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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번] 淫堕の姫騎士 ジャンヌ 01


第一章 光翼の姬

달빛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숲 속에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자들은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보다 두배는 컸고 전신을 뒤덮은 근육들은 바위처럼 단단해보였다. 그 근육을 덮은 거무스름한 피부는 굵고 뻣뻣한 털로 덮여 갑옷같은 강도를 자랑했다. 머리카락은 거의 없지만 대신에 날카로운 뿔이 있었다. 언듯 보기에 짐승처럼 보였지만 손에 든 검이나 창 등은 잘 손질되어 있었고 전체적인 움직임도 꽤 통솔되어 있었다.



「크크크, 빨리 인간을 죽이고 싶어」



충혈된 눈으로 전방의 마을을 바라보며 그림자 중 하나가 신음하듯 중얼거리더니, 거친 공격성향을 내보이듯 날카로운 칼 끝을 두꺼운 혀로 핥았다. 오우거라고 불리는 종족이다. 귀신같은 외모에 인간보다 약간 떨어지는 두뇌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보충할만한 체력과 용맹을 갖고 있는 그들은 호전적인 성격탓인지 옛부터 인간과 대립하는 일이 많았다. 드물게 우호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예외중의 예외였다. 그 오우거에 영향을 받았는지 다른 그림자들도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고, 여기저기에서 칼을 빼는 소리가 들렸다.



「조급해하지 말고 칼을 넣어라. 달빛이 반사된다」



충고처럼 날아든 차가운 음성은 다른 남자의 것이었다. 그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생김새도 오우거와는 완전히 달랐다. 크고 늘씬한 몸에 날카롭고 지적인 얼굴은 여성처럼 아름다웠다. 달빛에 빛나는 검은 머리카락도 등에 닿을만큼 길었다. 게다가 귀는 뾰족하게 길었다.



「뭐야, 저 다크엘프 녀석…」



「귀찮은 놈이라니까……」



오우거들은 불만스럽게 투덜댔지만 주변은 곧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시끄럽다! 조금만 있으면 원하는대로 마음껏 날뛸 수 있으니 지금은 이 남자, 젤릭이 시키는대로 해라!」



압도적인 박력으로 말한 것은 다른 오우거보다도 더 큰 거구의 오우거였다.



「그렇지만 기드님께선 이런 녀석의 도움없이도 제국으로부터 얼마든지……」



계속 불만을 토로하는 부하를 기드는 한방에 때려눕혔다.



「내가 결정한 일에 입을 놀리지 마라! 언제까지 제국의 노예로 꼬리치며 살거냐!」



고함과 동시에 아무 관계없이 그냥 옆에 서있던 부하도 때려눕혔다.



「으아아아악……!」



불쌍한 오우거는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나무에 부딪히더니 기절한듯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리브파울 전체를 빼앗을거다! 그럼 여자도, 먹을 것도 모두 우리 것이다!」



날카로운 이빨을 내보이며 팔을 치켜들자 거기에 호응하여 다른 오우거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거기 여자들은 모두 미녀들이야. 특히 공주 쟌느는 아주 먹음직스럽지」



「아아, 그 공주한텐 몇 번 호되게 당했어. 꼭 복수해야돼」



욕망에 충실한 오우거들은 벌써 흥분했는지 낄낄거렸고 개중에는 벌써 발기한 놈도 보였다.



「바보녀석들! 다른 년들은 몰라도 쟌느는 내꺼다! 너희들은 내가 박고 난 다음이야!」



다시 기드가 주먹을 휘둘렀고, 세번째 오우거가 나가 떨어졌다. 강함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오우거족에서 기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기드가 선대의 장로들부터 거역하던 놈들까지 모두 복종시킨건 우연이 아닌 것이다.



「좀 조용히 있지 않겠나? 이러다가 들키면 곤란하다고」



변함없이 냉정한 다크엘프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길게 찢어진 눈매는 거칠고 흉폭한 오우거들마저도 순식간에 조용하게 만들정도로 날카로웠다.



「흥, 미안하군. 그렇지만 젤릭, 실패할 경우 너도 그냥 끝나진 않을거야」



협박이 담긴 기드의 시선을 시원하게 받아넘기며 다크엘프는 씨익 웃었다.




호숫가에 있는 리브파울성은 대륙에서도 유명했다. 견고한 성벽은 빛나는 하얀색이고, 우아한 곡선의 지붕은 지어진지 10년 이상 지났지만 여전히 선명한 푸른색으로 빛났다. 그 빛나는 아름다움은 이 나라의 이름이 유래된 특산품인 진주의 가루를 도료에 혼합해 칠한 덕분이지만, 동시에 이 나라가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 성내에서 봄의 따스한 햇빛이 쏟아지는 회랑위를 작은 여자아이가 뛰고있었다. 눈에 띄는 붉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예쁜 흰색 리본으로 장식한 소녀는 10대초중반으로 보였다. 연한 파란색의 산뜻한 드레스는 선선한 공기를 막을 수 있는 긴 소매와 목 주변에 천사의 날개같은 레이스로 장식되어 소녀의 사랑스러움을 돋보이게 했고,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에도 레이스와 프릴이 풍성하게 장식되어 마치 성 안을 날아다니는 봄의 나비처럼 보였다.



