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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판타지] 세자르씨의 유쾌한 전원생활 26

23.

 

일행이 우여곡절 끝에 거상들을 처리하는 데는 간신히 성공했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전날까지 처음 탐사를 시작할 때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던 총 인원이 방금 전 전투 하나로 다시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었다. 세자르는 이젠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줄어든 전투가 가능한 병사들의 머리수를 보면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는 앞에 더 이상 방금 전 같은 전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잠시 제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전열을 정비한 일행은 루이가 척하고 복도 앞을 가로막던 거대한 문을 열고 난 뒤 드디어 모두가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하던 연구소 안쪽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막상 문을 넘어 마지막 장소에 도착한 일행은 다시금 그들의 예상을 빗나가는 광경에 주위를 둘러보면서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곳은 거대한 돔 모양의 방이었다. 완벽한 구형으로 이뤄진 그 방은 꼭대기에 위치한 단 하나 뿐인 원형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밝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방안을 환하게 드러내는 데는 충분했다.

방의 사방은 온통 에메랄드로 꾸며져 있었다. 그 벽들은 햇빛을 받아 온통 반짝반짝 투명한 초록색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방 중앙에는 각종 금은보화로 장식된 웅장한 크기의 높은 원형기단과 그 위로는 호화스러운 왕좌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것들 또한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화려한 실내장식에도 병사들은 하나같이 실망감을 들어내고 있었다.

 

“아니, 뭐 이래? 고작 그 고생을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그 끝이 이런 텅 빈 방 하나 뿐이라니, 이거 너무 하잖아.”

“우리가 정말 맞게 오긴 온 거야?”

“이건 무슨 대단한 마법 보물이나 마술램프라도 하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일행이 웅성이고 있을 때, 갑자기 기단 주변에서 연기가 일어나더니 왕좌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곧 연기가 걷히자, 어느새 왕좌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척 보기에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그 남자는 마법사를 상징이라도 하는 듯이 온 몸을 보라색 로브로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드러난 고상하게 잘생긴 얼굴과 다듬은 머리, 장 정돈된 갈색 수염은 그 사람의 신분이 꽤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겉보기에도 꽤 미남인 그 남자는 가만히 왕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한쪽 팔로 머리를 받히고는 입가에 살포시 미소를 띠운 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들 그 남자의 등장에 입을 다물고 가만히 남자를 쳐다보고 있을 때, 아이린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저, 실례지만, 혹시 위대한 창조자, 알베르토 세르지오 님이 맞으십니까?”

 

그러자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움직여 아이린을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부드러웠다.

 

“그렇다. 내가 마법사 알베르토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후배 마법사인 아이린 베라라고 합니다.”

“아, 알아.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자네가 선보인 마법이 꽤 수준이 높더군.”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니, 지금시기의 마법 수준에서 그 정도면 칭찬받을 만하니까 그런 거야. 그나저나 이렇게 손님을 맞이하는 게 정말 오랜만이군. 한 200년 됐나? 여기까지 이렇게 많이 살아온 걸 보니 자네들은 정말 운이 정말 좋거나, 능력 좋은 리더가 있는 것이겠군. 한데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거지?”

 

알베르토의 질문에 세 마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 눈치를 교환하더니, 갑자기 아이린이 뒤를 보고 손가락을 튕기면서 외쳤다.

 

“세도우 프리즈(Shadow Feeze)!”

 

아이린의 주문에 갑자기 모든 병사들의 그림자에 각각 팔뚝만한 막대기 모양의 그림자가 덧붙여지더니,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발바닥에 말뚝이 박힌 것처럼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병사들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엄청 당황해했지만, 아이린의 마법은 꽤나 강력한 것인지 누구하나 제대로 움직이거나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부대장인 알폰소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대마법관님? 우린 이번 탐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느으으으윽........”

