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하게 하지마, 그렇지만 심하지 않게도 하지마(1)
<주요등장인물>
최윤호(16세, 중3)
강지영(40세, 엄마, 전업주부)
최명철(48세, 아빠, 건설회사 부장)
최명철(48세, 아빠, 건설회사 부장)
1. 거울을 보라. 내 오른손은, 그의 왼손이다.
「난 정말 마네 이 사람 스타일 너무 좋더라.」
대학 동창 미희는 처음 미술관을 들어설 때부터 호들갑을 떨고 난리다. 원래 그런 애라 지영은 그냥 모른 체하고 만다. 같이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 정신없었다. 그때는 속으로 얼마나 안절부절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탓인지 그러려니 싶고, 남들이 보고 뭐라건 신경도 별로 안 쓰인다. 그냥 익숙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키가 작고 늘 서두르는 미희답게 지금도 여러 걸음을 앞서서 그림을 휙휙 지나간다. 그러면서 연방 좋다고 탄성을 지른다. 제대로 보기나 하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뭐야, 이거. 이 여자들이 도대체..」
지영은 무심코 혼잣말을 하다가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림 제목은 “풀밭 위의 점심”이라고 했다. 지영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남자들 옆에 벌거벗고 앉은 채 그림 밖을 향해 싱긋 웃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낯설지 않은 그림이다. 중학교였든지, 고등학교였든지 교과서에서 많이 봤던 것 같다.
「지영아, 뭐해.」
미희가 다가와 지영의 소매를 잡아끈다.
「가만 있어봐. 이것 좀 보구.」
「얘는? 얼른 보구 쇼핑하러 가기로 했잖아?」
미술관에 먼저 오자고 한 미희였다. 언제나 먼저 뭘 하자고 하는 건 미희였다. 미술관이며 클래식 공연이며 전시회며, 대학 시절 단짝이 된 이후 미희가 하자는 대로 지영은 그저 끌려다니기만 했다. 미희가 이런 말을 들으면 발끈할 지도 모른다. 아마 지영에 맞춰주고 끌려다닌 건 저라고 할 거다. 마흔을 넘긴 후로 지영은 자신이 특별히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하면 즐거운지 몰랐다. 마치 혀가 제 기능을 잃은 것처럼 인생의 맛이란 걸 도통 느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하루하루가 무료했다.
「이 그림 이상하지 않니?」
「어유, 얘.. 사람들 다 듣는 데서 무슨 소리 할려구 그래? 나중에 조용히 얘기하자.」
미희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주위의 눈치를 본다. 지영도 무심결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피식 웃었다. 미희는 아마도 성적이고 야한 얘기가 지영의 입에서 튀어 나올까봐 조심하는 거겠지.. 미희는 그런 면에서 」지극히 이중적이었다. 은밀한 얘기를 즐기는 반면, 사람들에게 들키거나 내색하는 걸 극도로 꺼렸다. 지영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지만 미희처럼 서투르고 티나게 이중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들 말이야, 옆에서 여자가 이러구 있는데 신경 안 쓰일까?」
미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림을 한 번 쓱 보구 나서 지영을 다시 쳐다본다.
「이 남자들 그냥 지들끼리 얘기만 하는 분위기잖아. 그렇다구 주변에 누가 몰래 숨어서
훔쳐 보는것 같지도 않구 말야..」
미희는 여전히 지영의 말을 이해 못하겠다는 듯 눈만 말뚱거린다.
지영은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숨은 그림을 찾듯이 그림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러나 막히 가슴을 뚫어줄 시원한 뭔가는 찾을 수 없었다. 왜 이 여자는 아름다운 용모와 탐스런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데도 남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걸까.. 심지어는 관람객들조차 마치 이 그림에 흥미없다는 걸 뽐내기라도 하듯이 그림 앞을 빠른 걸음으로 휑 하니 지나쳐 갔다. 그렇다면 이 여자들은 뭐하러 벗고 있는 걸까. 단순히 씻으려고? 그저 금방 씻고 나온 것 뿐?
「지영아, 그만 하구 다른 거 보러 가자.」
미희가 좀 더 강하게 지영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남부끄러운 짓 좀 그만 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지영은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 것 같았다. 내가 미쳤지.. 얼른 또각또각 미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서 일부러 목소리 톤을 높여 도도하게 말했다.
「학생들도 보러 오는 전시회에 이런 그림을 걸어놓고, 어쩔려구 그러는지 몰라.. 남사스럽게시리.. 미희야, 우리 백화점이나 가자. 볼 것두 별루 없네.」
미술관을 나서며 꺼놨던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기다렸다는 듯이 진동이 요란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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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두 더워 죽겠는데 이 노무 자식이 더럽게 버티네..」
덥다면서도 경찰모자도 벗지 않고 부채질만 죽어라 해대는 순경아저씨를 윤호는 속으로 맘껏 비웃어 주었다. 가끔 옆에 나란히 앉은 진우 이 자식을 죽어라 노려 보았다. 때때로 순경아저씨가 그런 윤호의 머리통을 가볍게 한 대씩 갈기기는 했지만 그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제기랄, 난 범인이구 이 녀석은 피해자니깐 떨어뜨려놔야지. 이렇게 나란히 앉혀 놓으면 피해자가 말을 하겠냐. 멍청한 순경새끼들..’
떨어뜨려 놔도 진우가 뭐라 입을 열리는 없다고 확신했다. 어쨌거나 매일 학교에서 얼굴을 맞대야 할 처지이니까.. 혹시 방학동안 전학이라도 가면 모를까..
「너, 그동안 이 놈한테 얼마나 뜯겼어?」
「그, 그런거 아니에요. 뜯긴 거 없어요. 아깐 그냥 전에 빌렸던 거 갚은 거에요.」
윤호는 속으로 감탄했다.
