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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피닉스의 사랑 (16)

피닉스의 사랑(16)


엄마의 일기(8)

네이버3 회원 여러분.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행복과 건강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난에 저도 졸작을 쓰다가 훌쩍 절필한 것이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더구나 2001년에 중단된 것을 2003년까지 읽어 주시며 댓글을 달아 주신 분들께 더욱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빠른 시일 안에 끝맺음을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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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Wolf.

"어이, 사랑스런 꼬마. 늦어서 미안해."
동이 틀 무렵 술냄새를 잔득 풍기며 돌아 온 당신은 부시시 잠이 깬 나에게 말했죠.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무엇부터 말 할까?"
내가 좀 앙팡졌거나 타산적이라면 한번쯤 저울질이라도 해 보았을 터인데 그저 생각 없이 말했죠.
"좋은 소식부터..."

"나 특진 했어! 동기들보다 4개월이나 빠른 거야."
당신은 으스대며 점퍼를 열어 제쳤어요. 옷깃에 다이아몬드가 두개씩 반짝이고 있었죠.
얼마 전 당신 부대가 잠복근무중 비무장지대를 넘어 오는 북한 공작원 한명을 사살하고 나머지는 도주했으며, 소대원 전체가 사단장 표창과 함께 특별 휴가를 간다는 것까지는 나도 알고 있었는데 특진이라는 보너스까지 받게 된 것이죠.

"어머! 축하해요. 박성태 중위님."
나는 반색을 하며 거수경례를 하고는 뒷굼치를 들고 당신 뺨에 입을 맞추었죠. 그런 나를 당신은 꼭 끌어 안아 주었어요.
하지만 그 상태에서 더 이상 반응이 없자 오히려 당신이 채근 했어요.
"나쁜 소식은 안 물어?"
"아 참! 나쁜 소식은 뭐죠?"

"월급 봉투가 꽝이야."
당신은 정말 속이 꽝인 봉투를 내 보이며 한껏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1차만으로 끝내자고 굳게 약속했는데 동기녀석들이 술값을 추렴해서 내 버렸잖아. 할 수 없이 내가 2차를 제의 했는데 결국 3차까지 이어 지며 뿌리를 뽑은 거지."
"이런 악당! 교활한 사람! 잘 못한 것부터 털어 놔야지!"
나는 당신 옆구리를 꼬집으며 화 난 표정을 지어 봤지만 웃음을 아주 감추지는 못 했어요.
"미안, 미안! 하지만 다음달부터 월급이 15프로 쯤은 더 오른단 말야."

승강이는 그것으로 끝났고 우리는 곧 사랑을, 아니 우리가 늘 말하던 식으로 씹을 했죠. 그날은 유난히 질펀했어요. 만취 상태였건만 당신의 입과 혀와 손길은 뜨겁고 부드러우면서도 헌신적이었어요.
좆을 꼽기도 전에 이미 한차례 올가즘이 내 몸을 휩쓸고 지나 갔으며, 몇가지 체위로 방바닥을 돌면서 시간도 무척 오래 끌었어요. 정말 나는 뿅 가버렸다니까요.
그 날의 그 질펀한 씹은 당신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확실히 동기가 되었거나 양념 구실을 한 셈이죠.

하지만 그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자체는 별 것 아니었어요.
내가 남편의 승진이나 출세를 애타게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한달치 월급쯤 털렸다고 해서 생활에 타격을 입을 것도 아니예요. 그 때 우리는 꽤 저축이 있었고, 전방의 직업군인 아내는 사실 돈 쓸데가 거의 없거든요.
나의 좀 과장된 몸짓이나 짐짓 화 난 표정도 당신의 기분을 맞춰준 것이었고, 그 때의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저 즐겁고 행복했었죠.

