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노마키아 - 2부(17-1)
01.
구름과도 같은 모양을 이루는 짙은 담배연기가 희미해지며 공중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희미해진 담배연기 사이로 그려지는 하나의 얼굴.. 그 얼굴에 담배를 피우던 남자는 눈을 감으며 머리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지우려는듯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담배는 거의 피우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 일이 잘 안풀릴때나 고민스러운 일이 있을때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줄담배를 피우곤 했다. 줄담배라고는 해도 폐속 깊은 곳까지 연기를 끌어마시는 그런 담배는 아니었다. 담배를 피우는걸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담배를 태우는 그리고 가끔씩 그 연기를 흡입해보는 그 행위 자체가 남자에게 안정감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가 하늘로 서서히 흩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안정감이 들고 가끔.. 그렇게 멍하니 연기들을 바라보다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결심이 서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에 거의 피우지도 않는 담배이건만 남자는 늘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남자는 필터만 남은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담배갑에서 새로운 담배를 하나 빼내어 입에 물고는 라이터를 켜려는 순간.. 누군가 남자의 입에서 담배를 뺏어갔다. 가벼운 상실감에 남자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담배는 몸에 해로워요~ 』
한 여자가 남자에게서 뺏어든 담배를 한 손에 들고 밝게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여자는 남자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남자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을 말하면 누구나 쉽게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유명인임과 동시에 조금 전 남자의 머리속에 그려졌던 바로 그 여자였다.
『프레이아..? 어떻게 내가 여기있는걸... 』
『앨런은 내 담당자니까요~ 』
프레이아의 얼굴은 여전히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프레이아의 손은 매몰차게도 앨런이 들고 있는 담배갑마저 뺏어들어버렸다. 담배를 돌려줄 생각도 앨런이 다른 담배를 꺼내들게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그런데 원래 담배 안피지 않았어요? 담배갑을 지니고 다니는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피는건 한번도 못봤던거 같은데.. 』
『가끔씩은 이렇게 펴요.. 답답하거나.. 그럴때.. 』
『흐응..? 』
프레이아는 가만히 앨런을 바라보더니 앨런을 안아줄듯이 두 팔을 활짝 펴면서 말했다.
『그럼 말해봐요~ 내 넓~은 가슴으로 앨런의 답답함을 다~ 풀어주겠어요~ 』
『푸훗~ 』
마치 그렇게 하기만하면 앨런의 답답함이 모두 풀어질거라 굳게 믿어의심치 않는 어린 아이같은 모습에 앨런은 자신도 모르게 푸훗 하고 웃음을 흘려내고 말았다. 행동은 마치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같았지만 그 모습은 사람들사이에서 여신이라 불리는 것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구나 싶을만큼 아름답고도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얀색의 니트티와 같은 상의.. 니트의 재질처럼 보이기는하지만 실제로 만져보면 니트따위와는 비교할 수없을만큼 상당히 부드러워 보이는 소재의 재질이었다. 그리고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검은색의 플레어 미니스커트에 검은색 팬티스타킹으로 감싸진 길고도 매끈한 다리.. 단발보다는 약간 긴정도의 단정된 검은 색의 머리가 평소에 머리카락이 가려져있던 마치 인형과도 같은 작은 얼굴이 실제 인형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임을 증명해주듯이 바람에 흩날리며 정적인 모습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어느 누가 마치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소녀와같이 순수하고 가녀려보이는 이 여자가 파괴적이고 가공할 능력자들과 싸워 이기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마치.. 신이 인간을 궁휼히 여겨 내려보낸 천사와도 같은...
앨런이천사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두통이 그의 머리에 작렬하듯 고통을 새겨주었다. 하지만 두통이 머리속에서 날뛸 틈을 주지않고 그 고통을 가라앉혀주듯이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왔다. 프레이아가 활짝 벌리고 있던 팔로 살포시 앨런을 안아주고 있는 것이었다. 향긋한 냄새.. 그리고 어떻게되든 상관없이 몸을 맡겨버리고 싶은 부드러움과 가슴에서 느껴져오는 물컹거리면서도 탄력이 느껴지는 가슴..
