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2
2.
하지만 그게 다였다.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런 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아니면 제대로 찍히지도 않는 카메라와 무섭기만 한 문자. 별 도움 안되는 사전. 전화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실험해봤다. 수화기에 대고 말을 하자마자 내 머릿속으로 내가 한 말이 들려왔다. 머리가 좀 아플 뿐이었다. 그나마 지도는 유용할 것 같았다. 처음 들어간 건물도 이 것만 있으면 안심...이래봐야 건물에서 길을 잃을 경우가 많을 리가 없다. 그나마 유용한 정도지 쓸만한건 아니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엄마는 날 기다리고 있었다. 자식이 돌아올때까지 기다리는 엄마라면 왠지 모정이 넘치고 훈훈할 것 같지만 아니다. 꼭 나를 협박하는 듯한 느낌이다. 공부하라고. 더 공부하라고. 솔직히 내가 멘탈이 유난히 강해서 버틴거지 다른 사람이 이런 엄마를 만났으면 아동학대로 정신이상이 와도 이상하지 않다. 책상의 스탠드에 불을 켜고 문제집을 폈다. 이렇게 한 시간을 더 공부하고 나서야 엄마는 자러 들어갔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잘 준비를 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갔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그냥 평범한 남녀공학이다. 장점은 여자 교복이 예쁘다는 정도일까. 수험 성적도 별로 좋지 않은 그저 그런 학교지만 어차피 나 정도 되면 학교에서 배우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전교 1등을 쭉 유지하면서 대학에 쉽게 들어가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중학교때 공부를 어중간하게 하는 애가 공고에 들어가서 좋은 내신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달까. 뭐 그런 것 말고도 장점은 있다. 편하다. 교사들은 왠만하면 내 편의를 봐주려고 한다. 학교에서 강제로 잡아두는 야간자율학습도 나는 면제다. 수업중에 다른 문제집을 풀어도 왠만하면 건드리지 않는다. 뭐 내신은 좋게 받아야하기에 가끔 교사의 말에 귀기울이기도 한다.
물론 다른 학생들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 건드리면 어떻게 될지는 불보듯 뻔하니까 말이다. 전교 1등과 양아치가 시비가 붙었으면 교사들은 어느 편을 들겠는가? 당연히 전교 1등이다. 전교 1등이 좋은 대학에 가면 그게 학교의 실적이 된다. 양아치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도리어 학교에 들어올 뛰어난 학생들을 줄일 악소문들을 만든다. 기브 앤 테이크. 피해만 입히는 사회의 쓰레기들은 대우를 해줄 가치가 없는게 당연하다. 뭐 가끔 집안이 좋아서 방약무인하게 날뛰는 놈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배경은 나도 뒤지지 않는다.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죽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부유하게 살 수 있을 만큼의 재산을 남겨준 아버지다. 아버지가 설마 자수성가해서 그만큼 재산을 모았겠는가. 집안이 좋아서 그런거다.
아무튼 학교에서 나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말이다. 군기 잡고 애들을 무섭게 몰아치는 호랑이 선생님이라도 날 건드리긴 까다롭다. 아랫사람을 험하고 거칠게 휘어잡는 사람일수록 윗사람한테 설설 기는 법이다. 날 건드리면 당장 교장부터 교감 교무부장의 내리갈굼이 시작될텐데, 과연 날 건드릴수 있을까? 물론 내가 머리를 새빨갛게 염색하고 온다거나 담배를 복도에서 피운다던가 하는 일을 저지르면 보는 눈이 있으니까 날 안건드릴수는 없다. 그러니까 그런 짓만 안 하면 터치받을 일이 없다는 거다. 머리를 검은색에 가까운 색으로 염색한다던가, 화장실이나 학교 뒷뜰에서 담배를 피우고 와서 옷에서 담배냄새가 난다던가 하는 정도는 ok다.
아침에 등교 하자마자 가방을 사물함에 쳐넣고 나는 교무실로 향했다. 20대의 심약해보이는 여선생이 내 담임선생이다. 다행히도 그녀가 담당하는 반엔 정도가 심한 양아치들은 들어오지 않아서 망정이지 그런 양아치들이 들어왔으면 이 여자는 몇 달만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여,연우야. 무슨 일이니...?"
