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 - 4
4. 생각하는 현실과 체험하는 현실은 다르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억지로 청한 내 잠은 오전을 넘기지 못했다.
다시 청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시간은 막 11시 10분을 넘기고 있었는데, 익숙한 공간이라서 그런지 내 기분은 한결 낳아져 있었다. 왠지 전날 밤의 일이나 아침에 엄마와 나누었던 대화가 꿈처럼 느껴졌다. 왜 그런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지만, 그런 기분이 든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내 기분은 저녁 때, 엄마가 집에 들어오면서 더욱 확고하게 굳어졌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집에 들어왔고, 평소와 다름이 없이 저녁을 준비하고 나와 함께 식사를 했다. 정말이지 엄마에게서는 전날의 흔적을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냥 넘어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한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임신 문제였다. 비록, 당시에는 ‘가임 기간’이란 기초적인 지식도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여자의 몸 속에 정액을 뿌려대면 임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것이었으니, 최소한 엄마에게 임신에 대한 것은 물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날 밤, 엄마의 방문을 노크 했다.
- 똑. 똑. -
“현석이니?”
“응……”
“들어와.”
그 말에 난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는 평소처럼 침대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왠 일이니? 노크를 다하고……”
“응...... 그냥.”
머쓱해진 난 뒷머리를 긁었고,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빙긋 웃었다.
“그렇게 서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
“응……”
“그래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온 거야.”
“저기……”
“그래 말해.”
엄마의 말은 가볍고도 부드러웠다. 정말이지 엄마에게는 전날의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나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괜히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대로 내가 조용히 넘어간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을 내가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고, 그런 생각에 내 입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말 안 할 거니?”
“저 그게……”
“그래……”
“……”
하지만, 내 입은 여전히 떨어지지 않았고, 엄마는 눈짓으로 말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낭패였다. 차라리 그냥 모르는 척 지낼 것을 하고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고, 그 후회는 이대로 방을 ‘나갈까? 말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짓기 위해 엄마를 찾은 것이지만, 괜히 쓸데없는 문제만 만드는 것 같아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때, 엄마는 내가 염려하던 말을 했다.
“나와…… 또 자고 싶은 거니?”
엄마의 목소리는 아까와 달리 차분한 저음이었다.
“아……아냐.”
난 황급히 엄마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 대답과 상관없이 말을 이었다.
“어제의 일은 내 실수였어.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만약,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을 생각하고 나를 찾아 온 거라면 잊어.”
“예전의 말?”
난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그 뜻을 알 수 있었는데, 예전에 엄마가 근친상간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그거 때문이 아냐. 그리고, 엄마는 부부간에는 지켜야 할 도리가 있기 때문에 간통도 문제가 된다고 했었잖아.”
“그래.”
“내가 찾아온 것은 그 때문이 아니라, 다른 거야.”
“다른 것?”
“응.”
“어떤?”
엄마는 차분한 어조로 물었고, 나는 잠시 호흡을 고른 후 대답했다.
“임신”
그 말에 엄마는 잠이 말 없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괜히 말했다는 후회를 했는데, 이내 입을 뗀 엄마는 나의 그런 후회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정말이야?”
“그래. 어제는…… 임신이 안 되는 날이야.”
“아……”
난 왠지 모르게 맥이 탁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을 많이 했나 보구나.”
“응”
“아침에 말해 줄 걸…… 미안해. 네가 그런 걱정할 거란 건 몰랐다.”
“아냐. 엄마가 잘못한 것은 없어.”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근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네.”
“뭐가?”
“어제의 일.”
“그래 보이니?”
“응”
“바보구나.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겠니. 너는 어떠니?”
“나야 남자니까.”
“풋~”
“왜?”
“남자라는 말이 웃겨서.”
“그게 왜?”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찾아올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 남자라서 별로 충격 받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렇게 되나……”
“내가 밉지 않니?”
“엄마가 왜 미워. 내가 잘못한 건데. 술 취한 엄마를 내가……”
난 엄마를 보고 말을 하다가, 엄마와 시선이 마주치자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생각 마. 받아들인 내 잘못이 더 크니까. 너를 몸 속으로 인도한 것은 나잖아.”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 네 잘못은 아냐. 엄마로서 똑바로 처신하지 못한 내 잘못이 더 커.”
“그런 식이면, 아들의 본분을 잊은 나도 잘못이지.”
“풋~ 그래, 우리 둘 다 잘못한 거야.”
그러면서 엄마는 공허한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왠지 그 미소가 내게는 슬퍼 보였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엄마를 안아 주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말로 대신하려고 입을 떼었지만, 이상하게 그게 엄마의 말꼬리를 잡는 꼴이 되어버렸다.
“어제 일…… 잊을 수 있을까?”
“글세……”
“걱정이야. 앞으로 엄마와 내가 예전처럼 지내지 못할 것 같아서.”
“오늘처럼만 지내면 돼.”
“그런가......
“그래”
낮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로 엄마가 대답했는데, 그게 나에게 신뢰감을 주었다. 그기에 엄마가 편하게 지어 보인 미소까지 더해지니 나는 더 이상 고민을 하고 싶어지지 않았다.
나는 걸 터 앉았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그래. 잘 자거라.”
“응 엄마도 잘 자.”
그것을 끝으로 난 엄마의 방에서 나왔고, 내 방에 돌아가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것으로 내 18살의 크리스마스를 정리했다. 사건의 크기에 비해 엄마와 나의 마무리는 상당히 깔끔했다. 내 방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웠는데, 가슴에 멍울져 있는 큰 돌덩이를 빼낸 듯한 기분이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말이다. 마치, 엄마와 나의 기억 속에서 그 해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지워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겪어야 하는 현실은 달랐다.
‘시간’ 그 자체는 과거가 없지만,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오늘 이 시간’이란 것의 의미는 ‘똑 같은 크기로 늘어나는 과거와 미래’라는 양 끝을 가진 시소의 무게중심이었다. 엄마와 난 결코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얽매여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남이 보기에 엄마와 나는 별 문제 없이 잘 지냈으니 말이다. 같은 아파트의 아주머니들이나, 엄마의 외가 가족들 모두 엄마와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그 날의 사건을 다 정리했다는 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아주 사소한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령, 엄마와 나 모두 노출이 되는 옷을 입지 않았는데, 내 경우는 런닝 차림으로 집안을 돌아다니지 않았고, 엄마는 나시류 같은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지 않았다. 그것은 성적매력을 세련되게 나타낼 수 있는 옷차림을 즐겨 하던 엄마에게 더 큰 피해였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옷의 3분의 1이상을 엄마는 포기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다음으로 친근감을 표시하던 나와 엄마의 모든 습관들이 사라졌다. 가령, 내가 엄마를 등뒤에서 가볍게 안는다던가, 엄마가 내 엉덩이를 툭툭 치던가 하는 것들이 말이다. 하다 못해, 엄마와 내가 손을 잡는 일도 없어졌고, 시선을 마주치는 일도 없어졌다. 즉, 모든 신체적인 접촉은 모두 다 사라졌다고 보면 되었다. 또한, 엄마와 나의 대화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는데, 서로가 예전처럼 지내려고 노력을 했지만, 원인도 없이 엄마와 나의 대화가 점점 줄어들다. 그래서 이듬해 3월, 내가 고3이 되었을 때에 엄마와 나의 대화는 다음의 것이 고작이었다.
“현석아 밥 먹어라.”
“응”
“현석아 일어나서 학교 가야지.”
“응.”
“학교 갈게.”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정말 위의 대화가 엄마와 나의 대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와 내가 서로에게 관심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를 더 의식했는데, 누군가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면 항상 엄마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고, 내가 엄마를 바라보면 엄마 역시 그때 마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었다. 마치 엄마와 나 사이에 텔레파시가 통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것 말고도 엄마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는 더 있었다. 가령, 엄마는 내 도시락을 이전과는 확연하게 비교가 될 정도로 많은 정성을 쏟아서 싸주었고, 내 옷장과 방이 전 보다 훨씬 더 깔끔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내가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은 별로 없었다. 힘쓰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식으로 엄마와 나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는데, 조금 혼란스러운 것은 엄마를 향한 야릇한 감정이 내 속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3월 셋째 주 어느 요일이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집에 이모들이 잔뜩 몰려와 술판을 벌이고 있었고, 술판의 분위기는 상당히 무르익은 상태였다.
“오~~ 현석이 오는구나. 어서 들어와”
남성적인 기질이 다분한 큰이모가 제집인 양 큰소리로 나를 반겨주었고, 그 뒤를 이어 이모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정신 없이 인사를 하고 재빨리 내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원래가 낙천적이면서도 상당히 개인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외가친척들에게 ‘고3 수험생’이란 명분은 통하지 않았다. 결국, 난 아버지 대신으로 그 술 자리에 끼어들게 되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공부는 잘 되니?”
“어느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니?”
“너는 네 아버지 젊었을 때와 똑같다.”
“공부는 건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건강은 좋으니?”
하는 식의 이모들의 의례적인 질문과 말이 쏟아졌고, 나 역시 그런 질문과 말에 의례적으로 대답을 하면서 맥주를 받아 마셨다. 다음 날 학교에 무슨 행사가 있어서 학교를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담되는 술자리는 아니었지만, ‘수험생’이라는 신분과 엄마 바로 곁에 앉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내 마음은 상당히 불편했다. 게다가, 나이 어린 나에게는 발언권이라곤 전혀 돌아오지 않기에 사실 재미도 없었다. 그렇다고 수다의 내용이 내 관심을 끄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간신히 하품을 참으면서 내 방으로 들어갈 기회만 노렸다. 하지만, 주구장창 이어지는 이모들의 수다는 나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회가 찾아왔다.
그때는 엄마가 거론 될 때였다.
“조숙한 걸로 따지자면, 경진이 따라 갈 사람이 없지.”
큰이모가 엄마를 지목하며 말하자, 둘째 이모가 그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 고등학교 다닐 때에 결혼을 해서는 현석이를 낳았으니 말이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라간다는 말이 틀린 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네가 얌전한 고양이는 아니란 걸 아는가 보네.”
“그런 언니는 뭐 얌전한 고양이인가?”
“아니지.”
“그러면서 뭘. 어째건, 경진이가 나 보다 먼저 결혼할 줄은 진짜 몰랐어. 완전 충격이었다니까.”
“그렇지. 진짜 충격이었지. 고등학생이, 그것도 뱃속에 현석이를 가지고서 결혼한 거니까.”
“맞아. 어떻게 고등학생이 임신을 해서는…… 진짜 뉴스 감이야”
그 말에 셋째 이모가 끼어들었다.