『난 앨런을 믿어요.. 무엇을 생각하든 지지 말아요.. 필요하면 언제든 내 손을 잡아요.. 앨런의 손이 닿을수 있는 거리에 내가 서 있을게요 』
일반적으로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그 말의 논리와 의중을 파악하려하기 마련이다. 저 사람의 말이 논리에 맞는지.. 저 말을 하는 의중이 무엇인지.. 하지만 가끔은 그런 것들보다 그냥 믿음이 가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목사나 스님 혹은 신부처럼 그 말에 어떤 논리적인 허점이 있는지 그 말이 사실인지..? 그 말을 함으로서 저 사람이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 그 말을 듣고 내가 어떤 반응을 하며 어떤 말을 해야할 것인지... 그런 것들에 전혀 의문을가지거나 따지지않고 자연스레 그 말 자체를 받아들이고 믿게 되는.. 지금 프레이아의 말에도 그런 힘이 숨겨있는것처럼 앨런은 잠시동안이나마 그녀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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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날.. 선택한거에요? 』
프레이아는 천사나 성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히로인이었다. 모든 사람이 악하지 않듯이 모든 능력자들이 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구하는 선한 능력자와 사람을 죽이고 건물등을 붕괴시키는 엄청난 약탈을 하는 능력자중에서 사람의 관심을 끄는 능력자는 대게 후자쪽이었다.
덩치가 크고 험악하게 생긴 폭력배가 있다. 그 폭력배가 보통 사람에게 그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을 때.. 폭력배들을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쉽게 폭력배를 제지하고 나서지는 못한다. 그것은 능력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사람을 죽이고 파괴적인 일을 하는 능력자가 있을 때.. 내가 능력자라고 나설 수 있는가..? 이것은 내가 능력자지만 힘없는 일반인을 겁주고 약탈하고 하지 않는 것이나.. 눈앞에서 일반인은 할 수 없는 작은 선행을 베푸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였다. 확실히 제압해서 이길 수 있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하지만 프레이아는 달랐다. 그녀는 단지 능력자와의 싸워 능력자들로부터 일반인들을 지키는 일 뿐만이 아니라 언제 추가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화재에 갖혀있는 사람들을 구하기위해 그 안으로 뛰어들어 그들을 구해내고 대형사고가 발생한 곳에서는 인명을 구조하고 보호하며 사고로인한 피해를 복구하는데에 힘쓰기도 했다. 그러던 과정에서 정부는 프레이아에게 정부와 연락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해 주었고 프레이아도 그 채널을 활용함으로서 정부는 프레이아를 지원하고 프레이아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보다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해 현장에서 프레이아와 정부가 따로 움직이는 형태가 아닌 구조대나 군/경찰등과 협조하며 전략적인 구조나 대응을 하기도 하는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쪽에서 하나의 제안을 해왔다. 능력자의 연구에 프레이아를 실험대상으로서 연구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는 내용..
사실 정부로서도 프레이아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한 사안이지만 한번쯤 제안해본다고해서 손해볼 일은 없으니 해본 제안인데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프레이아는 너무도 쉽게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정부와의 협상에서 프레이아가 요구한 것은 돈이나 어떤 권력같은 것도 아닌 단 하나.. 단 한 명의 연구자에게만 협력하겠다는 것이었다. 프레이아를 담당할 한 명의 연구자를 두고 실험내용이나 범위 기타 제반사항 모든 것을 그와 협의하여 진행하겠다는 요구.. 어쩌면 당연한 그런 요구를 정부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정부는 연구원들중에 담당자후보들을 물색하고 내정자를 정해두었으나 연구소를 몇 번 방문해 돌아본 프레이아는 의례적으로 건낸 연구원들 목록중에서 한 명을 지목했다. 정부로서는 이런 연구쪽을 잘 알지 못하는 프레이아 스스로가 자신의 담당자를 결정할거라는 생각까지는 전혀 하지 못했기에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선택을 존중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선택된 것이 바로 앨런이었다. 지금까지 특별히 물어본 적은 없지만 항상 궁금했다. 연구소 사람들이 수군대는 말처럼 동양적인 외모로보아 원래 동양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프레이아였기에 앨런을 선택한 것일까?
『잘 생겼잖아요~!! 』
ㅡ_ㅡ ...
아마도 앨런의 표정을 표현하라면 위와 같은 표정이 가장 어울렸을 것이다. 앨런 스스로도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더구나 프레이아 같이 누구나 반할만큼 아름다운 여자에게 앨런같은 외모가 잘생겨 보일리가...