‘이 새끼 그래도 나보다 몇 등 위라고 거짓말도 참 잘 하네’
「이 녀석들이 아저씨를 놀려? 아까 신고하신 분이 누군지 알아? 너희들 내일 TV출연하고 싶어? 얼른 사실대로 말해. 조용히 끝내려고 했더니 이 자식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윤호는 순간 갈등했다. 조용히 끝낸다는 말에 솔깃한 것이다. 사실 이 상황은 윤호로서는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집에 알려지면 아빠와 엄마는 까무러칠 거다. 그리고 깨어나서는 윤호를 무지하게 패시겠지. 그러면 이제는 윤호가 기절할 차례가 되는 거다. 아마도 기절하기 전까지 무지하게 아프겠지.. 빨리 기절하면 그나마 나을텐데.. 일부러 기절한 척 해볼까..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픈 것보다 더욱 겁나는 건 부모님이 윤호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다.
「전화 연결됐습니다.」
젊은 순경이 핸드폰을 넘겨주자 부채를 던지고 이제와는 다르게 점잖은 말투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 최윤호 학생 어머님 되십니까? 여기는 ㅇㅇ경찰서 ㅇㅇ지구댑니다. 다름이 아니라..」
윤호는 아득한 절벽으로 떨어져 내리는 듯한 아찔함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찌 되겠지 하는 심정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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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8월 초의 여름낮은 아직도 저물지 않고 질기게 버틴다. 빵빵한 에어컨과 두툼한 철판으로 무장한 차안에서도 그 열기를 피할 수는 없다. 엄마는 경찰서를 나온 뒤에도 한 마디 말이 없다. 윤호는 이런 상황이 제일 싫었다. 계산을 굴려 본다. 엄마는 그래도 아빠에 비해서는 더 이성적이고 인내심있고 매질하는 힘도 약한 편이니 이제부터 말을 잘 해야 한다.
진우 엄마와 경찰아저씨 한테 고개숙이고 죽어라 용서를 비신 것과 여태까지 빼앗긴 것 보상하겠다며 수표 몇 장 쥐어주신 것.. 그런데 그게 몇 장이었는지를 정확히 보지 못했다. 남들 앞에서 그만큼 창피와 수치심을 느끼신 것.. 이 모든 것들을 감안해서 어떻게든 만회할 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모범생인 줄 알았던 아들이 사실은 친구 괴롭히고, 삥뜯고, 가끔 거실 진열장의 양주를 훔쳐마시는 문제아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다는 배신감까지 감안해야 한다. 양주 껀은 아직 모르실 것 같기는 하지만..
「용돈이 부족했니?」
「아니요..」
지영은 계속 한숨만 폭폭 쉬었다. 진우 엄마가 노려보던 그 눈초리를 잊을 수 없다. 경찰 아저씨가 혀를 끌끌 차대던 그 소리를 잊을 수 없다. 40평생에 이렇게 창피하고 낯없기는 처음이다.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얌전하고 고분고분 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10등 안에는 꼭 들길래 똑똑한 녀석이구나 했는데.. 집에서는 방안에만 틀어박혀 살길래 또래 랑 다를게 없구나 했는데..
그런데, 이제보니 아들녀석에게 이렇게 뻔뻔한 구석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진우 엄마에게 뺨을 맞은 뒤에도 기죽지 않고 냉랭하게 진우 녀석을 노려보던 윤호의 모습에 지영은 전율을 느꼈다.
내가 배아파 낳은 아들이 맞아? 내가 곱게곱게 키운 그 아들, 윤호가 이런 녀석이었단 말야?
지영은 그런 배짱이 없었다. 겁도 많아 윤호를 낳고 나서는 둘째를 가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윤호 아빠는 지영이 싫다는 걸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 것까지도 다 이해해주었다. 그런 윤호 아빠도 그리 배짱있고 듬직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둥글둥글 성격 좋은 것과 다정한 것만이 장점인 사람이었다.
그렇담 이 녀석은 대체 누굴 닮은 거지?
꼿꼿하게 고개를 쳐들고 노려보던 아들녀석의 그 거만한 눈초리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린다. 깊은 물에 빠져 짖눌린 것처럼 지영의 가슴이 힘겹게 갑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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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는 담담한 채 엄마의 곁에서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속으로는 어쩔 줄을 몰라 죽을 맛이었다. 컴퓨터로 다운 받은 공포영화였다면 미리 돌려보아 언제쯤 유령이 튀어나올지 대비라도 할 수 있을텐데.. 엄마 속을 어찌 알겠는가.. 상황은 분명 공포영화가 돌아가려고 하는데, 앞으로 어떤 일이 분명 벌어질텐데.. 초조하기만 하다. 어떻게든 엄마의 닫힌 입을 열고 상황을 부드럽게 무마시켜야 되는데, 어떻게든 엄마가 웃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나마 다행인건 아빠가 장기출장 중이라는 거다. 사실 일하시는 도중에 집으로 가끔 출장오신다는게 맞을거다. 그만큼 바깥에서 주무시는 날이 더 많다. 아빠는 평소에 다 좋으신 분이다. 용돈도 엄마 몰래 한 주먹 쥐어 주시고, 잔소리도 거의 없으시고, 화내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한 번 화나시면 엄청 무섭다.
초등학교 2학년 땐가 아빠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욕을 몇 마디 알게 됐다. 당시 친구들 중에는 억세고 장난질이 심한 녀석들이 많아서 지기 싫은 마음에 열심히 그 녀석들과 욕설을 주고 받으며 놀았다. 그런 데 그만 욕이 입에 뱄는지 무심결에 엄마 앞에다 대고 욕을 해버렸다. 왜 그랬는지 당시의 정확한 상황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때 했던 욕을 기억난다.
「에이 씨발. 졸라 지랄하네..」
그때 하얗게 질리던 엄마의 얼굴 표정과 지옥마왕처럼 무섭게 일그러지던 아빠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빠는 처음엔 얇은 회초리로 내 종아리를 때리셨다. 내가 미운 5살이 되었을 때 엄마가 집에 구비해 놓으신 것이다. 드라마를 많이 보신 엄마가 아들이 잘못했을 때 우아하게 잘못을 꾸짖으시려고 갖다놓으신 것일 뿐 그때까지 한번도 휘둘러지지 않았었고, 또 막상 맞아 보니 그리 아프지도 않았다. 그래서 윤호는 어린 마음에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나누었던 커뮤니케 이션 방식대로 엄마, 아빠 앞에서 해대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는 아빠의 손, 발과 먼지낀 골프채까지 동원되었지만 다행히 엄마가 중간에서 가로막은 덕분에 골프채의 먼지를 닦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우아하고 세련되고 연약한 분이라 아빠처럼 그렇게 무식하게 하시지는 않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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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현관문이 열렸다가 지영과 윤호의 뒤로 닫힌다. 말없이 먼저 구두를 벗고 올라서며 지영이 신발을 벗는 윤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윤호도 마주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샌들을 벗었다.
