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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계약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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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준하는 수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들리는 배경 소리를 알아차리고서 지현이 아직도 모텔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왜 그녀가 자신에게 전화를 했는지 그 의미도 곧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젠장,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오늘 재수는 제 입에서 주인님의 정보를 꺼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해서 절 괴롭혔어요. 뭐 한 시간 동안 열심히 봉사를 해주긴 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끝낼 기척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비상 수단을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씨발, 죽인 거야?]


 


준화가 화난 목소리를 억지로 참으며 물었다.


 


[유감스럽지만 아직 살아 있어요.....기절을 시키기는 했지만 외상은 입히지 않았어요.]


 


지현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 지현의 말투와 음성에서 준하는 그녀가 상당히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 그 정도라면 굳이 전화를 하지 않고서 돌아와서 보고해도 되잖아.]


 


[그....그게....주인님이 허락해주신 정장이.....엉망이 되어 버려서....]


 


마침내 준하는 지현의 대답에서 전화를 한 이유와 그녀가 초조해하고 있는 이유 둘 다를 알 수 있었다.


 


[젠장.....널 데리러 가게 누굴 보내줄게. 무슨 모텔 몇 호실이야?]


 


준하가 내심 안도를 하면서 물어보았다.


지현이 대답한 모텔은 준하의 저택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비교적 번화한 동네에 있는 모텔이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밖으로 나가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뜨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알았어, 잠시 기다려.]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 순간 준하는 불길한 느낌을 감지하고서, [젠장, 끊지 마. 너 재수에게 더 이상 아무 짓도 하지 마.] 라고 다짐을 하자 지현이 수화기 너머로 꿀꺽 숨을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라고 지현이 피를 토하는 것 같은 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 이런 씨발, 진짜였던 거야? 한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찔러 본 건데, 지현이 년, 무슨 짓을 할 생각이었어. 이거, 진짜로 위험한데.....


 


준하는 순식간에 느꼈던 자신의 감이 적중했던 사실에 깜짝 놀라면서 지현과의 통화를 끊은 후 곧바로 다른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 그 근처에 살고 있는 것 같았었는데....당연히 차도 가지고 있고....


 


준하는 곧바로 그 남자를 떠올리며 휴대폰의 단축 버튼을 눌렀다.


몇 번 통화음이 울린 후 핸드폰이 연결되고 있었다.


 


[응? 무슨 일이야?]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준하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어이, 영감님. 지금 뭘 하고 있어?]


 


[뭐, 별로. 그냥 쉬면서 아까 얻었던 데이터를 좀 정리하고 있는 중이야.]


 


핸드폰 너머의 남자가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준하는 그 소리에 섞여 있는 희미한 소리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싸구려 스피커로 재생되고 있는 딱딱한 음질 속에서 날카로운 채찍 소리와 흐려진 비명 소리, 그리고 여자의 교성이 섞여서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와 함께 그 소리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준하는 통화 상대의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즐거운 목소리로, [후후후, 영감님, 아직도 쌩쌩한 걸. 설마 혼자서 딸을 잡고 있었던 거야?] 라고 물어보았다.


 


[바보 녀석, 착각하지 마. 이 내가 여자를 구하지 못해서 힘들어할 것 같나? 이건 아까 구했던 ‘명수의 파일’ 중 일부분이야. 어떤 여자들이 명수의 수중에 떨어졌는지 살펴보고 있었어.]


 


[후후후. 그렇게 화내지 마요, 영감님. 뭐 혼자서 즐긴다고 해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잖아요?]


 


준하가 여전히 야유를 하듯이 물어오자 통화상대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어쨌든! 무슨 일이야?] 라고 조금 화가 난 음성으로 물었다.


 


[어이, 어이, 그렇게 화내지 마요, 영감님. 영감님 아직도 그 ‘황제’라는 러브호텔 근처에 살고 있어요?]


 


[그래. 우리 집에서 5분 정도.]


 


[잘 됐네요. 오늘 영감님에게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하나씩 있어서 전화를 걸었어.]


 


[뭐야? 뭐 네 부탁이라면 싫은 일이라도 들어줄 수밖에는 없잖아. 그게 내 입장이니까....빨리 말해, 무슨 일이야?]


 


[일단 첫 번째 부탁인데....지금 내 노예가 조금 전 말했던 러브호텔 502호실에 있어. 그 년을 우리 집으로 좀 데리고 와 줘.]


 


[노예가 혼자서 러브호텔이라니.....‘대출’이야?]


 


[응? 뭐 그런 종류야.]


 


[젠장, ‘노예’를 직접 데리러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태라는 거지?]


 


기춘이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준하는 자신이 생각한 그 이상의 반응에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응? 맞아, 그런 종류야.]


 


[데리러 가야 한다는 뜻은 ‘처리’가 필요하다는 뜻이겠군. 젠장, ‘사고사’와 ‘병사’ 어느 쪽이야?]


 


기춘이 얼굴을 찡그린 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준하는 그 때서야 이런 일들이 예전에는 자주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그냥 단순히 데리러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되었을 뿐이야.]


 


그러자 기춘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다행이군. 뭐, 지금의 경찰은 옛날과는 달리 조금의 흔적을 가지고서도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니까. 게다가 아직 영향력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조사를 억지로 막을 수도 없어. 뭐, 그 정도라면 다행이야.]


 


[응? 그렇다면 예전에 영감님이 잘 나갔던 시절에는 경찰에도 영향력이 있었단 말이야?]


 


[응? 몰랐었어? 당연하잖아. 현무 씨가 죽었을 때, 같이 실종되었던 11명은 모두 다 경찰, 검찰, 판사, 변호사, 의사, 정치가, 조폭, 기업가 등 도내에서 그 업계의 최상위층 인사들뿐이었어. 모두 다 네 저택의 회원들로 현무 씨의 ‘신봉자’들이었어.]