『자~ 우리 이제 그만 들어가요 』
프레이아는 앨런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에..? 아직 다 안폈.. 』
『아직도 답답하면 담배말고 내 몸을 이용해서 풀어요 』
『네..??!! 』
『무..무슨 생각을 하시는거에요?!! 아직 해야할 실험이 남았잖아요!! 』
야릇하게 들릴 수도 있는 프레이아의 말에 앨런의 머리속에 잠시 그려졌던 야릇한 생각.. 그걸 눈치챘는지 프레이아가 얼굴까지 빨개지며 앨런을 나무라자 앨런도 민망한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앨런의 손을 낚아채듯이 잡고는 실내로 이끄는 프레이아가 말했다.
『그거 알아요? 앨런이 일하고 있는 모습.. 참 멋져보이는거 』
02.
사람들의 속성은 언제나 비슷하다. 앨런은 학창시절 흔히 왕따라 불리는 따돌림을 당하며 살았다.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살아온 앨런이었다. 만약, 사라를 만나지 못했다면 가끔 한번씩 뉴스를 장식하는 학교내의 총기나 폭발사고의 주인공이 앨런이 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없었을 것이었다.
과거에 앨런이 당했던 그런 일들이 과연 아직 철이 들지않은 아이들이었기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을까..?
앨런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조금 더 들키지않고 은밀하게.. 그리고 만약 들키게 된다해도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않을 방안정도를 마련할 정도로 교활해지는 것을 제외하면 아이가 아닌 충분히 성장한 어른들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천사였던 사라의 하얀 날개가 사실은 타르같이 어두운 암흑의 날개였음을 확인한 날.. 앨런은 집으로 돌아왔다. 한편으로 사라가 곧바로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학창시절 자신을 놀리는 재미를 극대화하기위해 자신을 좋아하는 척했던 그 여학생처럼 증오하는 마음이 교차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사라가 돌아와서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앨런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조금 더 들키지않고 은밀하게.. 그리고 만약 들키게 된다해도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않을 방안정도를 마련할 정도로 교활해지는 것을 제외하면 아이가 아닌 충분히 성장한 어른들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천사였던 사라의 하얀 날개가 사실은 타르같이 어두운 암흑의 날개였음을 확인한 날.. 앨런은 집으로 돌아왔다. 한편으로 사라가 곧바로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학창시절 자신을 놀리는 재미를 극대화하기위해 자신을 좋아하는 척했던 그 여학생처럼 증오하는 마음이 교차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사라가 돌아와서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1시간.. 2시간이 지나도 사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가 있어야할 곳도 없었으며 그가 해야할 일도 없었다. 그냥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던 그 때..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는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꽤 오래전의 일이긴하지만 정부가 주도하는 연구소.. 일단 들어가면 갖혀지내야하기에 사라때문에 거절했던 그 제안이 떠올랐다.
여기저기 뒤적이며 찿아낸 그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지금도 그 제안이 유효한가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예스라고 대답을 했고 아마도 정리할 시간을 주려는듯 언제쯤 데리러가면 되겠냐는 질문에 앨런은 1시간 이내로.. 라고 대답을 했다. 레이첼에 대한 문제로 잠시 고민을 했으나 사라같은 여자에게 남겨두고 가느니 차라리 자신이 데려가는게 더 나을것 같아 그는 아주 간단한 짐과 레이첼만을 데리고 이 연구소로 오게 되었다. 아무것도 들고오지 않은 그에게 마치 미리 마련해둔 것처럼 모든 것이 갖춰진 거주지가 주어지고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레이첼에 문제가 약간 있었지만 정부는 그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해주었다.
