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바라기 (2)
2)
“ 왔어...종규야....”
“ 어~ 그래...민아...어서 와....자식~ 응?”
아직 애들이 모이진 않았는지 혼자서 TV를 보고 있던 종규가
손을 흔들다가 지민을 보고는 놀란 듯이 눈이 커지더니 우뚝 멈추었다.
“ 야~ 강 지민..맞지?”
“ 으, 응...반가워....”
“ 그래...잘 왔어...민이 이 자식...보기보다 대단한데?”
“ 임마...헛소리 말고...딴 애들은?”
“ 응...조금 있으면 올 거야...”
민은 조금 놀랐다.
종규가 지민을 알고 있다니....
“ 야..민아...나가서 담배나 한대 피자....”
“ 괜찮아...그냥 여기서 피워....”
“ 하하...됐어...어차피 애들이 오면 굴뚝이 되긴 하겠지만...그래도 지금은 나가 피워야지....”
“ 그래..나가자...지민아...잠깐만 TV를 보고 있어...”
“ 응...민아...”
지민도 자신이 담배를 배웠다는 걸 알기에 그냥 안에서 피우라고 했다.
하기야 그래서 자신이 종규 패거리와 어울리는 걸 더 싫어하지만....
그것보다는 종규가 지민을 배려하는 게 더 놀라웠다.
그 동안에 다른 여자애들과 어울리면서 전혀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민은 자신을 생각해서 나름대로 신경을 써주는 종규가 고마웠다.
종규의 평상시 모습은 여자를 배려하기는커녕 꽤나 무례하고 난폭하게 대했다.
“ 후~ 임마...뒷구멍으로 호박씨는 다 까고 다니네?...저런 새끈이를 언제 꼬신 거야?”
“ 으, 응...원래 어릴 때부터 알았어...그런데 넌 지민이를 알고 있었어?”
두 사람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자식이? 당연히 알지, 임마...아마 우리 동기들 중에 모르는 놈이 없을 걸?”
“ 그, 그래?”
조금 아니 많이 놀랐다.
지민이 인기가 있는 건 알았지만 2학년 초에 자퇴를 해버린 종규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다니...
민은 왠지 우쭐해지는 것 같았다.
“ 먹었냐?”
“ 너 이 새끼...”
“ 아~ 됐어...말을 안 해도 알겠다...하여간에 범생이 놈 아니랄까 봐...킥킥킥...”
순간 울컥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특별히 악의가 있다거나 지민을 가볍게 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냥 평상시 하는 말투가 그럴 뿐이었다.
뭐...이 패거리들과 어울릴 때면 자신 역시 스스럼없이 그런 말들을 하곤 하니까....
그것보다는 오늘따라 자꾸만 지민에게 두근거리는 자신의 내심을 들킨 것 같아 당황했다.
“ 안 봐도 뻔하지....만날 혼자 딸딸이나 쳤겠지...뭐...쪼가린 빨아봤어?”
“ ...그냥...”
“ 흐흐...그래도 아주 순딩이는 아닌데?”
역시나 여자에 대해선 경험이 많아서인지 눈치가 아주 빨랐다.
우물쭈물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대뜸 짚어냈다.
“ 야 임마...지민이 쟤...한번 먹어보려고 노리는 놈들이 많았어...잡아서 돌리자는 놈도 있었으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일단 따고 봐...알았지?
이건 이 형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충고다..후후...”
“ 그만해라...임마...참...술을 사러 가야지?”
“ 야..야...걱정하지마..애들이 오면서 사오기로 했으니까....”
“ 그래? 안 그래도 되는데...”
“ 이 자식이? 나중에 다른 놈들 생일 때...그때 좀 보태면 되지....”
“ 알았어...임마...”
이 아이들과 함께할 때면 이게 좋았다.
비록 겉모습은 좀 거칠지만 최소한 겉과 속이 다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답답함이 사라지곤 했던 것이다.
1학년 때 한 반이긴 했지만 일년 동안 나눠본 말은 몇 마디가 안될 정도였다.
그리고 2학년이 되어서 반이 갈라졌지만 뭔가 사고를 치는 바람에
퇴학을 당할 걸 자퇴로 끝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야 아~ 하고 잠깐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재회를 한 건 자신의 삶이 엉망이 되고 난 다음이었다.
