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예쁘지만 볼 때마다 몽환적인 느낌이 나는..그러니까 나를 보고는 있지만 다른 쪽을 향해 있는 것만 같은 그 눈이 거슬렸다.

하지만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한별은 여유롭게 몸을 일으켜 두 잔의 커피를 타와서 내게 컵을 내밀었다. 예림이와는 달리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파란 커피잔 위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이 매혹적으로 느껴져 그녀에게 잔을 건내받았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라는게 있죠.”

그녀의 말에 나는 하마터면 커피잔을 놓칠 뻔한 것을 겨우 참아내었다. 하필 며칠전에 오유민이 했던 이야기와 왜 비슷한 거지? 나는 그렇게 속고도, 옆방에 오유민이 정말 사는거 아닐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랑 사촌오빠도 그랬어요. 선배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누나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고 했죠?”

나는 대답대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컵을 끌어당겨 뜨거운 향을 풍기는 커피를 한모금 들이켰다. 하얀색 잔 위로 강한별의 입술이 붉은 실루엣을 희미하게 남기고 있었다.

“저 같은 경우는 친척이 없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사촌오빠와 살게 되었어요. 어렸을적에...단 몇 번 보았을 뿐이었던 사람이었죠.”

“당시에는 몇 살이었어?”

“고등학교 2학년이요.”

형식적으로 내가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상하게도, 조용한 어조로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내 머리속에서 그녀가 설명하고 있는 상황들을 알기 쉽게 그려주기 시작했다. 크로키처럼 빠르게 그려졌다 지워진다.

“같이 살게 된거에요. 오빠는 막 취업에 성공한 사회 초년생이었고, 방이 두개 있는 집에서 혼자 살았으니까요. 처음엔 그 오빠도 좋아했죠. 그래도 여자아이가 있으면 밥도 해줄거고, 자기도 외롭지 않을거라면서..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줬어요.”

뭔가..지금까지 강한별과 했었던 대화와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른 대화인것 같았다. 그녀에게서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진솔함’이,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좋았어요. 행복했죠. 부모님이 돌아가신 거..슬픈거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려고 노력해 줬어요. 참 친절한 사람이었고요.”

강한별은 능숙하게 서랍을 열어 담배를 꺼내 들었고, 내 쪽으로 담배갑을 슬쩍 내밀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이야기했고, 그녀는 이번에 담배의 하얀 필터위로 붉은 입술자국을 찍었다.

“그러다가....일이 터졌어요.”

담배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방 안에, 그리고 삼촌의 옷가지속 깊은 곳에 베어있던 그 향수냄새를 조심스럽게 밀어내는 그 희뿌연 연기사이로 강한별의 눈빛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오빠..왜그래..술 마셨어?”

그녀는 사촌오빠인 승준의 행동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내일 학교를 가야 해서 지금 막 교복의 스커트를 다려놓고, 그것을 입어보고 있던 한별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 버렸다. 평소에 상냥해 보였던 승준의 눈빛은 무언가 이성을 잃은 듯했다. 거북한 술냄새가 한별의 코를 확 하고 찔렀다.

“이거이거..한별이 벌써 어른이네? 몸매가 아주 쭉쭉빵빵이고..그렇지?”

“왜이래! 빨리 씻고 방으로 들어가..어?”

평소 자신을 보았던 친절한 눈이 아니라고..한별은 생각했다. 흡사 윤락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를 보는 그런 눈이었다. 자신의 파트너의 몸매를 훑어보는 듯한 기분나쁜 시선이었다. 그 시선은 하얀색 티셔츠 밑으로 교복치마를 걸치고 있는 그녀의 발목부터 머리까지 구석구석 훑어가고 있었다.

“읍! 왜..왜이래! 이거놔! 읍!”

애초에 방안으로 빨리 들어가 문을 잠궜어야 했다. 하지만 한별이 그것을 느꼈을때는 이미 자신은 쇼파위로 몰리고 만 후였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승준은 한별의 가느다란 손목을 쥐고 그녀를 쇼파위로 쓰러트려 버렸다.

“이거이거..가슴 탱탱한거 봐라?”

한별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꿈이라면 빨리 깨고 싶은 악몽이었다. 발버둥을 쳐봤지만, 승준은 한별의 양 손목을 모아 한 손에 움켜쥐고는, 자유로운 다른 한 손으로 봉긋 튀어나온 가슴을 우악스럽게 주무르고 있었다. 그녀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한별의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단 하나..두려움 뿐이었다.

“어우...너 학교에서 인기 많겠다? 응? 가만히 있어봐..오늘 오빠가 회식 때문에 룸을 갔는데 2차를 못나갔거든?? 너 오늘 2차 안된다고 나가버린 그년하고 묘하게 닮은거 같아..가슴 빵빵한거 하며..”