하지만 연구소내에서 그는 다시 따돌림을 받아야만 했다. 앨런의 이론이 조금 파격적이긴 했지만 학자들 사이에서 앨런을 인정해주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다. 하지만 학/석/박사의 과정을 차례차례 밟아온 것도 아니고 그렇기에 따로 어딘가에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 극비사항을 다루는 연구에 비록, 미국국적이긴하나 외모만으로는 절대 미국인으로 보기 어려운 그런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자.. 그럼에도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 남자를 자신들의 친목공간에 끼워주지도 않았고 그런 이유에서 앨런의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부 사람들도 앨런과 이런저런 이야기등을 하거나 세미나에 참석하면서도 앨런과 같이 팀을 이루어 일을 하려하지는 않았다. 조금 아이러니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으나 이곳에 올 수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고등교육을 받고 천재라는 소리를 흔히 들어봤을만한 수재들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런 정도의 지식이 있는 지식인들이 모인 이곳이 오히려 평범한 회사나 학교보다 그런 것들이 훨씬 심하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만약, 앨런이 사라와 함께 왔다면 이곳에 온 것을 후회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앨런은 그런 것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학창시절처럼 물리적이거나 노골적으로 모욕적인 그런 행위는 별로 없었으니까... 다만, 학창시절에는 검게 물들었던 그의 악의를 천사인 사라가 정화해주었다면 지금은 연구원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오래전 깊게 묻어두었던 썩어 문드러져 부패되어있던 그 새카만 악의를 건드리는 것을 이제는 악마가 되어버린 사라가 검은 날개를 펴고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정도만 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프레이아가 연구소에 여러가지 실험을 도와주기위에 온다는 사실은 연구소를 들썩이게 만들었지만 앨런에게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프레이아가 자신의 담당자가 될 사람으로 바로 앨런 자신을 지명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프레이아가 앨런을 지명했다는 사실 하나뿐임에도 많은 것은 변했다. 그동안 앨런에게 비협조적인 연구원들도 갑자기 협조적으로 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자신이 소속된 팀에서 나와 앨런과 같이 팀을 이루고 싶다고 은밀히 전해오는 연구원들조차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힘.. 아마도 이것이 프레이아라는 여자.. 혹은 여자가 가지는 이름이 만들어낸 힘일 것이다. 힘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을 처음으로 앨런은 실감할 수 있었다. 정부의 지원도 연구동과 그 연구동내의 연구원들을 앨런의 지시로 움직일 수 있게 할 정도의 파격적이라 할만한 지원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실.. 그런 것따위는 앨런에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프레이아를 연구하게 될 수 있게된 것은 분명 일생의 기회라고 할만큼 커다란 행운이었고 실제로 그걸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고 능력자들에 대한 베이스적인 정보들을 구축해나갔지만 앨런이 프레이아를 만나는 순간부터 그가 바란건 오직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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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
어둠속에서 환한 스크린의 불빛이 비춰지고 있었다. 스크린 안에는 커서가 깜박이고 있었고 그 앞에는 스크린과 연결된 기계에 연결이된 전극같은 것들을 머리에 잔뜩 붙이고 있는 앨런이 있었다. 마치 사람의 뇌모양과 같은 것이 작은 상자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은 이 기계는 하나의 저장장치였다. 인간의 뇌의 구조나 메커니즘을 그대로 자신의 뇌와 연결해서 정보가 아닌 기억자체를 저장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장치였다. 아주 오래전 그 가능성에 대해 연구를 하고 설계를 해보았던 것인데 비용등을 문제로 실현하지 못한 것을 연구소에 들어오고난 이후 개인적으로 시험삼아 만들어 본 것인데 아직 완성을 말하기에는 어려운 상태였다.
일단 기억을 저장하는 부분까지는 어떻게든 성공시킨것 같지만 저장만 가능하고 그 기억을 꺼내볼 수 없다면.. 그건 저장하는 의미가 없었다. 즉, 입력방법은 찿았으나 출력방법은 아직 앨런에게도 감이 잘 잡히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앨런이 자신의 기억들을 백업하듯 이렇게 꾸준히 입력하고 있는 이유는 나중에 출력방법을 찿았을 때 장기적으로 보관되어있는 내용들에 어떤 문제점이나 특이사항을 발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완성을 할 수있을지 여부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완성만 된다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명이 아닐 수 없을 것이었다.
한참동안이나 모니터의 깜박이는 커서를 보면서 앉아있던 앨런이 머리에 붙어있는 전극들을 모두 뜯어내고는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저장되어있던 일정부분의 기억과 데이터를 지우고싶은데 자꾸만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지운다해도 뭔가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 장치에서 그 내용이 사라진다고해서 앨런의 머리속의 기억까지 지워지는건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난 왜 이런 의미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그와같은 생각이 들면서도 의미도 없는 그런 행동 하나를 하는게 엔터만 치면 쉽게 끝나는 그 간단한 일에 왜그런지 자꾸만 손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앨런은 한숨을 내쉬고는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찿아 담배를 한가치 꺼내들었다. 실내에서는 금연이지만 이 장소는 앨런이 연구도중 피곤할때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자 앨런만의 장소였다. 누가 찿아올 일도 없고 들어올 일도 없었다.
"칙.."
라이타를 켜고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앨런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얼굴.. 그리고 목소리...
