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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아담의 계절(2) -- 수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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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계절(2) -- 수정판


초등학교 3학년의 나이에 빠구리를 시도했건만 보지맛도 못 본 채 억울한 누명만 쓰고 된통 곤욕을 치룬 나는 한동안 "빠구리라는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난다" 라는 기분으로 아예 그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사실 10살 안팎의 소년에게 세상은 더욱 재미있고 신비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전자 오락, 컴퓨터 게임, 군것질, 축구, 여름이면 수영, 겨울이면 스케이트,...더구나 당시 우리동네는 서울에서도 외곽에 속해 아이들이 말타기며 구슬치기 딱지치기등도 즐겨 이런 것들로만도 하루 해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가령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거나 너무 추워 밖에 못나갈 지경이 되더라도 TV와 만화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거뜬히 때울 수 있었다.

흘러 가는 시간과 함께 나도 성장해 갔지만 그런 즐거움들에 파 묻힌 생활은 2차 성징(性徵)이 나타 난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 되었다.
어느 것이 꼭 먼저였는지 모르지만 자지가 가려워서 긁다 들여다 보면 두덩에 붓끝 같은 검은 털이 몄개 돋아 났고, 갑자기 목이 쉰듯 하다 이른바 "아담스 애플" 이 튀어 나온 것도 알게 됐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첫 몽정도 했다.
그러나 내게는 별로 신기할 것도 없었다. 주위의 친구들 중에는 나보다 훨씬 빠른 애들도 많아 나도 그런 과정을 거칠 것은 뻔했기 때문이다.

가끔 마스터베이션을 했지만 주목적은 팬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기분이 찌부듯하거나 유난히 자지가 잘 설 때는 미리 그걸 해 주면 밤에 몽정을 안하기 때문이다. 그 요령도 나보다 일찍 성장기를 거친 친구들에게 배운 것이다.
친구놈들 중에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우리는 방과 후의 교실이나 운동장의 으슥한 곳에 빙 둘러서서 그걸 자랑하는 녀석들을 구경하기도 했었다.

중학생이 되고서도 나는 거의 이성에 관심이 없었다.
당시 중학교 생활에서 나는 내 또래 남학생들을 3가지로 분류하고 싶다.
첫째는 "현실파"다.
부모나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부류로 일단 공부가 최우선이다. 그렇다고 성적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지각이나 땡땡이도 안 친다. 탈선도 없다. 하지만 친구로 사귈만한 재미도 없다. 하기야 저희들도 별로 남을 사귀려 하지 않는다. 제가 물 들까봐.
시험 치는 날에는 하품을 해 대면서도 "나 어제 잠만 잤어"라면서 컨닝페이퍼를 열심히 준비하는 놈, 도시락을 먹을 때 좀 맛있는 반찬을 가리고 먹는 놈들도 대개 이런 부류다.

둘째는 "진보파"다.
학교 공부는 너무 시시하고 인생에 도움이 안된다며 학교 안에서도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그 새로운 것이란 거의 여성, 섹스에 집중된다.
어제 누구를 따 먹었다느니, 어느 여학생이 걸레라느니, 뚱보 물상 선생이 아직 처녀인 양호 교사 보다는 보지맛이 좇게 생겼다느니, ... 항상 그런 것들이 화제의 중심이다.
그중에는 더러 몸으로 실천하는 친구도 있지만 대개는 아직 상상으로 즐거워 하고 입으로만 떠드는 정도다. 화장실에 낙서하는 놈들도 거의 이런 부류다.

셌째를 나는 "낭만파"라고 이름 부쳤다.
사실 중학생의 생활에 공부와 이성 문제만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문학, 음악, 영화, 운동 등에도 얼마든지 심취할만한 매력과 가치가 있고 그런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2학년 때 우리반의 한녀석은 검사 아들인데 가끔 우리를 집으로 불러 손수 요리한 스파케티나 떡볶이를 맛보이면서 "나중에 식당을 차리거나 그럴 형편이 못되어도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당시 그녀석을 좀 모자란 놈으로 취급했지만 그 역시 "낭만파"다.
우리가 기껏 영화의 인상적 장면이나 배우의 미모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감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놈도 이런 부류다.