한별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평소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승준이, 자신의 몸을 주무르며 입에 담기 힘든 음담패설을 하고 있었다. 아예 발버둥 치지 못하게 자신의 체중을 실어 누르며, 소리를 지르려는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이러지마..제발..’

한별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글썽거려졌다. 승준의 손은 집요하게 티셔츠 안으로 파고 들어왔고, 브레지어는 그 난리통 속에서 목부분까지 올라가 가슴을 드러낸 후였다. 애욕에 젖어 번들거리는 승준의 입술이 자신의 몸을 핥고 빨기 시작할때에, 한별은 그만 아득한 깊은 곳으로 정신을 놓고 말았다.

“하지마..하..흑!”

방금 막 다려놓았던 교복 치마가 다시금 구깃구깃해져 바닥으로 던져졌다. 필사적으로 팬티가 벗겨지는 것을 막으려 있는 힘껏 다리를 오므렸지만, 허벅지를 잡고 벌리는 남자의 힘을 당해낼 제간이 없었다. 승준의 옷도 벗겨지고, 마지막으로 욕정에 절어서 잔뜩 발기된 자지를 보았을때에, 그녀는 그만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한별이는 쑥맥 여고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또래에 비해 첫경험도 빨랐고, 예쁘장한 외모 덕에 남자도 쉽게 사귀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승준의 돌변한 모습은 그녀의 모든것을 붕괴시키고 있었다. 조금의 복선도 존재하지 않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어후.,강한별 봐라? 아주 밑에가 축축하게 젖었네? 응? 니가 아까 나 퇴짜놓은 그년이지? 응?”

승준에게 그 말을 들었을때, 한별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머리속에 들어오는 거부감과 혐오감을 비웃듯, 자신의 몸은 능숙한 승준의 손길에 금방 흠뻑하고 젖어버린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말을 실감할 때 즈음, 자신의 몸위로 걸쳐진 천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흑!”

되돌릴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승준은 잔뜩 흥분한 자지를 연약한 속살속으로 인정사정없이 집어넣어 버린 것이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유독 발달한 골반, 때문에 옷 맵시가 산다고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샀던 그녀의 허리는 그저 승준의 성적 욕구를 부추기는 도구가 되어 더럽혀지고 있었다.

“흑!하응!하아앙..아..안돼..하지마..흑!”

분명, 한별은 그때 승준이 술이 깨어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거의 확실해 보였다. 술에 취해서 풀려있던 두 눈에 욕정만이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사촌동생과 섹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해도, 이미 일은 돌이켜질수 없었다. 쉴새 없이 승준의 몸뚱아리를 밀어내던 한별의 손은 어느덧 그의 등을 움켜쥐고 있었고, 둘의 시선이 어느 시점에서 딱 하고 맞은 순간 그들의 혀는 서로 뱀처럼 얽히며 서로를 조여가고 있었다.

“아..안돼에..흑!..아..”

한별이의 몸에서 나온 애액이 쇼파 위 구석구석으로 튀기 시작했다. 나란히 앉아 그 날 하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며 웃기도 하고, 혹은 같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던 쇼파는 순식간에 서로의 알몸을 탐하고 느끼기위한 침대로 변해 버렸다. 승준이 한별의 몸속에서 수십번의 왕복운동을 하다가 그녀의 젖은 몸을 잔뜩 끌어안았을 때는, 뜨거운 그 무언가가 한별의 몸안으로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아아..”

한별은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꽉 껴안은 승준이, 흥분이 가득담긴 깊은 심호흡을 자신의 귓가로 토해내고 있었다. 도톰한 허벅지위를 짓누른 승준의 하체가 부들부들 떨리며, 진하고 뜨거운 그 무언가를 자신의 몸안으로 아낌없이 뿌려대고 있었다. 후회하고 곱씹기엔..너무나 늦어버린 것이었다.




*
“과정...차라리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이 있었더라면 미리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과정이 없었죠. 아니, 오히려 그날의 일이 내가 그 사람에게 애증을 느끼는 과정으로 작용했을 지도 모르구요.”

이야기를 마쳤을때 즈음엔, 한별이가 들고 있던 담배의 필터위로 긴 담배재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해준 이야기는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몸이 으스스하고 떨렸다. 아련한 흥분이었다.

“그럼..그 이후로..어떻게 되었는데?”

“오빠가 술마시는 날이 늘어났지요. 덧붙여서..”

물기에 젖은 티슈가 깔려있는 재털이 위로 담배가 비벼지며 치익하는 소리를 내었다. 강한별은 약간 낮은 톤으로 말을 이었다.

“술에 취한 척 하는 날도 늘어났구요.”

표정관리를 하려 애를 써야만 했다. 그녀가 말한 것의 속뜻을 이해 못했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별이의 사촌오빠라는 사람은 술에 취해있다는 것을 빌미삼아 몇번이고 한별이와 몸을 섞었다는 이야기였다.