「이 녀석이 어디서 뻔뻔하게」
지영이 갑자기 윤호의 귀를 잡아채어 거실 소파쪽으로 끌고 간다. 윤호는 놀라고 귀가 떨어질 것처럼 아파서 하릴없이 질질 끌려간다.
「쫘악, 짝, 짝..」
첫 방이 타이밍이 잘 맞았는지 듣기좋은 소리가 난다. 계속해서 지영의 손길이 윤호의 뺨을 강타한다. 두번 째부터는 그리 잘 맞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윤호가 본능적으로 얼굴을 피했기 때문이다.
지영은 때리면 때릴 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기가 막혔다.
「이 놈이 피해? 뭘 잘 했다구. 가만 안 있어? 가만 안 있어, 이 자식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널..」
윤호는 처음에는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이제는 두 볼을 손으로 감쌌다. 그랬더니 엄마의 손이 이제는 몸의 이곳저곳을 마구 난타한다. 주먹쥔 손도 아니고 발길질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평소 궂은 설거지와 손빨래로 단련된 엄마의 손이 그냥 맞아줄 만큼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게 느껴진다. 엄마의 손이 와닿는 곳이 따끔거린다. 땀에 젖은 몸에서 또다시 찰싹찰싹 타이밍 좋은 소리가 난다.
윤호는 기겁을 하고 놀랐다. 이렇게 엄마가 우아고, 세련이고 다 던지고 육탄전을 벌이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신경전과 폼만 나는 회초리에 몇 번 종아리 대주고 그 뒤에 길게 이어질 침묵에 대비했을 뿐이었다.
「엄마, 잘못했어요. 엄마, 엄마, 그만, 아야, 그만요.. 아야..」
쪽팔린다. 친구들이 이런 모습을 못 보는게 다행이다. 특히나 진우 그 녀석이 이런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비웃을까.. 아마 더 이상 윤호를 무서워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아이, 씨ㅂ.. 엄마, 그만 하라니까..」
윤호는 자신도 모르게 내리치던 엄마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챘다. 의도했던 건 아닌데 그 서슬에 잡힌 지영의 팔이 약간 비틀렸다.
「아야, 아야..」
지영의 입에서 비명이 새 나왔다. 지영은 윤호에게 잡힌 팔이 순간적으로 너무 아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엄마한테 감히..하고 화가 치밀기 전에 갑자기 가슴 한 쪽에 구멍이 뻥 뚫린 듯 시원해졌다.
지영은 잠시 멍하다가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윤호의 뺨을 후려 갈겼다.
「이 자식이 인젠 엄마한테 대들어?」
그러나, 그 손은 윤호의 뺨에 닿기 전에 억센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또다시 꽉 죄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동시에 아까의 그 시원한 뻥뚤림이 찾아왔다. 그리고 마치 멈췄던 것이 다시 살아난 듯 심장이 무섭게 콩닥콩닥 뛰었다.
「무식하게 왜 이래 엄마? 말루 해, 말루..」
윤호가 지영의 두 손을 뿌리치듯 놓으며 똑바로 쳐다본다. 아까 경찰서에서의 그 거만한 태도 그대로다. 이 녀석은 미안하지도 않은 걸까? 지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걸까? 지영은 다시 화가 치민다. 게다가 무식하다니.. 이 엄마는 대학교 4년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재원에 미모까지 겸비한 여자라구.. 무식하다니.. 무식하다니..
그러고보니 지영은 평생 무식하다는 말도 처음 들어봤다. 사람들이 칭찬이건 비방이건, 그녀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을 하곤 했지만, 그 중에 무식하다는 말은 없었다. 가슴 한 쪽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에어컨은 아직 켜지도 않았는데, 여름 낮은 아직인데..
「얘가 어디서 말을 함부로.. 너 지금 엄마한테 대드는 거야?」
윤호는 짜증스럽다. 별로 아프지는 않지만 이렇게 맞아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맞는게 싫어, 왕따당하는게 싫어 그동안 어울렸던 친구, 형들.. 그들에게 배운 방식이 짧게 스쳐간다. 아들에게 손매를 휘두르며 언뜻언뜻 보이는 희열의 모습에서 윤호는 예전 자신을 괴롭히던 원수같은 자식들의 비열한 웃음을 떠올렸다.
「엄마가 아까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아? 이 녀석이, 찰싹, 사람들 앞에서, 찰싹..」
사이사이 찰싹 소리는 지영의 손이 윤호에게 닿아서 난 소리이다. 그러나, 때리고 맞으며 난 소리는 아니다. 지영이 손을 휘두르면 윤호는 냉정한 얼굴로 그 손등을 찰싹 때려 뿌리쳤다.
지영은 아들이 자신의 손등을 찰싹찰싹 뿌리칠 때마다 아찔한 통증을 느꼈다. 아찔한 만큼 가슴이 시원해졌고, 심장은 더욱 바삐 뛰었다. 고분고분 맞아주지 않는 아들 윤호의 태도가 싫지 않았다. 아까처럼 피하지 말고 이렇게 뿌리쳐주는 게 좋았다. 물론 남들이 보기엔 뿌리치는 게 아니라 버릇없는 아들이 엄마의 손을 때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윤호는 속으로 엄마를 비웃었다. 자신을 제대로 때리지도 못하면서 매번 실패하는 손찌검을 왜 하는 걸까.. 그러나, 자신의 눈앞에서 자꾸만 약올리듯 아른 거리는 엄마의 하얀 손등을 못 본 척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자신이 고양이가 된 듯했다. 놀림을 당하는 고양이처럼 눈앞에 오가는 엄마의 하얀 손등을 넋을 잃은 채 때리고, 때리고 하다가 불현듯 손목을 낚아채고 말았다. 따뜻하고 나긋나긋한 솜뭉치가 무너지듯이 엄마의 몸이 윤호 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지영은 잡힌 손목을 타고 강렬한 고통이 심장을 깊숙히 찌르는 것을 느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뼘 앞에 아들의 거만한 시선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영은 갑자기 터질 듯한 소변기를 느꼈다.
