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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인생 #2 - 늦어서 죄송합니다!

인생


제 2 장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오빠의 서랍을 뒤졌고 항상 엄마의 팬티가 한 두 벌씩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빠의 서랍 속에서 발견한 팬티들 중에는 내가 이미 엄마의 속옷 서랍 속에 있던 상자 안에서 본 것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새로운 것도 있었고, 심지어는 조그만 천조각이 끈에 연결되어 있는, 팬티라고 부르기조차 힘든 것들도 있었다.
나는 엄마가 오빠의 행동을 알고 있다고 확신을 하게되었다.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아빠를 위해서 그런 팬티들을 입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엄마의 속옷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직 오빠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오빠와 엄마의 비밀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도록 하고 싶지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단지 두 사람의 비밀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 남의 약점을 알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가학의 본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일주일 후 나는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엄마와 오빠만 두고 여행을 간다는 것이 왠지 싫었고 불안했지만, 가지 앓겠다고 고집을 부릴 적당한 변명거리가 없었다. 께름칙한 기분으로 출발했던 여행이지만 친구들과 수다 떨고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정도 기분전환도 되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불안감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엄마와 오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 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남녀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그 당시 나로서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고 어떤 모습일지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단지 영화에서 보았던 남녀가 부둥켜안고 키스를 하는 장면들이 엄마와 오빠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어렴풋이 상상을 하던 그 장면들이 내 머릿속에 구체화된 사건이 여행 마지막날 밤에 발생했다.

그날 밤에는 단짝으로 지내던 친구 다섯 명과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물론 서너 명은 조가 달랐지만 다른 급우들과 바꾸어 한 방에 모이게 되었다. 과자와 음료수를 사다 같이 먹으면서 밤늦도록 수다를 떨고 있었다. 자정이 다 되었을 때, 갑자기한 친구가 뜻밖의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야, 조용히 해봐. 내가 중대발표를 할게 있어."
수다를 떨던 다른 친구들이 모두 하던 얘기를 멈추고 그 친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우리들 얼굴을 하나나하나 쳐다만 볼 뿐 입을 떼지 않았다.
"무슨 얘긴데 그렇게 뜸을 드려? 빨리 해봐."
한 친구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너희들 비밀 지킬 수 있어?"
"얘가 무슨 얘긴데 이래? 어서 해봐."
또 다른 친구가 또다시 재촉했다.
"먼저 약속해, 비밀 지키겠다고."
"알았어, 약속할 테니까 얘기해봐."
"너희들도 약속할거지?"
그 친구는 대답을 안 한 친구들을 한사람씩 돌아보았다. 모두를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언의 약속을 했다.
"너희들 약속했다?"
그 친구는 다시 한 번 다짐을 받겠다는 듯 우리들에게 물었다.
"거 참 되게 뜸들이네. 그렇게 못 믿겠으면 하지마, 이 기집애야. 괜히 얘기를 꺼내 사람 궁금하게만 만들고 있어."
성질이 급한 한 친구가 쏘아붙였다.
"알았어, 하면 되잖아."
그 친구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답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그 친구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너희들 남자하고 키스해 본 적 있어?"
드디어 그 친구의 입이 열리면서 나온 질문에 우리 모두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질문 그 자체도 놀라웠지만 평소 얌전하고 조숙하던 그 친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이 너무 뜻밖이었다.
"그럼 넌 해 봤어?"
성질 급한 친구가 되물었다.
다른 친구들은 아무 말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친구만 바라보았다.
말을 꺼냈던 그 친구는 약간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어머!"
우리 모두는 모두 놀란 외침을 토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누구니? 누구야?"
"기분이 어땠어?"
"어디서 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그 친구를 재촉했다.
"어우-, 야-, 조용히 해, 다른 방에 들려."
얘기를 꺼낸 친구는 얼굴을 더욱 붉히며 불안한 시선으로 문을 쳐다보았다.
"알았어. 얘들아 우리 조용히 하자. 이제 얘기해."
한 친구가 흥분한 우리를 진정시키고는 그 친구에게 얘기를 계속하도록 했다.
"뭘 얘기해?"
그 친구는 마치 여왕이라도 된 듯 우쭐해했다.
"누구랑 했니?"
한 친구가 먼저 질문을 하면서 시작된 그 친구의 경험담을 나와 다른 친구들은 놀라움과 부러움을 느끼며 경청했다.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사건이었다. 요즘 애들은 성에 대해 일찍 눈을 뜨고, 사춘기도 일찍 오고, 여자들의 초경도 빠르지만, 당시의 분위기는 그렇지가 않았다.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이성과 격리된 채 관심만 가지고 있을 뿐 실제로 이성친구를 사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그랬다. 그러니 남자와 키스를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놀랍고 경이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한 친구의 키스경험담으로 시작된 우리들의 그날 밤 얘기는 결국 자연스럽게 남녀관계와 성의 문제로 옮겨가게 되었다. 한 사람이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저마다 주워들었던 얘기나 의학사전이나 여성잡지에서 읽은 성에 대한 내용을 마치 자신이 박사라도 된 듯 자랑스럽게 쏟아냈다. 심지어는 체위나 자위행위에 관한 이야기까지 거의 모든 것을 얘기하면서 우리는 그 밤을 꼴딱 새웠다.
그 날밤 나는 어렴풋이 짐작만 했거나 상상했던 남녀의 육체관계에 대해 확실히 알게되었고,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막연하게 느껴왔던 나의 불안감이 눈덩이가 커지듯 커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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