“거부할수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원했던 적도 많았죠. 사촌오빠를 사랑하게 된 거에요.”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는 그녀와, 그녀의 말을 경청하는 내 모습이 남들이 보기엔 미친 모습으로 보일지 몰랐다. 하지만 침묵속에서도 나와 강한별 사이에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지고 있었다. 이야기하는 그녀도, 듣고 있는 나도..충분히 그 당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사람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어요. 어린 마음에..사촌오빠와 연인사이가 될 수 있을거라고 착각한 거죠.”

역시나 강한별이 처음부터 저런 시크한 여자애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 것일까? 아마도, 그녀의 원래 성격과 지금 내 앞에서 보이는 그녀의 성격사이에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많은 일들이 벌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던 나는 그만 움찔하고 말았다. 무표정하던 강한별의 얼굴에서, 순간 분노와 증오심 비슷한 것이 얼핏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 그녀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내가...그 사랑을 표현했을때 그 사람은 저에게 뭐라고 한 줄 아세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내 대답이 필요없는 질문이었다.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나와 너는 가족이라고. 실수가 몇번 일어났다고 해서,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요.”

내 속이 아득하게 답답해져 왔다. 그 어떤 이유를 생각해 낸다 하더라도 반박할 수 없는 철통같은 방어였다.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로, 강한별의 마음은 짓밟혀진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어쩌면 영원히 예림이를 잃을 수도 있는 길에 스스로 발을 대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를 사촌오빠라 생각하며 강하게 끌어안았던 그녀의 뒷배경에는 가시와도 같은 무언가가 찔러대고 있었다.

“선배.”

이제는 더이상 한별이의 몸매를 훑어보지 않게 되었다. 진지한 대화가 내 태도도 진지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내 속을 탐색하는 듯한 그 야릇한 눈빛을 그대로 받아내며, 나는 그녀 쪽으로 얼굴을 들어 올렸다.

“인질극을 본 적이 있나요?”

“인질극?”

“네. 영화에서 나오는.”

“응. 물론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범인이 한 명의 인질을 잡고 경찰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이미 승기는 인질범이 아니라 경찰이 쥐고 있다는 생각 해본적 있어요?”

“뭐?”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내 눈빛이 흔들렸다. 내 손에서 느껴지던 커피잔의 온기도, 이제는 꽤나 식어버린듯 차갑게 느껴졌다.

“범인은 절대 인질을 죽일 수 없어요. 그렇게 되면 경찰과 대응할 무기가 아무것도 없어지니까요. 다수의 인질을 잡고 있다면 모를까..한 명이라면 꽤 힘들죠. 인질은..범인이 갖고 있는 비장의 카드이자 도주로니까요.”

“무슨말이 하고 싶은거지?”

한동안 저 편에 밀려나 있었던 그 향수의 냄새가 다시금 풍겨오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어왔다. 긴 속눈썹에 쌓인 요염한 눈빛이 측은함을 담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눈빛이 묘하다고 생각할 때즈음, 강한별은 입술을 떼며 내게 물어왔다.

“선배는 지금...도망칠 길을 만들어 두고 있나요?”




캠퍼스는 술렁이고 있었다.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고등학교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고등의 이론들을 꾸역꾸역 머리속에 넣어야만 했던 신입생들도, 그리고 처음으로 후배라는 존재를 받아봐서, 얼른 선배행세를 하고 싶어하는 2학년들에게도 연합엠티라는 것은 꽤 설레이는 모양이었다. 특히나, 내가 속해 있는 곳은 사회 과학대에서도 재미없기로 유명한 경제학과이기 때문에 그것이 더 심한 듯해 보였다.

경제학과 2학년들-대다수의 남학생들-은 벌써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하거나 혹은 그 이하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동기들에 비해, 1학년중에는 꽤 귀여운 혹은 예쁜이라는 수식어가 붙을수 있는 여자애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오유민이 동행한다는 소리에 몇몇은 벌써부터 엠티의 조를 편성하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너도 갈거지 한별아?”

나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2학년 남자들은 ‘강한별 파’와 ‘오유민 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대게 강한별을 좋아하는 녀석들은 그녀의 세련된 옷차림과 섹시한 이목구비에 관심을 보였고, 박인재가 주축이 되어 있는 오유민 파는 깜찍한 외모와 귀여운 옷차림, 그리고 눈웃음에 환장하는 부류들이었다. 지금 한별이에게 묻고 있는 2학년 집행부녀석 역시 강한별 파였다.

“선배. 연합엠티 가나요?”

부득이하게 나와 나란히 등교를 하게 된 강한별은, 자신에게 질문한 2학년 선배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내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놓고 느껴지지 않지만, 은근히 온몸을 엄습하는 살기어린 시선들이 내 쪽으로 우르르 몰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보니, 저 계집애 이것 역시 작정하고 하는 짓인 듯했다.

“어. 갈거야.”