여보, 첫머리부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좀 뚱단지 같지 않아요?
내가 읽어 봐도 좀 서설이 긴 것 같군요.
당신이 그리 무섭거나 어렵지도 않았는데 무슨 부탁이나 힘든 일을 시키려면 괜히 머뭇거렸던 옛날의 버릇이 여전히 남아 있는 모양이죠.
하지만 어차피 털어 놓아야 할 것, 이제 본론을 꺼내죠.
여보, 이제는 내 차례예요.
나도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무엇부터 이야기 할까요? ... 당신은 대답이 없군요. 나는 나쁜 소식부터 먼저 전할래요.

지금 내 심정은 사실 참담하고 황당합니다. 내 신세와 처지가 너무나 처량하고 서글프군요.
우리의 사랑은 지금 큰 시련을 맞았어요. 이 보금자리도 떠나야만 할 처지가 되었어요. 민수와, 또 당신과 새로운 사랑을 싹 트게 하고 또 우리의 한 생명을 잉태하게 했던 이 사랑의 보금자리를...
단초는 우리가, 아니 나로부터 비롯됐다고 할 수 있겠죠.
친 아들과 그런 관계를, 직설적으로 말 하자면 씹을 하고 자식까지 만들며 사는 생활을 이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니까요.
그런데도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던 것은 분명히 나의 잘못입니다.

문제는 동네 사람들, 특히 악발스런 몇몇 여자들이 마치 포식자가 먹잇감을 찾아 냈듯 우리의 생활을 알게 된 거예요.
나와 민수와의 관계, 그리고 이제는 눈에 띄게 불어 오른 뱃속의 아기가 바로 내 아들의 씨앗이라는 것을...
동네 아낙네들이 들고 일어 나 정말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겪었답니다. 심지어 똥물까지 우리 가게에 뿌리면서 "똥보다 더 더러운 족속"이라고 욕을 해댔어요.
그 자리에서 나는 아무 반발이나 변명도 하지 못 했죠. 결국 막내 오빠와 와서 가까스로 수습을 해 주었지만 아직도 온 몸이 덜덜 떨리고 수치감으로 가득 합니다.

그래요. 이 모든 것은 나의 잘못이며 불찰입니다.
남에게 비난꺼리가 될 행위라면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좋았을테고, 기왕 저질러진 것이라면 좀 더 남의 이목을 두려워 하며 조심을 했어야 하는데...
하지만 지금 내 가슴에는 누구에게라도 항변하고 싶은 억울함과 답답함이 응어리져 있기도 합니다.
제발 우리를 그냥 놔 둬 주세요! 누구에게 직접 피해를 주거나 훼방을 놓은 것도 아니잖아요?
당신들의 사랑을 가로 채거나 생활에 불편을 준 것도 아니잖아요?
더구나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진지하고 절실한지를 당신들이 알아요?

되돌아 보면 나는 나름대로 유복한 환경에서 순탄하게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겠죠.
4남매의 막내 외동딸로 부모님과 오빠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남들과 큰 소리 한번 오간 적 없이 살아 왔죠.
그런데 유독 "사랑"이라는 대목에서는 때로 견디기 힘든 시련과 파란이
이어져 온 것 같군요.
왜 그럴까요? 운명인가요, 업보인가요?
왜 한 여자가 한 남자와 맺어지고, 헤어져서도 그 사랑만을 간직하겠다는데 세상이나 주위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고 온갖 비난과 훼방을 놓을까요?
그것은 바로 내 인생이며 결코 남이 대신 해 줄 수 없는 것인데도 말예요.

우선 당신과 인연을 맺고 결혼을 하려 할 때부터 시련과 파란은 시작됐죠.
당시 나는 부모님과 오빠들의 그 완강한 반대를 정말 인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어요.
이미 살을 섞고, 사랑을 언약한 성인 남녀의 결단을 다만 부모나 형제라는 자격으로 훼방 놓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 했을까요?
왜 바로 반가워 하며 축복해 주지 못 했을까요? ... 물론 그 명분은 나를 위해서라지만 지금도 나는 우리 가족들의 그런 반응이 당신에게 미안하면서, 나로서도 참 힘 든 일이었어요.
특히 엄마가 내게 무덤까지 가져 갈 비밀을 털어 놓았을 때는 충격과 혼란에 빠지기도 했죠.