야자를 도망쳐서 혼자 밤거리를 정처 없이 쏘다니다가 돈을 뺏기 위해 다가온 무리 중에 종규가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두려움, 그리고 종규를 발견하고는 안도감과 반가움을 느꼈다.
뭘 기대했던 것일까?
종규는 오히려 아는 사이이기에 자신이 나서서 돈을 뺏으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밀려드는 배신감...
지금 생각을 해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자신이 종규에게 배신감을 느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건 아마 처지가 바뀌면서 멀어져 간 친구들의 모습을 종규에게서 떠올렸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때 민은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공격에 종규는 몇 대를 맞고서 비틀거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옆에서 날라든 발길질이 옆구리를 파고 들면서 숨이 콱 막혔다.
몸을 웅크리고 굼벵이처럼 땅을 기면서 정신 없이 쏟아지는 발에 차라리 후련함마저 느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중에는 이대로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질 때 누군가 자신을 몸으로 감싸면서 막아주었다.
그건 바로 종규였다.
다른 패거리들을 말려서 먼저 보내고 종규와 둘이 어두컴컴한 놀이터에 앉아 술을 마셨다.
자신의 주먹에 맞아 터지고 퉁퉁 부은 입술을 보자 그때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분노를 쏟아낼 상대는 종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버지라는 남자와 냉정하게 등을 돌린 친구들이어야 했다.
종규가 불을 붙여 건네준 담배를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받아 물었다.
잠깐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종규가 피식 웃자 민도 웃음이 나왔다.
그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서 벽이 사라지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쏟아졌다.
종규는 아까 길에서 자신을 만나자 왠지 반가우면서도 고까웠다고 했다.
특별히 앙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유복한 집에서 걱정 없이 사는 게 거슬렸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먹을 날리면서 미친 듯이 덤벼드는 모습에 뭔가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자 민도 자신도 모르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게 되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친구들에게도 못했던 가슴 깊이 맺혔던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종규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친구 셋과 방 두 개짜리 옥탑 방에서 살았다.
넷이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는 그 돈이 떨어질 때까지 그냥 논다고 했다.
뭐...논다고 해봐야 뻔한 일이었다.
술, 담배, PC방, 오토바이 그리고 여자애들......
민도 자연스럽게 그들 속에 녹아 들어갔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만 어울리는 한계를 두었지만 그걸 가지고 트집을 잡는 녀석은 없었다.
구태여 변명하려 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점점 더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지민은 그걸 아주 싫어했지만 종규들과 함께 있을 때 숨이 탁 트이는 느낌은 일종의 탈출구였다.
지민이 주는 따사로움도 좋지만 그건 또 다른 것이었다.
이런 비상구마저 없으면 어쩌면 자신은 질식을 해 죽을지도 몰랐다.
아버지와 친구들을 잃고 대신에 지민과 종규를 얻은 것이다.
세상은 등가의 법칙 속에서 돌아가는 것일까?
“ 그나저나...임마...깔을 데려올 거면 미리 말이나 하지?”
“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너무 신경 쓰지마...분위기를 깨거나 그럴 애는 아니니까...”
민은 왠지 아까 지민의 말에서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지민의 새로운 모습을 볼 거라는 기대감마저 조금 들었다.
“ 그게 아니고....”
“ 왜? 뭔데 그래?”
조금은 난감해하는 듯한 종규의 모습이 궁금하게 만들었다.
“ 아~ 씨발~ 사실은 오늘 네 생일선물로 동정을 떼게 해주려고 했거든....”
“ 뭐~?”
순간 번뜩 드는 예감...
아까 지민을 보자 당황해 하던 종규의 모습이 떠올랐다.
“ 너..설마 여자애를 불렀냐?”
“ 그래..임마...뭐...우리 깔들이야 당연한 거고...네 몫으로 따로 부른 계집애가 있어...”
역시나 불안했던 느낌이 맞았다.
“ 휴~ 뭐...네가 알아서 맡아야지..잘 됐네? 핑계도 좋겠다...나중에 둘이 데리고 하면 되잖아?”
“ 임마..그게 쉽지가 않아...”