그런 인상은 얼굴을 보면 더욱 강해졌다. 크고 푸른 눈동자에선 봄날같은 따뜻함이 느껴져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편안해졌다. 귀여운 꽃잎같은 입술에는 아직 어리광이 남아있고 뺨은 달콤한 케익을 머금은 것처럼 부풀어있었다. 몸매는 아직 가냘퍼서 가슴도, 엉덩이도 아직 미숙해 발달의 여지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도 그녀의 매력을 전혀 가리지 못했고,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귀중한 순간을 담은 고순도 보석같은 아름다움이 흘러나왔다.



「하아, 하아…… 모코라는… 너무… 무거워………」



커다란 녹색 쿠션처럼 보이는 것을 다시 꽉 껴안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상당한 무게가 있는지 종종걸음치는 소녀의 발 아래는 불안했다.



「아얏!」



발에 뭐가 걸렸는지 넘어지려는 위험한 순간에 누군가의 팔이 뻗어와 잡아줬다.



「유와, 성에서는 뛰면 안돼요」



「아, 어머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는 사람은 소녀의 어머니 셀린느였다. 셀린느는 죽은 남편을 대신해 이 나라를 통치하는 여왕으로써 어렸을 때 결혼했기에 이런 딸이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않을정도로 젊게 보였다. 게다가 총명한 두뇌와 넘치는 지식을 바탕으로 이 나라를 다스리는 수완도 대단하지만, 지위와 계급에 상관없이 자비와 사랑으로 대해서 국민들의 지지도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그 인기를 더욱 높이는 것이 여왕의 화사한 아름다움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우아하게 웨이브진 갈색 머리는 자연스러운 매력을 자아냈고, 긴 속눈썹 아래 그윽한 검은 눈동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품위있게 솟아오른 콧날과 그 아래에 위치한 입술은 지성미와 성적 매력이 절묘한 밸런스로 섬세하게 조화를 이루고 잇었다. 연한 녹색 드레스로 감싼 육체에서도 성숙한 여성의 매력이 흘러넘쳤다. 가늘고 긴 목과 나긋나긋한 어깨와 허리. 얇은 천을 찢어버릴 듯 밀어올리는 풍만한 가슴은 그녀의 모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슴주위를 장식하는 굵은 진주목걸이에 뒤지지않을만큼 볼륨감과 아름다운 라인을 자랑하지만 우아한 기품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곡선은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 팽창하며 복근을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지방으로 감싸서 그 완만한 라인은 세계 유수 명산의 능선을 방불케 했다. 엉덩이는 딸을 낳은 후 한층 더 풍만해져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서있거나 혹은 걷는 것만으로도 남자의 눈을 끌어당기는 성적매력이 흘러넘쳤다. 치마 속에 숨어있지만 탄력있는 허벅지와 가느다란 종아리로 이뤄진 늘씬한 각선미도 탄력넘치는 관능미로 가득했다.



「쟌느언니를 찾고 있는데 혹시 어디있는지 아세요?」



「쟌느?」



셀린느는 집게손가락을 턱에 대고 생각하더니,



「쟌느는 검술연습장에 있는 것 같던데」



그 대답을 들은 유와는 못마땅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언니도 참…… 유와와의 약속도 잊고 또 검술연습장이라니!」



뾰로통한채 볼을 부풀린 유와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거 참! 유와! 뛰면 안된다니까」



셀린느의 질책은 들은 붉은 머리의 소녀는 폴짝 뛰더니 어기적거리며 걸어갔다.



「벌써……」



귀여운 딸의 뒷모습을 보며 셀린느는 안심이 된듯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셀린느는 계모로써 쟌느와 혈연관계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유와와 쟌느는 아버지만 같은 사이였다. 게다가 재혼할 당시 쟌느는 민감한 나이여서 걱정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런 미묘한 관계여서 셀린느는 국왕 사망후 세사람이 잘 지낼수 있을지 불안했지만 기우였는지 다행히도 쟌느는 자신을 잘 도와줬고, 몸이 약한 여동생도 귀찮게 여기지않고 잘 돌봐줬다. 처음엔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실은 다정다감한 소녀라는 것을 지금은 분명히 알기에 머지않아 왕위를 양보한다해도 안심하고 나라를 맡길 수 있고, 자매는 협력해서 나라를 잘 이끌 것이다.



「여보, 난 좋은 딸들을 가졌어요……」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며 셀린느는 작게 중얼거렸다.




검술연습장은 남자들의 기합소리와 목검이 맞부딪치는 소리로 가득했다. 열기로 가득한 실내는 봄이라고는 생각되지않을 정도로 후끈했다. 남자들의 땀냄새가 넘치는 그곳에 유와가 나타났다.



「언니는 어디 있는거지……」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지만 건장한 남자들이 늘어서있어 안쪽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데 아는 기사의 얼굴이 보였다.



「아, 키스씨다」



유와는 젊은 기사에게 다가가 그 등을 콕콕 찔렀다.



「아니, 유와님. 어쩐 일로 이런 곳에……?」



키스는 몸을 낮춰 유와와 시선을 맞췄다. 키스는 리브파울에서도 유명한 검사로써 통솔력도 있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리브파울의 기사장을 맡고 있었다. 준수한 얼굴이어서 성내의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좋지만 그런쪽으론 둔해 검술수련에만 몰두하는 강직한 사람이었다.



「언니에게 용건이 있어서요. 여기 있다고 들었거든요」



커다란 녹색쿠션 같은 것을 변함없이 안은 채로 유와가 말했다. 왠지 지친듯한 기색이었다.



