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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단검

[창작] 단검을 올리며...

근친방장이신 인중인님께 감사드리며 글을 시작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 상상의 바로일뿐 특정사실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시대 배경과 검이라는 특징으로 무협물로 보시면 안 됩니다.
가능한 빠르게 전개할 작정이며 이번편에는 야한 내용은 없습니다. 다음편부터 야해질 겁니다. 2000년 10월 2일 마이니어7이

[창작]단검

제 1 장 , 태성촌

궤상봉과 관모봉 사이에 자리한 자그만 마을인 태성촌은 잘 되어야 육십호가 될까 말까 했다. 그나마도 호란이 있기전에는 십여호 여남이 모여서 사는 사냥꾼의 마을이었다.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아 곡식을 심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늘 물이 모자르고 주위엔 짐승들이 많아 일찍부터 주변 사람들은 사냥을 하면서 살아왔었다.
육십여호가 모여사는 지금도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화전을 일구어 물이 없어도 가능한 작물을 조금씩 심고 있지만 대부분은 산의 약초를 캐거나 사냥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모든게 부족했고 부족한 물건을 사러 나가는 것도 수월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대부분 자급자족 할 수밖에 없었다.
태성촌에서 가까운 관이라고는 족히 사십리는 가야 만날 수 있었고, 벼슬아치는 고사하고 그 흔한 반열마저 없었다. 마을엔 촌장이 모든 대소사를 다 처리헀기에 분란도 없었고 도둑도 없어 사람들은 모두 순박했다.
개마고원을 지나는 북풍이 매서워 겨울이면 방안에 얼음이 맺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 주변의 가옥은 모두 움배지붕이라 불리는 특이한 구조를 했다. 지붕을 담과 연결하고 한 지붕아래 방이며 외양간이 모두 들어있었다. 방은 부엌을 중심으로 장방형으로 퍼지는데 보통 두 개의 방과 외양간이 전부였다. 벽도 제법 반듯한 나무를 베어다가 기둥을 삼고 외벽을 돌로 쌓아 만든후 안에는 진흙과 엉겅퀴를 뒤섞어 두껍게 붙인 것이 고작이었다. 겨울이면 담밖에 쌓인 눈이 집에서 불을 떼도 녹지않았고, 어떤때는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지붕이 무너졌다.
가축이라고 해봐야 마을을 통털어 몇마리의 닭과 개가 전부였다. 가끔은 밤을 틈타 호랑이와 늑대등이 마을 어귀까지 오기도 했지만 마을을 빙둘러 쳐놓은 덫이 두려워 인가까지는 들이닥치지 못했다. 이렇게 세상과 동떨어진 이곳에도 세상에 부는 바람은 어김없이 스치고 갔다.

호란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 곳곳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남아있었다. 촌민들이 직접 오랑캐와 싸우지는 않았지만 두 번의 전쟁통에 전쟁과 약탈이 심했던 서쪽에서 많은 유민들이 몰려들었다. 그로인해 마을의 모습도 변하여 이제는 육십에 가구가 사는 제법 큰 마을이 되었다. 게다가 이주민들은 대대로 농사를 지어 왔기에 사냥보다는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마을 어귀에 서서 들으면 어디선가 소울음 소리가 들리곤 했다.
처음 외지인들이 들어왔을 때는 마을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않아 마을 이곳 저곳에서 원주민과 이주민간에 다툼도 끊이지 않았었다. 그러다 강건너에 중국인들이 마을을 형성하자 다툼의 소지가 내부에서 외부로 변해갔다. 강이 얼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겨울이면 중국인들이 자기집 드나들 듯 강을 건넜기에 가끔은 관군들도 강어귀에 배치되어 경계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워낙 산골이라 강을 건넌 중국인들이 이곳까지 오지는 못했었다. 다만 강을 건너기가 힘겨워지자 중국인들은 산을 넘기 시작했고 산을 넘은 그들중 일부가 가끔씩 태성촌에 모습을 들어냈다.
마을에 나타난 중국인들은 물건을 바꾸길 희망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보이기만 해도 문을 걸어잠그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을 걸어오던 중국인이 남정네가 없는 집을 발견하면 여자들을 욕보이고 물건들을 훔쳐 달아났기에 마을 사람들의 경계의 눈빛은 더해갔다. 특히 전쟁터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중국인이라면 자다가도 이를 갈 정도로 싫어했기에 길이라도 잃은 중국인이 마을 어귀에 나타나면 여지없이 맞아죽곤 했었다.
호란이 끝나고 마을이 제법 커지기 시작하자 화적이다, 산적이다 하는 무리들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레 촌 주위에 성처럼 높은 담과 튼튼한 문을 만들고 집과 곡식을 지키기위해 점차 하나로 융합되어 갔다. 그러다 보니 마을의 원주인보다도 유민들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고 원주인들은 그들이 무서워 마을을 떠나 따뜻한 남쪽으로 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그들중 더러는 유민들의 등살을 피해 마을을 버리고 깊은 산으로 숨어들기도 했고 사냥꾼이 되기도 했다.