“ 그건 또 무슨 말이야?”
“ 너도 알다시피 우리 깔들이야 그냥 돌려먹는 애들이라서 상관이 없지만 얘는 좀 다르거든?”
사실이 그랬다.
네 명이 다 여자가 자주 바뀌기도 하지만 여자친구라는 건 그냥 명목일 뿐 별로 구분이 없었다.
한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보면 누구의 여자라 할 것도 없이 키스를 하고 젖가슴을 주무르기까지 했다.
물론 자신이 빠지고 난 다음에는 심심찮게 난교도 벌인다고 했다.
이 녀석들이 재주가 좋은 건지 아니면 그런 애들만 골라서 만나는 건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별 문제가 없었던 걸 보면 정말 신기하기만 했다.
민도 처음에는 너무나 놀라면서도 흥분이 됐지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담담하게 볼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런데 다르다니?
“ 으~응...뭐 내숭을 떨거나 빼고 그러지는 않는데..아니 제 기분만 좋으면 아주 화끈해...
그런데 대신에 절대 양다리를 걸치지는 않아...그렇다고 끈적하게 달라붙는 것도 아니고...
아무려면 민이 너 첫경험인데 설거지를 시키겠냐? 솔직히 걸레들한테 떼려면 벌써 뗐잖아?”
“ 그렇긴 하지만....”
솔직히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종규의 말을 듣자면 지금까지 봤던 애들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단지 순간적인 관심일 뿐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민은 종규의 이야기에 슬며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 뭐..할 수 없지...내가 데리고 나가서 미리 이야기를 해야지...
욕을 좀 먹긴 하겠지만 뒤끝이 있는 계집애는 아니니까...괜찮을 거야...”
“ 그래...너만 믿는다....조금 미안하긴 하네...”
“ 임마...대신에 지민이...오늘밤에 꼭 해치워라...알았지? 힘들면 기회를 만들어 줄까?”
“ 됐어...임마..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넌 걔나 신경 써....”
“ 쩝....아깝네...이럴 줄 알았으면...미선이는 안 부를걸...”
미선이는 지금 종규의 여자친구로 되어있는 여자애였다.
“ 미선이를? 그 여자애가 아니라?”
“ 자식이~? 걔가 얼마나 죽이는데? 보지가 꽉꽉 물어주는 게 넌 넣기만 해도 그냥 쌀 걸?”
“ 뭐야? 너...그러면?”
“ 야..야...너무 기분 나빠하지마...나랑 전에 잠깐 사귀었었어...
내가 딴 애를 만나는 걸 알고 날 차버렸지만....흐흐...내가 그랬잖아? 화끈하다고...”
“ 미친 새끼....그렇다고 날 주냐?”
“ 아니야..임마...널 주는 게 아니라 우연히 네 이야기를 듣고는 관심이 있어 하더라...”
“ 뭐야? 그러면 나하고 하겠다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니잖아?”
“ 내가 누구냐? 그 정도 눈치는 있지...아마 지민이만 아니었으면 거의 확실했을 텐데...”
“ 몰라..임마..그건 네가 알아서 해...난 신경 안 쓴다? 그만 들어가자...”
“ 그래....”
이미 담배는 아까 피워버렸지만 역시 야한 이야기는 시간이 언제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하는 것 같았다.
꽤나 오랫동안 지민이 혼자 있었다는 걸 깨닫고서 민은 종규와 함께 안으로 향했다.
“ 자~ 민이의 생일을 축하하며 건배~”
“ 건배~”
슬며시 밖에 나가있던 종규가 아이들과 같이 우르르 들어왔다.
미리 무슨 이야기가 있었던지 지민을 보고도 별다른 내색들을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초면의 여자아이가 신경이 쓰였다.
종규가 이야기를 했던 바로 그 아이가 틀림없었다.
같은 또래가 아니라 두어 살은 연상처럼 느껴지는 성숙한 그녀는
솔직히 순간적으로 지민을 데려온 걸 후회하게 만들 정도였다.
종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굉장히 야한 스타일을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외였다.
긴 생머리에다가 갸름하면서도 조금 차갑게 느껴지는 얼굴은 청순한 여대생의 이미지였다.