“그럼 저도 갈게요.”

어울리지 않는 밝은 미소까지 띄우며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 동기녀석은 기뻐하지도 노여워하지도 못하는 찝찝한 표정으로 나와 강한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늦게 강의실에 들어온 오유민이 쪼르르 다가와 내 옆자리에 가방을 올려놓았을때엔, 그 시선들에 인재의 시선까지 포함되어 버린다. 나보고 어쩌라고.

다행히도 곧바로 들어온 교수에 의해 수업은 시작되었다. 빔 프로젝트 스크린위로 띄워진 파워포인트에 의한 수업이 진행되었고, 어두어진 조명을 틈타 몇몇은 슬슬 고개를 책상쪽으로 처박기 시작했다. 미시경제학의 다양한 이론들, 그리고 그 이론에 의해 결과가 어떤식으로 도출되는지를 설명하는 수업이었다. 아니, 그런것 같았다.

도무지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냥 여느 아이들과 똑같이, 그저 새학기를 시작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 상황은 여느 아이들과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예림이의 얼굴과, 내 옆에 앉은 오유민의 얼굴. 그리고 강한별의 얼굴과 숙모의 얼굴. 마지막으로 삼촌의 얼굴이 순차적으로 내 머리속에서 떠올랐다가 지워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예림이와 있었던 몇차례의 위험한 일들이 떠올랐다. 그녀의 차가운 손이, 잔뜩 흥분한 내 것에 닿았을때의 떨림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강한별이 해줬던 이야기와는 달리, 나와 예림이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그어진 선을 지워가고 있었다. 속옷 차림에서 알몸으로, 그리고 천천히 서로를 터치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강한별이 했던 충고는 내 마음속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지만, 내 호기심은 그 경고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다음단계를 궁금해 하고 있었다. 마치 퀴즈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지금까지의 단계를 클리어 해 온 나에게 다음 단계에 도전하겠냐고 묻는 듯했다. 다음 단계에서 탈락하면 지금까지 쌓아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지만,만약 통과한다면 더 큰 것을 댓가로 주겠소 하면서 내게 거래를 요청하고 있었다.

흔들리기엔 너무나 늦어버린 것이었다. 내 후배지만, 나와 같은 상황을 겪었던 부분에서는 나보다 선배인 강한별이 했던 충고는 조용했지만 어느 정도의 힘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수 있을까? 하고 자문했을때는 자신감을 상실한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사랑스러운 그 작은 몸을, 그리고 너무나 귀여운 그 모습을 보고 한집에 살면서, 그냥 덮고 지나갈 용기가 서지 않았다.

‘도망칠 곳..’

문득 나도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려, 교수의 말에 경청을 하며 필기를 하고 있는 오유민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작고 하얀 손이, 내게도 익숙한 그 볼펜을 쥔 채로 하얀 노트위에서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누가봐도 여자글씨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귀여운 글씨체가 깔끔하게 노트위로 정리되고 있었다. 여전히 하얀 피부. 그리고 목 부분을 겨우 넘어가는 짧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알지 못하는 오유민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크고 동그란 눈이 내가 사랑하고 또 나와 같이 살고 있는 한 여자의 눈과 너무 닮아 있다.

어쩌면...내 도주로는 오유민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내 모습에, 숙모는 놀란듯 눈을 크게 뜨며 웃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카페테리아 앞에서 서성인 끝에, 퇴근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 기다렸어요?”

숙모는 더 옷차림에 신경을 쓴 듯한 모습이었다. 전에도 곱고 예뻤지만, 뭐랄까 더 젊어진 복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스러운 코트 대신에 무릎 위까지오는 긴 슬리브의 붉은색 니트를 걸친 그녀는, 바지 역시 다리에 살짝 달라붙는 청바지 차림이었다.

“와. 여대생이라고 해도 믿겠는데요?”

“또..자꾸 그렇게 거짓말 할래요?”

나를 보며 살짝 눈을 흘기는, 곱게 화장까지 한 숙모의 모습을 본 내 감상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옷입는 센스가 있다고 생각은 했었는데..저렇게 마음 먹고 꾸미니 파릇파릇한 여대생들에게도 전혀 뒤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자신을 기다렸냐고 내게 물었지만, 사실 오늘 숙모와의 만남은 약속이 되어 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약간 떨어져 있던 나와 숙모의 거리는, 이제는 팔끼리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었다. 캠퍼스 안을 오가는 수많은 커플들의 사이에 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녀의 모습에 미소가 띄워졌다.

“이상하지 않나요?”

“뭐가요?”

“제가 수업이 끝날때쯤엔 숙모도 일에서 끝나잖아요.”

“선수들에게는 그런 환경이 잘 조성되는가 보죠 뭐.”

“에휴.”

“어어? 그 한숨의 의미는 뭐에요?”

“선수라는 말은 저랑 안어울려요.”

