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렉트라(2)
= 엘렉트라 = <2>
혼자서 집을 지키고 계실 엄마를 생각하며 급히 차를 몰아 집에 도착 하였다.
신문을 내미시며 힘없는 목소리로 엄마가 말씀하셨다.
신문을 보니 사회면에 아빠의 죽음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내용은 국내 유망기업의 사장이 한강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며,
경찰에서는 타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써있었다.
보는 가족의 심정이 어떨까..
기가 막히는 심정으로 신문을 한켠으로 던져 놓았다.
똑같은 대답 하기도 그래서 전화를 빼놓았다]
[잘 하셨어요]
[아, 네..저 구형사 입니다]
문을 여니 거기에는 구형사와 또 한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김군, 이쪽은 강형사라고 하네..좀 들어갈까?]
[네, 들어오세요]
두사람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형사님 무슨 소식이라도...?]
엄마가 숨가쁘게 물었다.
[아뇨, 이제 시작인걸요..오늘 저희가 방문드린것은 수사상 필요한 몇가지 질문좀 드리고..]
[부군의 물건들을 좀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네에...]
[질문중에 다소 실례가 되는점이 있더라도 양해해 주십시오, 의례히 확인해야 하는 사항들이라서..]
[사건의 성격이 강력사건이다 보니 저희로써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네..알겠어요]
[김군, 미안하지만 물 한잔 먹을수 있을까?]
[아! 네..죄송합니다... 저희가 워낙 경황이 없다보니..손님이 오셨는데...]
엄마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아닙니다..허허허]
[제가 가져올께요, 쥬스도 괜찮으시죠?]
나는 일어서서 주방으로 향하며 물었다.
[그럼! 아무거나 주게..]
[부군이 최근에 아니면 그 전이라도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말씀이나 행동은 없으셨습니까?]
[없었어요..그렇지 않아도 어제밤 내내 이것저것 생각해 봤지만..]
[김군은?]
[저도 역시..마찬가지 인데요]
[부군은 어떤분 이셨습니까? 질문이 막연하다고 생각 되실지 모르겠지만..지금까지 살아 오시면서
평소에 부군에 대해 가지고 계신 생각을 말씀 드리는 겁니다]
[글쎄요..비록 다정다감하고 자상 하지는 않았지만 이제까지 속을 썩여 본적은 없었어요..
단지 불만 이라면 일에 너무 빠져서 식구들과의 시간을 갖는것이 적었다는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
이었지만.. 그것은 어찌보면 사업하는 시림의 식구들이 치러야 하는 반대급부라고 생각해 왔죠]
[그러니까..특별한 점은 없으셨다는 말씀이신데..]
[이건 만약을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부군이 여자관계는 없었습니까?]
[없었는데요..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일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않는 사람처럼 살았어요]
[그럼 혹시 사업상 원한관계나..아니면 회사에 불만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으셨나요?]
[아뇨, 밖의 이야기는 집에와서 잘 안 하는편이라서...그게 저도 불만 이었지만요..]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내가 인터폰 화면을 보니 엄마의 친구들이었다.
[엄마, 친구분들 오셨는데요.]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수지, 소현 아줌마 였다.
[유선아! 이게 무슨 날벼락이라니!!]
[그래..와줘서 고맙다. 근데 지금 중요한 손님이 계시니까..방에 좀 들어가 있을래?]
[누구?]
[어..형사님들이셔..]
[응..그래]
[혹시 자금이 딸려서 고민 했다거나..아니면 고민하던 자금문제가 해결 되었다던가..
이런 질문을 드리는것은 혹시라도 사채와 연관된 일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회사에 가서도 확인 하겠지만..그런일은 없었습니까?]
[네..제가 아는한은 없습니다]
[부군의 서재는 어딥니까?]
[저쪽 방 인데요]
[저희가 좀 살펴 보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자..그럼...]
두 형사가 서재로 들어가자 시우도 따라 들어갔다.
[아! 자넨 어머니하고 있지? 무엇을 가지고 갈 경우 그 목록을 다 적어 줄테니까..]
[네..그러죠..]
따라 들어갔던 시우가 나오니 엄마는 친구분이 계신 안방으로 들어가고 계셨다.
[엄마! 차 준비 할께요]
[그래줄래? 그래..]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은 엄마가 한것과 자신이 생각하는것과 별반 다를것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빠와 살아온 지난 날들에서 특별한 추억을 찾을수 없다는 것에 새삼 안타까움을 느낀다.
어릴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지낼수 있다지만, 철이 든 후 아빠가 무뚝뚝하고 일에 쫒겼다 하더라도 내가 먼저 그런 기회를 만들수는 없었을까 생각하니 후회되는 마음이 밀려온다.
[휴우...]
한숨을 내쉬며 차를 준비하여 안방으로 갔다.
[들어와..]