 


기춘이 아주 당연한 일을 설명해주는 말투로 대답해주고 있었다.


 


- 젠장, 그 정도의 권력이라면.....할 수 없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을 거야.


 


[응? 왜 그래? 괜찮아?]


 


기춘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괜찮아요, 잠시 생각을 좀....뭐. 빨리 데리러 가 줘요.]


 


[얘기가 아직 안 끝났잖아. 좋은 일과 나쁜 일이라는 게 뭐야?]


 


기춘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 일단은 좋은 일부터 설명해줄게. 영감님이 우리 집으로 오면 곧바로 노예를 안게 해 줄게. 그렇게 되면 영감님은 정식으로 내 3번째 신봉자가 되는 거야.]


 


[그럼 고맙지. 그런데 나쁜 일은 뭐야?]


 


그러자 준하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고서 씨익 웃으며, [오랜만에 즐거운 일을 만끽하게 되었는데 곧바로 멈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말이야. 그 나이에는 한 번 싸고 나면 힘들지 않아요?] 라고 놀리는 것 같은 말투로 말했다.


 


[이런 개!......좋아, 네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지....내가 아직도 매우 잘 선다는 것을 말이야!]


 


기춘의 당황해하는 말을 들으며 준하는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젠장, 이제 할 말은 다 했지? 전화를 끊겠어.]


 


[킥킥킥....알았어요....빨리 데리러나 가 줘요.]


 


준하는 간신히 웃음을 멈춘 후 지현에게 또 다시 전화를 걸어 누가 데리러 갈 거라고 알려주었다.


 


*******************


 


준하와의 통화를 마친 지현은 휴대폰을 핸드백 안에 다시 넣은 후 완전히 걸레가 되어 버린 자신의 블라우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블라우스는 ‘분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완전히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타이트스커트도 그날 완전히 재수에게 건네주기로 되어 있었던 면으로 된 속옷도 블라우스와 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모텔의 마루에는 지현의 정장이었던 옷감 조각들이 마치 흩날린 벚꽃처럼 어질러져 있었다.


그 이유는 지현의 육체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현의 아름다운 새하얀 육체에는 무수한 빨간 색 선들이 여기저기 그어져 있었다.


바로 채찍의 흔적이었다.


지현은 조금 전 러브호텔의 객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재수에 의해서 옷 위로 수백 번의 채찍질을 맞았다.


그건 단순한 SM플레이가 아니라 심문을 위한 것이었다.


 


그 날의 재수는 처음부터 정상 상태가 아니었다.


재수는 준하의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는 지현에게 화가 치밀어서 결국 폭력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가 준비한 채찍은 SM용의 물건이 아니라 본격적인 승마용 채찍으로 와이어의 심지가 들어가 있었고 가죽 또한 길기고 얇은 물건이었다.


즉 인간의 피부 따위는 간단히 찢을 수 있는 물건으로 거기에 맞으면 느끼게 되는 고통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게다가 재수는 매우 초조해져서 완벽하게 이성을 잃고서 힘의 조절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 결과 면이나 비단으로 되어 있는 여성용 정장 따위는 조금도 지탱을 하지 못한 채 걸레 조각으로 바뀌어 버렸다.


준하의 연락처를 물어보면서 계속해서 채찍을 휘두르고 있는 재수....


그리고 입을 꼭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지현.....


결국 재수의 물음은 지현에 대한 매도로 바뀐 후 결국 비난의 화살은 준하를 향해 심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지현은 준하의 심한 욕설에 마음속으로 격렬하게 동의를 하면서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재수가 토해내고 있는 갖은 험담은 다름 아닌 지현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욕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재수가 고함을 칠 때마다 지현은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갈채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동일한 강도로 재수에 대해서 살의를 닮은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건 준하를 미워하면서 존경할 것을 강요받은 지현에게만 가능한 감정이었다.


그런 감정을 억지로 눌러서 참으며 지현은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하는 여자를 연기하면서 재수의 가학성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이게 마지막 의무라도 다짐하면서 재수가 하는 대로 채찍질을 맞고 있었다.


분노와 뜨거운 성적 흥분으로 재수의 채찍질을 더욱 더 열기를 더해갔고 결국 지현의 아름다운 얼굴에도 채찍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뺨이나 이마, 머리에도 채찍의 비가 내려서 지현의 아름다운 얼굴에 피로 물들었다.


 


그리고 재수는 지현의 육체를 장식하고 있는 피어싱 링에 눈길을 가져가서는 그걸 채찍으로 때려서 그녀의 몸에서 찢어내고 말았다.


그리고 마루에 들어진 그 피어싱 링을 세게 짓밟기 시작했을 때 지현의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던 욕설에 대한 갈채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대신 살의를 닮은 분노가 서서히 압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현은 처음 그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재수가 지적할 때까지 그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어금니를 삐걱거리며 눈물에 젖은 눈동자가 분노로 물들고 있다는 사실을 재수가 지적했을 때에야 지현은 처음으로 자신이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봉사를 하던 도중이었기 때문에 연기가 아닌 진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게스트에 대한 불경이었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당연히 끓어오르게 되어 있는 과거의 계약자로부터의 질책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놀라움과 의심, 한순간의 패닉.....


머릿속이 공백 상태가 된 순간 지현의 체내시계가 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마지막 의무가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린 순간 지현의 눈에 더욱 더 채찍질을 가하려고 하는 재수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런 재수를 본 순간 지현의 몸속에서 억누르고 있었던 감정이 폭발했다.


 


지현이 정신을 다시 차린 순간, 조금 전까지 바닥에 엎드려 있었던 자신이 방 한가운데서 큰 대자로 서 있으며, 눈앞에 있었던 재수는 3미터 떨어진 소파와 같이 넘어져서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현은 엎드려 있던 바닥에서 일어나자마자 재수의 배를 향해서 전력으로 뛰어가면서 동시에 양팔로 그를 세차게 밀었다.