이제는 아예 겨울의 칼바람이 한참이나 뒤로 밀려나버린 미지근한 거리 위를 숙모와 걸었다. 숙모는 근처 번화가에 가보고 싶다며 내게 졸랐지만, 혹시나 강한별과 삼촌이 오늘도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다른 방향에 있는 번화가 쪽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근데 진짜 오늘 저 만난다고 그렇게 젊게 입은 거에요?”

“그럼요. 열 살 어린 남자와 데이트하는데..여자가 늙어보이면 남자에게 실례잖아요.”

“데이트?”

그녀를 놀리기 위해 잔뜩 정색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숙모는 예상외로 당황하지 않고 베시시 웃기까지 했다. 처음 우연히 카페테리아 앞에서 마주쳤을때에 어색함이 대부분이던 그 얼굴과는 너무나 다른 밝고 수줍은 얼굴이었다.

“데이트죠.”

“에이. 유부녀가 데이트는 무슨...”

“어머? 삼촌도 젊은 여자 만나는데 나는 뭐 그럼 안되나?”

“에에?”

이제는 곧잘 저런 농담까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숙모의 모습에, 한껏 오버하며 반응하는 내 모습을 본 그녀는 소리를 죽여 웃었다. 슬며시 내 팔에 껴진 그녀의 팔의 감촉이 싫지 않았다.

숙모는 너무나 즐거워했다. 근처 분위기 있는 커피숍에가서 커피를 마시고, 번화가에 있는 노점상들을 구경하는 것조차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짜릿한 일탈로 느껴진다는 생각에 괜시리 입맛이 씁쓸해졌다. 간혹가다 사람들에게 떠밀리는 그녀의 어깨를 슬며시 내쪽으로 끌어당기기도 하고, 손목을 잡아 당기기도 하는 자연스러운 접촉에도 숙모는 더이상 움찔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와아..정말 오랜만인거 같아요.”

“숙모도 가끔 이렇게 나와서 놀고 그럼 좋잖아요.”

“같이 놀 사람이 없었는 걸요.”

“에이. 이제 제가 있으니 괜찮아요.”

시끄러운 음악이 연신 흘러나오는 곳이 아닌, 구석에 위치한 조용한 바에 나란히 앉은 나와 숙모는 뽀얗게 거품이 일어난 맥주잔을 들고 웃고 있었다. 예림이나 오유민과는 달리 영화를 보거나 하지 않아도, 그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즐거운 모양이었다.

이런게 좋았다. 적어도 숙모와 함께 있으면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동경하던 연예인과 같이 한 자리에 있다는 느낌. 그 설레임과 성취감 이외의 다른것들이 떠오르지 않아 좋았다. 아주 훌륭하게 ‘둘만의 공간’이 너무나 잘 이루어지는 상대가 바로 숙모인 것이었다.

“고마워요.”

“뭐가요?”

뜬금없는 말에 내가 살짝 고개를 드니, 맥주만 마시고도 얼굴에 잔뜩 오른 열기를 식히는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여러가지로요. 나랑 놀아주는 것도 고맙고, 삼촌이 밖에서만 내도는 걸 신경쓰지 않게 해줘서 고마워요. 번개..가 무섭지 않게된 것도 고맙고.”

고등학교때에, 내 마음속에 있던 천사가 이토록 매혹적인 느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난 왜 몰랐을까? 아, 물론 알았다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요새도..삼촌 밖으로 자주 나가나요?”

“네. 오히려 더 심해요. 아침에 저 출근할때는 늘 자고 있고..”

“그럼 카센타는 어떡해요?”

“장사는 하는데..오후에나 일어나서 가게에 나가요. 이미 일을 하고, 성실하게 가장 역할을 하는 것에 흥미를 잃은것 같아요.”

“그렇군요.”

확실히 삼촌이 강한별에게 푹 빠져 사는 게 맞는 모양이었다. 그럴수록 그의 주머니는 점점 비어져 갈것이고, 사촌오빠에 대한 배신감때문에 자신이 어긋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강한별은 점점 더 타락하겠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경제학의 원리로 설명가능하다. 하나의 사건은, 반드시 한 개 이상의 결과물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냥..나 포기할래요. 삼촌을 놓아주는게..나을지도 몰라요.”

“이혼..한다는 건가요?”

“아니오. 그럴 자신은 없네요..”

“그럼요?”

“그냥..집착하지 않겠다라는 표현이 옳을지도..”

“숙모는 아이를 갖고 싶어 했잖아요. 아니, 지금도 바라지 않나요?”

“글쎄요. 그건 그냥 내 소망이고..바람일 뿐이지요. 삼촌이 가정에 아예 관심이 없는데..불가능할거 같아요. 예영이가 낳아줄래요?”

“풉!”

“하하하..농담이에요.”

“...숙모 진짜..”