「쟌느님은 지금 시합중이십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유와의 손을 잡은 키스가 다른 기사들을 헤치고 맨 앞줄까지 나가자 연습장 한가운데에서 대치하고 있는 남자와 소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쟌느언니다!」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유와는 눈 앞의 미소녀검사를 쳐다봤다. 등을 쭉 편 채 당당한 자세로 목검을 들고 있는 언니의 자세에선 기개가 넘쳤다. 경장의 기능도 갖고있는 하얀 드레스는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등부분이 붉은색의 큰 리본으로 장식되어 늠름한 모습중에도 기품과 사랑스런 분위기가 감돌았다. 조금 넓게 벌어진 가슴부분은 부푼 젖가슴이 만든 골짜기를 살짝 내보이며 청순한 성적매력을 어필하는 것도 잊지않았다.



단련된 육체엔 불필요한 지방이 거의 없어 허리는 코르셋이 필요없을 정도였고 타이트한 검은 스커트에 가려진 엉덩이는 작은 움직임에도 잘 발달된 근육을 보여줬다. 흰색의 긴 장갑과 같은 흰색의 스타킹에 싸인 팔과 다리는 길고 날씬해서 발군의 스타일을 보여줬다. 그냥 아름다운 정도가 아니었다. 단련된 근육과 소녀 특유의 섬세한 피부가 만든 예술적인 균형이었다.



「쟌느언니, 역시 멋있어……」



쭉 뻗은 눈썹, 날카롭게 치켜올라간 눈매에선 고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여동생과 마찬가지로 보석처럼 푸른 눈동자지만 거기서 번뜩이는 의지는 언니쪽이 훨씬 강했다. 높이 솟은 콧날과 섬세하게 자리잡은 입술에선 거짓 미소를 짓지않는 도도한 프라이드가 느껴졌지만, 보는 사람에게 나쁜 인상을 주는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이 공주로써 18년동안 몸에 익힌 지식과 교양, 행동거지, 강인한 의지 덕분이지만 그 이상으로 100년에 이르는 그레노블 왕가의 역사, 정신, 책임이 영혼 깊숙히까지 새겨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하늘의 왕자인 독수리가 위풍당당하게 나는 것이 당연하며, 백수의 왕 사자가 누구도 무서워하지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다.



「자, 고든. 망설이지말고, 마음껏 덤벼보세요」



벌써 다섯 남자들과 시합을 끝냈지만 쟌느는 호흡이 흐트러지거나 땀 흘리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모두 단칼에 끝내버렸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아, 하아」



얼굴에 수염이 무성한 고든은 힘이 아주 센 기사였지만 쟌느와 대치하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가빠졌다. 쟌느가 뿜어내는 성스러운 아우라는 동료들에겐 절대적인 안도감을 주지만 비록 연습시합일지라도 상대방에겐 상당한 압력을 줬다. 특히 그 강렬한 눈빛으로 노려보면 기죽지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그렇게 말한 쟌느는 눈을 감았다.



「쟈, 쟌느님……」



굴욕감을 느꼈는지 고든의 몸에서 투기가 뻗어나왔다.



「언니……」



옆에서 구경하는 유와도 긴장되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니가 초일류 검사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상대인 고든도 역전의 용사였다. 목검이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쿠션을 안은 손에 땀이 배었다.



「쟌느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괜히 손에 사정을 두지 마세요」



두 눈을 감은 쟌느의 붉은 입술이 살짝 올라갔다. 이런 때 쟌느의 말을 진심이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고든은 기세좋게 고함쳤다.



「하아앗!」



공격적으로 발을 내딛으며 상단으로부터 일격을 가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목검이 미소녀검사를 향해 밀어닥쳤다. 어깨를 노린 참격이 몸을 내리쳤다고 생각된 순간 공주의 검이 움직이더니 고든의 목검은 궤도를 잃고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



그 목검을 되돌리기전에 승부는 결정되었다. 어느새 쟌느의 칼 끝이 고든의 목젖 바로 앞에 와있는 것이었다.



「… 졌습니다」



쥐어짜낸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패배를 선언했다.



「대단해, 언니……」



용건도 잊은채 유와는 언니의 용감한 자태에 넋을 잃었다. 자신의 몸이 약한만큼, 강한 남자들을 화려하게 압도하는 언니 쟌느는 유와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너무 약합니다!」



또다시 가볍게 승리한 공주는 시시하다는듯 입을 열었다.



「여러분, 요즘 너무 느슨해진 것 아닌가요? 제국군도 걱정이지만 이래서는 오우거족에게도 바보취급받습니다!」



신랄한 말이지만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 쟌느의 본래 전투스타일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마법과 아버지로부터 계승한 검술, 이 두가지를 조합한 마법검이었다. 즉 쟌느는 지금 자기 실력의 절반도 쓰지않은 것이다. 물론 공주와 연습시합하는 것이 기사들에겐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일이긴 하지만 이정도로 완패하는 것은 그냥 좋게 넘어갈 일이 절대 아니었다.



「공주님,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고든에게서 목검을 넘겨받은 키스가 공주 앞에 나섰다.



「스승님께서 상대해주신다니 영광입니다」



쟌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키스는 과거 어린 쟌느에게 검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쟌느는 계속 지자 울면서도 키스와의 시합을 계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쟌느의 실력이 약간 더 우세해서 최근의 대전성적은 공주의 연승이었다.



「갑니다」



기사장은 중단자세를 취했다. 기이하게도 쟌느도 역시 같은 자세였다. 쥐죽은듯이 조용한 가운데 두사람 사이의 거리가 서서히 좁혀졌다. 숨막히는 공기가 팽팽해져 지켜보는 사람들도 굉장한 압력을 느꼈다. 눈에 보이지않는 치열한 공방이 두 사람 사이에 이미 시작된 것이다. 서로 바라보며 원을 그리듯 천천히 움직였다. 서로 빈틈이 없는 교착상태였다.