나도 당시는 "낭만파"에 속해 있었다. 특별히 무엇을 잘하거나 심취한 것은 없었지만 공부벌레도 아니었고, 맨날 보지 이야기만 해대는 축에도 들지 않았으니까.
"낭만파"에는 나보다 앞서 가는 놈들도 많았다. 쇼펜하우어가 자살을 예찬했다든지, 비틀즈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알게된 것도 그 녀석들과 어울리면서 얻은 지식이었다.
하여튼 나는 "현실파"가 시험문제 하나 더 맞히려고 참고서를 볼 때 소설을 탐독했고, "진보파"가 일본판 외설만화를 보며 낄낄 거릴 때 순정만화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때가 있는 것일까. 2학년 2학기의 어느날 나는 옆에 앉은 친구가 낄낄 대며 보고 내던진 만화를 들춰보다 갑자기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 했다.
만화 내용은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일본 만화를 번역한 것으로 주인공은 내 또래 중학생인데 그저 이 녀석만 나타나면 엄마고 누나고 이모고 누나 친구고간에 모두 환장을 해서 "흑,흑, 더 박아 줘" 라며 매달리는 것이다.

그 전에도 이런 종류의 만화는 몇번 보다 재미 없어 덮어 버리곤 했는데 이날은 집으로까지 갖고 와서 만화잭을 펴 놓은 채 연달아 마스터베이션을 3번이나 했다.
다음날 나는 현기라는 친구를 꼬드겨 그 애 집에서 비디오를 봤다. 현기 집에는 음란비디오가 많고 "진보파"들이 가끔 감상회를 갖는다는 것을 이미 그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기는 또하나의 동조자를 포섭했다는 기분 때문인지 내 청을 선선히 들어 주었다.

만화와는 차원이 달랐다. 여자의 보지와 젖통이 어떻게 생겼고 씹을 어떻게 하는지는 나도 다 알고있다고 생각 했었는데 팔뚝만 한 서양놈 좆이 입으로, 똥구멍으로 쉴 새 없이 드나드는 것을 보고는 진땀이 나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테이프가 중간쯤 돌았을 때 함께 보던 4명이 모두 한줄로 서서는 자지를 꺼내들고 흔들기 시작했다. 감상회에 늘 따르는 부대행사로 "좆물 멀리 가기 시합" 이라는 것이다.
몇차레 몸을 빼다 나도 그 대열에 참여했다. 남이 보는 앞에서 마스터베이션은 처음이었는데 그것은 나도 "진보파"로 전향하는 일종의 신고식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모든 관심과 신경이 여자와 씹이라는 것에 집중되었다.
우선은 이렇게 멋진 세계를 놔두고 엘비스 프레슬리나 "모비디크" 같은 것에 한눈을 팔았던 지난날이 후회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전에는 맨날 씹 이야기만 하는 녀석들을 경멸해 왔는데 알고보니 그놈들이 정말 실속을 차린 것이다.
그런 후외를 만회하기 위해서도 나는 주위를 열심히 살폈고 드디어 한 여학생을 낚는데 성공했다.

낚고 보니 그녀는 정말 짱이었다.
2학년 7반의 원미는 교내 행사나 소풍 때면 나서서 개그맨이나 선생들 흉내도 잘 내서 주위를 웃기고 얼굴도 탤런트 뺨 칠만큼 예뻤다.
나는 편지를 써서 내 마음을 전할까 하다 너무 구닥다리 같아 직접 부딪혀 보기로 했다.
"나 3반의 박민수야."
"알고 있어. 너 축구도 노래도 잘 하잖아."
원미도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던가. 나는 용기를 내어 둘이서 잠시 만나자고 했고 그녀는 선선히 내 청을 들어 줘 제과점에서 1시간쯤 이야기를 나누고 며칠 후 또 만나기로 했다.