 

말을 하던 알폰소는 갑자기 얼굴 주변이 검은 기운에 둘러싸이더니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는 괴로운 듯이 목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그러고 얼마 뒤, 알폰소는 입 밖으로 피를 토하더니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죽어서도 마법에 걸려 쓰러지지도 못하고 대랑의 피를 흘린 채 마냥 서있는 알폰소의 처참한 모습에 주변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쯧쯧쯧. 그러게 말조심 해야지. 저기 있는 사람도 남이야. ‘침묵의 서약’에 걸린 사람이 남 앞에서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해도 되겠어?”

아이린의 말에 병사들은 어느 누구도 쉽게 입을 벌리지를 못했다. 알베르토 앞에서 탐사대와 탐사 자체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바로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는 것임을 알폰소가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병사들이 입 다물고 꼼짝 못하게 된 것을 확인한 세 여자는 다시 알베르토를 마주보고는 물었다.

 

“우선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혹시 불노불사의 마법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자벨라의 질문에 알베르토는 싱긋 미소를 짓더니, 곧 큰소리를 내며 배꼽을 잡듯이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아니, 그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다다른 이유가 고작 그것 때문인 건가? 너희 정말 웃기는 구나. 하하하!”

 

물론 그 자리에서 어이없어 하는 것은 알베르토 뿐만은 아니었다. 다들 마법에 구속된 병사들 또한 황당하기 이를 때가 없었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고생한 것이 고작 세 여자의 영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엄청 황당하고 억울했지만, 지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동안 웃음을 그치지 않던 알베르토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물론 불노불사는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여기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증거겠지.”

 

알베르토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한데 말이다. 이 마법도 결국은 제한적. 날 봐라. 왜 내가 기나긴 세월동안 이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겠나?”

 

그 질문에 세 여자는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알베르토는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 말은 결국 자신의 몸의 에너지는 정해져있고, 그것을 어떤 방식이든 보충하지 못하는 한, 자생하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나도 이렇게 내 연구소라는 감옥에 감금된 신세지. 과연 너희가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고 한 들, 나같이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건가?”

 

알베르토의 설명에 여자들은 약간 실망한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자벨라는 그건 이미 짐작했다는 표정으로 다시 알베르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불노불사는 말고, 죽을 때까지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은 있는 겁니까?”

알베르토는 약간 의외라는 표정으로 이자벨라를 쳐다보았다.

 

“오호, 이거 놀랍군. 머리가 상당히 잘 돌아가는 데 그래? 현명한 질문이야. 좋아, 나를 즐겁게 해줬으니, 대답해 주도록 하지. 물론 가능하다.”

“그럼 그 방법을 알려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알베르토는 몸을 뒤로 기대고는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야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희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 드릴 용의가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유적에서 죽은 병사들에 더해 여기 남은 병사들을 마법사님의 생명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한 제물로 드리겠습니다.”

 

이자벨라의 말에 묶여있던 병사들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국 세 마녀는 자신들을 부려먹기 위해 막대한 보상을 걸었지만, 결국엔 지불은커녕, 자신들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 버리려고 했던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베르토의 표정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 정도론 충분치 않아. 내가 필요한 에너지는 지금까지 죽은 놈들한테서 이미 충분히 얻었거든. 다른 건 없나?”

“그렇다면 뭔가 달리 원하시는 것이라도? 희귀한 마법재료나 재물이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글쎄, 그런 것들은 나한테도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많아. 기껏 그런 것들로 나와 협상하려고 했다면, 큰 착각이야. 그리고 더 이상 제시할 게 없다면 협상은 여기서 끝이겠군. 돌아가게.”

“그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도 웬만한 각오로 여길 온 게 아니거든요. 상대를 안 해주시겠다면, 저희가 상대하게 해 드리죠.”

 

이자벨라는 그 말과 함께 칼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아이린이 두 손을 앞으로 뻗더니 전격계 주문을 날렸다.

 

“라이트닝 스톰(Lighting Stom)!"