『담배는 몸에 해로워요~ 』
떠오르는 얼굴은 프레이아의 얼굴이었으나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라의 것이었다. 사라도 그가 어쩌다 한번씩 담배를 피우려할때면 그렇게 말하며 담배를 빼앗았다. 그리고.. 프레이아가 자신의 몸을 실험하는 것으로 답답함을 풀어내라고 말한 것처럼 사라 그녀도 나로는 담배를 대신하기에 부족할까.? 라고 웃으며 가슴섶을 살짝 열어보이곤 했었다. 사라는 그를 배신해버렸지만 마치 신이 그녀를 대신할 새로운 천사를 내려보내주신듯이 이전의 사라처럼 절망에 빠져있는 앨런의 앞에 프레이아가 나타났다. 하지만.. 천사였던 사라도 그렇게 악마가 되었다. 그녀가 그렇게 되리라는건 그 날 직접 보기전까지 조금도..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프레이아도 역시...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실험도 실패했으니.. 』
앨런은 불을 붙이려던 담배와 담배갑을 한손에 들고 힘을 주어 구겨버리고나서는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서는 마음을 다잡은듯 모니터를 바라보고 자판위의 엔터키 위에 손을 얹었다.
"엔터를 입력하시면 지정하신 부분의 내용이 모두 삭제 됩니다. 그래도 계속하시겠습니까?"
03.
"쾅..쾅..쾅!!"
앨런이 엔터키를 누르려는 순간.. 갑자기 쾅쾅거리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시간이라면 몇명정도의 연구원이 남아 있을지 몰라도 급하게 앨런을 찿을만한 일이 있을만한 시간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 장소는 아는 사람도 극히 드물정도로 개인적인 장소였다. 그를 찿는 방송은 고사하고 그가 지니고 있는 호출기도 쿨쿨 잠이들어있는 이 때에.. 똑똑~ 도 아니고 쾅쾅!! 이라니..?
"쾅.... 쾅..."
앨런은 잠시 긴장했으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처음에 비해 점점 그 박력이 떨어져갔다. 앨런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마치 앨런에게 안겨들듯이 쓰러지는 인물.. 바로 프레이아였다.
『프레..이아?!! 』
일단 급한대로 프레이아를 한쪽 구석에 있는 간이침대로 눕혀놓고는 프레이아의 상태를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얼굴은 열이 있는듯 발갛게 물들어 있는데다 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프레이아는 한 손으로 자신의 팔을 꼬옥 잡은 상태로 몸을 덜덜 떨어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프레이아는 절대적으로 강했다. 능력자들 몇 명과 조우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을 물리칠 수 있을정도로 강력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입에 프레이아가 오르내리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다른 목적이 아닌 프레이아 자체를 노리는 능력자들이 점점 늘어가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프레이아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프레이아를 연구하면서 앨런이 생각하기에 특별한 변수가 있지 않는 한 최소한 능력자들과의 싸움에서 프레이아가 질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프레이아가 지금 거의 죽어가는 모습이 다되어서 앨런에게 와서 쓰러진 것이었으니 앨런이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독..같은 것에 당한것일까..?"
외상이 있는 것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옷의 상태등으로 봐도 특별히 어디선가 전투를 치루고 온 것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독이라든지.. 생화학적인 부분의 문제인 것일까..? 실제로 프레이아가 위험한 고비를 맞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위기가 능력자들과의 싸움으로인한 부상같은 부분이 아닌 방사능오염지역이나 유독가스가 난무하는 화재현장등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일등에서 위험에 노출되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능력자라고해도 단 몇초만 들이마셔도 즉사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대량으로 흡입하거나 노출되면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런 부분이라면 이렇게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그 원인을 찿을 수 없다. 지금 당장 실험실로 옮겨야한다. 살모사의 독 한방울로 사람이 간단히 죽어버리듯 아무리 능력자라고해도 프레이아를 이런 상태로까지 만들었다는건 그 원인이 무엇이든 시간이 지체되면 그 잠깐의 시간이 되돌릴 수 없는 피해로 돌아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잠시만 기다려요 지금 당장 실험실로 데려가 줄게요!! 』
조금 전 프레이아를 안아 간이침대에 눕히는동안 프레이아가 상당히 가볍게 느껴졌기에 누굴 부르기보다 직접 프레이아를 안아들고 실험실로 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프레이아를 안아드는 순간에 프레이아는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손으로 앨런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어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어요!! 지금으로서는 원인을 찿는게 우선.. 』
『앨런을 믿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 말을 들어주세요.. 』
