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의 사랑(15)
피닉스의 사랑(15)
아들의 고백(8)
사랑에도 게절이 있는 것일까요?
엄마와 나 사이의 이 달콤하고 격정적인 사랑도 파노라마 처럼 펼쳐 놓고 보면 계절의 변화를 닮은 듯 합니다.
어느날 불쑥 찾아 온 운명의 시각 --- 그것은 나에게도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의 시작이었습니다.
뚜렷한 의식도 욕구도 없이 나를 낳고 키워 준 엄마의 몸을 파고 든 나의 행동과 뜻밖에 돌출 된 나의 푝력에 눈물 짓던 엄마의 아픔은, 얼어 붙었던 땅이 봄을 맞으며 스르르 녹아갈 때 움 튼 사랑의 싹이었습니다.
그 새 싹은 아직 너무 연약 해 꽃샘 바람에도 쓰러질 듯 했으나 운명적인 생명력으로 계속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키워 갔습니다.
여름 한 철에 그 새 싹은 무럭 무럭 자라 훌륭한 모양새를 갖추었습니다.
작렬하는 태양도 세차게 몰아 치는 폭풍우도 이제는 그 사랑을 꺾지 못하고 오히려 풍성하게 해 주었습니다.
날로 녹음이 짙어 지듯 그 줄기는 억세고 튼튼했으며 모든 잎새마다 활발한 탄소동화작용을 하며 한껏 향기로운 꽃을 자랑하고 주렁주렁 열매를 맺었습니다.
가을로 접어 들면서 이제는 풍요한 수확만 남은 것일까요? ... 그러나 나에게 느껴 지는 가을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산하고 두려웠습니다. 햇볕이 머무는 시간이 짧아 지고 그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찾아들 때 나는 계절의 변화를 마음 졸이며 맞았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아직 겨울을 겪어 보지 않았건만 본능적으로 세찬 바람과 매서운 추위를 에견했는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당시의 나는 우리의 사랑이 1년생 식물인지 다년생인지도 몰랐습니다.
1년생이라면 한껏 활기차고 풍성해서 그 생명력 만으로도 그지 없이 아름다웠건만, 게절의 변화에는 어쩔 수 없이 시들어 가며 겨울의 문턱에서 결국 소멸해 버리고 말겠죠.
우리의 사랑이 다년생이라면 나이테를 만들어 가며 더욱 성장과 풍요를 개대할 수도 있겠죠. 다만 이 처음 맞을 혹한을 무사히 이겨 나야 한다는 조건 아래서...
어떻든 우리의 사랑은 지금 스산하고 두려운 가을의 문턱에 서 있었습니다.
"오동잎 하나 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안다" 고 어느 시인은 노래 했지만 내가 처음 가을을 느낀 것은 엄마가 임신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우리는 알몸으로 맞붙어 뜨거운 불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내 위에서 격정적인 신음을 토해 대는 엄마를 잠시 쉬도록 눕힌 뒤에 나는 엄마의 두 다리를 내 어깨에 걸치게 하고 막 페니스를 삽입하려 했습니다.
"안 돼! 그러면 너무 깊어. 아기가 다쳐."
나는 깜짝 놀라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아기라니요?"
"응, 이제 4개월 째 접어 들었어."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았습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물었습니다.
"그럼 어떡해야죠?"
"사랑하는 님이 뿌려준 씨앗인데 무사히 잘 낳아야지."
엄마는 방긋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습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스산함과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왜 표정이 그래? 아이, 빨리 와서 마저 끝내 줘."
엄마가 두 팔을 벌리며 재촉하는 바람에 나는 다시 페니스를 집어 넣었습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열심히 엉덩이를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계속 딴 생각이 떠 오르며 흥취는 전혀 없었습니다. 엄마와의 엑스타시를 경험한 이래 이런 식의 사정은 처음이었습니다.
"이건 어떡하죠?"
나는 엄마의 아래를 닦아 주던 손으로 아랫배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이런 것도 전에 없는 행동입니다. 점포 안에서나 식탁 앞에서 처럼 변칙적으로 할 때가 아니면 나는 사정이 끝난 후에도 늘 뒷처리와 함께 엄마에게 키스와 애무를 보냈었습니다.