 

주문과 동시에 아이린의 손에선 이전에 썼던 마법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한 번개가 엄청난 회오리바람과 함께 알베르토를 향해 벋어나갔다. 하지만 알베르토는 그 엄청난 공격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앉은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만 살짝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순간 알베르토 앞의 공간에 마법진이 형성되더니 아이린의 전격마법을 송두리째 그 진 안으로 빨아들였다.

 

“말, 말도 안 돼! 이건 최고등급 마법인데!”

“이정도가지고 나를 상대하려고 하면 안 되지, 베라양. 아까 내가 자네 마법이 수준 높다고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 수준에서야. 내 시대에 비하면 그 위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자신의 검, ‘하얀 섬광’에 잔뜩 검기를 세운 이자벨라가 알베르토를 향해 재빠르게 달려들더니 공중으로 붕 뛰어서는 그대로 알베르토를 향해 힘껏 칼을 내려쳤다. 그러나 칼날은 마치 허공을 가르는 것처럼 알베르토가 있던 자리를 그대로 통과해서는 바닥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런, 자네정도의 검사가 결국 한다는 게 이정도의 기습인 건가? 가소롭군.”

 

이자벨라는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몇 번이나 알베르토를 향해 칼을 휘둘렸다. 하지만 좀 전에 홀로 거상 하나를 완전히 박살냈던 이자벨라의 칼은 지금은 번번이 공기를 가르는 것처럼 그저 알베르토를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알베르토는 잠시 그런 이자벨라의 공격을 지켜보다가 이번에도 손가락 하나를 가볍게 앞으로 들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둥근 마법진이 그 앞에 펼쳐지더니 때마침 들어오던 이자벨라의 공격을 가볍게 튕겨냈다. 하지만 이자벨라에겐 그 충격이 가볍지만은 않았는지 마치 뭐에 심하게 떠밀린 것처럼 뒤로 강하게 튕겨나가 저 멀리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왕국 최고라는 자네들 실력이 고작 이정도 인가? 이거 실망이 큰데. 좀 더 나를 즐겁게 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알베르토는 이자벨라가 아이린과 클로에의 부축을 받고 일어서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그러나 곧 알베르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번엔 특별히 자네들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정말입니까?”

“참, 나도 변덕이 좀 심한 편이라서 말이야. 자, 그럼......”

 

알베르토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러자 약간의 진동과 함께 알베르토와 일행 사이의 바닥에서 뭔가가 올라왔다. 그건 투명한 액체가 담긴 작은 샘과 수십 개의 금잔이 세워져 있는 받침대였다.

 

“자, 거기에 있는 것이 바로 젊음의 샘이다. 저걸 마시면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젊음을 유지하면서 건강하게 지낼 수가 있지.”

 

그 말에 보는 이들 모두가 놀라움과 탐욕이 뒤섞인 눈빛으로 그 샘을 바라다보았다. 그런 가운데 이자벨라는 알베르토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 잔들은 뭐죠?”

“그게 바로 이 이벤트의 핵심이야. 아까 너희들이 원하는 게 없냐고 했지? 나도 지금까지 살다보니 심신이 지쳤는지 모든 일에 심드렁해져서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자네들이 나에게 재미있는 유흥거리를 좀 만들어줘야겠어.”

 

알베르토는 번쩍이는 금잔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샘물은 저 잔들에 담아서 마셔야만 비로써 마법의 효과가 나타나지. 그냥 마시면 맹물일 뿐이야. 따라서 너희들이 젊음을 원한다면, 저 잔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샘물을 마셔야 해.”

 

알베르토는 다시 자리에 앉고는 잠시 숨을 고르면서 강조하듯이 말을 이었다.

 

“아, 물론 그 효과를 나타내는 잔들은 저것들 중 일부일 뿐이야. 나머진 비슷하지만 다른 결과를 가져다준다네.”

“다른 결과라는 게.......”

“그것까지 다 말해주면 재미가 없지. 하지만 목숨을 잃는다 하는 건 절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정말 그것 밖에 조건이 없는 겁니까?”

