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주박 제6장 관람차
제6장 관람차
제26화
"얘, 마리에, 서두르렴. 늦겠다"
"네에, 지금, 가요". 머리카락을 헤어밴드로 묶으며 얼른 대답한다. 평소처럼 빨간색의 심플한 것이 아니라 조그만 꽃 장식이 달린 헤어밴드였다. 유행이나 세련된 것 하고는 거리가 먼 마리에였지만, 모처럼의 여행인지라 작년에 생일선물로 남동생에게 받은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른 것이었다.
뭐야, 어쩐지 나, 무지 두근두근거려.
"마리에도 참, 아직이니?"
어머니의 밝은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왔다.
"기다렸지?"
"빠트린 건 없니? 제대로 손수건, 챙겼고?"
"뭐야, 정말. 어린애도 아니구, 괜찮거든요"
어깨에 짊어매고 있는 커다란 검정색 가방을 탁탁 두드려 보였다.
오늘, 금요일 밤부터 2박 3일 예정으로 타카쿠라네 별장에 간다. "도련님의 그림작업 진척상황이 늦어져서"라는 이유로, 타카쿠라 댁 가정부 아주머니를 통해 숙박예정의 모델 일 의뢰를 받고, 어머니 유이는 의외로 선선히 허락했다. 아버지는 "수험도 코 앞이고, 더구나 젊은 남자애와 여행이라니"라면서 꺼려하는 눈치였지만, 유이의 등쌀에 밀리고 말았다. "마리에, 지난번 전교 모의고사 때, 물리하고 수학 III 학년 톱이었는걸요. 진로상담 선생님께서도, 추천입학이 확실하다고 장담하셨다구요". 다른 이유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도련님께서 마리에씨를 아주 마음에 들어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이 결정타였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서양화가의 모델이라는 명예 뿐만이 아니라, "혹시 잘 하면, 마리에가 타카쿠라 댁에 시집가는 거 아닐까". 그런 기대가 얼굴에 써 있었다.
"그럼, 갔다 올께"
"누나, 조심해서 다녀와"
남동생 켄스케도 누나의 유난히 밝은 모습이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리에 입장에서도, 이유야 어찌 됐건,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선선히 허락을 받아 어머니께 감사하고 있었다.
"고마워, 엄마. 도착하면 전화할께. 켄스케도 얌전히 잘 있어야 돼"
타카쿠라하고는 결국, 그 이후로 2주 동안 이야기조차 변변히 나눌 기회가 없었다. 아버지의 개인전 준비로 학교도 드문드문 나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휴일에도 만날 시간이 없었다. 목요일 밤, 타카쿠라 댁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주인님, 너무, 기뻐요"
역으로 향하는 버스 안, 가슴 위로 진주 목걸이를 꽉 쥔다.
마리에를, 잊지 않으신거야. 주인님께서도, 마리에를 보고 싶어하셔. 마리에, 마리에의 육체를, 또 괴롭혀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계시는거야.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서 빨리, 만나고 싶어.
막 도어가 닫히려고 하는 도쿄행 열차에 간신히 올라 탔다.
"제대로, 용서를 빌어야 돼"
피부에 남아있던 흔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그래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찌됐든 결국은 주인님을 배신한 거니까. 비밀같은 거, 만들고 싶지 않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경치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주인님께, 의지가 될 수 있는, 그런,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향해 중얼거렸다. 미키에게 전해들은 그의 슬픈 과거. 언젠가, 학교 안뜰에서 "언젠가 얘기해줄 때가 올지도 모르지". 타카쿠라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이거, 였어. 주인님 스스로, 이야기해 주려고 했었다. 기대에 부응해야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그런 아이가 되어야만 해.
우연찮게 주어진 2주일이라는 시간이, 마리에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그것을 받아 들일 만한 각오를 다지게 해 주었다. 더이상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앗, 죄송합니다"
주말의 여행객들과 귀가길을 서두르는 샐러리맨들 사이를 빠져나가며, 익숙치 않은 인파 속에서 도쿄역으로 향하는 플랫폼을 찾는다.
"6번, 6번, 6번 홈, 이랬지"
매점에 들려 캔으로 된 차를 2개 샀다. 숨가쁘게 계단을 뛰어 오른다. 약속장소인 개찰구로 향했다. 한눈에 그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아, 주...인...님..."
빈티지 가죽 코트에, 물 빠진 청바지. 천천히 뒤돌아 보더니 살짝 손을 들어 올린다.
"어이, 잘 지냈어?"
평소와 똑같은,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무뚝뚝한 얼굴.
"갑자기 여행가자고 해서, 미안"
저 특유의 억양이 거의 없는 목소리가, 마음 속 깊히 스며들어온다.