푹 잠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 드세요]
[고맙다, 네가 얼마나 상심이 크니? 엄마도 엄마지만...흑흑흑]
방안은 이미 눈물바다였다.
크게 소리내지는 않았지만 세사람이 모두 눈물을 매달고 손을 잡고 흐느끼고 있었다.
[....................]
나도 목이 메어 아무소리도 못하고 눈시울만 붉히고 있을뿐이었다.
[저 나가 있을께요]
나는 거실로 나와 찬 물을 한잔 들이키고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내 핸드폰이 울렸다.
번호를 보니 경준이었다.
[경준이냐? 왜?]
[야! 이놈들이 지금에야 소식을 들은 모양이야. 신문에서 봤대]
[얘들은 너보러 가야 한다고 하는데..내가 지금은 경황이 없으니 그만 두라고 그랬다]
[그래, 잘했다, 지금 형사들도 와 있고 또, 엄마 친구분들도 와 계시고]
[그래, 알았다..근데 너는 괜찮은거지? 자꾸 걱정이 된다.]
[어..괜찮아. 끊을께]
[그래]
[뭐 빈 박스나 보자기 같은것 없을까?]
[그게 뭐죠?]
[어머니 잠깐 나오시라고 하지?]
[네]
[엄마 잠깐 나와 보세요! 형사님들이 찾으세요]
엄마가 나오자 구형사가 말했다.
[컴퓨터 하드디스크 하고 몇장의 시디와 플로피입니다, 그리고 회사관계 서류들 프린트 되어있는거 하고 영수증들, 일단 참고 자료로 가지고 가고..나중에 그대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필요하면 연락드리죠]
[네, 알겟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히 가세요, 애 좀 써주세요]
[아참, 그리고 남편은 언제나...]
아빠 시신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는지를 묻는거였다.
[오늘 부검에 들어가니까..며칠내로 인계해 드릴겁니다]
부검 소리에 엄마는 또 눈물을 흘리신다.
죽은것도 억울한데 그 시신마저 온전하질 않으니 얼마나 복장 터지는 일인가..!
자료를 찾느라고 이것 저것 헤집어 놓아서 정리가 필요할것 같았으나, 지금은 그것도 귀찮은 생각이 들어 그냥 나왔다.
거실에는 엄마와 친구분들이 나와 앉아 있엇다.
그동안 실컷 울어서인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냥 앉아 있을뿐이었다.
나도 내 방으로 들어왔다.
거기 앉아 있어봐야 답답하기만 하고 지금 딱히 할것도 없고해서..
나는 엄마가 빼놓은 전화기를 다시 꽂았다.
귀찮은것은 둘째 치고 아빠의 사건이 진행중인데 우리집과의 연락이 순조롭지 못하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는 거실로 나가 전화를 다시 꼽았다고 엄마에게 말씀드리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아! 김형태 사장님댁 이죠?]
[네! 그렇습니다만..]
[아! 시우군인가? 나 아버지 친구 오재종일쎄..]
[아..네! 안녕 하셨어요?]
아빠와 같이 공동 대표이사로 있는 아빠친구였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 알았네.. 어제만 해도 아무 일 없이 멀쩡했는데..이게 무슨..]
[어머니는 계신가?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막막 하네만...]
[네 지금 친구분들이 위로 한다고 찾아 오셔서 같이 계십니다만.. 바꿔 드릴까요?]
[아니..됐네..그럼, 조만간 찾아 뵙겠다고 말씀 전하게]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누구니?]
[아빠 친구분 오재종씨요]
[아..!]
[조만간 찾아 오겠다고 전해 달래세요]
그러고 보니 오늘 한끼도 못 먹었다.
심한 시장끼를 느끼면서 이 와중에서도 밥 생각이 나는구나...자조하며
[엄마, 나 학교에 갔을때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입이 깔깔해서 안먹고 너 오면 먹으려고 했는데..그만.. 너 배고파서 어떡하니..]
[괜찮아요, 엄마가 더 힘드시죠..]
[저녁 간단하게 시켜먹죠?]
[그래 그러자..뭘 만들 기운도 없고..]
그때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고모였다.
[어 시우구나! 저녁 먹었니?]
[아뇨 이제 뭐 시켜 먹으려구요]
[그럴줄 알았다. 내가 가는길에 뭐 좀사갈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거의 다 와 가니까..]
[알았어요 고모]
[고모가 사 온다네요]
[잘 됐네..]
몇십분후 고모가 왔고 손에는 저녁거리가 들려 있었다.
[언니, 입맛도 없을것 같아서 초밥 사왔어요..괜찮죠?]