내가 되풀이 한 질문의 속 뜻은 똑 같았습니다. "빨리 처치해야지" 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대답도 똑 같았습니다.
"무사히 잘 낳아야지."
나는 전혀 아버지가 될 마음의 준비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것은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아무리 참되고 절실하다 해도 남들에게는 드러 낼 수도 용인 될 수도 없다는 것은 너무나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 사이에 다시 아이까지 태어 난다는 것은 급하게 도망치는 상황에서 거추장스런 짐 보따리를 새로 만드는 것 처럼 우매하기 짝이 없는 일 아닙니까?
나는 엄마가 혹 나를 놀릴려고 농담을 하나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피자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엄마의 진지한 표정도 그렇고, 말을 듣고 나서 보니 이미 그 몸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연분홍 빛의 젖꼭지는 색깔이 짙어 졌고 젖무리도 넓게 퍼져 있습니다. 배는 얼마나 불러진 것인지 잘 깨닫지 못하겠지만 배꼽에서 두덩에 이르기까지 가는 선이 희미하게 그어져 있었습니다.
매일 엄마의 나신을 보고 품어 왔으면서도 이런 변화를 전혀 몰랐다는 것에 나는 스스로를 탓 했습니다. 내가 생각이 깊었다면 벌써 눈치 챘어야 할 일입니다.
"오늘은 안 돼. 아침에 터져 버렸어."
침대에서 엄마의 옷을 벗기려 하자 몸을 움추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처음 그 말 뜻을 몰랐으나 잠시 후 멘스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그냥 자요, 민수씨. 한 3~4일은 어쩔 수 없어."
나는 엄마의 말을 따랐습니다. 엄마에게 팔베게만 해주고 그냥 잠을 청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와의 엑스타시를 경험한 후 처음 섹스 없이 보내는 밤이라 쉽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불뚝 선 페니스를 엄마의 엉덩이 쪽에 비벼 대며 한 손을 팬티 위에 얹어 보니 두툼한 생리대의 감촉이 느껴 졌습니다. 나는 그 손을 팬티 안으로 집어 넣으려 했습니다.
"안된다니까. 여보야. 냄새가 심해."
엄마는 내 손을 막고 돌아누어 나를 꼭 껴 안아 주었습니다. 아래는 금단구역으로 선포된 채 품에 안기게 되자 나는 아기처럼 가슴을 파고 들었습니다. 번갈아 젖을 빨고 주물렀습니다.
엄마의 숨결이 가빠지고 몸을 비틀자 나는 장난끼까지 동해 귓바퀴를 입속에 머금고, 잠옷과 블래지어를 벗긴 뒤 목덜미와 겨드랑이등 민감한 부분을 섭렵했습니다.
"아이, 못 견디겠어. 한번 씻고 와 볼까?"
"그만. 그만" 하면서 숨소리는 더욱 격해지던 엄마는 욕실을 다녀 왔습니다. 그리고 밑에는 두툼한 타올을 깔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 밤도 그냥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날의 엄마는 평시보다 더욱 뜨거웠습니다. 페니스를 삽입할 때부터 몸부림과 비명이 터져 나오더니 울부짖음과 흐느낌도 길게 이어 졌습니다.
그러나 섹스가 끝나자 엄마는 얼굴을 붉히며 몹시 부끄러워 했습니다.
내 페니스는 그보다 더 진한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타올을 깔기도 잘 했습니다. 아니면 빨기 어려운 침대 시트를 더럽혔을테니까요.
"생리 때는 몸 전체가 이상해. 아니, 내가 정말 색골이 되어 가는 걸까?"
엄마는 나를 욕실로 끌고 가 페니스를 비누칠을 해서 닦아주며 혼잣말 처럼 하면서 다시 얼굴을 붉혔습니다.
이것이 몇달 전의 일이었습니다.
다음날도 나는 엄마의 민감한 반응이 재미 있어 다시 엄마의 몸을 집적거렸습니다.