"아,아뇨, 저기, 오랫만입니다. 그니까, 어, 같이 가자고 해주셔서, 그, 감사드립니다"
자기가 생각해도,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머저리가 따로 없다. 민망한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막상 타카쿠라 앞에 서자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마리에, 나 보고 싶었어?"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네,네엣, 물론입니다"
"그래? 나도"
온몸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몸이 바르르 떨렸다.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라왔다.
꿀먹은 벙어리가 된 마리에를 본채만채하고, "저녁, 아직이지? 도시락이라도 사 갈까?"라며 바닥에 내려 두었던 숄더백을 집어 들었다.
"저,저기, 도시락, 저기, 만들어, 왔습니다"
"그래?"
"계란부침도, 넣었어요, 잔뜩"
타카쿠라는 아무 말 없이 마리에의 어깨에서 가방을 뺏어들더니, 특급열차 승강구에 발을 올렸다. 마리에가 그의 등에다 대고, "목걸이, 가,감사합니다. 굉장히, 굉장히, 기뻤습니다. 고맙...습니다"
여전히 등을 돌린채로 타카쿠라가 대꾸했다.
"잘 어울려. 마리에한테"
"오늘 밤은 이미 늦었으니까, 푹 쉬도록 해"
바닷가 언덕에 위치한 광활한 부지의 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시계 바늘이 12시를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마리에의 음란한 몸은,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면 잘 수가 없나?"
"부끄럽...습니다"
타카쿠라가 마리에의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내일부터 잔뜩 느끼게 해줄께. 질리도록"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
푹신푹신한 침대에 누워, 타카쿠라의 체온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시모다역에서 갈아 탄 택시는, "미나미이즈, 이로자키 별장지의 타카쿠라"라는 말만 듣고도, 전혀 헤매지 않고 도착했다. 다시 한번, 자기자신하고의 생활 수준 차이랄까, 역시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불과 세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었다. 자신이 이런 곳에서 자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만난 타카쿠라가 보여준 깜짝 놀랄 정도의 다정함이 잘 믿겨지지 않았다.
별장 안에 있는, 열 명 정도는 너끈히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온천탕에 함께 들어갔을 때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치 애무라도 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씻겨 주었다. 탕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에도, 내내 어깨를 꼭 껴안고 바로 옆에 딱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같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다.
자기도 모르게 그의 곁에 찰싹 달라 붙는다.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편안함을 느끼며, 깊은 잠에 빠져 든다. 타카쿠라는 곤히 잠든 마리에의 평화로운 얼굴을 질리지도 않는지 내내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이 침대 위를 비춘다. 시트에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을, 뺨을, 콧날을, 이마를, 동그란 턱을, 꼭 감긴 눈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응시하고 있었다.
"나, 또 같은 짓을 반복하려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려고, 해요. 하지만, 이제 멈출 수 없어요. 용서해...줄거죠? 엄마..."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더 살짝 키스했다.
제27화
"잘 잤어?"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시다. 지금, 몇 시지? 얼마나 잔거야?
"안녕히...주무셨어요?"
타카쿠라의 인사에 답하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래, 주인님의 별장에 같이... 왔었지. 멍한 시야 속으로 타카쿠라의 얼굴이 서서히 들어왔다. 캔버스 앞에 앉아 있었다.
"자고 있는 모습, 그리고 있었어"
"에? 저기..."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그럼, 저기, 계속, 제 얼굴, 보고 있... 몰라"
너무나도 창피한 나머지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 쓴다.
"지금 커피 내릴께. 그만 일어나"
"...네"
얼마 동안이나, 쳐다보고 있었을까. 기쁨 반 부끄러움 반으로, 똑바로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흠칫흠칫 토스트에 손을 뻗었다.
"설탕은 어떻게?"
"앗, 그게, 한 개만"
"푹, 잤어?"
"네, 무척이요. 이렇게 자 본건, 정말 오랫만, 이에요"
"그래?"
"저기, 지금, 몇 시, 예요?"
"조금 있으면, 정오야"
"네? 제가, 그렇게나, 오래, 잔거에요?"
"코까지 골던데?"
"저,정말...요?"
"농담이야"
아침 식사를 먹으며 담담하게 나누는 짧은 대화. 슬쩍 훔쳐본 타카쿠라도,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며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둘만의 고즈넉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말해야 해.
커피 컵을 내려 놓고, 각오를 다지며 타카쿠라를 향해 자리를 고쳐 앉았다.
지금, 말해야 돼.
"저기, 주인님"
제대로 말해야 돼. 사과드려야 해.
"왜?"
"저기, 저기, 제가..."
"말해"
곧바로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피해 얼른 고개를 숙인다. 마리에의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분위기에, 타카쿠라도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답답한 침묵을 깨고, 타카쿠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끝내자, 라던가 하는 그런..."