3일 후, 학교에서 버스로 40분쯤은 가야 하는 이태원의 한 경양식 집에서 우리는 만났다. 이 장소는 원미가 지정한 곳이었다.
"너 여자 많이 사귀어 봤니?"
"아니, 네가 처음이야."
나는 솔직히 말했다.
"세상 여자 애들이 다 눈이 삐었구나. 너같은 핸섬 보이를 그냥 놔 두다니..."
나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원미는 재잘재잘 쉴 새 없이 이야기도 잘 했고 도톰한 입술이 벌어지며 하얀 이가 들어나는 그녀의 웃음에 내 가슴은 기쁨으로 출렁거렸다.

"너 키스는 해 봤니?"
다른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 원미가 불쑥 물어 왔을 때 나는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를 사귀는 것은 내가 처음이라며...?"
유도 심문에 걸린 셈이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여자와 입술한번 스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키스는...실은 누나하고 했어."
"그래? 혀로도 해 봤어?"
"물론."
나는 기죽기 싫어서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키스는 잘 하겠네. 나는 그런 경험자가 좋아. 초삐리는 정말 짜증만 나지."
원미는 혼자 킥킥 웃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 집 뒷쪽으로 가면 아담하고 으슥한 데가 있어. 키스하기 좋은 장소지. 이따 구경하고 가자."
내 가슴은 출렁거리는 것을 넘어 터질듯 했다. 오늘 첫키스를 하게 된다. 운 좋으면 씹까지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원미가 겉보기 보다 발랑 까진 애라는 것도 좋았다. 내가 전혀 경험이 없으니 우선은 리드를 받는 것이 편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씹까지 하게 되면 어떡한다지?... 교복차림이니 이대로 여관을 갈 수도 없고 골목에서 씹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혼자 이런 걱정까지 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때 입구에서 점퍼차림의 남학생이 내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나는 벌떡 일어섰다. 그는 3학년인 김형산이었다. 나의 재빠른 동작은 단지 선배를 만나서의 예의 만이 아니었다.
그는 교내의 유일한 주먹조직인 "지존파"의 캡이다. 그는 교내에서도 꼭 4~5명을 보디가드 처럼 데동하고 휘젖고 다니는데 그러면 일반 학생들은 슬슬 피하기 바쁘다.
그 지존은 나를 잘 모르겠지만 나는 교복을 입고 있으니 못 본척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잔득 성난 표정의 그가 곧장 내 앞으로 오더니 "너 여기서 뭐 하는거야?" 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온 몸이 굳어버릴 지경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그 말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원미한테 했다는 것을 깨닫고서였다.
나와 마주 앉았기에 형산이가 들어 오는 것을 보지 못했던 원미는 그 소리에 뒤돌아 보고는 벌떡 일어서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가스나이가..."
형산이는 대뜸 따귀부터 올려 부쳤다.
홀에는 다른 손님들도 몇패 있었는데 형산의 행동은 아예 남을 무시하며 거침이 없었다. 원미는 반항이나 아픈 티도 내지 못한 채 몸만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너는 뭐 하는 새끼야?"
이번에는 진짜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2학년 3반 박민숩니다."
"좆만한 새끼가..."
형산이는 나를 한번 흘겨 보기만 하고 원미의 어깨를 움켜 잡았다.
"너 이리 나와!"
그렇게 원미가 개 끌려가듯 형산이와 사라지는 것을 나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날의 수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입구에는 역시 사복차림의 4명이 버티고 있었다. 그중 3명은 나도 얼굴을 하는 우리학교 3학년이었고 모두 "지존파"의 똘마니들이다.
그들은 나를 식당 뒤로 끌고 갔다. 골목을 돌자 으슥한 공터가 나타 났는데 아까 원미가 "키스하기 좋은 장소" 라고 했던 곳인 것 같다. 나는 거기서 첫키스 대신 다구리를 당했다.