그러자 그 반동으로 재수의 몸은 공중을 날아 3미터나 떨어져 있던 소파까지 날아갔던 것이다.


하지만 재수가 부딪힌 소파는 재수의 체중과 가속도, 힘을 모두 다 흡수하지 못한 채 관성의 법칙으로 뒤로 넘어갔고 당연히 재수는 그 소파에 앉아 있는 것처럼 천정을 보며 쓰러져 있었다.


 


지현은 자신이 한 일에 깜짝 놀라면서 재빨리 재수의 옆으로 다가갔다.


재수는 눈을 완전히 뒤집은 채 천정을 바라보며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지현은 재수의 맥박과 호흡을 조사한 후 상처나 출혈의 유무를 체크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체크를 마친 후 핸드백을 뒤져 핸드폰을 찾았다.


그리고 준하에게 지금까지의 사정을 말한 후 지시를 받자 그 때서야 다시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핸드백 안에 다시 넣은 후 졸도해 있는 재수를 다시 바라보며 준하의 말을 떠올렸다.


 


- 젠장, 주인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지현은 차가운 시선으로 재수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냉정함을 되찾고 나서야 지현은 자신의 왼손을 알아차렸다.


조금 전 준하에게 전화를 할 때도 지현은 오른손밖에 쓰지 않은 채 왼손은 꼭 주먹을 쥐고 있었다.


지현은 자신의 이상한 행동을 깨닫고서 왼손으로 의식을 향했다.


그러자 손안에 딱딱한 물건이 들어가 있는 것을 깨닫고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왼손을 펴 보았다.


그 안에서 몸에서 찢겨져 나간 3개의 피어싱 링이 어두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 피어싱 링을 바라본 순간 지현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며 헉 하고 숨을 멈추었다.


 


지현은 그 상태 그대로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서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계속해서 피어싱 링을 바라보고 있었다.


굴욕의 증거, 예속의 증표.....그런 의미를 지닌 피어싱 링.....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결혼자금으로 모으고 있던 자신의 저금으로 준하가 사준 링....


그런 괴로운 추억 밖에 지니지 않은 피어싱 링을 지현은 아무런 표정 없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이 기분은 도대체 뭐야?


 


무표정으로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지현은 막연한 의식 속에서 자문자답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 재수에게 채찍을 맞아서 피어싱 링이 몸에서 찢어지면서 공중으로 날아갔을 때 지현의 마음 속에 끓어올랐던 감정.....


그리고 마루에 떨어진 링이 유린당했을 때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


그건 틀림없이 재수에 대한 살의였다.


자기 자신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 지현은 계속해서 그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 문을 세게 두들기는 노크 소리가 들려와서 지현을 상념에서 깨어나게 만들고 있었다.


지현은 제정신을 차리고서 입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준하 님 부탁으로 왔어.]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지현이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서 시계를 바라보니 준하와 전화를 끊은 지 이미 15분 가까이 시간이 지나 있었다.


 


- 어? 나 몇 분 동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지현은 자신이 내내 서 있었던 시간에 깜짝 놀라며, [네. 지금 열게요.] 라고 말하며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입구의 문을 향해서 오른손을 가져가며, ‘어, 지금 목소리,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어.’ 라고 생각을 했다.


지현의 문이 손잡이의 락을 해제하자마자 문손잡이가 돌아가면서 문이 안으로 열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에엣!], [우옷!] 두 사람의 놀라는 소리가 서로 겹치고 있었다.


 


[김 기춘 실장님?]


 


[매우 심하게 당했네!]


 


깜짝 놀란 지현의 목소리와 온화한 기춘의 목소리가 서로 겹치고 있었다.


지현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감추면서 재빨리 몸을 옆으로 비켰다.


그러자 기춘이 그 틈 사이로 몸을 집어넣고서 재빨리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객실 안으로 들어온 기춘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후 기절해 있는 재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재수의 몸을 간단히 체크한 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새끼는 그냥 기절을 한 것뿐이야.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친 것 같아. 그런데 여긴 둘이서 같이 들어온 거야?]


 


지현이 기춘의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아니요, 언제나 따로 따로 모텔에 들어와서, 따로 따로 나가고 있어요.]


 


그러자 기춘은 고개를 끄덕이며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냉장고의 문을 열면서, [뭐, 계약자라면 그 정도의 상처는 금방 나을 거야. 흩어져 있는 옷가지는 전부 다 여기에 모아서 담아.] 라고 말하며 재킷의 주머니에서 커다란 편의점 봉투를 꺼내 지현에게 건네 주었다.


지현은 여전히 의문을 간직한 채 기춘의 페이스에 완전히 말려들어서 그의 지시대로 흩어져 있는 천 조각을 모아서 편의점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지현이 방안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기춘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뚜껑을 땄다.


그리고 맥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후 오른손을 또 다시 재킷 주머니 속으로 가지고 가서 이번에는 비닐 포장지에 밀폐되어 있던 새 주사기를 꺼내고 있었다.


기춘은 주사기 포장을 뜯은 후 바늘을 안으로 집어넣어 주사기로 뽑아냈다.


그리고 오른손에는 맥주가 들어 있는 주사기, 왼손으로는 캔맥주를 든 채로 재수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재수의 혈관 속으로 주사기를 찔러 넣어서 혈관 속으로 직접 맥주를 주입시켰다.


그러자 순식간에 재수의 뺨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면서 표정이 이완되고 있었다.


혈관 속에 알코올이 직접 주입되면 사람은 소량만으로도 만취하게 되고 만다.


기춘은 재수가 완전히 만취한 상태가 된 것을 확인하고 나자 이번에는 재수의 코를 붙잡고서 입이 크게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숨을 쉬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벌어진 입안에도 나머지 맥주를 부어 넣기 시작했다.