「언니, 힘내세요……」



간절한 시선을 보내는 유와. 키스도 좋지만 역시 언니가 제일 좋다. 어떻게 해서든지 쟌느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담아 두손을 모으고 힘을 줬다. 그 때,



「큐우…」



껴안고 있던 녹색쿠션에서 기묘한 소리가 나버렸다. 그 찰나에 균형이 찢어졌다.



「이야압!」



「하아아앗!」



동시에 두사람은 완전히 같은 공격을 펼쳤다. 목검과 목검이 음속을 넘어 충돌했다.



따아아악!



굉장히 큰소리가 터져나오더니 그 충격파탓에 연습장의 유리 몇장이 산산이 깨졌다.



「꺄악!」



유와는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지만 그건 같이 있던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심조심 눈을 떠 시합의 결과를 확인하자 놀랍게도 두사람 다 부러진 검을 들고 있었다.



「이래선 더 이상 시합이 불가능하겠네요, 쟌느님. 오늘은 무승부로……」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상대의 팔을 잡고 춤추듯 몸을 돌렸다. 쟌느의 등과 키스의 가슴이 닿는 순간 허리를 사용해 군더더기없는 깔끔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전방을 향해 내던졌다.



「헛…!」



예상치못한 공격을 받은 키스의 몸이 높이 날아오르더니 마루바닥에 큰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승부는 끝까지 포기하면 안된다고 가르쳐준 사람이 기사장입니다, 후후훗」



화려한 던지기기술로 마무리짓고 승리의 미소를 지은 쟌느.



「하아, 졌습니다…」



공주가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라는건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검술연습도중에 체술까지 사용할줄은 몰랐다. 옛제자의 성장한 모습은 키스는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흐뭇했다.



「이제야 몸이 좀 풀린 것 같네요. 다음 상대는 누군가요?」



사냥감을 노리듯 쳐다보자 기사들은 긴장했다. 기사단에서 최고의 실력을 지닌 기사장마저 날아간 것을 본 후엔 완전히 전의상실해있는데 금발공주의 눈이 넘어진 키스를 향했다.



「피가… 나네요」



「아…」



키스가 놀라는동안 쟌느는 기사장의 왼손을 잡았다. 부러진 목검의 파편이라도 맞았는지 손등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건 그냥 살짝 긁힌겁니다, 공주님…」



「움직이지 마세요」



위엄넘치는 한마디가 남자의 움직임을 막았다.



「뼈엔 이상이 없는 것 같네요」



붕대를 꺼내 재빠르고 정확하게 상처부위에 감고 응급처치를 하는 쟌느.



「쟌느님……」



쉽게 다가가기 힘든 인상을 주는 공주가 보여주는 뜻밖의 모습에 키스는 놀라움과 외경의 시선으로 쟌느를 바라봤다.



「언니!」



사람들을 헤치고 유와가 조르르 뛰어왔다.



「유와? 여긴 어떻게……?」



「헤헤, 방해가 됐나요?」



유와는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직 어리지만 역시 여자아이인지라 연애에는 민감했다.



「무, 무슨 말을……」



놀리는 여동생의 말에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 쟌느의 얼굴이 발갛게 변했다.



「전혀, 전혀 아니야. 이런 파편 같은 것도 못 피하는 기사장이 걱정되서……」



부끄러움을 감추려는듯 금발을 흔들며 턱을 위로 쳐들었다. 그러나 쟌느가 키스에 대해 공주와 기사장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어서 기사들도 두사람을 보며 은근히 웃었다.



「죄송합니다, 쟌느님」



진심으로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는 키스. 이 성내에서 공주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은 공주 자신과 이 둔한 기사장뿐일 것이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건 그렇고 유와, 무슨 일이니? 그렇게 큰 쿠션까지 안고서」



화풀이라도 하듯 여동생이 안고 있는 초록색 덩어리를 쿡 찌르자 갑자기 꿈틀거리더니 쟌느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찌르륵



「어멋!」



아픔보다는 깜짝 놀라서 쟌느는 뒤로 펄쩍 물러섰다.



「이게 뭐야!」



깨물린 손가락을 문지르며 쳐다보자 녹색쿠션같은 것은 귀여운 소리를 내며 커다란 애벌레모습으로 변했다. 그래도 여전히 폭신폭신한 털로 덮여있어 봉제인형같은 외관은 변함없었다.



「애벌레잖아! 그것도 살아있는……」



혐오스러운듯 쟌느는 눈살을 찌푸렸다.



「언니도 알다시피 모코라에에요」



기사들도 멍하니 보고있는데 유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름을 묻는게 아니잖아! 어디서 이걸 가져온거야!」



「에? 그때 언니도 같이 있었잖아요. 지난 주에 도블고원에 갔을때……」



「지난주? 도블고원?」



그러고 보니 일주일전에 화초나 동물들을 아주 좋아하는 유와를 데리고 도블고원에 간 기억이 났다. 그때 유와가 작은 애벌레를 잡아오더니 나비로 만들겠다는 말을 했던 것도 같았다.



「그럼 혹시 그 때 그 애벌레가 이거야?」



「네에!」



기뻐하는 미소녀와 애벌레를 번갈아 쳐다봤다. 애벌레가 자라서 나비가 될 수도 있지만 모코라는 커다란 애벌레가 되었다. 이건 무슨 일일까?