「윤호, 너 니 방에 들어가서 반성하구 있어!」
지영은 윤호의 손을 간신히 뿌리치고 화장실로 급히 향하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윤호는 아무 말도 않고 자기 방으로 가더니 문을 쾅 닫았다. 지영은 문 닫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참았던 걸 놓아버렸다. 그 어느 때도 느껴보지 못한 쾌감이 쪼르르 흘러나왔다. 허벅지가 경련을 일으키듯 떨려왔다. 치맛자락을 잡은 지영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지영은 자꾸만 벌어지는 입술을 앙다물고 눈을 감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나락으로 떨어져내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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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지만 습관처럼 저녁 밥상을 차리고 지영은 식탁에 앉았다. 평소와 다른 거라면 밥그릇과 수저가 지영의 몫만 놓여진 것이다. 지영은 일부러 숟가락을 밥그릇에 부딪히고, 젖가락으로 반찬그릇을 때렸다. 그때마다 사기그릇에서는 때론 둔탁하고 때론 청량한 소리가 났다. 전에도 이런 소리를 냈었나 싶다.
「쾅」
아까처럼 신경질적인 소리가 나며 윤호가 식탁 쪽으로 쿵쿵거리며 걸어온다. 지영의 마음도 쿵쿵거렸다. 두근거렸다.
윤호가 혼자 젖가락질 중인 엄마 쪽을 한번 흘겨보더니 빈 그릇을 들고 밥솥쪽으로 간다. 지영은 젖가락을 소리나게 딸깍 내려놓고 윤호에게 달려들어 그릇과 주걱을 빼앗았다.
「뭘 잘했다구 밥을 먹어? 너 오늘 저녁 밥 없어! 굶어!」
지영은 뺏은 그릇과 주걱을 설거지통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윤호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다른 그릇을 찾아 들고 이제는 주걱 대신 숟가락을 열린 밥솥에 꽂아 넣는다. 지영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또다시 뺏으려 달려들었다. 윤호는 몸을 홱 돌려 엉덩이로 지영을 밀어내며 뺏기지 않는다. 밥 몇 숟가락을 그릇으로 옮기는데 성공한다. 지영이 숟가락 잡은 윤호의 손을 마구 꼬집었다.
「너 이거 안놔? 어디서? 안 놔? 안 놔?」
잠시 실랑이 하는 동안 밥풀 붙인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그래도 지영은 꼬집기를 멈추지 않았다. 꼬집는 손목에는 약간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윤호는 버럭 화를 냈다.
「씨ㅂ.. 사람이 밥은 먹어야지? 왜 못 먹게 그래요? 배고파 죽겠는데?」
그러면서 꼬집는 엄마의 손목을, 퍼렇게 멍든 그 부분을 다시 우악스럽게 잡아 죄었다.
「아, 아, 아아.. 아퍼, 아퍼..」
지영이 비명을 질렀다. 잡힌 팔 뿐만 아니라 몸도 비틀며 눈쌀을 찌푸린다. 아까와는 또다른 아픔이 느껴진다. 그리고 또다른 쾌감이 느껴진다. 이게 뭘까.. 이게 뭘까.. 궁금해진다..
「이게, 찰싹, 이게, 찰싹, 어디서, 찰싹..」
잡히지 않은 지영의 다른 손이 윤호의 몸을 때린다. 때린다기보다는 파닥거리는 것 같다. 잡힌 새가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 같다.
윤호도 가만 있지 않았다. 엄마의 두 손을 잡아 파닥거리지 못하게 힘을 주었다. 자세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두 손목을 잡고 활짝 벌린 형태가 되어 버린다. 바닥에 무관심하게 버려진 그릇과 숟가락, 어지럽게 흩어진 흰 밥알들이 눈송이처럼 밟힌다.
씩씩거리며 오르락 내리락 하는 지영의 가슴이 윤호의 몸에 닿았다. 힘으로 아들을 이기지 못하리란 건 처음 손목을 잡혔을 때 알았다. 키는 아직 엄마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힘은 벌써 엄마를 웃자라고 있었다. 그 억센 힘으로 지금 아들은 지영의 손목을 꼼짝 못하게 잡고 있다. 계속 아프게 잡혀 있고만 싶다. 그러나, 손목은 자꾸만 아픔에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고통은 점점 흐려지고, 시원하던 가슴은 점점 뜨거워져 간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들의 손은 엄마의 손목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코끝에 땀이 송글한 채로 지영은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몰랐다. 그저 맞은 편에서 소도둑처럼 꾸역꾸역 밥을 먹어대는 아들의 손짓 하나하나를 감시하듯 꼼꼼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윤호의 젖가락이 계란말이로 향할 때면 어김없이 지영도 젖가락을 내밀어 방해했다.
「아이, 씨발.. 먹는 거 가지구 치사하게..」
이제는 엄마에게 욕까지 한다. 어릴 때 그렇게 혼나구두 잊었나보다. 하긴 지 아빠가 없으니.. 나쁜 놈.. 어디 욕 좀더 해보시지.. 설마하니 중3 밖에 안된 녀석이 욕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 궁금하다.. 아들은 얼마나 못돼 먹은 놈일까..
「쿵」
세번 째인가 계란말이 먹는 걸 방해했더니 윤호 녀석이 이제는 지영의 앉은 의자 다리에 발길질을 하며 화를 냈다. 지영은 흠칫 놀라며 뺨까지 붉어졌다.
맞아.. 발두 있었지..
산부인과에서 핏덩이 윤호를 처음 안았을 때 확인한 걸 마치 몰랐다는 듯 지영은 새삼 놀란다. 손목에 어린 피멍을 어루만지며 지영은 윤호에게 두 손과 두 발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의자 다리가 갑자기 미워졌다. 왜 거기에서 아들의 발을 막고 있는 거지.. 그 발은 나에게 올 것이었는데..