좀처럼 농담을 하지 않을것 같은 그녀의 말은, 목구멍을 넘어가던 맥주들을 역류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농담을 한 자신도 민망했는지 얼굴을 더욱 붉게 물들이며 웃는 숙모의 모습에 나도 그만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삼촌은..숙모 말대로 아마 밖에서 어린 여자를 만나고 있을거에요.”

“음? 예영이가 봤나요?”

그녀의 눈빛이 삽시간에 초조해 지는것 같아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진실게임에서 알 수 있듯이, 때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다.

“그냥. 남자의 직감이죠 뭐.”

“피. 그런게 어딨어요? 여자의 직감이라면 모를까.”

“아니에요. 정말 그런거 있어요.”

“우리 조카님 여학생들에게 인기 많죠?”

“오늘따라 숙모님이 자꾸 뜬금없는 질문을 하시네요.”

“예영이 남자답게 생겼잖아요.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네. 저는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얼굴이거든요.”

“씨..진짜..”

내 얼굴을 보며 눈을 흘기는 숙모의 말에 킥킥 거리며 웃었다.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입술을 삐죽 내미는 그 모습이 소녀처럼 귀엽게 느껴졌다. 바 안으로 흘러내려가는 재즈음악이, 그런 그녀의 모습과 묘하게 어우러진다는 느낌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저도 하고 싶은대로 할거에요. 삼촌 눈치보지 않고..무서워 하지 않고..저를 좀더 꾸미고, 가끔은 예영이랑 이렇게 나와서 놀기도 하고 싶어요.”

“정말..잘생각했어요. 진심으로요.”

“예영이 때문에 이런 생각하게 되었는걸요 뭐.”

우리는 또 서로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긴 머리칼 안으로 보이는 하얀 목선과, 그 곳에 걸려있는 작은 팬던트의 목걸이가 왠지 모르게 섹시하게 느껴졌다.

뿌듯했다. 그제서야 숙모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가정에 관심없는 철없는 남편의 아내로 고생만 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여자였다. 매연 풍기는 콘크리트 보도 블럭의 틈사이에서 자라는 잡초의 꽃이 아니라, 싱그러운 화단의 한 자리를 지켜야만 할 것 같은 꽃이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어서 빨리 삼촌에게 패배감을 안겨주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올랐다.

“계산은 내가 할게요.”

내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숙모는 우리가 마신 맥주의 술값을 지불해 버리고 말았다.나무로 만들어진 좁은 계단과, 눈에도 잘 뜨이지 않는 자그마한 출구를 통해서 밖으로 나왔을때는, 이미 하늘은 잔뜩 어두워져 초저녁으로 진입해 있었다.

“이제..어디로 갈까요?”

내 어깨부분의 옷자락을 살짝 잡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렇게 묻고 말았다. 들어올땐 밝아서 몰랐지만, 나와서 보니 우리둘의 앞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온통 어둠을 밝히는 모텔의 네온싸인 불빛듯뿐이었기 때문에 민망해진 탓이었다. 시내의 구석진 곳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숙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몇번이고 머뭇거리더니, 형식적으로 휴대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했다. 삼촌으로 부터 찾는 연락조차 없는 모양인지, 그녀는 속삭이듯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냥..집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아요.”





“305호 실입니다.”

쭈뼛쭈뼛.

나와 숙모의 움직임을 묘사하는데 그것 이상의 의태어는 없을 것이었다. 어두 컴컴한 조명, 그리고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프론트의 자그마한 구멍을 통해 조그마한 카드가 달린 키와, 일회용품이 들어있는 비닐팩이 쑥 하고 내 쪽으로 밀어졌다. 숙모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나는 어색하게 숙모의 손목을 잡고 엘레베이터로 향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모텔의 내부는 생각보다 어두웠고 또 조용했다. 그렇게 누군가의 제안이 아닌 무언의 합의로 들어선 우리 둘은, 엘레베이터가 멈추고 객실에 들어갈 때까지,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에?”

“왜..그래요?”

“이거 불이 안켜지는데요.”

“정말요?”

그제서야 숙모도 입을 열며 표정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문을 열고 들어가 벽에달린 버튼 몇개를 꾹꾹 눌러보아도 불이 켜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거 왜이러죠? 고장인가?”

내 말에 덩달아 숙모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벽 한구석에 달린 버튼들을 하나씩 눌러보기도 하고, 또 다른 스위치가 없는지 어둠속을 더듬어 찾아보기도 했지만 어두워진 방안의 조명을 밝힐 방법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심지어 욕실불까지 켜지지 않으니 난감하기만 한 상황이었다.

“숙모도 몰라요? 왜그런지?”

“네. 삼촌하고 연애할때는 모텔에 다닌적이 없어요. 한 번 간적은 있지만 그때는 바로 불이 켜지던데요?”

“이..이건가?”