연화의 집도 마을의 다른 유민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연화의 아비와 어미의 고향은 여기서 훨씬 서쪽으로 의주에서 멀지 않다고 했다.
연화의 엄마인 순녀는 아직 피지도 않은 열여섯에 시집을 와서 그해 첫째인 달서을 낳고, 꽃다운 열여덟에 연화를 낳았다. 그러나 연화가 태어나던 그 해는 호란이 일어나기 몇 해 전이었다. 당시 조정은 명을 도와 오랑캐를 쳐부순다며 곳곳에서 군대를 모집했다. 각 군영에서 병사들을 모아 의주에서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군공을 세워 출세를 원했던 무수한 사람들이 의주로 모였고 그들중 만복도 있었다.
"임자! 조금만 고생하구려. 내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올 테니..."
만복이 군대를 따라 나선다고 하자 순녀는 눈앞이 캄캄했다. 이제 겨우 젖을뗀 세 살박이와 아직 젖도 못먹는 어린 것을 두고서 서방이 군대를 간다니... 그런 순녀의 마음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자신에게는 쓰러져가는 가문을 다시 일으켜야할 중임이 있다고 만복은 생각했다.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운다면 자신은 다시금 군록을 먹는 양반이 될수 있다는 생각에 만복은 모든걸 뒤로하고 말에 올랐다. 그는 너무도 당당하게 말했다.
"이번 싸움은 금세 끝날게요. 명나라에서 군대를 보내 함께 한다니 오랑캐들이 무엇을 할수 있겠소. 하하하! 내 금세 다녀 오리다."
그렇게 혈기왕성하게 만복은 출정했지만 떠난 지 한달도 못되어 돌아와야만 했다. 한명의 첩자를 쫓다가 말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것이다. 만복이외에도 여러명이 다쳐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더러는 팔을 잃거나 다리를 잃고서 소달구지에 실려 돌아왔다. 비록 팔과 다리를 잏은건 아니지만 그들의 부상보다 만복의 마음의 상처는 더 컸다. 이번이 자신의 살아생전 마지막 기회였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을 어귀에는 여러사람들이 나와서 지나는 행렬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만복은 아무도 몰라봐 주기를 바랬지만 어디선가 낮익은 목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 들었다.
"아니! 저 사람 달서 아비가 이닌가?"
그 뒤 만복은 와병을 이유로 집밖을 나서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귀에는 전쟁터의 소식들이 하나하나 들어왔다. 큰 싸움에서 명나라군이 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을때면 자신이 한스러웠다. 그러다 이내 조선군마저 패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만복은 믿지 않았지만 점점 늘어나는 부상자들을 보면서 사실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어느날 조선군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문이 돌 무렵 만복의 일가는 더 이상 그 마을에 없었다. 그렇게 사라진 만복이 태성촌에 나타난 것이다. 그때 연화는 돌도 되지 않았었다.
당시만 해도 만복은 가세가 기울어 양반의 대접을 받지는 못했지만 대대로 무장을 배출한 명문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전장에 나가 싸워보지도 못하고 돌아왔으니 그 화가 어떠했겠는가. 만복은 허리가 나아지자 온 가족이 야반도주를 하듯 마을을 떠나 벽지로 찾아들었던 것이다. 그들이 가진 거라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귀-전장에 나갈 때 산 군마를 나귀로 받아왔다-와 이불이 전부였다.