계란말이를 지영은 별로 즐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매 끼니 계란말이를 올릴 생각이었다. 윤호가 질려할 때까지, 윤호가 엄마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할 때까지 계란말이를 식탁에 올릴 것이다.
이제까지 엄마를 속인 벌이야.
대학 동창 미희는 처음 미술관을 들어설 때부터 호들갑을 떨고 난리다. 원래 그런 애라 지영은 그냥 모른 체하고 만다. 같이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 정신없었다. 그때는 속으로 얼마나 안절부절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탓인지 그러려니 싶고, 남들이 보고 뭐라건 신경도 별로 안 쓰인다. 그냥 익숙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키가 작고 늘 서두르는 미희답게 지금도 여러 걸음을 앞서서 그림을 휙휙 지나간다. 그러면서 연방 좋다고 탄성을 지른다. 제대로 보기나 하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뭐야, 이거. 이 여자들이 도대체..」
지영은 무심코 혼잣말을 하다가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림 제목은 “풀밭 위의 점심”이라고 했다. 지영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남자들 옆에 벌거벗고 앉은 채 그림 밖을 향해 싱긋 웃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낯설지 않은 그림이다. 중학교였든지, 고등학교였든지 교과서에서 많이 봤던 것 같다.
「지영아, 뭐해.」
미희가 다가와 지영의 소매를 잡아끈다.
「가만 있어봐. 이것 좀 보구.」
「얘는? 얼른 보구 쇼핑하러 가기로 했잖아?」
미술관에 먼저 오자고 한 미희였다. 언제나 먼저 뭘 하자고 하는 건 미희였다. 미술관이며 클래식 공연이며 전시회며, 대학 시절 단짝이 된 이후 미희가 하자는 대로 지영은 그저 끌려다니기만 했다. 미희가 이런 말을 들으면 발끈할 지도 모른다. 아마 지영에 맞춰주고 끌려다닌 건 저라고 할 거다. 마흔을 넘긴 후로 지영은 자신이 특별히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하면 즐거운지 몰랐다. 마치 혀가 제 기능을 잃은 것처럼 인생의 맛이란 걸 도통 느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하루하루가 무료했다.
「이 그림 이상하지 않니?」
「어유, 얘.. 사람들 다 듣는 데서 무슨 소리 할려구 그래? 나중에 조용히 얘기하자.」
미희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주위의 눈치를 본다. 지영도 무심결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피식 웃었다. 미희는 아마도 성적이고 야한 얘기가 지영의 입에서 튀어 나올까봐 조심하는 거겠지.. 미희는 그런 면에서 」지극히 이중적이었다. 은밀한 얘기를 즐기는 반면, 사람들에게 들키거나 내색하는 걸 극도로 꺼렸다. 지영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지만 미희처럼 서투르고 티나게 이중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들 말이야, 옆에서 여자가 이러구 있는데 신경 안 쓰일까?」
미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림을 한 번 쓱 보구 나서 지영을 다시 쳐다본다.
「이 남자들 그냥 지들끼리 얘기만 하는 분위기잖아. 그렇다구 주변에 누가 몰래 숨어서
훔쳐 보는것 같지도 않구 말야..」
미희는 여전히 지영의 말을 이해 못하겠다는 듯 눈만 말뚱거린다.
지영은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숨은 그림을 찾듯이 그림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러나 막히 가슴을 뚫어줄 시원한 뭔가는 찾을 수 없었다. 왜 이 여자는 아름다운 용모와 탐스런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데도 남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걸까.. 심지어는 관람객들조차 마치 이 그림에 흥미없다는 걸 뽐내기라도 하듯이 그림 앞을 빠른 걸음으로 휑 하니 지나쳐 갔다. 그렇다면 이 여자들은 뭐하러 벗고 있는 걸까. 단순히 씻으려고? 그저 금방 씻고 나온 것 뿐?
「지영아, 그만 하구 다른 거 보러 가자.」
미희가 좀 더 강하게 지영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남부끄러운 짓 좀 그만 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지영은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 것 같았다. 내가 미쳤지.. 얼른 또각또각 미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서 일부러 목소리 톤을 높여 도도하게 말했다.
「학생들도 보러 오는 전시회에 이런 그림을 걸어놓고, 어쩔려구 그러는지 몰라.. 남사스럽게시리.. 미희야, 우리 백화점이나 가자. 볼 것두 별루 없네.」
미술관을 나서며 꺼놨던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기다렸다는 듯이 진동이 요란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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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두 더워 죽겠는데 이 노무 자식이 더럽게 버티네..」
덥다면서도 경찰모자도 벗지 않고 부채질만 죽어라 해대는 순경아저씨를 윤호는 속으로 맘껏 비웃어 주었다. 가끔 옆에 나란히 앉은 진우 이 자식을 죽어라 노려 보았다. 때때로 순경아저씨가 그런 윤호의 머리통을 가볍게 한 대씩 갈기기는 했지만 그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제기랄, 난 범인이구 이 녀석은 피해자니깐 떨어뜨려놔야지. 이렇게 나란히 앉혀 놓으면 피해자가 말을 하겠냐. 멍청한 순경새끼들..’
떨어뜨려 놔도 진우가 뭐라 입을 열리는 없다고 확신했다. 어쨌거나 매일 학교에서 얼굴을 맞대야 할 처지이니까.. 혹시 방학동안 전학이라도 가면 모를까..
「너, 그동안 이 놈한테 얼마나 뜯겼어?」
「그, 그런거 아니에요. 뜯긴 거 없어요. 아깐 그냥 전에 빌렸던 거 갚은 거에요.」
윤호는 속으로 감탄했다.
‘이 새끼 그래도 나보다 몇 등 위라고 거짓말도 참 잘 하네’
「이 녀석들이 아저씨를 놀려? 아까 신고하신 분이 누군지 알아? 너희들 내일 TV출연하고 싶어? 얼른 사실대로 말해. 조용히 끝내려고 했더니 이 자식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윤호는 순간 갈등했다. 조용히 끝낸다는 말에 솔깃한 것이다. 사실 이 상황은 윤호로서는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집에 알려지면 아빠와 엄마는 까무러칠 거다. 그리고 깨어나서는 윤호를 무지하게 패시겠지. 그러면 이제는 윤호가 기절할 차례가 되는 거다. 아마도 기절하기 전까지 무지하게 아프겠지.. 빨리 기절하면 그나마 나을텐데.. 일부러 기절한 척 해볼까..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픈 것보다 더욱 겁나는 건 부모님이 윤호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다.