“작은언니. 이제 좀 솔직 해져라. 그때, 경진이가 결혼한다는 것에 충격을 먹은 게 아니라, 경진이 결혼 상대자 때문에 충격 먹은 거잖아.”
그 말에 둘째 이모가 화들짝 놀랐다.
“어머! 애가 무슨 말이야?”
“뭘 그리 놀래? 이제는 다 지난 일인데, 도대체 시간이 얼마야? 벌써 18년이다. 그런데, 그 게 뭐가 흉이 된다고 그렇게 정색을 해?”
“얘! 사람 잡을 소리 마!”
둘째 이모는 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뒤를 이은 큰이모의 양심선언(?)으로 둘째 이모의 진실은 곧 밝혀졌다.
“얘! 이제 그만 해. 너 경진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나를 찾아와서는 울고 불고 난리 피웠었잖아. 경진이가 네 남자를 뺏어 갔다면서 말이야.”
“언니!!!”
“내가 뭐 없는 말 했니? 호호호~~”
큰이모는 재미있다는 듯 간드러지게 웃었고, 다른 사람들도 웃었다. 그런데, 그 사실에 놀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면,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둘째 이모만 바보처럼 그 것을 몰랐던 것 같았다. 나만 해도 외할머니를 통해서 들었던 터라 이미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즉, 둘째 이모의 사건을 거의 공공연한 비밀처럼 외가 쪽에서는 거의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미 술 때문에 붉어져 있던 둘째 이모의 얼굴이 더욱 빨갛게 달아 올랐다.
“뭐야. 이미 다들 알고 있었던 거야? 언니!! 어떻게 된 거야?”
“나 보지 마. 난 그냥 네 셋째에게만 말을 했을 뿐이니까.”
큰이모는 셋째 이모를 핑계대면서 자신은 큰 잘못을 한 게 아니라는 듯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그러자 급히 셋째 이모도 변명을 했다.
“어어…… 언니 오해 마. 나도 엄마에게만 말했을 뿐이야.”
“뭐~ 어? 엄마에게? 그럼 다 알고 있다는 말이잖아!”
“글세…… 난 모르지. 나야 큰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엄마에게만 했을 뿐인걸.”
“엄마가 입이 얼마나 싼데…… 그럼 오빠도 안다는 말이잖아!”
더 이상 화낼 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둘째 이모는 앙탈을 부리 듯 무릎을 세워서는 그 곳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둘째 이모다운 행동이었다.
엄마의 형제자매는 다섯 명이었는데, 제일 큰이모는 아버지와 동갑으로 엄마보다 8살이 많았고, 그 뒤로 2년 차이로 외숙부, 둘째 이모, 셋째 이모, 엄마 순이었고, 막내 이모는 엄마와는 3살이 차이 났다. 큰이모와 셋째 이모는 상당히 서구적인 시원한 외모에 남성다운 기질이 역력한 반면에, 둘째 이모는 엄마의 형제자매들 중에서 가장 키도 작고 앳된 외모에 애교가 많은 성격이었다. 소위 남자들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상당히 헤픈 듯한 느낌, 즉 요부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서 다른 이모들과는 달리 평범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에 반해서 엄마는 가장 동양적인 미인형이었지만 조금 페미니즘적인 성격을 가졌다. 다음으로 엄마와 가장 많이 닮은 막내 이모는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당시의 내 눈에는 가장 전통적인 여인상, 즉 현모양처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외숙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주 냉정한 성격에 확고한 자기철학을 가진 선비 같은 분이었는데, 외가의 친척들은 전부 외숙부를 아주 어려워했다. 얼마나 외숙부를 어려워하는가 하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조차도 외숙부가 있으면 도리어 말조심을 하였고, 큰이모를 꽉 잡고 사는 호탕하고 남성다운이 넘치는 큰이모부 조차도 외숙부하고 있으면 순한 양이 될 정도였다.
어째건, 둘째 이모는 외숙부도 알고 있을 거라며 애들처럼 고개를 도리질 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정말 마흔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애들 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런 어리광 비슷한 행동은 외모나 성격을 비추어 보면 잘 어울렸다. 게다가 취기가 적당히 오른 술자리에 웃음 꽃을 피우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술자리의 수다가 둘째 이모의 어리광(?)으로 인해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 했을 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방에 들어갈게요.”
“공부하려고? 시끄러워서 공부가 되겠니?”
큰이모의 그 말에 막내 이모가 부연 설명을 하듯 말했다.
“그래. 오늘은 이모들과 놀면서 쉬어. 내일 학교도 안 간다면서……”
“내일 친구들과 도서관에 가기로 했어요. 그리고, 조금 피곤하기도 하구요.”
“그래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시끄러워서 잠이 오겠니?”
큰이모는 나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쉽게 결정을 내려주었다.
“저 둔한 편이라서 그런 거 없어요. 그럼 저 들어 갈게요. 즐겁게 노세요.”
그 말을 끝으로 난 이모들의 인사를 받으며 바로 뒤에 있는 내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일단 침대에 큰 대자로 누웠는데, 거실의 술자리에서 내 왼편에 앉았던 엄마 때문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얼굴 왼쪽과 왼쪽 팔이 아픈 것 같은 느낌이 그제서야 풀리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예전에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편한 엄마였는데, 이제는 낯선 타인보다 더 어색하게 변한 엄마가 된 것이 뭔지 모를 허망함을 주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기분이 순식간에 칙칙하게 변했고, 그로 인해 기분전환을 위한 샤워가 하고 싶었지만, 거실을 차지한 술자리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 난 그냥 옷만 갈아입고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좀처럼 잠은 오지 않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거실에서 이모들이 떠드는 수다를 들었다. 문 하나만이 가로 막고 있어서인지 거실에서 나누는 이모들의 이야기들은 마치 현장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 들렸다.
거실에서는 여전히 둘째 이모의 짝사랑 사건이 주되 화재였다.
큰이모는 둘째 이모가 내 엄마의 결혼 소식을 듣고서 자신에게 와서 했던 행동과 말들은 생생하게 들려 주었고, 간간히 거실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때마다 둘째 이모는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어쩔 줄을 몰라 했는데, 그것은 오히려 웃음 소리를 더 크게 하는 효과 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 이야기로만 거의 30분을 끌었는데, 나는 그때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했고, 오히려 거실의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마냥 흥미진진하게 엄마와 이모들의 술자리 수다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 이야기가 마무리 되자, 둘째 이모는 자신의 짝사랑 사건이 억울했는지 게임을 제안했다. 그 것은 진실게임으로, 방식은 간단했다. 숫자 1을 외친 사람이 다음 사람을 지목하면, 지목 당한 사람은 2를 외치고서 다음 사람을 지목하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3”의 배수는 구호를 외치면 안되었으므로 꽤나 신경을 써야 하는 게임이었다. 당연히, “3”의 배수를 외치거나, 다른 숫자에서 외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묻는 질문에 진실을 밝혀야만 했다.
게임은 둘째 이모가 “1”을 외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일!”
둘째 이모는 숫자를 크게 외치자, 곧이어 엄마가 2를 외쳤다. 그리고 한 박자 쉬고 막내이모가 4를, 다시 큰이모가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치며 5를 외쳤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연이어 둘째 이모의 6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거실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둘째 이모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이건 무효야.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둘째 이모의 억울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둘째 이모는 벌칙을 받아야만 했다.
“자 약속대로 벌칙을 받아야지? 누가 먼저 질문을 할래?”
큰이모가 그렇게 말하자 셋째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할게.”
“그래. 네가 해라.”
“좋아. 질문에 솔직하게 말해야 돼. 둘째 언니! 지금까지 경험한 남자가 몇 명이야?”
“뭐?”
둘째 이모는 놀란 듯 반문했다.
“뭘 그리 놀래? 지금까지 같이 잠잔 남자가 몇 명이냐고.”
“무슨 말이니? 그건 예전에 다 말했잖아.”
둘째 이모는 답변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는데, 그런 둘째 이모의 반응에 엄마가 끼어 들었다.
“셋째 언니 그런 질문 하지마. 저 방에 현석이 있어……”
그 말을 큰이모가 받았다.
“그래 맞다. 현석이가 있었지. 근데, 현석이 잠들지 않았을까? 들어 간지 한참 지났잖아.”
“그래도 몰라. 공부하는지.”
“막내야 너 현석이 잠자는지 볼래?”
“알았어. 잠시만.”
그렇게 대답하는 막내 이모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내 내 방의 문이 열리면서 이모가 다가 왔는데, 이미 나는 눈을 감고서 잠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막내 이모는 내게 가까이에 와서는 잠시 있다가 금방 내 방을 다시 나갔는데, 나가면서 내 방의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서 새끼 손가락 두께만큼 문이 열려버렸다. 덕분에 거실에서 오고 가는 대화소리는 물론이고, 술잔에 술을 따르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현석이 잠들었어.”
거실로 나간 막내이모가 보고하듯 그렇게 말하자. 큰이모가 그 말을 받았다.
“그래. 그럼 걱정할 거 없네. 현석이 저 녀석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잖아.”
“맞아. 현석이 쟤 그래. 예전에 우리 집에 왔을 때, 내가 실수로 액자를 건드려서 깨트렸는데, 쟤만 꿈쩍도 않고 자더라구.”
“그래. 근데, 경진이 너 많이 변했다. 작년 추석 때까지만 해도 우리들이 당황해 할 정도로 개방적으로 굴더니만…… 무슨 일 있었니?”
“무슨 일은 현석이 때문에 그런 거지.”
그 말에 셋째 이모가 말했다.
“너 웃긴다. 작년에는 민경이가 있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고 말하더니…… 네 아들은 중요하니?”
셋째 이모는 완전히 시비조였다. 민경이는 큰이모의 첫째 딸이었다. 큰이모는 1남2녀를 두었는데, 첫째가 장남인 최우혁, 둘째가 나와 동갑인 최민경이고, 셋째가 3살 어린 최민지였다. 민경은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나보다 생일이 9개월이 빠른 탓에 내가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럼 계속해.”
엄마는 셋째 이모의 공격에 그냥 맥없이 무너졌고, 뒤이어 막내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둘째 언니 빨리 말해.”
“뭘 말하니? 정말 전에 말했던 사람이 다 라니까.”
“거짓말 마. 내가 수진이 언니에게 이야기 들은 것이 있는데……?”
“뭐 수진이?”
둘째 이모는 화들짝 놀랐다.
“그래. 언니 친구 이수진!”
“아니 고 계집애가……”
“그러니까 빨리 실토해!”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막내이모가 둘째 이모를 재촉했다. 아무래도 술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좋아. 말할 테니까. 다들 입 조심해!”
“알았어 어서 털어 놓기나 해봐.”
“음…… 10명!”
“어머!”