「왠지 기분 나쁜데…… 불길한 징조가 아닐까?」



쟌느는 미간을 찌푸리며 애벌레를 쳐다봤다. 원래 쟌느는 벌레같은걸 싫어했다. 작은 것도 싫어하지만 이렇게 큰 것은 보기만 해도 솜털이 곤두서며 등이 근질근질한 느낌이 들었다. 유와만 아니었다면 벌써 성 밖으로 내버렸을 것이다.



「차암, 언니도! 그렇지 않아요. 모코라는 착한 애란 말이에요. 언니도 쓰다듬어보세요」



사랑스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유와. 모코라의 크고 둥근 눈동자가 귀엽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쟌느는 조심스럽게 팔을 뻗었다.



-찌륵찌륵



「아아앗!」



또 물릴까봐 뒤로 물러나는 쟌느.



「아까 언니가 머리를 찔러서 싫어하나봐요」



유와가 고개를 흔들며 웃자 그 모습을 본 기사들도 폭소를 터트렸다.



「감히 애벌레 주제에…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리브파울의 공주 쟌느 그레노블에게 창피를 주다니 좋은 배짱이군」



입가엔 옅은 미소를 띠고 있지만 두 눈엔 푸른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한순간에 장내는 쥐죽은듯이 조용해졌지만 여동생에겐 통하지않았다.



「안돼, 모코라. 손가락을 먹는다고 나비가 되진않아」



「유와!」



「자자, 언니. 진정하시고 그보다 약속을 지켜주세요」



용도 기죽게 만든다는 쟌느의 분노지만 유와는 개의치않는 모습이었다.



「약속?」



「모코라에게 신선한 풀을 먹이기 위해 오늘 도블고원에 데려가준다고 약속했잖아요」



「분명히…… 약속했지…」



맘에 안 드는듯 커다란 애벌레를 노려보며 쟌느는 신음하듯 대답했다.



(내가 왜 이런 건방진 벌레를 위해서……… 게다가 이 이상 얼마나 더 커지려고…!)



여러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약속을 어기는건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알았어. 그럼 준비해야하니까 점심식사 후에 출발하자」



「와아! 잘 됐다, 모코라」



유와는 정말 기쁜듯이 모코라를 안고 빙글빙글 돌며 검술연습장에서 나갔다. 여동생의 그런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는 쟌느에게 키스가 진지한 얼굴로 다가왔다.



「쟌느님, 요즘 도블고원에 무장한 오우거 무리들이 보인다는 소문이 있던데 경호를 붙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리브파울은 대륙의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산맥의 산기슭에 있는 소국이었다. 대산맥의 양쪽에는 대륙의 패권을 다투는 두 대국, 공화국과 제국이 있고 리브파울은 그 두나라의 최단거리에 있었다. 서로 적대국인지라 직접적인 무역은 금지되고 있지만 리브파울을 통해서 간접적인 교역은 이뤄지고 있었다. 특산품인 진주와 양국간의 중계무역으로 리브파울은 작지만 풍요로웠다.



하지만 최근 몇 년동안 제국은 공화국에 대한 침공을 계획하고 먼저 그 발판으로 리브파울을 수중에 넣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리브파울이 계속 엄정한 중립유지를 주장했기에 요즘은 군사적인 압력도 가해오고 있었다. 불가침조약이 있기 때문에 표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대신 오우거를 용병으로 고용해 국경 부근에서 도발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우거정도로 그럴 필요는 없어요」



쟌느는 자신감있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우거족은 강한 체력을 타고 나서 개개의 전투능력은 대단히 높지만 마법이나 집단전술 등엔 무지했다. 그런 까닭에 여러 전술을 구사하는 인간과의 싸움에선 질 수 밖에 없어 지금은 대륙 각지에 흩어져 부족을 이뤄 살고 있었다. 그래서 토지를 빼앗아 간 인간에게 깊은 원한을 갖고 있어 시시때때로 분쟁을 일으키는 골치아픈 존재였다.



「힘으로밖에 통제되지않는 오합지졸들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교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 쟌느의 말이었지만 그건 그녀 나름대로의 냉정한 분석에 따른 결과였다. 사실 지금까지의 소규모 전투에서 쟌느가 인솔한 리브파울군은 오우거의 군세를 압도해왔다. 직접 검을 들고 선두에서 싸웠던 쟌느의 경험상 아무리 과대평가해도 오우거의 전투력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기사장은 다소 염려하는 기색이었지만 뜻밖에도 쉽게 물러났다. 공주가 한 번 결정한 것은 좀처럼 바꾸지않는 성격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든! 말을 준비해라!」




도블고원은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날씨였다. 푸르른 풀들과 봄의 화사한 꽃들로 뒤엎여있어 보는 것 만으로도 피로가 풀리는듯 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도 따뜻한게 기분좋고, 맑은 하늘에서 춤추는 종달새의 지저귀는 소리도 마음을 리프레쉬시켜줬다.



「가끔 이러는 것도 나쁘지 않군」



푸른 풀밭 가운데서 쟌느는 깊게 심호흡했다. 평소엔 신경쓰지않는 풀꽃의 향기도 실로 기분좋게 느껴졌다.



「이것도 유와 덕분이야……」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열심히 풀을 뜯어 모코라에게 먹이고 있는 여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방이 풀로 가득하니까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건방진 애벌레는 풀을 가려 먹는 모양이었다.



