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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작은 열쇠] 1. Black cat (2)

 
 일이 손에 잡힐리가 없었다.
 옆자리 연구원이 왜 이리 넋이 나가 있냐며 로또 1등이라도 되었냐고 농담을 했지만, 이게 진짜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의 세뇌약이라면 로또 1등보다 수십배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재벌에게 이 약을 먹이면 나를 후계자로 지목할 수 있다. 대통령에게 먹이면 내가 정치계의 흑막이 된다. 무슨 수로 그런 잘난 사람들을 만나 이걸 먹이냐고? 나와 목표 사이의 연결고리도 세뇌가 가능한 이상 단순히 시간 문제다.
 하지만 이건 당첨도 되지 않은 복권 당첨금을 쓸 궁리나 마찬가지다. 나는 필사적으로 이성을 잡고 판단한다.
 
 더 많은 검증이, 데이터가 필요하다.
 
 병헌이 형은 취해 있었다. 즉 술취한 남자에게서 우연히 나온 효과일수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병헌이 형에게만 통하는 약이었을 수도 있다. 심지어 병헌이 형 마저도 그날 몸 속에 있던 이물질이- 대표적으로 알콜이 섞여 우연히 만들어 진 단 한번뿐인 효과일지도 모른다.
 세뇌 지속시간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판단 마비시간 동안 주입된 상식이 깨어난 이후 모순을 일으키면 뇌가 어떻게 판단하는지도 자료가 없다. 피실험자가 세뇌 사실을 자각시 보일 반응도 문제다. 애초에 진짜 세뇌가 된건지도 100% 확신할수는 없다...

 ...즉 고민 거리는 끝도 없었다. 나는 조급함에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고백하자면 내 포르노물 취향은 MC물이었다. 세뇌약일지도 모르는 물건이 손에 들어왔는데 이게 진짜인지 똥인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나는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급히 휴가를 내 집에 틀어박혀 필사적으로 마인드 맵을 그려댔다.
 예상되는 세뇌약의 효력과 문제점, 그걸 미리 방지할 수 있을 듯한 규칙들.

이 약품의 코드명은 그때 붙였다.
마신 사람의 이성 대신 판단을 내려주는 왕.
그래서 대상자를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게 하는 마왕.
솔로몬.

...좀 유치하지만 이 약이 내가 생각한 효과를 그대로 낸다면... 이 거창한 이름이 아깝지 않다.
 
 휴가를 내기 전 연구소에서 약 4L 가량의 솔로몬을 몰래 만들었다. 솔로몬의 제조는 아쉽게도 가정집에서는 무리였다. 연구실 설비에서만 만들 수 있는 점은 뼈아팠지만 불행 중 다행히 재료는 규제를 피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최대한 솔로몬의 데이터를 지우고 그 약품을 가지고 휴가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필요한건 모르모트였다.
 이미 효과가 검증된 개체인 병훈이 형은 교우관계가 좋다. 이상이 생겼을 경우 너무 빨리 발각된다. 게다가 그 이상한 액체를 다시 먹일 구실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미친척하고 동맥주사를 놓을까도 싶었지만... 일이 최악의 방향으로 잘못되 부검이라도 하면 끝장이다.
 
 결국 다른 대상자를 몰색한 끝에 최적의 대상자로 선정한건 내 사촌 여동생, 김소연이었다.
 올해 꽃다운 27살인 그 애는 올해 행복과 불행이 극단적으로 물려 있었다.
 반년 전 새해를 맞은 그애는 행복의 절정기였다. 연애 끝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에 성공했고, 남편과 일산 교외에 예쁜 2층집을 짓고 카페를 오픈했다. 게다가 아기까지 생겼다.
 그 모든 행복이 남편의 교통사고를 시작으로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남편은 사고후 이틀만에 회복하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그 충격으로 소연이는 유산까지 해 버렸다. 지난 주 장례식에는 나도 참석해, 살아있는 시체같은 소연이를 보고 같이 위로해 주었었다. 듣기로는 그 이후 남편이 없는 쓸쓸한 교외의 카페 겸 가정집에서 날마다 술에 절어있어 고모의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다.
 만약 솔로몬의 효과가 진짜라면... 그 애를 그 슬픔에서 구할 수 있다.
 
 아마 구한다, 라는 내 마음의 중얼거림을 듣고 지옥에서 악마는 박수를 치며 웃었으리라.
 