위안에 아무 것도 없는데 만취해 있으며 경찰의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맥주를 모두 다 안으로 부어버린 기춘은 빈 캔을 재수의 머리 근처에 놓아둔 후 이번에는 재수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곧바로 그가 원했던 핸드폰을 찾아낸 기춘은 휴대폰을 들고서 냉장고 옆의 전자렌지로 다가갔다.


그리고 전자렌지 속으로 핸드폰을 집어넣고서 타이머를 돌렸다.


이것으로 휴대폰은 완전히 망가져 버린다.


잠시 후 삐삐 하고 타이머가 울리자 기춘은 희미하게 뜨거워져 있는 핸드폰을 꺼내서 다시 원래 장소로 놓아두었다.


 


그리고는 아직도 완전히 넋이 나가 있는 지현을 바라보았다.


 


[음, 대충 끝난 것 같은데.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


 


기춘이 혼잣말처럼 그렇게 말한 후 몸을 돌려서 모텔의 입구로 향했다.


너무나 대담한 말과 행동에 깜짝 놀라면서 지현이 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복도로 나온 지현은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주저하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현은 그 순간 완전 알몸에 하이힐 차림으로 새하얀 알몸에는 무수한 채찍 자국이 나 있었고 양손에는 핸드백과 편의점 봉투를 붙잡고 있었다.


만일 그런 모습을 누가 보게 되면 곧바로 112에 신고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현의 생각을 알아차린 것처럼, [괜찮아, 이 몸을 따라와라. 여기 모텔은 나도 꽤 자주 이용하고 있으니까 감시카메라 위치는 모두 다 자세히 알고 있어.] 라고 씩 웃으며 지현을 유도해주기 시작했다.


지현은 기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대로 몸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실내의 계단실을 따라서 한 층을 내려간 후 그대로 그 복도를 지나,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적혀 있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한 층 더 아래로 내려간 후 거기서 다시 복도를 지나 비상 계단으로 나왔다.


과연 기춘의 말대로 그 동안 감시카메라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다.


 


[이 쪽으로.]


 


기춘이 지현을 이끌고 간 곳에는 한 대의 벤츠가 주차되어 있었다.


조금 낡은 모델이긴 했지만 깨끗하게 세차게 되어 있었고 잘 손질이 된 흔적이 보였다.


기춘이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며, [시트에는 앉지 않는 게 좋아, 그 모습이라면 싫어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띠고 말 거야.] 라고 설명해주었다.


지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뒷좌석의 바닥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고...고맙습니다.]


 


[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조금 있으면 오히려 이 몸이 더 고마워할 걸.]


 


기춘이 능글맞게 미소를 지으며 뒷좌석의 문을 닫은 후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잠시 후 둘이 탄 벤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러브호텔의 주차장을 나서고 있었다.


 


************************


 


기춘은 벤츠를 운전하면서 지현의 질문에 모두 다 대답을 해주면서 준하와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준하와의 만남부터 둘의 입장과 관계, 그리고 준하의 집안과의 관계, 그리고 명수와의 관계와 앞으로의 계획까지 모두 다.....


지현은 기춘의 설명을 들으며 깜짝 놀라고 있었다.


 


[그렇다면 김 실장님은 ‘신봉자’이면서 주인님과 동등한 입장이라는 건가요?]


 


[아. 맞아. 뭐, 그런 셈이야. 주인님의 명령이었으니까 나도 어쩔 수가 없어.]


 


기춘이 약간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네요.....그....그렇다면 저도 실장님을 주인님과 동일선상에 놓고 대해야 하는 건가요?]


 


지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사실 그건 기춘에게 있어서도 큰 문제 중 하나였다.


원래 신봉자는 계약자의 하위 그룹이었다.


그건 시스템 상 그렇게 되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야말로 차원이 서로 다른 생물로서의 순위와 같았다.


마치 인간과 길들여진 개 같은 관계.....


그렇기 때문에 여정은 절대로 우성에게 반항할 수 없었고, 우성 역시 절대로 지현에게 반항할 수가 없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수준의 레벨이 아니라 영혼이, 본능이 그렇게 느껴 버리는 것이다.


그 순위가 계약주의 명령에 의해서 반전되는 것이다.


그게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인지 지금의 기춘과 지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후후.....엄청나게 어려운 명령을 받아버렸군요.....동정해 줄게요, 실장님.]


 


지현이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그런 문제는 지금부터 생각해봐야지. 뭐, 이 몸과 지현 양은 잘 지내게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지현 양은 우성이라는 놈이 준하 님에게 반말을 한다면 어떻게 생각해?]


 


[진심으로 목을 졸라 죽여 버리겠어요.]


 


그러자 기춘이 한숨을 쉬며 낙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나도 진짜 싫어. 계약자님이 격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인님에게 반말을 하다니....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위산이 마구 마구 분비되고 있어.]


 


그러자 지현이 공감을 한다는 듯 대답을 했다.


 


[아. 나도 그 기분 잘 알아요. 실은 저도 같은 명령을 받고 있어요.]


 


그리고 자신에게 내려진, ‘지현의 마음은 준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과 ‘절대로 프라이드가 꺾이지 않는다.’라는 명령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기춘이 크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이 몸, 역시 여기서 멈춰야 할까? 저 녀석은 진심으로 싫어......본능인지는 몰라도 사람이 싫어하는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것도 주인님의 의지에요. 우리들은 주인님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어요.]


 


벤츠 안에 무거운 공기가 감돌면서 두 사람이 동시에 크게 한숨을 토했다.


그런 갑갑한 분위기 속에서 기춘이 운전을 하는 벤츠는 약 20분 후 준하의 저택에 도착했다.


벤츠가 정문의 현관에 가까워지자 대문이 삐걱거리며 죽어가는 소리를 토하면서 열리고 있었다.


벤츠는 안으로 들어가서 마당을 가로지른 후 저택의 현관 앞에서 멈추었다.