그런 모습 속에 그 음란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을 하자 아래가 뻐근하게 아파왔다.
몇 초간을 정신을 놓고 있다가 아차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자
역시 이상한 예감이 들었던지 지민이 그 아이를 심각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이상의 아슬아슬한 장면은 없이 곧 주섬주섬 펼쳐놓은 술자리에 둘러앉아 떠들기 시작했다.
종이컵에다 벌컥벌컥 따른 소주를 종규의 건배 선창과 함께
겁도 없이 입으로 가져가는 지민을 말리려 했을 때는 이미 거침없이 넘기고 있었다.
설마 하는 민의 예상을 완전히 깨고 원샷을 해버린 지민이
이마만 살짝 찌푸리고는 안주를 집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착하고 여리기만 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지민이 오늘은 여러 번 놀라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민이 마치 양파껍질을 까면 또다시 새로운 속이 드러나는 것처럼 매력적으로만 느껴졌다.
“ 안녕? 반가워...난 종희야...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 응..그래..나도 만나서 반가워...”
지민을 멍하니 보고 있는 민의 어깨를 툭 친 건 새로 온 그 아이였다.
인사와 함께 자신의 술잔을 내미는 걸 받아 들자 소주를 따라주었다.
하얀 종이컵에 묻은 빨간 립스틱이 하체에다 짜르르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 쭉 마시고 줘...생일 축하해...”
“ 고마워....”
슬쩍 곁눈질을 하자 옆에 앉은 미선과 무슨 이야기를 하느라 지민이 이쪽을 못 보고 있었다.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종희를 쳐다보자 희미하게 웃음을 짓는 게 눈에 띄었다.
여자친구의 눈치를 본다고 비웃는 걸까?
순간적으로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게 치밀어 민은 보란 듯이 일부러 립스틱이 묻은 쪽으로 입술을 가져갔다.
알싸한 소주 냄새와 함께 차가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매끄럽게 넘어가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을 삼키는 순간 눈꼬리가 휘어지면서 입술의 한쪽이 살짝 올라가는 웃음을 짓는 종희에 자칫 사래가 들뻔했다.
어떻게 저런 작은 표정의 변화만으로 이렇게나 달라 보일까?
아까부터 뻐근하게 느껴지던 아래가 이제는 터질 듯이 몸부림을 쳤다.
좀 전까지의 청순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요염하고도 끈적한 기운이 마구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돌려주는 잔과 함께 신기루였던 양 제자리로 돌아가버렸다.
민은 마치 여우에게 홀린 것처럼 멍하게 술을 따르다가 넘치기 직전에야 겨우 멈출 수가 있었다.
문득 어디선가 들었던 낮에는 요조숙녀 밤에는 요부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제서야 봉긋하게 탄력을 자랑하는 가슴의 융기와 미니스커트 아래로 곧게 뻗은 새하얀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저 사이에 그렇게도 종규가 극찬을 하던 게 숨어있단 말이지?
어떤 느낌일까?
“ 민아~ 나도 한잔 줘....”
“ 으, 응? 지민아..괜찮겠어?”
“ 응...생각보다 먹을만하네? 굉장히 쓰다던데...”
“ 아니..그것보다도 취하지 않느냐고?”
“ 응...별로 취하는 것 같지 않아...”
“ 그...래...”
미선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본 건지 갑자기 지민이 끼어들었다.
그제서야 민은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지민에게 미안해졌다.
재미있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음과 함께 떨어져 앉는 종희의 시선을 뒤통수로 느끼면서 지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몇 개의 얼굴을 지닌 걸까?
지금의 종희는 마치 개구쟁이처럼 천진난만해 보였다.
그래서 왠지 두려움까지 느끼게 했다.
다행히도 지민은 좀 전의 일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아 보였다.
종희의 입술이 닿았던 곳으로 먹던 걸 못 본 걸까?
그리고 자신의 장담처럼 멀쩡해 보이는 지민에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나보다 주량이 센지도 모르겠는데?
민은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지민의 잔을 채웠다.
“ 자~ 주목~”
각자가 떠들다가 갑자기 종규가 자리를 정리시켰다.
“ 흐흐흐...그래도 생일인데 빼먹을 수는 없지?”