문득, 마치 무언가를 꼽게 되어 있는 듯한 플라스틱 구조물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열쇠뒤에 달려있는 카드를 그 부분에 갖다 대었고, 그 얇고 길쭉한 구멍속으로 카드는 아주 손쉽게 쑥 하고 들어갔다. 순간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방의 불이 일제히 켜지자, 나와 숙모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훕..푸하하하하!”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웃겨져 버려서, 나는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잔뜩 조성된 긴장감속에서 불을 켜는 스위치 조차 찾지 못하고 어리바리한 행동을 보였던 것 때문에 웃음이 터진 것이었다. 숙모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더니, 이윽고 쿡쿡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우와아..”

모텔의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꽤 좋았다. 넓직한 퀸 사이즈 침대와 함께, 벽에는 우리집 것보다 네 배는 커 보이는 LCD 티비가 매달려 있었다. 붉은 패턴의 고급스러운 벽지에, 한쪽에는 컴퓨터까지 놓인 모습에 나는 그만 입을 쩍 하고 벌려 버렸다.

“굉장히 좋네요. 모텔이라는 곳.”

내 중얼거림에 숙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창문 위로 드리워진, 나무로 되어있는 조그만 버티칼을 만지작 거렸다.

“완전히 외부와 단절이 되는 공간이네요.”

그녀의 말이 공기를 조금 더 무겁게 하고 있었다. 번개가 치는 날에 일어났던 그 날의 기억과는 너무나 다른, 우발적이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 천둥번개 치던 날이 오늘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작용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삼촌과 강한별이 들어갔던 모텔도 이런 구조일테지. 삼촌으로 부터 돈을 넘겨받은 강한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앞에서 옷을 벗었을 것이고, 삼촌은 지불한 만큼 욕구를 풀며 즐겼을 것이다. 나처럼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숙모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벽 쪽으로 다가가 불을 꺼버렸다. 은은한 취침등이 천장의 네 귀퉁이에서 붉은 빛을 뿌리기 시작했고, 창가에 서있는 숙모의 허리를 뒤에서 부터 끌어안았다.

“나 이래도 되겠죠?”

속삭이듯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아무런 말도 해줄수 없었다. 그 물음에 답에 대해서는 우리 둘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해답을 부정하고 싶기에 우리는 모른척 하는 것 뿐이었다.

보통은 이런데에 들어와서 샤워부터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고 참을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한층 얇아진 옷을 벗는 것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고, 숙모는 내게 등을 보인채로 잠자코 기다려 주는 듯했다.

“하아..”

내 손이 그녀의 니트 안으로 파고들고, 가냘픈 목에 입을 맞추었을 때에 들려오는 떨리는 목소리가 나를 설레게 했다. 그녀는 한참이나 사랑을 나누지 못했던 30대의 여성이었고, 잊고만 있던 그 기억을 얼마전에 다시금 떠올리기 된 여인이었다. 뜨거워지는 것은..너무나 빨랐다.

숙모의 몸이 빙글 하고 돌아 내 입술을 찾았다. 놀랍게도 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변한 그녀는 서서 키스를 나누는 그 와중에 자신의 하얀 손을 밑으로 늘어뜨려 내 중심부를 더듬어 가고 있었다.

참을수가 없었다. 니트를 벗겨내고, 브라 마저도 집어 던지듯 풀어헤쳤을 때에, 골반위에 걸쳐진 청바지 위로 수줍은 알몸을 드러낸 상반신이 너무나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침대가 아닌 창가에 그녀를 몰아 세우고는, 나는 빠른 속도로 숙모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때..숙모 처음 봤을때부터..이렇게 하고 싶었어요.”

내가 하는 말이 마치 자극적인 속삭임이라도 되는 양, 숙모는 내 말 하나하나에 몸을 부르르 떨며 반응해왔다. 빳빳하게 일어선 젖꼭지가 내 가슴에 뭉글어지는 느낌이 짜릿했다. 입술과 목에 번갈아 입을 맞추며, 그녀의 다리위로 달라붙어 있는 청바지를 벗겨 버렸다. 내가 쪼그려 앉으며 그녀의 바지를 내렸을 때에, 그녀는 내 어깨에 살짝 손을 얹고는 다리를 들어 잘 벗겨져 나가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아..진짜 너무 예뻐요.”

진심어린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아득하게 뻗은 가녀린 다리와, 조금 마른듯 하지만 글래머러스한 그녀의 몸매는 분명 악당이 갖기엔 아까운 것이었다. 다리사이에 손을 대었을때에 벌써부터 촉촉하게 젖어있는 그녀의 속살이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그녀를 와락하고 끌어 안았다.

“흑..흐응..”

푹신한 침대위로 우리 둘의 몸이 던져져 나뒹굴렀다. 정숙하고 청초한 모습의 숙모는, 그와 반대되는 요염함 까지도 갖추고 있는 여자였다. 물론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이 사랑보다는 동경이나 욕망에 가까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내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 필요성은 없어지는 것이었다.

