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宦官)의 은밀한 色 -6-
홍귀비의 유세하에 대한 총애는 궁녀들에 의해 금세 승건궁 내부에 퍼졌다.
그에 대한 다른 환관들의 질투가 유세하에게 생겼는데, 적당히 자신의 실리를 취하면서도 적당히 다른 환관들과 타협하는 처세술로 빠르게 자리를 잡아나갔다.
승건궁에 일하는 다른 환관을 불러들여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홍귀비의 눈에 들 기회가 많아서 좋았고, 유세하는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시간이 늘어서 좋았다. 서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났을까?
그동안 유세하는 편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홍귀비에게 아부하는 일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지위가 높은 후궁이라고 해서 마냥 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종 행사에 참석해야하고 찾아오거나 초청하는 문무백관들도 은밀히 만나 자신만의 세력과 영향력을 키워야 했다. 홍귀비도 거기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지 낮에 자리를 비울 때가 잦았다.
그래서 유세하는 홍귀비가 없을 때마다 황궁무고에 드나들었다.
황궁무고는 일 관에서 삼 관까지로 나뉘었다. 일 관은 신청 후 간단한 심사를 거치면 들어갈 수 있지만, 이 관은 금의위나 동창의 위사들을 제외하고는 태감의 허가를 받아야했다. 하지만 유세하는 여기에서 홍귀비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은근 슬쩍 홍귀비에게 부탁했더니 바로 출입증을 받아 준 것이다. 그래서 유세하는 일 관에서 이 관까지는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출입이 가능 할 수 있었다. 다만, 삼 관은 황제의 허가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어 유세하로서도 어쩔 수 없기에 포기해야만 했다.
황궁무고에 들어간 유세하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빽빽한 서책들로 꽉 들어찬 서가에 진열된 비급들의 제목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급들. 불문(佛門), 도가(道家), 유문(儒門), 속가(俗家)등 여러 절기들이 산같이 쌓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천축(天竺), 서역(西域), 관외(關外), 부상(扶桑) 등 중원의 절기가 아닌 해외변방의 절기들도 무수히 많았다.
구주팔황에서 기원한 절기들을 담은 비급의 숫자는 가히 어마어마했다. 그것들 중 단 하나만 무림에 흘러들어도 온 일반 무림인들은 발칵 뒤집혀지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수없이 많은 무공비급이 쌓여 있었지만 정작 유세하의 마음을 뺏는 비급은 눈에 띄지 않았다.
유세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비전이 아니라서 그런지 뛰어나기는 하나, 최고로 만들어 줄 것은 하나도 없다!)
일반적으로 무공은 육체의 단련을 시작으로 삼는다. 기초적인 외가무공과 체력단련이 병행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렇게 꾸준히 수련을 하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몸속에 흐르는 기운을 감지할 수 있게 되는데, 그때부터 심법을 배워 내공을 키운다.
사람마다 가진 내공에는 특별한 성질을 가진다. 몸을 구성하는 신체의 특성에 따라, 또는 익힌 심법 때문에 구별되기도 하는데, 정파의 내공은 대체로 조화를 주제로 삼았다. 내공속에 담긴 여러 가지 성질을 적절히 섞어 키우는 것을 정석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파의 고수들은 맑은 정기가 흐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내공에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장점은 꾸준히 내공이 늘어간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심법은 특정기운을 극도로 키운 나머지 그것과 반대되는 내가무공을 익힐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화기가 강한 심법으로 내공을 익힌 고수는 빙공 계열의 무공을 익힐 수가 없었다. 잘못하면 주화입마를 당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가진 내공에 비해 위력이 너무 낮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포용력을 우선으로 하는 정도의 심법을 익힌 고수들은 여러 가지 성질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시 단점도 존재했다. 초반의 내공 성장이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일정 수준에 이르면 빠른 진보를 보이지만 그때까지 더딘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사파의 무공은 정파와 약간 반대의 형식을 띠었다. 여러 기운의 조화보다는 특별한 성질에 많이 치우친 심법을 익히기 때문이다. 장점은 정파와 달리 초반의 빠른 내공성장을 들 수 있고, 단점은 일정 수준까지 이르면 그 후부터는 오히려 정파의 고수보다 내공 성장이 느려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익힐 수 있는 무공이 한정적이라는 점이 있었다.
유세하의 경우는 환관이라는 신체적 특징 때문에 더 무공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적다. 양의 기운이 억눌리고 음기가 활성화된 신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고 많은 무공비급 중에서 유세하가 후보로 뽑은 무공은 ‘혼원신공(混元神功)’ 과 ‘규화마공(葵花魔功)’이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한때 황실에 전해 내려오는 무공들 중 최강의 것이기도 했던 무공이다.