“ 맞아...그래....하하하...”
음흉한 웃음소리와 함께 종규가 던진 한마디, 그리고 다른 녀석의 맞장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야...야....그건....악~ 종규 너...윽~”
“ 캬캬캬~ 생일 축하한다....아싸~”
퍽~ 퍽~ 투닥투닥~ 짝~ 짝~
민은 거침없이 날라온 종규의 발길질에 뒤로 벌렁 넘어져서 잽싸게 몸을 돌려 웅크리고는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그러자 숨을 쉴 여가도 없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손과 발들....
처음 종규의 발길질 빼고는 누구 건지 알 수도 없었다.
아니, 구태여 알 필요도 없었다.
모두다 일 테니...
흠..어쩌면 지민이는 아니겠지만....
큭...이것들이 인정사정도 없네?
아~씨~ 내가 왜 이걸 깜박했지?
그랬다. 생일빵....오늘은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미처 도망갈 기회도 놓쳐버린 것이었다.
“ 아악~ 지민이 너?”
“ 헤헤~ 미안....”
이제는 끝났구나 하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뒤통수를 강타하는 손길에 눈에서 불이 번쩍 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자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손을 들고 있는 지민이 보였다.
흑...너까지....강 지민.....
“ 아쉬~ 생일 두 번만 했다간 그 다음 생일이 제삿날이겠다...”
“ 후후~ 민이 너...벌써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헉~ ...너...? 설마? 야~ 야~ 아, 안돼...”
“ 흐흐흐....안되긴 뭘 안돼? 이제 와서 빼기는...임마..예외는 없어...큭큭...자식이 사실은 좋으면서...”
민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설마 지민이 있는데 그것까지 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잠깐 스치는 생각에도 그건 자신의 착각이었다.
아까 지민을 배려하는 듯한 모습에 자신이 잠시 속았던 것이다.
이 놈들은 충분히, 아니 당연히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민은 슬금슬금 출구 쪽으로 엉덩이를 옮기고 있었다.
“ 야...잡아...”
“ 오케이~”
“ 야..야...놔...니들?”
“ 흐흐흐..민아...순순히 항복해라...”
“ 지, 지민아...도와...흡....”
“ 왜 그래?”
두 녀석에게 양팔을 잡혀 버둥거리던 민이 입마저 막히자 눈이 동그래진 지민이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그다지 걱정을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어차피 애들 사이에서 생일 때 하는 놀이일 뿐이니까...
“ 호호호~ 그러면 내가 먼저 생일빵을 줄게...민아...생일 축하해...”
“ 읍읍읍....”
몸을 일으켜 사뿐사뿐 다가오는 미선....
발버둥에도 꿈쩍하지 않는 자신의 몸에 민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호기심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지민....
“ 자, 잠깐....흡~”
“ 쭈압~ 쭈욱~”
“ 뭐, 뭐야? 너희들? 그, 그만....”
그런 지민의 호기심이 경악에 찬 소리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막혔던 입이 트이자 소리를 치려던 민의 입술은 미선의 입술로 봉쇄가 되었다.
그리고는 뜨겁게 밀고 들어오는 뭉클한 혀...
능숙하게 자신의 혀를 감아 들여 빠는 미선에 민은 그냥 맡겨둘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민과의 첫 키스가 있은 후에 생일이 다가온 게 다행이었다.
이제는 포기를 한 것처럼 몸에 힘을 뺀 민이었지만 역시 방심을 하지 않는 무서운 놈들...
미선에서 막아보려 했던 민의 잔머리가 무색하게도 붙든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민이 설마 했던 게 바로 이것이었다.
이 녀석들만의 특이한 생일빵...
그날 생일인 녀석에게 여자애들의 키스를 몰빵해주는 이건 종규의 머리에서 나왔단다...
“ 후후~ 지민아...민이보고 뭐라고 하지는 말아...그냥 우리끼리는 생일빵을 이렇게 하는 거니까...
저 녀석이 너 때문에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래도 봐줄 수는 없잖아? 너도 이 정도는 이해하지?”
“ 으, 응....”
그나마 지민을 어떻게 달래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하던 근심을 덜어준 종규가 조금은 고마웠다.