 
 
 
 소연이의 카페는 도로에서 살짝 들어간 곳에 있어 한적했다. 남편이 단명한게 그쪽 집안 내력이라도 되는지, 그의 부모도 일찍 죽어 유산으로 재산이 꽤 있어 평생 먹고 살 걱정이 없다고 들었다. 부러운 일이다.
 이 카페도 딱히 돈을 벌 위치는 아니었다. 그냥 아름다운 아내와 살기 위한 소꿉놀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행복하게 지었을 동화속 정원주택같은 예쁜 집이 지금은 먹구름에 깔려 있는 것 같았다.

 closed라고 써진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음산한 종소리가 어두컴컴한 실내에 울리고, 소파 중 하나에서 소연이가 천천히 일어났다. 미리 연락을 해 둔 덕에 적어도 손님을 맞을 정도의 단장은 한 모양이었지만 퀭한 눈빛과 다크 서크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녀는 예뻤다.
 아직도 상복을 입고 있는 걸까. 검은 원피스에 검은 스타킹, 검은 구두. 온통 검은 색 일색에 장신구 하나 없는 복장. 그에 대비되는 하얀 피부와 대조되어 병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큰 눈은 슬픔에 젖어 더 새카맣게 빛나, 전체적으로 소연이는 비에 젖은 검은 고양이 같았다. 친구들이 사진만 보고도 소개시켜 달라고 아우성을 쳤던 I여대 캠퍼스에서도 소문난 미인은 초췌한 모습이어도 향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소연아. 얼굴이... 말이 아니네."
 
 "정훈 오빠... 걱정끼쳐서 미안해."
 
 소연이가 기운없게 웃는 모습을 보자 내 가슴이 아팠다.
 당연히 커피샵도 남편의 사고 이래 계속 휴업 상태였다. 내가 꼭 줄것이 있다고 전화로 사정하자 간신히 약속을 잡긴 했지만, 평소에는 2층에 있는 신혼방에서 하루종일 울다가 술을 마시고 기절하는게 일상이라고 고모가 걱정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응..."
 
 내 밋밋한 말이 그녀의 마음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단건 누가봐도 분명했다. 사실 내 마음도 콩밭에 가 있었으니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질리가 없었다. 서로 마음의 겉만 핥는 대화가 잠시 오간 후, 나는 마침내 내가 온 이유를 꺼냈다.
 
 "고모가 정신과 치료를 권했다면서."
 
 "응... 가 볼 생각이야. 나 혼자서 이기긴 너무 힘들어... 흑! 오빠, 나 너무 힘들어..."
 
 "그래... 당연히 많이 힘들겠지. 음, 저기.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가져왔는데."
 
 나는 시장에서 구한 최대한 예쁜 유리병에 담은 솔로몬을 꺼냈다. 카페에 은은히 비쳐드는 저녁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유리병은 동화에 나오는 마법의 약처럼 보였다. 사실 진짜 마법의 약과 다를바가 없다. 단... 마법의 "마"는 악마의 "마"자와 같은 글자다. 난 그 사실을 외면하며 병을 소연이에게 건냈다. 유리세공 처럼 예쁜 와인 한병 정도의 유리병에 소연이가 호기심을 조금 보인다.
 
 "이게 뭐야?"
 
 "프로작 알아? 항 우울제인데. 그거랑 비슷한 신약이야. 아직 국내 유통은 안되는 건데... 우리 연구실에서 샘플 입수해왔어."
 
 "...혹시 마약이야?"
 
 "설마! 내가 너한테 마약을 권하겠니? 프로작은 정신과 가면 처방해 주는 약이야. 이건 더 발전한거라 효과는 좋으면서 중독성 같은건 전혀 없어."
 
 "그래? ...하긴 술보다야 낫겠지. 우리 엄마가 다 일러 바쳤구나?"
 
 "술보다 단점은... 맛이 지독해."
 
 내 익살에 소연이는 살짝 웃었다. 난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고,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말을 뱉었다.
 
 "마셔봐."
 
 "응? 지금?"
 
 "미국에선 임상실험이 다 끝난거라 절대 안전하긴 한데... 이게 즉효성이거든. 네가 좀 기분 좋아지는거 보고 가고 싶어서. 혹시 효과가 좋으면 연구실에서 좀더 구해다 줄께."
 
 "...그러지 뭐. 얼마나 마시면 되?"
 
 "다."
 
 "이걸 다? 너무 많아!"
 
 "괜찮아. 천천히 마셔."
 