기춘은 차에서 내린 후 무의식적으로 마치 운전기사처럼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몸속에 스며들어 있는 신봉자로서의 의지가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곧 지현이 뒷좌석의 바닥에서 기어 나오며 기춘을 올려다보며, [실장님, 주인님은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아요. 실장님도 앞으로 절 주인님처럼 대해 주세요.] 라고 아이의 못된 장난을 비난하는 엄마의 목소리로 주의를 주고 있었다.


그러자 기춘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아...알았어, 앞으로 조심하지.] 라고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그런 기춘의 행동을 보면서 지현은 크게 한숨을 토하고 있었다.


 


- 그런 말투도.....이제 좀 더 조심해 주세요.


 


아직 기춘과 지현은 정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가 아니었는데도 그 정도였다.


실제로 두 사람이 직접 연결이 되고 나면 그 강제력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지금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기춘은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무거워도 이제 기춘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직 연결이 되지 않는 신봉자는 그 욕망이 끊어졌을 때 최후를 맞이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 사실을 이 시점에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관계자 전원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잠시 후 지현의 안내로 기춘이 현관 안으로 들어가자, [어서 오십시요.] 라는 떨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크게 인사를 하며 마중을 나와 주고 있었다.


지현은 마치 물건을 보는 것 같은 차가운 눈으로, 기춘은 애완동물을 평가하는 눈빛으로 현관 앞에 머리를 조아린 채 엎드려 있는 요염한 피부의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조 여정이었다.


여정은 대리석의 마룻바닥 위로 알몸으로 엎드려서 마치 공포심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 여정을 내려다보고 있던 지현의 차가운 시선이 어느 시저에서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지현의 온몸에서 무거운 분위기를 강요하는 기운이 자욱하게 퍼져 나오며 실제로 현관의 온도까지 몇 도 정도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여정은 그 기척만으로도 지현의 분위기 변화를 알아차리고서 온몸을 더욱 더 작게 부르르 떨고 있었다.


 


지현이 여정을 향해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간 후 작은 목소리로, [그것? 어떻게 된 거야?] 라고 물어보았다.


 


[히익!]


 


여정은 지현의 질문에 크게 숨을 삼킨 채 온몸을 더욱 더 강하게 떨면서, [죄.....죄송합니다....주인님께서 오늘만....] 라고 쉰 목소리로 사죄를 하며 변명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지현은 여정이 목에 감고 있는 목걸이를 분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그래....그 태도....예의는 잘 알고 있군.....좋아, 주인님이 허락해 주었다니 오늘은 용서해주지. 하지만 조금이라도 상처를 내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라고 낮은 목소리로 고했다.


 


[아앗! 네엣! 절대로 손상시키지 않겠습니다!]


 


여정이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딱딱한 목소리로 맹세를 했다.


여정이 떨고 있는 이유.....


그건 준하가 가벼운 기분으로 여정에게 걸치게 한 목걸이가 원인이었다.


계약자에게 있어서 계약주가 준 것은 무조건 엄청난 보물로 간주되었다.


그건 계약자 본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물건이든 상관이 없이 자동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게 되어 있었다.


여정 자신도 그걸 이해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지현의 목걸이를 자신이 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지현이 어떻게 나올지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여정과 지현의 관계는 신분 차이가 두 단계나 차이가 났다.


그 관계는 귀족과 노비 정도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지현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준하가 허락해주었다고 해도 지현이 납득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게다가 지현은 그날 피어싱 링까지 찢어져 나가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는 마그마처럼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지현은 솟아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힌 후 관자놀이를 세게 누르며 여정에게서 억지로 눈을 떼어냈다.


 


[주인님은 거실에?]


 


그녀가 작고 낮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억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네, 거실에 계십니다.]


 


여정이 두려운 목소리로 대답하자, [뭘 하는 거야? 빨리 손님을 안내해.] 라고 화가 난 목소리로 여정을 꾸짖었다.


 


[히익....죄....죄송합니다.]


 


여정은 즉시 뛰어오르듯이 바닥에서 일어선 후 마치 용수철 인형처럼 세차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정이 기춘에게 인사를 했지만 기춘의 귀에는 그 말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뜬 채 얼굴에는 놀라운 표정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순간 기춘의 옆에 서 있던 지현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정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그 순간 여정의 가슴의 문양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 뭐야, 저 문양? ‘칠흑’이잖아?


 


기춘은 처음 보게 되는 문양의 색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 뭐야? 어째서 제물에 신봉자와 같은 문양이?


 


지현 역시 자신도 모르는 문양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여느 때처럼 문양의 의미가 이미지로 떠오르면서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놀라고 있는 기춘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들어 올려.] 라고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지현의 명령에 여정은 곧바로 상체를 일으켜서 두려운 눈으로 지현을 바라보았다.


지현은 여정의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의 유방으로 손을 뻗은 후 손끝으로 문양을 어루만졌다.


 


[후후. 상당히 좋은 것을 받았군요.....‘제물’의 완성형이라니.....주인님, 굉장한데요....수백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것을 이렇게 빨리 만들다니.]


 


지현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마치 노래하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지현의 손이 여정의 풍만한 유방을 세게 붙잡고 짓이기면서, [이 문양이 나온 이상 넌 더 이상 사람이 아니야. ‘살로 된 정액 처리 인형’일 뿐이야. 꾹 참고 열심히 노력해요. 그래서 그 분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세요.] 라고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여정에게 말했다.


 


여정은 유방의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양쪽 가랑이를 세게 오므리고 있었다.


 


[네....몸과 마음을 바쳐.....위로를 하겠습니다.]


 


그 순간 지현의 말을 모두 이해한 채 여정이 온순히 대답했다.