(공주에게 식사시중을 들게 하다니 정말 좋은 근성이야. 유와가 너무 응석을 받아주는게 아닐까…)



하지만 유와를 바라보는 쟌느의 눈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계모인 셀린느와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양호하지만 이따금 충돌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유와가 중간에서 은근히 도와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따뜻한 성격은 자신에겐 없는 장점이었다. 전 국왕인 아버지가 죽기전에 셀린느와 유와를 잘 부탁한다고 했지만 그건 피차일반인 것이다. 세명이 서로 도와 힘을 합친다면 리브파울은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을것이다.



「언니, 왜 그러세요? 무슨 걱정있어요?」



문득 정신차리자 유와가 의아한듯 올려보고 있었다. 쇼트 컷의 붉은 머리가 햇빛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귀여운 푸른 드레스차림의 여동생은 한창 피어나는 꽃들이나 나비에 뒤지지않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데 애벌레는? 이제 된거야?」



「네, 배부른지 자고 있어요」



유와가 가리키는 앞을 보자 커다란 애벌레가 쿠션처럼 몸을 모으고 풀밭위에 누워있었다. 때때로 찌르륵찌르륵 우는건 잠꼬대일까?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 뻔뻔스럽다고 할지, 아님 염치가 없다고 해야할지…… 빨리 번데기가 됐으면 좋겠어. 보기만해도 화가 난다니까」



나태함을 그림으로 그린듯한 모코라의 모습이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 공주에게 맞지 않는지 자신도 모르게 심한 말이 나왔다.



「언젠가는 예쁜 나비가 될거에요. 그러니까 너무 성급하게 그러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려요, 언니」



「그럴까? 근데 독나방이 되면 어떡할거야?」



말을 하던 쟌느는 갑자기 높이 솟은 코를 킁킁거렸다.



「언니?」



「뭐지? 이 냄새는…… 화약…… 기름…?」



긴장한 표정이 된 쟌느는 푸른 눈을 가늘게 뜨고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마을이 불타고 있어!」



고원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이 쟌느의 눈에 들어왔다. 화염의 기세를 보니 단순한 화재가 아니란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마 오우거족의 습격일 것이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언니……?」



불안해하는 여동생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유와는 혼자서 말을 탈 수 없다. 성으로 데려다 줄 수도, 그렇다고 싸움이 벌어질 마을로 데려갈 수도 없다.



「유와, 여기에 잘 숨어있어. 난 마을에 갔다 올테니까……」



결정했으면 주저할 필요없다. 근처 나무에 묶어놨던 말에 올라타 발로 배를 찼다.



「언니! 조심하세요!」



여동생의 걱정을 뒤로 한채 공주를 실은 말은 질주했다.




「우하하하! 모두 죽여라! 모두 죽여버려!」



오우거가 휘두르는 철퇴에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으아악!」



원시적이지만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철퇴가 집이나 가축, 사람 구분없이 마구 휘둘러졌다.



「어딜 도망치려고!」



그 옆에선 다른 오우거가 살해당한 부모의 시체옆에서 울부짖는 어린 남자아이를 도끼로 내리치고 있었다.



「마음껏 죽이고, 빼앗고, 범해라!」



흉폭한 본성을 드러낸 오우거 무리들이 작은 마을을 괴멸시키는데 걸린 시간은 짧았다. 이곳저곳에서 시체가 쌓이고 불이 타올랐다. 그러나 죽지않고 오우거에게 붙잡힌 여자들에겐 더 비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헤헤헤, 여자다! 오랜만에 보는 여자다!」



「마음껏 범해라!」



「꺄아악! 안 돼!」



여자 한명에게 두세명씩의 오우거가 덮쳤다. 여자의 몸을 완력으로 누르고 가볍게 옷을 찢어버린 오우거는 여자의 허벅지 사이로 허리를 밀어넣었다. 오우거의 자지는 인간의 자지보다 훨씬 크고 굵다. 그것을 애무도 없이 바로 집어넣자 여자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우헤헤헤! 마음껏 울부짖어라, 인간계집!」



더 흉폭해진 오우거는 여자의 보지에서 피가 배어나와도 전혀 신경쓰지않고 마구 찔러댔다. 폭력 그 자체인 능욕이었다.



「흐흐흐, 난 입에다 박아주지!」



다른 오우거는 거의 실신한 여자의 입술을 비틀어 벌리려고 자지로 눌러댔다.



「어서 입을 벌려!」



짜증나는지 뺨을 주먹으로 내려치자 여자의 얼굴은 금새 피투성이가 되었다.



「제, 제발…… 용서해주세요…」



여자는 숨이 끊어질 듯 헐떡이며 계속 애원했다.



「부디… 제발 용서해주세요……」



「아, 시끄럽네……」



입에 자지를 밀어넣으려던 오우거는 투덜투덜거리며 허리에서 나이프를 뽑았다. 뱀처럼 기분나쁘게 휜 나이프였다.



「이걸 먼저 입에 넣어야겠어」



여자의 목을 향해 떨어지던 나이프가 박히기 전에 멈췄다.



「뭐, 뭐야… 이거……?」



멍해있는 오우거의 가슴을 뚫고 은색 레이피어가 튀어나와 있었다.



「이 쓰레기들…… 감히 나의 마을을!」



분노을 억누르지 못한 소녀의 외침. 바로 금발의 미소녀검사 쟌느였다.



「감히 나의 백성들을!」



그대로 레이피어로 위를 향해 베자 오우거의 몸이 꿈틀거리며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끄아아악!」



「네놈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



검으로 끝까지 위로 베어올리자 머리가 양쪽으로 쪼개지고 피와 내장이 우수수 떨어졌다.



「너, 너는…… 쟌느…」



여자를 범하고 있던 오우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간에 쟌느의 검이 박혀들었다.