"이 새끼가 겁도 없이 선배 애인을 건들여?"
"아닙니다. 나는 안 건들였어요."
"아, 이 새끼가 반항까지 하네."
그들은 번갈아 가며 내게 주먹과 발길질을 가했다. 더러 근처를 지나는 행인도 있건만 아무도 끼어들려 하지 않았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몰매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이새끼 때문에 나는 2시간이나 밖에서 떨었잖아. 임마, 무슨 노가리를 그렇게 많이 깠니?"
나는 대답도 못하고 계속 맞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때리는 녀석에게 물었다.
"그럼 네가 바로 처리하지, 요 좆만한 새끼 때문에 우리까지 다 출동하게 해?"
"지존한테 원미, 그 꽃뱀 같은 년이 어떤 놈과 같이 있다고 전화 했더니 자기가 올 때까지 감시만 하고 있으라잖아."

말을 듣고 보니 나는 벌써부터 이 주먹꾼들에게 미행과 잠복 감시의 대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른 채 키스의 기대감에만 빠져 있었다니...
나는 거의 1시간이나 다구리를 당한 끝에 겨우 풀려 났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내일 방과 후에 "체육관 뒤로 오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혼자가 된 후 살펴 보니 흙만 많이 묻어 있었지, 얼굴에는 큰 상처가 없었다.
녀석들은 기술적으로 배와 등어리를 주로 때린 것이다. 그러나 바지를 들추어 보니 정강이는 조인트를 맞아 팅팅 부어 있었다.
나는 내일 학교를 결석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피한다고 해결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매를 또 맞게 될 줄 알면서도 학교에 나갈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나는 우선 상태를 교실 밖으로 불러 냈다. 상태는 초등학교 때부터 동창이지만 2학년 때는 반이 달라 잘 안 만나는 처지였다. 하지만 상태도 소위 "진보파"로서 맨날 여학생과 씹 이야기를 달고 살 것은 뻔했다.
"7반의 강원미라는 아이 어때?"
"뭐가...?"
"말 하자면... 사귀는 대상으로 말야."
"맛이야 좋게 생겼지. 얼굴은 왔다고 몸매도 삼삼하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애한테 관심이...?"

"응, 그저..."
나는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머뭇거리는데 상태가 말했다.
"나는 그런 애, 준대도 안 먹는다."
"아니, 맛 좋게 생겼다며...?"
"맛만 좋으면 뭐 하니? 먹다가 걸리거나 체하면 빛 좋은 개살구지."
"그게 무슨 말이냐?"
"걔, 김형산...지존파 왕초말야. 그 이거 아냐."
상태는 새끼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원미, 고 계집애는 태생이 바람쟁이야. 아무한테나 꼬리를 잘 치지. 그런데 형산이는 또 소유욕과 질투심이 대단하잖아. 그래서 다친 애들도 많지. 몇달 전에는 3학년 한 남자애가 원미와 웃으며 말했다는 것만으로 맨날 형산이한테 얻어 터지다가 끝내 전학을 가 버렸잖아...그런데 너도 원미와 뭐 섬싱이 있냐?"
"아니... 하지만 그런 걸 왜 진작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니?"
"무슨 소리야, 임마. 네가 언제 나한테 묻기라도 했어?"
상태 말이 맞다. 나는 소설책이나 읽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이야기나 듣다가 정작 내 주위에서 벌어진 이런 일들에는 전혀 깜깜이었던 것이다.

그날 방과 후 나는 체육관 뒤로 찾아갔다.
형산이를 비롯해 어제 나한데 다구리를 놓았던 4명은 이미 나와 있었다. 나는 그중 한명으로부터 당구 큐대를 짜른 막대기로 20대의 밧따를 맞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지켜보고 있던 형산이가 입을 열었다.
"좆만한 새끼야. 네 좆을 아예 잘라 버릴까도 했지만 인생이 불쌍해서 이 정도로 참는다. 하지만 너는 앞으로 원미는 물론 어떤 게집애한테도 눈길 한번 주지 마. 내 말을 가볍게 들으면 그때는 정말 좆을 잘라 버릴꺼야."