"아뇨, 아니에요. 그런, 그런거, 아니에요"
담뱃불이 눈에 확 띄게 환해질 정도로 세게 담배를 빨아들인다.
"...저, 주인님, 주인님 이외의, ...그니까, 다른 남자한테..."
순간, 타카쿠라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그, 타카신가 뭔가 하는 남자말야?"
둑이라도 터진 것처럼 말이 쏟아져 나왔다. 집에서, 소꿉친구였던 가정교사에게, 선물상자의 발신인을 본 그가 갑자기 덮쳐와, 저항도 하지 않고 몸을 허락한 것을, 그가 자신이 전부터 짝사랑해오던 사람이었다는 것, 같은 대학에 합격하면 데이트하자고 약속했던 것까지도, 전부 다. 모든 걸 한꺼번에 털어놓았다.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진주를 양손으로 꼭 움켜쥐고 말을 이었다.
"주인님,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게 뭐든지, 시키시는대로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마리에를, 마리에를, 버리지 마시고, 곁에 있게 해 주세요, 제발"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했다. 그 바람에 커다란 소리를 내며 하얀색의 앤티크 의자가 뒤로 발라당 넘어갔다.
"버리지 마세요, 마리에를, 버리지 마세요"
타카쿠라가 일어나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뭐든지 다, 할께요, 어떤 벌이라도"
그가 파자마를 붙잡아 몸을 일으켜 세워준다.
"마리...에"
그리고는 안쓰럽게 바들바들 떨고있는 마리에의 조그만 몸을 와락 껴안아 주었다.
"힘들었을텐데 잘 털어놔줬어"
"네?..."
상냥한 목소리.
"얘기해줘서 고마워"
"아, 아, 아"
자기도 모르게 타카쿠라의 가슴으로 뛰어들고 만다.
"그건 그렇고, 마리에는 그 남자한테 안겨서 느낀거야?"
"조금..."
"갔어?" 몇번이나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한다.
"나하고 그 남자하고, 어느쪽이 더 좋았는데?"
"주인님이요. 주인님이, 더, 좋았어요"
부드럽게 머리를 어루만져 준다.
"마리에"
타카쿠라의 눈이 어느새 새디스트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자, 느끼게 해줄께. 그, 타카신가 뭔가 하는 남자는 새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아, 기...뻐...요"
두근두근, 기대감으로 온몸이 떨려온다.
이제, 날 괴롭혀 주실거야. 잔뜩, 느끼게 해주실 거야. 머리 속이 새하얘질 정도로, 절정에 오르게 해주실 거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애액이 주르륵 배어나온다.
"전부, 벗어"
"네, 주인님"
버튼을 풀 시간 조차도 아까왔다.
제28화
딸랑, 딸랑.
한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방울 소리가 울린다.
"조금만 더 가면, 바다가 보일거야. 똑바로 걸어"
줄을 잡아끌며 타카쿠라가 말했다.
"네...아앙, 죄...아아, 죄송...하아아, 합니다... 하으, 아으음"
허벅지 사이로, 보지와 항문에 박힌 2개의 바이브레이터가 꿈틀꿈틀 끊임없이 자극을 가해오고 있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온몸을 빠듯하게 조여오는 밧줄뿐. 팔은 등 뒤로 묶이고, 젖꼭지에 끼워진 조그만 링에 달린 작은 방울. 울창한 숲속 산책길을, 오후의 산책이라면서 벌써 20분 넘게 걸어왔다.
누구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별장 부지내에 아무도 없다고는 하지만, 이런 음란한 모습으로 백주대낮에 밖을 거닐다니. 이렇게 느끼면서 걷고 있다니. 육체가 느끼는 자극 이상으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져, 요염한 자극이 등줄기를 타고 지나간다.
"아, 아, 아아앙, 하아아"
이미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몸은 12월의 찬 바람조차도 전혀 느끼지 못 했다.
"봐, 경치 참 좋지?"
숲을 빠져나와 벼랑 끝에 서 내려다 보자, 수평선을 경계로 푸른 바다와 하늘이 쭉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마리에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타카쿠라가 벤치에 앉아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여기 앉아"
"저,저기... 주인님..."
마리에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추위 탓만은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한다.
"여기 앉으라고"
담배갑으로 무릎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 간신히, 참고 있었는데... 어떡하지?
"뭐든 시키는대로 다 한다며? 그거, 거짓말이었던 거야? 용서받으려고 아무 말이나 막 한거야?"
일부러 화난 목소리를 내며, 잡고 있던 줄을 마리에 쪽으로 휙 내던진다.
"앗, 거짓말, 거짓말 아니에요"
흠칫흠칫, 바이브가 삐죽 삐져나온 동그란 엉덩이를 내린다. 타카쿠라의 다리 위에 옆으로 앉아 안기는 모습으로.
