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宦官)의 은밀한 色 -4-
다른 환관들은 유세하가 빠른 시간만에 홍귀비의 총애를 받는 것에 놀라워했지만 유세하의 입장에선 거저먹은 것은 아니었다.
내성에 배속되어 유세하게 일하게 된 곳은 승건궁(承乾宮)이었다. 승건궁은 동서십이궁(東西十二宮) 중 동육궁(東六宮)의 한 곳으로 홍귀비의 거처였다.
[동서십이궁(東西十二宮)]
황제의 여인들의 거처로 비, 빈을 비롯한 후궁들과 궁녀들의 생활공간으로 내성의 제일 중심인 후삼궁(건청궁, 교태전, 곤녕궁) 좌우에 바둑판처럼 배치되어 있는 궁이다.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한 여인들의 애환과 한이 서린 곳으로 동육궁(東六宮)과 서육궁(西六宮)의 나뉘어 건축 형태는 기본적으로 서로 동일하게 조성되어 있지만 동궁위상(東宮爲上), 서궁위하(西宮爲下).
즉, 사실상 동육궁에 거주하는 비빈들의 지위가 서육궁에 거주하는 비빈들 보다 높았었다.
“이봐!”
유세하는 부름에 즉각 반응했다. 급히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허리를 조아렸다.
“니예! 부르셨습니까?”
“새로 왔으면 빠릿빠릿하게 할 일을 찾아 돌아다녀야지. 뭘 멍하니 보고 있어? 어서 주당에 가서 차와 다과를 가져와.”
주위에 다른 환관도 많은데 굳이 자신을 지목한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은 유세하였지만 웃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예이!”
유세하는 곧바로 몸을 돌려 주당으로 향했다.
“둔한 녀석! 빨리 가지 못해? 조금이라도 늦으면 경을 칠 줄 알아!”
“예이!”
궁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뛸 수가 없으니, 종종걸음을 더욱 빨리할 수박에. 하지만 주당에서 차와 다과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는 속이 뒤틀렸다.
“역시 느려. 그따위로 뭘 할 수 있겠어?”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됐다. 빨리 차를 가지고 들어가. 아! 차는 직접 따라드리는 것 알지?”
“예이!”
유세하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적당히 억울한 척을 해줘야 만족한다는 것을 유세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름 잘 적응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속을 뒤집은 환관을 뒤로하고 홍귀비가 다른 후궁과 담소를 나누는 방에 들어갔다. 그녀들은 깔깔거리다가 유세하가 증장하자 갑자기 침묵을 지켰다.
(내 이야기를 한 것인가?)
유세하는 모른 척 탁자로 다가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강녕하셨사옵니까. 마마!”
유세하의 화사한 미소는 실내 분위기까지 밝게 만들어 놓았다.
쪼로록!
홍귀비와 후궁. 그 사이에 있는 탁자 중앙에 다과를 놓고, 찻잔에 차를 따르는 그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호기심 많은 여인네 둘은 유세하의 전신을 여기저기 뜯어볼 뿐, 차와 다과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유세하는 태연하게 행동했다.
(이것 봐라...)
마지막 찻잔에 차가 담기자 주전자를 놓은 유세하는 그제야 여인들의 시선을 알아챈 듯 얼굴을 붉혔다.
“제, 제 얼굴에 뭐가 묻었사옵니까?”
홍귀비가 정색을 하며 농을 걸어왔다.
“얼굴이 아니라 다른 곳에 묻어 있구나! 호호!”
(역시, 저질스런 장난이군!)
유세하의 생각은 표정에 담기지 않았다. 용담호혈이라는 황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내서원 때부터 나름 철저하게 연습했었다. 성격과 심성을 완벽히 숨긴 능청스러운 연기는 몸에 딱 맞는 옷처럼 그와 어울리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며 즉시,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초보 환관이 되는 것이다.
“무엇이 묻었사옵니까?”
그녀들의 장단에 맞혀주기 위해 허리를 굽혀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홍귀비의 맞은 편 옆에 앉아있던 이십대 중반의 후궁. 동육궁에서 홍귀비 다음의 서열을 가진 진빈(嬪)이 홍귀비의 눈빛을 주고받더니 유세하의 아랫도리에 손으로 툭 쳤다.
“여기에 있지 않느냐!”
예상했던바. 유세하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얼굴까지 붉히며 부끄러운 표정을 연기하는데, 누가 보아도 순진한 모습이었다.