이 상황에서 지민이 화라도 낼까?
당연히 괜찮다고 할 밖에...가슴 속이야 새카맣게 타고 있겠지만....
더군다나 민에게 장담까지 하고 따라오지 않았던가?
“ 조, 종희야...너도 하려고?”
“ 당연하지...난 네 생일축하를 하러 온 게 아니니?”
“ 그, 그렇지만...흡~”
멍하니, 그러면서도 왠지 서늘하게 느껴지는 지민의 눈초리 속에서 네 명의 키스가 끝나자 이번엔 종희가 다가왔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은 지민의 시선만 아니라면 어쩌면 가장 기대를 했을지도 모르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원래 종규가 계획했다던 이후의 이벤트도 떠올라 아쉬움이 드는 건 남자이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지민아...미안해....흑....나는 짐승인가 봐...
민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진심인지 믿기가 조금은 힘든 애통함(?)에 마음 속으로 절규를 했다.
장난기가 가득한 앞의 여자애들과는 첫 느낌부터가 달랐다.
부드럽게 달라붙어오는 촉촉한 입술에서 뜨거움과 함께 진심이 느껴진 것이었다.
지민과의 키스에서는 늘 복사꽃 향기를 느꼈다면 종희는 라일락이었다.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경쾌하게 혀를 건드리고 다니다가 폭풍처럼 몰아쳐서
혀뿌리가 아프게 빨아들이는 키스와 함께 목에다 팔을 두르고는 뭉클한 젖가슴을 비벼왔다.
민은 아찔한 느낌과 함께 이미 자신의 팔이 자유롭게 된 줄도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다.
움찔~
갑자기 허벅지를 누르는 묵직한 무게와 함께 뭔가 말랑거리면서도 따스한 촉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종희의 젖가슴이 터질 듯이 밀어 부치자 기우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두 팔을 뒤로 짚었다.
그러자 가랑이를 벌리고 허벅지에 올라앉은 종희의 하체가 조금씩 앞뒤로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반쯤 뒤로 기운 자신의 몸을 올라타듯이 한 종희의 혀가 입 속을 마구 헤집고 뭉클한 젖가슴이 눌러오면서,
생각만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비밀스러운 곳이 허벅지를 비비는 자극은 민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컸다.
말랑거리면서도 달라붙는 듯한 종희의 사타구니가 점점 더 뜨겁게 느껴지다가 왠지 축축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아, 안돼....
민은 자신의 성기가 한계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종희를 멈추려 했지만 바닥에 붙어버린 것처럼 팔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냥 장난으로 치부한다고 해도 만약에 사정까지 해버린다면
사건이 커지리라는 걸 알지만 지금 자신의 몸이 마치 남의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 한계점을 너무나 잘 안다는 것처럼 종희의 몸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에 종희의 무릎이 자신의 딱딱한 성기를 슬쩍 눌러봤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 하하~ 종희가 마무리를 아주 화끈하게 했는데? 지민이 넌...꼭 할 필요는...”
“ 아, 아니야...할 거야...민이는 내 남친이니까....”
멍하니 보고만 있던 지민이 종규가 슬쩍 얼버무리자 소리를 치며 말했다.
그리고는 몸을 던지듯이 안겨와 목을 안고서 키스를 했다.
언뜻 빙긋이 웃으면서 왼손으로는 V자를 그려 보이면서
오른손은 검지와 중지 사이로 엄지를 내밀어 섹스를 의미하는 종규가 눈에 띄었다.
저 녀석이 아까 기회를 만들어주겠다더니 일부러 지민을 자극하려고 꾸민 일 같았다.
민은 종규에게 고마워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의도적인지 아니면 우연인지는 몰라도
종희가 앉았던 허벅지의 반대편에다 가랑이로 올라탄 지민의 가느다란 허리를 껴안았다.
질투인지 자극 때문인지는 확실찮지만 지민은 달아오른 용광로 같았다.
정신 없이 빨아들이는 입 속도, 터뜨려버리고 말겠다는 듯이 강하게 밀어 부치는 젖가슴도,
그리고 희미하게 신음소리까지 내면서 거칠게 비벼오는 사타구니도 너무나 뜨거웠다.
아니, 지민의 몸 전체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괜찮을까?