"아아앙"
유방을 와락 움켜쥐고 등을 어루만지는 손에 신체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앙, 조,좋아, 아아앙, 몰라, 그,그런"
"이제 완전히, 줄로 느끼게 되었구나, 마리에도"
"아, 그건, 주인님께서, 아아앙, 그런, 그런 식으로, 아앙, 주,주인님, 안 돼, 안 돼, 안 돼요, 하읍"
"뭐가 안 된다는 거야, 내가 싫어?"
뻔히 알고 있으면서, 짖궂게.
"아,아닙니다. 그, 그니까, 하고, 하고 싶어요"
"그렇게 급해? 콱콱 박아줄까? 이 음란한 구멍에다가"
젖꼭지를 굴리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 딴 소리를 한다.
"저기, 그,그게 아니라, 저기, 화장실에..."
귓볼까지 빨개져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야, 그런거였어?"
"앗"
타카쿠라가 마리에의 몸을 바다 쪽으로 틀더니 양 다리를 움켜 잡고는 크게 벌려 버렸다. 바다를 향해 보지를 활짝 벌리는 자세였다.
"몰라아, 이런, 이런 거, 싫어어"
뒤에서 속삭이듯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심으로 내 옆에 있고 싶다면, 이대로 싸 봐. 못 하겠으면, 그 남자한테 돌아가던가"
그 말에 곧바로, "주인님, 저기, 이거, 세게, 해주세요". 각오를 단단히 굳혔다. 보지 속에서 바이브가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쾌감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힘을 뺐다.
"앗, 아아아아, 가,가요, 아아아아아"
노란 액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흩날리기 시작했다. 가벼운 절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벌써 간거야?"
반쯤 열려 있는 입술 사이로 뜨거운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땋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약속대로, 박아 줄께"
마리에를 무릎 위에서 내리더니, 잔뜩 성이 난 자지를 꺼낸다.
"아..."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보지가 쿡쿡 쑤신다. 또다시 몸이 달아오른다.
"아아아..."
안에 받아들이고 싶어, 팍팍 찔리고 싶어, 주인님을, 주인님의, 그걸.
씩씩하게 발기한 자지를 눈앞에서 바라보자, 조금 남아있던 이성이 사라져 간다.
타카쿠라가 뒤로 묶여 있던 팔을 풀어주고 벤치를 붙잡게 했다.
"아앙, 몰라"
두 개의 바이브를 한꺼번에 쑥 뽑아내 버리고, 양손으로 엉덩이를 활짝 벌려 딱딱한 자지로 보지를 문질러대면서 물었다.
"마리에, 어느 쪽에다가 넣어줄까?"
"아, 아, 아, 뒤에다가요"
"뒤라니, 무슨 뜻이야? 똑바로, 말을 해줘야 알아듣지"
"항...문... 아아아, 마리에의, 항문에다, 항문에다가, 주인님 껄, 넣어, 넣어주세요"
항문이 쫘악 벌어진다.
"아아아아, 좋아, 들어, 들어오고 있어요, 좋아요오오"
잔뜩 긴장하고 있는 옅은 핑크색의 항문이 쑤욱, 페니스를 삼켜 버린다. 장벽이 쓸리는 듯한 감각. 딱딱한 살덩어리가 몸 속을 푸욱 푸욱 헤집어댈 때마다 뇌까지 저려오는 듯한 감각에 휩싸인다.
"몰라, 굉장... 느껴요. 아앙, 굉장해. 이런...거, 아앙, 안 돼, 찢어져...버려, 아앙, 몰라, 하아앙, 아앙, 아앙, 망가져버려요"
보지에다 박는 것처럼, 타카쿠라는 한층 더 격렬하게 항문을 쑤셔댔다. 퍼억 퍼억, 살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윽, 아아, 하아앙, 하앙, 아앙, 하앙, 몰라, 아앙, 아앙, 굉장해...요, 아아아아아"
애타게 바래왔던 것을 받아 들이며, 단숨에 유열의 소용돌이 속으로 몸도 마음도 그대로 내던져 버린다.
주인님, 마리에는, 이제, 주인님 꺼에요. 누가 보든지 말든지 이제 상관없어요. 주인님이 제 전부니까요.
머리 속이 새하얗게 녹아 버린다.
"아앙, 가요, 항문으로, 항문으로, 가...버려요, 안 돼애애, 지금, 마리에, 가요오오오"
더 격렬하게 쑤셔 박는다.
"가요오오오오오오오오"
새하얀 피부가 미친듯이 경련하며, 두번째 절정을 맞이했다. 타카쿠라가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조심스레 자지를 뽑아내더니, 다시 벤치에 걸터 앉아 잠시도 쉴 시간을 주지 않고 곧바로 다음 명령을 내렸다.