둘째 이모의 말에 막내 이모를 필두로 해서 이모들이 모두 놀란 듯 숨을 멈추었다. 물론, 나도 놀랐다. 10명이란 숫자가 둘째 이모의 입에서 나올 줄은 진짜 꿈에도 생각 못했다. 어릴 때, 엄마와 이모가 나누는 대화에서 얼핏 남자들 2~3명이 거론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냥 그 정도겠거니 했었던 것이다.
“뭐가 그렇게 많아? 말해봐 누구 누구야?”
큰이모가 구체적으로 말해 줄 것을 둘째 이모에게 요청했는데, 둘째 이모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술술 털어 놓았다.
“결혼 전에는 전에 말했던 남자친구 2명과 여행가서 만난 남자 2명이야. 그리고 회사 다닐 때의 부장님도 있었지. 크크…… 다음으로 결혼 후에는…… 남편 친구들.”
“부장님? 부장님이 하면 혹시 네게 중매를 서준 분 말하는 거니?”
“응. 맞아. 힛~~ 웃기지? 나를 자기 친구 아들에게 소개시켜줬으니 말이야. 키킥~”
“정말 웃긴 사람이네. 그 사람 자기 친구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먼 친척이라고 하지 않았니?”
“먼 친척은 무슨…… 촌수로 따지면 한 30촌도 더 될걸. 그게 무슨 친척이야. 남이지.”
“그래도……”
“그리고, 우리 집안 별로 그렇게 뼈대 있는 집안은 아닌 것 같아. 처음에는 굉장한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족보를 산 게 아닐까 싶어. 아마 자세히 파고 들어가면, 그 부장님하고도 실제로 친척도 아닐 거야. 물론, 내 추측이지만……”
“뭐 그건 그렇고. 혹시 지금도 그 부장이라는 사람 만나니?”
“내가 미쳤어? 지금은 그 부장님 완전 영감님이야.”
그때, 막내 이모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둘째 언니! 언니랑 관계를 가진 형부 친구들이 다섯 명이나 돼?”
“아니 세 명.”
“세 명?”
“아차!! 다섯 명!”
둘째 이모는 말을 얼른 바꾸었지만, 그건 너무 티가 났다. 그것을 큰이모가 꼬집었다.
“뭐야 너. 뭐 숨기는 거 있지?”
“아냐. 숨기긴 뭘 숨겨?”
“너 분명히 숨기고 있는 거야. 솔직히 말해.”
“아니야. 다섯 명 맞아.”
“거짓말 마! 너 자꾸 그러면 엄마한테 그 부장님 이야기 말해 버린다.”
“뭐~어?”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
그 말에 거실에서는 잠시 침묵이 흘렀고, 잠시 뒤에 둘째 이모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음…… 이건 진짜 말하면 곤란한데……”
“야! 벌칙을 받으면서 뭐가 곤란해? 어차피 이젠 숨길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건 좀 위험해서 말이야.”
“뭔데 그래? 나머지 두 명이 누구길래?”
“다들 놀라서 기절 할걸?”
“누군데?”
“우선 한 잔 마시고…… 어 나 술잔 비었다. 뭐 하는 거야? 내 술잔도 안 채우고.”
둘째 이모가 다소 유세를 부리듯 그렇게 말하자, 이내 술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바로 곁에 앉은 큰이모가 술을 따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뒤에 둘째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하면 말이야. 킥~~”
“뭔 말도 안하고 혼자 웃니?”
“다들 놀라서 기절할 거 생각하니까 우스워서……”
“말이나 하고 그런 말 해라.”
“알았어. 누구냐 하면……”
둘째 이모는 잠시 말을 끊고서 뜸을 들였다. 순간, 술자리는 조용해졌다. 그리고, 긴장감이 끊어지지 않을 적절한 타이밍에 둘째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지마. 바로…… 우리 시아주버니하고, 큰 시동생이야.”
순간, 술자리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 봐 내가 놀랄 거라고 그랬지?”
폭탄선언을 한 둘째 이모는 태연하게 말했는데, 별다른 부끄러움도 없이 담담한 듯 했다. 그래서인지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듯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애교 넘치는 모습이 그려졌다.
“다들 언제까지 그런 표정으로 있을 거야?”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술자리의 분위기가 제대로 돌아오지 않자. 둘째 이모는 다소 불만스러운 듯 그렇게 말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듯한 짧은 소리들을 내면서 술을 마시는 소리를 내었다. 그런 다음에 사람들은 입을 떼었는데, 가장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막내 이모였다.
“어떻게 하다가 시아주버니와 시동생이랑 그렇게 된 거야?”
“자세히 이야기 하자면 길어.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시동생하고는 작년에 우리 시댁식구들 전체가 ‘괌’으로 여행 갔을 때 했어. 여행간지 둘째 날 밤에 그냥 답답해서 숙소에 딸린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데, 시동생도 수영하러 나왔지 뭐야. 그래서 같이 수영도 하고, 물장난도 치고 그러다가 그냥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어”
“수영장에서?”
셋째 이모가 물었다.
“아니 어떻게 수영장에서 하니? 주변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 어디에서?”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모래사장? 어떻게 그 곳까지 간 거야?”
“시동생하고 몸이 자꾸 부딪히는 사이에 내가 살짝 달아올라 있는데, 시동생이 자기랑 산책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 그래서 같이 해변가를 거닐었는데, 갑자기 시동생이 나를 덮쳐서 하게 된 거야.”
그 말에 큰이모가 나섰다.
“뭐야! 강간 당했다는 말이니?”
“어머! 언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시동생이 너를 덮쳤다며?”
“말이 그런 거지. 그냥 걸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시동생이 지나가는 말처럼 그러는 거야. ‘형수님 그거 아세요? 나 형수님 처음 봤을 때 한 눈에 반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형을 질투 했던 거요.’ 라고 말이야. 근데, 나 그 말에 감동을 받았지 뭐야. 언니는 내 맘 알겠지?”
둘째 이모는 큰이모와 둘만의 비밀이 있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큰 이모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글세……”
“뭐가 글세야? 결혼해서 처음 한동안 나와 남편에게 틱틱 거린 게 다 나를 좋아해서인데, 그리고 어디 그뿐이야? 나중에 우리 집을 유달리 챙겨주었던 것도 전부다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랬던 거잖아. 애들 아빠가 1년 동안 외국에 나가 있을 때는 거의 매일같이 우리 집에 들러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애들하고 놀아 주고 한 것이 그냥 자상해서가 아니었던 거잖아.”
그때, 큰이모가 말했다.
“그래서 예전에 내가 말했잖아. 아무래도 네 시동생이 너에게 딴 맘 있는 거 아니냐고 말이야.”
“그냥 의심하는 거하고, 확인한 것하고는 틀리지.”
“그래 그렇다고 치고 지금도 만나니?”
“아니. 시동생하고는 그 때 한번이 전부야. 언니도 알 듯이 우리 시동생은 자상한 면도 있지만, 맺고 끊는 데는 칼 같은 게 꼭 오빠 같잖아. 그때 괌에서는 우리 둘 다 분위기에 도취되어서 관계를 가진 것뿐이야. 만약, 다른 때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걸. 진짜 너무 멋있지 않아? 애절한 마음을 누르면서 자신이 지켜야 자리를 확실하게 지키는 그 모습이 말이야. 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 섹스를 막 끝내고 시동생이 내 귀에 대고 그랬어. ‘다음 생에는 반드시 형수님 남편으로 태어날 거에요. 반드시……’라고 말이야.”
“어째 시동생한테 너 마음 다 뺏긴 것 같다.”
“그런가? 뭐 잊지는 못할 거야.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나를 피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더 미안해 하면서 더 자상하게 우리 집에 도움을 주니까. 저번에 남편이 친구 보증을 잘못 섰다가 큰일 날 뻔 했을 때, 시동생이 돈을 빌려주어서 해결했잖아. 난 그냥 동서랑 전화로 이야기 하면서 푸념을 한 건데, 시동생이 바로 다음 날 돈을 들어 찾아왔지 뭐야. 진짜 놀랐다니까. 그렇게 큰 돈을……”
“그래 알았어 그만해. 솔직히 네가 작년부터 시동생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는 눈치챘었으니까.”
“정말? 너희 들도 그랬니?”
둘째 이모는 다른 이모들에게 확인을 하는 듯 그렇게 말했지만, 몰랐다는 대답들뿐이었다.
“그럼 언니만 눈치를 챈 거야? 역시~~”
“뭐가 역시니?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시아주버니하고는 어떻게 된 거니?”
큰이모는 화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건 좀 웃겨.”
“뭐가?”
“시아주버니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남편 친구들부터 이야기 해야 돼. 남편 친구들 3명은 남편 몰래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남편 때문에 한 거야. 그 왜 있잖아. 스와핑이라 불리는 거 말이야.”
둘째 이모의 그 말에 막내 이모가 가장 크게 놀란 듯 반문했다.
“뭐~어? 스와핑?”
“뭘 그리 놀라니? 너 수진이에게 들었다며?”
“그랬구나. 난 그냥 아까 그 부장님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야.”
“이런. 이거 괜히 다 이야기 한 거네.”
“아냐. 계속해봐.”
“그래 이왕 이야기 하기 시작한 거. 근데, 내가 이야기 하고 난 다음에 너도 솔직하게 다 이야기 해야 돼. 다른 사람들도 알았지?”
둘째 이모는 다짐을 받듯 술자리를 둘러보며 말을 했지만, 다들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뭐야. 다들!!!”
둘째 이모는 삐친 듯 소리쳤다. 그때, 큰이모가 나섰다.
“알았어. 이야기 할게 어서 하던 이야기나 계속해봐.”
“좋아 약속했다.”
“그래. 어서 이야기나 해.”
“알았어. 이미 말했다시피 사실 남편 친구들하고는 스와핑으로 만나 거야. 애들 아빠가 보기보다 상당히 변태스럽다고 내가 이야기 했었지? 신혼 초부터 둘이 할 때에도 온갖 변태스러운 짓은 다하고, 포르노 비디오도 SM이나 근친상간 이런 것만 빌려온다고 말이야.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계속 스와핑 이야기를 하더라.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흘러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변하더니, 나중에는 수진이 부부와 진짜로 해보자고 하는 거야. 다 이야기 됐다면서. 물론, 나는 싫다며 완강하게 거부했는데, 맨날 남편에게 계속 밤마다 조르니까 나중에는 호기심이 생기지 뭐야. 그리고, 수진이 고 기집애도 우리 집에 놀러 와서는 은근히 지 남편 자랑을 하면서 나를 자극하는데, 나중에는 나도 정말 하고 싶더라고. 그래서 수진이네 부부와 제일 처음으로 하게 되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 게 아니었어. 서로 남편을 바꾸어서 하는 것이 이상하게 흥분도 되고, 스릴도 있고 그랬거든. 그런데, 그게 나쁜 점이 있는데, 중독현상이 있다는 거야.”