“왜, 왜 이러시옵니까?”
진빈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들은 바와 같이 물건이 실하구나!”
“정말?”
(누구한테 들었다는 거야?)
진빈의 말에 홍귀비는 유세하를 바라보았다.
유세하는 속으로 놀랐다. 외성에서 있을 때 남성의 기능을 검사한 적이 있었다. 나무 막대로 아랫도리를 건드려 일어나는 반응을 살펴 기능의 유무를 판별하는 방식인데, 형식적인 검사 같았다.
(제대로 된 검사가 아니라 간단한 검사라 이상했는데 왜 검사했는지 알겠군!)
황궁에서 통정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궁에서 궁녀들을 상대하는 환관은 대부분 통정이라 했다. 특히 남근이 온전히 붙어 있는 통정을 선호한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때의 검사는 남근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음란한 여인네들은 그때의 검사관이었던 환관에게 새로 오게 될 유세하에 대한 정보를 구했을 터였다.
(그럼, 기대에 부응해 줘야겠지? 큭큭...)
생각을 끝으로 그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두어 걸음 더 물러섰다. 그러자 홍귀비가 야릇한 눈빛과 달리 귀품이 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사고로 그리되었다고 들었는데,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니예!”
“이리 가까이 오너라.”
유세하는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빼는 맛이 있어야 값이 올라간다.
과연, 홍귀비는 은근히 재촉했다.
“이리 다가오라는데도!”
“마마, 그건 좀......”
“어허! 그렇게 수줍음이 많아서야 어찌 비빈들의 수발을 들꼬 어서 가까이 오라.”
유세하는 긴장한 얼굴을 숨기지 않고 걸음을 떼었다. 진빈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쳐다보는데, 그때 홍귀비의 손이 유세하를 잡아끌었다.
“마마!”
“어허, 가만히 있어 보아라.”
유세하는 짐짓 놀란 척을 했다. 홍귀비는 유세하의 반응에 아랑곳 않고 엉덩이, 등, 허리, 어깨, 종내에는 가슴까지 더듬었다.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걸. 이러면서도 황제 앞에선 순진한 척하겠지.)
아마 황제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정이 떨어질 것이라고 유세하는 생각했다.
“아! 어찌 이리 몸이 탄탄할꼬.”
놀라움을 숨기지 못해 터져 나온 탄성!
홍귀비는 동그란 눈으로 유세하를 바라보았다.
“무공을 할 줄 아느냐?”
“니예! 처음 입궁할 때 동창에 뜻을 품어 내서원 때부터 호신술 몇 가지를 익혔사옵니다.”
홍귀비는 언제 유세하의 몸을 더듬었냐는 듯이 찻잔을 잡고는 차를 홀짝 마시며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주저 말고 날 찾아오너라.”
“망극하옵니다.”
“호호. 이만, 나가보아라.”
“니예!”
공손히 허리 숙여 감사한 유세하는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나왔다. 방문을 닫자 홍귀비와 진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유세하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훗, 단순하긴!)
그때, 문 앞에 서 있는 환관을 발견하고는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자신에게 차 심부름을 시킨 녀석이었다. 그런데 유세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경계하고 있군!)
유세하는 확신했다. 홍귀비가 새로 온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불안했을 것이다. 아직도 들리는 홍귀비의 웃음소리에 맞춰 그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내 허락 없이 이곳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알겠느냐?”
(예감이 맞구만...)
하지만 유세하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알겠나이다.”
“알았으면 꺼져!”
“니예!”
돌아서는 유세하는 더욱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복이 그냥 굴러들어왔는데, 놓치는 것이 바보지. 귀비는 이제 내 밥이다. 그녀는 내가 한 걸음 전진하는데 중요한 발판이 되어야 해.)
그날 이후 유세하는 감시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홍귀비의 처소를 몰래 드나들었다. 홍귀비의 얼굴을 볼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유세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홍귀비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기회가 왔다. 승건궁의 당직을 서게 되어 별채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깊은 밤, 유세하는 순시(巡視)를 나섰다. 승건궁의 이상 유무를 살피며 이곳저곳을 돌아보던 그는 홍귀비의 처소에서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 아무런 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한 유세하는 귀비의 침소 창가에 준비했던 서신을 끼워놓고는 숨어서 돌멩이를 주워 던졌다. 불이 켜질 때까지.