"마리에, 혼자 멋대로 먼저 간 벌이야. 내 꺼를, 그 입으로 깨끗이 핥아 먹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허겁지겁 자기가 만든 웅덩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 항문 속에 들어가 있던 지저분한 것을 입 안에 머금었다. 첨단을 혀로 맛있게 핥는다. 한참을 귀두만 집중적으로 핥아대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팔을 등 뒤로 돌리고 목구멍 깊숙히 자지를 삼켰다. 잠시도 혀놀림을 멈추지 않고 열심히 빨아 올리며 스트로크를 반복해 나갔다.
주인님, 주인님을 정말로 사랑해요.
현기증이 날 정도로 한껏 빨아 올리다가, 입에서 빠져나오기 직전에 귀두를 혀로 한번 핥고는 다시 목구멍 깊숙히 삼킨다.
"좋아, 마리에. 그거야"
살짝 눈을 뜨고 올려다 보자, 타카쿠라가 애써 쾌감을 참고 있는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아아, 주인님께서, 마리에의 봉사로 느끼고 계셔.
자기도 모르게 뿌듯해진다.
좀 더, 좀 더 많이, 느껴주세요. 마리에의 봉사를 즐겨 주세요.
쮸웁 쮸웁, 습기를 잔뜩 머금은 소리가 울린다. 어떻게 하면, 더 기분이 좋아지실까. 열심히 궁리하면서, 혀와 입술, 목구멍, 침을 총동원해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부위를 찾아 나갔다.
"웁, 웁웁"
여기, 일라나.
눈을 치켜 뜨고 반응을 살펴 보면서, 입술로 귀두 아래를 조이며 요도구 안에 혀를 넣어 본다.
"크윽, 슬슬, 반응이, 오는데"
타카쿠라가 마리에의 머리를 내리 누르며, 단숨에 허리를 위로 쳐 올렸다.
"우우웁, 우웁---"
"싸,싼다"
격렬하게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인다. 츄루릅 츄르릅 축축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리에---"
입 안에서 페니스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퓻퓻, 뜨끈뜨끈한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리에는 전부 다 삼켜 버렸다. 이마가 타카쿠라의 아랫배에 닿을 정도로 깊숙히 받아 들였다. 그런데도 전혀 힘들거나 고통스럽지 않았다.
"제법 잘 했어"
"감사...합니다"
그제서야 자지를 입에서 뽑아내며 마리에가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번엔, 앞쪽 구멍에다 넣어봐"
천천히 일어나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리고 서서, 아직도 기세등등한 살덩어리를 왼손으로 잡고, 축축하게 젖은 보지를 오른손으로 벌리며, 마리에는 천천히 허리를 아래로 내렸다.
"하아아아아아, 안 돼, 아앙, 또, 가버려, 아앙, 좋아아아아아"
타카쿠라가 뒤에서 우왁스럽게 유방을 움켜 잡았다. 등을 활처럼 뒤로 크게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미친듯이 허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스스로,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제29화
"잠깐, 거기서 기다려"
"네"
차고를 향해 두어걸음 걷다 타카쿠라가 갑자기 뒤돌아보며, "힘들진 않아? 어제 그렇게 많이 했는데". 일부러 짖궂게 물어본다.
"괜찮...습니다". 금새 얼굴이 빨개지는, 마리에의 순진한 반응이 재밌다는 듯 놀려댄다.
어제는 결국, 그대로 별장에 돌아와, 복도에서, 식사 도중에 식당에서, 목욕하다가 탕 안에서,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뒤엉켰다. 밤 늦게까지 몇번이나 섹스를 했는지 모른다. 마지막엔 침대 위에 납작 엎드려 후배위로 안기던 도중에 그만 의식을 잃고,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겨울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어젯밤을 떠올리고는 가슴 가득 충만한 행복감에 빠져 들고 있었다. 온몸이 나른할 정도로 피곤했지만, 조금도 신경 쓰이거나 하지 않았다. 단지, "주인님은 어째서 나...같은 아이를, 이렇게까지 마음에 들어하는 걸까". 그 의문만이 가슴에 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남아있을 뿐이었다. 애써 그 생각을 떨쳐낸다.
오래 되어 낡아빠진 운동화. 바지도, 핑크색 츄리닝도, 중학교 때부터 입어왔던 낡은 옷. 동네 옷가게에서 엄마가 사 온 이월상품이었다. 세련되어 보이기는 커녕, 귀여워 보이지도 않는다. 여지껏 화장같은 건 해 본 적도 없고, 누구한테 고백받아 본 적도 없다. 그 타카시씨도, 고백까지는 해 주지 않았으니까.
처음엔 도둑질을 목격한 걸 빌미로 억지로 수치스러운 행위를 강요당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타카쿠라는 확실히, 변했다.