 소연이는 딱히 거부할 의욕도 없는지 순순히 병으로 손을 가져갔다. 한모금 입을 대 보더니 역시 맛이 영 아닌지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나를 봐서인지 눈을 딱감고 마시기 시작한다. 잔에 따라서 한잔. 또 다음 잔. 나는 간간히 옛날 일을 이야기하고, 소연이는 한잔씩 솔로몬을 마셔가며 시간이 흘렀다.
 
 "많다.."
 
 "다 마셔야 해."
 
 "응."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마침내 병이 빈다. 맥주처럼 위에서부터 흡수가 되다보니 마실 양이지, 물이라면 못 먹을 양이다. 소연이는 속이 더부룩한지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자, 승부다. 나는 손에서 땀이 나는걸 바지에 닦으며 언제 효과가 나타날지 궁금해 했다. 테스트 방법은 여러가지를 생각했다. 우선 볼펜 하나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 놓는다.
 
 "소연아, 이 볼펜 집어 들어봐."
 
 "응?"
 
 "그걸로 얼굴에 점 찍어 봐."
 
 "어? 왜?"
 
 "농담이야."
 
 "뭐야."
 
 피식 웃는다. 역시 즉효는 아니다. 30분 전부터 마시기시작했지만 아직도 뇌에까지 약품이 올라가진 못했다. 나는 커피를 한잔 더 타 달라고 부탁했고, 소연이는 알았다며 일어나 바 뒤에서 천천히 잔과 커피를 준비했다. 날 위해 조금 만들어 둔 원두를 내려 커피를 내리는걸 지켜본다. 벽에 걸린 영어로 써진 바티스타 자격증과, 그 자격증을 둘고 소연이 부부가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 밑에서는 혼자 남은 여인이 쓰디 쓴 커피를 끓인다.
 미리 영업 준비도 해두지 않은데다 손님이 아니니까 소연이의 동작은 느릿했다. 커피가 나온건 거의 10분이 지나서였다.

 "소연이도 시럽 넣지?"

 "응."

 소연이는 자기 커피에 시럽을 넣기 시작했다. 시럽을 넣는다. 또 넣는다. 계속 넣는다. 혹시 이건...? 나는 크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소연아, 시럽 섞어야지. 네 커피 볼펜으로 휘저어봐."
 
 "응."

 소연인 내가 내려놓은 볼펜을 집어 자신의 커피를 저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통했다.
 짜릿한 성취감이 등을 달린다.
 가장 큰 관문을 통과했다. 병헌이 형을 보고 세운 가설은 가짜가 아니었다. 알콜이나 다른 불순물에 의한 효과도 아니다. 남성 한정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른 검증을 해야 한다. 판단력이 없어진 인간을 세뇌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붙이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뭔가 이유를 붙이면 그 이유가 말이 안되는 것이라 해도 납득하는 사람의 비율이 크게 증가한다고 한다. 하물며 판단력이 마비가 되어 있다면 그 이유가 옳은지 아닌지는 더더욱 문제가 안 되리라.
 
 "소연아. 상담을 해야 하니까 이제부터 마음에 있는 말을 그냥 다 해. 날 어떻게 생각해?"
 
 "정훈이 오빠는 아주 똑똑하고 어릴때부터 자상하게 대해줘서 좋아. 특히 나 대학교 가기 전에 과외해준거 정말 고마워. 다만.."
 
 "다만? 다 말해봐. 아무리 부끄러워도 다 말해야 상담이 잘 되."
 
 "과외해줄때, 내 다리 힐끔거리며 계속 봤던거 조금 무서웠어. 남자니까 어쩔 수 없다고 이해는 해."
 
 "그, 그래. 그랬었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부끄럽다. 지금은 헤어진 그 당시 애인과 진도를 어디까지 빼느냐 하는 문제로 성적인 욕구가 왕성하던 시기라... 미소녀 사촌 동생의 과외를 해주다 자꾸 의식했었지. 으, 부끄럽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자... 과거 내가 이 애에게 품었던 성욕이 기억 났다.

 나는 지금 이 미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내가 얼마나 나쁜짓을 하려는 건지 순간 경악한다. 하지만 내 입은 어느새 벌어져 뜨거운 정욕이 담긴 말을 토하고 있었다. 판단력이 어디까지 마비되었는지 이것보다 실험하기 좋은게 있을까.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고 말한다.
 
 "소연아. 알몸 좀 보게 옷 벗어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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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하하. 이번편이라고 야한게 있을 줄 알았으면 유 저스트 액티베이티드 마이 트랩 카드. 제 복수는 끝나지 않...

 ...아, 아마 다음 편부터는 계속 야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겁니다.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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