학생을 보고서 긴장하는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나는 딱히 표정을 바꾸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제가 아파서요. 어제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느라 그런거 같은데 오늘 하루 양호실에서 좀 쉴수 있을까요?"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이 꾀병을 부려 양호실 침대에서 한 교시라도 뒹굴거리는 것을 꿈꾸고 아픈 척 하기를 연습하지만, 난 그런거 필요 없다. 전혀 아파보이지 않는 표정과 말투로 당당히 하루를 빼먹겠다고 말해도,
"아, 그래... 그럼 가서 쉬렴. 선생님이 말 해 놓을게..."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OK다. 어차피 가방은 사물함에 넣어뒀으니 딱히 교실에 돌아갈 일도 없고 만나야할 친구도 없다. 내가 재수없나보다. 결국엔 자기가 못해서 느끼는 자격지심일 뿐인데 왜 남의 성격을 걸고 넘어지나 싶다. 나는 교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양호실로 직행했다. 양호실에서도 몇 번의 대화를 빙자한 무의미한 문답(아프니? 저기가서 누워라. 약줄까?) 을 끝내고 침대에 누웠다. 처음 학교에 들어올 때엔 몰랐던 거지만 이 양호실. 굉장히 좋다. 원래는 초,중,고 다 있던 부지를 밀어버리고 고등학교 하나만 세우니 공간이 남아도는 관계로, 이 양호실은 아예 병실을 따로 둔다. 병실이래봐야 침대 여섯개와 칸막이가 다지만 말이다. 게다가 돈 낭비의 느낌이 심하게 든다. 다치면 엠뷸런스 타고 병원에 가지 양호실 침대에 누울리가 없다. 뭐 꾀병부리는 나로서는 좋기만 하다.
제일 안쪽의 침대를 차지하고 나서 나는 일단 눈을 붙였다. 이렇게 며칠에 한 번씩 잠을 보충해주지 않으면 몸이 못버틴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바깥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걔 진짜 완전 재수없지 않냐? 지가 예쁜줄 아나봐."
"글고 보니까 성준이한테 꼬리친것도 걔야? 완전 걸레네?"
"그러니까~"
여자들의 대화인 것 같았다. 흰색 휘장 사이로 침대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 그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쟤는...오지은이고, 쟤는 성을 모르겠네. 이름은 현주...인가 그러던데."
이른바 노는 여자애들이다. 짧게 줄인 치마. 밖으로 내놓은 몸에 딱 맞는 블라우스. 귀걸이에 화장까지 한 발랑 까진 애들. 전설의 운봉 공고나 성지고 같은 개막장 학교는 아니지만 이 학교도 은근히 불량학생들이 많다. 두발규정이 이 근처 학교에 비교해서 느슨한 편이니 그걸 노리고 오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저기 있는 오지은과 그 옆의 엑스트라1은 공부 때려치고 막나가는 애들이다.
"오늘 어디갈거야?"
"오늘 오디션 보러 갈건데? 같이 갈래?"
그 중에서 오지은은 외모로만 따지면 최상급. 고딩의 어설픈 화장으로도 그 미모가 전혀 가려지지 않는 데다가 블라우스를 꽉 줄여입어 몸의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게 장난아니다. 막말로, 꼴린다. 머리에 든건 하나도 없고 연예인이 될려고 하릴없이 오디션만 보는게 단점이긴 하지만 말이다. 요즘 네티즌들이 보통 사람들인가. 이름만 알면 과거 행적 낱낱이 밝혀내는건 일도 아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애들 삥뜯고 오토바이 타고 떡치러 다니는 년을 뽑겠냐고.
"그나저나 이쁘긴 진짜 이쁘네."
이 쪽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녀는 열심히 수다떨고 있었다. 엑스트라1이 고맙게도 내 침대 쪽에 앉는 바람에, 나는 오지은의 얼굴을 느긋하게 감상할수 있었다. 물론 그녀의 시선이 어디 가있는지는 꼼꼼히 살피며 봤다. 서클렌즈를 꼈는지 커보이는 눈과 작고 오똑한 코.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인조 코와는 대화를 거부한다. 거기에 핑크빛 입술과 잡티 하나 없는 피부(화장을 했으니까 정말인진 모르겠지만). 사진으로 찍어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잠깐, 사진?"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그녀를 찍고 싶다는 욕망이 소용돌이쳤다. 나는 혹시 몰라서 카메라의 플래시 부분을 손가락으로 막았다. 빛이 새나가서 들키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여전히 이쪽을 신경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어제의 경험으로 알아낸 사실-얼굴밖에 안찍히므로, 초점을 그녀의 얼굴에 잡았다. 하지만 사진은 찍히지 않았다.
"뭐지?"
몇 번이고 셔터 버튼을 눌러봐도 사진은 찍히지 않았다. 나는 다시 카메라를 돌려서 나를 찍어보기로 했다. 셔터를 누르자마자 빛이 번쩍였다. 찍히는 건 확실했다. 설마 나만 찍히는 카메라는 아니겠지 하고 다시 그녀를 도촬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진은 찍히지 않았다. 그 때 내 머릿속을 어떤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내 얼굴을 찍어보았다. 이번엔 바로 옆에서. 플래시는 터지지 않았다.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야된다는 건가... 곤란한데."