「전화 연결됐습니다.」
젊은 순경이 핸드폰을 넘겨주자 부채를 던지고 이제와는 다르게 점잖은 말투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 최윤호 학생 어머님 되십니까? 여기는 ㅇㅇ경찰서 ㅇㅇ지구댑니다. 다름이 아니라..」
윤호는 아득한 절벽으로 떨어져 내리는 듯한 아찔함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찌 되겠지 하는 심정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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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8월 초의 여름낮은 아직도 저물지 않고 질기게 버틴다. 빵빵한 에어컨과 두툼한 철판으로 무장한 차안에서도 그 열기를 피할 수는 없다. 엄마는 경찰서를 나온 뒤에도 한 마디 말이 없다. 윤호는 이런 상황이 제일 싫었다. 계산을 굴려 본다. 엄마는 그래도 아빠에 비해서는 더 이성적이고 인내심있고 매질하는 힘도 약한 편이니 이제부터 말을 잘 해야 한다.
진우 엄마와 경찰아저씨 한테 고개숙이고 죽어라 용서를 비신 것과 여태까지 빼앗긴 것 보상하겠다며 수표 몇 장 쥐어주신 것.. 그런데 그게 몇 장이었는지를 정확히 보지 못했다. 남들 앞에서 그만큼 창피와 수치심을 느끼신 것.. 이 모든 것들을 감안해서 어떻게든 만회할 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모범생인 줄 알았던 아들이 사실은 친구 괴롭히고, 삥뜯고, 가끔 거실 진열장의 양주를 훔쳐마시는 문제아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다는 배신감까지 감안해야 한다. 양주 껀은 아직 모르실 것 같기는 하지만..
「용돈이 부족했니?」
「아니요..」
지영은 계속 한숨만 폭폭 쉬었다. 진우 엄마가 노려보던 그 눈초리를 잊을 수 없다. 경찰 아저씨가 혀를 끌끌 차대던 그 소리를 잊을 수 없다. 40평생에 이렇게 창피하고 낯없기는 처음이다.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얌전하고 고분고분 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10등 안에는 꼭 들길래 똑똑한 녀석이구나 했는데.. 집에서는 방안에만 틀어박혀 살길래 또래 랑 다를게 없구나 했는데..
그런데, 이제보니 아들녀석에게 이렇게 뻔뻔한 구석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진우 엄마에게 뺨을 맞은 뒤에도 기죽지 않고 냉랭하게 진우 녀석을 노려보던 윤호의 모습에 지영은 전율을 느꼈다.
내가 배아파 낳은 아들이 맞아? 내가 곱게곱게 키운 그 아들, 윤호가 이런 녀석이었단 말야?
지영은 그런 배짱이 없었다. 겁도 많아 윤호를 낳고 나서는 둘째를 가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윤호 아빠는 지영이 싫다는 걸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 것까지도 다 이해해주었다. 그런 윤호 아빠도 그리 배짱있고 듬직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둥글둥글 성격 좋은 것과 다정한 것만이 장점인 사람이었다.
그렇담 이 녀석은 대체 누굴 닮은 거지?
꼿꼿하게 고개를 쳐들고 노려보던 아들녀석의 그 거만한 눈초리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린다. 깊은 물에 빠져 짖눌린 것처럼 지영의 가슴이 힘겹게 갑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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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는 담담한 채 엄마의 곁에서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속으로는 어쩔 줄을 몰라 죽을 맛이었다. 컴퓨터로 다운 받은 공포영화였다면 미리 돌려보아 언제쯤 유령이 튀어나올지 대비라도 할 수 있을텐데.. 엄마 속을 어찌 알겠는가.. 상황은 분명 공포영화가 돌아가려고 하는데, 앞으로 어떤 일이 분명 벌어질텐데.. 초조하기만 하다. 어떻게든 엄마의 닫힌 입을 열고 상황을 부드럽게 무마시켜야 되는데, 어떻게든 엄마가 웃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나마 다행인건 아빠가 장기출장 중이라는 거다. 사실 일하시는 도중에 집으로 가끔 출장오신다는게 맞을거다. 그만큼 바깥에서 주무시는 날이 더 많다. 아빠는 평소에 다 좋으신 분이다. 용돈도 엄마 몰래 한 주먹 쥐어 주시고, 잔소리도 거의 없으시고, 화내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한 번 화나시면 엄청 무섭다.
초등학교 2학년 땐가 아빠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욕을 몇 마디 알게 됐다. 당시 친구들 중에는 억세고 장난질이 심한 녀석들이 많아서 지기 싫은 마음에 열심히 그 녀석들과 욕설을 주고 받으며 놀았다. 그런 데 그만 욕이 입에 뱄는지 무심결에 엄마 앞에다 대고 욕을 해버렸다. 왜 그랬는지 당시의 정확한 상황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때 했던 욕을 기억난다.
「에이 씨발. 졸라 지랄하네..」
그때 하얗게 질리던 엄마의 얼굴 표정과 지옥마왕처럼 무섭게 일그러지던 아빠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빠는 처음엔 얇은 회초리로 내 종아리를 때리셨다. 내가 미운 5살이 되었을 때 엄마가 집에 구비해 놓으신 것이다. 드라마를 많이 보신 엄마가 아들이 잘못했을 때 우아하게 잘못을 꾸짖으시려고 갖다놓으신 것일 뿐 그때까지 한번도 휘둘러지지 않았었고, 또 막상 맞아 보니 그리 아프지도 않았다. 그래서 윤호는 어린 마음에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나누었던 커뮤니케 이션 방식대로 엄마, 아빠 앞에서 해대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는 아빠의 손, 발과 먼지낀 골프채까지 동원되었지만 다행히 엄마가 중간에서 가로막은 덕분에 골프채의 먼지를 닦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우아하고 세련되고 연약한 분이라 아빠처럼 그렇게 무식하게 하시지는 않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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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현관문이 열렸다가 지영과 윤호의 뒤로 닫힌다. 말없이 먼저 구두를 벗고 올라서며 지영이 신발을 벗는 윤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윤호도 마주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샌들을 벗었다.