“수..숙모..”

한참이나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던 우리의 자세가 고정되었고, 내 입가에는 당혹스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내 다리사이로 얼굴을 묻은 그녀의 행동 때문이었다. 놀라워 할 틈도 없이, 빳빳하게 올라선 불기둥은 숙모의 분홍색 입술 사이로 스르르 빨려 들어갔다. 몇 십개의 촉수가 움직이는 듯한 아련한 기분에 그만 발딱 들었던 고개를 베개사이로 묻어버렸다.

“쭙..쭉..쪽..”

눈까지 감은 숙모의 얼굴이 위 아래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아직도 탱탱하게 유지되고 있는 그녀의 가슴을 어그러뜨렸다. 머리속에서 쾌감 이상의 그 무언가가 번뜩 하고 스쳐지나갔다. 처음 숙모와 그런일이 있었을때는 그저 내 돌발행동으로 일어난 일이었다면, 지금은 그녀도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상호교류가 되어있는 것이었다.

“흐응!”

도톰한 입술로 귀두 부분을 핥고 빨던 숙모의 몸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이 내 몸위로 미끄러져 올라왔다. 창가쪽에서 한참이나 온몸을 주물르고 비벼대었던 내 행동 덕분일까, 그녀의 입구는 이미 잔뜩 젖어있는 상태로 날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한별보다 훨씬 어설퍼 보이는 자세였지만, 이미 최대치로 흥분해 있는 자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숙모의 몸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아아아..흑..흐응..”

그녀의 몸이 내 몸위에서 흔들리며 춤을 추었다. 내 어깨에 손을 디디어, 천천히 엉덩이 쪽을 들썩거리는 그녀의 행위에 온 몸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30대 유부녀의 몸이 이렇게 깨끗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내 몸위에서 올라타서 눈을 감고 있는 숙모의 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조금씩 호흡이 맞아가고 있었다.

강한별이 너무나 능숙한 탓에, 남자와 여자가 몸을 섞을때는 일종의 리듬이 존재한다는 것을 잠시 잊었던 모양이었다. 강한별은 그 리듬을 맞춰주는 데에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여자애라고는 믿을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숙모는 뭔가 어설펐다. 그녀의 성격처럼, 처음 그녀와 쇼파에서 섹스를 했을때 수동적으로 대처하며 몸을 비틀 뿐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어설픔이 조금씩 사라져 가면서, 숙모와 나의 행위는 조금씩 리듬감이 생겨나며 쿵짝이 맞기 시작한 것이었다.

“흐응..아아아..흑..어떡해..흑..”

참을수 없어 벌떡 일어나 그녀를 침대에 눕혀 버렸다. 잠시나마 내 불기둥이 빠져나간 그녀의 도톰한 보지틈사이는 살며시 벌어져, 촉촉해 보이는 애액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쇼파 위에서 그러했듯이, 나는 그녀의 몸에 살며시 체중을 실으며 안으로 진입했다.

“흑!흐으응..”

짜릿했다. 내 움직임 하나하나에, 숙모가 느끼고 있다는 것이 똑똑히 보이는 것은 짜릿함이라는 단어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었다. 내 손길이 지나갈때마다, 혹은 내 허리가 움직일때마다 그녀의 몸은 이리저리 비틀리며, 내 자지를 조이는 힘에도 더욱더 무게가 실렸다.

“아앗..아파요..흑..흐응..”

찰싹찰싹 하는 소리가 객실안에 메아리쳤다. 내 허리에 그녀의 다리가 슬쩍 감기며, 더 세게 해달라고 채찍질을 하는것만 같았다. 내 턱선을 타고 떨어진 땀방울이 그녀의 배꼽과 가슴 언저리에 뚝뚝 떨어졌다.

“아앙..아아..아으..흐응..”

내 몸은 더욱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이, 사정을 앞두고 하는 행동이자 습관이라는 것을 지난번 그 날의 일로 숙모도 파악한 모양인지 내 목을 강하게 끌어안는다.

“헉..허억..나..할것 같아요.”

“예..예영이는..흐응..혈액형이 뭐에요?”

“네?허억..허억..O형이요.”

왜 갑자기 그런것을 묻는 것일까. 하지만 그 의문을 밀어내며 강한 쾌감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숙모의 신음소리가 그녀의 청순함을 밀어내며 요염하게 바뀌어 간다. 그녀의 몸안에서 몇십번이고 왕복한 불기둥을 꺼내려는 찰나, 내 허리를 감은 그녀의 다리가 나를 조이며 침대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차 싶을때에 뜨거운 무언가는 뿜어지고 있었고, 나는 아직도 그녀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그녀의 속삭임을 들으며, 나는 헛숨을 삼키면서 그 눈부신 알몸위로 주저 앉았다.

“그럼..흐응..안에다 해도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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