[그럼요..잘 먹을께요]
[잘 먹을께요, 고모]
식사를 마친 후
[언니 나 가봐야겠어요, 아버지가 어제일로 충격을 받으셨는지..오늘 내내 몸이 안좋다고
가게로 전화가 와서 가 봐야겠어요]
[여기는 정신없는 집에 이야기 하지말라고 했는데 걱정한다고..모르는체 하고 신경쓰지 마요,
별일 아닐테니까..]
[연세도 계신데..이따 전화라도 드릴께요]
[알았어요, 그럼 나 가요]
[나 좀 쉬고 싶다, 너도 좀 쉬렴]
[그래요 엄마, 좀 누워 계세요. 일찍 주무시던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중 깜빡 졸았나 보다.
밖에서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잤니?]
[아뇨, 잠깐 졸았나 봐요]
[어제는 약 기운 때문이었는지 잠을 좀 잤는데..오늘은 이대로 잠이 올것 같지 않구나..]
[맥주라도 한잔 마셔야 되겠다. 답답 하기도 하고..]
[내가 가져 올께요]
나는 냉장고로 가서 맥주 두캔을 들고 왔다.
엄마는 맥주를 급하게 벌컥 벌컥 마시더니 내려 놓는다.
평소에 보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참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간간히 맥주를 들이킬뿐..
[니 아빠가 죽어서 무섭다는것이 아니라, 아빠가 없다는것이 무서워..!]
[니 아빠와 20여년을 살아 오면서 니 아빠가 어느날 갑자기 내 곁에 없을수도 있다는 생각은 가져 보질 못했거든..]
[뉴스에 나오는 모든 사건들은 남의 얘기로만 알았는데....흑흑흑]
[네가 몰라서 그렇지..사실은 일에만 열중하는 니 아빠에게 자주는 아니지만 바가지도 많이 긁었단다..나중에는 자포자기 해서 그냥 살아온 거지..]
[이렇게 가 버릴줄 알았다면.. 휴우.. 모든게 후회 되는구나..]
[자책하지 말아요, 그게 뭐 대단하다구요.. 그럴수도 있는거죠..]
[저도 마찬가지죠]
[술 좀 더 가지고 오렴..오늘은 좀 취해야 잠이라도 잘것 같다]
[괜찮겠어요? 술도 약하면서..]
[괜찮아..한 두잔 정도 더 마시는건데 뭐..]
[맥주는 없는데..]
[양주라도 가져와..한잔만 더 먹을께..]
보이지 않는다.
할수없이 그거라도 들고 왔다.
[안주가 시원치 않으니 딱 한잔만 마셔요..!]
엄마가 걱정되어 조금만 마실것을 권했다.
[괜찮아..]
나는 엄마와 내잔에 한잔씩 따랐다.
엄마는 양주잔을 들더니 천천히..그러나 한번에 다 마셔 버렸다.
[그렇게 한번에 마시면...]
나는 천천히 마실것을 권하려다 포기했다.
어차피 좀 취해서 잠을 자려 하던 엄마의 의도 아니던가.
[좀 취해야.. 그나마 잠을 잘 수 있을거야..]
[그래요..천천히나 마셔요]
나도 한잔 따라서 마시니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양주의 강한 자극이 찌르르하게 느껴진다.
[네 아빠에게 무슨일이 있었건 것일까? 네 아빠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일을 당하고 보니
내가 몰랐던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범인은 반드시 잡힐거에요! 그래야 아빠도 편히 눈 감으시죠.]
[아빠 같은 분이 설마 나쁜일에 휩쓸린다거나 하지는 않았을거에요]
[제발 그렇게 돼야 할텐데..]
엄마는 양두병을 잡더니 다시 한잔을 따라 마신다.
나도 역시 또 한잔을 따라 마셨다.
[응..그래..자야지..]
[시우야, 엄마 잠 들때까지 니가 옆에 있어주면 안되겠니?]
[왜 안돼요? 자..들어가요,]
나는 엄마를 부축해서 침대에 눕게 한뒤 침대옆에 앉았다.
[휴우....]
한숨을 몰아쉰 엄마가 나를 향해 돌아 누우시더니
[손 좀 줘..]
내가 손을 주자 내 손을 잡은채로 베개처럼 베고는 눈을 감았다.
[아들이 있어주니 조금은 낫다..]
[..................]
[엄마가 의연해야 하는데..너무 못 났지?]
[아뇨, 엄마는 의연해요!]
[만약 엄마가 그러지 않았다면 나도 더 힘들었을거에요..엄마의 의연함을 보고 남자인 내가 그러면 안돼지 하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아빠가 없는 자리가 이렇게 휑하니.. 이럴줄이야...]
[..............]
조금 지나자 엄마가 잠든듯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잠든것을 확인 하고도 몇분쯤 있다가 살며시 내손을 빼었다.
[음...]
그러자 엄마는 천장을 향해 똑바로 누우셨다.
나는 이불을 잘 덮고는 살짝 방을 나와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을 맞은 이튿날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