혼원신공을 익히면 상대방의 공격을 끌어다가 자신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다. 즉, 반탄기공(反彈氣功)의 호신무공이다. 혼원신공은 상대방을 먼저 공격하지는 못하지만 가해진 타인의 공격에는 폭발적인 반탄력을 발휘하여 최대 다섯 배의 증폭해서 타격을 돌려보내버리니 아무리 공격을 해도 피해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역류한 자신의 공격에 당해 곤욕을 치르게 만든다.
혼원신공을 극성까지 연마하면 그야말로 천하무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혼원신공에는 치명적인 제약이 있다. 바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자만 연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몸속에 음양의 두 가지 기운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혼원신공을 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무공의 창시자가 선천적으로 남자이면서 여자인 양성구유(兩性具有)의 음양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치명적인 제약조건 때문에 아무도 익힐 수가 없어 무림을 떠돌아다니다가 황실로까지 흘러왔는데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게 된 환관도 혼원신공을 익힐 수 있었다.
암살로부터 황제를 보호해야 되는 환관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무공인 셈이었다. 그래서 호원신공은 환관이라면 누구나 수련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수련과정에서 정파의 무공처럼 인내와 각고의 노력을 요하는 관계로 혼원신공을 대성한자는 없었다. 환관이라는 존재가 무림인이 아니기에 무공에만 전념하지 않는 이유기도 했다.
현재 명 황실에서도 혼원신공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단계인 6성 이상을 이룬 자의 숫자도 다 합해서 열명이 안되는 형편으로 이들 모두는 황제의 곁을 지키는 수신호위이다.
규화마공(葵花魔功)
주원장이 명교(明敎)를 마교(魔敎)로 규정하고 탄압할 때 투신한 명교의 무공고수가 절정무공을 익히기 어려워 뛰어난 실력자가 없는 환관들을 위해 만든 무공이다. 다른 것은 다 무시하고 급속한 내공증진을 통해 무공의 위력을 높이는데 중점이 되어있다.
남성을 상실하여 소모되지 않으며 생성되기만 하고 움직임이 멈춰진 양기를 가두고, 반대로 활성화된 음기를, 음기 중에서도 한기의 특성을 극대화시킨다. 몸속의 모든 기운을 극음의 기운으로 뒤바꾸면서 내공 증진을 요하는 것이었다.
규화마공은 다른 기운은 나두고 특정 기운만 극도로 쌓아 위험이 많으면서도 엄청난 속성을 자랑하는 일반마공과는 궤를 달리하는데, 규화마공은 극음의 기운도 속성으로 쌓이지만 그와 동시에 정반대는 양의 기운과 여타 모든 기운이 전부 음기로 뒤바뀌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극도의 내공팽창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이 내공의 진전은 일반적인 무림인의 상식을 훌쩍 벗어난 속도를 자랑한다.
규화마공은 일주천의 방법도 특별한데, 단전의 기운을 모조리 뽑아내어 몸속의 여섯 방향으로 나누어 보낸다. 그렇게 나누어 보낸 기공을 다시 단전으로 일시에 옮겨 저장하고 다시 나누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강한 고통을 느끼게 되지만 일주천이 자유로워지면 몸 밖에 떠도는 자연의 음기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어 내공증진의 속도를 배가 시킨다.
주화입마에 대한 위험이 상당수 있는 방법이지만 비급에는 그것에 대한 주의사항도 세밀하게 적혀 있어 위험부담까지 줄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무공을 익힌 환관 중에서 규화마공을 선택한 인원이 꽤 되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무공이지만 확실한 위력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두 무공을 놓고 고심하던 유세하는는 힘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상 역시 규화신공을 선택해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번에는 황궁무고 일 관의 가장 후미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흠, 이곳이 마지막이군."
그곳의 서가에는 낡은 비급들이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판단하여 제멋대로 버려진 비급들이었다. 그러나 유세하는 그 버려진 비급들에 관심을 가졌다.
"진주는 진흙 속에 묻혀 있는 법, 이 중에도 나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면... 황궁무고는 기대 이하로 날 실망시킨 것이다."
유세하는 버려진 비급들 중에서 손에 집히는 대로 한 권 집어 들었다.
"...!"
극락환희경(極樂歡喜經)
<이 비급을 음서(淫書)라 여기지 말고 끝까지 일독할 것을 권하는 바이다. 만일 그대에게 천운이 닿는다면 고금제일의 신공을 얻을지도 모른다.>
무심코 집어든 비급의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고금제일의 신공이라......)
