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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친이 변태에다 귀축이었던 그녀 [완결]

제12화 청년 연설

나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요코야마가 내게 했던 말이 머리 속에서 계속해서 메아리친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혔잖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혔잖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혔잖어"

어쩌면 정말로 일분일초가 급박한 상황인지도 모른다.

손목을 잘라 피를 흘리고 있는 "나노카"
흰자위를 드러내고 입에서는 침을 질질 흘리며 로프에 목이 매달린 "나노카"
고층빌딩 앞 도로에 피떡이 되어 널부러져 있는 "나노카"

차례로 불길한 영상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제기랄! 빌어먹을! 씨발---!!"

그 영상을 뿌리쳐 보려고 괜시리 느려터진 내 다리를 탓한다.

일초라도 빨리 "나노카"를 만나고 싶었다.
"나노카"의 집을 향해, 미친 놈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나노카"는 분명 집에 있을 거야...

내가 일년전 고백했을 때의 "나노카"
(미안...) 이라고, 무척 난처해하며 거절하던 "나노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시오의 푸쉬를 받아, 끈질기게 대쉬했던 나...
그런 나하고 친구로 남아 준 "나노카"
니시오와 함께 갔던 불꽃놀이, 귀여운 유카타 차림의 "나노카"
갑자기 금발에 가까운 갈색 머리가 된 "나노카"
갑자기 화장이 짙어진 "나노카"
스커트가 짧아진 "나노카"
우리들하고 거리를 두고, 멀어지기 시작한 "나노카"
한참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던 "나노카"

2학년이 되자, 검은 머리로 돌아온 "나노카"
스커트 길이가 길어진 "나노카"
검은 뿔테 안경을 쓰기 시작한 "나노카"
웃음이 사라진 "나노카"
그래도, 여전히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나노카"

"나노카"의 집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중학교 시절, 야구 소년이었던 무렵이라면 별 거 아닌 거리였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경음악부 같은 초식계 클럽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게다가 요새는 니시오의 영향으로 담배도 피운다.
다리가 완전히 플려 버렸는데도 나는 이를 악물고 달리고 있었다.
아까 그렇게 오바이트를 했는데도 또 씁쓸한 위액이 치밀어 올라온다.
허억허억 숨을 헐떡이면서도 결국은 "나노카"의 집에 간신히 도착했다.

조그맣고 아담한 단독주택.

숨을 고르고, 땀을 식힐 때까지 10분 남짓 걸렸다.
조금씩 흥분이 가라앉자 어느 정도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우선 휴대폰을 먼저 걸어 봤다. 역시 착신 불가라는 안내가 나온다.
요즘엔 거의 휴대폰을 켜지 않는 것 같다.

별 수 없이 인터폰 호출 버튼을 누른다.
"띵똥. 띵똥"
잠시 후
"네, 누구세요?"
소리가 들렸다.
가라앉은 목소리였지만, "나노카"가 틀림없었다.

"나야, 쿠리즈카"
짧게 대답한다.

"...쿠리즈카군...무슨 일이야?..."
의아한듯 그렇게 물어온다.
"할 얘기가 좀 있으니까 나와보지 않을래?"

"...학교에서 하면 안돼?..."
"아니, 학교에선 할 수 없는 이야기라서"
나는 두근두근 불안한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알았어 ...쿠리즈카군, 잠깐 기다리고 있어"
승낙한 것 같다. 나는 휴우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10분 정도 기다리자 현관에서 "나노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청바지 위에 낡은 핑크색 티셔츠, 흰색의 얇은 가디건.
낮은 굽의 여성용 샌들.
전형적인 평상복이다. 하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화장은 거의 안하고 립스틱만 살짝 바른 정도.
안경은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무척 예뻐 보였다.
홀딱 반한 상대라서 그런걸까?

눈앞의 여자애가 그런 추잡한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심지어 증거 사진까지 봐놓고도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는다.

나는 마음 속의 동요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무뚝뚝하게 말했다.

"여긴 좀 그러니까, 공원에라도 갈까"
"응, 좋아"

둘이서 나란히 공원을 향해 걷는다.
5월의 햇살은 벌써 6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밝고 따스했다.
내가 아무 말도 없자 "나노카"가 먼저 말을 걸어 온다.
"정확히 1년만이네. 둘이서 이 길을 걷는게"
"그,그,그런가"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무심코 말을 더듬고 만다.
참고로 나는 니시오로부터 언어장애 3급 면허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때, 여길 왔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맞다.
일년전 고백했던 장소도 학교가 아니라, 바로 지금 가고 있는 공원이었다.
정확히 1년전에도 집으로 찾아가 같이 이 길을 지나 그 공원에서 고백하고 시원하게 거절당했었다.