“중독현상?”
“응. 스와핑을 하다 보니까 남편과 단 둘이 있는 때는 도무지 흥이 안 나는 거야. 재미도 없고, 귀찮기만 하고 말이지.”
그 말에 막내 이모가 물었다.
“남편을 바꾸어서 해도 역시 단 둘이 하는 거 아냐?”
“아니. 다 같이 한 방에서 하는 거야.”
“그게 무슨 스와핑이야? 그룹섹스지.”
“그룹섹스? 아냐. 스와핑이야.”
“아냐. 그룹섹스야. 뭘 제대로 알고 말해라.”
“그런가? 우린 그걸 스와핑이라 그러는데……”
“아냐. 잘 못 알고 있는 거야. 그룹섹스가 맞아.”
“그런가?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그건……”
“혹시 막내 너도?”
“몰라. 나중에 이야기 할게.”
막내 이모는 그렇게 말했는데, 그때 술자리에서는 제각각 한 소리씩 했다.
“어머. 막내도?”
“막내야 정말이니?”
“너도 그런 거 하니?”
하는 제 각각의 질문들이 쏟아졌는데, 막내 이모는 한 방에 이모들의 질문을 막았다.
“둘째 언니 이야기 끝나면 내가 이야기 할 테니까 그만해.”
그 말이 이모들의 파상적인 질문들은 일시에 사라졌고, 다시 둘째 이모에게로 배턴이 넘어갔다.
“쩝…… 그게 그룹섹스였나?”
“그래.”
“그래. 그렇다고 해두자. 아무튼 그렇게 모여서 하는 것은 중독성이 있어서 단 둘이 하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더라. 덕분에 집에서는 정말 아주 건전하게 지냈는데, 그게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일 꺼야. 예전에는 남편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변태스러운 짓을 자주 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신경이 많이 쓰였거든. 그런데, 그게 없어지고 나니까 엄청 홀가분하고, 아이들에게 왠지 모르게 당당하게 되더라. 그래서, 그 것을 그만 두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커플을 계속 끌어 들여서 지금까지 우리 부부까지 포함해서 4커플이나 되는데, 한꺼번에 전부다 모일 때도 있고, 두 커플씩 모일 때도 있어.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1~2번이고, 많을 때는 4번도 모여. 그런데, 한때 우리 모임이 깨질 뻔 한 일이 있었어. 돈 때문이었는데, 정말 심각했었어. 그 짓 할 때는 그렇게 좋아서 못살더니, 돈이 딱 걸리니까 부부끼리 뭉쳐서 정말 살벌하게 다투게 되더라. 그래서, 그게 해결 될 때까지 한 6개월 가량을 우리들은 만나지 않았는데, 그때 시아주버니를 만난 거야.”
“어떻게?”
“급하기는 기다려! 다 이야기 할 테니까. 앞에서 말했듯이, 스와핑 아니, 그 그룹섹스라는 것이 중독성이 있어서 단둘이 있으면 흥분이 되지 않아. 근데, 몇 달을 사람들과 만나지 못하게 되니까 나나 남편이나 욕구불만에 쌓이게 되더라고. 물론, 우리 둘이 하기는 했지만, 뭐랄까 그냥 자위를 한 것 같은 기분밖에 안 들더라. 남편도 예전처럼 변태스럽게 굴지도 않고 말이야. 그래서 남편이 다방면으로 다른 부부를 찾았지만, 어디 그게 쉬워야지. 그러는 사이에 내가 채팅이란 것에 빠졌는데, 그때 채팅으로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된 거야.”
그 말에 나는 직감적으로 그 남자가 둘째 이모의 시아주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처음부터 만난 것은 아니고, 그냥 채팅으로 서로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한달 가량을 채팅으로 사귀었어. 그때, 쟤 경진이에게 한 소리 들었고 말이야. 뭐라 그러더라, 채팅은 정신의 표현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외도를 넘어선 거라나 뭐라나. 하여간 쟤가 말하는 수준이 거의 오빠 수준이라서 뭔 소린지 듣지도 못하겠어.”
“됐어 넘어가. 경진이 이야기 알아 듣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니? 쟤 이야기랑 경현이 이야기는 그냥 ‘그런 가보다.’ 하면 되는 거야. 넘어가.”
큰이모는 그렇게 말하면서 둘째 이모의 말을 잘랐고, 둘째 이모도 쉽게 그에 응했다.
“그래. 알았어. 어째건, 채팅이란 것이 이상하게 사람을 묘하게 자극하는 어떤 것이 있더라. 그냥 글자로만 주고 받는 것이데, 막 흥분도 하고, 어떨 때는 오르가슴도 느끼고 그랬으니까. 근데, 실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오히려 상대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더라. 그래서, 실제로 만나기로 하고, 그 남자가 예약 해두었다는 ‘러브 호텔’로 갔거든. 근데, 내가 약속된 호실의 눈을 노크하자 글세 시아주버니가 그 방문을 열어주지 뭐야. 어찌나 놀랐는지……”
둘째 이모는 그때 일을 회상 하는 듯 말을 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순간에 말을 하지 않으니 짧은 시간임에도 그건 괘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성격 급한 셋째 이모가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둘째 이모는 질문과 상관없이 말을 이어갔다.
“벌써 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때 느낌이 생생하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셋째 이모는 재차 물었다.
“아유. 얘는 뭐가 그리 급해서.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하니? 채팅으로 온갖 추잡한 이야기 다 나누고, 러브호텔까지 가서 만난 것인데 모르는 척 하고 도로 나올 수는 없잖아. 일단 안으로 들어갔지 뭐. 근데, 그때 그 어색함이란. 으…… 지금 생각해도 숨 막힌다. 우린 둘 다 아무런 말도 못했고, 그냥 멍하니 한 참을 가만히 서 있었어. 그 시간 동안에 내 머리 속에 진짜 수 백만 가지의 생각들이 다 떠오르더라. 이대로 도망 가버릴까. 도망 가버리면 앞으로 시아주버니를 어떻게 봐야 할까. 시아주버니가 애들이나 애들 아빠에게 말을 하면 어떻게 하나. 등등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생각들까지 다 났어. 그런데, 그때 시아주버니가 다가 오더니 등 뒤에서 나를 안더라. 난 화들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려 시아주버니를 밀고서는 밖으로 나가려고까지 했는데, 시아주버니가 나를 잡아서 강하게 끌어 안으면서 그러는 거야. ‘제수씨 이대로 헤어지면 오히려 우리 관계 이상해져요. 그냥 있어요.’라고 말이야. 그리고는 나를 뒤에서 잠시 안고 있으면서 내 목에 입을 몇 번 맞추다가 침대로 넘어트리더라. 그래서 뭐 어쩔 수 없이 그냥 한 거지.”
“뭐 어쩔 수 없이? 꼭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한 것처럼 들리네.”
“킥~ 뭐 그런 건 아냐. 사실 흥분도 되었어. 다들 알겠지만, 우리 시아주버니 나이는 들었지만, 우리 시댁 식구들 중에서는 제일 잘 생기고 매너도 좋잖아. 그래서 옛날부터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되니까 못이기는 척하고 받아 준거지 뭐.”
“좋았어?”
“뭐 기술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닌데, 남편의 형이라는 묘한 상황 때문인지 은근히 흥분이 되고, 나쁘지는 않더라. 게다가 평생을 운동으로 단련한 몸이라서 시각적으로나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나 환상이었어. 40을 훌쩍 넘긴 아저씨의 몸매가 그렇게 좋을 줄이야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니까. 내가 만난 남자 중에서 몸매로 따지면 단연 일등이야. ”
“그래서, 시아주버니하고는 지금은 어때?”
큰이모의 질문이었다.
“뭐가?”
“그날 한번뿐이냐고.”
“아니, 시아주버니하고는 지금도 가끔 만나. 그날, 침대에서 한번 한 뒤에 시아주버니가 내 몸을 직접 씻겨 주겠다면서 욕실로 끌고 가서 같이 목욕을 하면서 그러더라고. 앞으로도 계속 만나주지 않겠냐고 말이야.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하자고 했어. 알다시피 우리 시아주버니 상처한 홀아비잖아. 내가 안 만나 주면 어차피 돈 들여서 창녀를 사야 할 텐데, 그러느니 차라리 내가 풀어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더라.”
“대단하다.”
“왜? 내 생각이 틀렸어?”
“그럼 그게 맞니?”
“뭐 어차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잖아.”
“그래도 그렇지.”
“아 몰라. 이젠 뭐 어차피 돌이킬 수도 없는데 뭐.”
“근데, 시아주버니랑은 그렇게 한지 얼마나 된 거야?”
“5년”
그 말에 술자리에서는 놀란 듯 ‘어머, 어머’ 하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뒤에 큰이모의 말이 들렸다.
“너 그러다 꼬리 잡힌다.”
“조심하고 있어. 뭐 그렇게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한 달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데 뭐. 조심하면 그렇게 위험하지도 않아. 지금까지도 잘 해왔고 말이야.”
“근데 너 단 둘이 하는 것은 재미없다며?”
“응. 그렇기는 한데, 시아주버니하고는 그런대로 재미있어. 기술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 그냥 재미있어. 뭐라고 꼬집어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시아주버니와 자고 나면, 왠지 내가 우리 집안의 안주인이 된 듯한 그런 기분이 들거든. 큰집 애들도 모두 내 자식 같다는 느낌도 들고 말이야. 그런데, 무엇보다 시아주버니가 내 말이면 껌뻑 죽는다는 것하고, 시어머니와 내 사이를 잘 컨트롤 해준다는 점이 제일 좋아.”
“좋기도 하겠다.”
“나쁠 것도 없지.”
“하긴. 어차피 네 인생이니까.”
“맞아. 내 인생이니까. 그리고, 근래에 들어서는 연락도 없어. 시집간 딸이 이혼을 하고 집으로 다시 오고, 유학간 아들 녀석은 외국 여자랑 결혼하겠다고 한 것에 충격을 받고서 힘들어 하더니만 고자라도 된 건지 벌써 두 달째 연락도 없어. 그래서, 어쩌면 이대로 끝날지도 몰라.”
“그래 네가 알아서 잘 해라.”
“그래야지. 그럼 더 이상 궁금한 것 없으면,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낼게. 이제 누가 이야기 할 거니? 막내 네가 한다고 했지?”
그 말에 막내 이모가 답했다.
“응. 내가 할게. 근데, 난 뭐 특별한 것은 없어. 둘째 언니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어찌 보면 평범할 거야. 우선 한잔 마시고 이야기 할게.”