처음 몇 년은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지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반열이라고 죽어도 일을 안하려는 만복 때문에 순녀만 고생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해 전쟁이 벌어지고 여기저기서 유민들이 들어오자 조금씩 사정이 나아졌다. 피난을 온 유민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준다고 설치던 만복이 그들을 돕는다며 나귀를 이끌고 사십리길을 걸어 진서까지 물건을 사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허리도 아픈 양반이 어디를 가신다고 그러세요?"
태성촌에 들어와 처음으로 바깥나들이를 간다는 만복에게 순녀가 물었다.
"내 비록 아프기는 하지만 방구석에 쳐박혀 세상을 너무 잊었으니 몇일 바람도 쐴겸 휭하니 다녀오리다."
"여기서 진서까지는 사십리 길이 넘는 다구요. 그런데 무슨 득이 있다고 거기를 다녀와요?"
만복은 순녀의 앙칼진 소리에 그저 말없이 하늘만 보았다. 처음 자신에게 시집와서는 가난해도 인정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이리도 박하게 구니 마치 자신이 이렇게 만든 듯해 가슴이 아팠다.
"그렇지만 똘이네를 좀 보구려. 내일이 영친 제사라는데 상에 올릴 쌀 한되가 없다니 너무 딱하지 않소."
"여기서는 누구나 다 그렇잖아요."
순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이곳으로 이사와 처음 실망한 것이 일년에 쌀 한톨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어찌하리요 살을 사려면 누군가가 진서까지 다녀와야 하는데...
만복이 아내의 눈치만 살피며 조심스레 나귀를 쓰다듬고 있을 때였다. 나무로 모양만 갖춘 대문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아직 해가 뜨려면 조금 남은 이른 시간에 누군가가 찾아온 것이다.
"밖에 누구요?"
"아직 안 떠났구만, 날세 나야!"
만복이 문을 열자 그곳에는 촌장이 닭 두 마리와 보퉁이를 들고서 서 있었다.
"휘유! 늦은 줄 알고서 젠 걸음으로 왔더니 숨이 차구만!"
만복은 순녀에게 냉수라도 떠오라고 시키고 물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자네가 진서에 간단 말을 듣고 내 긴히 부탁좀 하러 들렀네."
"?"
촌장은 순녀가 건넨 냉수를 들이키고는 천천히 말했다.
"가는 길에 나귀위에 싣고가는 물건이 없다면 이것좀 가져다 자네가 좀 팔아주게."
"아니 촌장어른 가을이면 다들 장에 가는데...?"
"아 다음달이 우리 부친상이 아닌가? 제발 이것좀 가져다 쌀로 좀 바꿔 오시게. 이건 약소하지만 받아두고."
촌장이 건넨 건 닭 두 마리였다.
그날 순녀는 만복에게 적당한 일거리를 찾은 것이다. 만복이 자지고 있는 나귀를 이용해 마을에서 쓸 물건을 외지에서 사오게 했던 것이다. 처음엔 근처의 진서까지만 오고 갔지만 점점 멀리까지 나갔고 그만큼 구전도 많이 남았다. 만복도 처음엔 이 이 일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한번 두 번 다니다 보니 재미가 있었다. 큰 마을에 나가 흥정하는 것도 그렇고 여기저기의 소식을 듣는 것도 좋았다. 그리하여 만복은 장사를 업으로 삼았다.
만복은 순녀의 치료 덕분에 병신이 되지는 않았지만 허리를 다친 탓에 고목나무가 되어버렸다. 순녀는 태성촌에 살기 시작한 후로는 한번도 하늘을 볼 수 없었다. 그러니 무슨 재주로 별을 딸 수 있었겠는가. 서럽기 그지없는 생활이었다. 가난할 때는 몰랐지만 어느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만복과는 달리 모든게 재미가 없었다.
구르는 재주가 없으면 기는 재주라도 있다고, 만복은 차츰 장돌뱅이처럼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아서 남들 못지않게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특히 촌민들에게는 세상의 소식을 전해주고, 물건을 내다 팔아주는 거간과 같은 사람이었다. 마을사람 누구라도 만복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만복이의 비위를 건들여 젯상에 쌀밥을 올릴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만복은 모든걸 잊고서 돈버는 일만 하는 것도 아닌데 돈쓸 데가 없어서 그러는지 연화가 열살무렵에는 가세가 많이 펴졌다. 나귀도 두세마리 끌고 다니고, 종복도 데리고 다니는 거상이 되었다. 특히 자본이 많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도문후시로 물건을 팔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만복이 장사를 나가면 집안 일은 모두가 순녀의 몫이었다.
심지어 마굿간에 메어둔 노새 새끼의 먹이까지도 그녀가 책임져야할 일이었다. 만복이 장사를 다니는 삼월부터 시월까지는 달에 한, 두번 들리는 게 고작이었다. 집에 들려도 연화와 달서에게 진기한 노리개나 과자를 주고서 이삼일이 못되 다시금 장으로 떠나곤 했다. 그 때문에 마을에서 필요한 물건이나 내갈 물건을 맏아두는 일도 순녀의 몫이었다.