등에 식은 땀이 흐른다.

"그 때만 해도 키가 비슷했었는데 쿠리즈카군만 훌쩍 커버렸네"
"아,아아, 나,나, 1년 사이, 시,십이센티 컸어"

괜찮을까? 나? 언어장애가 멈추지 않는다.
아냐, 괜찮아. 니시오에게 혹독한 수련을 받았잖아.
여자애의 마음을 이해하고, 어떻게 고백하는지, 데이트는 어떻게 하는지, 키스하고 페팅, 섹스 테크닉까지.
추가로, 조루를 방지하는 획기적인 비책까지, 기타등등.

여러가지를 생각하다보니 눈 깜짝할 사이 공원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나는 주위에 아무 것도 없는 걸 확인하고,
공원 가장 안쪽에 있는 벤치에 그녀를 앉혔다.
벤치에 같이 앉지 않고 "나노카"의 정면에 마주보고 섰다.
약간 어리둥절해하는 "나노카".
무릎을 다소곳이 모으고 앉아 있었다.

나는 기합을 넣어 우렁차게 말하기 시작했다.

"에---, 저 쿠리즈카 쥰야는 "사토 나노카"를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마리아나 해구보다도 깊고,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산보다도 높습니다"
"제가 "사토 나노카"를 처음 본 것은, 실은 입학식 전날 역전 상가에서였습니다"
"그 때 사토씨는 친구 둘하고 같이 제 옆을 스쳐 지나 갔습니다"
"저는 그 때 처음으로 이 세상에 천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그 천사같은 분을 꼭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그리고 다음 날 입학식에서 저는 천사와 두번째로 만났습니다"

참고로 이 대사는 니시오가 써준 걸 통째로 암기한 것이다.
니시오가, 사토한테 반한 건 언제부터야? 라든가,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아?
같은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바탕으로 2,3일 후에 이 대사를 써와서,
그걸 통채로 암기해서 눈 감고도 술술 읊을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라고 했던 것이다.
내가 어째서 이런 것까지 해야 되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라고 할 때마다, 니시오 녀석이
"만약 남자친구가 없는 아가씨라면 지금 너라도 100퍼센트 괜찮겠지"
라고 들들 볶아대는 바람에, 시키는 대로 무려 100번 이상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왔다.

"저는, 전에 이미 한 번 사토씨에게 고백을 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제 성의가 부족했는지, 거절당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토씨 잘못이 아니라, 제 잘못입니다"
"저에게 남자로서의 자각과 매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고백은 그래서 두 번째가 됩니다"
"예전의 저하고 비교하면 지금의 저는, 남자로서 확실히 자립했다거나, 매력이 넘친다거나, 그 정도로 자신이 있는 건 아닙니다만, 다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전보다 더욱 "사토 나노카"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사토 나노카"의 얼굴을 좋아합니다. 입가에 난 조그만 점도 좋아합니다. 시크한 스타일도 좋아합니다. B컵의 가슴도 좋아합니다. 약간 알이 배긴 종아리도 좋아합니다. 웃을 때 무릎이 부서져라 발을 굴러대는 것도 좋아합니다. 펭귄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걸음걸이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토 나노카"의 천사같은 미소를 제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부탁드립니다.     이상     쿠리즈카 쥰야"

마치 청년 연설 같았던 고백이 끝났다.

스스로 제법 나이스였다고 생각했지만 "나노카"를 바라보니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조그맣게 들썩이고 있었다.

어라 사토, 웃고 있어? ...혹시 울고 있는 거야?...
어리버리한 나로서는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꿇고 "나노카"를 올려다 보았다.

"나노카"가 살짝 물기가 어린 눈으로 웃고 있었다.

몇분이나 그 자세로 가만히 있었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나노카"의 말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거, 니시오군이지?"
"에엣"
"그 대사 생각해낸 거 니시오군이지?"
"나노카"가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어떻게, 알았어?"
느닷없이 핵심을 찔리는 바람에 그만 어버버거리고 만다.
"그거야 뻔하지. 이런 말 할 사람, 한 사람 밖에 없고"
"그,그렇구나. 하하하하하하아아"
힘없이 웃는다. 아마 얼굴이 희한하게 일그러져 있었을 것이다.