「함부로 내 이름을 부르지마라! 그 더러운 입으로!」



칼에 박힌 오우거의 시체를 발로 걷어차고 쓰러져있는 여성을 안아들었다.



「아아, 쟌느님… 감사합니다…」



「이제 괜찮으니 도블고원쪽으로 도망가세요」



강제로 범해진 것 외엔 다행히 다른 상처는 없는 것 같았다. 좀 더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었다.



「너가 쟌느인가…」



「건방진 년, 죽여버리겠다!」



동료의 갑작스런 죽음에 얼어있던 오우거들이 고함지르며 차례로 공격해왔다. 양 옆에서 창이 날아들었지만 쟌느는 당황한 기색없이 칼을 휘둘렀고 2개의 창은 두동강나서 지면에 떨어졌다.



「어, 어어…」



민첩한 반격은 원을 그리는듯한 참격. 한순간에 두 오우거의 목이 떨어졌다.



「이, 이년이!」



곧바로 가시가 잔뜩 박힌 철퇴가 날아왔지만 쟌느의 몸을 그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철퇴를 머리위로 흘려보내며 지면에 달라붙듯이 자세를 낮췄다가 오우거의 품속으로 달려들었다. 오랜 세월의 훈련으로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다.



「하앗!」



날카로운 칼 끝이 정확하게 늑골사이로 파고들어 폐와 심장을 꿰뚫었다.



「끄윽!」



즉사한 세 오우거의 몸이 차례로 무너지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두세번 호흡에 불과할만큼 짧았다.



「뭐야! 어떻게 된거야!」



「반항하는 인간이 아직 있나?」



귀신같은 실력을 지닌 검사의 등장에 흩어져있던 오우거들이 몰려들었다. 그 수는 대략 50명정도. 소녀검사를 둥글게 둘러싸고 진을 짰다.



「쟌느다! 쟌느가 왔어!」



「우오오오! 사로잡자!」



「흐흐흐, 먹음직스런 몸이다…」



천박한 웃음을 흘리는 오우거들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왔다. 숫자로 압도할 생각같았다.



「흐으음……」



이런 규모의 습격은 예상외였다. 게다가 우수한 지휘관이 있는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전체적인 움직임이 통솔되고 있었다. 하지만 쟌느의 얼굴엔 동요하는 기색이 일절 보이지않았고 오히려 두 눈동자속의 푸른 빛이 한층 더 강하게 타올랐다.



「보여주마, 나의 힘을!」



크게 외치고 검을 땅에 꽂았다.



「염열화염진(閻熱火焰陣)!」



금발의 공주를 중심으로 새빨간 불길이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원형으로 퍼지며 오우거들을 덮쳤다.



「크아아악!」



불길이 지나간 자리엔 검게 탄 오우거들의 시체가 널부러져있었다. 하지만 오우거의 군세는 아직 반수 이상의 세력이 남아있었다.



「꽤 하는군, 쟌느 그레노블」



오우거들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크고 머리에 2개의 뿔이 달린 오우거가 앞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이름은 기드. 이 부족을 다스리는 자다」



「네 놈의 이름따위는 관심없다」



강력한 마법을 사용한 직후임에도 피로의 기색은 보이지않았다. 온몸을 가득 채운 분노가 공주의 마법력을 극한까지 높여, 넘쳐나오는 마력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내 백성들을 죽인 죄는 네 놈의 목숨으로 받으마!」



그 말은 절대적인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사실 고위 공격마법과 초일류의 검술을 지닌 마법검사는 이세계에서 최강의 존재였고, 쟌느는 그중에서도 최고 레벨이었다. 그 강함은 문자 그대로 일기당천. 백명을 대적해도 완전 여유인 것이다.



「내 목숨?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봐라!」



기합과 함께 폭발적인 기세로 대검을 휘두르며 기드가 달려들었지만 쟌느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리석은 것!」



쟌느가 검의 몸체에 마력을 쏟자 레이피어에 푸르스름한 아우라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작열하는 빛의 검이었다. 강철이라도 종이처럼 베어버리는 마법검이었다.



「하아앗!」



날아드는 기드의 칼에 향해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기드의 검뿐만 아니라 몸까지도 베어버릴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 채앵!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부딪친 칼에서 불꽃이 튀었다. 마법검의 힘이 상쇄된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놀란 공주는 뒤로 훌쩍 물러나서 상대를 노려봤다.



「후후훗! 놀랐나, 공주?」



우쭐거리며 흔드는 기드의 검은 부적이라도 붙어있는지 붉게 빛나고 있었다.



「큭큭큭, 너의 마법은 내게 통하지않는다. 그리고 칼과 칼의 승부라면 난 지지않아!」



다시 칼을 휘두르며 기드가 공격해왔다. 돌풍처럼 연달아 몰려오는 공격을 하나하나 받아내며 쟌느는 생각했다.



(어떻게 오우거가 저런 것을…?)



오우거는 마법을 어려워하는 종족인지라 쟌느의 마법검을 무력화시킬만한 고도의 부적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배후에 누군가 있다는건데……)



우둔한 오우거종족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데 그럼 그 사람의 목적은 무엇일까? 하지만 계속해서 거세게 퍼부어지는 기드의 공격에 더 이상 깊이 생각할 수 없었다. 난폭한 오우거종족을 이끌만한 실력이었다. 일격 일격이 빠르고 묵직한데다가 다른 오우거들처럼 힘으로만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기술도 상당한 레벨이었다. 검과 검이 부딪칠때마다 힘에서 우세한 오우거가 조금씩 밀어붙여 어느새 쟌느는 벽까지 밀렸다.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벽까지 무너트릴 기세로 기드의 검이 옆에서 날아들었다.