크리스마스 아침에 억지로 청한 내 잠은 오전을 넘기지 못했다.
다시 청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시간은 막 11시 10분을 넘기고 있었는데, 익숙한 공간이라서 그런지 내 기분은 한결 낳아져 있었다. 왠지 전날 밤의 일이나 아침에 엄마와 나누었던 대화가 꿈처럼 느껴졌다. 왜 그런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지만, 그런 기분이 든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내 기분은 저녁 때, 엄마가 집에 들어오면서 더욱 확고하게 굳어졌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집에 들어왔고, 평소와 다름이 없이 저녁을 준비하고 나와 함께 식사를 했다. 정말이지 엄마에게서는 전날의 흔적을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냥 넘어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한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임신 문제였다. 비록, 당시에는 ‘가임 기간’이란 기초적인 지식도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여자의 몸 속에 정액을 뿌려대면 임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것이었으니, 최소한 엄마에게 임신에 대한 것은 물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날 밤, 엄마의 방문을 노크 했다.
- 똑. 똑. -
“현석이니?”
“응……”
“들어와.”
그 말에 난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는 평소처럼 침대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왠 일이니? 노크를 다하고……”
“응...... 그냥.”
머쓱해진 난 뒷머리를 긁었고,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빙긋 웃었다.
“그렇게 서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
“응……”
“그래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온 거야.”
“저기……”
“그래 말해.”
엄마의 말은 가볍고도 부드러웠다. 정말이지 엄마에게는 전날의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나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괜히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대로 내가 조용히 넘어간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을 내가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고, 그런 생각에 내 입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말 안 할 거니?”
“저 그게……”
“그래……”
“……”
하지만, 내 입은 여전히 떨어지지 않았고, 엄마는 눈짓으로 말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낭패였다. 차라리 그냥 모르는 척 지낼 것을 하고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고, 그 후회는 이대로 방을 ‘나갈까? 말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짓기 위해 엄마를 찾은 것이지만, 괜히 쓸데없는 문제만 만드는 것 같아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때, 엄마는 내가 염려하던 말을 했다.
“나와…… 또 자고 싶은 거니?”
엄마의 목소리는 아까와 달리 차분한 저음이었다.
“아……아냐.”
난 황급히 엄마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 대답과 상관없이 말을 이었다.
“어제의 일은 내 실수였어.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만약,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을 생각하고 나를 찾아 온 거라면 잊어.”
“예전의 말?”
난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그 뜻을 알 수 있었는데, 예전에 엄마가 근친상간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그거 때문이 아냐. 그리고, 엄마는 부부간에는 지켜야 할 도리가 있기 때문에 간통도 문제가 된다고 했었잖아.”
“그래.”
“내가 찾아온 것은 그 때문이 아니라, 다른 거야.”
“다른 것?”
“응.”
“어떤?”
엄마는 차분한 어조로 물었고, 나는 잠시 호흡을 고른 후 대답했다.
“임신”
그 말에 엄마는 잠이 말 없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괜히 말했다는 후회를 했는데, 이내 입을 뗀 엄마는 나의 그런 후회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정말이야?”
“그래. 어제는…… 임신이 안 되는 날이야.”
“아……”
난 왠지 모르게 맥이 탁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을 많이 했나 보구나.”
“응”
“아침에 말해 줄 걸…… 미안해. 네가 그런 걱정할 거란 건 몰랐다.”
“아냐. 엄마가 잘못한 것은 없어.”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근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네.”
“뭐가?”
“어제의 일.”
“그래 보이니?”
“응”
“바보구나.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겠니. 너는 어떠니?”
“나야 남자니까.”
“풋~”
“왜?”
“남자라는 말이 웃겨서.”
“그게 왜?”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찾아올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 남자라서 별로 충격 받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렇게 되나……”
“내가 밉지 않니?”
“엄마가 왜 미워. 내가 잘못한 건데. 술 취한 엄마를 내가……”
난 엄마를 보고 말을 하다가, 엄마와 시선이 마주치자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생각 마. 받아들인 내 잘못이 더 크니까. 너를 몸 속으로 인도한 것은 나잖아.”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 네 잘못은 아냐. 엄마로서 똑바로 처신하지 못한 내 잘못이 더 커.”
“그런 식이면, 아들의 본분을 잊은 나도 잘못이지.”
“풋~ 그래, 우리 둘 다 잘못한 거야.”
그러면서 엄마는 공허한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왠지 그 미소가 내게는 슬퍼 보였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엄마를 안아 주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말로 대신하려고 입을 떼었지만, 이상하게 그게 엄마의 말꼬리를 잡는 꼴이 되어버렸다.
“어제 일…… 잊을 수 있을까?”
“글세……”
“걱정이야. 앞으로 엄마와 내가 예전처럼 지내지 못할 것 같아서.”
“오늘처럼만 지내면 돼.”
“그런가......
“그래”
낮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로 엄마가 대답했는데, 그게 나에게 신뢰감을 주었다. 그기에 엄마가 편하게 지어 보인 미소까지 더해지니 나는 더 이상 고민을 하고 싶어지지 않았다.
나는 걸 터 앉았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그래. 잘 자거라.”
“응 엄마도 잘 자.”
그것을 끝으로 난 엄마의 방에서 나왔고, 내 방에 돌아가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것으로 내 18살의 크리스마스를 정리했다. 사건의 크기에 비해 엄마와 나의 마무리는 상당히 깔끔했다. 내 방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웠는데, 가슴에 멍울져 있는 큰 돌덩이를 빼낸 듯한 기분이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말이다. 마치, 엄마와 나의 기억 속에서 그 해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지워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겪어야 하는 현실은 달랐다.
‘시간’ 그 자체는 과거가 없지만,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오늘 이 시간’이란 것의 의미는 ‘똑 같은 크기로 늘어나는 과거와 미래’라는 양 끝을 가진 시소의 무게중심이었다. 엄마와 난 결코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얽매여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남이 보기에 엄마와 나는 별 문제 없이 잘 지냈으니 말이다. 같은 아파트의 아주머니들이나, 엄마의 외가 가족들 모두 엄마와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그 날의 사건을 다 정리했다는 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아주 사소한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령, 엄마와 나 모두 노출이 되는 옷을 입지 않았는데, 내 경우는 런닝 차림으로 집안을 돌아다니지 않았고, 엄마는 나시류 같은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지 않았다. 그것은 성적매력을 세련되게 나타낼 수 있는 옷차림을 즐겨 하던 엄마에게 더 큰 피해였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옷의 3분의 1이상을 엄마는 포기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다음으로 친근감을 표시하던 나와 엄마의 모든 습관들이 사라졌다. 가령, 내가 엄마를 등뒤에서 가볍게 안는다던가, 엄마가 내 엉덩이를 툭툭 치던가 하는 것들이 말이다. 하다 못해, 엄마와 내가 손을 잡는 일도 없어졌고, 시선을 마주치는 일도 없어졌다. 즉, 모든 신체적인 접촉은 모두 다 사라졌다고 보면 되었다. 또한, 엄마와 나의 대화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는데, 서로가 예전처럼 지내려고 노력을 했지만, 원인도 없이 엄마와 나의 대화가 점점 줄어들다. 그래서 이듬해 3월, 내가 고3이 되었을 때에 엄마와 나의 대화는 다음의 것이 고작이었다.
“현석아 밥 먹어라.”
“응”
“현석아 일어나서 학교 가야지.”
“응.”
“학교 갈게.”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정말 위의 대화가 엄마와 나의 대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와 내가 서로에게 관심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를 더 의식했는데, 누군가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면 항상 엄마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고, 내가 엄마를 바라보면 엄마 역시 그때 마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었다. 마치 엄마와 나 사이에 텔레파시가 통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것 말고도 엄마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는 더 있었다. 가령, 엄마는 내 도시락을 이전과는 확연하게 비교가 될 정도로 많은 정성을 쏟아서 싸주었고, 내 옷장과 방이 전 보다 훨씬 더 깔끔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내가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은 별로 없었다. 힘쓰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식으로 엄마와 나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는데, 조금 혼란스러운 것은 엄마를 향한 야릇한 감정이 내 속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3월 셋째 주 어느 요일이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집에 이모들이 잔뜩 몰려와 술판을 벌이고 있었고, 술판의 분위기는 상당히 무르익은 상태였다.
“오~~ 현석이 오는구나. 어서 들어와”
남성적인 기질이 다분한 큰이모가 제집인 양 큰소리로 나를 반겨주었고, 그 뒤를 이어 이모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정신 없이 인사를 하고 재빨리 내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원래가 낙천적이면서도 상당히 개인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외가친척들에게 ‘고3 수험생’이란 명분은 통하지 않았다. 결국, 난 아버지 대신으로 그 술 자리에 끼어들게 되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공부는 잘 되니?”
“어느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니?”
“너는 네 아버지 젊었을 때와 똑같다.”
“공부는 건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건강은 좋으니?”
하는 식의 이모들의 의례적인 질문과 말이 쏟아졌고, 나 역시 그런 질문과 말에 의례적으로 대답을 하면서 맥주를 받아 마셨다. 다음 날 학교에 무슨 행사가 있어서 학교를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담되는 술자리는 아니었지만, ‘수험생’이라는 신분과 엄마 바로 곁에 앉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내 마음은 상당히 불편했다. 게다가, 나이 어린 나에게는 발언권이라곤 전혀 돌아오지 않기에 사실 재미도 없었다. 그렇다고 수다의 내용이 내 관심을 끄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간신히 하품을 참으면서 내 방으로 들어갈 기회만 노렸다. 하지만, 주구장창 이어지는 이모들의 수다는 나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회가 찾아왔다.
그때는 엄마가 거론 될 때였다.
“조숙한 걸로 따지자면, 경진이 따라 갈 사람이 없지.”
큰이모가 엄마를 지목하며 말하자, 둘째 이모가 그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 고등학교 다닐 때에 결혼을 해서는 현석이를 낳았으니 말이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라간다는 말이 틀린 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네가 얌전한 고양이는 아니란 걸 아는가 보네.”
“그런 언니는 뭐 얌전한 고양이인가?”
“아니지.”
“그러면서 뭘. 어째건, 경진이가 나 보다 먼저 결혼할 줄은 진짜 몰랐어. 완전 충격이었다니까.”
“그렇지. 진짜 충격이었지. 고등학생이, 그것도 뱃속에 현석이를 가지고서 결혼한 거니까.”
“맞아. 어떻게 고등학생이 임신을 해서는…… 진짜 뉴스 감이야”
그 말에 셋째 이모가 끼어들었다.
“작은언니. 이제 좀 솔직 해져라. 그때, 경진이가 결혼한다는 것에 충격을 먹은 게 아니라, 경진이 결혼 상대자 때문에 충격 먹은 거잖아.”