"그치만, 쿠리즈카군 연습 열심히 했네?"
"에"
"고마워, 무척 기뻤어. 좀 감동했어"
"정말?!"
"응"
"그럼, 그럼, 그럼, 나랑 사귀어 줄래?"
이때다 싶어서 나는 개가 꼬리치듯 아양을 떨며 "나노카"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 후에 나온 말은 내가 기대하던 것이 아니었다.
"하,하지만, 난 쿠리즈카군이 생각하는 그런 여자애가 아니야"
"뭔 소리야, 그건. 난 사토가 좋다구"
"나보다 나은 애들 잔뜩 있잖아. 나 같은 건 안돼"
"난 사토가 아니면 안돼. 사토 외에는 싫어"
"하지만 역시 안돼. 쿠리즈카군은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어"

"나노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한테서 멀어지려고 했다.

아아---안돼. "나노카"가 나를 피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더럽혀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나하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좋지? 어쩌면 좋냐구?
내가 정말 사랑하는 "나노카"는 역시 내 것이 될 수 없는 거야?

"정말 미안. 쿠리즈카군. 나같은 건 잊어줘..."
"나노카"가 막 돌아서서 내달리려는 순간.

"기다려!! 사토! 나 네 비밀 알고 있어!!"

앗, 최악이다.
나는 절대로 입 밖에 꺼내선 안될 키워드를 말해버리고 말았다.

















최종화 나와 "나노카"

"나노카"는 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져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내쪽으로 뒤돌아 섰다.
그 얼굴은 마치 유령이라도 본 것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인간의 동공이 저렇게 커질 수도 있나?
공포로 부들부들 떤다는 게 바로 딱 저 상태일 것이다.

나는 저성능의 구닥다리 CPU가 달린 머리를 풀 가동 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그저, 바짓가랭이 잡는 심정으로 꺼낸 최악의 대사.
앞의 일은 일절 생각지도 않고 지껄여버린 말.
오로지 앞으로의 대처방안만 필사적으로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나노카"가 내게 물어왔다.
시간 여유 같은 거 눈꼽만큼도 주지 않고.

"알고 있다니 뭘? 내 비밀이라니 무슨 의미야?"

나는 정말로 말하고 싶었다, (1주일만 기다려줘) 라고.
하지만 물론 그런 시간이 주어질 리 없다.
나는 일단 능청을 먼저 떨어보기로 했다.

"에, 에, 내가, 그런 말을 했나?"
"니시오군? 니시오군한테 들었어?"

어째서 이 대목에 니시오의 이름이 나오는 거지? ...에? ...에?...
이건 또 뭔 말이야.

"아니, 니시오한테선 아무 말도 들은 것 없어"
정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나노카"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숨기지 마. 니시오군이지?"

어, 이번엔 단언하고 있다.
라고 하는 얘기는, 니시오는 혹시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건가?
가능한 얘기다. 그 자식, 터무니없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놈이니까.
거기다 굉장한 정보망까지 갖추고 있고.

그랬구나, 니시오는 알고 있었던 거야.
나한테 상처주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였어.
그렇다고 놈을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찌됐든 나하고 녀석은 둘도 없는 친구니까.
이렇게 된 이상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나노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나라고 믿고.

"아냐, 정말로 니시오한테는 들은 적 없어. 사토, 이제 고토라는 자식하고는 헤어진 거야?"

내가 정색하고 묻자 "나노카"가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대답 없이 고개만 내젓는다.

"아직도, 그런 자식하고 사귀고 있는 거야?"

또, 고개를 젓는다.
아니다, 눈치채지 못한 내가 바보였다. "나노카"는 오로지 계속 고개만 젓고 있었다.

앗, 뭔가 위험하다!

"싫어---!!!!!!!!!!!!!!!"

찢어질 것 같은 커다란 비명소리가 공원에 울려 퍼졌다.

"나노카"는 비명을 지르더니 머리를 움켜쥐고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 앉고 말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이렇게 커다란 비명소리. 누군가 듣고 달려 올지도 모르니까.

아니나 다를까, 몇 사람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나노카" 옆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 거리를 유지했다.
치한이나 강도 따위로 오인당하는 일은 지금 이 상황에서 꼭 피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도시의 무관심이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잠시 우리 쪽을 쳐다보던 사람들도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제각각 자기 갈 길을 간다.