자신의 육체가 지현이 말한 그대로의 인형이 되었으며 그 목적도 역할도 몸에 새겨질 정도로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춘은 두 미녀의 대화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현이 고개를 돌린 채, [김 실장님도 빨리 이런 물건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점점 더 차이가 나 버릴 거예요.] 라고 요염하게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기춘은 꿀꺽 침을 삼킨 후 간신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이미 여정의 음란함에 눈에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3사람이 거실에 도착하자, 준하가 의젓하게 맞이해주고 있었다.


 


[뭐야? 그 영감탱이, 완전히 미쳐 버렸던 거야? 그렇게 얼굴에까지 상처가 나게 만들다니....]


 


지현의 비참한 모습에 준하는 초조함까지 비추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대출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지현은 완전히 피해자의 입장이었지만 그대로 준하에게 사죄를 하고 있었다.


준하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그것이 바로 죄였으니까....


지현은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준하의 앞에 엎드려서 준하가 내릴 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준하는 곧바로 화난 표정을 풀어버리며, [젠장, 모처럼 영감님이 진짜 우리 동료가 되는 날인데 이런 귀찮은 일까지 해야 하다니...] 투덜투덜 대면서 지현의 머리카락을 덥석 붙잡고서 난폭하게 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건 겉보기만으로 준하가 거칠게 힘을 주지 않고 있었으므로 지현은 당황해하고 있었다.


 


- 어, 뭘 하려고?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 해소되기도 전에 준하의 손이 머리카락을 놓아주고 있었다.


 


[이런 씨발! 머리도 상처투성이잖아!]


 


준하는 지현의 머리카락을 헤치면서 두피에 나 있는 채찍 자국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런 준하의 행동에 지현은 더욱 더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머리카락을 밀어 헤치며 상처를 찾고 있는 그의 손이 다정했던 것이다.


마치 지현의 상처를 돌봐주듯이 손끝으로 상처를 부드럽게 문질러주며 조심스럽게 상처의 상태를 조사하고 있었다.


지현의 육체는 그것만으로도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마치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현의 머릿속은 커다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어? 왜? 왜, 주인님이 화를 내지 않는 거야? 에?


 


하지만 당황해하고 있는 지현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준하의 손은 정수리에서부터 이마, 뺨을 따라 이동한 후 이윽고 풍만한 유방으로 다가갔다.


 


[씨발! 유두까지 끊어지고 말았잖아?]


 


준하가 놀라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지현은 몸을 움찔 떨면서 옆에 있던 핸드백으로 손을 뻗어서, [죄....죄송합니다.....채찍으로 몸에서 떨어져 나가 발로 마구 밟혀서.....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라고 가방 안에서 손수건으로 소중하게 쌓여 있는 부서진 피어싱 링을 꺼냈다.


준하는 지현의 손에서 손수건에 쌓인 피어싱 링을 건네받은 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혀를 찬 후 기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할아범. 바로 하게 해 준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없어. 이 년의 복원이 먼저야.]


 


준하가 무뚝뚝하게 그렇게 말한 후 지현을 바닥에서 일으켰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지현은 멍한 얼굴로 준하와 기춘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지현은 몰랐던 것이다.


기춘이 자신들의 동료가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방법까지는 아직 그녀의 지식 속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당황해하고 있는 지현을 보며, [아, 괜찮아. 이 몸도 그렇게 바쁘지 않으니까.] 라고 말하며, 지현의 시선에서 고개를 돌린 채 머리를 긁적거렸다.


기춘은 지현의 태도와 표정에서 그녀가 그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기춘의 말과 태도, 준하의 말, 그런 정보를 통해 지현은 자신이 지금부터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이해하고서 급속도로 침착함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침착해지고 나서도 준하의 태도만 유일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현은 머릿속에 계속 의문을 간직한 채 준하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러자 준하가 당황해하고 있는 지현은 똑바로 바라보면서, [왜? 내가 이런 식으로 취급하는 게 싫어?] 라고 야유를 하듯이 물었다.


그 음성, 태도, 말투....그 모두가 지현에 있어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 에? 뭐야? 이거....무슨 뜻이야?


 


지현이 더욱 더 의아해졌을 때, 갑자기 준하가 그녀를 꼭 껴안고서 입술을 세게 밀착시켰다.


그리고 더욱 더 놀라는 지현이 미처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준하의 혀가 지현의 입술을 세게 벌리고서 입안으로 들어와서 구강을 마구 유린하기 시작했다.


그런 혀의 움직임에 지현은 곧바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예전처럼 마치 성희롱을 하는 것처럼 혀를 마구 주물러대는 것 같은 움직임이 아니라 부드럽게 어루만지듯이 혀를 문질러주고 있었다.


그 입의 움직임만으로 지현의 머릿속이 핑크색의 안개에 휩싸인 채 의문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 으흐으으응....아응....주인니이이임....이런....혀놀림은....반칙이에요오오옷.....


 


지현의 전신이 순식간에 이완되면서 얼굴이 쾌감으로 녹아내리자 준하는 지현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저기, 급하다면 그걸 좀 가지고 놀고 있어. 음료수는 맥주밖에 없지만 원하는 대로 마셔도 좋아.]


 


준하가 기춘을 바라본 후 여정과 냉장고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기춘이 우물쭈물 대답을 하자 준하가 씩 웃으며, [그 년으로 너무 싸면.....실전에서 설 수 없으니까 조심해, 영감님. 나이가 있잖아.] 라고 야유를 하듯이 말한 후 지현을 데리고 소파로 돌아갔다.


 


[멍청이! 쓸데 없는 참견이야!]


 


기춘은 준하의 조롱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욕을 퍼부은 후 여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곳에서 제일 아래의 입장에 있는 여정은 어느 새 기춘의 발밑에 똑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손가락 세 개를 보지 속으로 깊이 찔러 넣은 채 애교를 떠는 것 같은 젖은 눈빛으로 기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 음란한 분위기, 뜨거운 시선....그 어떤 것도 압도적으로 음란하고 선정적인 모습이었다.


남자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육체.....