그 말에 둘째 이모가 화들짝 놀랐다.
“어머! 애가 무슨 말이야?”
“뭘 그리 놀래? 이제는 다 지난 일인데, 도대체 시간이 얼마야? 벌써 18년이다. 그런데, 그 게 뭐가 흉이 된다고 그렇게 정색을 해?”
“얘! 사람 잡을 소리 마!”
둘째 이모는 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뒤를 이은 큰이모의 양심선언(?)으로 둘째 이모의 진실은 곧 밝혀졌다.
“얘! 이제 그만 해. 너 경진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나를 찾아와서는 울고 불고 난리 피웠었잖아. 경진이가 네 남자를 뺏어 갔다면서 말이야.”
“언니!!!”
“내가 뭐 없는 말 했니? 호호호~~”
큰이모는 재미있다는 듯 간드러지게 웃었고, 다른 사람들도 웃었다. 그런데, 그 사실에 놀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면,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둘째 이모만 바보처럼 그 것을 몰랐던 것 같았다. 나만 해도 외할머니를 통해서 들었던 터라 이미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즉, 둘째 이모의 사건을 거의 공공연한 비밀처럼 외가 쪽에서는 거의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미 술 때문에 붉어져 있던 둘째 이모의 얼굴이 더욱 빨갛게 달아 올랐다.
“뭐야. 이미 다들 알고 있었던 거야? 언니!! 어떻게 된 거야?”
“나 보지 마. 난 그냥 네 셋째에게만 말을 했을 뿐이니까.”
큰이모는 셋째 이모를 핑계대면서 자신은 큰 잘못을 한 게 아니라는 듯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그러자 급히 셋째 이모도 변명을 했다.
“어어…… 언니 오해 마. 나도 엄마에게만 말했을 뿐이야.”
“뭐~ 어? 엄마에게? 그럼 다 알고 있다는 말이잖아!”
“글세…… 난 모르지. 나야 큰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엄마에게만 했을 뿐인걸.”
“엄마가 입이 얼마나 싼데…… 그럼 오빠도 안다는 말이잖아!”
더 이상 화낼 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둘째 이모는 앙탈을 부리 듯 무릎을 세워서는 그 곳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둘째 이모다운 행동이었다.
엄마의 형제자매는 다섯 명이었는데, 제일 큰이모는 아버지와 동갑으로 엄마보다 8살이 많았고, 그 뒤로 2년 차이로 외숙부, 둘째 이모, 셋째 이모, 엄마 순이었고, 막내 이모는 엄마와는 3살이 차이 났다. 큰이모와 셋째 이모는 상당히 서구적인 시원한 외모에 남성다운 기질이 역력한 반면에, 둘째 이모는 엄마의 형제자매들 중에서 가장 키도 작고 앳된 외모에 애교가 많은 성격이었다. 소위 남자들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상당히 헤픈 듯한 느낌, 즉 요부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서 다른 이모들과는 달리 평범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에 반해서 엄마는 가장 동양적인 미인형이었지만 조금 페미니즘적인 성격을 가졌다. 다음으로 엄마와 가장 많이 닮은 막내 이모는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당시의 내 눈에는 가장 전통적인 여인상, 즉 현모양처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외숙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주 냉정한 성격에 확고한 자기철학을 가진 선비 같은 분이었는데, 외가의 친척들은 전부 외숙부를 아주 어려워했다. 얼마나 외숙부를 어려워하는가 하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조차도 외숙부가 있으면 도리어 말조심을 하였고, 큰이모를 꽉 잡고 사는 호탕하고 남성다운이 넘치는 큰이모부 조차도 외숙부하고 있으면 순한 양이 될 정도였다.
어째건, 둘째 이모는 외숙부도 알고 있을 거라며 애들처럼 고개를 도리질 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정말 마흔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애들 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런 어리광 비슷한 행동은 외모나 성격을 비추어 보면 잘 어울렸다. 게다가 취기가 적당히 오른 술자리에 웃음 꽃을 피우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술자리의 수다가 둘째 이모의 어리광(?)으로 인해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 했을 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방에 들어갈게요.”
“공부하려고? 시끄러워서 공부가 되겠니?”
큰이모의 그 말에 막내 이모가 부연 설명을 하듯 말했다.
“그래. 오늘은 이모들과 놀면서 쉬어. 내일 학교도 안 간다면서……”
“내일 친구들과 도서관에 가기로 했어요. 그리고, 조금 피곤하기도 하구요.”
“그래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시끄러워서 잠이 오겠니?”
큰이모는 나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쉽게 결정을 내려주었다.
“저 둔한 편이라서 그런 거 없어요. 그럼 저 들어 갈게요. 즐겁게 노세요.”
그 말을 끝으로 난 이모들의 인사를 받으며 바로 뒤에 있는 내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일단 침대에 큰 대자로 누웠는데, 거실의 술자리에서 내 왼편에 앉았던 엄마 때문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얼굴 왼쪽과 왼쪽 팔이 아픈 것 같은 느낌이 그제서야 풀리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예전에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편한 엄마였는데, 이제는 낯선 타인보다 더 어색하게 변한 엄마가 된 것이 뭔지 모를 허망함을 주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기분이 순식간에 칙칙하게 변했고, 그로 인해 기분전환을 위한 샤워가 하고 싶었지만, 거실을 차지한 술자리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 난 그냥 옷만 갈아입고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좀처럼 잠은 오지 않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거실에서 이모들이 떠드는 수다를 들었다. 문 하나만이 가로 막고 있어서인지 거실에서 나누는 이모들의 이야기들은 마치 현장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 들렸다.
거실에서는 여전히 둘째 이모의 짝사랑 사건이 주되 화재였다.
큰이모는 둘째 이모가 내 엄마의 결혼 소식을 듣고서 자신에게 와서 했던 행동과 말들은 생생하게 들려 주었고, 간간히 거실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때마다 둘째 이모는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어쩔 줄을 몰라 했는데, 그것은 오히려 웃음 소리를 더 크게 하는 효과 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 이야기로만 거의 30분을 끌었는데, 나는 그때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했고, 오히려 거실의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마냥 흥미진진하게 엄마와 이모들의 술자리 수다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 이야기가 마무리 되자, 둘째 이모는 자신의 짝사랑 사건이 억울했는지 게임을 제안했다. 그 것은 진실게임으로, 방식은 간단했다. 숫자 1을 외친 사람이 다음 사람을 지목하면, 지목 당한 사람은 2를 외치고서 다음 사람을 지목하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3”의 배수는 구호를 외치면 안되었으므로 꽤나 신경을 써야 하는 게임이었다. 당연히, “3”의 배수를 외치거나, 다른 숫자에서 외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묻는 질문에 진실을 밝혀야만 했다.
게임은 둘째 이모가 “1”을 외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일!”
둘째 이모는 숫자를 크게 외치자, 곧이어 엄마가 2를 외쳤다. 그리고 한 박자 쉬고 막내이모가 4를, 다시 큰이모가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치며 5를 외쳤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연이어 둘째 이모의 6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거실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둘째 이모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이건 무효야.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둘째 이모의 억울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둘째 이모는 벌칙을 받아야만 했다.
“자 약속대로 벌칙을 받아야지? 누가 먼저 질문을 할래?”
큰이모가 그렇게 말하자 셋째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할게.”
“그래. 네가 해라.”
“좋아. 질문에 솔직하게 말해야 돼. 둘째 언니! 지금까지 경험한 남자가 몇 명이야?”
“뭐?”
둘째 이모는 놀란 듯 반문했다.
“뭘 그리 놀래? 지금까지 같이 잠잔 남자가 몇 명이냐고.”
“무슨 말이니? 그건 예전에 다 말했잖아.”
둘째 이모는 답변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는데, 그런 둘째 이모의 반응에 엄마가 끼어 들었다.
“셋째 언니 그런 질문 하지마. 저 방에 현석이 있어……”
그 말을 큰이모가 받았다.
“그래 맞다. 현석이가 있었지. 근데, 현석이 잠들지 않았을까? 들어 간지 한참 지났잖아.”
“그래도 몰라. 공부하는지.”
“막내야 너 현석이 잠자는지 볼래?”
“알았어. 잠시만.”
그렇게 대답하는 막내 이모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내 내 방의 문이 열리면서 이모가 다가 왔는데, 이미 나는 눈을 감고서 잠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막내 이모는 내게 가까이에 와서는 잠시 있다가 금방 내 방을 다시 나갔는데, 나가면서 내 방의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서 새끼 손가락 두께만큼 문이 열려버렸다. 덕분에 거실에서 오고 가는 대화소리는 물론이고, 술잔에 술을 따르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현석이 잠들었어.”
거실로 나간 막내이모가 보고하듯 그렇게 말하자. 큰이모가 그 말을 받았다.
“그래. 그럼 걱정할 거 없네. 현석이 저 녀석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잖아.”
“맞아. 현석이 쟤 그래. 예전에 우리 집에 왔을 때, 내가 실수로 액자를 건드려서 깨트렸는데, 쟤만 꿈쩍도 않고 자더라구.”
“그래. 근데, 경진이 너 많이 변했다. 작년 추석 때까지만 해도 우리들이 당황해 할 정도로 개방적으로 굴더니만…… 무슨 일 있었니?”
“무슨 일은 현석이 때문에 그런 거지.”
그 말에 셋째 이모가 말했다.
“너 웃긴다. 작년에는 민경이가 있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고 말하더니…… 네 아들은 중요하니?”
셋째 이모는 완전히 시비조였다. 민경이는 큰이모의 첫째 딸이었다. 큰이모는 1남2녀를 두었는데, 첫째가 장남인 최우혁, 둘째가 나와 동갑인 최민경이고, 셋째가 3살 어린 최민지였다. 민경은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나보다 생일이 9개월이 빠른 탓에 내가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럼 계속해.”
엄마는 셋째 이모의 공격에 그냥 맥없이 무너졌고, 뒤이어 막내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둘째 언니 빨리 말해.”
“뭘 말하니? 정말 전에 말했던 사람이 다 라니까.”
“거짓말 마. 내가 수진이 언니에게 이야기 들은 것이 있는데……?”
“뭐 수진이?”
둘째 이모는 화들짝 놀랐다.
“그래. 언니 친구 이수진!”
“아니 고 계집애가……”
“그러니까 빨리 실토해!”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막내이모가 둘째 이모를 재촉했다. 아무래도 술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좋아. 말할 테니까. 다들 입 조심해!”
“알았어 어서 털어 놓기나 해봐.”
“음…… 10명!”
“어머!”