「이 녀석이 어디서 뻔뻔하게」
지영이 갑자기 윤호의 귀를 잡아채어 거실 소파쪽으로 끌고 간다. 윤호는 놀라고 귀가 떨어질 것처럼 아파서 하릴없이 질질 끌려간다.
「쫘악, 짝, 짝..」
첫 방이 타이밍이 잘 맞았는지 듣기좋은 소리가 난다. 계속해서 지영의 손길이 윤호의 뺨을 강타한다. 두번 째부터는 그리 잘 맞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윤호가 본능적으로 얼굴을 피했기 때문이다.
지영은 때리면 때릴 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기가 막혔다.
「이 놈이 피해? 뭘 잘 했다구. 가만 안 있어? 가만 안 있어, 이 자식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널..」
윤호는 처음에는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이제는 두 볼을 손으로 감쌌다. 그랬더니 엄마의 손이 이제는 몸의 이곳저곳을 마구 난타한다. 주먹쥔 손도 아니고 발길질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평소 궂은 설거지와 손빨래로 단련된 엄마의 손이 그냥 맞아줄 만큼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게 느껴진다. 엄마의 손이 와닿는 곳이 따끔거린다. 땀에 젖은 몸에서 또다시 찰싹찰싹 타이밍 좋은 소리가 난다.
윤호는 기겁을 하고 놀랐다. 이렇게 엄마가 우아고, 세련이고 다 던지고 육탄전을 벌이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신경전과 폼만 나는 회초리에 몇 번 종아리 대주고 그 뒤에 길게 이어질 침묵에 대비했을 뿐이었다.
「엄마, 잘못했어요. 엄마, 엄마, 그만, 아야, 그만요.. 아야..」
쪽팔린다. 친구들이 이런 모습을 못 보는게 다행이다. 특히나 진우 그 녀석이 이런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비웃을까.. 아마 더 이상 윤호를 무서워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아이, 씨ㅂ.. 엄마, 그만 하라니까..」
윤호는 자신도 모르게 내리치던 엄마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챘다. 의도했던 건 아닌데 그 서슬에 잡힌 지영의 팔이 약간 비틀렸다.
「아야, 아야..」
지영의 입에서 비명이 새 나왔다. 지영은 윤호에게 잡힌 팔이 순간적으로 너무 아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엄마한테 감히..하고 화가 치밀기 전에 갑자기 가슴 한 쪽에 구멍이 뻥 뚫린 듯 시원해졌다.
지영은 잠시 멍하다가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윤호의 뺨을 후려 갈겼다.
「이 자식이 인젠 엄마한테 대들어?」
그러나, 그 손은 윤호의 뺨에 닿기 전에 억센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또다시 꽉 죄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동시에 아까의 그 시원한 뻥뚤림이 찾아왔다. 그리고 마치 멈췄던 것이 다시 살아난 듯 심장이 무섭게 콩닥콩닥 뛰었다.
「무식하게 왜 이래 엄마? 말루 해, 말루..」
윤호가 지영의 두 손을 뿌리치듯 놓으며 똑바로 쳐다본다. 아까 경찰서에서의 그 거만한 태도 그대로다. 이 녀석은 미안하지도 않은 걸까? 지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걸까? 지영은 다시 화가 치민다. 게다가 무식하다니.. 이 엄마는 대학교 4년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재원에 미모까지 겸비한 여자라구.. 무식하다니.. 무식하다니..
그러고보니 지영은 평생 무식하다는 말도 처음 들어봤다. 사람들이 칭찬이건 비방이건, 그녀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을 하곤 했지만, 그 중에 무식하다는 말은 없었다. 가슴 한 쪽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에어컨은 아직 켜지도 않았는데, 여름 낮은 아직인데..
「얘가 어디서 말을 함부로.. 너 지금 엄마한테 대드는 거야?」
윤호는 짜증스럽다. 별로 아프지는 않지만 이렇게 맞아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맞는게 싫어, 왕따당하는게 싫어 그동안 어울렸던 친구, 형들.. 그들에게 배운 방식이 짧게 스쳐간다. 아들에게 손매를 휘두르며 언뜻언뜻 보이는 희열의 모습에서 윤호는 예전 자신을 괴롭히던 원수같은 자식들의 비열한 웃음을 떠올렸다.
「엄마가 아까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아? 이 녀석이, 찰싹, 사람들 앞에서, 찰싹..」
사이사이 찰싹 소리는 지영의 손이 윤호에게 닿아서 난 소리이다. 그러나, 때리고 맞으며 난 소리는 아니다. 지영이 손을 휘두르면 윤호는 냉정한 얼굴로 그 손등을 찰싹 때려 뿌리쳤다.
지영은 아들이 자신의 손등을 찰싹찰싹 뿌리칠 때마다 아찔한 통증을 느꼈다. 아찔한 만큼 가슴이 시원해졌고, 심장은 더욱 바삐 뛰었다. 고분고분 맞아주지 않는 아들 윤호의 태도가 싫지 않았다. 아까처럼 피하지 말고 이렇게 뿌리쳐주는 게 좋았다. 물론 남들이 보기엔 뿌리치는 게 아니라 버릇없는 아들이 엄마의 손을 때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윤호는 속으로 엄마를 비웃었다. 자신을 제대로 때리지도 못하면서 매번 실패하는 손찌검을 왜 하는 걸까.. 그러나, 자신의 눈앞에서 자꾸만 약올리듯 아른 거리는 엄마의 하얀 손등을 못 본 척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자신이 고양이가 된 듯했다. 놀림을 당하는 고양이처럼 눈앞에 오가는 엄마의 하얀 손등을 넋을 잃은 채 때리고, 때리고 하다가 불현듯 손목을 낚아채고 말았다. 따뜻하고 나긋나긋한 솜뭉치가 무너지듯이 엄마의 몸이 윤호 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지영은 잡힌 손목을 타고 강렬한 고통이 심장을 깊숙히 찌르는 것을 느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뼘 앞에 아들의 거만한 시선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영은 갑자기 터질 듯한 소변기를 느꼈다.