“내 명예에 걸고 약속하지.”

 

알베르토의 설명에 세 여자는 긴장한 표정으로 샘과 번쩍이는 수많은 잔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 망설이지 말고 골라. 너희들은 어차피 이걸 위해 여기까지 위험을 감수하고 온 거 아닌가? 시간의 흐름을 이기고 젊음을 되찾으려면 그만큼 위험을 감수할 줄도 해야지.”

 

세 여자는 알베르토가 말을 마친 뒤에도 잠시 동안 망설이고 있었다. 비록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젊음을 되찾을 방법을 찾았지만, 그간 알베르토의 태도로 보아서는 선택이 잘못됐을 경우 그 결과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좋아. 내가 먼저 할게.”

클로에가 결심했다는 듯이 앞에 나서면서 말했다.

 

“괜찮겠어?”

“마법사 말대로 어차피 우린 이것 때문에 온 거잖아? 게다가 생명엔 지장이 없다고 장담했고 말이야. 내 직감이 어떤지 알지? 내 느낌대로만 한다면 충분히 올바른 잔을 고를 수 있을 거야.”

 

클로에는 금잔들이 모여 있는 받침대로 걸어가서는 세심하게 잔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금잔들은 화려한 양각이 새겨진 것부터 값싼 나무잔에다 금칠을 한 것까지 그 크기와 모양이 다양했다. 클로에는 몇 번이나 받침대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잔들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쳐다보다가 결국 가운데에 있던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잔 하나를 들어서는 샘물을 담아 한 모금 마셨다.

잠시 동안 주변에는 정적이 흘렀다. 다들 클로에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쳐다보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클로에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잠시 후 클로에의 피부가 눈에 띄게 점점 뽀얗게 그리고 탱탱해지기 시작했다. 클로에는 그런 자신의 몸을 보면서 기쁜 듯이 말했다.

 

“이, 이것 봐! 내 몸이 다시 젊어지고 있어! 성공이야!!”

 

그 말대로 클로에의 외모는 비록 관리를 잘해 어려보이긴 했지만 한껏 농익었던 중년의 모습에서 정말 파릇파릇한 처녀의 형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변화에 한없이 기뻐하던 클로에는 그러나 곧 몸에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하지만 클로에를 보는 다른 사람들도 변화하는 클로에의 모습에 당혹해하긴 마찬가지였다. 백옥같이 윤기 나면서 하해 지던 피부는 어느 순간 아예 새하얗게 변했다. 동시에 자그마한 클로에의 몸이 사방으로 커지고 길쭉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클로에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하얀 빛과 함께 클로에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아름다운 백마 한 필이 서있었다.

클로에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믿기지가 않은지 앞발을 들면서 뭐라고 소리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방 안에 들리는 것은 말의 울음소리뿐이었다.

 

“하하하, 결국 이 친구는 말이 되고야 말았군. 하지만 축하하네. 자넨 평생 죽을 때까지 그 모습으로 건강하게 살 거야.”

 

알베르토의 말에 단단히 화가 난 클로에는 무작정 알베르토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알베르토가 피식 웃으면서 손가락을 흔들자, 순식간에 클로에의 입에 재갈이 채워지더니 거기에 연결된 고삐가 어느새 바닥에 생긴 말뚝에 묶여버렸다. 덕분에 앞으로 달려가던 클로에는 더 이상 움직이질 못하고 제자리에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클로에는 분하다는 듯이 계속해서 고삐를 풀기 위해 사방으로 몸을 흔들어댔지만, 한번 묶인 고삐는 클로에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클로에가 움직일 때마다 그 길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중엔 아예 그 고삐가 한 뼘 정도의 길이로 줄어들어버리자, 클로에는 말뚝에 얼굴이 바짝 붙은 채로 꼴사납게 엉덩이를 치켜든 모습으로 버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클로에의 모습을 보면서 알베르토가 말했다.

 

“저 망아지는 써먹으려면 누가 길 좀 들여야 하겠군. 그건 급한 건 아니고. 좋아. 다음은 누구지?”