내가 보는 각도로는 오지은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드러나게 한 다음 찍으면 그건 도촬이 아니다. 100% 들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결국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마치 팬더의 교미를 관찰하려 대나무 숲에 숨어서 며칠을 기다리는 사진 작가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프로고 난 아니다. 단 몇 분을 기다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것 만으로도 손이 저려왔다. 이젠 그냥 한 손으로는 셔터 버튼을 꾸준히 누르고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기를 십 여분. 그녀가 이쪽을 바라볼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팔과 손가락만 아플 뿐이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뭐야?"
"왜?"
"아니, 저쪽에서 갑자기 반짝 하는거 같아서..."
"착각이겠지."
나는 떨린 가슴을 안고 침대 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중이었다.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저린 손가락이 스마트폰을 놓치고, 어느 순간 플래시가 터지고, 그녀가 이쪽을 돌아보고 내가 스마트폰을 주워들어 이불속으로 숨은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났다.
"왜 터졌지?"
나는 이불 속에서 스마트폰을 다시 켜봤다. 여전히 똑같은 홈 화면이었지만 아이콘을 눌러보자 다른 점이 있었다. 목록에 내 이름 뒤에 오지은이 있었다. 내 가슴이 흥분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홈 화면으로 돌아가 사전 아이콘을 눌렀다. 내 이름 밑에 사진과 그녀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나는 그 것을 눌렀다. 나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사진 옆에 이름이 뜨고 그 밑으로 온갖 잡다한 정보가 떠올랐다. 나는 사진에 주목했다.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와있는 내 사진과는 다르게 이 사진에는 그녀의 얼굴과 상반신이 드러나있었다. 떨어지는 중에 찍힌 사진이었다.
일단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지는 뒷전에 놓고, 나는 그녀의 기록을 읽었다. 이름 오지은. 성별 여. 국적 대한민국. 나이 18세. XX고등학교 재학중. 여기까진 평범했다. 그 다음이 재밌었다.
"성교 횟수 13회. 유사성교 횟수 21회라... 이런것도 나오는건가."
성교 밑에는 무언가가 써져있는 듯 했지만 흐릿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일단 페이지를 넘겼다. 다음 페이지는 온갖 수치들이 잔뜩 나와있었다. 내 페이지에도 써있었던 근력이나 지능 같은 것들(지능이 의외로 높았지만 지식은 안쓰러울정도로 낮았다) 과, 키, 몸무게, 쓰리 사이즈는 물론이고 생리 주기나 양 같은 것도 나와있었다. 또한 새로운 패러미터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성욕이었다. 기준을 모르니까 이정도가 높은지 적은지는 감이 안잡혔지만 내 성욕 수치에 비해선 높았다. 일단 사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였다.
그 다음으로 체크한 것은 지도였다. 정확하게 그녀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었다. 내 위치도 확인해보니 그녀의 위치에서 약간 옆이었다. 다음은, 문자였다. 문자 아이콘을 누르고 그녀의 이름을 누른 다음 나는 적당한 내용으로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나서도 몇 분 간은 변화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보내볼까 하고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이,이거 뭐야!?!!"
"왜,왜 그래 지은아?!"
그녀가 주머니에서 꺼낸 손 거울을 본 순간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아마 저 거울에 붉은 색으로 문장이 나타나있을 것이다.
"거,거울에 글씨가 써있어. 안보여?!"
"아,아무 것도 안보여..."
오지은은 정말로 겁에 질린 얼굴로 울먹이며 옆의 엑스트라1을 보채고 있었지만 엑스트라1은 거울 속의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아마도 문자를 보내면 받은 대상만 보이는것 같았다. 나는 여세를 몰아서 오지은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이, 이거 뭐야? 조, 조용히 해봐! 무슨 소리 안들려?!"
"무, 무슨 소리야. 안들리는데...?"
"아냐, 들린단 말야. 조용히 해봐. 뭐, 뭐야...?!"
오지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나는 혹시라도 들킬 것을 대비해 최대한 목소리를 깔고 수화기에 말하고 있었다. 속삭이는 정도로 말이지. 갑자기 거울에 나타난 글씨로 놀란 그녀로서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침한 목소리에 기겁하지 않을 수가 없을것이다. 그 때였다. 너무 지나치게 장난쳤는지 그녀가 병실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엑스트라1도 그녀를 쫒아갔다. 나는 그 걸 보고 통화를 끊었다. 그녀 덕에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유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