엄마와 나는 중국음식점의 한 방에 마주 앉았습니다.
당시에는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죠. 요리를 시켰지만 누구도 젓가락을 들지 않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엄마가 말 했어요.
"너 그 남자와, ... 그러니까 육체 관계도 있었니?"
나는 푹 숙인 고개를 조금 끄덕였습니다.
"몇번이나...?"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기어 드는 소리로 "4번"이라고 대답했죠. 사실은 4차례 그 기회중 한번은 3회, 또 한번은 2회를 해서 씹을 한 횟수는 정직하게 말하자면 7번인데 ...
"임신은 ... ?"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어요.

"너, 그 박소위인가가 첫 남자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죠.
엄마는 한숨을 쉬고, 한참 뜸을 들인 뒤에 또 한숨을 쉬고 말했어요.
"사실은 나에게 너희 아버지가 첫 남자가 아니란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엄마의 눈에는 곧 넘칠 듯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럼 첫 남자는 ... ?"
대뜸 질문을 던진 것에 나 자신도 놀랐습니다. 오늘 엄마와 마주한 주제는 나의 남자 문제고, 내가 질책의 대상인데 말예요.
엄마는 항상 정숙해 보였고, 아버지와의 정도 유난히 돈독했었죠. 특히 나와는 한세대의 차이가 나는 엄마가 처녀가 아닌 몸으로 아버지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놀라움이었습니다.

"친구의 오빠였어. 당시에는 너무 멋지게 보였지. 내 전에도 후에도 많은 여자들이 따를만큼 ... 하지만 진실성이라고는 전혀 없고, 그저 파렴치한 바람둥이였단다. 첫사랑이라는 말도 할 수 없을만큼 내게는 치욕스럽고 아픈 상처였어."
"아버지도 그런 사실을 아세요?"
나는 또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엄청난 비밀을 나만 알고 있는 것인가. 아버지도 알았다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 뜻밖의 비밀을 알게된 나는 그 안으로 한걸음이라도 더 들어가고 싶은 호기심과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어요.

"그래."
엄마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신혼 초에 참 어려웠어. 나의 죄책감이나 아버지의 실망과 배신감이 모두 우리의 멍에며 형벌이었지. 하지만 우리는 극복했단다. 나는 진심으로 너희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또 감사하고 있어. 아버지가 내게 베푸는 것이나 감정도 같은 것이라고 믿는다. 아버지와 나는 우리 스스로 뿐 아니라 누가 보기에도 더 할 수 없이 정답고 축복받은 부부라고 자부한단다."
고백자의 풀 죽은 표정에서 벗어나 엄마는 단호한 어조로 말 했어요.

"네게 하고 싶은 말은, 여자가 몸을 허락했다거나 육체관계를 맺은 것이 꼭 필연적인 인연은 아니라는 점이야. 나는 지금도 그 첫남자를 떠나 너희 아버지와 해로하게 된 것이 정말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믿으며, 그이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특히 요즘은 그런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도 않는 세태지. 에미로서 너한테 애원하는 심정으로 다시 말하마. 아버지나 오빠들 생각도 그러니 그 남자와는 헤어지도록 해."
친자식에게는 더욱 더 털어놓고 싶지 않았을, 당신과의 그런 문제가 없었더라면 무덤까지 가지고 갔을 엄마의 비밀을 털어 놓은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어요.
그래서 나도 그 앞에서 엄마를 거역하기가 무척 힘 들었죠. 하지만 나는 당신을 따르는 것으로 내 운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경우도 닥치더군요.
당신을 국립묘지에 묻고 나서 나와 민수는 경상도 시골에 있는 시댁으로 들어갔죠.
당시 친정 식구나 친구들은 나를 만류하기도 했지만, "출가외인"이라는 여인이 남편을 잃고 났을 때 시댁에 몸을 의탁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 아닐까요.
다만 민수가 "촌놈"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 좀 안되기는 했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다 저 할 탓이며 운명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곧 나는 정말 슬프고도 곤혹스런 경우를 맞게 됩니다.