나는 천천히 "나노카"옆으로 다가갔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안돼...항복〇야...피〇......죽〇...잘있〇...도효〇리...목〇매...열차〇...무서〇...죽〇...찔〇...면도〇...〇옥...칼...쥰〇...잘〇어...좋아해...안돼...죽을래......"

내가 알아 들을 수 있었던 건 이 정도 뿐이었다.
아무리 머리 나쁜 나라도 이젠 안다.

나는 "나노카"를 위에서 덮듯이 껴안아 주었다.
애처로움이 울컥 밀려 온다.

이대로라면 "나노카"는 분명 자살을 선택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나 밖에 없을 것이다.

"사토, 나는, 사토를 정말로 좋아해"

"나노카"의 귓가에 입맞추듯 속삭인다.

"사토가 죽을 생각이라면 같이 죽어도 좋아. 그 정도로 좋아해, 하지만, 지금, 같이 죽기는 싫어. 왜냐면 나, 사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니까. 키스도 못 했고, 섹스도 못 해봤잖아. 사랑한단 말도 들어본 적 없고. 나, 동정이야. 사토하고 섹스도 못 해보고 죽는 건 절대로 싫어..."

"...정말로 사랑해. 그러니까...나 좀 살려줘...괴로워...괴로워서......못 견디겠어..."

"나노카"가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 보았다.
그 얼굴은 마치, 낯선 생물을 바라보는 듯한 눈초리였다.

구조대원이 거꾸로 구조를 요청하는 시츄에이션이니 황당했을지도.

"...내가 구해줄께..."

"그래, 사토는, 너무 제멋대로야...도대체, 나같은 건 어떻게 돼든 상관없다는 거야?"

"내가 쿠리즈카군을 나몰라라 한다구?"

"나노카"가 내 질문에 화를 내며 대답한다.

"그렇잖아. 내 기분 같은 건 눈꼽만큼도 생각 않고 말야"

나는 갑자기 속에서 뭔가가 끓어올라, "나노카"을 떼어놓고 벌떡 일어섰다.
"나노카"가 그런 나를 째려보듯 올려다 보았다.

"사실, 그렇잖아. 지금도 자기자신만 생각하고 있잖아"
"그냥 자살해 버리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렇게 멋대로 죽어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라구"
"그건 너무 비겁하잖아. 나한테 제대로 부딪혀 보지도 않고"
"사토, 나 좋아하는 거 맞지. 그럼 나한테 그런 얘기 다 털어놔도 되잖아"
"난 뭐든지 다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어"
"도망치지 마. 나한테 네 마음을 전부 보여줘"

"......"

"내 마음 알겠어? 사토, 난 너한테 첫눈에 홀딱 반해버렸다구"
"첫눈에 반했다는 건, 외모 뿐이야"

"???"

"그러니까 그 내용물이 어떻든 난 상관없다구!!"
아, 뭔가, 나, 말이 막 꼬인다.

"내용물이, 걸레같든, 음란하든, 교활하든, 좆물받이든, 벼라별 놈들한테 다 대주고 다니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니까, 그니까, 사토가...걸레...라도...나는...전혀...상관없어..."

"나는...나는..."사토 나노카"라고 하는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니까..."

언젠가부터 나는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나노카"가 일어서더니 내게 꼭 달라 붙는다.

나도 자연스럽게 꽉 껴안아 주었다.

아아, "나노카", 이렇게 가냘프고 보드라웠구나.

"쿠리즈카군, 방금, 엄청 멋졌어. 아까 것 보다 훨씬 더 멋졌어"
"......"
"나도 첫눈에 반했었다, 쿠리즈카군한테..."
"에?"
"그래서, 처음 고백 받았을 때, 정말 기뻤어. 나도 그 때 역전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럼, 그럼, 왜 그랬어? 왜 거절했던건데?"
"...지금은 말 못해...하지만, 나중에 꼭 말해줄께..."
"......괜찮아, 말해주지 않아도. 대충은, 알고 있으니까..."
"........."
"........."
"........."

"근데 말야, 이번에, 나, 똥누고 있는 거 사진 찍어서"
"!!!!!!?"
"그거 인터넷에다 올릴까? 얼굴도 나오게"
"!!!?"
"물론 사토한테도 줄께"

"나노카"가 얼굴을 들어 올리고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 본다.

"필요없어, 그런거"
"그게, 사토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을 수도 있잖아"
"...바보..."
"그런 거 보면, 나, 싫어질거 같애?"
"그럴 리 없어"
"그러니까 나도 사토를 싫어할 리 없다구"
"......"