앨런은 잠시 갈등했다. 프레이아가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실험중에는 차마 눈뜨고 보지못할만큼 힘들고 고통을 동반하는 실험도 적지 않았다. 인간과 능력자의 신체적인 기준이 월등히 다른데다 프레이아가 능력자라고는하지만 가녀린 여자의 몸을 하고 있으니 일반적인 인간의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실험을 보고있기에 더 잔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단지 그런 느낌상의 문제만이 아닌 실제로 프레이아 역시 그런 실험을 진행하면서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은 앨런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앨런이 조심스럽게 실험내용을 설명하고 부탁을 하며 괜찮겠느냐는 동의를 구할때면 언제나 "앨런이 원한다면~" 이라는 말과 함께 웃어주는 그녀였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웃어주며 누구의 말이라도 주의깊게 들어준다. 누구에게나 정성스럽게 대하며 그런걸 자랑스럽게 생각지도 않고 무엇을 요구하거나 대가를 바라는 일따위도 없는 여자였다. 아마도 앨런뿐만이 아니라 연구소에서 그녀와 접할 기회가 있는 누구라도 "뭔가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있다면.." 이라는 생각은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그런 프레이아가 지금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프레이아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만약 이런 감성적인 생각때문에 프레이아에게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감성과 이성.. 앨런은 그 둘중 이성을 선택하기로 마음먹고는 프레이아를 안아들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얼마든지 들어줄게요 그러니까 지금은 원인부터 찿아요!! 』
『시..싫어..!! 』
참 희안한 일이었다. 프레이아는 능력자였다. 비록 지금 다죽어가는 이런 모습이라고는해도 앨런의 지식으로 프레이아가 지금의 앨런을 자신에게서 밀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프레이아는 마치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앨런의 옷깃을 꼬옥 쥐고는 품에 얼굴을 파묻은채 싫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껏 실험에 관한 부분에서 앨런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한번도 없는 프레이아였다. 거절은 커녕 못마땅해하거나 마음내키지 않는듯한 태도를 본 적도 한번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마치 앙탈부리듯이 강하게 싫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1초가 중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도.. 여자란 말이에요.. 이런거 보여지는거.. 정말 싫어.. 흑.. 』
프레이아가 흐느끼고 있었다. 순간.. 그동안 프레이아가 실험을 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왔다. 실험장소안에 갖혀있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보고있는 여러명의 연구원들.. 차라리 병원같은데서 치료를 위한 것이라면 자신을 치료하기위해서라고 위안삼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신체에 대해 연구하고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는 연구원들에게서 느껴지는 시선은 어떨까..? 지금까지 그 시선들이 적지않게 프레이아에게 부담이 되었던 것 같았다. 지금까지 프레이아를위해 충분히 많이 생각해주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기본적인 것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싫어하는 기색없이 웃어보이고 있었다. 도대체 이 여자는 무엇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결국, 앨런은 잠시 고민하던끝에 프레이아를 다시 침대에 가만히 눕혔다. 그리고 그 옆에 무릎을 꿇고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프레이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마워요 앨런.. 』
프레이아는 고맙다고 말하며 앨런을 보고 웃어보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통스러움을 억지로 참아내며 웃어보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프레이아.. 미안해요.. 난.. 지금까지.. 하지만 무엇이 원인인지 모르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나 역시 프레이아가 가기 싫다면 억지로 데려가고싶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
『원인은.. 알아요..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아마.. 알거.. 같구요.. 』
『원인을.. 알고 있다구요? 』
『저기.. 앨런.. 그..그래서 말인데.. 나 부탁.. 하나만.. 드..들어주면 안돼요? 』
『뭐든요.. 사람 죽이는거빼고 뭐든... 내가 할 수있는거라면 다 해줄게요 뭘 어떻게 해야하는건데요? 빨리 말해봐요 』
『저..저기.... 』
원인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해결할 방법도 알고 있다는데 과학자의 호기심보다 안도감이 먼저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지금 앨런의 심정으로는 프레이아가 뭘 원하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부탁을 이야기해야할 프레이아가 말을 더듬으며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앨런의 심정으로는 프레이아가 뭘 원하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부탁을 이야기해야할 프레이아가 말을 더듬으며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그게... 』
『빨리 말해봐요!!! 』
화를 낼만한 부분도 아니건만 걱정이 되어인지 앨런은 자신도 모르게 혼내듯이 소리치며 말해버렸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울먹일것 같은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프레이아가 입을 열었다.
『나.. 나 좀 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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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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