문제는 바로 당신의 아버지와 형님, 시아버님과 아주버님으로 비롯된 것이죠.
"아가, 아가, 제발 어떻게 ... 응? ... 한번만 내 소원을 들어 주라."
아버님은 숨을 헐떡이며 옷 속으로 내 젖가슴을 움켜 쥐었어요. 몇걸음 떨어진 안방에는 시어머님이 잠들어 있을텐데...
시집으로 들어 온지 채 석달이 안 되었을 때 일어난 일이예요. 정말 기가 막혔죠.
아버님을 밀어 내고 처음으로 눈을 치뜬 채 말했어요.
"아직 민수 아범 무덤의 흙도 마르지 않았을텐데 어떻게 아버님이 저한테 이러실 수 있죠?"
머쓱해진 아버님이 돌아간 뒤 나는 북받치는 설움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는 제일 먼저 일어 나 평시처럼 아침을 준비했죠.

몇달 동안 아버님은 잠잠 했는데 이번에는 아주버님이 등장합니다.
가을걷이를 한다고 모두 논에 나가 있다가 새참을 마련하기 위해 나는 아주버님의 경운기를 타고 집에 왔어요.
그런데 국수를 삼고 있는 부엌까지 들어 와 "제수씨!"라며 느닷없이 입을 맞추려 하잖아요.
입술이 스쳤을 때 놀라움 보다는 우선 지독한 입냄새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어요.
정말 화가 치밀었죠. 어쩜 내 남편의 친형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밥주걱으로 아주버님의 면상을 냅다 갈겼어요.
비명을 지르며 가렸던 손을 떼는데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더군요.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미안해요. 제수씨"라며 밖으로 나가더군요.
그날 나는 아주버님이 모는 경운기를 다시 타고 새참을 날랐어요. 아무에게도 내색을 하지 않았죠.

아버님이나 아주버님과의 이런 일을 내가 먼저 감추려 했던 것은 우선 당신을 생각해서였어요. 시어머님이나 큰 동서, 혹은 동네 사람들이 알더라도 모두 당신에게 욕이 가지 않겠어요.
하지만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 한 없이 비참하고 처량한 가운데 온갖 궁리를 하나 마침내 나는 결론을 내렸죠.
여기서 지고 물러 나지는 않겠다. 한 여자로서의 도리는 다 하자.
자신을 지켜 가겠지만 불가항력으로 몸을 짓밟힌다면 그 때 혀를 깨물고 죽던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지만 이대로는 물러나지 않겠다. ... 그렇게 해서 비참하고 고달픈 시집살이는 몇년 더 계속되었습니다.

두사람의 치한, 아버님과 아주버님의 파렴치한 행동은 한동안 잠잠 했어요. 하지만 일단 품은 흑심은 쉽게 단념이 안 되나봐요.
그런 일을 겪고 나니 두사람의 나에 대한 친절이나 의례적인 대화, 눈길마저 모두 이상스럽고 징그럽게 보일 정도였어요. 그런 식으로 몇달을 지나다 보면 또 엉덩이를 만진다거나 가슴에 손을 집어 넣는 돌발 사태가 생기기도 했죠.
그런데 결국 내가 시집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떠나게 된 것은 두 치한보나는 그들의 아내, 바로 시어머님과 큰 동서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님과 형님도 자기들 남편이 나를 보는 눈초리나 유난스런 친절 같은 것에 본능적인 경계와 질투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죠.
그래서 내게는 더욱 표독스럽고 심술궂었는데 그것이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더 하게 했죠.