나는 난생 처음 여자를 꼬셔 봤건만 하필이면 그것이 호랑이 꼬리였던 것이다. 첫키스의 문턱에서 몰매를 맞은 것은 물론 교내에서도 왕따를 당할 입장이었다.
더구나 이 지존파 보스의 말은 거역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었다. 나는 연애금지령을 받은 것이다. 모처럼 꽃 피려 했던 나의 이성에 대한 욕구와 갈망은 이렇게 금방 검은 장막으로 덮여 버렸다.

난생 처음 시도했던 연애가 하필이면 우리학교 주먹조직의 보스 애인을 건들이는 실수를 범한 나는 그 대가를 신물 나도록 치루었다.
그 후로도 "지존파" 녀석들은 한달에 한번 꼴로 나를 불러 내 빳다를 때리거나 주먹세례를 퍼 부었다.
"잘 하고 있겠지?"
버벌리 머플러를 꼭 교복 위에 걸치고 다니는 형산이는 주머니에 두손을 찔러 넣은 채 내 아래 위를 훑어 보며 꼭 이말 한마디만을 던졌다. 녀석은 영화나 만화에서 보는 조폭의 보스 흉내를 열심히 내고 있는 것이다.

잘 하기는 뭐를 잘 한단 말이냐?... 몰매 맞는 것도 지겹지만 한창 피끓는 남아가 여학생 한테 눈길 한번 주지 못하고 기 죽어 사는 정말 지옥 같은 생활인데...나는 속이 부글부굴 끌었지만 당장그들에게 대항하거나 빠져 날갈 묘책도 없었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암울한 처지는 모든 생활에 영향을 끼쳤다.

우선 나는 한때 열광했던 "진보파" 에서도 다시 탈퇴한 셈이 되었다. 그 녀석들과 어울려 음란 비디오나 보고 씹 이야기를 해 왔자 나는 써 먹을 데기 없는 것이다.
더구나 1,2학년까지 포섭되어 있는 "지존파" 의 감시의 눈초리가 두렵기도 했다. 내가 씹 이야기를 하는데 함께 끼어 희희덕 거리는 것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좆을 자른다" 고 달려 들지 모르는 것이 당시의 내 처지였다.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영화나 문학에 심취한 그룹에 끼어 들기도 싫었다. 잠시나마 이미 새로운 세계를 구경한 나로서는 "진보파" 들의 주장처럼 그런 것들이 너무나 하찮고 시시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반작용이라고 할까, 이 무렵 나는 오히려 공부를 착실히 하게 되었다. 그래서 2학년 말에는 반에서 석차가 20여등이나 훌쩍 뛰어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파" 에도 끼지 못했다. 그 부류의 녀석들을 사귄다는 것은 도대체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교내에서 따돌림을 당한 것 만이 아니라 스스로도 외톨이가 되어 갔다.
그러나 사춘기의 절정에 이른 내 몸속의 성장과 넘치는 정열은 스스로도 제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몰래 음란 소설과 만화를 구해 탐독했고 이성에 대한 욕구를 공상과 마스터베이션으로 달래야 했다.
그 전에는 "천방지축으로 날뛴다" 는 말을 들을만큼 밝고 활달하기만 했던 내가 어느새 겉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의 가면을 쓰고 속으로는 음침한 섹스 중독자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원미와 마주 치는 것도 당시의 괴로움중 하나였다. 고년을 보게 되면 내가 얼른 외면을 하곤 했지만 학교 주변이나 교실 복도에서도 마주칠 때가 많았다.
원미는 화해를 했는지 용서를 받았는지, 형산이와 어울려 다니는 것도 가끔 눈에 띄었다. 더구나 교내에 운동회나 무슨 행사가 있으면 여전히 무대에 나와 장기를 뽐내곤 했다.
나를 이꼴로 만들어 놓고 그렇게 설치는 것을 볼 때마다 속이 뒤틀리면서도 여전히 그녀가 그리워 지는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마침내 나는 고독을 견디다 못해 원정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영숙이를 만나기로 한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빠구리를 하기로 했던 상대였다. 물론 나는 그 때 성공을 못 했지만 밋밋한 보지와, 좆물도 안 나오는 자지를 따 까놓고 서로 구경은 했던 사이였다.
그 때 영숙이가 매만지며 했던 말처럼 내 자지는 꽤 "나팔좆"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으며 영숙이 보지도 털이 돋고 꽤 영글었을 것이다.