「어림없다!」



눈부신 섬광과 함께 뭔가 부서지는 굉음이 울렸다.



「우하하하, 저 년도 끝이다!」



「저건 못 피해!」



오우거들은 환성을 질렀지만 섬광이 사라지고 변함없이 늠름하게 서있는 공주의 모습이 보이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럴수가……」



마법방어부적까지 붙인 대검이 두동강이 난 기드는 망연자실했다. 믿기 어려운 것을 본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공주의 등에서 좌우로 뻗어나온 푸르스름한 빛의 날개가 오우거의 검을 쳐부순 것이었다. 그것은 쟌느가 최대의 마법을 시전할 경우에만 출현하는 성스러운 아우라였다. 신성한 그 모습은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대산맥에는 천사와 관련된 전설이 있었다. 오래전, 하늘의 신을 질투한 땅의 신이 하늘에 닿을만큼 높은 산을 만들었다. 하지만 산이 너무 높아서 대륙을 2개로 분단시키는 바람에 동물이나 사람이 곤란해지자 천사가 춤추듯 내려와 산맥을 열었다고 한다. 그 장소가 현재의 리브파울이며 그 왕족은 천사의 피를 이어받았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왕족중에는 가끔 쟌느처럼 강력한 마법력을 지닌 사람이 나타나곤 했다.



「이, 이것은… 천사의 힘인가……?」



목을 쥐어짜듯 기드가 신음성을 내뱉었다. 고귀하고 성스러운 기운앞에선 오우거조차 꼼짝할 수 없었다.



「너같은건 알 필요없다」



그 말 후에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날개의 잔광만을 남기고 공주의 모습이 사라지며 작은 회오리바람이 기드의 팔 아래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기드 앞에 서있던 쟌느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건 그의 등 뒤였다.



「헛!」



뒤돌아보려고 머리가 흔들린 순간, 양쪽 경동맥에서 선혈이 뿜어져나오며 눈을 부릅뜬 채로 기드의 머리가 지면에 떨어졌다.



「기, 기드님!」



「대장이, 대장이 당했다!」



그걸 본 오우거들은 패닉에 빠졌다.



「공주님!」



거기에 기사장 키스가 이끄는 리브파울의 기사들 몇 명이 말을 타고 뛰어들었다. 대장을 잃은 오우거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얼마 안되는 원군에도 놀라 일제히 꽁무니를 뺐다.



「오우거들들 모두 내쫓아라! 고든은 주민들을 보호하고!」



「예!」



기사들을 평소 훈련받은대로 금새 잔당을 소탕해갔다.



「괜찮으십니까, 공주님?」



「키스, 여긴 어떻게 알고…?」



이 마을은 성에서 꽤 떨어진 곳이다. 원군의 도착치곤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도블고원은 위험하다고 생각되서… 무례인줄 알지만 비밀리에 경호하고 있었습니다」



성실하고 정직한 기사장다운 대답이었다.



「쓸데없는 일을… 나 혼자서도 충분한데」



고맙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좋을텐데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 쟌느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에도 기사장은 언제나처럼 충직하게 대답했다. 유별나게 까탈스러운 공주를 어렸을 때부터 대했기에 이런 모습도 자연스러웠다.



「알았으면 됐어요」



그렇게 말한 쟌느는 검을 높이 쳐들었다.



「성스러운 여신의 자비를 우리에게 베푸소서!」



고위회복주문을 영창하자 신성한 빛이 마을 전체를 감싸더니 부상당한 사람들의 상처를 순식간에 치유했다.



「이것으로 조금은…… 크윽!」



갑자기 목이 메인 잔느는 무릎을 꿇으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등에서 솟아올랐던 성스러운 빛도 사그러들었다. 사실 쟌느는 자신의 힘을 아직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했다. 감정이 고조되면 무의식중에 발동될뿐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 번밖에 펼치지 못했지만 그 힘이 최근에는 점점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도 커서 힘을 다 쓴 후엔 온 몸이 탈진해버려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쟌느님!」



키스가 당황하며 몸을 부축했다. 어깨를 잡은 큰 손바닥이 따뜻하고 믿음직해서 그의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돼… 지금은 비상상황이야…!)



「키, 키스…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부상자가 너무 많아 내 마법만으로는 힘들어요」



싸움에서 이기긴했지만 쟌느의 표정은 어두웠다. 오우거를 격퇴하긴 했지만 마을주민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부상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정도 고칠 수 있겠지만,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다. 그것은 경계에 미비했던 자신의 책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국경을 좀 더 굳건히 지키지않으면 안 돼…… 아참, 혹시 유와 못 봤나요?」



도블고원에 두고 온 여동생이 이제서야 생각난 쟌느는 키스에게 물었다.



「유와님은 호위를 붙여 성으로 먼저 모시도록 시켰습니다」



「그런가요? 고마워요」



여동생의 일에는 솔직하게 감사를 표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안 좋은 예감이 들어……)



두개의 뿔이 달린 오우거의 칼에 있던 부적때문이었다. 누군가 배후에 있다면 이 습격에도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놈은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도블고원에 왔을 때 때마침 습격이 있었던게 우연일까? 만일 우연이 아니라 계획된 것이었다면……



무서운 생각이 든 쟌느는 벌떡 일어나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쟌느님! 어디 가십니까!」



「함정이야! 유와가 위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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