잠시 후, 창문이 살짝 열리며 홍귀비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녀는 창밖을 두리번거리며 소리의 출처를 찾았다. 그러다 서신을 발견하고는 급히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녀는 다시 주위를 살폈다. 본 사람이 없는지, 혹은 누가 서실을 가져다 놓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담장의 어둠에 몸을 숨어 홍귀비를 바라보던 유세하는 미소를 지었다.
(받아 본 적이 있을까나 몰라?)
유세하가 홍귀비에게 준 것은 일종의 연서(戀書)였다.
궁녀 대부분이 그러하듯 어릴 때 궁에 들어와 남자를 모르고 성장한다. 경험이 전무하다보니 사랑에 대한 환상이 어느 여인보다 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홍귀비도 궁녀 출신이니 연서 같은 것은 받아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아마, 들떠서 잠을 못 잘지도 모르겠군!)
판단이 잘못되어 그녀의 마음을 잡을 수 없더라도, 노리개나 희롱의 대상쯤으로 생각했던 어린 환관이 달리 보이기는 할 것이다. 신선함! 그것이 유세하가 홍귀비에게 주고자 했던 바였다.
반응은 바로 다음날 왔다.
“유 환관. 피곤하겠지만 오늘도 당직을 서야겠다. 낮에 푹 쉬고 밤에 승건궁으로 가게!”
“예이.”
(넘어왔어!)
순시를 마치고 처소로 돌아온 유세하는 동료 환관에게 붙들렸다.
“어떻게 하신 거에요?”
“뭘, 말인가?”
“어떻게 귀비마마의 마음을 이렇게 빨리 잡았냐구요? 당직을 연달아 선다니 제 촉을 무시하지 마세요. 이건 뭐가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지? 궁녀와 환관은 그렇고 그런 관계가 가능하잖아.”
“유 환관이 궁녀들이 좋아하는 매력이 있기는 하지만... 잘생겼다고 궁녀들이 아무 환관이나 건드리지 않아요. 특히 지위가 높은 마마님들은 더 그렇죠. 마음에 있는 궁녀를 잡을 수 있다면 모두 권력을 가질 수 있게요?”
“훗, 날 잘 본 모양이지.”
“어쩌면 하룻밤의 노리개로 전락할지도 몰라요. 말 그대로 봉사만 하고, 얻는 것 없이 버려지는...... 유 환관이 알아서 잘 하세요. 전 이만 갈게요.”
나름 충고라고 해주고 떠나는 환관을 보며 유세하는 피식 웃었다.
“노리개가 될 생각이었으면 시작도 안 했다.”
혼잣말을 뒤로한 유세하는 당직 후 주어지는 취침 시간을 포기하고 문연각(文淵閣)으로 향했다. 문연각은 황궁 내에 있는 서적을 보관하는 곳으로 병서, 법서, 화서, 시문 그리고 진귀한 서적뿐만 아니라 종류를 따질 수 없는 수많은 서적까지 모여 있는 장서각이었다.
황궁무고도 문연각 지하에 있는데, 그곳을 관리하는 환관의 말을 듣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공비급만 수만 권이 지하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시 와야겠어!)
권력뿐만 아니라 힘도 가지고 싶은 유세하는 무공에 대한 호기심에 그런 다짐을 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방중술(房中術)에 관한 책이었다. 일반적인, 그래서 환관이나 궁녀라면 의례 배우고 익히는 방사서적부터 잦아 읽기 시작했다. 다음은 오래되어 찾기 어려운 책. 색(色)과 관련된 것이라면 모조리 뽑아 읽어 나갔다. 그 때문에 꽤 신비로운 내용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남성의 성기를 단련하는 방법에서부터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근육운동까지 다양한 것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 외에도 의학서적을 찾아 혈도의 기능도 파악했다. 내서원에서 배워 혈도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의학적인 기능은 잘 몰랐기 때문이다. 특히, 성적인 자극에 대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외우고, 나름대로 안마 방법에서 여러 가지 애무에 대한 방법까지 만들어 내었다.
(내가 찾는게 이거긴 했는데... 의서를 이런 식으로 응용하는 놈은 나밖에 없을 거다!)
순간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많이 알아서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이 약간의 위안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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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드디어! 황궁무고라는 떡밥을 던졌습니다.
인공이에 무공을 줘야하니까요.
양강무공은 절대 안돼고!!! 환관이 양의 무공을 쓰면 gg니까요.
음한, 사술, 색공 계열을 택해서 테크트리 타야될 것 같습니다.
그냥 규화보전 줘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