"오늘은 정말 안돼! 당신이 뚫어 놔서 그런지 지금은 콸콸이야."
엄마의 거부는 더욱 완강했습니다. 그러나 한번의 경험으로 나는 엄마의 약점을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엄마. 오늘은 나도 그냥 아기 노릇만 할께."
나는 엄마의 젖만 빨고 주물렀습니다.
"아이, 민수씨. 이렇게 나를 약 올리기야. 너무 얄미워."
엄마는 나를 꼬집고는 또 욕실을 다녀 왔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엄마의 멘스 기간중에 하루도 걸르지 않고 섹스를 계속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똑같은 상황은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엄마가 생리대를 찬 것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무감각하게도 나는 그런 이상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새 장난감이 너무 재미 있어 그 전까지 갖고 놀던 장난감을 팽개치고 돌아보지도 않는 어린애 처럼...
사실 그 무렵 엄마의 몸과 모든 언행은 늘 새롭게 나를 끌어들이는 신비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또 하나 내가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 것은 막내 외삼촌의 방문이었습니다.
이제는 신문사 사회부장으로 있는 그 외삼촌은 외갓집에서도 엄마와의 우애가 가장 돈독할 뿐 아니라 나도 나도 무척 좋아하고 따랐습니다.
늘 창백한 얼굴에 돗수 높은 안경 속의 눈초리는 날카롭지만 또 감수성이 풍부하고 모든 에술을 좋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외삼촌은 외갓집 식구들 중에는 특별히 우리집을 가끔 찾아 주었는데 엄마와 나 사이가 이렇게 사랑으로 싹 튼 뒤에는 첫 방문이었습니다.
이 무렵 엄마의 배는 표가 나게 불러 있었습니다. 풍성한 옷으로 캄믈라지를 해서 무심한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섹스를 할 때는 그 배가 장애물로 생각 될 정도였으니까요.
나의 자격지심 때문일까, 외삼촌의 눈초리는 자꾸 엄마의 아랫배와 내 얼굴에 집중된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도 잘 들 지내. 세상사가 뜻대로 안 되고 내 생각과 다를지라도 그 세상에 속해 있으면 관행을 따랴야지. 너희 모두 떳떳하고 슬기롭게 살아가기 바란다."
이미 안부 인사를 나눴음에도 떠날 때 외삼촌의 이런 말은 가슴이 철렁할만큼 의미심장하게 들렸습니다.
막내 외삼촌이 무슨 낌새를 눈치 챘을까? 설령 외삼촌이 그냥 지나쳤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여전히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타부를 깼다는 것에 대한 새삼스런 죄의식이었습니다.
엄마와 나의 사랑은 당연히 나 자신에게도 심한 자책과 죄의식을 던져 주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나를 받아주고 갈수록 애정이 깊어지며 우리는 그런 장애를 극복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침실 안에서, 남에게 감출 때에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 문제점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셈입니다.
점점 불러 오는 엄마 뱃속의 아기와 함께 그 문제는 더욱 엄청나고 심각한 장애물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늘 아기 문제는 나를 짓눌러 왔건만 나는 아무 타결책도 내 놓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생활의 주도권은 엄마가 갖고 있었고 자기 주장도 못하며 소극적인 나는 다만 혼자서 속으로 고민만 할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를 가끔 질투 대상으로 삼는 것 때문에 나는 자신이 "오디푸스 컴플렉스"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는 바로 그 오디푸스, 가장 참혹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변모해 간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테베라는 한 나라에 온갖 재앙이 몰려 들면서 그 해결책을 찾아 헤맸던 신하들이 가져온 충격적 진실 --- 그것은 모든 재앙의 원죄가 바로 왕 자신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나는 누구인가? 사랑하는 나의 가족은 또 누구인가? ... 나를 낳아 준 아버지를 내 손으로 죽이고 그 어머니를 취하고 다시 자녀를 얻었으니 그 여인은 나의 어머니며 아내며 또 내 자식들의 어머니라... 자식들은 내 어머니 몸에서 나왔으니 내 형제라건만 또 내 씨로 비롯 됐으니 아들. 딸이기도 하고..."