그렇게 말하는 표현이 꼭 어울릴 정도로 여정의 자태는 매우 요염했다.


기춘은 폭력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여정의 뛰어난 성적 매력에 꿀꺽 침을 삼킨 후 뜨거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루즈를 바른 것처럼 주홍색으로 빛나고 있는 그녀의 입술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부디.....원하시는 대로 절 사용해 주세요.]


 


여정이 기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고개를 든 채 상체를 숙였다.


기춘은 결국 그녀의 말과 행동에 조금의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녀의 알몸을 향해 손을 뻗었다.


 


4-19.


 


여정은 축축하게 젖은 뜨거운 눈동자에 애교를 가득 채운 후 눈앞에 있는 초로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있는 초로의 남자는 푸근푸근한 육체에 다정한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남자의 분위기는 매우 다정하고 상냥하며 부드러웠다.


얼굴도 나이에 비해 주름이 적어서 정력적인 인상이 강하게 느껴졌지만 동그란 코와 뺨, 큰 눈이 마치 어느 상가에나 있는 ‘마음이 약하고 사람이 좋은 사장님’ 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초로의 남자의 모습을 처음 봤음에도 여정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 아으으윽....온몸이 뜨거워....자궁이....꿈틀꿈틀.....고동치고 있어. 갖고 싶어....이 분의 자지를 갖고 싶어.....날 완전히 엉망이 될 때까지 휘저어주었으면 좋겠어.....아윽....부탁이에요....비천한 이 년의 보지를....박아 주세요....


 


여정의 머릿속에는 기춘의 자지가 몸속을 격렬하게 휘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폭발적으로 부풀어 오르면서 도저히 가라앉힐 수 없는 욕정과 뒤섞인 채 마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원래 여정은 남들보다 조금 성욕이 강한 편으로 섹스에 대해서도 특별히 꺼려하거나 싫어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우성의 독사 이빨에 걸려서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갔지만 원래 음란한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여정은 성격이 좋아 보이는 초로의 남자를 바라보면서 마치 최음제를 잔뜩 복용한 음란한 여자처럼 억누를 수 없는 음욕으로 온몸이 지배되고 있었다.


자궁을, 직장을, 목구멍을, 몸속의 구멍이라는 구멍을 모두 다 세게 박아대면서 마구 유린을 하면서 자신을 가득 채워주기를 마음속 깊이 열망하고 있었다.


아니 열망을 넘어서 온몸이 뜨거운 욕정에 휩싸인 채 간절히 갈망하고 있었다.


여정은 뜨거운 성적흥분으로 바싹바싹 타들어가고 있는 목구멍에 몇 번이나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제발.....어떻게 해서든 절 사용해 주세요....]


 


마치 진실한 속마음을 털어놓듯이 여정은 뜨거운 한숨을 토해내며 간절히 애원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말은 듣는 사람의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음란하고 괴로웠으며 정확히 여정의 생각을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여정은 자신의 말소리를 들으면서 자기 자신도 그 음란함에 자궁을 움찔 수축시키고 있었다.


 


기춘은 여정을 끌어당기며 마음속으로 후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준하와 지현의 의식이 자신에게서 멀어지자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던 압력에서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급이 서로 꼬인 것에 대한 압박감이 사라지자,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이 원하는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극한까지 밀려왔던 긴장감이 사라지자 편히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준하가 기춘에게 내린 명령은 그 정도의 긴장감을 항상 기춘이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 젠장....이 저택으로 다시 돌아오니까.....예전의 일이 떠오르는 군....역시 긴장이 돼.....


 


게다가 준하의 저택으로 들어오자 회사에서 준하를 만날 때 느꼈던 중압감을 배 이상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중압감이 바로 눈앞에 있는 여정을 본 순간 단숨에 완화가 되고 있었다.


‘유린을 하기 위한 여체, 욕망의 배출구’, 그런 의미를 지닌 제물이 지금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의 눈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제물은 아직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극상의 음란함을 발산하면서 ‘칠흑의 문양’을 지닌 ‘완성형’인 것이다.


 


기춘의 머릿속에 예전에 스스로가 만들어 낸 제물과의 나날들이 떠올랐다.


그것을 능가하는 쾌감을 맛볼 수 있어.....그런 예감이 기춘의 손이 부르르 떨리게 만들었다.


사람의 원초적 욕구라고 할 수 있는 욕망, 식욕, 수면욕, 성욕....


그 중에서도 특화된 욕망을 한계까지 경험한 적 있는 기춘으로서는 그것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성적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흥분, 혹은 공포심과 망설임.....


그건 마치 동전의 앞뒤와 같았다.


사상의 그림자와 빛....


같은 행위지만 행하는 사람의 그 때 그 때의 생각으로 바뀌어버리는 결과....


그런 상념들이 기춘의 뇌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 젠장.....이제 이 몸에게는 더 이상 다른 길이 없어.....


 


기춘은 스스로 마음의 결심을 한 후 여정의 부드러운 피부로 손을 가지고 갔다.


 


한편 지현은 지금 당황하고 있었다.


1인용 소파에 앉은 준하가 상체를 앞으로 쑥 내밀고서 지현의 육체를 꼭 껴안고서 뺨이나 이마, 얼굴 전체를 입술로 문질러주면서 혀로 채찍의 흔적을 핥아대고 있었다.


물론 평소와 마찬가지로 혐오감과 오욕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천천히 고기를 굽는 것처럼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몸의 중심부에 뜨거운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열기가 계속해서 끊어 오르는 쾌감을 눈뜨게 만든 후 온몸이 성감대로 바뀌고 있었다.


역시 평소와 마찬가지로.....


쾌감에 대한 기대감이 머릿속을 뿌옇게 흐려지게 만들면서, 행복감과 희열이 몸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온몸을 다 받쳐서 봉사를 하고 싶다는 소망이 멈추지 않게 되는 것도 역시 평소와 마찬가지였다.


