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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스마트폰1



1.


나는 책상에 앉아 핸드폰들을 꺼내보았다. 먼저, 4년동안 써서 낡아빠진 폴더형 핸드폰. 그리고 방금 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주워온 알지 못하는 기종의 스마트폰. 시계를 보니 독서실에 가기 전까지 어느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잡아들었다. 배터리 일체형인지 끊어짐 없이 매끈한 뒷면엔 꽤 좋아보이는 카메라 렌즈가 달려있었다. 액정은 꽤나 컸다. 4인치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2.2인치 짜리 좁아터진 피쳐폰 화면만 보고 살던 나에겐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옆을 살펴보니 특이하게 이어폰 단자나 sd카드 슬롯이 없었다. 있는건 전원 버튼과 볼륨 버튼, 그리고 microUSB 단자였다. 나는 전원을 눌러보았다.


"어... 이게 뭐야."


화면은 지나치게 단촐했다. 검은색의 배경위에 어플리케이션 아이콘들이 정렬되어 있을 뿐이었다. 손가락으로 이리 저리 밀어보기도 했지만 홈 화면은 이게 다인듯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콘이 많지도 않았다. 전화, 문자, 카메라, 지도, 사전 이렇게 다섯가지가 끝이었다. 외형은 꽤나 고급스러워서 고급 스마트폰인줄 알았는데 영 아니었다. 나는 전화 아이콘을 터치했다. 화면이 바뀌었다. 흔히 보던 스마트폰의 전화 화면과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다른점은 키패드가 안보인다는 것이었다. "통화하기"정도의 뜻일거라고 생각되는 녹색 수화기 아이콘과 그 밑에 하얀 빈칸들만 있었다.


"이러면 뭘 할수가 없잖아."


문자도 마찬가지였다. "문자보내기" 기능이라고 짐작되는 아이콘 밑에 흰 빈칸만 있었다. 아이콘은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황량한 홈 화면으로 돌아왔다. 사전도 마찬가지였다. 나오는 내용이 없었다. 카메라는 좀 달랐다. 핸드폰에서 카메라 기능을 켜면 나오는 그대로 실행됐다. 카메라를 통해 찍혀나오는 화면과 한쪽에 있는 셔터버튼. 하지만 아무리 눌러도 셔터 버튼은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남은 지도 아이콘을 눌렀다. 아니나 다를까 지도 그림이 들어간 아이콘 밑으로 흰 빈칸만 차있을 뿐 그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마 이 건 중국에서 만든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wii 나 ps3, xbox같은걸 모방해서 겉모양만 대충 따라하고 속엔 몇십년전 게임칩을 박아놓고 빈 공간엔 납덩이를 넣어놓는가 하는 그런 사기. 이 걸 길에서 줍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집에 왔던 내가 한심스러워졌다. 그 때 였다.


"연우야? 독서실 갈 시간이다."


내 방 문을 열고 엄마가 들어왔다. 나는 신기에 가까운 반응속도로 책상위에 있던 스마트폰을 바지주머니 안으로 숨겼다. 공부에 방해된다고 컴퓨터를 거실에 놓고 핸드폰도 구형으로 사주는 내 엄마한테 이런 걸 보여줘서 좋은 소릴 들을 리가 없었다.


"아,네. 갈려고요."


나는 이미 싸둔 가방을 맸다. 안에 들어있는 참고서와 문제집들이 꽤나 무거웠다. 이렇게 가방을 무겁게 하고 다니니 내 키가 자랄리가 없다. 나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옆집 영식이는 키가 180이 넘지만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나는 앞치마를 차려입고 있는 엄마를 지나 현관으로 향했다. 펑퍼짐한 옷만 골라입고 앞에 앞치마까지 둘렀지만 엄마의 가슴은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40에 가까워지는 내 엄마였지만 몸매나 얼굴은 왠만한 20대 못지 않았다.


"응, 그래. 오늘도 열심히 해. 엄마가 너만 보고 사는거 알지?"


"네,네. 알아요."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집을 나섰다.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엄마는 온 기대를 나에게 쏟았다. 지나칠정도로 애를 굴렸다. 과장 좀 보태서 내 몸만한 가방을 둘러매고 학교가 끝나면 학원 학원 학원 그리고 집에 오면 어느새 자정을 넘겼다.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엄마는 날 억지로 붙잡고 새벽까지 공부를 시켰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으로 생활은 전혀 곤란하지 않았다. 엄마는 다른 사회생활까지 끊어가면서 날 달달볶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에야 웃어넘기지 그 때는 정말 지옥같았다.


그에 비하면 학원같은건 다니지 않고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는 지금은 정말로 행복하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내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 전교 1등을 한번도 놓치지 않으면서 어머니에게 믿음을 주고 담임선생님을 몰래 매수해서 어머니에게 "이 아이는 이미 충분한 지식이 있으니 혼자 공부하는게 더 나을수 있다" 같은 말을 하게 만들고. 뭐 지금도 어머니는 독서실 출석 카드를 칼같이 점검하니까 밖으로 돌수는 없지만 그래도 누가 공부하라고 등 뒤에 서있지 않은 것 만으로도 만족한다.