언제부터, 대체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나를 바라봐 주기 시작한 것일까.
무엇, 때문일까.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생각들이, 갑자기 들려온 시끄러운 소리에 가려 날아가 버렸다.
"기다렸지?"
타카쿠라가 올라타고 있는 커다란 오토바이. 크롬으로 된 파이프 프레임에, L자 모양의 독특한 배기통이 내는 중저음이 땅을 울리고 있었다. 진한 주홍색의 외제 오토바이. 얼핏 봐도 무지 비싸보인다.
"타"
하프 타입의 헬멧을 휙 던져 준다.
"네? 타라고요? 저기, 어떻게, 타야..."
"내 뒤에 올라타, 등에 꼭 달라붙어 있으면 돼"
주인님을, 꼭, 붙잡고 있으면 되는거야? 그래? 그쯤은 나도 할 수 있어.
내리막 산자락을 굽이도는 커브길을 고속으로 달려 내려가는 오토바이에 타고 있는데도, 조금도 무섭지가 않았다. 그저 타카쿠라의 허리를 양팔로 두르고 꼭 매달렸다. 차가운 바람이 옆으로 씽씽 지나갔다.
"저,저기, 어디, 가는, 거에요?"
신호대기에 멈춰섰을 때, 얼른 물어 보았다.
"꼭 붙어있기나 해, 금방 알게 될테니까"
"다음은, 어떤 거 탈래?"
"네? 저기, 주인님은, 어떤 게 좋으신데요?"
"난 됐어. 모처럼의 데이트니까, 마리에가 골라"
데이트... 이거, 데이트였구나.
"저기, 그럼, 저, 제트 코스터..."
당황해하면서 떠듬떠듬 대답한다. 타카쿠라가 데리고 온 곳은, 휴양림 안에 위치한 조그만 유원지. 마리에에게 있어서, 가족 이외에, 남자와 단 둘이서 놀러와 보기는 처음이었다.
"마리에, 그러다 떨어지겠다. 제대로 꽉 잡아"
"너무해요. 떨어질 일, 없거든요. 안전바도 제대로 달려 있고. 치잇"
뾰루퉁하게 부푼 볼을 타카쿠라가 손가락으로 쿡쿡 찌른다. 코스터가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몰라, 역시, 좀, 무서워어"
"괜찮다니까"
바를 잡고 있는 조그만 손 위를 커다란 손이 덮는다. 제트 코스터에서 내리고 나서도 타카쿠라는 그 손을 떼려고 하지 않았다. 겨울철이라 손님이 뜨문뜨문한 유원지 안을, 둘이서 내내 손을 마주 잡고 거닐었다. 마리에도 손이 빨개질 정도로 꼬옥 마주 잡았다.
진짜 데이트 같애. 아니, 진짜 데이트야.
"잠깐 사이에 전부 다 타 버렸네. 힘들지 않아?"
"저기"
"마리에, 괜찮아?"
"저기"
"응"
"입 주위에, 핫도그 케챺이, 묻었는데요"
"윽, 마리에, 왜 진작 말 안했어"
"그게, 어쩐지, 좀 귀여워 보여서요"
"나중에 벌 줄거야"
"네, 주인님"
고개를 꾸벅 숙이며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타카쿠라가 잠깐, 그 표정을 바라보더니 옆을 지나던 가족여행객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만, 사진 좀, 찍어주시겠습니까"
"에?"
손을 맞잡은 채로, 파인더 안에 나란히 선다.
"어이, 똑바로 앞엘 봐야지"
"에? 네엣"
주인님하고, 사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마리에를 본채만채하고, 타카쿠라는 카메라를 돌려 받더니 어느새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 관람차를 가리켰다.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니까. 마지막은, 저걸로 할까"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낡은 곤도라 안에 마주 앉자, 한층 더 강렬한 시선이 느껴진다.
"마리에"
"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마리에는 그걸 "벌을 주려는 신호"로 착각했다. 츄리닝을 벗으려고 하는 마리에를 보고, 타카쿠라는 처음으로 싱글벙글 웃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니 아니, 여기, 여기. 옆에 앉으라고" 황급히 제지했다.
"네? 아잉, 나..."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
새빨개진 얼굴로 옆자리에 옮겨 앉은 마리에의 어깨에 곧바로 팔을 두른다.
"마리에한테, 얘기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어"
조용한 어조였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몸을 움츠리고 타카쿠라에게 기대었다.
"내, 어머니, 이야기야"
진주를 꼭 움켜쥔다. 괴로운 기억, 슬픈 기억을, 본인의 입으로 말하게 해선 안 돼. 내가, 차라리 내가 먼저, 주인님께.
그래, 이번엔 내가 주인님께 힘이 되어줄 차례야.
"저,저기, 주인님"
말을 끊고, 단숨에 이야기했다.