하루는 동네에서 회갑잔치가 열려 나와 민수만 빼고 가족 모두가 잔치집에 간 날 저녁이었어요.
술이 잔뜩 취한 아주버님이 혼자 돌아 와 또 나를 끌어 안으려 해서 승강이를 하는 중에 어머님과 형님이 들이 닥쳤죠. 망신 당한 아주버님이 뺑소니를 친 후에도 두 여인은 싸늘한 눈초리로 나를 내려보다 형님이 말했어요.
"흥, 여자가 꼬리를 치니 자꾸 이런 분란이 일어 나제."
"하모. 몸 조신을 좀 잘 하그라. 니가 우리 집에 온 뒤로 느그 시아부지도 눈에 불을 킨걸 보마 내 속이 뒤집어 진다."
어머님도 맞장구를 치는데는 정말 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같은 여자 입장에서 울면서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그런 기분도 싹 가시더라구요.

"제가 꼬리를 쳐요?"
차가운 표정으로 나는 말했습니다.
"설사 내가 색정에 굶주려 있다 한들 그토록 고약한 입냄새 나는 아주버님하고 입맞추고 싶겠어요?"
나의 반발에 형님이 미처 대응을 못하는데 주책 없는 어머님이 "히히"하며 내 말에 동조해 주었어요.
"하기사 민철 애비 똥구린내야 너무 심하제."
"또 어머님도 ... 어머님 말씀 대로 하면 남자 구실 못한지도 오래 된 아버님한테 꼬리를 치겠어요?"
"야가 무슨 이런 막말을 ... ?"
화살이 당신한테로 가자 역정을 내려던 어머님은 정색을 한 내 눈과 마주치자 고개를 돌리며 말을 못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며칠 후 어머님은 내게 사정하듯 말 했습니다.
"아무래도 니가 이집을 나가 줘야 겠다. 처음에 우리는 서울내기인 니가 시집살이을 못 해낼끼다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나 니 동서가 니 때문에 몬 살겄다. 이러다 또 무슨 일이 벌어 질지 내나 느그 동서가 맨날 신경 끓이는데, 니만 없으마 그런 걱정 없는기라. 느그 시아부지도 합의했응께 니가 떠나그라."
논 다섯마지기를 팔고 아주버님도 얼마를 보탰다는 돈 봉투를 내 놓으며말하는데는 더 이상 다른 주장을 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나는 두 남자의 패륜적 행동과 두 여인의 투기로 상처만 입은 채 쫒겨 나듯 시집을 떠나 민수와 친정에 몸을 기탁하게 되었답니다.

친정에서의 생활은 정말 아늑하고 평온했습니다. 사촌 형들에게 시달리던 민수도 모두의 귀여움을 받으며 모처럼 기를 펴게 됐죠.
하지만 얼마 지나자 나는 또 재혼의 강요라는 시달림을 받게 됩니다. 특히 엄마는 "내가 죽기 전에 네가 사람처럼 사는 꼴을 봐야겠다"며 끈질기게 졸라 댔어요.
그래서 전에 당신에게 고백했듯 재혼의 문턱까지 간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 경험 때문에도 나는 또 다시 재혼이라는 모험에 뛰어 들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엄마가 돌아 가시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참한 신랑감"을 천거 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퇴박만 당했죠.
하루는 아버지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이제 더 이상 네 꼴을 보고 싶지 않다. 밥을 먹든 죽을 먹든 이제 너 스스로 해결하도록 해라."