영숙이는 중학교 배정 때 학교가 갈라 졌지만 소문은 가끔 듣고 있었다. 소문이란 영숙이가 제 아버지와 오빠하고도 가끔 씹을 한다느니, 중학생이 되면서 더욱 소문난 "걸레" 가 되었다느니 하는 따위다.
그 전의 나는 이런 소문을 들으면 정말 걸레를 보듯 눈쌀을 찌푸리곤 했는데 지금의 나로서는 그것이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웬만하면 나도 받아 줄 수 있을테니까.

영숙이 학교 앞에 진을 쳤다가 3일만에 겨우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반가워 하며 당시 내 호주머니 사정으로는 벅찬 경양식집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마주 앉은 영숙이에게 나는 첫 빠구리 때 처럼 또 주눅이 들어 버렸다. 그 때는 키만 나보다 좀 컸지, 말라깽이에 까무잡잡해서 보잘 것 없었던 영숙이가 놀랍게 변해 있었다.
이제 키는 나보다 작았지만 우선 교복 밖으로도 볼륨을 느낄 수 있을만큼 젖가슴이 팽팽했다. 옛날의 그 조그맣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눈이나 투어나온 광대뼈도 살이 오르자 마치 서구적 미인처럼 개성있는 얼굴로 돋보였다. 한마디로 거의 성숙한 여인으로 보였다.

의례적인 안부를 나눈 뒤 나는 가급적 초등학교 시절을 화제로 삼았다. 직접 입으로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지난 날 우리가 빠구리 파트너였다는 점을 상기 시키고 강조하기 위해서.
"원칠이는 요즘 잘 있니?"
별로 말이 없던 영숙이가 불쑥 물었다.
"아, 원칠이는 중 1 때 전학가서 지금 부산에 살아. 아버지가 그 쪽으로 전근을 가셨거든."
나는 대답하면서 "이런 것이 씹정이라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옛날의 빠구리 사건 때 원칠이 만이 그나마 본격적인 빠구리에 성공했던 것이다.

"네 생각을 가끔 많이 했어. 이렇게 모처럼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갑다. 앞으로도 우리 자주 만나자."
나는 내 본심을 듣기 좋게 포장하느라 머리 속에서 꽤 굴린 다음 이렇게 조리있게 말했다.
"만나서 뭘 하게...?"
그러나 영숙이가 불쑥 내 던진 말에 나는 금방 더듬거렸다.
"음, 음... 만나서 뭐 그냥... 아무거든지..."
"너 나하고 숑숑하고 싶어서 그러니?"

"응?"
나는 즉답을 못하고 반문했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나올 지는 몰랐던 것이다.
"옛날 말로는 빠구리, 요즘은 숑숑이라고 잘 하지."
"아니, 뭐 꼭 그런 뜻만은..."
나는 머쓱해서 머뭇거렸다. 아마 웃음도 상대에게는 무척 비굴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 생각 있으면 다른 애들을 찾아 봐. 나는 요즘 고등학생도 시시해서 안 만나. 주로 대학생이나 어른들을 만나지."
영숙이가 옳았다. 나는 더 이상 미련을 갖지도 않았다. 매달려 봤자 결과는 뻔해 보이니까.