"저기, 어머님 이야기, 그, 미키씨에게, 전부, 들었습니다. 저기, 아버님이, 찔러서, 그, 돌아가셨다고. 미키씨가 알려 줬습니다. 그 뒤로 내내, 주인님, 괴로워 하셨다고. 저,저는, 아무것도, 몰라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주인님께 힘이 될 수 없을까, 내내, 못 뵙는 동안 생각해 봤어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지금도 잘 모르지만... 만약, 만약, 마리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주인님께 힘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어떤 일이든지... 다 할테니까... 그러니까... 저는, 주인님이... 그"
"그래, 미키가, 말했구나"
가만히 밖을 내다보고 있는 타카쿠라의 뒷모습을 마리에가 응시한다.
"마리에는 내 여자니까"
혼자 멍하니 중얼거리는 말에, 타카시하고의 일을 탓하는 거라고 또 착각하고, "물론, 저기, 절대로, 다른 사람하고는, 그런 짓,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당황해하며 얼른 대답한다.
"그 얘기가 아냐"
뒤돌아 보며, 마리에의 조그만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쥐고 말했다.
"나도, 마리에를, 소중하게 생각해. 앞으로 쭉, 함께 하고 싶어"
안경 너머로, 놀라서 똥그랗게 뜬 눈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쭉 함께, 옆에 있어줘"라고 말을 이었다.
갑작스런 고백.
무슨 대답을 해야 될지 몰라, 그저 눈만 똥그랗게 뜬 채로 고개만 열심히 끄덕였다.
곤도라가 한 바퀴 돌아 내려오자, 문을 연 직원은 두 사람이 격렬하게 서로 부둥켜 안고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손님을 그 다음 곤도라에 태웠다. 두 사람을 태운 곤도라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제30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도쿄역 플랫폼. 마리에가 타카쿠라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코트 자락을 꼭 움켜쥔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일, 학교 가야 되잖아"
"그런 거, 아무래도 좋아요. 같이 있고 싶어요"
"고집 부리지 마"
"주인님께서도, 함께 있고 싶다고, 그러셨잖아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얼굴로 고집을 피우는 마리에를 보고, "별 수 없네. 이번만 봐주는 거야. 휴우, 내일 학교 안 나가도 돼?"
가죽 코트 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네, 괜찮아요"
"아, 여보세요, 시즈씨. 밤도 늦었는데 미안, 료지예요. 좀 부탁할 게 있어서"
가정부에게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마리에네 집에다, 하루만 더 모델일 연장하고 싶다고 전화 좀 넣어줘. 그래요. 알았어"
"고맙습니다. 근데, 주인님, 저기, 가정부 아줌마하고 이야기할 때는, 왠지 어린애 같아요"
"까불지 마"
마리에의 여행가방이랑, 선물이 잔뜩 든 쇼핑백을 바리바리 싸들고 급히 개찰구로 향하는 타카쿠라의 뒤를 졸졸 따라간다. 벌써 밤이 깊어서인지, 여행갔다 돌아오는 사람들의 모습도 뜸하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앗, 마리에도 같이 들께요". 타카쿠라의 뒤를 따르는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오오테마치 근방에서 택시를 잡아, "아카사카 프린스". 행선지를 말하고, 타카쿠라는 마리에의 손을 꽉 쥐었다.
이마를 창문에 딱 붙이고, 눈 아래로 펼쳐지는 야경을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던 목욕가운 차림의 마리에를,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타카쿠라가 벌거벗은 채로 뒤에서 껴안는다.
"앗, 주인님"
"뭘 구경하고 있어"
"아, 너무 예뻐서요"
"음, 그러네"
"뭐랄까, 꿈꾸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하고 같이, 이렇게 야경을 바라보고..."
수도 고속도로 순환선 위를 붉은 테일 램프가 흘러간다. 일년 전, 아니 수개월 전, 아니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런 곳에서 이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믿겨지지 않아. 꿈꾸고 있는 것 같아.
"꿈 아니야"
"앗, 아파요"
타카쿠라가 마리에의 말랑거리는 귓볼을 쭉 잡아당긴다.
"봐, 꿈 아니지?"
뺨에 키스한다.
"저기, 주인님, 그, 저기, 닿았어요..."
"응?"
"주인님 꺼가, 벌써부터, 딱딱해져서"
목욕 가운 앞섶으로 타카쿠라의 손이 기어들어왔다. 꽉 움켜쥔 젖가슴으로부터 따뜻하고 달콤한 자극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아, 아아, 아아앙"
혀가 뒤엉키는 진한 키스를 주고 받으며 서서히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아아아, 아앙"
이미 흥건히 젖은 보지에 손가락이 와 닿았다. 격렬하게 저리는 듯한 자극이 퍼져 나간다. 타카쿠라의 애무 하나하나가, 손가락이나 입술이 닿을 때마다, 몸 곳곳에서 유열이 넘쳐 흐른다.