민은 한없이 이어지는 지민의 몸짓에 조금 욕심을 내어보았다.
허리에 있던 손을 조심스럽게 내려 찰떡처럼 부드럽게 만져지는 엉덩이에 놓았다.
흠칫~
지민의 몸이 잠시 굳는 것 같더니 다시 뜨겁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슴에 맞닿은 젖꼭지가 뾰족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성난 황소처럼 거칠게 뿜어 나오는 지민의 콧김과 함께 희미하게 비음이 들려왔다.
게다가 그 보드라운 살이 벌겋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날 정도로
미끄럼을 타고 있는 지민의 가랑이 사이가 왠지 축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 자신이 사정을 하기 직전까지 갔듯이 지민도 그런 게 아닐까?
처음에는 오기였는지 몰라도 지금 지민의 행동은 본능적인 욕구에 가까웠다.
비록 성경험이 전무한 민이었지만 그것만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점점 더 숨이 가빠오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지금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게 뭔지를 알았다.
지민을 가지고 싶었다.
아마 둘만이라면 이미 지민의 팬티 속에 숨은 저 유혹의 샘으로 벌써 뛰어들었을 것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이대로 방으로 들어가 안아버릴까를 조금씩 갈등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 자~ 자~ 그만~ 그만해....너무 뜨거워서 못 보겠다...후후~”
“ 으, 응.....민아..생일 축하해...”
“ 으, 응...고마워..지민아...”
“ 사랑해...민아...쪽~”
그때 들려온 종규의 목소리에 둘 다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얼굴을 붉힌 지민이 귓속말로 사랑한다고 속삭이고는 뺨에다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 민은 가슴이 울렁거렸다.
처음이었다.
한번도 서로가 그런 명확한 표현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확연하게 변할 게 분명했다.
종규의 기대대로 오늘밤에 역사가 이루어질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종규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웃음을 지어주었다.
“ 흐흐...임마....아주 죽여줬어....보기만 하는데도 쌀뻔했다...”
“ 자식이?...”
세수를 한다면서 화장실로 지민이 들어가자 종규가 슬그머니 달라붙더니 속삭였다.
아닌 게 아니라 종규의 바지앞자락이 불룩했다.
하기야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남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의 눈에 열기가 서려있었다.
“ 크큭...둘 다 보지가 흥건할 걸? 아주 질질 싸더구먼? 하기야 저기 다른 계집애들도 마찬가질 거야..”
“ 야..야...”
“ 임마...니 바지나 보고 이야기해...”
“ 헉~...”
물끄러미 내려다본 양 허벅지에서 500원짜리 동전만한 젖은 얼룩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한 지퍼를 열듯이 솟아오른 성기의 끝부분이 닿은 곳도 마찬가지였다.
아까 왠지 두 사람의 그곳이 축축하게 느껴지던 게 착각만은 아니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동영상에서 보았던 젖어서 빨갛게 빛나던 여자의 음부가 떠올라 성기가 꿈틀거렸다.
“ 큭큭...카사노바님....앞으로 제가 도로 한 수를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 고마해라~ 아그야....”
어쩌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말들을 전혀 그렇지 않게 거침없이 말하는 종규의 재주는 큰 장점일 것이다.
민은 종규를 따라 피식 웃고 말았다.
물론 슬그머니 두 손으로 젖은 곳들을 가리면서...
점성이 있어서 아마 쉽게 마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입에서 느껴지던 복사꽃과 라일락 향처럼
이것들도 다른 냄새가 날까 하는 궁금증에 당장에라도 손끝으로 찍어서 맡아보고 싶은 걸 애써 참아야만 했다.
“ 취하지는 않아?”
“ 으~응...약간 어지러운 것 같기는 해...”
“ 그러면 나한테 기대...”
“ 고마워...”
씻고 나와서 곁에 앉은 지민의 눈이 조금 흐려져 보였다.
그리고 머리를 기대어오는 지민의 어깨를 안으면서 그 보드라운 감촉을 즐겼다.
눈 앞에서 녀석들의 평소 행동이 나올 조짐이 슬슬 보이고 있었다.
그러자 민은 과연 지민이 그걸 보면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슬며시 기대가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