독서실에 도착해서 몇 시간 동안 예습 복습을 마치고, 딱히 할게 없어진 나는 주워온 스마트폰을 꺼냈다. 여전히 홈 화면은 삭막하고 되는 기능은 없다. 그래도 그나마 반응을 보이는 카메라를 켰다. 아무리 셔터 버튼을 눌러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건 여전하다. 이번엔 카메라를 반대로 돌려서, 이른바 "셀카"를 찍어보기로 했다.내 낡은 폴더폰으론 꿈도 꿀 수 없는 짓이다. 셔터버튼의 위치를 대충 가늠하고 렌즈를 내 얼굴쪽으로 향했다. 어차피 될거라고 기대도 안하지만 그냥 해보는 짓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셔터버튼을 눌렀다.


"...뭐, 뭐야?!"


번쩍, 하고 플래시의 섬광이 내 눈을 찔렀다.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격에 나는 소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독서실 알바가 내게 와서 주의를 줬다. 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알바가 제자리로 가자 다시 스마트폰을 보았다. 다시 한번 카메라를 켜서 이번엔 내 필통을 찍어본다. 스마트폰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의자를 뒤로 좀 밀치고 내 허벅지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번에도 역시 찍히지 않았다. 나는 카메라를 서서히 내 머리까지 올려가며 셔터를 눌러보았다. 내 얼굴이 카메라에 전부 담기자 그제서야 카메라가 반응했다. 이번엔 대비했으므로 눈을 살짝 찌푸리는 것으로 끝났다.


"어,얼굴만 찍히나?"


셀카전용 카메라라니, 무슨 이런게 있나. 게다가 여전히 화면에는 셔터 버튼 밖에 나오지 않았다. 찍힌 사진을 볼 수 있는 갤러리같은건 없는 것 같았다. 별 다른 변화가 있는지 홈 화면으로 돌아가 전화 아이콘을 눌러보았다.


"...뭐지 이게?"


통화 버튼 밑의, 그 전까지는 비어있었던 공간에 변화가 생겼다. 주소록인 마냥 내 사진과 이름이 적혀있었다. 방금 전에 셀카로 찍은 사진이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내 이름은 어떻게 들어가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에 끌리듯이 내 사진을 눌렀다. 그러자 통화 버튼 옆으로 내 사진과 이름이 나왔다. 통화 버튼은 묘하게 반짝이고 있는 것이 자신을 눌러달라고 하는 듯 했다. 나는 그 것을 눌렀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대자 정말로 신호가 가고 있는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일단 통화를 종료했다. 아직 독서실 안이었다. 소리가 나는 건 곤란했다.


다음엔 문자였다. 역시나 내 사진과 이름이 나와있었다. 똑같이 사진을 누르고 버튼을 누르자 일반적인 스마트폰의 문자보내는 화면 그대로 변했다. 위엔 쓴 문자 내용이 나오고, 아래엔 가상 키패드가 있는 꼴 말이다. 나는 문자를 한 번 보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엉성한 손길로 문장을 쓴 후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 후 몇십 초를 숨죽이며 기다렸다. 하지만 딱히 변화는 없었다. 허탕인가 하고 내가 고개를 들자 독서실 책상에 달려있는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흐,흡...!"


입 밖으로 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억누르고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하며 다시 한 번 거울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이 깨끗해야 할 거울엔 붉은 색으로 어떤 문장이 쓰여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내가 방금 전에 문자로 보낸 내용 그대로였다. 눈을 몇 번씩 감았다 떠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그 글자는 그대로 그 곳에 있었다.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전과 똑같이, 다시 한 번 문자를 보냈다. 이 번에는 문자를 보내자마자 거울을 응시했다. 그러자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그 전에 쓰여있던 글자는 어느새 지워져있고 붉은 색으로 내가 방금 전에 쓴 문장이 한 글자 한 글자 떠오르고 있었다. 이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나는 스마트폰의 다른 기능도 시험해보기로 했다. 이 번엔 사전이었다. 사전 아이콘을 누르자 이번에도 역시 내 사진과 이름이 목록에 올라와있었다. 나는 주저없이 그 것을 눌렀다. 그러자 이 전엔 본 적이 없는 화면이 나타났다. 화면의 아래엔 수정 버튼과 <, > 버튼이 있었다. 아마 페이지를 넘기는 버튼일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에 대한 정보였다. 내 사진과 그 옆의 이름. 성별. 나이. 생일. 출신 국가들은 어디 하나 틀린게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밑에 써있는, 내가 몇 살에 어느 학원을 다녔고 얼마나 다녔는지가 정확하게 기록되어있었다. 지금은 가물가물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까지 빼곡히 적혀있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이제는 패러미터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근력, 지능, 지식 같은 능력에 대한 것부터 두려움, 놀람 등으로 표현되어 있는 감정까지. 놀람은 패러미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두려움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다시 페이지를 넘겼지만, 그 곳엔 아무 것도 써있지 않았다. 그저 백지일 뿐이었다. 나는 다시 홈 화면으로 돌아왔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였다. 지도. 아이콘을 누르자 잠깐의 기다림 뒤에 지도가 나타났다. 위성 지도같은 모양이었다. 확대, 축소가 있고 지도 가운데에 빨간색으로 점이 하나 찍혀있었다. 아마 나인듯 싶었다. 확대를 몇번 해보자 더 확실히 드러났다. 도로와 건물이 빼곡히 채워진 지도에는 각 건물마다 이름이 붙어있었다. 내가 있는 건물도 그랬다. 영신 빌딩. 그 건물을 눌러보자 화면이 또 변했다. 이번엔 마치 투시를 하듯이 건물이 선으로만 그려져있었다. 영화에서 특수부대에게 침투할 건물의 구조를 알려주는 듯한 모양이었다. 내 위치, 즉 이 독서실이 영신 빌딩 안에서 있는 위치도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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