누군가 표지에 적어 놓은 글을 읽은 유세하는 바로 비급을 펼쳤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던 유세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니라 다를까, 그것은 다름아닌 하오문에서 만들어진 방중술(房中術)에 대한 음서(淫書)였던 것이다. 책의 첫 장부터 차마 민망하여 읽을 수 없는 원색적인 내용이 시선을 자극했다. 뿐만 아니라, 남녀가 짐승같이 얽혀 있는 낯뜨거운 도해(刀解)가 온통 책자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각가지 체위로 뒤엉킨 벌거벗은 남녀들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채색까지 되어 있는 그 그림들은 너무도 생생하여 마치 눈앞에서 실제 난교가 벌어지고 있는 듯이 느껴질 정도였다. 유세하는 그 자극적인 음서의 내용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훗, 이곳의 비급들을 왜 쓰레기로 분류해 놓았는지 알만하군."
그러나 유세하는 그것을 내려놓지 않고 계속 읽어나갔다.
"심기가 허한 자라면 음서라 하여 보기를 꺼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다."
유세하는 담담한 눈빛으로 쉬지 않고 책장을 넘겨나갔다. 오직 그는 새로운 내용과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할뿐이었다.
극락환희경의 내용은 다양했다.
방중술(房中術), 미술(媚術), 채음보양술(採陰補陽術) 등이 아주 상세히 기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극락환희경을 읽어가던 유세하는 점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으음...!"
뜻밖에도 극락환희경은 아주 정연한 이론을 바탕으로 저술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흔히 음서(淫書)라 하여 보기를 꺼리는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히 배신하고 있었다. 우주만물의 근원이 되는 양과 음의 조화야말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 한 힘이 된다는 신비하고도 오묘한 진리가 그 속에 포괄적인 의미로 함축되어 있었다.
유세하는 읽을수록 감탄을 거듭하며 그 내용에 빠져들어 갔다. 그런데, 얼마나 읽어 나갔을까? 유세하는 손을 멈추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책장이 붙어버린 것 같은데......”
유세하가 읽고 있는 부분은 극락환희경의 가장 뒷부분에 속한 몇 장이었다. 그런데, 책갈피 사이에 무엇이 끼었는지 서너 장의 갈피가 서로 맞붙어 있는 것이었다. 유세하는 책을 그만 읽을까 하다가 곧 고개를 흔들었다.
"기왕 본 것이니 마저 읽어야겠지."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맞붙은 책갈피를 조심스레 떼어 내었다. 다행스럽게도 책갈피는 상하지 않고 깨끗하게 떨어졌다. 그런데, 그 때였다.
툭...!
무엇인가 책갈피 사이에서 유세하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아주 얇고 가벼운 물건으로 맞붙은 지편 사이에 감추어져 있다가 지편이 떨어지자 드러났던 것이다.
"무엇이지?"
유세하는 허리를 숙여 발끝에 떨어진 물건을 집어 들었다.
"이것은 지도잖아?"
유세하의 눈이 번뜩 빛을 발했다. 그의 손에 들린 물건.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지극히 얇고 반투명했는데, 그것은 아주 기이하고 얇은 하나의 지도였다.
"글이 있다!"
유세하의 눈이 번쩍 이채로 빛났다. 기이한 지도의 표면에는 깨알보다 더 작은 글들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작고 은밀하여 범인이라면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다. 유세하의 눈에 들어온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 사념(思念)에 빠지지 않고 극락환희경을 끝까지 읽은 연자(連字)인 그대의 정력(定力)에 치하를 보낸다. 그런 뜻으로, 나 태극무황(太極武皇)의 심득을 전하고자 하니. 연자는 장보도가 가리키는 곳으로 오라. >
“태극무황의 무공이라니!”
무림역사상 "무신"이라 불리우는 전설적 인물은 한명 뿐이었다. 무신이라고 칭해지기 전의 별호는 태극무황! 그의 무공인 건곤진결(乾坤陳結) 상의 통제건곤(統制乾坤) 과 일원태극(一元太極)은 강호일절로 불리우는 성명절기였다. 천하에 적수가 없던 무공이지만 태극무황을 제외하고는 익힌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무림에서 잊혀진 비운의 무공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심득이 있는 곳이라니 유세하는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세하는 누가 볼세라 지도를 황급히 품속으로 감추고 부랴부랴 황궁무고를 나왔다. 흥분에 주체하지 못해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신에게 들어온 이 행운을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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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죄송합니다 ㅜㅜ 새 직장으로 인해 도저히 쓸염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거시기가 세우기도 귀찮을 정도여서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짬짬히 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담편까지는 무리수라는 것을 알지만 섹신이 없습니다. 그냥 쓱 훝으시고 바로 다다음편으로 가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