연화가 열넷이 되던 해, 순녀도 이제는 하늘을 바라보는걸 포기하고 장사치의 아내로서 때로는 객주로서 살아가는데 조금씩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사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보낸 세월이 십수년이다보니 자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여자나이 삼십이면 가장 색이 동할 때이니 가끔은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우울했다.
산에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5월 무렵, 만복은 한달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 몇일 후면 달서의 생일이라 일정을 앞당겨 태성촌에 돌아온 것이다. 집에서 이틀을 보낸 만복은 달서의 생일날 그를 불렀다. 달서가 방에 들어가 앉자 만복은 입을 열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 아비는 언제고 세상을 등지고 떠나갈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미 십수년 전에 오랑캐와 싸우다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도 이 모진 목숨을 끊지 못하고 지내는 것은 네 에미때문이 아니다. 바로 너와 네 동생 때문이다. 이제는 네가 가정을 꾸려도 될나이가 되었으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이는 구나."
자신의 말에 그저 눈만 크게 뜨고 바라보는 달서를 보면서, 만복은 봇짐에서 비단으로 감싼 물건을 꺼냈다. 비단이 펴지며 들어난 물건은 놀랍게도 검이었다. 고풍스런 모습에 겁집까지 화려한 것이 멋있어 보이는 단검이었다. 달서의 목에서 침넘어 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 검은 내가 최초로 사람을 죽이고 빼앗은 검이다. 당시 죽어가던 오랑캐가 절대로 놓지 않으려 했던 물건이다. 필히 귀한 것이라 여기고 소중히 간직하거라."
"예! 아버지"
달서는 단검을 받자마자 뽑아보았다. 검은 단검보다 약간은 커 보였지만 보통 검보다는 길이가 짧았고 폭이 두배는 되어 보였다. 게다가 두께는 얇았으며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
"왜 이 단검을 주는지 아느냐?"
만복의 질문에 달서는 대답을 못하고 쭈삣거렸다.
"언제고 네가 무언가를 끊어야 할 때 쓰라고 주는 것이다. 그 검의 검집에 쓰여있듯 그 검은 보통의 단검(短劍)이 아니고 단검(斷劍)이니라."
"!!"
"네 에미는 참으로 불쌍한 여자이다. 이제까지 나만 믿고 살았느니라. 이제는 네가 알아서 잘 모시거라. 아니다 싶으면 망설여서는 안되는 것임을 잊지 말고, 단칼에 끊듯 돌아서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예!"
만복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듣지 못한체 달서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옆집 똘이에게 단도를 자랑하고픈 마음뿐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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