 

이번엔 아이린이 나섰다.

 

“결국 직감만 믿더니 꼴좋군 그래, 왕족아가씨. 이런 건 상식적으로 풀어야지. 감이 뭐야. 내가 성공할 때까지 잠시만이라도 그렇게 생각 없이 너무 편안하게 살았던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있어봐.”

 

그러면서 친구 옆을 지나 받침대로 향한 아이린은 주머니 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역시 천천히 잔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만있자. 우선 대마법시대의 양식이 아닌 것은 제외하고, 역시 알베르토 시대보다 너무 빠른 거나 느린 것도 빼고, 그리고 이 지역 양식을 벗어나는 것도 역시 제외. 그럼 남는 것은 이것뿐이겠군.”

 

아이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기준대로 잔들을 분류하더니 그 중에서 투명한 유리에 금박장식이 입혀진 잔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거기에 샘물을 담아 입으로 가져갔다.

잠시 후, 일행은 아이린 또한 눈에 띄게 외모가 젊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어때, 내가 말한 대로지? 클로에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멀쩡하잖아. 난 역시 천재야. 하하하”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린의 몸 또한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강한 바람이 방안을 가득 몰아쳤다. 그리고 그 바람이 잦아들자, 일행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아름다운 하얀색 대리석 상이었다. 비록 옷은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얼굴은 놀란 표정으로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지만, 그 석상은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잘록한 허리라인 등 아이린의 활짝 드러난 알몸의 곡선을 충분히 아름답게 드러내고 있었다.

 

“하하하, 암, 그렇게라도 자신의 위대함을 남들에게 보여줘야지. 그런데 말야. 자넨 아무래도 시시한 마법보단 자기의 훌륭한 몸매를 드러내는 게 헐 나아보이는 것 같군, 그래. 하하하.”

 

그렇게 박수까지 치며 한참을 재미있어 하던 알베르토는 얼마 뒤 웃음을 가라앉히고는 이자벨라를 보면서 말했다.

 

“이제 남은 건 그대뿐이로군. 자 어떻게 할 건가? 기회는 한 번 뿐이네. 이대로 계속 할 건가? 아님 포기할 건가?”

 

앞에서 박장대소하던 알베르토와는 대조적으로 가만히 두 친구의 선택을 지켜보기만 하던 이자벨라는 결심했다는 듯이 조용히 받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한쪽 구석에 있던 평범한 잔을 골라 들었다.

 

“오, 그게 맞는다고 확신하는 건가?”

“물론입니다. 나뭇가지를 숨기려면 숲으로 가라고 하죠.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트인 당신 성향을 짐작하면, 진짜는 다른 비슷한 것들과 섞어놨을 가능성이 꽤 크죠. 게다가 결정적으로 아까 아이린이 이 잔을 잡고 옮길 때 당신의 표정이 살짝 이었지만 변하는 것을 봤습니다. 때문에 확실할 겁니다.”

“하하하하. 자네는 정말 나를 즐겁게 하는군. 그럼 과연 자네 말이 맞는지 확인해 보겠나?”

 

이자벨라는 그 말에 씩 웃고는 샘물을 잔에 담아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자리에는 20대 초반의 싱싱한 미모를 자랑하는 이자벨라가 양팔을 허리에 얹고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자태로 당당하게 서있었다.

 

“하하하. 축하하네. 이처럼 성공한 자는 수백 년 만에 만나보는군.”

하지만 그 알베르토의 말에 뭔가 수상한 점을 느낀 이자벨라가 말했다.

 

“수백 년? 그럼 이전에도 여기까지 왔던 자들이 있었단 말입니까?”

“물론이지. 그런 건 똑똑한 자네라면 예전에 좀비들하고 전투를 벌였을 때 이미 예상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렇긴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성공한 자가 있었다면, 왜 그동안 어디에도 그런 소문이 돈 적이 한번도....... 설마?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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