"하아, 하아, 좋아요, 아아아아아, 이렇게, 하아, 주인님"
타카쿠라의 자지를 마치 조르는 것처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날, 마리에는 처음으로, 묶이지도 않고, 말로 희롱당하지도 않으면서, 타카쿠라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꼭 껴안은 채로, 그의 넓은 등을 팔로 휘감으며 그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여태까지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깊고도 아득한 새하얀 절정을 느꼈다.
"주인님"
시트를 뒤집어쓰고, 그의 팔 안에서 고양이처럼 몸을 둥글게 만 채로 애교를 부리는 마리에에게, "하나, 명령할 게 있어. 들어줄래?"라고, 타카쿠라가 물었다.
"네, 무슨 명령이든"
"그래?"
상반신을 일으켜 캔맥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이제,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거, 관둬. 이제부턴, 료지라고 불러"라고 말했다.
"네?..."
"알았지?"
"에... 네, 저기, 알았습니다. 근데..."
마리에도 몸을 일으키더니 똑바로 마주 본다. 새하얀 피부의 젖가슴이 드러났다.
"그럼, 어디 한번 불러봐"
"...료,료지...씨"
이렇게, 갑자기, 이름으로. 어쩐지, 기쁜긴...한데, 창피해.
"한번 더"
"료지...씨"
"그래, 좋았어"
그리고 한참동안 격렬하게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 입술을 떼자 침이 실처럼 주욱 늘어진다.
"저기, 주인... 아니, 료지...씨. 저기, 저도,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지금이라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쭉,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던 의문을.
"어째서, 마리에를, 그, 이렇게, 소중하게, 대해 주시는 거죠?"
"소중히...라. 그랬나? 내내 심한 짓만 한 것 같은데. 뭐, 앞으로도 계속 그럴 생각이고"
"앗, 그,그런 말이 아니라, 그, 부끄러운 일, 하는 건, 지금도, 기쁩니다, 근데, 그런 거 말고, 미키씨가 훨씬 더 예쁜데, 주인...아니 료지씨, 엄청 멋있어서, 다들, 제 친구들도 동경하고 있고, 역시, 아름다운 분이, 더, 상대로 잘 어울리지 않을까하고... 저처럼, 미인도 아니고, 귀엽지도 않고, 매력도 없는 여자애 따위를..., 안 어울리니까, 분명히, 반 아이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 같고... 어째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점점 마리에의 마음 속이 추욱 가라앉아 간다.
타카쿠라가 침대 옆에 어지러져 있던 꽃 장식이 달린 헤어밴드를 주워 들더니 되물었다.
"이거, 정말 예뻐서, 마리에한테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근데, 어째서 마리에는 늘 머리를 묶고 다니는거야?"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초등학교 때, 정말로 좋아했던 남자애한테, 발렌타인 데이에 쵸코렛을 줬는데... 너처럼 꼬질꼬질하게 맨날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는 안경잽이 메주가 주는 걸 내가 받을 것 같냐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거절당해서... 그래서... 우리 집, 돈이, 없어서, 옷 같은 거 못 사주시니까, 늘 이웃집 언니들이 입던 옷 물려받아 입느라, 멋 같은 거, 부릴 여유가 없어서, 그치만, 그치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만들어서, 쵸코렛, 선물했는데... 그 뒤로, 쭉, 나 같은 거... 더 이상, 멋 부리고 싶다거나, 그런 거, 포기하자고... 눈에 띄지 않게, 눈에 안 띄게... 있자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러자고, 결심해서... 그리고, 그 후로, 쭉, 묶은 머리만..."
시트 위로 뚝뚝 물방울이 떨어진다.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쏟아내는 마리에를, 타카쿠라가 살며시 끌어당기더니 이내 와락 껴안아 주었다.
"마리에가 얼마나 매력적인 여자인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어. 바보같은 사내 녀석들이 그걸 알아차리지 못 했던 것 뿐이야. 어때, 마리에. 이제 머리 묶고 다니는 거 관둬. 안경도 벗고. 콘택트 렌즈, 내가 사줄께. 진짜 자기 본모습을 드러내는거야. 얼마나 마리에가 훌륭한 여자인지, 내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턱을 쥐고 얼굴을 들어올려 눈물이 그렁그렁한 마리에를 바라보며, "사랑해". 타카쿠라는 그렇게,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사랑해---.
그 말이, 녹슨 채로 멈춰 서 있던 운명의 톱니바퀴를, 다시 돌린다. 문이 열린다. 또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그 길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
마리에 여사의 초등학교 시절 발렌타이 데이 트라우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추천47 비추천 67