「윤호, 너 니 방에 들어가서 반성하구 있어!」
지영은 윤호의 손을 간신히 뿌리치고 화장실로 급히 향하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윤호는 아무 말도 않고 자기 방으로 가더니 문을 쾅 닫았다. 지영은 문 닫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참았던 걸 놓아버렸다. 그 어느 때도 느껴보지 못한 쾌감이 쪼르르 흘러나왔다. 허벅지가 경련을 일으키듯 떨려왔다. 치맛자락을 잡은 지영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지영은 자꾸만 벌어지는 입술을 앙다물고 눈을 감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나락으로 떨어져내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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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지만 습관처럼 저녁 밥상을 차리고 지영은 식탁에 앉았다. 평소와 다른 거라면 밥그릇과 수저가 지영의 몫만 놓여진 것이다. 지영은 일부러 숟가락을 밥그릇에 부딪히고, 젖가락으로 반찬그릇을 때렸다. 그때마다 사기그릇에서는 때론 둔탁하고 때론 청량한 소리가 났다. 전에도 이런 소리를 냈었나 싶다.
「쾅」
아까처럼 신경질적인 소리가 나며 윤호가 식탁 쪽으로 쿵쿵거리며 걸어온다. 지영의 마음도 쿵쿵거렸다. 두근거렸다.
윤호가 혼자 젖가락질 중인 엄마 쪽을 한번 흘겨보더니 빈 그릇을 들고 밥솥쪽으로 간다. 지영은 젖가락을 소리나게 딸깍 내려놓고 윤호에게 달려들어 그릇과 주걱을 빼앗았다.
「뭘 잘했다구 밥을 먹어? 너 오늘 저녁 밥 없어! 굶어!」
지영은 뺏은 그릇과 주걱을 설거지통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윤호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다른 그릇을 찾아 들고 이제는 주걱 대신 숟가락을 열린 밥솥에 꽂아 넣는다. 지영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또다시 뺏으려 달려들었다. 윤호는 몸을 홱 돌려 엉덩이로 지영을 밀어내며 뺏기지 않는다. 밥 몇 숟가락을 그릇으로 옮기는데 성공한다. 지영이 숟가락 잡은 윤호의 손을 마구 꼬집었다.
「너 이거 안놔? 어디서? 안 놔? 안 놔?」
잠시 실랑이 하는 동안 밥풀 붙인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그래도 지영은 꼬집기를 멈추지 않았다. 꼬집는 손목에는 약간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윤호는 버럭 화를 냈다.
「씨ㅂ.. 사람이 밥은 먹어야지? 왜 못 먹게 그래요? 배고파 죽겠는데?」
그러면서 꼬집는 엄마의 손목을, 퍼렇게 멍든 그 부분을 다시 우악스럽게 잡아 죄었다.
「아, 아, 아아.. 아퍼, 아퍼..」
지영이 비명을 질렀다. 잡힌 팔 뿐만 아니라 몸도 비틀며 눈쌀을 찌푸린다. 아까와는 또다른 아픔이 느껴진다. 그리고 또다른 쾌감이 느껴진다. 이게 뭘까.. 이게 뭘까.. 궁금해진다..
「이게, 찰싹, 이게, 찰싹, 어디서, 찰싹..」
잡히지 않은 지영의 다른 손이 윤호의 몸을 때린다. 때린다기보다는 파닥거리는 것 같다. 잡힌 새가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 같다.
윤호도 가만 있지 않았다. 엄마의 두 손을 잡아 파닥거리지 못하게 힘을 주었다. 자세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두 손목을 잡고 활짝 벌린 형태가 되어 버린다. 바닥에 무관심하게 버려진 그릇과 숟가락, 어지럽게 흩어진 흰 밥알들이 눈송이처럼 밟힌다.
씩씩거리며 오르락 내리락 하는 지영의 가슴이 윤호의 몸에 닿았다. 힘으로 아들을 이기지 못하리란 건 처음 손목을 잡혔을 때 알았다. 키는 아직 엄마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힘은 벌써 엄마를 웃자라고 있었다. 그 억센 힘으로 지금 아들은 지영의 손목을 꼼짝 못하게 잡고 있다. 계속 아프게 잡혀 있고만 싶다. 그러나, 손목은 자꾸만 아픔에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고통은 점점 흐려지고, 시원하던 가슴은 점점 뜨거워져 간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들의 손은 엄마의 손목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코끝에 땀이 송글한 채로 지영은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몰랐다. 그저 맞은 편에서 소도둑처럼 꾸역꾸역 밥을 먹어대는 아들의 손짓 하나하나를 감시하듯 꼼꼼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윤호의 젖가락이 계란말이로 향할 때면 어김없이 지영도 젖가락을 내밀어 방해했다.
「아이, 씨발.. 먹는 거 가지구 치사하게..」
이제는 엄마에게 욕까지 한다. 어릴 때 그렇게 혼나구두 잊었나보다. 하긴 지 아빠가 없으니.. 나쁜 놈.. 어디 욕 좀더 해보시지.. 설마하니 중3 밖에 안된 녀석이 욕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 궁금하다.. 아들은 얼마나 못돼 먹은 놈일까..
「쿵」
세번 째인가 계란말이 먹는 걸 방해했더니 윤호 녀석이 이제는 지영의 앉은 의자 다리에 발길질을 하며 화를 냈다. 지영은 흠칫 놀라며 뺨까지 붉어졌다.
맞아.. 발두 있었지..
산부인과에서 핏덩이 윤호를 처음 안았을 때 확인한 걸 마치 몰랐다는 듯 지영은 새삼 놀란다. 손목에 어린 피멍을 어루만지며 지영은 윤호에게 두 손과 두 발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의자 다리가 갑자기 미워졌다. 왜 거기에서 아들의 발을 막고 있는 거지.. 그 발은 나에게 올 것이었는데..
계란말이를 지영은 별로 즐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매 끼니 계란말이를 올릴 생각이었다. 윤호가 질려할 때까지, 윤호가 엄마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할 때까지 계란말이를 식탁에 올릴 것이다.
이제까지 엄마를 속인 벌이야.
엄마를 속이고, 엄마를 여태까지 무료하고 지루하게 살게한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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