3학년에 진급하며 내 처지는 더욱 나빠졌다. 가장 큰 문제는 형산이가 졸업을 하지 않고 학교에 남은 것이다.
물귀신 같은 자식. 형산이를 위시한 "지존파" 4명이 학원에서 만난 다른 학교 여학생 2명을 집단 강간한 사건이 있었는데 3명은 퇴학을 당했건만 형산이만은 정학 1개월에 유급이라는 조건으로 퇴학을 면한 것이다.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는 청와대나 교육부장관에게 투서라도 보낼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보내지는 못 했다. 3일동안 끙끙 거렸으니 첫 문장 하나도 완성 못하자 포기해 버린 것이다.

김형산의 아버지는 동대문시장 주변에 빌딩을 3개나 갖고 있는 알부자다. 원래 형산이는 첩의 아들인데 딸만 다섯을 둔 형산 아버지의 본처가 죽자 안방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 형산의 어머니가 우리학교 후원회장이다.
형산이는 일찍부터 버릇없이 자라며 빗나갔는데 부모가 어떻든 중학교라도 정상적으로 졸업을 시키려고 돈으로 땜질을 했다는 소문이 교내에도 파다했다.

녀석이 "지존파"의 보스가 된 것도 힘보다는 돈이다. 부모가 그렇게 주는 것인지 훔치는 것인지, 중학생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녀석을 10만원권 수표를 한웅큼씩 갖고 다니며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선생들도 얼마나 삻아 놨는지 형산이의 비행은 거의 눈 감아 주는 형편이었다.
형산이는 유급을 해서도 여전히 "지존파"의 보스로 거들먹거렸고, 새학기가 시작되자 말자 제 위력을 확인시키려는 듯 이제는 동급생인 똘마니들을 시켜 나한테 빳다를 가했다.
내가 그 "이지메"를 피할 길은 나도 "지존파" 에 가입하는 일인데 그러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 무렵 상탸가 나를 더욱 우울하게 했다.
3학년에서 같은 반이 된 상태가 하루는 첫시간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나를 교실 밖으로 불러 냈다.
"야, 나 어제 진짜 이거 했다."
상태는 오른 손의 검지와 중지 사이로 엄지를 쏙 내밀어 우리끼리 통하는 빠구리 표시를 해 보였다.
"그래? 누구하고...?"
나는 정말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급히 물었다.
"상미."

"상미?"
나는 그 이름을 되뇌이며 더욱 놀란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상미는 바로 2살 아래인 친동생 아닌가.
상태는 나를 더욱 놀라게 하고 싶었는지,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 없다는 것인지, 게속 자랑처럼 떠들었다.
"걔도 다 컸어. 젖통도 이만하고..."
상태는 제 두 손을 앞가슴에 들어 올렸다. 그것만으로 크기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어떻든 크기는 큰 모양이다.
"보지 털도 꽤 많이 났어. 처음에는 아프다고 야단이더니 나중에는 저도 좋아서 엉덩이를 들썩 들썩 하더라. 아! 호르몬이 얼마나 많이 나왔던지 끝나고 나니 맥이 다 풀려."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 나는 얼굴이 화끈 거리고 자지도 벌떡 일어설만큼 충격을 받았다.

그 후로도 상태는 수시로 나를 불러 제 동생과의 씹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어제는 두탕이나 뛰었지. 걔가 멘스 한다고 해서 며칠을 굻었었거든."
"어제는 엎드리게 하고는 뒤로 박아 봤지. 그 맛도 색다르더라."
상태의 비밀을 듣는 것은 어떤 음란 만화나 비디오를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해서나를 흥분시켰다. 나는 상태가 정말 부러웠다.
상미가 젖통도 크고 보지털도 많이 난데다 좋아서 엉덩이도 들썩 거린다니 상태는 얼마나 좋을까. 그들 남매를 떠 올리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한 적도 여러번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상태 녀석의 잘못이다. 마침내 나도 우리 가족을 성적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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