둘째 이모의 말에 막내 이모를 필두로 해서 이모들이 모두 놀란 듯 숨을 멈추었다. 물론, 나도 놀랐다. 10명이란 숫자가 둘째 이모의 입에서 나올 줄은 진짜 꿈에도 생각 못했다. 어릴 때, 엄마와 이모가 나누는 대화에서 얼핏 남자들 2~3명이 거론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냥 그 정도겠거니 했었던 것이다.
“뭐가 그렇게 많아? 말해봐 누구 누구야?”
큰이모가 구체적으로 말해 줄 것을 둘째 이모에게 요청했는데, 둘째 이모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술술 털어 놓았다.
“결혼 전에는 전에 말했던 남자친구 2명과 여행가서 만난 남자 2명이야. 그리고 회사 다닐 때의 부장님도 있었지. 크크…… 다음으로 결혼 후에는…… 남편 친구들.”
“부장님? 부장님이 하면 혹시 네게 중매를 서준 분 말하는 거니?”
“응. 맞아. 힛~~ 웃기지? 나를 자기 친구 아들에게 소개시켜줬으니 말이야. 키킥~”
“정말 웃긴 사람이네. 그 사람 자기 친구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먼 친척이라고 하지 않았니?”
“먼 친척은 무슨…… 촌수로 따지면 한 30촌도 더 될걸. 그게 무슨 친척이야. 남이지.”
“그래도……”
“그리고, 우리 집안 별로 그렇게 뼈대 있는 집안은 아닌 것 같아. 처음에는 굉장한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족보를 산 게 아닐까 싶어. 아마 자세히 파고 들어가면, 그 부장님하고도 실제로 친척도 아닐 거야. 물론, 내 추측이지만……”
“뭐 그건 그렇고. 혹시 지금도 그 부장이라는 사람 만나니?”
“내가 미쳤어? 지금은 그 부장님 완전 영감님이야.”
그때, 막내 이모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둘째 언니! 언니랑 관계를 가진 형부 친구들이 다섯 명이나 돼?”
“아니 세 명.”
“세 명?”
“아차!! 다섯 명!”
둘째 이모는 말을 얼른 바꾸었지만, 그건 너무 티가 났다. 그것을 큰이모가 꼬집었다.
“뭐야 너. 뭐 숨기는 거 있지?”
“아냐. 숨기긴 뭘 숨겨?”
“너 분명히 숨기고 있는 거야. 솔직히 말해.”
“아니야. 다섯 명 맞아.”
“거짓말 마! 너 자꾸 그러면 엄마한테 그 부장님 이야기 말해 버린다.”
“뭐~어?”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
그 말에 거실에서는 잠시 침묵이 흘렀고, 잠시 뒤에 둘째 이모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음…… 이건 진짜 말하면 곤란한데……”
“야! 벌칙을 받으면서 뭐가 곤란해? 어차피 이젠 숨길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건 좀 위험해서 말이야.”
“뭔데 그래? 나머지 두 명이 누구길래?”
“다들 놀라서 기절 할걸?”
“누군데?”
“우선 한 잔 마시고…… 어 나 술잔 비었다. 뭐 하는 거야? 내 술잔도 안 채우고.”
둘째 이모가 다소 유세를 부리듯 그렇게 말하자, 이내 술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바로 곁에 앉은 큰이모가 술을 따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뒤에 둘째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하면 말이야. 킥~~”
“뭔 말도 안하고 혼자 웃니?”
“다들 놀라서 기절할 거 생각하니까 우스워서……”
“말이나 하고 그런 말 해라.”
“알았어. 누구냐 하면……”
둘째 이모는 잠시 말을 끊고서 뜸을 들였다. 순간, 술자리는 조용해졌다. 그리고, 긴장감이 끊어지지 않을 적절한 타이밍에 둘째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지마. 바로…… 우리 시아주버니하고, 큰 시동생이야.”
순간, 술자리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 봐 내가 놀랄 거라고 그랬지?”
폭탄선언을 한 둘째 이모는 태연하게 말했는데, 별다른 부끄러움도 없이 담담한 듯 했다. 그래서인지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듯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애교 넘치는 모습이 그려졌다.
“다들 언제까지 그런 표정으로 있을 거야?”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술자리의 분위기가 제대로 돌아오지 않자. 둘째 이모는 다소 불만스러운 듯 그렇게 말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듯한 짧은 소리들을 내면서 술을 마시는 소리를 내었다. 그런 다음에 사람들은 입을 떼었는데, 가장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막내 이모였다.
“어떻게 하다가 시아주버니와 시동생이랑 그렇게 된 거야?”
“자세히 이야기 하자면 길어.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시동생하고는 작년에 우리 시댁식구들 전체가 ‘괌’으로 여행 갔을 때 했어. 여행간지 둘째 날 밤에 그냥 답답해서 숙소에 딸린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데, 시동생도 수영하러 나왔지 뭐야. 그래서 같이 수영도 하고, 물장난도 치고 그러다가 그냥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어”
“수영장에서?”
셋째 이모가 물었다.
“아니 어떻게 수영장에서 하니? 주변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 어디에서?”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모래사장? 어떻게 그 곳까지 간 거야?”
“시동생하고 몸이 자꾸 부딪히는 사이에 내가 살짝 달아올라 있는데, 시동생이 자기랑 산책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 그래서 같이 해변가를 거닐었는데, 갑자기 시동생이 나를 덮쳐서 하게 된 거야.”
그 말에 큰이모가 나섰다.
“뭐야! 강간 당했다는 말이니?”
“어머! 언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시동생이 너를 덮쳤다며?”
“말이 그런 거지. 그냥 걸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시동생이 지나가는 말처럼 그러는 거야. ‘형수님 그거 아세요? 나 형수님 처음 봤을 때 한 눈에 반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형을 질투 했던 거요.’ 라고 말이야. 근데, 나 그 말에 감동을 받았지 뭐야. 언니는 내 맘 알겠지?”
둘째 이모는 큰이모와 둘만의 비밀이 있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큰 이모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글세……”
“뭐가 글세야? 결혼해서 처음 한동안 나와 남편에게 틱틱 거린 게 다 나를 좋아해서인데, 그리고 어디 그뿐이야? 나중에 우리 집을 유달리 챙겨주었던 것도 전부다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랬던 거잖아. 애들 아빠가 1년 동안 외국에 나가 있을 때는 거의 매일같이 우리 집에 들러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애들하고 놀아 주고 한 것이 그냥 자상해서가 아니었던 거잖아.”
그때, 큰이모가 말했다.
“그래서 예전에 내가 말했잖아. 아무래도 네 시동생이 너에게 딴 맘 있는 거 아니냐고 말이야.”
“그냥 의심하는 거하고, 확인한 것하고는 틀리지.”
“그래 그렇다고 치고 지금도 만나니?”
“아니. 시동생하고는 그 때 한번이 전부야. 언니도 알 듯이 우리 시동생은 자상한 면도 있지만, 맺고 끊는 데는 칼 같은 게 꼭 오빠 같잖아. 그때 괌에서는 우리 둘 다 분위기에 도취되어서 관계를 가진 것뿐이야. 만약, 다른 때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걸. 진짜 너무 멋있지 않아? 애절한 마음을 누르면서 자신이 지켜야 자리를 확실하게 지키는 그 모습이 말이야. 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 섹스를 막 끝내고 시동생이 내 귀에 대고 그랬어. ‘다음 생에는 반드시 형수님 남편으로 태어날 거에요. 반드시……’라고 말이야.”
“어째 시동생한테 너 마음 다 뺏긴 것 같다.”
“그런가? 뭐 잊지는 못할 거야.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나를 피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더 미안해 하면서 더 자상하게 우리 집에 도움을 주니까. 저번에 남편이 친구 보증을 잘못 섰다가 큰일 날 뻔 했을 때, 시동생이 돈을 빌려주어서 해결했잖아. 난 그냥 동서랑 전화로 이야기 하면서 푸념을 한 건데, 시동생이 바로 다음 날 돈을 들어 찾아왔지 뭐야. 진짜 놀랐다니까. 그렇게 큰 돈을……”
“그래 알았어 그만해. 솔직히 네가 작년부터 시동생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는 눈치챘었으니까.”
“정말? 너희 들도 그랬니?”
둘째 이모는 다른 이모들에게 확인을 하는 듯 그렇게 말했지만, 몰랐다는 대답들뿐이었다.
“그럼 언니만 눈치를 챈 거야? 역시~~”
“뭐가 역시니?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시아주버니하고는 어떻게 된 거니?”
큰이모는 화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건 좀 웃겨.”
“뭐가?”
“시아주버니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남편 친구들부터 이야기 해야 돼. 남편 친구들 3명은 남편 몰래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남편 때문에 한 거야. 그 왜 있잖아. 스와핑이라 불리는 거 말이야.”
둘째 이모의 그 말에 막내 이모가 가장 크게 놀란 듯 반문했다.
“뭐~어? 스와핑?”
“뭘 그리 놀라니? 너 수진이에게 들었다며?”
“그랬구나. 난 그냥 아까 그 부장님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야.”
“이런. 이거 괜히 다 이야기 한 거네.”
“아냐. 계속해봐.”
“그래 이왕 이야기 하기 시작한 거. 근데, 내가 이야기 하고 난 다음에 너도 솔직하게 다 이야기 해야 돼. 다른 사람들도 알았지?”
둘째 이모는 다짐을 받듯 술자리를 둘러보며 말을 했지만, 다들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뭐야. 다들!!!”
둘째 이모는 삐친 듯 소리쳤다. 그때, 큰이모가 나섰다.
“알았어. 이야기 할게 어서 하던 이야기나 계속해봐.”
“좋아 약속했다.”
“그래. 어서 이야기나 해.”
“알았어. 이미 말했다시피 사실 남편 친구들하고는 스와핑으로 만나 거야. 애들 아빠가 보기보다 상당히 변태스럽다고 내가 이야기 했었지? 신혼 초부터 둘이 할 때에도 온갖 변태스러운 짓은 다하고, 포르노 비디오도 SM이나 근친상간 이런 것만 빌려온다고 말이야.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계속 스와핑 이야기를 하더라.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흘러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변하더니, 나중에는 수진이 부부와 진짜로 해보자고 하는 거야. 다 이야기 됐다면서. 물론, 나는 싫다며 완강하게 거부했는데, 맨날 남편에게 계속 밤마다 조르니까 나중에는 호기심이 생기지 뭐야. 그리고, 수진이 고 기집애도 우리 집에 놀러 와서는 은근히 지 남편 자랑을 하면서 나를 자극하는데, 나중에는 나도 정말 하고 싶더라고. 그래서 수진이네 부부와 제일 처음으로 하게 되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 게 아니었어. 서로 남편을 바꾸어서 하는 것이 이상하게 흥분도 되고, 스릴도 있고 그랬거든. 그런데, 그게 나쁜 점이 있는데, 중독현상이 있다는 거야.”