나는 그 앞에서 웃으며 말 했어요.
"저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그동안 저와 민수를 보살펴 주신 것은 정말 너무 감사했어요."
하지만 그 자리를 물러나 뒤 돌아 서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 질만큼 비통한 심정이었습니다. 서둘러 이사갈 곳을 물색했지만 며칠 더 머무는 동안 나는 밤마다 민수를 부둥켜 안고 울면서 지새웠답니나.
여기서마저 나는 쫒겨 나는구나. 당신을 잃고 나서 나는 시댁도 친정도, 결국 아들 하나를 빼고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완전히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는 실감이 가슴 저리게 와 닿았습니다.
그러나 뒷날 오빠로부터 엄마가 돌아가시며 아버지한테 유언으로 또 나의 재혼을 부탁했고, 아버지는 "민수 에미를 감싸 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세파에 시달리게 해야 재혼 하기가 쉽겠다"라는 아버지의 마음 씀씀이였다는 것을 알게되자 또 한동안 혼자 울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립을 해서 살면서 새롭게 인생도 사랑도 되찾게 되어 마냥 행복에 겨워 하던 시간이 너무 짧고 아쉽게 또 파국을 맞는군요.
되돌아 보면 나는 정말 누구에게 해꼬지를 하거나 앙심을 품은 적이 거의 없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그런데도 내 마음가짐과 관계없이 더러 남의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 황당하기도 하면서 가슴 아파요.
이번 동네 사람들의 행패도 물론 내가 지탄받을 짓을 했다 해도 내 행실과 관계 없는 그녀들의 질투가 큰 동기가 됐다고 하는군요.
이번 일에 앞장선 여인이 경아 엄마라는 우리 동네 반장인데 그녀의 남편이 한동안 나한테 추근댔었답니다. 하지만 그리 무례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돌이 엄마가 들려주는 얘기로는 그 문제로 반장이 부부싸움도 자주 하며 나에 대한 험담을 퍼뜨리고 다녔었대요.
민수와의 소문이 나 돌자 한 밤중 우리집 담벽에 잠복까지 하면서 민수와 씹 할 때의 내 신음과 비명을 듣고는 확증을 잡았다는거예요.
결국 나는 또 다시 유랑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여보, 이제는 좋은 소식을 전할래요.
우선 뱃속의 아기는 잘 크고 있어요. 태동도 시작됐고 이제 출산이 두달 남짓 남았어요. 민수 때보다 요동이 그리 심하지 않은 것을 보면 역시 딸일 것 같아요.
하지만 어미의 마음은 여전히 궁금증과 조바심 투성이랍니다.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당신을 닮았을까, 민수를 닳았을까. 내 용모는 얼마나 그 애 얼굴에 남아 있을까. 손가락 발가락은 다 온전할까. 요즘 온갖 유전병이나 희귀병들도 많은데 정말 탈 없는 아기로 태어 날까. ... 모든 임산부들의 마음이 그렇겠지만 이런 조바심과 기대감은 그 자체가 여인의 행복한 순간 순간이기도 하답니다.

더욱 좋은 소식이 있답니다.
바로 내가 이 역경을 이겨 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요. 나는 지금 결의와 용기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어요.
전쟁으로 폐허가 된 타라농장에 돌아 온 스칼레트는 황혼의 지평선을 향해서 "꼭 이곳의 옛모습을 찾겠다"고 다짐합니다.
또 불시에 딸을 잃고, 이제야 겨우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해던 남편마저 자신을 버리는, 정말 모든 것이 바람과 함께 사라진 상황에서도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뜰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용기를 추스립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지금 너무 많은 것을 가졌어요. 당신이 있고, 민수가 있고, 또 아직 미지로 가득하지만 우리 모두의 새 생명이 있어요.
지금껏 내 생애에서 이처럼 많은 것을 한꺼번에 가진 적이 없었잖아요.
남들의 비난과 눈총을 받고, 거칠고 삭막한 세파에 시달린들 그리 겁날 것이 없어요.
"나쁜 소식"에서 장황하게 늘어 놓았던 지난 날의 슬프고 괴로왔던 일들도 사실은 다 견디어 냈잖아요.
그래요, 여보. 지난 날은 다 별거 아니예요. 우리에겐 앞날이 더 중요하고, 더욱 많은 기대감에 부풀게 하죠. 그 좋은 소식들을 당신도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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