진실이 주는 충격과 혼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왕관 대신 거지옷을 바꿔 입고 유랑길에 나선 오디푸스의 절규가 바로 나 자신의 대사처럼 소름끼치게 합니다.
다시 얼마 뒤에는 판매원 아줌마가 안채로 나를 찾아 왔습니다.
"학생, 나 하고 이야기 좀 해요."
아줌마는 쭈삣쭈삣하며 무척 말을 꺼내기 어려워 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습니다.
"학생하고 사장님이 ... 그러니까 그냥 모자간이 아니고 ... 음... 말하자면 그 좀 이상한 관계로 ... 막말로 하면 부부처럼 그렇게... 그게 사실이예요?"
"아니, 누가 그따위 말을 해요?"
나는 화 난 표정으로 반박했지만 가슴이 철렁하고 얼굴이 확 달아 올랐습니다.
"지꾸 그런 소문들이 들려요. 그래서 나는 학생이 얼마동안이라도 이 집을 떠나 있거나 ... 하여튼 무슨 조치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
"그런 말을 왜 저한테 하시죠?"
나는 당장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이렇게 물었습니다.
"물론 사장님 한테 먼저 말을 했죠. 그런데 두어번 말을 해도 아무 반응이 없으니 답답해서..."
"엄마와 저 사이는 아무 일도 없어요. 그런 소문을 내 놓는 사람을 알면 입을 찢어 놔야지."
나는 대화를 끝내고 싶어 다시 화 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저 아무 일 없이 지나 갔으면 좋으련만... 참 두분이 다 더 없이 좋은 사람들인데..."
아즘마는 혼잣말 처럼 말하며 그 자리를 떴습니다.
그러나 아줌마의 바램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아니, 겨우 며칠 후 끝 내 일이 크게 벌어진 것입니다.
동네의 중년부인 5~6명이 점포에 들이 닥쳐 엄마에게 "더러운 년!" "아들과 붙어 먹은 년!" "동네가 창피해 어떻게 자식들을 키울 수 있겟느냐?" 고 막말을 해대며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 소동을 알고 내가 뛰어 나가자 그 때까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수모를 당하고 있던 엄마는 필사적으로 나를 밀어 내며 울부짖었습니다.
"민수야, 나가! 제발 여기서 피해! 더 큰 일 벌이지 말고 빨리 들어 가! 안 그러면 내가 여기서 죽을꺼야!"
"흥, 이게 에미 붙어 먹은 그 잘난 아드님인가?"
"동네를 모두 더럽혀 놓고 저 뻔뻔스런 얼굴 좀 봐."
부인네들은 나한데도 시비를 걸어 왔습니다. 나는 치욕감에 몸을 떨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그러나 "안 돼!" 라며 더욱 절망적으로 변하는 엄마의 얼굴이 들어 왔습니다. 엄마의 말과 판단이 옳았습니다. 여기에 내가 끼어 들면 정말 사태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나는 도망치듯 재빨리 몸을 돌려 피했습니다. 내 행동이 정말 비겁해 보였지만 지금도 그 때의 내 처신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여인들은 끝까지 잔인했습니다. 비닐봉지에 똥물을 담아 와서 점포 안에 뿌리기까지 했답니다.
구경꾼들이 점포 앞에 몰려 들어 역시 손가락질과 욕설을 퍼부었고 경찰까지 찾아 와서 엄마를 경찰서로 연행하려 했답니다.
엄마는 그 경황중에 막내 외삼촌을 불렀습니다. 엄마의 그 선택이 당시로서는 최선책이었을 것입니다.
신문기자의 끗발 때문인지 외삼촌은 그곳 파출소장을 대동하고 와서 사태를 겨우 수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나는 생활의 기반이며 사랑이 싹트고 자랐던 보금자리에서 쫒겨나듯 떠나야 했습니다.
가을은 이미 지났고 우리는 황량한 겨울 벌판에 서 있게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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