 


오직 한 가지 다른 점은 준하의 애무 방식이었다.


준하는 지현이 마치 섬세한 유리인형인 것처럼 정성을 다해 부드럽고 상냥하게 어루만지면서 그녀를 꼭 껴안아주고 있었다.


지현의 육체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주인님의 터치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강렬한 쾌감이 절대로 억누를 수 없는 압력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온몸이 뜨겁게 녹아내려서 줄줄 흘러내리는 액체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부가, 근육이, 뼈가, 온몸의 모든 구성 물질이 축 늘어져 내리고 있었다.


 


지현은 그런 쾌감에 몸을 담그면서, 그 쾌감에 몸을 완전히 다 맡길 수가 없었다.


왜냐 하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현은 자신의 주인님이 어떤 남자인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악의’라는 덩어리를 ‘간교’라는 도구로 실제적인 형태로 만든 후 ‘혹독과 박정’이라는 장식으로 채색한 후 ‘추악’을 구현화시킨 남자.....그게 바로 정 준하라고 하는 지현의 ‘계약주’였다.


 


- 아윽....주인님.....뭘 하려고 하는 마지막 술잔인가요? 이건 어떤 벌인가요?


 


지현은 약해져가는 의지력으로 쾌감에 빠져들려고 하는 자신의 육체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준하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저항이라고 말하기는 너무나 약한 논쟁.....


하지만 지현에게는 그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작은 저항마저도 지현의 머리를 채우고 있는 다른 의식이 억누르고 있었다.


 


- 모든 것은 주인님의 의지, 주인님이 원하는 대로, 주인님에게 몸을 맡길 것, 주인님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반응을 할 것.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런 이미지들이 불꽃처럼 펼쳐졌다가 이내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사라질 때에는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세차게 밀려와서 지현을 더욱 더 밀어붙이고 있었다.


지현은 당황스러움이라는 마지막 저항으로 그 욕망을 멈추려고 했지만 바로 그 순간, [뭐야? 내가 이렇게 대해주는 게 싫어?] 라고 준하가 야유를 하듯이 물어왔다.


그 순간 지현의 저항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해서 지현은 거기에 악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자신의 마음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도, 조금만 있으면 완전히 두들겨 맞아 너덜너덜 걸레가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준하의 의지에 몸을 바치기 시작했다.


 


사실 지현의 필사의 저항은 실제 시간으로는 몇 초의 순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악의의 그림자를 느끼면서도 지현은 결국 준하의 애무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녀의 온몸이 핑크색으로 물들어가면서 채찍을 맞은 자국이 뜨겁게 쑤셔오기 시작했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불에 타오르기 시작하자 혈액 순환이 활발하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쑤셔오기 시작한 아픔까지 마치 애무로 인한 성적 흥분처럼 지현에게 뜨거운 쾌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아후우우우욱!]


 


지현의 입에서 그녀도 모르게 관능의 뜨거운 한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신호로 지현의 온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준하의 혀가 그 떨림을 확인하듯이 지현의 얼굴에서 목덜미를 따라서 가슴으로 내려갔다.


지현의 육체는 준하가 핥기 쉽도록 그의 품속에서 몸을 꿈틀대면서 상체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종횡무진 빨간색의 채찍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커다란 유방이 준하를 향해서 앞으로 내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준하의 입술과 혀가 그 상처자국을 부드럽게 핥고 빨아주기 시작했다.


 


지현의 등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면서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며, 지금 엄청난 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준하에게 확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등을 꽉 껴안고 있던 준하의 양손이 등에 나 있는 채찍자국을 손바닥으로, 혹은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문질러주고 있었다.


 


지현은 두 눈을 꼭 감고서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어금니를 꽉 악물고 있었다.


고통을 참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온몸이 완전히 파괴된 경험을 지닌 지현으로서는 채찍 자국이 어루만져지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왜일까?


그건 고통이 아니라 쾌감 때문이었다.


준하가 문질러주고 혀로 핥아주고 있는 상처자국이 마치 보지가 된 것처럼 민감하게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가슴을 파고드는 것 같은 쾌감이 아니라 여체의 중심부에서 뜨거운 꿀물이 줄줄 뿜어져 나올 것만 같은 쾌감이었다.


그런 쾌감이 준하의 손바닥과 손가락에 의해서 지현의 몸속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지현의 뇌는 어느 새 핑크색으로 물들어서 제대로 된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바닥에 무릎을 대고서 상체를 일으키고 있는 지현의 가랑이 사이는 마치 오줌을 싼 것처럼 흠뻑 젖어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많은 양의 씹물이 바닥을 더럽히고 있었다.


 


 


[아후우우우우욱.....하응.....아아아아아악.....]


 


이마에 주름이 깊이 파인 채 그녀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흥분의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지현은 스스로 양손을 등 뒤로 가지고 가서 양손으로 반대편 팔꿈치를 세게 붙잡고서 스스로 손의 자유를 빼앗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준하를 꼭 껴안아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현은 자기 마음대로 준하의 몸을 만질 수가 없었다.


그것이 노예의 규칙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지현은 준하의 몸을 만지고 싶지 않았다.


그를 혐오하고 있었고 그가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신이 준하에게 달라붙는다는 사실은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현은 강한 자존심 때문에 자신이 혐오하는 남자에게 스스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오욕의 늪 속으로 빠져들어 갈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딜레마가 생기고 있었고 절대로 충족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준하의 입술이 끊어진 유두를 입안으로 삼킨 후 부드럽고 다정하게 혀로 굴려대면서 입술 사이에 끼우고서 쪽쪽 빨아대기 시작했다.


 


[후오오오오오옥!]


 


지현은 온몸이 찌릿찌릿 저려오면서 허리에서 힘이 빠져나가면서 아래로 주저앉고 싶어졌다.


자궁이 꿈틀꿈틀 크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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