"하긴 내 사진이야 아무도 안 보겠지만, 사토 사진은 조회수가 장난아닐거야"
"!?"
"그게, 보라구, 이렇게 야하니"

나는 그렇게 말하며 뒷주머니에서 요코야마가 준 사진을 꺼냈다.
(왜 이런 걸 보여주는거지, 나는?)

"아"

"나노카"는 그걸 힐끗 바라보더니 황급히 빼앗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잘 익은 토마토처럼 새빨간 얼굴을 하고는 나에게 꼭 달라붙어 온다.

"...이런거 가지고 다니면 못 써..."
"뭐야. 보물 1호로 삼을라고 했더니만"
"실물을 마음껏 볼 수 있는데 그런 건 뭐하러 갖고 다녀"
"진짜로---?"
"응"
"......"

"뭐야, 하나도 로맨틱하지가 않자나"
"그럼 로맨틱한 이야기를 해볼까?"
"응, 해줘 해줘"
"세상에서 제일로 많이 섹스해서 기네스북에 오르는거야"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런게"
"가능하고 말고, 나하고 사토라면"
"그게 로맨틱한 얘기야?"
"꽤 로맨틱하지 않어?"
"......"
"......"

그렇게 한참을 서로 아무 말 없이 꼭 껴안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완전히 어두워진 밤 공기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문득 "나노카"가 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있잖아, "쥰야아~", 뭐 하나 부탁해도 돼?"
오옷, 벌써부터 이름으로 부르네. "좋아. 뭔데?"

""걸레"라고 해봐"
"에?"

???뭐지? 이 이상한 부탁은?

"제발. 해봐"
""걸레""
"다시 한번"
""걸레""
"한번 더"
""걸레"!!"
"아음! 하으윽!!"

갑자기, "나노카"가 격렬하게 몸을 떨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눈매가 붉게 달아오른다.
아앗! 이 얼굴은!! 그 때 그 사진 속의 얼굴!!
수컷을 유혹하는 음미한 암컷의 표정.
아랫도리에 전류가 흐르고 배 밑바닥으로부터 격렬한 성충동이 솟구쳐 올라온다.

""쥰야아~" 키스해줘"

내게 꼭 달라붙어 팔을 휘어감고 격렬하게 입술을 맞춘다.
입술이 참 부드럽고 따뜻했다.
곧바로 연체동물의 촉수와도 같은 혀가 내 입 안으로 파고 들어온다.
잇몸을 핥고 내 혀와 마구 뒤엉킨다.
그리고는 입을 크게 벌리고, 이가 맞부딪힐 정도로 세게 밀어붙이며 파고 들어와 입천장의 민감한 부분까지 혀로 핥아댄다.

자지가 아플 정도로 발기해 벌써부터 쿠퍼액을 흘리고 있었다.
"나노카"는 청바지 위를 격렬하게 위아래로 비벼대다가, 이윽고 지퍼를 내리더니 직접 내 자지를 만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와 "나노카"의 달콤하고, 또 달콤했던, 퍼스트 키스.

그 순간, 나는,

(아아, 내가 사랑하는 "나노카"는 역시 이미...)

(...조교완료 상태구나) 라고, 생각했다.




--- 끝 ---

..."동상. 해피엔드로 끝나서 참말로 다행이고마"

















에필로그

그날 밤, 나는, 니시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니시오, 할아버지는 괜찮아?"
"아아, 너무 오래 목욕을 하는 바람에 현기증이 나서 넘어진 것 뿐이야. 그런 일로 사람을 놀래키킨"
"다행이잖아. 큰 일이 아니어서"
"그럼 내일, 역전 맥도날드 앞에서 10시에 보자"
"아, 미안, 미안, 그거 취소해야겠다"
"엣, 무슨 일인데?"
"내일, "나노카"랑 데이트거든"
"엣!? "나노카"라면 사토?"
"당연하잖아"
"너, 카페에서 이야기 제대로 들은 거 맞냐?"
"그 얘기 덕분에 사귀게 된거야, 아아, 그것보다 니시오, 뭣 좀 가르쳐주라"
"뭔데?"
"우리 둘이 갈만한, 좀 저렴한 러브호텔 어디 없을까?"
"......"

니시오 자식, 대답도 않고 끊어버린다.
하긴 (그런 개걸레년하고 사귄다고?)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겠지?
난 아무 상관 없는데.

이 글 읽고 있는 너희들은 어때?
이런 여자애라도 사랑할 수 있어?
저기, 있잖아, 좀 가르쳐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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