“중독현상?”
“응. 스와핑을 하다 보니까 남편과 단 둘이 있는 때는 도무지 흥이 안 나는 거야. 재미도 없고, 귀찮기만 하고 말이지.”
그 말에 막내 이모가 물었다.
“남편을 바꾸어서 해도 역시 단 둘이 하는 거 아냐?”
“아니. 다 같이 한 방에서 하는 거야.”
“그게 무슨 스와핑이야? 그룹섹스지.”
“그룹섹스? 아냐. 스와핑이야.”
“아냐. 그룹섹스야. 뭘 제대로 알고 말해라.”
“그런가? 우린 그걸 스와핑이라 그러는데……”
“아냐. 잘 못 알고 있는 거야. 그룹섹스가 맞아.”
“그런가?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그건……”
“혹시 막내 너도?”
“몰라. 나중에 이야기 할게.”
막내 이모는 그렇게 말했는데, 그때 술자리에서는 제각각 한 소리씩 했다.
“어머. 막내도?”
“막내야 정말이니?”
“너도 그런 거 하니?”
하는 제 각각의 질문들이 쏟아졌는데, 막내 이모는 한 방에 이모들의 질문을 막았다.
“둘째 언니 이야기 끝나면 내가 이야기 할 테니까 그만해.”
그 말이 이모들의 파상적인 질문들은 일시에 사라졌고, 다시 둘째 이모에게로 배턴이 넘어갔다.
“쩝…… 그게 그룹섹스였나?”
“그래.”
“그래. 그렇다고 해두자. 아무튼 그렇게 모여서 하는 것은 중독성이 있어서 단 둘이 하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더라. 덕분에 집에서는 정말 아주 건전하게 지냈는데, 그게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일 꺼야. 예전에는 남편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변태스러운 짓을 자주 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신경이 많이 쓰였거든. 그런데, 그게 없어지고 나니까 엄청 홀가분하고, 아이들에게 왠지 모르게 당당하게 되더라. 그래서, 그 것을 그만 두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커플을 계속 끌어 들여서 지금까지 우리 부부까지 포함해서 4커플이나 되는데, 한꺼번에 전부다 모일 때도 있고, 두 커플씩 모일 때도 있어.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1~2번이고, 많을 때는 4번도 모여. 그런데, 한때 우리 모임이 깨질 뻔 한 일이 있었어. 돈 때문이었는데, 정말 심각했었어. 그 짓 할 때는 그렇게 좋아서 못살더니, 돈이 딱 걸리니까 부부끼리 뭉쳐서 정말 살벌하게 다투게 되더라. 그래서, 그게 해결 될 때까지 한 6개월 가량을 우리들은 만나지 않았는데, 그때 시아주버니를 만난 거야.”
“어떻게?”
“급하기는 기다려! 다 이야기 할 테니까. 앞에서 말했듯이, 스와핑 아니, 그 그룹섹스라는 것이 중독성이 있어서 단둘이 있으면 흥분이 되지 않아. 근데, 몇 달을 사람들과 만나지 못하게 되니까 나나 남편이나 욕구불만에 쌓이게 되더라고. 물론, 우리 둘이 하기는 했지만, 뭐랄까 그냥 자위를 한 것 같은 기분밖에 안 들더라. 남편도 예전처럼 변태스럽게 굴지도 않고 말이야. 그래서 남편이 다방면으로 다른 부부를 찾았지만, 어디 그게 쉬워야지. 그러는 사이에 내가 채팅이란 것에 빠졌는데, 그때 채팅으로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된 거야.”
그 말에 나는 직감적으로 그 남자가 둘째 이모의 시아주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처음부터 만난 것은 아니고, 그냥 채팅으로 서로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한달 가량을 채팅으로 사귀었어. 그때, 쟤 경진이에게 한 소리 들었고 말이야. 뭐라 그러더라, 채팅은 정신의 표현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외도를 넘어선 거라나 뭐라나. 하여간 쟤가 말하는 수준이 거의 오빠 수준이라서 뭔 소린지 듣지도 못하겠어.”
“됐어 넘어가. 경진이 이야기 알아 듣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니? 쟤 이야기랑 경현이 이야기는 그냥 ‘그런 가보다.’ 하면 되는 거야. 넘어가.”
큰이모는 그렇게 말하면서 둘째 이모의 말을 잘랐고, 둘째 이모도 쉽게 그에 응했다.
“그래. 알았어. 어째건, 채팅이란 것이 이상하게 사람을 묘하게 자극하는 어떤 것이 있더라. 그냥 글자로만 주고 받는 것이데, 막 흥분도 하고, 어떨 때는 오르가슴도 느끼고 그랬으니까. 근데, 실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오히려 상대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더라. 그래서, 실제로 만나기로 하고, 그 남자가 예약 해두었다는 ‘러브 호텔’로 갔거든. 근데, 내가 약속된 호실의 눈을 노크하자 글세 시아주버니가 그 방문을 열어주지 뭐야. 어찌나 놀랐는지……”
둘째 이모는 그때 일을 회상 하는 듯 말을 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순간에 말을 하지 않으니 짧은 시간임에도 그건 괘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성격 급한 셋째 이모가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둘째 이모는 질문과 상관없이 말을 이어갔다.
“벌써 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때 느낌이 생생하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셋째 이모는 재차 물었다.
“아유. 얘는 뭐가 그리 급해서.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하니? 채팅으로 온갖 추잡한 이야기 다 나누고, 러브호텔까지 가서 만난 것인데 모르는 척 하고 도로 나올 수는 없잖아. 일단 안으로 들어갔지 뭐. 근데, 그때 그 어색함이란. 으…… 지금 생각해도 숨 막힌다. 우린 둘 다 아무런 말도 못했고, 그냥 멍하니 한 참을 가만히 서 있었어. 그 시간 동안에 내 머리 속에 진짜 수 백만 가지의 생각들이 다 떠오르더라. 이대로 도망 가버릴까. 도망 가버리면 앞으로 시아주버니를 어떻게 봐야 할까. 시아주버니가 애들이나 애들 아빠에게 말을 하면 어떻게 하나. 등등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생각들까지 다 났어. 그런데, 그때 시아주버니가 다가 오더니 등 뒤에서 나를 안더라. 난 화들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려 시아주버니를 밀고서는 밖으로 나가려고까지 했는데, 시아주버니가 나를 잡아서 강하게 끌어 안으면서 그러는 거야. ‘제수씨 이대로 헤어지면 오히려 우리 관계 이상해져요. 그냥 있어요.’라고 말이야. 그리고는 나를 뒤에서 잠시 안고 있으면서 내 목에 입을 몇 번 맞추다가 침대로 넘어트리더라. 그래서 뭐 어쩔 수 없이 그냥 한 거지.”
“뭐 어쩔 수 없이? 꼭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한 것처럼 들리네.”
“킥~ 뭐 그런 건 아냐. 사실 흥분도 되었어. 다들 알겠지만, 우리 시아주버니 나이는 들었지만, 우리 시댁 식구들 중에서는 제일 잘 생기고 매너도 좋잖아. 그래서 옛날부터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되니까 못이기는 척하고 받아 준거지 뭐.”
“좋았어?”
“뭐 기술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닌데, 남편의 형이라는 묘한 상황 때문인지 은근히 흥분이 되고, 나쁘지는 않더라. 게다가 평생을 운동으로 단련한 몸이라서 시각적으로나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나 환상이었어. 40을 훌쩍 넘긴 아저씨의 몸매가 그렇게 좋을 줄이야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니까. 내가 만난 남자 중에서 몸매로 따지면 단연 일등이야. ”
“그래서, 시아주버니하고는 지금은 어때?”
큰이모의 질문이었다.
“뭐가?”
“그날 한번뿐이냐고.”
“아니, 시아주버니하고는 지금도 가끔 만나. 그날, 침대에서 한번 한 뒤에 시아주버니가 내 몸을 직접 씻겨 주겠다면서 욕실로 끌고 가서 같이 목욕을 하면서 그러더라고. 앞으로도 계속 만나주지 않겠냐고 말이야.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하자고 했어. 알다시피 우리 시아주버니 상처한 홀아비잖아. 내가 안 만나 주면 어차피 돈 들여서 창녀를 사야 할 텐데, 그러느니 차라리 내가 풀어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더라.”
“대단하다.”
“왜? 내 생각이 틀렸어?”
“그럼 그게 맞니?”
“뭐 어차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잖아.”
“그래도 그렇지.”
“아 몰라. 이젠 뭐 어차피 돌이킬 수도 없는데 뭐.”
“근데, 시아주버니랑은 그렇게 한지 얼마나 된 거야?”
“5년”
그 말에 술자리에서는 놀란 듯 ‘어머, 어머’ 하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뒤에 큰이모의 말이 들렸다.
“너 그러다 꼬리 잡힌다.”
“조심하고 있어. 뭐 그렇게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한 달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데 뭐. 조심하면 그렇게 위험하지도 않아. 지금까지도 잘 해왔고 말이야.”
“근데 너 단 둘이 하는 것은 재미없다며?”
“응. 그렇기는 한데, 시아주버니하고는 그런대로 재미있어. 기술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 그냥 재미있어. 뭐라고 꼬집어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시아주버니와 자고 나면, 왠지 내가 우리 집안의 안주인이 된 듯한 그런 기분이 들거든. 큰집 애들도 모두 내 자식 같다는 느낌도 들고 말이야. 그런데, 무엇보다 시아주버니가 내 말이면 껌뻑 죽는다는 것하고, 시어머니와 내 사이를 잘 컨트롤 해준다는 점이 제일 좋아.”
“좋기도 하겠다.”
“나쁠 것도 없지.”
“하긴. 어차피 네 인생이니까.”
“맞아. 내 인생이니까. 그리고, 근래에 들어서는 연락도 없어. 시집간 딸이 이혼을 하고 집으로 다시 오고, 유학간 아들 녀석은 외국 여자랑 결혼하겠다고 한 것에 충격을 받고서 힘들어 하더니만 고자라도 된 건지 벌써 두 달째 연락도 없어. 그래서, 어쩌면 이대로 끝날지도 몰라.”
“그래 네가 알아서 잘 해라.”
“그래야지. 그럼 더 이상 궁금한 것 없으면,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낼게. 이제 누가 이야기 할 거니? 막내 네가 한다고 했지?”
그 말에 막내 이모가 답했다.
“응. 내가 할게. 근데, 난 뭐 특별한 것은 없어. 둘째 언니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어찌 보면 평범할 거야. 우선 한잔 마시고 이야기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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